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2019년 05월 20일

편집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엄격한 엄마’가 되고 또 누군가는 ‘엄격한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의 문제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로 교육하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당신은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오늘 이야기 속의 주인공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럼 우리 함께 그녀의 체험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된 기쁨과 비애

결혼 후에, 큰아들이 태어났고 저는 아주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보살폈습니다. 큰아들을 건강하게 키우려고 육아 서적을 많이 보았고, 아들이 좋아하는 것은 가능한 그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었으며, 무엇을 하든 적극적으로 밀어주었습니다. 큰아들이 세 살 무렵에 저는 아들을 데리고 해변과 농경지에 자주 갔습니다. 왜냐하면 대자연을 자주 접촉해 다양한 사물들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바람대로 아들은 영리하고 아주 착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서서히 자라감에 따라 천방지축이었고 성질을 부릴때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잘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았고 자주 투정을 부리며 말썽을 피웠습니다. 아들로 인해 한 번 또 한 번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할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작은아들이 태어난 후, 저는 더욱 바빠졌고 성격도 거칠고 급해졌습니다. 하루는 작은아들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큰아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파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거나 혹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면 큰 소리를 내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고 잘 타일렀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큰소리로 “떠들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또 떠들면 벌세울 거야!”라며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저는 강제로 아들을 의자에 앉히고 5분 동안 벌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저는 차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큰아들이 말을 듣게 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통제 방식은 아들을 달라지게 하기는커녕 큰아들의 성격만 점점 더 거칠게 변했습니다!

하루는 큰아들이 말을 듣지 않고 큰소리로 장난치는 바람에 작은아들이 잠에서 깼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단했고 게다가 자질구레한 집안일로 너무 힘이 드는데, 큰아들마저 이렇게 말썽을 피워 저는 단단히 화가 나서 “목소리 좀 낮추라고 너에게 몇 번이나 말했니, 왜 말을 안 듣는 거야?”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때 큰아들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동생 곁으로 다가가 손으로 동생의 입과 코를 막았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저는 얼른 큰아들을 한쪽으로 밀어제치며 “뭐 하는 짓이야. 동생이 숨이 막혀 죽는 거 몰라?”라고 말하자 큰아들이 정색을 하고 오히려 저에게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큰소리치려고 낳았어?”라며 고함을 지르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들의 말에 전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는 작은아들을 다독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나는 왜 늘 아들과 큰소리로 말다툼을 하는 것일까?’ 저는 큰아들이 전보다 많이 수척해졌고, 여러 번 꿈에서 깨어 울었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 성질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주 큰아들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이 때문에 큰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심지어 한밤중에도 편히 잘 수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잘 웃고 예의 바른 아이가 말썽꾸러기로 된 것입니다. 그런 일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저는 스스로를 반성해 봤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큰아들은 아직 어리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엄한 말투로 말할 수 있지? 내 성질을 왜 억제하지 못할까? 예전에 그렇게 큰아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줬으면서, 지금은 무정하게 대하고 아들에게 상처를 주잖아!’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큰아들의 말썽은 멈출 줄 몰랐고, 심지어 하루는 저의 휴대폰을 가로채 땅바닥에 내던졌습니다.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끓어오르는 혈기를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줄곧 화를 냈고 또 자책을 되풀이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의 근원을 찾게 해 주다

2017년 9월,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를 나누면서 툭하면 큰아들에게 화를 내는 저의 내적인 상황을 자매들에게 이야기하고 해결 방법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한 자매가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다.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한다.』,『혈기라는 것은 좋은 것이냐?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냐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냐? (부정적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사람이 혈기에 따라 사는 것은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나쁜 일입니다.) 그럼 어떤 일이 임할 때 혈기와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일까? 아주 분명한 것은 그 일에서 그 사람이 혈기를 드러냈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에 대한 순복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툭하면 큰아들에게 혈기를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제 행동들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큰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래도 잘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거나, 또 큰아들이 말대꾸를 할 때 아들이 저를 엄마로 대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로서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여겨 걸핏하면 아들에게 화를 내고 고함을 치면서 꾸짖고 나무랐습니다. 엄마라는 지위로 아이를 억누르고 아들이 제 말에 따르고 말을 잘 듣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은 소용이 없을뿐더러, 원래 저와 가장 가까웠던 아들이 저를 늙은 어미 호랑이로 여겨 저를 멀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타락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하고 아들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와 잘 지내지 못하고 정상적인 소통을 방해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교육 방식은 사탄의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한 것으로서 혈기에 속하고 부정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기로 결심하다

저는 화를 내는 이유를 찾았는데 그것은 사탄의 교만한 성품으로 아들을 대했기 때문입니다.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며 시종일관 바뀌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이 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 의지해서 변화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통해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시는 저의 교만한 성품으로 아이를 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변화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세요.’

하루는 저녁 7시가 지나 작은아들이 아주 피곤한 낯빛으로 잠을 자겠다고 칭얼거리며 떼를 썼습니다. 저는 평소에 두 아이를 같이 재웠는데, 큰아들이 배가 고프다며 저에게 우유와 시리얼을 먹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이 울고불고 떼를 써서 작은아들을 먼저 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달래도 작은아들은 잠을 자지 않고 형을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큰아들을 불렀는데 큰아들은 짜증을 냈고 ’쾅’하고 문 닫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순간 저는 화가 치밀어 “뭐 하는 짓이야, 동생이 자야 하는데,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어떡해?”라고 하자 큰아들 역시 지지 않고 화를 내면서 “무슨 상관이야. 엄마가 왕이 아니야. 하나님이 왕이잖아.”라며 말대꾸를 했습니다. 아들의 말에 또 혈기로 아들을 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방금 또 저도 모르게 혈기로 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고 싶고 더 이상 타락한 성품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들에게 “아들, 이리 와, 엄마가 안아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을 꼭 안고 “아까 너에게 고함친 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를 용서해 줘!”라고 사과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아들이 저를 용서해 주지 않을까 봐 그리고 아들이 전처럼 계속 저에게 대들까 봐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잠시 후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나도 미안해. 엄마한테 큰소리친 거 잘못했어!” 아들이 이렇게 말하자 제 마음은 따뜻해졌고 감동을 받았으며, 그날 밤 아들과 서로 껴안고 잠을 잤습니다.

큰아들과의 문제가 철저히 해결되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감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저는 늘 부모의 위치에 서서 아이를 꾸짖으면 안 되고 엄마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동등한 입장에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이고 개구쟁이라서 말썽을 피우는 것은 극히 정상이며, 아들이 철없이 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에서 아이를 잘 타이르면 말을 잘 듣기도 합니다. 마치 지난번 아들이 ‘쾅’하고 문을 닫았을 때, 제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저의 신분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말했을 때는 아들이 말을 듣고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을 생각하니 아주 편안해졌고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들이 제 생각에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고 아들과 잘 소통하며 사랑과 인내로 대하고 싶어졌습니다.

하루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아들이 뛰어와서 저를 불렀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계속 큰 소리로 저를 부르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순간 혈기를 부리는 것임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저의 마음을 평온히 하고 사탄 성품의 통제를 받지 않고 더 이상 아들에게 성질을 부리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치밀었던 화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런 후 인내심을 가지고 무슨 일인지 가서 알아보고 아들을 도와 일을 처리해 주었습니다. 간혹 제가 자매들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큰아들은 타일러도 듣지 않고 제 곁에서 시끄럽게 해서 제가 짜증이 나 화를 내고 싶은 순간이면 바로 하나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감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저는 제 위치를 바로잡고 더 이상 엄마의 자리에서 아들을 훈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성품으로 살면 안 되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했을 때, 치밀었던 화가 서서히 누그러졌고 내적 상태도 좋아졌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아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고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 집에서 제작한 동영상과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면서 같이 찬양도 불렀습니다. 아울러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과 천지 창조, 하나님의 주재에 관한 진리를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들도 하나님 집에서 제작한 동영상과 뮤직비디오, 그리고 단막극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와의 관계도 더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기쁘고 위안이 되었으며, 아이들과 관계가 가까워지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와의 사랑을 더 애틋하게 해 주다

큰아들은 주말마다 어린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고, 저는 날마다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고 불평을 하면 전처럼 명령하거나 꾸짖지 않았고, 아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듣고 나서 서서히 조용해 졌고 말다툼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큰아들은 예전보다 훨씬 말을 잘 듣고, 어떤 일에 부딪히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하루는 큰아들이 갑자기 “엄마, 이젠 엄마가 신경질을 부리지 않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감동되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 저의 타락한 성품을 변화시켰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게 한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하고 말씀에 따라 살면, 정말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쁨과 평안을 준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태국 순신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동료와의 전쟁, 이렇게 끝났다

함께 일하는 언니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 언니를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때, 저도 모르게 언니와 있었던 ‘전쟁’이 떠올랐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운 동료가 불만이다 저는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처음 일을 했을 때, 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그릇에 담아주는 일을 담당했고, 저는 홀 서빙과 포장, 분류하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손님이 주문하면 얼른 언니에게 말했고 언니는 바로 음식을 담아 제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각자 맡은 일을 했기 때문에 저는 주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며, 가끔 바쁠 때는 서로 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손님이 주문하기만 하면 언니는 본인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니의 그런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제 일이 많을 때 언니가 도와준 적도 있었고, 더군다나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시시콜콜 따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인내와 양보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는 계속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아 주지도 않고 재빨리 다른 일을 한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언제부턴가 본인의 일을 전부 제게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언니를 원망했습니다. 속으로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번 언니 일을 대신할 순 없어! 게다가 일을 많이 한다고 사장님이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계략이 떠오르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손님이 여러 명 들어왔습니다. 세트를 주문한 사람도 있었고 단품을 주문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 없이 바쁜데 한가하게 여기 닦고 저기 닦고 하는 언니를 보니 갑자기 화가 치솟았습니다. 너무 바빴던 터라, 언니한테 큰소리치고 싶은 것도 참으며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직접 주방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언니가 정리한 소스가 도통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웃으며 언니에게 “언니, 소스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언니는 퉁명스럽게 소스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잖아, 직접 가져 가!” 언니의 이런 태도에 화가 불끈 치솟았지만, 저는 겨우 화를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언니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언니, 정말 너무하네. 나는 이렇게 바쁜데, 언니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말을 그렇게 야멸차게 쏘아붙여? 이 일은 원래 언니 담당이잖아. 내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나한테 함부로 막 대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날 얕봐도 되는 건 아니야. 지금 언니랑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참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영업이 끝나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온 후,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직원이었다면 진작에 언니랑 싸움이 났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베풀고, 인내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언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목조목 언니한테 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사람들한테 당하라는 말인가? 나는 힘들어서 그렇게 실행하지 못하겠어. 그동안 계속 참으면서 언니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내가 참을수록 언니의 행동은 더욱 심해졌잖아? 내일 출근하면 언니가 게으름 피웠던 걸 꼭 사장님에게 말해야겠어. 그럼 사장님도 언니를 안 좋게 볼 거고, 앞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나 혼자만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계략을 포기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니 자책감이 들었고, 불현듯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행이 제멋대로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이방인보다도 더 사악한데…』 순간, 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쁜 마음으로 뒤에서 고자질하는 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남을 괴롭히는 건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니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끓었습니다. 언니를 다치게 하고 싶진 않지만, 사장님에게 언니 행동을 말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겠습니다. 언니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세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사람의 패괴 본성은 같으나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즉 어떤 사람은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말해서 드러나며, 어떤 사람은 겨루고 빼앗고, 어떤 사람은 겨루지도 빼앗지도 않지만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말을 퍼뜨리며, 어떤 사람은 속으로 불평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물건을 내팽개치고 부순다. 방식이 다르지만 본성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같으며 대부분 다 이런 것이다.』,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천하며, 너희의 말투는 상스럽고, 너희의 생활은 비열하며, 심지어 너희에게 갖추어진 인성마저 저속하다. 사람 됨됨이는 너무나 도량이 좁아 언제나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자기의 명예나 지위를 위해 다투는데,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고 불못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이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과 제 마음과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감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 중 '뒤에서 나쁜 짓을 한다' 라는 구절을 본 후, 저의 추한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반성했습니다. 음식을 담아주지 않는 언니가 일을 적게 했고, 언니 때문에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고생했으며, 처음에는 그래도 인내하고 양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언니를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정면충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언니 모르게 사장님에게 사실을 알린 후, 사장님이 언니에게 주의를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언니 일까지 떠맡지 않아도 되고 화도 풀릴 것 같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니가 계속 나를 만만하게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참을 수도 없고 참을 필요도 없다’ 등 이런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니한테 보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인격이 미숙하고 속이 좁으며, 자질구레한 걸 시시콜콜 따졌고 너무 음흉하고 악랄했습니다. 이 모든 걸 깨달은 후, 육체를 배신하길 원했기에 얼른 하나님 앞에서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고자질하는 비열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한이 있어도 비열한 소인배 같은 짓은 하지 않겠어.’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손해 본 것을 항상 마음에 두다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말하진 않았지만, 손님이 왔을 때 변함없이 딴짓하는 언니를 볼때마다 저는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가게에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한테 뭘 하라고 하니까 선뜻 그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속으로 ‘아, 이 언니는 원래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사장님이 있을 때 일부러 언니한테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일부로 다른 일을 해 사장님이 직접 언니에게 일을 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했더니 언니한테 화낼 필요도 없고, 언니보다 일을 많이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게에는 손님이 많았고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언니는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겪어 온 게 있었기에 이번에도 자신 있게 “언니! 죽 하나 포장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는데, 언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언니는 평소와는 다르게 대뜸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네가 직접 해!” 언니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을 응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성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껏 매일 생겼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전부 하나님의 안배였습니다. 이건 당연한 언니의 일이었고, 제가 그렇게 심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언니는 왜 갑자기 저한테 이러는 걸까요? 저는 언니 때문에 화내지 않아도 됐던 며칠 동안 아주 좋았습니다.언니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았고 언니의 행동을 문제 삼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변했다고도 느꼈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이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하나님의 일깨우심으로 정상 인성을 살아내다 그동안 언니를 대했던 제 태도를 떠올려보니, 진심으로 편견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저 방법을 바꿨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고 덕분에 언니와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도 제 일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거 역시 음흉하고 비열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정상 인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더는 언니를 노려보지 않았고 그저 제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정상 사람의 성품에는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부패하지 않다. 또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관통되게 하며, 사람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처럼 순진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땅에서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한 가지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기를 원한다. 지금 너에게 무슨 큰일이 닥치지 않았고 네가 큰 증거를 하지도 않았지만, 일상생활의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도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과 가족이 감탄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며, 언젠가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해 다 탄복하고,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야말로 너무나 좋다는 것을 보게 되면, 너에게 있어서는 바로 하나의 간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의 교활한 계획을 알고 계셨고, 언니의 불만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셨으며, 제가 즉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언니의 행동을 뒤에서 고자질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완전히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매번 언니가 일을 적게 하고 제가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그걸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런 행동이 잔꾀를 부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겉으로 볼 때는 문제 삼지도 않고 사장님한테 알리지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교활한 계획을 꾸민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말 비열한 행동이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칭찬할 정도로 말과 행동거지에 신중해야 하며,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이며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시시콜콜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피곤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며, 오직 진리의 실제만을 살아내어 정상 인성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언니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내려놓고 싶습니다.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고,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일을 제대로 하든 하지않든 상관없이 저는 양심에 따라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더라도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길 원합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아주 바빴습니다. 언니는 바쁠 때도 여전히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칠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면 육체를 배신할 믿음이 생겼고, 언니의 행동으로 기분이 좌우지되지도 않았습니다. 언니의 행동을 봐도 더는 화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저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해서 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덕분에 조금씩 언니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다시는 이런 일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 축복이 보인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또 손님 여러 명이 몰려왔지만 저는 언니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가지고 나오다 문뜩 고개를 들어보니, 뜻밖에 언니 손에도 똑같은 음식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언니가 제게 친절한 말로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사장님이 있든 없든 우리는 예전처럼 본인이 맡은 일을 하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왔습니다. 평소에도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언니는 일을 꼼꼼히 잘한다며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주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이나마 정상 인성으로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언니가 저를 칭찬하면서 언니와의 ‘전쟁’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행복한 부부,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성년이 되었고, 그 후 아버지가 정해주시는 대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무식할 뿐만 아니라 욱하는 성질까지 있다는 걸 결혼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집안의 시시콜콜한 일들로 인해 늘 쉴 새 없이 다투곤 했다. 딸이 막 2학년이 되던 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자,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싸우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집을 새로 지었고, 나도 돈을 빌려 낡은 우리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살 수 있는 집을 왜 새로 지어야 하느냐’ 며 반대하였다. 나는 입이 닳도록 설득해보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반대하였고, 우리는 이 일로 인해 또 반 년 동안을 다투며 살았다. 서로 마음이 좀 누그러졌을 때,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이고, 당신보다 내가 아는 것도 더 많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데, 당신은 왜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야?” 그러자 아내가 지지 않고 말했다. “왜 내가 항상 당신 말을 들어야 돼?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지도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는 서로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짧게는 사흘에서 닷새, 길게는 십여 일을 서로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하며 지내곤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보며, 난 늘 하늘을 원망하곤 했지만, 이혼을 하자니 아이가 불쌍했고, 안 하자니 일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2012년, 친구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타락을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타락된 성품도 해결해 주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만 하면, 우리 부부의 다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내와 반평생을 다투며 살았는데, 만약 하나님을 믿어서 우리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그 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님들과 자주 함께 모임을 갖고 교통하였다. 어느 날, 나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부부 사이에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함께 생활하지 않았고 또한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몇 년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적응된다. 서로 얼마간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인성이 정상적이라면 늘 서로 마음속 말을 나누게 된다.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거나 직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자신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려고 계획한다거나 네가 직장에서와 아들딸을 대함에 있어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한다면 서로 매우 가깝고 마음을 잘 알지 않겠느냐? 만일 그가 지금까지 너와 마음속 말은 하지 않고 돈을 벌어다 주면 그만이고, 너도 지금까지 그에게 마음속 말을 하지 않고 흉금을 터놓지 않는다면 서로의 마음에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 틀림없이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너와 거리가 있고 너도 그와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너는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며, 너는 그의 필요를 모르고 그도 너의 요구를 모른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 수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아내와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원인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내와 사십여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여태 아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아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여태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줄을 몰랐다. 그저 상대방에게 내 말을 따르게만 하고 싶었지, 상대방의 고충은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다툼이 생기면 그게 모두 상대방의 잘못이라고만 여겼기에,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더 멀어졌고, 갈등은 더욱 더 커졌다. 나는 이 말씀을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아내는 이 말씀을 보고 머리를 연신 끄덕이면서, “하나님 말씀이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시는 것 같아, 우리 두 사람 정말 그렇잖아. 그럼 이후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서로 ‘속마음 털어놓기’를 본받아,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다시 다투게 되지는 않을 거잖아” 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핸드폰 문자를 보려고 이리저리 안경을 찾았다. 아내는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는 나를 보고 책망을 하였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은 안 보고, 왜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다 낭비해버리는 거야. 그러려면 채소밭에 가서 채소나 따 와!” 아내의 명령조 지적에, 화가 난 나는 아내에게 눈을 부라리며, 밖을 나갈 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의자를 발로 확 차서 넘어뜨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채소밭으로 가버렸다. 마음속으로, ‘나처럼만 잘해 보라지, 집안 일에 바깥 일까지 죄다 도맡아 하는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날 조금이라도 존중하기는 하는 거야?’ 나는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채소를 따서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낸 것은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것임을 깨닫고, 곧바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였다. 기도를 하고 나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당신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당신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 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타락과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소화기처럼, 내 마음속의 그 알 수 없는 분노를 즉시 사라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내의 좀 심한 말투와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발끈한 것이었다. 내가 화낸 것은 그저 나 자신의 체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사탄의 타락된 성품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 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줄곧 내가 가장이고, 내가 아내보다 아는 게 많고, 아내는 일자무식이며, 아내의 생각이나 견해가 나보다 못하니까, 아내는 내 말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그 즉시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곤 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모두 내가 언제나 가장의 지위에 서서 거만하게 아내를 깔보고,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내가 장악하려고 해서 생긴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아내의 말투가 좀 심하긴 했지만, 아내는 내가 잘되라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진리를 갖추라고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아내의 태도가 안 좋다고 싫어하다니, 난 정말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집에 돌아 온 후, 나는 아내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인식한 것들을 교통하였다. 그러자 아내도, “방금 내 말투가 좀 심했어. 내 잘못이야, 이게 다 사탄의 거만한 성품 때문인 것 같아.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것이니까, 이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야” 라고 말했다. 아내의 교통을 듣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공과를 배우게 하고, 우리의 타락된 성품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사탄에 의해 극히 타락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인·사·물을 예비해 주셨다. 벼 벨 때가 되었지만, 아들의 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던 아내는 돌아올 수가 없었기에, 나는 집에서 800평이나 되는 벼를 혼자 베느라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아내가 왔길래,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한번 봐봐, 이렇게 많은 벼를 어떻게 나 혼자 다 베라고 그러냐? 게다가 밥도 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그런데 당신은 도와주러 오지도 않고…” 아내는 나의 주절주절 끝 없는 잔소리에 화를 냈다. “당신 혼자 집에서 일하느라 힘들어서 나한테 화내는 줄은 나도 알겠는데, 나라고 무슨 수가 있냐고? 아들과 손자가 나 혼자만의 자식은 아니잖아. 당신이 자꾸 이러면, 나 이제 안 돌아 올 거야.” 아내의 말에 나는 더욱 화가 나서, 욱하는 마음에, “그래, 그럴 능력 있으면 오지 마!” 라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아내가 신경질을 확 내고 진짜 가버릴 줄은 몰랐다. 아내가 가버린 후,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왜 또 화를 낸 거야, 이게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게 아니면 뭐지? 아, 정말! 아내는 이미 가버렸고 이제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또 왠 일인가? 이튿날,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문을 들어서자 마자, 어제 저녁 마음이 너무 괴로워 잠을 못 잤고, 그렇게 화를 벌컥 내고 가버리면 안되는 거였다고 말했다. 나도 뉘우치며 아내에게, “어제 저녁에 나도 당신처럼 벌컥 화내고 나니까 마음이 괴로웠어, 게다가 며칠, 일 때문에 바빠서 하나님 말씀도 안 읽어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어,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 읽자.” 이어서 우리는 같이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었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사람의 삶은 늘 사탄에게 방해받고, 심지어 사탄에게 통제받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사탄에게 구금되어 있는 사람이고, 자유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손에서 풀려 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과 권리가 없는 사람이고, 사탄에게 끊임없이 뒤쫓기고 가차 없이 공격당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행복을 논할 여지가 없고, 정상적인 생존 자격을 논할 여지가 없으며, 인간의 존엄을 논할 여지는 더욱 없다.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사탄과 싸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경외를 무기로 삼아 사탄과 결사전을 벌여 사탄을 철저히 물리침으로 사람을 보기만 하면 피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들면, 사탄은 사람에 대한 공격과 참소를 철저히 포기할 것이다. 그때면 사람은 구출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다 읽은 후,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명확해. 사탄에게 타락된 이후로, 우리에게는 전혀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도 없고,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성도 전혀 없어. 나 혼자 농삿일 하느라 좀 힘들어지니까, 당신이 나 안 도와준다고 바로 원망하고 당신한테 화내고 불끈하고, 난 너무 이기적이고 거만해.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고, 늘 당신한테 내 말에 순종하라고만 하고, 당신 감정 따위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이 날 나무란다고 나도 오기를 부렸잖아, 내가 게으름피우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나를 비난하는 거냐고 생각했어. 역시 우리는 사탄에게 너무 깊게 타락 되어서 항상 거만한 본성에 따라 살고 있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는 생각만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 안 다툴 수 있겠어? 우리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우리 몸의 사탄 성품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자.” 나는, “그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는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다음부터는 어떤 일을 만나든, 다시는 거만하거나 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상대방 말이 옳으면 바로 받아들이고 따르고, 진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의지를 굳게 다졌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문제에 부딪히면,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늘 하나님 앞에 와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타락됨을 반성하고 인식하였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점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아내가 먼 곳으로 본분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둘러 밥을 다 해 놓았는데도 아내가 아직 귀가 전이라, 나는 손전등을 들고 거리로 아내를 마중 나갔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집안밖의 모든 일을 앞다투어 다 하면서, 줄곧 내가 집안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도록, 진리를 많이 갖추도록, 어떤 성과가 있으면 아내와 함께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늘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다투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주위의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점점 젊어진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 집에서 어떻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친구들아 , 이제 여기서 그만!

언제부턴가 학교는 평화롭지 않고 사회처럼 암투로 가득해졌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반마다 ‘일진’이 있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나도 자주 괴롭힘 당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다. 그 녀석은 매일 날 괴롭히며 내게 이것저것을 사 오라고 시켰다. 내가 사 오지 않으면 친구들을 불러 나를 때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그를 대할 때 항상 조심하게 되었고, 맞을까 두려웠다. 나는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어떠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분별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탄의 시험에 빠졌다. …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진’들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 옆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이쑤시개를 씹으며 말했다. “샤오챵, 우리랑 다니는 게 어때? 쟤네가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잖아. 우리랑 같이 다니면 널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난 속으로 ‘지들도 똑같은 애들이면서, 싸움으로 이름이나 날리고 말이야. 너네랑 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냐? 내가 너네랑 같이 다닐 거 같아?’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거절하며 말했다. “꼭 같이 다니지 않아도 우린 같은 반 친구잖아. 나 지금 공부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때?” 그러자 그 녀석이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잘 생각해봐.”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그 후 녀석들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그중 한 녀석이 말했다. “얌전한 네가 매일 다른 녀석들한테 괴롭힘당하니까 하는 얘기야. 너도 알잖아.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부모님이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랑 많이 왕래해야 해(선물을 건네는 것을 뜻한다). 담임 선생님이 돌봐주면 널 괴롭히려는 사람도 없을걸?”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도 말했다. “네가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학교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수밖에 없어. 그래야 널 감히 괴롭히려는 녀석이 없지.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숙제도 니가 맨날 대신해줘야 해.” 방과 후 침대에 누우니 녀석들이 했던 말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걔들 말도 맞는 말이긴 해. 다른 애들이 항상 날 괴롭히긴 하잖아. 그 덩치 큰 녀석이 맨날 괴롭히고 때리고 말이야. 집안 형편도 별로라 아버지가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진 않을 텐데. 휴! 걔네가 날 찾아온 게 벌써 몇 번인데, 내가 계속 거절하면 걔네들이 나 괴롭히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 녀석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녀석들과 같이 다닐 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은 몰려다니며 같이 먹고, 마시고, 놀았다.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쓰기가 아까워 혼자 쓰지 않고 녀석들과 다닐 때만 썼다. 녀석들은 내가 돈을 다 쓴 후에야 돈을 꺼냈다. 나는 녀석들이 단순히 나를 밥값 내는 애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싸울 때도 나를 불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 중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님이 한 판 붙으러 오라는데 너 여기서 뭐 하냐? 얼른! 빨리 가자!”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싸움이라니? 여태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왜 싸워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어떡해?’ 두려운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왜 싸워야 하는 거야?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자 녀석이 답했다. “나도 몰라. 형님이 싸우라고 하니까 싸우는 거지. 심하게 다치기야 하겠어?” 녀석은 말하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다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간 거야? 싸우자고 한 사람들이 어디 간 거야? 어디 숨은 거야, 대체?” 속으로 ‘없다니 다행이다. 싸우지 않아도 되겠네. 괜히 싸웠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때 잔뜩 화가 난 대장이 말했다. “가자. 일단 밥 먹자. 밥부터 먹고 다시 해결하자!” 밥을 먹고 난 후 우린 다시 옥상으로 왔다. 대장의 고함만 들려왔다. “때려! 때리라고! 어디 한번 제대로 때려봐! …” 이 말을 들은 나는 ‘저 사람이랑 원한도 없는데 왜 때려야 하는 거야. 안 때리자니 체면을 구길 텐데. 앞으로 저 녀석들 낯을 어떻게 본담’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왕 왔으니까 때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로 한 대 차는 척을 했다. 하지만 진짜로 차진 않았다. 다시 한 번 차려고 할 때 대장이 외쳤다. “그만, 그만 때려.” 놀라 꽁무니를 빼는 두 녀석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들이 간 후, 대장이 성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왜 안 때리냐?” 나는 “다들 섞여 있어서 누가 누군지 몰랐어. 혹시 잘못 때릴까 봐”라고 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업 종이 울렸다. 우리가 막 교실로 돌아왔을 때 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샤오챵, 담임 선생님이 같이 교무실로 오래.” 나는 속으로 ‘망했다. 선생님께 들킨 건가?’라고 생각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아까 맞은 아이 두 명과 그 녀석들의 부모님, 교장 선생님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속으로 ‘저 녀석들의 부모님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나는 이 녀석들과 어울려 다녔던 걸까? 왜 저 녀석들의 싸움을 도와준 걸까? 싸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한참 마음이 괴로워 할 때 예전에 예배에서 교통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냐, 크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형제자매들과 늘 함께 있다. 주위에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너도 착실하게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 너 혼자 이방인들 가운데 있게 된다면 너의 마음속에 그래도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그들과 같이 있으면 그들과 똑같이 되기가 쉽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리키는 게 바로 나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 드리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멀리했다. 이런 나쁜 일도 분별하지 못하고 아무거나 따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책감이 들어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따라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녀석들과 형제의 우애를 다지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께서 무섭게 우리를 혼내셨다. “어린 녀석들이 벌써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고.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 가기라도 했으면 너희가 어떻게 책임질 거야? 누가 맞아죽기라도 했으면 너넨 그대로 감옥행이야. 고1 학생 두 명이 휴대폰 때문에 싸우다가 목 졸라 죽인 일도 있었던 거 몰라? 싸우고 난 후폭풍이 어떤지 알기나 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무서워졌다. 맞은 학생의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요즘 애들이 걸핏하면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데 싸우다가 누가 어디 하나 잘못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건 일생과 관련되는 일이잖아요!” 교장 선생님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로 말씀하셨다. “일주일간 정학이다. 한번만 더 싸우면 그땐 퇴학이야.” 당시 난 퇴학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심장이 철렁 했다. “샤오챵, 넌 평소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녔으니까 일단 학교에 남아.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 그 말을 듣고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됐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앞으로 저 녀석들과 몰려다니며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부디 구원해 주시옵소서. 다시는 악에 휩쓸리지 않고, 제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나이다.” 보름 후, 그 녀석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일 한 판 뜨러 가니까 꼭 나와라!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고. 내일 점심때 데리러 갈게.” 이 문자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지 않았다가 그 녀석들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그렇다고 가자니 그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잖아.’ 할 수 없이 이 일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모든 일은 전쟁과 같단다.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하는 거지. 그때 넌 어느 편에 설 테냐?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책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서 겉으로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다. 마치 그런 것이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굳게 증거할 필요가 있다.』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때란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구원하려 하시고,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너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 하나님께선 이런 환경을 통해 분별이 생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게 하고, 사랑과 증오를 명확히 가려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는 거란다. 그 녀석들이 너한테 문자를 보내 싸우러 가자고 한 건 부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님의 뜻에도 맞지 않으니 멀리해야 마땅하단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이게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결코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난 ‘일진’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또다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거리를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 주셨다.『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온 우주를 주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므로 그가 택한 각 사람의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매사는 하나님으로 놓고 말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다. … 네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 앞으로 올수록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고 안심하며 위안을 느끼고 누림을 얻게 되지만 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찾을 줄 모를수록 하나님은 더욱 상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주의 모든 사물을 하나님께서 주관 하시고, 모든 일 또한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그 녀석들이 학교에서 나를 찾아오는 것도, 다른 애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어. 그들을 따르지 않기로 한 이상 나는 이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해! 비록 내가 어린 나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성장할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나를 책임져주실 거야.’ 여기까지 깨닫자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일진’들과 확실하게 선을 긋고, 단호하게 그 녀석들에게 말할 것이다. “안녕!” 이라고! 그 후, 그 녀석들이 날 찾아올 때면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할 수 있었다.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 굳건해 보였는지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고, 날 괴롭히지도 않았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변 환경을 주재하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수중에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어려운 점을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에 ‘일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주먹을 휘둘러 범죄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것을 보며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타락된 길을 가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인 것이다. 나를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과 권능과 찬미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다시 되찾은 아들의 건강

하나님의 능력은 크시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도 청천벽력 같은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아들이 결국 중환자실에 눕게 되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을까요?

시험 보기 전에 어떻게 긴장을 풀어야 할까?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바로 2012년에 치렀던 고등학교 입시 시험이었습니다. 온 가족의 기대 속에서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예상밖으로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저는 크게 낙심했고 그 후 오랫동안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이후 낙심한 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온종일 고통 속에 사는 제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겠느냐? 너희가 이 몇십 년 살아오면서 소원대로 이루어진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 발생한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일이 얼마나 되느냐?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자신도 모르게 시기를 기다리고 천의(天意)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느냐? 또한 사람을 막막하게 하고 속수무책이 되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되느냐? 그 어떤 사람이든 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기대로 가득한데, 자신의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고, 먹고 입을 것이 근심 없고, 벼락출세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자신이 일생 동안 가난하고 비천하고 불우하고 재앙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예상하고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의 결정에 달렸고 제가 살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모두 예측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시에 떨어진 이 일이 나쁜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는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자 간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시며 도와주고 계신다는 걸 느꼈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간호대학을 마쳤고 저는 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격증은 간호학을 전공한 제게 있어서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간호사 업계에 종사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5년의 학업 역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제 학비를 대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께 너무 죄송할 것 같았습니다. 제 미래와 자존심, 그리고 부모님의 애쓰신 마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큰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긴장감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매일 시험 결과를 끊임없이 상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되어 하얀 간호사복을 입으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상상을 하다가도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가족과 친구들이 날 어떻게 볼까?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전날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어서 교제하려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러는 건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결정과 배정을 따르는 것밖에 없단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주시며 제게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사람이 어디에 갈 수 있고 어디에 갈 수 없는지, 매일 어디에서 생활하고 어느 해에 어디에서 생활할지, 어느 해에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언제가 전환점이 될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맞아, 내 운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놓으셨어. 만약 간호사가 되지 않을 운명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도 소용 없는 거야. 난 피조물에 불과하니까 조물주의 결정과 배정에 따라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교제을 해주셔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운명이 좋을지 나쁠 지는 이번 시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은 창조주의 배정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간호사 시험이 곧 다가옵니다. 시험에 합격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인도해 주세요.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저의 입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의 어려운 점과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어떤 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거나 어떻게 인도해 달라고 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이 닥칠 때 진심으로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진실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어떤 때는 사람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곧 응답을 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루지 못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가장 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든든한 저의 뒷심이 되어 주시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요? 평소에 저는 항상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쳐서야 긴장되어 기도하는 저의 모습에서 너무나 양심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를 했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간호사 시험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며 절대 잊지 말라고 제게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하지만 긴장된 마음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이 생길지 전 알 수 없습니다. 시험 문제가 어려울지, 제가 공부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네. 오늘따라 길에 신호등이 다 녹색불이구나” 저는 오는 내내 보게 된 녹색불이 하나님의 인도이자 배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보러 가는 이 길이 제가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땐 저는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시험에 합결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운명을 정해놓았으므로 제가 해야 할 것은 그저 하나님의배치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마음이 안정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는 방법뿐입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리는 순간에도 전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기도를 할수록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는 하나님께 제가 당황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내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친구들은 모두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에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었습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가끔은 불안을 느끼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전 하나님께 기도했고 시험의 합격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안배임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면 마음이 더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금세 2개월이 지났고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점수를 조회하기 전에 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랐고, 순종을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성적을 조회하고 용기를 내어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과목의 점수는 각각 351점과 331점이었고 커트라인보다 51점과 31점이 높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합격했습니다! 제가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시험 보기 전의 긴장을 해소하려면 우선 목표를 너무 높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 눈앞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제 곁에서 모든 걸 인도해 주셔서 제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주시며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긴장 없이 순조롭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급성 심근 경색이 발병한 아들 누가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

급성 심근 경색으로 아들의 생사는 알 수 없게 되었고 한번 또 한번의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그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마침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바로 힘이다

저는 당뇨에 걸린 지 16여 년이나 되는 환자입니다. 걸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많은 합병증까지 생겨 저는 또 백내장에 걸려 시력도 흐릿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금방 받아들였을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글도 쓸 수 있었지만 6개월도 안 되어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저는 소극적이 되고 믿음도 없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집회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집회입니다. 다음 집회에는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안 믿겠습니다. 저의 눈이 제 구실을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볼 수가 없고 복음을 전할 줄도 모르지, 하나님께서 저같은 소경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차라리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하나님을 떠나는 게 낫겠습니다……” 저는 속사포를 쏘듯이 단숨에 말해 버렸습니다. 다들 서로 마주 보면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했고, 열렬하던 집회는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실정을 말했지만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고 눈물범벅이 되어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자매님이 저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시지 말고 마음 진정시키고 우리 함께 노래를 부릅시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시가 ≪실제 하나님은 묵묵히 사람을 구원한다≫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다들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도 성령님이 저의 몸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의 전망과 운명을 옮겨 갔지만 모두 사람을 위해서이다. 어느 단계나 사람의 생존을 위하고 전 인류에게 땅에서 아름다운 귀숙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깨닫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치욕을 참으시고 또 친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나는 어떠한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자그마한 병을 하나님께서도 꺼리시지 않는데, 내가 참을 수 없고 소극적이 되었으니 이것은 너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고 또한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굳게 세웠습니다. 비록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밝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죽지 않고 더 살게 된다면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입니다. 2002년 8월의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저에게 나가서 사역에 협력하라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병고에 시달린 저는 그날따라 머리가 어지러워 한밤중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저의 남편(형제님)이 제가 괴로워하고 말할 기력도 없고 진짜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를 생각해서 말했습니다. “당신 몸이 이런데,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차라리 내가 가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말할까?” 이 말을 듣고 저는 엄격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세요? 정말 정신이 없네요, 당신 말처럼 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죠…… 하나님께서 ‘한가지 일이 임하여 네가 고통받아야 할 때 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검증하실 때이니 오늘 반드시 가야 해요.” 그리고 나서 저는 필요한 소지품과 약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병도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저는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나서 잠시 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가서 1주일 동안 협력하면서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만일 이전 같으면 적어도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아야 했고 또 이틀 동안 쉬어야만 천천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저는 비로소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라는 진정한 함의를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河南省 喜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