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생명의 기적: 심하게 다친 7살 아이가 살아나다

2014년 9월 29일 오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하굣길 아이가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하며 비 가림막이 있는 삼륜차를 타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40분가량이 흘렀을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남편만 있을 뿐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신신 데리러 간다면서? 신신은?” 남편은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헐레벌떡 내게 말했다. “신신은 어머니한테 있어.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어. 얼른 가봐!” 남편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급해졌다. 난 남편을 나무라며 말했다. “어떻게 했길래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많이 다쳤어? 보건소에 가서 약이라도 발라주지 그랬어?” 남편은 은행 카드를 찾으면서 내게 말했다. “애가 장난기가 많잖아. 툭하면 장난치고. 집에 거의 다 와 갈 때 혼자 삼륜차에서 뛰어내렸지 뭐야. 자기 생각엔 내가 집에 도착해서 뒤에 자기가 없는 걸 발견하면 놀랄 거고, 그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근데 삼륜차의 특수성 때문에 제대로 착지를 못 했어. 그래서 대자로 쓰러져서 머리를 다쳤어. 엄청 심하게 넘어졌어. 얼른 신신 데리고 병원에 가서 자세히 검사받아 봐야 해.” 남편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닫자 내가 생각했던 찰과상 정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시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어머니 댁에 도착하자 두 눈을 꼭 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신신이 보였다. 신신은 계속 울면서 외쳤다. “머리 아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아이를 본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신신, 머리 어디가 아파? 엄마한테 말해봐. 엄마가 봐 줄게.” 아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손으로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여기가 너무 아파.” 신신이 가리킨 방향을 만져보니 뒤통수, 그러니까 소뇌 부분이 컵 주둥아리만큼 파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말랑했다. 문득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넘어질 때 머리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특히 뒤통수. 넘어져서 뒤통수를 다치면 운이 좋아도 뇌진탕이나 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되거든.” 원체 겁이 많던 나는 울고 있는 아들을 보자 죽음이 점점 나를 옥죄어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잠시 후, 아들이 두 손을 꽉 쥐는 게 보였다. 난 얼른 손을 풀어주었지만, 잠시 후 아들은 또 손을 꽉 쥐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들이 이렇게 죽게 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주재하시니 아들의 목숨 또한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는가?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믿음을 얻게 되었고, 세상 만물의 모든 사람과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아들이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아들의 목숨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불안했던 마음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통해 서서히 진정됐다. 곧이어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받아 안고, 바닥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품에 안긴 아이를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지금 아이가 머리를 다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어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도록 지켜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더니 말했다. “엄마, 머리 안 아파.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아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과 부족한 모습을 헤아려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난 확실히 많이 나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을 보게 된 것이다! 병원으로 향하던 길에서 운전을 해주시는 송씨 아저씨는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면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해주셨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신이 구토나 기절, 혼미상태에 빠지거든 동네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해. 큰 병원이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뇌 외상 분야에서도 많은 임상경험이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저씨의 말을 듣자, 평온을 찾았던 나는 다시 긴장됐다. 품 안에 안겨 깊은 잠이 든 듯한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신신이 정말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난 어떻게 살지?’ 이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났으며 두 손이 계속 떨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세상만사가 당신 손에 있습니다! 제 아들의 목숨도 당신께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살펴주소서.” 몇 번이나 기도를 드리고서야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 7시를 넘겨서야 우리는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 품에 안긴 아들은 안색이 창백하고, 혈색이 하나도 없었으며,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입에선 계속 음식을 토해냈다. 신신의 머리는 어머니의 걸음걸이에 따라 흔들렸다. 난 그 옆에서 계속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신신, 일어나. 엄마 말 들려?” 하지만 내가 부르는 소리만으로는 아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신신은 완전히 기절한 상태였고,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죽음이 아들에게 점점 다가오는 듯했고, 지금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들이 평소 내게 애교부리고, 웃고, 장난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송씨 아저씨가 했던 말과 아버지가 당부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몰려왔고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거의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다. “신신이 구토해요! 어서 의사한테 가보세요! 전 못 걷겠으니 상관 마시고요.” 그렇게 난 비틀거리며 문에 부딪혔는데, 비상구였다. 그 안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난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과 함께한 7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어쩌면 오늘 밤 아들과 영영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듯한 고통이 들었고, 숨을 쉴 수조차 없어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나약해 졌을 때 나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죽음의 문턱에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걸을 힘조차도 없어요.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주시어 강해진 제 영혼이 공포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바로 깨달음을 주셨고 나를 일깨워 주셨다. 하나님께선 지고지상의 권세를 갖고 계시며, 사람의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신신을 살리고자 하시면 신신은 살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원망을 품어 사탄의 계략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사탄의 시험에 빠지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한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나약함과 보잘것없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에 믿음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빛을 내려주시어 제가 진리로 살고 사탄의 농간과 피해, 구속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부디 제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시어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아 기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홀로 고통을 삼키며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다. 그리고 욥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욥은 하나님의 시련과 사탄의 시험에 빠져 하루 만에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자식들도 죽었지만,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결국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다시 내 상황을 되돌아봤다. 지금 내가 직면한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물론 나의 믿음과 순종을 욥이나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거나 원망하고 오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아들을 낳은 것은 나지만,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아들의 목숨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사하신 것이었다. 평소 아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건강할 때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난 하나님께 대적하고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릴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거나 경외하지 않았으며 조물주의 섭리에는 더더욱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피조물이 갖추어야 할 이성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불안하지 않았으며 마음도 안정을 찾고 기운도 되찾았다.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건 아들이 죽건 살건 전 용감하게 맞서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겠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급히 갔을 때 신신은 응급진료를 보고 뇌 CT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한 간호사를 따라 우리는 9층에 있는 신경외과 전문 치료실로 향했다. 긴장감 넘치는 응급 치료 끝에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아들 얼굴에 떠오른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아들은 내게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 너무 어두워요. 방이 너무 어두워요. 불 좀 켜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난 아들 침대 앞에 밝게 켜져 있는 불빛을 보며 아들의 두 눈이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으며 위로해주었다. “신신, 걱정하지 마. 엄마가 있으니까 다 괜찮을 거야.”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고, 지도해주시어 이번에 아들의 실명이라는 소식 앞에서도 나는 처음처럼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덤덤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신신의 주치의와 남편이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남편이 의사에게 펜을 받아 서류에 사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계속 울고 있어서 나는 아들 곁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 아들은 계속해서 잠에서 깨어 울며불며 몸에 달린 의료기기를 다 떼어냈다. 어떤 때는 힘없이 “머리가 너무 아파.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갈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아들을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난 생각했다. 목숨은 정말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구나.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이 바로 앞에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오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절대로 버틸 수 없었을 거야. 직접 체험하면서 나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떠올랐고 난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잠에서 깬 아들이 앞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8시 정도가 되었을 때 회진을 온 주치의가 말했다. “늦지 않게 병원에 와서 다행이에요. 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몇 가지 치료만 받으면서 지켜봅시다.” 주치의가 떠난 후에야 남편은 어제 내게 속이고 의사가 준 서류에 사인한 게 수술 동의서였음을 말해주었다. 만약 어제저녁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아들은 수술을 받았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어제 신신이 토했을 때 우리가 신신을 CT실로 데려갔는데, 침대에 누운 신신은 혈색이 하나도 없고 창백한 모습이었어. 꼭 죽은 사람처럼 말이야. 신신 아빠도 밖으로 나와서 놀라서는 신신이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했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바로 조치를 취하셨고 신신이 반응하자 9층으로 옮긴 거야…” 남편과 어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우리는 응급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120구급차를 제때 부르지 못했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위험 속에서 살아 돌아왔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도 수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신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권세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난 몸소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이 얼마나 비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생명의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저녁 시체 같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중간에 깨어났지만 앞을 볼 수 없었고, 고통 속에서 밤새 울부짖었다. 아침이 밝자 두 눈은 기적처럼 시력을 되찾았고, 위험한 고비도 넘기게 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기적이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것이다! 이튿날 점심, 아들은 약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치료도 받았다. 이 광경을 본 같은 병실 사람들이 놀라서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처음 왔을 땐 굉장히 심각해 보였는데 지금은 또 아무 일 없었던 사람 같다니. 정말 운이 좋으세요.” 나는 웃으면서 “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셔서 그런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녁 예닐곱시가 되었을 때 한호라는 9살 남자아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한호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그만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겉에서 보기엔 출혈이 없었지만, 주치의는 검사 후 이렇게 말했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두개의 내출혈이 있어요.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6시간이 지난 후 한호는 수술실에서 나왔다. 한호는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온몸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잔뜩 꼽고 있었다. 저녁엔 기계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호흡했고, 참혹한 광경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며칠 뒤 6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25세 청년이 병원에 왔다. 치료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청년의 엄마는 아들이 흘린 신발 한 짝을 품에 안은 채 가슴 아프게 울었다. 그리고 옆 병실에는 18세 된 예쁜 아가씨가 실수로 계단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어 매일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으며 링거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아빠는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매일 딸 곁에서 딸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직접 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갖 악령들은 땅에서 시시각각 쉴 곳을 찾고 있고, 시시각각 삼킬 사람의 시체를 찾고 있다. 내 백성들아! 반드시 나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 한다. 절대 방탕하지 말라! 절대 망령되이 행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신 것이 바로 우리가 있는 이곳, 내가 직접 목격한 병원의 다양한 사람들이 사탄의 해침과 병마의 고통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아들이 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은 잊어버린 채 나는 공포와 나약한 모습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믿음이 없다는 것과 하나님의 지고지상한 권세에 진정한 경험과 체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아들의 사고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임을 알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권세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일 후, 아들은 많이 회복되어 퇴원했다.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떠올리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들이 넘어져 머리를 다쳤을 때 나는 고통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시어 나의 영혼이 강해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가장 어둡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밤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지켜주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남은 생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새벽녘 발코니의 작은 풀을 바라보며

새벽녘, 발코니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다 문득 고개를 숙였는데 발코니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잎사귀를 보았다. 집 발코니에는 시멘트로 덮여있었고, 주변은 두꺼운 플라스틱인 데다가 수분도 부족했을 터인데 어린 잎사귀가 자란걸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린 잎사귀를 바라보며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권세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감탄하게 됐다!

크리스천이 죽음의 문턱에서 치유받고 살아난 간증

더할 나위 없이 기쁜 하나님과의 재회 나는 올해 78살이다. 두통과 당뇨병을 달고 살았던 나는 2005년 병마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 후 하나님의 보호로 병세가 다소 완화되었다. 2년 후, 한 친척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내게 전해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의 재림이시며 이번에 오셔서 사람을 완전히 정결케 하시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살아생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니!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교회 생활과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병이 임하자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속셈이 드러났다 1월의 어느 날, 나는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 시가를 듣다가 갑자기 호흡이 멎는듯하고 가슴이 답답한 게 너무 아팠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내 모습을 본 남편이 서둘러 딸과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를 받고 나오자 주치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병세가 심각하세요. 심장에 문제가 좀 있어요. 언제 쓰러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당장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내가 왜 이런 심각한 병을 앓게 된 거지? 게다가 목숨이 위험하다니? 예수님를 믿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나는 충심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지켜주지 않으시는 거지? 곧 죽는다면 나의 신앙생활도 끝이 나고 전례 없던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미경도 볼 수 없고, 딸이나 남편과 같이 살 수도 없는게 아닌가? 생각할수록 슬픔이 차올라 쓸쓸한 마음이 들었고, 고통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분명 제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요! 부디 저를 이끌어주소서.” 기도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 모두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 때문도 아니다. 현재,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육체의 편안함이나 일시적인 향유를 위해서라면, 설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해 더 이상 무언가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그 ‘사랑’은 불순한 사랑이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러한 사랑은 기껏해야 현상 유지나 가능할 뿐, 영원불변할 수 없고 내면에 깊이 뿌리내릴 수도 없다. 그러한 사랑은 피고 시든 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한 송이 꽃과 같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한 번 사랑한 후에는 누군가 너를 앞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내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자는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온 자이기에 정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유래이다.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믿었던 이유가 바로 평안과 축복을 얻기 위해서임을 보여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병을 고치려는 마음에 예수를 믿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 주신다는 말에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었다. 병마로 생사를 오가고, 내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땐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이유를 따지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사역했으니 하나님은 내게 위험한 병이 아닌 축복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제야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도, 하나님의 뜻에 부응하기 위한 것도 아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개인적인 속셈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도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런 식의 믿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충성심이 가득해 보이지만 사실의 시험대에 오르면 무너지고, 비바람이 불어오면 넘어지고 만다. 잠깐 아름답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예쁜 꽃처럼 말이다. 예전에 형제자매가 교제해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은혜시대처럼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아니라 사람을 형벌하시고, 심판하시며 시련 연단으로 정결케 하시어 타락한 성품이 정결케 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마음이 탁 트인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에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여 있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오늘날 나에게 병이 임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속셈 때문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시어 이런 시련을 통해 나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순종도 없으며 나의 분량은 가여울 정도로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자책감과 하나님을 향한 죄책감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다가오는 죽음,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견고해지다 입원 후, 나는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병마와 싸우려니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를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만이 제가 의지할 곳입니다. 부디 제게 믿음을 주시어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하소서.” 십여 일이 지난 후에도 나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처럼 아팠고, 쇼크가 온 적도 있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걸 본 사위는 나를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큰 병원에 있는 전문의는 그 전 병원에서 가져온 진료 의뢰서를 보더니 나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고, 산소호흡기까지 연결했다. 나는 누군가 “이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곧 저세상으로 갈 사람들이래. 그래서 여긴 ‘단명방’이라고도 불린데”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의사는 왜 나를 이 방에 입원시킨 거지? 내가 곧 죽을 때가 돼서 나를 여기에 입원시킨 건가? 이렇게 생각하자 죽음이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와 나를 옥죄는 듯했고,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날 오후 한 남자 환자가 병실에 실려 들어왔다가 한 시간 만에 사망해 다시 병실에서 실려 나갔다. 그 환자가 누워있던 침대를 밖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다음 순서는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너무 두려웠고...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다잡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드렸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욥이 온 산에 가득했던 소와 양, 많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게 된 것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가 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스러운 간증이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한이 인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 것 또한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말세의 이상(異象)을 보게 된 것도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방의 백성들’이 내 계시를 받고, 내가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의 엄한 말로 두드려 맞기도 하고 안위를 얻기도 하며 구원받는 사람도 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던가?』『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얻은 것이 꼭 복만은 아니다. …마치 욥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복도 받고 재앙을 당한 것과도 같다.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다 복이 있는 일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을 주었다. 역대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여러 시련 연단에 직면하고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의인으로 유명한 욥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탄에게 시험당할 때 죽을 만큼이나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욥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과 경외심을 보였고, 하나님께서 현현하시어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과 사랑이 한 단계 격상되었다. 나는 역대의 유명한 신자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오늘 내게 역사하시는 것이 바로 내게 믿음을 주시어 이 시련에서 역대의 유명한 신자들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권세를 느끼게 해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다. 성경에서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났는데도 예수의 말씀 한 마디에 부활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내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목숨을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다 병원에 가만히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릴 수는 없다는 마음에 가족들은 병원에서 인턴을 하는 친척에게 부탁해서 그 병원 교수를 모셔왔고, 그 의사는 종합 검진을 시행했다. 회진 후 의사는 당뇨로 심부전증 증상이 있고, 혈관 세 개가 막혔으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뇨병 때문에 수술 후 상처가 잘 아물지는 모른다며 의사도 병세가 반드시 호전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나를 심장병 전문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곳의 의사는 전 병원 의사와 같은 진단을 내리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술 위험이 크고, 당뇨병으로 인한 심장병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술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수술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허벅지에서 경맥을 뽑아 심맥에 다리를 놔주는 건데 수술이 실패하면 전신 마비가 올 수 있고, 수술대에 올라서 살아 내려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수술 중 사망할 가능성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해보고 어떻게 할지 알려달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딸과 사위는 망설이며 돈은 돈대로 쓰고, 사람은 사람대로 잃을까 걱정했다. 나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남편은 우리의 목숨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사에게 말했다. “수술을 시작한 이상 목숨은 병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죠.” 남편은 ‘동의서’에 서명했고, 의사도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시작 전 난 수술대에 누워 의사가 했던 말을 생각했고, 걱정과 두려움이 다시 스멀스멀 떠올랐다. 정말 식물인간이 되면 어떡하지? 그럼 산 송장이 아니던가? 남편은 내가 돌봐줘야 하는데 내가 남편의 짐이 되는 건 아닐까? 딸들이 있지만 다 가정을 이루었고 제각기 다른 가정이 있는데 누가 장기적으로 시중을 들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나는 죽을 생각만 해야 하는데... 그리고 수술대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그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또 잃었음을 깨닫고 서둘러 내 마음을 다잡아주시길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 인류 중에, 전능자의 눈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은 자가 누구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누구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더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이더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외쳤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멀리 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강자가 되고 싶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였지만, 죽음의 날이 살며시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였는지 모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넘어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험 속에서 사로잡혀 갔는지 모른다. 』 맞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모두 주관 하시는 분이다. 온 인류의 운명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내 운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증거할 마음은 가졌지만, 실제 시험에 빠지자 나는 내 목숨과 앞날을 걱정했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식물인간이 될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내 목숨은 하나님께 달렸으므로 나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내 목숨과 앞날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제 곧 수술이 시작됩니다. 수술 결과가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나이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뒤 나는 마취됐고, 기억나는 게 없다. 수술 후 나는 보호실로 옮겨졌다.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이틀이 지난 오전이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고 끙끙 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못했다. 상처에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건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시고, 보호해주셔서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오후가 되자 주치의가 내 병상 앞으로 와 물었다. “환자분, 상처가 아프진 않으세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불편한 데는 없어요.” 3일 후, 회복세가 빠른 날 본 의사는 나를 일반 병실로 옮겨주었다. 당뇨병이 없는 환자도 수술하고 나면 4~5일은 지나야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는데 나는 3일 만에 옮겨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하나님의 위대함이며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이다! 일반 병실에 있을 때 남편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곤 했다. 나도 조용히 하나님께서 내 몸에서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 존재함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내가 생사를 오가긴 했지만, 하나님께선 항상 내 곁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내가 나약해지고 자신감을 잃을 때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고 내게 힘을 주시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내가 겁내지 않도록 해주셨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내 고통을 덜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내게 보여주셨다. 오늘날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시진 않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힘이 표적과 기사보다 위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한 진리이며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에게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나와 같은 수술을 한 환자는 움직이지 못할 때 나는 남편이 부축해주면 밖에 나가서 가벼운 산책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본 의사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런 기적을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보름 후 퇴원할 때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과 똑같은 병을 앓고 계신 분이 병원에 일곱 분 계세요. 그중에서 환자분만 당뇨병으로 인한 발병이어서 다른 분보다 더 심각했죠. 그런데 제일 먼저 회복되시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심장에 종양이 하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해요. 한 달 후 재진 오세요. 그때 봐서 종양이 계속 커지고 있으면 2차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나는 이렇게 위험한 병마에 휩싸였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죽게 두지 않으셨고, 나도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도 더 커졌다고 생각했고, 내 병을 하나님께 맡기어 그분께서 결정하시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의사는 내게 약을 처방해주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병원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이제 더는 병마로 크게 고통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자 나섰다. 매일 형제자매와 함께 하나님을 찬미했고 어느샌가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한 달 후, 병원에 가서 재진을 받으니 내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고, 심장에 있던 종양도 사라졌다. 생명의 세례를 받은 나, 더 굳건한 믿음의 길을 걷게 되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길 양옆에 줄지어 늘어선 백양나무를 보게 되었다. 저 백양나무들도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서 봄이면 왔다가 겨울이면 가고 비바람과 눈을 맞으며 더 강인해지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걸렸던 병도 생명의 세례를 받은 것과 같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순결하게 해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더욱 커졌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그의 생명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으며, 눈부신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천지가 크게 변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만물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그대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 생존의 기원이고, 만물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기원했고, 하늘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며, 땅의 생존 역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기원한 것이다. 생기를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주재를 넘어설 수 없고, 활력을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권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에 나는 감탄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만물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규율에 따라 한 세대 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믿음과 담력을 주시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며 병마에 고통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내 병세는 기적처럼 호전되었다. 나는 앞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본분을 다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아멘!

인류는 타락하였을지라도 여전히 창조주 권능의 주재하에서 살아간다

사탄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타락시키면서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고, 대대로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며, 인간 세상에서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또 사람을 해치고 미혹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하며, 하나님의 경륜을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등의 악행이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는 만물 생령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정한 법칙과 규율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과 비교할 때,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이 날뛰는 것은 추하기 그지없으며, 사람을 역겹게 하고 염증이 나게 한다. 또한 보잘것없고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비록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사탄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어떤 사람, 일, 사물도 변화시킬 수 없다. 수천 년이 지나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내려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친히 불어넣어 준 생기로 숨을 쉬고 있고, 하나님이 만든 꽃과 새, 물고기와 곤충들을 누리며, 하나님이 공급해 준 만물을 누리고 있다. 낮과 밤은 여전히 끊임없이 교체되고, 사계절 역시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올겨울에 떠나가서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속의 물고기는 그들의 집인 강과 호수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땅 위의 매미는 여름날 마음껏 자기들만의 노래를 부른다. 풀 속의 귀뚜라미들은 가을날 가을바람을 따라 노래한다. 기러기는 무리를 이루고 매는 외롭게 지낸다. 사자 무리는 사냥하며 살아가고, 사슴들은 꽃과 풀밭을 떠나지 않는다. 만물 가운데의 각종 생령들은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찰나 속에서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그들 각자의 본능과 생존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받아 생존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본능을 바꿀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의 생존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미혹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만든 물과 공기와 만물을 떠날 수 없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이 공간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간다. 인류의 본능은 변화가 없으며, 인류는 여전히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깨닫고, 두 다리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일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이 공급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 심령의 필요는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뿌리를 찾아 돌아가려는 소망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창조주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소원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서 살아가면서 사탄의 피비린내 나는 학대를 견디고 있는 인류의 현주소다. 비록 사탄의 엄청난 유린을 당한 인류가 더 이상 태초에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아니고, 지식과 상상, 고정 관념 등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들이 가득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이 가득한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와 섭리하에 있고, 하나님이 정한 코스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사탄에 의해 타락한 인류는 단지 외관상 더럽고 굶주리고 반응도 조금 느리고 기억력도 조금 감퇴되고 나이가 조금 많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기능과 본능은 오히려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이런 인류가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이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부름을 듣고 창조주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바로 일어나 그 음성의 근원을 찾아 달려간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창조주를 위해 헌신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다. 인류의 마음과 영이 창조주의 마음의 소리를 깨닫게 될 때,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창조주의 곁으로 온다. 인류가 완전히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창조주가 다시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얻게 될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그때의 인류는 진정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욥 2:6) 사탄은 창조주의 권능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만물은 규칙 속에서 생존한다 이것은 욥기에서 발췌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그’는 욥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짧을지라도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이 영계에서 사탄과 나눈 구체적인 대화로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상인 사탄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이고 명령이다. 그 명령의 세부적인 사항은 욥의 목숨과 관련되며, 하나님이 사탄에게 정해 준 욥을 대하는 마지노선에 관련된다. 즉, 오직 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먼저 이것이 하나님이 사탄에게 한 말이며, 또한 욥기의 원문과 연관시켜 볼 때 하나님이 어떠한 배경에서 이러한 말씀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사탄은 욥을 참소하고자 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야 욥을 시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고자 하는 사탄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사탄에게 이러한 조건을 걸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였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이 말씀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 확실히 이것은 지시이고 명령이다. 이 말씀의 성격을 파악하면, 너는 이 명령의 선포자가 하나님이며, 명령을 받아들이는 자는 사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양자의 관계는 이 명령을 통해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진다. 물론 이 역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영계에서의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이며,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과 지위의 차이이다. 또한 지금까지 인류가 구체적인 사례와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과 사탄의 신분과 지위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기록이 인류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아는 데에 있어 중요한 문헌이며, 이 기록에서 인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았고, 영계에서의 창조주와 사탄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 권능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씀으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이 또 한 번 입증되었다. 겉으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사탄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는 태도와 서 있는 위치가 사탄보다 높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명령하는 어조로 사탄에게 지시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알려 주고, 욥을 사탄의 손에 붙였으니 그를 마음대로 대할 수는 있으나 욥의 생명을 취할 수는 없음을 알려 주었다. 그 함축적 의미는 비록 욥을 사탄의 손에 붙였으나 욥의 생명까지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서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사탄에게 한 이 명령에서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할 때 서 있던 위치 역시 이 명령에서 나타났다. 여호와 하나님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볼 때 그는 빛과 공기를 만들고 만물 생령을 만든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만물 생령을 주재하는 하나님이고, 인류를 주관하고 음부를 주관하는 하나님이며, 모든 생명체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인 것이다. 영계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가 감히 사탄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또한 왜 사탄에게 친히 명령을 내린 것일까? 이는 욥의 목숨을 포함해서 사람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고, 하나님은 사탄이 침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욥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했을 때에도 욥의 생명을 앗아 가서는 안 된다는 이 특별한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탄은 하나님의 권능을 감히 넘어설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과 구체적인 지시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명령에 복종하고 따르며 감히 거역하지 못한다. 물론 사탄은 또한 마음대로 하나님의 어떤 명령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범위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감히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 권능의 위력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권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 사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자기가 속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인류보다 훨씬 잘 안다. 그러기에 사탄은 하나님의 지위와 권능에 대해 영계에서 확실하게 보았고, 하나님 권능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능이 행사되는 원칙에 대해 깊이 느꼈다. 그래서 감히 태만하거나 그 어떤 것도 전혀 거스르지 못하며, 감히 하나님의 권능을 벗어나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그 어떤 도전도 감히 하지 못한다. 사탄은 본성이 사악하고 교만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해 준 한계와 범위를 감히 벗어나지 못한다. 천만년 동안, 사탄은 엄격하게 그 한계를 지켰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을 준수하였으며, 지금껏 감히 한계선을 넘어갈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사탄이 악독하긴 하지만 타락한 인류보다 훨씬 ‘현명’하다. 사탄은 창조주의 신분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 ‘규율을 지키는’ 사탄의 행위로부터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은 사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천상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유일성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만물이 법칙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인류가 하나님이 정한 코스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규율을 깰 수 없고 이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창조주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창조주의 결정에서 온 것이며, 창조주의 권능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권능은 시간, 공간, 지리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18절을 보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여러 차례 축복하며 그의 자손을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된다고 했느냐? 성경 구절처럼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저 형상적인 언어일 뿐이다. 하지만 이 형상적인 언어를 통해 하나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후손이 한둘이 아니고 수천수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나라를 이룰 정도가 된다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나라의 아비가 되리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까지 많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일이냐, 하나님에게 달린 일이냐? 자신의 후손이 얼마가 될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느냐?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후손이 몇 명일지조차도 사람은 결정할 수 없다. 누가 자신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일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되든,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든 상관없이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예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적게 주었는데 네가 너무 많이 받게 되는 법은 없다. 하나님이 네게 많이 준다면, 네가 많다고 탓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지,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으며,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네 씨로 크게 성하여”라고 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지켜질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며, 사람이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보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사라지는 그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이는 그가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의 권능을 지녔으며, 창조주의 능력이 있고, 만유와 모든 생명을 주관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가능케 하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있어서는 지극히 간단한 일인 것이다. 이 일이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일이나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본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는 이러한 체득이 있느냐? 이런 것은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후예가 많지 않으냐? 얼마나 많으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으냐? 각 나라, 각 지역, 세계 각지로 널리 퍼져 있지 않으냐? 이러한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그 말씀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끊임없이 현실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권능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이는 순식간의 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한 일의 성취와 응답은 시간 차 없이 즉시 이루어진 경우이다. 이 또한 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 권능의 또 다른 면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권능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창조주 권능의 더 실질적이고 더 훌륭한 면도 느끼게 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자마자 하나님의 권능은 그 사역을 주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것들이 점차 현실이 되기 시작하였다. 만물의 모든 것들이 다 이로 인해 다양한 변화를 맞았다. 일례로, 봄이 오면 풀이 파릇파릇해지고 꽃이 피고 나무에 싹이 튼다.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기러기들이 돌아오며, 논밭에는 사람들의 일손이 분주해진다. 이에 발맞춰 만물도 다시 소생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룰 때, 하늘과 땅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되는데,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 만물이 다 힘쓰며 움직이게 된다.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창조주의 권세 아래에 배치되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각자의 기능을 다한다. 창조주의 권능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는 하나님의 권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권능에 범위가 정해져 있느냐? 하나님의 권능에 시간적 제약이 있느냐? 하나님 권능의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을 논할 수 있느냐? 크고 작음과 강함과 약함을 논할 수 있느냐? 사람의 기준으로 헤아릴 수 있느냐? 하나님의 권능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축복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그의 그 축복은 지속된다. 그 지속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하고, 인류에게 창조주가 가진 영원불멸의 생명력이 수없이 재현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권능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말씀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어 만물과 인류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권능으로 이뤄진 일마다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하다.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능과 그가 이룬 일마다 전부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후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든, 무엇을 하든, 약속받기 전후의 그의 사정이 어떻든, 그의 생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든, 하나님은 그것을 다 환히 알고 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방금 일어난 것과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한 모든 약속을 추진하고 주관하고 실현시키는 능력과 권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그 약속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요소, 예를 들면 시간, 장소, 종족 등과 같은 요소의 범위가 얼마나 넓든,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실현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주관하는 범위는 우주 전체, 인류 전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만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빛만 관리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었으니 물만 관리하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오해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일이 몇백 년이 지난 뒤에는 사람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그 약속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 있고,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권능을 행하였는지, 만물은 또 어떻게 하나님에 의해 배치되었는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얼마나 훌륭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인류가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그의 행사에서 나타난 탁월한 면면들은 만물 가운데 전해지고 칭송되고 있다. 만물은 또한 창조주의 놀라운 행사를 나타내며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하는 갖가지 미담들은 만물을 통해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은 만물에게 하나님이 어디에나 다 존재하고 항상 존재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될 때, 너는 하나님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은 시간, 지리, 공간, 그리고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의 범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며, 사람이 헤아릴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영원히 다 알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