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2019년 01월 07일

어릴 적부터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고학력자만이 출세할 수 있고 가문을 빛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저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출세하고자 하는 소망도 허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난 후 저는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고 아들이 장차 출세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이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저는 아들에게 글자와 당시(唐诗)를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이 아들 손가락이 길어서 피아노를 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반년이 지나자 선생님은 아들이 피아노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고 터득 능력도 있으며 배우는 속도가 빠르니 피아노 급수 시험을 한번 보라고 말했습니다. 또 피아노 급수 시험에서 10급을 받으면 나중에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산점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들에 대한 저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했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아들이 나중에 음악으로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설령 피아노를 배워 큰 성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등급 증명서로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잖아.’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아들을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아들과 함께 피아노 연습을 하기 위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아들의 ‘연습 파트너’가 되어주었습니다. 피아노 연습은 아주 따분했습니다. 매일 몇 곡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했는데 아들은 심하게 짜증을 냈습니다. 특히 주말에 아래층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면 집중해서 피아노 연습을 할 수가 없었고, 자기도 아래층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투정도 부렸습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을 보며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 급수 시험이 코앞인 것을 생각하니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이런 고통은 반드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고생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또 영어 학원을 등록해주었습니다. 아들은 날마다 학교와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보냈고, 주말에는 또 영어 학원과 도서관에 가야 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고 잘 웃던 아들이 서서히 말수가 적어지고, 온종일 언짢은 표정으로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으며,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았고, 툭하면 화를 내고, 평소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에게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제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는데 장난삼아 아들에게 “너는 아빠가 좋아 아니면 엄마가 좋아? 누가 더 좋아?”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아들은 망설임 없이 “누구도 안 좋아, 우리 엄마는 마귀할멈 같아, 마귀할멈이 좋을 수 있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또 말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는 매일 네가 피아노 연습할 때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또 날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고생하시잖아.”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면서 “나는 엄마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 피아노 치는 것도 지겨워. 언젠가는 이 피아노를 부숴버리고 말 거야!”라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그 말이 마치 힘센 주먹으로 저의 가슴을 강하게 내려친 것처럼 아파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희생하고, 물질과 정력을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직장마저도 포기했는데, 아들은 저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미워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저와 말하기를 좋아하고 장난치고 놀기 좋아하던 아들이 지금은 엄마를 마귀할멈 같다고 한 뜻밖의 말에 저는 정말 울고 싶었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쫙 빠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런 방송 기사를 보았습니다. ‘모 학교 한 여학생이 자신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너무 높은 데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심적인 부담을 이기지 못해 고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이 방송을 본 저는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높은 기대가 이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또한 아들이 언젠가 그 여학생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막막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 인재로 만드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고 원동력이었는데, 이제는 아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대해야 할지 정말로 몰랐습니다!

자녀 교육

고통스럽고 막막해 할 때, 언니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변변찮은 능력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자신이 못 이룬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맡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제 속의 생각들을 들추어내셨습니다. 그동안 제가 출세하지 못하고 가문을 빛내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인해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지 않았습니까? 아들이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글자를 가르쳤고, 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또 많은 학원에 등록시켜 주었으며, 나중에 아들을 인재로 만들기 위해 심지어 직장을 사직하면서까지 아들이 공부하도록 재촉하고, 노는 시간마저 빼앗지 않았습니까?

저는 말끝마다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천진난만하고 근심 걱정 없이 자라야 할 아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훈련하게 한 것입니다. 아들을 인재로 키우지도 못했고 오히려 성격이 괴팍해져 저와 말조차 하기 싫어했으며, 심지어 저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서 저를 마귀할멈 같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지식은 운명을 바꾼다.’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가문을 빛냄’이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탄 철학에 농락당한 아이는 힘든 생활을 했고 저 역시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자신의 운명도 장악할 수 없으면서 아들의 운명을 장악하고 통제하려 했으니 그야말로 분수를 몰랐습니다. 저는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무리한 요구로 아이들이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들이 사탄의 독소에 따라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한결같이 부모의 교육 방식에 따라 공부하고 살아갈 것을 강요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않아 결국 아이들은 과중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배치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전에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왔던 저 자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줄곧 가문을 빛내고 출세하는 것만을 추구했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참된 순종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결국 저의 희생은 당연히 받아야 할 보답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들과 저의 사이만 낯설어졌고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사탄의 생존 법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아들이 나중에 어떤 운명일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결정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배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더는 아들에게 학원에 가서 피아노 연습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아들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다거나 혹은 어떤 것에 흥미가 있으면 저는 격려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서서히 밝아졌고 이전처럼 더는 제멋대로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와의 관계도 점점 더 좋아졌고, 어떤 고민이 있거나 학교에서 즐거운 일, 불쾌한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와 항상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았지만, 성적은 오히려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아서 시험을 칠 때마다 반 석차가 상위권이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학교 친구들이 나를 아주 많이 부러워해. 자기들 엄마도, 우리 엄마 같았으면 좋겠다고 다들 말을 해.” 저는 왜 그런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우리 반 친구들은 날마다 학원에 가는데, 자유 시간이 전혀 없고 재미도 없다고 말을 해. 하지만 난 오히려 내 흥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서 매일 자유롭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지. 내 생각에는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바뀐 것 같아. 이전에는 항상 엄마 스케줄에 따라야 했고 엄마 뜻대로 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를 냈는데, 지금은 무엇이나 나와 상의하고 내 생각을 물어보잖아.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데 이제야 내 엄마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에 저는 너무 감동되어 “ 엄마가 더는 너에게 이것저것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켜 주었기 때문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려야 해.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김정

임신 7개월 된 그녀가 갑작스런 강도의 납치를 당한 후…

갑작스럽게 칼을 든 강도에게 납치를 당한 그녀는 임신 7개월째 였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무사히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은혜 간증 — 하나님을 따르고, 인생 최대 재산을 가지다

그는 부자를 꿈꿨지만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해 고통스러워 했다. 후에, 하나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예전의 삶의 방식을 내려놓자 하나님에게서 온 은혜도 누리게 되었다.

새벽녘 발코니의 작은 풀을 바라보며

새벽녘, 발코니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다 문득 고개를 숙였는데 발코니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잎사귀를 보았다. 집 발코니에는 시멘트로 덮여있었고, 주변은 두꺼운 플라스틱인 데다가 수분도 부족했을 터인데 어린 잎사귀가 자란걸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린 잎사귀를 바라보며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권세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감탄하게 됐다!

가성 소다를 마신 6살 여자아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6살 아이가 실수로 가성 소다를 마셔 목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는데 수술을 3번이나 거쳤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의 생명은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까요? 그에게 또 어떤 기적이 일어날까요?

좋은 몸매와 완벽한 사랑

제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때, 늘 어른들에게서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아서 제대로 환생하면 일생동안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일생동안 불행해진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책에서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窈窕淑女, 君子好逑)’란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런 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자신이 커서 요조숙녀가 되어 훗날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기만을 기대했습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공을 들였습니다. 아침이면 꾸준히 안면체조를 했는데 이는 턱과 얼굴을 작게해 나중에 더 예뻐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늘 주변의 동창들에게 “수수를 적게 넣고 빚은 소주가 향이 담백하고 모이를 적게 먹은 닭이 살이 없다.(秫瘦酒味薄, 食少鷄不肥)” ‘사람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입 단속을 잘해야 한다. 평소에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저녁에는 되도록 소식하고 배고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으면 물을 마시면 된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늘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다 너무 힘들다면서 다이어트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취직하게 되었는데 TV에서 다이어트 광고를 볼 때마다 그 제품들이 다 그렇게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뚱뚱하던 배가 날씬한 허리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술처럼 느껴졌고 이로 인해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언젠가 자신도 소원 성취하여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배필이 될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이어트 광고를 통해 제 나이에 가장 적합하고 요요현상이나 부작용도 없는 제품인 다이어트 벨트를 사기로 했습니다. 급여를 받고 가장 먼저 300위안을 투자하여 다이어트 벨트를 샀습니다. 저는 제품을 받아들고 너무나 흥분되었는데 보름이 지나면 저의 다이어트 꿈이 실현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 벨트는 전용 건전지를 사용해야 했기에 전기가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래서 건전지 하나면 두번밖에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날씬한 몸매를 위해 저는 모질게 마음먹고 보름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한달이 지나가도 뚜렷한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TV에 나온 사람들은 분명히 사용하고 나서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는데 난 왜 안될까? 다이어트 벨트가 효과가 없다면 또 그렇게 많은 제품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어느 하나는 나에게 적합한 것이 있겠지!’ 그리하여 저는 또 다시 다른 다이어트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또 700위안이 넘는 돈을 들여 다이어트 의자를 구매했습니다. 그 의자는 근육을 당겨주는 역할을 하여 몸에 쌓여 있는 군살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에는 의자로 꾸준히 운동할거야. 또 식이요법으로 고열량의 음식을 금하고 끼니마다 소식할거야. 이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다이어트에 성공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해서 날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체중을 체크했습니다. 저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가운데서 실망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상심했고 괴로웠습니다. ‘내 다이어트 계획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간단 말일까? 안 돼.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미래를 위해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인터넷에서 건강하면서도 실용적인 다이어트 비법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는 말처럼 저는 마침내 꿀식초 다이어트법을 찾아냈습니다. 잇따라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다이어트 식품을 정성껏 만들어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효과는 여전히 별로였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저는 계속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쌀을 가마솥에 볶아 다시 밥을 지어 먹었는데 이러면 열량이 적어 살이 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과 점심은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오후에는 밥을 먹지 않고 요구르트 하나로 떼웠습니다. 식후에는 벽 모서리에 5분간 서있기 운동을 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가급적이면 서있고 앉거나 눕는 것을 피했습니다. 저는 꾸준히 노력하여 50kg만 되면 다이어트 계획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의 미래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집 열쇠를 잊고 집에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직장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열쇠를 가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 노발대발하며 “더이상 다이어트는 하지 마라. 직장 동료들이 전에는 이쁘고 생기있던 네가 지금은 까맣고 말랐다고 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 저도 순간 멍해졌다가 재빨리 거울앞에 가서 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제 얼굴은 말랐고 윤곽이 선명했습니다. 어둡고 피부가 윤기가 없이 초췌해 보여 청춘의 활력마저 잃었습니다. 나중에 제 생리 주기마저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인해 제 건강에 적색신호가 울린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미모와 몸매, 저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고통속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온갖 방법을 다해 맛있는 것을 하여 제 건강에 신경써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보면서 저는 정말로 실컷 맛있게 먹고 싶었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몸매를 유지하여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 저는 여전히 소식하는 것을 이어나갔습니다. 2012년 말,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접하는 과정에서 저는 형제자매들의 옷차림이 모두 아주 단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형제들이 참석하는 예배라면 자매들은 치마를 입어 자신의 몸매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고 다 진리를 추구하는데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때에야 저는 비로소 마음속으로 묵묵히 자신도 예전에 추구했던 관점을 바꾸어 형제 자매들을 따라 배우며 진리를 추구하는데 공을 들이겠노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적부터 소망하고 추구하던 것이 제 마음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 저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거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위쳇 채팅방에서 ○○브랜드 제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설명서에는 이 제품이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고, 게다가 체질을 조절할 수 있어 꾸준히 3개월만 섭취한다면 쉽게 살찌는 체질을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꿀 수 있으며, 또한 건강기능까지 있어 몸의 여러 곳의 영양을 전면적으로 조절 할 수 있다고 소개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저는 또 한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자나 깨나 찾고 있던, 미모도 몸매도 다 챙길 수 있는 제품이었으니까요! 살빼는 벨트나 의자처럼 외부 운동으로 지방을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밖으로 체질을 조절하는 것으로 3개월만 섭취하면 체질이 바뀔 수 있어 영원히 날씬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에 있었던 참담한 실패로 저는 자신의 몸이 또 한번 상처를 받아 건강이 망가질까봐 두려웠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자신의 완벽한 몸매와 청춘을 위해 저는 다시 한번 밑천을 아끼지 않고 6,000위안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3개월의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날마다 영양사가 지시한대로 했는데 밥을 먹을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한끼라도 잘 먹고 싶었으나 그 한끼로 다이어트가 수포로 돌아갈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끝까지 견지할거야. 3개월만 버텨서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면 그때에 산해진미를 실컷 먹을 거야. 내 자신에게 잘 보답할거야!’라고 속삭였습니다. 3개월 후, 결국 저는 3kg밖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생리 주기는 더욱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영양사는 제게 또 다른 제품을 추천했습니다. …… 그제야 저는 갑자기 속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요조숙녀가 되기 위해 저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고 반대로 몸은 중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같은 또래의 형제자매들을 보니 그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에 중시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얼굴에 청춘의 활력으로 넘쳤는데 저는 어떤가요?…… 후에 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교통하였습니다. 저는 차츰차츰 진리를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사람이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또한 자신도 어찌 할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는 사탄의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탄에게서 오는 사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여전히 그것을 끌어안고 보배처럼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의 지배에 맡기고 그것이 제멋대로 우롱하게 내버려 둔다. 사람은 이렇게 사탄에게 점점 더 깊게 패괴되어 간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때 사람에게 먼저 사탄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고 나서 사람이 그것에게 통제를 받게하여 패괴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 자신이 줄곧 사탄에게 우롱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제대로 환생하면 평생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평생 불행해진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라는 이런 그릇된 논리로 저를 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려서부터 요조숙녀가 되어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직장에 다닐 때까지 저는 온갖 방법을 다 쓰면서 이 목표에 도달하려 했고 온종일 마음을 다이어트에 기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또 한번 기만당했고 저는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을 뿐만 아니라 저의 건강에도 적색 신호가 울렸던 것입니다. 사탄은 정말 너무나 혐오스럽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와 미용을 위해 자신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주었고 자신의 남은 생애를 고통속에 살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만약 하나님 말씀의 밝히심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체 계속 사탄에게 우롱당해 아름다운 몸매를 갖추기 위해 제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저는 비록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추구하는 관점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기에 저는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에게 깊이 빠져 짓밟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도대체 누가 자기의 배우자가 될지는 모른다. 비록 사람이 모두 결혼, 이 일에서 자기의 주장과 생각이 있을지라도, 최종에 정말 자기의 짝이 될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지 사람은 예견할 수 없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너의 구애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가 너에게 관심이 있는지, 그가 너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이것은 모두 너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꼭 너와 함께 한평생을 보낼 수 있는 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사람이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네 삶 속으로 들어와 네 삶의 동반자가 되고 네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너의 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혼인이란 사람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개변할 수도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과 같이 아무도 자신의 결혼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한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7년동안 연애하였고 서로가 한평생 의지하고 살자고 철석같이 약속하였지만 양가 부모님이 동의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또 어떤 동창생은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홧김에 생활이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갔는데 생각외로 결혼한 후 서로 이해하고 아끼면서 잘 살고 있고, 게다가 가게를 열어 장사해서 지금은 집 몇 채에 고급 자가용까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동창생은 서로 눈이 맞아 연애하다가 결혼했는데 오히려 결혼 후 툭하면 말다툼을 하면서 서로 원망하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한답니다. 생활 속에 이러한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혼인을 장악할 수 없고 아무도 자신의 결혼 상대가 누구일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미혹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려고 망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뻐져 더 훌륭한 군자를 만나려 하였고 이것으로 제 자신의 결혼 행복지수를 높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자신의 추구를 생각하니 너무나 터무니 없었습니다! 사람의 운명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날씬한 몸매를 갖춘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해서 완벽한 사랑과 혼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그릇된 관점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렇게 하나님께 대항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한 동료가 체중이 늘어나서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지난날 제 자신이 고통스럽게 다이어트하던 나날을 생각하면서 에돌려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성정, 소질, 생김새, 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에게 사람의 생김새, 몸매, 키, 그리고 혼인 등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 있고 모두 하나님의 명정속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배한 일체는 다 좋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뭘 더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권병에 기꺼이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고 자신에 대한 괴롭힘이니까요. 오늘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하에 저는 끝내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좋은 배필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에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형제 자매들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포기했을 때, 차츰차츰 저의 몸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얼굴색도 좋아졌고 피부도 부드럽고 매끄러워졌으며 청춘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탄의 짓밟힘과 우롱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진정한 자유 석방을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오아이(郝愛)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

인생의 깨달음 오직 욥을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야’만 행복한 인생을 얻을 수 있다. 결혼한지 몇년차에 접어든 그는 직장인 입니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고 자식도 영리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할 수밖에 없어 그는 인생이 정말 막연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한 사람, 중년인 그는 화이트 칼라입니다. 먹고 입을 근심이 없지만 승진과 더 많은 연봉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잔업을 해야 했고 접대가 많아서 제시간에 퇴근도 하지 못해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칩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말년에 이른 부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떳떳하고 부러워 할지 모르지만 재산을 놓고 서로 다투는 자녀들 때문에 말년의 그는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삶은 다른 인생 경험을 가져다줍니다. 서로 다른 인생 경험은 또 서로 다른 고민과 쓰라림이 따르게 됩니다. 사람은 다 완벽하길 바랍니다. 가족이 화목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명예와 재물을 함께 얻어서 마음이 충실하길 바랍니다.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 불만과 유감을 가지며, 어느날 세 사람은 만나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은 화이트 칼라의 안정된 직업을 부러워했고 화이트 칼라는 부자가 사업에 성공한 것을 부러워합니다. 부자는 직장인의 가정이 화목한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다 생활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행복한 인생을 얻으리라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직장인은 윤택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먹고 마시고 놀며 즐기는 사교(社交)장소에 잡혀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어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이트 칼라는 사업에 성공한 사장님이 되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사람에게 속아 재산을 빼앗길까 봐 경계하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들은 그의 제삿날에야 산소에 가서 꽃바구니를 차려놓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대다수가‘직장인, 화이트 칼라와 부자’중의 한사람이 아닐까요? 가난할 때는 안일한 생활을 동경하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하여 아무 근심이 없을 때는 큰 부자가 되길, 그러나 정작 큰 부자가 되고 나면 더 깊은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제비는 가을에 날아갔다가 봄이면 다시 돌아옵니다. 푸른 풀은 겨울에 시들었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몇년, 십여 년, 혹은 몇십 년동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합니다. 짧은 시간에 목숨을 걸고 금전, 지위, 감정, 혹은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는 물건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우월한 물질적 향락을 누릴 수는 있어도 마음의 평안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지위는 우리의 허영심을 일시적으로 채울 수는 있어도 마음 속의 고독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육체 관계를 잠시 유지할 수는 있어도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몇 단락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이 하나님의 명정 가운데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고, 또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하나님이 없는 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날,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의의가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적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에게 깊이 반성하게 하는 이 말씀을 보고 갑자기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을 깨닫게 된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출생, 성장, 가정,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는 다 조물주의 손 안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고, 사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을 다 합당하게 안배하셨습니다. 사람이 한정된 시간 내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그건 시간과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고, 남는 것은 공허함과 고통 뿐입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재된 욥에 대해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일생 동안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반듯한 아들 딸을 베풀어 주었고, 엄청난 재산과 많은 하인과 가축을 베풀어주었지만 그는 안락한 생활 속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대적할까 봐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이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욥은 확실히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 진리를 실행했습니다. 욥기 1장 21절을 보면, 후에 사탄의 시험이 닥쳐 모든 자녀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서 아내와 친구들의 조소와 조롱을 당했지만 욥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면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재산, 감정, 명예를 잃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어도 이전과 다름없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는데, 사람이 세상에세 살아가면서 수명이 길든 짧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의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복을 받든 화가 닥치든 신경쓰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몇 배의 축복을 다시 받게 된 것입니다. 더 좋은 자녀와 몇 배가 되는 재산을 얻었고 천수를 다 누릴 수 있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도(道)를 실행하여 마음속에 편안함과 평온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욥의 후반생은 계속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 속에 있었고, 더 이상 사탄의 침입과 방해가 없었으며, 그는 완전히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고뇌하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큰 돈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전, 미녀, 명리와 육체를 자극하는 것들이 사람에게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아 아직도 지위를 갖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는 사람,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주목받고 떠받들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리를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점점 모든 인격과 도덕을 상실하게 되고, 진정한 친구를 다 잃게 되며 주위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이 당신이 원하는 생활입니까? 사람은 일생 가운데서 사탄의 시험에 자주 직면하게 됩니다. 금전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지위든 권세든 다 충분히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진리의 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주 사탄의 시험에 빠집니다. 사악을 숭배하는 원인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행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 사역을 많이 하거나 좋은 행실이나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만 중요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어놓고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상고하고 실행하는 것에는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욥처럼 살면 어떨까요? 금전과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무슨 일이 닥치든 자기의 애호와 욕망과 상상대로 맹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나날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점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고 진리가 자기 생존의 근거와 생명이 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이 만족스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게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입니다. 제가 금방 본 아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늘 표면에서, 도리상에서 떠다니고 안으로 실행하지 않으며 안의 각종 정형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언제나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진리가 너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사실이다......네가 믿음이 있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명이 부지중에 너의 생명이 된다. 이렇게 부지중에 너의 이 생명 안에 곧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의 요소가 있게 되고 이런 실제가 있게 되고 이런 살아 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지 않겠는가? 네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으면 너에게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케 하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희망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아무런 난이도도 없다.” 향의(向義)

거짓말 속에 숨겨져 있었던 비밀

거짓말로 스스로를 위장하다 “왕제 씨, 저는 아직 이 설계 초안을 분석해보지는 않았는데요, 혹시 설계 초안에 무슨 문제점은 없었습니까?” 교육훈련실 강사의 질문이 한참 생각의 나래를 펴고있던 나를 깨웠습니다. 우리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강사 왕주임이 회의실의 단상 위에서 우리의 설계 초안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나는 회사 직원들의 인사이동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녀의 돌발 질문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장님, 부서장님,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자, 겉으로는 태연한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왕주임이 지난번 교육 시간에 질문했을 때, 내가 답변을 못했던 건 건축설계도면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회사의 유능한 디자이너인데, 만약 이번에도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겠어? 하물며 이번에는 회사 사장님도 자리에 계시는데,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무턱대고 바로 말했습니다. “네, 약간요.” 부서장님은 만족스럽게 나를 쳐다보았고, 강사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계속 그녀의 분석을 이어갔고, 나는 한 숨을 돌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동료 장판이 미심쩍은 말투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네, 우리는 아무 문제도 못 찾겠던데, 너는 그게 눈에 보였어?”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오히려 살짝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장 뒤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다 저녁에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일어났던 그 일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생각할수록 점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너희는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을 기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한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이 행한 일은 사람이 트집 잡을 것도, 의심할 것도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히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정직하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거짓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놓으며,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정직하다는 것은 일을 하거나 말을 함에 있어 무엇을 보태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한 것이며,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시고,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을 요구하시며, 거짓말하지 말 것, 사람을 속이지 말 것, 일 처리와 사람됨에 있어 거짓이 섞여서는 안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고, 디자인 원고의 문제점을 분명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왕주임과 사장님, 동료들을 기만하였고, 그 후 동료가 질문하였을 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교활하게 변명을 하며, 자신을 계속 덮어 감추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는데, 나는 간교하게 사람을 기만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반감과 미움을 사게 될 것입니다. 순간, 나는 후회스러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기만하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길 원합니다...” 기도 후, 나는 내가 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사람에게 간사함과 속셈이 있고 늘 유동적인 생각과 사심이 있으며 늘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 그리고 이익을 고려한다. 정직한 말을 함에 있어 어떤 때는 두 글자도 그렇게 힘들고 한참 입에 맴돌다가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통제받고 패괴 가운데서 사는데 확실히 하나님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능히 사람을 속이고 기만할 수 있었던 것은 간사한 본성 때문이고, 자신의 헛된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사장님과 동료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사장님과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타락한 성품의 통제를 받은 나는 왕주임의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간단한 “모르겠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였으니, 내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전혀 진입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간사한 사람이 되어선 안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누구에게 어떤 일로 그 사람을 기만하였거나 네가 한 말에 불순물이 있었거나 자신의 속셈이 있었다면, 그에게 찾아가 해부하며 말하여라. “제가 그때 당신에게 한 말에는 제 자신의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 주실 수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부하고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나의 마음속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만약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자신이 그때 거짓말을 하였던 본심을 해부해서 보여주라고 말입니다. 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는 남에게 거짓말하고 기만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데 방해를 받다 이튿날 오전, 우리의 교육과 디자인 원고 분석은 계속되었습니다. 강사가 강단 위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에게 사죄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생각했습니다. “사과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지? 사장님과 동료들, 그리고 왕주임이 나를 얕보지는 않을까? 나중에 회사에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치지?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굳게 결심했고 정직한 사람이 되리라 기도하였는데,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어!” 이때 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며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막 강의가 끝나려고 할 때, 왕주임이 우리에게 다른 문제는 또 없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사과하고 싶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또다시 연속으로 세 번을 물었지만,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와 우롱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강사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을 뗄 용기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핸드폰의 앱으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너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속마음이 올바른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다.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속셈이 나올 때 그것을 배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정상이 되었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감정과 자신의 뜻에 따라 일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 처리하는 원칙이다.』 말씀에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행하여야 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계획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옳지 않은 속마음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것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원칙이였습니다. 자신을 대조해보니,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진실된 말을 털어놓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할 용기도 없고, 유난히 자신의 체면만 고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비웃지 않을까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기 원했다면, 동료들이 바라보는 시선따윈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저의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면을 내려놓고 정직한 사람이 되다 일주일 간의 교육 학습도 이제 마지막 하루가 남았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앉아서 강사가 지도해주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시간의 흐름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준비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동료들 면전에서 강사에게 사과를 하려고 하니 마음이 긴장되어 손바닥에 계속 땀이 났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간사한 사람이 되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적합한 시간을 예비해주시고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때 뜻밖에 강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예비해 주신 것이라고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가 질문한 문제에 대답을 끝내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왕주임님, 죄송합니다.” 그 순간,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회의실 안에는 적막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이 무엇일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습니다. “지난번 주임님이 저에게 질문하셨을 때, 사실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어서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제 체면 때문에 주임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임님을 속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 드립니다.” 나는 단숨에 말을 모두 끝내고 나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해졌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양심에 거리낌없는 정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뜻밖에도 사장님은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동료들 앞에서 나를 격려해 주시며 말했습니다. “일을 하는데 실수를 하거나 말을 실수했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얻기란 참 힘들죠.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죠, 당신은 정말 정직한 직원이군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앞날이 밝을 겁니다!” 강사와 동료들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동료 장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네가 이렇게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 대단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쓸데없는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이제까지 없었던 든든함과 평안과 기쁨이 넘쳤고, 진실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이런 누림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니 정말 좋습니다.

30m 가량 되는 비탈길에서 떨어지는 아찔했던 순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속은 항상 돈으로 가득 찬 그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길로 향했다. 30m가량 되는 비탈길에서 차를 돌이려던 그는 그만 뒷바퀴가 내리막길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그는 하나님이 유일한 의지처였는데, 과연 그는 무사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