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사탄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련의 차이점을 논하다

2019년 04월 21일

성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야고보서 1:13) 그래서 어떤 형제자매님은 시험과 시련의 차이점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제가 아는 만큼 교제하겠습니다.

1. 근원에서 차이점을 찾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처럼 사탄을 ‘시험하는 자’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에 따라 광야로 나가 사탄에게 세 번이나 시험받으셨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전 재산과 자녀를 잃었는데 역시 사탄의 시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시험은 사탄에게서 온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야고보서 1:13)

하지만 시련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스가랴 13:9)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련할 때 사탄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두 번이나 욥을 참소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욥은 순식간에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으며 나중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통해, 욥을 시련하였고, 사탄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2. 본질과 이뤄 낸 효과에서 차이점을 찾다

사탄의 본질은 사악하고 악독하기 때문에 사탄에게서 비롯된 시험 역시 사악하고 악독합니다. 우리는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시험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은 후, 영이 죽었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즉, 일생 동안 분주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 고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사탄이 움직이자 강도들에게 온 산에 가득했던 우양이 약탈당했고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또한 사탄은 욥의 살가죽을 움켜쥐었고, 욥에게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욥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공의롭고 거룩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서 온 시련 역시 아름답고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

하나님께서 욥을 시련하실 때 그는 산에 가득했던 우양과 자녀를 다 잃었고, 온몸에 악창이 났으며 친구들도 그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욥을 저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련을 겪은 후에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순종은 완전해졌으며 하나님을 향한 인식도 승화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겪은 후 욥의 증거로 인해 세상 사람들과 사탄 앞에서 비난받을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욥은 이때부터 사탄의 참소에서 철저히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로 욥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욥은 시련을 겪고 나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수명이 배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많은 재물과 예쁜 자녀 열 명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바람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 사탄의 동기와 하나님의 뜻에서 차이점을 찾다

시험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시험의 목적은 사람을 해치고 타락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이 기회를 빌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깨트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멀리하도록 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련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시련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고 체험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하여 믿음을 크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고 순종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 자매님이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아들이 전화를 해서 그녀의 남편이 아파서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자매님은 집에 돌아가서 남편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교회에 자신이 처리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그녀는 이 상황이 영계의 싸움이며 사탄의 시험이 임한 것으로, 사탄은 이 기회를 빌어 교회의 사역을 수호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교란하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검증하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개인의 이익을 선택하는지 아니면 교회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선택하는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사탄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하나님을 실망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우선 교회의 일을 다 처리한 후에 병원에 가서 남편을 간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렸을 때, 뜻밖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고, 남편의 병이 호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몇 번 체험한 자매님은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닥쳤을 때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법을 알게 되었고, 또한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차이점을 장악하고 나서 무엇이 시험이고 시련인지를 대략적으로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이 닥쳐도 어떻게 해야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시련 가운데서 굳게 증거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은혜시대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시대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경 참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무릇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고,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상 (2)>에서 발췌 『인류는 주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명의상으로 말하면,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오는 데에 있어 장벽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실제적인 사역을 하면서 미리 겪었고, 하나님 자신이 바로 속죄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속량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노략당한 후에, 한 걸음 더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마지막 단계에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사탄과 싸우는 최후의 한 단계 사역이다. 곧,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 내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에 내포된 뜻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한 후에 조물주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탄을 배반하고 완전히 하나님에게 돌아오면 철저히 구원받은 것이다.』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여 패역 성정으로 가득 찼고 더럽기 그지없는데, 정결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내는 것이 너무 많고 육체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육체에 대해 어느 지경에 이르기까지 증오한다. 사람은 사탄의 더러움과 패괴된 것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여전히 더러움과 패괴를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 속한다. 사람의 아귀다툼, 간사함, 교활함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의 것에 속한다. 너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틀릴 리가 없는데, 다 사람을 구원하여 흑암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믿으면 육체의 이런 패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육체 패괴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 너는 하나님을 창현(彰顯)할 수 없고, 더러운 것에 속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없다. 네가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고 나면 거룩한 사람이고 정상 사람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기쁨을 얻게 된다.』 <실행 (2)>에서 발췌 『사람이 만약 하나님이 요구한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으로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그 사람에게 완전히 효과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가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육체의 본성, 즉 그의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한 후에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그가 이런 말씀대로 살고 이런 진리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오늘의 진리는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고, 이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 구원의 은혜는 너희가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너희가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게 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 얻어지기 위한 것이다. 오늘 내가 한 말을 너희가 다 들었으니 너희는 이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맨 마지막에 너희가 이 말씀을 실행해 내면, 즉 내가 이 말로 너희를 얻고, 동시에 너희도 이 말씀을 얻으면 바로 이 크나큰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너희가 정결케 되면 진정한 사람에 속한다.』 <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어느 날까지 경력(역주: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근본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는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의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에 대해 그것이 있으나 없으나 다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일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의 모양이 있는 사람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당신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이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그렇게 행하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자신을 반성해 보시고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사마다 목사나 장로를 따르며 순복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지, 사람을 높여서는 안 되고 사람을 앙망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첫째로 보고 네가 앙망하는 사람을 둘째로 보고 네가 셋째라고 해서는 안 된다. 너의 마음속에 어떠한 사람의 지위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을 특히 네가 숭배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등호로 긋고 평등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세 역사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심판, 형벌의 말씀을 발표하셔야 합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은 무엇 때문에 여성입니까?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이 하는 매 단계 사역은 다 실제적 의의가 있다. 당시에 예수가 올 때는 남성이었고, 이번에 올 때는 여성이다. 여기로부터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영이 와서 마음대로 하나의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이 육신은 그를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와서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시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여자 아기이고 남자 아기가 아니라 해도, 그 단계의 사역을 여전히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 이 단계의 사역을 남성으로 바꾸어서 해야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한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 않지만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 하였는데, ‘자’라 하면 남성이다. 이 단계에는 무엇 때문에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가 사역을 하는 데는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지 다 실제 의의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것은 두 차례인데, 말할 것 없이 말세에는 최후 한차례이다. 그는 와서 그의 모든 행사를 나타낸다. 가령 이 단계에서 도성육신으로 친히 역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목도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 관념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다만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라고 영원히 여긴다. 이 이전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남성일 수밖에 없고 여성을 하나님이라고 칭할 수 없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남자를 여자의 권세로 삼았고, 여자가 권세를 담당해서는 안 되고 남자만이 담당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또한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 하였고, 여자는 남자에게 순복해야 하고 남자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한 것은 뱀의 유혹을 거친 아담과 하와를 놓고 말한 것이지, 여호와가 시초에 만든 남자와 여자를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로서는 반드시 자기의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고 자기의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으로서는 반드시 식구를 먹여 살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류가 땅에서 생활할 때 준수해야 할 여호와가 정한 율례와 규례이다. 여호와가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이 말을 한 것은 다만 인류(바로 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인류가 순서있게 생활할 수 있고 관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여호와는 모두 적합한 규정을 하였다. 이것은 다만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말한 것일 뿐,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과는 결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가 말씀한 것은 단지 피조된 인류에게 말씀한 것인데, 피조된 인류의 정상 생활을 위해 남자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모두 규정이 있게 된 것이다. 여호와가 시초에 인류를 만들 때 남성과 여성 두 유별의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도 곧 남성과 여성에 따라 구분하였다. 그는 그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역을 정한 것은 아니다. 그가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완전히 시초에 그가 인류를 만들 때의 생각에 근거하여 정한 것이다. 바로 패괴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근거하여 그의 두 차례 도성육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여호와가 당시에 ‘뱀의 유혹을 거친 하와와 아담’에게 한 말씀대로 하나님 도성육신의 사역에 맞춘다면, 예수도 ‘사모해야 할 아내를 사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면, 하나님이 그래 하나님인가? 이와 같다면 그가 그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여성인 것이 착오라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도 크나큰 착오가 아닌가? 만일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인 것이 착오라고 여긴다면, 예수는 아내를 얻지도 않았고 자기 아내를 사모하는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러면 예수는 오늘의 도성육신과 사람이 말한 대로 똑같이 착오가 아닌가? 네가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써 오늘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가늠한 이상, 너는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으로써 은혜시대에 말씀이 육신 된 주 예수를 가늠해야 하는데, 이것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닌가? 네가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으로써 주 예수를 가늠한 이상, 너는 뱀의 유혹을 거친 여성으로써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네가 만일 이렇게 가늠한다면 너에게 이지(理智)가 없음을 증명한다. 여호와가 말씀으로 된 두 차례 육신의 성별은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ㆍ여성과 연결되는 것이고,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ㆍ여성에 따라서 두 차례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너는 예수의 남성을 뱀의 유혹을 거친 후의 아담의 남성으로 여기지 말라. ‘그’와 ‘그’는 조금도 관련이 없으며, 다른 성질의 두 남성이다. 설마 예수가 남성이라 하여 그를 모든 여자의 머리이고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모든 유대 사람(남자와 여자를 포괄함)의 왕이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자신이고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며, 그는 모든 피조물의 주이자 모든 피조물의 머리이다. 네가 어찌 예수의 남성을 여자의 머리의 상징이라고 정하겠는가? 이것은 모독이 아닌가?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성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고 주인데, 그가 어찌 패괴된 후의 아담의 남성일 수 있겠는가?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을 구비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면, 하나님의 사역이 다 틀리지 않겠는가? 여호와가 그래 유혹을 거친 아담의 남성을 예수 안에 더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도성육신은 예수와 다른 성별이면서도 성질이 같은 도성육신의 다른 한차례 역사가 아닌가? 네가 또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았기에 하나님 도성육신은 여성일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여자는 가장 더럽고 인류의 패괴된 기원이어서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으로 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감히 “여자는 영원히 남자에게 순복하고 여자는 영원히 하나님의 창현(彰顯)이 될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라는 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만약 예수 그 단계 사역만 하고 말세에 이 단계를 보충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에서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즉 하나님은 아들 하나뿐이고 이후에 또 하나의 이름으로 오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영원히 여길 것이다. 사람은 관념에서 무릇 속죄제로 되는 자라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무릇 하나님을 위하여 정권을 담당하는 자, 온 인류를 구속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무릇 남성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 할 수 있고 즉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이라 하고 그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크나큰 관념이 아닌가? 만일 마지막 시대에 이 단계 사역을 하러 오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하나님에 대하여 음영을 덮어씌우게 된다. 이러면, 남자는 스스로 여자보다 높다고 여기게 되고, 여자는 영원히 머리도 들지 못하게 된다. 그때에, 무릇 여성은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남자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언제나 여자를 혐오하고 하나님이 여자를 구원 얻게 할 리도 없다고 여긴다. 이렇다면, 여호와가 만든 또 마찬가지로 패괴된 모든 여자는 구원받을 기회가 영원히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여자를 만든 것, 바로 하와를 만든 것도 역시 의의 없는 일로 되지 않겠는가? 여자는 또한 영원히 멸망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자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전 인류를 위한 사역이지 여자만 위한 것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이렇게 여긴다면, 사람은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와 나는 한 분의 영으로부터 왔다. 비록 육신은 관계가 없지만 영은 한 분이다. 역사한 내용이 같지 않고 담당한 사역이 같지 않지만 실질은 같은 것이다. 육신이 취한 형상이 같지 않은 그것은 시대가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역의 필요로 인하여 같지 않은 것이다. 직분이 같지 않으므로 가져온 사역도 같지 않고 사람에게 나타낸 성품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늘 본 것과 터득한 것은 이전과 같지 않은데, 이것은 모두 시대의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의 성별은 다르고 형상도 다르며 한 가족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한 분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어떠한 혈통 관계도 없고 어떠한 육체 관계도 없지만 이런 것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서로 다른 두 시기에서의 말씀으로 된 육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 이것은 미룰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혈연이 아니고 공통의 인류의 언어도 없다(한 분은 유태어를 할 줄 아는 남성이고 한 분은 중국 한어만 말하는 여성이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서로 다른 국가에 분포되어 또한 서로 다른 시기에서 각자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한 분의 영이고 즉 같은 실질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육신의 외각은 아예 완전히 비슷한 데가 없으며, 다만 같은 인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육신의 모습ㆍ출생은 서로 다르다. 이런 것은 각자의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이 그들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쨌든 한 분의 영이기에 누구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으며, 비록 그들이 혈연 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이 그들의 전인(全人)을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육신은 한 혈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여호와의 영이 예수의 영의 아버지가 아니듯이, 또한 예수의 영이 전혀 여호와의 영의 아들이 아니듯이, 그들은 한 분의 영이다. 마치 오늘의 도성육신인 하나님과 예수처럼, 혈통은 서로 연결이 없으나 그들은 본래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원래 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 자애의 사역을 할 수 있고,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할 수 있으며,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도 할 수 있고, 사람을 저주하는 사역도 할 수 있으며, 최종에는 또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이 아닌가?』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케 되었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위엄, 이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이것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자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기 마련이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기 마련이며,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 하여금 그의 새로운 뜻과 새로운 성품을 보게 하기 마련이다. 만약 새로운 시대에 사람이 새로운 성품의 발표를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가령 하나님 도성육신이 다만 남성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남성으로 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정할 것이며, 언제나 여자의 하나님이라고는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남자는 하나님을 남자와 같은 성별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로 남자의 머리일 것인데, 여자는 또 어떠할 것인가?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차별 대우 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하나님이 구원하는 자가 모두 그와 같은 남자라면 여자는 구원을 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할 때는 아담을 창조하고 하와도 창조하였다. 그는 아담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역시 여자의 하나님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여 그의 더 많은 성품을 나타내려 하는데, 예수 그때의 긍휼ㆍ자애가 아니다. 또 새로운 사역이 있게 된 이상, 이 새로운 사역이 새로운 성품을 가져온 것이다. 그럼 영이 역사하고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 치며 말씀한다면 사람이 모두 그와 접촉할 수 없는데, 사람이 그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이 역사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에 의하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고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에 의하여 발표해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고 형상이 있기에 사람이 모두 실제적으로 그의 성품을 접촉하고 그의 소유소시를 접촉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진실로 그를 알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남자의 하나님이자 여자의 하나님이다”라는 이 사역도 완성하게 되고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는 전부의 사역도 완성하게 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말세에 주님이 오시면 왜 영체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역사하지 않으십니까?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써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표적과 기사로써 사람을 억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신복(信服)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만약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드러낼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는 것이란?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님 한 분이 꿈에 교회에 갔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 자매를 보았는데,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찬양대와 신도들이 함께 찬양을 하는데도 소리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기도하는 것마저도 입술만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형제님은 아주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꿈속의 천사가 말해 주기를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고 알려줬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이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의 진실한 모습이다.’라는 것이 저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진실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자신의 병이 치료받기 위해서 믿고, 어떤 사람은 가정의 평안과 육체의 누림을 위해서 믿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신의 사업이 번창하기 위해서 믿고, 또 어떤 사람은 지위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 믿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습니다. 우리는 병이 치유됐을 때, 돈과 지위와 권세를 갖게 됐을 때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위해 시간과 힘을 다해 헌신하려고 합니다. 또한 가정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거두어가셨을 때, 재앙이 우리에게 닥칠 때는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하나님께 원망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서 자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의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인 부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금생에서 무사히 지내고 내세에서도 별고 없기를 구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당의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잠시 평안하기 위한 것이지 내세에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를 쏟았을 때,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사람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고 천당의 복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분한 나머지 화를 내었다. 사람이 나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오히려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혐오했더니, 사람은 나를 멀리 떠나 더러운 사술을 행하는 술객의 술법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시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까닭은 나의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나를 믿어서 얻는 좋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득을 보려 하고 축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가정이고 또 돈과 지위와 권세 등등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몸은 하나님 앞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약속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지만 행하지 않았습니다. 말에는 거인이지만 행동에는 난쟁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가 그저 형식적인 경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진실한 믿음이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시다시피,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흡족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하루 밤사이에 모든 재산과 아들딸을 잃었고, 그 뒤에는 또 그의 온 몸에까지 악창이 났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칭송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복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든 재앙을 받든 진정으로 하나님의 배치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어야 진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진실한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비록 당신을 믿고 있지만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고 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타락된 성정에 묶여 세상의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일이 닥치면 늘 당신을 거역하고 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셔서 우리가 진심을 내놓을 수 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거두어가시든 베풀어주시든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경배하게 하소서. 당신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봐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가히 말해서,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인바,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器官)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며,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달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으며,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이러한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고 더욱 하나님의 최신의 깨우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만이 성령께 되도록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