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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원칙

2018년 10월 22일

1.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진실한 의의는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절대 종교 의식을 해서는 안 된다.

2. 반드시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에 결부시켜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해야지 실제를 벗어나 빈말과 글귀 도리를 말해서는 안 된다.

3. 반드시 본분을 하는 것과 생명 진입의 모든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며, 진리를 찾고 구하고 깨달아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4. 간구하고 기도함에 있어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고 또한 이지가 있어야지,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거래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크리스천이 기도하는 자세,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기도는 형식만 따르고 과정만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좀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도여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그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은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에 흐리멍덩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만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러한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진입한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며 자신의 빚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적용하는 것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을 훈련하여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흡인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소극적이지 않고 나태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행실을 중요시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이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편차적인 면이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표준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참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사람은 모두 이런 경력(역주: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치면 매우 괴로워하는데, 괴로울 때 누구와 말이라도 하면 조금 후에는 괴롭지 않게 된다. 하지만 괴롭지 않아도 자신의 정형은 해결되지 않았다. 때로 사역에 어려움이 생기면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훈계와 책망이 임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한 적이 있느냐? 모두 스스로 조절하여 흐리멍덩하게 지나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는 아예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아무렇게나 하는데,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마치 거지가 쓰레기통에서 이것저것 가득 주워 담아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모두 제멋대로 한다. 보라, 사람은 항상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가다가 빗나가게 된다. 여기서도 사람의 본성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사람의 본성은 배반이다. 사역을 하다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게 되면, 사람은 또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지?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역을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이 일은 가장 깊은 것이다. 네가 이렇게 저렇게 섬겨도 기도마저 없다면 헛되이 섬기는 것이다. 너의 정형이 비정상일수록 더욱 효과가 없게 된다. 기도할 때에는 얼마나 멋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의 말을 하고 솔직한 말을 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근거해 사실대로 말하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순복하는 각도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강퍅한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연약하고 너무 형편없어 당신의 쓰임에 합당치 않음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에게 패역이 있어 사역을 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는데, 모두 당신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만 협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도 해내지 못하면 너 같은 사람은 끝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할 때에도 이지적으로 기도했는지 분별해야 하니, 그러면 기도도 할 수 없겠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한동안 훈련하면 되기에 괜찮다. 기도를 하다 보면 어떤 말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평소에 네가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까운 때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너는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일 기도가 부족하면 너는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매임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잠을 좀 적게 자고 좀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된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훈련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얻으시도록, 당신께서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저는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케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여 너에게 이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또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가?』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의의가 있다. 사람의 기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열외로 취급받는데, 하나님께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너에게 어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사역을 하다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사역도 하지 못한다. 기도로 사역을 가져오고 기도로 섬김을 가져오는 것이다. 네가 인솔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전혀 기도에 공을 들이지 않고 기도를 참답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저렇게 섬기다가 넘어질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늘 혼자 하고 늘 기도가 없이 하나님을 등지고 이것저것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영을 하면 정죄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네가 방해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모독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엇나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비록 네가 엇나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성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본분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너는 언제나 ‘이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진리를 찾고 구하며,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은 그런 일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런 참된 정형과 이런 소망이 없으면, 그것은 사람이 실행 방면에서 범하는 가장 큰 착오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계속 믿는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또 어디에서 실현되겠느냐?

……

……네가 어떤 일을 처리하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든 아니면 너 자신의 사적인 일을 하든, 너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인성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인지, 네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이런 것은 네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이다.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는 바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일과 모든 진리를 참답게 대해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진리를 최대한으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너희에게는 진실한 기도가 아주 적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기도할 줄 모른다. 사실 기도는 주로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만 하면 위치에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하나님께 베풀어 달라고 억지로 구하는데, 그 결과 기도하면 할수록 무미건조해진다. 기도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구하든지, 어떤 것을 사모하든지, 어떤 것을 얻으려고 요구하든지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꿰뚫어 볼 수 없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든지, 힘을 더해 달라고 하든지, 혹은 하나님께 깨우쳐 달라고 하든지, 이런 말의 표현에도 이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이지 없이 무릎 꿇자마자 “하나님,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저로 제 본성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하십시오. 혹은 저에게 무얼 무얼 주십시오. 저를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 ‘주십시오’ 안에 강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사전에 다 결정한 것이다. 비록 네가 이렇게 기도할지라도 이런 기도에 대해 성령은 ‘네가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그렇게 하려고 한 이상, 이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기도에는 마땅히 구하고 순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너에게 일이 임할 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고, 당신 앞에서 찾기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뜻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뜻은 다 당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며,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하기만을 원합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인도해 주셔서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런 어조의 기도는 적합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저에게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합당한 사람을 예비해 주셔서 저로 사역을 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한다면, 이렇게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께 너의 뜻대로 일을 해 달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기도할 때 한 말에 이지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네가 우매하든지, 일부러 그렇게 했든지 너의 기도에 이지가 없으면 성령이 네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기도할 때, 이지 있게 말해야 하고 어조가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저의 패역을 아십니다. 저에게 힘을 더해 주셔서 이런 환경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대로 이루십시오. 저는 그저 이렇게 구할 뿐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설사 저로 효력을 하게 하시고 안받침물이 되게 하실지라도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셔서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네가 계속 구하기만 한다면 구한 후에도 역시 빈말 무더기뿐이다. 왜냐하면 너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너는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람의 정형을 아십니다. 이 일에서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저의 마음이 당신께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이 너를 감동시킨다. 만약 네가 기도하는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면 무미건조하고,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네가 중얼중얼하기만 하고 묵도하거나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그것은 순전히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다. 네가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데 성령이 역사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면 공손하고 정직해야 하며,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율법시대를 보면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칠 때,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도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이고 또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눈을 감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의 기도에 이지가 없을 때가 너무나 많은데, 모두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인솔자가 되게 하신 이상, 제가 모든 것을 합당하게 하고 당신의 사역에 엇나가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꼭 제가 이렇게 하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라는 말투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이런 기도에는 이지가 없지 않으냐?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 이지가 없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겠느냐? 네가 그리스도 앞에 와서 내게 말할 때 이지가 없는데, 내가 들어줄 수 있겠느냐? 너를 단번에 차버리겠다! 네가 영 앞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 앞에 온 것은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때, 어떻게 말해야 이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해야 정형을 경건한 위치에까지 조절하여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기도하면 좋아질 것이고, 기름을 바른 것 같을 것이다. ……예수의 기도를 보아라(예수의 기도를 언급하는 것은 사람이 꼭 그의 그 각도에, 그 위치에 서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라고 기도하였는데, 즉 만약 할 수 있으면이라는 이런 뜻으로 상의한 것이지 “해 주소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는 순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순복하는 상황에서 기도하였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두 번째도 같은 말로 기도하였고, 세 번째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듬어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완전히 순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선택이 조금도 없었다. 그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 피 흘릴 것을 생각하니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에 관련되는 일이고 또한 그가 아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더듬지는 못한 전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울 것을 생각했음에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아주 순복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정상인데, 조건을 따지며 말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지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것이다. 첫 번째로 기도할 때는 깨닫지 못하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했는데, 순복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두 번째도 역시 그렇게 기도했는데, 모두 세 번 기도하였다(물론 세 번 기도한 시간은 3일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고 난 후 더 이상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처음 두 번 기도할 때는 모두 찾고 구하였는데, 역시 순복하는 상황에서 찾고 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어떻게 어떻게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조건을 예비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마 너에게 적합한 조건을 마련해 주지 않고 너로 그 고통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사람이 기도할 때 늘 “하나님, 저에게 마련해 주시고,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런 기도는 얼마나 이지가 없느냐! 너는 기도할 때 이지가 있어야 하고, 순복하는 전제하에서 기도해야 하며, 정해 놓아서는 안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여 어떻게 어떻게 해 달라고 구해야지.’라고 정해 놓는데, 이런 기도는 너무나 이지가 없다. 많은 경우에 그 영이 사람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기도해도 무미건조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성경 여러 곳에 확실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이 이미 응하였음을 어떤 하나님의 말씀들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말세에 내가 나의 책을 펼칠 때(책은 내 입의 모든 말을 가리키고 마지막 때에 하는 말을 가리키는데 다 내 책의 내용이다) 나는 이것을 너희들에게 알린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질문: 저는 성경의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일까요? 답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전부의 역사, 하나님 경영의 취지, 그리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효과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14장4절에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에 따르고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이 어느 정도까지 사역하셨으면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하고, 또한 하나님 오늘날의 뜻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싹 따르지 못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 땅에 있는 사람을 인솔하는 사역을 하였셨는데, 사람들에게 계명, 율례, 법도를 지키도록 요구하셨고, 사람이 만약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엄격히 실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 그리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하셔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며,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하여 다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등등을 요구하셨습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고,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더 이상 율법으로 정죄 받거나 사형 당하지 않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만 지키고 주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 받지 못할뿐더러 정죄까지 당했습니다. 그때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와 마태 등과 같은 그런 사도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고수하던 서기관, 제사장, 바래새인들은 비록 그들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면서 전도하고 일생동안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었지만 주 예수님께서 역사하러 오셨을 때, 그들은 율법을 고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신도들 가운데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이 하기 위해 도처에서 예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트려 신도들을 미혹했으며 최종에는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고통을 받고 화비했었다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다시 육신으로 돌아 오신 예수님,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 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 나라 시대를 개척하여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가져왔고,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한다는 사역을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16장12~13절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는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진리로 심판, 형벌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현실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다만 예수님의 그 단계 구속 사역에만 순복하고 하나님 말세의 역사에 대하여 순복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후,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역사를 거쳐 패괴 성정도 어느 정도 정결케 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역사만 지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죄짓고 회개하는 정형에서 살고 있으며 죄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여전히 죄의 자손들이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34~3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로지 정결함을 얻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여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의 전체 경영 계획, 다시 말해 6천년 경영 계획은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뉘는데, 그것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즉, 구속시대) 그리고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역사한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각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행한 궤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킴으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탄의 궤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해 내는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멈추지 않았고, 그의 발걸음도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이 늘 바쁘게 보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이 인류를 6천년동안 경영하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 3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 나라시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3단계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고 매 단계 사역은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드높고 깊어진 것이고 또한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한 사역입니다. 사람이 만약 율법시대 여호와의 사역만 지키면서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죄는 사함 받을 수 없고 예수님께 인정 받지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에 사람이 만약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만 고집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범죄 본성이 깨끗함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연단으로 타락함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떠날 수 없고 동시에 사람의 협력도 아주 관건적인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에 순복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오늘날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그 단계 사역은 성도들에게 갈 곳을 예비하는 사역이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야말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을 믿은 적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오로지 말세 이 단계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기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구원의 역사 중에서 한 단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정결케 되어 온전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을 통해 하시지 않고 반드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하셔야 합니까?

『전체 경영 계획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는 것이다. 제1단계의 창세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만일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다.』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까? 왜 아무도 성경을 풀 수 없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우리가 먼저 맞추지 말고 성령이 어떻게 하는가를 좀 봅시다. 진리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성령의 사역인가를 대조해보고, 성령 사역으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옳은가를 검증해 봅시다.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지 않았고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람은 참견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좋기는 그래도 성령이 하는 사역을 말해보고 하나님의 현재의 최신 사역을 말해 봅시다. 성경은 당시에 선지자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쓴 말이니,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오직 성령만이 그런 말씀의 뜻을 드러낼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지요. 당신도 당신을 하나님이 아니라 하고 저도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감히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감히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사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고, 요한이 오고, 엘리야가 오더라도 그들은 감히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없지요. 그것은 그들이 다 어린양이 아니며, 오직 어린양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으며, 그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말세는 다만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율법시대도 대표하지 않는다. 단지 말세에서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밀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런 비밀은 어떤 사람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경의 실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경을 보고는 혹시 얼마간의 진리를 터득하거나 얼마간의 글귀를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글귀에 포함된 뜻은 사람이 영원히 풀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본 것은 모두 죽은 글귀이지 여호와가 역사한 장면과 예수가 역사한 장면이 아니며, 사람은 또 이런 사역의 비밀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최대의 비밀이고 가장 은밀한 것이어서, 사람은 아예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직접 깨달을 수 없다. 반드시 그가 친히 사람에게 해석해야 하고 사람에게 풀어놓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영원히 폐쇄되어 있는 비밀이다. 종교계의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오늘 너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들마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6천년의 사역은 모든 선지자의 그런 예언보다 더 심오하고, 창세부터 현재까지의 최대의 비밀이며, 역대의 선지자도 완전히 측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오직 마지막 시대에서만 풀어놓았고 이 이전에는 풀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만일 이 비밀을 깨닫고 전부 터득할 수 있다면, 모든 종교 인사들도 이 비밀에 의해 정복될 것이다. 오직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상이고, 사람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당시에 유대인들은 다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를 핍박하였는가? 이것은 모두 그들의 패역한 본성과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당초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한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의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의 사람도 성육신인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실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무릇 성령 사역이라면 너는 일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 사역이라면 ‘흐름’이 옳은 것인즉, 너는 조금도 고려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골라가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몸에서 네가 더 많은 견식을 넓히고 딴 속셈을 갖는데, 이것은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더 많은 성경의 근거를 찾지 말아야 하고, 성령의 사역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에, 너는 하나님을 고찰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나에 대하여 더 많은 근거를 찾아서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유익한 점이 있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너를 완전히 내 앞에 이끌어올 수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비록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리라고 예언하였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예언이 누구의 몸에 응할 것인가를 꿰뚫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모두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이 사람에게 모두 유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나와 예수는 서로 다른 일이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집회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그는 다만 당시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논하였다. 그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사역만 하였지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구약 율법을 제정하였는데,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데에 유익하지 않겠는가? 그는 다만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담당하리라고 예언하였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매 시대의 사역을 하는 데는 상당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 사역을 앞당겨 하지 않는다. 이래야만 그의 매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당시에 어떻게 인내하는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통받아야 하는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데, 네가 만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를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네가 성경만을 받쳐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가든지, 설교자든지 누가 미리 오늘의 사역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은 매 단계 사역에서,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았고 그의 이전의 사역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하였다. 물론, 예수가 와서 사역한 것도 적지 않은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에 하는 사역도 구약의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老黃歷)’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말씀을 너희에게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별로 큰 의의와 별로 큰 가치가 없기에 너희들을 도울 수 없고 너희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역을 하려는 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네가 말해봐라, 도대체 성육신인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구원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신 구원

말세에 이르러 우리는 더욱 주님의 구원을 받기 원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싶다면 반드시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사람에게 필요한 구원을 예비해 주셨는데 말세에는 어떤 구원을 예비해 주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과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직접 천국에 데려가실 거라 믿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신 분이라면 예수님이 어떻게 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겠습니까?

『하나님이 땅에 한번 오면 이름을 한번 바꿔야 하고, 한번 오면 성별을 한번 바꾸고, 한번 오면 형상을 한번 바꾸고, 한번 오면 한 단계 사역을 바꾸는데, 그는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