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아이의 좋은 부모이자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19년 05월 02일

어느 여름밤, 단지 내 공원은 평소와 다르게 시끌벅적했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조민은 홀로 벤치에 앉아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소음도 깊은 생각에 빠진 조민의 그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조민은 아들이 어렸을 때 천진난만하고 매일 자기를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자라면서 자신만의 생각과 취미, 생활 방식이 생겼고 성격도 점점 삐뚤어졌습니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면 두 사람은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서로 기분이 나빠져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조민은 아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골칫거리는 아들이 게임과 휴대폰에 푹 빠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줬지만, 아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민은 요즘 그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팠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랐습니다….

“아줌마, 가방 떨어졌어요.” 앳된 목소리가 조민의 생각을 끊었습니다.

“아, 고마워.” 조민은 억지웃음을 띄우며 가방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10살짜리 딸이 16살 오빠 옆에서 같이 모니터를 보며 소리 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핸드폰 게임

“오빠, 이쪽! 빨리! 저쪽, 저쪽! 아! 빨리 움직였어야지. 또 졌잖아.”

딸의 말에 조민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져 ‘쾅’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딸이 고개를 들어 “엄마!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둘 다 눈만 떴다 하면 게임이니? 공부 좀 해라.” 조민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자식들을 나무랐지만, 아이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민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내 말 안 들려?”

딸은 입을 삐죽이더니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조민은 최대한 화를 억누르고 아들 앞에 섰습니다. “게임이 밥 먹여 줘? 아니면 성적이라도 올려 줘? 어? 대체 눈만 떴다 하면 게임이고 게임 할 땐 끼니도 거르잖아. 악마가 씌어도 단단히 씌웠어. 핸드폰이 네 목숨이야?”

아들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조민을 한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핸드폰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순간 화가 난 조민은 아들의 휴대폰을 뺏어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때, 딸이 달려와 조민의 손을 잡고 앳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화내지 마세요. 얼른 밥 해 주세요. 저랑 오빠랑 아침도 안 먹었어요. 배고파요.”

“오늘 밥 없어. 너희 둘 다 놀고 싶은 대로 놀아. 어차피 내 말도 안 듣잖아. 나도 너희한테 뭐라고 하기 싫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민은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어갔고 ‘쾅’하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침대에 앉아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심호흡도 해 보면서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은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고, 조민이 뭐라고 해도 듣지 않으며 아들의 게임 중독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모자 관계도 점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조민은 반성했습니다. ‘왜 내가 그렇게 화를 냈을까? 정말 아들이 게임에 빠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대체 왜 이성을 잃었던 거지?’ 고통 속에서 조민은 하나님의 앞으로 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기도 후 조민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위라는 개념이 존재하느냐? “이 중에서 가장 큰 내가 너희를 관리하겠다. 모두 나에게 용서를 구하라.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며 인류를 위협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는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그렇게 신경 쓰면서 배치할 필요가 없고 대충 챙기면 된다.”라고 말씀하거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였느냐?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모든 사람을 대한다. 네가 스스로를 대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 있게 대한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그 위치에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사람을 무책임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진실하고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며 조민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주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고하고 위대하고 거룩하심에도 스스로 낮추시고 육신으로 오시어 인간 세상에서 사역하시고 진리를 선포하시어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타락한 성품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깊이 타락됐다고 해서 우리를 향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쉽게 진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의 분량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점에 따라 우리 사이에서 역사를 행하셨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정말 아름답고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어느 한 사람도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조민은 아들과 있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화를 낸 이유는 아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지만 거기서 드러낸 것은 교만한 본성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조민은 엄마이기 때문에 본인이 하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고 모두 아들을 위한 것이니 아들이 무조건 자기 말을 따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엄마’라는 자리에서 아들을 혼냈습니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불쾌해하며 아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게 무슨 엄마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이게 무슨 경건한 기독교 신자의 모습입니까? 물론 아들은 자신이 낳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피조물일 뿐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들을 가르치려고 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조민은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하신 하나님의 본질에 감동했고 교만했던 자신의 사탄 성품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조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아들과 대화를 나눠야 할지 구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에서는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조민은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우선 엄마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아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이야기하고 교류해야 하며 절대 교만한 본성으로 살거나 자기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조민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고 결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또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조민의 기분이 또 나빠졌습니다. 과거처럼 욱한 마음에 컴퓨터 전원을 뽑고 아들이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훈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 다짐을 떠올리며 가르치려고 했던 마음을 거두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도록 지켜 달라며 기도드렸습니다.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네 능력과 지식에 의지해 너의 일을 한다면, 너는 영원한 실패자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얻지 못하는 자이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은 빛줄기와 같이 조민의 마음을 비춰 주어 문득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시며 천지 만물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배치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피조물은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습니까? 아들의 생각, 아들의 운명,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습니까? 자기 생각과 힘으로 아들을 바꾸려고 했다니 너무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조민은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길 바란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후 조민은 앉아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민이 말을 하기도 전에 아들은 숙제하러 가야 한다고 자리를 떴습니다. 조민은 억지로 아들을 잡아 두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하나님께 적당한 시간을 주시길 바라면서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 아들이 문득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요즘 모든 게 재미없어요. 학교 다닐 땐 방학만 하면 편하고 계속 게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방학이 되니까 집에서 노는 것도 지겹고 재미없어요.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지루했는데 집에서 노는 것도 지루해요.” 조민이 말했습니다. “아들, 왜 그런지 알아? 온라인 게임은 사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야. 거기엔 폭력, 도박, 선정적, 편법, 사기 등 온갖 사악한 것들이 들어 있어. 네가 게임을 할 때는 자극적이고 흥분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없어. 그래서 게임이 끝나도 허무하고 지루한 거야.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어. 물질적인 삶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음식과 물, 공기와 떨어져서 살 수 없지.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 공급과 떨어져서 살 수 없단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의 생명으로 삼아야만 우리의 마음은 채워질 수 있고 진정으로 평안과 든든함을 얻을 수 있어. 아니면 엄마랑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볼래?”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딸도 재잘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도 하나님 말씀 들을래요.”

조민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기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밥 먹고 같이 하나님 말씀 보자.” 식사 후 조민은 아들에게 <젊은 사람들은 세상의 사악한 풍조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아들은, 휴대폰과 게임에 빠진 것은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 중 하나이며 이를 분별하고, 깨달았습니다. 또한, 온라인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고 꾀는 계략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빠지면 점점 타락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들으며 게임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사탄이 게임을 통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이나 위험, 그리고 그 결과를 완전히 꿰뚫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이며 대부분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조민은 조급해졌습니다. 조민은 아들이 하루빨리 사탄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상인의 삶을 누리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조민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고민을 하나님께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이 무지몽매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분량이 작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사람의 패괴 성정의 정상적인 유로(역주: 흘러나옴)를 어떻게 대하는지, 악독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봐야 한다. 각기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대하고 각기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정형을 대할 때에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처리한다….』하나님 말씀에서 조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실 때 사람마다 다른 원칙으로 대하시며 한 가지 방법이라던가 획일화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조민은 아들 문제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 어떻게 실천하면 될지 알게 되었습니다. 조민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없으며 아들에게 바뀌라고 강제로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이제 막 하나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며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 중독을 한번에 끊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 아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에 관한 자신의 실제적인 체험을 많이 나누며 아들을 이끌어야 아들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온라인 게임의 유혹을 이겨 내고 사탄의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아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습니다….

금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민은 일을 끝낸 후 아들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민은 아들 옆에 앉았습니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아들이 고개를 들어 물어봤습니다.

“아니. 그냥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조민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은 살짝 놀란 듯이 휴대폰을 내려놨습니다. “무슨 얘기요?”

“그냥 아무거나! 네가 커가면서 엄마가 너를 더 모르는 것 같아. 엄마가 평소에 너무 일에만 신경 써서 너를 못 챙겼나 봐.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돈 들어갈 데가 많다고 생각해서 매일 일에만 정신이 팔렸었어. 네가 엄마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할 때도 엄마는 시간이 없거나 아니면 귀찮아 했었어. 네가 힘들어할 때면 엄마는 널 혼내기만 하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너한테 강제로 교육하려고 했어. 긴 시간 동안 엄마가 정말 너를 이해하려고 애쓴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오늘 우리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마음속에 담아 뒀던 얘기도 해 보자. 너도 평소에 학교생활이나 이런 것 편하게 털어놔.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하는지… 아들, 엄마는 네 비밀을 캐려는 게 아니고 너와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야.” 조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들은 신이 나서 조민에게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털어놨습니다. 조민은 귀 기울여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아들의 말이 끝나자 조민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 말씀과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성심성의껏 아들을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과 지내야 하며 어떤 나쁜 것들을 멀리해야 하는지 알려 주어 아들이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들은 기쁜 아기 새처럼 들떠서는 자신의 앞날과 취미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조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에게 올바른 인생관을 세우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대화하면서 모자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과거 마음의 벽은 허물어졌으며 두 사람은 친한 친구처럼 기쁜 마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부터 아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조민에게 얘기했고 조민은 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 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가끔 아들이 성질을 부릴 때면 조민은 서둘러 하나님의 앞으로 와 진리를 구하고 아들의 화가 가라앉으면 아들을 도와 사탄의 타락한 본성으로 한 행동은 주변 사람에게 고통과 상처만 준다는 것을 깨닫도록 했습니다. 아들이 또 게임을 할 때면 조민은 아들을 위해 기도드렸고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도구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잡아먹는 계략도 알려 주어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고 게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 사탄을 배신하는 마음이 생겨 다시 게임을 하지 않을 결심을 하도록 했습니다. 어느샌가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 주신 덕분에 아들의 핸드폰과 게임 시간이 줄어들었고 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민과의 사이도 가까워져 어려움이 있을 때면 먼저 조민을 찾아갔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조민과 나누었습니다. 아들의 변화를 보면서 조민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셨다면 자신은 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지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모자 사이가 이렇게 크게 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아들이 게임하는 문제도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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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단단(丹丹)입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부모님은 고향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걸(罗杰)이라는 남자를 저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과는 다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만난 적도 없어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의술이 뛰어나고 인품도 좋은 사람이라고 저에게 말했는데, 어머니의 그 말에 저는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저에게 청혼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편지에는“저는 꼭 당신을 잘 보살피고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당신이 날 떠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의 편지 속에서 묻어나는 진실함과 저에 대한 맹세에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제가 바랐던 행복한 삶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큰 결심을 내리고 난 뒤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정말 그가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와 함께 병원을 운영하면서 집안일도 함께 분담했습니다. 살림에 서툰 저는 밥도 할 줄 몰랐고 어떤 가사 일은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병원은 둘이 함께 운영했는데, 남편은 진료와 처방을 책임졌고, 저는 약을 조제해주고 주사를 놓는 일을 책임지면서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 보았고, 복이 많아 이런 훌륭한 남편을 만났다며 다들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저도 속으로 매우 기뻐했고 제가 꿈꿔왔던 행복한 삶이 드디어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며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툭하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밖에서 술 마시고, 도박하고, 유흥가도 이곳저곳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일은 뒷전이었고 환자를 진찰하는 일도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병원에서 진료를 맡아 달라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하면서 하루도 집에 있는 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며칠씩 외박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랴, 병원 일을 하랴,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병원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야, 아이에게 아구창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당황한 나머지 남편에게 급히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몇 마디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칭얼거리며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너무나 걱정되어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어이없게도 남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약을 발라 주었는데,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힘겨웠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관심조차 없고 무책임하며 자기 혼자만 기분 좋게 노는데만 신경 쓰면서 너무 무정하다고 저는 속으로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저는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 만취한 남편이 돌아왔는데, 잠갔던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저에게 삿대질하면서 욕을 마구 퍼붓었습니다. “너 같은 여자를 만나서 너무 재수 없어! 전화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찾았잖아, 이게 다 재수 없는 당신 탓이야...” 저는 너무 기가 막혀서 “애가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걱정도 안 돼? 도박으로 돈을 잃어놓고 내 탓을 해? 이런 억지가 어딨어?”라고 큰 소리를 치며 대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주먹으로“퍽”하고 제 머리를 쳤는데,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제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당장 꺼져...”라며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이렇게 대하는 남편을 보니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고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이혼하여 아이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정말로 이혼하게 되면, 온전치 못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게 될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집을 나가려던 두 발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그날 밤, 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와 남편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는데, 남편은 상처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었고 거기에다 바람까지 피웠습니다. 이처럼 고달픈 결혼생활이 지속되면서 나중에 저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해 결국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남동생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식사 시간에 남편은 제가 만든 볶음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다며 밥 그릇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남동생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동생 앞에서 버럭 화를 내며 저와 동생을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저는 칼로 마음을 도려내는 듯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제 삶의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가정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다 견뎌왔는데, 그 결과가 이럴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욕감과 끓어 오르는 분노로 인해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을 머금은 채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밤이 깊어 주위가 조용할 때마다, 남편이 저에게 했던 맹세와 때리고 욕하던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더욱이 남편이 저를 내쫓던 모습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는 마치 유령처럼 제 주위를 맴돌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먹지도, 자지도 못해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체중이 5kg나 빠졌습니다. 저와 아이에게 무관심한 남편을 보고 저는 낙담하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저는 살아 갈 용기마저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면제 반병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수면제의 유효기간이 지난 탓에 약효가 떨어져 10시간이 지난 후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남편은 저에게 전혀 미안해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가 자주 아프다는 이유를 들어 빈 손으로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몹시 절망하여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보며“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며칠 뒤에 친정 집에서 몸조리하고 있는데, 둘째 숙모가 찾아 왔습니다. 숙모는 온종일 우울해 있는 저를 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주었고,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나의 말을 보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나는 절대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고 네가 믿는 것대로 네게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축복이 너에게 임한 것이다. 나의 말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정확히 드러낸다. 사람마다 치명상이 있는데, 내가 바로 너희의 치명상을 치유해 줄 명의(名醫)이다. 내 앞에 오기만 하여라. 내가 왜 이후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다고 했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씀을 읽고 나서 둘째 숙모는 저에게 “단단아,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친히 음성을 발해 말씀한 것이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곤혹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한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모든 근심 걱정 그리고 괴로움은 자연적으로 해결 될 수 있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따스한 기운이 제 마음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둘째 숙모는 계속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너의 처지를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구나. 그 당시 너의 둘째 삼촌도 온종일 도박만 하면서 가정을 소홀히 했단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고, 오히려 나와 다투기만 했었지. 화목한 가정을 위해 난 속으로 꾹 참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서러움을 하소연할 곳조차도 없었단다. 날이 갈수록 근심이 쌓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내가 받은 그 모든 고통은 다 사탄의 괴롭힘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단다. 사탄은 각종 사악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패괴시키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추구하게 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좇아 마음껏 방탕하게 하는 거란다. 너의 둘째 삼촌도 사회에서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도박에 손대면서 집을 돌보지 않게 된 거란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과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었단다. 그로 인해 사탄의 갖가지 궤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원한과 고통속에서 살지 않게 되었단다.” 허심탄해 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는 둘째 숙모, 이전에는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던 숙모가 지금은 이렇게 소탈해지고 정형도 몰라보게 달라 진 것을 본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고통받으며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니 삶에 대한 희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점유되었고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골치 아팠던 일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늘 저를 괴롭히던 불면증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된 형제자매들과 많은 교제를 나누었는데, 서로가 초면인데도 가족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어려움이 닥쳐 걱정하고 있을 때마다, 형제자매들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저에게 교통해 주었고 그들의 체험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저는 크게 감동받았는데, 이런 생활이야말로 제가 늘 바라왔던 삶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하나님 앞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마치 오랫동안 부모와 헤어졌던 아이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 것 마냥 너무나 기뻤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이혼 판결문을 사람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이혼 판결문을 받아 든 그 순간, 저는 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당장 남편을 찾아가 ‘내가 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야?’라고 한바탕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불만과 원망이 마치 보이지 않는 올무처럼 저를 단단히 조였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또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 끊임없이 부르짖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나서 받아들인 것은 다 사탄이 주입한 잘못된 사상과 관점 그리고 잘못된 생존 법칙이였기에, 사람도 따라서 점점 패괴되고 타락해 원래 갖고 있던 양심과 이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인생은 짧으니 즐겨야 한다’라는 잘못된 관점을 받아 들여 먹고, 마시고, 도박하면서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본연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아이에게도 무관심하며 부부 사이의 감정마저도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점점 냉담해졌고 문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목적으로 완벽한 결혼생활을 꿈꾸어 왔기에 ‘사랑 지상주의’, ‘사랑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라는 격언만을 믿었고, 심지어 이러한 애정 선언을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힘써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짓밟힐지언정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올무처럼 저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끝없이 상처를 받았고, 결국 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다 사탄의 그릇된 생존 관점으로 초래된 것인데, 사탄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괴롭히는 이런 방식과 수단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악한 조류의 희생물이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어 더는 그것들에게 농락당하지 않게 되었고, 마음속으로부터 남편에 대한 원한을 차츰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전 남편이 재혼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남편의 아내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남편과 자주 다투기까지 하면서 이혼하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마흔도 채 안된 전 남편은 귀밑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날마다 술로 마음을 달랜다고 했습니다. 전 남편은 사탄의 독소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죄의 쾌락을 누렸지만, 끝없는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비록 결혼생활은 실패했지만 다행히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되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고,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전도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소탈해진 저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며, “몇 년 못 본 사이에 얼굴 색이 정말 좋아졌네. 전보다 훨씬 젊어졌어. 다른 사람 같아.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었는데, 저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해 주었고 저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었더니, 그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켜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자유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찾게 되었습 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비결

어렸을 때, 저는 자주 어른들이 함께 모일 때 “사는 동안에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면 삶의 큰 행복이고, 억지를 부리는 이웃을 만나게 되면 팔자가 사납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말이 사실보다 과장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커서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는 이웃과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 위층에는 여교사가 살고 있었는데, 가정 형편도 넉넉하고 옷차림도 세련되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 이웃과 접촉하고 난 후에는 그가 다른 집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일이 없으면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오지랖 넓게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행동을 알고 나자 저는 갈수록 그가 미워 보였고 눈에 거슬렸습니다. 어느 날 저희 집의 침실 북쪽 천정에서 물이 새었습니다. 저는 대야 4개로 물을 받았는데 북쪽 벽이 푹 젖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집에 가 혹시 어디에서 물이 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두 번이나 그의 집에 갔지만 그는 얼굴을 붉히며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틀림없이 자신의 윗집에서 샜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마음속에 화가 발칵 나서 높은 소리로 그와 이치를 따졌습니다. “댁의 위층에서 물이 샌다면 먼저 댁에 물이 새야 하지 않나요? 물이 댁을 건너 뛰어 저희 집에서 샐 수 있단 말인가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자세를 취하며 저를 무시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입이 덜덜 떨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었습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전문가를 찾아 그의 집에 가서 원인을 알아보았는데, 그 집의 태양열 온수기 하수관이 터져서 물이 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얼굴이 굳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이미 십여 일 동안 물이 샜었는데 그는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저는 화가 치밀어 사람을 너무 깔본 것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의 빨래에서 물이 떨어져 제가 말리고 있던 옷이 다 젖게 되면 저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곤 했습니다. 그런 이웃과 지내야 하는 것에 화밖에 나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후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상 사람의 성정은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들과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단적이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문란하지 않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결되며,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 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와 같고 단순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땅에서의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고, 사람과 지낼 때 간사함과 교만 방자함이 없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길 바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간증하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인솔 아래에서 살게 되고, 자유 해방을 얻어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뜻을 깨닫게 된 후 진리를 실행할 심지가 생겨 위층 사람을 증오하던 데에서 용서하려고 노력했으며, 그와 정상적으로 지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쌓인 원한을 풀자니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실행하자니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릴 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천 년 동안 패괴(역주: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된 중화 민족이 오늘날까지 존류하여 각종 바이러스가 부단히 커지고 있는데 마치 온역처럼 도처로 만연되고 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 몸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지를 충분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엄밀하게 봉쇄된 이런 바이러스의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람의 성격, 사람의 생활 습관, 사람의 품행, 사람의 모든 생활 속에서의 표현 및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황폐하기 그지없으며 나아가 사람의 지식, 사람의 문화까지 모두 하나님께 죽을 죄로 정죄받았다. 더군다나 사람이 가정 및 사회에서 배워 온 여러 가지 경험, 이런 것도 다 하나님의 안중에서 판결받았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먹은 바이러스가 너무나 많아 사람들이 모두 습관이 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깊이 패괴된 곳의 사람일수록 대인 관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암투를 벌이고 서로 모해하고 참살하는데, 마치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유령 도시와 같다. 이렇게 두렵고 불안한, 유령이 도처에서 횡행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전개하자면 그것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하나님께서 밝혀주셔서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토록 화목하지 못한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무신론 정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탄 악마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고, 그것이 사탄의 사설과 그릇된 논리, 사탄의 처세 철학과 생존 법칙을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사탄 패괴 성정의 묶임과 지배를 받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없으며, 곳곳에서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아귀다툼을 하기에 포용과 인내가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와 위층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되고 우롱당하고 있으며, 모두 사탄의 독소로 살면서 인성을 잃은 것입니다. 위층 사람은 자기 집이 부유하고 교사라는 높은 신분이 있다고 우쭐대며 높은 곳에 앉아 누구에게도 불복했는데, ‘유아독존’이라는 사탄 성정의 지배를 받아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고, 누굴 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뒤에서 논단하고 헐뜯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저는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법칙으로 살고 있어서 위층 사람의 그런 못된 성깔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정확히 대할 수 없었고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것도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탄 성정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성정으로 인해 제가 위층 사람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저 그의 각종 결함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고, 특별히 물이 샌 일로 저의 마음에 ‘증오’의 씨앗이 심어져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원한이 가득하였고, 늘 기회를 노려 그에게 보복하고 그와 겨루고 논쟁하여 본때를 좀 보여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야 제가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괴롭힘을 당해 이렇게 교만 방자하고, 악독하게 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양쪽이 모두 상처를 받게 되었고, 모두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의 교만 방자한 본성을 해결해야 하고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독소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근원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위층과의 관계를 완화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를 포용하고 인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참았지만 또다시 그가 하는 일이 눈에 거슬려 공격하고 보복하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물을 줄 때면 신발 바닥에 늘 흙이 묻어 계단을 올라갈 때에 흙이 떨어져 복도가 더러워집니다. 처음에는 그를 포용하고 자신을 억제하면서 복도의 흙을 청소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시선이 또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채소를 사고 돌아왔는데 또 진흙으로 더러워진 복도를 보자 화가 솟구쳤습니다. 속으로 ‘본인만 깨끗하고 남에게는 피해를 주네, 날 깔보는 거야? 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날 건드리면 똑같이 돌려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한 손에 채소를 들고 있어서 허리를 굽혀 다른 한 손으로 진흙을 주워 그의 집 복도에 다 던져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웠던 흙을 미처 던져 보기도 전에 제 손에 들고 있던 채소 봉지가 갑자기 찢어져 감자가 다 땅에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때는 감자를 주워 담기에 바빴는데 진흙을 위층 집에 던질 겨를이 있었겠어요? 저는 집에 돌아와 거듭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이웃에게 보복하려고 했을 때 채소 봉지가 찢어져 감자가 떨어졌을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때 저는 “너에게 정말로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최후에 자신의 뜻과 자신의 사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보라,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라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가 행한 것이 또 교만 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사탄의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독소에 의해 행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땅의 진흙을 보았을 때 또 그를 보복하고 공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도 저와 똑같이 진흙을 던졌다면, 우리는 점점 갈등이 생겨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아유, 봉투가 찢어져서 다행이야.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가로막는 것이었구나. 하나님은 참으로 너무 거룩하시어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구나!’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저를 심복구복하게 하고 마디마디 진리입니다. 오늘 임한 이 일에서 저는 자신이 사탄에게 확실히 너무 깊게 패괴되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그를 건드린다.”는 독소의 영향과 침식으로 늘 보복하고 괴롭히고 다스리려 했습니다. 저의 본성은 확실히 너무 교만합니다. 하나님, 이제야 저는 자신이 인성이 너무 없고 인격이 너무 저속해서 늘 이웃과 시시콜콜 따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당신을 믿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신이 행한 것을 증오하고 후회합니다. 저는 사탄의 철학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당신을 만족하길 원합니다.’ 연말에 위층에서 해파리 한 박스를 창문 밖에 내놓았는데, 거기서 가끔씩 물방울이 떨어져 금방 닦아 놓은 저희 집 창문 유리가 얼룩덜룩해지고, 심지어 창문 밖에 놓았던 물건이 물에 젖어 꽁꽁 얼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게 된 저는 분통이 터져 이전과 같은 잘못을 또 범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급히 하나님 앞에 와서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깨우쳐 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었느냐?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것이든 다 너에게 말하고, 자신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는지, 어떤 기쁜 일이 있는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느껴지지 않겠느냐? 그가 너에게 꺼리지 않고 말하는 것은 너도 그에게 속에 있는 말을 하여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려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실행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일이 닥치면 사람과 소통하게 하고, 속에 있는 말 하는 것을 배우게 하며, 사탄 성정에 지배받는 대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더듬게 되어 다시는 사람의 뜻대로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위층과 대화를 나눠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이웃이 나오는 것을 보고 행여 자신이 화를 이기지 못해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가슴이 계속 쿵쾅거렸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웃이 저의 집 문앞까지 왔을 때 저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 일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실제 상황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자신을 낮추어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지 않았을 때 이웃도 바뀌었습니다. 계속 저에게 사과하면서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금방 올라가서 옮겨 놓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웃이 고의로 저를 깔보는 것이 아니라 박스에 물이 새는 것을 몰랐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번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여전히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이웃이 고의로 저를 괴롭힌다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이의 모순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차츰차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이웃과 사귀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쓰레기를 버릴 때 마침 이웃도 버리려 하면 제가 가는 김에 그의 것도 가져가고, 복도를 닦을 때도 저는 이웃의 복도도 닦아주고, 어떤 때 비가 내리는데 이웃이 집에 없으면 아래층에 말리는 것을 제가 도와서 거두어 줍니다. 이웃은 기뻐하며 “당신 같은 이웃을 만난 것이 참으로 행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점점 화목해졌습니다. 자신이 이웃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저에게서 도달한 효과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저와 이웃층과의 관계가 형편없었는데 모두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고 완전히 사탄의 철학에 의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정상적인 대인 관계가 없었고 사람과 지내면서 포용과 이해와 용서가 없었고 더욱 주동적으로 남을 도와줄 수 없었으며 사랑이 없었고 늘 남의 약점만 보기에 모순이 끊임없이 격화되고 깊었던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솔한 덕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솔이 없었다면 사람은 다 사탄의 철학에 의하여 살고 영원히 서로 명리를 다투고 암투하는 어두운 상태에서 아예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정결케하고 변화하고 구원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찾고 구해야만 현실생활 속에서의 애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잘 믿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를 얻으시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쇼리(肖麗)

크리스천인 그녀의 배우자 선택 — 무엇이 중요한가

결혼은 모든 이에게 중요한 인생 대사이며, 어떤 배우자와 함께 해야 하는지는 더욱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럼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크리스천이 나누는 감동 스토리: 계모는 친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친엄마가 계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처럼 계모는 언제나 계모라는 생각으로 증오와 갈등만 쌓아가게 된 그들의 관계,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계모는 진짜 친엄마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어떻게 웹소설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오늘날 웹소설은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출근할 때도, 차에 탔을 때도, 심지어 신호등의 녹색불을 기다릴 때도 소설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한 권 그리고 한 권을 읽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상 속에 사는 건 아편을 피우는 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웹소설에 깊이 빠졌던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5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는 한 가게에서 숙제를 마치고 무의식적으로 점원이 테이블위에 놓은 두꺼운 책 2권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몇 장을 넘겨보니 그 책들은 바로 무협 소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시간을 때울 때 소설을 보았습니다. 산 중에 사는 몇몇 무림고수가 의롭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고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이같이 ‘멋진’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방학 내내 소설에 빠져 지냈고 ‘내가 이 고수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자 저는 속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저의 유일한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세상만이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해주었습니다.나는 조금씩 소설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소설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또 소설을 보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전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어쩔 수 없이 며칠은 ‘얌전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이 계속 불안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결국 전 참지 못하고 다시 소설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전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소설을 보았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소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소설을 한 편 더 보는 게 낫지’. 전 배가 고파도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정신이 온통 몽롱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져 버려서 길을 걸을 때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잠시라도 소설을 안 보면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워져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주신 급식비마저 웹소설을 보는 데 썼습니다. 낮에 학교에 있을 때는 배고픈 것을 참고 저녁에 집에 와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위장도 상했습니다. 심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널려있는 이불에 실수로 불이 붙게 했습니다. 동생이 절 불렀지만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불을 끄고 절 혼내실 때야 밖에 불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소설에 빠진 저를 여러 번 타일렀지만 전 부모님의 말씀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은 제 책가방을 검사해 소설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갑작스레 저의 방에 들어와 제가 몰래 소설을 보고 있지는 않나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찢거나 대여 카드를 태웠고, 아니면 책을 그대로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쓰셨지만 제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전 여전히 소설의 세상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제가 소설 속 캐릭터가 된 환상을 가졌습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소설 줄거리만 생각했고 꿈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져서 잠을 깬 후에도 눈을 감고 꿈 속의 줄거리를 되새겼습니다. 전 평생 이 같은 세상 속에 살고만 싶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차에 치여 죽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종일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제 정신은 온통 혼미해졌고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소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활발했던 제 성격도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지어 가족과의 대화도 꺼려졌습니다. 정상이던 시력도 근시가 매우 심해졌고 성적은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한 저는 취직을 한 후에는 소설에 더욱 빠져 지냈습니다. 가끔은 밤새 소설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오면 가끔은 소설이 지겨워져서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회했습니다. 소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기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고통을 받던 저는 소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어머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너무 졸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신나지 않아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게 예배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예배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볼 때는 머릿속에 여전히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2015년,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온 후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제가 소설에 심취한 건 사실 인터넷 게임과 같이 모두 사악한 풍조에 속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고 소설 속 세상에 완전히 심취했습니다. 착하고 말을 잘 듣던 저는 괴팍하고 유별나게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항상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소설이 아닌 것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 육체를 배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인터넷 게임이나 소설 속에 사는 걸 싫어하십니다. 저희가 사탄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저 역시 육체를 배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 절 웹소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전 사악한 풍조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안 보기 시작한 첫째 날, 저는 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 날, 전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소설 줄거리뿐이었고 좌불안석으로 있으면서 휴대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렸던 말씀을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나님도 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이렇게 전 결국 소설을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마치 뱀과 같아 본질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목적을 전부 달성할 때는 네가 곧 목숨을 잃을 때이다.』 그러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소설만 본다면 사탄에게 야금야금 삼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마음속으로 육체를 배반하고 소설을 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우선 하나님에게 다짐 하지 말아야겠어. 오늘 밤에 다짐을 해버리고 소설을 안 보면 앞으로는 다신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오늘 밤까지만 보고 내일 다시 다짐해야지!’ 이렇게 전 다시 휴대폰을 열고 밤새도록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을 보는과정에 저의 마음속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걸 알았고 사탄에게 속히고 참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전 자책을 하며 고통 속에서 밤새 소설을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늘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습니다. 저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제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전 재빨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 비록 육체를 배반할 마음은 있었지만 진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억제하다 보니 결심을 행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울 때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알았습니다. 소설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독약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끊을 수가 없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의 생활을 잃게 만듭니다. 이 모든 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한 계략인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항상 온갖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함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희는 진리도 없고 분별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항상 속임을 당하고 사탄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참해를 당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그 결과를 알게 되자 전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절 구원해주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설로 고통받던 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야 사탄이 횡행하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전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또 본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달갑게 받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또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다짐을 생각하니 소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휴대폰 화면만 계속 만지작댔습니다.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육체를 배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설의 줄거리도 조금씩 희미해졌고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전 소설을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점점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날마다 알차게 생활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야만 시험과 함정으로 가득한 사악한 세계에서 저 자신을 지키고 사탄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하나님의 집에서 본분을 하며 매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희는 마음의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합니다. 기쁠 때는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며 힘든 일 앞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교통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저는 웹소설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구원

남편의 불륜으로 행복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소송이나 복수하고 자살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시작했을까요?

믿음은 바로 힘이다

저는 당뇨에 걸린 지 16여 년이나 되는 환자입니다. 걸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많은 합병증까지 생겨 저는 또 백내장에 걸려 시력도 흐릿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금방 받아들였을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글도 쓸 수 있었지만 6개월도 안 되어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저는 소극적이 되고 믿음도 없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집회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집회입니다. 다음 집회에는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안 믿겠습니다. 저의 눈이 제 구실을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볼 수가 없고 복음을 전할 줄도 모르지, 하나님께서 저같은 소경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차라리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하나님을 떠나는 게 낫겠습니다……” 저는 속사포를 쏘듯이 단숨에 말해 버렸습니다. 다들 서로 마주 보면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했고, 열렬하던 집회는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실정을 말했지만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고 눈물범벅이 되어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자매님이 저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시지 말고 마음 진정시키고 우리 함께 노래를 부릅시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시가 ≪실제 하나님은 묵묵히 사람을 구원한다≫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다들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도 성령님이 저의 몸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의 전망과 운명을 옮겨 갔지만 모두 사람을 위해서이다. 어느 단계나 사람의 생존을 위하고 전 인류에게 땅에서 아름다운 귀숙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깨닫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치욕을 참으시고 또 친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나는 어떠한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자그마한 병을 하나님께서도 꺼리시지 않는데, 내가 참을 수 없고 소극적이 되었으니 이것은 너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고 또한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굳게 세웠습니다. 비록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밝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죽지 않고 더 살게 된다면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입니다. 2002년 8월의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저에게 나가서 사역에 협력하라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병고에 시달린 저는 그날따라 머리가 어지러워 한밤중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저의 남편(형제님)이 제가 괴로워하고 말할 기력도 없고 진짜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를 생각해서 말했습니다. “당신 몸이 이런데,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차라리 내가 가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말할까?” 이 말을 듣고 저는 엄격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세요? 정말 정신이 없네요, 당신 말처럼 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죠…… 하나님께서 ‘한가지 일이 임하여 네가 고통받아야 할 때 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검증하실 때이니 오늘 반드시 가야 해요.” 그리고 나서 저는 필요한 소지품과 약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병도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저는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나서 잠시 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가서 1주일 동안 협력하면서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만일 이전 같으면 적어도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아야 했고 또 이틀 동안 쉬어야만 천천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저는 비로소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라는 진정한 함의를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河南省 喜芝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통을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통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