Bible Reading Made Easy

[신앙 일기] 죄를 짓고 자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2018년 08월 24일

2017년 10월 27일 구름 많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생명의 대가로 우린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죄를 지었다.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살다 보니, 사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죄를 짓는 문제는 줄곧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1일 구름 많음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며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때로는 집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말다툼했다. 교회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속으로 괴롭고 기분이 나빠져 형제자매에게 선입견이 생겼고, 그들과 상대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봉사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최대한 자제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서로 사랑하고, 내 행동을 최대한 단속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입견이 항상 나타났고,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이대로 살다 가는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늘 성경을 찾아봤지만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항상 어떤 힘이 내 안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지탱해주었다. 주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누가복음 11:9)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8일 흐림

오늘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보았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전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고, 형제자매님들과도 마음속으로 다퉜다.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있는 나는 확실히 ‘정결케 되지 못했구나!’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겉으로는 전도하며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죄 인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또 죄를 자백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주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리 형제님 역시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 자매님은 강조하며 말했다. “주님은 자애롭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왕 자매님도 장 자매님의 관점을 인정하며 말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지만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내가 주님 앞에서 죄를 잘 자백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죄를 짓는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11월 13일 구름 많았다가 개임

오늘 아침,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성경을 펼치고 영적 수련을 시작했다. 아래의 계시록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 성경에서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성’은 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본 후 나는 매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항상 죄를 짓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나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데, 그럼 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한1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째서 이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과 다를까? 나는 이 세 구절의 말씀을 펼쳐 놓고 대조한 결과, 계시록 21장 27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했다. 이 말씀은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주님께 사함 받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결케 되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개념이다. 우리는 전에 성경의 말씀을 오해해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 속에 살면서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타락한 것이 아닌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이 두 구절을 통해 만약 우리가 낮에 죄를 짓고, 밤에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정결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더럽고 타락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된 큰 일이다. 다음 주에 있을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내어놓고 다 같이 연구해 봐야 한다. 영적 수련이 끝나고, 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정말 부패하고 타락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7년 11월 25일 맑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나는 기분이 좋다. 친구가 나에게 영적 서적을 한 권 선물해 주었고, 그 영적 서적에 있는 많은 진리도 함께 나누며 그 동안의 미혹감과 당혹감을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보고, 친구와 나눴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원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일 뿐,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무시한다. 누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증오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기뻐하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원망한다. 항상 남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고,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이 한 말처럼 말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 이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지 죄를 짓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고, 죄악의 즐거움을 탐하며, 전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기만 할 뿐 진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평생 동안 믿었던 사람, 또는 성경을 숙독하고,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종교 지도자라할지라도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 봐야 겠다!

2017년 11월 28일 흐렸다가 개임

저녁 무렵,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품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품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알고 보니 내가 죄를 짓는 근원은 모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과 같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예전에 나는 우매하고 눈이 멀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 고수하며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보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자애로우시다. 동시에 공의로우시고 성결하신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죄성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구원을 받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찾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야 정결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계시록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꼭 예비해야 할 2가지

지금 세계 각지에서 점점 큰 재난이 일어나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4) 주님은 우리가 깨어서 예비해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비해야 할까요? 1. '영적인 귀'를 예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계시록에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두 성경 구절은 모두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릴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또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역하시며, 모든 비밀을 열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리를 모두 알려주시고, 모든 진리를 깨닫고 진입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를 통해 진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분명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고, 생명을 내려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예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비유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태복음 22:2~3) 또 계시록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시록 14:6) 주님은 말세에 하나님이 그의 종을 보내어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시고, 이 영원한 복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구하고 알아보고,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할 때, 주님의 음성이면 얼른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recommendpost id="18116"] 2.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겸허하게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라는 큰 사건을 대할 때,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이 이미 오셨다고 증거하고, 주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알아보고, ‘영적인 귀’로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들어야 진정으로 ‘깨어서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를 들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높은 신분과 지위가 있었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겸허히 빌립에게 구할 줄 알았고, 빌립이 간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사적을 들은 후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가 진리를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 이러한 예는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예비해야 할 일은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에,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구하는 주 안의 형제자매님들이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 [recommendpost id="20875"] [recommendpost id="2156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지 알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성경에는 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메시아의 예언은 이루어 졌는데 왜 유대인은 인정하지 않았는가

2천년 전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길 기다렸고, 예수님이 바로 오시기로 예언된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죄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계시록 5장 1절에 기록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에 대한 답을 찾다

많은 성도들은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에 대한 견해가 많습니다. 계시록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예언서이기에,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야 펼칠 수 있는데, 그러면 “인봉된 책” 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은 무엇일까?

창밖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서찬이 전도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저녁 9시가 되었다. 아내가 바삐 음식을 데우며 식사 준비를 할 때, 딸아이 소원도 교회에서 돌아왔다. 서찬은 얼른 딸아이에게 밥을 주며 함께 먹으려 했다. 그런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앞에 둔 딸아이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서찬이 딸에게 물었다. "소원, 왜 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딸아이가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아빠, 엄마, 제가 그동안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평상시에 목사님과 장로님이 설교하실 때, 항상 전도를 많이 해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어요.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며 헌신하고, 힘써 사역하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우리도 확실히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하지만 주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주님은 왜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셨을까? 우리가 이렇게 고난 받고 헌신하며 힘써 사역하는데 마지막 날에 정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소원의 말을 들은 서찬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소원, 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야.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믿고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하는데 설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겠니? 사도 바울도 말했잖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 지금 우리는 바울의 말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양육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어. 그동안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위한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어. 우리가 한 모든 행동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주님이 오실 때 분명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거야!"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소원, 아버지 말씀이 맞단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틀림없이 맞아.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렴." 딸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바울의 말을 따라 행했어요. 힘써 사역하고 헌신해서 많은 대가를 치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죠.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천지는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아요. 힘써 사역한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주님은 어째서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불법을 행한 자라고 정죄하셨을까요?” 딸아이의 말에 서찬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래.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이 다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 주님의 말씀은 진리야. 이건 틀림없어.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어. 이렇게 하는 게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찬의 생각이 끊겼다. 소원이 얼른 가서 문을 열어 보니 서찬의 조카 청현이었다. 청현이 웃으며 말했다. "외삼촌, 외숙모, 오늘 동역자들과 함께하는 성경 읽기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오늘 모임에서 느낀 점들을 나누고 싶어서 들렸죠.”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청현, 방금 우리도 한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던 중이었단다. 때마침 잘 왔구나! 너도 생각을 말해 보렴!" 서찬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 청현, 방금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어. 나는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라고 한 말대로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위해 사역하고, 주의 이름을 지키고, 주의 말씀을 지켜서 주님이 오시길 깨어서 기다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9:2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믿어. 하지만 소원이 성경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라는 구절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걱정된다고 하는구나. 힘써 사역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이야. 청현,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번 얘기해 보렴!" 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오빠, 우리는 이 문제를 정말 모르겠어. 어서 오빠 생각을 말해 봐." 청현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성경 읽기 모임에서 이 문제를 토론하고 있어요!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의 일을 하고, 바울을 본받으면 주님이 오실 때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사람의 관념에는 맞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행동의 원칙이고, 모든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죠. 깨어 기다리며,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주님의 말씀이 벌써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알려 주셨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주님의 말씀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지,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고, 부지런히 사역하면 상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예수님은 천국의 왕이십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구원 받을 수 있는지는 주님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오빠 말이 맞는 거 같아.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해야만 주님의 뜻에 맞을 수 있어”. 서찬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청현, 너의 나눔은 성경에도 부합하고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했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해.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따라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했어. 이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면 뭐겠니?” 아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청현, 설마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닐리가 있겠니? 청현이 말했다. "외삼촌, 외숙모, 우리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말해볼까요. 당시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은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전도 사역을 했어요. 사람이 보기에 좋은 행동을 많이 했고, 경건해 보였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의 정죄와 저주를 받고, '일곱 가지의 화'가 임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힘써 사역했지만 종교 의식만 다루고, 성경의 지식과 이론만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았어요. 모든 행동이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또 지위와 밥그릇 때문이었죠.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미친 듯이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하고 외식하는 본질을 완전히 드러냈어요. 이 사실을 보면, 힘써 사역하고 좋은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힘써 한 모든 사역은 사람의 좋은 행위에 속할 뿐,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볼 수 없어요. 소원이 찬성하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 하고 주님께 정죄 받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아. 힘써 사역하지만 모두 자기 뜻대로 하고, 자기가 복을 받고, 이득을 얻으려고 했던 거야.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야. 오히려 주님의 뜻은 따르지 않았어.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게 아니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는 관계없어!" 청현과 소원의 말을 듣고 난 서찬은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그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현, 네 생각이 맞구나. 바울의 말은 진리가 아니야.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이지. 만약 힘써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라면 그 바리새인들은 진작에 천국에 들어갔겠지, 어떻게 주님의 저주를 받았겠어! 바울의 말은 확실히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구나! 우리가 예전에 바울의 말을 따라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 정말 주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거였어! 우리가 계속 이렇게 추구한다면 틀림없이 주님께 버림 받을 거야!” 아내도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겉으로만 힘써 사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건, 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구나! 청현,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니?” 청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때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지키고, 완성할 수 있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한복음 14:23~24)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한복음 8: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9) 베드로는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바쳤어요. 주님의 마음과 요구대로 엄격히 교회를 양육했고, 자신의 득실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한 적도 없었어요.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고,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어요. 베드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어요. 또 욥도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어요. 하나님이 상을 내리든 거두어 가든, 하나님이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욥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어요. 그는 하나님의 눈에 온전한 사람이에요. … 등등 역대이래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어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고,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았어요. 그래야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확실히 많은 고난을 받고 많은 대가를 치른 것을 봤어요. 심지어, 감옥에 가고, 순교하면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았어요. 주님께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힘써 사역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요.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아요. 본인의 뜻에 따라 함부로 행동하고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고 항상 거짓말로 속여요. 모든 행동은 다 복받고, 상받기 위해서고 천국에 들어가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예요. 이런 걸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닌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아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이 때, 서찬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청현에게 말했다. "청현, 난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어! 이제야 알겠구나.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증거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였어!” 아내도 몹시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현의 말이 맞아.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지만 단순히 힘써 사역하며 헌신하는 것밖에 몰랐어. 바울의 말대로 힘써 사역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 정말 너무 어리석었어. 이제야 알겠어. 주님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길 바란다는 걸. 욥과 베드로처럼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야! 가장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소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늘 밤 이렇게 나누지 않았다면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그동안 헌신했던 게 다 주님을 속이는 거고, 상을 위해 주님을 이용한 것인 줄도 모른 채 계속 잘못된 길로 갔을 거예요. 그러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그것을 밑천 삼아 주님과 거래했을 거고, 결국에는 주님께 정죄 받고, 벌을 받아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정말 무섭네요!" 청현이 기뻐하며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밤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건 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예요. 모든 영광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내, 딸, 서찬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알고, 행할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울이 한 말이고,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들림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재림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실까요?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도 예수님이 벌써 2번째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게 하는 사역을 하신다는 간증들이 나돌고 있는데, 이 소문은 종교계를 들끓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대해 댓글을 달았습니다. “4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영체가 사람들 가운데서 40일 나타난 후 하늘로 돌아가실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라고 말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체로 돌아가셨기에 재림하실 때에도 당연히 영체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신으로는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재림하실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나타나 역사하실까요? 저도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이미 다 이루어졌고 말세가 도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와서 사역하는 지를 모른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그 답을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넷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문하였습니다. 마침 주님께서 예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Peter 형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저는 Peter형제가 식견도 넓고 빛비춤이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곤혹스러운 점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말을 다 들은 Peter 형제는 “지금 많은 형제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영체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영체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도 있지만,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는 예언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17:24-25) 이 말씀에서도 모두 ‘인자가 오리라’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면 곧 사람에게 나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체라면 ‘인자’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은 정상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이 구절에서 그 점을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체로 온다면 영체는 특별히 비범하고 위대하여 사람이 영체에 대해 개념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데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육신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되는데, 그의 외모가 평범하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생기게 되니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논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은 성육신으로 온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Peter 형제가 성경과 결부하여 교통해 주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저는 성경구절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도 성경을 많이 보았는데 왜 그때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이때 Peter 형제가 “이 형제님,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 보았는데 저는 “네,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 봅시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서 왜 성육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이 방면의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한 데 대해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나아가 그의 도를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공급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8-19)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요12:28-29) 이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에게 말을 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감에 떨려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 발표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위엄이고 진노의 성품입니다. 율법시대처럼 사람이 죄를 범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타 죽거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는 날마다 사탄의 성정을 유로하게 되는데 그러면 쉽게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께 격살당하게 되므로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반대로, 성육하신 하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성의 각도에서 진리를 발표하고 신성의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여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패괴 성품이 유로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인식할 수 있고 제때에 악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권유와 믿음의 힘을 더해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한 것은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Peter 형제의 말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주님께서 영체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줄곧 자신의 상상과 관념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주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그가 발표하신 말씀은 다 인류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인성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유들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장래에 재림하여 더 많은 진리를 발표하고 심판과 정결 사역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체의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신다면, 하나님의 영은 가장 위대하고 성결하신데 우리가 매일 범죄하고 죄를 뉘우치는 삶을 살고 또한 죄의 속박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해 반드시 하나님께 격살당할 것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심판하고 정결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죄에서 벗어나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Peter 형제의 말에 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Peter 형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진리를 발표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곧 말세에 양과 염소를 분류하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상선벌악의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영체로 역사하게 되면 사람마다 하나님께 공손하며 아무도 대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탄의 무리도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의 증거가 없게 되고 선과 악도 가를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책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부각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마음대로 대적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라고 말씀했는데 이렇게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시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다 자신이 가장 충심이 있고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주님의 재림이신 성육신이 평범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사람 안의 관념과 상상, 패역과 대적을 전부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역사하실 때 바리새인과 일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의 평범한 모습에 예수님을 보통 인간으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논단하고 대적하고 정죄하며, 또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예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전혀 찾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요한, 나다나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양과 염소를 드러내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충분하게 나타냈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을 듣고 저의 마음은 많이 설렜습니다. 예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면 상선벌악하시고 양과 염소를 분류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주님은 인자인 사람의 모습으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여 매 사람의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검증하고 이것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가늠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잠시후에 Peter 형제가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Peter 형제는 이 말씀으로 저와 교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성육신한 것은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위해서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철저히 정결게 하고 변화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다 얻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상선벌악하는 사역을 하시어 나중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사람들을 아름다운 거처에 처소로 데려 갑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두 번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모든 경영 계획을 완성하였고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지 않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과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의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었도 또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고, 이미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으며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여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이미 왔습니다. 우린 어떻게 주님을 맞이해야 할까요?

오시경 재림에 관한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2~34) 크리스천들은 이것이 재림을 예언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은 바로 이스라엘 회복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우리는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오늘날 이스라엘도 회복된 지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39, 42),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고, 서로 죽이고 음란이 본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타락됐었죠.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홍수로 멸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거짓 신과 악령을 경배하고 있으며 극도로 사악하고 타락됐습니다. 서로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아귀다툼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등 세상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명의상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교회도 장사하는 소굴로 전락되고 다 황폐해졌습니다. 심지어 많은 성도들은 사악한 조류를 좇고 있고 세속에 빠져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고 쾌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노아 시대와 비해 보면 그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각종 재난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징조로 재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이미 임했다는 뜻이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을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해 믿어 오면서 여느 형제자매들과 다름없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주님은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지금 재림에 관한 징조가 이미 다 나타났는데 왜 주님은 구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주의 재림을 놓칠까 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을 맞이해 버림받지 않도록 그 길을 깨우쳐 주고 인도해 달라고 늘 주께 기도드렸습니다. 저한테는 여러 해 전도하면서 사역한 친구가 있습니다. 최근에 모처럼 만나게 돼서 저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걱정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친구가 교제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그래서 우린 다 주님이 무조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규정하는 게 정말 주님의 뜻에 맞는 걸까? 사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재림하는 방식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마 24:5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어떤 말씀에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니 각인의 눈이 다 본다고 했고, 어떤 말씀에서는 또 도적같이 오시고 아무도 모른다고 했어. 여기서 주님이 두 가지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나타나시는 방식, 또 하나는 도적같이 은밀히 오시는 방식이지. 우린 다 주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무조건 다 이루어질 거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아.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재림 방식을 단정 지으면 안 돼.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만 고집하면서 은밀히 오신다는 건 부인한다면 우리는 은밀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놓쳐 버리게 될 수도 있어.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이 예언처럼 주님이 구름 타고 올 때면, 우리는 은밀히 강림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애곡하게 될 거야. 그게 다 자기 생각 때문에 구원받을 기회를 잃는 거잖아.” 저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빛 비춤이 있어. 재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성경에 재림에 관해서 예언한 게 이렇게 많은데 잘 읽어 보지도 않고 묵상도 안 하고 그저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렸어. 오늘 너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성경에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예언 말고도 은밀히 오신다는 예언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아님 은밀히 오시는 주님을 놓칠 뻔했어.”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거야. 같이 하나님 말씀 좀 볼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모두 사람이 측량하기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자들이고, 모두 교만방자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그야말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에서 깨닫는 게 있을 거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이 있어야 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는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예언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서 우리 생각과 상상으로 규정할 수 없어.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바리새인은 이 예언을 보고는 자기 상상으로 메시아가 오실 때면 왕으로 왕궁에서 태어날 거고, 훤칠한 외모에 위풍당당하고 풍채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사실은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어.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높은 신분과 지위도 없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어. 바리새인은 자기 생각과 안 맞으니 예수님이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진리를 발표하고, 설교를 깊게 해도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분이 바로 장차 오신다고 예언한 메사아라는 것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고의 죄인이 됐어. 우리의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을 단정 지으면서 구름 타고 오지 않으면 주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2천년 전에 주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거야. 교만하고 독선적인 타락 성정으로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리고, 성경의 문자적인 뜻으로만 주님의 뜻을 해석하면 너무 위험해. 이렇게 실패한 걸 교훈으로 삼아야 돼.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이후에 어떻게 사역하실지 사람은 측량할 수 없어. 어떻게 사역해야 한다고 규정할 자격도 없지. 안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봐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해.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거야. 예수님 말씀이 딱 맞아.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이런 사람은 미련한 처녀잖아.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워!” 저는 친구가 읽은 말씀과 교제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정말 교만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규정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주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께 벌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더 잘 영접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발표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을 자신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 말며, 마땅히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복해야 하는지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사람에게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주님을 영접할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계시록에서 예언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많은 진리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인지를 확정하려면 반드시 자발적으로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기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하나님도 그분의 양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