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2018년 10월 08일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크리스천의 인간관계,크리스천이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험 보기 전에 어떻게 긴장을 풀어야 할까?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바로 2012년에 치렀던 고등학교 입시 시험이었습니다. 온 가족의 기대 속에서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예상밖으로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저는 크게 낙심했고 그 후 오랫동안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이후 낙심한 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온종일 고통 속에 사는 제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겠느냐? 너희가 이 몇십 년 살아오면서 소원대로 이루어진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 발생한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일이 얼마나 되느냐?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자신도 모르게 시기를 기다리고 천의(天意)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느냐? 또한 사람을 막막하게 하고 속수무책이 되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되느냐? 그 어떤 사람이든 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기대로 가득한데, 자신의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고, 먹고 입을 것이 근심 없고, 벼락출세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자신이 일생 동안 가난하고 비천하고 불우하고 재앙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예상하고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의 결정에 달렸고 제가 살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모두 예측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시에 떨어진 이 일이 나쁜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는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자 간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시며 도와주고 계신다는 걸 느꼈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간호대학을 마쳤고 저는 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격증은 간호학을 전공한 제게 있어서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간호사 업계에 종사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5년의 학업 역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제 학비를 대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께 너무 죄송할 것 같았습니다. 제 미래와 자존심, 그리고 부모님의 애쓰신 마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큰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긴장감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매일 시험 결과를 끊임없이 상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되어 하얀 간호사복을 입으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상상을 하다가도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가족과 친구들이 날 어떻게 볼까?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전날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어서 교제하려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러는 건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결정과 배정을 따르는 것밖에 없단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주시며 제게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사람이 어디에 갈 수 있고 어디에 갈 수 없는지, 매일 어디에서 생활하고 어느 해에 어디에서 생활할지, 어느 해에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언제가 전환점이 될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맞아, 내 운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놓으셨어. 만약 간호사가 되지 않을 운명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도 소용 없는 거야. 난 피조물에 불과하니까 조물주의 결정과 배정에 따라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교제을 해주셔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운명이 좋을지 나쁠 지는 이번 시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은 창조주의 배정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간호사 시험이 곧 다가옵니다. 시험에 합격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인도해 주세요.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저의 입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의 어려운 점과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어떤 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거나 어떻게 인도해 달라고 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이 닥칠 때 진심으로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진실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어떤 때는 사람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곧 응답을 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루지 못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가장 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든든한 저의 뒷심이 되어 주시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요? 평소에 저는 항상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쳐서야 긴장되어 기도하는 저의 모습에서 너무나 양심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를 했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간호사 시험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며 절대 잊지 말라고 제게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하지만 긴장된 마음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이 생길지 전 알 수 없습니다. 시험 문제가 어려울지, 제가 공부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네. 오늘따라 길에 신호등이 다 녹색불이구나” 저는 오는 내내 보게 된 녹색불이 하나님의 인도이자 배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보러 가는 이 길이 제가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땐 저는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시험에 합결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운명을 정해놓았으므로 제가 해야 할 것은 그저 하나님의배치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마음이 안정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는 방법뿐입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리는 순간에도 전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기도를 할수록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는 하나님께 제가 당황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내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친구들은 모두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에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었습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가끔은 불안을 느끼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전 하나님께 기도했고 시험의 합격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안배임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면 마음이 더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금세 2개월이 지났고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점수를 조회하기 전에 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랐고, 순종을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성적을 조회하고 용기를 내어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과목의 점수는 각각 351점과 331점이었고 커트라인보다 51점과 31점이 높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합격했습니다! 제가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시험 보기 전의 긴장을 해소하려면 우선 목표를 너무 높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 눈앞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제 곁에서 모든 걸 인도해 주셔서 제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주시며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긴장 없이 순조롭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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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인터넷 채팅으로 일으킨 결혼 생활의 위기, 쌓아 온 감정은 무너지고 배신의 고통에 빠지게 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했을까요?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던 남편이 끝내 정신차리다

양유(杨柳)와 향명(向明)은 소개팅을 통해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의 생활은 비록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향명은 양유를 살뜰히 보살폈고 양유가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향명은 늘 옆에서 도와 주었으며 외출하여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웃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 둘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군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도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향명이고, 일생의 동반자도 향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게 되자 가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넘쳐났고 가정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친척이 그들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유는 운 좋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같은 해에 그들은 넓고 아늑한 집도 짓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양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부부 관계도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향명이 식품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유는 남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몆 번이나 향명의 전화 벨이 울리면 향명은 재빨리 한쪽에 숨어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설마 외도라도 한 걸까?’라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고 이 가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하는데 아니겠지라며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생각은 이렇게 하였지만 양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향명이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미심쩍다는 생각에 문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챗 여자 친구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양유는 “더 이상 제 남편이랑 채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라고 문자로 답변을 보냈더니 채팅 그 여자는 오히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당신 남편에게 물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해 아주 즐겁거든요! 당신은 당신 남편 간수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채팅 그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양유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남편의 휴대폰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양유는 향명에게 더 이상 위챗 여자 친구와 채팅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향명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부터 양유를 피해 다니기 시작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급히 식사를 끝내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여자들과 채팅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양유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향명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지키고 싶기는 한가요! 위챗 채팅이 그렇게 좋아요? 채팅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님 제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향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차가운 말투로 “여자랑 채팅하는 게 중요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다들 이런 경로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고. 이런 거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양유는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 생활해 온 남편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비통하고 처량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양유는 화가 나다 못해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고 이 가정을 떠나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유는 향명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였고 비록 한 집에서 생활은 하였지만 마치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양유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향명이 왜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고민에 빠진 양유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남편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부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초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였고 이 가정도 매우 아끼고 살뜰히 유지하려고 했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터 동료들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하에 위챗 채팅에 빠지기 시작하여 매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를 않았으며 채팅에 푹 빠져 가정도 저도 아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유는 그들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 원흉이 다름 아닌 사회조류가 가져다준 사악한 풍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위챗 채팅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은 무고하고 가엾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양유는 더 이상 남편을 예전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양유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탄의 사악한 조류와 한차례 쟁탈전을 벌여 남편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양유는 예전처럼 향명을 냉대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와 마음속말도 하기 시작했고 시간만 있으면 향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 준 해악과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통해 주기도 했습니다. 향명은 양유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차분하게 앉아 양유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향명에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하게 되면 너는 무엇으로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하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된다. 그가 너를 어떻게 제어하면 어떻게 인도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너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 딴 것이다. 그럼 이런 환경을 지배하는 조정자는 누구일까?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는지 본인도 모르고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변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데 결국 오늘날의 너가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흐리멍덩하게 살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패괴하고 사람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 .” 양유는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예전에 당신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제게도, 아이에게도 잘하고 우리 가정도 아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위챗 채팅에 빠진 후부터 더 이상 나랑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어요. 당신이 식사하는 걸 보면 배가 고픈지, 부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고 대충 두어 술 뜨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요.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채팅할 생각, 채팅하는 여자만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 사악한 조류에 완전히 제어되어 있다는 걸 설명해요. 당신이 여자랑 채팅하면서 일시적인 스릴과 위안을 찾을 때,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많은 여자들이랑 채팅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 살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인터넷 채팅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어떤 가정은 여자가 남편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남자랑 도망갔고 어떤 집은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여자랑 놀아나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진리가 없기에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사탄은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정욕과 사욕에 사로 잡혀 죄속에서 낙을 누리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삼킬 목적을 달성하여 그것과 함께 멸망될 것을 바라죠. 우린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되요!” 향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유의 얘기를 듣고나서 너무 두렵고 부끄러운 나머지 “여보, 전에 난 다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당신이 속이 좁아 나랑 시시콜콜 따진다고 여겼어요. 오늘에야 사탄이 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탄은 나를 지옥으로 끌어 가고 있었어요! 사실 가끔은 나도 네티즌이랑 채팅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부부 사이에도 좋지 않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게 하고 특히 당신 기분이 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몇 번이나 더 이상 놀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탄이 휴대폰 채팅을 통하여 나를 미혹하고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고 위챗 채팅에 더 이상 빠져 들지 않겠어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 봐요!”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향명의 말을 듣고 양유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회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양유가 보는 앞에서 위챗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양유는 향명의 휴대폰에 위챗 문자가 온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향명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더니 향명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양유에게 앞으로 다시는 채팅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불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 버리는 것으로 채팅하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리라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양유는 사악한 조류가 향명에게 가져준 독해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향명을 인도하여 사악한 조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생활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교회의 한 자매님이 양유의 집을 찾아와 예배 드릴 때 향명과 교통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상대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으로만 개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른길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두게 되면 사탄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게 되면 진리를 좀 알게 되고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속에 빠져 미혹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교통해 주었고 향명은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습니다. 그후부터 향명은 양유를 따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고 차츰 마음도 더 이상 인터넷 채팅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휴대폰에 위챗이 깔려 있어도 더 이상 향명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전화상으로 채팅하던 여자에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라고 질책하는 통화 내용을 몇 번이나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향명은 위챗 인터넷 채팅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단과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라앉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탄의 변두리까지 왔던 가정에 드디어 예전처럼 기쁘고 즐거운 웃음 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양유와 향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면 심령 깊은 곳이 밝고 안심되고 더없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구원이 없고, 하나님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가정은 벌써 파탄되고 말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고 길을 잃어 헤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고 사탄이 우리같은 무지한 사람에게 준 상처를 똑똑히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사탄을 증오하게 되자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도록 남편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의 사악한 조류를 따라 타락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력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통찰력을 키워주어 분별 능력을 자라게 하였고 사탄이 사람을 독해하는 각종 음모 궤계를 간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사악한 조류의 공격을 이겨내는 가장 유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 마음속에 있다면, 마귀 사탄은 더 이상 저희를 농락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남편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구원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유도(刘涛)

당일치기 농장여행 : 창조주의 기묘한 행사에 감탄하며

떠들썩한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길을 따라 유기농 농장을 하고 있는 친구네로 놀러 갔다. 멋들어진 경치와 푸른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눈앞에 펼쳐졌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왔다.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탁 트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향기로운 꽃 내음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봄의 숨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홍색, 노란색, 흰색, 보라색의 야생화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허리를 숙여 자세히 보니 풀숲에는 작은 달팽이도 있었다. 가만히 귀 기울이자 작은 곤충들이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멀리 바라 보니 밭에는 가지런하게 줄 맞춘 채소들이 너도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고, 귓가를 간지럽히는 새소리가 농부 아저씨의 바쁜 발걸음을 뒤쫓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농장 주변의 작은 나무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친구가 다가와 농장에 있는 것은 모두 유기농 채소, 유기농 과일이며 화학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에 작은 나무숲이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뿌린 농약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친구 덕분에 농작물을 키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땅을 갖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흙이 아주 부드러웠고 간간이 알갱이들도 보였다. 알갱이는 지렁이나 다른 작은 동물들의 배설물과 세균이 뭉쳐진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땅이 건조할 때면 작은 알갱이들이 수분을 내뿜어 땅이 마르지 않게 해 주고,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밭 옆에 있는 샛길을 따라가니 주변에 자유롭게 자라난 무성한 잡초가 보였다. ‘설마 농부 아저씨가 너무 게을러서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신 건가?’ 사실, 이 잡초는 일부러 남겨둔 거였다. 왜냐하면 잡초는 땅이 사라지지 않게 보호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폭우가 지날 때면, 토양의 수분을 흡수해 채소나 과일의 뿌리가 물에 잠겨 썩지 않도록 해준다. 왕바랭이처럼 꼭 뽑아줘야 하는 잡초도 농부 아저씨는 뽑은 후에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뽑은 잡초의 뿌리를 위로 가게 하여 농작물 옆에 두어 잡초 자체는 말라 죽더라도 잡초의 양분이 천연 비료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잡초더미에서 진귀한 약초를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의 습열을 빼주고, 붓기를 가라앉히며 독소 배출에 도움이 되는 고들빼기, 해독 효과가 있는 까마중, 부기를 빼주는 민들레, 결석을 예방해주는 질경이, 덩굴식물인 인동 덩굴 꽃과 나팔꽃까지… 사방에 보물이 깔려 있었다! 농민들은 굳이 제초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예상 밖의 수확도 얻을 수 있었다. 밭에는 강낭콩, 완두콩이 심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옥수수와 회향차가 심겨져 있었다. 친구는 여러 가지 식물을 같이 심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 줬다. 콩과 옥수수를 같이 심으면 콩에 있는 니트로게나아제라는 신비한 물질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질소를 잡아 주어 옥수수에 전달해 주고, 옥수숫대는 콩이 자랄 수 있는 넝쿨이 되어 콩이 햇볕을 더 잘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초록빛으로 빛나는 채소밭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채소에 해충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건 농부 아저씨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자연생태환경을 유지하기만 하면 농약 없이도 채소 자체에 방어 능력이 있어 독특한 향으로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여 채소에 붙어있는 해충을 모두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참으로 신비로웠다! “저기 뱀이 있어요!” 멀리서 한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의 침착한 표정을 보면서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있지? 나라면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을 텐데.’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농장에 있는 여러 가지 동물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이었다. 게다가 뱀도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뱀은 농작물을 해치는 쥐를 잡아먹어 농작물을 보호해준다. 그 외에 농장에는 꿀벌, 거미, 달팽이, 여러 가지 새, 하늘소, 두꺼비, 거북이 등도 있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역할을 발휘해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해 주었고, 생태환경의 균형을 유지해 주었다. “꼬끼오…” 닭 울음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농장에는 많은 닭들도 키우고 있었다. 친구는 닭이 알도 낳고, 해충도 잡는다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뿔닭은 움직임이 굉장히 빨라 벌레를 잘 잡는다. 농부들은 뿔닭을 꽃밭에서 키워 해충도 잡아먹고 잡초들도 정리하게 했다. 닭이 다닐 수 있게 길만 만들어 놓으면 꽃밭을 헤집어 놓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닭의 분뇨는 개화 식물의 가장 좋은 천연 비료였다. “멍멍멍…” 똑똑한 목양견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양견은 경비처럼 농장의 가축들을 감시하며 농장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가축들이 길을 잃거나 도망가지 않도록 막으면서도 승냥이의 공격을 받지 않게 보호해 주기도 했다. 목양견은 농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우미였다.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마음으로 느껴 보니 이곳의 모든 것은 나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때,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은 각각의 형태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각각의 방식으로 그것의 생명력과 생명의 형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만물의 성장 법칙, 성장 과정, 성장 방식을 정하였으며 또 만물이 이 땅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상호 의존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해 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법칙과 방식이 있기 때문에 만물은 이 땅에서 무사히 생존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안락한 삶의 터전과 생존 환경을 갖고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에서 발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만물의 생존 규율과 법칙을 정해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정해 준 규칙에 따라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지렁이가 흙을 부드럽게 하면서 자신의 배설물로 땅이 마르지 않도록 하여 농작물에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도, 채소가 해충을 막기 위해 냄새로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여 해충을 없애는 것도, 잡초가 토양이 없어지지 않도록 막고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콩이 옥수수에 질소 비료를 제공하고, 옥수수가 콩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뱀이 쥐를 잡고, 닭이 해충을 잡고 잡초를 제거하는 것도, 개가 인간을 도와 가축을 보호하는 것도… 이런 일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살고,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이 있어, 만물은 이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고 인류 역시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누리게 되어 자자손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권능의 체현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이시고, 안배를 잘해주셔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창조주께서 주재하시고 공급해주신 신비한 환경 속에서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천연 식물을 누리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규율을 모든 이가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삼림을 벌채하고, 농약을 써가며 농작물을 경작하고, 물과 공기는 오염 되었고, 동물들은 도축 당하고 있다. … 사람과 만물의 관계는 더불어 살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관계였다. 생태계가 깨지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류에게 돌아오게 된다. 지금 우리는 유기농 채소를 먹기조차 힘들고, 깨끗한 공기로 호흡할 권리조차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원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갈수록 여러 질병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어떤 태도로 만물을 대해야 하겠느냐? (아껴야 합니다.) 아끼고 보호하며 효과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파괴하지 말고 낭비하지 말며 제멋대로 변경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실천할 길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만물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율과 법칙에 따르는 법을 배우고, 효율적으로 이를 이용하여 더는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여러 가지 공급을 받을 수 있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아름다운 노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러기 떼가 대형을 바꿔가며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세상 만물이 창조주의 역사를 보여 주는 모습에, 창조주를 향한 무한한 감사와 찬미를 바친다!

진정한 '아름다움'

오늘날 사람들이 다니는 크고 작은 길 곳곳에서는 다이어트 뷰티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수요가 있어야 시장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최근 다이어트 뷰티샵이 이렇게 많은 건 바로 현대인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몇 년간 다이어트를 위해 경락 다이어트 샵에 다니며 혈자리 지압 다이어트를 해봤습니다. 또한 비싼 돈을 들여 다이어트 침을 맞아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침으로 감싸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다이어트 약도 먹어봤지만 중국 제품은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미국 유명 브랜드의 다이어트 약도 써보았습니다. 결국 전 다양한 제품과 다이어트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제품을 사용할 때만 살이 빠지고 나중에는 요요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돈은 돈대로 쓰고 제 위장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습니다! 휴! 이 대가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다이어트에 매달리는지 궁금하신가요? 바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사악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취직과 연애를 할 때는 더는 인품과 능력을 보지 않습니다. 여자라면 몸매와 얼굴형을 보고 남자라면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취업 면접에서 저보다 마르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저보다 합격할 기회는 더 많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쁘고 몸매가 좋은 친구들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몸매가 좋아야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운 시선을 받습니다. 하지만 통통한 저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고 심지어 비웃음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쇼핑하며 옷을 살 때면 직원이 제 살을 보고선 “사이즈 없어요!”라고 말하며 제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통통했던 저는 서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가끔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도 살찐 제 모습보다 마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살은 제 자신감과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취미 생활은 곧 다이어트가 되어 각종 다이어트 제품을 찾았고 휴대폰만 열면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보며 바로 저장했습니다. 뉴스에서 종종 다이어트가 절실하여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약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의 소식도 자주 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위해 거식증에 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이 아무 영양도 흡수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만을 맞이합니다. 이 같은 소식을 볼 때마다 저도 두려워 어떤 모습이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옷이 작아 못 입는 제 모습을 보거나 여름이 다가와 몸매 좋은 사람과 예쁜 옷을 볼 때면 다시 다이어트가 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서 “진리는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이는 절대적이다”라는 말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과연 내 뚱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의문을 가진 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펼쳤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정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 지금껏 살을 빼면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연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건 사람의 몸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이미 주재하고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몸매가 좋지만 직장과 가정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겉모습은 별로지만 따스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순간 제 관점이 황당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릇된 관점으로 수년간 돈도 낭비하고 고생도 했구나. 참으로 어리석었어!’ 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가 일어날 때마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그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그런 조류는 어떤 것일까? 그 조류는 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조류가 유행될 때, 급선봉이 되어 그런 일을 시작하고 그런 사상과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부지중에 계속 그런 조류에 감염되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조류를 받아들이게 되고, 나아가 그런 조류에 파묻히고 통제되기까지 한다. 한 차례 한 차례의 그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주 달갑게 그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사탄에게서 온 생존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탄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사탄이 알려 준 삶의 방식과 사탄이 ‘선사’한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는데, 사람에게는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저항할 의식은 더더욱 없다.』 사람들이 왜 이 같은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자기의 외모와 몸매를 바꾸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바로 이 사악한 어둠의 사회 풍조를 따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사탄의 권세 속에 살아가고 있어 사물과 인생을 보는 관점이 모두 사탄에 속해있습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 역시 왜곡되어 완전히 사탄의 관점에 따라 사물을 바라봅니다. 사탄이 사악한 풍조를 일으킬 때마다 사탄은 겉만 번지르르한 사탕발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합니다. 사람들에게 이 사악한 풍조를 따르게 만들어 사탄의 우롱과 조종을 받게 합니다. 사탄은 또 인터넷 매체, 사회상층인물 등을 통해 사탄의 관점을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시켜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추함인지도 모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말로는 다 속마음이 겉모습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휴대폰 속 뉴스는 온통 어떻게 다이어트를 하는지, 누가 가장 예쁜지, 갑부에게 시집간 사람이 누구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도 겉모습이 예쁘고 잘 생긴 연예인을 출연시킵니다. 연예인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성형과 다이어트를 하였고 대중에게 다이어트 경험을 종종 소개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한 대학 동창이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끊임없이 고가의 명품 화장품으로 피부 관리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좋은 직장 구하는 것보다 나아. 남자들은 다 예쁘고 섹시한 걸 좋아하니까 나도 관리해야지.” 제 친구가 이런 사상을 가진다는 건 이 사회가 주입시킨 관점이 초래한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좋은 몸매, 예쁜 얼굴을 항상 추구하는 건 모두 사탄이 이끄는 사악한 풍조가 아닐까요? 이 사악한 풍조를 따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 사탄의 사악한 풍조의 피해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이 사악한 풍조를 분별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사악한 풍조가 추구하는 소위 “아름다움”을 더는 숭배하지 않고 사탄의 우롱을 받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따르고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제 인생의 길을 걷길 바라면서 더는 저 자신의 몸매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네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너에게 너무나 유익하고 너무나 큰 보호가 됨을 참으로 인식하게 될 때, 너는 이런 고통이 차츰 경감되는 것을 느낄 것이고, 너의 전인(全人)도 점차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와지고 해방될 것이다.』 전 여전히 통통하지만 직장과 결혼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 전 매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입니다. 아이들 역시 통통한 선생님을 좋아하고 부모님들도 매우 절 존경합니다. 제 남편과 시댁 분들 또한 제게 너무 잘해주다 보니 결혼과 직장 같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외모와 몸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했던 최근 몇 년을 돌이켜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는 걸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을 더욱 허황하고 사악하게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정정당당한 사람이 바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교회 생활 — 예배에서 굳게 닫혔던 입을 열다

예배를 드릴 때면 항상 적극적이었던 그가 무심하게 던진 자매님의 말 한마디에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재를 통해 소극적이 된 근원을 알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자 마음의 자유도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