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자녀교육, 나의 욕심을 먼저 내려놓는다

2018년 07월 17일

어린 시절 집안이 궁핍했던 동신은 학비를 낼 돈조차 없어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신은 성인이 된 후, 시(市)의 방직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매일 바쁘고 고되게 일해도 한달에 겨우 32위엔밖에 받지 못해서, 근근히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빈털터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들만큼은 내 힘으로 꼭 대학에 입학시키고 말거야. 아들이 남들에게 출발선에서부터 뒤지게 할 수는 없어. 안 그러면 평생을 출세도 못 해보고, 찌질하게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동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건재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그러면서 생활이 점점 넉넉해졌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동신은 아들의 학습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에게 영어, 작문, 수학 올림피아드 등등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들의 숙제를 검사하며 재촉하였고,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그를 데리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동신은 아들을 사립학교에 입학시켰으며,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아들은 시험 때마다 늘 반에서 3등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동신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으며,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이보다 더 힘들다 하여도 역시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 우물쭈물거리며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사립학교에 다니기 싫어요. 중3 과정이 너무 타이트하고, 학교의 요구가 너무 엄격해서 못 견디겠어요. 나 일반 중학교로 전학가고 싶어요.”

동신은 매우 의아했습니다. “내가 매일 죽도록 힘들게 돈 버는 게, 다 네가 명문고에 가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나중에 네가 사회에서 발붙일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엄마가 평생 별 능력없이 살아서, 너를 엄마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건데, 넌 엄마의 이런 깊은 생각을 왜 몰라주는 거야?” 그녀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눌러 참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동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들을 한 대 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창문 쪽으로 다가 가더니, 만약 더 이상 자기에게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창 밖으로 뛰어내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동신은 분통이 터져 말했습니다. “내 모든 희망을 너에게 걸었는데, 네가 뛰어내려서 죽으면, 내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차라리 나도 같이 죽고 다 끝내자!”

그날 엄마와 아들 모두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동신은 아들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몇 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릴 것이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앞날에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간절히 애원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아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신은 아들과 타협하고 양보하여, 그를 일반 중학교로 전학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동신의 아들이 아침 수업시간에도 졸 뿐만 아니라 숙제 내 준 것도 해오지 않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동신은 마음이 다급해져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들은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까? 계속 이렇게 공부한다면 명문 고등학교에 어떻게 합격할 수 있겠어?’ 이런 저런 고심 끝에, 동신은 학비가 비싼 기숙사가 있는 사립학교에 아들을 강제로 전학시켜버렸습니다.

그러나 동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아들의 학급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은 동신에게, 저녁 자습시간에 출석 점검할 때 동신의 아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기숙식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몹시 당황했었었고, 결국 모든 수업 담당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교내와 교외까지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PC방에 있던 동신의 아들을 찾아냈으며, 그가 담을 넘어 도망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동신은 피가 치솟고 현기증이 나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고생한 것은 다 아들이 앞으로 잘 되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들은 왜 계속 말을 안 듣고, 그녀를 절망하게 하는지, 동신은 자신의 운명이 왜 이렇게 고달플까라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동신의 어머니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하나님 말씀 책 한권을 주면서 꼭 이 책을 잘 읽어보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정하심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어머니의 교통을 들은 동신은, 원래 한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직업을 갖게 되며, 그 사람의 운명이 어떠할지, 하나님이 오래전에 이미 정해놓으셨기에, 사람이 제 아무리 몸부림치고 노력하여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동신은 자신의 출신이 안 좋아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자신이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늘 원망하였기에, 운명에 맞서 싸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전가하였습니다. 동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들을 강요하여 각종 학원에 보냈고, 아들로 하여금 학업 스트레스가 큰 나머지 세상을 비관하고 혐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러한 일념만으로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동신의 이러한 방법은 아들의 마음에 이미 크나 큰 상처를 남겼고, 심지어 아들이 죽으려고까지 하였으며, 그들 모자관계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동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운명에 맞서려고 하였고, 아들에게 이미 심각한 상처를 주었으며, 자신도 여러 해 동안 날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운명과 맞서서도 안되고,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자신의 희망대로 아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자신만의 흥미와 취미가 있고, 마땅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하며, 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을 되돌려주고, 그가 배우고 생활하는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던 해, 시험 점수를 352점밖에 받지 못한 아들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이번에 시험을 망쳤어요. 엄마 체면을 못 세워줘서 미안해요. 엄마가 친척을 찾아가서 연줄도 대보고, 교장 선생님에게 잘 좀 말씀드리고 로비도 좀 해서, 명문고에 뒷문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만약 명문고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게요.” 아들의 말을 듣고 동신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비록 아들의 장래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만약 아들이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그의 장래 직업과 앞길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에, 다시 한번 힘껏 아들을 도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신이 처음 아들에게 가졌던 희망도 이루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동신은 또다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몰라, 그녀는 곧바로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생각과 뜻을 살펴주시옵소서. 아들의 학교 진학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아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하오니,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동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자녀교육,모자관계,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동신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수천 년 동안 타락된 현재의 사람들은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살며, “모든 것이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이러한 말들이 이미 수많은 사람들 마음속의 명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공부를 통해 운명을 바꾸려고 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탄에 유혹당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며, 너무 큰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고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서, 결국은 철저하게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잡아먹히게 될 수 밖에 없어.’ 동신은 자신이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아들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아들이 이로 인해 이미 트라우마가 생겼고, 아들은 시험을 망치기만 하면 꾸중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신은 자기가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훈계하고 독촉한 것은 다 그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했던 사랑의 표현이라고 줄곧 생각했었습니다. 동신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란 말입니까? 이것은 분명 아들을 철저하게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는 짓이었습니다. 동신은 다시는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신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학교 들어가는 문제는 순리에 맡기자. 어떤 학교에 합격하든 거기엔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네가 어떤 학교를 다니든 다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운명으로 정해주신 거야. 예전에 내가 그렇게 너에게 요구했었던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아. 내가 너에게 공부를 강요했던 건 다 나의 체면과 명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네 생각은 전혀 고려해주지 못했어. 내가 정말 사탄의 철학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이성적이지 못했어.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너에게 요구하지 않을게.” 아들은 엄마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미소 속에서 아들의 홀가분해진 마음과 자유, 그리고 오랜만의 즐거움을 보았습니다.

개학 때, 동신은 아들이 일반학교에 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 후 동신은 다시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그를 돕고 인도하였습니다. 아들은 날이 갈수록 동신과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모자간의 관계도 날이 갈수록 가까워져서 허심탄회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아들은 한 민영회사에 채용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시종일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루는 동신이 뜻밖에 아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엄마, 내가 예전에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엄마가 어떤 심정일지도 신경쓰지 못했어요, 지금 어른이 되고 보니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무엇인지 많이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 이제는 더 이상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문자 메시지를 본 동신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이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예전에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아들을 교육할 때는, 서로간의 벽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동신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 사탄 철학의 실질을 꿰뚫어 보고, 자신이 변화되기 원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목격하고, 모자간의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오랜만에 집안에 기쁨의 웃음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지금 이렇게 철이 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이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고, 다시는 그런 그릇된 주장과 잘못된 논리에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은, 완전히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에게 임하여, 우리 모자가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충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합니다

2012년 7월 21일 밤, 우리가 사는 지역에 보기 드문 특대 수재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저의 진실한 경력과 본 것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그날 저와 남편은 언니네 사료 공장을 지키게 되었는데 밤에 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우리 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45분에 형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수지 물을 방류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는 몽땅 잠기게 되니 빨리 도망가요!” 그때 저는 멍해져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기만 할 뿐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전동자전거, mp3와 메모리카드를 챙기기에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사료실에 가서 전동자전거를 끌고 나왔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하나님 말씀 책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아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앞까지 타고 왔을 때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아 저는 큰물에 떠내려온 아스팔트 조각에 부딪쳐 전동자전거와 함께 물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물에 떠내려가도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만약 살아남게 하신다면 이후부터 본분을 잘 하겠습니다.’ 그때 저의 한쪽 신발은 이미 물에 떠내려갔고, 저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 근처에 이르러 보니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주변이 철망으로 둘러싸여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갈 수가 없으니 다시 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른 한쪽 신발마저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물은 이미 저의 허벅지까지 차올랐습니다. 저는 되돌아 가려고 세 번째 시도를 했고 속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른 돼지농장에서 한집 식구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들과 같이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때 저의 남편도 거기에 도착하여 도구로 철망을 끊고 있었습니다. 저는 맨 먼저 맨발로 철망을 넘어 고속도로에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고속도로 남쪽은 물굽이에 둘러싸인 지역인데 북쪽으로 물이 흘렀고 북쪽은 큰길인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우리를 중간에 끼워넣었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고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강철공장이 있었는데 강철공장 담장 밖으로부터 2m 남짓한 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우리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담장 안의 물은 1m 정도로 깊어 공장의 채색 강철 기와집도 둥둥 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한 탓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만약 물이 북쪽으로부터 덮쳐 왔다면 그날 새벽 2시쯤에 우리는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은 남쪽 담벽 모퉁이를 뚫고 내려가 아래에 위치한 돼지농장이 물에 잠긴 것입니다. 이때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을 보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앞에서는 재난도 비켜 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터널에서 3시간 남짓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가 하나도 젖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전동자전거도 물에 넘어지고 전동자전거 충전기도 젖고 다른 물건도 다 젖었지만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만은 전혀 손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료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본 상황은 더욱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료공장 마당에는 간밤에 내렸던 빗물만 고여있었을 뿐 물이 얼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앞쪽 옥수수 밭도 잠기고 뒷쪽 옥수수 밭도 더 깊이 잠겼지만 사료공장에는 물이 얼마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이번 수재를 통해 저의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돈이 만능이라고 하지만 재난이 임할 때는 돈이 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저는 더 이상 돈을 추구하지 않고 사료공장을 그만두고 복음 사역에 뛰어들 것입니다. 저는 그날로 우리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올케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저의 경력을 듣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전에 저의 어머니와 올케는 줄곧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핍박해 왔고 제가 4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믿지도 않았었습니다. 이때 저는 더욱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전에는 저를 핍박했지만 지금은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복음을 전할 때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감히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경력을 통해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있는 힘껏 저의 경력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재난과 시련 속에서 제가 하나님의 구원과 가장 진실한 사랑을 보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012년 8월 11일 北京市 穩重

새벽녘 발코니의 작은 풀을 바라보며

새벽녘, 발코니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다 문득 고개를 숙였는데 발코니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잎사귀를 보았다. 집 발코니에는 시멘트로 덮여있었고, 주변은 두꺼운 플라스틱인 데다가 수분도 부족했을 터인데 어린 잎사귀가 자란걸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린 잎사귀를 바라보며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권세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감탄하게 됐다!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내 힘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통을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통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를 창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겨울에 주인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주인집 뒷마당은 매우 난잡했고 시들어 죽은 각종 잡초와 볼품없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앙상하여 모양새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복숭아나무 너무 못생겼네! 열매나 맺을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복숭아나무도 싹이 돋아나고 파릇파릇해지더니 후에는 기름진 잎사귀로 가득하여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복숭아나무는 꽃이 피고 서서히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보니 작고도 못난 것이 마치 벌레 먹은 듯했습니다. 쭈그렁복숭아를 보는 순간 저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복숭아나무야, 복숭아나무야. 네가 만약 싱싱한 복숭아를 맺지 못하면 너의 가치를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니?’ 복숭아나무에 대한 저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시선은 빨갛게 익은 복숭아에 끌렸습니다. 주렁주렁한 열매는 햇빛의 자양을 받아 어느새 그렇게 크고 빨갛게 열렸는지 전의 그 “쭈그렁이” 모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복숭아는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주위의 모든 것과 인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탐스러웠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어둡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어떤 때 사람이 한 가지 곤충을 보고 그 곤충이 아주 못생겼으면 “이 벌레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렇게 못생긴 벌레는 절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아니야.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난 것을 만드실 리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우매하다! 마땅히 “이 벌레는 아주 못생겼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 틀림없이 그것의 독특한 용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각종 생물들에게 다양한 생김새가 있게 하고 다양한 기능과 용도가 있게 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없다. 외형에서 내부 구조까지, 생활 습성에서 제각기 차지한 위치까지 모두 각기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당나귀는 당나귀의 생김새가 있고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말해 봐라, 어떤 것이 가장 잘생겼고 어떤 것이 가장 못생겼는가?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하고 어떤 것이 가장 존재할 필요가 없는가?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좋아하지만 코끼리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사자와 범의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서 가장 위풍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애완동물로 삼아 기를 수 있는가? 어쨌든 만물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즉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법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 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조물주의 본의에 대해 구하고 순종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이 진정 조물주의 권세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니 사람이 또 흠잡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모두 그것의 특유한 면이 있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를 창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숭아나무를 볼품없고 맺힌 열매도 못났다고 한 것은 저의 시야가 좁아서 겉면만 보고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는 만물은 모두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제가 못났다고 여겼던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못난 그대로이고 주변의 잡초도 여전히 우거져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였습니다. 즉 복숭아나무는 모양새가 “못났다” 해서 자신이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해서 주변의 잡초를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잡초도 “지위가 낮다” 하여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모두 이행하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여기든지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들이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겨났다. 순식간에, 저마다 형태가 서로 다른 작은 생명이 흙 속에서 작은 머리를 한들한들 내밀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한시도 참지 못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베풀어 준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들이 다 만물 중의 일원이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제각각의 생명을 바칠 것임을 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발함에 따라 땅 위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하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각 종류의 채소가 생기 넘치게 자라나 흙을 뚫고 올라오며 산천, 평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밀림이 울창하다…… 조금의 생기도 보이지 않던 벌거벗은 이 세계는 신속히 푸른 풀과 채소와 나무 등의 각종 식물에 덮여 푸른 빛깔이 차고 넘친다…… 공기 속에는 푸른 풀의 향기가 가득하고 흙의 향기가 풍기며 각종 식물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 모든 식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생명 역정을 시작하고 그것들 제각각의 생명의 운행 궤적을 충실히 지키기 시작하고 만물 중에서의 그것들 제각각의 배역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며, 모두 조물주의 끊임없는 공급과 자양을 얻을 것이고 또한 영원히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기 위해 이 대지의 곳곳에서 꿋꿋이 살아갈 것이며, 그것들은 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영원히 창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시초에 이 세계를 위해 식물을 창조하는 기묘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창조하는 그 순간부터 그것들에게 생명이 되풀이되는 궤적과 만물 중에서 맡아야 할 그것들 각자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조물주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이 법칙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전이되지 않았고 또한 사람의 애호에 따라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식물로써 그것들은 완강하게 곳곳에서 살고 자신의 존재로 조용하게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묵묵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이렇게 평범한 것 같지만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어느 누가 발견한 적이 있을까요? 이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저에게 사람됨의 도리를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지식이 있든 없든 재주가 있든 없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이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는 어떤 종류, 어떤 하나의 피조물이든지 모두 그것 의 특정된 사명이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조물주의 주재에 순응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피조물의 직책을 잘 이행하여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곧 있으면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다른 과목은 걱정이 없는데, 제가 가장 취약한 유기화학 과목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이 과목에 점수를 높일 수 있을까? 이 과목 시험을 망친다면 전체 성적이 하락 할 것이고, F학점을 받아 낙제하면 더 골치 아파질 텐데 마음이 초조해지자 제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열심히 공부했고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저의 기억력을 높여주시고, 이 모든 지식을 제가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또한,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는 항상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노는 것을 보면, ‘하루 종일 공부를 했으니 이제 나도 컴퓨터 게임을 좀 하면서 쉬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게임을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라도 더 본다면 하나님께서 기특하다고 해주시며 이 시험을 잘 칠 수 있게 도와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게임 시간까지 할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로 했습니다. 예배 갈 시간이 되었을 때 다른 학생들이 모두 복습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목이 본래 취약한데, 복습시간이 타 학생들보다 적다면 내 성적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예배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이 예배에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텐데, 그렇다면 시험을 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여기서 억지로 암기하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이런 생각에 주저 없이 복습을 포기하고 먼저 예배에 나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어느덧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이 과목에 들인 노력과 시간, 그리고 하나님과의 ‘호흡’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나님께선 분명 이번 시험을 잘 칠 수 있도록 축복을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험 보는 그 날 찬양을 흥얼거리며 강의실에 들어갔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꼭 이번 시험을 잘 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간이 일분 일초가 지나갔습니다. 앞장의 문제는 비교적 잘 넘어갔는데, 마지막 문제에서 막혔습니다. 복습할 때 분명 본 문제인데, 어떻게 푸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시험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이 초조해지고 심장은 쿵쿵댑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아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구원요청을 했습니다. 기도 후 마음이 평온해지며 곧 실타래가 풀리듯 답안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기뻐서 하나님께 계속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주가 지나 성적이 공개되었습니다. 반 친구들은 쉴새 없이 인터넷으로 성적을 조회했습니다. 친구들의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듣게 되자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보며 예배도 빠지지 않았기에 분명 좋은 성적을 얻게 해주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문제는 분명 하나님이 도와주셨으니 점수가 아무리 낮더라도 얼마나 낮게 나오겠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성적을 조회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성적은 73점이었습니다. 멍하게 있다가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73점이라니? 어쩜 이렇게 낮을 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점수가 낮다니, 설마 교수님께서 채점에 실수했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동안 하나님을 얼마나 가까이했는데, 점수가 이렇게 낮다니? 하나님은 어째서 내게 축복해 주지 않은 걸까?’ 매우 큰 상실감이 찾아왔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온 후 매일 게임을 즐겨 하던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75점 맞았어. 복습도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이거 너무 쉬운걸? 사실 과락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 말을 들으니 저는 더욱더 억울해져 원망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쟤는 매일 복습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점수가 높을 수가 있지? 내 점수가 이렇게 낮은데 하나님은 왜 도와주시지 않은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로워졌고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그때 문득 예배에서 형제자매들이 교통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니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먼저 순응하고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을 잘 치지 못해 너무 괴롭습니다. 이번 일에서 당신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예배 때 이 일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통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주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늘 요구가 있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늘 관념이 있는데, 이것은 또 무슨 문제이냐? 사람의 본성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 나는 사람이 어떤 일에 부닥치든, 어떤 일을 대하든 늘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육체만 고려하며, 늘 자신을 위해 이유와 핑계를 찾고 진리는 전혀 없으며, 모두 자신의 육체를 위해 변호하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타산하며, 모두 하나님께 은혜를 요구하고 어떤 이득이든 다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많을까?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매우 탐욕스럽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성이 전혀 없음을 증명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것, 기도하든 교통하거나 설교하든, 어쨌든 사람의 추구, 사람의 생각, 사람이 동경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 뭔가 요구하고, 뭔가 토색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뭔가 얻어 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씀을 읽은 후 자매님은 “우리가 사탄에게 부패한 후 내면에는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스럽게 변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건 불순한 의도가 있고, 하나님께 많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원하기만 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말씀을 먹고 마시고, 기도와 예배하는 것 모두 하나님과의 거래입니다. 항상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꾸려고 하죠. 우리가 하는 행위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이번 시험을 잘 치지 못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거역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과의 교통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일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매일 기도하고 하나님께 다가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게임을 즐길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다른 친구들이 복습에 열중해 있을 때 저는 시간을 쪼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동을 했으나 실제로는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좋은 성적을 달라고 하기 위함이었고 진실한 경배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저의 목적이 올바르지 않아 매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매번 하나님의 말씀을 본 것도 사실은 주마간산 식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었으며, 예배도 항상 시간에 맞춰 참석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앉아있어도 마음속으로는 빨리 끝내고 복습하러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가식적인 행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축복의 조건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고 무리하게 요구만 했던 것입니다. 맨 마지막 문제를 풀었을 때 저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73점이라는 점수를 확인했을 때는 하나님께 따지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정말 일말의 양심과 이성도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저의 모든 행동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축복을 위한 하나님과의 거래였던 것입니다. 이를 깨닫자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빚을 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토색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은,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신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바뀔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이름은 당연히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화를 입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고 있으며,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의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며, 어느 각도에서 보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것은 욥이 한평생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다. 욥의 그런 모든 마음과 행위는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하나님 앞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여겼다. 하나님은 욥의 그런 인식을 소중히 여겼고, 욥에게 있게 된 그런 마음도 소중히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임하게 될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욥은 하나님에게 요구가 없었다. 욥이 자신에게 요구하여 행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순복하는 것이었다. 욥은 이것을 자신의 직책으로 여겼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욥의 경험에 큰 격려를 받고 고무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으며, 절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액의 자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 욥은 비록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이치를 따지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축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조건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또한 피조물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 하며 인간은 하나님과 이치를 따질 자격이 없고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칭송을 받아 마땅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욥에 비교하여 생각하자 더욱더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수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예배, 기도 이 모두가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관념에 따라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정확한 노선을 찾았습니다. 오직 기다림과 수용,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을 받아들이자 그 게임을 자주 하는 친구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동일 과목을 공부하여 이번에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 문제는 기존에 아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와 달리 저는 이 과목을 기존에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즉 기초가 탄탄하지 않았으므로 시험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더욱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도움 없이 마지막 문제를 틀렸다면 이 과목에서 과락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르고 되려 비이성적으로 하나님만 원망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우매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속 응어리가 모두 풀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직접 체험하고 또 형제자매님과의 교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거래하거나 하나님께 뭔가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진리추구, 순종만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는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값진 깨달음입니다. 이를 깨닫고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가득해졌습니다. 다시는 점수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시험장에 들어섰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시험점수가 몇 점인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상관없습니다. 전 기쁘게 받아드릴 것입니다. 평정심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기도 후 마음이 평안해졌고, 시험 중간중간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시험 종료 후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성적이 나왔고, 86점이란 점수를 얻었습니다. 시험이 저번보다 더 어려웠지만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지녀야 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과 그래야만 마음과 영혼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부모가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준 가장 좋은 선택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제공해주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의 학교 선택이 부모에겐 큰 짐이 되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아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명문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학교 측은 500명의 신입생만 받겠다고 말했지만, 응시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교문 앞에 빼곡히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며 ‘경쟁률이 엄청나네. 우리 아들은 이 학교에 오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교 측의 전화를 받지 못해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 측에서는 시험 성적과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희망의 끈을 놓았고 실망도 커져 아들이 이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XX 학교 가기 싫어요. 거긴 학교도 별로인 데다가 나쁜 애들도 많아요. 저는 XX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가 수업 질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요.” 아이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남편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는 데다가 대출받은 높은 집값에 두 아들의 교육비, 게다가 노인 세 명까지 부양해야 했다. 이미 등골이 휠 만큼 휘었는데 아들을 명문 학교에 보낼 만큼 쏟아부을 돈이 어딨겠나? 아들의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파져 오고, 막막해졌을 때 나는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기도드리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ㆍ사ㆍ물의 영향(직역: 훈도(薰陶)와 영향)을 받게 될지, 어떤 지식과 재능을 배우게 될지, 어떤 습관을 기르게 될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와 가족이 누구이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무엇일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주위의 인ㆍ사ㆍ물의 관계가 어떠하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ㆍ사ㆍ물이 형성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창조주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 배경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생활하게 되는 환경도 당연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나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계획에 달려 있고, 창조주의 정성스런 안배에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의 평생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어떤 학교에 가건, 거기서 나쁜 것을 배우건, 앞날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명문 학교라고 해서 모두 좋은 학생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만 보더라도 부모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학교에 보냈지만, 아이의 성적은 여전히 별로였다. 그에 반해 내 친구 딸은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고에 진학했다.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학교 문제로 인한 고민과 걱정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훌륭한 학생은 좋은 학교에서만 배출된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등 사탄 독소의지배를 받으며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내게 심어놓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논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명문 학교에 진학하려 힘쓰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었지만, 부모님과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망쳤다고 원망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예전에 그 친구는 한 회사의 유명한 강사였다. 나중에 친구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관련 부처와 세무서의 ‘능력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구속될뻔 했고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지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수 있다. 이때, 마음속의 고통이 점차 사라졌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어 아들이 창조주의 주재에 따르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바뀌었다. 더는 명문 학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나한테 “엄마, 우리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비록 아들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들의 운명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어떤 학교에 가는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담담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양환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