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성경에서 말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2019년 02월 04일

성경 에스겔서 37장 5절과 6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주 안의 형제자매들은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었던 역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는 것으로, 죽을 당시의 몸 그대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만, 성경의 예언은 정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그럼 이 방면에 초점을 두고 우리 한번 교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죽은 자’입니까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죽은 자’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죽은 자들을 언급했는데 심장이 멎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사람, 즉 육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도 그렇습니까?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성경에 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태복음 8:21~22) 이로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는 육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죽은 자’입니까? 저는 한 책에서 이와 관련된 말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은 자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며, 영이 마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원래 창조한 사람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사탄이 타락시킨 까닭에 사람은 사망 속에서 살게 되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자가 되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었으며, 사탄의 도구가 되었고, 사탄의 포로가 되었다…. 죽은 자는 영이 없는 사람이며,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으며, 오로지 대적과 패역만 존재할 뿐 충성심은 전혀 없다.』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탄에게 유혹되고 타락된 후에, 사탄의 권세 하에 살면서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타락하여 세상의 흐름을 따르고 진리를 싫어합니다. 또한 사악을 숭상하고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죄악 속에 살면서 죄의 낙을 누리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년 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세상의 흐름을 따르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며, 늘 죄를 짓고 하나님께 대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늘 거짓말하고 기만하여 주님께 미움을 사고, 하나님 앞에서는 기도를 잘하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실행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교만한 성품으로 인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간혹 병이 나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속으로 주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주님을 배반합니다. 이런 사실에서 보면 소위 말하는 ‘죽은 자’는 육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영이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마음속에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늘 타락한 성품에 살고 사탄의 권세 하에 살며, 하나님께 충성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 안중의 ‘죽은 자’입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 버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또한 진정으로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입니다.

‘죽은 자’는 어떻게 부활합니까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죽은 자’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복음 16:12~13) 베드로는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그런데 책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말씀,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해야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 또 심판과 형벌의 사역이 있게 되었다. 이 단계에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에게 실행할 길을 준다….』 『인간으로서 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기꺼이 순종하고,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원하는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인류를 죄 속에서 구속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성은 아직도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죽은 자’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무릇 진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을 ‘부활’시키려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거역하고 대적하는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을 우리가 진심으로 알도록 하십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한 새로운 앎이 있게 되어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속에서 살아나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욥과 베드로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하여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데, 이런 자들이야말로 새로 지으신 사람이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타락한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야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입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39~40)

허영

'들림 받는 길’이 여기에 있다!

무더운 오후, 매미는 나무에 붙어 맴맴맴맴 끊임없이 울고, 길가의 화초와 나무는 혹서에 시달려서 모두 힘 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한 주택가에서 한나가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지금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의 모습과 세상의 정세로 봤을 때 말세는 이미 왔어요!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어요.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고, 그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과 만날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한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동역자들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딴 생각을 하며 성경을 뒤적이고, 어떤 이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탄식하고, 어떤 이는 귓속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속삭이기도 했다. 이 자매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형제자매들은 주님의 재림이 자꾸 늦어지다 보니 다들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어요! 각처에서 재난이 점점 더 심해지고, 네 번의 핏빛달도 이미 나타났어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아직 들림 받지 못했는데, 누가 연약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장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아이 참! 누가 아니래요! 대재난이 곧 닥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들림 받지 못했으니 대체 뭐가 문제죠? 참, 송 자매님, 자매님은 계속 외지에 있느라 우리 동역자 모임에 어렵게 참석하셨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송가인은 모두를 보더니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기본적으로 벌써 이루어졌어요. 주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다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있어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들림 받지 못했을까요? 이 의문을 가진 전 애가 타서 사방으로 구하러 다녔고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됐어요. 원래, '들림 받다'는 우리가 상상한 그런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송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래 무거웠던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져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송가인에게 시선을 보내며 정중하게 말했다. “송가인 자매님,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매사에 성경을 따라야 해요.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어요. 자매님이 '들림 받다'가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나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송가인을 향했다…. 송가인은 미소를 띤 채 모두를 보며 말했다. "'들림 받다'가 땅에서 하늘로 끌어올려진다라는 주장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 먼저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찾아봐요. 계시록 21장 2~3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계시록 11장 15절에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셨구요. 이 예언들 중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분명 땅에 있어요.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이건 하나님이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말씀이에요. 예언에 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하셨어요. 이런 예언은 우리가 결국에는 땅에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만약 우리가 '들림 받다'를 하늘로 끌어올려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어요? 계시록의 이 예언들이 또 어떻게 이루어지겠어요?" 장 형제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는 뜻이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할 줄이야! 전에 우리는 왜 그 뜻을 읽어내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데, 우리는 하늘로 들림 받아 가려고만 했어요. 이건 주님의 말씀에 역행하는 거예요!" 송가인이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하나님이 인류를 만드신 후에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땅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가 땅에서 사는 것이지 우리를 하늘로 보내 살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았어요. 그때부터 인류의 조상은 땅에서 그들의 범죄 후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범죄 후의 사람이 땅에서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도 당연히 땅에서 이루어지죠. 율법 시대에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서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이끄셨어요. 은혜 시대,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셨죠. 이런 사역은 다 땅에서 하신 거예요. 또 계시록에 앞으로 하나님이 남아있는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귀착지는 여전히 땅에 있다고 예언했어요." 임 자매가 손에 든 물컵을 얼른 내려놓으며 감격해서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예전에 저는 우리의 육체적인 몸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무거운 몸을 어떻게 공중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보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어요!” 형제자매님들의 한바탕 말에 한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송가인의 나눔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한나: “송가인 자매님, 자매님이 하신 말은 일리가 있지만 성경에는 분명 에녹과 엘리아가 들림 받아 승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하죠?” 송가인은 한나를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8장 39~4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빌립이 하나님의 영에게 이끌려 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고정 관념에 따르면 빌립은 분명 주님에게 들림 받아 하늘로 갔어요. 하지만 사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빌립이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에서 주님의 뜻을 행했다고 했어요. 거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다 우리의 고정 관념이고, 사실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3:13) 예수님만이 천국의 대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만약 우리의 생각으로 에녹과 엘리아가 하늘로 들림 받았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우리의 상상이 정확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할까요?" 한나는 그동안 추구했던 목표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문했다.설마 그동안 간절히 바랐던 '들림 받다'가 정말 틀린 것일까?’ 마음속에서 한바탕 격렬한 전쟁이 일어난 후, 그는 송가인에게 질문했다. "송가인 자매님, 만약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추구했던 '들림 받음'이 틀렸다면 무엇이 진정한 '들림 받음'인지 한번 얘기해 보세요." 송가인은 얼른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나눌 수 있는 한 단락을 적어 왔으니까 여러분에게 읽어 드릴게요.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들림 받다'는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한꺼번에 공중으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율법 시대 말기,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들림을 받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말세의 오늘,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받아들이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들림 받음이에요.” 이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진정한 '들림 받음'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알겠네요!” 장 형제가 감격하며 말했다. "맞아요! 오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라면 몇 년을 더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진리를 선포하실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듣고 '신랑의 음성'임을 알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어요. 이제 우리에게 들림 받는 길이 생겼어요!” 송가인과 동역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래 토론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신앙 일기] 죄를 짓고 자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2017년 10월 27일 구름 많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생명의 대가로 우린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죄를 지었다.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살다 보니, 사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죄를 짓는 문제는 줄곧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1일 구름 많음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며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때로는 집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말다툼했다. 교회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속으로 괴롭고 기분이 나빠져 형제자매에게 선입견이 생겼고, 그들과 상대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봉사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최대한 자제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서로 사랑하고, 내 행동을 최대한 단속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입견이 항상 나타났고,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이대로 살다 가는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늘 성경을 찾아봤지만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항상 어떤 힘이 내 안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지탱해주었다. 주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누가복음 11:9)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8일 흐림 오늘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보았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전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고, 형제자매님들과도 마음속으로 다퉜다.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있는 나는 확실히 ‘정결케 되지 못했구나!'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겉으로는 전도하며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죄 인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또 죄를 자백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주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리 형제님 역시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 자매님은 강조하며 말했다. “주님은 자애롭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왕 자매님도 장 자매님의 관점을 인정하며 말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지만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내가 주님 앞에서 죄를 잘 자백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죄를 짓는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11월 13일 구름 많았다가 개임 오늘 아침,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성경을 펼치고 영적 수련을 시작했다. 아래의 계시록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 성경에서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성'은 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본 후 나는 매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항상 죄를 짓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나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데, 그럼 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한1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째서 이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과 다를까? 나는 이 세 구절의 말씀을 펼쳐 놓고 대조한 결과, 계시록 21장 27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했다. 이 말씀은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주님께 사함 받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결케 되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개념이다. 우리는 전에 성경의 말씀을 오해해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 속에 살면서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타락한 것이 아닌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이 두 구절을 통해 만약 우리가 낮에 죄를 짓고, 밤에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정결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더럽고 타락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된 큰 일이다. 다음 주에 있을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내어놓고 다 같이 연구해 봐야 한다. 영적 수련이 끝나고, 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정말 부패하고 타락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7년 11월 25일 맑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나는 기분이 좋다. 친구가 나에게 영적 서적을 한 권 선물해 주었고, 그 영적 서적에 있는 많은 진리도 함께 나누며 그 동안의 미혹감과 당혹감을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보고, 친구와 나눴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원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일 뿐,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무시한다. 누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증오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기뻐하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원망한다. 항상 남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고,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이 한 말처럼 말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 이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지 죄를 짓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고, 죄악의 즐거움을 탐하며, 전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기만 할 뿐 진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평생 동안 믿었던 사람, 또는 성경을 숙독하고,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종교 지도자라할지라도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 봐야 겠다! 2017년 11월 28일 흐렸다가 개임 저녁 무렵,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품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품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알고 보니 내가 죄를 짓는 근원은 모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과 같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예전에 나는 우매하고 눈이 멀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 고수하며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보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자애로우시다. 동시에 공의로우시고 성결하신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죄성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구원을 받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찾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야 정결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계시록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울이 한 말이고,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들림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어떻게 바르게 대해야 하는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 이것은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관한 강해를 많이 들을수록 더 모호해 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을 맞이 하기 위해 먼저 어떻게 성경의 예언을 바르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메시아의 예언은 이루어 졌는데 왜 유대인은 인정하지 않았는가

2천년 전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길 기다렸고, 예수님이 바로 오시기로 예언된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죄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나는 '천국 꿈'에서 깨어났다

봄날의 이른 아침, 태양은 동쪽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햇빛은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었습니다. 길가의 풀과 꽃들은 혈기왕성하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활기가 넘쳤고, 작은 새도 뒤질세라 나무에서 재잘재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생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이양은 즐거운 마음으로 밝은 햇살을 받으며 예진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진의 집에 도착한 이양이 상냥하게 물었습니다. "예진아, 요즘 뭘 그렇게 바쁘게 보내니?" 이양이 묻자 예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빼고,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하러 나가. 어제는 황 자매님이랑 옆 동네 둘째 숙모님 댁을 찾아갔지.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장장 5리를 걸어갔다고! 하지만 둘째 숙모님이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했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지." 그러자 이양이 "엄청 좋아하는구나." 예진이 말했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너 알아?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셨어.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수고를 많이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전도를 많이 해서 열매를 맺고, 힘써 사역하면 주님이 오실 때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 주실 거야!" 예진의 말을 들은 이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예전에 내 생각도 너랑 똑같았어. 열심히 사역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고, 주님 위해 봉사하고, 나의 청춘을 바치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꼭 천국으로 데려가실 거라고. 그런데 난 최근에 진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설교자들을 만났어. 그분들과 교류하면서난 생각이 달라졌어. 우리의 이런 추구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과 거리가 아주 멀어. ” 예진은 의아해하며 이양에게 "뭐?"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도 말했잖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고 고생하며 힘들게 봉사하는데 설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없겠어? 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양이 말했습니다. "예진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을 믿고, 누가 한 말이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맞는지 고려해야 해. 주님의 말씀에 맞으면 듣고, 주님의 말씀에 맞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념과 상상에서 나온 거야!”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린 채 듣고 있었습니다. 이양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고, 사방으로 전도와 설교를 하러 다니고,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항상 도와주는 것을 보았어. 그들은 모두 열심히 사역하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고 하고, 게다가 그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찾아 볼 필요가 있어. 이런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과 상상대로 추구하다 결국 주님께 버림받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하겠어?” 예진은 이양의 말을 듣고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고생하며 사역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인데, 왜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더러 주님은 그들을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양이 끈기 있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섬기고, 육지와 바다를 두루 다니며 전도하고, 평상시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입으로는 늘 경건을 말했어.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1: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태복음 23:23)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볼 때는 바리새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허상일 뿐이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았어. 복음을 전했지만 마지막 결과는 어땠을까?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이끌었지. 예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주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관념을 고수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신도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 막았지. 심지어 신도들을 데리고 로마 정권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한다는 것과 외식하는 그들의 본질을 명백히 보여 준 거야. 비록 그들이 고생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헌신했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한 사람들이 아니었어. 지금의 우리를 보면, 그들과 똑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열심히 전도도 하고 있어.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야.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은 거의 없어. 대부분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처리하고 항상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계획해. 특히 마음에 안 들고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는 일이 임하면 어떤 진리을 알아야 하는지, 자신을 내려놓고 어떻게 주님의 뜻에 맞게 행할 것인지,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만족게 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등등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고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할 진리에는 진입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거야. 더구나 지금 우리는 영이 메말라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느끼지 못해. 그럼에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는 찾아보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잖아. 그냥 단순히 사역만 하고 있지.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라고 하신 이 말씀과 완전히 어긋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힘들게 사역하는 모습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할 수 없지!” 예진은 이양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고, 그 말로 인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말도 맞는 거 같아. 당시 바리새인들도 힘써 사역하고 고난 받으며 헌신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와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어. 여전히 고집스럽게 반항하고 정죄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 나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영적으로 어둡고 갈증을 느끼면서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보지 않았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 나서 예진은 감개무량해서 말했습니다. "응, 네가 한 말도 일리가 있어. 이게 다 우리의 현실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어. 바로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거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로지 주님의 자리밖에 없어. 모든 일을 주님의 요구대로 하고 자신의 선택이 섞이지 않아.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쳤을 때 자신의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말씀을 따라 순종했어.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어. 욥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 했어. 그가 시련을 당했을 때, 온 산에 가득했던 소와 양은 달아났고 자녀들은 죽었어. 몸에는 병도 생겼지.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어. 그래서 하나님은 욥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 베드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를 추구하였고 죽기까지 순종했어. 예수님이 그에게 한 말씀을 모두 그의 가슴에 새겼지. 그 말씀을 본인에게 비춰 보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했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고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그의 추구로 인해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천국 열쇠를 주었지. 역대의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잖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야.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의 모습대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런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 예진은 이양의 말이 진리에 맞다고 생각되어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따르면 안 돼.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해! 속담에도, "일을 주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헛수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꿈에 불과하고 일방적인 소원일 뿐이야!” 예진이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한 말들은 너무 옳아. 하나님이 깨우쳐 주신 거라 진리에도 부합되고 주님의 말씀과도 부합돼.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주님의 요구대로 따르고,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야! 하지만 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겉으로 좋은 행동을 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면 천국의 복을 받을 줄 알았거든. 이것은 내 관념이었고 상상이었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3) 이 우리한테 나타날지도 몰라. 그 결과는 정말 너무 엄중해. 주님 감사합니다! 이양아, 너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 이제 나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구나!" 이양은 예진을 보면서 이양과 예진은 마주보면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창밖의 작은 새는 여전히 나무에서 재잘거리고, 태양이 비추고 있는 꽃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