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2019년 01월 09일

또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오후입니다. 이정은 책상 앞에 앉아서 성경을 보다가 거기서 한 구절을 발견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시록 21:3) 그녀는 이 성경 구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럼 어떻게 들림 받지? 난 여러 해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과 만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성경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어.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난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주님이 오시기를 깨어서 기다렸어.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로 임한다면 들림 받아 천국에 가려던 소망은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천국

다음 날 이정은 류 자매님의 집을 방문해서 어제 성경을 보고 느꼈던 문제를 털어놓았습니다. 류 자매님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자매님이 말한 이 문제는 저 역시 고민하던 문제였어요. 나중에 성경을 찾아보고 진리를 이해한 사람을 찾아가서야 명확한 답을 알게 되었죠.” 이정이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어서 들려주세요.” 류 자매는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먼저 성경의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라고 한 이것은 바울의 말이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님만이 천국의 왕이시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할 수 있어요.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일 뿐이고, 그도 사탄에게 타락된 사람일 뿐이에요. 진리를 선포하지도 못하고, 타락한 인류라서 하는 말에 사람의 불순물이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대하면 안 돼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에서는 반드시 예수님이 하신 예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정확해요. 성경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공중에 들어 올린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3:13)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과 만난다는 것은 바울의 관념과 상상인 것을 알 수 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또한 계시록에도 이렇게 언급했어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계시록 11:15) 이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고, 사람들을 땅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인류가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셨어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도 땅에서 이루어져요.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며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바울의 말을 지켜서 항상 하늘로 들림 받을 생각만 한다면 이것은 완전히 사치스러운 욕망이며 전혀 진리에 합당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사역의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이에요. 우리가 땅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따르고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요.” 류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난 이정은 그제서야 주님을 영접하는 일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지 사람의 말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인이 이렇게 오랫동안 추구했던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의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정이 고민했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정은 마음이 창문을 열었을 때와 같이 한결 밝아져서 류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이 하는 말을 들으니 확실히 성경에 부합하네요. 이런 깨달음은 어떻게 얻으셨어요?” 류 자매는 살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방금 나눈 것들은 한 친구가 저에게 나눠준 거예요. 그들은 ‘들림 받아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한 비밀을 자세하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책의 한 대목을 읽어 줬어요. 『‘들림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 틀린 것이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이 대목에서 저는 ‘들림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땅에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고 사역하실 때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현재의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계시록에도 여러 군데 나와 있어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3 참고) 이것은 우리에게 전하는 소식이에요. 말세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말씀을 선포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과 사역을 구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만 들림 받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와 하나님과 마주할 수 있어요.” 이정은 듣고 나서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들림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재림 사역과 말씀을 구해야겠네요. 이것은 성령이 깨우쳐 주신 새로운 깨달음이에요! 주님, 감사합니다!”

한 줄기 산들바람이 살랑이며 가볍게 스쳐 지나가고, 그들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이정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열 처녀의 비유"를 비롯해 진행된 토론

열 처녀의 비유를 보게 되면 누구나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영접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가 슬기로운 처녀이고, 어떤 이가 미련한 처녀 인지 알고 계십니까? 또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린 죄 사함을 받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지만 아직도 죄 짓고 회개 하기를 반복 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이미 왔습니다. 우린 어떻게 주님을 맞이해야 할까요?

오시경 재림에 관한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2~34) 크리스천들은 이것이 재림을 예언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은 바로 이스라엘 회복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우리는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오늘날 이스라엘도 회복된 지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39, 42),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고, 서로 죽이고 음란이 본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타락됐었죠.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홍수로 멸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거짓 신과 악령을 경배하고 있으며 극도로 사악하고 타락됐습니다. 서로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아귀다툼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등 세상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명의상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교회도 장사하는 소굴로 전락되고 다 황폐해졌습니다. 심지어 많은 성도들은 사악한 조류를 좇고 있고 세속에 빠져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고 쾌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노아 시대와 비해 보면 그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각종 재난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징조로 재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이미 임했다는 뜻이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을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해 믿어 오면서 여느 형제자매들과 다름없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주님은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지금 재림에 관한 징조가 이미 다 나타났는데 왜 주님은 구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주의 재림을 놓칠까 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을 맞이해 버림받지 않도록 그 길을 깨우쳐 주고 인도해 달라고 늘 주께 기도드렸습니다. 저한테는 여러 해 전도하면서 사역한 친구가 있습니다. 최근에 모처럼 만나게 돼서 저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걱정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친구가 교제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그래서 우린 다 주님이 무조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규정하는 게 정말 주님의 뜻에 맞는 걸까? 사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재림하는 방식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마 24:5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어떤 말씀에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니 각인의 눈이 다 본다고 했고, 어떤 말씀에서는 또 도적같이 오시고 아무도 모른다고 했어. 여기서 주님이 두 가지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나타나시는 방식, 또 하나는 도적같이 은밀히 오시는 방식이지. 우린 다 주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무조건 다 이루어질 거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아.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재림 방식을 단정 지으면 안 돼.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만 고집하면서 은밀히 오신다는 건 부인한다면 우리는 은밀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놓쳐 버리게 될 수도 있어.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이 예언처럼 주님이 구름 타고 올 때면, 우리는 은밀히 강림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애곡하게 될 거야. 그게 다 자기 생각 때문에 구원받을 기회를 잃는 거잖아.” 저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빛 비춤이 있어. 재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성경에 재림에 관해서 예언한 게 이렇게 많은데 잘 읽어 보지도 않고 묵상도 안 하고 그저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렸어. 오늘 너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성경에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예언 말고도 은밀히 오신다는 예언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아님 은밀히 오시는 주님을 놓칠 뻔했어.”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거야. 같이 하나님 말씀 좀 볼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모두 사람이 측량하기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자들이고, 모두 교만방자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그야말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에서 깨닫는 게 있을 거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이 있어야 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는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예언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서 우리 생각과 상상으로 규정할 수 없어.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바리새인은 이 예언을 보고는 자기 상상으로 메시아가 오실 때면 왕으로 왕궁에서 태어날 거고, 훤칠한 외모에 위풍당당하고 풍채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사실은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어.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높은 신분과 지위도 없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어. 바리새인은 자기 생각과 안 맞으니 예수님이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진리를 발표하고, 설교를 깊게 해도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분이 바로 장차 오신다고 예언한 메사아라는 것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고의 죄인이 됐어. 우리의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을 단정 지으면서 구름 타고 오지 않으면 주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2천년 전에 주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거야. 교만하고 독선적인 타락 성정으로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리고, 성경의 문자적인 뜻으로만 주님의 뜻을 해석하면 너무 위험해. 이렇게 실패한 걸 교훈으로 삼아야 돼.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이후에 어떻게 사역하실지 사람은 측량할 수 없어. 어떻게 사역해야 한다고 규정할 자격도 없지. 안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봐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해.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거야. 예수님 말씀이 딱 맞아.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이런 사람은 미련한 처녀잖아.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워!” 저는 친구가 읽은 말씀과 교제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정말 교만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규정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주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께 벌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더 잘 영접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발표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을 자신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 말며, 마땅히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복해야 하는지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사람에게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주님을 영접할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계시록에서 예언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많은 진리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인지를 확정하려면 반드시 자발적으로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기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하나님도 그분의 양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자의 일기 – 천국은 하늘에 있을까요 땅에 있을까요?

천국에 대한 동경 오늘 날씨가 매우 좋아 친한 자매님 두 분과 함께 걸어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 한 자매님은 우리에게 기쁘게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주님을 우리 집에 오시게 하면, 평안과 축복을 얻을 수 있어요. 당신의 병을 치유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더 큰 복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 같은 신자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요. 이는 매우 큰 복이요.” 자매님이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신이 나서 고개를 계속 끄덕였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모인 후, 목사님께서 성경을 펼쳐 읽으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시록 21:10)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계시록 21:21~25) 곧이어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 미리 처소를 마련하려는 것이며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면 우리는 천국으로 들림받아 예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매일 예수님과 함께 생활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자 모든 신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신 천국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바닥에는 황금이 깔려 있고 곳곳에 보석들이 반짝입니다. 또한 천사들이 우리 곁에 함께 있으며 항상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고통, 죽음, 눈물, 슬픔이 없습니다. 더 이상 이방인들의 비방이나 우리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아멘!” 목사님의 감동적인 말씀을 듣고 우리는 천국을 더욱 동경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 전파의 실패 오늘은 남동생 집에 가서 올케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올케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치유되는 것뿐 아니라 천국에 갈 수도 있어. 올케도 예수님을 믿자!” 그러자 올케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천국에 간다는데 나는 믿지 않아요. 내 몸이 50kg이나 되는데 하늘에 올라갈 수나 있겠어요?” 이에 나는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큰 능력을 가지고 계셔서 분명 하실 수 있어! 난 요즘 매일 하늘을 보며 어떤 구름이 가장 하얀지 보고 있어. 예수님께서 그 구름을 타고 오셔서 우리와 만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조심해야 해.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는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큰일이니까!” 그러자 올케는 웃으면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데 어째서 같이 천국으로 가지 않는 거죠? 천국으로 가는 건 그저 심리적인 기대에요. 아름다운 희망일 뿐이라구요!” 결국 이번 복음 전파 계획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고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천국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그 비밀을 밝히다. 오늘도 맑은 날씨입니다. 한 자매님의 집에 방문했는데 감사하게도 그 자매님 집에 정 자매님이 와 있어서 함께 성경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정 자매님은 “우리가 함께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주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것은 우리에게 처소를 마련해 주기 위함이며, 주님께서 훗날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실 겁니다. 그런데 천국이 하늘에 있을까요? 아니면 땅에 있을 까요?” 정 자매님의 말을 듣고 제가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하늘이지요. 예수께서 당시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어요. 주님께서 오시면 당연히 우리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시겠죠?” 정 자매님은 저의 대답을 들은 뒤, “먼저 무엇이 천국인지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보통 상공을 가리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천국은 주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즉, 주님께서 권력을 장악하고 계신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뜻하죠.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대답했다. “그렇네요” 정 자매님은 말을 이어갔다. “그럼 주님의 나라는 땅에 있을까요? 아니면 하늘에 있을까요? 우선 주기도문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9~10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주님 말씀에 근거하여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고 주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하라고 하셨지만, 주님의 나라가 꼭 하늘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천국에 가길 바라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뜻에 맞지 않는 게 아닐까요?” 저는 주기도문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위에는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글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설마 주님의 나라가 정말 하늘에 있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자매님은 성경을 꺼내어 읽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시록 11:15)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1:2~4) 성경 구절을 다 읽은 후, 우리에게 천천히 설명했습니다. “이 두 예언에서 언급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든 슬픔, 아픔,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주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생활합니다. 사람들 모두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삽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나라가 정말로 땅에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믿고 하늘에 올라갈 생각만 하며 주님의 말씀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요? 사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육신이 정말로 하늘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그 누구도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는 걸 명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정 자매님의 말을 듣고 나서 한 자매님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천국이 땅에 있었다니! 계시록을 그렇게 많이 읽고도 왜 그걸 알아내지 못했을까요? 주기도문은 매일 외우는데 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니 눈이 멀었었네요.” 자매님의 말을 듣고 저 역시 깊이 공감하며 말했습니다. “맞아요. 저도 수년간 매일 성경을 읽었는데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정 자매님이 오늘 우리에게 알려준 내용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듯해요! 나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고 생각해요. 매일 하늘을 보며 주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길 바랬는데 너무 비현실적이었어요.” 정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맞아요. 예전에는 저도 자매님처럼 주님께서 저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길 매일 바랐어요.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고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뜻을 점점 이해하게 됐어요. 주님은 말씀을 통해 주님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셨어요. 다만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주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거죠!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모습이 정말 안쓰럽게 느껴지네요. 오늘날 많은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항상 계시록에 대해 연구하지만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있다는 걸 몰라요. 하나님을 믿을 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관념과 상상으로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매우 어리석고 황당한 일이죠. 우리의 관념, 상상은 주님의 뜻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 같아요.” 주님 감사합니다! 자매님과의 교통을 통해 성경 속 주님의 말씀에는 전부 깊은 뜻이 있으며, 성령의 깨우침이 없다면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이를 계기로 느낀 바가 큽니다. 주님께서는 자신만의 계획과 사역 방식이 있으시기에 우리의 상상과 관념에 맞춰 그 분의 약속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늘의 성경 공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미리 예비해 주신 처소가 하늘 위가 아니라 이 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급한 마음에 정 자매님에게 내일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고, 정 자매님은 우리의 초청을 받아들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내일 이어서 교통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네덜란드 장영신

천국에 들어가는 경로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7장 21~23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사람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을까요? 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을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라 하였고, 또 그들에게 주 예수님을 떠나가라고 하셨을까요? 설마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것이 천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어느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훗날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지내면서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약속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셨는데, 다만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일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바로 성령 역사에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를 수 있고, 어떤 일에서나 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할 수 있는지에 달렸습니다. 율법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알게 하고, 인류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인솔에 순복하고,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만 바로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으며,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돌에 맞아 죽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타 죽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아브라함과 욥은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였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본보기였습니다. 은혜시대에 와서 주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고, 사람에게 새로운 요구를 제출하였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등 새 시대의 실행 방향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분의 말씀에 따르고, 그분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고, 그들의 죄는 곧 사함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율법을 지키며, 예수님의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들은 성령의 사역에 도태 도태되어 흑암 속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당시의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거나 혹은 바다와 육지를 다니며 율법을 전했으며, 포기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도성육신하여 새 사역을 하실 때, 그들은 율법을 고집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의 새 사역을 핍박하고 대적하여 최종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람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숙독했던 것이 아닙니까? 모두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비록 그들은 율법을 숙독했었고, 오랜 세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었지만, 그들은 율법과 계명을 좇아서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옷 자락에 경문을 수 놓고, 사거리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가장하며, 거짓으로 경건한 체하는 모습으로 유대 백성으로 하여금 숭배하게 하여 자신들의 지위와 밥그릇을 보전하려고 하였던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시는데 권병과 능력이 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지위와 밥그릇을 잃을까봐 두려워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발표하신 진리와 하나님의 도래를 증오하고, 율법과 계명을 위배하면서 예수님을 훼방하고, 무함하고, 정죄하였으며,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다고 모함했었습니다. (마태복음9: 32~34참조). 또 예수님이 참람한 말을 한다고 정죄하고(누가복음 5: 20~21참조), 주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에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었다고 정죄하며, 또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지를 의논하였습니다. (마태복음12: 9~14참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왜 그들을 질책하고 저주하여 마태복음23장13절에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은 모두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이고, 천국에 아예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하나님은 사람이 겉으로 일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새 말씀과 새 역사에 순복하는지,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를 수 없는 그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생활이 있을 수 없으며, 그들은 모두 흑암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도를 찾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 받을 수 있겠는가?…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이 역할을 맡고 있고, ‘메시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아를 대적하는’ 그 배역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한 단계 성령 역사를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패역으로 초래된 것이 아닌가?…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끝까지 가는 사람이라야 마지막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이미 전부를 얻었다고 여기는 그 ‘총명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계속 발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아무런 까닭 없이 중단시킬 뿐만 아니라, 100% 확신이 있는 듯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그 사람들’을 끌어 올릴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절대적으로 충성할지라도 그들의 언행은 여전히 사람을 너무나 역겹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성령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모두 간계를 부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성령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옛 사역만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새 시대에 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징벌받는 사람이 된다. 이 사람들은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싹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항상 새로운 것으로 단계마다 더 높아지는 것이고, 단계마다 더 깊어지는 것이며, 단계마다 앞에 한 단계의 기초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 사람은 모두 바싹 따라야 하며, 단순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고,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낡은 사역을 지키지 않는다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요구에 따라 실행한다면, 이런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계의 목사와 지도자는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일까요? 하나님께서 말세에 또 한번 도성육신 하시어 땅에 와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하는 사역을 하시고, 낡은 시대를 결속짓고 새 시대를 개척하셨습니다. 그러나 종교계의 목사와 지도자는 하나님의 새 시대 사역에 대하여 전혀 찾고 구하거나 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종교계에서 영원히 권력을 장악하고 신도를 통제하여 독립왕국을 세우려는 야심과 목적을 위해 공공연히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고, 미친듯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논단하며, 공격하고, 모독하고, 있는 힘을 다해 신도가 참 도를 찾고 구하거나 알아보는 것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나가서 영접하라고 가르쳤지만, 종교계의 목사와 지도자는 주 예수님이 재림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보존하기 위하여 스스로 알아보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있는 힘을 다 해 교회를 봉쇄하고, 신도가 참 도를 알아보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사람에게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신도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간증하는 형제 자매들을 때리고 욕하도록 부추기고, 경찰에 신고하게 합니다. 그들은 또 성경의 글자 표면의 뜻으로 신도들을 미혹하고 통제하면서 예수님이 오시면 흰 구름 타고 영체로 나타날 것이고, 도성육신으로 와서 형벌, 심판의 사역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허튼 소리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성경에 있다.’ , ‘성경 이외에는 하나님 말씀이 더 있을 수 없다.’, ‘성경을 떠난다면 바로 이단이다.’ 등등 진리에 위배되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퍼뜨립니다. 그리하여 신도들을 종교계의 수렁에 꽁꽁 묶어놓아 하나님의 새 시대 말씀의 공급과 양육을 받지 못하고, 흑암 속에 빠져 성령 역사를 잃게 되었으며, 구원 받을 기회를 잃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신도들은 그들이 날조한 유언비어에 미혹되어 또 그들을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 사역을 함께 정죄하고 대적하면서 그들의 앞잡이와 흉악한 패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사역을 가로막고 방해하는데,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망쳐버렸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그들은 천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들이 바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천부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다시 오신 예수님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발표하시어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셨는데, 사람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며, 어린 양의 발자취를 바싹 따라야 합니다. 또 하나님 현실의 요구에 따라 추구하고 실행해야 하며,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고, 이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이전에 한 사역을 고수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다해도 최종에는 훼멸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모두 악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 예수님이 누가복음11장 23절에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라고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된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겸손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신하지 말고, 자고하지 말며, 하나님의 사역을 대하는데 맹목적으로 정죄하지 말고, 미혹될까 봐 성령의 역사를 저버리지 말고,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의미심장하게 권고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이 마태복음12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세 사역에 대하여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찾고 구해야만 하나님의 인솔과 인도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이끌려 보좌 앞에 와서 하나님의 심판과 정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 의해 사람은 비로소 사탄에게 패괴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되고, 비로소 진리를 추구하여 자신의 낡은 패괴 성정을 변화시켜 최종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 받을 수 있게 됩니다.

TO.사역자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TO.효정 자매님: 자매님, 안녕하세요! 어제 유형제님한테서 우리 고향에 있는 교회가 더 황량해졌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자매님이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자주 금식 기도를 한다는 것도요. 20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서 쓰러진 적도 있다면서요. 그 얘기를 듣고 빨리 돌아가 자매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교회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갈 수가 없네요. 그래서 이렇게 유형제님 통해서 편지 보내요. 자매님, 교회의 황량은 지금 교계의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그리고 지금 재림에 관한 예언이 거의 다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주님을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나가서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야 돼요. 자매님도 기억할 거예요. 전에 자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곳이 어디일지에 대해서 얘기 나누하면서 스가랴 14장 4절을 봤었죠.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이것을 보면서 주님이 돌아오실 때, 유대의 감람산에 서서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고는 최근 몇 년간 계속 이스라엘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특히 네 번의 핏빛 달이 나타나니 더욱 이스라엘에 집중하고 있었죠. 그래야 최대한 빨리 재림에 대한 메시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지인이 우리에게 주님이 이미 돌아왔고 중국에 오셔서 사역하고 계신다고 전해 주면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빨리 구해 보라고 했었잖아요. 근데 우린 그것이 성경 예언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님이 두 번 다 이스라엘에서 사역을 전개하셨고, 원래부터 하나님을 믿어 오던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셨는데 재림 때 어떻게 중국에 오셔서 사역하실 수 있겠냐고 생각했었죠. 중국은 여태껏 향을 피우고 불상에 절하며 악령을 섬겼고 게다가 크리스천을 심각하게 박해하고 있고, 제일 낙후하고 하나님을 안 믿는 나라니까 하나님이 중국에서 사역하실 리가 없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바로 거절하고 주님이 감람산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러다 여기 와서 조형제님을 만나게 됐는데, 그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관점을 돌리게 됐어요. 형제님이 이렇게 얘기해 주더라고요.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죠.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것보다 높습니다.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죠. 우리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사역을 분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미리 상의하고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해야 할 사역을 바로 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겁니다. 말세에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사역하실 때도 똑같아요.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걸 사람의 생각으로 규정해 버리면 안 되고, 많이 구해 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예언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말을 들으면서 바리새인이 생각났어요. 그들은 계속 예언의 글귀만 지키고, 자기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불리지 않고, 또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졌죠. 말세에, 자기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에 관한 예언을 대한다면 무의식중에 바리새인이 주님을 대적했던 길로 가게 돼요. 그럼 정말 위험해요! 형제님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을 내려놓고 주께 인도해 달라고 자주 기도드렸어요. 주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어느 날 성경에서 이런 말씀들을 보게 됐어요. 말라기서 1장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사41:2~3)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여기 ‘이방’,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이런 말씀들에서 주님이 돌아오실 때 사역하는 장소는 동방이고, 또 이방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중국은 세계의 동방에 있고, 무신론 나라이고, 참 하나님을 경배한 적도 없고, 지금껏 크리스천을 박해해 왔어요. 그래서 일부 기독교 나라에서는 중국을 ‘이방개’라고 불렀죠. 중국은 전형적인 이방 나라예요. 성경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말세에 하나님이 중국에서 사역하신다는 예언이 진짜 성경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전에 우리가 장담했었던 것들이 다 자기 상상이고 관념이었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알고 싶어서 조형제님을 찾아갔어요. 그날 형제님 교제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됐는데, 그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말씀을 자매님한테도 보내 드릴게요.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였든, 유대 땅에 태어났든, 또 이방 땅에 태어났든, 그가 한 사역은 모두 그가 지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은 백배로 기뻐하고 이방인은 천배로 혐오하겠느냐? 이런 것은 다 너희의 관념이 아니냐? …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또 이스라엘의 다윗 집만 하나님이 처음으로 태어난 곳이므로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어느 족속도 하나님을 ‘탄생시킬’ 자격이 있을 수 없고 더욱이 어떤 이방 족속도 여호와의 역사를 직접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아직도 그렇게 여긴다면 완고파가 된 것이 아니냐? … 너희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이방 중에 친히 강림하실 수 있을까? 그분은 시내산이나 감람산에 강림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 나타나셔야 맞는 거잖아. 이방인(이스라엘 외의 사람)은 모두 그분이 혐오하시는 대상이 아닌가? 그분이 어떻게 친히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실 수 있을까?’ 이런 것은 모두 너희에게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깊이 뿌리박힌 관념이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너희의 이런 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친히 너희들 가운데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고, 시내산도, 감람산도 아니라 전에 인솔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방 각 족속의 하나님임을 알게 할 것이다. 설령 내가 저주한 족속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사역이고 말세에 이루려고 계획한 나의 역사 취지이며, 말세에 성취하려는 나의 유일한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이 전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어느 나라에서든지 다 역사할 권리가 있고, 규례의 속박을 받지 않아요. 하나님은 어느 국가나 민족의 사유재산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린 하나님이 앞 두 단계 사역을 이스라엘에서 전개하셨으니 재림 때도 이스라엘에 오시고 이방에서는 사역하실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주님이 만약 또다시 유대에 강림해서 사역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이스라엘에 규정해 버릴 거예요. 그럼 당시 바리새인들이 성경의 글귀를 지키며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잖아요? 이건 하나님을 오해하고 규정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이 중국에 성육신해서 사역하시는 것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요. 단지 우리가 꿰뚫어 보지 못했을 뿐이죠. 전에는 관념 속에서만 살면서 주님이 중국에 오셨다고 해도 구해 보지 않고 주님이 이스라엘의 감람산에 나타나시기만 기다렸는데, 너무 어리석었어요. 지금 교계가 다 황량해졌고, 재난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러니 더는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안 돼요. 국적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의 발자취와 주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해야 해요. 그래야 교회가 황량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요즘 계속 하나님이 중국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데 거기 말씀이 다 진리였어요. 그분들 교제를 들으면서 어려운 점들이 해결되고, 또 교회가 황량해진 원인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생명에 정말 도움이 되더라고요. 자매님도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세에 오셔서 하시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길 바라요. 그래서 교회 형제자매들과 같이 그 황량해진 상황에서 빨리 나오길 기도할게요.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FROM:이옥희

[신앙 일기] 죄를 짓고 자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2017년 10월 27일 구름 많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생명의 대가로 우린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죄를 지었다.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살다 보니, 사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죄를 짓는 문제는 줄곧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1일 구름 많음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며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때로는 집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말다툼했다. 교회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속으로 괴롭고 기분이 나빠져 형제자매에게 선입견이 생겼고, 그들과 상대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봉사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최대한 자제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서로 사랑하고, 내 행동을 최대한 단속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입견이 항상 나타났고,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이대로 살다 가는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늘 성경을 찾아봤지만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항상 어떤 힘이 내 안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지탱해주었다. 주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누가복음 11:9)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8일 흐림 오늘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보았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전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고, 형제자매님들과도 마음속으로 다퉜다.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있는 나는 확실히 ‘정결케 되지 못했구나!'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겉으로는 전도하며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죄 인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또 죄를 자백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주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리 형제님 역시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 자매님은 강조하며 말했다. “주님은 자애롭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왕 자매님도 장 자매님의 관점을 인정하며 말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지만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내가 주님 앞에서 죄를 잘 자백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죄를 짓는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11월 13일 구름 많았다가 개임 오늘 아침,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성경을 펼치고 영적 수련을 시작했다. 아래의 계시록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시록 21:27) 성경에서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성'은 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본 후 나는 매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항상 죄를 짓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나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데, 그럼 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한1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째서 이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과 다를까? 나는 이 세 구절의 말씀을 펼쳐 놓고 대조한 결과, 계시록 21장 27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했다. 이 말씀은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주님께 사함 받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결케 되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개념이다. 우리는 전에 성경의 말씀을 오해해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 속에 살면서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타락한 것이 아닌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이 두 구절을 통해 만약 우리가 낮에 죄를 짓고, 밤에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정결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더럽고 타락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된 큰 일이다. 다음 주에 있을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내어놓고 다 같이 연구해 봐야 한다. 영적 수련이 끝나고, 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정말 부패하고 타락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7년 11월 25일 맑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나는 기분이 좋다. 친구가 나에게 영적 서적을 한 권 선물해 주었고, 그 영적 서적에 있는 많은 진리도 함께 나누며 그 동안의 미혹감과 당혹감을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보고, 친구와 나눴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원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일 뿐,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무시한다. 누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증오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기뻐하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원망한다. 항상 남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고,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이 한 말처럼 말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 (로마서 7:18) 이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지 죄를 짓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고, 죄악의 즐거움을 탐하며, 전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기만 할 뿐 진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평생 동안 믿었던 사람, 또는 성경을 숙독하고,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종교 지도자라할지라도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 봐야 겠다! 2017년 11월 28일 흐렸다가 개임 저녁 무렵,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품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품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알고 보니 내가 죄를 짓는 근원은 모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과 같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예전에 나는 우매하고 눈이 멀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 고수하며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보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자애로우시다. 동시에 공의로우시고 성결하신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죄성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구원을 받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찾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야 정결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계시록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시록 21:27)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