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직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2018년 09월 17일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밖에 없는 내가 해외로 일하러 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고 더 열심히 일해서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기쁨에 빠져있을 때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다음날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 난 카운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동료를 통해 매달의 금전출납부를 계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날 더러 계산을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이해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마음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나는 학력이 낮고, 언어도 안 통해, 나이는 또 많고, 해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훨씬 힘들 거야!’ 순간,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자신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다고 느꼈다.

고심 끝에 매니저를 찾아가 나는 학력이 낮고, 영어를 못해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매니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사장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기왕 당신이 하기로 안배된 것이니 다른 건 아무 것도 말씀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보아하니 짤리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이때, 나의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나는 일할 기운도 없어서 퇴근 때까지 겨우 버텼다.

저녁 예배 때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고, 한 자매님이 찬송가 한곡을 틀어주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 찬송을 듣고 내 마음은 훨씬 밝아졌다. 나는 모든 일이 생길 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 내가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고 이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여 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더러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학력이 낮아서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어려움에 살면서 자신의 본성과 실질이 너무 나약한 것을 보았다. 일이 생기면 자신을 규정하고 어려움에 맞서서 나아가지 않고 항상 도망치고 회피하려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도 입으로만 인정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믿음이 작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 환경을 빌어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이때, 나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해 이 일을 받아들일 자신도 생겼다.

월말 때, 매니저는 나에게 다음 달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는 학력도 낮은데, 계산을 컴퓨터로 하더라도 배워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실제 체험을 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을 보고 곧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며 나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진심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너를 위해 모든 나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전력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못할 일을 너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네가 입만 살아 생각 없이 말은 했지만 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은 전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며, 총명과 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비록 학력이 낮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자신만만해서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생겼다.

직장생활의 여유로움,직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다,

마침내 내가 카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출근 후 나는 자발적으로 프런트에 갔고 매니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동료를 붙여서 가르쳐 드리라고 할게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라는 것을 안다. 잠시 후, 한 동료가 계산서를 들고 왔는데, 동료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나에게 어떻게 계산을 하고, 어떻게 계산서를 분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뭉치 한 뭉치의 영어 계산서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제가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계산서를 분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산서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순간 전에 내가 전혀 계산할 줄 몰랐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린 후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계산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나는 모든 계산서를 꺼내서 확인하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어를 볼 줄 몰라도 계산서를 맞출 수 있어. 업체마다 계산서는 거의 다 달라. 예를 들면 원고지의 크기, 원고지의 색상, 원고지 위의 글자체의 방위 등등.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업체마다 표제도 다 달라. 그러니까 표제 위의 자음 몇 개만 맞추면 돼. 이러한 생각에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얼른 오래된 계산서와 새로운 계산서를 모두 꺼내놓고 대조해 봤는데,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방법으로 금세 계산서를 분류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런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에서 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아주 순조롭게 당일 업무를 다 마쳤다. 그 후, 매니저는 동료 직원들 앞에서 내가 카운트 업무를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전혀 학력이 낮은 사람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실제 겪었던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소설의 유혹에서 빠져 나오다

저는 예전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아는 착한 딸이었으며, 평범한 생활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난데없는 한 가지 일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저는 몇몇 친구들이 소설이 재미있다며 흥미진진하게 얘기 나누는 것을 무심결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저는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신이 나서 저에게 “소설의 내용은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지 몰라. 로맨틱한 것도 있고 코믹한 것도 있고, 생사 이별 장면도 있고, 시공을 초월한 판타지 소설도 있고, 화목한 가정에 관한 것도 있고. 별의별 내용 다 있어. 어떤 건 너무 감동적이이서 보는 순간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어떤 건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져...”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저는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온 저는 숙제를 마치고 얼른 스마트폰에 웹 소설 앱을 하나 설치하여 홈페이지를 열어 보니 각양각색의 소설 표지가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위아래로 터치하면서 어느 것을 볼까 망설이던 중, 겉표지가 아주 예쁜 추천 소설이 저의 눈을 사로잡았고, 저는 다급히 열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기도 모르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는데, 남녀 주인공이 당한 각종 불행이 마치 제 자신이 당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계속 이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는데, 앞부분을 본 다음에는 그 다음 부분이 보고 싶었고, 그 부분을 본 다음에는 결말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소설에 빠져들었고, 온 마음이 오직 소설속에 있었으며, 소설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늘 이야기 속의 사랑과 미움으로 인해 기뻐하고 우려하고 슬퍼했으며, 어떤 때는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하루만 안 봐도 저는 마음이 초조하여 안절부절못하고 병에 걸린 것처럼 아주 괴로웠으며, 심지어 공부를 하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아무 가치와 의의도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소설 속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갖추고 로맨틱한 사랑을 하면서 온종일 먹고 입을 것 걱정 없이 각종 고급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환상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직 소설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동경했고, 그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 때, 부모님이 돈벌려 외지로 가자 저는 새장 속에 갇혔던 새가 풀려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아주 기뻐했습니다. 소설을 단숨에 다 보기 위해 저는 밥도 하지 않고 라면만 끓여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컵라면으로 바꾸었고, 매일 끼니를 대충 때웠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설만 보았더니 날이 갈수록 눈이 흐려졌고, 온 몸이 무기력해 졌으며, 늘 피곤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눈이 흐려진 건 스마트폰 화면이 너무 밝아서 그럴 거야. 다음부터는 선글라스 끼고 보면 돼. 그리고 몸이 피곤하니까 이제부터는 그렇게 오래 보지 않고 일찍 쉬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혀 소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봤습니다. 그로 인해 눈과 몸이 갈수록 더 나빠졌고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마침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몸이 허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알고 나서 책망할까 봐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조급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소설에 빠지게 된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는 저를 책망하지도 꾸짖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저에게 교통해 주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말씀입니다. “사탄은 이런 방식으로 일부 이야기를 만들고 편집하고 꾸며내 생각이 없는 이런 청소년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네가 분량이 작을 때 될 수 있는 한 너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너를 중독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너에게 분별력이 없는 데다가 아주 경망하고 또 마음속에 갖춰진 긍정적인 것들이 너무 적고 그 어떤 진리 실제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교통을 통해 저는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소설에 빠진 것은 사탄의 올가미와 간계에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고 패괴시켜 우리로 하여금 갈수록 더 타락되게 하려고 거짓 이야기를 날조하였는데, 완벽한 인물을 형상화하거나 환상적인 삶을 꿈꾸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숭배하고 동경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의 내용이 담긴 연애 소설, 무협 소설, 타임슬립 소설을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아주 숭배하게 되고, 그들의 행복한 생활과 로맨틱한 사랑, 각종 특별한 능력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느 날 그들처럼 시공을 초월하게 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있게 되며, 추녀와 담벼락을 넘나드는 재주가 있게 되기를 꿈꾸며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설에 몰입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소설 속의 인물과 플롯에 홀리게 되고, 우리의 희로애락도 비정상적이게 되며, 또한 일반적인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소설에 빠져 가상 세계에서 살다 보면 현실 생활과 동떨어져 공부와 생활에 흥미가 없게 되고, 심지어 밥 먹고 자는 시간마저 소설 보는 시간을 뺏었으니 그 시간까지도 아깝다고 생각됩니다. 이게 어디 정상 사람의 생활입니까? 제가 이 지경까지 타락된 것은 다 사탄이 해친 것이고, 소설은 사탄이 저를 미혹하고 유혹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저는 다시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한 아버지에게“이제부터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래요. 좀 있다 소설 앱을 삭제할게요.”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고, 또한 저와 같이 하나님께 심지를 세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소설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고, 자신이 더 이상 소설을 보지 않게 되어 저는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저에게 시험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심심해서 지난날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고, ‘옛날에 소설 볼 때 아주 재미있었는데. 또 볼까? 조금 보는 건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셔. 그리고 난 하나님께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기도했어. 또 보면 거짓말하는 거잖아.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아. 그러니까 보면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새벽 2시가 넘도록 소설을 보았습니다. 이튿날 일어나니 온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흐리멍덩하며 마음이 어수선하고 머릿속에 온통 소설 속의 플롯이었습니다. 소설을 보지 않겠다는 심지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거짓말했다는 생각에 저는 더 큰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반성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분량이 너무 작아 외적인 일들에 아주 쉽게 끌려가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힘들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것이겠느냐? 사탄에게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 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리가 없고, 죄를 이길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 스스로 그 마음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을 전혀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으며 사탄 성정의 통제를 받고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예전처럼 소설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처럼 살기 싫어서 단지 인위적인 방법으로 억제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 시험이 임하자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사탄의 통제와 속박을 받기 싫습니다. 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후에 저는 아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네가 목숨을 건지려고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너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입으로는 몇 마디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다. 즉, 네가 진정성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들은 것이다. 하나님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너의 어려운 점을 보고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계속 저의 곁을 지키시면서 제가 돌아서기를 기다리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큰 포부가 있거나 제가 공허한 소원을 빌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을 원하시고 제가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해서 사탄의 통제와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하게 되어 아주 큰 격려가 되는 동시에 믿음도 충만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 주실 것이고, 저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후에 또 사탄의 시험이 임했을 때, 저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도와 달라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진실로 협력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셨으며,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부지중에 저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냈고, 성실한 사람의 모양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예배할 때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했더니,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아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우선 사악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사탄이 왜 그렇게 하는지, 사람이 이런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 또 어떤 중독성이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들이 정상적인 인성이고 어떤 것들이 긍정적인 것이며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에게 정확한 실행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무엇이 긍정적인 것인지, 무엇이 부정적 것인지를 전혀 분별할 줄 모르고, 정상적인 인성에는 어떤 것이 갖춰져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각종 사악한 사회 풍조에 직면하여, 우리는 저항할 힘이 없고 어쩔 수 없이 그 풍조에 휩쓸리며, 사탄의 유혹과 해를 당해 갈수록 타락되고 패괴되었으며, 점차 인성과 이지를 잃게 되었고, 정상 사람의 생활이 없게 되었으며 돌이길 수 없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어떻게 인류를 패괴시켰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생활이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생활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탄의 시험이 임할 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할 줄 알게 되었고, 인성 생활이 갈수록 정상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내 힘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장의 신임을 받고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수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기존 직원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속의 화를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인 그는 본인의 생각대로 할 수 없었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와 간구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인도로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사장님의 신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고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란은 욱신욱신 쑤시는 아픈 허리를 손으로 한참 동안 두드리고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커덕”하고 나더니 안란의 며느리 우정이 불쾌한 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우정은 주방 문 옆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어머니의 아들 친구들을 좀 보세요. 그들은 결혼 할 때 신부에게 10만 위안 (한국돈 약 1600만 원)을 줬을 뿐만아니라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도 사주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는 당신 집에서 6만 위안 밖에 주지 않았어요. 제 동창들은 결혼할 때 차도 있고 집도 있었는데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속상해요.”라고 했습니다. 우정의 말을 듣는 순간 안란은 화가 너무 났지만 속으로 ‘그 당시에 집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이제 와서 또 이 말을 꺼내는 거야? 이건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거잖아!’ 우정은 안란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계속 원망 섞인 말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안란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주방 청소를 끝마치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길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고부간인지 모녀간인지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으며 안란의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안란은 그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안란은 좀 전에 우정과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속으로 ‘난 언제 며느리와 저렇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에이, 지금은 보면 볼수록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잘 먹고, 잘 놀면서 마음껏 누리려고만 하는데, 이건 다 헛된 꿈이 아닌가! 방금 전에 한 말도 나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가? 남편과 난 이제 늙어서 농사짓는 것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아파트를 사줄 형편이 되겠어.’이런저런 생각으로 안란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동안 며느리와 지내면서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정을 며느리로 맞이했을 때, 안란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안란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면서 맛있는 거 있으면 며느리에게 주었고 집에서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고부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란은 내심 며느리와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정이 가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왔습니다. 안란은 며느리가 월급을 받아서 저렇게 기쁜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정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는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저 이번달에 월급을 2400위안 받았어요.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으로 1000위안 내고 월세 500위안 내고 그 나머지는 휴대폰 요금과 생활비로 사용했어요. 저는 한달 벌어서 한달에 다 쓰는 전형적인 월광족(한달 월급을 모두 소비해 버리는 중국의 새로운 소비계층)이에요. 어머니, 이번 달에는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월광족’ 이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내 돈 못 갚는 건 괜찮아. 하지만 우정아, 살림하는 사람이 돈을 아껴써야지 함부러 막 쓰면 안된다. 버는 대로 다 쓰면 어떡하니. 앞날을 생각해야지. 축의금도 자기 형편에 맞게 해야지.”라고 말하자 우정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불만스런 말투로 “어머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돈을 빌려서라도 양껏 부조를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 저도 해야죠. 안 그럼 친구들 앞에서 제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눈을 내리깔고, 가방은 소파에 던져버리고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성깔을 부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짢고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난 영감이 돈을 벌어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면서 아끼며 생활하는데, 버는 대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잖아.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 얘는 정말 집안 망칠 애가 아닌가? ’ 생각할수록 우정이 못마땅했고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후부터 안란과 우정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의 생활방식이 점점 더 눈에 거슬렸습니다. 우정이 안란에게 “어머니가 하신 요리는 왜 이리 맛이 없어요? 언제 시간되면 남편에게 백김치 생선요리를 잘하는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고 해야 겠어요.”라고 말하자 안란은 “물고기와 백김치를 같이 넣고 끓인게 뭐가 맛있겠어? 비린내만 나지.”라며 되받아 치자 우정도 지지 않으려고 맞서며 “백김치 생선요리는 북방의 백김치로 끓인게 아니라 남방의 야채로 끓여서 비린맛이 없어요. 나이 들면 ‘견식이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네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졌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견식이 없다’라는 이 몇 글자가 안란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무례하고 안하무인한 우정의 태도에 안란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너 같이 생활한다면 매일 고급 음식만 먹어야 하는데, 그럼 어디 돈이 남아돌겠어? 살림을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니네들처럼 산다면 돈이 아무리 많다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에 부딪치니 그제야 안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란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계속 천천히 걸었습니다. 안란은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은 크리스천이기에 일이 임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환해지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안란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말을 하고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한평생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눈에 거슬리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어떤 것은 사실 자신의 문제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지 말라.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신도 존귀하지 않고 남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고 고상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견식을 넓혀야 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생활 습관도 다 있는데 생활 습관은 인성이 아니다. 너의 생활 습관이 규칙적이고 정상적이고 고상해도 너에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이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이 환경은 너무 좋다.너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 적응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와 잘 지내고 그에게 다가가고 그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순복하는 태도와 실행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이 안란의 마음을 환히 비춰주었습니다. 안란의 마음은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린 듯 상쾌해졌습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와 같이 환경에 적응할 줄 모르고, 순복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오만자대한 본성 때문에 자신을 높이 보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이것도 무시하고 저것도 업신여기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식당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겠다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며느리가 저축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아파트와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 며느리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하는 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면에서는 자신이 며느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다 보니 며느리가 더욱 눈에 차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며느리가 생활하길 바랐는데 며느리가 따르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모두 타락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오만하여 며느리에게 요구가 많았고 또 요구가 높은 탓에 며느리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세대차이라는 장벽이 생겨 고통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며느리를 안배해 주신 건 자신의 오만한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항상 남의 흠을 잡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자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복하면서, 며느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화목하게 살며 생활속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안란은 괴로웠던 그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현실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생활도 계속되고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정은 손에 아이폰을 들고 안란을 바라보며 명랑하게 “어머니, 저 이 휴대폰 액정이 깨져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어요. vivox9plus를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아이폰 4~5 천원 주고 샀잖아, 그렇게 비싼 물건인데, 시간날 때 서비스센터에 가서 액정만 바꾸면 더 사용할 수 있잖아.”라고 말을 하니 우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 액정 바꾸고 싶지 않아요. vivox9plus을 사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우정의 그 말을 듣고 나니 안란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아이폰도 비싼 돈 들여 샀는데, 금방 싫증네다니. 4~5천원 들여 새 휴대폰을 또 사겠다고. 얘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네. 도대체 살림하는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안 되. 사지 못하게 말려야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또 며느리를 간섭하려 하고,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려는 이 오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제가 아직도 너무 교만하여 며느리가 꼭 제 뜻에 따르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타락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안란은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이방인이 말하는 세대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윗사람은 늘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니까 장벽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그 장벽이 생기고 세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냐? 부모는 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는 항상 부모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모를 지심인(知心人)으로 생각한다면 양자간에 그래도 장벽이 있을까? (없습니다.)” 안란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세대 차이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은 부모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자녀를 이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만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높은 지위에 서서 자녀에게 이것도 자기 말대로 해야 하고 저것도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는 불쾌해하고 자녀에게만 눈길이 가는 것입니다. 그때 안란은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신이 체면을 지키려 허세를 부리며 며느리를 간섭하려고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며느리를 강요하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요구하며, 고참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개인의 자유가 있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피조물이고 며느리 역시 똑같은 피조물인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며느리에게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고집하는 것이 다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내려놓고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어야 했지, 늘 속박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유행을 잘 따르는데, 며느리가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려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 되니 안란의 답답했던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졌습니다. 안란은 웃으면서 “나도 이젠 많이 늙었나 보다. 내 생각만 하고 너희 젊은이들의 마음을 몰라 줬으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말거라.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고 싶다고 했지? 그래, 내일 나랑 같이 사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우정은 조금 놀란 듯 의아스러운 눈길로 안란을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안란과 우정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 매장에 갔습니다. 생각밖으로 우정은 “어머니, vivox9plus은 값이 너무 비싸니, 전 사지 않을래요. 대신 vivox7plus로 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후로 우정과 지낼 때, 안란은 비록 우정의 생활방식이 눈에 거슬렸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때는 오만한 본성도 많이 변화되고 며느리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안란도 우정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예전처럼 항상 원망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주 안란과 마음속 말을 나눴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안란과 상의하고 안란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우정은 안란에게 “어머니, 저 아파트 사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번 돈은 어머니가 저축하세요. 저도 이제부터는 돈을 아껴 써야겠어요. 더 이상 아버님, 어머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게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안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며느리 사이에 존재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 노울이 논밭에 비치니 삽시간에 그 논밭은 마치 황금색의 카펫을 두른 것처럼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안란과 우정은 농사일을 끝내고 활짝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부러워서 “저 두 사람 좀 보세요, 누가 고부사이라고 하겠어요.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고부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분들도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안란과 우정은 마음이 뿌듯해 입가에는 웃음이 만발했습니다.   문정

또 다시 무지개를 볼 때

이른 아침, 저는 해변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습니다. 방금 비가 한바탕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해변의 오솔길에는 행인들이 드물어 아주 고요해 보였습니다. 저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때 바닷바람이 살며시 불어왔고 파도는 해안을 살며시 때렸는데, 마치 소곤소곤 대는 것 같았습니다. 갈매기 떼들이 바다 위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는 아침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이때 멀리 보이는 해수면 위로 무지개가 저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에 저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무지개는 정말로 아름다워!”라고 유쾌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순탄치 못한 생활을 경험하고 인간 세상의 처량함을 느끼면서 “햇살은 늘 비바람이 지난 뒤에 나오는데 비바람을 겪지 않고 어찌 무지개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늘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무지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되어 저는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예수를 믿었는데 노아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야 원래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우신 언약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 9:11~14,16)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땅 위의 살아 있는 모든 생물과 세우신 언약입니다. 이로 인해 저는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주님을 믿지 않았다면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것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저는 또한 홍수로 세상을 멸한 것은 하나님의 극렬한 진노를 죄악으로 물든 인류에게 쏟아부은 사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 이래 이 사건 뒤에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보고 나서야 아름다운 무지개 뒤편에는 원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깊은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심어린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상을 멸한 것은 하나님이 원했던 것인가?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 아니다! 세상을 멸한 후의 지상의 참상을 우리는 비록 대략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 당시 하나님이 본 그 광경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사람이든 아니면 그 당시의 사람이든 아무도 하나님이 그 정경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홍수로 멸한 후의 세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인류의 패역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그때 홍수로 세상을 멸한 것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데, 이 사실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자 역시 아무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세워, 즉 약속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전에 이런 일을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알려 주었고, 하나님이 이후에는 영원토록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다. 이 ‘언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이 이 인류를 멸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슬펐음을 보게 되었다. 사람의 언어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인류를 멸할 때와 인류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너희가 다시 무지개를 볼 때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최소한 하나님이 전에 홍수로 그 세상을 멸한 것 때문에 슬퍼한 적이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이 비록 이 세상을 증오하고 이 인류를 증오하였지만 그가 친히 만든 인류를 멸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팠고 포기하기 어려웠고 어쩔 수 없었고 참기 어려웠던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유일하게 위로를 얻을 만했던 것은 바로 노아 일가 여덟 식구였는데, 노아의 협력으로 그가 만유를 창조한 심혈과 대가가 그나마 헛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팠던 끝에 유일하게 그의 아픔을 메울 수 있었던 일이다. 그 후로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기대를 전부 노아 가족에게 두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랐으며, 그들이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것을 다시 보지 않기를 바랐고, 또한 그들이 훼멸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비로소 인류가 사악과 타락 가운데서 살면서도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아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촉노해 하나님께서 부득이하게 홍수로 세상을 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랑을 그분께서 친히 만드신 인류에게 다 쏟으셨습니다.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가 죄악과 음란 가운데 살면서도 회개하지 않아 한차례의 홍수에 의해 훼멸당하는 것을 보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심하셨을 때 노아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하나님은 그의 일가족이 방주에 들어가 생존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로 언약을 세우셨는데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전에 이런 일을 행하신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후에는 영원히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그분의 축복 속에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구구절에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걱정과 염려와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수천년이 지났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했던 사실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기억이 희미해졌습니다. 현재 온 인류는 이미 극도로 사악하고 패괴되어 더이상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지 않으며, 마음속은 온갖 향락과 폭력으로 가득차 갈수록 타락되고 패괴되다보니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즉시 인류를 멸하시지 않고 성육신하셔서 말씀을 발표하심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영을 불러 깨우시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각종 재난으로 우리에게 경고하시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6천년 경영 계획을 끝내시고 이 사악한 옛 세계를 멸하려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인류를 차마 멸하시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그분의 보호와 축복 가운데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행하시는 이 모든 사역은 말세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구원으로 더욱 충만합니다 ! 이전에 자주 무지개를 보던 일을 회상해 보면, 무지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마음껏 사진을 찍을 줄만 알았었지 무지개 뒤편의 하나님의 뜻은 소홀히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다시 되찾은 아들의 건강

하나님의 능력은 크시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도 청천벽력 같은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아들이 결국 중환자실에 눕게 되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을까요?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는 한평생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다면 어떤 고생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자 깨지는 가정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급성 심근 경색이 발병한 아들 누가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

급성 심근 경색으로 아들의 생사는 알 수 없게 되었고 한번 또 한번의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그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마침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