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불만이 가득했던 결혼 생활 어떻게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2019년 03월 16일

새벽녘, 한 줄기 햇빛이 방안을 비추자 마루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첸후이는 눈을 떠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막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친구 리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첸후이, 나 다음 주에 결혼해, 꼭 와줘!”

친구가 결혼한다는 희소식에 첸후이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전에 리리에게 괜찮은 남자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는데, 리리가 다 싫다더니. 이번에는 결혼하는 걸 보니, 남편감 집안 조건이 꽤 괜찮나 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리의 결혼식 날, 첸후이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준비를 했습니다. 10시 쯤, 첸후이는 리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신혼집 풍경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널찍한 거실, 아름다운 장식품, 세련되고 럭셔리한 가구, 이렇게 큰 집은 정말 ‘금빛 찬란’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었습니다. 첸후이는 절로 부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쩐지 리리가 결혼을 한다더니, 남편이 정말 부자인가 보네!’

나중에 결혼식장에 간 첸후이는 그 화려함에 더욱 기가 눌렸습니다.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올리는 예식에다, 사회자는 현지의 유명한 MC였고, 웨딩카 행렬도 전부 다양한 브랜드의 고급차였습니다. 눈앞의 이 모든 광경에 첸후이는 부러우면서 질투가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같이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든 외모든 내가 리리보다 나았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러 면에서 리리보다 못하구나. 결혼식의 화려함은 차치해도, 지금 내가 사는 집도 오래된 단층집이잖아. 리리가 지금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은 내가 평생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하겠지.’ 첸후이는 낙담하며 당초 배우자 선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만 성실하고 좋으면 미래에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고 섣불리 능력 없는 남편을 고른 것입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기필코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부자를 고를 것입니다. ‘아, 지금은 다 늦었어!’ 첸후이는 어쩔 수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각자 남편의 직업, 수입, 집, 차 등등을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하니 첸후이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첸후이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자리가 불편해진 그녀는 간단히 음식을 먹고 나서 총총히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첸후이의 머릿속에 계속 결혼식의 광경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기보다 잘 살았고, 자신을 돌아보니, 돈도, 차도 없고, 아직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있으니, 호화로운 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첸후이는 생각할수록 답답해서 자기가 지금 이렇게 못 사는 게 다 남편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집안 조건이 좀 좋았더라면,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 나도 집 있고 차 있는 중산층 생활은 할 수 있었을 테고, 친구들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자 첸후이는 집안의 전부가 다 눈에 거슬렸습니다. 특히 남편의 고지식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모습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하면 꼬투리를 잡고 남편에게 성질을 부리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남편은 첸후이의 기분이 나쁠 때마다 얼른 그를 달래주었습니다. 남편이 자기한테 잘하고, 무슨 일이든 양보해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억울하고, 이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살아가는 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목하고 따뜻했던 가정생활이 지금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첸후이는 남편이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가사일을 도와주고 다정하게 대화도 나눴는데, 지금은 일이 없으면 휴대폰만 쳐다보고 게임하며, 그와는 말도 섞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편의 이상 행동에 첸후이는 더욱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당신한테 시집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정말 더 이상은 못 살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첸후이는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괴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첸후이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였고, 형제자매와 자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와 함께 지내는 동안, 첸후이는 그들이 다들 소박하고, 선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이 생기면 단순한 마음으로 털어놓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 해결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사이에서는 상하 귀천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서로를 깔보지도 않았고 서로 돕고, 일으켜 세우며, 공급해 주었습니다. 다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구하며 사람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첸후이는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전에 없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 후, 첸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구애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너에게 관심이 있을지, 너의 반려자가 될 수 있을지를 개인이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와 삶을 함께할 배우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네 삶의 일부로 들어오고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배우자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결혼의 형태는 천태만상이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즐기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결혼에 불만을 가진 부부도 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을 아우르는 결혼도 있다. 천생연분인 부부가 있고 비슷한 집안의 상대와 결혼한 부부도 있다. 행복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결혼도 있다.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몰이해와 경멸을 자아내는 결혼도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절망적인 결혼도 있다. 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확 트인 그는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이 진작에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과 예식장에 들어갑니다. 결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첸후이는 남편과 만나서 사귀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이 배정하신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해 모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취향과 추구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말을 잘하고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능력 있고,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우리 요구 기준에 맞지 않으면 원망 속에 살면서 상대를 차갑게 대하거나, 상대와 기싸움을 하고, 말다툼하며, 심한 경우에는 이혼까지 감행해 자신과 가족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이때, 첸후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순종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무능하다고 싫어하며 남편을 얕잡아보고 스스로 고통 속에 빠져 산 것입니다. 남편도 그의 안색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첸후이는 더 이상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길 원하고, 더 이상 자신의 삶에 불만스러워하지 않고, 남편의 무능을 원망하지 않으며, 남편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나면 예전처럼 그렇게 억지를 부리거나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남편과 화목하게 살도록 인도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남편은 첸후이의 변화를 보며 그에 대한 태도도 누그러졌습니다.

하루는, 첸후이가 친정에 가자 이웃이 물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아직도 신혼 때 살던 단층집에 사세요? 아파트는 안 샀어요?” 첸후이는 마음이 흔들리고 당혹스러웠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이요.” 이웃이 말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아파트에 살려고 하는데, 깨끗하고 편안해서 살기 좋잖아요.” 첸후이는 이웃의 시선을 피하며 핑계를 대고 말했습니다. “저희 시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어요. 저는 단층집도 아주 좋은데요. 아파트는 나중에 생각해 보려구요.” 이웃이 떠난 후 첸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휴! 우리가 무슨 집 살 돈이 있어!’ 부지중에, 첸후이는 또 남편이 무능해서 자기의 체면이 깎였다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첸후이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혼이 당신께서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이 저보다 잘 사는 것을 보면 그래도 원망스럽습니다. 남편이 제가 원하는 행복한 생활을 주지 못한 것 같고, 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세요.’

하루는, 첸후이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트렌드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트렌드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갈수록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간에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첸후이는 사람의 모든 고통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좇아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제일이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체면에 살고, 나무는 껍질에 산다’ 등등 사악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돈을 숭상하고 물질적 향락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 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고, 양옥집과 별장에 살며, 호화 승용차를 끄는 등의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좇습니다. 아울러 이를 밑천으로 서로 높은 수준으로 비기고 자랑합니다. 돈이 있고, 잘 살면 잘난 사람이고, 그가 하는 말에도 기가 살아있고 모두가 부러워하며 아첨합니다.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무시합니다. 이런 잘못된 관점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점점 비현실적이고, 허영에 빠지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해 완전히 인성과 이성, 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모두 집안 조건이 좋은지, 돈은 잘 버는지를 봅니다. 이렇게 하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부귀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남자가 출세하면 여자도 존귀해진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시집 잘 가는 게 낫다’ 등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며 완전히 결혼관을 왜곡시켰습니다. 사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 쌍방이 함께 모든 책임을 지면서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사랑하고, 아껴주며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결혼에 너무 많은 요구와 조건이 생겼습니다. 부부간의 감정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거래로 가득합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면 결혼하고,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물질적 요구와 허영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그 결혼은 억지로 유지되거나 서로 미워하며 상처 주다가 심한 경우 이혼에 이릅니다. 지금 사회는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내연녀나 꽃뱀도 흔하게 보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깨달은 첸후이는 본인도 역시 사악한 시대 조류의 유혹을 받고 고통당한 대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전, 그와 남편은 꽤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차 있고, 집 있고, 자기보다 더 잘 사는 것을 보고 자기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때, 그는 남편의 평범하고 무능함을 싫어했고, 매일같이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자신도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들의 부부 사이는 점점 소원해져서 집안은 예전의 화목하고 따스함을 잃었습니다.

첸후이는 남편에게 대했던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추구했던 생활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건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종의 수단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지 않았다면, 첸후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본인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에게 우롱당하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되고 심지어 이혼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첸후이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부자에게 시집가서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의 남편은 밖에서 외도하고, 여색을 탐하면서 부인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집안에서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 하인처럼 굽실거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둘 사이에도 진실한 감정이 없었고 자주 말다툼하며 싸웠습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만족을 얻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없는 쓰라린 고통과 무기력으로 가득했습니다. 설마 그런 삶이 행복할까요? 첸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건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그는 마음속의 이런 허망한 것들을 내려놓고 남편과 화해했습니다.

그 후에, 첸후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본 첸후이는 감개무량했습니다. ‘예전에 사탄이 주입한 목표대로 살려고 했던 삶은 정말 고통스러웠어. 난 진리가 없어 사탄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헛되이 내 인생을 낭비한 거야.’ 그제서야 깨달은 첸후이는 잘못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다시는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따라 헛된 물질적 삶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남편을 바르게 대하고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기까지 헤아리니, 첸후이는 남편이 비록 돈이 없어서 그에게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주지 못하고, 허영심도 채워주지 못하지만 정직하고, 일처리가 신중해서 무슨 일을 하든 주도면밀하며, 그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억지를 부려도 남편은 다 양보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그의 믿음 생활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첸후이는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배정한 결혼이 가장 좋은 것임을 느꼈습니다. 만약 본인이 부자인 남편을 선택해서 풍족한 삶을 살았더라도 생활은 먹고 마시는 게 다였을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창조주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진리와 비밀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과 사악한 시대의 조류도 분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첸후이는 가난하든 풍족하든 적절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한 후, 남편을 대하는 첸후이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에게 관심을 쏟고 이해했습니다. 서서히, 그와 남편 사이의 소통도 늘어났습니다. 남편은 그의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들의 가정도 화목해지고 온기가 돌았습니다. 첸후이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에 감사드렸습니다. 그의 지금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정확한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걸음씩 성실한 삶을 채워가는 길

평소 나는 TV 앞에 앉아 콘서트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특히 무대 위 연예인이나 스타가 공연을 끝낸 후 관객이 전달해주는 꽃과 박수갈채, 그리고 극찬하는 눈빛을 받을 때면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 그들을 동경하며 ‘언제쯤이면 나도 악기를 배워 저들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아버지께 말씀드려 허락을 얻었고, 그렇게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습실에선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리와 기타 소리만 들려왔을 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때, 문득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나는 긴장했다. 기타를 잡은 자세와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모두 대학생 수준이었고, 나와는 큰 차이가 났다! 난 조심스레 기타를 안은 채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멜로디에 따라 조심스레 기타 줄을 튕겼고, 내가 내는 소음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했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손이 땀으로 가득 찼다. 주변을 돌아보며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을 쳐다봤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멜로디를 연주해 내는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기가 생겨 ‘나도 잘 할 수 있거든! 내가 좀만 노력하면 너네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기타로 연주를 하는데도 내가 내는 소리는 제멋대로 거나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쉬는 시간에 옆에 앉아 휴식하는 학생을 보며‘얼른 연습해야지. 열심히 해서 뛰어난 경지에 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고개를 숙인 채 기타연습에 매달렸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지 손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난 멈추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 집에 돌아온 후 무거운 몸을 소파에 기댄 채 옆에 놓여있는 기타를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아! 다른 애들은 다 잘하던데. 난 언제쯤이면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러자 아빠가 위로해주셨다. “너는 이제 막 시작했고, 그 친구들은 배운 지 오래되었잖아.” 난 툴툴대며 말했다. “꼭 다른 애들을 뛰어넘을 거야. 남들을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거야.” 아빠가 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배워. 걷는 법도 모르면서 뛸 순 없잖아. 말이 안 되잖니.” 나는 입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휙 돌렸다. ‘흥! 아빤 맨날 내 열정도 몰라주고!’ 그러다 마음이 좀 가라앉으니 아빠가 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연주는 한 번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맞아! 기죽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겠어!’ 그 후 수업시간 때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적고 집에 돌아와 끊임없이 연습했다. 계속 연습하며 이렇게 노력하면 분명 실력도 늘고 선생님도 나를 칭찬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평소처럼 기타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선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과외를 해주고 계셨다. 학생이 치는 기타 소리는 음이 뚝뚝 끊기고 박자도 엉망에 리듬도 없었다. 심지어 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못 들어줄 정도였다! 그 학생의 연주가 끝난 후 선생님은 내게 같이 연주해보자고 하셨다. 다소 긴장 되었지만, 며칠간 연습도 열심히 했으니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연주인 만큼 꼭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주한 곡에는 코드가 바뀌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나는 모든 부분을 문제없이 잘 넘겼다. 연주를 마친 후 선생님은 손뼉을 치시며 “정말 잘했어. 코드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잘 해냈네. 계속 열심히 하렴”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부끄러운 듯 웃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하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이제 선생님도 나라는 똑똑한 학생이 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시겠지? 수많은 학생 속에서 드디어 내가 두각을 나타내는구나! 이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 순간의 기분을 한껏 누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음과 음 사이에 텀이 너무 길어. 부드럽게 연결 되지가 않아. 그 부분을 좀 더 연습해봐.” 선생님의 말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두각을 나타내나 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니. 나는 기타에 소질이 전혀 없는 건가?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할수록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을 보였다. “너무 어려워. 남들은 다 나보다 잘하는데 어느 세월에 그들을 따라잡아!” 아빠는 날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니.’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단다. 피조물이 어떻게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겠니? 우리는 완벽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조금씩 배워가야 한단다.” 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맨날 못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배운 시간이 얼만데!” 아빠는 진지하게 말했다. “배운지 한 달밖에 안 되었으면서 경지에 오르려고 하는 건 욕심이야!” 아빠의 말이 듣기 싫어진 나는 기타를 갖고 방으로 휙 들어갔다. 손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기타를 닦으며 남들은 다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는데 언제쯤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밀려왔고 기타가 내는 듣기 싫은 소리에 악에 받쳐 기타를 한편으로 던져버렸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짜증으로 가득 찼을 때, 문득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이 다양하니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컴퓨터를 켜 ‘기타 배우기’를 검색했다. 검색결과를 본 나는 더 큰 좌절감에 빠졌다. 영상 속 기타 ‘고수’는 모두 나보다 어렸다. 7, 8살, 10대도 있었다. 너무나 큰 격차에 나는 더 의기소침해졌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도 잘 치다니. 다 커서 배운 나는 잘 치긴 글렀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 헛수고일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배우려 할수록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러나 사람 안에 약점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이나 업무를 배우고 나면 ‘난 능력이 생겼어, 난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몸값 좀 나가는 사람이야, 나는 ○○전문가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 얼마나 크든지 사람은 그것을 보여 주기도 전에 자신을 위대하고 용맹하고 완전무결하고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포장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해내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한다.』『하나님은 사람을 지어서 땅에 두고 먹고 입고 싸고 하는 생활 규칙 모두를 정상적이게 하였고, 사람됨의 기본 상식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는지를 배우게 했지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야심을 가지고 늘 자신이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며 남다르고 특이해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너의 이 생각의 근원이 틀렸다.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다”는 것은 무슨 사상인가? 금계독립인가? 군계일학인가? 비할 바 없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정상 인성의 추구 목표에 사용하면 좋은가? 완전무결ㆍ천하일색ㆍ자수성가, 이런 단어는 좋은가? 걸출하고, 훌륭하고, 특별한 인재, 이런 단어는 좋은가? 카리스마, 인격적인 매력, 스타, 명인, 위인, 마음의 우상,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살도록 하신 것은 우리가 착실한 사람이 되고, 착실하게 일을 하라고 한 것인데 나는 스타나 다른 사람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며 ‘남들보다 뛰어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어 했다. 이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며 사탄이 추구하는 관점이다. 처음 기타를 배우려고 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단순히 취미나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무대에서 꽃을 받고 박수갈채에 둘러싸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연습실에서도 남들 앞에서 돋보일 생각만 하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내가 사람들의 중심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기타를 배우기만 하면 다른 사람 보다 뛰어나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타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몰래 연습해서 다른 사람을 뛰어넘고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칭찬해줄 날만 생각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기타를 배우면서 나타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게 되었다. 약간의 좌절감이라도 느끼면 스스로 안 된다고 단정 짓고, 다른 사람의 인정과 선망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삶조차 고통스러워졌다. 난 항상 다른 사람의 선망을 기대하며 평범한 사람이 되길 거부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즐거움도 사라지고 오히려 체면과 지위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고, 더 힘들어졌다. 아빠가 한 말이 맞았다.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탄이나 천사장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천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천사를 관리하는 권세를 갖게 되어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처음 기타를 배우면서 첫 술에 배부르려 했다니. 정말 천사장처럼 교만하긴 짝이 없었다. 이렇게 가다간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고 사탄에게 고통만 받지 않겠는가?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피조물로서 명예와 이익,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착실하게 올바른 사람이 되고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배우건, 마음 다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선망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방법만을 구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개운해졌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당연히 많은 결점과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마땅히 스스로 장단점을 살펴 남들의 선망을 얻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기타를 칠 줄 모르면 조금씩 배워가면 된다. 한 번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나만 힘들어지는 것이다. 진실한 나로 살아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체면은 내려두고 선생님이나 그 분야에 유능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남들이 무시하건 말건 배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이걸 깨닫고 나자 기타를 칠 줄 모르는 것이 그렇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한 술에 배부르려던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속 고통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았다. 기타를 배우는 토요일이 되었다. 연습실에 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후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악보를 따라 연습했다. 그때 아주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나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여학생이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기타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사람에게 기타 연주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막상 그 여학생이 연주를 마치고 나자 말 걸기가 부끄러워졌고, 혹시 나를 무시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이런 사람은 계속 뜬 구름 속에 있지 않는가?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만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고 여태껏 실속 있는 사람으로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람됨에 있어서 만약 이런 길을 선택하여 늘 구름 속에 있으려 하고 땅에서 착실하게 걷지 않고 자꾸 날려고 하거나 뜨고 싶어 한다면 위험하다.』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내 모습이 바로 길을 잃은 모습이 아니던가? 문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었다. 바로 착실하게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어봤다. “언니, 방금 연주한 곡이 어떤 곡이에요? 처음 들어봤는데. 혹시 어떻게 연주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언니는 인내심을 갖고 내게 말했다. “기타 줄을 훑는 거야.” 언니는 설명과 함께 직접 시범도 보여줬고 그 속에 숨어있는 기술도 알려주었다. 언니의 답변에 나의 쓸데없던 상상력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기술도 익히게 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연습실에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선생님이나 언니에게 물어봤다. 하나님의 인도하에 서서히 발전하고,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자신을 보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는 원칙임을 알게 되었고, 착실히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참으로 기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스스로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기타 연주 소리가 빨라지고 불안정해지거나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를 따를 때면 마음이 평온해져 연주 소리도 안정을 찾아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악기 연주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착실하게 사람됨을 배우며,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피조물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타를 배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얼마 후, 나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기타 팀을 만들었고, 내가 팀장을 맡아 다른 조원에게 가르쳐주게 되었다. 그때 나는 팀장이 되었으나 다른 사람 보다 잘났다는 마음을 갖지 않았고, 내 실력이 부족해 다른 팀원의 비웃음을 살까 전전긍긍해 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에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내가 가진 만큼 다른 남들에게 베풀 줄도 알게 되었다. 스타의 꿈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남들보다 뛰어나길 추구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전에 없던 편안함과 기쁨이 찾아왔고, 하나님의 인도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성공을 거둔 후 남겨진 고통과 공허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부단한 노력 끝에 마침내 성공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노고와 피로로 인해 그는 50세 이후에 걸릴 수 있는 병이 생겨 너무 고통 스러워 했다. 하나님을 믿은 후 그는 드디어 고통의 근원을 찾았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인생의 바른길임을 알게 되었다.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1)

어느 여름 방학 오후, 숙제를 마치고 할머니를 도와 일을 끝내자 학교 친구인 임호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도운, 계집애처럼 집에서 뭐해?”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쉬고 있어” 임호는 비밀스럽게 “가자. 내가 재밌는 곳 알려 줄게.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라고 말하며 피시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피시방에 들어간 저는 이곳저곳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인터넷 마니아’들은 온 정신을 집중해 눈앞의 컴퓨터를 바라보고 끊임없이 키보드를 치면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무척이나 재밌어 보였습니다. 그때 임호는 무시하는 눈빛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너 피시방 처음이지? 네 꼴 좀 봐라.” 저는 화가 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얕보지 마. 하는 법만 배우면 내가 너보다 더 잘할 거라고!’ 우리는 곧바로 컴퓨터 2대가 붙어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임호는 익숙하게 컴퓨터를 켠 후 제게 컴퓨터를 켜는 법을 알려주고 게임 아이디를 만들어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이 아이디는 네 거니까 맘껏 놀아도 돼.” 컴퓨터의 게임 화면을 보면서 마우스를 움직이니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면 속 사람이 들고 있던 총을 마우스로 움직이자 누군가가 죽었습니다. 또다시 마우스를 움직이니 다른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30분도 안 돼서 저는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습니다. 임호가 저를 부를 때는 이미 해가 다 밝은 후였습니다. “넌 나보다도 정신이 말짱하네. 집에 안 갈 거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좀 더 놀자!” 임호가 “넌 더 놀 거면 놀아. 난 집에 가서 잘래”라고 말하자 전 어쩔 수 없이 피시방 카드를 뽑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뒤로 제 머릿속은 온통 게임 화면으로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꿈에서도 게임을 했습니다… 조금씩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피시방에 갔고 하루라도 피시방에 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게임에 중독된 건가? 지금은 방학이라 괜찮지만 개학해서도 이러면 어쩌지? 에이, 신경 쓰지 말고 놀 수 있을 때 더 놀자! 개학하면 바빠서 어차피 못 놀 거야.’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개학하고 수업을 얼마 듣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게임뿐이었고 피시방에 가고 싶어 답답해졌습니다. 한번은 너무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에게 몸이 아파 병원에 간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전 지금까지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제 말을 믿고 조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전 책가방을 메고 신나게 피시방으로 뛰어가 밤새 게임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 중독이 점점 심각해졌고 저는 온갖 거짓말로 선생님과 할머니를 속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만 되면 할머니에게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제가 게임에 빠진 걸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 또 게임하면 학교는 나오지 말거라.” 할머니도 제게 게임은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시며 이렇게 가다간 게임이 절 망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독이 심해져 나중에는 아예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피시방에 가면 일주일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나중에는 타지에 계신 아버지까지 일부러 집에 돌아오셔서 절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게임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저는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화를 내면서 집을 뛰쳐나갔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니 갖고 있던 돈을 다 써버려서 더는 지낼 곳이 없었습니다. 피시방에서 잠을 자니 사장은 절 쫓아내 버렸습니다. 절 찾기 위해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고 학교에서는 저의 퇴학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욱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고 기댈 곳이 없던 그때, 어릴 적부터 절 아껴 주던 고모가 떠올랐습니다. 고모 댁을 찾아가니 고모는 이미 제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고모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돌아왔구나. 왔으면 됐다. 밥 안 먹었지? 고모가 맛있는 거 차려 줄게!” 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모가 음식을 차려 주자 전 밥 2공기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며칠간 굶었던 저는 이렇게 든든한 밥 한 끼를 먹게 되었습니다. 고모는 저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이게 다 사탄이 사람을 해친 거란다. 착하던 아이를 이 지경까지 만들다니. 가증스러운 사탄 같으니라구.”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고 한 고모의 말을 듣고 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게 제가 게임에 빠진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고모가 말했습니다. “도운, 너처럼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것은 이미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단다. 부모들도 어쩔 수가 없지. 어떤 부모는 게임 중독 치료소로 아이를 보내기도 하는데 결국 나와서 다시 게임을 한단다. 아무 소용이 없는 거지. 더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말하시며 서랍 속에서 얇은 책을 한 권 꺼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네가 그들 정상 인성에 관한 일을 말하고 정상 인성에 관한 화제를 이야기해도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흥미를 갖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 않고 듣자마자 머리를 긁적이고 반감을 가지면서 정상적인 인류와 공통 언어가 없고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면 이야깃거리가 있다....일하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일하면 얼마나 피곤해. 게임 하면 얼마나 끝내 주는데. 총알 한 방에 하나씩 쏴 죽이고! 일은 언제까지 해야 끝날 수 있지? 그래도 게임 하는 게 재미있어. 얼마나 홀가분해. 일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 뭘 얻을 수 있지?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당신이 열심히 일을 해도 하루 세 끼 밥 먹는 거 아니야? 나보다 더 좋아보이는 건 없네 뭐! 게임 하는 게 얼마나 좋다고. 거기에 앉으면 뭐나 다 있어. 가상 세계에서 살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사람에게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시간을 지켜 출근하라고 하면 어떤 느낌일까?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과 말하는데,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에게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터넷 게임이라는 사악한 추세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단다. 사람은 일단 게임에 빠지면 게임에 통제당하고 온종일 가상의 세계에 살게 돼.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공부나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생각하지 않게 돼. 심지어 정상적인 인성이 갖추어야 할 먹고 입고 자는 것조차 비정상적이게 되어서 사람 전체가 ‘무너지게’ 된단다. 그래서 옳은 길이 아니라고 하는 거야. 이같이 사악한 추세를 겪고 살아가면 사람의 마음은 방자하고 교활해지고 이기적이고 잔인해져. 심지어는 복수와 증오도 생겨난단다. 사탄은 이 같은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집어삼키고 타락시키는 거야.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인터넷에 빠져 있는지 몰라. 중독이 심할수록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단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와 원수지간이 되어서 가출까지 해.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면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단다. 인터넷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빠져서 옆 사람이 맘에 안 들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죽이고 나서도 그걸 모르고 경찰에 잡혀서야 자신이 살인했단 걸 아는 거지. 어떤 사람은 게임만 하다가 악령이 들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미치광이가 돼서 부끄러움도 모르게 돼.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게임 때문에 학업을 망치고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된단다. 도운, 너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예전에는 손에 꼽힐 만큼 공부도 잘하고 항상 스스로 공부했었지. 할머니는 네가 철이 든 착한 아이라고 항상 칭찬했어.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항상 할머니도 돕고 돌봐 드렸잖아. 하지만 지금은 어떠니? 인터넷 게임에 빠진 뒤로는 완전 딴사람이 됐어. 네 칭찬을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구나.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항상 거짓말로 돈만 받아갔지. 아버지한테 꾸지람 좀 들었다고 이렇게 집도 나가버리고 말이야. 온 가족이 다 널 걱정한단다… 이게 다 게임이 준 고통이 아닐까? 모두의 고통과 걱정은 다 네가 게임에 빠진 후로 생겨난 거잖니?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 적 있니?” 제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모가 말했습니다. “도운, 한번 이 말씀을 읽어주겠니?” 저는 책을 건네받고 읽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게임으로 대신하고 싶어지면서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어떤 애들이 게임 하는 것은 부모가 아무리 감시하려고 애를 써도 안 된다. 낮에는 안 하지만 밤이 되어 부모가 잠들고 나면 아이는 몰래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밤새도록 게임을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한 어린 아이가 열 몇시간 동안 컴퓨터 게임을 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아이는 그동안 분명히 자지 않고 계속 했을 텐데, 어느 정도까지 했겠느냐? 부모가 발견했을 때, 아이는 이미 컴퓨터 앞에서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손이나 몸은 여전히 게임을 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어떻게 죽었겠느냐?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게임을 하다가 뇌괴사로 죽었다고 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게임을 하는 것은 정상 인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냐?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왜 그것을 끊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써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이런 게임은 어떻게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떻느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너희들은 한가할 때 시간 때우려고 게임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느냐? (네.) 그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게임을 하는 것은 사회적 풍조를 따라가는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네가 요만한 일조차도 끊지 못하고 자제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하다.』 여기까지 읽자 고모는 절 보고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게임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 게임은 독약과 같아서 하면 할수록 더욱 빠지게 돼.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고 결국 전부 통제당한단다.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어지지. 끊고 싶어도 못 끊고 결국 게임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사탄이 이런 사람을 완전히 삼키는 거지. 네가 이걸 떨쳐내지 못하고 사탄이 주는 고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게임에만 계속 빠져 산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니! 계속 게임을 한다면 너 자신을 완전히 ‘망치게’ 되는 거야.” 고개를 숙인 저는 게임을 하지 않던 옛 모습을 떠올려 보니 지금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할머니, 선생님 모두가 저를 착한 아이이고 좋은 학생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숙제를 마치고 항상 할머니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게임만 생각합니다. 제가 걱정되어 타지에 계신 아버지까지 집에 오셨지만 전 아버지 말씀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항하고 가출까지 해 가족들을 걱정시켰습니다. 이제는 퇴학까지 당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고모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전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전 인터넷 게임에 얽매여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정말 옳았습니다. 이렇게 게임만 하다가 닥치게 될 결과가 전 너무 두려웠습니다. 다음 내용: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2)

30m 가량 되는 비탈길에서 떨어지는 아찔했던 순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속은 항상 돈으로 가득 찬 그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길로 향했다. 30m가량 되는 비탈길에서 차를 돌이려던 그는 그만 뒷바퀴가 내리막길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그는 하나님이 유일한 의지처였는데, 과연 그는 무사했을까요?

허망에서 걸어 나와 진정한 하나님을 경배하다

요즘 '남신, 여신'이라는 칭호가 핫 키워드, 유행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툭하면 '내 남신님, 내 여신님'에 대해 말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10대 여신, 10대 남신, 국민 남신, 국민 여신」이라는 타이틀로 스타, 우상의 랭킹을 검색 포털 사이트에 게시하며 「남신, 여신」과 관련된 뉴스와 포스팅도 사람들의 시야에 계속 노출되고 있습니다. 공인된 중국 10대 여신 랭킹, 2014년 아시아 은둔형 남신∙여신 랭킹 등의 타이틀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제의 여왕, 사진의 여왕, 여자 아나운서 랭킹, 뒤태 여신, 얼굴 여신, 조교 여신 등 참으로 다양한 내용의 타이틀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진 사람을 '남신', '여신'이라 정의하는데, '신'이라 불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스타, 위인이며 일부는 마음속으로 선망하는 이성을 '나의 여신' 혹은 '나의 남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이 '남신', '여신'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남신', '여신'의 기준은 얼굴이 아름답고 기품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포스팅에서는 '내가 4년 동안 좋아했던 대학교 여선배는 여신입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집안에 돈도 많은 세력가 출신인 데다가 공부까지 엄청 잘합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할 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도 격이 느껴지는 그녀는 능력, 외모, 재력 모두 겸비한 나의 여신님입니다. 저는 항상 그녀를 경배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가장 중요한 점은 그녀가 아무리 못생기고 우악스럽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그녀가 여신같이 느껴진다면 그녀가 바로 여신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남신, 여신'이 요즘 사람들의 입에 마구잡이로 오르내리거나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남신,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느끼는 흥분 혹은 냉담한 반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신'이라는 신성한 글자가 말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흐릿해졌고 철저하게 잘못된 해석으로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그 진정한 의미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는 상황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천지신명'이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어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 사람들은 공허, 정욕, 먹고 마시며 놀고 즐기는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아무 사람을 데려다가 신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도 '남신', '여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아는 사람이 이제는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그분이 어떻게 인류를 대할 것이며, 어떻게 패괴가 극에 달하는 인류의 처소를 안배하실 것인지, 이런 인류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화제에 관심을 갖거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비애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가 나락으로 추락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진짜 신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인류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대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 만물을 창조신 주재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고, 하나님은 만물을 관리하는 그분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유를 관리하는 동시에 또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을 해 주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위이고, 하나님의 신분이다. 만유에게 있어서, 만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은 창조주이자, 또한 만물의 주재자이다. 하나님은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는데, 만물 가운데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인류 가운데 있는 것이든, 영계에 있는 것이든,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방식이나 혹은 그 어떤 핑계로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신분과 그런 능력, 그런 권병을 지니고 만물을 주재할 수 있는 분은 만물 가운데 오직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곧 우리의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다. 그분은 만물 가운데서 살고 만물 가운데서 거닌다. 그분은 지극히 높이 올라 만물 위에 계실 수도 있고, 낮추어 사람이 되고 피와 살이 있는 사람 중의 일원이 되어 사람들과 대면하고, 사람들과 동고동락할 수도 있다. 동시에 그분은 만유를 주관하고 있고, 만유의 운명을 결정하며, 만유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그분은 더욱더 전 인류의 운명을 인도하고 있고, 전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인도하고 있다. 이런 하나님은 생명이 있는 그 어떤 사람이든 다 마땅히 경배하고 순복해야 할 분이고,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할 분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짜 신분은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은 모두 그분이 관장하시며 그분의 권병으로 만물의 생존 규율과 법칙을 제정해 만물의 경계를 확정하며 만물에게 자양을 공급하시어 인류의 안정적인 생존 환경을 부여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피조물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실질은 하나님께서 창세 초에 땅의 흙먼지를 사용하여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결을 피조물에게 부여해 인간에게 생명의 공급이 있은 다음부터 사람은 생존하고 번성해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만물 창조의 권병을 지니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만물을 관장하는 권병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패괴되어 거만한 안하무인, 겉보기엔 온화해 보이나 속은 시커먼 마음, 자만심, 사악 음란, 이기적이고 비열한 등등의 패괴 성정을 온몸에 지니게 됐습니다. 이런 패괴되고 썩어버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하게 거론될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떻게 '신'으로 불릴 수 있겠습니까? 아첨과 아첨을 받는 자의 배후에는 숨길 수 없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익 분쟁, 서로를 기만하고 음란 타락에 빠지거나 취생몽사에 빠지는 모습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팬들이나 연애 중인 사람이 말하는 남신, 여신은 본질은 사탄의 패괴에 빠진 후 사탄 본성이 충만한 피조물이며 그들은 창조주인 하나님과 같이 거론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이 '신'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사람이며 이는 영원불변의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게시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남신, 여신'이라는 사회적 현상의 배후에 사탄에 패괴된 사람이 숨겨져 있으며 사람을 집어삼키는 음모 계략이 존재함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사탄은 사람을 심히 패괴시켜 세계를 사악하고 더럽게 만들고 사람을 그것과 야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하려고 망상하고 있다. …』 『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배경에서든 하나님을 다른 인ㆍ사ㆍ물과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얼마나 알기 어렵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여기든, 사탄의 행실이나 논법이 얼마나 너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든, 얼마나 너를 만족시키든 너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개념이 헷갈리지 말고, 하나님의 존재를 거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부인하지 말고, 하나님을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사탄을 끌어와 네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대신하지 말고, 너의 하나님으로 삼지 말라. 이렇게 하는 결과는 무엇일지, 너희는 모두 생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고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람이 더럽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존재인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남신, 여신'이라 불리는 패괴된 인류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으로 섬기게 하고 경배, 숭배하게 하려는 망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신분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허망 속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사는 사람은 사탄의 계략에 빠진 것이며 이런 우상은 모두 사람을 미혹시키기 위해 사탄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사탄과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결과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야말로 사람을 미혹시키고 패괴시키며 사람을 집어삼키는 화근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원히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진리를 깨우치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만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을 통해 진리를 발표하고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이를 통해 수천 년 동안 잘못되어 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오류를 수정하며 정갈한 사람의 패괴 성정을 심판해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알게 하며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고 또 인류 생존과 존망을 관장하는지 등등을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갖게 된 후에야 하나님이야말로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찬미를 보낼 수 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배할 때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지극히 거룩하고 존귀하며 지극히 높은 유일한 경배 대상이 되고,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여호와의 약속 가운데서 산 것처럼, 하나님이 태초에 만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산 것처럼 전 인류가 모두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나는 각 민족과 각 국가 심지어 각 분야의 사람들까지 모두 다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인류의 운명에 관심을 돌리기를 권고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지상에 강림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아직도 '다신론'을 믿는 사람들이 더는 무지몽매하지 않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하루빨리 '남신, 여'의 허망 속에서 걸어 나와 시야를 밝혀 조물주의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역사에 발맞추어 정정당당하게 참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상: 사탄은 각양각색의 수단을 이용합니다. 사회 조류, 위인, 저명인사의 말, 과학 지식으로 사람을 미혹시키고 유인하며 사람을 구속해 사람들의 사상 의식은 이런 것들로 단단히 묶여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점령했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리와 광명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런 사악한 사회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사탄의 시험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바로 진실한 경배를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게임 중독 해결 방법, 여기서 찾았습니다

중국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의 실태 조사:‘방콕녀’ 스묘 인터뷰 진행자: 신량 인터뷰 대상자: 스묘 인터뷰시간: 2016년 10월 10일 인터뷰 대상자 이력: 스묘, 여자, 37세, 평범한 도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2008년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하였는데, 바로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말 그대로 ‘방콕녀’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회와 격리되다시피 했고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신량(이하 ‘량’이라 약칭함): 2008년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인터넷 게임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스묘(이하 ‘묘’라고 약칭함): 처음에는 게임 속의 캐릭터들이 너무 예쁘고 화면 배경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제가 PC방에 가면 PC방 주인이 저한테 게임을 하면 이런 저런 혜택을 준다고 끊임없이 설명하더라고요. 인터넷 게임 홍보 모델을 하는 인기 스타들도 저의 눈길을 끌었어요.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과 재미 삼아 게임을 시작하게 된 거죠. 량: 그럼 왜 8년 동안이나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었던 겁니까? 묘: 제가 현실 생활에서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인터넷 게임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현실의 저는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여서 주변 남자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늘 열등감에 빠져 있었어요. 그러나 게임에서는 저를 이상적인 캐릭터로 꾸밀 수 있었어요. 게다가 게임에는 yy채팅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남성 게이머들이 저의 목소리만 듣고도 제게 잘 보이려고 앞다퉈 아이템이나 게임 코인을 주면서 접근해 왔고 남녀 관계를 맺었죠. 이런 관계를 속칭 ‘게임애인’이라고 해요. 돈깨나 있는 남자 게이머들은 여러명의 게임애인이 있는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죠. 남자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게임애인이 없으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죠." 량: 그것 때문에 게임에 중독되었다구요? 묘: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죠. 게임은 사람들의 여러 욕망을 충족시켜 줘요. 게임으로 돈을 벌게 해 주어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금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게임에서 협회 같은 것을 설립하여 회장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지휘해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게임을 통하여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사귀게 되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던 꿈 같은 일들이 사이버 세상에서는 모두 가능하게 되죠. 량: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인터넷 게임은 사람을 끌긴 하네요. 그럼 당신은 게임을 가장 길게 한 게 몇 시간이나 되나요? 그리고 게임을 하면 돈도 번다는데 당신은 게임을 해서 얼마나 벌었나요? 묘: 평소에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게임을 너무 늦게까지 안 해요.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밤 늦게까지 합니다.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여 게임을 시작하면 20시간 정도 하는데 보통 아침 6시부터 이튿날 새벽 2~3시까지 하죠. 제가 게임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 중, 어떤 사람들은 PC방에서 며칠씩 게임을 해요.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요. 제가 평소에 게임으로 버는 돈은 게임에 접속하는 비용 정도나 충당되고요, 어쩌다 이벤트가 있으면 1~2백 위안 벌지요. 저는 많이 못 벌어요. 인터넷 게임으로 먹고 사는 프로급 게이머들은 한 달에 수천 위안씩 벌어요. 운이 좋은 때는 한 달에 만 위안도 벌죠. 량: 그렇다면 인터넷 게임은 당신의 생활에 어떤 피해를 줬나요? 묘: 피해요? 저한테 준 가장 큰 피해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첫째는 사회와 동떨어지게 한 것이죠. 제가 게임에 중독되었을 적에는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보니 말 그대로 ‘방콕녀’가 되어 버렸죠. 게임을 하면서 한 달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어요. 어느 날 밤, 은행에 가서 돈을 입금하고 돌아오다가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여 헤맨 적도 있어요. 반 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저는 한 시간 반이나 헤매다가 겨우 집을 찾았어요. 집을 나설 때마다 저는 주변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져요.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아요. 둘째는 가족들과 멀어지게 하고, 가정에 대한 애착도 점점 식어지게 하는 것이죠.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다 보니 날마다 부모와 남편과 소통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거실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 남편은 안방에서 게임을 하고 서로 대화조차 없었어요. 하루에 기껏 한 두 마디씩 하는데 밥은 먹었냐? 이제 자자! 이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며칠씩 한 마디도 없었어요. 하루는 엄마가 몸에 열이 나서 안방에 누워 계셨는데 저는 게임에 쏙 빠져 그것도 몰랐으니까요. 엄마가 참다 못해 노하셨어요. “내가 병원에 갈 지경이 돼도 너는 게임을 마쳐야 일어나겠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결혼하여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던 것이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의사의 말이 남편이 온종일 게임을 너무 해서 정자의 생존율이 아주 낮은 데다가 저 또한 게임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임신하기 어렵대요. 의사의 경고를 저희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아 귀가해서도 여전히 게임에 빠졌죠. 그 뒤로 저와 남편은 각자 인터넷 게임에 빠져 소통이 더욱 줄었고, 관계도 더욱 소원해졌어요. 결국 결혼이 깨지게 되었죠. 량: 당신의 말을 들어 보니 인터넷 게임이 당신의 가정과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줬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까? 묘: 저절로는 아마 평생 인터넷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후에 어떤 사람이 제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전해 주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제야 저는 게임이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게임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유린하고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가져다주는지를 알게 된 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을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그들의 화제는 다 어떤 것이냐? (게임 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런 것들이다. 늘 그런 이야기들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전망이 있겠느냐?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느냐? (그런 사람들은 쓸모없습니다!) ‘쓸모없다’라는 말은 아주 적합하다.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적이 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에게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대신 그런 것들로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적이 된다. 이방인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지금 이방 세계에서 그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를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그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게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그것 대신 게임을 하고 싶어져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왜 그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 그런 게임은 어디서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떠하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저를 깨우쳐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 동안 저는 매일 먹고 자고 게임을 하며 게임이 저의 전부였어요. 심지어 꿈속에서도 게임 속의 동료들과 함께 베팅을 하였어요. 실생활과 사이버 세상을 구분 못할 정도였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방식이고 수단인 것이죠. 저는 그때에야 제가 사탄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렸음을 지각했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런 가상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알게 되었어요.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처음에 게임은 유명 스타들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여러 가지 혜택으로 사람을 유인하죠. 그다음에는 실생활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게임 속에서 충족받게 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중독되어 마약중독자가 마약 없이 살 수 없듯이 한시도 게임을 떠날 수 없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게임이 사람에게 주는 피해를 아주 분명히 설명해 주셨어요. 제가 계속 게임에 빠져 있었다면 아마 목숨까지 잃었겠죠.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폐물'인 거죠. 량: 당신이 게임 중독을 치료한 과정을 말해 줄 수 있나요? 묘: 저는 폐인이 되기 싫었어요. 사탄에게 통째로 잡아 먹히기도 싫었어요. 그러나 저는 게임에 너무 깊이 중독되어 있었어요. 혼자 죄에서 빠져나올 능력이 없었죠. 하나님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힘이 없는지를 잘 알고 계셨어요. 하나님은 게임이 인간에게 주는 해악을 일깨워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길도 가르쳐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해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게임을 하고 싶을 때면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요.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저는 점차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게 되어 사탄의 유혹과 인터넷 게임의 포박에서 해방되었어요. 량: 그럼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묘: 하나님을 믿은 후에 있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정상적인 생활 상태를 회복한 것입니다. 『너희의 인성은 너무나 결핍하고 생활은 너무나 천하며, 인성이 없고 식견이 부족하다. 이러면 인성 방면의 것을 장비(裝備)해야 한다. 양심적이고 이지적이며 식견이 있고 말솜씨가 좋고 일을 잘 판단하며 위생을 지키고 정상 사람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 정상 인성 방면의 지식이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적합하게 행하면 너희의 인성은 합격된 셈이다. 다른 한 방면은 영 생활을 장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한 모든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가 한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고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에 정신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고, 부모와 지금의 남편과도 매일 대화로 낮에 일어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며 함께 TV도 보고, 서로 의견도 교환하고 그럽니다. 소통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의 시부모님과의 정도 깊어졌어요. 집을 나서도 생소한 느낌이 없고, 사회와 격리된 느낌도 없어요. 이웃들도 제가 활발해지고 수다도 잘 떨어서 그 전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그래요. 이제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이 제 주변에 펼쳐 놓은 간계들을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도 있어요. 이제 더는 사탄의 유혹에 안 넘어가요. 인간답게 살아야죠. 저는 마음속으로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사탄의 손아귀에서 망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저를 사탄의 그물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다시 되찾은 아들의 건강

하나님의 능력은 크시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도 청천벽력 같은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아들이 결국 중환자실에 눕게 되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을까요?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를 창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겨울에 주인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주인집 뒷마당은 매우 난잡했고 시들어 죽은 각종 잡초와 볼품없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앙상하여 모양새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복숭아나무 너무 못생겼네! 열매나 맺을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복숭아나무도 싹이 돋아나고 파릇파릇해지더니 후에는 기름진 잎사귀로 가득하여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복숭아나무는 꽃이 피고 서서히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보니 작고도 못난 것이 마치 벌레 먹은 듯했습니다. 쭈그렁복숭아를 보는 순간 저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복숭아나무야, 복숭아나무야. 네가 만약 싱싱한 복숭아를 맺지 못하면 너의 가치를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니?’ 복숭아나무에 대한 저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시선은 빨갛게 익은 복숭아에 끌렸습니다. 주렁주렁한 열매는 햇빛의 자양을 받아 어느새 그렇게 크고 빨갛게 열렸는지 전의 그 “쭈그렁이” 모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복숭아는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주위의 모든 것과 인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탐스러웠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어둡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어떤 때 사람이 한 가지 곤충을 보고 그 곤충이 아주 못생겼으면 “이 벌레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렇게 못생긴 벌레는 절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아니야.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난 것을 만드실 리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우매하다! 마땅히 “이 벌레는 아주 못생겼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 틀림없이 그것의 독특한 용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각종 생물들에게 다양한 생김새가 있게 하고 다양한 기능과 용도가 있게 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없다. 외형에서 내부 구조까지, 생활 습성에서 제각기 차지한 위치까지 모두 각기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당나귀는 당나귀의 생김새가 있고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말해 봐라, 어떤 것이 가장 잘생겼고 어떤 것이 가장 못생겼는가?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하고 어떤 것이 가장 존재할 필요가 없는가?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좋아하지만 코끼리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사자와 범의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서 가장 위풍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애완동물로 삼아 기를 수 있는가? 어쨌든 만물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즉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법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 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조물주의 본의에 대해 구하고 순종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이 진정 조물주의 권세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니 사람이 또 흠잡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모두 그것의 특유한 면이 있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를 창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숭아나무를 볼품없고 맺힌 열매도 못났다고 한 것은 저의 시야가 좁아서 겉면만 보고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는 만물은 모두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제가 못났다고 여겼던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못난 그대로이고 주변의 잡초도 여전히 우거져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였습니다. 즉 복숭아나무는 모양새가 “못났다” 해서 자신이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해서 주변의 잡초를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잡초도 “지위가 낮다” 하여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모두 이행하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여기든지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들이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겨났다. 순식간에, 저마다 형태가 서로 다른 작은 생명이 흙 속에서 작은 머리를 한들한들 내밀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한시도 참지 못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베풀어 준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들이 다 만물 중의 일원이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제각각의 생명을 바칠 것임을 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발함에 따라 땅 위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하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각 종류의 채소가 생기 넘치게 자라나 흙을 뚫고 올라오며 산천, 평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밀림이 울창하다…… 조금의 생기도 보이지 않던 벌거벗은 이 세계는 신속히 푸른 풀과 채소와 나무 등의 각종 식물에 덮여 푸른 빛깔이 차고 넘친다…… 공기 속에는 푸른 풀의 향기가 가득하고 흙의 향기가 풍기며 각종 식물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 모든 식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생명 역정을 시작하고 그것들 제각각의 생명의 운행 궤적을 충실히 지키기 시작하고 만물 중에서의 그것들 제각각의 배역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며, 모두 조물주의 끊임없는 공급과 자양을 얻을 것이고 또한 영원히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기 위해 이 대지의 곳곳에서 꿋꿋이 살아갈 것이며, 그것들은 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영원히 창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시초에 이 세계를 위해 식물을 창조하는 기묘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창조하는 그 순간부터 그것들에게 생명이 되풀이되는 궤적과 만물 중에서 맡아야 할 그것들 각자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조물주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이 법칙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전이되지 않았고 또한 사람의 애호에 따라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식물로써 그것들은 완강하게 곳곳에서 살고 자신의 존재로 조용하게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묵묵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이렇게 평범한 것 같지만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어느 누가 발견한 적이 있을까요? 이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저에게 사람됨의 도리를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지식이 있든 없든 재주가 있든 없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이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는 어떤 종류, 어떤 하나의 피조물이든지 모두 그것 의 특정된 사명이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조물주의 주재에 순응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피조물의 직책을 잘 이행하여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