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발췌문 28)

2020.07.06 +30
하나님이 무지개를 사람과 맺은 언약의 증거로 삼다 (창 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어서 ‘하나님이 무지개를 사람과 맺은 언약의 증거로 삼다’라는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이 무지개가 무엇인지 알고 무지개와 관련된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성경에 나온 무지개와 관련한 이야기를 어떤 이들은 믿고, 어떤 이들은 전설로 간주하며,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믿지 않는다. 어쨌든 무지개와 관련해 전후로 발생한 일들은 모두 하나님이 행했던 일이자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일들은 있는 그대로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기록 속에 당시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들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도 알려 주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들을 하였을 때 하나님의 기분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기 전후의 생각이 말씀의 행간에 드러나 있다. 말씀의 한 글자 한 글자를 통해 당시 하나님의 생각이 모두 생생하게 표현된 듯하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류가 가장 관심을 갖고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해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 있어서 절대 없어선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일들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원래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는, 하나님이 보기에 매우 좋고,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한 인류였지만, 하나님을 거역한 후 홍수로 멸망했다. 이런 한 인류가 순식간에 소멸되었을 때 하나님은 마음 아프지 않았을까? 당연히 마음이 아팠다! 그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어디서 나타났느냐? 성경에는 어떻게 기술되어 있느냐? 성경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 간단한 말씀 속에 하나님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그는 그때 세상을 멸한 것이 무척 마음 아팠던 것이다.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참으로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한 뒤 원래 생기로 충만했던 땅이 어떻게 변해 버렸을까? 인류로 가득했던 땅이 어떻게 변해 버렸을까?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생물도 없이 도처에 물만 있는데, 물 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런 광경이 과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본의였을까? 분명 아니다! 하나님의 본의는 곳곳에 활기가 넘치고, 그가 창조한 인류가 그를 경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노아 한 사람만이 그를 경배하고 그의 부름을 받아 그가 준 사명을 완수하는 것, 이건 적어도 하나님의 본의가 아니었다. 인류가 사라지자 하나님이 보게 된 것은 그가 애초에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 정반대의 광경이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품을 나타냄과 동시에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면서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어떤 결정이었을까? 구름 속의 무지개[주: 우리 눈에 보이는 무지개]로 사람과 언약을 세우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찍이 홍수로 세상을 멸했었던 적이 있다고 알려 주며,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했는지 영원히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세상을 멸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했을까? 분명 하나님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세상을 멸한 뒤 땅의 참상을 조금은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하나님의 눈에 비친 장면이 어땠을지, 우리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이나 당시의 그 누구도 하나님이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 즉 홍수로 멸망한 뒤의 세상을 봤을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상상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인류의 패역으로 인해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했지만 그때 홍수로 세상을 멸한 것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 사실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느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과 세운 언약, 즉 맹세로 하나님이 그런 일을 행한 적이 있음을 사람에게 기억하라고 알려 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준 것이다. 그 ‘언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인류를 멸했을 때 마음이 아팠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언어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고 인류가 사라진 상황을 봤을 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인류가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들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언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이런 언어로 하나님의 심정과 느낌을 묘사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그리 잘못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것 같다. 최소한 당시 하나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너희가 아주 생생하고 적절하게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제 너희가 다시 무지개를 보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최소한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함으로 인해 느꼈던 아픔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인류를 증오했지만 자신이 친히 창조한 인류를 멸할 때 하나님은 마음이 아팠음을, 차마 버릴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었음을, 견디기 힘들었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그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노아의 여덟 식구였다. 노아의 협력으로 그가 만유를 창조할 때 기울인 심혈이 그나마 헛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상심한 와중에 유일하게 그의 상처를 메워 준 일이었다. 그런 뒤로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노아 가족에게 걸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그들이 다시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광경을 보지 않기를 바랐고, 그들이 멸망되지 않기를 바랐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성품의 어떤 부분을 알아야 할까? 하나님이 인류를 증오한 것은 인류가 하나님을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근심과 긍휼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인류를 멸했지만 그의 이 마음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인류가 심히 패괴되어 하나님을 극도로 거역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과 본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원칙대로 인류를 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로 인해 여전히 인류를 불쌍히 여긴다. 심지어 인류가 계속 생존해 가게 하려고 각종 방식으로 인류를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과 대립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부르고 깨우쳐 주고 공급하고 도움을 주고 관용을 베풀어도,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감사히 여기지 않으며 등을 돌려 버린다. 하나님은 상심했을 때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면서 사람이 돌이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그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겠다고 계획하면서부터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기한이 있고 과정이 있었다. 이 과정은 인류가 돌이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최후의 기회였다. 그러니 인류를 멸하기 전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했을까? 하나님은 대대적으로 깨우쳐 주고 권면하는 사역을 했다. 하나님은 아무리 상심하고 괴로워도 인류를 끊임없이 염려하고 보살피고 크게 긍휼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우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함을 분명히 보았다.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이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거짓이나 가식, 기만, 불순물이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지금껏 그 어떤 거짓된 수단이나 허상으로 인류에게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보인 적이 없다. 또한 하나님은 지금껏 거짓 증거로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보여 자신의 사랑스러움과 거룩함을 과시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런 측면들의 성품은 사람이 사랑할 만하지 않느냐? 사람이 경배할 만하지 않느냐? 사람이 귀하게 여길 만하지 않느냐? 여기까지 말을 했는데 너희에게 물어보겠다. 이런 말을 듣고 난 후에도 너희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속 빈 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이 빈말에 불과하느냐?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고지상함, 위대함, 거룩함, 관용, 사랑 등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본질의 면면은 매번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구체화되었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구현되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서 구체화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서 구현되었다. 네가 일찍이 그 느낌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세심히 보살피고 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그의 지혜와 다양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고 모든 사람의 영을 일깨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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