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장애인 딸의 운명,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2018년 08월 20일

딸의 출생, 그리고 고통

딸이 태어난 지 3일만에 갑자기 땀범벅이 된 채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 증상이 보이자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문 뒤에 숨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차마 내게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빨갛게 부은 남편의 눈을 보며 분명 딸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내가 계속 추궁하자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의사 말로는 뇌출혈이 심해 나중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쓰게 될 거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귀를 의심했다. 작디작은 체구, 앳된 얼굴의 딸 아이를 보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문득 마을에 있는 바보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종일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생각났다. 딸이 자라 정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쓴다면 이 아이의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딸이 돌이 되던 때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기댈 곳을 마련해주시어 나는 전처럼 무기력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겨, 하나님의 주재로 딸을 인도해주시길 바랐다.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아이는 서서히 말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걸을 때 절뚝거리고 한쪽 팔은 쭉 펴지 못했지만, 의사가 말했던 상태보단 훨씬 좋았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육 강화, ‘먼저 나는 느린 새’

딸이 4살이 되던 해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가 이상하게 걷는 걸 보곤 비웃으며 얘기했다. “쟨 왜 저렇게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녀?” 이웃의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웃이 간 후에도 그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데도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는데, 크면 더 많은 사람이 비웃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딸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노력으로 아이를 도와 느릴수록 먼저 날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배울 내용을 가르쳤다. 곧잘 배우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이 되고 수업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힘들어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45점도 잘 맞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아이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너무 잘 울어요. 배우려는 욕심은 있는데 배우는 속도도 늦고 빨리 잊어버려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걱정이 또 스멀스멀 떠올랐다. ‘딸 아이 지능이 원체 다른 아이보다 낮은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따라잡겠어?’ 그래서 난 그저 좋은 말로 “선생님이 좀 더 신경 써주세요. 소신껏 아이를 잘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혹독한 교육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아이에게 숙제하도록 했고 저녁 10시, 11시까지도 했다. 가끔 숙제를 마친 후 딸 아이가 못 풀었던 문제를 살짝 바꾸어 몇 번이고 풀어보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할 줄 알았던 딸도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배운 걸 금세 까먹는 딸아이를 보며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 맨날 뭐 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 해? 이렇게 쉬운 문제도 기억 못 하다니. 어이구. 너처럼 해서 언제 발전하겠어?” 딸은 잔뜩 겁먹은 채 가만히 서서 울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불쌍한 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렀다. 분명 다른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딸아이의 앞날을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딸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강압적으로 나가니 딸은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딸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울기만 했다. 밥을 딸아이 책상으로 가져다주어도 알아서 먹는 법이 없었다. 내가 먹으라고 해야만 겨우 깨작깨작 먹고는 다시 책상으로 갔다. 잠든 아이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자주 보였다. 마음이 아파 딸에게 내가 싫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딸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발전은 없고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눈물만 흘리게 된 건지. 나는 그저 딸아이를 잘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어쩌다 아이에게 고통만 안겨준 걸까? 고통 속에 문득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지식을 심어주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딸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발 저를 인도해주세요!”

말씀의 심판, 갓 깨어난 꿈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조금밖에 없는 네 육체의 ‘기능’으로 과연 네가 원래 동경하던 그런 인류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힘이 없으면서 오히려 자식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조종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주제넘는 짓이 아니겠느냐? 어찌 사람의 무지몽매함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능력이 크든 작든, 아이큐가 높든 낮든, 의지가 있든 없든, 운명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고,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이 평생 동안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지, 재부를 얼마큼 소유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의 부모나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이나 야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정하심에 달려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이 좋고 나쁘고는 창조주께서 정하시는 것이며 지식 수준이나 다른 재능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 등 사탄의 철학 속에 살며 내 힘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딸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놓으신 것은 몰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진실된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딸이 장애로 다른 사람에게 차별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내 힘으로 딸의 지식 수준을 높여주고, 다양한 기술을 익혀 부족함을 메꾸려고 하였고 함부로 딸의 운명과 앞날을 바꾸려고 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딸이 정상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요구하고, 때리고, 압박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부시켰고, 자주 화내기까지 했다. 결국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 아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말수가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게다가 나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이루 말할 수 없을 고통 속에 허덕였다. 오늘에서야 꿈에서 깨어나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사탄의 독소로 운명과 맞서며 딸과 자신에게 행복은커녕 고통만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는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이며 거짓말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딸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힘으로 운명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딸아이를 부양하는 책임을 다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이 한결 좋아졌고 전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그 후 나는 <인간 영혼의 엔지니어는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보고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인공인 엽 선생은 교사 평가에서 맨날 꼴찌였다. 하루는 주변 동료들이 학생들 점수와 진학률을 높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때리고, 억압하고, 압박하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걸 보게 되었다.그걸 본 엽 선생은 동료들에게 배운 그대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그러자 반 성적은 올랐지만,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 후 엽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고, 수업 내용에 많은 영감이 생겨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껴 놀랄 만큼 성적이 올랐고, 1등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그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딸을 대할 때도 엽 선생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딸이 더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화가 나면 불같이 혼냈다. 인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책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 딸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직시하여 내 뜻대로 딸에게 요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 공부 못하면 또 혼낼 거래요.” 순간 걱정이 또 올라왔다. 속으로 오늘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교 가서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문득 하나님이야말로 딸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며 딸이 할 수 있고 없고는 하나님에게 달렸지 내가 가르침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나는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며 내 마음을 다잡고 인내심을 갖고 딸의 숙제를 가르쳐 주었다. 딸이 못 하는 모습에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예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 12:31)라고 가르쳐 주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를 보니 딸에게 사랑이라고는 없었다. 사람다운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난 또 자책감이 들었다. 사랑으로 딸을 대하고 인내심을 갖고 딸을 가르치며 남들보다 부족한 딸을 헤아려줘야 함을 깨닫자 화가 누그러졌다. 나는 딸을 격려해주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이번에 35점을 받으면 다음에 40점만 받아도 발전한 거야.” 내가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딸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며 딸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딸이 우는 일도 없어졌다.

글 쓰는 아이,

진리 실천, 뜻밖의 기쁨

그때부터 딸의 숙제를 봐줄 때면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점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본문을 외울 때면 딸이 본문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동작이나 시범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나오면 ‘개굴개굴’소리를 냈고, ‘엄마’가 나올 때면 나를 가리켰다. 그 후로 딸은 눈물이 적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뭐든 빨리 외웠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친 딸이 잔뜩 신나서 말했다. “엄마, 나 몇 점 받았게요?” 잔뜩 신난 딸아이를 보니 분명 시험을 잘 본 거라 생각해 60점이라고 말했다. 딸은 틀렸다고 했고 나는 70점이라고 했다. 딸은 또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0점부터 90점까지 하나씩 다 얘기했다. 딸은 “다 틀렸어요.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난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최근 들어 예전처럼 애써 딸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고 딸을 가르쳤더니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묘임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딸의 절뚝거림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팔은 아직 다 낫지 않았지만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다. 딸의 앞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학교 이전으로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가끔 방학 때 집에 오면 나는 딸의 숙제를 같이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엄마, 괜찮아요. 벌써 다 한 걸요”라고 말했다. 나날이 자라고,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기뻤다.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딸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 말씀의 실질적인 의미를 직접 느끼게 되었다. 과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주재를 잘 알지 못하고, 딸이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길 바라는 욕심에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라는 틀린 관점으로 딸을 가르쳤고, 그 결과 딸의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독선적이고 교만한 타락 성품으로 인해 딸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고통 속에 살았으며, 딸에게는 많은 상처를 줬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된 인생 관점을 내려놓고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니 모든 것이 즐겁고, 딸도 기묘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학업뿐 아니라 몸도 좋아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법을 알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곤경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여름'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

얼마 전에 연이어 며칠 동안 날씨가 아주 무더웠습니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온몸에 땀이 나서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종(鐘)자매가 “일년 중에 여름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자 저도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추위를 타도 더위는 타지 않아요. 근데 이런 고온은 너무 덥네요. 만약 여름이 없다면 온종일 땀을 흘리지 않고 얼마나 가뿐하겠어요!”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소(蘇)자매가 “중국의 곤명처럼 사계절이 봄 같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더운 날씨는 정말 불쾌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여름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틀 후, 자매 몇 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봄이 오면 끝없이 내리는 보슬비가 봄 기운을 가져오고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주어 토양이 녹기 시작하며, 작은 풀이 흙을 비집고 나와 싹이 트기 시작하며, 나무도 점차 푸르게 변한다. 이 모든 생물은 대지에 새로운 생기를 가져다주는데, 이것이 만물이 발전하는 광경이다. 각종 동물도 굴에서 나와 봄날의 따스함을 느끼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여름이면 만물이 무더위를 누리고 또한 만물에게 가져다준 여름철의 따스함도 누리고 있다. 만물은 신속히 자라는데 나무와 풀, 각종 식물 역시 신속히 성장하고 있으며 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는다. 인류를 포함해 만물도 여름철에 분주히 보내고 있다. 가을철이 되면 가랑비가 가을철의 상쾌함을 가져다주고 각종 생물은 추수의 계절을 느끼기 시작하며 만물도 결실을 맺어 열매가 있게 된다. 인류도 가을철 만물의 열매로 인해 주렁주렁한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하여 겨울을 위해 음식을 예비한다. 겨울철, 만물은 추위 속에서 차츰 휴식에 들어가고 조용해지기 시작하며 사람들도 겨울철에 한가해진다. 이 춘하추동이 바뀌고 변화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변화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법칙으로 만물을 이끄시고 인류를 인도하고 계시며, 인류에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생활 방식을 제정해 주시고 인류를 위해 서로 다른 온도와 서로 다른 계절의 생존 환경을 예비해 주셨다. 법칙 있는 이런 생존 환경하에 인류도 규칙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고 있다. 이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또한 이 법칙을 깨트릴 수 있는 사람과 사물은 하나도 없다. 벽해상전이든 아니면 상전벽해든 이 법칙은 줄곧 존재하는데, 그것의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관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법칙 있는 이런 큰 환경이 있기에 인류의 생활도 이런 법칙과 규칙 중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법칙은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을 양육하고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법칙 중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였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을 위해 창조하신 만물과 법칙 있는 이런 생존 환경을 누리고 있다. 설령 사람이 이런 법칙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이런 법칙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해도, 설령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런 법칙을 지배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이런 법칙을 주재하고 계심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쨌든 하나님은 줄곧 변함없는 이런 사역을 하고 계신다. 그가 이런 불변의 사역을 하는 목적은 바로 인류의 생존을 위함이고 인류가 계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도 하나님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드신 것은 다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단락의 말씀을 교제하니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더 깊이 느끼게 됐습니다. 식물은 여름의 햇빛과 무더위가 없으면 자랄 수 없고 꽃이 필 수 없으며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인류는 양식이 없으면 굶어 죽고 전 인류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는 법칙은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해 있게 된 것인데,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고려합니다. 우리의 이익이 손해를 보게 되면 바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서 만든 어떤 사물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이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이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어서 자신만 위하는데, 사람 눈에는 자신만 있고 전 인류의 이익을 영원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하나하나를 만드신 것에는 다 그분의 본뜻이 있습니다. 또한 그 뒤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절대 만드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보다도 높고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잘것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자신의 생각과 상상으로 제멋대로 평가하거나 단정짓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진리를 깨달았을 때 우리는 무더운 여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법칙을 제정하셔서 인류로 하여금 번성하고 생존해 나갈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게임 중독 해결 방법, 여기서 찾았습니다

중국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의 실태 조사:‘방콕녀’ 스묘 인터뷰 진행자: 신량 인터뷰 대상자: 스묘 인터뷰시간: 2016년 10월 10일 인터뷰 대상자 이력: 스묘, 여자, 37세, 평범한 도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2008년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하였는데, 바로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말 그대로 ‘방콕녀’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회와 격리되다시피 했고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신량(이하 ‘량’이라 약칭함): 2008년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인터넷 게임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스묘(이하 ‘묘’라고 약칭함): 처음에는 게임 속의 캐릭터들이 너무 예쁘고 화면 배경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제가 PC방에 가면 PC방 주인이 저한테 게임을 하면 이런 저런 혜택을 준다고 끊임없이 설명하더라고요. 인터넷 게임 홍보 모델을 하는 인기 스타들도 저의 눈길을 끌었어요.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과 재미 삼아 게임을 시작하게 된 거죠. 량: 그럼 왜 8년 동안이나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었던 겁니까? 묘: 제가 현실 생활에서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인터넷 게임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현실의 저는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여서 주변 남자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늘 열등감에 빠져 있었어요. 그러나 게임에서는 저를 이상적인 캐릭터로 꾸밀 수 있었어요. 게다가 게임에는 yy채팅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남성 게이머들이 저의 목소리만 듣고도 제게 잘 보이려고 앞다퉈 아이템이나 게임 코인을 주면서 접근해 왔고 남녀 관계를 맺었죠. 이런 관계를 속칭 ‘게임애인’이라고 해요. 돈깨나 있는 남자 게이머들은 여러명의 게임애인이 있는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죠. 남자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게임애인이 없으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죠." 량: 그것 때문에 게임에 중독되었다구요? 묘: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죠. 게임은 사람들의 여러 욕망을 충족시켜 줘요. 게임으로 돈을 벌게 해 주어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금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게임에서 협회 같은 것을 설립하여 회장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지휘해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게임을 통하여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사귀게 되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던 꿈 같은 일들이 사이버 세상에서는 모두 가능하게 되죠. 량: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인터넷 게임은 사람을 끌긴 하네요. 그럼 당신은 게임을 가장 길게 한 게 몇 시간이나 되나요? 그리고 게임을 하면 돈도 번다는데 당신은 게임을 해서 얼마나 벌었나요? 묘: 평소에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게임을 너무 늦게까지 안 해요.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밤 늦게까지 합니다.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여 게임을 시작하면 20시간 정도 하는데 보통 아침 6시부터 이튿날 새벽 2~3시까지 하죠. 제가 게임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 중, 어떤 사람들은 PC방에서 며칠씩 게임을 해요.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요. 제가 평소에 게임으로 버는 돈은 게임에 접속하는 비용 정도나 충당되고요, 어쩌다 이벤트가 있으면 1~2백 위안 벌지요. 저는 많이 못 벌어요. 인터넷 게임으로 먹고 사는 프로급 게이머들은 한 달에 수천 위안씩 벌어요. 운이 좋은 때는 한 달에 만 위안도 벌죠. 량: 그렇다면 인터넷 게임은 당신의 생활에 어떤 피해를 줬나요? 묘: 피해요? 저한테 준 가장 큰 피해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첫째는 사회와 동떨어지게 한 것이죠. 제가 게임에 중독되었을 적에는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보니 말 그대로 ‘방콕녀’가 되어 버렸죠. 게임을 하면서 한 달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어요. 어느 날 밤, 은행에 가서 돈을 입금하고 돌아오다가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여 헤맨 적도 있어요. 반 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저는 한 시간 반이나 헤매다가 겨우 집을 찾았어요. 집을 나설 때마다 저는 주변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져요.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아요. 둘째는 가족들과 멀어지게 하고, 가정에 대한 애착도 점점 식어지게 하는 것이죠.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다 보니 날마다 부모와 남편과 소통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거실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 남편은 안방에서 게임을 하고 서로 대화조차 없었어요. 하루에 기껏 한 두 마디씩 하는데 밥은 먹었냐? 이제 자자! 이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며칠씩 한 마디도 없었어요. 하루는 엄마가 몸에 열이 나서 안방에 누워 계셨는데 저는 게임에 쏙 빠져 그것도 몰랐으니까요. 엄마가 참다 못해 노하셨어요. “내가 병원에 갈 지경이 돼도 너는 게임을 마쳐야 일어나겠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결혼하여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던 것이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의사의 말이 남편이 온종일 게임을 너무 해서 정자의 생존율이 아주 낮은 데다가 저 또한 게임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임신하기 어렵대요. 의사의 경고를 저희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아 귀가해서도 여전히 게임에 빠졌죠. 그 뒤로 저와 남편은 각자 인터넷 게임에 빠져 소통이 더욱 줄었고, 관계도 더욱 소원해졌어요. 결국 결혼이 깨지게 되었죠. 량: 당신의 말을 들어 보니 인터넷 게임이 당신의 가정과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줬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까? 묘: 저절로는 아마 평생 인터넷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후에 어떤 사람이 제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전해 주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제야 저는 게임이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게임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유린하고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가져다주는지를 알게 된 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을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그들의 화제는 다 어떤 것이냐? (게임 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런 것들이다. 늘 그런 이야기들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전망이 있겠느냐?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느냐? (그런 사람들은 쓸모없습니다!) ‘쓸모없다’라는 말은 아주 적합하다.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적이 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에게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대신 그런 것들로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적이 된다. 이방인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지금 이방 세계에서 그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를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그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게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그것 대신 게임을 하고 싶어져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왜 그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 그런 게임은 어디서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떠하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저를 깨우쳐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 동안 저는 매일 먹고 자고 게임을 하며 게임이 저의 전부였어요. 심지어 꿈속에서도 게임 속의 동료들과 함께 베팅을 하였어요. 실생활과 사이버 세상을 구분 못할 정도였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방식이고 수단인 것이죠. 저는 그때에야 제가 사탄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렸음을 지각했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런 가상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알게 되었어요.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처음에 게임은 유명 스타들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여러 가지 혜택으로 사람을 유인하죠. 그다음에는 실생활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게임 속에서 충족받게 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중독되어 마약중독자가 마약 없이 살 수 없듯이 한시도 게임을 떠날 수 없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게임이 사람에게 주는 피해를 아주 분명히 설명해 주셨어요. 제가 계속 게임에 빠져 있었다면 아마 목숨까지 잃었겠죠.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폐물'인 거죠. 량: 당신이 게임 중독을 치료한 과정을 말해 줄 수 있나요? 묘: 저는 폐인이 되기 싫었어요. 사탄에게 통째로 잡아 먹히기도 싫었어요. 그러나 저는 게임에 너무 깊이 중독되어 있었어요. 혼자 죄에서 빠져나올 능력이 없었죠. 하나님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힘이 없는지를 잘 알고 계셨어요. 하나님은 게임이 인간에게 주는 해악을 일깨워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길도 가르쳐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해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게임을 하고 싶을 때면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요.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저는 점차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게 되어 사탄의 유혹과 인터넷 게임의 포박에서 해방되었어요. 량: 그럼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묘: 하나님을 믿은 후에 있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정상적인 생활 상태를 회복한 것입니다. 『너희의 인성은 너무나 결핍하고 생활은 너무나 천하며, 인성이 없고 식견이 부족하다. 이러면 인성 방면의 것을 장비(裝備)해야 한다. 양심적이고 이지적이며 식견이 있고 말솜씨가 좋고 일을 잘 판단하며 위생을 지키고 정상 사람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 정상 인성 방면의 지식이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적합하게 행하면 너희의 인성은 합격된 셈이다. 다른 한 방면은 영 생활을 장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한 모든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가 한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고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에 정신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고, 부모와 지금의 남편과도 매일 대화로 낮에 일어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며 함께 TV도 보고, 서로 의견도 교환하고 그럽니다. 소통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의 시부모님과의 정도 깊어졌어요. 집을 나서도 생소한 느낌이 없고, 사회와 격리된 느낌도 없어요. 이웃들도 제가 활발해지고 수다도 잘 떨어서 그 전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그래요. 이제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이 제 주변에 펼쳐 놓은 간계들을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도 있어요. 이제 더는 사탄의 유혹에 안 넘어가요. 인간답게 살아야죠. 저는 마음속으로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사탄의 손아귀에서 망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저를 사탄의 그물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소설의 유혹에서 빠져 나오다

저는 예전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아는 착한 딸이었으며, 평범한 생활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난데없는 한 가지 일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저는 몇몇 친구들이 소설이 재미있다며 흥미진진하게 얘기 나누는 것을 무심결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저는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신이 나서 저에게 “소설의 내용은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지 몰라. 로맨틱한 것도 있고 코믹한 것도 있고, 생사 이별 장면도 있고, 시공을 초월한 판타지 소설도 있고, 화목한 가정에 관한 것도 있고. 별의별 내용 다 있어. 어떤 건 너무 감동적이이서 보는 순간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어떤 건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져...”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저는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온 저는 숙제를 마치고 얼른 스마트폰에 웹 소설 앱을 하나 설치하여 홈페이지를 열어 보니 각양각색의 소설 표지가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위아래로 터치하면서 어느 것을 볼까 망설이던 중, 겉표지가 아주 예쁜 추천 소설이 저의 눈을 사로잡았고, 저는 다급히 열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기도 모르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는데, 남녀 주인공이 당한 각종 불행이 마치 제 자신이 당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계속 이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는데, 앞부분을 본 다음에는 그 다음 부분이 보고 싶었고, 그 부분을 본 다음에는 결말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소설에 빠져들었고, 온 마음이 오직 소설속에 있었으며, 소설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늘 이야기 속의 사랑과 미움으로 인해 기뻐하고 우려하고 슬퍼했으며, 어떤 때는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하루만 안 봐도 저는 마음이 초조하여 안절부절못하고 병에 걸린 것처럼 아주 괴로웠으며, 심지어 공부를 하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아무 가치와 의의도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소설 속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갖추고 로맨틱한 사랑을 하면서 온종일 먹고 입을 것 걱정 없이 각종 고급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환상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직 소설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동경했고, 그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 때, 부모님이 돈벌려 외지로 가자 저는 새장 속에 갇혔던 새가 풀려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아주 기뻐했습니다. 소설을 단숨에 다 보기 위해 저는 밥도 하지 않고 라면만 끓여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컵라면으로 바꾸었고, 매일 끼니를 대충 때웠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설만 보았더니 날이 갈수록 눈이 흐려졌고, 온 몸이 무기력해 졌으며, 늘 피곤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눈이 흐려진 건 스마트폰 화면이 너무 밝아서 그럴 거야. 다음부터는 선글라스 끼고 보면 돼. 그리고 몸이 피곤하니까 이제부터는 그렇게 오래 보지 않고 일찍 쉬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혀 소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봤습니다. 그로 인해 눈과 몸이 갈수록 더 나빠졌고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마침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몸이 허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알고 나서 책망할까 봐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조급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소설에 빠지게 된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는 저를 책망하지도 꾸짖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저에게 교통해 주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말씀입니다. “사탄은 이런 방식으로 일부 이야기를 만들고 편집하고 꾸며내 생각이 없는 이런 청소년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네가 분량이 작을 때 될 수 있는 한 너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너를 중독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너에게 분별력이 없는 데다가 아주 경망하고 또 마음속에 갖춰진 긍정적인 것들이 너무 적고 그 어떤 진리 실제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교통을 통해 저는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소설에 빠진 것은 사탄의 올가미와 간계에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고 패괴시켜 우리로 하여금 갈수록 더 타락되게 하려고 거짓 이야기를 날조하였는데, 완벽한 인물을 형상화하거나 환상적인 삶을 꿈꾸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숭배하고 동경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의 내용이 담긴 연애 소설, 무협 소설, 타임슬립 소설을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아주 숭배하게 되고, 그들의 행복한 생활과 로맨틱한 사랑, 각종 특별한 능력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느 날 그들처럼 시공을 초월하게 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있게 되며, 추녀와 담벼락을 넘나드는 재주가 있게 되기를 꿈꾸며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설에 몰입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소설 속의 인물과 플롯에 홀리게 되고, 우리의 희로애락도 비정상적이게 되며, 또한 일반적인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소설에 빠져 가상 세계에서 살다 보면 현실 생활과 동떨어져 공부와 생활에 흥미가 없게 되고, 심지어 밥 먹고 자는 시간마저 소설 보는 시간을 뺏었으니 그 시간까지도 아깝다고 생각됩니다. 이게 어디 정상 사람의 생활입니까? 제가 이 지경까지 타락된 것은 다 사탄이 해친 것이고, 소설은 사탄이 저를 미혹하고 유혹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저는 다시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한 아버지에게“이제부터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래요. 좀 있다 소설 앱을 삭제할게요.”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고, 또한 저와 같이 하나님께 심지를 세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소설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고, 자신이 더 이상 소설을 보지 않게 되어 저는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저에게 시험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심심해서 지난날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고, ‘옛날에 소설 볼 때 아주 재미있었는데. 또 볼까? 조금 보는 건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셔. 그리고 난 하나님께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기도했어. 또 보면 거짓말하는 거잖아.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아. 그러니까 보면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새벽 2시가 넘도록 소설을 보았습니다. 이튿날 일어나니 온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흐리멍덩하며 마음이 어수선하고 머릿속에 온통 소설 속의 플롯이었습니다. 소설을 보지 않겠다는 심지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거짓말했다는 생각에 저는 더 큰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반성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분량이 너무 작아 외적인 일들에 아주 쉽게 끌려가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힘들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것이겠느냐? 사탄에게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 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리가 없고, 죄를 이길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 스스로 그 마음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을 전혀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으며 사탄 성정의 통제를 받고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예전처럼 소설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처럼 살기 싫어서 단지 인위적인 방법으로 억제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 시험이 임하자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사탄의 통제와 속박을 받기 싫습니다. 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후에 저는 아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네가 목숨을 건지려고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너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입으로는 몇 마디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다. 즉, 네가 진정성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들은 것이다. 하나님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너의 어려운 점을 보고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계속 저의 곁을 지키시면서 제가 돌아서기를 기다리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큰 포부가 있거나 제가 공허한 소원을 빌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을 원하시고 제가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해서 사탄의 통제와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하게 되어 아주 큰 격려가 되는 동시에 믿음도 충만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 주실 것이고, 저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후에 또 사탄의 시험이 임했을 때, 저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도와 달라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진실로 협력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셨으며,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부지중에 저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냈고, 성실한 사람의 모양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예배할 때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했더니,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아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우선 사악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사탄이 왜 그렇게 하는지, 사람이 이런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 또 어떤 중독성이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들이 정상적인 인성이고 어떤 것들이 긍정적인 것이며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에게 정확한 실행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무엇이 긍정적인 것인지, 무엇이 부정적 것인지를 전혀 분별할 줄 모르고, 정상적인 인성에는 어떤 것이 갖춰져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각종 사악한 사회 풍조에 직면하여, 우리는 저항할 힘이 없고 어쩔 수 없이 그 풍조에 휩쓸리며, 사탄의 유혹과 해를 당해 갈수록 타락되고 패괴되었으며, 점차 인성과 이지를 잃게 되었고, 정상 사람의 생활이 없게 되었으며 돌이길 수 없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어떻게 인류를 패괴시켰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생활이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생활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탄의 시험이 임할 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할 줄 알게 되었고, 인성 생활이 갈수록 정상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크리스천의 간증]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심장병 환자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2017년 봄, 몸이 불편하고 호흡이 가빠와 대학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심장 승모판에 문제가 생겼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을 떠올리며 나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졌다. 나중에는 몸이 얼마나 약해졌던지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했다. 내 상태가 계속 나빠지자 아들은 예전의 내 진료기록을 갖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선 내가 심장병에 걸렸고, 아주 심각한 단계라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심부전증으로 번져 언제든 죽음의 고비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아들은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나를 데리고 베이징에 있는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게 했다. 그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께서 치료시기를 15~16년이나 놓치셨어요.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으세요. 심장 승모판뿐만 아니라 삼첨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교체 수술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수술은 심장을 반으로 갈라서 말씀드린 두 부위를 교체하는 수술입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분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공호흡은 최대가 4시간이에요. 수술이 자칫 지연되기라도 하면 환자님은 산소 부족으로 수술대 위에서 운명할 수도 있어요. 이 수술은 성공률이 고작 0.01%밖에 되지 않는 수술입니다. 관상 동맥 우회 이식술이나 심장 비대증 수술보다 훨씬 위험한 수술이랍니다.”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고 무언가가 내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0.01%라니! 그냥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지 않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숨이 막히고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의사는 이어 말했다. “지금 환자분의 상황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요. 수술하실 거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주세요.” 말을 마친 의사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그냥 집에 가자! 성공률이 0.01%란다. 수술해도 죽는 건 마찬가진데 안 받는 게 낫겠다. 괜히 쓸데없는 돈만 낭비하게 되면 너희만 힘들어져.” 아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절 길러주신 게 몇 년인데 이렇게 가만히 엄마가 돌아가시는 걸 보고만 있으라는 거에요? 0.01%의 희망이라 하더라도 해봐야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잖아요. 돈 걱정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뭐라고 말해도 아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할 수 없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이틀 후 나는 무균병실에 입원하였다. 병실에는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 수술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2일 후, 한 심장 비대증 환자가 수술 실패로 오전에 수술실에서 나와 저녁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간호사가 내 눈앞에서 죽은 사람을 밀고 나가는 광경을 보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나도 저렇게 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관상 동맥 우회 이식술을 받다가 수술대에서 목숨을 잃은 환자도 생각났다. 의사는 내 상황이 그들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고, 그들이 받은 수술보다 훨씬 위험한 수술이라고 했었다. 저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며 내가 수술대에서 내려올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고,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이 내게 성큼 다가온 듯했다. 나약함 속에 사니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는 건가?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그렇다. 세상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것이다. 이 병이 임한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서둘러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한결 안정을 찾았다. 그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안수기도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하였는데, 오늘날 또 그렇게 한다면 의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맞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중복되는 사역을 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하신 은혜시대 사역은 이미 끝났다. 현재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을 온전케하는 사역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한 것이 너의 뜻에 부합되지 않고 너의 뜻에 따라 하지 않으면 너는 반항하기 쉬운데,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진리를 추구함으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지의 여부를 보아야 한다. 너에게 요구가 있으면 순복이 없는 것이고, 요구가 있으면 네가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너는 자신의 뜻을 선택하고 있고 자신의 뜻에 따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배반이고 순복이 없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자체가 바로 이지가 없는 것이다. 네가 정말 그를 믿고 정말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감히 그에게 요구를 제기하지 못하고, 이치가 있든 없든 그에게 요구를 제기할 자격도 없다. 만약 너에게 참된 믿음이 있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너는 다른 선택이 없이 오로지 경배하고 오로지 순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나는 반성했고 하나님을 믿은 세월을 되돌아봤다. 나는 항상 예배에 참석하고 줄곧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으며 최선을 다해 본분을 했다. 병에 걸린 후에도 본분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떠한 어려움이 나를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거라 믿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죽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에 내 분깃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작은 대가로 크나큰 하나님의 축복을 얻으려고 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병마가 나를 덮쳐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은 나를 병으로 고통받게 하시거나,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비열하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고 따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창조주와 거래를 하려고 했다. 정말 말도 안 되고 양심도, 이성도 없는 행동이다.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참회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서둘러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회개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거역했는데도 하나님께선 제게 기회를 주시어 제가 잘못한 점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군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제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겠나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수술이 성공하여 살게 된다면 앞으로도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고, 수술이 실패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겠나이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평정심을 되찾았고 수술이 두렵지 않아졌다. 이튿날, 다른 사람들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 울면서 들어갔지만 나는 평온하고 담담하게 수술실로 향했다. 예전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수술을 마친 후 깨어났을 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깨어나셨군요. 나흘 동안이나 의식이 없으셨어요!" 주변을 둘러보고서야 수술이 성공했고, 하나님께서 0.01%의 확률로 나를 살려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감동한 나는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다음 날, 난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후 수술 경과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수술 부위의 회복 속도가 빠르고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더 잘 되고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진을 마친 후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훗날 친척과 이웃들이 나를 보러 와서는 모두 천운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며 감탄했다. 그들의 말을 들을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새언니만 보더라도 스탠트 수술을 받고 3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퇴원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밥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나는 큰 수술을 받았음에도 빠르게 회복되어 40여 일 만에 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나자 웬만한 집안일은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임을 아는 나는 마음속에서 부터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함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길이고 생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릇된 믿음을 바로 잡아 주시어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 길이 바로 이성적인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순종하는 길이다. 이와 함께 사람의 목숨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두 번째 삶을 주신 것이다. 앞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

중국에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일은 하나 보태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낫다” “남의 덕을 볼 줄 모르면 멍청이다” 등등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이런 말들을 격언과 명언으로 삼고 심지어는 제가 처세하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어도 저는 이런 “최고 명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져 왔으니 틀림없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츰차츰 탐욕스러워졌고 정직했던 마음도 점점 마비되어 갔습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시내에 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 탔는데도 매표원이 저에게 표를 사라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표를 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저는 모르는 척 무임승차 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도 저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번 이득을 본 것에 기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최고 명언”대로 살아왔고 계속 제가 맞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며, 매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고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직이란 일하고 말함에 여러 가지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상관없이,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든 이방인과 함께 지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하고 남에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하거나 기만을 해서도 안 되며,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 올 수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선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어나게 했고 예전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저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다 옳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원래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됨이의 원칙과 인격을 잃었으며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처리한 것을 남 몰래 기뻐했다는 것에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최고 명언”이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마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익을 조금 얻긴 했지만 잃은 것은 오히려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와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을 받았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급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모두 심하게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심하게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고 있고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한 영향 아래서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구비될 수 없고 더욱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질이 있을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타락시킨 이 사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무엇이 정의이고 광명인지 모르고 사탄의 이러한 사상에 완전히 젖어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권세 하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러한 “최고 명언” 즉, 사탄의 독소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저의 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광명이고 흑암인지 몰랐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을 몰랐기에 비천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게 되었고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더러운 곳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면서 저에게 정확한 인생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밖에서 일처리를 다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를 사려고 10위안을 꺼내 매표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매표원은 저에게 거스름 돈으로 4.5위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제가 20위안을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14.5위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받는 순간 이득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또 기뻤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요구를 생각하니 기뻤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선뜻 돌려주기는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이 알면 저를 바보라고 말할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성격이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은 마치 어둠속의 등잔불처럼 저에게 실행의 길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보는 것을 늘 싫어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셔셔 구원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은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시지 않고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길, 생명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먼저 가서 매표원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매표원이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하고 나니 제 마음은 처음으로 즐거웠고 매우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즉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국도(國度)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시행한 간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간계를 다 폭로해 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그지없이 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ㆍ쓰레기ㆍ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고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가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무지한 인류로 하여금 모두 나를 위해 증거할 수 있게 하는데, 즉 “내”가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조물주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이고 사탄은 피조된 다음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역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타락된 인류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발표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저의 추악상을 드러내시는 것은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이것이 저에 대한 구원임을 말씀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에 제가 지켜왔던 “최고의 명언”들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최고의 명언”에 따라 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더 추해져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베풀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임신 7개월 된 그녀가 갑작스런 강도의 납치를 당한 후…

갑작스럽게 칼을 든 강도에게 납치를 당한 그녀는 임신 7개월째 였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무사히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

저는 농사를 본업으로 삼았던 일반 농민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논과 밭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며 직접 농작물이 성장하는 기묘한 자연의 섭리를 체험하였습니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무성해져 가을에 수확하면 겨울에는 저장하는 일상이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이어졌습니다. 각종 농작물은 영원히 변치 않는 이 규칙에 순응해 뿌리를 내리고 발아해 꽃을 피우며 결실을 맺었습니다. 사람들도 시종일관 이 불변의 법칙에 순응하며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을 누렸습니다. 이는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하사하신 자비로운 은덕과 크나큰 혜택입니다! 그때 저는 인간이 조물주께서 주관하시는 기묘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모든 자연식품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국가 정부에서는 “과학을 배우고 과학을 활용해 과학을 발전시키자”는 경제 발전 전략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제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 수준은 나날이 발전했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빠른 속도로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바나나, 포도, 수박, 오이, 옥수수 등 각종 과일과 채소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지역의 특산품도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발전은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큰 욕망과 수요를 만족시켜 감탄과 찬미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된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발전은 과학의 덕이라고 생각하며 이처럼 ‘하이 레벨의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으며 덕분에 소강사회가 현실이 되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까지 많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좋은 점’은 모두 과학의 혁혁한 공헌 덕분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누구도 과학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이면을 알지 못했습니다. 즉 과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잔혹한 피해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약품이 채소와 과일에 어떤 이변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치하게도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과학을 발전시켜 얻은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과일과 채소 사업을 하게 되었고 그제야 매번 도매로 산 채소와 과일이 판매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부패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도매로 산 당근은 겉보기에 신선하고 외형도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수분도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정도 판매하고 나면 바로 썩어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도대체 왜 이렇게 쉽게 썩어버리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원인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요즘 채소와 과일에는 성장촉진제와 선도보존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자연의 성장 규칙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채소와 과일을 빠르게 숙성시키고 색상도 예쁘게 만들어줍니다. 소매점에서는 당근을 빨리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세척수에 약품과 색소를 첨가해 당근을 세척해서 더 붉고 신선해 보이도록 만듭니다. 실상 당근에는 이미 유독 성분이 가득한 농약이 흠뻑 묻어있는 상태인데 말이죠. 부추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짝 노란 빛을 띠는 잎도 좋은 품질이지만 소매점에서 판매 전날 농약을 뿌려 색상은 더 짙어지게, 얇은 잎은 더 굵어지게 만듭니다. 콩나물은 화학비료를 사용해 성장을 촉진합니다. 원래는 색이 전체적으로 푸르며 얇고 가는 모양을 띠는데 약품에 담가두면 희고 굵은 콩나물로 변하게 됩니다. 한번은 어떤 나이 지긋하신 농부 할머니가 오이를 도매 판매할 때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수확한 오이 양이 너무 적어 이윤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제 남편이 수확 전날 비료를 뿌리지 않은거예요.” 저는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습니다. “비료와 이번 수확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분은 “비료를 뿌려주면 오이 출하량이 늘어나고 오이도 기다랗게 맺히는 데다가 꽃도 크고 예쁘게 핀답니다. 요즘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좋은 농약이 많이 개발되었어요.”라고 대답했고 이 내용을 들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끊임없이 그분의 이야기를 들은 저는 우리가 매일 같이 먹고 있는 채소가 겉으로는 보기 좋고 신선해 보이지만 사실 농약과 호르몬으로 가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사업을 했던 기간에도 도매상이 포도, 토마토, 딸기 등의 많은 과일과 채소를 빨리 성숙시켜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덜 익은 상태의 과일과 채소에 약품을 사용해서 빠른 숙성을 유도했습니다. 약품을 뿌린 작은 포도알은 크기가 커졌고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습니다. 심지어 전날 약을 뿌렸다가 둘째 날 바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습니다. 일부 식품 중에서도 과일은 다른 지역에서 운송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운송과정에서 대량의 방부제, 화학약품, 포르말린 등 유해성이 높은 약품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대부분의 쌀, 밀가루, 식용유는 자연 상태의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로 개량한 유전자 변형 식품입니다. 심지어 식용 달걀까지도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만들어 낼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발전된’ 과학 기술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불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섭취하는 음식이 과학기술로 가공된 성찬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약과 독약을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현재 사람들은 화학비료와 각종 호르몬이 첨가된 과일과 채소 등 기타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각종 괴질을 앓게 됐습니다.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각종 암은 현대인에게 흔히 발생하는 병이 되었으며 최근 중국의 암 환자는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어린 환자는 이제 겨우 5세입니다. 이렇게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곤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를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지금같이 이렇게 다양하고 이상한 괴질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학이 가져다준 풍부한 물질적인 자원을 누린 인류는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후에 저는 운 좋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체험하게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정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사탄이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은 과학이란 명목으로 사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과학과 오묘한 비밀에 대한 탐색을 만족시키며, 또한 과학이란 명목으로 물질적 욕구와 생활의 질을 끊임없이 높이려는 사람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이다. 사탄은 바로 그런 명목을 내걸고 과학이란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킨다.…사탄의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그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하지만 과학이 인류에게 초래한 결과는 어떤 것이냐? 우리는 어떤 환경들을 접하게 되느냐? 인류가 호흡하는 공기는 오염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진정 깨끗한 물이냐?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먹는 먹거리는 어떠냐? 대다수가 자연적인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그것은 화학 비료로 재배한 것이고, 유전자를 개량해 재배한 것이며, 또한 각종 과학적 방식으로 변종시킨 것이다. 우리가 먹는 야채, 과일마저도 이미 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은 자연적인 먹거리를 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계란마저 원래 맛이 아니라 소위 사탄이 말하는 과학으로 가공된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의 질은 사람이 예상한 목표에 도달하여 사람의 욕망과 육체를 만족시켰을지라도 실제로 사람이 생존하는 환경은 모두 과학이 가져온 각종 ‘성과’에 의해 파괴되고 망가졌다. …우선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그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인데,너희를 흐릿해진 상태에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목으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과학이란 것은 원래 사탄이 인류를 멸망시키고 독살하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사탄은 “과학발전을 대대적으로 실천해야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라는 슬로건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마비시켜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고 물질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오인하게 했습니다. 과학을 숭상하고 끊임없이 과학을 연구해 사람들이 과학 발전을 수단으로 많은 것들을 연구하여 만들어 냈고 이로써 하나님께서 최초에 인류에게 향유하도록 예비해 주신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고 변화시켰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과학 발전에만 심취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원시적인 생존 환경과 각종 식물을 훼손시켰습니다. 우리들이 먹는 각종 채소와 과일에는 숙성제, 성장촉진제, 팽창제, 증색제, 선도보존제 등등 각종 유독 성분이 포함된 식물 성장 호르몬이 가득 뿌려지고 있습니다. 채소와 과일에 잔류해있는 이런 유독물질은 완벽하게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체내로 흡수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유독 물질에 장기간 오염된 채소와 과일을 섭취했을 경우 몸에 필요한 각종 영양분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화학 약품이 체내의 오장육부, 심지어는 혈액에도 침투되고 있습니다. 이런 잔류 농약이 체내에 장기간 축적되면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이상한 괴질에 걸리게 됩니다.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과 암은 현대 사회에서 아주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이런 병을 앓게 된 인류의 건강은 철저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이 과학기술 발전에 전력을 쏟아부어 우리 인류가 맞이하게 된 결과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 발전을 위해 각종 명목으로 엄청난 규모의 화학 공장이 무수히 많이 생겨났습니다. 각양각색의 자동차가 점점 많아졌고 공기, 물, 토양, 기온 등등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생존 환경이 서로 다른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오늘날 과학 발전이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왔고 우리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의 음험한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원시적인 생태계와 각종 식품에서 멀어지고 과학 연구를 통해 새로 개발한 식품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해주신 것이야말로 우리 몸에 가장 잘 맞고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한 인류가 사탄에게 무정하게 짓밟히고 훼손되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류를 굽어살피시며 말세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현세에 나타나시어 진리를 말씀하시고 직접 사탄에 깊이 타락되어 미혹된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하나님은 이 세계와 이 인류를 창조하였고, 더욱이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인류의 문명도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있고, 또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밤낮으로 보살펴 주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하나님의 주재를 떠날 수 없고, 인류의 역사(歷史)와 미래도 하나님 손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류가 좋은 운명이 있기를 바라고 한 나라가 좋은 국운이 있기를 바란다면, 인류는 다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다 하나님 앞에 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결말은 피할 수 없는 큰 재앙일 것이다.』『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생명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넉넉한 생활과 사람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그런 공평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다. 인류는 오직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만 인류의 필요와 인류가 탐색하고자 하는 욕망과 심령의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운명을 정하셨으며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공급해 주시며 인도하고 구원하십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벗어나 과학을 발전시켜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과학으로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려고 한다면 사람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며 암흑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 결국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참 하나님만이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권병과 능력이 있습니다. 인류가 좋은 운명과 처소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하신 생존환경에 순응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더는 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