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는 무엇을 뜻하는가

2019년 02월 04일

성경 에스겔서 37장 5절과 6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었던 역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는 것으로, 죽을 당시의 몸 그대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만, 성경의 예언은 정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그럼 이 방면에 초점을 두고 우리 한번 교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죽은 자’입니까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죽은 자’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죽은 자들을 언급했는데 심장이 멎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사람, 즉 육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도 그렇습니까?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성경에 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태복음 8:21~22) 이로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는 육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죽은 자’입니까? 저는 한 책에서 이와 관련된 말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은 자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며, 영이 마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원래 창조한 사람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사탄이 타락시킨 까닭에 사람은 사망 속에서 살게 되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자가 되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었으며, 사탄의 도구가 되었고, 사탄의 포로가 되었다…. 죽은 자는 영이 없는 사람이며,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으며, 오로지 대적과 패역만 존재할 뿐 충성심은 전혀 없다.』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탄에게 유혹되고 타락된 후에, 사탄의 권세 하에 살면서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타락하여 세상의 흐름을 따르고 진리를 싫어합니다. 또한 사악을 숭상하고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죄악 속에 살면서 죄의 낙을 누리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년 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세상의 흐름을 따르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며, 늘 죄를 짓고 하나님께 대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늘 거짓말하고 기만하여 주님께 미움을 사고, 하나님 앞에서는 기도를 잘하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실행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교만한 성품으로 인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간혹 병이 나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속으로 주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주님을 배반합니다. 이런 사실에서 보면 소위 말하는 ‘죽은 자’는 육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영이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마음속에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늘 타락한 성품에 살고 사탄의 권세 하에 살며, 하나님께 충성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 안중의 ‘죽은 자’입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 버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또한 진정으로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입니다.

‘죽은 자’는 어떻게 부활합니까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죽은 자’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복음 16:12~13)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한복음 5:21~22) 베드로는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그런데 책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말씀,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해야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 또 심판과 형벌의 사역이 있게 되었다. 이 단계에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에게 실행할 길을 준다….』, 『인간으로서 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기꺼이 순종하고,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원하는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인류를 죄 속에서 구속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성은 아직도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죽은 자’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무릇 진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을 ‘부활’시키려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거역하고 대적하는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을 우리가 진심으로 알도록 하십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한 새로운 앎이 있게 되어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속에서 살아나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욥과 베드로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하여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데, 이런 자들이야말로 새로 지으신 사람이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타락한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야만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입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39~40)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

나는 '천국 꿈'에서 깨어났다

봄날의 이른 아침, 태양은 동쪽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햇빛은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었습니다. 길가의 풀과 꽃들은 혈기왕성하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활기가 넘쳤고, 작은 새도 뒤질세라 나무에서 재잘재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생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이양은 즐거운 마음으로 밝은 햇살을 받으며 예진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진의 집에 도착한 이양이 상냥하게 물었습니다. "예진아, 요즘 뭘 그렇게 바쁘게 보내니?" 이양이 묻자 예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빼고,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하러 나가. 어제는 황 자매님이랑 옆 동네 둘째 숙모님 댁을 찾아갔지.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장장 5리를 걸어갔다고! 하지만 둘째 숙모님이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했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지." 그러자 이양이 "엄청 좋아하는구나." 예진이 말했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너 알아?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셨어.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수고를 많이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전도를 많이 해서 열매를 맺고, 힘써 사역하면 주님이 오실 때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 주실 거야!" 예진의 말을 들은 이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예전에 내 생각도 너랑 똑같았어. 열심히 사역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고, 주님 위해 봉사하고, 나의 청춘을 바치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꼭 천국으로 데려가실 거라고. 그런데 난 최근에 진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설교자들을 만났어. 그분들과 교류하면서난 생각이 달라졌어. 우리의 이런 추구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과 거리가 아주 멀어. ” 예진은 의아해하며 이양에게 "뭐?"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도 말했잖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고 고생하며 힘들게 봉사하는데 설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없겠어? 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양이 말했습니다. "예진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을 믿고, 누가 한 말이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맞는지 고려해야 해. 주님의 말씀에 맞으면 듣고, 주님의 말씀에 맞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념과 상상에서 나온 거야!”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린 채 듣고 있었습니다. 이양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고, 사방으로 전도와 설교를 하러 다니고,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항상 도와주는 것을 보았어. 그들은 모두 열심히 사역하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고 하고, 게다가 그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찾아 볼 필요가 있어. 이런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과 상상대로 추구하다 결국 주님께 버림받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하겠어?” 예진은 이양의 말을 듣고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고생하며 사역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인데, 왜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더러 주님은 그들을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양이 끈기 있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섬기고, 육지와 바다를 두루 다니며 전도하고, 평상시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입으로는 늘 경건을 말했어.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1: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태복음 23:23)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볼 때는 바리새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허상일 뿐이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았어. 복음을 전했지만 마지막 결과는 어땠을까?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이끌었지. 예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주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관념을 고수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신도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 막았지. 심지어 신도들을 데리고 로마 정권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한다는 것과 외식하는 그들의 본질을 명백히 보여 준 거야. 비록 그들이 고생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헌신했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한 사람들이 아니었어. 지금의 우리를 보면, 그들과 똑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열심히 전도도 하고 있어.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야.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은 거의 없어. 대부분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처리하고 항상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계획해. 특히 마음에 안 들고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는 일이 임하면 어떤 진리을 알아야 하는지, 자신을 내려놓고 어떻게 주님의 뜻에 맞게 행할 것인지,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만족게 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등등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고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할 진리에는 진입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거야. 더구나 지금 우리는 영이 메말라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느끼지 못해. 그럼에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는 찾아보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잖아. 그냥 단순히 사역만 하고 있지.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라고 하신 이 말씀과 완전히 어긋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힘들게 사역하는 모습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할 수 없지!” 예진은 이양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고, 그 말로 인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말도 맞는 거 같아. 당시 바리새인들도 힘써 사역하고 고난 받으며 헌신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와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어. 여전히 고집스럽게 반항하고 정죄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 나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영적으로 어둡고 갈증을 느끼면서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보지 않았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 나서 예진은 감개무량해서 말했습니다. "응, 네가 한 말도 일리가 있어. 이게 다 우리의 현실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어. 바로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거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로지 주님의 자리밖에 없어. 모든 일을 주님의 요구대로 하고 자신의 선택이 섞이지 않아.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쳤을 때 자신의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말씀을 따라 순종했어.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어. 욥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 했어. 그가 시련을 당했을 때, 온 산에 가득했던 소와 양은 달아났고 자녀들은 죽었어. 몸에는 병도 생겼지.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어. 그래서 하나님은 욥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 베드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를 추구하였고 죽기까지 순종했어. 예수님이 그에게 한 말씀을 모두 그의 가슴에 새겼지. 그 말씀을 본인에게 비춰 보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했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고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그의 추구로 인해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천국 열쇠를 주었지. 역대의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잖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야.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의 모습대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런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 예진은 이양의 말이 진리에 맞다고 생각되어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따르면 안 돼.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해! 속담에도, "일을 주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헛수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꿈에 불과하고 일방적인 소원일 뿐이야!” 예진이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한 말들은 너무 옳아. 하나님이 깨우쳐 주신 거라 진리에도 부합되고 주님의 말씀과도 부합돼.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주님의 요구대로 따르고,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야! 하지만 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겉으로 좋은 행동을 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면 천국의 복을 받을 줄 알았거든. 이것은 내 관념이었고 상상이었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3) 이 우리한테 나타날지도 몰라. 그 결과는 정말 너무 엄중해. 주님 감사합니다! 이양아, 너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 이제 나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구나!" 이양은 예진을 보면서 이양과 예진은 마주보면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창밖의 작은 새는 여전히 나무에서 재잘거리고, 태양이 비추고 있는 꽃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은 무엇일까?

창밖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서찬이 전도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저녁 9시가 되었다. 아내가 바삐 음식을 데우며 식사 준비를 할 때, 딸아이 소원도 교회에서 돌아왔다. 서찬은 얼른 딸아이에게 밥을 주며 함께 먹으려 했다. 그런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앞에 둔 딸아이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서찬이 딸에게 물었다. "소원, 왜 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딸아이가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아빠, 엄마, 제가 그동안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평상시에 목사님과 장로님이 설교하실 때, 항상 전도를 많이 해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어요.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며 헌신하고, 힘써 사역하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우리도 확실히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하지만 주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주님은 왜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셨을까? 우리가 이렇게 고난 받고 헌신하며 힘써 사역하는데 마지막 날에 정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소원의 말을 들은 서찬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소원, 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야.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믿고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하는데 설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겠니? 사도 바울도 말했잖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 지금 우리는 바울의 말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양육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어. 그동안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위한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어. 우리가 한 모든 행동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주님이 오실 때 분명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거야!"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소원, 아버지 말씀이 맞단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틀림없이 맞아.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렴." 딸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바울의 말을 따라 행했어요. 힘써 사역하고 헌신해서 많은 대가를 치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죠.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천지는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아요. 힘써 사역한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주님은 어째서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불법을 행한 자라고 정죄하셨을까요?” 딸아이의 말에 서찬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래.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이 다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 주님의 말씀은 진리야. 이건 틀림없어.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어. 이렇게 하는 게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찬의 생각이 끊겼다. 소원이 얼른 가서 문을 열어 보니 서찬의 조카 청현이었다. 청현이 웃으며 말했다. "외삼촌, 외숙모, 오늘 동역자들과 함께하는 성경 읽기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오늘 모임에서 느낀 점들을 나누고 싶어서 들렸죠.”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청현, 방금 우리도 한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던 중이었단다. 때마침 잘 왔구나! 너도 생각을 말해 보렴!" 서찬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 청현, 방금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어. 나는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라고 한 말대로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위해 사역하고, 주의 이름을 지키고, 주의 말씀을 지켜서 주님이 오시길 깨어서 기다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9:2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믿어. 하지만 소원이 성경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라는 구절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걱정된다고 하는구나. 힘써 사역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이야. 청현,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번 얘기해 보렴!" 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오빠, 우리는 이 문제를 정말 모르겠어. 어서 오빠 생각을 말해 봐." 청현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성경 읽기 모임에서 이 문제를 토론하고 있어요!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의 일을 하고, 바울을 본받으면 주님이 오실 때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사람의 관념에는 맞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행동의 원칙이고, 모든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죠. 깨어 기다리며,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주님의 말씀이 벌써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알려 주셨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주님의 말씀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지,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고, 부지런히 사역하면 상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예수님은 천국의 왕이십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구원 받을 수 있는지는 주님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오빠 말이 맞는 거 같아.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해야만 주님의 뜻에 맞을 수 있어”. 서찬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청현, 너의 나눔은 성경에도 부합하고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했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해.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따라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했어. 이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면 뭐겠니?” 아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청현, 설마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닐리가 있겠니? 청현이 말했다. "외삼촌, 외숙모, 우리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말해볼까요. 당시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은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전도 사역을 했어요. 사람이 보기에 좋은 행동을 많이 했고, 경건해 보였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의 정죄와 저주를 받고, '일곱 가지의 화'가 임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힘써 사역했지만 종교 의식만 다루고, 성경의 지식과 이론만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았어요. 모든 행동이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또 지위와 밥그릇 때문이었죠.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미친 듯이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하고 외식하는 본질을 완전히 드러냈어요. 이 사실을 보면, 힘써 사역하고 좋은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힘써 한 모든 사역은 사람의 좋은 행위에 속할 뿐,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볼 수 없어요. 소원이 찬성하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 하고 주님께 정죄 받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아. 힘써 사역하지만 모두 자기 뜻대로 하고, 자기가 복을 받고, 이득을 얻으려고 했던 거야.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야. 오히려 주님의 뜻은 따르지 않았어.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게 아니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는 관계없어!" 청현과 소원의 말을 듣고 난 서찬은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그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현, 네 생각이 맞구나. 바울의 말은 진리가 아니야.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이지. 만약 힘써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라면 그 바리새인들은 진작에 천국에 들어갔겠지, 어떻게 주님의 저주를 받았겠어! 바울의 말은 확실히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구나! 우리가 예전에 바울의 말을 따라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 정말 주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거였어! 우리가 계속 이렇게 추구한다면 틀림없이 주님께 버림 받을 거야!” 아내도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겉으로만 힘써 사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건, 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구나! 청현,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니?” 청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때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지키고, 완성할 수 있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한복음 14:23~24)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한복음 8: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9) 베드로는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바쳤어요. 주님의 마음과 요구대로 엄격히 교회를 양육했고, 자신의 득실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한 적도 없었어요.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고,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어요. 베드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어요. 또 욥도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어요. 하나님이 상을 내리든 거두어 가든, 하나님이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욥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어요. 그는 하나님의 눈에 온전한 사람이에요. … 등등 역대이래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어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고,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았어요. 그래야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확실히 많은 고난을 받고 많은 대가를 치른 것을 봤어요. 심지어, 감옥에 가고, 순교하면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았어요. 주님께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힘써 사역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요.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아요. 본인의 뜻에 따라 함부로 행동하고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고 항상 거짓말로 속여요. 모든 행동은 다 복받고, 상받기 위해서고 천국에 들어가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예요. 이런 걸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닌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아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이 때, 서찬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청현에게 말했다. "청현, 난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어! 이제야 알겠구나.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증거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였어!” 아내도 몹시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현의 말이 맞아.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지만 단순히 힘써 사역하며 헌신하는 것밖에 몰랐어. 바울의 말대로 힘써 사역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 정말 너무 어리석었어. 이제야 알겠어. 주님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길 바란다는 걸. 욥과 베드로처럼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야! 가장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소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늘 밤 이렇게 나누지 않았다면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그동안 헌신했던 게 다 주님을 속이는 거고, 상을 위해 주님을 이용한 것인 줄도 모른 채 계속 잘못된 길로 갔을 거예요. 그러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그것을 밑천 삼아 주님과 거래했을 거고, 결국에는 주님께 정죄 받고, 벌을 받아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정말 무섭네요!" 청현이 기뻐하며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밤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건 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예요. 모든 영광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내, 딸, 서찬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알고, 행할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

왜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까

말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된 것만 해도 200곳이 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죄 사함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왜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말세에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는지 알아보고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천국'은 정말 하늘에 있을까요?

저는 배를 타는 선원입니다. 저는 90년대 중반 해외에서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성경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예배에 참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저의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여러 번 '천국'을 언급하신 것을 보고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천국'과 관련된 일부 성경 구절들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3: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와 같은 말씀입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성경 구절들을 마주하면서 저는 상상으로 가득했는데 천국은 반드시 하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잖아.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될 거야. 장래에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늘로 영접할 것인데 그럼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만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런 성경 구절들을 볼 때마다 천국에 대해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영화에서 보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로운 곳처럼 바닥은 보석으로 깔려 있고, 성(城)은 황금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천국에 있는 사람은 다 영화에 나오는 신선들처럼 자유자재로 살면서 영생을 누릴 거야.’라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으로 가득 찼는데, 어떤 때는 꿈속에서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배에서 예수님을 믿는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저와 똑같이 모두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읽다 보니 성경 분문의 어떤 말씀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6장 10절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되었고, 또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런 말씀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영문인가? 천국은 당연히 하늘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또 땅에 있을 수가 있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계시록의 말씀은 성령이 요한에게 계시한 이상이므로 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잖아.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에 베드로 후서 1장 20~21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맞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높기에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계속 저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12년, 설이 막 지나자 저는 승선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하루전 날 오후, 저의 먼 친척인 고모 할머니(그분은 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저에게 전해주셨던 분입니다.)가 갑자기 엄청난 희소식을 알려 주겠다며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저를 찾아오셨는데, 당시에 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흥분하시며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단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 거야. 성경에서 말한 천국이 이미 내려온 거라구!” 저는 놀라서 “주님이 돌아오셨다구요? 천국이 내려왔다구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돌아오셨단다. 그분은 바로 말세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번 더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로는 말씀을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단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그 가운데서 자신의 추악하고 패괴(역주: 부패, 타락, 망가짐을 포함하여 더 깊은 뜻이 있음)된 본성 실질을 인식하게 하고,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인데 이 단계사역을 마치시면 하나님은 대재난을 내려 상선벌악 하신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훼멸될 것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 후에 이 땅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민이 되고 땅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되는 것이란다. 그때 인류는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된단다.” 고모 할머니가 전해준 희소식을 들으면서 저 역시 조금 격동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있다고 하시는 걸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지 아니면 땅에 있는지 하는 이 문제로 몇 년간 계속 곤혹스러웠기 때문에 그때 저는 한번 잘 찾고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방금 할머니께서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장래에 영원히 땅에서 생활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 천국에 관한 기록이 있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하늘로 영접한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하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관점은 다 똑같은데 모두가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지.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반드시 그들을 하늘 위로 이끌어 올려 거기에서 살게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자세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도 땅에서 하셨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다 예비해 주셨지.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이래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니?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13절에서 말씀하셨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보듯이 인류는 오직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할머니의 교통을 들으면서 저는 그것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선조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지으셨고, 당시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 역시 땅에 있었어. 인류가 하늘에 올라가서 살 거라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왜 그들을 하늘에 두지 않았을까? 보아하니 사람이 정말로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 같아.’라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어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류가 구원받고 사탄이 훼멸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고 사람도 더 이상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있다.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계속 전 인류를 이끌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늘의 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지 않고, 사람도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처소에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살 수 없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다...사람이 안식할 곳은 땅에 있고, 하나님의 안식처는 하늘에 있다. 사람은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남아 있는 인류를 이끄는데,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끄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이고 사람은 여전히 육신이기에, 하나님과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식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했단다. 사람과 하나님은 같은 경지에서 생활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고 땅은 사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지. 사람은 단지 피조물로 오직 땅에서만 살 수 있고 사람의 마지막 처소도 땅에 있는 것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천국은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때 온 땅의 나라는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인류는 땅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인데, 천국의 생활이란 바로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란다.” 할머니가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듣고 난 후, 저는 감탄조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셨어요.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하늘이 아닌 땅에서 살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마련해 준 생존 환경은 바로 땅에 있기 때문이네요. 그러므로 인류의 마지막 처소 역시 땅에 있어요.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해요. 알고 보니 천국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후에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의 저의 관념과 상상을 깨뜨렸고 또 저에게 실제적인 희망을 가져다 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참 흥미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의 아내가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에 저에게 메모리 카드를 주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배에서 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묵상하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인을 떼신 어린양이고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여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알려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마지막 처소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복 사역이 끝나면 인류는 아름다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땅에서 살게 되지만 지금 사람이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삶은 전 인류가 정복된 후에 있게 되는 삶이고, 인류가 땅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에게 그런 삶이 있게 되면 그것은 인류가 새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경지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 모두가 창조주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맨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게 되는 그런 삶은 앞으로의 땅에서 사는 삶이고, 땅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고, 유사 이래 사람에게 없었던 삶이다. 그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가장 소망하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이 단계의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아주 실제적입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는 땅에서였는데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땅 위에 아주 적절하게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아주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말세에 그분은 다시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그분의 6천년 경영 계획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며,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하늘의 생활같이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때의 생활은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데 더 이상 사탄의 방해가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인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생활이고 다군다나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말세에 태어난 사람의 가장 큰 복입니다. 휴가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우여곡절 끝에 현지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와 연락이 닿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으로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양육을 누리게 되었고, 교회 생활의 달콤함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비할 데 없는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래 토론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왜 땅위의 모든 족속이 다 애곡할까요

요한계시록1장 7절에서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도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 우리를 맞아가기를 기다립니다. 그때 우린 기뻐서 춤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왜 모든 족속이 그 분때문에 애곡한다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속의 비밀을 알려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에서부터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데에 대한 예언이 아주 많은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시록16:15)“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태복음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태24:44)“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태24:36),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계1 :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태24:30), 이런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의 예언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에는 공개적인 강림도 있고, 또 ‘도적같이’ 혹은 ‘밤중’, ‘인자’ 이런 은밀히 강림한 말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은밀한 강림과 공개적인 강림, 이 두가지 방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의 나타나시는 방식이 같지 않음은 주님이 다시 오실때 절차를 나누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먼저 은밀하게 오시고 나중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선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즉 성육신하여 ‘인자’의 신분으로 은밀하게 강림하여 진리를 발표하여 말세의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마치 당초에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실때 인자의 형상으로 인간세상에 와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육신은 평범하고 정상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지 못해 그의 사역은 은밀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기간 총명한 처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신랑이 온 것을 알고 다 잇따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요한복음10장 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께 속한 양을 그분의 보좌 앞으로 부르시려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밀을, 산양과 양을, 악한 종과 선한 종을 가르고 동시에 한 무리의 이긴자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누어지고 하나님이 은밀하게 강림하신 사역도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만인에게 나타나시고, 대재난을 잇따라 내리시고, 상선벌악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 기간에 성경 구절을 고수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관념으로 가득차 구하지도 알아보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맹목적으로 종교 지도자와 중국 공산당 정부를 따라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면서 유언비어와 그릇된 논조를 퍼트리는 사람들, 또 자신의 명예와 지위와 밥통을 위해 집권당과 결탁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종교계의 지도자들은 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드러난 악한 종이고, 적그리스도로 구원의 기회를 철저히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임을 보게 될 것이니 그들이 어찌 가슴을 치며 애곡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때 “모든 족속이 다 애곡 ”하는 장면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처럼 홍수가 오지 않은 날에는 은밀한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홍수가 올 것이다’는 것을 전할 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공격과정죄, 비난과 훼방을 받았었지만 홍수가 올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을 징벌하는 날이 올 때(즉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아연실색하고 모두 노아가 전한 하나님의 뜻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최종에는 홍수에 훼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단계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구원이십니다.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곧 징벌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벌써 중화 대륙에 널리 퍼지고 집집마다 알고 있어 각 종교 각분야를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바라는 수 백만의 사람들은 이미 다 잇따라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와 종교계의 핍박과 박해중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한 무리의 이긴 자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각국 각방에 널리 전파됨에 따라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잇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은밀하게 강림하여 사역하시는 계단은 끝나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시종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지도, 찾고 구히지도 않으면서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시기를 기다린다면, 그럼 주님이 공개적으로 강림할 때에는 재난 가운데서 이를 갈며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똑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른다는 각 성도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은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일 것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 믿으면서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 말씀을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와 긍휼이 있을뿐만 아니라 더욱이 위엄과 진노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순복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긍휼이고 구원이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을 저버리고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이고 징벌이고 저주이며 최종에는 훼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애쓰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만든 사람이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총명한 처녀가 되어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된 길을 찾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또한 요한계시록 중의 14장 4절의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란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은밀히 강림하셔 진리를 발표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구속사역의 기초에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그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문을 두드리십니다. 무릇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어린 양이 베푼 연회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여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게 되고, 새 하늘 새 땅의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 천국에 데려가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셔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도태될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재난속에 떨어져 이를 갈며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신자들은 세례를 받고 나면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