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비결

2017년 5월 9일 신앙 간증, 체험 간증0

어렸을 때, 저는 자주 어른들이 함께 모일 때 “사는 동안에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면 삶의 큰 행복이고, 억지를 부리는 이웃을 만나게 되면 팔자가 사납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말이 사실보다 과장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커서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는 이웃과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 위층에는 여교사가 살고 있었는데, 가정 형편도 넉넉하고 옷차림도 세련되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 이웃과 접촉하고 난 후에는 그가 다른 집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일이 없으면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오지랖 넓게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행동을 알고 나자 저는 갈수록 그가 미워 보였고 눈에 거슬렸습니다. 어느 날 저희 집의 침실 북쪽 천정에서 물이 새었습니다. 저는 대야 4개로 물을 받았는데 북쪽 벽이 푹 젖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집에 가 혹시 어디에서 물이 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두 번이나 그의 집에 갔지만 그는 얼굴을 붉히며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틀림없이 자신의 윗집에서 샜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마음속에 화가 발칵 나서 높은 소리로 그와 이치를 따졌습니다. “댁의 위층에서 물이 샌다면 먼저 댁에 물이 새야 하지 않나요? 물이 댁을 건너 뛰어 저희 집에서 샐 수 있단 말인가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자세를 취하며 저를 무시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입이 덜덜 떨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었습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전문가를 찾아 그의 집에 가서 원인을 알아보았는데, 그 집의 태양열 온수기 하수관이 터져서 물이 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얼굴이 굳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이미 십여 일 동안 물이 샜었는데 그는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저는 화가 치밀어 사람을 너무 깔본 것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의 빨래에서 물이 떨어져 제가 말리고 있던 옷이 다 젖게 되면 저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곤 했습니다. 그런 이웃과 지내야 하는 것에 화밖에 나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후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상 사람의 성정은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들과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단적이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문란하지 않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결되며,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 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와 같고 단순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땅에서의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제16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고, 사람과 지낼 때 간사함과 교만 방자함이 없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길 바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간증하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인솔 아래에서 살게 되고, 자유 해방을 얻어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뜻을 깨닫게 된 후 진리를 실행할 심지가 생겨 위층 사람을 증오하던 데에서 용서하려고 노력했으며, 그와 정상적으로 지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쌓인 원한을 풀자니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실행하자니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릴 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천 년 동안 패괴(역주: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된 중화 민족이 오늘날까지 존류하여 각종 바이러스가 부단히 커지고 있는데 마치 온역처럼 도처로 만연되고 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 몸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지를 충분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엄밀하게 봉쇄된 이런 바이러스의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람의 성격, 사람의 생활 습관, 사람의 품행, 사람의 모든 생활 속에서의 표현 및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황폐하기 그지없으며 나아가 사람의 지식, 사람의 문화까지 모두 하나님께 죽을 죄로 정죄받았다. 더군다나 사람이 가정 및 사회에서 배워 온 여러 가지 경험, 이런 것도 다 하나님의 안중에서 판결받았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먹은 바이러스가 너무나 많아 사람들이 모두 습관이 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깊이 패괴된 곳의 사람일수록 대인 관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암투를 벌이고 서로 모해하고 참살하는데, 마치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유령 도시와 같다. 이렇게 두렵고 불안한, 유령이 도처에서 횡행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전개하자면 그것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 길……(6)>에서 발췌) 하나님께서 밝혀주셔서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토록 화목하지 못한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무신론 정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탄 악마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고, 그것이 사탄의 사설과 그릇된 논리, 사탄의 처세 철학과 생존 법칙을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사탄 패괴 성정의 묶임과 지배를 받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없으며, 곳곳에서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아귀다툼을 하기에 포용과 인내가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와 위층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되고 우롱당하고 있으며, 모두 사탄의 독소로 살면서 인성을 잃은 것입니다. 위층 사람은 자기 집이 부유하고 교사라는 높은 신분이 있다고 우쭐대며 높은 곳에 앉아 누구에게도 불복했는데, ‘유아독존’이라는 사탄 성정의 지배를 받아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고, 누굴 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뒤에서 논단하고 헐뜯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저는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법칙으로 살고 있어서 위층 사람의 그런 못된 성깔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정확히 대할 수 없었고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것도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탄 성정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성정으로 인해 제가 위층 사람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저 그의 각종 결함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고, 특별히 물이 샌 일로 저의 마음에 ‘증오’의 씨앗이 심어져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원한이 가득하였고, 늘 기회를 노려 그에게 보복하고 그와 겨루고 논쟁하여 본때를 좀 보여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야 제가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괴롭힘을 당해 이렇게 교만 방자하고, 악독하게 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양쪽이 모두 상처를 받게 되었고, 모두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의 교만 방자한 본성을 해결해야 하고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독소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근원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위층과의 관계를 완화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를 포용하고 인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참았지만 또다시 그가 하는 일이 눈에 거슬려 공격하고 보복하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물을 줄 때면 신발 바닥에 늘 흙이 묻어 계단을 올라갈 때에 흙이 떨어져 복도가 더러워집니다. 처음에는 그를 포용하고 자신을 억제하면서 복도의 흙을 청소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시선이 또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채소를 사고 돌아왔는데 또 진흙으로 더러워진 복도를 보자 화가 솟구쳤습니다. 속으로 ‘본인만 깨끗하고 남에게는 피해를 주네, 날 깔보는 거야? 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날 건드리면 똑같이 돌려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한 손에 채소를 들고 있어서 허리를 굽혀 다른 한 손으로 진흙을 주워 그의 집 복도에 다 던져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웠던 흙을 미처 던져 보기도 전에 제 손에 들고 있던 채소 봉지가 갑자기 찢어져 감자가 다 땅에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때는 감자를 주워 담기에 바빴는데 진흙을 위층 집에 던질 겨를이 있었겠어요? 저는 집에 돌아와 거듭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이웃에게 보복하려고 했을 때 채소 봉지가 찢어져 감자가 떨어졌을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때 저는 “너에게 정말로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최후에 자신의 뜻과 자신의 사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보라,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라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좌담기록ㆍ제30편 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가 행한 것이 또 교만 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사탄의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독소에 의해 행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땅의 진흙을 보았을 때 또 그를 보복하고 공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도 저와 똑같이 진흙을 던졌다면, 우리는 점점 갈등이 생겨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아유, 봉투가 찢어져서 다행이야.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가로막는 것이었구나. 하나님은 참으로 너무 거룩하시어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구나!’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저를 심복구복하게 하고 마디마디 진리입니다. 오늘 임한 이 일에서 저는 자신이 사탄에게 확실히 너무 깊게 패괴되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그를 건드린다.”는 독소의 영향과 침식으로 늘 보복하고 괴롭히고 다스리려 했습니다. 저의 본성은 확실히 너무 교만합니다. 하나님, 이제야 저는 자신이 인성이 너무 없고 인격이 너무 저속해서 늘 이웃과 시시콜콜 따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당신을 믿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신이 행한 것을 증오하고 후회합니다. 저는 사탄의 철학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당신을 만족하길 원합니다.’

연말에 위층에서 해파리 한 박스를 창문 밖에 내놓았는데, 거기서 가끔씩 물방울이 떨어져 금방 닦아 놓은 저희 집 창문 유리가 얼룩덜룩해지고, 심지어 창문 밖에 놓았던 물건이 물에 젖어 꽁꽁 얼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게 된 저는 분통이 터져 이전과 같은 잘못을 또 범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급히 하나님 앞에 와서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깨우쳐 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었느냐?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것이든 다 너에게 말하고, 자신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는지, 어떤 기쁜 일이 있는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느껴지지 않겠느냐? 그가 너에게 꺼리지 않고 말하는 것은 너도 그에게 속에 있는 말을 하여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려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좌담기록제49편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실행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일이 닥치면 사람과 소통하게 하고, 속에 있는 말 하는 것을 배우게 하며, 사탄 성정에 지배받는 대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더듬게 되어 다시는 사람의 뜻대로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위층과 대화를 나눠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이웃이 나오는 것을 보고 행여 자신이 화를 이기지 못해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가슴이 계속 쿵쾅거렸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웃이 저의 집 문앞까지 왔을 때 저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 일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실제 상황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자신을 낮추어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지 않았을 때 이웃도 바뀌었습니다. 계속 저에게 사과하면서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금방 올라가서 옮겨 놓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웃이 고의로 저를 깔보는 것이 아니라 박스에 물이 새는 것을 몰랐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번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여전히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이웃이 고의로 저를 괴롭힌다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이의 모순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차츰차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이웃과 사귀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쓰레기를 버릴 때 마침 이웃도 버리려 하면 제가 가는 김에 그의 것도 가져가고, 복도를 닦을 때도 저는 이웃의 복도도 닦아주고, 어떤 때 비가 내리는데 이웃이 집에 없으면 아래층에 말리는 것을 제가 도와서 거두어 줍니다. 이웃은 기뻐하며 “당신 같은 이웃을 만난 것이 참으로 행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점점 화목해졌습니다. 자신이 이웃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저에게서 도달한 효과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저와 이웃층과의 관계가 형편없었는데 모두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고 완전히 사탄의 철학에 의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정상적인 대인 관계가 없었고 사람과 지내면서 포용과 이해와 용서가 없었고 더욱 주동적으로 남을 도와줄 수 없었으며 사랑이 없었고 늘 남의 약점만 보기에 모순이 끊임없이 격화되고 깊었던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솔한 덕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솔이 없었다면 사람은 다 사탄의 철학에 의하여 살고 영원히 서로 명리를 다투고 암투하는 어두운 상태에서 아예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정결케하고 변화하고 구원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찾고 구해야만 현실생활 속에서의 애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잘 믿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를 얻으시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쇼리(肖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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