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실적에 얽매여 괴롭고 우울한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자유

2018년 11월 22일

박명희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새로운 회사에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너무 기쁘다! 정시에 집을 나와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돌이켜보니, 3개월 전 고민 끝에 이 회사를 선택한 후 출근 첫날부터 지금까지 다 순조로웠다. 3개월 동안의 고생과 노력으로 마침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이제는 매출액에 따라 월급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단단히 벼르게 되었다. 가게에 도착하니 동료가 손님들과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었다. 속으로 ‘이 동료랑 앞으로 한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주문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센 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제대로 물어보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받은 주문을 뺏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난 고생스럽게 일만 하고 실적이 없으니 손해가 아닌가. 그럴 순 없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점장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점장은 돌아가면서 주문을 받자고 했고, 동료도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작은 비

요 며칠 기분이 정말 답답하다. 똑같이 주문을 나눠 갖기로 해놓고선 동료는 번번이 내 주문을 뺏어갔다. 동료의 행동에 불만스러웠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와 다퉈서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그녀를 포용하고 인내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동료가 주문을 뺏어가는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어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동료는 상대가 부자인 줄 알고 얼른 다가가서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왜 또 주문을 뺏어가는 거야? 아! 나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얼마 전에 점장이 내가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고 날 점장 보조로 뽑아주었다. 게다가 매달 남모르게 200위안(한화 약 3만 2천원)을 더 얹어주었다. 하지만 동료가 이렇게 내 주문을 뺏어가니 점장과 본점에서 내 실적이 나쁜 것을 보면 나에게 업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이 점장 보조를 어떻게 맡겠는가? 저녁에 나는 걱정으로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낮에 동료가 내 주문을 뺏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동료가 주문을 뺏어갈 때 우쭐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계속 양보할 수 없다. 그랬다간 월말 실적 결산 때 내가 꼴찌를 차지할 것이다. 내일 출근하면 눈 크게 뜨고 잽싸게 움직여야겠다.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작은 비에서 중간 비로 바뀜

요 며칠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 내 기분도 답답하다. 가게에서도 저기압이 머리 위를 누르며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울적한 기분이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요즘 나는 매일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는데 주문을 받고 싶을수록 받지 못하고 있다. 주문을 받더라도 다 작은 주문이었다. 나와 동료는 이미 며칠째 대화하지 않고 있다. 말해야 할 때도 내키지 않아 딱딱하게 몇 마디 나눌 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출근하면 우울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지는 등 너무 힘들다.

오늘 아침, 동료가 또 나의 한계에 도전했다. 내가 막 주문을 받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조금도 거리낌없이 이 주문의 실적을 그녀의 이름으로 올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점장에게 이야기해 내 몫을 찾아오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갑자기 혈기로 사람과 다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에 화내지 말고 냉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퇴근 시간까지 버티었다.

집에 도착한 후, 그동안을 돌이켜보았다. 혼자서 참고, 양보하고, 겉으로는 다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동료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는데, 설마 나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은 분명 내가 배워야 할 과제가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를 떠나지 못한다. 그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사탄에게 그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구절이 지금 나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그동안을 생각해 보니, 나는 명리를 다투는 삶을 살았다. 이익을 위해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동료가 내 주문을 빼앗아 가기 시작할 때 나는 화를 내고 점장에게 고발하려고 하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밀어내며 반감을 가졌고 그녀가 제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빌었다. 나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내가 어떻게 빼앗아올까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다가 주문 받는 기회를 놓쳐버릴까 봐 가게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님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료가 바쁠 때도 도와 주기 싫었다. 실적이 오르면 나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쥘 수 있다. 점장과 본점에서 내 업무 능력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성과급과 보조금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러면서 점장 앞에서는 능청스레 말했다. “제가 계속 그녀한테 양보하지 빼앗지는 않아요.”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명예’와 ‘이익’의 속박에 단단히 갇혀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의 고통이 다 사탄이 명리를 이용해 사람을 속박하고 타락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을 돌이켜보니, 나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멸망시킨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해 살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제가 일하는 동안 동료가 저의 주문을 빼앗든지 말든지 저의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적을 올리고, 명리를 위해 다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크리스천 직장생활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흐림

저녁 무렵, 나는 단골 손님 한 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가가 인사했다. 동료도 이 손님이 큰손이라는 것을 듣고 다가와 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오늘 간신히 겨우 큰 주문을 받나 했는데, 이 사람이 또 끼어들다니, 얼굴이 어쩜 그렇게 두꺼울까? 동료가 손님에게 계속 소개하는 것을 보고 답답하면서도 ‘이 손님을 뺏어와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투며 빼앗다가는 이 주문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괴로웠지만 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나의 혈기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고, 기도한 후에는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이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커지며 너의 정형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네가 겨루고 빼앗을수록 너의 정형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질투심과 미워하는 마음도 더 커지며 더 얻고 싶어진다. 얻고 싶어할수록 얻지 못하고, 얻지 못할수록 너는 더욱 미워하게 되며, 미워할수록 너의 안이 더 캄캄해지고, 캄캄해질수록 너는 본분을 잘하지 못하게 되며, 본분을 잘하지 못하면 점차적으로 너를 쓰지 않게 되고 너는 도태된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인데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시험해 봐라! 네가 이런 정형을 되돌리고 싶어하고 이런 것에 통제받지 않으려 한다면 너는 반드시 먼저 내려놓고 먼저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는 마음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탄은 명리로 나를 구속해서 내가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명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는 너그럽게 앞으로 가서 그녀가 손님 접대하는 것을 함께 도와주니 뜻밖에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나중에 동료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 손님의 주문을 받았지만 완전히 내 실적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일부는 당신이랑 나눠야 해요. 나중에 큰 주문을 받을 때도 같이 나눠요.” 180도 바뀐 동료의 모습에 나는 순간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행할 때, 사람과 명리를 다투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해방될 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사이에서 이해와 신뢰도 높일 수 있고, 자신과 사람, 그리고 업무에서도 이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흐리다가 갬

오늘 점장이 우리의 실적을 통계할 때 동료의 실적이 나보다 좋다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 동료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고 동료에게 계속 주문을 양보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드렸다. 더 이상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명리의 구속을 받고 살 수는 없었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은 점차 평안함을 얻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 … 영원한 이익이란 없다. 지위도 체면도, 돈도 물질도 다 잠시적인 것이다. 사람이 그런 방면의 성정을 해결해 진리를 얻고 구원을 받았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귀히 여김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또한, 사람이 얻은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사탄은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어도 반대로 진리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럼 그것 역시 너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해 얻은 것이다. 진리 실행을 선택한 사람은 가장 명철한 사람이다. 자신을 보전하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모르고 이익을 얻기 위해 진리를 포기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실 눈앞의 이런 이익과 체면은 일시적인 것이고, 진짜 소중한 것은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 속성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과 방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또한, 명리는 사탄이 사람을 속박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명리를 위해 살면 사탄에게 우롱당해 말할 수 없이 괴롭다. 이런 것들을 내가 모두 직접 체험했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만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온 들과 산의 소와 양이 다 사탄에게 약탈당했지만 그는 사람을 보내 뺏어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했다. 또한 이런 말을 했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기 1:21) 욥은 이 말로 하나님은 증거할 수 있었고, 사탄은 듣고 도망쳤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에게 복에 복을 더해주셨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셔서 그가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욥을 본받아서 다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익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는 똑똑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짝 열린 창문처럼 내 마음을 환히 밝혔고 나아갈 방향도 생겼다.

2018년 5월 6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날씨가 맑아서 기분도 좋았다. 요 며칠을 생각해보니, 동료가 주문을 받고 싶어 할 때마다 내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양보했었다. 겉으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다. 적어도 나는 매일 이익의 득실을 따지며 고통스럽게 살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진리를 행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내가 다투고 빼앗을 필요가 없다. 내가 이렇게 할 때마다 마음에 특별한 평안을 느꼈다! 또한 예상밖으로 점장은 매달 점장 보조의 월급으로 200위안을 보조해 주셨다. 동료도 전처럼 그렇게 주문을 뺏어가지 않았다. 요 며칠 나는 또 큰 주문을 연달아 2건 받아서 동료와 실적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동료와 협력해 또 많은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점점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정상적으로 되었다. 더는 점장과 본점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마음의 기쁨과 해방을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번 인도하셔서 나는 사탄의 명리의 속박으로부터 점차 벗어났고, 사람들과 더 이상 옥신각신 다투며 힘들게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면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정당당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어디가 당신의 귀숙인가?

2015년 7월 1일, 뉴스에 의하면 선양(沈陽) 시내에서 한 여성이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올라갔다가 삶과 죽음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건물 아래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휘파람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답니다. 구경꾼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그 건물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웅성거리고 있었고 또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있어, 빨리 와서 구경해. 진짜 볼 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구경꾼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휘파람 소리와 조소 소리가 들려왔고 어떤 사람은 “떠들썩하게 굴지 말고 재간 있으면 뛰어내려!” “빨리 뛰어내려, 보기도 힘들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지만 주택 단지에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불이 났다고 했답니다. 뉴스에 의하면 그 여성이 뛰어내린 그 순간에는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답니다. 뒤이어 사람들은 계속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와, 정말 뛰어내릴까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방금까지도 살아있던 한 생명이 이렇게 없어지다니요?” “너무 참혹해요! 에휴, 다들 떠들지 않았더라면 혹시……” 뉴스를 보고서 저는 그 여자가 자살한 것에 대해 비애에 잠겼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취약하여 일시적 충동으로 빚어낸 것은 자기에 대한 포기와 가족에게 주는 상처인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사람들의 냉담과 조소 그리고 생명 경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뉴스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 간에 인정미가 조금도 없고 진정한 관심과 도움도 없으며 모두 “자신과 무관한 일이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각자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역경에 처하면 도리어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며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격입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처음의 순진함을 잃었습니까? 왜 우리가 이토록 냉담해졌습니까? 어떤 고통이 당신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했습니까?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격려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런 결과일 줄 생각지 못했습니까? 어디가 당신의 귀숙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ㆍ하와는 거룩한 사람이었다. 즉 에덴 동산에서 그들은 성결하였고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충성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배반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사탄 권세의 방해가 없었고 사탄의 독소가 없었으며, 그들은 가장 성결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났는데, 더러움이 그들을 더럽히지 못하였고 육체가 그들을 점유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독사의 독소가 있게 되었고 여호와를 배반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들은 시초에 성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이야말로 사람인 것이다.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은 다음, 선악과나무의 실과를 먹고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에게 점점 패괴되어 사람의 원래 형상이 없게 되었다. 시초의 인류는 여호와의 생기가 있었으며, 패역이 조금도 없었고 사람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는데, 그때의 사람이 진정한 인류인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어 짐승으로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악이고 다 더러운 것이며, 선이 없고 거룩함이 없다. 이것은 사탄이 아닌가?』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해를 받고 이미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사람의 도덕,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가 모두 사탄에게 심히 파괴됨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원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전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사람의 사상,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장 심하게 패괴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엇을 하나님이라 하는지, 무엇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지를 더욱더 모르며,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이지와 견식이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근원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까닭이다.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이 패괴되었고 사상이 부패하게 되었고 정신 면모가 낙후하게 되었다.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었고, 본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한 사람이었고, 본래 인성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사람의 원래 이지, 원래 양심, 원래 인성이 모두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마저도 다 잃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고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기에 그때의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은 사탄의 독해를 받아 사탄이 권세잡고 있는 이 흑암하고 사악한 세상에서 살기에 사회 기풍이 날로 나빠지고 도덕이 부패해지고 세상이 음험하고 잔인하며 인정세태가 야박해지고 사람 간에 진정이 없고 따스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알다시피, 우리가 악한 자에게 침해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지킴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기력하고 냉담해지고 이기적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어떤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인데,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국도(國度)는 나의 말의 완선(完善)함에 따라 땅에서 차츰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나의 마음속의 국도를 세운다. 국도에서 모든 자민은 다 정상 사람의 생활을 회복한다. 더는 쌀쌀한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 날씨 같은 세상이다. 사람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촉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냉랭함을 이겨내지 않는다. 사람 간에 다투지 않고 나라 간에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상태가 없고 더 이상 참살하여 흐르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스함이 넘쳐 흐른다. 나는 온 땅에서 다니고, 나는 보좌 위에서 누리며, 나는 뭇별 가운데서 생활한다. 천사는 나에게 새 노래와 새 춤을 바치고 더 이상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눈물로 볼을 적시지 않는다. 나의 앞에서는 더 이상 천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아무도 나를 향해 고충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오늘은 너희가 모두 나의 앞에서 생활하고 내일은 너희가 모두 나의 나라에서 생존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오늘의 대가로 인하여 장래의 복을 이어받을 것이고 나의 영광 속에서 생활할 것이다. 너희는 설마 여전히 나의 영의 실질을 접촉하기 싫단 말인가? 설마 여전히 자신을 참살하기를 원한단 말인가? 설사 보이는 약속이 잠시라 해도 사람은 모두 그것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설사 내일의 약속이 영원까지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바로 내가 멸하려는 것이고, 사람이 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이루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 꼭 그대로 하시고 그대로 하시면 꼭 이루시며 이루시면 꼭 영원까지입니다! 믿건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답을 찾았겠죠?!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측량할 수 없다

2015년 8월, 저는 사람을 몹시 놀라게 했던 초강력 태풍 “사우델로르”의 엄습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체험에서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권세는 측량할 수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던 그날 저녁,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던 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큰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고 빗줄기가 바람에 휘어 창문을 때려 타닥타닥 소리가 났으며 뒤이어 문틈으로 빗물이 스며 들어와 집안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았는데 몇 분 후에는 정전이 되고 물도 끊겼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이번 태풍이 엄청 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전에도 태풍을 겪었지만 다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밖의 바람은 더 거세졌고 한 자매님이 “빨리 와서 문을 받칩시다. 문이 바람에 넘어져 유리가 깨질 것 같아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문을 받쳤습니다. 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저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리문이 깨지면 머리, 얼굴, 몸 전체가 긁혀서 상처투성이가 될 텐데 어떡하지?’ 저는 두렵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홍수와 지진을 당한 형제자매들이 오직 전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체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그때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 기도 드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지,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는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어.’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니 오늘 우리가 태풍의 엄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고 하나님의 시련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태풍이 당신의 주관 하에 있고 당신의 권세가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한 후, 비록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지만 저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다 평온했습니다. 이때 한 자매님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라고 묻길래 저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를 얻어야 진정한 행복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금 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강력한 태풍 앞에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을 때는 그렇게 무기력하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린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을 때는 태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우리의 마음은 아주 평온하고 든든했습니다. 이런 현저한 대조는 저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하는 날은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일을 나누어 맡았는데, 어떤 자매는 컴퓨터를 안전한 곳에 옮겼고 어떤 자매는 유리 창문을 받치고 있었고 저와 다른 한 자매는 방안의 빗물을 쓸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이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의지해 하나님의 행사를 본 체험담을 교제하였고 또 하나님의 최신 말씀도 교제하였습니다. “미시적 각도에서 보면, 지구상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산천, 호수, 바다, 육지 그리고 사람이 겪는 사계절과 각종 식물, 동물, 미생물과 인류를 포함해 땅 위에서 생존하는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가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나타나거나 소실되게 하고 또한 만물의 생존에 법칙이 생기게 하여 만물이 이런 법칙 속에서 번식하게 되었는데, 이 법칙은 어떠한 사람과 사물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초월할 수 없는가? 유일한 답은 바로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생기고 또한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동시에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움직임과 변화는 다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생기거나 소실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하나님 권세의 명정을 초월할 수 없는데 태풍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람의 강약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어 하나님이 크게 하시면 커지고 하나님이 약하게 하시면 약해질 것이기에 우리는 태풍이 커질까봐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와 주관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중에 우리는 태풍이 더 이상 우리 집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홍수의 엄습을 체험했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물길이 바뀌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았었고 오늘 우리는 태풍 가운데서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태풍의 방향이 바뀌는 하나님의 권세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참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체험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우리 뒷집 지붕의 철판이 벗겨 날려가고 공중에서 커다란 흰 물체가 날아와서 그 집 앞마당에 떨어짐과 동시에 이웃집 창문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창문은 아무 탈 없이 무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크나큰 능력이 태풍의 방향을 바꿔 주었기에 우리 모두가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음을 감탄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음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였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한 후 또 만유를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는 동시에 또 만유를 주관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이것은 하나의 어떤 개념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떻게 현실과 맞추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는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권세를 인식할 것인가?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은 일부분 행성이 아니고 일부분 피조물이 아니고 더욱이 일부분 인류도 아니라 거시적에서 미시적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에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주 천체의 각 행성에서 지구상의 각 종류의 생물에 이르기까지 및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중의 ‘만유’의 정확한 정의이다. 이것도 바로 하나님 권세의 시행과 하나님이 주재하고 관리하는 범위이다. ” 이튿날 아침, 도로 옆에 전봇대가 쓰러져 있었고 아름드리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져 있었고 많은 집의 지붕이 벗겨져 있었으며 도시 전체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예전의 아름다웠던 도시의 모습은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재난 가운데는 하나님의 노기가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더 잘 생존하기를 바라시기에 직접 인류를 멸하시지 않고 재난으로써 인류를 권면하시고 일깨우시며 경고하십니다. 처참한 광경들을 보는 순간 저는 자신도 모르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인류가 하나님과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인류에 대한 돌봄과 걱정과 긍휼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설사 그가 인류를 멸했다 해도 그의 이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인류가 패괴(역주: 부패, 타락)로 가득차고 어느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성품, 그의 실질로 인해 그의 원칙에 따라 이 인류를 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실질로 인해 그는 여전히 인류를 불쌍히 여겼고 심지어 각종 방식으로 인류를 만회하여 계속 생존하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고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즉 하나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부르든지 어떻게 깨우쳐 주든지, 하나님이 어떻게 공급하고 도와주든지, 어떻게 관용하든지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고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상대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상심한 끝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람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마지막 한계까지 기다린 후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한다. 즉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려고 계획해서부터 인류를 멸하는 사역을 정식으로 시작하기까지는 한동안의 기한이 있고 하나의 과정이 있는 것인데, 이 과정은 인류의 되돌아옴을 위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남겨준 마지막 기회이다. ” 이번에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권세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을 보았고 사람이 재난 앞에서 너무나 보잘것없고 정말 개미보다도 못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고 선행을 많이 예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으며 재난 앞에서 명리, 지위, 금전, 혈육의 정, 이 모든 것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진리만이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매일 배설하시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요구하신 각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고 합격된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크리스천의 간증]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심장병 환자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2017년 봄, 몸이 불편하고 호흡이 가빠와 대학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심장 승모판에 문제가 생겼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을 떠올리며 나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졌다. 나중에는 몸이 얼마나 약해졌던지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했다. 내 상태가 계속 나빠지자 아들은 예전의 내 진료기록을 갖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선 내가 심장병에 걸렸고, 아주 심각한 단계라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심부전증으로 번져 언제든 죽음의 고비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아들은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나를 데리고 베이징에 있는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게 했다. 그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께서 치료시기를 15~16년이나 놓치셨어요.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으세요. 심장 승모판뿐만 아니라 삼첨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교체 수술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수술은 심장을 반으로 갈라서 말씀드린 두 부위를 교체하는 수술입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분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공호흡은 최대가 4시간이에요. 수술이 자칫 지연되기라도 하면 환자님은 산소 부족으로 수술대 위에서 운명할 수도 있어요. 이 수술은 성공률이 고작 0.01%밖에 되지 않는 수술입니다. 관상 동맥 우회 이식술이나 심장 비대증 수술보다 훨씬 위험한 수술이랍니다.”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고 무언가가 내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0.01%라니! 그냥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지 않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숨이 막히고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의사는 이어 말했다. “지금 환자분의 상황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요. 수술하실 거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주세요.” 말을 마친 의사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그냥 집에 가자! 성공률이 0.01%란다. 수술해도 죽는 건 마찬가진데 안 받는 게 낫겠다. 괜히 쓸데없는 돈만 낭비하게 되면 너희만 힘들어져.” 아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절 길러주신 게 몇 년인데 이렇게 가만히 엄마가 돌아가시는 걸 보고만 있으라는 거에요? 0.01%의 희망이라 하더라도 해봐야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잖아요. 돈 걱정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뭐라고 말해도 아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할 수 없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이틀 후 나는 무균병실에 입원하였다. 병실에는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 수술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2일 후, 한 심장 비대증 환자가 수술 실패로 오전에 수술실에서 나와 저녁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간호사가 내 눈앞에서 죽은 사람을 밀고 나가는 광경을 보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나도 저렇게 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관상 동맥 우회 이식술을 받다가 수술대에서 목숨을 잃은 환자도 생각났다. 의사는 내 상황이 그들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고, 그들이 받은 수술보다 훨씬 위험한 수술이라고 했었다. 저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며 내가 수술대에서 내려올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고,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이 내게 성큼 다가온 듯했다. 나약함 속에 사니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는 건가?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그렇다. 세상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것이다. 이 병이 임한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서둘러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한결 안정을 찾았다. 그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안수기도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하였는데, 오늘날 또 그렇게 한다면 의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맞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중복되는 사역을 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하신 은혜시대 사역은 이미 끝났다. 현재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을 온전케하는 사역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한 것이 너의 뜻에 부합되지 않고 너의 뜻에 따라 하지 않으면 너는 반항하기 쉬운데,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진리를 추구함으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지의 여부를 보아야 한다. 너에게 요구가 있으면 순복이 없는 것이고, 요구가 있으면 네가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너는 자신의 뜻을 선택하고 있고 자신의 뜻에 따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배반이고 순복이 없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자체가 바로 이지가 없는 것이다. 네가 정말 그를 믿고 정말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감히 그에게 요구를 제기하지 못하고, 이치가 있든 없든 그에게 요구를 제기할 자격도 없다. 만약 너에게 참된 믿음이 있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너는 다른 선택이 없이 오로지 경배하고 오로지 순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나는 반성했고 하나님을 믿은 세월을 되돌아봤다. 나는 항상 예배에 참석하고 줄곧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으며 최선을 다해 본분을 했다. 병에 걸린 후에도 본분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떠한 어려움이 나를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거라 믿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죽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에 내 분깃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작은 대가로 크나큰 하나님의 축복을 얻으려고 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병마가 나를 덮쳐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은 나를 병으로 고통받게 하시거나,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비열하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고 따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창조주와 거래를 하려고 했다. 정말 말도 안 되고 양심도, 이성도 없는 행동이다.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참회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서둘러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회개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거역했는데도 하나님께선 제게 기회를 주시어 제가 잘못한 점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군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제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겠나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수술이 성공하여 살게 된다면 앞으로도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고, 수술이 실패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겠나이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평정심을 되찾았고 수술이 두렵지 않아졌다. 이튿날, 다른 사람들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 울면서 들어갔지만 나는 평온하고 담담하게 수술실로 향했다. 예전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수술을 마친 후 깨어났을 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깨어나셨군요. 나흘 동안이나 의식이 없으셨어요!" 주변을 둘러보고서야 수술이 성공했고, 하나님께서 0.01%의 확률로 나를 살려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감동한 나는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다음 날, 난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후 수술 경과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수술 부위의 회복 속도가 빠르고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더 잘 되고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진을 마친 후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훗날 친척과 이웃들이 나를 보러 와서는 모두 천운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며 감탄했다. 그들의 말을 들을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새언니만 보더라도 스탠트 수술을 받고 3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퇴원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밥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나는 큰 수술을 받았음에도 빠르게 회복되어 40여 일 만에 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나자 웬만한 집안일은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임을 아는 나는 마음속에서 부터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함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길이고 생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릇된 믿음을 바로 잡아 주시어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 길이 바로 이성적인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순종하는 길이다. 이와 함께 사람의 목숨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두 번째 삶을 주신 것이다. 앞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결혼 생활에 찾아온 위기,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었던 비결

남편의 인터넷 채팅으로 일으킨 결혼 생활의 위기, 쌓아 온 감정은 무너지고 배신의 고통에 빠지게 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했을까요?

생사의 기로에 놓인 남편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다

심신 갑작스러운 발병, 목숨이 위험해진 남편 2017년 1월 20일 아침, 나는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주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위가 왜 이렇게 아프지? 방금 정원에서 호두만 한 핏덩이를 토했어”라고 말했다. 놀란 내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다시 피를 토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너무 놀라 달려가 남편을 부축했다. 남편은 그렇게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고 입술은 보랏빛이 된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대로 숨이 끊어져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119’에 전화 걸었다. 전화 연결이 되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고 또 의식을 잃었다. 머릿속이 하얘져 멍하니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119’에 전화 걸었다. 내가 황급히 전화를 걸 때 남편은 또 피를 토했다. 30분도 안 돼서 피를 세 번이나 토한 것이다. 매번 피를 토하고 나면 남편은 기절했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피 웅덩이에 쓰러져있는 남편을 보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듯했고 당황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남편 좀 구해주세요. 하나님만이 제 남편을 살려주실 수 있습니다. 전 정말 두렵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살피시어 제가 이성을 찾고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고, 남편도 서서히 깨어났다. 10분가량이 지나도 구급차가 보이지 않자 나는 조급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구급차가 오고 못 오고도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부디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어 제가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당신의 사역을 체험하겠나이다.”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내가 의지할 곳이 있음을 깨달았고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만사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남편의 생사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사탄이 두려워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었고, 그래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내가 잡념을 갖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남편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만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가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충만케 해 주셨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심각한 병세로 옮겨야 하는 병원, 하나님 말씀이 주신 힘 20분가량이 지나자 구급차가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조치를 취한 후 의사는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남편분 B형 간염(간경화 복수)이 너무 심각해요. 출혈량이 많아서 혈압도 낮고 최고 혈압이 50에 최저 혈압이 40밖에 되지 않아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혈액형도 특이하셔서 그 혈액을 쉽게 구할 수가 없어요. 큰 병원으로 옮기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두려워졌다. 남편을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병원을 옮기다가 남편이 또 피를 토해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병원을 옮기지 않자니 만약 남편이 정말 죽는다면… 그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모든 것,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후 각 사물은 생명이 있게 되었고, 그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각 사물은 자기 생명의 궤적과 법칙을 스스로 준수하고 있으니 사람이 바꿀 필요도, 도울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 맞다. 하나님께선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두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에 달려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의 목숨도 하나님께 달려있기에 병원을 옮긴다고 해도 남편의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하나님을 향해 조용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당신의 말씀은 제게 방향을 가리켜 주셨고 사람의 생명은 당신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남편의 목숨이 다했다면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남편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지 않으시면 이 병원에서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사역에 순종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내 마음은 차분해졌고 남편이 이 병원에 남아 계속 치료를 받게 하기로 결정했다. 괴롭고 나약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되어 준 하나님의 말씀 응급실로 들어가니 의사와 간호사 예닐곱 명이 남편을 에워싸고 주사를 놓고 있었다. 그런데 혈관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끝에 링거를 꼽았다. 남편은 간신히 숨이 붙은 상태로 얼굴이 너무 부어 눈도 뜨지 못했고, 다리도 너무 부어서 보는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조심스레 남편을 부르자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소리를 내진 못했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겪었던 일들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너무 슬퍼졌다. 나는 남편 침대 앞에 앉아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이 지경까지 제가 온 것은 분명 제 분량이 보잘것없기 때문이겠지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시어 제게 믿음과 힘을 주소서…” 이때 형제자매들이 병원으로 와서는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욥의 간증을 교제해주어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나는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진실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욥은 온 산에 있던 소와 양, 그리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하룻밤 만에 약탈당하고, 온몸에 종기가 났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기 1:21) 욥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깨닫고 자신은 적신으로 모친에게서 나왔을 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속셈이나 욕심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재난이 닥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욥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여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을 받건 화를 받건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참된 뜻이 담겨있음을 욥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뭘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한 것으로 인해 그렇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는 변함없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세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획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욥의 이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그의 모든 행실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히 여겼으며, 욥의 그러한 인식을 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마음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욥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실된 믿음을 갖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유나 조건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이와 관련된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는 한 사람을 죽게 하여 그 영을 육체에서 떠나 저승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그 사람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권능이 있다. 사람이 언제 죽고 또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인ㆍ사ㆍ물, 공간, 지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기만 하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물 생령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고, 만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생존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 역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권능이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수도, 영혼이 육체를 떠나게 하실 수도 있으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 일, 사물,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 유일무이한 권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성령에게 거짓말한 아나니아 부부를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저승의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만이 인간의 죽음을 주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남편의 생사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게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사명을 다하도록 하셨다. 만약 남편이 사명을 다했다면 하나님은 남편을 데려가실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남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면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도 하나님께서 켜주실 것이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모두 그분의 참된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때 하나님을 향한 가나안 부인의 믿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은 아량이시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건 말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그녀를 개로 여겨도, 그녀를 어떻게 대해도 그녀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갔다. 가나안 부인 역시 예수께 딸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기도드렸지만, 그녀의 기도는 이성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딸의 병을 고쳐주시건 말건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겨 경배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진실된 믿음을 보신 예수께서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셨다. 지금 나도 가나안 부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이성적으로 기도드려 만약 남편을 치료해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미를 드리겠지만, 치료해주지 않으신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남편이 죽건 살건 저는 절대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상황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어느샌가 하나님을 따르려는 내 마음이 더욱 커졌고 영적으로도 많이 든든해져 마음을 안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싶어졌다. 그 후 나 혼자 힘겹게 남편을 돌보는 모습을 본 형제자매가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남편을 간병해주었고, 나는 내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 우리를 보러 온 친척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곁에서 믿음을 주시고, 의지할 곳을 마련해주시어 내가 한 발짝씩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형제자매를 빌려 나를 도와주시고 보살펴 주셨다. 내 마음속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 찼다. 기적의 구원, 심각했던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다 남편이 평온하게 고비를 넘길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남편이 깨어났을 때 미약하지만 목소리도 나왔고 혈압도 60에서 90까지 올랐다. 이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생존하며 지속된다. …』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속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창조주만이 이런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시며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남편이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의 목숨은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권능과 위력은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조용히 하나님 앞으로 다가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아등바등했으며 가끔 소리라도 지르면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가만히 누워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무기력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어 깊은 고통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가족도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를 보내시어 내게 진리를 교제해주고 남편이 고비를 넘길 때 나와 함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성적인 기도가 무엇인지, 진실된 믿음과 순종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어 내가 하나님의 사역을 기다리고 순종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로 보아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우리 육체의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주일 후, 남편이 밥 먹는 모습을 본 의사는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처음 오셨을 때 피를 너무 많이 토하고, 혈압도 4~50까지 떨어진 데다 혈관도 잘 안 보였는데 오늘 이렇게 생기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이건 기적이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오래 사실 운명인가 봐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신 기적의 사역이다! 보름 후 남편은 퇴원하게 되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남편은 힘이 닿는 한 일을 해서 돈도 벌게 되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도와주실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따르겠나이다!

취직 어려움, 이것만 알면 힘들지 않다

“그대도 나처럼 태양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땀 흘리며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그대도 나처럼 사람들의 냉정한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나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릴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 졸업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2011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교육의 질이 높은 인근 현으로 재수를 하러 갔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한 권 또 한 권 뗐고, 정치 책은 하도 넘겨봐서 다 너덜너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노력이 꼭 보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2012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564점(커트라인 보다 2점 높음.)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고 나는 무척 기뻤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명문 대학에 응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원 대학은 자신만만하게 명문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선이 565점이었다! 단지 1점 차이로 내가 꿈꾸던 대학과 멀어졌다. 이때, 내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실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나중에 나는 이 지역의 평범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듣는 그런 학생이었다.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전공 지식을 열심히 필기하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밖에, 나는 자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전공 외의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충실했다. 종합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학생회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단체를 만들어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교 평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사회 실천 논문은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나는 나의 전공 소양을 높이기 위해 휴가도 포기하고 매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 기관에 가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이력을 풍부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 미래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든든한 기초를 쌓고 싶었다. 나의 노력은 상응하는 보답도 받았다. 나는 여러 번 학교의 1등, 2등 장학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다 여러 번 벽에 부딪히다.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곧 졸업이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나는 전에 받은 상과 참여한 경력으로 빼곡히 채운 이력서를 들고 자신만만 하게 10여 군데의 취업 설명회를 다니며 굵직한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제출하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대학에서 노력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인가? 내 졸업장과 받은 상장이 좋은 직장을 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루는 예배에서 구직의 고충을 형제자매들에게 토로했다. 자매가 나에게 교제해 주었다. “우리의 앞날과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자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어요. 결코 우리의 이력과 졸업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직장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 많이 의지해야 해요.” 나는 자매님의 위로를 듣고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지식이 운명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 자매님은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난 내 실력을 믿어. 분명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대형 취업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나는 반드시 내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가 아니면, 회사에서 일반 대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 참담한 현실 앞에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앞날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하지만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공으로 찾을 수 없다면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라도 찾자! 내 실력으로 좋은 회사를 못 찾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나는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에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명문대 졸업생과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왜 여기에 응시했을까? 명문대 졸업장이 있는데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걸까?’라며 의아해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 내 운명을 장악할 수 없을까?’ 마음이 해방되고 근원을 찾아내다. 설 연휴를 맞고도 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무척 초조했다. 매일 핸드폰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채용 정보를 보며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 봐 계속 업데이트했다. 또 친척과 친구들이 취직했냐고 물어볼까 봐 찾아가지도 못했다. 내가 매일 취업 문제로 걱정하고 궁지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나 막막하고 무기력합니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갑자기 자매님이 전에 나에게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어서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했던 일, 힘든 고3의 시기를 두 번이나 겪은 일, 그럼에도 1점 차이로 명문 대학과 멀어졌던 기억을 회상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려고 적극적으로 각종 활동과 전문 기술 교육에 참여했고, 졸업 후, 나는 비바람을 맞으며 취업설명회에 참가했지만 내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나간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나는 줄곧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두 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면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희생하며 좋은 졸업장만 있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벽에 부딪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대학 시절을 모두 '학문의 세계'에서 보냈다.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놓쳤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여전히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록 학업에 성취도 있었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디딤돌도 얻었지만 운명의 안배에 불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졸업장과 성적에 의지해 대기업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못했을 때 고통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 쳤다. 하나님은 내가 사탄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매와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사탄의 허튼소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여전히 사탄에게 끌려다니며 스스로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망상했다. 결국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존을 위해 믿었던 사상과 관념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을 때 항상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 속에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전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운명에 달려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졸업장과 업무 경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나의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한다.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인한 몸부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는 더 이상 내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하나님의 기묘하신 역사를 보았다. 설날을 보낸 후, 인터넷에 이력서를 하나 넣었고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집이랑 아주 가까워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중에 출근 해서야 회사에서 한 번도 당해 졸업생을 채용한 적이 없었고 내가 첫 번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면접에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닌 후, 회사가 지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나를 파견해 매주 3일 동안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지방은 너무 멀어서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예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인 내가 외지로 돌아다니니 안전이 걱정되어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했다. 눈앞의 환경에 직면해서 나는 갈등했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는데, 그만두면 또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몸이 견딜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제대로 모임에 갈 수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포기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께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적합한 직장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재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신다면 나는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더라도 억지로 구하지 말고 순종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당신의 손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력서를 낸 다음 날,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면접에 참여했는데, 예상 밖으로 면접 당일 오후에 채용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주말에 이틀을 쉬어서 예배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상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남자만 채용했는데, 이번 면접에 남자도 한 명 있었지만, 당신을 채용했으니까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한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셔서 적합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기쁨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