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2019년 01월 17일

한 농가의 뜰 안에서는 서연 일가족이 태어난 아기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10일 된 아기를 보고 있는 서연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서연은 기쁨과 동시에 외손자를 얻기 위해 겪어온 쓰라린 추억들을 떠올렸습니다….

딸의 불임에 사방으로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하다

서연은 결혼한 후에 1남 1녀를 낳았습니다. 딸은 특히 말을 잘 듣고 철이 일찍 들었습니다. 그녀의 딸은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고 또 엄마를 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했습니다. 서연도 딸을 손바닥 위의 진주처럼 아꼈고 애지중지했습니다.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자 서연은 본인 마음에 드는 집안을 찾아 딸을 결혼 시키려고 애썼고 딸이 결혼한 후에야 한시름 놓았습니다. 하지만 딸은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고 이 일로 인해 서연의 마음은 조급했습니다. 남들이 아이를 품에 안는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고 속으로 ‘나는 언제 남들처럼 외손자를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외손자를 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서연은 딸을 데리고 사방으로 의사를 수소문해 보았고 불임증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기만 하면 거리가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딸을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양의사가 안 되면 한의사를 찾아갔는데 마침내 한의사에게 딸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서연은 속으로 아주 기뻤고 이번에야말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년 동안 한약을 먹으며 약 167만 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딸은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의사는 그의 딸이 너무 뚱뚱해서 임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서연은 의사의 말을 믿고 딸에게 다이어트를 하도록 권했습니다. 매일 저녁 딸에게 밥을 먹지 못하게 하여 체중은 감소했지만, 역시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서연은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딸의 자궁에 달걀 크기 정도의 낭물혹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 같은 심정에 서연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가련한 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속으로 ‘이젠 끝이야. 딸이 임신할 가능성이 없잖아. 어떻게 이런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연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의사에게 “의사 선생님, 약을 먹으면 물혹이 없어질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의사가 “약으로는 불가능하니 수술해서 제거하는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러면 제거한 후에는 임신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나요?”라며 서연은 조급한 심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당연히 약간의 영향은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서연은 딸에게 감히 수술하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순간 서연의 머리는 백지상태였고, 병원에서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몰랐습니다. 이 일로 인해 서연은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의사의 말이 반복적으로 떠올랐습니다. 또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썼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으며, 한의사를 포함한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들은 대를 잇기 위해 며느리를 얻는데, 우리 딸은 사돈댁을 위해 아이도 낳아줄 수 없잖아. 나중에 사돈은 우리 딸을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대할까? 어쩌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몰라. 딸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또 무슨 행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한평생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아직 젊은데 버텨낼 수 있을까? 딸이 불행한데 엄마인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서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되고 두려웠고, 속이 벌컥 뒤집히고 감정이 복받쳐 올랐으며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는 더는 누워있을 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렸고, 눈물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의사를 찾았지만 실패를 당한 그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다

이때, 그는 본인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울면서 본인의 고초를 하나님께 기도로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 제 딸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어떻게 실행해야 당신의 뜻에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앞길을 인도해 주셔서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당신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도록 해 주시길 구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그녀의 답답했던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는 식탁에 앉아 하나님의 뜻을 묵상했는데, 갑자기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이 생각나 하나님 말씀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지만 어떤 자녀를 몇 명 두게 될지는 계획이나 바람처럼 되지 않는다. 즉, 무일푼임에도 많은 자녀를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부자임에도 슬하에 자식이 없는 사람도 있다. 딸이나 아들을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서연은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의 운명은 다 하나님 손에 있고 우리 스스로 장악할 수 없지. 하물며 딸의 운명은 어떻겠는가? 역시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딸에게 언제 아이가 생기든, 아니면 아이가 없든 혹은 자녀가 몇 명일지는 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어.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딸의 임신을 위해 의사를 찾아다녔고 또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했어. 이 일로 인해 먹지도 자지도 못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고생을 사서 한 것이 아닌가? 자손들은 다 제 복을 갖고 태어나는 거야. 딸에게 몇 명의 자녀가 있을지, 복인지 화인지도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그분께서 정해놓으신 거야. 오늘부터 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배워야 해.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고 서서히 이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고, 더는 딸의 임신을 위해 고민하고 염려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그의 근심과 걱정이 점차 사라졌고 더는 그 일로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서연은 딸에게 “나는 더는 의사를 찾지 않고 쓴 약을 너에게 마시도록 하지도 않을 거야.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자. 자식이 있는 운명이라면 언젠가는 있게 될 거야. 만일 네가 자식이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는 거야. 속담에 ‘운명에 아이가 없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있어.” 이 말에 딸이 동의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서연은 더는 딸의 일로 병원을 찾지 않았고 이전의 평온했던 생활로 되돌아왔습니다. 내적으로도 더는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모든 것을 순리에 따르니 아주 좋았습니다. 서연이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자 했을 때, 한 친구의 말 한 마디가 그를 또 고통 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또다시 고통에 빠지고, 그 속의 사탄의 독소를 분별해내다

어느 날 서연은 길에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서연의 딸이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말했습니다. “임신이 안되는 것은 좋은 거야. 나의 한 친척도 역시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고 나중에 임신이 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자궁에 물혹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물혹이 태아와 함께 자랐어. 임신 3개월이 되었을 때, 물혹이 커지게 되자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유도분만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다시는 임신을 할 수가 없게 되었어.” 서연은 친구의 말을 듣고 속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속으로 ‘설마 정말로 딸은 한평생 임신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딸이 늙었을 땐 어떡하지? 차라리 딸에게 아이를 입양하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아이 많이 낳는 걸 원치 않잖아, 입양하려고 해도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연은 딸이 임신이 되지 않아 다시 걱정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며 불안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딸을 당신의 손에 맡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말에 저도 모르게 또 딸의 문제로 인해 걱정했고 마음은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이 일로 구속을 받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길 구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 말씀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로 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해독과 봉건사상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당하여 패기가 없게 되었고, 의지력이 없게 되었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와 같은 객관적인 요소들에 의해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품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이 만들어졌다. 사람은 모두 공포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기를 꿈꾼다든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하는 것이다. 몇만 년, 몇천 년, 몇십 년 전, 심지어 지금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본 후 본인의 그런 고통은 원래 다 사탄이 초래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인류를 타락시켰고 아울러 수많은 사탄의 독소를 우리에게 주입했습니다.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다’ ‘대를 잇는다’ ‘자녀를 양육하여 노후를 대비하다’ 이렇듯 사탄은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후대를 위해, 우리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고생하도록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한평생 그런 독소로 살아가게 하는데, 딸이 임신을 못 한 것으로 사돈 집안을 위해 자녀를 낳아주지 못하면 불효라고 하며,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그 집안에서 영원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임신을 못 해 자녀가 없으면 노년에 부양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탄의 사상과 관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딸이 임신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걱정되어 조급한 마음에 딸을 데리고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녔고 많은 약을 먹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하든 딸의 병을 고쳐 임신이 될 수 있도록 애를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적지 않게 쓰고 많은 고생을 했어도 여전히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 살면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고 몸과 마음은 고달플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사탄이 그야말로 너무나 비열하고 사악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변에 많은 사람은 자식이 적지 않지만 이혼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몇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자녀의 불효로 부모가 집 밖으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딸이 임신해 자식을 낳아야만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 자녀가 있으면 정말로 노후 걱정이 없습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 없이 사탄의 독소와 생존 법칙에 따라 산다면, 자녀가 아무리 많아도 진정한 행복이 없고 고통과 괴로움만 더 많아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추구해야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실행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다

서연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배치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난 후 서연에게는 뚜렷한 목표와 방향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굴레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과거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 자신 안에 낡은 사상과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물을 보며 자신과 딸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서연은 더는 옛길을 다시 걷지 않고 철저히 사탄의 허튼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에 딸이 임신하든 못하든, 사돈 집에서 딸을 어떻게 대하든, 혹은 이혼을 하든 안 하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배치하시도록 했습니다. 또 자신의 선택이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배정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서연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했을 때, 그의 마음은 탁 트였고 이전의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서연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딸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다

눈 깜짝할 사이에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사돈집에서는 임신하지 못한다고 딸에게 화풀이하지 않았으며, 서연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서연이 갑자기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았는데 임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치대로라면 이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해야 하지만, 서연은 결코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친구의 친척이 임신하여 유도분만을 했다고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딸도 친구의 친척처럼 임신했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만일 태아에게 무슨 불행한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딸은 그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지만 서연은 과거의 체험으로 자신의 걱정은 소용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딸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자궁에 물혹이 아직 있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살 수 있을지는 당신의 손에 있고 당신이 결정하십니다. 이 일을 당신께 맡깁니다. 딸이 순산할지의 여부를 떠나 저는 당신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어떤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서연은 더는 걱정되거나 두렵지 않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임신 3개월 후 서연은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했습니다. 그런데 물혹이 사라지고 태아도 형체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연은 놀람과 동시에 매우 감동되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기묘하신 행사를 보았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전능하시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가 있게 하십니다. 딸의 자궁 속 물혹이 사라졌고 뱃속의 아이도 아주 잘 자라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임신 9개월이 지나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엄마….”하고 딸이 부르는 소리에 생각에 잠겼던 서연은 정신을 차리고 모두가 분주한 것을 보았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은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건만, 약을 먹지 않고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좋아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은 아기가 아주 예쁘다고 말을 했습니다. 서연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 속에 있음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행사는 정말로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탄의 독소에 따라 딸을 위해 걱정하고 고생했던 일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많은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았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음에도 딸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내려놓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고, 더는 자기 뜻에 따라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을 때, 딸은 오히려 임신했고 또 건강한 아기를 순산했습니다. 그리고 자궁 속의 물혹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은 너무나 전능하시고 실제적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연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권능을 보았고 만사만물이 정말 당신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딸에게 자식이 있을지의 여부는 누구의 결정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당신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주재하고 배치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서연

시험 보기 전에 어떻게 긴장을 풀어야 할까?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바로 2012년에 치렀던 고등학교 입시 시험이었습니다. 온 가족의 기대 속에서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예상밖으로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저는 크게 낙심했고 그 후 오랫동안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이후 낙심한 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온종일 고통 속에 사는 제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겠느냐? 너희가 이 몇십 년 살아오면서 소원대로 이루어진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 발생한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일이 얼마나 되느냐?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자신도 모르게 시기를 기다리고 천의(天意)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느냐? 또한 사람을 막막하게 하고 속수무책이 되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되느냐? 그 어떤 사람이든 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기대로 가득한데, 자신의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고, 먹고 입을 것이 근심 없고, 벼락출세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자신이 일생 동안 가난하고 비천하고 불우하고 재앙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예상하고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의 결정에 달렸고 제가 살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모두 예측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시에 떨어진 이 일이 나쁜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는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자 간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시며 도와주고 계신다는 걸 느꼈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간호대학을 마쳤고 저는 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격증은 간호학을 전공한 제게 있어서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간호사 업계에 종사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5년의 학업 역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제 학비를 대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께 너무 죄송할 것 같았습니다. 제 미래와 자존심, 그리고 부모님의 애쓰신 마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큰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긴장감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매일 시험 결과를 끊임없이 상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되어 하얀 간호사복을 입으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상상을 하다가도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가족과 친구들이 날 어떻게 볼까?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전날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어서 교제하려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러는 건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결정과 배정을 따르는 것밖에 없단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주시며 제게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사람이 어디에 갈 수 있고 어디에 갈 수 없는지, 매일 어디에서 생활하고 어느 해에 어디에서 생활할지, 어느 해에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언제가 전환점이 될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맞아, 내 운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놓으셨어. 만약 간호사가 되지 않을 운명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도 소용 없는 거야. 난 피조물에 불과하니까 조물주의 결정과 배정에 따라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교제을 해주셔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운명이 좋을지 나쁠 지는 이번 시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은 창조주의 배정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간호사 시험이 곧 다가옵니다. 시험에 합격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인도해 주세요.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저의 입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의 어려운 점과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어떤 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거나 어떻게 인도해 달라고 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이 닥칠 때 진심으로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진실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어떤 때는 사람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곧 응답을 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루지 못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가장 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든든한 저의 뒷심이 되어 주시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요? 평소에 저는 항상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쳐서야 긴장되어 기도하는 저의 모습에서 너무나 양심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를 했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간호사 시험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며 절대 잊지 말라고 제게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하지만 긴장된 마음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이 생길지 전 알 수 없습니다. 시험 문제가 어려울지, 제가 공부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네. 오늘따라 길에 신호등이 다 녹색불이구나” 저는 오는 내내 보게 된 녹색불이 하나님의 인도이자 배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보러 가는 이 길이 제가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땐 저는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시험에 합결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운명을 정해놓았으므로 제가 해야 할 것은 그저 하나님의배치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마음이 안정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는 방법뿐입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리는 순간에도 전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기도를 할수록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는 하나님께 제가 당황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내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친구들은 모두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에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었습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가끔은 불안을 느끼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전 하나님께 기도했고 시험의 합격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안배임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면 마음이 더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금세 2개월이 지났고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점수를 조회하기 전에 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랐고, 순종을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성적을 조회하고 용기를 내어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과목의 점수는 각각 351점과 331점이었고 커트라인보다 51점과 31점이 높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합격했습니다! 제가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시험 보기 전의 긴장을 해소하려면 우선 목표를 너무 높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 눈앞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제 곁에서 모든 걸 인도해 주셔서 제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주시며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긴장 없이 순조롭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직한 사람은 거리낌이 없이 산다

크리스천인 그는 호주에 와서 어렵게 직장을 얻었기에 해고 될 두려움에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직장생활에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냈을까요?

‘소통하는'법을 배우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행복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해란은 집안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온종일 허무한 컴퓨터 게임에만 정신 팔려 집도 돌보지 않고 애도 챙기지 않다니… ’라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해란이 계속 잔소리를 하자 남편은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끝없는 잔소리만 해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해란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말이 조금씩 오고 가더니 30대의 이 젊은 부부는 점점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속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소리나게 ‘쾅쾅’ 치면서, 의자도 일부러 발로 걷어찼습니다. 곱게 자란 해란이 어찌 이런 울분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분을 삭히지 못해 속으로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이딴 식으로 대하지? 내가 만일 반항하지 않고 참는다면 나중에 남편이 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자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는 질세라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가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외출했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둘은 어쩔 수 없이 다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다툼이 잠시 잠잠해 졌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해란도 의자에 앉아 울분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지친 해란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플까?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 앞에 와 기도했는데,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찾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해란은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대화하는 법, 말하는 법,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너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부모의 태도도 변하지 않다 보니 그런 상황을 돌려세울 방법이 없다. 너는 주동적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고집 부리지 말고 부모에게 대항하지 말라.”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대화를 하는 목적은 작은 방면으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인성의 소통이 있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말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방면이다. 큰 방면으로 말하면, 서로의 정형을 알아보면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것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잡아 주고 도와주는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 효과가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로 지내게 되지 않겠느냐?』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해란은 자기도 모르게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연애할 때, 그들은 여가 시간이면 늘 함께 산책하면서 얘기 나누기를 좋아했는데, 서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일하면서 부딪쳤던 어려움이나 재밌는 일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로 못할 말이 없었고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결혼하여 예쁜 아이까지 낳게 되었는데, 이런 결혼 생활이 당연히 행복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과 복잡한 현실 생활로 인해 연애 시절의 낭만과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그들의 생활은 더 이상 연애 시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자질구레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아이, 직장, 양가 부모…등,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해란과 남편은 소통이 점점 적어지게 되었고, 각자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고민을 해결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였고 해란은 집안일을 마치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해방받는 이런 생활을 만끽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차츰 소통이 적어지게 되었고 대화거리도 적어지게 되면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심지어 서로가 방해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날이 갈수록 서로가 상대의 마음에 들기란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이 하던 일을 재쳐놓고 예전처럼 지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해란과 남편은 갈수록 서먹서먹해졌고 다툼도 날로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로 다투었는데, 매번 다투고 나면 그들도 매우 후회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임하게 되면 또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 사이가 너무 멀어져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부는 이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서로가 맞지 않아 이혼한 부부가 어디 한둘입니까? 사실 그렇게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생활 속의 이런 작은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가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기에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이 평소에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기 때문에 작은 갈등이 생겼고, 또 이로 인해 서로 다투다 보니 나중엔 장기적인 냉전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에 따를 것을 강요하다 보니 예전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다툼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이 가정을 위한다면 더 이상 남편과 다투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남편과 대화하고 마음속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해란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조절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남편과 속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엔 예전처럼 조급해 하지 않았고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얘기를 나눌 때에 그는 되도록 남편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속마음도 남편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실행하니 의외로 남편도 예전처럼 발끈하지 않았고 자상하게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하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이해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해와 믿음, 배려가 있었기에 서로 간의 갈등과 오해는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효과를 보게 될 줄은 해란 자신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는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남편과의 갈등도 해결하고 정상적인 관계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란은 남편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었는데, 늘 함께 얘기도 나누고 마음속 말도 하면서 일에 부딪쳐도 차분하게 상의했습니다. 게다가 해란은 실행 과정에서 자신의 패괘성정도 끊임없이 정결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실행하고 나면 진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 자신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말씀이 패괘된 인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패역과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 할 때, 점차 정상 인성과 이지도 회복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평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이 없었고, 명확한 방향성도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 자녀, 사업, 결혼, 지위등을 정신적 지주와 평생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삼았고, 살아가는 희망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

인생의 깨달음 오직 욥을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야’만 행복한 인생을 얻을 수 있다. 결혼한지 몇년차에 접어든 그는 직장인 입니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고 자식도 영리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할 수밖에 없어 그는 인생이 정말 막연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한 사람, 중년인 그는 화이트 칼라입니다. 먹고 입을 근심이 없지만 승진과 더 많은 연봉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잔업을 해야 했고 접대가 많아서 제시간에 퇴근도 하지 못해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칩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말년에 이른 부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떳떳하고 부러워 할지 모르지만 재산을 놓고 서로 다투는 자녀들 때문에 말년의 그는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삶은 다른 인생 경험을 가져다줍니다. 서로 다른 인생 경험은 또 서로 다른 고민과 쓰라림이 따르게 됩니다. 사람은 다 완벽하길 바랍니다. 가족이 화목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명예와 재물을 함께 얻어서 마음이 충실하길 바랍니다.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 불만과 유감을 가지며, 어느날 세 사람은 만나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은 화이트 칼라의 안정된 직업을 부러워했고 화이트 칼라는 부자가 사업에 성공한 것을 부러워합니다. 부자는 직장인의 가정이 화목한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다 생활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행복한 인생을 얻으리라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직장인은 윤택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먹고 마시고 놀며 즐기는 사교(社交)장소에 잡혀 제시간에 퇴근하고 싶어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이트 칼라는 사업에 성공한 사장님이 되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사람에게 속아 재산을 빼앗길까 봐 경계하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공허와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들은 그의 제삿날에야 산소에 가서 꽃바구니를 차려놓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대다수가‘직장인, 화이트 칼라와 부자’중의 한사람이 아닐까요? 가난할 때는 안일한 생활을 동경하고, 입고 먹는 것이 풍족하여 아무 근심이 없을 때는 큰 부자가 되길, 그러나 정작 큰 부자가 되고 나면 더 깊은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제비는 가을에 날아갔다가 봄이면 다시 돌아옵니다. 푸른 풀은 겨울에 시들었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몇년, 십여 년, 혹은 몇십 년동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합니다. 짧은 시간에 목숨을 걸고 금전, 지위, 감정, 혹은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는 물건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우월한 물질적 향락을 누릴 수는 있어도 마음의 평안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지위는 우리의 허영심을 일시적으로 채울 수는 있어도 마음 속의 고독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육체 관계를 잠시 유지할 수는 있어도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몇 단락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이 하나님의 명정 가운데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고, 또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라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하나님이 없는 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날,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의의가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적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에게 깊이 반성하게 하는 이 말씀을 보고 갑자기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을 깨닫게 된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출생, 성장, 가정,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는 다 조물주의 손 안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고, 사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을 다 합당하게 안배하셨습니다. 사람이 한정된 시간 내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그건 시간과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고, 남는 것은 공허함과 고통 뿐입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재된 욥에 대해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일생 동안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반듯한 아들 딸을 베풀어 주었고, 엄청난 재산과 많은 하인과 가축을 베풀어주었지만 그는 안락한 생활 속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대적할까 봐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이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욥은 확실히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 진리를 실행했습니다. 욥기 1장 21절을 보면, 후에 사탄의 시험이 닥쳐 모든 자녀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서 아내와 친구들의 조소와 조롱을 당했지만 욥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면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재산, 감정, 명예를 잃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어도 이전과 다름없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는데, 사람이 세상에세 살아가면서 수명이 길든 짧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의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복을 받든 화가 닥치든 신경쓰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몇 배의 축복을 다시 받게 된 것입니다. 더 좋은 자녀와 몇 배가 되는 재산을 얻었고 천수를 다 누릴 수 있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도(道)를 실행하여 마음속에 편안함과 평온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욥의 후반생은 계속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 속에 있었고, 더 이상 사탄의 침입과 방해가 없었으며, 그는 완전히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고뇌하고 원망하고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큰 돈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전, 미녀, 명리와 육체를 자극하는 것들이 사람에게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아 아직도 지위를 갖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는 사람,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주목받고 떠받들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리를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점점 모든 인격과 도덕을 상실하게 되고, 진정한 친구를 다 잃게 되며 주위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만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이 당신이 원하는 생활입니까? 사람은 일생 가운데서 사탄의 시험에 자주 직면하게 됩니다. 금전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지위든 권세든 다 충분히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진리의 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주 사탄의 시험에 빠집니다. 사악을 숭배하는 원인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행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겉으로 사역을 많이 하거나 좋은 행실이나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만 중요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어놓고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상고하고 실행하는 것에는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욥처럼 살면 어떨까요? 금전과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무슨 일이 닥치든 자기의 애호와 욕망과 상상대로 맹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나날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점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고 진리가 자기 생존의 근거와 생명이 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이 만족스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게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입니다. 제가 금방 본 아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늘 표면에서, 도리상에서 떠다니고 안으로 실행하지 않으며 안의 각종 정형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언제나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면 진리가 너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사실이다......네가 믿음이 있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생명이 부지중에 너의 생명이 된다. 이렇게 부지중에 너의 이 생명 안에 곧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의 요소가 있게 되고 이런 실제가 있게 되고 이런 살아 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지 않겠는가? 네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으면 너에게 부지중에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케 하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희망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아무런 난이도도 없다.” 향의(向義)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직장에서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 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면 종종 감추기를 선택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을까요? 아래 Mary의 체험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맘 편히 일하는 비결 — 다른 사람에게 틈을 남겨라

어떤 사람들은 맘 편히 일하고 싶으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맘이 안 놓이고, 걱정이 되어 혼자 감당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일에 쫓기며 스트레스까지 받게 되는데 과연 이렇게 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