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2018년 10월 08일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크리스천의 인간관계,크리스천이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불만이 가득했던 결혼 생활 어떻게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니 다 자신보다 잘 살고 있자 그녀는 무능력한 남편에 대한 불만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틀린 사상 관점을 되돌리니, 결혼 생활의 행복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딸의 불임에 사방을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 하였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시 딸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받지 않을지, 친척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고통스럽기만 한 그는 몇 번의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하자 뜻밖의 은혜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절망에 빠진 결혼 생활, 누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상)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조양의 이야기가 그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믿음은 바로 힘이다

저는 당뇨에 걸린 지 16여 년이나 되는 환자입니다. 걸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많은 합병증까지 생겨 저는 또 백내장에 걸려 시력도 흐릿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금방 받아들였을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글도 쓸 수 있었지만 6개월도 안 되어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저는 소극적이 되고 믿음도 없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집회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집회입니다. 다음 집회에는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안 믿겠습니다. 저의 눈이 제 구실을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볼 수가 없고 복음을 전할 줄도 모르지, 하나님께서 저같은 소경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차라리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하나님을 떠나는 게 낫겠습니다……” 저는 속사포를 쏘듯이 단숨에 말해 버렸습니다. 다들 서로 마주 보면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했고, 열렬하던 집회는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실정을 말했지만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고 눈물범벅이 되어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자매님이 저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시지 말고 마음 진정시키고 우리 함께 노래를 부릅시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시가 ≪실제 하나님은 묵묵히 사람을 구원한다≫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다들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도 성령님이 저의 몸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의 전망과 운명을 옮겨 갔지만 모두 사람을 위해서이다. 어느 단계나 사람의 생존을 위하고 전 인류에게 땅에서 아름다운 귀숙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깨닫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치욕을 참으시고 또 친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나는 어떠한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자그마한 병을 하나님께서도 꺼리시지 않는데, 내가 참을 수 없고 소극적이 되었으니 이것은 너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고 또한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굳게 세웠습니다. 비록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밝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죽지 않고 더 살게 된다면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입니다. 2002년 8월의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저에게 나가서 사역에 협력하라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병고에 시달린 저는 그날따라 머리가 어지러워 한밤중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저의 남편(형제님)이 제가 괴로워하고 말할 기력도 없고 진짜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를 생각해서 말했습니다. “당신 몸이 이런데,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차라리 내가 가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말할까?” 이 말을 듣고 저는 엄격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세요? 정말 정신이 없네요, 당신 말처럼 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죠…… 하나님께서 ‘한가지 일이 임하여 네가 고통받아야 할 때 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검증하실 때이니 오늘 반드시 가야 해요.” 그리고 나서 저는 필요한 소지품과 약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병도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저는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나서 잠시 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가서 1주일 동안 협력하면서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만일 이전 같으면 적어도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아야 했고 또 이틀 동안 쉬어야만 천천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저는 비로소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라는 진정한 함의를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河南省 喜芝

임신 7개월 된 그녀가 갑작스런 강도의 납치를 당한 후…

갑작스럽게 칼을 든 강도에게 납치를 당한 그녀는 임신 7개월째 였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무사히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별 하늘을 바라보며 알게 된 비밀

끝없는 별하늘은 늘 사람에게 끝없는 상상과 동경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별하늘은 마찬가지로 저를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별하늘을 좋아하는데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여름 저녁만 되면 늘 시골의 빈터에 누워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견우직녀, 북극성, 북두칠성, 간혹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천진하게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유성이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 정말 신선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커서 별하늘에 관한 그런 아름다운 전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좌와 유성우와 극광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저로 하여금 별하늘에 대해 더욱 반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별들의 모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고 또한 별하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좀 더 커서 저는 여기에 관한 지식을 배우게 되었고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에서 우주는 대폭발로 생겨난 것이고 게다가 부단히 확장되고 있으며 이런 성체들은 다 규칙적으로 하나하나의 성계를 이루고 이런 성계는 다 동일한 평면에 있으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저의 지식욕을 만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아름다운 별들과 이런 신기한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늘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우주의 대폭발로 생긴 것인지, 별하늘은 극한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적으로 운행되는지, 이런 것은 제가 줄곧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이 광명체가 하늘에서 빛을 내어 땅을 비췄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 날, 해를 위해 징조로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한 동시에 하나님이 이루려는 매사는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응하고 있었다.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바로 상공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물체인데, 그것은 하늘을 비출 수도 있고 땅과 바다를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부한 절주와 빈도수에 따라 회전하며 땅의 서로 다른 시간에 따라 비추고 있다. 이리하여 땅 위의 것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산생된다. 그것은 낮과 밤을 위한 표기로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로 다른 회전 주기로써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을 위한 징조로도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반포한 사계절━춘하추동과 상부상조하고 서로 상응하며 조화롭게 인류의 계절, 날, 해를 위해 규칙적이고 정확한 징조를 보인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별하늘이 근거없이 생길 리가 없어. 어떻게 그것들을 통제하는 힘이 없을 수 있겠어? 조물주의 위대함과 비범함이 이 별하늘을 만들었고 아울러 조물주께서 이런 천체의 운행 궤도를 정해 그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하신 거야. 그래서 인류를 위해 규칙적인 계절을 정해 인류가 더 좋게 땅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셨어. 이 신비한 별하늘은 다만 조물주의 비범함과 위대함의 약간의 유로일 뿐이야!’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 (상)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