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분부하시다

2018년 08월 31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줌으로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이 응하였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그것으로 끝났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막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 것은 하나님의 전체 경륜의 서막을 연 것에 불과하다. 그 시각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그 사건으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음을 또 누가 알았겠느냐?

하나님의 축복,아브라함을 축복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고, 사람의 진심만을 원한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였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했다. 즉,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를 ― 그가 사랑하는 이삭을 ―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행한 이 일은 지금에 와서 봐도 여전히 사람의 관념과는 어긋나지 않느냐? 그렇다! 하나님이 이때 행한 일은 사람의 관념에 매우 맞지 않는 것이며,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이런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믿지 못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들을 주셨다가 아들을 얻은 후에는 또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나님이 대체 뭘 하시려는 거지?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러고는 또 그에게 조건 없이 아들을 바치라고 했다. 이것은 지나친 것이냐?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 지나칠 뿐만 아니라 조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아브라함 본인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다른 생각이나 자그마한 추측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들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 너는 어떤 일에서 아브라함이 기꺼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느냐? 원문에서 뭐라고 했느냐? 이같이 기록되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3),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9~10).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 모든 행동을 하나님은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보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정말로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이전에 아브라함이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하나님을 오해했다 할지라도, 이때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진짜였으며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삭을 ― 그의 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순종을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사람이 봤을 때,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하나님의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 이삭을 바치라는 것에 ―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하였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다. 비록 그 일이 시련이고 검증일 뿐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위안을 받았고, 사람이 그에게 바친 사랑을 느꼈으며, 또한 사상 처음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던 그 찰나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애초에 이삭의 생명을 가져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바로 저지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복종은 이미 시험을 이긴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보인 행동으로 이미 충분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한 일에서 이미 결과를 얻었다.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느냐?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하였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한 것이며 하나님이 보고자 기대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냐? 비록 하나님이 다양한 배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기본적인 생존 환경 ― 온도

둘째는 온도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온도는 인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너무 높게 오르면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지 않으냐? 반대로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간다면 어떨까? 이 또한 견디기 어렵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도의 범위를 정할 때에도 정성을 기울였던 것이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는 온도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 사이로, 북방에서 남방까지의 기온이 이 범위 안에 있다. 기온이 영하 50~60도 안팎으로 떨어지는 한랭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거주하도록 한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추운 지대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지혜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런 곳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지나치게 더운 곳이나 추운 곳은 하나님이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런 곳은 사람이 거주하도록 준비된 곳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 예비한 곳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장소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인류가 거주하지 못하고 생활하지 못하도록 한 곳을 왜 만든 것일까?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인류가 생존하는 환경의 기본 온도도 합리적으로 조절했다. 여기에도 법칙이 있다. 하나님은 그 온도를 유지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창조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먼저 태양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하였다. 하지만 너무 뜨거우면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느냐? 태양에 감히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지구상에 태양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계가 있느냐? (없습니다.) 왜 태양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일까? 너무 뜨거워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태양과 인류의 거리는 하나님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기에는 하나님의 기준이 있고,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필요한 일을 했다. 다음으로 지구의 남극과 북극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빙하이다. 빙하가 있는 곳에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느냐? 빙하는 인류가 살기에 적합하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남극과 북극에 가지 않으면 빙하가 존재할 수 있고, 제 기능을 발휘하여 온도를 제어할 수 있다. 이해가 되었느냐? 만약 남극과 북극이 없는 상태에서 태양이 계속해서 지구를 비춘다면 사람은 더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생존에 적합한 온도 조절을 위해 하나님은 단지 이 두 방법만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외에도 초원의 풀, 숲속의 각종 나무, 각종 식물 등 여러 생명체를 두었다. 이들은 태양열을 흡수하고 태양의 열에너지를 적절하게 제거하여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온도를 조절한다. 다음으로는 하천, 호수와 같은 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강, 호수의 면적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물의 양, 물이 흐르는 방향, 그리고 물의 속도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지하수와 지상에 있는 하천, 호수 등의 물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 밖에 고산 지대, 평원, 협곡, 습지와 같은 다양한 지형도 있다. 그 다양한 지형의 면적과 범위도 온도 조절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둘레가 100km인 산이 있다면 그 크기만큼 온도 조절 작용을 한다. 하나님이 지구에 그런 산맥과 협곡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을까? 여기에도 하나님의 생각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에는 각각 탄생의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삼림과 식생의 면적과 생장 범위를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삼림과 식생이 얼마나 많은 수분과 태양열을 흡수하는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계획한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려하며 계획하고 배치했기에 사람은 온도가 적절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 예를 들어 태양, 흔히 들을 수 있는 남극과 북극, 지상ㆍ지하ㆍ수중 생물들, 삼림과 식생의 면적, 수원과 여러 가지 물, 해수와 담수의 양, 그리고 다양한 지리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인류 생존에 필요한 정상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배려로 사람은 적합한 온도가 있는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안 된다.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지역은 분명히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너무 춥거나 기온이 심하게 낮은 지역에 가게 되면 사람은 몇 분도 채 안 돼 입이 얼어 말을 할 수 없고, 뇌가 경직되어 생각할 수 없으며, 바로 질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님이 인류에게 예비한 곳이 아니다. 인류가 연구를 하려 하든, 혁신을 이루려 하든, 돌파구를 찾으려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사람은 육체가 적응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이 창조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육체가 어떤 온도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는 하나님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 스스로는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왜 사람이 모른다고 하느냐? 사람은 어떤 어리석은 짓들을 저질렀느냐? 많은 이들이 항상 남극과 북극 정복에 도전하고 싶어 하지 않느냐? 그곳의 땅을 점령하고 하루빨리 터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는 자해가 아니냐? 남극과 북극을 철저히 연구한 후에 그 온도에 적응하여 거기에서 살 수 있고, 남극과 북극의 생활 환경과 상태를 ‘개선’한다 한들 그것이 인류에게 득이 되겠느냐?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져야 만족할 것이냐? 정말 기막히고 황당한 행동이다. 인류는 생존이 가능한 환경에 가만히 있지 않고 기어코 살 수 없는 그런 지역에 가려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이냐? 이미 너무 많은 복을 누렸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에서 지내는 삶이 지겨워졌다는 것이다. 또 정상적인 생존 환경을 거의 다 파괴했으니 남극과 북극에까지 가서 파괴하며 크게 ‘사업’을 하여 ‘유례없는 업적’ 따위를 남기겠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이냐? 인류는 조상인 사탄에게 이끌려 계속해서 황당무계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아름다운 터전을 조금도 망설임과 거리낌 없이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짓이다. 현재 지구에 닥친 위기를 보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달에 가서 살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그런데 그곳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냐? (산소입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느냐? 달에 산소가 부족하다면 이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늘 달에 가고자 한다. 이는 무슨 행동이냐? 이 또한 자해이다. 그렇지 않으냐? 달에는 공기가 없고, 온도도 인류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예비해 준 곳이 아니다. 온도는 일상 속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흔히 “오늘 날씨 좋다. 23도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공기도 상쾌하고 햇빛도 따사로워.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햇볕 좀 쬐면서 기지개나 켜자. 기분 좋네!” 혹은 “오늘 너무 춥네. 손 내밀었다간 바로 얼어붙겠어. 추우니까 밖에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 추위에 떨지 말고!”라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온도는 몸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온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인류 생존에 적합한 온도는 누가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지 않으냐? 그 안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존에 적합한 온도가 있는 알맞은 환경을 인류에게 조성해 주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제공하는 한 가지 방식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것이 그중 한 가지 방식이다.

산상수훈 ― 예수의 비유 ― 계명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하나님은 인류의 각 종족에게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구분하였을까? 그 일은 인류에게 있어 아주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은 각종 생물의 생존 범위를 나누고, 여러 부류 인류의 생존 방식을 정해 놓은 동시에 지구상의 각기 다른 종족과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나누었고, 그 범위도 정해 놓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네 번째, 하나님은 인류의 각 종족에게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지구상에는 백인종, 흑인종, 갈색 인종 그리고 황인종이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게도 생활하는 범위를 정해 놓았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리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있어야 할 생존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인종을 예로 들어 보자, 백인들은 대부분 어느 지역에서 살고 있느냐? 대부분 유럽과 미국, 이런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흑인종이 생활하는 지역은 주로 아프리카이다. 갈색 인종은 어떤 지역 범위에서 생활하고 있느냐? 주로 동남아인데, 태국, 인도,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같은 동남아 지역이다. 황인종은 주로 아시아에서 생활하는데, 예를 들면 중국이나 일본, 한국, 이런 나라들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여러 인종을 다 적합하게 분포시켜 그 서로 다른 인종들이 지구의 각기 다른 지역에 분포되게 하였다. 하나님은 지구의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서로 다른 인종을 위해 일찍이 그들에게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토양의 색상과 토양의 성분 같은 이런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다. 즉, 백인의 체내 성분은 흑인의 체내 성분과 서로 다르고, 다른 유색 인종의 체내 성분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이미 그런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는데, 예비해 놓은 목적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생육하기 시작하고 많아지기 시작할 때 그런 범위에 정해 놓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를 만들기 전에 그곳을 백인종에게 남겨 두어 백인종이 발전하고 살아가도록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을 만들 때, 이미 목적 있게, 목표 있게, 그 땅에 무엇을 더할지, 그 땅에 어떤 것을 기를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땅에 어떤 높은 산들이 있어야 하는지, 평원이 얼마나 있고 수원(水源)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어떤 날짐승과 길짐승이 있어야 하는지, 어떤 어류가 있고 어떤 식물이 있어야 하는지를 하나님은 미리 예비해 놓은 것이다. 즉, 인류를 위해, 한 인종을 위해 생존 환경을 예비할 때, 하나님은 여러 방면의 많은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지리 환경, 토양의 성분, 날짐승과 길짐승의 종류, 그리고 각종 어류의 크기와 성분, 수질의 다른 점, 또한 각종 식물의 유형… 이런 것들을 하나님은 일찍이 예비해 놓았다. 그런 환경은 하나님이 창조한, 백인종에게 예비해 준 고유의 생존 환경이다. 너희는 마땅히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많은 심혈을 기울였고, 계획적으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다 알았겠지?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부류의 인류를 위해 세심하게 생각하셨다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각 부류 인류의 생존 환경에 어떤 날짐승과 길짐승과 각종 어류를 예비해야 하고, 높은 산과 평원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전부 다 빈틈없이, 아주 정밀하게 생각하셨다는 걸 보았습니다.) 백인종의 경우, 먹는 음식물은 대부분 무엇을 위주로 하느냐? (주로 고단백질 음식입니다. 각종 육류와 유제품과 밀가루 음식입니다.) 백인들이 먹는 음식은 아시아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백인들이 먹는 주식은 대부분 육류, 계란, 우유, 가금류이다. 빵이나 쌀밥 같은 곡물 음식은 기본적으로 접시의 한쪽에 놓는 부식이다. 야채를 샐러드로 먹는다고 해도 구운 소고기나 닭고기를 조금 첨가한다.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치즈, 계란, 육류 등을 곁들여 먹는다. 즉, 그들의 주식은 대부분 밀가루 음식이나 쌀 종류의 음식이 아니라 고기와 치즈를 많이 먹는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열량이 매우 높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상 얼음물을 마신다. 식사할 때가 되면, 음식이 다 차려지지도 않았는데 얼음물부터 한 컵씩 마신다. 그래서 백인종은 아주 건장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예비해 준 생활 근원이고 생활 환경인데, 그들에게 그런 생활 방식이 있게 한 것이다. 그 생활 방식은 다른 유색 인종의 생활 방식과 다르다. 그런 생활 방식은 옳고 그름이 없이 타고난 것이고, 하나님이 정한 것이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인종에게 그런 생활 방식과 생활 근원이 있게 된 것은 그들의 인종으로 인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예비해 준 생존 환경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백인종을 위해 예비한 생존 환경과 그들이 그 생존 환경에서 얻게 되는 일용할 양식은 매우 풍부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다른 인종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생존 환경을 예비하였다. 그 다른 인종에는 흑인도 있다. 흑인종은 어디에 분포되어 있느냐? 주로 아프리카의 중남부에 분포되어 있다. 그런 생활 환경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예비해 주었느냐? 열대 우림, 각종 날짐승과 들짐승, 또한 사막도 있고 각종 식물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수원이 있고, 생활 근원이 있고, 또한 음식물 근원도 있는데, 하나님은 그들이라고 차별 대우 하지 않았다. 그들이 전에 무엇을 한 적이 있든, 그들이 생존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도 지구의 한 지역에서 일정한 위치와 일정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황인종에 대해 말해 보자. 황인종은 주로 지구의 동방에 분포되어 있다. 동방은 환경이나 지리 위치가 서방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그 땅은 대부분 아주 기름지고, 물질 자원도 풍부하며,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다시 말하면, 지상과 지하의 각종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하나님은 일부분의 사람들, 그 인종을 위해서도 그 인종에게 적합하고 알맞은 토양과 기후 그리고 각종 지리 환경을 예비해 주었다. 비록 그 지리 환경이 서방과는 크게 다르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물, 사람의 생활 근원, 생존 근원을 예비하였는데, 단지 서방의 백인종과 생활 환경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너희에게 일깨워 주고 알려 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동방에 있는 이 인종의 수는 비교적 많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땅에 서방과 다른 성분을 많이 더해 주었는데, 지구의 그 지역에 서방과 다른 풍경과 각종 풍부한 물질을 많이 더해 주었다. 여기의 산물은 아주 풍부하고, 지리 형세도 천태만상이고 다양하여 이 방대한 수의 동방 인종을 양육하기에 충분하다. 서방과 다른 점은 동방의 땅이 남에서 북까지, 동에서 서까지 기후가 서방보다 좋다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온도가 적합할 뿐만 아니라, 산물도 매우 풍부하고, 천연적인 경치와 천연적인 각종 지리 형세가 서방보다 훨씬 좋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했을까? 바로 백인종과 황인종 사이에 아주 합리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할까? 백인종은 여러 면에서 황인종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린다. 먹고 쓰는 것도 황인종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인종도 차별 대우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황인종에게 더 아름답고 더 좋은 생존 환경을 주었다. 바로 이런 균형인 것이다. 이제는 알았겠지? 하나님이 어느 부류 사람들에게 어느 땅에서 성장하라고 정했으면, 인류는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아주 기묘한 일이다! 설령 서로 다른 시기나 어떤 특별한 시기에 전쟁이나 침략하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그 침략이나 전쟁은 절대로 하나님이 각 인종에게 정해 놓은 생존 환경을 파괴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 부류 사람들을 지구의 한 지역에 정해 놓으면, 그들은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인류가 어떤 야심이 있어서 영토를 바꾸거나 확장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루기가 매우 힘들고, 성공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예를 들면, 백인들은 전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일부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전에 독일 사람들이 일부 국가들을 침략한 적이 있었고, 영국도 인도를 점유한 적이 있었는데,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결국에는 모두 실패했다. 그 실패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자신이 정해 놓은 일을 사람이 파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이 영토를 확장하려는 그 기세가 얼마나 컸든, 마지막에는 철수해야 했다. 그 땅은 여전히 인도에 속하고, 그 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도 여전히 인도 사람이지 영국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歷史)를 연구하거나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영국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 결론을 내렸는데, 그들은 그 민족이 정복될 수 없기 때문이거나 사람의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은 다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어느 땅에서 살게 하고 어디에 정착시켜 이동하지 못하게 하면, 그들은 영원히 이동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범위를 정해 주면, 그들은 그 범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범위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데, 그것은 매우 확실한 것이다. 침략자의 세력이 얼마나 크든, 침략당하는 자의 세력이 얼마나 미약하든, 최종 결과가 성공인지의 여부는 하나님이 결정하고,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것이므로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각 인종들이 서로 다르게 분포되도록 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각 인종들이 서로 다르게 분포될 수 있도록 어떤 일을 하였을까? 우선 큰 지리 환경, 큰 환경을 예비했는데, 그들에게 좋은 장소를 나누어 주어 조상 대대로 거기에서 생존하도록 정해 놓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생존 범위가 정해진 것이다. 그다음,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과 그들의 생활, 즉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지, 무엇을 생업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일찍이 정해 놓았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각기 다르게 예비해 놓았다. 토양의 성분이 서로 다르고, 기후가 서로 다르며, 각종 식물이 서로 다르고, 각종 지리 환경도 서로 다르며, 심지어 각지에는 각지의 서로 다른 날짐승과 길짐승이 있고, 물의 각 영역에는 각 영역의 서로 다른 어류와 수산물들이 있다. 심지어 하나님은 곤충까지도 모두 그 종류를 정해 놓았다. 예를 들면, 아시아에는 까치가 있고, 미국에는 까치가 없다. 그것은 아주 특이하다. 그리고 미국의 참새도 중국 대륙의 참새와는 다르다. 아메리카에서 자라는 것들은 다 아주 크고, 아주 높고, 매우 튼튼하다. 숲 속의 나무들이 뿌리는 아주 얕게 내리지만 매우 높게 자라는데, 심지어 30m 이상 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숲 속의 나무는 대부분 그렇게 높지 않다. 너희는 다 알로에를 알고 있겠지? 일본의 알로에는 가늘고 약하지만, 미국의 알로에는 매우 굵다. 차이가 있지 않으냐? 같은 종류의 식물이고 이름도 같지만, 아메리카 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크다. 그리고 확실히 구별된다. 각 방면의 차이를 사람은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이미 다 나누어 놓았다. 서로 다른 인종을 위해 각기 다른 지리 환경과 지리 형세와 각종 생물을 예비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각 부류의 인류를 만들었기 때문에 각 부류 인류의 필요와 생활 방식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은 것은 다 아주 좋은 것이다.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셋째 날,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겼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기로 가득 찼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하나님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라고만 했을 뿐인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느냐? 빛과 궁창 이외에 그 공간에 또 무엇이 생겼느냐?

하나님은 전능과 지혜로 만물에게 공급해 주고, 인류의 생존을 유지한다.

처음에 우리는 사람의 생존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생존 환경을 주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무엇을 예비했는지, 무엇을 처리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한 만물 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그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여 만물이 인류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나님은 만물이 가져온 여러 요소가 인류 환경에 초래한 부정적인 영향을 해결하여 만물이 각각의 역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 인류에게 유익한 환경과 다양한 요소를 만들어 인류가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하고 정상적인 종족 번식을 이루면서 윤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음으로는 인체에 필요한 먹거리, 즉 일상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또한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갖춰져야 할 조건이다. 사람의 육체는 숨만 쉬면서 살 수 없고 햇빛만 보며 살 수 없고 바람만 쐬며 살 수도 없으며 적절한 온도만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배를 채우는 음식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단 하나의 부족함도 없도록 예비하였다. 이것이 바로 식량의 유래이다. 풍부한 산물인 식량의 유래를 알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인류에게 공급하고, 만물에게 공급하는 근원이라 할 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나무나 풀만 만들거나 각종 생물만 만들어서 그중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의 생물과 식물이 오로지 소, 양, 얼룩말, 사슴 같은 동물들의 먹이밖에 되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사자는 얼룩말이나 사슴 등을 잡아먹고 호랑이는 돼지나 양 등을 잡아먹지만 이것들 중 사람이 먹기에 적합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괜찮겠느냐? 안 된다. 그렇다면 사람의 육체는 살 수 없다. 사람이 나뭇잎만 먹고 살 수 있겠느냐? 위가 견디지 못할 것이다. 먹어 보지 않았을 때는 모르지만 먹어 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에게 예비한 풀을 사람에게 먹으라고 하면 되겠느냐? 한 번쯤 맛보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계속해서 먹는다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것은 동물이 먹으면 괜찮지만 사람이 먹으면 독이 된다. 동물이 먹었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어도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유독 물질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인체의 원리와 구조, 인체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하나님이 제일 잘 안다. 하나님은 인체의 성분과 함량, 인체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 오장육부는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떻게 흡수하고 배출하며, 신진대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잘 알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제멋대로 먹고 제멋대로 관리하는 바람에 지나친 몸보신으로 영양의 균형을 잃기도 한다. 하나님이 예비한 대로 정상적으로 먹고 누린다면 아무 탈도 나지 않는다. 가끔 기분이 상하는 일 때문에 기와 혈이 막히는 일이 생긴다 해도 괜찮다. 한 가지 식물을 먹으면 막혔던 혈이 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중에 인류는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도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은 식물을 위해 생존 환경을 예비하였고, 동물을 위해 먹이와 생존 환경을 예비하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의 생존 환경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가장 엄격한 잣대로 임했고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류가 정상적인 발전과 종족 번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어쩌면 너는 이미 봤거나 누리고 있지만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것, 혹은 원래부터 있었거나 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를 느끼기 힘들겠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이 자신의 지혜로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류에게 불리한 모든 것과 인체에 해를 줄 수 있는 나쁜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해결하였다. 이는 무엇을 설명할까? 인류를 창조할 때의 하나님의 태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태도는 어떠하냐? 하나님은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했으며 하나님 외의 어떤 적대 세력이나 요소, 조건의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인류를 창조하고 나아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태도는 어떠하냐? 사람이 누리는 생활 환경과 생존 환경, 식량과 일상에 필요한 것에 이르기까지, 여기에서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다음 인류를 위해 책임감 있는 태도로 임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결심도 볼 수 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참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기묘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예측 불가능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전능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은 전능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전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고, 나아가 만물에게도 공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제 하나님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말은 매우 확실하다. 이에 대해 어떠한 의혹도 없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해 주는 일에서, 하나님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만물이 생존하고, 성장하고, 번식하며, 지속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있다.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이든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이든,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있으며, 심령에 진리를 공급하기까지 한다. 모든 면에서 봤을 때, 하나님의 신분이나 지위로 봤을 때, 인류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이 말이 맞느냐? (맞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이 물질세계의 주관자이고 주재자이며 공급자이다. 이는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신분이 아니란 말이냐? 이는 거짓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늘을 나는 새를 볼 때, 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생명체는 물속에서 헤엄치며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또 땅에서 사는 나무와 식물은 봄에 싹이 트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잎이 떨어지며, 겨울에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겨울을 보내는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존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은 각각의 형태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각각의 방식으로 그것의 생명력과 생명의 형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이 각각 다른 생명 형태를 가진 생물과 생명체를 주재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법칙을 주관하고 있는 것은 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의 생존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야기 2. 큰 산과 시냇물, 광풍, 거대한 파도

시냇물이 구불구불 천천히 흘러 산자락에 다다랐다. 큰 산이 시냇물의 길을 막자 시냇물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줘! 내 앞길을 막았어. 내가 갈 방향을 막았단 말이야.” 산이 물었다. “넌 어디를 가느냐?” 시냇물이 답했다. “내 고향을 찾아갈 거야.” 산이 말했다. “좋다. 내 몸을 넘어가거라!” 하지만 시냇물은 너무 약하고 여려서 아무리 애를 써도 큰 산을 넘어가지 못했고, 결국 산자락을 따라 계속 흐를 수밖에 없었다. 광풍이 모래와 자갈, 잡다한 것들을 휩쓸며 큰 산 앞에 다다라 으르렁댔다. “비켜!” 산이 물었다. “넌 어디를 가느냐?” 광풍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난 산 너머로 갈 테다!” 산이 말했다. “좋다! 네가 내 허리를 꺾을 수 있다면 지나가거라!” 광풍은 울부짖으며 한번 또 한번 도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울부짖고 애를 써도 큰 산의 허리를 꺾을 수 없었다. 광풍은 지쳐 발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산 저편에서는 미풍이 조금씩 불어왔고 사람들은 쾌적감을 느꼈다. 그것은 큰 산이 사람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였다. 해안가에 포말이 넘실거리며 해변의 암석을 가볍게 때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몰아친 거대한 파도가 포효하며 큰 산 앞에 다다라 외쳤다. “비켜!” 산이 물었다. “넌 어디를 가느냐?” 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거대한 파도는 계속해서 포효하며 답했다. “난 내 영토를 넓히고 내 팔을 펼칠 거야.” 산이 말했다. “좋다! 네가 내 머리를 넘어갈 수 있다면 길을 내주겠다.” 거대한 파도는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큰 산을 넘을 수 없었고, 결국 천천히 물러났다. 수천 년 동안 시냇물은 산자락을 따라 계속 그렇게 조용히 흘렀다. 시냇물은 큰 산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고향에 도착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큰 산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시냇물은 방향을 잃지 않았다. 시냇물과 큰 산은 서로 상생상극 작용을 하며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의지했다. 수천 년 동안 광풍은 으르렁대는 습성을 바꾸지 않았다. 광풍은 모래와 자갈을 휩쓸며 늘 큰 산을 ‘방문’했고 큰 산을 위협했지만 산허리를 꺾지는 못했다. 큰 산과 광풍은 서로 상생상극 작용을 하며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의지했다. 수천 년 동안 거대한 파도 또한 쉰 적이 없었다. 거대한 파도는 땅을 넓히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큰 산을 향해 거듭 포효했다. 하지만 큰 산은 거대한 파도의 포효에 눌려 몸을 비키지는 않았다. 산은 계속 바다를 지켜봤고, 바닷속 만물은 그렇게 번식하고 성장했다. 큰 산과 거대한 파도는 서로 상생상극 작용을 하며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의지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우선 내가 한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일단 큰 산이 있었다. 또 뭐가 있었느냐? (시냇물, 광풍, 거대한 파도가 있었습니다.) 그럼 첫 부분에서 시냇물과 큰 산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기억했느냐? (시냇물이 산자락을 따라 흘렀습니다.) 시냇물이 산자락을 따라 흘렀다. 이것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냐? 시냇물은 어디로 흘러갔느냐? 왜 시냇물과 큰 산을 이야기하는 것이냐? (큰 산이 시냇물을 지켜 주었기 때문에 시냇물은 한 번도 방향을 잃지 않았습니다. 산과 시냇물은 서로 의지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시냇물 입장에서 큰 산은 보호자냐, 방해꾼이냐? (보호자입니다.) 그럼 방해꾼이 아니란 말이냐? 큰 산과 시냇물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 줬다. 큰 산은 시냇물의 보호자이자 방해꾼이기도 하다. 큰 산은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게 보호해 줬고, 동시에 곳곳으로 흘러넘치지 않게 막아 주었다. 그래서 그것이 인류에게 재해를 입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 아니냐? (맞습니다.) 큰 산의 보호 덕에, 시냇물의 장벽 역할을 한 큰 산 덕분에 인류의 보금자리도 보호받게 되었다. 시냇물은 산자락을 따라 강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이것은 시냇물의 생존 법칙이 아니냐? 시냇물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덕분이냐? 큰 산 덕분이 아니냐? 산의 보호와 방해 덕분이다. 이것이 핵심이 아니냐? (맞습니다.) 여기서 시냇물에게 큰 산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느냐? (네.)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저 높고 낮은 산을 창조한 데에 목적이 있지 않으냐? 목적이 있다. 이는 시냇물과 산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창조한 두 사물의 존재 가치와 의미, 그리고 이 두 사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냐? 두 번째 부분에서 언급한 것은 무엇이냐? (광풍과 큰 산입니다.) 바람이 있으면 좋으냐? (네.)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때 바람이 너무 세면 재해가 된다. 네가 광풍 속에 있으면 어떤 느낌이겠느냐? 물론 풍속 등급을 봐야겠지? 아주 약한 미풍이거나 3, 4급 정도라면 견딜 만하다. 기껏해야 눈을 못 뜨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 토네이도가 된다면 견딜 수 있겠느냐? 못 견딘다. 그러니 사람의 입장에서 바람이 완전히 좋다고 말하는 것도 틀리고, 완전히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틀리다. 일단 얼마나 센 바람인지 봐야 한다. 그럼 큰 산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바람을 거르는 역할을 하지 않느냐? 큰 산은 불어오는 광풍을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미풍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는 곳에서 대다수 사람이 맞고 느끼는 것은 광풍이냐, 미풍이냐? (미풍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큰 산을 창조한 목적이자 의도가 아니냐? 광풍이 늘 모래와 자갈을 몰고 와 아무런 방해나 여과 없이 사람에게 불어닥친다면 사람이 사는 곳이 어떻게 되겠느냐?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굴러다닌다면 사람이 이 땅에서 살 수 있겠느냐? 아마도 돌에 맞거나 모래에 눈이 흐려져 앞을 못 볼 것이다. 사람이 바람에 휩쓸려 제대로 서지 못하거나 공중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집이 파손될 수도 있다. 각종 재난이 닥칠 것이다. 그렇다면 광풍은 존재 가치가 없느냐? (있습니다.) 어떤 가치가 있느냐? 바람이 나쁘다고 말하니 사람들은 바람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미풍으로 변하면 광풍도 가치가 있지 않으냐? 무덥다고 느낄 때, 숨 막히는 공기를 느낄 때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가장 필요한 것은 미풍이다. 그 미풍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사람의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상쾌해진다. 예를 들어, 너희가 지금 방 안에 앉아 있는데 사람이 많아서 공기가 답답하다면,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미풍입니다.) 공기가 혼탁한 곳에 가면 공기에 들어 있는 더러운 것이 사람의 사고를 느리게 하고 혈액 순환을 늦추고 머리도 흐리게 만든다. 공기가 통하게 환기를 시키면 공기가 신선해질 것이고 사람의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시냇물이나 광풍은 재난이 될 수 있지만, 큰 산의 존재로 인해 이런 재난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않으냐? 세 번째 부분에서 언급한 것은 무엇이냐? (큰 산과 거대한 파도입니다.) 큰 산과 거대한 파도이다. 이는 산 아래의 해안가에서 벌어진 장면으로, 우리는 큰 산과 포말, 거대한 파도를 보았다. 거대한 파도의 입장에서 큰 산은 무엇이냐? (보호자이자 장벽입니다.)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큰 산은 보호자이자 장벽이다. 보호의 목적은 바다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바다가 사라지지 않으면 바닷속 만물이 번식하고 생존할 수 있다. 또한 거대한 파도의 장벽으로서 해수가 범람하여 재해가 되지 못하게 하고, 인류의 보금자리를 훼손하거나 파괴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거대한 파도에게 있어 큰 산은 보호자이자 장벽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산과 시냇물, 큰 산과 광풍, 큰 산과 거대한 파도가 서로 상생상극 작용을 하며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의지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사물들은 각자의 생존 법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어떤 행사를 보았느냐?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한 후 그냥 내버려 뒀느냐? 어차피 사물 각각에 법칙과 기능을 정해 줬으니 그만이라는 식으로 그냥 내버려 두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은 계속 관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관리했다. 물, 바람, 파도를 관리하며 그들이 제멋대로 날뛰어 인류의 터전을 훼손하거나 파괴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사람이 이 땅에서 계속 번성하며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할 때 만유의 생존 법칙을 정하고, 이들을 인류에게 이롭게 함과 동시에 인류에게 부담을 주거나 재앙을 가져오지 못하게 관리해야 했다. 하나님이 관리하지 않는다면 물이 멋대로 흐르지 않겠느냐? 바람이 멋대로 불지 않겠느냐? 이들에게 법칙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관리하지 않는다면 법칙이 없어 바람은 멋대로 불고, 물은 아무렇게나 흘러 사방으로 범람할 것이다. 거대한 파도가 산을 넘는다면 그 바다가 존재할 수 있겠느냐? 그 바다는 존재할 수 없다. 큰 산이 거대한 파도보다 높지 않다면 바다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산도 그 존재 가치와 의미를 잃을 것이다. … 방금 했던 큰 산과 시냇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큰 산의 역할은 무엇이냐? 큰 산에도 만물이 생장한다. 큰 산은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으며, 동시에 시냇물이 제멋대로 흘러 인류에게 재난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냐? 큰 산은 자신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에게 딸린 만물을 ― 나무와 풀, 산속의 각종 동식물을 ― 생장시키고 있다. 또한 시냇물에게 방향을 안내하고, 시냇물을 한데 모아 산자락을 따라 흐르게 해 자연스럽게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게 한다. 이런 법칙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할 때 특별히 정해 놓은 것이다. 큰 산과 광풍은 어떠냐? 산 자체도 바람이 필요하고 산에 있는 생물도 바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큰 산은 광풍을 풍해로 번지지 않도록 억제하기도 한다. 이 법칙에는 큰 산의 역할이 들어 있다. 큰 산의 역할에 대한 법칙은 자연스럽게 생겼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큰 산은 큰 산의 역할이 있고, 광풍은 광풍의 역할이 있다. 그렇다면 큰 산과 거대한 파도는 어떠냐? 산이 없다면 물이 방향을 가지고 흐를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물도 범람할 것이다. 큰 산은 큰 산대로 존재 가치가 있고, 바다도 바다대로 존재 가치가 있다. 그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서로 억제한다. 큰 산은 바다가 범람하지 않게 억제하여 인류의 보금자리를 보호하고, 또한 바다가 바닷속 만물을 양육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경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역시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큰 산은 어디에 둘지, 시냇물은 어디서 흐를지, 광풍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불지, 거대한 파도의 높이는 얼마나 될지,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이미 정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행사이다. 그럼 이제는 만물의 면면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한 말씀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6~29)

여섯째 날, 창조주가 말씀하니 그의 생각 속 각종 생물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