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자녀교육, 나의 욕심을 먼저 내려놓는다

2018년 07월 17일

어린 시절 집안이 궁핍했던 동신은 학비를 낼 돈조차 없어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신은 성인이 된 후, 시(市)의 방직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매일 바쁘고 고되게 일해도 한달에 겨우 32위엔밖에 받지 못해서, 근근히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빈털터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들만큼은 내 힘으로 꼭 대학에 입학시키고 말거야. 아들이 남들에게 출발선에서부터 뒤지게 할 수는 없어. 안 그러면 평생을 출세도 못 해보고, 찌질하게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동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건재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그러면서 생활이 점점 넉넉해졌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동신은 아들의 학습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에게 영어, 작문, 수학 올림피아드 등등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들의 숙제를 검사하며 재촉하였고,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그를 데리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동신은 아들을 사립학교에 입학시켰으며,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아들은 시험 때마다 늘 반에서 3등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동신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으며,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이보다 더 힘들다 하여도 역시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 우물쭈물거리며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사립학교에 다니기 싫어요. 중3 과정이 너무 타이트하고, 학교의 요구가 너무 엄격해서 못 견디겠어요. 나 일반 중학교로 전학가고 싶어요.”

동신은 매우 의아했습니다. “내가 매일 죽도록 힘들게 돈 버는 게, 다 네가 명문고에 가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나중에 네가 사회에서 발붙일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엄마가 평생 별 능력없이 살아서, 너를 엄마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건데, 넌 엄마의 이런 깊은 생각을 왜 몰라주는 거야?” 그녀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눌러 참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동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들을 한 대 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창문 쪽으로 다가 가더니, 만약 더 이상 자기에게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창 밖으로 뛰어내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동신은 분통이 터져 말했습니다. “내 모든 희망을 너에게 걸었는데, 네가 뛰어내려서 죽으면, 내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차라리 나도 같이 죽고 다 끝내자!”

그날 엄마와 아들 모두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동신은 아들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몇 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릴 것이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앞날에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간절히 애원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아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신은 아들과 타협하고 양보하여, 그를 일반 중학교로 전학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동신의 아들이 아침 수업시간에도 졸 뿐만 아니라 숙제 내 준 것도 해오지 않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동신은 마음이 다급해져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들은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까? 계속 이렇게 공부한다면 명문 고등학교에 어떻게 합격할 수 있겠어?’ 이런 저런 고심 끝에, 동신은 학비가 비싼 기숙사가 있는 사립학교에 아들을 강제로 전학시켜버렸습니다.

그러나 동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아들의 학급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은 동신에게, 저녁 자습시간에 출석 점검할 때 동신의 아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기숙식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몹시 당황했었었고, 결국 모든 수업 담당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교내와 교외까지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PC방에 있던 동신의 아들을 찾아냈으며, 그가 담을 넘어 도망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동신은 피가 치솟고 현기증이 나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고생한 것은 다 아들이 앞으로 잘 되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들은 왜 계속 말을 안 듣고, 그녀를 절망하게 하는지, 동신은 자신의 운명이 왜 이렇게 고달플까라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동신의 어머니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하나님 말씀 책 한권을 주면서 꼭 이 책을 잘 읽어보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정하심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어머니의 교통을 들은 동신은, 원래 한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직업을 갖게 되며, 그 사람의 운명이 어떠할지, 하나님이 오래전에 이미 정해놓으셨기에, 사람이 제 아무리 몸부림치고 노력하여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동신은 자신의 출신이 안 좋아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자신이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늘 원망하였기에, 운명에 맞서 싸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전가하였습니다. 동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들을 강요하여 각종 학원에 보냈고, 아들로 하여금 학업 스트레스가 큰 나머지 세상을 비관하고 혐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러한 일념만으로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동신의 이러한 방법은 아들의 마음에 이미 크나 큰 상처를 남겼고, 심지어 아들이 죽으려고까지 하였으며, 그들 모자관계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동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운명에 맞서려고 하였고, 아들에게 이미 심각한 상처를 주었으며, 자신도 여러 해 동안 날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운명과 맞서서도 안되고,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자신의 희망대로 아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자신만의 흥미와 취미가 있고, 마땅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하며, 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을 되돌려주고, 그가 배우고 생활하는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던 해, 시험 점수를 352점밖에 받지 못한 아들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이번에 시험을 망쳤어요. 엄마 체면을 못 세워줘서 미안해요. 엄마가 친척을 찾아가서 연줄도 대보고, 교장 선생님에게 잘 좀 말씀드리고 로비도 좀 해서, 명문고에 뒷문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만약 명문고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게요.” 아들의 말을 듣고 동신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비록 아들의 장래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만약 아들이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그의 장래 직업과 앞길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에, 다시 한번 힘껏 아들을 도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신이 처음 아들에게 가졌던 희망도 이루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동신은 또다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몰라, 그녀는 곧바로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생각과 뜻을 살펴주시옵소서. 아들의 학교 진학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아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하오니,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동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자녀교육,모자관계,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동신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수천 년 동안 타락된 현재의 사람들은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살며, “모든 것이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이러한 말들이 이미 수많은 사람들 마음속의 명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공부를 통해 운명을 바꾸려고 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탄에 유혹당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며, 너무 큰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고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서, 결국은 철저하게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잡아먹히게 될 수 밖에 없어.’ 동신은 자신이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아들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아들이 이로 인해 이미 트라우마가 생겼고, 아들은 시험을 망치기만 하면 꾸중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신은 자기가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훈계하고 독촉한 것은 다 그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했던 사랑의 표현이라고 줄곧 생각했었습니다. 동신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란 말입니까? 이것은 분명 아들을 철저하게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는 짓이었습니다. 동신은 다시는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신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학교 들어가는 문제는 순리에 맡기자. 어떤 학교에 합격하든 거기엔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네가 어떤 학교를 다니든 다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운명으로 정해주신 거야. 예전에 내가 그렇게 너에게 요구했었던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아. 내가 너에게 공부를 강요했던 건 다 나의 체면과 명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네 생각은 전혀 고려해주지 못했어. 내가 정말 사탄의 철학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이성적이지 못했어.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너에게 요구하지 않을게.” 아들은 엄마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미소 속에서 아들의 홀가분해진 마음과 자유, 그리고 오랜만의 즐거움을 보았습니다.

개학 때, 동신은 아들이 일반학교에 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 후 동신은 다시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그를 돕고 인도하였습니다. 아들은 날이 갈수록 동신과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모자간의 관계도 날이 갈수록 가까워져서 허심탄회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아들은 한 민영회사에 채용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시종일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루는 동신이 뜻밖에 아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엄마, 내가 예전에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엄마가 어떤 심정일지도 신경쓰지 못했어요, 지금 어른이 되고 보니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무엇인지 많이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 이제는 더 이상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문자 메시지를 본 동신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이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예전에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아들을 교육할 때는, 서로간의 벽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동신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 사탄 철학의 실질을 꿰뚫어 보고, 자신이 변화되기 원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목격하고, 모자간의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오랜만에 집안에 기쁨의 웃음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지금 이렇게 철이 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이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고, 다시는 그런 그릇된 주장과 잘못된 논리에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은, 완전히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에게 임하여, 우리 모자가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충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의 기적: 심하게 다친 7살 아이가 살아나다

2014년 9월 29일 오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하굣길 아이가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하며 비 가림막이 있는 삼륜차를 타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40분가량이 흘렀을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남편만 있을 뿐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신신 데리러 간다면서? 신신은?” 남편은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헐레벌떡 내게 말했다. “신신은 어머니한테 있어.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어. 얼른 가봐!” 남편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급해졌다. 난 남편을 나무라며 말했다. “어떻게 했길래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많이 다쳤어? 보건소에 가서 약이라도 발라주지 그랬어?” 남편은 은행 카드를 찾으면서 내게 말했다. “애가 장난기가 많잖아. 툭하면 장난치고. 집에 거의 다 와 갈 때 혼자 삼륜차에서 뛰어내렸지 뭐야. 자기 생각엔 내가 집에 도착해서 뒤에 자기가 없는 걸 발견하면 놀랄 거고, 그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근데 삼륜차의 특수성 때문에 제대로 착지를 못 했어. 그래서 대자로 쓰러져서 머리를 다쳤어. 엄청 심하게 넘어졌어. 얼른 신신 데리고 병원에 가서 자세히 검사받아 봐야 해.” 남편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닫자 내가 생각했던 찰과상 정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시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어머니 댁에 도착하자 두 눈을 꼭 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신신이 보였다. 신신은 계속 울면서 외쳤다. “머리 아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아이를 본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신신, 머리 어디가 아파? 엄마한테 말해봐. 엄마가 봐 줄게.” 아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손으로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여기가 너무 아파.” 신신이 가리킨 방향을 만져보니 뒤통수, 그러니까 소뇌 부분이 컵 주둥아리만큼 파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말랑했다. 문득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넘어질 때 머리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특히 뒤통수. 넘어져서 뒤통수를 다치면 운이 좋아도 뇌진탕이나 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되거든.” 원체 겁이 많던 나는 울고 있는 아들을 보자 죽음이 점점 나를 옥죄어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잠시 후, 아들이 두 손을 꽉 쥐는 게 보였다. 난 얼른 손을 풀어주었지만, 잠시 후 아들은 또 손을 꽉 쥐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들이 이렇게 죽게 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주재하시니 아들의 목숨 또한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는가?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믿음을 얻게 되었고, 세상 만물의 모든 사람과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아들이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아들의 목숨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불안했던 마음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통해 서서히 진정됐다. 곧이어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받아 안고, 바닥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품에 안긴 아이를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지금 아이가 머리를 다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어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도록 지켜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더니 말했다. “엄마, 머리 안 아파.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아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과 부족한 모습을 헤아려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난 확실히 많이 나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을 보게 된 것이다! 병원으로 향하던 길에서 운전을 해주시는 송씨 아저씨는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면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해주셨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신이 구토나 기절, 혼미상태에 빠지거든 동네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해. 큰 병원이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뇌 외상 분야에서도 많은 임상경험이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저씨의 말을 듣자, 평온을 찾았던 나는 다시 긴장됐다. 품 안에 안겨 깊은 잠이 든 듯한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신신이 정말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난 어떻게 살지?’ 이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났으며 두 손이 계속 떨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세상만사가 당신 손에 있습니다! 제 아들의 목숨도 당신께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살펴주소서.” 몇 번이나 기도를 드리고서야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 7시를 넘겨서야 우리는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 품에 안긴 아들은 안색이 창백하고, 혈색이 하나도 없었으며,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입에선 계속 음식을 토해냈다. 신신의 머리는 어머니의 걸음걸이에 따라 흔들렸다. 난 그 옆에서 계속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신신, 일어나. 엄마 말 들려?” 하지만 내가 부르는 소리만으로는 아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신신은 완전히 기절한 상태였고,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죽음이 아들에게 점점 다가오는 듯했고, 지금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들이 평소 내게 애교부리고, 웃고, 장난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송씨 아저씨가 했던 말과 아버지가 당부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몰려왔고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거의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다. “신신이 구토해요! 어서 의사한테 가보세요! 전 못 걷겠으니 상관 마시고요.” 그렇게 난 비틀거리며 문에 부딪혔는데, 비상구였다. 그 안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난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과 함께한 7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어쩌면 오늘 밤 아들과 영영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듯한 고통이 들었고, 숨을 쉴 수조차 없어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나약해 졌을 때 나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죽음의 문턱에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걸을 힘조차도 없어요.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주시어 강해진 제 영혼이 공포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바로 깨달음을 주셨고 나를 일깨워 주셨다. 하나님께선 지고지상의 권세를 갖고 계시며, 사람의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신신을 살리고자 하시면 신신은 살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원망을 품어 사탄의 계략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사탄의 시험에 빠지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한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나약함과 보잘것없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에 믿음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빛을 내려주시어 제가 진리로 살고 사탄의 농간과 피해, 구속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부디 제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시어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아 기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홀로 고통을 삼키며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다. 그리고 욥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욥은 하나님의 시련과 사탄의 시험에 빠져 하루 만에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자식들도 죽었지만,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결국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다시 내 상황을 되돌아봤다. 지금 내가 직면한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물론 나의 믿음과 순종을 욥이나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거나 원망하고 오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아들을 낳은 것은 나지만,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아들의 목숨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사하신 것이었다. 평소 아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건강할 때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난 하나님께 대적하고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릴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거나 경외하지 않았으며 조물주의 섭리에는 더더욱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피조물이 갖추어야 할 이성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불안하지 않았으며 마음도 안정을 찾고 기운도 되찾았다.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건 아들이 죽건 살건 전 용감하게 맞서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겠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급히 갔을 때 신신은 응급진료를 보고 뇌 CT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한 간호사를 따라 우리는 9층에 있는 신경외과 전문 치료실로 향했다. 긴장감 넘치는 응급 치료 끝에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아들 얼굴에 떠오른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아들은 내게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 너무 어두워요. 방이 너무 어두워요. 불 좀 켜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난 아들 침대 앞에 밝게 켜져 있는 불빛을 보며 아들의 두 눈이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으며 위로해주었다. “신신, 걱정하지 마. 엄마가 있으니까 다 괜찮을 거야.”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고, 지도해주시어 이번에 아들의 실명이라는 소식 앞에서도 나는 처음처럼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덤덤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신신의 주치의와 남편이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남편이 의사에게 펜을 받아 서류에 사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계속 울고 있어서 나는 아들 곁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 아들은 계속해서 잠에서 깨어 울며불며 몸에 달린 의료기기를 다 떼어냈다. 어떤 때는 힘없이 “머리가 너무 아파.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갈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아들을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난 생각했다. 목숨은 정말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구나.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이 바로 앞에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오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절대로 버틸 수 없었을 거야. 직접 체험하면서 나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떠올랐고 난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잠에서 깬 아들이 앞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8시 정도가 되었을 때 회진을 온 주치의가 말했다. “늦지 않게 병원에 와서 다행이에요. 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몇 가지 치료만 받으면서 지켜봅시다.” 주치의가 떠난 후에야 남편은 어제 내게 속이고 의사가 준 서류에 사인한 게 수술 동의서였음을 말해주었다. 만약 어제저녁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아들은 수술을 받았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어제 신신이 토했을 때 우리가 신신을 CT실로 데려갔는데, 침대에 누운 신신은 혈색이 하나도 없고 창백한 모습이었어. 꼭 죽은 사람처럼 말이야. 신신 아빠도 밖으로 나와서 놀라서는 신신이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했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바로 조치를 취하셨고 신신이 반응하자 9층으로 옮긴 거야…” 남편과 어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우리는 응급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120구급차를 제때 부르지 못했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위험 속에서 살아 돌아왔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도 수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신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권세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난 몸소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이 얼마나 비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생명의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저녁 시체 같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중간에 깨어났지만 앞을 볼 수 없었고, 고통 속에서 밤새 울부짖었다. 아침이 밝자 두 눈은 기적처럼 시력을 되찾았고, 위험한 고비도 넘기게 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기적이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것이다! 이튿날 점심, 아들은 약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치료도 받았다. 이 광경을 본 같은 병실 사람들이 놀라서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처음 왔을 땐 굉장히 심각해 보였는데 지금은 또 아무 일 없었던 사람 같다니. 정말 운이 좋으세요.” 나는 웃으면서 “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셔서 그런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녁 예닐곱시가 되었을 때 한호라는 9살 남자아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한호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그만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겉에서 보기엔 출혈이 없었지만, 주치의는 검사 후 이렇게 말했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두개의 내출혈이 있어요.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6시간이 지난 후 한호는 수술실에서 나왔다. 한호는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온몸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잔뜩 꼽고 있었다. 저녁엔 기계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호흡했고, 참혹한 광경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며칠 뒤 6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25세 청년이 병원에 왔다. 치료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청년의 엄마는 아들이 흘린 신발 한 짝을 품에 안은 채 가슴 아프게 울었다. 그리고 옆 병실에는 18세 된 예쁜 아가씨가 실수로 계단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어 매일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으며 링거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아빠는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매일 딸 곁에서 딸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직접 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갖 악령들은 땅에서 시시각각 쉴 곳을 찾고 있고, 시시각각 삼킬 사람의 시체를 찾고 있다. 내 백성들아! 반드시 나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 한다. 절대 방탕하지 말라! 절대 망령되이 행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신 것이 바로 우리가 있는 이곳, 내가 직접 목격한 병원의 다양한 사람들이 사탄의 해침과 병마의 고통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아들이 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은 잊어버린 채 나는 공포와 나약한 모습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믿음이 없다는 것과 하나님의 지고지상한 권세에 진정한 경험과 체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아들의 사고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임을 알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권세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일 후, 아들은 많이 회복되어 퇴원했다.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떠올리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들이 넘어져 머리를 다쳤을 때 나는 고통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시어 나의 영혼이 강해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가장 어둡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밤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지켜주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남은 생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하나님은 저의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악에서 몸부림치며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마귀에게 짓밟혀 죄의 낙을 누리면서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매번 찬송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을 부를 때마다 저의 가슴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로 벅찼습니다. 저의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년 전, 저의 가정에 적색 신호등이 켜져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당시, 남편이 사업이 순조롭지 않아 괜히 저에게 자주 화를 내다 보니 저는 마음이 답답하여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한 남자가 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열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거절하고 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남자 동료로부터 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홧김에 저는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날 뒤로 저희들은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보며 마음속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영원히 함께 하진 못해도 사랑을 해본 것만으로 만족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저의 이런 행동이 불장난이어서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딸도 있고 남편도 있어서 감당하지 못할 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동상이몽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게 되었고 마음은 깊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하루하루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보냈는데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 남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가 이렇게 후회막급한 짓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관음당에 보살을 자주 찾아갔습니다.(다른 사람한테서 그 보살이 아주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살에게 저를 이런 악연에서 벗어나 원래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제 뜻을 따르지 않았고 헤어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고통스러워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마음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르고 추하여 더 이상 이전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선생님에게는 훌륭한 학생, 부모님에게는 착한 딸, 남편에게는 현모양처가 아니었습니다. 마침 그때, 어머니에게서 동생의 결혼식을 월말에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내심 ‘잘됐어! 고향에 가서 마음을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고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저에게 임하여 이번 귀향길이 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저를 죄악의 벼랑 끝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빛 가운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저는 제가 그렇게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던 원인이 바로 자신이 사탄 본성에 결박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성육신에 의하여 사함받은 것이지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능히 사람이 범죄치 않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역주: 부패, 타락) 성품에서 살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하여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발전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사람의 성품이 변화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점차 변화되는 데에 이르게 하고 빛의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며, 사람이 하는 범사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완전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데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이 완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알고 보니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은 모두 죄를 범하는 본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변화시켜 빛 속에서 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송 부르고 진리를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저의 마음을 지켜주고 안정시켜 주어 사악한 정욕을 끊어 버리고 원래의 조용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에게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은 더욱더 욕심이 그지없다.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번에 그것이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더욱더 자기의 육체를 사랑할 것이다.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이 더 커지고 … 사람의 육체는 뱀과 같은데, 본질이 바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완전히 목적을 달성할 때는 곧 네가 목숨을 상실할 때이다.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것 안에 언제나 사치한 욕망이 있어 늘 자기를 위하려 하며 … 네가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면 최후에 그것이 너를 삼켜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점차 육체의 본질을 알게 되었고 육체의 사악한 정욕을 만족시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는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사탄의 괴롭힘과 우롱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살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찬송을 더 자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지중에 저의 마음에 그 사람의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평안과 기쁨, 자유와 해방이 가득하여 예전보다 더 충실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세 식구는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딸도 사랑스럽고 남편도 저를 자상하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저는 마침내 벗어났습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저에게는 늘 하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키 크는 것이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저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작았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과 매번 고무줄 놀이를 하면 높은 단계에서 무척 난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키가 빨리 크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학창 시절, 친구들은 연극에 뽑혀서 공연을 하는데 저는 키가 작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또 괴롭기도 했습니다. 수년간의 학창시절에 자리 배치를 하거나 혹은 조회 때 줄을 서면 저는 항상 변함없는 앞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몹시 고민했습니다. ‘나는 언제 키가 커서 뒤쪽에 설 수 있을까? 그러면 앞줄에서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특히, 나이는 점점 먹어 가는데 키는 크지 않으니 저는 속앓이를 했고, 또 “부모님은 나를 왜 이렇게 작게 낳으셨지”라며 원망도 했습니다. 저는 키 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생각했습니다. 운동하면 키가 큰다는 말을 듣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그대로였습니다. 또 우유를 많이 마시면 키가 자란다고 해서 고칼슘과 고철분 우유를 몇 년 동안 마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키가 크기는커녕 살만 쪘습니다…… 직장에 들어간 후, 동료들을 보니 몸매가 좋아 예쁘고 몸에 맞는 옷을 사는데 저는 작은 키 때문에 옷을 사는 것도 제 맘대로 되지 않으니 키 크고 싶은 욕망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래서 취직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두 달치 월급으로 키높이 구두 깔창 30개를 구입한 것입니다. 1년 동안 하루에 1개씩 바꿔가며 신었는데 그해는 정말 고통스러운 한해였습니다. 중국 남쪽의 여름은 빨리 오는데 저는 더위에 약합니다. 그러나 깔창을 깔아야 하니 샌들을 못 신고 삼복 더위에도 구두를 신었는데, 1년 후 키를 재봤더니 조금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키 크는 비법이 어디 있나 시시각각 늘 관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키 크는 데에 효능이 좋다는 약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바로 몇 개월 치를 구입했는데 얼마 안 돼 또 한번 실망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적령기 때는 일찍 결혼하면 키가 큰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당시에 마음이 흔들려 차라리 아무나 만나 시집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생각으로만 그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희망을 품었다가 실망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썼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효과는 오히려 아주 미비했습니다. 저는 너무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내 키는 어쩜 이렇게 크지 않는 걸까?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혹시 운명일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선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다.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를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기 때문에 운명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늘 대항하는 정서가 있고 늘 거역하는 태도가 있으며 또한 늘 하나님의 권세에서 벗어나려 하고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 하고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나려 하며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자기의 운명을 바꾸려고 망상한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곳곳마다 난관에 부닥친다. 이런 영혼 깊은 곳에서의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런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고 동시에 또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 헛되이 소모시키고 있다. 사람의 이 고통은 어떻게 초래된 것인가? 하나님의 주재가 가져다준 것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쁘기 때문인가? 아주 뚜렷한바, 이 양자는 다 아니다. 결국 모두 사람이 걸은 길 때문에 초래된 것이고 사람이 택한 생존 방식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아마 일부분 사람들은 아직 이런 것을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네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너에게 있어서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고 너무나 큰 보호임을 참으로 인식하게 될 때 너는 이런 고통이 점차 경감되는 것을 느낄 것이고 너의 전인도 점차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해방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마침내 막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조물주께서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제 노력으로 신체 조건을 바꾸려는 망상을 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영혼 깊은 곳에서의 몸부림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것을 모를 때 사람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조물주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사람의 운이 나쁘기 때문도 아니며, 바로 제 자신이 택한 생존 방식과 추구한 목표가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새, 어류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나무, 화초와 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고 여섯째 날에 만든 가축, 곤충, 야수를 포함해 하나님이 보기에 다 좋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중에 이런 일이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완전무결함에 도달하였고 하나님이 이르려는 표준에 도달하였다. 조물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하고 있다. 그가 창조하려는 것이 한 가지씩 나타났는데, 매 한 가지의 나타남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의 체현이자 역시 그의 권세가 가져온 결정체이다. 이런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게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조물주의 공급에 감사를 드리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흑암하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그의 안중에 모두 좋고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만물은 그것만의 존재할 가치와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몇십 년을 돌아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고 고민 속에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본성이 오만해 늘 남보다 좀 뛰어나고 싶었지만, 키가 작은 탓에 제 자신에 대해 항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그나마 겸손할 수 있었고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제 몸집은 작지만 하나님은 똑같이 저를 이끌어 생명을 공급해주시고 또 하나님 앞으로 오게 해 그분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저는 조물주의 공의와 사랑스러움을 더욱 느끼게 되어 더 이상 마음의 고통을 받거나 몸부림치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오직 조물주의 안배에 순응하고 또 인생의 목표와 생존의 의의를 다시 찾고 조물주의 뜻을 알아야만 고통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저를 고통 가운데서 걸어 나올 수 있게 해주시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과 기적 - 침윤성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겨우 30대인 그녀는 침윤성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 그녀는 어떻게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회복의 기적을 보았을까요?

누가 ‘고부갈등 ’ 을 해결할 수 있는가?

"집집마다 고충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부갈등'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로,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어릴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다...

시험 보기 전에 어떻게 긴장을 풀어야 할까?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바로 2012년에 치렀던 고등학교 입시 시험이었습니다. 온 가족의 기대 속에서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예상밖으로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저는 크게 낙심했고 그 후 오랫동안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이후 낙심한 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온종일 고통 속에 사는 제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겠느냐? 너희가 이 몇십 년 살아오면서 소원대로 이루어진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 발생한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일이 얼마나 되느냐?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자신도 모르게 시기를 기다리고 천의(天意)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느냐? 또한 사람을 막막하게 하고 속수무책이 되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되느냐? 그 어떤 사람이든 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기대로 가득한데, 자신의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고, 먹고 입을 것이 근심 없고, 벼락출세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자신이 일생 동안 가난하고 비천하고 불우하고 재앙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예상하고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의 결정에 달렸고 제가 살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모두 예측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시에 떨어진 이 일이 나쁜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는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자 간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시며 도와주고 계신다는 걸 느꼈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간호대학을 마쳤고 저는 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격증은 간호학을 전공한 제게 있어서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간호사 업계에 종사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5년의 학업 역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제 학비를 대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께 너무 죄송할 것 같았습니다. 제 미래와 자존심, 그리고 부모님의 애쓰신 마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큰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긴장감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매일 시험 결과를 끊임없이 상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되어 하얀 간호사복을 입으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상상을 하다가도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가족과 친구들이 날 어떻게 볼까?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전날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어서 교제하려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러는 건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결정과 배정을 따르는 것밖에 없단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주시며 제게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사람이 어디에 갈 수 있고 어디에 갈 수 없는지, 매일 어디에서 생활하고 어느 해에 어디에서 생활할지, 어느 해에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언제가 전환점이 될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맞아, 내 운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놓으셨어. 만약 간호사가 되지 않을 운명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도 소용 없는 거야. 난 피조물에 불과하니까 조물주의 결정과 배정에 따라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교제을 해주셔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운명이 좋을지 나쁠 지는 이번 시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은 창조주의 배정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간호사 시험이 곧 다가옵니다. 시험에 합격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인도해 주세요.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저의 입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의 어려운 점과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어떤 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거나 어떻게 인도해 달라고 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이 닥칠 때 진심으로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진실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어떤 때는 사람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곧 응답을 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루지 못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가장 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든든한 저의 뒷심이 되어 주시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요? 평소에 저는 항상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쳐서야 긴장되어 기도하는 저의 모습에서 너무나 양심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를 했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간호사 시험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며 절대 잊지 말라고 제게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하지만 긴장된 마음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이 생길지 전 알 수 없습니다. 시험 문제가 어려울지, 제가 공부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네. 오늘따라 길에 신호등이 다 녹색불이구나” 저는 오는 내내 보게 된 녹색불이 하나님의 인도이자 배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보러 가는 이 길이 제가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땐 저는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시험에 합결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운명을 정해놓았으므로 제가 해야 할 것은 그저 하나님의배치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마음이 안정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는 방법뿐입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리는 순간에도 전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기도를 할수록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는 하나님께 제가 당황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내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친구들은 모두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에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었습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가끔은 불안을 느끼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전 하나님께 기도했고 시험의 합격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안배임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면 마음이 더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금세 2개월이 지났고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점수를 조회하기 전에 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랐고, 순종을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성적을 조회하고 용기를 내어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과목의 점수는 각각 351점과 331점이었고 커트라인보다 51점과 31점이 높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합격했습니다! 제가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시험 보기 전의 긴장을 해소하려면 우선 목표를 너무 높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 눈앞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제 곁에서 모든 걸 인도해 주셔서 제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주시며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긴장 없이 순조롭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웹소설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오늘날 웹소설은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출근할 때도, 차에 탔을 때도, 심지어 신호등의 녹색불을 기다릴 때도 소설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한 권 그리고 한 권을 읽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상 속에 사는 건 아편을 피우는 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웹소설에 깊이 빠졌던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5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는 한 가게에서 숙제를 마치고 무의식적으로 점원이 테이블위에 놓은 두꺼운 책 2권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몇 장을 넘겨보니 그 책들은 바로 무협 소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시간을 때울 때 소설을 보았습니다. 산 중에 사는 몇몇 무림고수가 의롭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고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이같이 ‘멋진’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방학 내내 소설에 빠져 지냈고 ‘내가 이 고수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자 저는 속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저의 유일한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세상만이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해주었습니다.나는 조금씩 소설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소설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또 소설을 보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전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어쩔 수 없이 며칠은 ‘얌전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이 계속 불안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결국 전 참지 못하고 다시 소설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전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소설을 보았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소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소설을 한 편 더 보는 게 낫지’. 전 배가 고파도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정신이 온통 몽롱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져 버려서 길을 걸을 때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잠시라도 소설을 안 보면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워져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주신 급식비마저 웹소설을 보는 데 썼습니다. 낮에 학교에 있을 때는 배고픈 것을 참고 저녁에 집에 와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위장도 상했습니다. 심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널려있는 이불에 실수로 불이 붙게 했습니다. 동생이 절 불렀지만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불을 끄고 절 혼내실 때야 밖에 불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소설에 빠진 저를 여러 번 타일렀지만 전 부모님의 말씀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은 제 책가방을 검사해 소설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갑작스레 저의 방에 들어와 제가 몰래 소설을 보고 있지는 않나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찢거나 대여 카드를 태웠고, 아니면 책을 그대로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쓰셨지만 제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전 여전히 소설의 세상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제가 소설 속 캐릭터가 된 환상을 가졌습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소설 줄거리만 생각했고 꿈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져서 잠을 깬 후에도 눈을 감고 꿈 속의 줄거리를 되새겼습니다. 전 평생 이 같은 세상 속에 살고만 싶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차에 치여 죽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종일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제 정신은 온통 혼미해졌고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소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활발했던 제 성격도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지어 가족과의 대화도 꺼려졌습니다. 정상이던 시력도 근시가 매우 심해졌고 성적은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한 저는 취직을 한 후에는 소설에 더욱 빠져 지냈습니다. 가끔은 밤새 소설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오면 가끔은 소설이 지겨워져서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회했습니다. 소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기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고통을 받던 저는 소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어머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너무 졸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신나지 않아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게 예배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예배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볼 때는 머릿속에 여전히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2015년,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온 후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제가 소설에 심취한 건 사실 인터넷 게임과 같이 모두 사악한 풍조에 속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고 소설 속 세상에 완전히 심취했습니다. 착하고 말을 잘 듣던 저는 괴팍하고 유별나게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항상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소설이 아닌 것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 육체를 배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인터넷 게임이나 소설 속에 사는 걸 싫어하십니다. 저희가 사탄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저 역시 육체를 배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 절 웹소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전 사악한 풍조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안 보기 시작한 첫째 날, 저는 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 날, 전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소설 줄거리뿐이었고 좌불안석으로 있으면서 휴대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렸던 말씀을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나님도 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이렇게 전 결국 소설을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마치 뱀과 같아 본질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목적을 전부 달성할 때는 네가 곧 목숨을 잃을 때이다.』 그러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소설만 본다면 사탄에게 야금야금 삼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마음속으로 육체를 배반하고 소설을 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우선 하나님에게 다짐 하지 말아야겠어. 오늘 밤에 다짐을 해버리고 소설을 안 보면 앞으로는 다신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오늘 밤까지만 보고 내일 다시 다짐해야지!’ 이렇게 전 다시 휴대폰을 열고 밤새도록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을 보는과정에 저의 마음속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걸 알았고 사탄에게 속히고 참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전 자책을 하며 고통 속에서 밤새 소설을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늘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습니다. 저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제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전 재빨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 비록 육체를 배반할 마음은 있었지만 진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억제하다 보니 결심을 행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울 때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알았습니다. 소설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독약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끊을 수가 없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의 생활을 잃게 만듭니다. 이 모든 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한 계략인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항상 온갖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함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희는 진리도 없고 분별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항상 속임을 당하고 사탄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참해를 당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그 결과를 알게 되자 전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절 구원해주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설로 고통받던 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야 사탄이 횡행하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전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또 본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달갑게 받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또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다짐을 생각하니 소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휴대폰 화면만 계속 만지작댔습니다.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육체를 배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설의 줄거리도 조금씩 희미해졌고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전 소설을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점점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날마다 알차게 생활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야만 시험과 함정으로 가득한 사악한 세계에서 저 자신을 지키고 사탄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하나님의 집에서 본분을 하며 매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희는 마음의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합니다. 기쁠 때는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며 힘든 일 앞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교통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저는 웹소설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