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2018년 10월 08일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크리스천의 인간관계,크리스천이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믿음과 기적 - 침윤성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겨우 30대인 그녀는 침윤성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 그녀는 어떻게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회복의 기적을 보았을까요?

아들의 웃음을 돌려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날, 류화(劉華)는 학교로부터 학부모회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학교 측은 2학년 학생과 학부모 전체가 면학반 개방 프로그램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학교 행사장은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측 대표는 강단에 올라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면학반 학생들의 우수한 수능 결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면학반’은 중학교 2학년 학생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학교 입시를 면제해 주는 특별 우수반을 뜻합니다. 면학반에는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교사를 배정하고, 학생들에게는 무료 숙식이라는 특별 대우를 제공합니다. 면학반에 합격한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을 2~3개월 안에 모두 끝내야 할 만큼 공부의 강도도 셌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숙제를 마무리하는 걸 보면 면학반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에 힘쓰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집에 돌아오면 류화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학반 학생들은 다 ‘악바리’에다 ‘잠도 안 자는 무적인간’인가 봐요. 교실 등이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니까요.”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류화는 놀람을 금치 못했고, 아이들의 몸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유년시절의 활기를 잃어 갔고, 모두 애늙은이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자녀를 면학반에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간간이 울려 퍼지는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를 따라 류화는 회상에 잠겼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영특함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류화는 ‘어리석은 새가 먼저 숲으로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들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아들에게 학습 계획표를 짜주고 단원별, 주별, 월별로 시험지를 풀게 했으며, 복습 교재도 많이 사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아들이 숙제를 마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연습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들의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우개로 다 지워 버린 후 다시 쓰게 했습니다. 답이 틀렸을 때는 그 벌로 틀린 문제를 여러 번 베껴 쓰게 했습니다. 아들은 매번 원망스러운 눈으로 류화를 쳐다봤지만 류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주말도 없었고 TV도 볼 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끝없는 숙제와 문제들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할 때면 류화는 아들을 달랬습니다. “이 시험지만 다 풀면 놀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하지만 시험지를 다 푼 후에는 다른 시험지를 풀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더는 류화의 말을 믿지 않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난 거짓말쟁이 엄마가 미워!” 류화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어려서 철이 없고 커서 성공하면 자신의 노력을 이해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류화의 ‘도움’으로 아들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류화에게 있어 아들의 100점짜리 시험지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습니다. 학부모회를 갈 때면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고 더욱 뿌듯해했으며,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자신과는 관계가 점점 멀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매일 방과 후 집에 오면 어두운 표정뿐이었습니다. 류화가 다가가면 아들은 몸을 움츠려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문제를 풀게 할 때는 눈을 치켜뜨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멀어진 류화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고통에서 헤매었고, 과연 누가 자신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류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과 미약함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지식을 미끼로 삼는다. 잘 듣거라.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미끼일 뿐이다. 사람에게 ‘공부를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라며 지식을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게 한 다음, 그 지식으로 과학의 대문을 열게 한다. 바로 네가 배운 지식이 많으면 아는 것이 더욱 많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것이다. 사탄은 또 사람에게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원대한 꿈(원문: 理想)을 품게 하여 ‘포부’가 있고 ‘꿈’이 있게 한다. 사람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적지 않게 주입시켜 사람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것이 옳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이런 길을 가게 되었고, 부지중에 자신의 ‘꿈’과 ‘포부’에 끌려 앞으로 나아간다. …사실상,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에서 떠나지 못한다. 이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에게 가서 이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대학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살길을 찾아야 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출세시키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공부에 엄격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아들은 숨을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은 조금씩 반항심이 생겼고 결국 모자 관계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그제야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의 소용돌이에 빠져 아들을 이익의 희생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아들을 대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니 류화의 마음은 자괴감과 자책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류화는 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들의 삶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여유 시간에는 밖에 나가 놀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는 공부 스트레스가 줄었고 느긋한 여유도 생겼습니다. 더는 울면서 화난 얼굴로 류화에게 불만을 토하지도 않았습니다.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매일 즐거워했고, 귀엽고 작은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생겼습니다. 주말이 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 낭송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듣고 영화와 MV도 보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젖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사랑의 돌봄 속에서 자유롭고 기쁘게 자랐습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류화는 오랜만에 이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078"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후 모범생들의 경쟁 속에서 아들의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매달 월말고사 후에 열리는 학부모회에서 류화는 더 이상 뿌듯해하며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들에 대한 선생님의 충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번 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다른 학부모들의 눈빛이 류화에게 화살같이 쏟아졌습니다. 류화는 마치 이들의 눈빛에 온몸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조금씩 학부모회가 싫어졌습니다. 류화는 언젠가 아들의 성적이 다시 좋아지기를 무척 바랐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랑스러워하며 선생님의 칭찬과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회가 끝난 후 류화는 아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말에는 숙제를 마친 뒤 아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해도 허락해 주지 않고 문제집을 펼친 후 문제를 풀어야 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방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알고 심란해졌습니다. 이 같은 심란함 속에서 류화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익에 얽매이지 않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 말씀을 찾아 펼쳤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대함에 있어 그들이 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학문을 더 닦고 학위를 취득하고 학력을 갖게 한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자녀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은 다 하찮고 독서만이 고상하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사회에서는 경쟁도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학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후에 생존해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이다. 즉, 네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력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후의 직업과 전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일생 동안 이것에 의지해 살려고 잘 계획해 놓고,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큰일로 여긴다.』 류화는 자신이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상에 깊이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커서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공부만이 살 길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매일 열심히 배우자’ 등과 같은 사상을 아들에게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밝고 찬란해야 할 유년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강한 자책감을 느끼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탄의 독소는 이미 류화의 목숨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운명을 제어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의 성공만 바랐습니다. 또한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깊은 해를 받아 항상 아들이 뛰어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조금도 돌보지 않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결국 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류화는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런 정형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전의 생존 방식에서 떠나고, 이전의 인생 목표에서 떠나며, 자신의 이전 생존 방식, 이전의 인생관, 이전의 추구와 소망과 꿈에 대해 총결하고 해부한 다음 다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보면서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등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에게 정확한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으로 더욱더 진리를 깨달으면서 살고 인성 있게, 사람 모양이 있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이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류화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들의 성공, 직업, 인생은 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주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만 편안하게 미래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의 진정한 미래인데, 류화는 아들에게 억지로 이익의 길을 추구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건 아들을 불구덩이로 떠미는 것과 같았습니다. 반평생 이익만을 좇았지만 영혼의 평안함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과 아들에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더는 공부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아들의 운명이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맞은 안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착실히 믿고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기를 바랐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운명을 따르기만 바랐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과 함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미 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찬란한 미소가 아들의 얼굴에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삶도 유난히 아름답게 바뀌었고, 류화에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게 되자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번 학기에 아드님의 성적이 크게 올랐습니다. 볼수록 너무 기특하네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류화는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와 찬미를 올렸습니다. 학부모회에 참석한 부모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류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이에 면학반 개방일 프로그램은 어느덧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의 안내에 따라 학부모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학생들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면학반 학생들은 낭독 공연을 펼쳤고, 무대 아래에서 학부모들은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류화는 마음이 살짝 쓰라렸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비참해 보였습니다. 또한 자신과 아들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9년간 이어 온 고부 갈등 — 다시 되돌릴 방법을 찾다

고부간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그 답을 알려 드립니다.

어느 90년대 생의 변화

90년대 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혹시 하루 종일 사이버 세계에 빠져서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청소년들의 모습인가요? 혹시 학교에서 짝을 이루고 다니는 젊은 커플들인가요? 또 혹시 밤새도록 클럽에 드나들며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춤추는 청소년들인가요? ……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더 이상 90년대 생들을 청춘의 생기가 넘치고 열정이 가득하며 활기차게 향상하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고 나약하고 무능하며 빈둥거리면서 먹고 마시고 노는 사람들의 대표로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먼저 여기 어느 90년대 생의 체험을 들어 보세요! 무슨 심리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셨고 게다가 도박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늘 룸메이트와 함께 술 한 박스를 몰래 숙소로 가져와서는 밤이 되면 도박을 하면서 술을 진탕 마셨는데 그것을 누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또 인터넷 게임과 채팅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수업 중에는 물론이고 길을 가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했고 심지어 꿈속에서조차도 했습니다. 설령 기진맥진할 정도로 해서 학교 책상에 엎드려 잔다 하더라도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친구가 많아지다 보니 저도 이 복잡한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여태껏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물들이 조금씩 저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비록 미래에 대해 많은 지향이 있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만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졸업하자마자 일을 하기 시작한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친구의 요청에 의하여 처음으로 KTV에 갔습니다. 저는 알코올, 약물, 마음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를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것들을 해소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그런 곳에 빠지게 되었고 며칠에 한 번씩 친구들을 불러 진탕 놀다가 항상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건강이 점점 나빠졌지만 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늘 유흥업소에 드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위가 아팠고 담배를 피우며 밤까지 새다 보니 기침을 하면 피가 나왔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지니 그제서야 반성을 해봤습니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까지 됐지? 이대로 나가다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근데 이렇게 살지 않으면 또 어떻게 살지? 지난 몇 년 동안 대체 뭘 한 걸까?’ 순간 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고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제가 걸어야 할 길이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랐고 또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갈수록 저를 방황하게 하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번화하여 사람들이 보고 마음이 모두 거기에 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사기꾼들과 술법사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만약 네가 진보하려고 하지 않고 꿈이 없다면 이 죄악의 파도에 휩쓸려 갈 것이다.』 『전능자는 심히 고통 받는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동시에 지각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오래 기다려서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을 찾고 너의 영을 찾아 너에게 물과 양식을 주어 너를 소생케 하고 더는 목마르지 않게 하고 더는 굶주리지 않게 한다. 네가 지쳤다고 느낄 때, 네가 이 세상의 처량함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흐느끼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수시로 너의 돌아옴을 포옹할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면서 네가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너의 기억이 문득 회복되어 “네가 하나님 그리로부터 나왔는데 어느 때에 방향을 잃었는지, 어느 때에 길에서 혼미하였는지, 또 어느 때에 ‘아비’가 있게 되었는지를 알고 더욱이 전능자가 줄곧 그곳에서 지키면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오래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애타게 바라면서 답이 없는 하나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지킴은 값으로 칠 수 없는데, 사람의 마음을 위하고 있고 사람의 영을 위하고 있다. 아마 이 지킴은 기한이 없을 것이고 또 아마 이 지킴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지금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과 기대는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동시에 이 “향락 세계”의 사악한 사회 풍조는 모두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수단임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눈앞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사악한 사회 풍조가 우리의 심신을 얼마나 심하게 타락케 하는지를 모른 채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마구 짓밟도록 방임하면서 인류의 영혼을 삼키려는 사탄의 음모와 계략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지내 온 과정을 돌이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저는 이런 사악한 사회 풍조에 깊이 빠져 거기에 장단 맞춰서 춤을 추고 줄곧 사탄의 우롱과 참해를 받고 죄 속에서 살면서도 오히려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그런 것들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때에 구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역사가 되어 저에게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인생에 대해 정확한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는 이상과 기개 및 왕성하게 향상하는 기질이 없어서는 안 되며, 젊은이는 전망에 대해 낙담해서는 안 되고 생활에 대해 희망을 잃어서도 안 되고 미래에 대해 신심을 잃어서도 안 되며, 젊은이는 자신이 오늘 선택한 진리의 도에 대해 걸어갈 의지력이 있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룩해야 하며,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되고 허위와 불의를 품고 있어서도 안 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입장을 굳게 세워야 하고 자기 주견이 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되고 용감히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봉헌하고 전력을 다해 분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마땅히 흑암 세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있고 자신의 생존 의의를 바꾸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억울하게 받는 나쁜 대우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더욱더 솔직한 마음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 정의와 진리를 찾으려는 심지(心志)가 없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아름답고 선한 사물이어야 하며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정성스러운 가르침은 저에게 무한한 동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더 이상 화려한 세상에 빠지거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저를 광명한 인생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사탄에게 괴롭힘 당해 자아를 잃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가 방황하고 헤매고 있을 때 저를 깨워 주시고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어 주셨고 “물”과 “양식”으로 양육을 해 주셔서 저에게 빛과 희망을 보게 하였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에 긍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이고 부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분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짓밟힐 대로 짓밟히면서 타락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 말씀의 목양 하에서 정확한 인생관을 세우게 되었고 젊은이로서 마땅히 어떤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자 하는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동시에 세상의 시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겨 전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사악한 조류를 좇으면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행동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벼랑 끝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내 힘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하나님의 권세는 측량할 수 없다

2015년 8월, 저는 사람을 몹시 놀라게 했던 초강력 태풍 “사우델로르”의 엄습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체험에서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권세는 측량할 수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던 그날 저녁,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던 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큰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고 빗줄기가 바람에 휘어 창문을 때려 타닥타닥 소리가 났으며 뒤이어 문틈으로 빗물이 스며 들어와 집안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았는데 몇 분 후에는 정전이 되고 물도 끊겼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이번 태풍이 엄청 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전에도 태풍을 겪었지만 다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밖의 바람은 더 거세졌고 한 자매님이 “빨리 와서 문을 받칩시다. 문이 바람에 넘어져 유리가 깨질 것 같아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문을 받쳤습니다. 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저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리문이 깨지면 머리, 얼굴, 몸 전체가 긁혀서 상처투성이가 될 텐데 어떡하지?’ 저는 두렵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홍수와 지진을 당한 형제자매들이 오직 전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체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그때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 기도 드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지,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는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어.’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니 오늘 우리가 태풍의 엄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고 하나님의 시련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태풍이 당신의 주관 하에 있고 당신의 권세가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한 후, 비록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지만 저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다 평온했습니다. 이때 한 자매님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라고 묻길래 저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를 얻어야 진정한 행복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금 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강력한 태풍 앞에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을 때는 그렇게 무기력하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린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을 때는 태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우리의 마음은 아주 평온하고 든든했습니다. 이런 현저한 대조는 저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하는 날은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일을 나누어 맡았는데, 어떤 자매는 컴퓨터를 안전한 곳에 옮겼고 어떤 자매는 유리 창문을 받치고 있었고 저와 다른 한 자매는 방안의 빗물을 쓸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이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의지해 하나님의 행사를 본 체험담을 교제하였고 또 하나님의 최신 말씀도 교제하였습니다. “미시적 각도에서 보면, 지구상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산천, 호수, 바다, 육지 그리고 사람이 겪는 사계절과 각종 식물, 동물, 미생물과 인류를 포함해 땅 위에서 생존하는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가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나타나거나 소실되게 하고 또한 만물의 생존에 법칙이 생기게 하여 만물이 이런 법칙 속에서 번식하게 되었는데, 이 법칙은 어떠한 사람과 사물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초월할 수 없는가? 유일한 답은 바로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생기고 또한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동시에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움직임과 변화는 다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생기거나 소실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하나님 권세의 명정을 초월할 수 없는데 태풍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람의 강약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어 하나님이 크게 하시면 커지고 하나님이 약하게 하시면 약해질 것이기에 우리는 태풍이 커질까봐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와 주관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중에 우리는 태풍이 더 이상 우리 집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홍수의 엄습을 체험했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물길이 바뀌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았었고 오늘 우리는 태풍 가운데서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태풍의 방향이 바뀌는 하나님의 권세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참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체험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우리 뒷집 지붕의 철판이 벗겨 날려가고 공중에서 커다란 흰 물체가 날아와서 그 집 앞마당에 떨어짐과 동시에 이웃집 창문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창문은 아무 탈 없이 무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크나큰 능력이 태풍의 방향을 바꿔 주었기에 우리 모두가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음을 감탄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음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였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한 후 또 만유를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는 동시에 또 만유를 주관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이것은 하나의 어떤 개념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떻게 현실과 맞추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는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권세를 인식할 것인가?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은 일부분 행성이 아니고 일부분 피조물이 아니고 더욱이 일부분 인류도 아니라 거시적에서 미시적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에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주 천체의 각 행성에서 지구상의 각 종류의 생물에 이르기까지 및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중의 ‘만유’의 정확한 정의이다. 이것도 바로 하나님 권세의 시행과 하나님이 주재하고 관리하는 범위이다. ” 이튿날 아침, 도로 옆에 전봇대가 쓰러져 있었고 아름드리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져 있었고 많은 집의 지붕이 벗겨져 있었으며 도시 전체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예전의 아름다웠던 도시의 모습은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재난 가운데는 하나님의 노기가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더 잘 생존하기를 바라시기에 직접 인류를 멸하시지 않고 재난으로써 인류를 권면하시고 일깨우시며 경고하십니다. 처참한 광경들을 보는 순간 저는 자신도 모르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인류가 하나님과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인류에 대한 돌봄과 걱정과 긍휼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설사 그가 인류를 멸했다 해도 그의 이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인류가 패괴(역주: 부패, 타락)로 가득차고 어느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성품, 그의 실질로 인해 그의 원칙에 따라 이 인류를 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실질로 인해 그는 여전히 인류를 불쌍히 여겼고 심지어 각종 방식으로 인류를 만회하여 계속 생존하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고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즉 하나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부르든지 어떻게 깨우쳐 주든지, 하나님이 어떻게 공급하고 도와주든지, 어떻게 관용하든지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고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상대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상심한 끝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람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마지막 한계까지 기다린 후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한다. 즉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려고 계획해서부터 인류를 멸하는 사역을 정식으로 시작하기까지는 한동안의 기한이 있고 하나의 과정이 있는 것인데, 이 과정은 인류의 되돌아옴을 위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남겨준 마지막 기회이다. ” 이번에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권세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을 보았고 사람이 재난 앞에서 너무나 보잘것없고 정말 개미보다도 못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고 선행을 많이 예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으며 재난 앞에서 명리, 지위, 금전, 혈육의 정, 이 모든 것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진리만이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매일 배설하시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요구하신 각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고 합격된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구원

남편의 불륜으로 행복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소송이나 복수하고 자살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시작했을까요?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 (2)

고모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도운, 왜 말이 없어? 뭐 생각하니?” 전 말했습니다. “고모, 방금 읽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많은 친구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에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제 뜻대로 안 돼요.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어요. 게임을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제 마음대로에요. 아무도 절 건드릴 수 없어요. 맘에 안 들면 다 죽이면 되니까요. 게다가 제 레벨이 높고 좋은 아이템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이 절 따라요. 이런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고모는 절 보더니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고모의 한숨 소리를 듣고 전 물었습니다. “고모,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고모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사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할 수 있으시단다. 만물에서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고 하나님만이 긍정적인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인지를 구분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진리를 갖추어야만 사탄이 하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 선악을 분명히 가를 수 있단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얻으면 더는 사탄의 간계에 미혹되거나 통제를 받지 않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면 이해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이고, 다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필요한 자양품과 영양품이고, 사람이 정상 인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며, 사람이 장비해야 할 진리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의 생명은 더 빨리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를 더욱 밝히 깨닫게 된다. 너희의 분량이 자라게 되면 영계의 일을 더욱 꿰뚫어 보게 되고, 더욱 힘 있게 사탄을 이기게 된다.』 『진리란 바로 정상 인성의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었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인데, 모든 정상 인성(인성, *이지,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 도가 사람을 정상 인성 생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는지,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 그 진리가 현실적인지,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람의 인성과 이지가 갈수록 완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 생활이 갈수록 질서 있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사람 육체의 본성, 즉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異象),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폭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그런 말씀으로,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갖춰야 할 진리를 주신단다. 사탄이 우리에게 행하는 사악한 모든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에게 타락된 자신의 모습도 확실히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게 된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행하면 이 같은 사탄의 사악한 세력의 괴롭힘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돼. 하나님 말씀, 진리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때가 오면 사람의 마음과 사상은 변하기 시작한단다.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기고 사탄의 사악한 방해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게 되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생명으로 삼게 되면 곧 하나님의 구원을 입게 된단다. 인류의 마음속에서 진리가 생명으로 자리잡으면 사람은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미워하게 돼. 사탄의 독소와 사설, 그릇된 논리,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깨달아서 사탄을 배반할 수 있게 돼. 이게 바로 진리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효과란다.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람은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더는 고뇌하며 살 필요도 없고 사악한 추세에 얽매일 필요도 없게 되지” 고모의 말을 듣고서야 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권세가 있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계 흐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꼭 봐야 했습니다. “고모,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싶은데 한 권만 빌려줄 수 있으세요? 게임을 끊을 수 있다면 저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래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고모를 찾아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몰랐던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공허한 제 영혼을 채워주고 위로해 주는 걸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제 삶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어폰을 낀 채 하나님의 말씀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 찬양은 제 마음을 움직였고 이렇게 제 삶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체험한 것을 서로 나누며 전 한결 가벼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변한 제 모습을 보고 안심의 미소를 내비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갖춘 진리는 너무 적었기 때문에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탄은 각종 방법으로 절 유혹하고 타락시키려고 했었습니다. 하루는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짜증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집과 마당을 빙빙 돌았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든 채 화면 속의 캐릭터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입에서는 퍽…… 퍽……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운, 왜 그러니?” “할머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이렇게 말한 후 밖으로 나가 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쓰러져 죽은 돼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경련이라도 난 듯 아무것도 할 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게임으로 며칠 밤을 새워도 힘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도 힘들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맹세했었는데 지금 난 하나님을 속이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 자신이 뼛속까지 미워져 주먹을 불끈 쥐고 이불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맹세를 지키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이라는 걸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유혹과 미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없어 제 욕망을 이길 수가 없고 저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기도를 한 뒤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자 다음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거룩하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네게 인생의 밝은 길을 가게 할 수 있고,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할 수 있으며, 참된 인생을 살아내게 할 수 있고,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로 진리에서 생명을 얻도록 할 수 있고, 악에서 떠나고 사탄의 해와 통제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해 고해에서 벗어나 다시는 고통받지 않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렇게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계시며, 너의 앞날과 운명, 그리고 너의 인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한다. 이것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이런 실질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하고 인솔할 이 능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 실질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처럼 다시 제 마음을 비쳤고 전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시련이 임했을 때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지 않았고 기도를 통해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사탄을 따랐습니다. 오늘 사탄은 끊임없이 제게 게임을 하도록 유혹해 하나님 앞에서 했던 제 맹세를 저버리게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은 절 버리지 않으시고 제게 육체의 형벌을 내리셔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반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제게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은 제가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저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형벌과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또다시 사탄에게 휘말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단정하고 올바릅니다. 저는 지금껏 이 같은 언행과 인성을 갖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제게 관심을 보여 주고 끈기 있게 절 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탄을 배반하고 내치고 다시 떨쳐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로 사탄을 패배시키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사탄을 배반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순간, 사탄의 시험이 또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친구 임호는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와 말했습니다. “도운, 요새는 왜 게임 안 해? 새로운 게임이 있는데 진짜 재밌어. 완전히 빠져든다니까! 같이 놀자!” 새로운 게임이 있다는 말을 듣자 전 몸이 근질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더는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기로 했던 다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임호는 또 절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오늘따라 왜 그래? 평소 같으면 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당장 뛰어나왔잖아. 게임 안 한 지도 오래됐잖아! 너 완전히 딴사람 같아.” 이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게임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마음속에서 게임을 하러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다투는 듯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역사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같고, 마치 사람의 안배에서 비롯되거나 사람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역사마다, 매사마다 배후에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배후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지만 욥에게 임한 것은 사람의 행위이고 사람의 방해였던 것처럼,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역사마다 배후에서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고 있고, 배후에는 모두 싸움이 있다.』 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 순간은 바로 하나님이 제게 간증을 원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육체와 하나님 중 무엇을 만족시키는지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를 만족시키면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임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게임 안 해.” 임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네가 말한 거 맞아? 못 믿겠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나 이제 게임 끊었어. 앞으로는 게임 안 해” 게임을 하러 가지 않겠다는 제 말을 들은 임호는 말했습니다. “안 할 거면 됐어. 딴사람하고 해야지…” 임호가 간 후 제 마음은 평온해졌고 더는 방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기분이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누리는 평온함과 즐거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탄의 이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더이상 이같은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가끔은 제게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지만 전 육체를 따르지 않고 사탄의 그런 생각을 배반하여 사탄과 완전히 결렬하고 더는 사탄의 꼬임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릇된 길로 가던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후 저는 복음을 전하는 팀의 일원이 되어 몇 명의 친구에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말세 역사를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저의 간증도 들려주니 친구들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가장 의미 있는 인생과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