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구원

2018년 11월 17일

행복한 결혼생활을 동경하다

제가 기억하는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우셨고 엄마는 항상 눈물범벅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게 꿈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착하고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친척분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딸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저를 많이 아꼈고 제가 신경 쓸 일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하청으로 모래 채취장을 맡아 운영했습니다. 남편은 항상 바쁘고 힘들었지만, 집에 오면 빨래에 밥까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이웃들은 행복한 가정을 가진 저를 부러워했고 저도 좋은 남자에게 시집온 것 같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남편은 친척분을 따라 회사를 설립하러 갔고, 저 혼자 모래 채취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힘들었지만, 남편과 우리 가정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남편이 함께 열심히 힘을 다했기에 1년 후 시내에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내로 일자리를 옮겼고 모래 채취장은 시아버지께 맡겼습니다.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불행이 조용히 제게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

악마의 유혹, 남편의 배신

어느 날, 남편은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불경기라며 상하이로 가서 친구와 함께 식당을 개업하겠다고 했고, 저는 알겠다고 하며 2만 위안(한화 약 328만 원)을 건넸습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집으로 돈을 보내지 않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한숨만 푹푹 내쉬며 장사가 잘 안된다고 푸념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남편을 위로해주고 식당 운영에 보태라고 돈도 쥐여 주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예전처럼 밝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제 전화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름 방학의 어느 날, 남편은 상하이에서 돌아와 저와 딸에게 옷을 한 벌씩 사주고는 오후엔 일이 있다며 혼자 나갔습니다. 저녁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 받으니 한 젊은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상하이에서 같이 살림을 차렸고 8개월 된 아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멍해졌고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속으로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남편이 내 뒤에서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어!’라고 외쳤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제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제 마음은 여느 때보다 차가웠습니다. 정말 밖에서 살림을 차렸던 것입니다! 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배신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깊이 반성하고 자책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혼하자니 제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이 끝나고, 딸아이도 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제 마음은 칼에 베인 것처럼 너무나 아팠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좋단 말입니까…

거듭되는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완벽한 가정을 주고자 남편을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남편에게 상하이에 있는 식당을 팔고 바로 돌아오라고 했고 남편은 알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상하이에 도착한 남편이 제게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를 보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당신한테는 면목이 없어…” 순간 저는 멍해졌습니다. 제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맹세한 모든 약속이 저를 속인 거짓이었다는 생각에 저는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

퇴근할 때 한 가족이 오손도손 웃으며 산책하는 모습을 보거나 이웃의 하하 호호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순식간에 제가 갖고 있던 모든 행복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침대에 쓰러져 통곡했습니다. 남편이 식당을 개업한 이후 경쟁이 치열해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했고, 저는 또 그걸 진짜로 믿고 힘들게 번 돈을 남편에게 건넸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불륜녀를 위해 그랬던 것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남편이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는 걸까요! 제가 대체 뭘 잘못한 걸까요? 당시 저는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설쳤으며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은 듯했습니다. 심지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들에게 복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두 딸과 나이 드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하는 수 없이 고통 속에서 하루가 일 년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고통 속에서 다가온 하나님의 구원

제가 몹시 힘들어할 때 동료가 하나님의 말세 구원 사역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자는 깊은 고통 속에 빠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동시에 지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을 미워한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사람으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능자는 너의 마음과 영을 찾아 물과 음식을 공급해 주어 너를 깨어나게 하고 다시는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 네가 피곤함을 느낄 때, 조금이라도 이 세상의 냉혹함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울지도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돌아오는 너를 언제든지 안아 줄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켜 주며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또 네가 문득 기억이 회복되어 네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나왔는데 언제 방향을 잃었는지, 언제 길에서 쓰러졌는지, 언제 ‘아비’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전능자가 얼마나 오랜 시간 그곳을 지키며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따뜻한 말씀을 읽은 후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오랫동안 힘들고 억눌렸던 모든 감정이 눈물에 녹아있는 듯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두서없이 쏟아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밖을 떠돌다 집을 찾지 못한 아이처럼 그제야 제 집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제가 기댈 유일한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저를 배신하고 떠난 후 저는 삶의 목표와 가치를 잃어 고통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비록 남편은 잃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계속 지켜주고 계시기에 하나님이야말로 제가 유일하게 기댈 곳이며 하나님이 계시면 저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살아갈 용기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때부터 저는 교회의 생활을 시작했고 형제자매와 함께 찬양하고 기도드리며 하나님의 말씀도 읽었습니다.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고 사랑하며 저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깊은 밤, 남편의 물건을 볼 때면 저를 배신했던 일이 떠올라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심지어 그들을 찾아가 뒤집어엎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긴다 한들 서로 간에 상처만 남아 더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 앞에 와 고통 속에서 걸어나갈 수 있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크리스천 이혼,크리스천이 행복을 다시 찾다,

고통의 근원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말씀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가 일어날 때마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그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그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주 달갑게 그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사탄에게서 온 생존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탄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사탄이 알려 준 삶의 방식과 사탄이 ‘선사’한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는데, 사람에게는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저항할 의식은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생각하며 저는 지금 세상이 사악한 것으로 타락해 있고 가난은 비웃으면서 창기의 천함은 비웃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집에 하나, 밖에 하나 있어야 한다’, ‘애인이 없는 유부남의 삶은 의미가 없고, 애인이 없는 유부녀의 삶은 돼지만도 못하다’와 같은 말이 우리 귀에 맴돌며 우리의 생각을 좀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도 애인을 두거나 ‘두 집 살림’을 부러워하며 따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이 깨지고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진리가 없고 사탄의 사악한 계략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바보가 되고 타락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남편이 제게 상냥하게 대해주고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했지만, 세상에 나간 뒤 사악한 세상의 풍조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딴 여자를 얻어 아들을 낳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사탄의 사상으로 타락되어 가장 기본적인 양심과 인성을 잃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악한 사상이 가져다 준 비극입니다! 남편은 진리를 잘 모르고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볼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간계에 휘둘렸고 결국 저를 배신한 것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저를 배신한 남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더는 이 일에 얽매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접대 본분을 이행했고, 자매님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렇게 제 얼굴에는 점점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의 계략을 이기게 도와주신 하나님의 말씀

어느 날, 동서가 저를 찾아와서 남편이 그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왔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며 제게 평소에 좀 꾸미고 다니지 그랬냐고 말했습니다… 동서의 말을 듣자 마음이 쓰려왔습니다. 남편과 살았던 때에 항상 절약하고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는데 힘들게 번 돈을 남편이 그 여자에게 갖다 바쳐서 즐겼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동서는 절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이 적응이 안 돼요. 형님이 아주버님이랑 더 잘 어울렸는데, 아니면 형님이 아주버님을 간통죄로 고소해요. 그럼 그 여자도 떠날 거고 아주버님도 다시 형님한테 돌아올 거예요. …” 동서의 말을 듣고 살짝 맘이 흔들렸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남편은 다시 제게 돌아올 것이고 아이들은 완벽한 가정을 갖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만약 정말 남편을 고발한다면 이는 남편과 저 모두 다칠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때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빌었습니다. 불현듯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는 반드시 시시각각 깨어 기다려야 한다. 내 앞에 자주 있으면서 사탄의 각종 음모와 궤계를 간파해야 하고…』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사탄의 계략 속에 넘어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서가 예쁘게 꾸미고 남편을 간통죄로 고발하라고 한 것은 겉으로 보기엔 저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얘기를 곰곰이 되짚어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사탄의 사악한 사상에서 온 것입니다. 남편이 그 여자를 선택했다는 것은 제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강제로 돌아오게 한다 해도 그런 결혼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방법으로 힘들게 가정을 유지한다 해도 남편의 미움만 사 결국 서로 미워하고 공격하며 상처 줄 것이 뻔합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부모가 자녀를 아끼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람의 본심은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모두 자신의 타산과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도,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도 모두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이며 진정으로 사랑해서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제가 남편에게 잘해줬던 것도, 남편이 제게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그 여자가 잘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질투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심지어 동서의 말에 따라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할 생각도 했습니다. 과거 남편이 제게 잘해줬을 때는 저도 남편에게 잘 대해주고, 남편이 배신하니 그를 감옥에 보내 마음을 돌리려고 했던 것을 떠올려보니 저 자신이 너무 비겁하고 사악하며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제 마음이 서서히 밝아졌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서에게 말했습니다. “그이도 아이까지 생겼는데 제가 고소하면 모두가 힘들어져요. 그들이 행복하게 산다면 저도 축복해줄 거예요.” 제 말을 들은 동서는 깜짝 놀라 저를 쳐다봤고 겸연쩍어하며 다른 말을 더는 하지 못했습니다. 동서가 돌아간 후 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마련해 주신 환경이 너무 현실적이라 사탄의 계략 앞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고통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후기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네게 인생의 밝은 길을 가게 할 수 있고,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할 수 있으며, 참된 인생을 살아내게 할 수 있고,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로 진리에서 생명을 얻게 할 수 있고, 악에서 떠나고 사탄의 해와 통제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고해에서 벗어나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구원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렇게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계시며, 너의 앞날과 운명, 그리고 너의 인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남편의 배신을 알게 된 이후 저는 계속 고통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고통 속에서 꺼내 주셨습니다. 제가 질투와 미움 속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이끌어주시어 하나님의 보호를 통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곁에 계시며 말씀으로 저를 이끌어주시고 인도해주시어 제가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사탄으로부터 고통받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된 것입니다! 남편과 결혼한 후 남편을 제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생각하고 남편이 제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 반성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남편은 그저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이며 남편도 사탄의 타락된 성품에 살고 있어 의지할 곳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으로 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야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고통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대가족에서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추구하고 형제자매와 서로 사랑하고 부축하며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집을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수성

왜 크리스천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삶은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그러면 왜 지금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예를 들면, 직장 일로 인한 스트레스, 자녀에 대한 걱정, 가족들과의 불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앞날이 막막해지는 등등 …… 주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 28~30) 주님은 신실하시므로 말씀하신 대로 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지난날 우리도 영이 안정되고 평안한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령이 갑절로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갈급해하고 사모하였으며, 또한 있는 힘껏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 주셨으며, 우리들로 영 안에서 안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마음은 세속에 얽매여 있는데, 설령 육체는 만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갈급함은 오히려 해결받지 못하였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야 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이 말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비물질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비록 하나님이 너에게 모든 물질적 필요를 공급해 줄 수도 있지만 너의 물질적 필요가 만족을 얻었을 때 이런 물질이 너에게 가져다준 만족은 진리에 대한 너의 추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아주 뚜렸한바, 대체할 수 없다!……내가 예를 하나 들겠다. 네가 배가 고플 때 음식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이 음식은 좀 좋아도 괜찮고 좀 별로 여도 괜찮다. 네가 배불리만 먹으면 배고픈 그 느낌은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며,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도 잠잠해질 수 있고 너의 육체가 편히 쉴 수도 있다. 사람의 배고픔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제로라고 느낄 때 너의 심령의 공허한 느낌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또는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너의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께 구원 받는 것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성정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했다면 너는 아주 조급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이런 느낌은 너의 심령에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고, 일부 사람들은 몇몇 괜찮은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일부 사람들은 한숨 푹 자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보거나 본분을 하는 방면에 공을 많이 들이고 힘을 많이 쓰는데, 이런 것이 너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행실에 대해 너희는 모두 깊은 체험이 있다. 네가 힘에 부침을 느낄 때, 너로 하여금 진리의 실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나님의 깨우침 얻기를 매우 사모하고 있음을 느낄 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너에게 필요한 것은 한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고 몇 마디 마음에 딱 맞는 말도 아니며 더욱이 육체가 잠시적인 안일과 만족을 얻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하라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알려주고 너에게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이런 것을 깨달은 후에는 설령 소소한 것일지라도 너의 심령이 한 끼 배불리 먹는 것보다 더 만족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심령이 만족을 얻었을 때는 너의 심령이나 너의 온 몸과 마음이 진정한 안식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일을 이렇게 비유하고 이렇게 분석하니, 너희는 지금 왜 내가 너희에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는 이 말씀을 보라고 하는지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의 뜻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전부는 네가 전에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물건이나 사람을 포함한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약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심령의 안식을 얻고 싶어한다면,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따르고, 하나님이 현실에서 하시는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은혜시대, 주 예수께서 사람이 회개하도록 하는 도(道)를 발표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포용하고, 인내하고,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바로 죄사함을 받고 영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는 당시에 구속 사역만 하였을 뿐, 죄를 제거하는 사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 후기가 되어 사람은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사람이 죄를 범하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철저히 해결해야만이, 사람이 더 이상 사탄에게 훼방받지 않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시대 구속 사역의 기초 위에서 또 말세에 사람의 패괴 성정을 철저히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였고, 가장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에게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추구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요한복음 16:13) 지금 예수님의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예수님은 일찍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펼쳐 말세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전개하였고, 인류에게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뭇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발표하신 말씀에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어떻게 성정 변화에 도달하고, 어떻게 인류의 패괴 실질을 인식해야 하는가 등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진리는 전부 사람의 생명에 필요한 것입니다. 무릇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순복하는 형제자매들은 성령의 역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상, 직장, 가정, 인간관계를 대하는 진리 원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정 변화의 길을 찾았고, 성령 역사의 인도하에 점점 더 홀가분하고 유쾌하게 되었으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고,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며,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아야만 생명이 자랄 수 있고,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심령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장애인 딸의 운명,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딸의 출생, 그리고 고통 딸이 태어난 지 3일만에 갑자기 땀범벅이 된 채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 증상이 보이자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문 뒤에 숨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차마 내게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빨갛게 부은 남편의 눈을 보며 분명 딸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내가 계속 추궁하자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의사 말로는 뇌출혈이 심해 나중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쓰게 될 거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귀를 의심했다. 작디작은 체구, 앳된 얼굴의 딸 아이를 보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문득 마을에 있는 바보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종일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생각났다. 딸이 자라 정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쓴다면 이 아이의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딸이 돌이 되던 때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기댈 곳을 마련해주시어 나는 전처럼 무기력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겨, 하나님의 주재로 딸을 인도해주시길 바랐다.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아이는 서서히 말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걸을 때 절뚝거리고 한쪽 팔은 쭉 펴지 못했지만, 의사가 말했던 상태보단 훨씬 좋았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육 강화, ‘먼저 나는 느린 새’ 딸이 4살이 되던 해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가 이상하게 걷는 걸 보곤 비웃으며 얘기했다. “쟨 왜 저렇게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녀?” 이웃의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웃이 간 후에도 그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데도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는데, 크면 더 많은 사람이 비웃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딸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노력으로 아이를 도와 느릴수록 먼저 날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배울 내용을 가르쳤다. 곧잘 배우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이 되고 수업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힘들어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45점도 잘 맞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아이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너무 잘 울어요. 배우려는 욕심은 있는데 배우는 속도도 늦고 빨리 잊어버려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걱정이 또 스멀스멀 떠올랐다. ‘딸 아이 지능이 원체 다른 아이보다 낮은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따라잡겠어?’ 그래서 난 그저 좋은 말로 “선생님이 좀 더 신경 써주세요. 소신껏 아이를 잘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혹독한 교육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아이에게 숙제하도록 했고 저녁 10시, 11시까지도 했다. 가끔 숙제를 마친 후 딸 아이가 못 풀었던 문제를 살짝 바꾸어 몇 번이고 풀어보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할 줄 알았던 딸도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배운 걸 금세 까먹는 딸아이를 보며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 맨날 뭐 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 해? 이렇게 쉬운 문제도 기억 못 하다니. 어이구. 너처럼 해서 언제 발전하겠어?” 딸은 잔뜩 겁먹은 채 가만히 서서 울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불쌍한 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렀다. 분명 다른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딸아이의 앞날을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딸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강압적으로 나가니 딸은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딸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울기만 했다. 밥을 딸아이 책상으로 가져다주어도 알아서 먹는 법이 없었다. 내가 먹으라고 해야만 겨우 깨작깨작 먹고는 다시 책상으로 갔다. 잠든 아이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자주 보였다. 마음이 아파 딸에게 내가 싫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딸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발전은 없고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눈물만 흘리게 된 건지. 나는 그저 딸아이를 잘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어쩌다 아이에게 고통만 안겨준 걸까? 고통 속에 문득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지식을 심어주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딸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발 저를 인도해주세요!” 말씀의 심판, 갓 깨어난 꿈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조금밖에 없는 네 육체의 ‘기능’으로 과연 네가 원래 동경하던 그런 인류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힘이 없으면서 오히려 자식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조종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주제넘는 짓이 아니겠느냐? 어찌 사람의 무지몽매함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능력이 크든 작든, 아이큐가 높든 낮든, 의지가 있든 없든, 운명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고,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이 평생 동안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지, 재부를 얼마큼 소유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의 부모나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이나 야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정하심에 달려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이 좋고 나쁘고는 창조주께서 정하시는 것이며 지식 수준이나 다른 재능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 등 사탄의 철학 속에 살며 내 힘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딸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놓으신 것은 몰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진실된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딸이 장애로 다른 사람에게 차별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내 힘으로 딸의 지식 수준을 높여주고, 다양한 기술을 익혀 부족함을 메꾸려고 하였고 함부로 딸의 운명과 앞날을 바꾸려고 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딸이 정상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요구하고, 때리고, 압박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부시켰고, 자주 화내기까지 했다. 결국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 아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말수가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게다가 나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이루 말할 수 없을 고통 속에 허덕였다. 오늘에서야 꿈에서 깨어나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사탄의 독소로 운명과 맞서며 딸과 자신에게 행복은커녕 고통만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는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이며 거짓말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딸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힘으로 운명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딸아이를 부양하는 책임을 다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이 한결 좋아졌고 전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그 후 나는 <인간 영혼의 엔지니어는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보고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인공인 엽 선생은 교사 평가에서 맨날 꼴찌였다. 하루는 주변 동료들이 학생들 점수와 진학률을 높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때리고, 억압하고, 압박하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걸 보게 되었다.그걸 본 엽 선생은 동료들에게 배운 그대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그러자 반 성적은 올랐지만,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 후 엽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고, 수업 내용에 많은 영감이 생겨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껴 놀랄 만큼 성적이 올랐고, 1등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그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딸을 대할 때도 엽 선생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딸이 더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화가 나면 불같이 혼냈다. 인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책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 딸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직시하여 내 뜻대로 딸에게 요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 공부 못하면 또 혼낼 거래요.” 순간 걱정이 또 올라왔다. 속으로 오늘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교 가서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문득 하나님이야말로 딸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며 딸이 할 수 있고 없고는 하나님에게 달렸지 내가 가르침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나는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며 내 마음을 다잡고 인내심을 갖고 딸의 숙제를 가르쳐 주었다. 딸이 못 하는 모습에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예수께서 ‘다른 이를 자신처럼 사랑하라’라고 가르쳐 주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를 보니 딸에게 사랑이라고는 없었다. 사람다운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난 또 자책감이 들었다. 사랑으로 딸을 대하고 인내심을 갖고 딸을 가르치며 남들보다 부족한 딸을 헤아려줘야 함을 깨닫자 화가 누그러졌다. 나는 딸을 격려해주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이번에 35점을 받으면 다음에 40점만 받아도 발전한 거야.” 내가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딸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며 딸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딸이 우는 일도 없어졌다. 진리 실천, 뜻밖의 기쁨 그때부터 딸의 숙제를 봐줄 때면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점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본문을 외울 때면 딸이 본문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동작이나 시범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나오면 ‘개굴개굴’소리를 냈고, ‘엄마’가 나올 때면 나를 가리켰다. 그 후로 딸은 눈물이 적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뭐든 빨리 외웠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친 딸이 잔뜩 신나서 말했다. “엄마, 나 몇 점 받았게요?” 잔뜩 신난 딸아이를 보니 분명 시험을 잘 본 거라 생각해 60점이라고 말했다. 딸은 틀렸다고 했고 나는 70점이라고 했다. 딸은 또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0점부터 90점까지 하나씩 다 얘기했다. 딸은 “다 틀렸어요.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난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최근 들어 예전처럼 애써 딸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고 딸을 가르쳤더니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묘임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딸의 절뚝거림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팔은 아직 다 낫지 않았지만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다. 딸의 앞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학교 이전으로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가끔 방학 때 집에 오면 나는 딸의 숙제를 같이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엄마, 괜찮아요. 벌써 다 한 걸요”라고 말했다. 나날이 자라고,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기뻤다.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딸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 말씀의 실질적인 의미를 직접 느끼게 되었다. 과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주재를 잘 알지 못하고, 딸이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길 바라는 욕심에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라는 틀린 관점으로 딸을 가르쳤고, 그 결과 딸의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독선적이고 교만한 타락 성품으로 인해 딸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고통 속에 살았으며, 딸에게는 많은 상처를 줬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된 인생 관점을 내려놓고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니 모든 것이 즐겁고, 딸도 기묘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학업뿐 아니라 몸도 좋아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법을 알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곤경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 (상)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별 하늘을 바라보며 알게 된 비밀

끝없는 별하늘은 늘 사람에게 끝없는 상상과 동경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별하늘은 마찬가지로 저를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별하늘을 좋아하는데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여름 저녁만 되면 늘 시골의 빈터에 누워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견우직녀, 북극성, 북두칠성, 간혹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천진하게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유성이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 정말 신선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커서 별하늘에 관한 그런 아름다운 전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좌와 유성우와 극광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저로 하여금 별하늘에 대해 더욱 반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별들의 모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고 또한 별하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좀 더 커서 저는 여기에 관한 지식을 배우게 되었고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에서 우주는 대폭발로 생겨난 것이고 게다가 부단히 확장되고 있으며 이런 성체들은 다 규칙적으로 하나하나의 성계를 이루고 이런 성계는 다 동일한 평면에 있으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저의 지식욕을 만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아름다운 별들과 이런 신기한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늘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우주의 대폭발로 생긴 것인지, 별하늘은 극한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적으로 운행되는지, 이런 것은 제가 줄곧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이 광명체가 하늘에서 빛을 내어 땅을 비췄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 날, 해를 위해 징조로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한 동시에 하나님이 이루려는 매사는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응하고 있었다.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바로 상공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물체인데, 그것은 하늘을 비출 수도 있고 땅과 바다를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부한 절주와 빈도수에 따라 회전하며 땅의 서로 다른 시간에 따라 비추고 있다. 이리하여 땅 위의 것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산생된다. 그것은 낮과 밤을 위한 표기로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로 다른 회전 주기로써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을 위한 징조로도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반포한 사계절━춘하추동과 상부상조하고 서로 상응하며 조화롭게 인류의 계절, 날, 해를 위해 규칙적이고 정확한 징조를 보인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별하늘이 근거없이 생길 리가 없어. 어떻게 그것들을 통제하는 힘이 없을 수 있겠어? 조물주의 위대함과 비범함이 이 별하늘을 만들었고 아울러 조물주께서 이런 천체의 운행 궤도를 정해 그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하신 거야. 그래서 인류를 위해 규칙적인 계절을 정해 인류가 더 좋게 땅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셨어. 이 신비한 별하늘은 다만 조물주의 비범함과 위대함의 약간의 유로일 뿐이야!’

어떻게 웹소설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오늘날 웹소설은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출근할 때도, 차에 탔을 때도, 심지어 신호등의 녹색불을 기다릴 때도 소설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한 권 그리고 한 권을 읽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상 속에 사는 건 아편을 피우는 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웹소설에 깊이 빠졌던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5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는 한 가게에서 숙제를 마치고 무의식적으로 점원이 테이블위에 놓은 두꺼운 책 2권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몇 장을 넘겨보니 그 책들은 바로 무협 소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시간을 때울 때 소설을 보았습니다. 산 중에 사는 몇몇 무림고수가 의롭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고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이같이 ‘멋진’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방학 내내 소설에 빠져 지냈고 ‘내가 이 고수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자 저는 속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저의 유일한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세상만이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해주었습니다.나는 조금씩 소설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소설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또 소설을 보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전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어쩔 수 없이 며칠은 ‘얌전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이 계속 불안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결국 전 참지 못하고 다시 소설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전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소설을 보았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소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소설을 한 편 더 보는 게 낫지’. 전 배가 고파도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정신이 온통 몽롱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져 버려서 길을 걸을 때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잠시라도 소설을 안 보면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워져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주신 급식비마저 웹소설을 보는 데 썼습니다. 낮에 학교에 있을 때는 배고픈 것을 참고 저녁에 집에 와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위장도 상했습니다. 심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널려있는 이불에 실수로 불이 붙게 했습니다. 동생이 절 불렀지만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불을 끄고 절 혼내실 때야 밖에 불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소설에 빠진 저를 여러 번 타일렀지만 전 부모님의 말씀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은 제 책가방을 검사해 소설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갑작스레 저의 방에 들어와 제가 몰래 소설을 보고 있지는 않나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찢거나 대여 카드를 태웠고, 아니면 책을 그대로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쓰셨지만 제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전 여전히 소설의 세상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제가 소설 속 캐릭터가 된 환상을 가졌습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소설 줄거리만 생각했고 꿈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져서 잠을 깬 후에도 눈을 감고 꿈 속의 줄거리를 되새겼습니다. 전 평생 이 같은 세상 속에 살고만 싶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차에 치여 죽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종일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제 정신은 온통 혼미해졌고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소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활발했던 제 성격도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지어 가족과의 대화도 꺼려졌습니다. 정상이던 시력도 근시가 매우 심해졌고 성적은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한 저는 취직을 한 후에는 소설에 더욱 빠져 지냈습니다. 가끔은 밤새 소설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오면 가끔은 소설이 지겨워져서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회했습니다. 소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기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고통을 받던 저는 소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어머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너무 졸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신나지 않아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게 예배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예배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볼 때는 머릿속에 여전히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2015년,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온 후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제가 소설에 심취한 건 사실 인터넷 게임과 같이 모두 사악한 풍조에 속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고 소설 속 세상에 완전히 심취했습니다. 착하고 말을 잘 듣던 저는 괴팍하고 유별나게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항상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소설이 아닌 것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 육체를 배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인터넷 게임이나 소설 속에 사는 걸 싫어하십니다. 저희가 사탄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저 역시 육체를 배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 절 웹소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전 사악한 풍조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안 보기 시작한 첫째 날, 저는 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 날, 전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소설 줄거리뿐이었고 좌불안석으로 있으면서 휴대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렸던 말씀을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나님도 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이렇게 전 결국 소설을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마치 뱀과 같아 본질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목적을 전부 달성할 때는 네가 곧 목숨을 잃을 때이다.』 그러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소설만 본다면 사탄에게 야금야금 삼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마음속으로 육체를 배반하고 소설을 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우선 하나님에게 다짐 하지 말아야겠어. 오늘 밤에 다짐을 해버리고 소설을 안 보면 앞으로는 다신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오늘 밤까지만 보고 내일 다시 다짐해야지!’ 이렇게 전 다시 휴대폰을 열고 밤새도록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을 보는과정에 저의 마음속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걸 알았고 사탄에게 속히고 참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전 자책을 하며 고통 속에서 밤새 소설을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늘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습니다. 저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제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전 재빨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 비록 육체를 배반할 마음은 있었지만 진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억제하다 보니 결심을 행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울 때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알았습니다. 소설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독약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끊을 수가 없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의 생활을 잃게 만듭니다. 이 모든 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한 계략인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항상 온갖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함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희는 진리도 없고 분별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항상 속임을 당하고 사탄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참해를 당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그 결과를 알게 되자 전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절 구원해주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설로 고통받던 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야 사탄이 횡행하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전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또 본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달갑게 받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또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다짐을 생각하니 소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휴대폰 화면만 계속 만지작댔습니다.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육체를 배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설의 줄거리도 조금씩 희미해졌고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전 소설을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점점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날마다 알차게 생활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야만 시험과 함정으로 가득한 사악한 세계에서 저 자신을 지키고 사탄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하나님의 집에서 본분을 하며 매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희는 마음의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합니다. 기쁠 때는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며 힘든 일 앞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교통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저는 웹소설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우리 손에...’,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터전...’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던 남편이 끝내 정신차리다

양유(杨柳)와 향명(向明)은 소개팅을 통해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의 생활은 비록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향명은 양유를 살뜰히 보살폈고 양유가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향명은 늘 옆에서 도와 주었으며 외출하여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웃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 둘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군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도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향명이고, 일생의 동반자도 향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게 되자 가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넘쳐났고 가정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친척이 그들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유는 운 좋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같은 해에 그들은 넓고 아늑한 집도 짓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양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부부 관계도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향명이 식품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유는 남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몆 번이나 향명의 전화 벨이 울리면 향명은 재빨리 한쪽에 숨어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설마 외도라도 한 걸까?’라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고 이 가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하는데 아니겠지라며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생각은 이렇게 하였지만 양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향명이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미심쩍다는 생각에 문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챗 여자 친구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양유는 “더 이상 제 남편이랑 채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라고 문자로 답변을 보냈더니 채팅 그 여자는 오히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당신 남편에게 물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해 아주 즐겁거든요! 당신은 당신 남편 간수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채팅 그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양유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남편의 휴대폰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양유는 향명에게 더 이상 위챗 여자 친구와 채팅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향명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부터 양유를 피해 다니기 시작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급히 식사를 끝내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여자들과 채팅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양유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향명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지키고 싶기는 한가요! 위챗 채팅이 그렇게 좋아요? 채팅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님 제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향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차가운 말투로 “여자랑 채팅하는 게 중요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다들 이런 경로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고. 이런 거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양유는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 생활해 온 남편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비통하고 처량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양유는 화가 나다 못해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고 이 가정을 떠나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유는 향명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였고 비록 한 집에서 생활은 하였지만 마치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양유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향명이 왜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고민에 빠진 양유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남편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부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초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였고 이 가정도 매우 아끼고 살뜰히 유지하려고 했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터 동료들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하에 위챗 채팅에 빠지기 시작하여 매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를 않았으며 채팅에 푹 빠져 가정도 저도 아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유는 그들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 원흉이 다름 아닌 사회조류가 가져다준 사악한 풍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위챗 채팅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은 무고하고 가엾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양유는 더 이상 남편을 예전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양유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탄의 사악한 조류와 한차례 쟁탈전을 벌여 남편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양유는 예전처럼 향명을 냉대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와 마음속말도 하기 시작했고 시간만 있으면 향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 준 해악과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통해 주기도 했습니다. 향명은 양유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차분하게 앉아 양유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향명에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하게 되면 너는 무엇으로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하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된다. 그가 너를 어떻게 제어하면 어떻게 인도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너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 딴 것이다. 그럼 이런 환경을 지배하는 조정자는 누구일까?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는지 본인도 모르고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변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데 결국 오늘날의 너가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흐리멍덩하게 살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패괴하고 사람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 .” 양유는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예전에 당신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제게도, 아이에게도 잘하고 우리 가정도 아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위챗 채팅에 빠진 후부터 더 이상 나랑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어요. 당신이 식사하는 걸 보면 배가 고픈지, 부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고 대충 두어 술 뜨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요.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채팅할 생각, 채팅하는 여자만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 사악한 조류에 완전히 제어되어 있다는 걸 설명해요. 당신이 여자랑 채팅하면서 일시적인 스릴과 위안을 찾을 때,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많은 여자들이랑 채팅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 살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인터넷 채팅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어떤 가정은 여자가 남편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남자랑 도망갔고 어떤 집은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여자랑 놀아나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진리가 없기에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사탄은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정욕과 사욕에 사로 잡혀 죄속에서 낙을 누리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삼킬 목적을 달성하여 그것과 함께 멸망될 것을 바라죠. 우린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되요!” 향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유의 얘기를 듣고나서 너무 두렵고 부끄러운 나머지 “여보, 전에 난 다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당신이 속이 좁아 나랑 시시콜콜 따진다고 여겼어요. 오늘에야 사탄이 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탄은 나를 지옥으로 끌어 가고 있었어요! 사실 가끔은 나도 네티즌이랑 채팅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부부 사이에도 좋지 않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게 하고 특히 당신 기분이 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몇 번이나 더 이상 놀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탄이 휴대폰 채팅을 통하여 나를 미혹하고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고 위챗 채팅에 더 이상 빠져 들지 않겠어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 봐요!”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향명의 말을 듣고 양유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회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양유가 보는 앞에서 위챗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양유는 향명의 휴대폰에 위챗 문자가 온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향명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더니 향명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양유에게 앞으로 다시는 채팅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불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 버리는 것으로 채팅하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리라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양유는 사악한 조류가 향명에게 가져준 독해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향명을 인도하여 사악한 조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생활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교회의 한 자매님이 양유의 집을 찾아와 예배 드릴 때 향명과 교통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상대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으로만 개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른길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두게 되면 사탄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게 되면 진리를 좀 알게 되고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속에 빠져 미혹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교통해 주었고 향명은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습니다. 그후부터 향명은 양유를 따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고 차츰 마음도 더 이상 인터넷 채팅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휴대폰에 위챗이 깔려 있어도 더 이상 향명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전화상으로 채팅하던 여자에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라고 질책하는 통화 내용을 몇 번이나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향명은 위챗 인터넷 채팅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단과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라앉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탄의 변두리까지 왔던 가정에 드디어 예전처럼 기쁘고 즐거운 웃음 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양유와 향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면 심령 깊은 곳이 밝고 안심되고 더없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구원이 없고, 하나님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가정은 벌써 파탄되고 말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고 길을 잃어 헤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고 사탄이 우리같은 무지한 사람에게 준 상처를 똑똑히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사탄을 증오하게 되자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도록 남편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의 사악한 조류를 따라 타락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력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통찰력을 키워주어 분별 능력을 자라게 하였고 사탄이 사람을 독해하는 각종 음모 궤계를 간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사악한 조류의 공격을 이겨내는 가장 유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 마음속에 있다면, 마귀 사탄은 더 이상 저희를 농락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남편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구원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유도(刘涛)

좋은 몸매와 완벽한 사랑

제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때, 늘 어른들에게서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아서 제대로 환생하면 일생동안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일생동안 불행해진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책에서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窈窕淑女, 君子好逑)’란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런 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자신이 커서 요조숙녀가 되어 훗날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기만을 기대했습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공을 들였습니다. 아침이면 꾸준히 안면체조를 했는데 이는 턱과 얼굴을 작게해 나중에 더 예뻐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늘 주변의 동창들에게 “수수를 적게 넣고 빚은 소주가 향이 담백하고 모이를 적게 먹은 닭이 살이 없다.(秫瘦酒味薄, 食少鷄不肥)” ‘사람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입 단속을 잘해야 한다. 평소에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저녁에는 되도록 소식하고 배고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으면 물을 마시면 된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늘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다 너무 힘들다면서 다이어트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취직하게 되었는데 TV에서 다이어트 광고를 볼 때마다 그 제품들이 다 그렇게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뚱뚱하던 배가 날씬한 허리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술처럼 느껴졌고 이로 인해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언젠가 자신도 소원 성취하여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배필이 될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이어트 광고를 통해 제 나이에 가장 적합하고 요요현상이나 부작용도 없는 제품인 다이어트 벨트를 사기로 했습니다. 급여를 받고 가장 먼저 300위안을 투자하여 다이어트 벨트를 샀습니다. 저는 제품을 받아들고 너무나 흥분되었는데 보름이 지나면 저의 다이어트 꿈이 실현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 벨트는 전용 건전지를 사용해야 했기에 전기가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래서 건전지 하나면 두번밖에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날씬한 몸매를 위해 저는 모질게 마음먹고 보름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한달이 지나가도 뚜렷한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TV에 나온 사람들은 분명히 사용하고 나서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는데 난 왜 안될까? 다이어트 벨트가 효과가 없다면 또 그렇게 많은 제품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어느 하나는 나에게 적합한 것이 있겠지!’ 그리하여 저는 또 다시 다른 다이어트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또 700위안이 넘는 돈을 들여 다이어트 의자를 구매했습니다. 그 의자는 근육을 당겨주는 역할을 하여 몸에 쌓여 있는 군살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에는 의자로 꾸준히 운동할거야. 또 식이요법으로 고열량의 음식을 금하고 끼니마다 소식할거야. 이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다이어트에 성공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해서 날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체중을 체크했습니다. 저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가운데서 실망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상심했고 괴로웠습니다. ‘내 다이어트 계획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간단 말일까? 안 돼.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미래를 위해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인터넷에서 건강하면서도 실용적인 다이어트 비법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는 말처럼 저는 마침내 꿀식초 다이어트법을 찾아냈습니다. 잇따라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다이어트 식품을 정성껏 만들어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효과는 여전히 별로였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저는 계속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쌀을 가마솥에 볶아 다시 밥을 지어 먹었는데 이러면 열량이 적어 살이 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과 점심은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오후에는 밥을 먹지 않고 요구르트 하나로 떼웠습니다. 식후에는 벽 모서리에 5분간 서있기 운동을 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가급적이면 서있고 앉거나 눕는 것을 피했습니다. 저는 꾸준히 노력하여 50kg만 되면 다이어트 계획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의 미래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집 열쇠를 잊고 집에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직장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열쇠를 가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 노발대발하며 “더이상 다이어트는 하지 마라. 직장 동료들이 전에는 이쁘고 생기있던 네가 지금은 까맣고 말랐다고 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 저도 순간 멍해졌다가 재빨리 거울앞에 가서 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제 얼굴은 말랐고 윤곽이 선명했습니다. 어둡고 피부가 윤기가 없이 초췌해 보여 청춘의 활력마저 잃었습니다. 나중에 제 생리 주기마저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인해 제 건강에 적색신호가 울린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미모와 몸매, 저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고통속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온갖 방법을 다해 맛있는 것을 하여 제 건강에 신경써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보면서 저는 정말로 실컷 맛있게 먹고 싶었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몸매를 유지하여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 저는 여전히 소식하는 것을 이어나갔습니다. 2012년 말,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접하는 과정에서 저는 형제자매들의 옷차림이 모두 아주 단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형제들이 참석하는 예배라면 자매들은 치마를 입어 자신의 몸매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고 다 진리를 추구하는데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때에야 저는 비로소 마음속으로 묵묵히 자신도 예전에 추구했던 관점을 바꾸어 형제 자매들을 따라 배우며 진리를 추구하는데 공을 들이겠노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적부터 소망하고 추구하던 것이 제 마음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 저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거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위쳇 채팅방에서 ○○브랜드 제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설명서에는 이 제품이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고, 게다가 체질을 조절할 수 있어 꾸준히 3개월만 섭취한다면 쉽게 살찌는 체질을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꿀 수 있으며, 또한 건강기능까지 있어 몸의 여러 곳의 영양을 전면적으로 조절 할 수 있다고 소개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저는 또 한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자나 깨나 찾고 있던, 미모도 몸매도 다 챙길 수 있는 제품이었으니까요! 살빼는 벨트나 의자처럼 외부 운동으로 지방을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밖으로 체질을 조절하는 것으로 3개월만 섭취하면 체질이 바뀔 수 있어 영원히 날씬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에 있었던 참담한 실패로 저는 자신의 몸이 또 한번 상처를 받아 건강이 망가질까봐 두려웠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자신의 완벽한 몸매와 청춘을 위해 저는 다시 한번 밑천을 아끼지 않고 6,000위안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3개월의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날마다 영양사가 지시한대로 했는데 밥을 먹을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한끼라도 잘 먹고 싶었으나 그 한끼로 다이어트가 수포로 돌아갈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끝까지 견지할거야. 3개월만 버텨서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면 그때에 산해진미를 실컷 먹을 거야. 내 자신에게 잘 보답할거야!’라고 속삭였습니다. 3개월 후, 결국 저는 3kg밖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생리 주기는 더욱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영양사는 제게 또 다른 제품을 추천했습니다. …… 그제야 저는 갑자기 속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요조숙녀가 되기 위해 저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고 반대로 몸은 중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같은 또래의 형제자매들을 보니 그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에 중시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얼굴에 청춘의 활력으로 넘쳤는데 저는 어떤가요?…… 후에 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교통하였습니다. 저는 차츰차츰 진리를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사람이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또한 자신도 어찌 할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는 사탄의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탄에게서 오는 사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여전히 그것을 끌어안고 보배처럼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의 지배에 맡기고 그것이 제멋대로 우롱하게 내버려 둔다. 사람은 이렇게 사탄에게 점점 더 깊게 패괴되어 간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때 사람에게 먼저 사탄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고 나서 사람이 그것에게 통제를 받게하여 패괴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 자신이 줄곧 사탄에게 우롱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제대로 환생하면 평생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평생 불행해진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라는 이런 그릇된 논리로 저를 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려서부터 요조숙녀가 되어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직장에 다닐 때까지 저는 온갖 방법을 다 쓰면서 이 목표에 도달하려 했고 온종일 마음을 다이어트에 기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또 한번 기만당했고 저는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을 뿐만 아니라 저의 건강에도 적색 신호가 울렸던 것입니다. 사탄은 정말 너무나 혐오스럽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와 미용을 위해 자신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주었고 자신의 남은 생애를 고통속에 살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만약 하나님 말씀의 밝히심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체 계속 사탄에게 우롱당해 아름다운 몸매를 갖추기 위해 제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저는 비록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추구하는 관점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기에 저는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에게 깊이 빠져 짓밟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도대체 누가 자기의 배우자가 될지는 모른다. 비록 사람이 모두 결혼, 이 일에서 자기의 주장과 생각이 있을지라도, 최종에 정말 자기의 짝이 될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지 사람은 예견할 수 없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너의 구애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가 너에게 관심이 있는지, 그가 너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이것은 모두 너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꼭 너와 함께 한평생을 보낼 수 있는 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사람이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네 삶 속으로 들어와 네 삶의 동반자가 되고 네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너의 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혼인이란 사람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개변할 수도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과 같이 아무도 자신의 결혼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한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7년동안 연애하였고 서로가 한평생 의지하고 살자고 철석같이 약속하였지만 양가 부모님이 동의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또 어떤 동창생은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홧김에 생활이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갔는데 생각외로 결혼한 후 서로 이해하고 아끼면서 잘 살고 있고, 게다가 가게를 열어 장사해서 지금은 집 몇 채에 고급 자가용까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동창생은 서로 눈이 맞아 연애하다가 결혼했는데 오히려 결혼 후 툭하면 말다툼을 하면서 서로 원망하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한답니다. 생활 속에 이러한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혼인을 장악할 수 없고 아무도 자신의 결혼 상대가 누구일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미혹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려고 망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뻐져 더 훌륭한 군자를 만나려 하였고 이것으로 제 자신의 결혼 행복지수를 높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자신의 추구를 생각하니 너무나 터무니 없었습니다! 사람의 운명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날씬한 몸매를 갖춘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해서 완벽한 사랑과 혼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그릇된 관점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렇게 하나님께 대항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한 동료가 체중이 늘어나서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지난날 제 자신이 고통스럽게 다이어트하던 나날을 생각하면서 에돌려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성정, 소질, 생김새, 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에게 사람의 생김새, 몸매, 키, 그리고 혼인 등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 있고 모두 하나님의 명정속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배한 일체는 다 좋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뭘 더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권병에 기꺼이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고 자신에 대한 괴롭힘이니까요. 오늘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하에 저는 끝내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좋은 배필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에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형제 자매들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포기했을 때, 차츰차츰 저의 몸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얼굴색도 좋아졌고 피부도 부드럽고 매끄러워졌으며 청춘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탄의 짓밟힘과 우롱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진정한 자유 석방을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오아이(郝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