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직장에서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2019년 05월 31일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저는 말이 통하지 않아 레스토랑의 주방 일을 겨우 구했습니다. 하지만 사장은 거칠고 까다로운 성격이어서 이제 갓 들어온 직원이든 오래 근무한 직원이든 막론하고, 일단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일처리가 사장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거나 직접 해고하기도 했습니다. 갓 들어온 저 역시 사장에게 종종 욕을 먹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몇 가지 반찬은 제가 책임지고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사장이 저를 시험했습니다. “메리, 탕수갈비 속에 어떤 양념이 들어가지? ” 순간 저는 너무 긴장되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양념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그때 사장은 손에 쥐고 있던 주걱을 내동댕이치며 “내가 어떻게 이런 미련한 곰탱이를 고용했지.…”라면서 저를 향해 호되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사장의 질책에 저는 아주 고통스러웠고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방에서 근무하는 직원 6명 중에서 날마다 한 사람은 욕을 먹었고 그 가운데 세 명의 동료는 일을 잘못해서 사장의 마음에 들지 않아 해고당했기에 저 역시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날마다 출근하면 신경이 곤두섰고 매우 조심스럽게 일했습니다. 행여나 일을 잘못해 동료들 앞에서 욕을 먹고 심지어 해고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막 설거지를 끝낸 접시 한 광주리를 진열대에 놓으려고 하는 순간, 손이 미끄러워 접시가 와장창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산산이 조각난 수십 개의 접시를 보는 찰나 저는 멍해졌습니다. 속으로 ‘끝장이야. 끝났어. 이렇게 많은 접시를 깼으니 사장이 알면 틀림없이 나를 해고할 거야! 이전에 동료도 조심성 없이 일하다가 해고당했잖아.’ 이런 생각에 저는 매우 당황했고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이때 소식을 들은 동료가 와서는 “왜 조심하지 않았어? 이렇게 많은 접시를 깨다니. 얼마를 배상해야 하지?” 또 다른 동료는 “끝났네, 끝났어. 이번에 너는 해고당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말하자 저는 더욱 두려웠습니다. ‘겨우 찾은 직장인데, 만일 사장에게 해고당하면 이후에 어떻게 생활하지? 말이 통하지 않고 기술도 없어서 다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때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우리 얼른 깨진 접시를 치우자. 사장이 모르게 해야 해. 사장이 알면 메리를 심하게 괴롭힐 거야.” 이때 주방장이 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얼른 깨끗이 치우자. 사장이 알아서는 안 돼!”라고 하자 동료들은 바삐 움직였습니다. 어떤 이는 바닥을 쓸었고, 어떤 이는 접시 조각을 주워담았습니다. 저는 떨리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동료들과 함께 청소를 했고, 아무일 없이 그냥 지나갈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쪼그려 앉아 청소를 한 지 몇 분이 지나자 제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히 접시를 깨트려 놓고 사장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만이고 하나님의 뜻에도 맞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정상인의 말과 행동이란, 말에 조리가 있고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리다고 하고, 사실에 부합하고 적절하며,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한 사람이 되고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용감하게 책임을 져야 하며 이렇게 살아야 사람답고 존엄성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접시를 깨트린 것이지만 이 일이 임한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입니다. 하나님은 제 곁에서 제가 진리를 실행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고 계시고, 사탄 역시 저의 곁에서 제가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만일 제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사장에게 욕먹는 것이 걱정되거나 혹은 해고당할 것이 두려워 기만하는 방식으로 대하고 처리한다면 간증을 잃게 되고 사탄도 하나님 앞에서 저를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밝아졌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고 사장이 출근하면 사실대로 말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때 저의 모든 동작이 느려졌고 주방장이 보더니 “메리, 빨리 치워. 곧 사장이 올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주방장의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고당하거나 혹은 욕을 먹어도 저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 치우고 나서 주방장이 접시 조각들을 쓰레기통 아래에 숨기는 것을 보고 저는 “숨기지 말아요. 사장이 오면 내가 사실대로 말할게요. 배상하라면 배상할 거예요.…” 제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주방장은 황급히 “메리, 왜 그래? 사장이 알면 너를 해고할 거야.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싶지 않아? 지금 일자리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입 다물면 사장이 모를 거고 너도 곤란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그래도 사장에게 말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10분, 20분… 제 머릿속에는 사장의 사나운 모습이 떠올랐고 긴장되고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많은 접시를 깨트린 것을 사장에게 정말로 말하려니 해고당할까 걱정이 되었고, 도대체 사장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만일 말을 잘하지 못하면 그는 틀림없이 이전처럼 욕하거나 심지어 더 심한 욕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머리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사장의 출근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장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직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계속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걱정됩니다. 오늘 진리를 실행하여 사장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맞닥뜨리니 역시나 해고당할까 걱정됩니다.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시고 제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여 당신을 만족게 하도록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나니 문득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제 마음은 밝아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일을 주재하고 계십니다. 사장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저의 직장도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직장에 남도록 허락하시면 사장은 저를 해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고를 당하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니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배치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마음이 아주 든든하고 편안해졌습니다.

한 시간 후 사장이 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사탄의 흑암 권세를 돌파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사장을 보며 “사장님, 오늘 제가 사고를 쳤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제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소를 띠며 저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데?”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쓰레기 봉투를 열어 보이며 “일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많은 접시를 깨트렸어요. 깨진 조각들이 여기에 있어요.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 보시고 월급에서 깎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다가와서 쓰레기 봉투 안에 담긴 산산이 조각난 접시를 보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온화한 목소리로 “배상할 필요 없어. 접시 깨진 것 쯤이야.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앞으로 조심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관심을 갖고 손을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장의 말을 듣고 저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성격이 까탈스럽고 거친 사장이 제가 사고를 쳤음에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이때, 동료 몇 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으며, 그들은 제가 정말로 사장에게 잘못을 인정할 줄 몰랐고, 더군다나 사장이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화한 목소리로 말할 줄을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방장은 저와 함께 쓰레기를 버리러 걸어가면서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어. 사장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잖아. 동료들이 너를 도울 수 있었어. 사장이 아주 냉정하게 너를 대한 것을 우리는 알고 늘 마음에 두고 있었지. 우리가 사장에게 고자질할까 봐 걱정되었던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주 진지하게 “아니예요. 동료들이 진심으로 나를 도운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 되고 떳떳하게 일을 하며, 기만하지 말고 잘못을 했다면 담대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알려 주셨어요.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됨의 원칙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방장은 저의 말을 듣고 놀란 듯이 “원래 너는 크리스천이었구나! 어쩐지 이렇게 오랫동안 너와 함께 했는데 사람이 좋아보이더라니. 다른 사람과는 달랐어! 정말로 탄복했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 것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도 너와 함께 하나님을 믿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주방장의 말을 듣고 저는 기뻤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낸 효과인 것이지 제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더욱 생각지 못했던 것은 그 이후부터 사장은 다시는 저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게다가 직원을 새로 모집할 때면 저와 상의를 하고 제 의견을 물어보았으며, 또 월급을 인상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매번 닥치는 환경 및 사람과 일은 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더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했을 때,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미국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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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9일 오전 8시경,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날은 연세가 72세된 한 자매가 우리집에 물건을 전해주러 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 자매는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장대비는 오후 3시가 되어도 그칠 줄 몰랐는데, 순간 저는 불어난 물이 저희 집 화장실을 휩쓸어갈까 걱정이 되어 길에서 물길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쿵쾅”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빠른 속도로 우리 집을 향해 흘러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매우 두려웠고 집에 돌아갈 엄두도 못내고 문 앞의 큰 길을 따라 동쪽을 향해 뛰어가 쏟아져내리는 토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쪽으로 뛰어갈 때 그쪽에도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허둥지둥 마구 휘젓고 다녔습니다. 제가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갑자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 ” 이 말씀을 생각하니 당황스럽고 심란했던 마음은 바로 평온해졌고, 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을 돌이켜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는데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 자매가 있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의 재난은 당신께서 일으키신 것이고 역시 당신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재난을 내리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징벌하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사탄의 성정으로 가득찼습니다. 이전에 본분할 때, 건성으로 하고 하나님을 기만했습니다. 오늘 살든 죽든, 당신의 손에 맡기길 원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공의로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끝난 후, 저의 마음은 많이 차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사태가 나는 소리도 멈추었습니다. 기묘한 것은 우리 집이 뜻밖에도 산사태로 인한 토사로 파괴되거나 매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마을 근처에 살고 계셨는데 어머니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산사태가 이미 끝난 것을 보고 저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산을 쓰고 서둘러 어머니 집에 가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밖에 나와서 보니, 마을 반경 100미터 주변이 산사태로 인해 토사가 유입되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도처에 온통 나무, 벽돌, 진흙, 흙덩어리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힘들게 앞으로 가는데 길가에 있던 가옥 3채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밀려드는 토사에 매몰되어 이미 숨졌고, 또 7~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팔이 절단되었고, 어떤 사람은 다리 뼈가 부러졌습니다. 어머니 집에 도착하자 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68살의 어머니는 유입된 토사에 세번이나 휩쓸려 갔지만, 오히려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밀려드는 토사가운데로 빠졌을 때, 쉼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통나무 하나가 가로막아 휩쓸려 가지 않았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집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집 뒤쪽에 있던 가옥 두채는 이미 산사태로 인한 토사로 부서지고 매몰되었지만, 우리 집 뒤쪽 담장 아래 대략 1미터 높이의 흙이 조금씩 쌓여 토사가 유입되는 것을 막았고, 또한 토사 흐름의 방향을 바꾸어 우리 집의 서쪽 벽을 따라 앞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곳은 피해를 입었지만 오직 우리집만이 원래 그대로 보존된 것입니다. 눈 앞에서 발생한 일은 그야말로 저를 놀라게 했는데 재난은 정말로 눈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 ’ 이번의 재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인식은 다 막연한 것이고 모두가 글귀 도리이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깊이 패괴되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주며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자신의 본분에 충성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어둡고 차디찬 흑야(黑夜)와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 ” 그렇습니다. 재난을 마주해 사람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외에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속주이고 사람 생존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말세인 오늘날, 성육신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으로, 수백만 자에 달하는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말씀을 친히 발표하셔서 줄곧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루빨리 되돌아서고 그분의 앞에 돌아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데, 이래야만 인류가 비로소 좋은 귀숙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재난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북성(河北省)한단시(邯郸市) 유 심 (刘心)

전국을 경악케 한 톈진 계현의 화재

河北省 陳塵 라이더(萊德) 상가 빌딩은 계현 읍내에서 제일 큰 상가입니다. 2012년 6월 30일, 이날은 토요일이라 상가에서 마침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고객들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상가 빌딩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났는데, 사장은 고객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상품을 도둑질해갈까봐 1층에 있는 셔터를 내리고 고객들을 2층과 3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길이 점점 거세져서 마지막에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가의 전기 통로가 다 중단되어 1층부터 4층까지의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층의 셔터 또한 잠겨 열 수가 없어 상가 전체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으며 창문마다 불길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짙은 연기는 읍내를 덮어버렸으며 몇백 m 밖에서도 연기에 숨막힐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3층 위에 갇힌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소방서가 상가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구조 요청을 한 지 약 25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구조할 시간을 지체한 뒤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사다리를 3층까지 올려 놓고 금방 7, 8명까지 구조했을 때 그만 사다리가 불에 달아 매우 뜨거워서 갇힌 자들은 사다리를 빌어 구조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다리로 내려오려던 사람은 떨어져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며 구조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큰불은 오후 3시 30분부터 저녁 9시 넘어까지 줄곧 타올랐는데 약 3백 명 이상이 안에서 타죽었습니다(구체적인 숫자는 아직도 조사 중, 정부에서 발표한 것은 다만 10명). 어떤 사람은 오후 3시 넘어서까지도 가족과 통화를 했었지만, 5시가 되어 가족들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집은 일곱 식구가 모두 라이더 상가에 쇼핑하러 왔다가 그만 온 가족이 화재에 죽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많은 참상들이 있습니다. 화재가 일어나던 그 순간부터 어떤 사람은 이 비극을 신속히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리하여 즉시 ‘라이더 상가 화재’는 인터넷을 타고 온 계현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계현 민중들은 놀랍고 두려워서 하루 보내기도 힘들어하며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또 자기의 친인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비록 화재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상처를 가져다주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는 화재 발생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高)자매와 그의 모친은 2012년 6월달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새신자입니다. 이번 화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더욱 하나님의 새 사역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자매님은 올해 73세인데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걸어야 하였는데 평소에는 잘 넘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6월 29일 그날따라 이 자매님이 갑자기 평지에서 넘어졌습니다. 비록 뼈는 골절되지 않고 그저 심하게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고자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토요일(화재가 발생한 바로 그날), 또 다른 어린 자매가 고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라이더 상가에서 판매하는 바지 하나를 봐두었기에 고자매더러 함께 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고자매는 “우리 엄마가 지금 거동을 못하셔서 돌봐드려야 하니 혼자 가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친구가 고자매에게 뭔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지금까지 거절한 적이 없었으나 유독 이날만은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부득이 친한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라이더 상가에서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고자매는 깨달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부지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입었고, 하나님이 모친의 병을 통하여 자기의 발걸음을 저지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당시 친구를 따라 상가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큰불에 타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특유의 방식으로 사람을 보호하여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너무나 기묘하십니다! 더욱 생각지도 못한 것은 화재가 발생한 그날 저녁에 고자매의 모친이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교통을 통하여 연로하신 자매님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깨닫고서 “제가 육체적인 고통은 좀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병을 통해 우리 딸을 구원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자매님이 또 얘기하기를, 그날 고자매와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자고 했던 친구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고자매만큼은 추구하지 않았다고 함)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고자매가 못 간다고 하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되어 그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더니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따라 그 자매는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고 남편에게 “좀 더 있다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3시가 되어 그의 남편이 또 재촉하자 이번에도 그 자매는 좀 더 있다 가자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시 재촉하자 그제야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라이더 상가로 떠났습니다. 반쯤 가고 나니 라이더 상가 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제야 상가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매는 저도 모르게 감격하여 “하나님, 저를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또 자기가 좀 전에 재삼 시간을 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부터 온 것이지 결코 자기의 본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널리 미치며 그분의 지혜도 사람이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시며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재난이 닥칠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화재가 난 그날, 많은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자매는 마침 라이더 상가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다른 일을 보려고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상가에 불이 났던 것입니다. 어떤 자매는 라이더 상가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갔는데, 그리하여 한차례의 화를 면했던 것입니다…… 보다시피, 재난 속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며 견고한 망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기탁(寄託)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즉시 정체될 것이며,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은 나에 의해 일어나는데,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들이 만일 내 앞에서 선하게 보일 수 없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차례의 화재로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닫게 됩니다. 설령 사람이 허리춤에 많은 돈을 꿰차고 있고 지위가 대단하고 사치한 현대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의 과대 평가와 흠모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재난 앞에서는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불 속에서 불사름을 견디기 어려워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그 사람들, 창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절망 속에서 생명을 잃은 그 사람들, 그들 중 어떤 이는 돈과 지위도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용모와 화려한 장식이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가족의 동반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길이 흩날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는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도 큰불의 삼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의 말 이외에서 생활하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늦가을의 낙엽마냥 도처에 떨어져 발 붙일 곳이 없고 더욱이 나의 위로의 말도 없다. 비록 그들에게 나의 형벌과 연단이 따르지 않지만, 이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밖의 도처에서 방황하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그 거지들이 아닌가? 세상이 정말 너의 안식처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화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일깨움이며 동시에 또 우리에 대한 사랑의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하나님의 고충을 이해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들여 하나님이 인솔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감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재난이 빈발하는 이 위기에 더 많은 영혼들을 빨리 구출하여 하나님의 그 슬프고 초조한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고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란은 욱신욱신 쑤시는 아픈 허리를 손으로 한참 동안 두드리고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커덕”하고 나더니 안란의 며느리 우정이 불쾌한 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우정은 주방 문 옆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어머니의 아들 친구들을 좀 보세요. 그들은 결혼 할 때 신부에게 10만 위안 (한국돈 약 1600만 원)을 줬을 뿐만아니라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도 사주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는 당신 집에서 6만 위안 밖에 주지 않았어요. 제 동창들은 결혼할 때 차도 있고 집도 있었는데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속상해요.”라고 했습니다. 우정의 말을 듣는 순간 안란은 화가 너무 났지만 속으로 ‘그 당시에 집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이제 와서 또 이 말을 꺼내는 거야? 이건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거잖아!’ 우정은 안란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계속 원망 섞인 말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안란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주방 청소를 끝마치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길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고부간인지 모녀간인지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으며 안란의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안란은 그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안란은 좀 전에 우정과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속으로 ‘난 언제 며느리와 저렇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에이, 지금은 보면 볼수록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잘 먹고, 잘 놀면서 마음껏 누리려고만 하는데, 이건 다 헛된 꿈이 아닌가! 방금 전에 한 말도 나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가? 남편과 난 이제 늙어서 농사짓는 것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아파트를 사줄 형편이 되겠어.’이런저런 생각으로 안란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동안 며느리와 지내면서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정을 며느리로 맞이했을 때, 안란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안란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면서 맛있는 거 있으면 며느리에게 주었고 집에서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고부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란은 내심 며느리와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정이 가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왔습니다. 안란은 며느리가 월급을 받아서 저렇게 기쁜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정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는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저 이번달에 월급을 2400위안 받았어요.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으로 1000위안 내고 월세 500위안 내고 그 나머지는 휴대폰 요금과 생활비로 사용했어요. 저는 한달 벌어서 한달에 다 쓰는 전형적인 월광족(한달 월급을 모두 소비해 버리는 중국의 새로운 소비계층)이에요. 어머니, 이번 달에는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월광족’ 이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내 돈 못 갚는 건 괜찮아. 하지만 우정아, 살림하는 사람이 돈을 아껴써야지 함부러 막 쓰면 안된다. 버는 대로 다 쓰면 어떡하니. 앞날을 생각해야지. 축의금도 자기 형편에 맞게 해야지.”라고 말하자 우정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불만스런 말투로 “어머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돈을 빌려서라도 양껏 부조를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 저도 해야죠. 안 그럼 친구들 앞에서 제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눈을 내리깔고, 가방은 소파에 던져버리고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성깔을 부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짢고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난 영감이 돈을 벌어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면서 아끼며 생활하는데, 버는 대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잖아.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 얘는 정말 집안 망칠 애가 아닌가? ’ 생각할수록 우정이 못마땅했고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후부터 안란과 우정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의 생활방식이 점점 더 눈에 거슬렸습니다. 우정이 안란에게 “어머니가 하신 요리는 왜 이리 맛이 없어요? 언제 시간되면 남편에게 백김치 생선요리를 잘하는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고 해야 겠어요.”라고 말하자 안란은 “물고기와 백김치를 같이 넣고 끓인게 뭐가 맛있겠어? 비린내만 나지.”라며 되받아 치자 우정도 지지 않으려고 맞서며 “백김치 생선요리는 북방의 백김치로 끓인게 아니라 남방의 야채로 끓여서 비린맛이 없어요. 나이 들면 ‘견식이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네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졌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견식이 없다’라는 이 몇 글자가 안란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무례하고 안하무인한 우정의 태도에 안란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너 같이 생활한다면 매일 고급 음식만 먹어야 하는데, 그럼 어디 돈이 남아돌겠어? 살림을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니네들처럼 산다면 돈이 아무리 많다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에 부딪치니 그제야 안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란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계속 천천히 걸었습니다. 안란은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은 크리스천이기에 일이 임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환해지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안란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말을 하고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한평생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눈에 거슬리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어떤 것은 사실 자신의 문제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지 말라.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신도 존귀하지 않고 남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고 고상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견식을 넓혀야 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생활 습관도 다 있는데 생활 습관은 인성이 아니다. 너의 생활 습관이 규칙적이고 정상적이고 고상해도 너에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이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이 환경은 너무 좋다.너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 적응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와 잘 지내고 그에게 다가가고 그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순복하는 태도와 실행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이 안란의 마음을 환히 비춰주었습니다. 안란의 마음은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린 듯 상쾌해졌습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와 같이 환경에 적응할 줄 모르고, 순복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오만자대한 본성 때문에 자신을 높이 보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이것도 무시하고 저것도 업신여기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식당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겠다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며느리가 저축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아파트와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 며느리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하는 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면에서는 자신이 며느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다 보니 며느리가 더욱 눈에 차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며느리가 생활하길 바랐는데 며느리가 따르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모두 타락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오만하여 며느리에게 요구가 많았고 또 요구가 높은 탓에 며느리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세대차이라는 장벽이 생겨 고통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며느리를 안배해 주신 건 자신의 오만한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항상 남의 흠을 잡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자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복하면서, 며느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화목하게 살며 생활속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안란은 괴로웠던 그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현실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생활도 계속되고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정은 손에 아이폰을 들고 안란을 바라보며 명랑하게 “어머니, 저 이 휴대폰 액정이 깨져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어요. vivox9plus를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아이폰 4~5 천원 주고 샀잖아, 그렇게 비싼 물건인데, 시간날 때 서비스센터에 가서 액정만 바꾸면 더 사용할 수 있잖아.”라고 말을 하니 우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 액정 바꾸고 싶지 않아요. vivox9plus을 사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우정의 그 말을 듣고 나니 안란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아이폰도 비싼 돈 들여 샀는데, 금방 싫증네다니. 4~5천원 들여 새 휴대폰을 또 사겠다고. 얘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네. 도대체 살림하는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안 되. 사지 못하게 말려야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또 며느리를 간섭하려 하고,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려는 이 오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제가 아직도 너무 교만하여 며느리가 꼭 제 뜻에 따르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타락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안란은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이방인이 말하는 세대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윗사람은 늘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니까 장벽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그 장벽이 생기고 세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냐? 부모는 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는 항상 부모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모를 지심인(知心人)으로 생각한다면 양자간에 그래도 장벽이 있을까? (없습니다.)” 안란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세대 차이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은 부모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자녀를 이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만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높은 지위에 서서 자녀에게 이것도 자기 말대로 해야 하고 저것도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는 불쾌해하고 자녀에게만 눈길이 가는 것입니다. 그때 안란은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신이 체면을 지키려 허세를 부리며 며느리를 간섭하려고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며느리를 강요하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요구하며, 고참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개인의 자유가 있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피조물이고 며느리 역시 똑같은 피조물인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며느리에게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고집하는 것이 다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내려놓고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어야 했지, 늘 속박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유행을 잘 따르는데, 며느리가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려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 되니 안란의 답답했던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졌습니다. 안란은 웃으면서 “나도 이젠 많이 늙었나 보다. 내 생각만 하고 너희 젊은이들의 마음을 몰라 줬으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말거라.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고 싶다고 했지? 그래, 내일 나랑 같이 사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우정은 조금 놀란 듯 의아스러운 눈길로 안란을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안란과 우정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 매장에 갔습니다. 생각밖으로 우정은 “어머니, vivox9plus은 값이 너무 비싸니, 전 사지 않을래요. 대신 vivox7plus로 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후로 우정과 지낼 때, 안란은 비록 우정의 생활방식이 눈에 거슬렸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때는 오만한 본성도 많이 변화되고 며느리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안란도 우정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예전처럼 항상 원망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주 안란과 마음속 말을 나눴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안란과 상의하고 안란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우정은 안란에게 “어머니, 저 아파트 사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번 돈은 어머니가 저축하세요. 저도 이제부터는 돈을 아껴 써야겠어요. 더 이상 아버님, 어머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게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안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며느리 사이에 존재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 노울이 논밭에 비치니 삽시간에 그 논밭은 마치 황금색의 카펫을 두른 것처럼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안란과 우정은 농사일을 끝내고 활짝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부러워서 “저 두 사람 좀 보세요, 누가 고부사이라고 하겠어요.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고부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분들도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안란과 우정은 마음이 뿌듯해 입가에는 웃음이 만발했습니다.   문정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요즘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부모가 아이를 잘 교육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친구들아 , 이제 여기서 그만!

언제부턴가 학교는 평화롭지 않고 사회처럼 암투로 가득해졌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반마다 ‘일진’이 있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나도 자주 괴롭힘 당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다. 그 녀석은 매일 날 괴롭히며 내게 이것저것을 사 오라고 시켰다. 내가 사 오지 않으면 친구들을 불러 나를 때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그를 대할 때 항상 조심하게 되었고, 맞을까 두려웠다. 나는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어떠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분별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탄의 시험에 빠졌다. …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진’들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 옆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이쑤시개를 씹으며 말했다. “샤오챵, 우리랑 다니는 게 어때? 쟤네가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잖아. 우리랑 같이 다니면 널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난 속으로 ‘지들도 똑같은 애들이면서, 싸움으로 이름이나 날리고 말이야. 너네랑 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냐? 내가 너네랑 같이 다닐 거 같아?’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거절하며 말했다. “꼭 같이 다니지 않아도 우린 같은 반 친구잖아. 나 지금 공부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때?” 그러자 그 녀석이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잘 생각해봐.”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그 후 녀석들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그중 한 녀석이 말했다. “얌전한 네가 매일 다른 녀석들한테 괴롭힘당하니까 하는 얘기야. 너도 알잖아.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부모님이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랑 많이 왕래해야 해(선물을 건네는 것을 뜻한다). 담임 선생님이 돌봐주면 널 괴롭히려는 사람도 없을걸?”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도 말했다. “네가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학교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수밖에 없어. 그래야 널 감히 괴롭히려는 녀석이 없지.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숙제도 니가 맨날 대신해줘야 해.” 방과 후 침대에 누우니 녀석들이 했던 말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걔들 말도 맞는 말이긴 해. 다른 애들이 항상 날 괴롭히긴 하잖아. 그 덩치 큰 녀석이 맨날 괴롭히고 때리고 말이야. 집안 형편도 별로라 아버지가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진 않을 텐데. 휴! 걔네가 날 찾아온 게 벌써 몇 번인데, 내가 계속 거절하면 걔네들이 나 괴롭히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 녀석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녀석들과 같이 다닐 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은 몰려다니며 같이 먹고, 마시고, 놀았다.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쓰기가 아까워 혼자 쓰지 않고 녀석들과 다닐 때만 썼다. 녀석들은 내가 돈을 다 쓴 후에야 돈을 꺼냈다. 나는 녀석들이 단순히 나를 밥값 내는 애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싸울 때도 나를 불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 중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님이 한 판 붙으러 오라는데 너 여기서 뭐 하냐? 얼른! 빨리 가자!”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싸움이라니? 여태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왜 싸워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어떡해?’ 두려운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왜 싸워야 하는 거야?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자 녀석이 답했다. “나도 몰라. 형님이 싸우라고 하니까 싸우는 거지. 심하게 다치기야 하겠어?” 녀석은 말하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다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간 거야? 싸우자고 한 사람들이 어디 간 거야? 어디 숨은 거야, 대체?” 속으로 ‘없다니 다행이다. 싸우지 않아도 되겠네. 괜히 싸웠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때 잔뜩 화가 난 대장이 말했다. “가자. 일단 밥 먹자. 밥부터 먹고 다시 해결하자!” 밥을 먹고 난 후 우린 다시 옥상으로 왔다. 대장의 고함만 들려왔다. “때려! 때리라고! 어디 한번 제대로 때려봐! …” 이 말을 들은 나는 ‘저 사람이랑 원한도 없는데 왜 때려야 하는 거야. 안 때리자니 체면을 구길 텐데. 앞으로 저 녀석들 낯을 어떻게 본담’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왕 왔으니까 때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로 한 대 차는 척을 했다. 하지만 진짜로 차진 않았다. 다시 한 번 차려고 할 때 대장이 외쳤다. “그만, 그만 때려.” 놀라 꽁무니를 빼는 두 녀석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들이 간 후, 대장이 성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왜 안 때리냐?” 나는 “다들 섞여 있어서 누가 누군지 몰랐어. 혹시 잘못 때릴까 봐”라고 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업 종이 울렸다. 우리가 막 교실로 돌아왔을 때 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샤오챵, 담임 선생님이 같이 교무실로 오래.” 나는 속으로 ‘망했다. 선생님께 들킨 건가?’라고 생각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아까 맞은 아이 두 명과 그 녀석들의 부모님, 교장 선생님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속으로 ‘저 녀석들의 부모님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나는 이 녀석들과 어울려 다녔던 걸까? 왜 저 녀석들의 싸움을 도와준 걸까? 싸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한참 마음이 괴로워 할 때 예전에 예배에서 교통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냐, 크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형제자매들과 늘 함께 있다. 주위에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너도 착실하게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 너 혼자 이방인들 가운데 있게 된다면 너의 마음속에 그래도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그들과 같이 있으면 그들과 똑같이 되기가 쉽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리키는 게 바로 나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 드리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멀리했다. 이런 나쁜 일도 분별하지 못하고 아무거나 따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책감이 들어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따라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녀석들과 형제의 우애를 다지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께서 무섭게 우리를 혼내셨다. “어린 녀석들이 벌써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고.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 가기라도 했으면 너희가 어떻게 책임질 거야? 누가 맞아죽기라도 했으면 너넨 그대로 감옥행이야. 고1 학생 두 명이 휴대폰 때문에 싸우다가 목 졸라 죽인 일도 있었던 거 몰라? 싸우고 난 후폭풍이 어떤지 알기나 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무서워졌다. 맞은 학생의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요즘 애들이 걸핏하면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데 싸우다가 누가 어디 하나 잘못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건 일생과 관련되는 일이잖아요!” 교장 선생님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로 말씀하셨다. “일주일간 정학이다. 한번만 더 싸우면 그땐 퇴학이야.” 당시 난 퇴학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심장이 철렁 했다. “샤오챵, 넌 평소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녔으니까 일단 학교에 남아.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 그 말을 듣고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됐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앞으로 저 녀석들과 몰려다니며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부디 구원해 주시옵소서. 다시는 악에 휩쓸리지 않고, 제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나이다.” 보름 후, 그 녀석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일 한 판 뜨러 가니까 꼭 나와라!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고. 내일 점심때 데리러 갈게.” 이 문자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지 않았다가 그 녀석들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그렇다고 가자니 그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잖아.’ 할 수 없이 이 일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모든 일은 전쟁과 같단다.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하는 거지. 그때 넌 어느 편에 설 테냐?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책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서 겉으로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다. 마치 그런 것이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굳게 증거할 필요가 있다.』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때란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구원하려 하시고,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너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 하나님께선 이런 환경을 통해 분별이 생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게 하고, 사랑과 증오를 명확히 가려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는 거란다. 그 녀석들이 너한테 문자를 보내 싸우러 가자고 한 건 부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님의 뜻에도 맞지 않으니 멀리해야 마땅하단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이게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결코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난 ‘일진’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또다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거리를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 주셨다.『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온 우주를 주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므로 그가 택한 각 사람의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매사는 하나님으로 놓고 말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다. … 네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 앞으로 올수록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고 안심하며 위안을 느끼고 누림을 얻게 되지만 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찾을 줄 모를수록 하나님은 더욱 상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주의 모든 사물을 하나님께서 주관 하시고, 모든 일 또한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그 녀석들이 학교에서 나를 찾아오는 것도, 다른 애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어. 그들을 따르지 않기로 한 이상 나는 이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해! 비록 내가 어린 나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성장할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나를 책임져주실 거야.’ 여기까지 깨닫자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일진’들과 확실하게 선을 긋고, 단호하게 그 녀석들에게 말할 것이다. “안녕!” 이라고! 그 후, 그 녀석들이 날 찾아올 때면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할 수 있었다.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 굳건해 보였는지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고, 날 괴롭히지도 않았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변 환경을 주재하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수중에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어려운 점을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에 ‘일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주먹을 휘둘러 범죄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것을 보며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타락된 길을 가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인 것이다. 나를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과 권능과 찬미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이 세대의 사람들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남방의 것이든, 북방의 것이든,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 특산물 등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과일은 있어도,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대약진 운동때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이렇게 좋고 또 건강에 몹시 신경을 쓰는데, 마땅히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건강해 지고, 더 장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왜 지금 비만, 뇌혈전, 각종 암, 백혈병 등등 각종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근에 더 많은 희귀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장수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저의 동료를 놓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는 가정환경이 매우 좋아 임신 후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도 되지 않아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20살을 넘기기 힘들테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질병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하던 데로부터 현실에 직면하고, 예사로 여기던 데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갖은 애를 다 써도 이런 질병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논조로 얼버무려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는 말씀 중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의 진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사회 발전으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지고 정보가 발달하여 동서남북이 서로 관통되면서 북방 사람들도 남방의 과일이나 남방의 특산물 혹은 야채들을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식탐과 물욕을 만족시켰지만, 사람의 몸은 오히려 각기 다른 정도로 해를 입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먹거리에는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방에서 태어났다면 남방의 것을 먹어야 아주 적합하다. 남방의 그런 기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까지도 예비해 놓았다.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식탐이 점점 심해져 사회의 발전 추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법칙을 어기게 되었다. 비록 사람은 지금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여기지만, 이런 사회의 진보는 아주 많은 사람들 몸에 보이지 않는 해를 끼쳤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예비해 주고, 사람에게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을 예비해 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연법칙을 어기고 과학을 발전시켜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풍부하여 지역마다 그곳의 특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홍대추(보통 대추라 함)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호두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땅콩과 각종 견과류가 많이 나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다 사람의 육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또 그 시기에 따라 적당한 양으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하고 식욕을 만족시키기를 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이 자랄 수 있도록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을 쉽게 어기고 파괴하게 된다. 앵두를 예로 들어 말해 보자. 앵두는 다들 알고 있겠지? 앵두는 몇 월에 나느냐? (6월입니다.) 대략 6월쯤에 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몇 월이면 끝나느냐? (8월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2개월 동안 먹을 수 있다. 앵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2개월뿐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시켰는데, 다음 해에 앵두가 새로 나올 때까지 연장시켰다. 즉, 1년 내내 앵두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정상이냐? (비정상입니다.) 그럼 앵두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냐? 바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신선하게 보관해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고, 또한 사람 몸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이미 지난 다음에는 어떤 화학 물질을 써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자라면서 구비한 성분들을 유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화학 물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해는 사람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알았겠지? 지금 시장 경제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냐? 남방과 북방의 교통이 편리해져 1년 사계절 각종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방 사람들도 늘 바나나를 먹을 수 있고 남방의 어떤 음식이나 특산물 혹은 과일도 먹을 수 있어 마치 사람의 생활은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시장 경제가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정상적인 자연 생장 법칙을 어기는 것이고, 가져다준 것은 해로움과 치명적인 재난이지 행복이 아니다. 알았느냐? (네.) 포도를 보아라. 지금은 시장에서 1년 사계절 판매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포도는 따고 나면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아주 짧다. 그 포도를 이듬해 6월까지 보관한다면 그때도 그것을 포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포도에는 포도의 원래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 1년이란 시간이면 신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양 성분도 이미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를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좋다! 3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까? 한 알이라도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만약 흥미를 느낀다면 화학 약품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포도를 가져다가 그것의 성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성분이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연구해 보아도 좋다.......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먹거리를 예비해 준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물질적 음식을 탐하라고 한 것이냐? 사람이 그런 물질적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 과다가 되지 않겠느냐? 영양 과다로 몸에 각종 질병이 유발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면 절대로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알맞게, 서로 다른 시기와 계절에 따라 사람에게 각기 다른 먹거리를 누리도록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몸 안에 적지 않은 열기와 습기, 건조함이 쌓이는데, 가을에 많이 나오는 과일을 먹으면 그 습기와 건조함이 제거된다. 동시에 소와 양도 튼실하게 자라 사람은 육식으로 몸보신할 수 있다. 사람이 각종 육류를 먹고 나면 몸에 에너지와 열량이 생기고, 엄동설한 추위를 막아 낼 저항력이 생겨 매서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시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예비해 주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지는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안배해 놓은 것으로, 적절한 한도가 있지만,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의 생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류가 부단히 고품질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위반하고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지역에 맞추어 인류에게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지대, 여러 체질의 사람들의 수요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음식물 또한 계절과 시간을 나눕니다. 어느 계절에 무엇을 먹어야 인체에 가장 유익할지 조물주께서 이미 세심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만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인식이 없어 무턱대고 식욕을 탐하고 육체의 향수를 탐하여 각종 과학적인 수단으로 음식물의 생장주기를 조절하여 유통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각종 비철 채소와 과일들이 도처에 널려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인 생활은 풍부해졌고 사람들의 식욕도 만족을 얻었고 시장경제 또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람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각종 희귀병으로 인한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런 질병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탄이 인류에게 주는 쓰라린 경험과 재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오직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모든 파괴를 중단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진정으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에게 방법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니냐?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