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종교 의식의 기도를 가장 혐오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반드시 진심으로 기도해야 열납될 수 있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늘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멋대로 맹세하며 자신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심을 다하고 싶다는 말로 하나님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너의 소망은 네가 달하지도 못하고, 또한 그럴 만한 의지도 없고 분량도 안 된다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조롱이다. 조롱이라는 단어에는 비웃고 우롱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람이 만일 그런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가볍게 말하면 기만하는 것이고, 심각하게 말해 네가 늘 그렇게 한다면 너라는 사람의 품행은 너무나 비천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정죄한다면 그것을 모독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만족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진리를 분명히 알지 못하거나 패괴 성품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이러한 품행으로 하나님 앞에 와서 이방인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할 뿐만 아니라 정중하게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그런 말로 하나님을 속이고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자신이 한 일의 심각성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함께함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함께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에서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합니다.) 이러면 문제가 된다. 너희는 이런 기도를 많이 하느냐? 자주 하느냐? 사람이 이 세상에 오래 살다 보면 거기에 물들어 매우 세상적이고 불량기가 가득해진다. 사탄의 독소와 생존 방식이 사람에게 깊이 침투돼 입만 열면 위선적인 말과 거짓말이고 양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늘 속셈이나 목적을 갖고 있는데, 올바른 마음가짐은 거의 없다. 이는 너무나 심각하다. 사람이 그런 사탄의 철학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온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겠느냐?
―<자신을 알아야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 중에서
지금 나는 사람에게 모두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지만, 기도는 기도이고 일은 일일 뿐, 기도할 때 일에 관해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진실한 기도를 거의 하지 않으며, 어떤 이들은 기도할 줄도 모른다. 사실 기도는 평소에 대화를 하듯 주로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기도만 했다 하면 자리를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하나님께 뭔가를 해 달라고 요구만 하니, 그 결과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메말라 간다. 기도할 때는 네가 마음속으로 구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고 싶은데 잘 모르니 하나님께 지혜나 힘, 깨우침을 달라고 하든, 이런 말은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 너는 이성이라고는 없이 무릎 꿇고 “하나님, 제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제가 제 본성을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부디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제게 무엇 무엇을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어떻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해 주십시오’라는 말에는 강제성이 들어 있다. 즉, 이는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이고, 너 스스로 먼저 다 정해 놓은 것이다. 성령이 보기에 네가 스스로 다 정해 놓았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그런 기도가 무슨 소용 있겠느냐? 기도할 때는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때 너는 ‘하나님, 저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게 하고 싶고, 당신의 뜻을 구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저 제 뜻이 아닌, 당신의 뜻대로 행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람의 뜻은 모두 당신의 뜻과 어긋나고, 당신을 대적하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하여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런 어투의 기도가 적절한 기도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저에게 적당한 환경과 사람을 예비해 주시어 제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한다면, 기도를 마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네 뜻대로 행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의의와 실행> 중에서
너희는 이성 없이 기도할 때가 너무 많다. 모두가 “하나님, 제게 이 본분을 주셨으니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적절하도록,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거나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고 저를 지켜 주십시오….”라는 어투로 기도한다. 이런 기도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이지 않으냐? 네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네게 역사하겠느냐? 네가 내 앞에 와서 이렇게 말을 하면 내가 듣겠느냐? 단번에 너를 차 버릴 것이다! 영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앞에서의 네 태도는 같지 않으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할 때는 어떻게 말하는 것이 이성적인지, 어떻게 해야 내면의 상태를 조절하여 경건해지고 순종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그다음에 기도하면 문제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기도를 할 때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뒤 다른 말은 한마디도 없이 오직 “오, 하나님! 오, 하나님!”이라고만 외친다. 이렇게 반나절을 외치면서도 다른 말은 하지 못한다. 왜 이런 것이겠느냐? 네 내적 상태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에게는 이럴 때가 있느냐? 너희는 지금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있고, 스스로가 자기 주제도 알고 있지만, 내적 상태가 비정상적일 때가 많으며, 어떨 때는 조절해 놓고도 어떻게 조절했는지도 모르고 기도할 때도 할 말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배운 지식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기도에도 지식이 필요하겠느냐? 글짓기를 하는 것도 아니니 사실 그대로 정상인의 이성에 의거해 말하면 된다. 예수의 기도를 보아라(예수의 기도를 보라고 해서 반드시 예수와 같은 각도와 위치에 서서 기도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일 할만하시거든…”이라고 기도했다. 다시 말해, 가능하다면 상의를 하고자 했지, ‘바라옵건대’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순종의 마음으로, 그리고 순종적인 내적 상태로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으며, 두 번째 기도도 이러했다. 그리고 세 번째 기도에서 그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기에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는 완전히 순종할 수 있었고, 거기에 자신의 선택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만일 할만하시거든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말을 했겠느냐?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죽음과 관련된 일이었으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그렇게 기도했다. 그 고통을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큰 순종이다. 그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정상적이다. 그는 기도하면서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지나가게 해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뿐이다. 처음 기도할 때 그는 알지 못했기에 “만일 할만하시거든 …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다. 그는 순종적인 내적 상태로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두 번째 기도도 그러했다. 그는 총 세 번 기도했는데(물론 이 세 번의 기도가 3일 동안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고 더는 뭔가를 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앞의 두 번의 기도에서 그는 찾고 구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순종적인 내적 상태 안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사람은 늘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십시오. 어떻게 어떻게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제게 조건을 예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어쩌면 하나님은 적합한 환경을 예비해 주지 않고 그 고난을 겪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이 늘 “하나님, 저를 위해 예비해 주시고,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는 얼마나 비이성적이겠느냐! 너는 기도할 때 이성적이어야 한다. 순종을 전제로 기도하되, 규정해선 안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어떻게 해 달라고 구해야겠다고 규정하는 이런 기도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것이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기도를 할 때 메마른 것이다.
―<기도의 의의와 실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