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세, 죽음의 신에게 잊혀진 사람 “나는 죽고 싶습니다. 정말 살만큼 살았습니다”

2017년 1월 12일 뉴스0

요즘, 인터넷에 전해지고 있는 뉴스입니다. 한 세기 반을 산 남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 소디므조(Saparman Sodimejo)이고 인도네시아 사람입니다. 현지 사람은 모두 그를 음바 고토(Mbah Gotho)라고 불렀습니다. 2016년 12월 31일, 그는 막 자신의 146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146세, 듣기에 어쩌면 그다지 사실인 것 같지 않지만 음바 고토의 주민등록증에는 확실히 1870년 12월31일 생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만약 이 날짜가 사실로 증명되면, 그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세계 최장수 노인인 122세의 프랑스 여성 잔 칼망(Jeanne Calment ; 1875-1997)의 세계기록을 뛰어넘게 됩니다. 어떤 특이한 장수 비결이 있느냐는 질문에, 음바 고토는 자부심이 가득하게 그의 건강관리 경험을 나눈 것이 아니라 그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뭐가 있겠어요, 인내하는 거죠.”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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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英国那些事儿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비결은 어쩌면 그 사람이 세상만사의 변화를 보고 깨달은 진리일 수 있고, 혹은 단지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피로를 느껴 대충 얼버무리며 아무렇게나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간에 음바 고토가 장수를 대하는 태도는 세상 사람이 예상했던 그런 기쁨과 자부심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음바 고토 본인은 이미 자신의 생일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집에 있는 손주들과 증손들 그리고 현손들이 아직도 해마다 12월 31에 그를 위해 생일 파티를 마련해 주어 그가 또 기나긴 인생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것을 축하해 줄 뿐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 사람은 결코 즐겁지 않고 심지어 일찍이 여러 번 “나는 사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죽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음바 고토는 그렇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고독’인 것 같았습니다. 음바 고토의 젊은 시절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곁에 있던 가족이 하나 하나 그를 떠나가고 지금은 그 혼자만 남았습니다. 그 세월 동안, 음바 고토는 연이어10명의 형제자매와 4명의 아내, 그리고 그의 모든 아들딸을 잃었습니다. 비록 손자들이 아직도 세상에 살아 있지만, 그들과 백세가 넘는 노인 사이에는 시종일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손자들이 그 사람의 일상생활을 돌보아 줄 수 있고, 그를 위해 물을 따라주고 약을 줄 수 있으며, 그를 위해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다시는 그와 7,80년 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다시는 그 사람과 어떤 뉴스에 대한 관점을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다시는 그 사람에게 젊고 생기로 가득 찼었던 젊은 나날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 지금 우리 눈에는 아득히 먼 역사지만 그에게는 일찍이 몸소 겪어 온 인생인 것입니다. 이 간격이 그의 가장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

지금 그는 마치 숨 쉴 수 있는 동상이 된 듯하고, 움직일 줄 아는 기념비가 된 듯하며, 삶의 의의를 잃은 듯 하지만, 또 죽음의 신에게 잊혀진 사람이 된 듯합니다 …… 음바 고토는 “1992년부터 나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내 자신을 위해 관과 묘비를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24년 후에도 난 아직 살아 있네요. 난 정말 살만큼 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막 146세를 지내 온 음바 고토는 지금 기력이 없어 자신의 뜻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손자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력이 심각하게 쇠하여진 그의 유일한 오락 활동은 매일 라디오를 듣는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은 문어귀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는데 마치 뭘 기다리는 듯 합니다 ……

이 뉴스를 보고 난 후, 저는 탄식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고대의 역대 황제에서 지금의 고위 관리나 귀족, 심지어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세까지 살고 불로장생하고 싶어하는지 모릅니다. 고대 사람들은 불로장생을 위해 각종 만병통치약을 만들고, 심지어 각종 미신적인 주술이나 방법으로 그 목적에 이르려고 했습니다. 현대 사람들은 장수를 위해 각종 건강 보조 식품을 사용하지만 정말로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몇 안되고, 불로장생한 사람은 더욱 없으며, 오히려 창창한 나이에 요절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여러 원인으로 인해 살고 싶어하지 않는데, 바로 음바 고토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자신도 어찌할 수 없어 한 해 또 한 해를 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와 유사한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사람의 생사는 사람 자신이 장악할 수 없고, 사람의 수명은 더더욱 사람이 말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또 누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장악하고 관리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저에게 자신도 모르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분주하고 순탄치 않게 얼마나 많은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을 겪었는지, 얼마나 많은 기복을 겪었는지, 얼마나 많은 잊지 못할 날들을 지냈는지, 얼마나 많은 춘하추동을 보냈는지, 부지중에 사람은 인생가운데 몇 개의 중요한 관문을 지나 어느 덧 노년에 이르렀고 세월의 흔적은 낙인(烙印)처럼 온몸에 가득 남았다. 즉 사람의 몸은 더는 곧추서지 않고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고 또렷하게 빛나던 두 눈은 이미 어두침침해지고 주름과 기미가 가득한 피부는 예전의 보들보들하고 매끈한 피부를 대체하고 청력이 떨어지고 이가 흔들리다 빠지고 반응이 무디고 동작이 느리다…… 이때의 사람은 물타오르는 청춘 시절과 철저히 작별을 고하고 한 사람의 일생 중의 황혼기, 즉 한 사람의 노년으로 접어들게 된다. 연이어 사람이 곧 직면하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죽음인데,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는지 모르고 아무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도 모르며 더욱이 아무도 자신이 어디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인류의 생사 대권(大權)을 장악하는 것은 결코 인류 자신이 아니고 자연계의 어떤 종류의 생령도 아니라, 유일무이한 권병을 지닌 조물주이다. 인류의 생사는 결코 자연계의 어떤 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조물주 권병의 주재하의 결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3>에서 발췌)

하나님이 이 인류를 창조하셨고, 한결같이 이 인류를 인솔하고 공급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해 주신 생명 궤적 가운데서 생과 사의 법칙을 경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조물주의 안배와 주재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백세까지 살고 싶어하거나 혹은 인간 세상을 떠나 이 고통의 떠도는 생애를 끝마치고 싶어하지만, 이것마저 사람의 염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명정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음바 고토가 설령 살만큼 살았다고 느끼고, 죽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의 뜻에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밖에, 음바 고토는 비록 100세가 넘도록 장수할 수 있었지만 고독하고 공허하며 마음이 참으로 의지할데가 없어 하루 빨리 세상을 등지고 싶어합니다. 사람은100세까지 사는 것을 추구하는데, 그러면 왜 정말로 100세까지 산 사람이 또 공허하고 고독하며, 또 인간 세상을 속히 떠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결국 사람이다.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생명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넉넉한 생활과 사람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그런 공평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다. 인류는 오직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만 인류의 필요와 인류가 탐색하고자 하는 욕망과 심령의 공허함이 해결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류의 심령에 있는 공허함은 물질적인 누림이나 어떤 사람이 함께함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심령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발표하신 진리입니다. 인류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만이 사는 것이 가치가 있고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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