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크리스천이 나누는 감동 스토리: 계모는 친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친엄마가 계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처럼 계모는 언제나 계모라는 생각으로 증오와 갈등만 쌓아가게 된 그들의 관계,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계모는 진짜 친엄마가 될 수 없는 걸까요?

크리스천 부모 필독: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가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고 준비한 계획에 따라 아이를 교육하려고 합니다. 계획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아이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더해 주곤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 부모는 어떻게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할까요?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크리스천이 자녀와 화목하게 잘 지내는 방법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데, 심지어 어떤 갈등은 제때에 해결되지 못해, 부모 자식 간에 깊은 갈등의 골이 생겨 서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가 깊은 갈등의 골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부모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 아들은 올해 26세입니다. 비록 사내 대장부라고는 하지만, 저는 아들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귀가해서 저에게 “제가 친구들과 같이 창업을 할려고 해요. 근데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집 문서를 담보로 대출 좀 받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대출 받아서 창업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장사가 그리 만만한 줄 알아.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되. 더구나 창업은 큰 모험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 사장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줄 알아? 다니던 직장에서 착실하게 일하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자유로운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조급해 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내가 뭘 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는 한번도 지지해 주지 않았어. 또 늘 엄마 뜻에만 따르라고 하잖아. 다시는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는 화가 난 채 나가버렸습니다.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아들아, 난 네 엄마야,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어. 살면서 경험한 게 많아.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너도 언젠가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에도 아들은 저에게 창업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아들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자, 홧김에 아예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밖에서 지내며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창업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아직도 창업에 미련을 못 버린 거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귀찮다는 듯이 말하고 나서 또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머리를 휙 돌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들을 꾸짖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 아직 밥도 채 먹지 못했는데, 아들이 또 대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부드러운 어조로 “아들, 엄마 말을 잘 들어 봐, 그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또다시 거절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저를 향해 “엄마는 항상 이것도 쉽지 않고 저것도 쉽지 않다고 말 하잖아. 그럼 어떤 것이 쉬운 일인데?”라고 소리 지르더니 먹다 남은 밥그릇을 내동이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거야. 하지만 아들은 왜 늘 억지를 부리면서 날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지?’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모 노릇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이런 일이 닥쳤는데, 저는 방법이 전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나요? …” 기도를 하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일이나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일의 관점이나 태도에서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적용하여 그 일을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부모는 영원히 부모이고 부모가 보기에 자녀는 영원히 자녀라는 이런 관계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고,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웃어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그것은 사람이 진리를 모르는 표현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일에서는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감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부모의 자세와 지위, 신분을 내려놓으면 된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와 아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없었던 근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늘 부모의 위치에 서서 아들을 나이 어린 애로만 보고, 제가 간섭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관점으로 인해 제가 강압적이고 명령하는 어조로 아들과 대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화를 내고 심지어 저를 피하기까지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저는 자신이 본성이 너무나 교만하고 이지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지낼 때는 부모의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고 평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일을 잘못할 때 정확하게 대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 자녀가 정확하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녀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데,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어른이라는 지위을 내려놓고 자식들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길을 찾았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귀찮아하면서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다투다가 아들은 홧김에 테이블을 발로 차서 엎어버렸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저는 속으로 ‘큰일이야, 말해도 안 듣고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남편 편을 들어 버릇없이 아빠 앞에서 테이블을 발로 찼다고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순간 아들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들 곁에 있던 남편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들은 완전히 높은 위치에 서서 하는 책망이나 욕설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봐도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아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얼른 남편을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후에 속으로 계속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다시 거실로 들어와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아들 곁에 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지금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출을 내줄 수 없는 부모의 애로사항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계속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도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실행했을 때, 아들이 얼굴빛도 밝아지고 화도 누그러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여러 측면에서 판단하고 나서 창업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틑날부터 직장에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고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들은 직장을 오후에 가겠다며 출근을 또 미뤘습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속으로 ‘어제 서로 이야기가 좋게 잘 됐잖아? 왜 또 저러지, 정말로 말을 안 들을 작정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애가 타서 아들을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괜히 아들의 심기만 건드릴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일을 비위가 상하게 비틀어 말할 필요가 있느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제로 주입시킬 필요가 없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들은 진리가 맞고, 사실도 그렇다. 그렇다고 네가 말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럼 상대방이 받아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변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필요하다. 너는 상대방에게 변화될 과정을 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 마음은 밝아졌고 사람의 변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제 서로 이야기가 잘됐지만 아들은 아직 출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존중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배워야 했는데, 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저의 생각에 따라 그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니 저는 더 이상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들은 일찌감치 저에게 직장에 간다고 말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금 실행하여 자신을 내려놓고 아들과 대화하고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며, 아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을 때의 기쁨을 맛보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남편이 아들을 바래다주고 나서 저에게 “보아하니, 우리 고집쟁이는 당신 말만 듣는 것 같구려. 아들이 당신하고만 대화하잖아.”라고 탄복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아들이 내 말을 듣는 것 같나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이런 결과가 있게 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려 주셨기 때문이예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