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직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2018년 09월 17일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밖에 없는 내가 해외로 일하러 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고 더 열심히 일해서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기쁨에 빠져있을 때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다음날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 난 카운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동료를 통해 매달의 금전출납부를 계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날 더러 계산을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이해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마음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나는 학력이 낮고, 언어도 안 통해, 나이는 또 많고, 해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훨씬 힘들 거야!’ 순간,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자신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다고 느꼈다.

고심 끝에 매니저를 찾아가 나는 학력이 낮고, 영어를 못해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매니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사장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기왕 당신이 하기로 안배된 것이니 다른 건 아무 것도 말씀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보아하니 짤리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이때, 나의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나는 일할 기운도 없어서 퇴근 때까지 겨우 버텼다.

저녁 예배 때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고, 한 자매님이 찬송가 한곡을 틀어주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 찬송을 듣고 내 마음은 훨씬 밝아졌다. 나는 모든 일이 생길 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 내가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고 이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여 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더러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학력이 낮아서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어려움에 살면서 자신의 본성과 실질이 너무 나약한 것을 보았다. 일이 생기면 자신을 규정하고 어려움에 맞서서 나아가지 않고 항상 도망치고 회피하려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도 입으로만 인정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믿음이 작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 환경을 빌어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이때, 나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해 이 일을 받아들일 자신도 생겼다.

월말 때, 매니저는 나에게 다음 달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는 학력도 낮은데, 계산을 컴퓨터로 하더라도 배워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실제 체험을 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을 보고 곧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며 나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진심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너를 위해 모든 나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전력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못할 일을 너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네가 입만 살아 생각 없이 말은 했지만 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은 전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며, 총명과 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비록 학력이 낮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자신만만해서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생겼다.

직장생활의 여유로움,직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다,

마침내 내가 카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출근 후 나는 자발적으로 프런트에 갔고 매니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동료를 붙여서 가르쳐 드리라고 할게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라는 것을 안다. 잠시 후, 한 동료가 계산서를 들고 왔는데, 동료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나에게 어떻게 계산을 하고, 어떻게 계산서를 분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뭉치 한 뭉치의 영어 계산서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제가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계산서를 분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산서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순간 전에 내가 전혀 계산할 줄 몰랐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린 후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계산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나는 모든 계산서를 꺼내서 확인하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어를 볼 줄 몰라도 계산서를 맞출 수 있어. 업체마다 계산서는 거의 다 달라. 예를 들면 원고지의 크기, 원고지의 색상, 원고지 위의 글자체의 방위 등등.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업체마다 표제도 다 달라. 그러니까 표제 위의 자음 몇 개만 맞추면 돼. 이러한 생각에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얼른 오래된 계산서와 새로운 계산서를 모두 꺼내놓고 대조해 봤는데,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방법으로 금세 계산서를 분류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런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에서 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아주 순조롭게 당일 업무를 다 마쳤다. 그 후, 매니저는 동료 직원들 앞에서 내가 카운트 업무를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전혀 학력이 낮은 사람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실제 겪었던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이 없었고, 명확한 방향성도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 자녀, 사업, 결혼, 지위등을 정신적 지주와 평생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삼았고, 살아가는 희망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재난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2015년 8월 12일, 톈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 제 5길 서해 국제 물류 컨테이너 부두에 있는 위험물 보관 창고에서 강렬한 대폭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피해 지역이 광범위했으며 사상자도 막대했습니다. 저는 이번 재난 가운데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아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생생하게 나타났음을 체험했습니다. 8월 3일 그날, 제가 예전에 알던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부탁 드렸더니 제 4길 아니면 제 6길에 있는 회사에 야간 경비 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밤에 일을 하면 돈도 더 벌 수 있고 낮에 교회의 본분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 사장님이 출장을 가서 차일피일 미뤄져 저는 조바심이 나서 전화를 걸어 재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몰라서 형제자매들과 얘기를 하니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해서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 야간 일이 괜찮은 것 같은데,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저를 제지시켜 주십시요.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믿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겠습니다. 저는 제 운명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저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 있으며, 사람의 모든 생활도 다 하나님의 눈앞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아니면 죽은 것이든 어떠한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며 새롭게 되고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행할 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 직장에 갈 수 있을지, 언제 일하게 될지는 내가 주관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야. 빨리 일하고 싶지만 사장님이 하필이면 이때 출장가고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전화를 걸어 독촉하려고 했고 현실을 내가 지배하려 하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잊고 있었구나, 사장님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순리에 따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사장님께 전화하지 않기로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8.12 대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폭발 지점이 저의 집과 수 km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저의 집 안방 창문과 베란다 유리가 진동 여파에 금이 갔습니다. 당시, 저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라디오를 통해 폭발 지점이 빈하이신구 제4길과 5길 사이이고 부상자는 부근의 타이다(泰達)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사장님이 저에게 소개 시켜 주겠다고 하던 직장이 바로 4길과 6길 사이에 있어서 그곳이 제일 심각한 피해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생각대로 일찍 일을 했더라면 저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저는 크나큰 보호를 받고 재난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즉시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저를 재난 가운데서 보호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행사는 너무나도 기묘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나중에야 저는 폭발할 때 발생한 음파로 인해 저희 주택 단지에 있는 마트의 유리가 전부 깨졌으나 저의 집 유리는 살짝 금만 간 것을 발견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임을 더욱더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안방의 유리가 깨져서 떨어졌더라면 제 머리와 몸에 박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날 창가쪽으로 머리를 두고 깊이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너무 큰 행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비록 저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천박하고 본분을 하는 중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잘 알고 계시고 긍휼히 여시기고 사랑하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배치하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이 일을 체험한 후 저는 사람의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온 인류가 어느 누가 전능자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는가? 어느 누가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가?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것인가?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인가?”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될 수밖에 없고 재해의 침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누구도 더는 아름다운 나날을 볼 수 없고 누구도 더는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랭한 흑야와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의탁이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재난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하나님이 배치하시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재난 가운데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이 모두 하나님만이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근본이고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므로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좋은 운명과 좋은 결국이 있음을 알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번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체험하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확고히 하였으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며, 행복한 이유도 모두 다르다. 단란한 가정을 이뤘을 때, 명예와 이익을 얻었을 때, 재산이 많았을 때…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채워 주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잠시의 행복이 아닌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가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완벽은 누구나 다 추구하는 최종 목표다. 예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똑똑한 그는 글짓기, 피리, 장기, 서예에서 최고의 경지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편이라 줄곧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왔다. 중학교 때, 예인은 지식의 바다에서 우뚝 서겠노라 다짐했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하고자 하는 정신으로 매번 시험 때면 반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반에서 1등일 뿐, 전교에선 1등이 아닌 3등임을 알았을 때 그는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후광에 가려지기 싫은 마음에 온 정력을 다 쏟아부어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 인고와 노력으로 전교 1등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시에서 가장 우수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만큼 출중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졸업 후, 예인은 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도 그는 완벽을 추구했다. 모든 과정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고, 회사에 큰 공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핵심인사가 되어 상사와 직원 모두 그를 높이 평가하고 인정해주었다. 그는 성취감에 사로잡혀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옛말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단점과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높이 평가해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이나 곧 자신을 뛰어넘을 것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다. 몇 년 후, 회사에 백령이라는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백령은 예인보다 조용했고, 글솜씨나 말재간에서는 예인보다 부족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생활에서는 예인보다 한 수 위였다. 정직함에선 앞서갔지만 예인에게 있는 젊음은 없었다. 백령은 예인이 부럽다며 문화나, 나이, 미래에 있어서도 자신이 예인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예인이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예인은 오로지 자신의 완벽한 꿈이 계속될 수 있을지에만 신경 썼다. 상대방이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실적으로 인해 상사와 동료의 인정과 칭찬을 받자 예인은 참을 수 없었고, 난생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예인은 일에 매진했고, 온 힘을 다해 백령과 경쟁했다. 하지만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회사의 양대 산맥으로 떠올랐고 예인은 홀로 뛰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예인의 마음은 백령을 향한 부러움과 시기 질투로 가득 찼다…얼마 후, 회사 내 인사이동 소식에 예인은 마음이 다시 타올랐다. 업무 확장으로 영업부장을 선출한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듣자 예인은 자신만만하게 당연히 자신이 뽑힐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에 예인은 낙담하고 말았다. 업무 경험이 풍부한 백령이 선택된 것이다. 예인은 난생처음으로 이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피 튀기는 경쟁도, 이렇게 큰 좌절감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 후 예인은 풀이 죽어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그의 마음은 원망으로 가득 찼다. 자신이 대체 왜 백령과 만난 것인지, 왜 자신은 백령을 뛰어넘을 수 없는지, 왜 백령이 선택된 것인지, 대체 왜… 다른 사람에게 지기 싫어했던 예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다. 비통함에 빠지니 자신이 삼국시대의 주유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크게 외쳤다. 내가 있는데 제갈량이 왜 나타난 것인가!” 완벽주의자 예인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았을 때 마음속은 고통과 막막함으로 가득 차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지 몰랐다. 예인은 우연한 기회에 창조주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예인은 창조주의 말씀에 매우 놀랐고, 고통과 막막함으로 가득 찼던 마음도 방향을 찾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사람 자체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무소불능이 될 수 있는가? 완벽해질 수 있는가? 흠이 없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가? 모든 일에 능통하고 다 깨달을 수 있고 다 해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사람 안에 약점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이나 업무를 배우고 나면 ‘난 능력이 생겼어, 난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몸값 좀 나가는 사람이야, 나는 ○○전문가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 얼마나 크든지 사람은 그것을 보여 주기도 전에 자신을 위대하고 용맹하고 완전무결하고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포장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해내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한다. …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인은 깨달음을 얻었다. 완벽은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사람의 야망과 욕심이고 사탄이 사람에게 심어놓은 독소이며 천사장이 추구한 것처럼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창조주의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모두 한정적인 사고와 한정적인 능력만을 갖고 있어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니 어찌 완벽해질 수 있단 말인가? 완벽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나가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등의 생각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건 교만이라는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이자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뛰어넘고 모든 사람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결국 스스로 끝없는 고통과 무력감만 안겨주게 된다. 예인은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힘들어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인생의 추구 목표에 문제가 있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니, 밑 빠진 독을 채우는 것처럼 평생 채울 수 없는 거였어, 창조주의 음성을 조금만 일찍 들어 나의 신분과 지위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오늘에야 예인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불쌍하고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다들 완벽을 추구하고 비범한 사람이 되려 한다. 여배우가 조연을 맡으면 주·조연을 맡고 싶어 하고, 주·조연보단 주연을 맡고 싶어 하며 목표를 이루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표가 바로 완벽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들은 완벽을 위해 힘을 쏟고, 청춘을 바치고, 심혈을 기울이며 심지어 인격과 존엄성을 버리기도 한다. 또 예쁜 얼굴을 가진 여성이 스스로 못생겼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성형수술을 하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여 오히려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게 완벽을 추구한 대가가 아닌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의 욕심과 욕망이다! 이때 예인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증상의 원인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인은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사람은 피조물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자기의 본위를 지키고 참답게 살며 창조주가 준 부탁을 충실하게 지켜야지, 분수에 넘치는 일이나 자기 ‘능력 범위’ 밖의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위대한 사람, 뛰어난 사람, 높고 큰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해서도 안 된다….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대견한 일이고, 피조물이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다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 『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인은 해방감을 느꼈고,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위인이나 명인이 되기 위해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보도록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피조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돈과 명예가 행복한 삶을 이뤄줄 수 있는가?

평생 돈과 명예를 위해 바쁘게 살던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사람은 어떻게 해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우리 손에...’,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터전...’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거짓말 속에 숨겨져 있었던 비밀

거짓말로 스스로를 위장하다 "왕제씨, 저는 아직 이 설계 초안을 분석해보지는 않았는데요, 혹시 설계 초안에 무슨 문제점은 없었습니까?"교육훈련실 강사의 질문이 한참 생각의 나래를 펴고있던 나를 깨웠습니다. 우리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강사 왕주임이 회의실의 단상 위에서 우리의 설계 초안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나는 회사 직원들의 인사이동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녀의 돌발 질문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장님, 부서장님,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자, 겉으로는 태연한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왕주임이 지난번 교육 시간에 질문했을 때, 내가 답변을 못했던 건 건축설계도면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회사의 유능한 디자이너인데, 만약 이번에도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겠어? 하물며 이번에는 회사 사장님도 자리에 계시는데,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무턱대고 바로 말했습니다. "네. 약간요." 부서장님은 만족스럽게 나를 쳐다보았고, 강사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계속 그녀의 분석을 이어갔고, 나는 한 숨을 돌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동료 장판이 미심쩍은 말투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네, 우리는 아무 문제도 못 찾겠던데, 너는 그게 눈에 보였어?"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오히려 살짝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장 뒤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다 저녁에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일어났던 그 일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생각할수록 점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마 5:37)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한 것이며,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시고,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을 요구하시며, 거짓말하지 말 것, 사람을 속이지 말 것, 일 처리와 사람됨에 있어 거짓이 섞여서는 안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고, 디자인 원고의 문제점을 분명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왕주임과 사장님, 동료들을 기만하였고, 그 후 동료가 질문하였을 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교활하게 변명을 하며, 자신을 계속 덮어 감추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솔한 사람을 좋아하시는데, 나는 간교하게 사람을 기만하였습니다.이것은 전혀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반감과 미움을 사게 될 것입니다.순간,나는 후회스러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기만하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길 원합니다..." 기도 후, 나는 내가 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사람에게 간사함과 속셈이 있고 늘 유동적인 생각과 사심이 있으며 늘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 그리고 이익을 고려한다. 진솔한 말을 함에 있어 어떤 때는 두 글자도 그렇게 힘들고 한참 입에 맴돌다가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통제받고 패괴 가운데서 사는데 확실히 하나님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능히 사람을 속이고 기만할 수 있었던 것은 간사한 본성 때문이고, 자신의 헛된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사장님과 동료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사장님과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타락한 성품의 통제를 받은 나는 왕주임의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간단한 "모르겠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였으니, 내가 진솔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전혀 진입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간사한 사람이 되어선 안되고 진솔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예를 들어, 네가 누구에게 어떤 일로 그 사람을 기만하였거나 네가 한 말에 불순물이 있었거나 자신의 속셈이 있었다면, 그에게 찾아가 해부하며 말하여라. “제가 그때 당신에게 한 말에는 제 자신의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 주실 수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부하고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나의 마음속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솔한 사람이 되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만약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자신이 그때 거짓말을 하였던 본심을 해부해서 보여주라고 말입니다. 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는 남에게 거짓말하고 기만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데 방해를 받다 이튿날 오전, 우리의 교육과 디자인 원고 분석은 계속되었습니다. 강사가 강단 위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에게 사죄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생각했습니다. "사과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지? 사장님과 동료들,그리고 왕주임이 나를 얕보지는 않을까? 나중에 회사에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치지?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굳게 결심했고 진솔한 사람이 되리라 기도하였는데,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어!" 이때 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며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막 강의가 끝나려고 할 때, 왕주임이 우리에게 다른 문제는 또 없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사과하고 싶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또다시 연속으로 세 번을 물었지만,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와 우롱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진솔한 사람이 되어 강사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을 뗄 용기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핸드폰의 앱으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너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속마음이 올바른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다.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속셈이 나올 때 그것을 배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정상이 되었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감정과 자신의 뜻에 따라 일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 처리하는 원칙이다.』 말씀에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행하여야 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계획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옳지 않은 속마음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것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원칙이였습니다. 자신을 대조해보니,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진실된 말을 털어놓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할 용기도 없고, 유난히 자신의 체면만 고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비웃지 않을까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기 원했다면, 동료들이 바라보는 시선따윈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저의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면을 내려놓고 진솔한 사람이 되니 정말 좋군요 일주일 간의 교육 학습도 이제 마지막 하루가 남았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앉아서 강사가 지도해주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시간의 흐름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준비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동료들 면전에서 강사에게 사과를 하려고 하니 마음이 긴장되어 손바닥에 계속 땀이 났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간사한 사람이 되지 않고, 진솔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적합한 시간을 예비해주시고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때 뜻밖에 강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예비해 주신 것이라고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가 질문한 문제에 대답을 끝내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왕주임님, 죄송합니다." 그 순간,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회의실 안에는 적막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이 무엇일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습니다. "지난번 주임님이 저에게 질문하셨을 때, 사실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어서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제 체면 때문에 주임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임님을 속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 드립니다." 나는 단숨에 말을 모두 끝내고 나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해졌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제가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양심에 거리낌없는 진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뜻밖에도 사장님은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동료들 앞에서 나를 격려해 주시며 말했습니다. "일을 하는데 실수를 하거나 말을 실수했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얻기란 참 힘들죠.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죠, 당신은 정말 진솔한 직원이군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앞날이 밝을 겁니다!" 강사와 동료들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동료 장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네가 이렇게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 대단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쓸데없는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진솔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이제까지 없었던 든든함과 평안과 기쁨이 넘쳤고, 진실로 진솔한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이런 누림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진솔한 사람이 되니 정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