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2019년 01월 29일

매주 성경 연구회 모임 때마다 형제자매들은 황 자매의 집에 모이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오늘 또 성경 공부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형제자매들은 황 자매의 집에 속속 도착했고 방안은 점점 떠들썩해지기 시작했으며, 동 자매는 형제자매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때 “똑똑”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났고 황 자매는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린 자매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말세는 왔고 크고 흰 보좌가 있는데 보좌에 앉으신 이는 예수님이시네, 사람들은 다 유리 바다처럼 투명하게 한평생 지은 과오를 그분 앞에서 하나하나 낱낱이 들추어내네….”

그러자 모두들 린 자매의 유쾌한 노랫소리에 끌려 함께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린 자매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로 다가가 앉았고 노랫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멈추었습니다.

“오! 린 자매님, 오늘 왜 이 찬양을 흥얼거렸나요?”라고 황 자매가 린 자매의 곁으로 가서 앉으며 호기심에 물었습니다.

린 자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제가 요 며칠 계시록을 봤어요. 특히 20장, 말세에 주님께서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예언을 생각하니 이 찬양을 흥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이 성경 구절에 오묘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님께서 말세에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우리 오늘 저녁 다 함께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는 건 어떨까요?”

“좋아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함께 성경을 찾아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보도록 해요.”라고 동 자매가 말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계시록 20장 11에서 15절을 펼쳐 함께 읽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말씀을 읽은 후 다 함께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동 자매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영적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 목사가 주님이 오실 때의 광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목사가 ‘그때는 천지가 진동하고 장엄하고 엄숙하며 천지도 없어집니다. 그때는 나팔소리가 울리고 천군 천사와 천군만마가 하늘에서 기세등등하게 내려옵니다.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 깨어나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이는데,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려워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주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고 이어서 주님은 심판을 시작하십니다.’라고 말했어요.”

전 자매는 머리를 끄덕이며 이어서 말했습니다. “맞아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공중에 큰 탁자를 설치하시는데 탁자 위에는 흰 보자기가 덮여 있고 죄명을 기록한 책과 생명책이 놓여있습니다. 주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머리에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셨고 천사들은 좌우에서 주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선 생명책을 펼치시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시는데, 그 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천사에 의해 직접 천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죄상이 기록된 책을 펼쳐서 각 사람이 일생 동안 행한 일을 근거로 그들의 결국을 정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보고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어 가슴을 치며 슬피 울고 이를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동역자도 맞장구를 치며 “맞아요, 그때의 장면은 아주 장관일 거예요! 주님의 심판을 통해 선을 행한 사람들은 천국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고, 악을 행한 사람들은 유황 못에 던져지는데 그곳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벌레도 죽지 않는다고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황 자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 자매와 전 자매를 보고 놀리듯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자매님들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네요. 말할수록 그럴듯한데 주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이 남다른 경지에 이른 것 같아요. 창세기 1장 8절에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라고 했어요. 하늘은 온통 공기이고, 사람의 몸은 무거운데 어떻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겠어요? 풍선도 하늘 높이 올라가면 폭발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자매님들은 하늘에서 주님의 심판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는데 제가 보기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 다른 동역자도 “맞아요, 하늘은 온통 공기인데 사람이 어떻게 발을 디딜 수 있나요? 이웃이 저의 생각이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조롱해요. 날마다 하늘에 오르고 싶어 하는데 떨어질까 두렵지 않나요?” 이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방 형제가 “황 자매님은 생각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어찌 주님께 조그마한 믿음도 없어요? 구약에 여호와 하나님이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주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우리가 올라가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이때 마 자매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말하면 안 돼요, 베드로후서 1장 20절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우리는 성경의 글귀에 따라 예언을 해석하면 안 되고, 주님이 말세에 어디에서 심판하신다고 마음대로 상상해서도 안 돼요. 그러면 쉽게 하나님의 역사를 잘못 해석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어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을 때, 장 형제가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님 조용히 해주세요, 사실 이전에 저 역시 주님이 오셔서 공중에서 심판을 하실 거라고 여겼어요. 하지만 최근 성경 몇 구절을 찾아보았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계시록은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다 이상이고 예언이며 오묘한 비밀입니다. 계시록 14장 6절에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라고 하셨고, 시편 96편 13절에도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성경 구절은 주님이 말세에 공중에서 심판 사역을 전개하신다는 우리의 상상과는 확실히 상반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형태나 모양이 없고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하시며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겠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세 심판은 하늘이 아닌 땅에서 진행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 자매는 눈살을 찌푸리며 장 형제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이 이마를 ‘탁’ 치며 말했습니다. “아, 제가 왜 생각하지 못했지요! 주기도문과 성경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라고 했잖아요. 이 말씀은 하나님이 땅에서 우리를 이끄신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계시록 11장 15절에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준행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하늘에서 진행된다면 이 성결 구절들은 잘못된 것이 되지 않겠어요?”

여기까지 들은 린 자매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교제를 들으니 저도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기록된 계시록 21장 3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오셔서 땅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인류에게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어요.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기록된 것처럼요.”

동 자매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아! 방금 여러분들의 토론을 듣고 저는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성경 구절에 이렇게 많은 오묘한 비밀이 있었네요. 이전에 저는 주님이 오시면 하늘에서 심판하실 거라 여겼는데, 지금 다시 성경 구절을 보니 주님이 하늘에서 심판 하시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땅에서 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황 자매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요한복음 3장 13절에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인자 외에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없다고 분명하게 알려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아직까지 날마다 헛된 꿈을 꾸면서 늘 하늘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그야말로 어리석기 그지없네요.” 그 말에 모두가 ‘하하’하고 웃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주님은 말세에 땅에 오셔서 심판 하실 것 같네요.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시는 걸까요?”라고 방 형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면서 모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장 형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시편 50편 3에서 6절에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라고 기록된 것이 생각나네요. 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 두 성경 구절은 주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말씀으로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게 아닐까요?”

린 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장 형제의 교제를 듣고 나니, 계시록 7곳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 음성을 발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주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말씀과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심판 사역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또 요한복음 16장 12에서 13절에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말씀했어요.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또 우리에게 이를 말씀이 있으나 그때의 사람들은 분량이 적고 감당치 못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진리를 알려주신다고 말씀했어요. 이상의 성경 본문을 결부시켜보면 주님이 다시 오시면 말씀을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말세에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여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요?” “이렇게 말하면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네요!”라면서 서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때 동 자매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교제는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경 구절들이 실제로 증명하고 있어요. 주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시면 땅에서 말씀을 선포하셔서 사람을 심판하실 수도 있겠네요. 성경의 글귀로 예언을 이해하면 확실히 사람의 상상으로, 비현실적이 아닐까요? 말세에 주님이 오셔서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에 대해 우리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해요. 절대로 목사나 장로들이 하는 말만 듣지 마세요. 주님이 오셔서 정말로 땅에서 말씀을 선포하셔서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우리가 구하지 않고 그저 상상만으로 규정하면서 하늘에 흰 보좌의 심판을 기다린다면 아주 쉽게 하나님 말세 구원의 은혜를 놓칠 수 있어요!”

린 자매도 “맞아요, 오늘 저녁의 교제는 확실히 깨달음이 있네요! 계시록 3장 20절에도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오직 슬기로운 처녀만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어요.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황 자매는 기쁜 표정으로 “그래요,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라고 말씀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만일 누가 와서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전하면,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전하는 것이 진리라면 서둘러 자세히 알아보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듣고 난 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성경 연구회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소혜

예수 재림에 관한 7가지 예언, 이미 이루어졌다

말세에 이르러 예수 재림에 관한 예언들은 이미 이루어 졌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분들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약속 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영접해야 할까요?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 주님의 공중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주님의 공중 재림을 바라고 있으며 또 자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요?

성경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성경 예언이 하나씩 성취되면서, 성도들은 성경 예언을 연구하는데 많은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경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누구도 그 참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는가?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꼭 예비해야 할 2가지

지금 세계 각지에서 점점 큰 재난이 일어나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4) 주님은 우리가 깨어서 예비해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비해야 할까요? 1. '영적인 귀'를 예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계시록에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두 성경 구절은 모두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릴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또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역하시며, 모든 비밀을 열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리를 모두 알려주시고, 모든 진리를 깨닫고 진입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를 통해 진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분명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고, 생명을 내려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예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비유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태복음 22:2~3) 또 계시록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시록 14:6) 주님은 말세에 하나님이 그의 종을 보내어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시고, 이 영원한 복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구하고 알아보고,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할 때, 주님의 음성이면 얼른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recommendpost id="18116"] 2.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겸허하게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라는 큰 사건을 대할 때,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이 이미 오셨다고 증거하고, 주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알아보고, ‘영적인 귀’로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들어야 진정으로 ‘깨어서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를 들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높은 신분과 지위가 있었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겸허히 빌립에게 구할 줄 알았고, 빌립이 간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사적을 들은 후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가 진리를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 이러한 예는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예비해야 할 일은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에,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구하는 주 안의 형제자매님들이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 [recommendpost id="20875"] [recommendpost id="21561"]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이미 왔습니다. 우린 어떻게 주님을 맞이해야 할까요?

오시경 재림에 관한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2~34) 크리스천들은 이것이 재림을 예언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은 바로 이스라엘 회복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우리는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오늘날 이스라엘도 회복된 지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39, 42),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고, 서로 죽이고 음란이 본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타락됐었죠.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홍수로 멸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거짓 신과 악령을 경배하고 있으며 극도로 사악하고 타락됐습니다. 서로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아귀다툼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등 세상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명의상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교회도 장사하는 소굴로 전락되고 다 황폐해졌습니다. 심지어 많은 성도들은 사악한 조류를 좇고 있고 세속에 빠져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고 쾌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노아 시대와 비해 보면 그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각종 재난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징조로 재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이미 임했다는 뜻이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을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해 믿어 오면서 여느 형제자매들과 다름없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주님은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지금 재림에 관한 징조가 이미 다 나타났는데 왜 주님은 구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주의 재림을 놓칠까 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을 맞이해 버림받지 않도록 그 길을 깨우쳐 주고 인도해 달라고 늘 주께 기도드렸습니다. 저한테는 여러 해 전도하면서 사역한 친구가 있습니다. 최근에 모처럼 만나게 돼서 저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걱정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친구가 교제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그래서 우린 다 주님이 무조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규정하는 게 정말 주님의 뜻에 맞는 걸까? 사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재림하는 방식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마 24:5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어떤 말씀에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니 각인의 눈이 다 본다고 했고, 어떤 말씀에서는 또 도적같이 오시고 아무도 모른다고 했어. 여기서 주님이 두 가지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나타나시는 방식, 또 하나는 도적같이 은밀히 오시는 방식이지. 우린 다 주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무조건 다 이루어질 거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아.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재림 방식을 단정 지으면 안 돼.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만 고집하면서 은밀히 오신다는 건 부인한다면 우리는 은밀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놓쳐 버리게 될 수도 있어.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이 예언처럼 주님이 구름 타고 올 때면, 우리는 은밀히 강림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애곡하게 될 거야. 그게 다 자기 생각 때문에 구원받을 기회를 잃는 거잖아.” 저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빛 비춤이 있어. 재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성경에 재림에 관해서 예언한 게 이렇게 많은데 잘 읽어 보지도 않고 묵상도 안 하고 그저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렸어. 오늘 너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성경에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예언 말고도 은밀히 오신다는 예언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아님 은밀히 오시는 주님을 놓칠 뻔했어.”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거야. 같이 하나님 말씀 좀 볼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모두 사람이 측량하기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자들이고, 모두 교만방자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그야말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에서 깨닫는 게 있을 거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이 있어야 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는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예언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서 우리 생각과 상상으로 규정할 수 없어.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바리새인은 이 예언을 보고는 자기 상상으로 메시아가 오실 때면 왕으로 왕궁에서 태어날 거고, 훤칠한 외모에 위풍당당하고 풍채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사실은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어.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높은 신분과 지위도 없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어. 바리새인은 자기 생각과 안 맞으니 예수님이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진리를 발표하고, 설교를 깊게 해도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분이 바로 장차 오신다고 예언한 메사아라는 것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고의 죄인이 됐어. 우리의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을 단정 지으면서 구름 타고 오지 않으면 주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2천년 전에 주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거야. 교만하고 독선적인 타락 성정으로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리고, 성경의 문자적인 뜻으로만 주님의 뜻을 해석하면 너무 위험해. 이렇게 실패한 걸 교훈으로 삼아야 돼.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이후에 어떻게 사역하실지 사람은 측량할 수 없어. 어떻게 사역해야 한다고 규정할 자격도 없지. 안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봐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해.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거야. 예수님 말씀이 딱 맞아.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이런 사람은 미련한 처녀잖아.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워!” 저는 친구가 읽은 말씀과 교제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정말 교만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규정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주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께 벌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더 잘 영접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발표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을 자신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 말며, 마땅히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복해야 하는지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사람에게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주님을 영접할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계시록에서 예언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많은 진리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인지를 확정하려면 반드시 자발적으로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기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하나님도 그분의 양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 재림에 관한 성경의 예언은 어떻게 응하는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오랜 소망이 이루어져 주님의 약속을 받고 주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하루속히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요한복음 14장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오실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정말 우리 생각처럼 구름을 타고 오실까요? 우리 생각이 예언이 응하는 실정일까요? 우리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반드시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흐리멍덩하게 대한다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기 쉽습니다. ‘예언’을 언급하면 우선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즉 예언은 이후에 발생할 일을 말한 것인데 예언이 응하기 전에는 누구도 예언의 진정한 가리킴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언’ 속에는 하나님의 기묘와 지혜가 있고 비밀이 그 속에 있기에 예언이 어떻게 응하여 사실로 이루어지느냐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자 깨닫기 어려운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늘과 땅이 떨어져 있는 만큼 하나님의 생각도 사람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33~34절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또 고린도후서3장 6절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언이 응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할까요? 당시에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돌아보면 예언이 경문의 글귀와 사람의 상상대로 응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하루빨리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약 율법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정말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게다가 그분을 대적하고 저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 예언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분명히 쓰여져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볼 때 마리아는 분명히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이 어떻게 그녀의 몸에서 응할 수 있겠느냐고 여겼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확실히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당시에 이 사실을 믿은 사람이 또 몇이나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본 마리아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다시피, 당시의 사람들이 본 것과 예언이 응한 실제 사실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또 한 곳의 예언을 봅시다. 이사야 9장 6~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화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강생하시기 전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 근거하여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부한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정권을 담당하는 메시아는 틀림없이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이고, 틀림없이 위풍당당하게 기세를 떨치며 그들을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예언이 응할 때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시기는커녕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그들 상상 속의 왕처럼 위풍당당하기는커녕 사람이 보기에 아주 평범한 목수였으며, 군사를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기는커녕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언의 응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상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보다시피, 사람의 상상과 예언의 실제적 응함은 정말로 천지차였으며, 예언의 응함은 완전히 사람의 상상에 부합되지 않았고 사람의 관념에도 부합되지 않았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지만 또 메시야의 도래를 저버리고 대적했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메시야의 예언에 대해 환상으로 가득찼고 예언의 응함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응했을 때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극력 대적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그들의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실패한 원인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구약의 예언을 지키면서 메시야의 도래를 대적한 것은 설마 예언이 틀린 것이란 말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경문의 글귀만 너무 중요시하고 오히려 예언이 응하는 실질은 홀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언은 그들이 메시아를 알고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본이 되고 메시아를 저버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망국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이미 마지막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도 글자 뜻대로 “주님이 어떻게 가셨으면 그대로 오신다”고 이해하겠습니까? 만약 주님의 재림이 우리가 바라고 상상한 것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직면해야 하겠습니까? 경문의 글귀만 지키고 자기 자신의 상상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겠습니까 아니면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전히 바리새인처럼 다시 오신 예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겠습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고 진리의 성령이 이미 인간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수백만 자의 말씀을 발표하셨고 작은 책을 펼치셨으며 하나님의 6천년의 경영 계획의 모든 비밀을 전 인류에게 풀어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가 중국에서 전개된 지 20여 년간 각종각파는 마치 깨끗이 정리된 것 같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다 각종 각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형벌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종교계에서 기세 드높이 확장될 때 이방인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이 도둑 같이 오신다는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응했습니다. 이 단계를 은밀한 강림이라고 칭하는 까닭은 이 단계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다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 몸에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은밀한 것입니다. 이것도 베드로전서 4장 17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를 응했고 열 처녀의 비유를 응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떤 사람은 먼저 알게 되고(외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나중에 알게 되고(열 처녀) 어떤 사람은 모릅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외치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맹목적으로 정죄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주님이 오셔서 추수하고 키질하고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며 만교가 하나로 되는 등의 예언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끊임없는 확장에 따라 점차 응했습니다. 주님이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다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는 것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바로 사람과 수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바로 구주 예수가 여전히 사람의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로 되어 사람에게 전혀 노하지 않고 사람을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 여전히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부터 그를 따르던 제자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도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였고 그를 기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오리라”고 한 말씀이 ‘응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기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 지극히 높은 자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그가 여전히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기대하던 인류 가운데 강림하여, 그들에게 나타나서 양식을 베풀어주고, 그들에게 생수를 부어주며, 은혜와 자애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는데 매우 생생하다는 등등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에서 여긴 것이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전혀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람이 어찌 거룩한 구주 예수가 비록 자애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를 알겠는가? 사람들이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지만 그가 또 어찌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고 줄곧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는 자애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그가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 뿐 그가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한, 권세를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의 돌아옴을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케 하였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오히려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은밀히 역사하시는 기간에 무릇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의 사역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으로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정죄하고 모독한 탓에 하나님에 의해 악한 자의 행렬에 들게 되었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일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기호이다. 너희들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 오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시 네가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언어를 본 후에, 이런 말씀이 단지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에 부합되고 성경에 부합된다고 여긴다면, 너는 이 만분의 일의 언어 가운데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너에게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신하지 말고 너무 자고(自高)하지 말라고 권한다. 너의 조금밖에 없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장차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인데, 네가 자세히 고찰하고 반복적으로 상고하면, 너는 이 마디마디의 말씀이 도대체 진리인가 아닌가, 생명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몇 마디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정죄하여, “이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려고 온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 내가 권하는데 너는 그래도 다시 시작하여라! 너희들은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하나님이 발표한 언어를 정죄하지 말고, 미혹받을까봐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렇다면 너무 애석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양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만 하나님이 이미 나타나셨음을 보게 됩니다!

당신은 '들림 받다'의 참뜻을 아십니까?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 몇 조각이 떠 있고, 백화는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서 새빨간 교회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백화의 기분은 화창한 날씨만큼 좋지 않았고, 그의 마음속은 고민과 막막함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교회 문밖에 도착한 백화는 마음을 한번 가다듬은 후 느릿느릿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교회 안에는 10여 명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형제자매는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화는 입구에 서서 좀 보다가 약간 무거운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형제자매님들, 서 형제님이 오늘 아침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돌아갔어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서로 귓속말로 속삭이며 수군거렸다. 한(韓) 자매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도 제가 시장에서 형제님을 보고 인사까지 했는데요. 멀쩡하던 형제님이 어떻게 갑자기 떠났다는 거죠?" 백화가 말했다. "어제 형제님이 아들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이미 응급처치가 늦어서 오늘 아침에 떠났어요. 내일 아침 7시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니까, 형제자매님들이 모두 가서 배웅해 주길 바랄게요…." 모두가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백화가 강단에 올라 형제자매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조용히 좀 해주세요…." 모두의 눈길이 백화에게 쏠리자 백화는 진지한 눈빛으로 형제자매를 향해 말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정말 들림 받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형제자매들은 평소 전도자의 자세가 아닌 백화를 보고 약간 의아해하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모임은 전보다 훨씬 가벼운 분위기에서 다들 한마디씩 발언하기 시작했다. 찬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백화 자매님, 오늘 어쩐 일이세요? 전에는 항상 우리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바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앞으로 죽든지 아니면 살아있어도 모두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여기에 의심할 게 뭐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백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때, 하린 자매님이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그건 바울이 한 말이에요. 그가 한 말이 주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최근에, 저는 계속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고민했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9~10)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질 거라고 우리에게 계시하는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왜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겠어요?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공중에 끌어올리신다고 했는데, 그건 주님의 뜻과 반대로 가는 게 아닌가요?" 그 말을 듣던 형제자매들은 모두 귓속말로 속삭였고, 어떤 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백화는 이런 나눔이 꽤 신선하고 깨달음이 있다고 느꼈고,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헤아렸다. “맞아. 주님의 뜻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야. 난 매일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어떻게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지?" 동역자인 장린 자매가 말했다. "하린 자매님, 우리는 그동안 주님이 오시면 들림 받아 천국에 간다고 믿었는데, 왜 지금 의심하시는 거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전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천국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건 분명 하늘에 있어야지 어떻게 땅에 있을 수 있어요? 전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백화는 형제자매들이 술렁대는 것을 보고 화제를 이어받아 말했다. "형제자매님,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오늘 이 화제가 나온 이상 우리 차분하게 한번 토론해 봐요. 방금 하린 자매님이 나눈 이야기는 정말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예요. 예전에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를 추구했지만 천국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어요. 하린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저는 계시록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시록 21:3),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계시록 11:15) 이 예언들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언급했어요.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이 땅 위에 이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 하린 자매님에게 계속 나눠달라고 해요.” 백화는 말을 마치자 또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린 자매님, 자매님이 얼마 전 진리를 알아보러 나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찾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자매님이 나누신 깨달음이 나가서 듣고 오신 건가요? 우리한테도 좀 들려주세요." 백화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잇따라 하린에게로 향했다. 하린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전 그동안 정말 성령의 역사를 찾으러 나갔었어요. 지금 주님 재림의 여러 가지 징조가 다 이루어졌어요. 이것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는 뜻이에요. 며칠 전, 사촌 남동생한테서 영적 서적을 한 권 얻었는데 그 안의 말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고, 성령께서 직접 발하신 음성이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말세에 주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데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나눴을 때, 사촌 남동생이 저에게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말했어요. 예전에, 우리는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가 규정할 수 없어요." 말이 끝나자, 교회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렇게 깨닫는 게 주님의 뜻에 합당해요.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했죠?", "맞아요. 우리는 천국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럼 얼마나 막막해요. 하늘에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사람이 하늘에서 어떻게 살아요!", "맞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이 성경을 몇 번이나 읽고도 어떻게 몰랐을까요!”, “역시 하린 자매님이 나누니까 알겠어요. 우리 계속 들어봐요.” 이때, 장린이 약간 난처한 듯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만약 형제자매님들이 하시는 말이 맞다면,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있다는 건데 그럼 주님이 오셔서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죠? 성경에 말씀하신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데살로니가전서 4:17)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순간 다들 말문이 막혀서 잇달아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백화도 확실히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하린은 계속해서 참을성 있게 나눔을 이어갔다. ‘들림 받다'에 대해서 대부분은 주님이 오셨을 때 성도를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고 생각해요. 저도 오랫동안 이렇게 들림 받기를 바라며 기다렸어요. 하지만 나중에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고 '들림 받다'에 대해 다른 깨달음과 견해가 생겼죠.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이 책의 한 단락을 읽어 드릴게요. 모두 듣고 나면 이해가 될 거예요." 하린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그리고 그는 또 나누며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가 우리의 상상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공중으로 끌어올려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진정한 '들림 받다'는 하나님 사역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오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걸 말하는 거예요. 무릇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들림 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주님에게 버림 받는 사람이에요. 율법 시대에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비록 성경을 숙독하고, 성전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성육신한 예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오셔서 사역하실 때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알아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이런 사람들은 주님 앞에 들림 받지 못하고 버림 받아 도태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앞으로 들림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창밖의 작은 새가 지저귀면서 날아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어느새 정오가 되어 모임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백화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나눔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들림 받다'인지 새롭게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계시록의 예언이 떠오르네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 우리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들림 받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근거가 있어요!” 형제자매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교회를 떠났다. 백화도 이렇게 좋은 진리는 아주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그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렸다. 그가 고개를 들자 가방을 정리하던 하린이 눈에 들어왔다. 하린은 벌써 가방을 메고 교회를 나섰고, 백화는 얼른 따라나갔다. 그는 그 책을 너무 너무 얻고 싶었다. 그 책 속에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가?

주님을 믿어서부터 저는 줄곧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려왔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각 사람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우 기대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저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분이 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했으니 오실 때는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위에 들림받아 주님과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고 주님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틀림없이 먼저 알 것입니다. 그분들을 따라 믿으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저도 계속 이렇게 지켜왔었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해가 지났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믿음이 식어가고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돈벌이에 바빠 예배할 시간도 없고 설교자들의 매 설교가 다 늘 하던 말이라서 들어도 누림이 없으니 저의 예전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주님의 함께하심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설마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셨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돌아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야 오셔서 저희들을 데려가십니까? 지금 저는 당신의 함께하심도 느끼지 못하겠고 예배드리기도 싫어졌습니다. 당신은 저의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시니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그 후 시간이 흘러 어떤 예배에서 저는 한 친구를 사귀게 되어 주님의 돌아오심에 관해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주님이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까?”라고 묻자 저는 “당연히 흰 구름을 타고 오시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만약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오실 때 영체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당연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또 17장 24~25절도 보여주었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구절에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만약 주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사람마다 볼 텐데, 그럼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겠어? 그러니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는지 알아야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알 수 있어!” 제가 “그럼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어?”라고 묻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자! 누가복음 17장 24~25절에 인자의 강림을 언급했는데, 인자라고 하면 육신을 말하는 거야. 육신만이 인자로 불릴 수 있잖아. 그리고 또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재림하시는 방식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거야. 왜냐하면 육신만이 고통을 받을 수 있고 영은 고통받을 수 없고 게다가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유대교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당하셨잖아. 여기에서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또 한번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심을 가리키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성경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니 정말로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왜 보지 못했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친구는 또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까? 만약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생김새에서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면에서 알아봐야 할까?” 제가 “주님이 오시면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보실 거야. 그분들은 다 주님을 다년간 섬기던 분들이라 주님께서 오시면 틀림없이 먼저 그분들에게 나타나실 거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 이미 답이 있어. 계시록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는데 왜 이 한마디를 계시록에 여러 번이나 중복해서 말했을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한 거야. 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생김새나 명망(名望)에 근거한다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겨 대하면서 하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기 아주 쉽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더 잘 영접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각 사람이 신중히 대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당시를 돌이켜보면 구약 성경에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이름을 예수로 불렸고 게다가 또 성전 밖에서 역사하셨잖아. 그러나 여호와를 다년간 섬기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본 것과 상상에만 근거해 메시아라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어. 나중에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는데, 이런 사실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하잖아! 근데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예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들이 다 하나님을 다년간 섬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 우리가 주님의 돌아오심을 대하는 일에서 만약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른다면 아주 가련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꼭 이전 사람들의 실패 교훈을 받아들여야지 전철을 밟아선 안 돼!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은 다 그분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든지 아무에게도 알리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상상과 관념 속에 규정하면서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고 찾고 구하는 태도로 우리에게 임하는 인사물을 대해야 해. 그리고 또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무엇이 사람의 소리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신 많은 말씀이 구약 성경에 부합되지 않았지만 성령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마찬가지야. 바리새인들이 한 말은 경문에 부합되어도 사람의 말이야.” 친구가 한 이런 말은 제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어서 저는 속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느껴져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제가 “넌 어디에서 설교 들어? 나도 같이 가서 들어보면 안 될까?”라고 묻자 친구는 “되고 말고! 듣고 싶다면 정말 좋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저마다 생기발랄하고 얼굴의 웃음꽃은 제가 몇 년 이래 종교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특별히 배려해주고 또 매우 참을성있게 저에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을 느꼈고 성령 역사를 누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린양이 펼친 책≫ 한 권을 주었고 저는 이 책에서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는 제목을 보고 나서 신기하게 느껴져 속으로 ‘그래? 가능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아보기 위해 저는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씌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도 불린 적이 있으며, 사람이 나를 애대(愛戴)하여 구주 예수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오늘날 나는 더는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며,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滿載)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병과 존귀와 영광이 가득하게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이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는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는 하나님인데, 생생하게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다. 뜨거운 해 같이 또 불꽃 같이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으므로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아니할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의 불사름 아래에서 정결케 되지 아니할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기필코 나의 말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고 또한 나의 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말세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구세주의 다시 돌아옴이고 내가 전 인류를 정복한 전능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람의 속죄제로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 또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로 되었고 역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임을 보게 한다. 이것이 나의 말세의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러한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또한 구속주만이 아니라 상천 하지와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말씀에 그토록 권병과 위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의 고찰을 통해 저는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이름, 도성육신의 의의, 인류의 귀숙과 결국 등등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계시록의 예언을 더욱 실증하게 되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빨리 그분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그 어떤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그분을 믿는 각 사람의 마음문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하루빨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