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장애인 딸의 운명,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2018년 08월 20일

딸의 출생, 그리고 고통

딸이 태어난 지 3일만에 갑자기 땀범벅이 된 채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 증상이 보이자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문 뒤에 숨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차마 내게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빨갛게 부은 남편의 눈을 보며 분명 딸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내가 계속 추궁하자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의사 말로는 뇌출혈이 심해 나중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쓰게 될 거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귀를 의심했다. 작디작은 체구, 앳된 얼굴의 딸 아이를 보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문득 마을에 있는 바보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종일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생각났다. 딸이 자라 정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쓴다면 이 아이의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딸이 돌이 되던 때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기댈 곳을 마련해주시어 나는 전처럼 무기력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겨, 하나님의 주재로 딸을 인도해주시길 바랐다.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아이는 서서히 말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걸을 때 절뚝거리고 한쪽 팔은 쭉 펴지 못했지만, 의사가 말했던 상태보단 훨씬 좋았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육 강화, ‘먼저 나는 느린 새’

딸이 4살이 되던 해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가 이상하게 걷는 걸 보곤 비웃으며 얘기했다. “쟨 왜 저렇게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녀?” 이웃의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웃이 간 후에도 그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데도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는데, 크면 더 많은 사람이 비웃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딸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노력으로 아이를 도와 느릴수록 먼저 날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배울 내용을 가르쳤다. 곧잘 배우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이 되고 수업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힘들어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45점도 잘 맞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아이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너무 잘 울어요. 배우려는 욕심은 있는데 배우는 속도도 늦고 빨리 잊어버려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걱정이 또 스멀스멀 떠올랐다. ‘딸 아이 지능이 원체 다른 아이보다 낮은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따라잡겠어?’ 그래서 난 그저 좋은 말로 “선생님이 좀 더 신경 써주세요. 소신껏 아이를 잘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혹독한 교육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아이에게 숙제하도록 했고 저녁 10시, 11시까지도 했다. 가끔 숙제를 마친 후 딸 아이가 못 풀었던 문제를 살짝 바꾸어 몇 번이고 풀어보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할 줄 알았던 딸도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배운 걸 금세 까먹는 딸아이를 보며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 맨날 뭐 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 해? 이렇게 쉬운 문제도 기억 못 하다니. 어이구. 너처럼 해서 언제 발전하겠어?” 딸은 잔뜩 겁먹은 채 가만히 서서 울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불쌍한 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렀다. 분명 다른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딸아이의 앞날을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딸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강압적으로 나가니 딸은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딸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울기만 했다. 밥을 딸아이 책상으로 가져다주어도 알아서 먹는 법이 없었다. 내가 먹으라고 해야만 겨우 깨작깨작 먹고는 다시 책상으로 갔다. 잠든 아이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자주 보였다. 마음이 아파 딸에게 내가 싫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딸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발전은 없고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눈물만 흘리게 된 건지. 나는 그저 딸아이를 잘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어쩌다 아이에게 고통만 안겨준 걸까? 고통 속에 문득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지식을 심어주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딸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발 저를 인도해주세요!”

말씀의 심판, 갓 깨어난 꿈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조금밖에 없는 네 육체의 ‘기능’으로 과연 네가 원래 동경하던 그런 인류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힘이 없으면서 오히려 자식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조종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주제넘는 짓이 아니겠느냐? 어찌 사람의 무지몽매함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능력이 크든 작든, 아이큐가 높든 낮든, 의지가 있든 없든, 운명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고,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이 평생 동안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지, 재부를 얼마큼 소유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의 부모나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이나 야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정하심에 달려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이 좋고 나쁘고는 창조주께서 정하시는 것이며 지식 수준이나 다른 재능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 등 사탄의 철학 속에 살며 내 힘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딸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놓으신 것은 몰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진실된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딸이 장애로 다른 사람에게 차별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내 힘으로 딸의 지식 수준을 높여주고, 다양한 기술을 익혀 부족함을 메꾸려고 하였고 함부로 딸의 운명과 앞날을 바꾸려고 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딸이 정상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요구하고, 때리고, 압박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부시켰고, 자주 화내기까지 했다. 결국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 아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말수가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게다가 나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이루 말할 수 없을 고통 속에 허덕였다. 오늘에서야 꿈에서 깨어나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사탄의 독소로 운명과 맞서며 딸과 자신에게 행복은커녕 고통만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는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이며 거짓말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딸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힘으로 운명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딸아이를 부양하는 책임을 다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이 한결 좋아졌고 전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그 후 나는 <인간 영혼의 엔지니어는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보고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인공인 엽 선생은 교사 평가에서 맨날 꼴찌였다. 하루는 주변 동료들이 학생들 점수와 진학률을 높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때리고, 억압하고, 압박하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걸 보게 되었다.그걸 본 엽 선생은 동료들에게 배운 그대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그러자 반 성적은 올랐지만,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 후 엽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고, 수업 내용에 많은 영감이 생겨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껴 놀랄 만큼 성적이 올랐고, 1등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그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딸을 대할 때도 엽 선생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딸이 더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화가 나면 불같이 혼냈다. 인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책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 딸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직시하여 내 뜻대로 딸에게 요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 공부 못하면 또 혼낼 거래요.” 순간 걱정이 또 올라왔다. 속으로 오늘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교 가서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문득 하나님이야말로 딸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며 딸이 할 수 있고 없고는 하나님에게 달렸지 내가 가르침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나는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며 내 마음을 다잡고 인내심을 갖고 딸의 숙제를 가르쳐 주었다. 딸이 못 하는 모습에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예수께서 ‘다른 이를 자신처럼 사랑하라’라고 가르쳐 주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를 보니 딸에게 사랑이라고는 없었다. 사람다운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난 또 자책감이 들었다. 사랑으로 딸을 대하고 인내심을 갖고 딸을 가르치며 남들보다 부족한 딸을 헤아려줘야 함을 깨닫자 화가 누그러졌다. 나는 딸을 격려해주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이번에 35점을 받으면 다음에 40점만 받아도 발전한 거야.” 내가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딸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며 딸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딸이 우는 일도 없어졌다.

엄마와 딸,웃음

진리 실천, 뜻밖의 기쁨

그때부터 딸의 숙제를 봐줄 때면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점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본문을 외울 때면 딸이 본문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동작이나 시범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나오면 ‘개굴개굴’소리를 냈고, ‘엄마’가 나올 때면 나를 가리켰다. 그 후로 딸은 눈물이 적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뭐든 빨리 외웠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친 딸이 잔뜩 신나서 말했다. “엄마, 나 몇 점 받았게요?” 잔뜩 신난 딸아이를 보니 분명 시험을 잘 본 거라 생각해 60점이라고 말했다. 딸은 틀렸다고 했고 나는 70점이라고 했다. 딸은 또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0점부터 90점까지 하나씩 다 얘기했다. 딸은 “다 틀렸어요.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난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최근 들어 예전처럼 애써 딸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고 딸을 가르쳤더니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묘임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딸의 절뚝거림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팔은 아직 다 낫지 않았지만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다. 딸의 앞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학교 이전으로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가끔 방학 때 집에 오면 나는 딸의 숙제를 같이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엄마, 괜찮아요. 벌써 다 한 걸요”라고 말했다. 나날이 자라고,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기뻤다.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딸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 말씀의 실질적인 의미를 직접 느끼게 되었다. 과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주재를 잘 알지 못하고, 딸이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길 바라는 욕심에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라는 틀린 관점으로 딸을 가르쳤고, 그 결과 딸의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독선적이고 교만한 타락 성품으로 인해 딸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고통 속에 살았으며, 딸에게는 많은 상처를 줬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된 인생 관점을 내려놓고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니 모든 것이 즐겁고, 딸도 기묘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학업뿐 아니라 몸도 좋아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법을 알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곤경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우리 손에...’,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터전...’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타락한 아이를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제 아이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은 아이의 행복을 앗아갔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게임으로 대신하고 싶어지면서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이 사악한 세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세계와 이 인류의 사악한 풍조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전적으로 끌어들이고 유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아주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사탄은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죄악의 소용돌이로 내몰고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은 빛을 볼 수 없고 자유와 행복을 잃어 어둠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아이들은 인터넷 게임에 푹 빠져서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잃었고, 향상하려는 의지도 사라졌습니다…예전에 저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있어 이웃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아왔고, 저의 마음도 너무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이라는 사악한 바람이 불어닥쳐 제 아들을 ‘앗아갔고’, 저의 행복했던 가정도 깨져버렸습니다. 1997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아들이 갓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 당시 사회에서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특기를 연마해야 한다는 사악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다방면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21세기에 운전과 컴퓨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멍청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추세에 휩쓸렸고 아들을 ‘멍청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컴퓨터 학원에 등록시켰습니다. 재난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컴퓨터를 배우고 나서부터 아들은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제 아들이 벌써 5일째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함께 실종된 아이가 3명 더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먼 길을 떠난 적도 없는 4명의 13살 아이들이 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5일이 지나도 아이들을 찾을 수 없자 부모들은 조급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PC방에서 5일이나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PC방 사장은 돈이 없는 아이들을 외상으로 계속 놀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아들은 귀신에게 홀린 듯이 수업을 자주 빼먹고 PC방에 갔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들을 사립학교로 보냈습니다. 그곳은 폐쇄형 교육이라 아들이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정문이 닫혀 있자 아들이 담을 넘어 밖으로 나와 인터넷 게임을 하고 학교에 돌아가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저는 아들을 무술 학교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인터넷 게임과 군것질을 하면서 한 달 생활비를 1주일 만에 다 써버렸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또다시 학교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게임을 하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15살의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자퇴를 하고 집에서 지냈습니다. 2000년, 저는 일 때문에 가게 안에 컴퓨터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매일같이 인터넷 게임을 하며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정상적인 생활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정신이 흐리멍덩해졌고, 활발하고 귀엽던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람도 귀신도 아닌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온종일 목각인형처럼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희를 낯선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아이를 절제시키기 위해 저희 부부는 밤에도 아들과 함께 잤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저희가 깊이 잠들면 몰래 문을 열고 가게로 가 밤새 게임을 했습니다. 컴퓨터를 비밀번호로 잠가 놓자 아들은 PC방으로 가 게임을 하면서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아들 때문에 온종일 맘고생을 하며 계속 살아갈 희망을 잃었습니다. 아들을 찾기 위해 저는 온 동네의 크고 작은 PC방을 수없이 들락날락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때는 2003년이었습니다. 아들은 늘 PC방에서 보름이나 20일 보내면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저희는 속상해서 머리가 허옇게 셀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간혹 아들이 크면 자제력이 생길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크면 클수록 상황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26살이 되어서도 아들은 여전히 매일 엎드려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채팅을 했습니다. 다리를 컴퓨터 책상에 올려 놓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머리를 한쪽으로 비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양아치가 따로 없었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아들을 꾸짖자 아들이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눈을 흘기며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 PC방에서 며칠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낮에 실컷 놀고 나서야 잠을 잤고 밤에 일어나 계속 새벽 1~2시까지 게임을 했습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며 누가 무언가를 시키면 화를 냈습니다. 게임을 하느라 밥 먹을 겨를이 없고, 심지어 밥을 컴퓨터 옆에 두고, 한쪽으로 먹으면서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게임 중독 때문에 저는 온종일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었습니다.‘어휴, 나이는 계속 먹고 있는데, 게임 중독은 언제쯤 끝이 날까?’ 아들로 인해 저희 부부의 싸움은 잦아졌고 무너진 가정을 보고 있자니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이제 컸으니 취직해서 돈도 벌어야지.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된다. 하지만 너 자신의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겠니? 우리가 평생 널 먹여 살릴 수도 없잖니.” 일하라는 말을 들은 아들은 인상을 팍 쓰더니 “일 안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아무리 권해 줘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들 머릿속에는 인터넷 게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터넷 게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제가 완전한 상실감에 빠졌을 때, 한 자매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신 창조주이시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의 생존 규율과 생존 법칙을 주재하시고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고 하면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滋養)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사람과 만물의 운명 역시 하나님이 배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사람은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제 아들의 어머니였지만 아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아들의 일로 상처받고 힘들어도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후로 저는 기도할 때마다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간혹 아들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고, 인터넷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은 옆에서 진지하게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계속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십몇 년간 인터넷에 빠진 아들 때문에 생겼던 걱정과 고통, 괴로움이 조금씩 사라졌고, 마음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제가 본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자리 채용 광고지를 가져왔습니다. 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있는지 한번 보라고 하자, 아들은 “이따가 전화해서 물어볼게요”라고 했습니다. 조금 지나자 아들은 한 상점에서 배송 기사를 구하고 있다며 사장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장은 아들을 마음에 들어했고 다음날 바로 출근을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13살부터 26살까지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허송세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들은 출근할 뿐만 아니라 부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배송 기사로 일하고, 밤에는 택시 운전을 합니다. 이미 5년을 그렇게 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며 하나님이 참으로 전능하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은 홀가분해졌고, 더 이상 아들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진정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한 아들을 보고 저는 자신이 하나님의 지극하신 구원을 받았음을 느꼈고 밝은 인생 길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립니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전망이 있겠느냐?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느냐? …이방인들에게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를 돌이켜보면서 저는 인터넷 게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사탄의 수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행복한 가정의 연약한 청소년들이 사탄의 괴롭힘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수단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인터넷 게임에 빠지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정상적인 인성 및 양심과 이성을 잃게 됩니다. 타락에 빠지고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활기가 넘치던 아이들은 인터넷 게임의 괴롭힘으로 인해 ‘병든 청소년’이 되고 의욕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의지도 없고 끈기와 이상도 없습니다. 마귀와 사탄은 인터넷을 이용해 아이들을 미혹하고 심령에 해를 끼칩니다. 공부와 일마저 하기 싫게 만들고 온종일 인터넷 게임, 채팅, 드라마에 빠져 방향을 잃게 만듭니다. 인성을 잃은 아이들은 갈수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게으르고 교활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국가의 교육 기관과 유명인, 사회 세력도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풍조를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하나님의 지혜는 사탄의 궤계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것인지 구분할 줄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전능과 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해치는 사탄과 마귀의 수단이 얼마나 음험하고 악독한지 알았습니다. 인터넷 게임은 바로 사람을 죽이는 피 없는 칼과 같았고 사람을 통제하고 삼키는 사탄의 저주와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은 단지 외적인 것이고, 그것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그 수단이야말로 가장 음험한 것이다. 사탄은 그 수단으로 그것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사탄은 사람의 심령을 짓밟아 반항할 힘이 없게 한다. 즉, 너의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사탄에게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매일 너에게 이런 것들을 주입시키고, 이런 사상과 문화로 너에게 영향을 주고 너를 물들게 한다. 그것으로 너의 의지를 조금씩 무너뜨리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자신의 소위 말하는 정의를 견지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부지중에 너는 흐름에 역류하려는 의지력이 없어지고 오히려 그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게 된다.‘짓밟는다’는 것은 바로 사람을 괴롭혀 인간도 귀신도 아닌 꼴로 만든 다음 기회를 타서 삼킨다는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그 어떤 수단도 다 사람에게 반항할 힘이 없게 한다. 그 어떤 수단이든 다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데, 사람 역시 반항할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저지른 어떤 일이나 어떤 수단이든, 모두 너를 타락하게 하고 사탄에게 통제당하게 하며,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인데, 극히 잔인하고 악독하며 음험하고 비열하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람을 타락시키는 사탄의 수단은 가장 음험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의 음험한 속셈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와 관념에 어울리는 말들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자신의 욕망만 채우게 만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만듭니다. 사탄이 일으킨 사회 풍조는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망쳤습니다. 또한 사탄의 모든 계략은 사람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으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됩니다. 제가 사회 풍조에 따라 아들에게 컴퓨터를 배우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들도 인터넷 게임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터넷 게임의 유혹이 없었더라면 아들도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탄의 음험한 속셈은 바로 각종 방식을 이용해 사람에게 노는 데 정신이 팔리게 하고 사악함을 숭배하고 스스로 타락하게 만들어 결국 사탄에게 잡아 먹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사탄은 바로 모든 죄악의 근원이자 최고의 죄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이 일으킨 모든 풍조는 겉보기에는 아무리 번지르르한 것 같아도, 그것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함정이며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분별하고 사탄의 간계를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사탄이 온갖 수단을 다 쓰고 사악함이 극에 달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전능자의 눈은 매우 깊이 해를 입은 인류를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들리는 것은 고통받는 사람의 애곡 소리이고, 보이는 것은 해를 입은 사람의 염치없는 모습이며, 느껴지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잃은 인류의 무기력함과 두려움이다. 인류는 그 원수와 함께 그 심해(深海)의 괴로움을 다 맛볼지언정 그의 보살핌을 거절하고 제 갈 길을 가며, 그의 눈의 감찰을 피하고 있다. …인류는 전능자의 생명 공급을 떠나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또 죽음을 두려워하며, 의지할 데 없고 도움받을 데도 없지만 여전히 두 눈을 감으려고 하지 않고, 영혼 지각이 없는 육체를 억지로 지탱하면서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다. 너는 이렇게 소망이 없고, 그도 이렇게 목표 없이 살아가고 있다. ‘오직 전설 속의 그 거룩한 자만이, 괴롭힘 속에서 신음하며 그의 돌아옴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이 신념은 지각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실현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바라고 있다. 전능자는 심히 고통받은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동시에 또 지각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오래 기다려서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고 하는데, 너의 마음을 찾고 너의 영을 찾아 물과 양식을 주어 너를 소생케 하고,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하고, 더 이상 굶주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 네가 지쳤다고 느낄 때,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이라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흐느끼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언제나 돌아오는 너를 포옹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참혹한 상황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으셨고, 인류가 사탄에게 타락된 사실과 진상을 보고 계시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무력하게 발버둥 치는 인류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간다면 기댈 곳이 없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도 없습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휩쓸려가고 끝없는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을 떠나면 사탄의 괴롭힘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사탄에게 유린당해 벗어날 힘도 없습니다. 사탄이 가장 날뛰며 사람을 해치고 있는 말세의 마지막 시기에, 하나님은 다시 한번 성육신하셔서 인간에게 말씀을 선포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영을 깨우시고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베풀어 주시며 선악을 분별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흑과 백을 구분해 하나님에게 속하는 긍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사탄에게 속하는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로써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간계를 꿰뚫어 보고 사탄을 철저히 배반하게 하며, 결국 하나님께 구원받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십니다! 이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아멘!

위험한 지경에서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다

제 이름은 깐신(甘新)이라고 합니다. 올해 51살이고 평범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96년에 예수를 믿었고, 2004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읽고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여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였습니다. 2008년에 교회 책임자가 하나님 말씀 책을 보관하는 본분을 저에게 안배해 주었고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에서 책을 저희 집으로 운송해오면 저는 책들을 정리하고 잘 포장해서 작은 방 온돌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습니다. 매 번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책이 습해지지 않도록 창문을 열어 통풍을 시켰습니다. 2013년 8월16일 오전,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비가 주룩주룩 쉼없이 내렸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는 하늘이 갑자기 더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함께 치면서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은 물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는데 빗줄기다 굵어지더니 점점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저는 안절부절못하여 속으로 ‘만약 비가 이렇게 계속 내려 물이 불어나면 어떡하지? 방안에 보관한 하나님 말씀 책 30여 박스는 괜찮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얼른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홍수라도 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에 이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 책이 보관되어 있는데, 형제자매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들을 지켜주세요...’ 저는 기도를 끝내고 다시 창밖을 보았는데, 폭우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급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몇시간 동안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마음은 그야말로 하나님 곁을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다시 창밖을 보았습니다. 집 마당의 대문은 불어난 물에 일부가 부서져 닫히지 않았습니다. 물은 ‘콸콸콸’ 마당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고 (물은 이미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남편은 벽돌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의 입구를 막으려 애를 썼지만, 물살이 너무 세차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웃이 큰 소리로 저의 남편에게 “어서 피해요, 막지 말아요, 막아도 소용없어요, 산위에서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황급히 방으로 들어오면서 저에게 “여보,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어, 서둘러 장화를 신고 빨리갑시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망설였습니다. ‘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어떡하지? 갈까 말까? 물이 불어나 지금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거나 목숨을 잃게 되잖아’라고 생각하다가, ‘안돼, 본분이 중요해! 하나님의 부탁이 우선이고 본분이 우선인데, 내가 만약 간다면 본분을 다하지 못한거야, 하나님 말씀 책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다면 손실을 입게 되는데, 이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야, 내 목숨을 보존하려고 본분을 팽개칠 수 없어! 죽더라도 하나님 말씀 책을 보호해야 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미그적거리면서 장화를 신자 남편은 장화를 먼저 신고나서 “빨리 신어! 뭘 그렇게 꾸물거려?”라고 재촉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너의 의무를 다하며, 너의 직책을 이행해야 하고, 본분을 지켜야 할지니라.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드려야 할 너의 몫을 바칠지니라. 아니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남아 있을 자격이 없느니라.”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그래, 재난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지배하고 계시는데, 아무리 많은 비가 온다해도 다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만사만물은 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나는 지금 떠나면 안돼! 오늘 어떻게 해서라도 이 본분을 지켜야 돼, 하나님 말씀 책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하늘에 속하는 만나야, 사람에게는 말씀 책이 꼭 있어야 해, 나는 죽어도 이 방에서 죽을거야, 비록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할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장화를 신지 않았습니다. 이때, 산위에서 물이 흘러내려와 대문 입구를 거쳐 마당안으로 들어왔습니다.(집은 지대가 높고 마당은 지대가 낮습니다)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가, 여기 있어야 돼, 물살이 이렇게 센데 더 가면 휩쓸려 떠내려가게 될 거야, 우리 둘의 생사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어…” 남편은 “차라리 우리 옥상으로 올라갈까?”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다리가 마당에 있는 포도나무 받침대 아래에 있었던 탓에, 남편은 거친 물살을 헤치고 휘청거리며 사다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와 남편은 사다리를 타고 차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저녁 여섯시 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저의 집에서 동쪽 큰 길은 이미 강으로 변했고 이웃집의 담벼락은 홍수에 휩쓸려 갔으며, 장작더미는 홍수에 휩쓸려 도처에 나뒹굴었고, 말들은 머리만 드러낸 채로 물속에서 떠다니고, 이웃인 앞집 가족 세 명은 지붕위로 올라서서 긴장한 채로 떠들어대고 있었고, 이웃집 노인도 창고에 올라가서 지붕 기와에 엎드린채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온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십여분이 지나고 저와 남편은 ‘우지끈’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편은 “큰일났어, 물이 방안으로 들어왔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서 ‘땡그랑’하고 물건들이 여기 저기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 물이 불어나 집이 물에 휩쓸려 가면 하나님 말씀 책들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는데 어떡하지? 하나님 말씀 책은 내 생명과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인데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는 너무 보잘것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재난앞에서 저는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합니다. 하나님, 말씀 책들을 당신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께서 보호해 주세요. 재난은 하나님께서 장악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는 권병이 있으시며 이 모든 것들을 주재하고 관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겠습니다…’ 저와 남편은 차양위에 반시간 남짓 있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옷도 이미 다 젖었습니다. 번쩍이는 번갯불에 눈이 자극을 받아 순간 저는 흐릿하고(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차라리 우리 그냥 내려가요, 생사는 다 하나님 손에 달렸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데, 죽을 팔자라면 피할 수 없잖아요. 우리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남편은 차양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베란다 30~50cm높이까지 물이 불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된 방문의 나무판자 절반이 이미 물에 휩쓸려 떨어져 나갔고, 그 사이로 물이 방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창문 밖에서 방안을 들여다 보니 온통 물로 가득찼고 바닥에 있던 전병을 넣는 항아리는 이미 뒤집혀 있었는데 의자위에도 전병이 있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 남편은 황급히 창문을 열어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전병을 주방의 싱크대 위에 두었습니다. 뒤이어 저도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닥에는 의자, 우산, 기름통 그리고 다른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고 물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물이 계속 흘러 들어와서 온돌 위까지 올라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책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니, 속이 바질바질 탔지만 속수무책으로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또 온돌 가장자리에 앉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물이 온돌 위까지 곧 차올라 옵니다. 저는 어떡하죠? 이 책들이 물에 휩쓸려가면 어떻게 하나님을 뵐 면목이 있습니까! 또 형제자매님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 책이 꼭 있어야 합니다. 만약 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저도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도 가치가 없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저는 부엌으로 가서 대야를 가져와 고인 물을 밖으로 퍼냈습니다. 하지만 퍼내는 동시에 물이 흘러 들어와서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대야를 가져와 저희는 함께 물을 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여분 뒤 번개가 번쩍였는데 남편은 얼른 고개를 드니 대문 입구가 커다란 나무와 각종 잡다한 물건들로 막혀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기뻐 소리질렀습니다 “아!여보,빨리와서 봐봐!나무가 대문 입구를 막아 물이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있어”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대문 입구쪽을 보았는데 속으로 매우 흥분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인데, 하나님께서는 시시각각 함께하시고 저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아! 전능하신 실제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시고 당신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니이다. 우리 모두 당신의 날개 아래에 엎드려있으니 재해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신성한 보호와 보살핌이니다” 이때, 문 입구의 물살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또 한시간이 지나자 집 밖의 물들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더 힘을 내 물을 퍼냈습니다. 우리는 힘껏 노력하여 끝내 방안의 물을 다 퍼냈습니다. 저녁 10시경에 비는 그쳤고 저희는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들이 어떤 손실도 입지 않도록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행사를 찬양하며 아울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다음날, 저는 일찍 일어나서 물이 거의 빠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마당에 진흙이 두껍게 쌓였을 뿐, 담벼락은 물에 휩쓸려 가지 않았고 집에도 어떠한 손실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홍수라는 재난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권병과 전능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관리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그야말로 기묘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하나님은 줄곧 그렇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이번 경력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이 있게 하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했고,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게 했습니다. 깐신(甘新)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

인생의 깨달음 오직 욥을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야’만 행복한 인생을 얻을 수 있다. 결혼한지 몇년차에 접어든 그는 직장인 입니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고 자식도 영리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할 수밖에 없어 그는 인생이 정말 막연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한 사람, 중년인 그는 화이트 칼라입니다. 먹고 입을 근심이 없지만 승진과 더 많은 연봉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잔업을 해야 했고 접대가 많아서 제시간에 퇴근도 하지 못해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칩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말년에 이른 부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떳떳하고 부러워 할지 모르지만 재산을 놓고 서로 다투는 자녀들 때문에 말년의 그는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삶은 다른 인생 경험을 가져다줍니다. 서로 다른 인생 경험은 또 서로 다른 고민과 쓰라림이 따르게 됩니다. 사람은 다 완벽하길 바랍니다. 가족이 화목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명예와 재물을 함께 얻어서 마음이 충실하길 바랍니다.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 불만과 유감을 가지며, 어느날 세 사람은 만나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은 화이트 칼라의 안정된 직업을 부러워했고 화이트 칼라는 부자가 사업에 성공한 것을 부러워합니다. 부자는 직장인의 가정이 화목한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다 생활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행복한 인생을 얻으리라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직장인은 윤택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먹고 마시고 놀며 즐기는 사교(社交)장소에 잡혀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어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이트 칼라는 사업에 성공한 사장님이 되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사람에게 속아 재산을 빼앗길까 봐 경계하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들은 그의 제삿날에야 산소에 가서 꽃바구니를 차려놓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대다수가‘직장인, 화이트 칼라와 부자’중의 한사람이 아닐까요? 가난할 때는 안일한 생활을 동경하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하여 아무 근심이 없을 때는 큰 부자가 되길, 그러나 정작 큰 부자가 되고 나면 더 깊은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제비는 가을에 날아갔다가 봄이면 다시 돌아옵니다. 푸른 풀은 겨울에 시들었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몇년, 십여 년, 혹은 몇십 년동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합니다. 짧은 시간에 목숨을 걸고 금전, 지위, 감정, 혹은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는 물건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우월한 물질적 향락을 누릴 수는 있어도 마음의 평안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지위는 우리의 허영심을 일시적으로 채울 수는 있어도 마음 속의 고독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육체 관계를 잠시 유지할 수는 있어도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몇 단락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이 하나님의 명정 가운데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고, 또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하나님이 없는 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날,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의의가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적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에게 깊이 반성하게 하는 이 말씀을 보고 갑자기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을 깨닫게 된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출생, 성장, 가정,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는 다 조물주의 손 안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고, 사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을 다 합당하게 안배하셨습니다. 사람이 한정된 시간 내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그건 시간과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고, 남는 것은 공허함과 고통 뿐입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재된 욥에 대해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일생 동안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반듯한 아들 딸을 베풀어 주었고, 엄청난 재산과 많은 하인과 가축을 베풀어주었지만 그는 안락한 생활 속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대적할까 봐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이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욥은 확실히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 진리를 실행했습니다. 욥기 1장 21절을 보면, 후에 사탄의 시험이 닥쳐 모든 자녀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서 아내와 친구들의 조소와 조롱을 당했지만 욥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면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재산, 감정, 명예를 잃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어도 이전과 다름없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는데, 사람이 세상에세 살아가면서 수명이 길든 짧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의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복을 받든 화가 닥치든 신경쓰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몇 배의 축복을 다시 받게 된 것입니다. 더 좋은 자녀와 몇 배가 되는 재산을 얻었고 천수를 다 누릴 수 있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도(道)를 실행하여 마음속에 편안함과 평온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욥의 후반생은 계속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 속에 있었고, 더 이상 사탄의 침입과 방해가 없었으며, 그는 완전히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고뇌하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큰 돈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전, 미녀, 명리와 육체를 자극하는 것들이 사람에게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아 아직도 지위를 갖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는 사람,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주목받고 떠받들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리를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점점 모든 인격과 도덕을 상실하게 되고, 진정한 친구를 다 잃게 되며 주위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이 당신이 원하는 생활입니까? 사람은 일생 가운데서 사탄의 시험에 자주 직면하게 됩니다. 금전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지위든 권세든 다 충분히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진리의 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주 사탄의 시험에 빠집니다. 사악을 숭배하는 원인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행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 사역을 많이 하거나 좋은 행실이나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만 중요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어놓고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상고하고 실행하는 것에는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욥처럼 살면 어떨까요? 금전과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무슨 일이 닥치든 자기의 애호와 욕망과 상상대로 맹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나날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점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고 진리가 자기 생존의 근거와 생명이 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이 만족스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게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입니다. 제가 금방 본 아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늘 표면에서, 도리상에서 떠다니고 안으로 실행하지 않으며 안의 각종 정형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언제나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진리가 너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사실이다......네가 믿음이 있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명이 부지중에 너의 생명이 된다. 이렇게 부지중에 너의 이 생명 안에 곧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의 요소가 있게 되고 이런 실제가 있게 되고 이런 살아 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지 않겠는가? 네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으면 너에게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케 하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희망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아무런 난이도도 없다.” 향의(向義)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

중국에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일은 하나 보태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낫다” “남의 덕을 볼 줄 모르면 멍청이다” 등등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이런 말들을 격언과 명언으로 삼고 심지어는 제가 처세하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어도 저는 이런 “최고 명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져 왔으니 틀림없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츰차츰 탐욕스러워졌고 정직했던 마음도 점점 마비되어 갔습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시내에 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 탔는데도 매표원이 저에게 표를 사라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표를 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저는 모르는 척 무임승차 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도 저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번 이득을 본 것에 기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최고 명언”대로 살아왔고 계속 제가 맞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며, 매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고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직이란 일하고 말함에 여러 가지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상관없이,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든 이방인과 함께 지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하고 남에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하거나 기만을 해서도 안 되며,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 올 수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선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어나게 했고 예전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저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다 옳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원래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됨이의 원칙과 인격을 잃었으며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처리한 것을 남 몰래 기뻐했다는 것에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최고 명언”이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마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익을 조금 얻긴 했지만 잃은 것은 오히려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와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을 받았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급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모두 심하게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심하게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고 있고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한 영향 아래서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구비될 수 없고 더욱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질이 있을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타락시킨 이 사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무엇이 정의이고 광명인지 모르고 사탄의 이러한 사상에 완전히 젖어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권세 하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러한 “최고 명언” 즉, 사탄의 독소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저의 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광명이고 흑암인지 몰랐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을 몰랐기에 비천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게 되었고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더러운 곳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면서 저에게 정확한 인생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밖에서 일처리를 다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를 사려고 10위안을 꺼내 매표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매표원은 저에게 거스름 돈으로 4.5위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제가 20위안을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14.5위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받는 순간 이득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또 기뻤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요구를 생각하니 기뻤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선뜻 돌려주기는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이 알면 저를 바보라고 말할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성격이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은 마치 어둠속의 등잔불처럼 저에게 실행의 길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보는 것을 늘 싫어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셔셔 구원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은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시지 않고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길, 생명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먼저 가서 매표원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매표원이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하고 나니 제 마음은 처음으로 즐거웠고 매우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즉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국도(國度)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시행한 간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간계를 다 폭로해 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그지없이 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ㆍ쓰레기ㆍ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고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가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무지한 인류로 하여금 모두 나를 위해 증거할 수 있게 하는데, 즉 “내”가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조물주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이고 사탄은 피조된 다음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역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타락된 인류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발표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저의 추악상을 드러내시는 것은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이것이 저에 대한 구원임을 말씀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에 제가 지켜왔던 “최고의 명언”들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최고의 명언”에 따라 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더 추해져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베풀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남편의 외도로 잃어버린 행복,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다

남편의 외도로 바라던 행복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고통과 절망뿐이였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기로에 서서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는데,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별의 고통을 버리고 행복의 새삶을 되찾았을까요?

장사의 성공 비결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2008년, 나는 둘째 형과 동업해 제과점을 열고, 빵, 카스텔라, 과자 등 다양한 제과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 계란 역시 100리 가까이 달려가 신선한 것으로 구매했다.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첨가제 등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분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나날이 지나가고, 장사도 점점 잘 됐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연말에 결산을 할 때, 원가를 제하고 단돈 900원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마을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또 내고 속으로 이번에는 장사가 분명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손님은 정말 전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제과의 품질이 마을에서 좋게 소문이 나서 어떤 과자와 카스텔라는 또 슈퍼마켓에 도매로도 팔렸다. 나날이 상승하는 판매량을 보며 나는 마음이 흐뭇했다. 연말에 잔뜩 기대하며 연 수입을 계산했을 때, 우리가 번 돈이 겨우 일상 지출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의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수입이 적어 남는 돈이 없다면 나중에 형의 가정이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가게에 와서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만든 카스텔라는 다른 집보다 못한 것 같네요!” 나는 손님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얼른 물어보았다. 손님이 대답했다. “여기서 파는 카스텔라는 색깔이 덜 노래요. 계란을 많이 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손님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집 카스텔라가 노랗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넣은 계란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왜 색이 노랗지 않는가? 이 때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처럼 카스텔라를 만들어 팔아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계란을 더 넣게 되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러나 계란을 더 넣지 않으면 색이 좋지 않아 사는 사람이 또 많지 않고, 많은 손님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카스텔라의 색깔을 보기 좋게 하려면 색소를 넣어야 해. 정직하게 계란을 넣는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게다가 색소를 넣으면 계란은 조금만 넣으면 돼. 겉으로만 봐서는 계란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무도 몰라. 장사를 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돼. 돈을 벌고 싶으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을 좋아해. 영양이 없더라도 보기 좋고, 맛만 있으면 돼. 그러면 사려는 사람이 많지.”나는 그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카스텔라는 좋은 식재료를 썼지만 손님은 이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보았다. 친구는 나처럼 2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 정작 본인은 본전만 겨우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색소를 넣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안했다. 식용 색소라고는 하지만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인데...... 갈등하던 중 내가 제과 일을 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사촌 형이 말했다. "색소를 넣으면 되지. 정직하게 장사하면 정말 돈을 벌 수 없어. 지금 사회가 그래. 네가 돈을 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도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제과점을 봐. 몇 년 동안 장사하더니 차도 사고, 집도 샀잖아. 그게 다 그렇게 번 것 아니겠어? 네가 안 넣는다면, 내가 먼저 넣을게." 그 후, 사촌 형은 정말 계란 대신 색소를 쓰고, 최상급 샐러드유 대신 드럼통의 보통 식용유로 바꿨고, 밀가루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바꿨다. 사촌 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전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는데 형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색소를 샀어. 네가 만들때 조금 넣어."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은 괴로웠다. 이 색소라는 것은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 하지만 형이 이미 사왔고 사촌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도 모두 넣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럼 조금만 한 번 넣어 볼까? 이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색소를 쏟아 부었다. 과연, 색소를 쓰고 난 후 카스텔라의 색깔이 보기 좋아졌다. 그런 금빛 찬란한 카스텔라를 보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손님이 먹고 탈이 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손님과 마주할 때 마음이 찔려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이 무엇에 짓눌린 듯 괴롭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손님한테도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돈의 유혹을 받아 나도 사촌 형처럼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를 쓰고, 식용유도 낮은 등급으로 교체했다. 원가가 줄어들면서 버는 수입도 많아졌고, 서서히 나의 양심의 불안도 차츰 사라졌다.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이 물욕 넘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가져야 할 양심, 도덕을 상실하고 기꺼이 이 악한 사회의 흐름에 따르고, 사탄에 의탁했다. 간사한 수단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정말 속이 검은 장사꾼이었다! 처음에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사를 하던 생각이 났다.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속임수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서 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돈은 좀 벌었지만 인격을 잃었고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조금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후회했다. 다시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었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처럼 살고 싶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리를 도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얻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오늘 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나는 더 이상 사회의 흐름을 따라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 나는 형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색소를 넣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느꼈다. 모두가 속임수를 쓰는데 나만 안 쓴다면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고 우리 가게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지닌 채 나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게 없을 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세요.”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5-26、31-33)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믿음을 주었고,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의 일, 생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나의 장사가 좋고 나쁘고, 카스텔라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하니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 욕심이 너무 커서 돈에 두 눈이 먼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배불리 먹고,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떳떳하게 살면서 광명정대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어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사했다. 더 이상 색소를 쓰지 않았고 품질이 낮은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모두 바꿨다. 손님이 내가 만든 카스텔라가 색깔은 안 예쁘지만, 아주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그분에게 카스텔라에 색소를 넣지 않고 계란만 넣었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손님은 듣고 나서 나의 방법을 칭찬했고, 주위에 내가 만든 제과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위안이 되었다! 그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식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두 우리 집의 제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도매상이 우리 가게의 한 과자를 맘에 들어 하면서 주동적으로 도매에 나섰다. 나중에 우리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도 아주 잘 됐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가 속임수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을 때 뜻밖에도 매상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살 소녀가 찾은 죄에서 벗어나는 길

저는 마루(Maru)라고 부르며 필리핀 사람입니다.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었고 매주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 목사가 자주 야고보서 4장 4절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비록 이 성경 구절을 자주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저의 생활은 방탕하여 이방인과 다름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통 학교 과제와 여러가지 활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 따라 수업 빼먹고 번화가로 나가 활보하며 놀기 좋아했던 저는 세상 조류를 따르며 유행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갖지 않았던 저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번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땐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예배만 끝나면 생활은 예전과 마찬가지었습니다. 평소 저는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와 웃어른을 아예 안중에 두지도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들의 말은 듣지도 않았는데, 늘 그들의 단점과 흠을 집으며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이 성경 구절을 생각하면 자신을 뉘우치긴 하였지만 타인의 흠과 단점은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매번 교회에 가서 청소하거나 주일 예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주며 일손을 도울 때도 제가 한 일에 항상 관심을 갖고 칭찬해 주길 바랐습니다. 제가 한 이 모든 출발점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바란 것이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태복음6:1~4)이 말씀에서 저는 자책감을 받았고 자신이 아주 이기적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행한 모든 것은 사람의 높임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전도서 11장 9절의 말씀을 늘 상기하였습니다.“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저는 이런 가르침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가책을 받았고 자신의 죄로 인하여 괴로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님께 늘 자신의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는 늘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며 당신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기도는 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저를 버리지 않을까 늘 걱정했습니다. 비록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지만 저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없었고 죄속에 살면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원인인지 몰랐지만 주님만은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냥 이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저녁, 마닐라에서 돌아온 워시 아주머니가 감격에 겨워 저희에게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지금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의 사역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주님이예요. 하나님은 이미 땅에 오셨고 6000년 경영계획에서의 마지막 한단계 사역을 하고 있어요. 이 한단계 사역의 목적은 바로 인류를 정결케 하고 인류의 죄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저희는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조심스레 “저는 아직도 무의식중에 죄를 범하고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 저를 받아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천부의 뜻을 준행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으니 우리가 만약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낙담하고 소극적이 될 필요는 없어요. 주님은 은혜시대에 죄를 사하는 사역만 하셨지 죄의 뿌리를 없애는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죄를 범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주님의 구속사역의 기초 위에서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 사역을 하여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구원하는 거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 두단락을 우선 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죄를 범하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 그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이런 문제를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 성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정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정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에 대해 폭로한 말씀들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고,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알게 되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고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위의 말씀을 읽은 다음 워디 아주머니는 계속 교제하여 주었습니다. “은혜시대에서 주님은 한 단계 구속 사역을 하였지요. 비록 우리는 속죄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우리의 죄성은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을 받아 늘 죄를 범하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과 통제 속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면서 늘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로 인해 사람은 자신이 늘 죄를 범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을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자주 의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의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한단계 심판의 사역 즉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여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발표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의 실질과 진상 그리고 인류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심판하고 폭로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자신의 본성이 교만자대하고, 이기적이고 궤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등 사탄성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려고 추구하고 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인식하려고 추구한다면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생명 성정은 변화가 있게 되는데, 점점 양심과 이지가 있게 되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어 나중에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은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인류가 몇 천년간 죄를 범하고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끝내고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흑암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아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기 위한 거죠. 우리가 심판 사역에서 정결함을 얻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죄 사함만 받았지 죄성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예전에 주님의 가르침을 늘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알고보니 제 안에 아직도 죄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니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결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는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생활은 이방인과 같았는데, 세상의 조류를 따르며 거의 기도하지 않거나 성경을 보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데만 머물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는데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패괴성정이 조금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서 개인적인 일로 바빴는데 집안의 어른이 저더러 밖에 나가 뭘 좀 갖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화가나서 성질 부리려 했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을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 정말 적합할까? 나는 정결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저를 일깨워 주면서 혈기를 내지 않게 되었고, 저는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까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물론 지위가 없는 패괴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유로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패괴와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가지 일이 닥치면, 우선 자신을 내려놓고 육체를 가장 비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구는 더욱 한도 끝도 없게 되어,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에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육체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이 있어 너에게 늘 그것을 만족시키게 하여 항상 누리려고 한다. 먹거나 입거나 성질부리거나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리고 나태하거나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은 더 커지고, 또한 점점 더 방탕하게 되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사람의 육체는 더 깊은 관념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치켜세우게 되며, 게다가 하나님의 사역을 의심하게 된다.』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면 화를 내고 화를 낸 원인은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교만한 본성이 나온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에 따라 일을 한 것이며 이렇게 할수록 저는 성질만 더욱 잘 부리고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저는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순복하는 것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반성할 때 저의 정서는 통제되었고 성질부리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체통에 관한 교통에서 예의를 차리고 범절을 알며, 연장자를 존중하고 아랫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연장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차분해졌는데 진정한 포용과 인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저에게 임한 것이며 여기에서 진리에 순복하는 것으로 사탄의 패괴 성정이 조금씩 벗겨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다》라는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 너에게도 베풀어 주고 나에게도 베풀어 주고 그에게도 베풀어 주며, 진심으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다.』하나님은 확실히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말세의 구원을 얻을 기회가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한번도 저를 떠난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저의 생활은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저는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본분은 열심히 하면서 예전처럼 세상의 것을 좇지 않습니다. 그외에도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임하면 먼저 순복하는 것을 배우고 그 다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찾고 구합니다. 저는 자신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기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나중에 철저히 사탄의 패괴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리가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