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2019년 01월 17일

한 농가의 뜰 안에서는 서연 일가족이 태어난 아기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10일 된 아기를 보고 있는 서연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서연은 기쁨과 동시에 외손자를 얻기 위해 겪어온 쓰라린 추억들을 떠올렸습니다….

딸의 불임에 사방으로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하다

서연은 결혼한 후에 1남 1녀를 낳았습니다. 딸은 특히 말을 잘 듣고 철이 일찍 들었습니다. 그녀의 딸은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고 또 엄마를 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했습니다. 서연도 딸을 손바닥 위의 진주처럼 아꼈고 애지중지했습니다.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자 서연은 본인 마음에 드는 집안을 찾아 딸을 결혼 시키려고 애썼고 딸이 결혼한 후에야 한시름 놓았습니다. 하지만 딸은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고 이 일로 인해 서연의 마음은 조급했습니다. 남들이 아이를 품에 안는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고 속으로 ‘나는 언제 남들처럼 외손자를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외손자를 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서연은 딸을 데리고 사방으로 의사를 수소문해 보았고 불임증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기만 하면 거리가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딸을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양의사가 안 되면 한의사를 찾아갔는데 마침내 한의사에게 딸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서연은 속으로 아주 기뻤고 이번에야말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년 동안 한약을 먹으며 약 167만 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딸은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의사는 그의 딸이 너무 뚱뚱해서 임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서연은 의사의 말을 믿고 딸에게 다이어트를 하도록 권했습니다. 매일 저녁 딸에게 밥을 먹지 못하게 하여 체중은 감소했지만, 역시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서연은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딸의 자궁에 달걀 크기 정도의 낭물혹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 같은 심정에 서연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가련한 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속으로 ‘이젠 끝이야. 딸이 임신할 가능성이 없잖아. 어떻게 이런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연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의사에게 “의사 선생님, 약을 먹으면 물혹이 없어질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의사가 “약으로는 불가능하니 수술해서 제거하는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러면 제거한 후에는 임신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나요?”라며 서연은 조급한 심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당연히 약간의 영향은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서연은 딸에게 감히 수술하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순간 서연의 머리는 백지상태였고, 병원에서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몰랐습니다. 이 일로 인해 서연은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의사의 말이 반복적으로 떠올랐습니다. 또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썼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으며, 한의사를 포함한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들은 대를 잇기 위해 며느리를 얻는데, 우리 딸은 사돈댁을 위해 아이도 낳아줄 수 없잖아. 나중에 사돈은 우리 딸을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대할까? 어쩌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몰라. 딸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또 무슨 행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한평생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아직 젊은데 버텨낼 수 있을까? 딸이 불행한데 엄마인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서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되고 두려웠고, 속이 벌컥 뒤집히고 감정이 복받쳐 올랐으며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는 더는 누워있을 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렸고, 눈물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의사를 찾았지만 실패를 당한 그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다

이때, 그는 본인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울면서 본인의 고초를 하나님께 기도로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 제 딸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어떻게 실행해야 당신의 뜻에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앞길을 인도해 주셔서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당신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도록 해 주시길 구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그녀의 답답했던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는 식탁에 앉아 하나님의 뜻을 묵상했는데, 갑자기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이 생각나 하나님 말씀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지만 어떤 자녀를 몇 명 두게 될지는 계획이나 바람처럼 되지 않는다. 즉, 무일푼임에도 많은 자녀를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부자임에도 슬하에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다. 딸이나 아들을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서연은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의 운명은 다 하나님 손에 있고 우리 스스로 장악할 수 없지. 하물며 딸의 운명은 어떻겠는가? 역시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딸에게 언제 아이가 생기든, 아니면 아이가 없든 혹은 자녀가 몇 명일지는 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어.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딸의 임신을 위해 의사를 찾아다녔고 또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했어. 이 일로 인해 먹지도 자지도 못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고생을 사서 한 것이 아닌가? 자손들은 다 제 복을 갖고 태어나는 거야. 딸에게 몇 명의 자녀가 있을지, 복인지 화인지도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그분께서 정해놓으신 거야. 오늘부터 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배워야 해.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고 서서히 이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고, 더는 딸의 임신을 위해 고민하고 염려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그의 근심과 걱정이 점차 사라졌고 더는 그 일로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서연은 딸에게 “나는 더는 의사를 찾지 않고 쓴 약을 너에게 마시도록 하지도 않을 거야.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자. 자식이 있는 운명이라면 언젠가는 있게 될 거야. 만일 네가 자식이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는 거야. 속담에 ‘운명에 아이가 없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있어.” 이 말에 딸이 동의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서연은 더는 딸의 일로 병원을 찾지 않았고 이전의 평온했던 생활로 되돌아왔습니다. 내적으로도 더는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모든 것을 순리에 따르니 아주 좋았습니다. 서연이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자 했을 때, 한 친구의 말 한 마디가 그를 또 고통 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또다시 고통에 빠지고, 그 속의 사탄의 독소를 분별해내다

어느 날 서연은 길에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서연의 딸이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말했습니다. “임신이 안되는 것은 좋은 거야. 나의 한 친척도 역시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고 나중에 임신이 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자궁에 물혹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물혹이 태아와 함께 자랐어. 임신 3개월이 되었을 때, 물혹이 커지게 되자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유도분만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다시는 임신을 할 수가 없게 되었어.” 서연은 친구의 말을 듣고 속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속으로 ‘설마 정말로 딸은 한평생 임신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딸이 늙었을 땐 어떡하지? 차라리 딸에게 아이를 입양하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아이 많이 낳는 걸 원치 않잖아, 입양하려고 해도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연은 딸이 임신이 되지 않아 다시 걱정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며 불안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딸을 당신의 손에 맡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말에 저도 모르게 또 딸의 문제로 인해 걱정했고 마음은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이 일로 구속을 받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길 구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 말씀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로 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해독과 봉건사상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당하여 패기가 없게 되었고, 의지력이 없게 되었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와 같은 객관적인 요소들에 의해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품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이 만들어졌다. 사람은 모두 공포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기를 꿈꾼다든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하는 것이다. 몇만 년, 몇천 년, 몇십 년 전, 심지어 지금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본 후 본인의 그런 고통은 원래 다 사탄이 초래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인류를 타락시켰고 아울러 수많은 사탄의 독소를 우리에게 주입했습니다.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다’ ‘대를 잇는다’ ‘자녀를 양육하여 노후를 대비하다’ 이렇듯 사탄은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후대를 위해, 우리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고생하도록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한평생 그런 독소로 살아가게 하는데, 딸이 임신을 못 한 것으로 사돈 집안을 위해 자녀를 낳아주지 못하면 불효라고 하며,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그 집안에서 영원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임신을 못 해 자녀가 없으면 노년에 부양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탄의 사상과 관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딸이 임신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걱정되어 조급한 마음에 딸을 데리고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녔고 많은 약을 먹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하든 딸의 병을 고쳐 임신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적지 않게 쓰고 많은 고생을 했어도 여전히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 살면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고 몸과 마음은 고달플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사탄이 그야말로 너무나 비열하고 사악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변에 많은 사람은 자식이 적지 않지만 이혼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몇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자녀의 불효로 부모가 집 밖으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딸이 임신해 자식을 낳아야만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 자녀가 있으면 정말로 노후 걱정이 없습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 없이 사탄의 독소와 생존 법칙에 따라 산다면, 자녀가 아무리 많아도 진정한 행복이 없고 고통과 괴로움만 더 많아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추구해야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실행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다

서연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배치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난 후 서연에게는 뚜렷한 목표와 방향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굴레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과거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 자신 안에 낡은 사상과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물을 보며 자신과 딸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서연은 더는 옛길을 다시 걷지 않고 철저히 사탄의 허튼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에 딸이 임신하든 못하든, 사돈 집에서 딸을 어떻게 대하든, 혹은 이혼을 하든 안 하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배치하시도록 했습니다. 또 자신의 선택이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배정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서연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했을 때, 그의 마음은 탁 트였고 이전의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서연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하나님께서 주신 자녀,

하나님의 은혜, 딸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다

눈 깜짝할 사이에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사돈집에서는 임신하지 못한다고 딸에게 화풀이하지 않았으며, 서연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서연이 갑자기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았는데 임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이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해야 하지만, 서연은 결코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친구의 친척이 임신하여 유도분만을 했다고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딸도 친구의 친척처럼 임신했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만일 태아에게 무슨 불행한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딸은 그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지만 서연은 과거의 체험으로 자신의 걱정은 소용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딸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자궁에 물혹이 아직 있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살 수 있을지는 당신의 손에 있고 당신이 결정하십니다. 이 일을 당신께 맡깁니다. 딸이 순산할지의 여부를 떠나 저는 당신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어떤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서연은 더는 걱정되거나 두렵지 않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임신 3개월 후 서연은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했습니다. 그런데 물혹이 사라지고 태아도 형체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연은 놀람과 동시에 매우 감동되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기묘하신 행사를 보았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전능하시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가 있게 하십니다. 딸의 자궁 속 물혹이 사라졌고 뱃속의 아이도 아주 잘 자라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임신 9개월이 지나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엄마….”하고 딸이 부르는 소리에 생각에 잠겼던 서연은 정신을 차리고 모두가 분주한 것을 보았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은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건만, 약을 먹지 않고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좋아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은 아기가 아주 예쁘다고 말을 했습니다. 서연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 속에 있음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행사는 정말로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탄의 독소에 따라 딸을 위해 걱정하고 고생했던 일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많은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았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음에도 딸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내려놓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고, 더는 자기 뜻에 따라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을 때, 딸은 오히려 임신했고 또 건강한 아기를 순산했습니다. 그리고 자궁 속의 물혹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은 너무나 전능하시고 실제적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연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권능을 보았고 만사만물이 정말 당신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딸에게 자식이 있을지의 여부는 누구의 결정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당신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주재하고 배치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서연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다이어리] 하나님께서 나의 양심을 지켜주셨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심장이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왜냐하면 노인복지관에 채용 전 업무 테스트를 받으러 가기 때문이다. 만약 채용된다면 난 꽤 괜찮은 일자리를 구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보다 생활 리듬이 빠르다. 밥을 먹는 속도나 길을 걷는 속도도 빠르고, 일할 때도 두뇌 회전을 빨리해야 하고 동작도 민첩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의 빠른 생활 리듬에 적응하지 못해 업무 테스트를 받고도 채용되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오후에 복지관에 도착한 후에도 떨리는 마음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묵묵히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긴장되는 업무 테스트가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침내 사장님이 나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불안했던 마음이 드디어 진정되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흐림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 이른 아침에 식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아침을 배식할 때, 카트를 밀다가 실수로 비닐봉지가 찢어져 버렸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츄러스 몇 개가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크게 놀랐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속으로 ‘이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 하다니… 이걸 사장님이 알면 날 해고하지 않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오지도 못하잖아. 에잇. 어쩔 수 없어. 난 크리스천이니까 솔직하게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게 맞아. 그 후엔 사장님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 전부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다. 복지관으로 돌아온 후, 나는 전전긍긍하며 사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츄러스 비용은 임금에서 제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괜찮아요. 이따 더러워진 부분을 잘라내고 아침밥으로 드세요.”라고 했다. 사장님의 대답에 나는 감격해서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사장님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밥을 나눠줄 때, 사장님이 더러워진 츄러스를 모두 꺼내 대충 먼지를 털고는, 그걸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나는 속으로 너무 겁이 났다. 어르신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사장님과 함께 사람들을 속이는 거잖아? 그러다 어르신들이 그거 먹고 탈이라도 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정말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더러워진 츄러스는 제가 변상할게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사고를 친 사람은 나인데, 사장님 말을 듣지 않다가 해고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잇, 아니야, 그냥 입 다물고 있자. 계속 일하려면 사장님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지 뭐!’라고 생각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플라스틱 일회용 도시락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자, 사장님이 다가와 말했다. “일회용 도시락통은 싱크대로 가져가서 씻으세요. 그리고 내일도 계속 이걸로 쓰세요.”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쳐다보았다. 이건 너무 더럽다고, 아무런 소독도 하지 않고 재사용했다가 어르신들이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장님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거 씻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돼요.” 사장님의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고,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온 말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나 같은 임시직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이렇게 해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장님 앞에서는 마지못해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식기들을 씻기 시작했다. 퇴근 후, 내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내가 한 교활한 행동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정말 해고당하면 어떻게 하지?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소독도 하지 않은 일회용 도시락통을 재사용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것인데 이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게 궤사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어르신들은 우리가 뒤에서 이런 수작을 부렸다는 걸 모르겠지만, 내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모두 감찰하고 계실 것이고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인데, 이것이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란 말인가?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통해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속여선 안 되며, 이는 양심에 어긋나는 짓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행동이란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솔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일자리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다고 사장님에게 꼭 말할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일에서든지 절대 누군가를 속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의지를 주십시오. 제발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린 후, 출근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꼭 사장님께 양심에 어긋나는 이런 일은 못하겠다고 말하리라 다짐했다.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맑다가 흐림 오늘 나는 자신만만하게 출근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었고 사장님께 내 생각을 말할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관에 도착하자, 취사 담당 동료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사장님이 자네를 해고할 생각이라고 했어. 나 혼자 이 일을 하라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풀이 죽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실행하려고 했던 의지도 전부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날 해고하려는 마당에, 시킨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보면서 옆에서 마작하는 사장님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이걸 씻으려니 진솔한 사람이 아니고, 그럼 하나님 앞에서 증거를 잃는 꼴이 되고. 이걸 안 씻으려니 사장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자리에서 해고당할 거 같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마음도 너무 불안했다. 그 순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일회용 식기들을 몰래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하나님께도, 사장님한테도, 미움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장님이 내 쪽에 신경을 쓰지 않은 틈을 타, 오래된 식기 들을 얼른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위에 다른 쓰레기를 놓고 안 보이게 덮었다. 이렇게 하면 사장님한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만에 하나 사장님한테 들키면 한바탕 욕을 먹고 바로 해고될 텐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는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사람을 기만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부터 나는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 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할 신심도 없고 용기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부디 저를 다시 한 번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너는 육체를 버릴 용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소극적이거나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네가 진솔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고 뒤에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궤사한 사람들은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고 …』 하나님 말씀을 본 후, 진솔한 사람은 진리와 육체의 이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육체의 이익을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솔한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겉으로 하는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일들을 반성해보니,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계속 어르신들을 속이고 더러운 츄러스를 나눠줬으며, 이미 사용한 일회용 용기를 씻어서 재사용했다. 나는 이것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감히 사장님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의미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진리를 행하지 못했고 진솔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다. 진리를 행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태도가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마음 아프게 했다. 사실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해고를 당할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내가 할 것은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은 내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다. 일자리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장님께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며칠 동안 제게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이미 사용한 일회용 식기를 씻어 재사용하라고 시켰습니다. 저는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그런 행동을 싫어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제게 그 일을 계속 시킨다면,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못 하겠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장님한테 전화가 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가 생길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때 나는 진리를 행한 후 마음이 편안해지고 홀가분해지는 것을 직접 느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5월 4일 토요일 맑음 사장님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다시는 누굴 속이는 일을 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아침 식사 때마다 어르신들은 우유와 두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유가 우유보다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걸 안 사장님은 두유에 물을 섞었다. 그리곤 내게 어르신들이 두유를 많이 마시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물어보지 말고 바로 두유를 떠주라고 했다. 사장님이 그렇게 시켰지만,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화가 난 사장님이 날 해고할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사장님은 나를 구석진 곳으로 부르더니 다시 주의를 주었다. “여기 어르신들은 별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두유를 떠주거나 아니면 두유를 마시도록 더 강하게 유도하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이 말을 들은 후, 내 머릿속엔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내게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같이하자고 유혹하는 걸 분명히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퇴근하면서도 계속 이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성경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고 자신과 동침하자며 권세를 이용해 요셉을 협박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기에 감옥에 갇힐지언정 그 여자의 악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돈을 아끼려고 어르신들이 두유를 마시게끔 하라고 내게 시켰을 때,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할까 걱정되어 진솔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다! 난 다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야 다시 찾으면 되지만 계속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면 하나님께 미움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진리를 행하는 의지와 힘이 생겼다. 집에 돌아온 후,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직원인 저는 반드시 사장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기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만일 사장님이 시킨 일과 하나님의 가르침이 충돌하면 저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살아가는 원칙입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정상 사람의 언행이 있다는 것은 말할 때 조리가 있고,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며, 말이 사실에 부합되고 매우 적절하며, 기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에는 “진솔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가식 없이 솔직하다.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람의 교통으로 진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의 실행 의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설령 이번에 해고를 당해 앞으로 다른 곳에 출근하게 되더라도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훈련을 계속하여 내 몫의 일은 반드시 잘 해낼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내게 남을 속이라고 하거나,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흐리다 맑음 정말 뜻밖에도 그날 사장님은 나를 해고하지 않았다. 나는 해고하는 것도 계속 일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보았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내 의지도 더욱 커졌다. 며칠 전 아침 배식할 때였다. 어르신들은 다들 우유를 마시고 싶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그래도 두유를 더 많이 팔고 싶어했다. 내가 우유를 뜨는 걸 보더니 얼른 말했다. “우유 다 떨어졌다고 하세요.” 하지만 난 우유 한 통이 더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이때,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사장님이 유혹한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난 사장님이 좋아하든 말든, 나를 해고하든 말든, 진리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고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 했다. 그 후, 우유를 마시겠다는 어르신들에겐 계속 우유를 드렸다. 나중에 우유가 진짜 동이 난 후에야 우유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곁눈으로 화가 난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지만 난 이미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사장님은 청소할 때, 교활한 수단으로 어르신들을 눈속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또 내게 양심을 속이는 일을 시킨다는 걸 분별해낼 수 있었고,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너희는 반드시 시시각각 깨어 기다려야 한다. 내 앞에 자주 있으면서 사탄의 각종 음모와 궤계를 간파해야 하고, 영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하며,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청소할 때도 더러운 곳이 있으면, 사장님이 따로 시키지 않더라도 알아서 청소한다. 나중에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여기에 청소하러 온 사람이 엄청 많은데, 단 한 사람도 여기 더러운 곳을 청소한 적이 없어요. 저분은 정말 근사 하네요.”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사장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정말 잘했어요.” 복지관 어르신들도 자주 내게 “복지관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지금까지 아무도 여길 치워준 사람이 없었거든요.”라고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하나님 뜻에 맞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돈과 명예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닌 지난 날

항상 삶 속에서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그는 갑자기 신장염이 도져 죽고 싶을 정도로 슬퍼했습니다. 절망 중, 그에게 복음이 임하여 희망의 불을 지피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그의 심령이 소생케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장사의 성공 비결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2008년, 나는 둘째 형과 동업해 제과점을 열고, 빵, 카스텔라, 과자 등 다양한 제과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 계란 역시 100리 가까이 달려가 신선한 것으로 구매했다.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첨가제 등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분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나날이 지나가고, 장사도 점점 잘 됐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연말에 결산을 할 때, 원가를 제하고 단돈 900원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마을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또 내고 속으로 이번에는 장사가 분명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손님은 정말 전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제과의 품질이 마을에서 좋게 소문이 나서 어떤 과자와 카스텔라는 또 슈퍼마켓에 도매로도 팔렸다. 나날이 상승하는 판매량을 보며 나는 마음이 흐뭇했다. 연말에 잔뜩 기대하며 연 수입을 계산했을 때, 우리가 번 돈이 겨우 일상 지출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의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수입이 적어 남는 돈이 없다면 나중에 형의 가정이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가게에 와서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만든 카스텔라는 다른 집보다 못한 것 같네요!” 나는 손님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얼른 물어보았다. 손님이 대답했다. “여기서 파는 카스텔라는 색깔이 덜 노래요. 계란을 많이 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손님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집 카스텔라가 노랗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넣은 계란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왜 색이 노랗지 않는가? 이 때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처럼 카스텔라를 만들어 팔아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계란을 더 넣게 되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러나 계란을 더 넣지 않으면 색이 좋지 않아 사는 사람이 또 많지 않고, 많은 손님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카스텔라의 색깔을 보기 좋게 하려면 색소를 넣어야 해. 정직하게 계란을 넣는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게다가 색소를 넣으면 계란은 조금만 넣으면 돼. 겉으로만 봐서는 계란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무도 몰라. 장사를 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돼. 돈을 벌고 싶으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을 좋아해. 영양이 없더라도 보기 좋고, 맛만 있으면 돼. 그러면 사려는 사람이 많지.”나는 그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카스텔라는 좋은 식재료를 썼지만 손님은 이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보았다. 친구는 나처럼 2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 정작 본인은 본전만 겨우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색소를 넣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안했다. 식용 색소라고는 하지만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인데...... 갈등하던 중 내가 제과 일을 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사촌 형이 말했다. "색소를 넣으면 되지. 정직하게 장사하면 정말 돈을 벌 수 없어. 지금 사회가 그래. 네가 돈을 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도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제과점을 봐. 몇 년 동안 장사하더니 차도 사고, 집도 샀잖아. 그게 다 그렇게 번 것 아니겠어? 네가 안 넣는다면, 내가 먼저 넣을게." 그 후, 사촌 형은 정말 계란 대신 색소를 쓰고, 최상급 샐러드유 대신 드럼통의 보통 식용유로 바꿨고, 밀가루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바꿨다. 사촌 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전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는데 형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색소를 샀어. 네가 만들때 조금 넣어."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은 괴로웠다. 이 색소라는 것은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 하지만 형이 이미 사왔고 사촌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도 모두 넣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럼 조금만 한 번 넣어 볼까? 이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색소를 쏟아 부었다. 과연, 색소를 쓰고 난 후 카스텔라의 색깔이 보기 좋아졌다. 그런 금빛 찬란한 카스텔라를 보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손님이 먹고 탈이 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손님과 마주할 때 마음이 찔려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이 무엇에 짓눌린 듯 괴롭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손님한테도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돈의 유혹을 받아 나도 사촌 형처럼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를 쓰고, 식용유도 낮은 등급으로 교체했다. 원가가 줄어들면서 버는 수입도 많아졌고, 서서히 나의 양심의 불안도 차츰 사라졌다.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이 물욕 넘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가져야 할 양심, 도덕을 상실하고 기꺼이 이 악한 사회의 흐름에 따르고, 사탄에 의탁했다. 간사한 수단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정말 속이 검은 장사꾼이었다! 처음에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사를 하던 생각이 났다.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속임수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서 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돈은 좀 벌었지만 인격을 잃었고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조금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후회했다. 다시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었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처럼 살고 싶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리를 도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얻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오늘 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나는 더 이상 사회의 흐름을 따라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 나는 형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색소를 넣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느꼈다. 모두가 속임수를 쓰는데 나만 안 쓴다면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고 우리 가게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지닌 채 나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게 없을 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세요.”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5-26、31-33)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믿음을 주었고,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의 일, 생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나의 장사가 좋고 나쁘고, 카스텔라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하니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 욕심이 너무 커서 돈에 두 눈이 먼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배불리 먹고,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떳떳하게 살면서 광명정대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어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사했다. 더 이상 색소를 쓰지 않았고 품질이 낮은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모두 바꿨다. 손님이 내가 만든 카스텔라가 색깔은 안 예쁘지만, 아주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그분에게 카스텔라에 색소를 넣지 않고 계란만 넣었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손님은 듣고 나서 나의 방법을 칭찬했고, 주위에 내가 만든 제과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위안이 되었다! 그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식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두 우리 집의 제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도매상이 우리 가게의 한 과자를 맘에 들어 하면서 주동적으로 도매에 나섰다. 나중에 우리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도 아주 잘 됐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가 속임수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을 때 뜻밖에도 매상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는 마침내 벗어났습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저에게는 늘 하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키 크는 것이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저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작았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과 매번 고무줄 놀이를 하면 높은 단계에서 무척 난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키가 빨리 크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학창 시절, 친구들은 연극에 뽑혀서 공연을 하는데 저는 키가 작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또 괴롭기도 했습니다. 수년간의 학창시절에 자리 배치를 하거나 혹은 조회 때 줄을 서면 저는 항상 변함없는 앞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몹시 고민했습니다. ‘나는 언제 키가 커서 뒤쪽에 설 수 있을까? 그러면 앞줄에서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특히, 나이는 점점 먹어 가는데 키는 크지 않으니 저는 속앓이를 했고, 또 “부모님은 나를 왜 이렇게 작게 낳으셨지”라며 원망도 했습니다. 저는 키 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생각했습니다. 운동하면 키가 큰다는 말을 듣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그대로였습니다. 또 우유를 많이 마시면 키가 자란다고 해서 고칼슘과 고철분 우유를 몇 년 동안 마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키가 크기는커녕 살만 쪘습니다…… 직장에 들어간 후, 동료들을 보니 몸매가 좋아 예쁘고 몸에 맞는 옷을 사는데 저는 작은 키 때문에 옷을 사는 것도 제 맘대로 되지 않으니 키 크고 싶은 욕망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래서 취직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두 달치 월급으로 키높이 구두 깔창 30개를 구입한 것입니다. 1년 동안 하루에 1개씩 바꿔가며 신었는데 그해는 정말 고통스러운 한해였습니다. 중국 남쪽의 여름은 빨리 오는데 저는 더위에 약합니다. 그러나 깔창을 깔아야 하니 샌들을 못 신고 삼복 더위에도 구두를 신었는데, 1년 후 키를 재봤더니 조금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키 크는 비법이 어디 있나 시시각각 늘 관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키 크는 데에 효능이 좋다는 약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바로 몇 개월 치를 구입했는데 얼마 안 돼 또 한번 실망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적령기 때는 일찍 결혼하면 키가 큰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당시에 마음이 흔들려 차라리 아무나 만나 시집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생각으로만 그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희망을 품었다가 실망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썼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효과는 오히려 아주 미비했습니다. 저는 너무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 내 키는 어쩜 이렇게 크지 않는 걸까?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혹시 운명일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선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다.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를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기 때문에 운명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늘 대항하는 정서가 있고 늘 거역하는 태도가 있으며 또한 늘 하나님의 권세에서 벗어나려 하고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 하고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나려 하며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자기의 운명을 바꾸려고 망상한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곳곳마다 난관에 부닥친다. 이런 영혼 깊은 곳에서의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런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고 동시에 또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 헛되이 소모시키고 있다. 사람의 이 고통은 어떻게 초래된 것인가? 하나님의 주재가 가져다준 것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쁘기 때문인가? 아주 뚜렷한바, 이 양자는 다 아니다. 결국 모두 사람이 걸은 길 때문에 초래된 것이고 사람이 택한 생존 방식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아마 일부분 사람들은 아직 이런 것을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네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너에게 있어서 너무나 유익한 점이 있고 너무나 큰 보호임을 참으로 인식하게 될 때 너는 이런 고통이 점차 경감되는 것을 느낄 것이고 너의 전인도 점차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해방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마침내 막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조물주께서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늘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제 노력으로 신체 조건을 바꾸려는 망상을 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영혼 깊은 곳에서의 몸부림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것을 모를 때 사람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고통은 조물주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사람의 운이 나쁘기 때문도 아니며, 바로 제 자신이 택한 생존 방식과 추구한 목표가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새, 어류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나무, 화초와 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고 여섯째 날에 만든 가축, 곤충, 야수를 포함해 하나님이 보기에 다 좋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중에 이런 일이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완전무결함에 도달하였고 하나님이 이르려는 표준에 도달하였다. 조물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하고 있다. 그가 창조하려는 것이 한 가지씩 나타났는데, 매 한 가지의 나타남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의 체현이자 역시 그의 권세가 가져온 결정체이다. 이런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게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조물주의 공급에 감사를 드리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흑암하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그의 안중에 모두 좋고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만물은 그것만의 존재할 가치와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몇십 년을 돌아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고 고민 속에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본성이 오만해 늘 남보다 좀 뛰어나고 싶었지만, 키가 작은 탓에 제 자신에 대해 항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그나마 겸손할 수 있었고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제 몸집은 작지만 하나님은 똑같이 저를 이끌어 생명을 공급해주시고 또 하나님 앞으로 오게 해 그분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저는 조물주의 공의와 사랑스러움을 더욱 느끼게 되어 더 이상 마음의 고통을 받거나 몸부림치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오직 조물주의 안배에 순응하고 또 인생의 목표와 생존의 의의를 다시 찾고 조물주의 뜻을 알아야만 고통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저를 고통 가운데서 걸어 나올 수 있게 해주시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1)

어느 여름 방학 오후, 숙제를 마치고 할머니를 도와 일을 끝내자 학교 친구인 임호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도운, 계집애처럼 집에서 뭐해?”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쉬고 있어” 임호는 비밀스럽게 “가자. 내가 재밌는 곳 알려 줄게.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라고 말하며 피시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피시방에 들어간 저는 이곳저곳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인터넷 마니아’들은 온 정신을 집중해 눈앞의 컴퓨터를 바라보고 끊임없이 키보드를 치면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무척이나 재밌어 보였습니다. 그때 임호는 무시하는 눈빛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너 피시방 처음이지? 네 꼴 좀 봐라.” 저는 화가 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얕보지 마. 하는 법만 배우면 내가 너보다 더 잘할 거라고!’ 우리는 곧바로 컴퓨터 2대가 붙어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임호는 익숙하게 컴퓨터를 켠 후 제게 컴퓨터를 켜는 법을 알려주고 게임 아이디를 만들어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이 아이디는 네 거니까 맘껏 놀아도 돼.” 컴퓨터의 게임 화면을 보면서 마우스를 움직이니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면 속 사람이 들고 있던 총을 마우스로 움직이자 누군가가 죽었습니다. 또다시 마우스를 움직이니 다른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30분도 안 돼서 저는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습니다. 임호가 저를 부를 때는 이미 해가 다 밝은 후였습니다. “넌 나보다도 정신이 말짱하네. 집에 안 갈 거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좀 더 놀자!” 임호가 “넌 더 놀 거면 놀아. 난 집에 가서 잘래”라고 말하자 전 어쩔 수 없이 피시방 카드를 뽑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뒤로 제 머릿속은 온통 게임 화면으로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꿈에서도 게임을 했습니다… 조금씩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피시방에 갔고 하루라도 피시방에 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게임에 중독된 건가? 지금은 방학이라 괜찮지만 개학해서도 이러면 어쩌지? 에이, 신경 쓰지 말고 놀 수 있을 때 더 놀자! 개학하면 바빠서 어차피 못 놀 거야.’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개학하고 수업을 얼마 듣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게임뿐이었고 피시방에 가고 싶어 답답해졌습니다. 한번은 너무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에게 몸이 아파 병원에 간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전 지금까지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제 말을 믿고 조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전 책가방을 메고 신나게 피시방으로 뛰어가 밤새 게임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 중독이 점점 심각해졌고 저는 온갖 거짓말로 선생님과 할머니를 속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만 되면 할머니에게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제가 게임에 빠진 걸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 또 게임하면 학교는 나오지 말거라.” 할머니도 제게 게임은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시며 이렇게 가다간 게임이 절 망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독이 심해져 나중에는 아예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피시방에 가면 일주일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나중에는 타지에 계신 아버지까지 일부러 집에 돌아오셔서 절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게임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저는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화를 내면서 집을 뛰쳐나갔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니 갖고 있던 돈을 다 써버려서 더는 지낼 곳이 없었습니다. 피시방에서 잠을 자니 사장은 절 쫓아내 버렸습니다. 절 찾기 위해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고 학교에서는 저의 퇴학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욱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고 기댈 곳이 없던 그때, 어릴 적부터 절 아껴 주던 고모가 떠올랐습니다. 고모 댁을 찾아가니 고모는 이미 제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고모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돌아왔구나. 왔으면 됐다. 밥 안 먹었지? 고모가 맛있는 거 차려 줄게!” 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모가 음식을 차려 주자 전 밥 2공기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며칠간 굶었던 저는 이렇게 든든한 밥 한 끼를 먹게 되었습니다. 고모는 저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이게 다 사탄이 사람을 해친 거란다. 착하던 아이를 이 지경까지 만들다니. 가증스러운 사탄 같으니라구.”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고 한 고모의 말을 듣고 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게 제가 게임에 빠진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고모가 말했습니다. “도운, 너처럼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것은 이미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단다. 부모들도 어쩔 수가 없지. 어떤 부모는 게임 중독 치료소로 아이를 보내기도 하는데 결국 나와서 다시 게임을 한단다. 아무 소용이 없는 거지. 더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말하시며 서랍 속에서 얇은 책을 한 권 꺼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네가 그들 정상 인성에 관한 일을 말하고 정상 인성에 관한 화제를 이야기해도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흥미를 갖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 않고 듣자마자 머리를 긁적이고 반감을 가지면서 정상적인 인류와 공통 언어가 없고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면 이야깃거리가 있다....일하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일하면 얼마나 피곤해. 게임 하면 얼마나 끝내 주는데. 총알 한 방에 하나씩 쏴 죽이고! 일은 언제까지 해야 끝날 수 있지? 그래도 게임 하는 게 재미있어. 얼마나 홀가분해. 일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 뭘 얻을 수 있지?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당신이 열심히 일을 해도 하루 세 끼 밥 먹는 거 아니야? 나보다 더 좋아보이는 건 없네 뭐! 게임 하는 게 얼마나 좋다고. 거기에 앉으면 뭐나 다 있어. 가상 세계에서 살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사람에게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시간을 지켜 출근하라고 하면 어떤 느낌일까?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과 말하는데,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에게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터넷 게임이라는 사악한 추세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단다. 사람은 일단 게임에 빠지면 게임에 통제당하고 온종일 가상의 세계에 살게 돼.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공부나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생각하지 않게 돼. 심지어 정상적인 인성이 갖추어야 할 먹고 입고 자는 것조차 비정상적이게 되어서 사람 전체가 ‘무너지게’ 된단다. 그래서 옳은 길이 아니라고 하는 거야. 이같이 사악한 추세를 겪고 살아가면 사람의 마음은 방자하고 교활해지고 이기적이고 잔인해져. 심지어는 복수와 증오도 생겨난단다. 사탄은 이 같은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집어삼키고 타락시키는 거야.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인터넷에 빠져 있는지 몰라. 중독이 심할수록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단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와 원수지간이 되어서 가출까지 해.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면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단다. 인터넷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빠져서 옆 사람이 맘에 안 들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죽이고 나서도 그걸 모르고 경찰에 잡혀서야 자신이 살인했단 걸 아는 거지. 어떤 사람은 게임만 하다가 악령이 들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미치광이가 돼서 부끄러움도 모르게 돼.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게임 때문에 학업을 망치고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된단다. 도운, 너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예전에는 손에 꼽힐 만큼 공부도 잘하고 항상 스스로 공부했었지. 할머니는 네가 철이 든 착한 아이라고 항상 칭찬했어.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항상 할머니도 돕고 돌봐 드렸잖아. 하지만 지금은 어떠니? 인터넷 게임에 빠진 뒤로는 완전 딴사람이 됐어. 네 칭찬을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구나.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항상 거짓말로 돈만 받아갔지. 아버지한테 꾸지람 좀 들었다고 이렇게 집도 나가버리고 말이야. 온 가족이 다 널 걱정한단다… 이게 다 게임이 준 고통이 아닐까? 모두의 고통과 걱정은 다 네가 게임에 빠진 후로 생겨난 거잖니?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 적 있니?” 제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모가 말했습니다. “도운, 한번 이 말씀을 읽어주겠니?” 저는 책을 건네받고 읽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게임으로 대신하고 싶어지면서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어떤 애들이 게임 하는 것은 부모가 아무리 감시하려고 애를 써도 안 된다. 낮에는 안 하지만 밤이 되어 부모가 잠들고 나면 아이는 몰래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밤새도록 게임을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한 어린 아이가 열 몇시간 동안 컴퓨터 게임을 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아이는 그동안 분명히 자지 않고 계속 했을 텐데, 어느 정도까지 했겠느냐? 부모가 발견했을 때, 아이는 이미 컴퓨터 앞에서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손이나 몸은 여전히 게임을 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어떻게 죽었겠느냐?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게임을 하다가 뇌괴사로 죽었다고 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게임을 하는 것은 정상 인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냐?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왜 그것을 끊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써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이런 게임은 어떻게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떻느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너희들은 한가할 때 시간 때우려고 게임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느냐? (네.) 그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게임을 하는 것은 사회적 풍조를 따라가는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네가 요만한 일조차도 끊지 못하고 자제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하다.』 여기까지 읽자 고모는 절 보고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게임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 게임은 독약과 같아서 하면 할수록 더욱 빠지게 돼.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고 결국 전부 통제당한단다.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어지지. 끊고 싶어도 못 끊고 결국 게임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사탄이 이런 사람을 완전히 삼키는 거지. 네가 이걸 떨쳐내지 못하고 사탄이 주는 고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게임에만 계속 빠져 산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니! 계속 게임을 한다면 너 자신을 완전히 ‘망치게’ 되는 거야.” 고개를 숙인 저는 게임을 하지 않던 옛 모습을 떠올려 보니 지금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할머니, 선생님 모두가 저를 착한 아이이고 좋은 학생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숙제를 마치고 항상 할머니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게임만 생각합니다. 제가 걱정되어 타지에 계신 아버지까지 집에 오셨지만 전 아버지 말씀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항하고 가출까지 해 가족들을 걱정시켰습니다. 이제는 퇴학까지 당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고모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전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전 인터넷 게임에 얽매여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정말 옳았습니다. 이렇게 게임만 하다가 닥치게 될 결과가 전 너무 두려웠습니다. 다음 내용: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2)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다시 되찾은 아들의 건강

하나님의 능력은 크시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도 청천벽력 같은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아들이 결국 중환자실에 눕게 되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