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2018년 08월 23일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모녀관계,자녀교육,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전국을 경악케 한 톈진 계현의 화재

河北省 陳塵 라이더(萊德) 상가 빌딩은 계현 읍내에서 제일 큰 상가입니다. 2012년 6월 30일, 이날은 토요일이라 상가에서 마침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고객들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상가 빌딩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났는데, 사장은 고객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상품을 도둑질해갈까봐 1층에 있는 셔터를 내리고 고객들을 2층과 3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길이 점점 거세져서 마지막에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가의 전기 통로가 다 중단되어 1층부터 4층까지의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층의 셔터 또한 잠겨 열 수가 없어 상가 전체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으며 창문마다 불길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짙은 연기는 읍내를 덮어버렸으며 몇백 m 밖에서도 연기에 숨막힐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3층 위에 갇힌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소방서가 상가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구조 요청을 한 지 약 25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구조할 시간을 지체한 뒤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사다리를 3층까지 올려 놓고 금방 7, 8명까지 구조했을 때 그만 사다리가 불에 달아 매우 뜨거워서 갇힌 자들은 사다리를 빌어 구조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다리로 내려오려던 사람은 떨어져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며 구조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큰불은 오후 3시 30분부터 저녁 9시 넘어까지 줄곧 타올랐는데 약 3백 명 이상이 안에서 타죽었습니다(구체적인 숫자는 아직도 조사 중, 정부에서 발표한 것은 다만 10명). 어떤 사람은 오후 3시 넘어서까지도 가족과 통화를 했었지만, 5시가 되어 가족들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집은 일곱 식구가 모두 라이더 상가에 쇼핑하러 왔다가 그만 온 가족이 화재에 죽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많은 참상들이 있습니다. 화재가 일어나던 그 순간부터 어떤 사람은 이 비극을 신속히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리하여 즉시 ‘라이더 상가 화재’는 인터넷을 타고 온 계현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계현 민중들은 놀랍고 두려워서 하루 보내기도 힘들어하며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또 자기의 친인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비록 화재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상처를 가져다주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는 화재 발생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高)자매와 그의 모친은 2012년 6월달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새신자입니다. 이번 화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더욱 하나님의 새 사역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자매님은 올해 73세인데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걸어야 하였는데 평소에는 잘 넘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6월 29일 그날따라 이 자매님이 갑자기 평지에서 넘어졌습니다. 비록 뼈는 골절되지 않고 그저 심하게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고자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토요일(화재가 발생한 바로 그날), 또 다른 어린 자매가 고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라이더 상가에서 판매하는 바지 하나를 봐두었기에 고자매더러 함께 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고자매는 “우리 엄마가 지금 거동을 못하셔서 돌봐드려야 하니 혼자 가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친구가 고자매에게 뭔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지금까지 거절한 적이 없었으나 유독 이날만은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부득이 친한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라이더 상가에서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고자매는 깨달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부지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입었고, 하나님이 모친의 병을 통하여 자기의 발걸음을 저지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당시 친구를 따라 상가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큰불에 타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특유의 방식으로 사람을 보호하여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너무나 기묘하십니다! 더욱 생각지도 못한 것은 화재가 발생한 그날 저녁에 고자매의 모친이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교통을 통하여 연로하신 자매님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깨닫고서 “제가 육체적인 고통은 좀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병을 통해 우리 딸을 구원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자매님이 또 얘기하기를, 그날 고자매와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자고 했던 친구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고자매만큼은 추구하지 않았다고 함)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고자매가 못 간다고 하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되어 그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더니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따라 그 자매는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고 남편에게 “좀 더 있다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3시가 되어 그의 남편이 또 재촉하자 이번에도 그 자매는 좀 더 있다 가자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시 재촉하자 그제야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라이더 상가로 떠났습니다. 반쯤 가고 나니 라이더 상가 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제야 상가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매는 저도 모르게 감격하여 “하나님, 저를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또 자기가 좀 전에 재삼 시간을 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부터 온 것이지 결코 자기의 본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널리 미치며 그분의 지혜도 사람이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시며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재난이 닥칠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화재가 난 그날, 많은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자매는 마침 라이더 상가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다른 일을 보려고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상가에 불이 났던 것입니다. 어떤 자매는 라이더 상가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갔는데, 그리하여 한차례의 화를 면했던 것입니다…… 보다시피, 재난 속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며 견고한 망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기탁(寄託)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즉시 정체될 것이며,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은 나에 의해 일어나는데,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들이 만일 내 앞에서 선하게 보일 수 없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차례의 화재로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닫게 됩니다. 설령 사람이 허리춤에 많은 돈을 꿰차고 있고 지위가 대단하고 사치한 현대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의 과대 평가와 흠모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재난 앞에서는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불 속에서 불사름을 견디기 어려워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그 사람들, 창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절망 속에서 생명을 잃은 그 사람들, 그들 중 어떤 이는 돈과 지위도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용모와 화려한 장식이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가족의 동반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길이 흩날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는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도 큰불의 삼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의 말 이외에서 생활하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늦가을의 낙엽마냥 도처에 떨어져 발 붙일 곳이 없고 더욱이 나의 위로의 말도 없다. 비록 그들에게 나의 형벌과 연단이 따르지 않지만, 이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밖의 도처에서 방황하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그 거지들이 아닌가? 세상이 정말 너의 안식처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화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일깨움이며 동시에 또 우리에 대한 사랑의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하나님의 고충을 이해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들여 하나님이 인솔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감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재난이 빈발하는 이 위기에 더 많은 영혼들을 빨리 구출하여 하나님의 그 슬프고 초조한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크리스천이 자녀와 화목하게 잘 지내는 방법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데, 심지어 어떤 갈등은 제때에 해결되지 못해, 부모 자식 간에 깊은 갈등의 골이 생겨 서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가 깊은 갈등의 골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부모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 아들은 올해 26세입니다. 비록 사내 대장부라고는 하지만, 저는 아들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귀가해서 저에게 “제가 친구들과 같이 창업을 할려고 해요. 근데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집 문서를 담보로 대출 좀 받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대출 받아서 창업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장사가 그리 만만한 줄 알아.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되. 더구나 창업은 큰 모험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 사장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줄 알아? 다니던 직장에서 착실하게 일하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자유로운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조급해 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내가 뭘 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는 한번도 지지해 주지 않았어. 또 늘 엄마 뜻에만 따르라고 하잖아. 다시는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는 화가 난 채 나가버렸습니다.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아들아, 난 네 엄마야,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어. 살면서 경험한 게 많아.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너도 언젠가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에도 아들은 저에게 창업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아들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자, 홧김에 아예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밖에서 지내며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창업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아직도 창업에 미련을 못 버린 거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귀찮다는 듯이 말하고 나서 또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머리를 휙 돌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들을 꾸짖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 아직 밥도 채 먹지 못했는데, 아들이 또 대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부드러운 어조로 “아들, 엄마 말을 잘 들어 봐, 그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또다시 거절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저를 향해 “엄마는 항상 이것도 쉽지 않고 저것도 쉽지 않다고 말 하잖아. 그럼 어떤 것이 쉬운 일인데?”라고 소리 지르더니 먹다 남은 밥그릇을 내동이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거야. 하지만 아들은 왜 늘 억지를 부리면서 날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지?’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모 노릇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이런 일이 닥쳤는데, 저는 방법이 전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나요? …” 기도를 하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일이나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일의 관점이나 태도에서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적용하여 그 일을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부모는 영원히 부모이고 부모가 보기에 자녀는 영원히 자녀라는 이런 관계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고,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웃어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그것은 사람이 진리를 모르는 표현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일에서는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감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부모의 자세와 지위, 신분을 내려놓으면 된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와 아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없었던 근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늘 부모의 위치에 서서 아들을 나이 어린 애로만 보고, 제가 간섭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관점으로 인해 제가 강압적이고 명령하는 어조로 아들과 대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화를 내고 심지어 저를 피하기까지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저는 자신이 본성이 너무나 교만하고 이지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지낼 때는 부모의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고 평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일을 잘못할 때 정확하게 대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 자녀가 정확하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녀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데,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어른이라는 지위을 내려놓고 자식들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길을 찾았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귀찮아하면서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다투다가 아들은 홧김에 테이블을 발로 차서 엎어버렸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저는 속으로 ‘큰일이야, 말해도 안 듣고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남편 편을 들어 버릇없이 아빠 앞에서 테이블을 발로 찼다고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순간 아들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들 곁에 있던 남편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들은 완전히 높은 위치에 서서 하는 책망이나 욕설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봐도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아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얼른 남편을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후에 속으로 계속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다시 거실로 들어와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아들 곁에 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지금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출을 내줄 수 없는 부모의 애로사항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계속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도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실행했을 때, 아들이 얼굴빛도 밝아지고 화도 누그러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여러 측면에서 판단하고 나서 창업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틑날부터 직장에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고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들은 직장을 오후에 가겠다며 출근을 또 미뤘습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속으로 ‘어제 서로 이야기가 좋게 잘 됐잖아? 왜 또 저러지, 정말로 말을 안 들을 작정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애가 타서 아들을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괜히 아들의 심기만 건드릴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일을 비위가 상하게 비틀어 말할 필요가 있느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제로 주입시킬 필요가 없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들은 진리가 맞고, 사실도 그렇다. 그렇다고 네가 말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럼 상대방이 받아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변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필요하다. 너는 상대방에게 변화될 과정을 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 마음은 밝아졌고 사람의 변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제 서로 이야기가 잘됐지만 아들은 아직 출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존중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배워야 했는데, 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저의 생각에 따라 그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니 저는 더 이상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들은 일찌감치 저에게 직장에 간다고 말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금 실행하여 자신을 내려놓고 아들과 대화하고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며, 아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을 때의 기쁨을 맛보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남편이 아들을 바래다주고 나서 저에게 “보아하니, 우리 고집쟁이는 당신 말만 듣는 것 같구려. 아들이 당신하고만 대화하잖아.”라고 탄복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아들이 내 말을 듣는 것 같나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이런 결과가 있게 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려 주셨기 때문이예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는 한평생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다면 어떤 고생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자 깨지는 가정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조물주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까?

이전에 공익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합니다. 광고의 내용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제 1막 어떤 젊은 아버지가 작은 사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이제 막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한 단계여서 이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무엇이든 마냥 신기해 하기만 했습니다. 두 부자는 공원에 와서 벤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작은 꼬마는 그 신기한 주변 환경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눈 속에 넣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꼬마가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보고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이게 뭐에요?” 젊은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귀여운 아들을 바라보며 매번 상냥하고 인내성 있게 아들의 물음에 답해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 쌍의 작은 새를 보고 심지어 7~8번 물었는데도 젊은 아버지의 눈빛에는 짜증스러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작은 생명을 너무나 사랑했고 이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마냥 좋기만 했고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제 2막 여전히 그 부자 둘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아들이 아버지를 데리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이미 연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나란히 벤치에 앉았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위치가 바뀌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을 뿐입니다. 노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이때 한 쌍의 새가 날아와 풀밭에 앉았습니다. 노인은 너무 놀라고 기뻐서 장난조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이게 뭐지?” 아들은 인내성 있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노인이 또 물었습니다. “아들아, 이건 뭐야?” 젊은 아들은 여전히 인내성 있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세 번째 물어보았을 때 아들은 짜증을 냈고 잔소리로 받아들이며 싫어했습니다. 노인은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 이렇게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단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서 잠시 멍해 있다가 눈물을 글썽거렸는데 마치 무엇을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또 마치…… 저는 이 공익 광고가 다시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아들이 잘 자라도록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고 가장 좋은 것을 다 아들에게 주었지만 아버지가 아들의 이해와 보살핌이 필요할 때, 그가 얻은 것은 오히려 아들의 냉랭한 낯빛이었습니다. 둘 사이에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요? 그래 아들이 여태껏 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단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그가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겨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지은 후 그들을 벗으로 삼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보살펴 주고 그들의 의식주행도 보살펴 주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담, 하와의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한 이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높고 크심을 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볼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신비함도 볼 수 없었고 더욱이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도 볼 수 없었으며 다만 하나님의 낮춤, 자비를 보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 책임과 보호를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한 태도와 방식은 마치 사람의 부모가 자기 자녀를 염려하는 것처럼, 또 인류의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배려하는 것처럼 실제적이어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조물주께서는 가장 진실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었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가지고 염려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라나 어른이 될 때까지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실제적이고 하나님은 생생하게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옆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이런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기에 너무나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왜 우리들이 이것을 마음으로 체득하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매번 하나님이 슬퍼할 때 하나님이 마주한 것은 전혀 그를 아랑곳하지 않는 인류이고 마주한 것은 그를 따르고 입으로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전혀 그의 어떠한 느낌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류인데, 그의 마음이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 경영 중에서 비록 하나님이 진실하게 각 사람을 향해 역사하고 말씀하며 조금도 남김없이, 조금도 숨김없이 사람과 대면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그를 따르는 각 사람은 다 그를 향해 봉한 것이고, 주동적으로 그를 가까이하고 주동적으로 그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의 느낌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사람들도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으며 그를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뻐할 때, 즐거워할 때 그의 즐거움을 그와 함께 나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해받을 때 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마음이 아픔을 느낄 때 그가 털어놓는 것을 들어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몇천 년 동안의 하나님의 역사 경영 중에서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곁에서 함께하며 그의 희로애락을 그와 함께 나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하나님은 외로웠다. 하나님은 외로웠다! 하나님의 외로움은 패괴된 인류가 그와 대립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욱이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이해하기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 심지어 그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까지도 그의 마음을 모르고 그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그의 희로애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 죄가 없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의 생명으로 전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말씀을 발표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여 우리들을 구원하시는데, 주님이 받은 것은 오히려 사람의 냉담과 무관심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찾고 구하지 않으며 아무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발걸음과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고심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체득하려 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의 아픔을 체득하려 하지 않습니다……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막연 중의 하나님이고 자신의 머리로 상상해낸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참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거들떠보지 않으면 어떻게 조물주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조물주가 그래 우리가 사랑할 가치가 없는 분이란 말입니까?

생사의 찰나에… …

1999년 6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 들였습니다.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다시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을 찾고 있고, 그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의 말씀대로 따르는 사람을 찾고 있다. … … ” 위 말씀을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복음 전파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구원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본분을 하면서 잊지 못할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의 대한 감사로 가득해집니다. 2004년 음력 8월 13일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자매와 함께 국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 대상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30리 가량 갔을 때, 5미터 정도 안팎의 작은 하천이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전도 대상의 집으로 가려면 그 하천을 건너야만 하는지라, 우리 두 사람은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도 대상의 집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비는 점심까지 계속 내렸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계속 전도 대상에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했습니다. 오후 5시경, 우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하천 앞에 와보니 산에서 쏟아져 내린 물 때문에 5미터 정도였던 강폭은 50~60미터 가량으로 불어났습니다. 그 하천은 섬김의 집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전거를 지팡이 삼아 의지하면서 물에 들어갔습니다. 약 6~7미터쯤 갔을 때, 두 사람 모두 물 때문에 어지럼증이 났습니다. 거기다 물살까지 너무 거세 결국 자전거는 물속에서 떠올랐고 내리 눌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 바구니에 하나님의 말씀 책까지 한권 싣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자전거 핸들을 제대로 잡지 못해 그 책이 물에 젖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줄 책이 없을어질까 봐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핸들을 힘껏 위로 들어올렸는데, 순간 왼발이 모래 구덩이에 빠져버렸습니다. “언니! 빨리 자전거를 버려요! 그러면 수월하잖아요?”라는 소리가 물속에서 들렸습니다. 그때 저는 머리 속이 하얗게 되었고, 물은 계속 얼굴 위로 차올랐습니다. 저는 수영할 줄 몰랐지만 손에 있던 자전거는 차마 버릴 수 없어 꽉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발버둥을 칠 힘도 없었고, 물속에서 숨쉬기도 바빠 그저 흘러 들어오는 흙탕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을 불러야지.‘라는 뚜렷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맞아! 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러 다니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잊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전능하신 하나님! 구해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저는 곧바로 어떤 커다란 손이 저와 손에 잡고 있는 자전거를 물속에서 천천히 꺼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서서히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른발이 먼저 땅에 닿았고, 왼발도 따라서 땅에 닿았습니다. 어린 자매는 물속에서 올라오는 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와 울면서 “언니! 어떻게 올라 오신거에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절 구해 주셨어요! 제가 흙탕물을 계속 마시고 있을때…”라고 하며 모든 과정을 말해주었습니다. 자매는 저의 말을 들은데다가 놀라운 광경까지 보게 되자 감동 받아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하나님께서 언니를 구해 주셨네요! 언니가 물에 빠지는 걸 보고 다시는 언니를 못 보는 줄 알았어요!”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진흙투성이로 된 저를 보며 머리, 얼굴, 몸에 있는 흙덩이를 하나 하나 떼어줬습니다. 비록 물살은 변함없이 세차고, 물소리도 거칠었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기묘한 행사를 몸소 체험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정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매우 자신있게 “아직도 40~50미터 정도는 더 가야 돼요! 우리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해요! 생사를 다 하나님께 맡겨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한 뒤에, 저희는 자신있게 앞으로 나갔습니다. 자전거로 물속을 더듬으면서, 깊은 곳을 만나면 자전거를 옮겨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강 기슭까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섬김의 집에 들어서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집 주인 자매는 온통 흙투성이인 저희를 보고, 자초지종을 물으면서 어쩌다 그렇게 늦었느냐고 했습니다. 그 물음에 어린 자매는 돌아오는 길에서 있었던 체험들을 모두 얘기해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섬김의 집 자매님은 감격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진실로 우리 곁에서 지켜주시네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주시네요!” 라고 말했습니다. 3일 뒤, 섬김의 집 자매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는 길에 들은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날 양치는 여자도 그 물을 건넜대요. 그런데 양 90마리 중에서 20마리만 건너가고 그 여자와 나머지는 양들은 모두 물에 휩쓸려 갔대요. 시신은 3일만에 찾았는데,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배가 불룩해져 있었대요.“ 자매의 말을 듣고 저는 더욱 감사했습니다. 저와 그 여자는 같은 날 같은 강을 건넜지만 그 여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생명을 잃었고, 저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로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하신 보호와 크신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늘 제 곁에서 지켜주신다는 걸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진실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좋은 운명이 있기를 바라고 한 나라가 좋은 국운이 있기를 바란다면, 인류는 다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다 하나님 앞에 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①귀숙은 피할 수 없는 큰 재앙일 것이다.” 라는 말씀을 나중에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 체험한 것을 통해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을 경배해야만 좋은 운명을 가질 수 있고,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저 또한 양치는 여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온 재난은 똑같지만 그 결말은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도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구원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따라가고, 본분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찐씬 (尽心)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통을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통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한 걸음씩 성실한 삶을 채워가는 길

평소 나는 TV 앞에 앉아 콘서트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특히 무대 위 연예인이나 스타가 공연을 끝낸 후 관객이 전달해주는 꽃과 박수갈채, 그리고 극찬하는 눈빛을 받을 때면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 그들을 동경하며 ‘언제쯤이면 나도 악기를 배워 저들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아버지께 말씀드려 허락을 얻었고, 그렇게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습실에선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리와 기타 소리만 들려왔을 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때, 문득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나는 긴장했다. 기타를 잡은 자세와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모두 대학생 수준이었고, 나와는 큰 차이가 났다! 난 조심스레 기타를 안은 채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멜로디에 따라 조심스레 기타 줄을 튕겼고, 내가 내는 소음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했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손이 땀으로 가득 찼다. 주변을 돌아보며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을 쳐다봤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멜로디를 연주해 내는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기가 생겨 ‘나도 잘 할 수 있거든! 내가 좀만 노력하면 너네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기타로 연주를 하는데도 내가 내는 소리는 제멋대로 거나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쉬는 시간에 옆에 앉아 휴식하는 학생을 보며‘얼른 연습해야지. 열심히 해서 뛰어난 경지에 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고개를 숙인 채 기타연습에 매달렸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지 손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난 멈추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 집에 돌아온 후 무거운 몸을 소파에 기댄 채 옆에 놓여있는 기타를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아! 다른 애들은 다 잘하던데. 난 언제쯤이면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러자 아빠가 위로해주셨다. “너는 이제 막 시작했고, 그 친구들은 배운 지 오래되었잖아.” 난 툴툴대며 말했다. “꼭 다른 애들을 뛰어넘을 거야. 남들을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거야.” 아빠가 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배워. 걷는 법도 모르면서 뛸 순 없잖아. 말이 안 되잖니.” 나는 입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휙 돌렸다. ‘흥! 아빤 맨날 내 열정도 몰라주고!’ 그러다 마음이 좀 가라앉으니 아빠가 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연주는 한 번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맞아! 기죽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겠어!’ 그 후 수업시간 때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적고 집에 돌아와 끊임없이 연습했다. 계속 연습하며 이렇게 노력하면 분명 실력도 늘고 선생님도 나를 칭찬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평소처럼 기타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선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과외를 해주고 계셨다. 학생이 치는 기타 소리는 음이 뚝뚝 끊기고 박자도 엉망에 리듬도 없었다. 심지어 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못 들어줄 정도였다! 그 학생의 연주가 끝난 후 선생님은 내게 같이 연주해보자고 하셨다. 다소 긴장 되었지만, 며칠간 연습도 열심히 했으니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연주인 만큼 꼭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주한 곡에는 코드가 바뀌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나는 모든 부분을 문제없이 잘 넘겼다. 연주를 마친 후 선생님은 손뼉을 치시며 “정말 잘했어. 코드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잘 해냈네. 계속 열심히 하렴”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부끄러운 듯 웃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하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이제 선생님도 나라는 똑똑한 학생이 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시겠지? 수많은 학생 속에서 드디어 내가 두각을 나타내는구나! 이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 순간의 기분을 한껏 누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음과 음 사이에 텀이 너무 길어. 부드럽게 연결 되지가 않아. 그 부분을 좀 더 연습해봐.” 선생님의 말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두각을 나타내나 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니. 나는 기타에 소질이 전혀 없는 건가?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할수록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을 보였다. “너무 어려워. 남들은 다 나보다 잘하는데 어느 세월에 그들을 따라잡아!” 아빠는 날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니.’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단다. 피조물이 어떻게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겠니? 우리는 완벽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조금씩 배워가야 한단다.” 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맨날 못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배운 시간이 얼만데!” 아빠는 진지하게 말했다. “배운지 한 달밖에 안 되었으면서 경지에 오르려고 하는 건 욕심이야!” 아빠의 말이 듣기 싫어진 나는 기타를 갖고 방으로 휙 들어갔다. 손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기타를 닦으며 남들은 다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는데 언제쯤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밀려왔고 기타가 내는 듣기 싫은 소리에 악에 받쳐 기타를 한편으로 던져버렸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짜증으로 가득 찼을 때, 문득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이 다양하니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컴퓨터를 켜 ‘기타 배우기’를 검색했다. 검색결과를 본 나는 더 큰 좌절감에 빠졌다. 영상 속 기타 ‘고수’는 모두 나보다 어렸다. 7, 8살, 10대도 있었다. 너무나 큰 격차에 나는 더 의기소침해졌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도 잘 치다니. 다 커서 배운 나는 잘 치긴 글렀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 헛수고일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배우려 할수록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러나 사람 안에 약점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이나 업무를 배우고 나면 ‘난 능력이 생겼어, 난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몸값 좀 나가는 사람이야, 나는 ○○전문가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 얼마나 크든지 사람은 그것을 보여 주기도 전에 자신을 위대하고 용맹하고 완전무결하고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포장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해내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어서 땅에 두고 먹고 입고 싸고 하는 생활 규칙 모두를 정상적이게 하였고, 사람됨의 기본 상식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는지를 배우게 했지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야심을 가지고 늘 자신이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며 남다르고 특이해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너의 이 생각의 근원이 틀렸다.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다”는 것은 무슨 사상인가? 금계독립인가? 군계일학인가? 비할 바 없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정상 인성의 추구 목표에 사용하면 좋은가? 완전무결ㆍ천하일색ㆍ자수성가, 이런 단어는 좋은가? 걸출하고, 훌륭하고, 특별한 인재, 이런 단어는 좋은가? 카리스마, 인격적인 매력, 스타, 명인, 위인, 마음의 우상,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살도록 하신 것은 우리가 착실한 사람이 되고, 착실하게 일을 하라고 한 것인데 나는 스타나 다른 사람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며 ‘남들보다 뛰어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어 했다. 이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며 사탄이 추구하는 관점이다. 처음 기타를 배우려고 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단순히 취미나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무대에서 꽃을 받고 박수갈채에 둘러싸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연습실에서도 남들 앞에서 돋보일 생각만 하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내가 사람들의 중심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기타를 배우기만 하면 다른 사람 보다 뛰어나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타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몰래 연습해서 다른 사람을 뛰어넘고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칭찬해줄 날만 생각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기타를 배우면서 나타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게 되었다. 약간의 좌절감이라도 느끼면 스스로 안 된다고 단정 짓고, 다른 사람의 인정과 선망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삶조차 고통스러워졌다. 난 항상 다른 사람의 선망을 기대하며 평범한 사람이 되길 거부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즐거움도 사라지고 오히려 체면과 지위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고, 더 힘들어졌다. 아빠가 한 말이 맞았다.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탄이나 천사장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천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천사를 관리하는 권세를 갖게 되어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처음 기타를 배우면서 첫 술에 배부르려 했다니. 정말 천사장처럼 교만하긴 짝이 없었다. 이렇게 가다간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고 사탄에게 고통만 받지 않겠는가?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피조물로서 명예와 이익,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착실하게 올바른 사람이 되고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배우건, 마음 다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선망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방법만을 구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개운해졌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당연히 많은 결점과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마땅히 스스로 장단점을 살펴 남들의 선망을 얻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기타를 칠 줄 모르면 조금씩 배워가면 된다. 한 번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나만 힘들어지는 것이다. 진실한 나로 살아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체면은 내려두고 선생님이나 그 분야에 유능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남들이 무시하건 말건 배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이걸 깨닫고 나자 기타를 칠 줄 모르는 것이 그렇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한 술에 배부르려던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속 고통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았다. 기타를 배우는 토요일이 되었다. 연습실에 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후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악보를 따라 연습했다. 그때 아주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나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여학생이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기타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사람에게 기타 연주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막상 그 여학생이 연주를 마치고 나자 말 걸기가 부끄러워졌고, 혹시 나를 무시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런 사람은 계속 뜬 구름 속에 있지 않는가?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만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고 여태껏 실속 있는 사람으로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람됨에 있어서 만약 이런 길을 선택하여 늘 구름 속에 있으려 하고 땅에서 착실하게 걷지 않고 자꾸 날려고 하거나 뜨고 싶어 한다면 위험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내 모습이 바로 길을 잃은 모습이 아니던가? 문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었다. 바로 착실하게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어봤다. “언니, 방금 연주한 곡이 어떤 곡이에요? 처음 들어봤는데. 혹시 어떻게 연주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언니는 인내심을 갖고 내게 말했다. “기타 줄을 훑는 거야.” 언니는 설명과 함께 직접 시범도 보여줬고 그 속에 숨어있는 기술도 알려주었다. 언니의 답변에 나의 쓸데없던 상상력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기술도 익히게 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연습실에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선생님이나 언니에게 물어봤다. 하나님의 인도하에 서서히 발전하고,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자신을 보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는 원칙임을 알게 되었고, 착실히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참으로 기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스스로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기타 연주 소리가 빨라지고 불안정해지거나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를 따를 때면 마음이 평온해져 연주 소리도 안정을 찾아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악기 연주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착실하게 사람됨을 배우며,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피조물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타를 배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얼마 후, 나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기타 팀을 만들었고, 내가 팀장을 맡아 다른 조원에게 가르쳐주게 되었다. 그때 나는 팀장이 되었으나 다른 사람 보다 잘났다는 마음을 갖지 않았고, 내 실력이 부족해 다른 팀원의 비웃음을 살까 전전긍긍해 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에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내가 가진 만큼 다른 남들에게 베풀 줄도 알게 되었다. 스타의 꿈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남들보다 뛰어나길 추구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전에 없던 편안함과 기쁨이 찾아왔고, 하나님의 인도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내 몸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아픈 기억밖에 없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나는 독창, 종양, 치질로 고통받았고 커서는 시도 때도 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겨울엔 감기를, 여름엔 열사병에 시달렸다. 몸도 약해서 조금만 고된 일을 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저혈당으로 어지럼증과 두통은 달고 살았다. 여러 가지 병들이 끊이지 않았다. 몸이 허약하다 보니 부모님과 형제들은 혹여 내가 힘들거나 추울까 봐 노심초사했다. 결혼 후 남편 역시 나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힘든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가족들의 사랑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하지만 병마가 가져온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가족들이 날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기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와 몸을 일으키기도,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목도 뻐근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의사를 불러왔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했고, 내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 결국,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며칠 지나면 저절로 호전될 것입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난 계속 침대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난 계속해서 생각하고 스스로 물었다.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고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통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 속에 신음하고 괴로움이 날 감쌌을 때 자매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다. “육체의 고통과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 사람을 괴롭히면서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되어 질병도, 고통도 점점 심해졌고, 갈수록 인간 세상의 공허함과 비참함, 인간 세상에서의 생존이 불가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고통은 사탄이 더한 것이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려면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이런 고통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고통들을 다 체험하면 맨 마지막에 사람의 이런 고통들을 면해 준다. 사람을 대신해 모든 고통을 받은 후 하나님은 힘 있는 증거를 갖게 되어 마지막에 인류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게 되는데, 바로 사람의 생로병사를 면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의의 있지 않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날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죽어가던 내 영혼에 밝은 빛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땐 인간이 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켜 인간이 사탄의 어두운 권세와 타락한 육신에서 살게 되면서 인간 세상에 고통과 번뇌, 그리고 생로병사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인간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하시고 친히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오셨다. 2천년 전, 자비로우신 구세주 예수께서는 인간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고자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늘날 다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병마와 고통을 없애주시려 기꺼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진리가 인간을 이끌고, 구원해주리라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직접 사탄과 싸우기까지 하셨다. 이 모든 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을 다시 구원해 인간이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히 벗어나 더는 고통과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인간을 고통과 번뇌가 없는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 인간의 병과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게 되었고, 어머니처럼 진실한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을 것이란 희망도 품게 되었다! 그 후 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으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키워갔다. 고통이 찾아올 때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 기도드리고 나의 고통과 나약함을 호소하며 병마를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희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렸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는가?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과 힘을 다시금 불어넣어 주셨다.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내 병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숨이 붙어있는 한 하나님께선 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평온해지며 더 이상 병으로 인해 일찍 죽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고,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욥의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의지하라고 하셨다. 또한, 사탄이 인간의 육신을 통해 괴롭히니 육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나는 병든 몸을 하나님께 맡겼다. 병든 육신에서 살지 않고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라는 말씀으로 살았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다 보니 병은 어느샌가 완치되어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했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난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신 의사셨다! 이제 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창조주의 앞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얻은 생명은 광명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건강하게 하나님의 앞에서 사는 것이다! 날 구원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