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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2018년 08월 23일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모녀관계,자녀교육,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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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이 세대의 사람들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남방의 것이든, 북방의 것이든,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 특산물 등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과일은 있어도,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대약진 운동때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이렇게 좋고 또 건강에 몹시 신경을 쓰는데, 마땅히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건강해 지고, 더 장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왜 지금 비만, 뇌혈전, 각종 암, 백혈병 등등 각종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근에 더 많은 희귀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장수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저의 동료를 놓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는 가정환경이 매우 좋아 임신 후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도 되지 않아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20살을 넘기기 힘들테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질병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하던 데로부터 현실에 직면하고, 예사로 여기던 데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갖은 애를 다 써도 이런 질병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논조로 얼버무려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는 말씀 중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의 진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사회 발전으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지고 정보가 발달하여 동서남북이 서로 관통되면서 북방 사람들도 남방의 과일이나 남방의 특산물 혹은 야채들을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식탐과 물욕을 만족시켰지만, 사람의 몸은 오히려 각기 다른 정도로 해를 입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먹거리에는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방에서 태어났다면 남방의 것을 먹어야 아주 적합하다. 남방의 그런 기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까지도 예비해 놓았다.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식탐이 점점 심해져 사회의 발전 추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법칙을 어기게 되었다. 비록 사람은 지금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여기지만, 이런 사회의 진보는 아주 많은 사람들 몸에 보이지 않는 해를 끼쳤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예비해 주고, 사람에게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을 예비해 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연법칙을 어기고 과학을 발전시켜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풍부하여 지역마다 그곳의 특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홍대추(보통 대추라 함)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호두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땅콩과 각종 견과류가 많이 나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다 사람의 육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또 그 시기에 따라 적당한 양으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하고 식욕을 만족시키기를 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이 자랄 수 있도록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을 쉽게 어기고 파괴하게 된다. 앵두를 예로 들어 말해 보자. 앵두는 다들 알고 있겠지? 앵두는 몇 월에 나느냐? (6월입니다.) 대략 6월쯤에 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몇 월이면 끝나느냐? (8월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2개월 동안 먹을 수 있다. 앵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2개월뿐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시켰는데, 다음 해에 앵두가 새로 나올 때까지 연장시켰다. 즉, 1년 내내 앵두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정상이냐? (비정상입니다.) 그럼 앵두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냐? 바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신선하게 보관해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고, 또한 사람 몸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이미 지난 다음에는 어떤 화학 물질을 써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자라면서 구비한 성분들을 유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화학 물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해는 사람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알았겠지? 지금 시장 경제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냐? 남방과 북방의 교통이 편리해져 1년 사계절 각종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방 사람들도 늘 바나나를 먹을 수 있고 남방의 어떤 음식이나 특산물 혹은 과일도 먹을 수 있어 마치 사람의 생활은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시장 경제가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정상적인 자연 생장 법칙을 어기는 것이고, 가져다준 것은 해로움과 치명적인 재난이지 행복이 아니다. 알았느냐? (네.) 포도를 보아라. 지금은 시장에서 1년 사계절 판매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포도는 따고 나면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아주 짧다. 그 포도를 이듬해 6월까지 보관한다면 그때도 그것을 포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포도에는 포도의 원래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 1년이란 시간이면 신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양 성분도 이미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를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좋다! 3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까? 한 알이라도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만약 흥미를 느낀다면 화학 약품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포도를 가져다가 그것의 성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성분이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연구해 보아도 좋다.......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먹거리를 예비해 준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물질적 음식을 탐하라고 한 것이냐? 사람이 그런 물질적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 과다가 되지 않겠느냐? 영양 과다로 몸에 각종 질병이 유발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면 절대로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알맞게, 서로 다른 시기와 계절에 따라 사람에게 각기 다른 먹거리를 누리도록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몸 안에 적지 않은 열기와 습기, 건조함이 쌓이는데, 가을에 많이 나오는 과일을 먹으면 그 습기와 건조함이 제거된다. 동시에 소와 양도 튼실하게 자라 사람은 육식으로 몸보신할 수 있다. 사람이 각종 육류를 먹고 나면 몸에 에너지와 열량이 생기고, 엄동설한 추위를 막아 낼 저항력이 생겨 매서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시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예비해 주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지는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안배해 놓은 것으로, 적절한 한도가 있지만,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의 생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류가 부단히 고품질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위반하고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지역에 맞추어 인류에게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지대, 여러 체질의 사람들의 수요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음식물 또한 계절과 시간을 나눕니다. 어느 계절에 무엇을 먹어야 인체에 가장 유익할지 조물주께서 이미 세심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만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인식이 없어 무턱대고 식욕을 탐하고 육체의 향수를 탐하여 각종 과학적인 수단으로 음식물의 생장주기를 조절하여 유통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각종 비철 채소와 과일들이 도처에 널려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인 생활은 풍부해졌고 사람들의 식욕도 만족을 얻었고 시장경제 또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람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각종 희귀병으로 인한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런 질병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탄이 인류에게 주는 쓰라린 경험과 재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오직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모든 파괴를 중단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진정으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에게 방법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니냐?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

어느 90년대 생의 변화

90년대 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혹시 하루 종일 사이버 세계에 빠져서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청소년들의 모습인가요? 혹시 학교에서 짝을 이루고 다니는 젊은 커플들인가요? 또 혹시 밤새도록 클럽에 드나들며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춤추는 청소년들인가요? ……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더 이상 90년대 생들을 청춘의 생기가 넘치고 열정이 가득하며 활기차게 향상하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고 나약하고 무능하며 빈둥거리면서 먹고 마시고 노는 사람들의 대표로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먼저 여기 어느 90년대 생의 체험을 들어 보세요! 무슨 심리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셨고 게다가 도박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늘 룸메이트와 함께 술 한 박스를 몰래 숙소로 가져와서는 밤이 되면 도박을 하면서 술을 진탕 마셨는데 그것을 누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또 인터넷 게임과 채팅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수업 중에는 물론이고 길을 가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했고 심지어 꿈속에서조차도 했습니다. 설령 기진맥진할 정도로 해서 학교 책상에 엎드려 잔다 하더라도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친구가 많아지다 보니 저도 이 복잡한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여태껏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물들이 조금씩 저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비록 미래에 대해 많은 지향이 있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만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졸업하자마자 일을 하기 시작한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친구의 요청에 의하여 처음으로 KTV에 갔습니다. 저는 알코올, 약물, 마음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를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것들을 해소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그런 곳에 빠지게 되었고 며칠에 한 번씩 친구들을 불러 진탕 놀다가 항상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건강이 점점 나빠졌지만 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늘 유흥업소에 드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위가 아팠고 담배를 피우며 밤까지 새다 보니 기침을 하면 피가 나왔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지니 그제서야 반성을 해봤습니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까지 됐지? 이대로 나가다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근데 이렇게 살지 않으면 또 어떻게 살지? 지난 몇 년 동안 대체 뭘 한 걸까?’ 순간 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고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제가 걸어야 할 길이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랐고 또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갈수록 저를 방황하게 하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번화하여 사람들이 보고 마음이 모두 거기에 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사기꾼들과 술법사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만약 네가 진보하려고 하지 않고 꿈이 없다면 이 죄악의 파도에 휩쓸려 갈 것이다.』 『전능자는 심히 고통 받는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동시에 지각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오래 기다려서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을 찾고 너의 영을 찾아 너에게 물과 양식을 주어 너를 소생케 하고 더는 목마르지 않게 하고 더는 굶주리지 않게 한다. 네가 지쳤다고 느낄 때, 네가 이 세상의 처량함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흐느끼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수시로 너의 돌아옴을 포옹할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면서 네가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너의 기억이 문득 회복되어 “네가 하나님 그리로부터 나왔는데 어느 때에 방향을 잃었는지, 어느 때에 길에서 혼미하였는지, 또 어느 때에 ‘아비’가 있게 되었는지를 알고 더욱이 전능자가 줄곧 그곳에서 지키면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오래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애타게 바라면서 답이 없는 하나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지킴은 값으로 칠 수 없는데, 사람의 마음을 위하고 있고 사람의 영을 위하고 있다. 아마 이 지킴은 기한이 없을 것이고 또 아마 이 지킴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지금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과 기대는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동시에 이 “향락 세계”의 사악한 사회 풍조는 모두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수단임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눈앞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사악한 사회 풍조가 우리의 심신을 얼마나 심하게 타락케 하는지를 모른 채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마구 짓밟도록 방임하면서 인류의 영혼을 삼키려는 사탄의 음모와 계략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지내 온 과정을 돌이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저는 이런 사악한 사회 풍조에 깊이 빠져 거기에 장단 맞춰서 춤을 추고 줄곧 사탄의 우롱과 참해를 받고 죄 속에서 살면서도 오히려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그런 것들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때에 구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역사가 되어 저에게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인생에 대해 정확한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는 이상과 기개 및 왕성하게 향상하는 기질이 없어서는 안 되며, 젊은이는 전망에 대해 낙담해서는 안 되고 생활에 대해 희망을 잃어서도 안 되고 미래에 대해 신심을 잃어서도 안 되며, 젊은이는 자신이 오늘 선택한 진리의 도에 대해 걸어갈 의지력이 있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룩해야 하며,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되고 허위와 불의를 품고 있어서도 안 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입장을 굳게 세워야 하고 자기 주견이 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되고 용감히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봉헌하고 전력을 다해 분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마땅히 흑암 세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있고 자신의 생존 의의를 바꾸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억울하게 받는 나쁜 대우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더욱더 솔직한 마음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 정의와 진리를 찾으려는 심지(心志)가 없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아름답고 선한 사물이어야 하며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정성스러운 가르침은 저에게 무한한 동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더 이상 화려한 세상에 빠지거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저를 광명한 인생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사탄에게 괴롭힘 당해 자아를 잃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가 방황하고 헤매고 있을 때 저를 깨워 주시고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어 주셨고 “물”과 “양식”으로 양육을 해 주셔서 저에게 빛과 희망을 보게 하였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에 긍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이고 부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분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짓밟힐 대로 짓밟히면서 타락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 말씀의 목양 하에서 정확한 인생관을 세우게 되었고 젊은이로서 마땅히 어떤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자 하는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동시에 세상의 시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겨 전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사악한 조류를 좇으면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행동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벼랑 끝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생사의 찰나에… …

1999년 6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 들였습니다.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다시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을 찾고 있고, 그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의 말씀대로 따르는 사람을 찾고 있다. … … ” 위 말씀을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복음 전파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구원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본분을 하면서 잊지 못할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의 대한 감사로 가득해집니다. 2004년 음력 8월 13일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자매와 함께 국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 대상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30리 가량 갔을 때, 5미터 정도 안팎의 작은 하천이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전도 대상의 집으로 가려면 그 하천을 건너야만 하는지라, 우리 두 사람은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도 대상의 집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비는 점심까지 계속 내렸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계속 전도 대상에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했습니다. 오후 5시경, 우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하천 앞에 와보니 산에서 쏟아져 내린 물 때문에 5미터 정도였던 강폭은 50~60미터 가량으로 불어났습니다. 그 하천은 섬김의 집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전거를 지팡이 삼아 의지하면서 물에 들어갔습니다. 약 6~7미터쯤 갔을 때, 두 사람 모두 물 때문에 어지럼증이 났습니다. 거기다 물살까지 너무 거세 결국 자전거는 물속에서 떠올랐고 내리 눌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 바구니에 하나님의 말씀 책까지 한권 싣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자전거 핸들을 제대로 잡지 못해 그 책이 물에 젖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줄 책이 없을어질까 봐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핸들을 힘껏 위로 들어올렸는데, 순간 왼발이 모래 구덩이에 빠져버렸습니다. “언니! 빨리 자전거를 버려요! 그러면 수월하잖아요?”라는 소리가 물속에서 들렸습니다. 그때 저는 머리 속이 하얗게 되었고, 물은 계속 얼굴 위로 차올랐습니다. 저는 수영할 줄 몰랐지만 손에 있던 자전거는 차마 버릴 수 없어 꽉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발버둥을 칠 힘도 없었고, 물속에서 숨쉬기도 바빠 그저 흘러 들어오는 흙탕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을 불러야지.‘라는 뚜렷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맞아! 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러 다니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잊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전능하신 하나님! 구해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저는 곧바로 어떤 커다란 손이 저와 손에 잡고 있는 자전거를 물속에서 천천히 꺼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서서히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른발이 먼저 땅에 닿았고, 왼발도 따라서 땅에 닿았습니다. 어린 자매는 물속에서 올라오는 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와 울면서 “언니! 어떻게 올라 오신거에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절 구해 주셨어요! 제가 흙탕물을 계속 마시고 있을때…”라고 하며 모든 과정을 말해주었습니다. 자매는 저의 말을 들은데다가 놀라운 광경까지 보게 되자 감동 받아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하나님께서 언니를 구해 주셨네요! 언니가 물에 빠지는 걸 보고 다시는 언니를 못 보는 줄 알았어요!”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진흙투성이로 된 저를 보며 머리, 얼굴, 몸에 있는 흙덩이를 하나 하나 떼어줬습니다. 비록 물살은 변함없이 세차고, 물소리도 거칠었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기묘한 행사를 몸소 체험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정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매우 자신있게 “아직도 40~50미터 정도는 더 가야 돼요! 우리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해요! 생사를 다 하나님께 맡겨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한 뒤에, 저희는 자신있게 앞으로 나갔습니다. 자전거로 물속을 더듬으면서, 깊은 곳을 만나면 자전거를 옮겨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강 기슭까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섬김의 집에 들어서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집 주인 자매는 온통 흙투성이인 저희를 보고, 자초지종을 물으면서 어쩌다 그렇게 늦었느냐고 했습니다. 그 물음에 어린 자매는 돌아오는 길에서 있었던 체험들을 모두 얘기해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섬김의 집 자매님은 감격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진실로 우리 곁에서 지켜주시네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주시네요!” 라고 말했습니다. 3일 뒤, 섬김의 집 자매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는 길에 들은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날 양치는 여자도 그 물을 건넜대요. 그런데 양 90마리 중에서 20마리만 건너가고 그 여자와 나머지는 양들은 모두 물에 휩쓸려 갔대요. 시신은 3일만에 찾았는데,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배가 불룩해져 있었대요.“ 자매의 말을 듣고 저는 더욱 감사했습니다. 저와 그 여자는 같은 날 같은 강을 건넜지만 그 여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생명을 잃었고, 저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로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하신 보호와 크신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늘 제 곁에서 지켜주신다는 걸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진실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좋은 운명이 있기를 바라고 한 나라가 좋은 국운이 있기를 바란다면, 인류는 다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다 하나님 앞에 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①귀숙은 피할 수 없는 큰 재앙일 것이다.” 라는 말씀을 나중에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 체험한 것을 통해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을 경배해야만 좋은 운명을 가질 수 있고,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저 또한 양치는 여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온 재난은 똑같지만 그 결말은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도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구원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따라가고, 본분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찐씬 (尽心)

홍수에 휩쓸릴 뻔한 위험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게 되다

저는 다리가 불편한, 나이 많은 자매입니다. 좋은 날씨에도 걸어 다니기가 좀 불편합니다. 하지만 홍수가 곧 저를 삼키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적 같이 그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 고비를 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의 행복을 얻다

우리 아버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아주 강했다. 어머니가 나를 낳자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싫어했다. 내가 철들고 나서 부모님이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여자면 어때서, 똑같이 주인 노릇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의지를 세우며 내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 남편에게 내 말을 듣게끔 하고, 절대 아버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나약하게 살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이런 소망이 생긴 후, 나는 집에서 최대한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아무도 날 깔보지 못하게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집안의 중요한 노동력이 되었다. 집안일이든 밭일이든 난 하는 일마다 척척 잘 해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 아버지의 칭찬을 들었고,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이 아들만 못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결혼 후,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남편은 밖에서 장사를 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결혼하고 2년 동안, 남편은 편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나와 상의했다. 나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남편이 자상하게 나와 상의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릴 적 소원이 이루어져서 이 집안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주면서 내 신분증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우물거리며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며칠 동안 그가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알고 어디를 다녀오냐고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법인데, 감히 날 속이려고! 안 되겠다.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지. 당신 나 몰래 무슨 일을 저질렀다간 두고 보라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동서의 집에 2만 위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동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동서 앞에서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척 호의를 베풀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나는 얼른 돈 문제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빌려주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요, 당신이랑 같이 동생한테 가서 물어보자고요.”라고 하자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여자인 주제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남자들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당신은 집안일이나 잘하면 돼.”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너무 괴롭고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내가 힘들게 집안을 위해 일하는데 남편이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안일이나 잘하면 된다니 그럼 난 고용된 가정부와 다를 게 뭔가?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남편이 똑같이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눈에 나는 가정주부로, 집안일만 하면 되고 바깥일은 신경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자기 집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 하는데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한바탕 울고 나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자주 남편의 사업장에 가서 남편을 감시했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면 얼른 쫓아가 누가 전화했냐고 물었다. 저녁에 일갔다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디 놀러 갔었어요? 거기에 누가 있었죠?” 나는 늘 트집을 잡아 그의 결점을 들춰냈다. 남편은 내가 항상 이런 것들을 물어서 귀찮아했다. 평소에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내 눈에 거슬리고 안심이 안 되어서, 항상 내 기준에 맞춰서 일하고 내 말을 들으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우리 둘은 늘 티격태격하며 시끄럽게 싸웠고, 아이는 항상 놀라서 문 뒤에 숨었다. 차츰 남편은 시간만 나면 놀러 나가고 잡담을 하러 사람들을 만나며 일부러 나를 피했다. 집에 들어오는 것은 밥 먹고, 잠자기 위한 것이고, 집을 마치 식당이나 호텔로 여겼다. 나는 점점 남편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성격은 점점 나빠졌고, 온종일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무척 피곤했다. 의사는 내가 오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며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길 바라기에 나도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애써도 다 소용이 없었다. 남편이 내 뜻과 맞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크게 화를 냈고, 남편과도 점점 서로 말이 없어져서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꿔야 할지 몰랐다. 내가 울적하고 무력하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임했다. 하루는 친척이 나를 찾아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간증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괴로움을 이야기했고, 친척은 나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이번에 말씀을 선포하러 오신 것은 인간의 죄를 철저히 없애고, 우리를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구원하시고, 더 이상 사탄의 타락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려는 거예요.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사람에 대해 용서하고, 포용하며, 이해하게 하려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더 이상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듣고 나서 하나님을 믿으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본 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였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임을 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마음을 활짝 열고 본인이 겪은 일에서 어떤 타락함이 나타났고, 그 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자신의 타락함을 해결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해 나눴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의 마음은 밝아졌고, 그들도 부러웠다. 이런 생활이 난 너무 좋았다! 형제자매들은 나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에게 고백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면 하나님은 분명 들으실 것이라고 교제해 주었다. 나는 나의 어려움을 하나님에게 털어놓으며 내가 더 이상 이렇게 남편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점차 나의 마음에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어느 모임 때, 남편과 자주 부딪치는 어려움을 형제자매에게 말했고, 정 자매가 나에게 말했다. “이런 어려움은 누구나 다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 주인 노릇을 하고 싶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지만, 이건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에요. 우리가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은 다 사탄의 괴롭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본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했어요.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우러러보았어요. 나중에 사탄이 하와를 유혹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했어요.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었어요.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서로 불복 하지 않고, 상대방을 다스리려고 했어요.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킨 후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진상과 근원을 전부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보여주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어요.” 자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해방되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있는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고, 타락한 성품을 벗어나는 데에도 희망이 생겼다. 정 자매는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매는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우리는 남들이 본인의 말을 듣게 하고 싶고, 항상 남을 다스리고, 억누르고 싶어 해요. 이건 사탄의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고,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킨 후 생긴 성품이에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고, 인류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했어요. 율법시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계명을 반포했고, 사람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도록 했어요. 은혜시대 예수님은 또 사람이 인내하고, 포용하도록 가르쳤지만, 우리 인류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몇 안 되었어요. 특히 말세의 오늘날, 우리는 사탄에게 더욱더 심하게 타락되어 다 교만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중심이 되려고 해요. 남이 한 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시콜콜 따지죠. 그래서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기 어렵고, 자신도 고통 속에서 살아요...” 자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는 남편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모두 내가 사탄에게 타락되었고, 너무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주인 노릇을 하고 싶었고, 내가 권력을 쥐고 내 말대로 결정해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마침내 나만의 작은 세계가 생겼다. 나는 남편, 아이를 내가 명령을 내리는 대상으로 여겼고, 가족이 모두 나를 따라야 기뻐했다.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발대발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늘 남편을 다스리려고 했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나의 의견을 구하게 하고 내 동의를 받게 해서 남편이 나를 멀리하고, 나를 피하게 되었고, 나는 고통 속에서 시련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고통을 받은 것이 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권력을 잡아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았다. 자매는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겨 그 어떤 잘못된 점도 없고 심지어는 그것이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 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고 보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때,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나의 상황이었다. 예전에 나는 정조를 지키는 사상 관념이 맞다고 여겼고, 자신을 너무 높고 좋게 보며,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교만한 사탄의 성품이고, 비열하고 추악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이 교만한 성품을 없애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만 사람의 모양으로 살 수 있다. 그 후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께 내가 진리를 행하도록 인도하시고 더 이상 집에서 주인 노릇하며 남편을 단속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나는 점차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배웠고, 더 이상 남편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내가 사탄 성품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내 뜻대로 남편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나는 외출해서 본분을 마치고 막 집에 돌아왔다. 이때, 내 친척도 차를 집 입구까지 몰고 와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건 이 집에서 산 제면기인데, 제가 갖다 드리러 왔어요.” 그는 말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고 나는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산 걸 제가 어떻게 모르죠? 집에는 둘만 있고, 일 년에 겨우 찐빵 몇 번 먹을 뿐인데, 기계를 사면 자리만 차지하지 않겠어요? 나도 몇 번 사용하지 않는데.” 친척이 웃으며 말했다. “샀으니까 쓰세요.” 이때, 나는 또 남편한테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큰일도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하다니, 돌아오면 두고 보자!” 이때,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탄의 성품이 또 작용한 것이다. 안되겠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또 소란을 떨면 안돼.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또 제 마음과 맞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 일로 화를 내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저는 육체를 배반하기 원하고, 낮아지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혹시 이번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 원인은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힘을 써서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지 육체를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네가 이렇게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예전에 나는 이 진리를 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교만한 본성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했다. 남편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나와 상의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니 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 한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당신이 산 제면기를 친척이 갖다 줬어요. 어서 코드를 꽂아봐요.” 남편은 나를 힐끗 보더니 “당신 화 안 났어? 지금 날씨도 덥고 당신이 면을 미는 게 힘들까 봐 샀어.” 나는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당신이 돌아오면 결판을 내려고 했죠. 하지만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이 떠올라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저를 인도하셔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알게 해달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지금 너희에게 간단한 실행법을 하나 알려 주겠다. 먼저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면 네 안의 정형에 부지중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하나님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느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동력이 있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이렇게 사는 것이 의의 있고 마음이 윤택해지며 심령이 안정되고 평안하며 누림이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성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이 일에서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이기심과 이익을 내려놓았어요. 자신을 만족시키지 않고 말씀대로 행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요. 이렇게 사니까 힘이 나고, 자신을 내려놓는 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에요. 이렇게 하니까 마음도 평안하고 뿌듯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지켜주셨어요. 그동안 우리 둘이 안 맞았던 것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항상 당신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고, 늘 당신을 다스리려고 했어요. 지금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길 원해요.” 남편이 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네. 당신한테서 기적을 봤어. 정말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어!”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너무 기쁘고, 비할 바 없이 즐거웠다. 마음속으로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얼마 동안의 협력을 거쳐서 남편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함께 교회 생활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을 불렀다. 이때부터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이 권력을 잡았다. 매일 기쁨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며,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오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이 이루신 결실이다! 예전에 나는 항상 사탄의 교만한 성품에 의해 살면서 남편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고, 남편이 듣지 않으면 말다툼을 해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스스로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구원하고 변화시켰다. 나에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똑똑히 보여주시고, 더 이상 본성에 의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하여 살게 하셨다. 지금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생겼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누리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묘한 방법

어렵게 얻은 아들, 그만큼 큰 기대 여자가 10개월간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수차례 유산을 하였고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이를 낳지 말고 입양을 하라 권고하셨지만 저는 위험하더라도 입양보다는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임신을 시도했습니다. 2000년 5월, 저는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용혈 수치가 위험 수준이라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매일 링거를 맞고 30~40분가량 고압산소를 흡입하였으며 한약도 먹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했던 우리 부부는 치료비 때문에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른 임산부는 이것저것 많이 먹을 수 있었어도 저는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산일이 되었습니다. 민감 체질인 데다 마취까지 잘 안 되어 통증을 참아가며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를 검사한 후 모두 정상이라고 하시자 저는 그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저와 남편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고 병 치료를 위해 빚을 졌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부족함을 느낄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려 애썼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아이는 어느새 유치원생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여워서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제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아들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고, 아이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서 아들을 인재로 키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957"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아들의 나쁜 버릇, 타들어 가는 부모 마음 하지만 아이에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갖고 오는 버릇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자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아들 가방에 장난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장난감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잘못 넣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기에 저는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가져와서는 안 되니 다음 날 장난감을 얼른 갖다 놓으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아이의 가방에서 또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에게 물으니 아들은 바로 “선생님께서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들의 가방에 산사 열매 젤리가 가득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젤리를 어디서 어디서 났니?”하고 엄하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선생님이 잘했다고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상으로 젤리 몇 개를 줄 수는 있어도 어떻게 한 봉투를 주시겠습니까? 점심시간 전에 젤리를 먹기도 하고 가끔 젤리가 많이 남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많이 줄 리는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되돌아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오후에 제 아들에게 상으로 젤리를 많이 주셨어요?” 선생님은 제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아니요, 안 그래도 남은 젤리가 다 어디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저는 다른 선생님이 가져가신 줄 알았는데, 얘가 가져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혼 좀 내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과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저는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제가 몇 번이나 아들이 가져온 물건에 대해 물었을 때 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며댄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5살 된 아이가 거짓말을 배우다니, 게다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가 완전히 믿도록 속이다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요! 저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아들의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아들의 뺨은 금방 빨갛게 부어올랐고,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던 아들은 놀라서 선생님 뒤로 숨었습니다. 선생님이 말려서야 저는 손을 멈추었고, 핸드백을 집어 들고는 돌아서 나왔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저녁에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엄마도 널 때리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다 널 위해 그런 거야.”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는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면 가장 먼저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아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이가 한 번 맞았기 때문에 다시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이번에는 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아들에 대한 잔소리와 감시를 줄였고, 더는 가방을 뒤지지 않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나쁜 버릇이 재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의 책가방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의 책과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이 책과 노트가 다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매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가 깜빡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챙겨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학교에 와달라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아들이 또 다시 친구의 물건을 훔쳤고, 이 사실을 친구가 선생님께 일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선생님 앞에서 아들을 크게 꾸짖었고 또 저에게 “어머니도 선생님이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죠?”라며 힐책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더욱 화가 났고 또 아들이 착실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못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선생님 앞에서 아이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시는 친구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후로 아들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애 아빠의 돈을 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하루하루 커갔고 아무리 노력해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버릇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는 죽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니? 내가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마음도 아프지 않겠지. 그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그만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들이 아직 어리잖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만약 내가 이대로 죽어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하면, 아들이 커서 범죄자의 길을 가지 않을까? 그러면 아들의 인생은 망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을 때리고 혼내도 효과가 없기에 저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받게 되는 처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이웃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가 체포된 사건도 말해주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어떤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아들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오래지 않아 다시 도둑질하곤 했습니다. 저는 낙담했고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가슴 졸이게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기묘한 방법, 아들의 변화 2008년 5월,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 『인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그런 세상은 어둡고 소망이 없으며 공허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중에 인류의 문명은 갈수록 사람의 소원대로 되지 못하였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오히려 죽은 사람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과거 아주 문명화했던 나라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원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설사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모두 온갖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가 우리 안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에 의지할 뿐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면 내면은 공허한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제 상황에 비추어 보니, 저는 줄곧 저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려 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때리거나 혼내는 방법으로 교육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들이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의지하다 보니 어떤 일도 성사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들을 참으로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이끌어 인생의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면 아들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들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받들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들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겠다고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신발 박스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들의 신발 박스 안에 2만원 가량되는 돈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아들이 다시 돈을 훔치기 시작한 걸까? 가족의 돈을 훔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친 것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저는 늘 아들을 때렸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포용력도 없고 참을성도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으니 저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돌아오자 “아들, 오늘 엄마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2만원을 주웠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바로 해명을 했습니다. “그거 건드리지 마세요. 저희 반 친구 XX 거예요.” 저는 다시 “친구 돈이 어떻게 우리 집 신발 박스에 있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 아빠가 생일이라고 5만원을 주셨는데 친구가 그 돈을 다 못 써서 잃어버릴까 봐 저에게 대신 보관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났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지 화를 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안 돼. 내가 먼저 변해야 해.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걸 거야.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 그러면 나도 아들처럼 거짓말하는 게 돼버리는데?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아들을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는 내 방식으로 가르치려 하면 안 돼. 내가 먼저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이에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널 믿어. 그럼 엄마 아빠랑 함께 그 친구 집에 가서 물어봐도 되겠니?” 그러자 아들은 저와 남편을 근처 새 건물로 데려가 어떤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그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저희에게 “친구가 집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는 아들에게 “아들아, 엄마 아빠가 하나님을 믿는 걸 알지? 하나님은 타락된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어. 너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엄마 아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거야. 네가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아빠는 너를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예전에 너를 때린 건 엄마 아빠가 잘못 한거야. 하나님은 너를 때리는 걸 원치 않으시니 엄마 아빠도 변해야 하는 거야. 너도 하나님께 얘기 드릴 수 있어. 진솔한 사람이 되고 엄마 아빠를 속이지 않길 원하면 하나님도 널 용서하실 거야. 하나님은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셔. 우리가 말한거나 행한 것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 하나님도 사람도 속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비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때로는 과장하거나 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해 주셔. 아들과 엄마 둘 다 진솔한 사람이 되어 너도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엄마도 하나님을 속이지 말자구나. 네가 엄마에게 직접 말하기 부끄러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너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렴. 고치기만 하면 착한 아이인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제가 훔친 거예요. 아빠 몰래 5만원을 훔쳤어요. XX가 사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안 사주실까 봐 훔쳤어요. 엄마한테 맞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게요. 정말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져온 변화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를 믿어. 엄마도 네가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어.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거고, 넌 꼭 고칠 수 있을 거야. 너도 보았겠지만 엄마가 널 때리지 않겠다 말하고 그 말을 지켰잖니? 너도 힘내서 해내야 해.”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감격해서 눈이 빨개진 채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어주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들은 더는 돈을 훔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7~8년동안 아들은 단 한 푼도 훔친 적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그런 버릇을 가진 같은 반 친구에게 반감과 혐오를 느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말씀이 가져온 결과로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아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 돈을 더 가져가라고 해도 아들은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완전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제 아들을 변화시켜 주셨고, 아들을 교육하는 저의 방식도 바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아들을 돕고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돌봐주고 계셔서 우리 일가족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서로 도우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우리 가족의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니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불만이 가득했던 결혼 생활 어떻게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니 다 자신보다 잘 살고 있자 그녀는 무능력한 남편에 대한 불만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틀린 사상 관점을 되돌리니, 결혼 생활의 행복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웹소설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오늘날 웹소설은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출근할 때도, 차에 탔을 때도, 심지어 신호등의 녹색불을 기다릴 때도 소설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한 권 그리고 한 권을 읽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상 속에 사는 건 아편을 피우는 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웹소설에 깊이 빠졌던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5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는 한 가게에서 숙제를 마치고 무의식적으로 점원이 테이블위에 놓은 두꺼운 책 2권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몇 장을 넘겨보니 그 책들은 바로 무협 소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시간을 때울 때 소설을 보았습니다. 산 중에 사는 몇몇 무림고수가 의롭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고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이같이 ‘멋진’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방학 내내 소설에 빠져 지냈고 ‘내가 이 고수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자 저는 속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저의 유일한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세상만이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해주었습니다.나는 조금씩 소설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소설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또 소설을 보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전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어쩔 수 없이 며칠은 ‘얌전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이 계속 불안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결국 전 참지 못하고 다시 소설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전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소설을 보았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소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소설을 한 편 더 보는 게 낫지’. 전 배가 고파도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정신이 온통 몽롱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져 버려서 길을 걸을 때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잠시라도 소설을 안 보면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워져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주신 급식비마저 웹소설을 보는 데 썼습니다. 낮에 학교에 있을 때는 배고픈 것을 참고 저녁에 집에 와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위장도 상했습니다. 심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널려있는 이불에 실수로 불이 붙게 했습니다. 동생이 절 불렀지만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불을 끄고 절 혼내실 때야 밖에 불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소설에 빠진 저를 여러 번 타일렀지만 전 부모님의 말씀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은 제 책가방을 검사해 소설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갑작스레 저의 방에 들어와 제가 몰래 소설을 보고 있지는 않나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찢거나 대여 카드를 태웠고, 아니면 책을 그대로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쓰셨지만 제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전 여전히 소설의 세상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제가 소설 속 캐릭터가 된 환상을 가졌습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소설 줄거리만 생각했고 꿈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져서 잠을 깬 후에도 눈을 감고 꿈 속의 줄거리를 되새겼습니다. 전 평생 이 같은 세상 속에 살고만 싶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차에 치여 죽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종일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제 정신은 온통 혼미해졌고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소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활발했던 제 성격도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지어 가족과의 대화도 꺼려졌습니다. 정상이던 시력도 근시가 매우 심해졌고 성적은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한 저는 취직을 한 후에는 소설에 더욱 빠져 지냈습니다. 가끔은 밤새 소설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오면 가끔은 소설이 지겨워져서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회했습니다. 소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기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고통을 받던 저는 소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어머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너무 졸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신나지 않아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게 예배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예배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볼 때는 머릿속에 여전히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2015년,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온 후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제가 소설에 심취한 건 사실 인터넷 게임과 같이 모두 사악한 풍조에 속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고 소설 속 세상에 완전히 심취했습니다. 착하고 말을 잘 듣던 저는 괴팍하고 유별나게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항상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소설이 아닌 것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 육체를 배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인터넷 게임이나 소설 속에 사는 걸 싫어하십니다. 저희가 사탄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저 역시 육체를 배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 절 웹소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전 사악한 풍조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안 보기 시작한 첫째 날, 저는 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 날, 전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소설 줄거리뿐이었고 좌불안석으로 있으면서 휴대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렸던 말씀을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나님도 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이렇게 전 결국 소설을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마치 뱀과 같아 본질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목적을 전부 달성할 때는 네가 곧 목숨을 잃을 때이다.』 그러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소설만 본다면 사탄에게 야금야금 삼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마음속으로 육체를 배반하고 소설을 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우선 하나님에게 다짐 하지 말아야겠어. 오늘 밤에 다짐을 해버리고 소설을 안 보면 앞으로는 다신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오늘 밤까지만 보고 내일 다시 다짐해야지!’ 이렇게 전 다시 휴대폰을 열고 밤새도록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을 보는과정에 저의 마음속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걸 알았고 사탄에게 속히고 참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전 자책을 하며 고통 속에서 밤새 소설을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늘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습니다. 저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제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전 재빨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 비록 육체를 배반할 마음은 있었지만 진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억제하다 보니 결심을 행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울 때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알았습니다. 소설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독약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끊을 수가 없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의 생활을 잃게 만듭니다. 이 모든 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한 계략인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항상 온갖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함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희는 진리도 없고 분별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항상 속임을 당하고 사탄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참해를 당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그 결과를 알게 되자 전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절 구원해주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설로 고통받던 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야 사탄이 횡행하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전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또 본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달갑게 받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또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다짐을 생각하니 소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휴대폰 화면만 계속 만지작댔습니다.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육체를 배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설의 줄거리도 조금씩 희미해졌고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전 소설을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점점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날마다 알차게 생활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야만 시험과 함정으로 가득한 사악한 세계에서 저 자신을 지키고 사탄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하나님의 집에서 본분을 하며 매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희는 마음의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합니다. 기쁠 때는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며 힘든 일 앞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교통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저는 웹소설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