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2019년 01월 07일

어릴 적부터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고학력자만이 출세할 수 있고 가문을 빛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저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출세하고자 하는 소망도 허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난 후 저는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고 아들이 장차 출세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이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저는 아들에게 글자와 당시(唐诗)를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이 아들 손가락이 길어서 피아노를 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반년이 지나자 선생님은 아들이 피아노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고 터득 능력도 있으며 배우는 속도가 빠르니 피아노 급수 시험을 한번 보라고 말했습니다. 또 피아노 급수 시험에서 10급을 받으면 나중에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산점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들에 대한 저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했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아들이 나중에 음악으로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설령 피아노를 배워 큰 성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등급 증명서로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잖아.’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아들을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아들과 함께 피아노 연습을 하기 위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아들의 ‘연습 파트너’가 되어주었습니다. 피아노 연습은 아주 따분했습니다. 매일 몇 곡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했는데 아들은 심하게 짜증을 냈습니다. 특히 주말에 아래층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면 집중해서 피아노 연습을 할 수가 없었고, 자기도 아래층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투정도 부렸습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을 보며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 급수 시험이 코앞인 것을 생각하니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이런 고통은 반드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고생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또 영어 학원을 등록해주었습니다. 아들은 날마다 학교와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보냈고, 주말에는 또 영어 학원과 도서관에 가야 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고 잘 웃던 아들이 서서히 말수가 적어지고, 온종일 언짢은 표정으로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으며,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았고, 툭하면 화를 내고, 평소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에게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제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는데 장난삼아 아들에게 “너는 아빠가 좋아 아니면 엄마가 좋아? 누가 더 좋아?”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아들은 망설임 없이 “누구도 안 좋아, 우리 엄마는 마귀할멈 같아, 마귀할멈이 좋을 수 있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또 말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는 매일 네가 피아노 연습할 때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또 날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고생하시잖아.”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면서 “나는 엄마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 피아노 치는 것도 지겨워. 언젠가는 이 피아노를 부숴버리고 말 거야!”라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그 말이 마치 힘센 주먹으로 저의 가슴을 강하게 내려친 것처럼 아파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희생하고, 물질과 정력을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직장마저도 포기했는데, 아들은 저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미워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저와 말하기를 좋아하고 장난치고 놀기 좋아하던 아들이 지금은 엄마를 마귀할멈 같다고 한 뜻밖의 말에 저는 정말 울고 싶었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쫙 빠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런 방송 기사를 보았습니다. ‘모 학교 한 여학생이 자신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너무 높은 데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심적인 부담을 이기지 못해 고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이 방송을 본 저는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높은 기대가 이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또한 아들이 언젠가 그 여학생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막막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 인재로 만드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고 원동력이었는데, 이제는 아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대해야 할지 정말로 몰랐습니다!

고통스럽고 막막해 할 때, 언니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변변찮은 능력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자신이 못 이룬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맡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제 속의 생각들을 들추어내셨습니다. 그동안 제가 출세하지 못하고 가문을 빛내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인해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지 않았습니까? 아들이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글자를 가르쳤고, 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또 많은 학원에 등록시켜 주었으며, 나중에 아들을 인재로 만들기 위해 심지어 직장을 사직하면서까지 아들이 공부하도록 재촉하고, 노는 시간마저 빼앗지 않았습니까?

저는 말끝마다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천진난만하고 근심 걱정 없이 자라야 할 아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훈련하게 한 것입니다. 아들을 인재로 키우지도 못했고 오히려 성격이 괴팍해져 저와 말조차 하기 싫어했으며, 심지어 저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서 저를 마귀할멈 같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지식은 운명을 바꾼다.’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가문을 빛냄’이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탄 철학에 농락당한 아이는 힘든 생활을 했고 저 역시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자신의 운명도 장악할 수 없으면서 아들의 운명을 장악하고 통제하려 했으니 그야말로 분수를 몰랐습니다. 저는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무리한 요구로 아이들이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들이 사탄의 독소에 따라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한결같이 부모의 교육 방식에 따라 공부하고 살아갈 것을 강요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않아 결국 아이들은 과중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배치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전에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왔던 저 자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줄곧 가문을 빛내고 출세하는 것만을 추구했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참된 순종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결국 저의 희생은 당연히 받아야 할 보답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들과 저의 사이만 낯설어졌고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사탄의 생존 법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아들이 나중에 어떤 운명일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결정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배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더는 아들에게 학원에 가서 피아노 연습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아들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다거나 혹은 어떤 것에 흥미가 있으면 저는 격려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서서히 밝아졌고 이전처럼 더는 제멋대로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와의 관계도 점점 더 좋아졌고, 어떤 고민이 있거나 학교에서 즐거운 일, 불쾌한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와 항상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았지만, 성적은 오히려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아서 시험을 칠 때마다 반 석차가 상위권이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학교 친구들이 나를 아주 많이 부러워해. 자기들 엄마도, 우리 엄마 같았으면 좋겠다고 다들 말을 해.” 저는 왜 그런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우리 반 친구들은 날마다 학원에 가는데, 자유 시간이 전혀 없고 재미도 없다고 말을 해. 하지만 난 오히려 내 흥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서 매일 자유롭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지. 내 생각에는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바뀐 것 같아. 이전에는 항상 엄마 스케줄에 따라야 했고 엄마 뜻대로 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를 냈는데, 지금은 무엇이나 나와 상의하고 내 생각을 물어보잖아.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데 이제야 내 엄마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에 저는 너무 감동되어 “ 엄마가 더는 너에게 이것저것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켜 주었기 때문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려야 해.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김정

우리 가족의 갈등, 이렇게 해결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가족들이 다 나를 편애했다. 나는 여동생보다 세 살 많았지만 한 번도 동생에게 양보해 본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먼저 차지했다. 결혼한 후, 종종 사소한 일로 남편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곤 했다. 남편을 못 이기면 며칠이고 그와 대화도 하지 않았고, 남편도 나를 외면하며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집안 분위기가 나는 너무 괴로웠다. 혼자서 이런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역하러 오신 것은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타락한 우리를 정결케 하고, 우리가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의 후반부에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잘 따르겠다고 남몰래 결심했다. 타락한 성품이 변화될 수만 있다면 가정도 화목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 집에서 남편과 의견이 다르면 나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그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은 줄어들었고, 나는 스스로 변화한 것을 느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자만자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계속 여러 가지 환경을 만드시며 나를 변화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사돈 간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5년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두 사람은 연애 끝에 결혼 적령기가 되어 가족끼리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아이들의 혼사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쪽 어머니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신혼집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딸이 거기에 살면 직장과 가까워 출근하기 편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몇십 리 밖에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살라는 말을 듣고 내심 불쾌했다. 첫째,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단층집이라 출입이 편하고, 둘째, 우리 부모님과 시댁과의 거리가 가까워 양쪽 부모님을 보살피기에도 비교적 편했기 때문에 나는 절대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멀리 떨어진 그 집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집이 비록 멀기는 해도 안의 가구가 다 새것이고, 인테리어도 젊은이들의 취향대로 디자인해서 젊은이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내주고 아들의 신혼집으로 새로 인테리어 해주겠다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난 묵묵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나는 남편과 싸우며 사돈에 대한 불만을 전부 남편에게 쏟아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 척하며 정작 나의 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원망했고, 사돈의 처사가 너무 지나치고 너무 강하게 나온다며 원망했다. 이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집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고 남이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니 내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서 무척 억울하고 괴로웠다. 아무런 방법도 없을 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일 때문에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원래 멀리 있는 그 집을 아들이 결혼하면 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돈이 그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집은 우리가 샀는데 사돈이 무슨 자격으로 결정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돈과 싸운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으려니 제 마음이 또 내키지 않습니다. 남편도 제 편이 아니라 더욱 괴롭고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이 말씀이 바로 나를 심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그 불신자들과 똑같이 명리를 다투고, 내 이익을 위해 시시콜콜 따지며,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도 않았다. 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으니 정말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이다! 집 문제에서 사돈의 처사가 내 이익을 해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내 편에 서지 않고 날 무시하며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서 내 이익과 체면을 되찾으려고 남편과 싸웠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후회가 되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집 문제에서 저는 제 이익과 체면을 지키려고 사돈과 다투고 남편과 싸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이익을 내려놓고 그들과 다투지 않고 하루 빨리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기도 후, 나는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남을 포용하고, 양보하며, 이해한다면 내 마음이 해방되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이사 문제를 상의했다. 이 일이 끝난 후, 나와 남편, 사돈 간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며느리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6년 가을, 아들이 결혼하고, 온 가족이 행복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들 부부의 신혼 3일째 밤 9시가 넘어, 남편은 며느리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몰고 가 보았다. 집에 들어가 이유를 물어보고 나서야 집문서 때문인 것을 알았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본인의 이름도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갈등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말했다.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우리 모두 피곤하니 이 일은 며칠 후에 다시 상의하자꾸나.”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며느리의 이런 요구는 말도 안돼. 며느리의 부모가 그렇게 강하게 나오더니 며느리 역시 부모랑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리 집은 정말 재수가 없네. 어떻게 그런 집이랑 엮여서...’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자. 아들네가 안 싸우고 잘 살면 됐지...” 나는 듣자마자 분통이 터져 남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 어쩜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요. 며느리가 해 달라 한다고 다 해주면 나중엔 끝도 없이 욕심을 부릴 거라고요. 우리가 집도 사고 인테리어까지 했는데, 며느리는 돈 한 푼 안 내고 명의를 올려 달라는 게 말이 돼요? 남들이 알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요. 사람들이 다 우리를 깔보지 않겠냐고요? 앞으로 제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만나겠어요? 게다가 며느리가 하는 짓을 보니 아들과 잘 살 것 같지도 않아요. 만약 정말 이혼이라도 해서 재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고요...” 남편은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보고 난 더욱 화가 났다. 더 이상 마음속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모든 불평을 남편에게 퍼부었다. 나는 울면서 이 집을 살 때 돈을 모으느라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했고, 말할수록 며느리의 요구는 더욱 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로 괴로워할 때 갑자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게 생각났다. 순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자기 이름을 올려 달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너무 한 것 같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사이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입니다. 들어주자니 또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이때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았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데,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만 생각하게 하고, 명리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게 하며, 명리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게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게 하며, 명리를 지키거나 얻기 위해 어떤 판단이나 결단도 내릴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무형의 굴레를 씌워 놓았다. 그 굴레가 씌워지면 사람은 벗어날 능력도, 벗어날 용기도 없는데, 그 굴레를 쓴 채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였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존해 오면서 갈수록 사악해지고 흑암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이 사탄이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 속에서 자신을 망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사탄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의 음험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사탄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가증스럽습니다!) 아마 너희가 지금은 아직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꿰뚫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떠나면 인생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를 볼 수 없고, 앞날이 캄캄하고 막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어느 날엔가 사탄이 사람에게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큰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인식하는 그날이 되면, 너는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너에게 씌워 놓은 굴레에 철저하게 저항할 것이다. 네가 사탄이 주입시킨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면, 너는 사탄과 철저히 결별하게 될 것이며, 또한 사탄이 가져다준 모든 것을 진정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흠모하게 되며, 진리를 추구하는 올바른 인생길을 가게 된다.』 이 구절의 말씀을 보고 나자 나는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이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이 아닐까? 이 말씀은 너무 현실적이야. 난 명리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았나? 원래 명예와 이익은 사탄이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이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어쩐지 내가 그 안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사탄은 명리를 가지고 우리를 조롱하고 괴롭힌다. 집문서 문제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이루며, 화가 나고 괴로워서 하늘과 사람을 원망했다. 집문서에 며느리의 이름을 올리면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 두려웠고, 또한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게 된다면 며느리가 재산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명리가 나에게 가져온 고통이 아닌가? 하마터면 나는 명리의 노예가 될 뻔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옭아매어 정상적인 인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가족의 정은 더욱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속의 원한이 훨씬 덜해졌다.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이 너무나 위력적이라 나는 마음속에서 환히 이해가 되었다. 이 말씀을 헤아릴수록 나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점차 나는 화가 나지 않았고, 이런 명리의 족쇄에서 빠져나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 마음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고 한없이 편해졌다. 남편은 홀가분해 하는 나를 보며 의아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 2시간 전이랑 완전 딴 사람 같은데?” 나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어요. 전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남편도 듣고 기뻐했고, 이렇게 우리 둘은 자발적으로 집문서를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며느리는 집문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감격해서 말했다. “어머니, 큰 도량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나에게는 이런 도량이 없어. 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한 거란다.” 지금까지도 며느리는 집문서 문제를 처리하지 않았고, 아들과도 더 이상 싸우지 않았으며, 우리 가족은 아주 화목하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해 주신 덕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의 갈등을 해결했다. 이제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하나님 말씀 안에 많은 비밀을 발견했다. 그런 많은 말씀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고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가정들을 보라. 그들은 가정의 시시비비 속에서 살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모두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내 동창의 상황이 그렇다. 어느 날 친구가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해 집안의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들이 서로 집을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했다. 핸드폰를 내려놓고, 나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명리의 얽매임에서 벗어났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 불신자들처럼 여전히 명리를 다투며 살았을 것이다. 한 가족이 명리 때문에 원수가 되고, 고통 속에 발버둥치며 평안을 얻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온 가족이 모두 온정이 넘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에 감사드렸다.

남편의 외도로 잃어버린 행복,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다

남편의 외도로 바라던 행복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고통과 절망뿐이였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기로에 서서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는데,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별의 고통을 버리고 행복의 새삶을 되찾았을까요?

9년간 이어 온 고부 갈등 — 다시 되돌릴 방법을 찾다

고부간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그 답을 알려 드립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어도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다

저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단단(丹丹)입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부모님은 고향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걸(罗杰)이라는 남자를 저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과는 다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만난 적도 없어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의술이 뛰어나고 인품도 좋은 사람이라고 저에게 말했는데, 어머니의 그 말에 저는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저에게 청혼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편지에는“저는 꼭 당신을 잘 보살피고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당신이 날 떠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의 편지 속에서 묻어나는 진실함과 저에 대한 맹세에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제가 바랐던 행복한 삶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큰 결심을 내리고 난 뒤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정말 그가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와 함께 병원을 운영하면서 집안일도 함께 분담했습니다. 살림에 서툰 저는 밥도 할 줄 몰랐고 어떤 가사 일은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병원은 둘이 함께 운영했는데, 남편은 진료와 처방을 책임졌고, 저는 약을 조제해주고 주사를 놓는 일을 책임지면서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 보았고, 복이 많아 이런 훌륭한 남편을 만났다며 다들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저도 속으로 매우 기뻐했고 제가 꿈꿔왔던 행복한 삶이 드디어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며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툭하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밖에서 술 마시고, 도박하고, 유흥가도 이곳저곳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일은 뒷전이었고 환자를 진찰하는 일도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병원에서 진료를 맡아 달라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하면서 하루도 집에 있는 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며칠씩 외박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랴, 병원 일을 하랴,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병원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야, 아이에게 아구창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당황한 나머지 남편에게 급히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몇 마디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칭얼거리며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너무나 걱정되어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어이없게도 남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약을 발라 주었는데,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힘겨웠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관심조차 없고 무책임하며 자기 혼자만 기분 좋게 노는데만 신경 쓰면서 너무 무정하다고 저는 속으로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저는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 만취한 남편이 돌아왔는데, 잠갔던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저에게 삿대질하면서 욕을 마구 퍼붓었습니다. “너 같은 여자를 만나서 너무 재수 없어! 전화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찾았잖아, 이게 다 재수 없는 당신 탓이야...” 저는 너무 기가 막혀서 “애가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걱정도 안 돼? 도박으로 돈을 잃어놓고 내 탓을 해? 이런 억지가 어딨어?”라고 큰 소리를 치며 대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주먹으로“퍽”하고 제 머리를 쳤는데,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제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당장 꺼져...”라며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이렇게 대하는 남편을 보니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고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이혼하여 아이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정말로 이혼하게 되면, 온전치 못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게 될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집을 나가려던 두 발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그날 밤, 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와 남편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는데, 남편은 상처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었고 거기에다 바람까지 피웠습니다. 이처럼 고달픈 결혼생활이 지속되면서 나중에 저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해 결국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남동생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식사 시간에 남편은 제가 만든 볶음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다며 밥 그릇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남동생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동생 앞에서 버럭 화를 내며 저와 동생을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저는 칼로 마음을 도려내는 듯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제 삶의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가정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다 견뎌왔는데, 그 결과가 이럴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욕감과 끓어 오르는 분노로 인해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을 머금은 채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밤이 깊어 주위가 조용할 때마다, 남편이 저에게 했던 맹세와 때리고 욕하던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더욱이 남편이 저를 내쫓던 모습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는 마치 유령처럼 제 주위를 맴돌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먹지도, 자지도 못해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체중이 5kg나 빠졌습니다. 저와 아이에게 무관심한 남편을 보고 저는 낙담하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저는 살아 갈 용기마저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면제 반병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수면제의 유효기간이 지난 탓에 약효가 떨어져 10시간이 지난 후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남편은 저에게 전혀 미안해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가 자주 아프다는 이유를 들어 빈 손으로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몹시 절망하여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보며“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며칠 뒤에 친정 집에서 몸조리하고 있는데, 둘째 숙모가 찾아 왔습니다. 숙모는 온종일 우울해 있는 저를 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주었고,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나의 말을 보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나는 절대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고 네가 믿는 것대로 네게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축복이 너에게 임한 것이다. 나의 말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정확히 드러낸다. 사람마다 치명상이 있는데, 내가 바로 너희의 치명상을 치유해 줄 명의(名醫)이다. 내 앞에 오기만 하여라. 내가 왜 이후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다고 했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씀을 읽고 나서 둘째 숙모는 저에게 “단단아,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친히 음성을 발해 말씀한 것이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곤혹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한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모든 근심 걱정 그리고 괴로움은 자연적으로 해결 될 수 있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따스한 기운이 제 마음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둘째 숙모는 계속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너의 처지를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구나. 그 당시 너의 둘째 삼촌도 온종일 도박만 하면서 가정을 소홀히 했단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고, 오히려 나와 다투기만 했었지. 화목한 가정을 위해 난 속으로 꾹 참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서러움을 하소연할 곳조차도 없었단다. 날이 갈수록 근심이 쌓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내가 받은 그 모든 고통은 다 사탄의 괴롭힘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단다. 사탄은 각종 사악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패괴시키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추구하게 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좇아 마음껏 방탕하게 하는 거란다. 너의 둘째 삼촌도 사회에서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도박에 손대면서 집을 돌보지 않게 된 거란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과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었단다. 그로 인해 사탄의 갖가지 궤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원한과 고통속에서 살지 않게 되었단다.” 허심탄해 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는 둘째 숙모, 이전에는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던 숙모가 지금은 이렇게 소탈해지고 정형도 몰라보게 달라 진 것을 본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고통받으며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니 삶에 대한 희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점유되었고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골치 아팠던 일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늘 저를 괴롭히던 불면증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된 형제자매들과 많은 교제를 나누었는데, 서로가 초면인데도 가족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어려움이 닥쳐 걱정하고 있을 때마다, 형제자매들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저에게 교통해 주었고 그들의 체험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저는 크게 감동받았는데, 이런 생활이야말로 제가 늘 바라왔던 삶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하나님 앞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마치 오랫동안 부모와 헤어졌던 아이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 것 마냥 너무나 기뻤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이혼 판결문을 사람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이혼 판결문을 받아 든 그 순간, 저는 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당장 남편을 찾아가 ‘내가 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야?’라고 한바탕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불만과 원망이 마치 보이지 않는 올무처럼 저를 단단히 조였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또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 끊임없이 부르짖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나서 받아들인 것은 다 사탄이 주입한 잘못된 사상과 관점 그리고 잘못된 생존 법칙이였기에, 사람도 따라서 점점 패괴되고 타락해 원래 갖고 있던 양심과 이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인생은 짧으니 즐겨야 한다’라는 잘못된 관점을 받아 들여 먹고, 마시고, 도박하면서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본연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아이에게도 무관심하며 부부 사이의 감정마저도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점점 냉담해졌고 문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목적으로 완벽한 결혼생활을 꿈꾸어 왔기에 ‘사랑 지상주의’, ‘사랑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라는 격언만을 믿었고, 심지어 이러한 애정 선언을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힘써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짓밟힐지언정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올무처럼 저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끝없이 상처를 받았고, 결국 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다 사탄의 그릇된 생존 관점으로 초래된 것인데, 사탄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괴롭히는 이런 방식과 수단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악한 조류의 희생물이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어 더는 그것들에게 농락당하지 않게 되었고, 마음속으로부터 남편에 대한 원한을 차츰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전 남편이 재혼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남편의 아내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남편과 자주 다투기까지 하면서 이혼하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마흔도 채 안된 전 남편은 귀밑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날마다 술로 마음을 달랜다고 했습니다. 전 남편은 사탄의 독소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죄의 쾌락을 누렸지만, 끝없는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비록 결혼생활은 실패했지만 다행히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되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고,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전도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소탈해진 저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며, “몇 년 못 본 사이에 얼굴 색이 정말 좋아졌네. 전보다 훨씬 젊어졌어. 다른 사람 같아.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었는데, 저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해 주었고 저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었더니, 그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켜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자유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찾게 되었습 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느꼈다

소란 2012년,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며, 얼만큼의 부를 쌓는가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론적으로만 알뿐 마음 속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매일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렸고, 하나님 말씀도 많이 읽지 않았으며 심지어 예배에 빠진 적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고,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주셨다. 2015년 9월, 추석이 다가오자 나는 이웃과 함께 밤을 따러 산에 올라갔다. 떨어진 밤을 줍고 난 후, 높은 나무에 밤이 많은 걸 보고 나는 4~5m 되는 나무에 올라가 장대로 밤을 쳐냈다. 그런데 나무에 올라 몇 번 치지도 않았는데 중심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뾰족한 것에 찔린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일어나려 했지만 두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도움을 청했지만 이웃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내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온몸에 힘도 빠졌다. 만약 이웃이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나 혼자 이 산에서 아무도 모른 채 죽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제가 나무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저를 당신께 맡겨 당신의 주재에 따르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 순간 마음속이 환해진 느낌이었다. 그렇다! 내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오늘 내 목숨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인데 내가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두려움은 사탄의 교란과 시험이 아닌가? 하나님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졌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20분가량이 흘렀을까. 이웃과 또 다른 사람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을 본 나는 하나님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꼼짝도 못 한 채 쓰려져 있는 내 모습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몹시 놀라며 내게 말했다. “소란, 자네 머리가 저쪽으로 조금만 갔어도 나무뿌리에 부딪혔을 거고, 이쪽으로 조금만 왔어도 날카로운 대나무에 찔릴 뻔했어. 정말 위험했는데 운이 좋았네! 하늘이 도왔어!”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병원에 도착해 X-레이를 찍었고, 그 사진을 보며 의사가 내게 말했다. “늑골 4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렀어요. 흉골도 부러졌고, 왼쪽 어깨뼈도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어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엄습했다. ‘어쩜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지? 혹시라도 불구자가 되면 어쩌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을 주셨다. 고통 앞에서 나는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원망과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무에서 떨어져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웃에게 나를 돕도록 하시어 내가 제때 병원에 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의사는 부상이 심각하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을 믿는다. 내가 의지할 유일한 곳이 바로 하나님이다. 내 모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 한쪽이 든든해졌고,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때 나는 형편상 큰돈을 들여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던 공장에서 나를 위해 660만원 정도이나 모금해준 것이 아니던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임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의 동료들이 나를 위해 모금 하도록 하여 내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내 마음은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심각한 고비를 막 넘겼을 때 더 큰 고비가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낙상사고로 폐에 피가 차서 의사 선생님이 내 폐에 찬 피를 뽑아주셨다. 한 번에 750ml나 뽑았다. 게다가 폐에 있는 모든 피를 다 뽑을 때까지 계속 뽑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친척의 도움으로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친척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긴급 상황이야. 의사가 피를 잘못 뽑았어. 간에 있는 피를 모두 뽑고 말았어. 큰 병원에 연락해놨는데 내일 데리러 오겠대.” 친척의 말에 나는 또다시 공포감에 휩싸였다. 간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인데, 그렇게 많은 피를 뽑았으니 만약 큰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 아닌가?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두려움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저는 몹시 나약합니다. 두렵습니다. 부디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제 목숨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죽든 아니면 살든 하나님의 뜻대로 하세요. 저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다음 날 나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는 지금 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치료가 잘 된다 해도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피를 보충하고, 링거를 꽂고, 나를 단단하게 묶었다. 온몸이 단단하게 묶여 몸에 묶인 자국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날씨도 더운 데다가 허리에 바늘을 꽂고 있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침대가 다 젖어 마치 물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런 데다 온몸이 가려워서 긁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느니만 못한 그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특히 옆에 있던 환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걸 볼 때면 내 모습을 떠올리며 혹시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걱정했다. 그때 나는 끝없는 고통에 빠졌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을 아시고 말씀으로 위로해주셨다. 라는 노래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보잘것없는 믿음도 보게 해주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심지어 소극적으로 원망했으며, 하나님의 주재를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간 직접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이 계속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았는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의사는 내가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하나님의 손안에 내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식물인간이 될지 말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이다.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15일에 걸친 보혈 치료 끝에 나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17일간 입원했고, 다시 원래 있었던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두 자매님이 찾아왔다. 정말 감동이었다. 한 자매님이 내 침대로 와 몸을 숙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자매님, 이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 해요…” 자매님의 관심 어린 따뜻한 위로에 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날 떠나지도, 날 버리지도 않으시고 내 곁에서 계속 나와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세가 심각하여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가족들마저 나를 귀찮아하며 돌봐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매님들은 나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내 일상생활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었다. 이로써 나는 하나님의 집만이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이렇게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날 내가 기적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적인 걸음은 아니었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퇴원하면 꼭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다시 20일간 입원한 뒤 나는 퇴원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직접 체험한 나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 생활을 했다. 얼마 후 병원에서 내 상황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내 상태를 얘기하자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얘기했다. “회복이 정말 빠르네요! 제가 다 기뻐요!” 난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은 2년여를 되돌아보면 나는 종일 바쁘게 일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자 하나님께선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셨다. 내가 4~ 5m 높이의 밤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어 이웃에게 나를 구하러 가도록 하셨고 내가 의료비를 부담해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회사의 사람들을 움직여 나를 도와주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 게 아니던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무소부재하며, 그의 지혜와 권능도 무소부재하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의 권세가 유일무이하며 하나님의 권세와 주재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된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빨리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형편도 안 좋은데 하나님께서 회사 사람들에게 내 병원비를 도와주도록 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걱정을 덜어주시고, 어려움에서 극복하게 해주셨으며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위기가 닥치면 돈, 명예, 지위 따위는 우리를 구해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시고,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다. 앞으로 나는 돈 버는 일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돈을 위해 지친 날들과 이별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다

그는 가난한 시골집으로 시집 가서 항상 돈 걱정을 해야 했고 주변의 비웃음도 당해야만 했습니다. 악착같이 돈만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내팽개쳤고 다툼 끝에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쳐가던 중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삶의 방향도 찾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