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 연애 — 실연의 아픔이 주는 각성

2019년 08월 02일

초여름 아침, 공기 중에는 상쾌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은 모든 곳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꽃무늬 시폰 스커트를 입은 친이는 지하철역에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앉아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스크린 속 여자가 남자에게 바람을 피웠다며 헤어지자고 말하고, 그 후 돌아서는데 눈물이 두 뺨 위로 흐르는 장면을 봤습니다. 친이는 그 장면을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과거 친이는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을 품고 남자친구와 함께했지만 결국 상처만 남았습니다….

친이는 어려서부터 ‘화접’이라는 노래를 좋아했고 ‘양산백과 축영대’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영화 속 ‘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만나는 날 그대와 헤어지리라’라고 말하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에 흠뻑 빠진 친이는 자신과 함께 늙어가고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날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17살이 되던 해, 친이는 위헝을 만났습니다. 위헝은 따뜻하고 다정했으며 친이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생활적인 부분으로 힘들어하는 친이를 볼 때면 위헝은 온갖 방법으로 친이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친이의 특기는 수다였고 위헝의 특기는 듣기였습니다…. 어느새 친이는 위헝의 유머러스함과 착한 마음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저 사람이 내가 찾던 그런 사람인가?’라고 자문자답했습니다. 친이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위헝과 친이는 자주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친이는 가끔 전화를 받지 않고 심지어 휴대폰을 꺼놓는 위헝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이는 친구로부터 위헝이 기혼자이고 1살 남짓의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이는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여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친이는 위헝과 함께 평생을 같이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위헝은 친이를 속였습니다. 친이는 위헝이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친이는 깊은 밤 적막 속에 홀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이는 가정을 깨뜨리는 불륜녀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위헝이 빌며 사정했지만, 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을 찢는 고통으로 위헝과 모든 연락을 끊었습니다.

몇 년 후, 친이는 다시 위헝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위헝은 친이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이의 마음도 조금 흔들렸습니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날 향한 위헝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니. 위헝이 이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받아 줘야겠어.’ 친이는 위헝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위헝에게 자신은 불륜녀가 되고 싶지 않다고 정확히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위헝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두 집 살림 안 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 ‘안 살림 따로 바깥 살림 따로’, 이게 정상 아니야? 너 정말 너무 꽉 막혔다!” 위헝의 말에 친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위헝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눈앞에 있는 위헝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친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위헝을 이리도 이기적이고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요?

친이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첫사랑이 이런 결말을 맺게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친이는 언젠가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후 친이는 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호위라는 남자가 친이의 삶에 들어왔습니다. 호위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친이와 같은 취미를 갖고 있었으며 친이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호위는 친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음악과 노래를 들었습니다. 호위는 거의 매일 친이에게 안부를 물었고 부모님께 인사를 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타지에서 만난 호위는 실연으로 상처받은 친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호위는 감정을 실은 노래를 친이에게 불러 주었습니다. “너와 함께 세상 어디든 갈 거야…. 아무 걱정 없는 세상에서 너와 함께 천천히 늙어 가고 싶어….” 친이는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호위가 부른 노래는 친이가 그리던 사랑과 삶이었습니다. 호위는 자신과 함께 서서히 늙어 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렸던 그때가 바로 둘의 사이가 끝나는 길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이는 호위와 함께 그의 친구들과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호위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친이는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상대방과 호위가 미묘한 관계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간 호위에게 자신 말고 다른 여자가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친이가 캐묻자 그는 친이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진심이라며 호언장담했습니다. 호위의 고백에 친이는 그를 믿기로 했습니다. 그 후, 친이는 다른 곳으로 파견되었고 호위 역시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호위와 친이는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위는 친이에게 “앞으로 좋은 친구로 남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호위의 말에 겨우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처럼 마음이 아팠고 숨을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친이는 혼잣말을 되뇌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빨리 끝나 버리다니? 왜 항상 상처받는 쪽은 나인 거지?’ 그 후 친이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냈습니다.

고통에 허덕이고 막막해 하고 있을 때 친이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양육과 공급, 그리고 형제자매의 관심 어린 도움으로 산산이 조각나고 차가웠던 친이의 마음은 온기를 되찾았습니다. 그 후 친이는 종종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으며 진리를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친이는 매일 알차고 기쁘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호위가 친이에게 연락해서는 예전의 좋은 감정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친이는 기뻤지만 바로 또 고민되었습니다. 친이는 호위가 자신과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사 기도드렸습니다. 얼마 후, 친이는 호위의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호위에게 여자친구가 여러 명 있고 호위가 동시에 여러 여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자신과 사귀고 있을 때도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친이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친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바로 자신의 감정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호위는 여기저기 감정을 뿌리고 다녔고 친이는 그런 사람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했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습니다! 친이는 실패했던 두 번의 연애를 돌이켜보며 연극 같은 결말에 더욱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인가? 왜 나는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을 가질 수 없는 거지? 왜 다른 사람들은 나를 배신하고 내게 상처 주는 거지?’

친이는 이런 고통을 교회의 자매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자매님은 친이에게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고통 속에 사는 것은 우리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인류를 타락시킨 이후의 실체와 사탄이 사람을 농락하는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사탄의 그릇된 생각으로 살며 상상 속의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여 생긴 일입니다. 과거 인류는 사탄에게 깊이 타락되지 않았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속박에 살아 사람들은 보수적이었고 진실된 사랑을 추구했으며 남녀 사이에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이 없었다 하더라도 도를 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인류는 사탄에게 깊이 타락되었고 청춘 드라마, 로맨스 소설, 영화 등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의 도덕적인 사상은 타격받아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사악함을 숭배하고 육적인 욕정을 좇았으며 죄악 속에 사는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사악하고 음란한 이 더러운 부정적인 일을 흐름으로 삼았고 부부가 서로 배신하는 일도 흔히 발생했으며 진정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같이 보도록 해요!” 친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이 사회 트렌드를 이용하여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사탄은 그런 사회 트렌드를 이용하여 사람을 악마의 소굴로 조금씩 유인한다. 사회 트렌드의 영향으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돈, 물욕, 사악함, 폭력을 숭배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사람은 어떻게 변하느냐? 사탄 마귀로 변한다! 사람에게는 어떤 것을 지향하는 심리가 있느냐? 사람이 무엇을 숭배하게 되느냐? 사악함과 폭력을 좋아하게 되는 반면 아름다움과 선함을 싫어하고, 평화는 더욱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정상 인성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기보다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육적인 향락을 즐기고 최대한 충족시키고 싶어 하며, 제약이나 속박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살고 싶어 한다.』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인류가 왜 이렇게 사악하고 망가졌으며 이토록 더럽고 타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사탄이 일으킨 여러 사회적 흐름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타락시켰기 때문이죠. 사탄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과 일을 통해 우리에게 ‘안 살림 따로, 바깥 살림 따로’, ‘짧은 인생, 왜 즐기지 않으리’, ‘앞날이 아닌 현재를 즐기자’와 같은 사악한 가치관을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타락된 이후 우리의 본성 역시 매우 악하게 변해 사탄의 사악한 생각에 쉽게 물들어 욕정을 즐기고 사악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하룻밤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로 삼았습니다. 서서히 사탄의 사악한 사상에 물들어 사람들은 무정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하고 악하고 타락하여 양심과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위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윤리나 도덕은 개의치 않고 아내를 배신하면서 자매님과 만난 것은 결국 자매님과 아내를 모두 다치게 한 것입니다. 바람둥이인 호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여자와 연애하며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고 그것이 능력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탄은 이런 사악한 흐름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욕정을 추구하는 잘못된 길로 이끌어 타락시키고 사악한 음란 마귀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부부가 서로를 배신하여 가정을 깨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사악함이 만연해 있고 인간관계가 어지러우며 이혼과 재혼이 점점 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악한 시대에 진심으로 우리를 대해 주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겠죠. 자매님, 우린 방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되는 진실을 보았으며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과 비겁한 목적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 간의 감정을 정확히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 속에서 사탄에게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막막하고 미움 속에서 살았던 친이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탄은 ‘안 살림 따로, 바깥 살림 따로’, ‘짧은 인생, 왜 즐기지 않으리’ 등 사악한 흐름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타락시켰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욕정의 죄악 속에서 점점 사악해지고 이기적이며 비겁하게 변했고 인격과 존엄을 잃어버렸습니다. 위헝과 호위는 바로 그 사악한 흐름에 영향을 받았고 물든 것입니다. 사악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이용한 그들 역시 사악한 흐름의 피해자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친이는 위헝과 호위의 배신에 더는 미련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친이는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하자. 드라마의 어떤 부분이 사람의 관점을 변화시키느냐?… 무엇이 사람을 타락시키느냐? 바로 그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내용이다. 이는 감독의 관점을 대변하며, 이러한 관점에 담긴 메시지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좌우한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친이는 과거 드라마를 보다가 ‘변치 않는 사랑’,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 ‘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만나는 날 그대와 헤어지리라’ 등 사랑관의 영향을 받아 연애에 동경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에게 변치 않는 사랑이 찾아오길 고대했습니다. 두 번의 연애 실패로 친이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TV에서 사람들에게 주입한 불같은 사랑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현실에 그런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탄에 의해 깊게 타락한 후 진정한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이용하고 배신했으며 친이만 바보같이 그걸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런 사랑관에 휩쓸려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결국 사랑의 꿈이 깨지자 극도로 우울해 했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친이는 드디어 사탄이 사람에게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도록 해서 사람을 농락하고 다치게 하며 고통 속에서 찾아 헤매도록 했지만 사실 그런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얻고 싶었던 사랑을 얻지 못해 좌절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 허덕이며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수법 중 하나입니다! 이걸 깨닫자 친이는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자신을 하나님의 앞으로 오게 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탄의 타락한 계략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도와주시고 사탄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딩딩딩….’ 지하철 소리에 친이는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친이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떠올렸고 미소를 띠며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지하철이 움직이자 친이는 손잡이를 잡고 휴대폰을 꺼내 이어폰을 꽂고는 음악과 함께 작은 소리로 흥얼거렸습니다.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아끼고, 이 인류를 사랑하며, 창조주에게만이 이 인류를 내버리지 못하는 참된 마음이 있다. 또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모든 피조물을 아낀다. 그의 마음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끌린다. 그는 인류의 사악하고 타락한 모습에 분노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인류가 회개하고 신복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을 되돌리고 축하한다. 그의 모든 마음과 생각은 인류를 위해 생기고 움직이며, 그의 속성(원문: 所是所有)은 인류를 위해 발현된다. 또한 그의 희로애락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인류를 위해 조용하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바치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의 일분일초를 기여한다.』

‘아낀다’, ‘사랑’, ‘내버릴 수 없는’ 등과 같은 단어가 친이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친이는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집으로 오게 하셨으며 말씀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탄이 사악한 흐름과 그릇된 사랑관으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통제하며 농락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이는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었으며 신기루 같은 사랑을 좇지 않고 사탄의 고통을 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친이는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길을 걷는 것만이 인생의 참된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하며 가장 진실하고 가장 사심없는 사랑은 바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사랑하시며 사람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시고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해 주시고 양육해 주시어 사람이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고 사탄의 고통에서 멀어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런 사랑은 다 보답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친이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며 평생 하나님을 따라 인생의 참된 길을 걷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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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간의 갈등을 해결한 그녀의 비결

오늘날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서로 손님을 뺏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판매업에선 실적 때문에 동료들끼리 고객을 두고 싸우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 고객을 빼앗아서라도 실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울분을 억누르며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러다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동료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고도 실적을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2010년, 저는 어떤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이 업계는 기본급 없이 판매가에서 일부 금액을 받는 인센티브제로, 상품을 파는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경쟁이 심합니다. 제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오래 일한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빈 씨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예전에 어떤 직원 두 명이 서로 경쟁하면서 상품을 팔다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어요. 결국 두 사람 모두 해고됐어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그 사람들 참 너무하네. 돈 더 많이 벌려고 같은 동료끼리 싸움까지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동료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처럼 상품을 팔려고 다퉈선 안 돼요. 그래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직원의 손님은 절대 뺏지 않기로 해요.” 동료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거 좋네. 그럼 공평하잖아. 그럼 예전 그 직원들처럼 자기 상품을 팔려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딱 제가 팔 수 있는 만큼만 팔고 여기 규칙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럴게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먼저 손님을 받고 상품을 소개하면 저는 한쪽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손님을 받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재빨리 자기 상품을 소개했고 아예 제 손님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인데 빼앗아 가면 안 되죠. 먼저 손님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했잖아요.” 당시 동료는 제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동료는 또다시 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그 동료가 먼저 ‘손님을 먼저 받은 사람이 계속 응대한다’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그 동료는 규칙을 너무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제 손님을 가로채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손님을 딴 사람한테 빼앗기면 지금까지 일한 게 전부 헛수고고 돈도 하나도 못 번다며 뒤에서 저를 바보 같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동료가 번번이 제 손님을 가로채는 것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것도, 전부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지 않았나? 당신이 먼저 규칙을 안 지키고 내 손님을 가로챘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겁낼 줄 알고? 나도 바보는 아니야. 다음에 네가 먼저 손님 받으면 나도 빼앗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먼저 손님을 받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잽싸게 제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결국 동료가 소개한 상품을 샀습니다. 손님이 떠난 후,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손님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결국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와 동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같이 근무하면서도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계속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을 가로챘고, 그때마다 저는 엄청 화가 났습니다. 동료가 가로챈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빼앗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실적이 없고, 그럼 계속 여기에서 일할 수도 없을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진열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 지금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손님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전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사람이 착하면 남에게 속고, 말이 온순하면 사람이 타게 마련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반드시 싸워 쟁취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흉하고 악랄하게 변하게 되었으며, 동료끼리든 친척끼리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노리고 서로 죽이고, 추호의 양심이나 이성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제 손님을 가로챘고, 그걸 본 저는 네가 빼앗았으니 나도 빼앗을 거야.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라는 생각에 손님을 빼앗기 위해, 사람됨의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동료와 다투며 매일 질투와 싸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뿐, 여전히 사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야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세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거역으로 저를 대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저를 인도하시어, 사탄이 저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정상 인성은 모두 어떤 몇 가지 방면을 포함하고 있는가? 즉, 견식ㆍ이지ㆍ양심ㆍ인격이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외교(外交)를 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정상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어야 하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이 보았을 때 최소한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실생활에서 육체를 배반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다시는 이익을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격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이끄신 길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실생활에서도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20대 여자 손님 네 분이 마트에 왔고, 제가 먼저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는 얼른 끼어들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료의 모습에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속으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동료가 또 제 손님을 가로채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저는 돈도 못 벌고 다른 동료들한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저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얼른 묵묵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는 것을 보고 동료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는 이득을 위해 다투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상 인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며칠 전에 본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다면 동료가 손님을 빼앗아 갈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손님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든 그것은 전부 합당한 것이고, 피조물인 저는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동료와 싸우고 싶지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료가 경쟁하듯 화장품을 소개해도 더는 동료가 밉지 않았으며,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품을 소개했지만, 결국 여자 손님 네 분은 동료가 소개한 것이 아닌 제가 소개한 상품을 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님이 결국 누구의 상품을 구매하는지는 전부 하나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상품 소개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에 좌우하지 않으며, 손님에게 상품 소개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손님이 반드시 그걸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저한테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고, 가끔 제가 너무 바쁠 때는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점장님 친척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도 특별히 제게 상품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동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제게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동료와 손님을 빼앗으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10m 깊이의 제언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60대 할머니 이야기

2015년 8월의 어느 날,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6시. 난 여느 때처럼 제언으로 가 오리를 집에 데려오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쫓아갈 때마다 오리가 도망가서 제언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오리는 주변을 맴돌지 않고 갑자기 제언으로 뛰어들어 수영하기에 이르렀다 난 화도 나고 급한 마음에 막대기를 들고 제언 언저리에서 오리를 쫓았다. 오리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나는 내가 10m가 넘는 제언 옆에 있었단 사실을 망각했고 발을 헛디뎌 ‘풍덩’ 소리와 함께 제언에 빠지고 말았다.생존본능에 막대기를 꽉 잡고 발버둥 쳤다. 물을 얼마나 마셨던지. 문득 몸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당황한 나는 더욱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하지만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제언 바깥으로 갈 수가 없었다. 순간 느껴지는 무력함에 나는 ‘끝났구나,이 제언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두려웠고, 두려움이 커질수록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발은 땅에 닿지 않았고, 손은 의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잡지 못했다. 제언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또 미친 듯이 벽을 향해 헤엄쳤다. 순간 머리가 물 밖으로 잠깐 나왔고, 어둑해진 하늘과 아무도 없는 주변, 무서울 만큼 가득한 적막함이 나를 에워쌌다. 물속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희망의 끈이 점점 멀어져 가는 듯했다 내게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무서웠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던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이젠 정말 끝이구나. 이대로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긴박한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어찌 하나님을 깜빡했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구해주세요! 저 좀 구해주세요! 당신만이 저를 구원해주실 수 있나이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너는 이것저것 두려워하지 말라. 온갖 고난을 막론하고 너는 내 앞에 안정할 수 있어야 한다.…너의 두려움을 제거하라. 내가 너의 뒷받침이 되는데 누가 길을 가로막으랴?』 그렇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세상만사를 주재하고 배정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시는데 두려울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무한한 믿음과 힘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오늘 제 목숨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겠나이다.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산다면 그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겠나이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떤 큰 손이 나를 물속에서 꺼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나는 물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눈을 떴을 때 잔잔하던 수면에 크게 울렁이는 물결이 ‘철퍼덕’소리를 내고 있었다. 긴장되고 무서웠다. 이때 큰 물결이 나를 제언 벽으로 떠밀었고, 나는 그대로 벽을 잡고 올라가 쓰러졌다.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위대한 힘으로 저를 물에서 구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군요!” 물 밖으로 나온 나는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었고, 심지어 망가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서둘러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그제야 내가 물속에 1시간 넘게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힘겹게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온몸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달라 울부짖었고,온 힘을 다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7살짜리 손자가 나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진흙과 잡초투성이에 얼굴에는 구정물이 묻어있으며 알 수 없는 것들이 온몸에 붙어있고 계속 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할머니,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난 대답할 힘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제언에 빠졌었단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너를 다신 못 봤을 지도 몰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단다.” 침대에 막 몸을 기대어 누웠을 때 코피가 흘렀고 많은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손자를 불러 옆집(먼 친척 손자가 살고 있다)에 가서 의사를 불러 달라고 시켰다. 잠시 후, 손자 부부가 우리 집으로 와 깜짝 놀라 물었다. “할머니! 어쩌다 제안에 빠지셨어요? 거긴 10m도 넘는 덴데! 어떻게 빠져나오신 거예요?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대체 누가 구해준 거예요!…” 나는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신 거야”. 잠시 후, 의사가 와서 링거를 놓고 약을 줬다. 그제야 나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제언에 빠졌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리자 다시금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기묘하시고, 당신은 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주재이자 당신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763"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이튿날,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 모여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보곤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어제 겪은 하나님의 기묘함을 간증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입을 모아 하나님께 찬미 드렸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위대하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곁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나이다.” 주 자매가 격동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천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권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권능을 갖고 있다. 그의 권능은 사람이나 사물, 공간, 지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권세를 행사하고 큰 능력을 나타낸다. 그의 경영 사역을 계속하며 만물을 주재하고 만물에게 제공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사실이며 태고부터 변함없는 진리이다! 』 주 자매가 말했다. “하나님께선 유일무이한 권세를 갖고 계시며 세상 만물과 만사를 주재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경험하니 다니엘이 사자 우리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사자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자매의 교제를 듣자 우리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한 여인이 선물을 들고 친정에 오다가 실수로 강에 빠졌는데, 마침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 바로 여인을 구하러 강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인은 보이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60살 먹은 할머니인 내가 겪은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난 수영도 못하고, 제언에 1시간도 넘게 빠져있었으며, 누구 하나 나를 구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고통스러움에 무기력해지고, 거의 죽어가던 그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나를 바깥으로 밀어내 목숨을 구해주셨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살아 계시는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깨달아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충심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것이다.

내 몸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아픈 기억밖에 없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나는 독창, 종양, 치질로 고통받았고 커서는 시도 때도 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겨울엔 감기를, 여름엔 열사병에 시달렸다. 몸도 약해서 조금만 고된 일을 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저혈당으로 어지럼증과 두통은 달고 살았다. 여러 가지 병들이 끊이지 않았다. 몸이 허약하다 보니 부모님과 형제들은 혹여 내가 힘들거나 추울까 봐 노심초사했다. 결혼 후 남편 역시 나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힘든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가족들의 사랑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하지만 병마가 가져온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가족들이 날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기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와 몸을 일으키기도,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목도 뻐근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의사를 불러왔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했고, 내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 결국,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며칠 지나면 저절로 호전될 것입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난 계속 침대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난 계속해서 생각하고 스스로 물었다.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고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통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 속에 신음하고 괴로움이 날 감쌌을 때 자매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다. “육체의 고통과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 사람을 괴롭히면서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되어 질병도, 고통도 점점 심해졌고, 갈수록 인간 세상의 공허함과 비참함, 인간 세상에서의 생존이 불가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고통은 사탄이 더한 것이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려면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이런 고통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고통들을 다 체험하면 맨 마지막에 사람의 이런 고통들을 면해 준다. 사람을 대신해 모든 고통을 받은 후 하나님은 힘 있는 증거를 갖게 되어 마지막에 인류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게 되는데, 바로 사람의 생로병사를 면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의의 있지 않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날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죽어가던 내 영혼에 밝은 빛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땐 인간이 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켜 인간이 사탄의 어두운 권세와 타락한 육신에서 살게 되면서 인간 세상에 고통과 번뇌, 그리고 생로병사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인간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하시고 친히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오셨다. 2천년 전, 자비로우신 구세주 예수께서는 인간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고자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늘날 다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병마와 고통을 없애주시려 기꺼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진리가 인간을 이끌고, 구원해주리라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직접 사탄과 싸우기까지 하셨다. 이 모든 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을 다시 구원해 인간이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히 벗어나 더는 고통과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인간을 고통과 번뇌가 없는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 인간의 병과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게 되었고, 어머니처럼 진실한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을 것이란 희망도 품게 되었다! 그 후 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으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키워갔다. 고통이 찾아올 때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 기도드리고 나의 고통과 나약함을 호소하며 병마를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희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렸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는가?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과 힘을 다시금 불어넣어 주셨다.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내 병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숨이 붙어있는 한 하나님께선 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평온해지며 더 이상 병으로 인해 일찍 죽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고,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욥의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의지하라고 하셨다. 또한, 사탄이 인간의 육신을 통해 괴롭히니 육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나는 병든 몸을 하나님께 맡겼다. 병든 육신에서 살지 않고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라는 말씀으로 살았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다 보니 병은 어느샌가 완치되어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했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난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신 의사셨다! 이제 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창조주의 앞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얻은 생명은 광명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건강하게 하나님의 앞에서 사는 것이다! 날 구원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린다!

돈을 위해 지친 날들과 이별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다

그는 가난한 시골집으로 시집 가서 항상 돈 걱정을 해야 했고 주변의 비웃음도 당해야만 했습니다. 악착같이 돈만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내팽개쳤고 다툼 끝에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쳐가던 중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삶의 방향도 찾게 되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느꼈다

소란 2012년,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며, 얼만큼의 부를 쌓는가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론적으로만 알뿐 마음 속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매일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렸고, 하나님 말씀도 많이 읽지 않았으며 심지어 예배에 빠진 적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고,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주셨다. 2015년 9월, 추석이 다가오자 나는 이웃과 함께 밤을 따러 산에 올라갔다. 떨어진 밤을 줍고 난 후, 높은 나무에 밤이 많은 걸 보고 나는 4~5m 되는 나무에 올라가 장대로 밤을 쳐냈다. 그런데 나무에 올라 몇 번 치지도 않았는데 중심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뾰족한 것에 찔린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일어나려 했지만 두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도움을 청했지만 이웃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내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온몸에 힘도 빠졌다. 만약 이웃이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나 혼자 이 산에서 아무도 모른 채 죽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제가 나무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저를 당신께 맡겨 당신의 주재에 따르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 순간 마음속이 환해진 느낌이었다. 그렇다! 내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오늘 내 목숨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인데 내가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두려움은 사탄의 교란과 시험이 아닌가? 하나님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졌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20분가량이 흘렀을까. 이웃과 또 다른 사람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을 본 나는 하나님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꼼짝도 못 한 채 쓰려져 있는 내 모습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몹시 놀라며 내게 말했다. “소란, 자네 머리가 저쪽으로 조금만 갔어도 나무뿌리에 부딪혔을 거고, 이쪽으로 조금만 왔어도 날카로운 대나무에 찔릴 뻔했어. 정말 위험했는데 운이 좋았네! 하늘이 도왔어!”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병원에 도착해 X-레이를 찍었고, 그 사진을 보며 의사가 내게 말했다. “늑골 4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렀어요. 흉골도 부러졌고, 왼쪽 어깨뼈도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어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엄습했다. ‘어쩜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지? 혹시라도 불구자가 되면 어쩌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을 주셨다. 고통 앞에서 나는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원망과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무에서 떨어져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웃에게 나를 돕도록 하시어 내가 제때 병원에 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의사는 부상이 심각하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을 믿는다. 내가 의지할 유일한 곳이 바로 하나님이다. 내 모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 한쪽이 든든해졌고,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때 나는 형편상 큰돈을 들여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던 공장에서 나를 위해 660만원 정도이나 모금해준 것이 아니던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임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의 동료들이 나를 위해 모금 하도록 하여 내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내 마음은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심각한 고비를 막 넘겼을 때 더 큰 고비가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낙상사고로 폐에 피가 차서 의사 선생님이 내 폐에 찬 피를 뽑아주셨다. 한 번에 750ml나 뽑았다. 게다가 폐에 있는 모든 피를 다 뽑을 때까지 계속 뽑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친척의 도움으로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친척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긴급 상황이야. 의사가 피를 잘못 뽑았어. 간에 있는 피를 모두 뽑고 말았어. 큰 병원에 연락해놨는데 내일 데리러 오겠대.” 친척의 말에 나는 또다시 공포감에 휩싸였다. 간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인데, 그렇게 많은 피를 뽑았으니 만약 큰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 아닌가?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두려움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저는 몹시 나약합니다. 두렵습니다. 부디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제 목숨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죽든 아니면 살든 하나님의 뜻대로 하세요. 저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다음 날 나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는 지금 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치료가 잘 된다 해도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피를 보충하고, 링거를 꽂고, 나를 단단하게 묶었다. 온몸이 단단하게 묶여 몸에 묶인 자국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날씨도 더운 데다가 허리에 바늘을 꽂고 있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침대가 다 젖어 마치 물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런 데다 온몸이 가려워서 긁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느니만 못한 그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특히 옆에 있던 환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걸 볼 때면 내 모습을 떠올리며 혹시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걱정했다. 그때 나는 끝없는 고통에 빠졌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을 아시고 말씀으로 위로해주셨다. 라는 노래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보잘것없는 믿음도 보게 해주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심지어 소극적으로 원망했으며, 하나님의 주재를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간 직접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이 계속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았는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의사는 내가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하나님의 손안에 내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식물인간이 될지 말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이다.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15일에 걸친 보혈 치료 끝에 나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17일간 입원했고, 다시 원래 있었던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두 자매님이 찾아왔다. 정말 감동이었다. 한 자매님이 내 침대로 와 몸을 숙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자매님, 이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 해요…” 자매님의 관심 어린 따뜻한 위로에 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날 떠나지도, 날 버리지도 않으시고 내 곁에서 계속 나와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세가 심각하여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가족들마저 나를 귀찮아하며 돌봐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매님들은 나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내 일상생활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었다. 이로써 나는 하나님의 집만이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이렇게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날 내가 기적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적인 걸음은 아니었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퇴원하면 꼭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다시 20일간 입원한 뒤 나는 퇴원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직접 체험한 나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 생활을 했다. 얼마 후 병원에서 내 상황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내 상태를 얘기하자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얘기했다. “회복이 정말 빠르네요! 제가 다 기뻐요!” 난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은 2년여를 되돌아보면 나는 종일 바쁘게 일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자 하나님께선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셨다. 내가 4~ 5m 높이의 밤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어 이웃에게 나를 구하러 가도록 하셨고 내가 의료비를 부담해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회사의 사람들을 움직여 나를 도와주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 게 아니던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무소부재하며, 그의 지혜와 권능도 무소부재하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의 권세가 유일무이하며 하나님의 권세와 주재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된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빨리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형편도 안 좋은데 하나님께서 회사 사람들에게 내 병원비를 도와주도록 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걱정을 덜어주시고, 어려움에서 극복하게 해주셨으며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위기가 닥치면 돈, 명예, 지위 따위는 우리를 구해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시고,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다. 앞으로 나는 돈 버는 일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딸의 성적을 위해 밤늦도록 같이 공부하고, 과외도 시키고, 보충 학습까지 하여 드디어 딸의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게 된 날. 집에서 초조하게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전해온 것은 딸이 남긴 메모지 한장, 거기에는….

조물주의 안배에 순복하니 마음이 기쁘다

저는 키가 아주 작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는 이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면서 저를 임신했을 때 왜 영양 보충을 하지 않았냐고 어머니를 원망했고 제가 중학교 때 키가 한창 클 나이에 집이 왜 그렇게 가난해서 좋은 음식을 넉넉히 먹이지 못했냐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늘 남의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 ‘주유’로 자신을 변명했습니다. 저는 TV에서 나오는 늘씬한 몸매에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자애들을 부러워했고 꿈속에서까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때 키높이 깔창이 유행했었는데, 깔기만 하면 키가 커질 수 있다고 해서 저는 아버지께 사달라고 졸랐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때 골절로 입원했던 적이 있는데, 의사들이 종아리를 톱으로 켜서 뭘 넣고 매일 누르면 한동안 지나서 골격이 자라나면서 다리가 길어진다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만약 그때 돈이 있었다면 수술을 택했을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이 계속 저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상처로 되어 상황이 닥치면 열등감이 생겨 울고 싶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꿀 수 없었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런 한마디 전형적인 대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뭐든 농축한 것이면 다 알짜야!”라는 전형적인 대사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간혹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는 척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작지만 농축된 알짜죠. 하하……” 하지만 그것은 쓴웃음과 자기 조소였으며 그 웃음 뒤에는 여전히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이 저에게 임하여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읽게 된 후에야 저의 마음속에 진실로 빛이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 나는 이 한 무리 즉 오늘의 너희를 예정 선택하기 시작하였다. 너희의 성정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이끌어온 것은 더욱 나의 안배이다.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태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사람 머리털의 색상, 피부색, 생김새, 키까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일찍이 명정하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마치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주시면서 더 이상 운명에 대항하지 말고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태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 말씀 시가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해야만 총명한 사람이다≫ 중의 한마디 말씀이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을 걸어라.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그렇게 많이 고려하지 말라. 전망과 운명이 네 손에 장악되어 있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운명을 주관하고 계시고 저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며 다 안배해놓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설마 제가 하나님의 명정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로 저의 마음속에 이런 걱정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심령의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철저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하나님 권병에 관한 진리를 보았을 때에야 저의 이런 열등감이 소극적이고 부득이함에서 진정 적극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 한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든, 남자이든 아니면 여자이든, 그 생김새가 어떠하든 이런 것은 다 잠시적인 것이고 다 조물주가 전체 인류를 경영함에 있어서 각 시기의 하나하나의 작은 부호(符號)와 표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 사람의 진정한 귀숙과 결국은 결코 그 한 시기의 출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그 매 차례의 사명에 의해 결정되고 조물주의 경영 계획이 완결될 때 그에 대한 조물주의 규정에 의해 결정된다.』 『조물주의 주재에 대해 참으로 인식이 있고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그의 정형은 마땅히 적극적일 것이고 결코 소극적이나 속절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마음속에 인생에 대해, 운명에 대해서도 사람의 일생은 다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하나의 정확한 정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보낸 인생의 매 하나의 단계를 돌아보면 매 걸음마다 걸은 것이 고생스럽든지 아니면 순조롭든지 다 하나님이 인솔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안배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정밀한 계획이자 역시 하나님의 세밀한 안배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부지중에 오늘까지 걸어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 한 사람의 평생의 크나큰 복임을 보게 된다! 만약 한 사람이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소극적이라면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안배한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있고 그에게 순복하는 태도가 없음을 실증한다. 만약 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라면 그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주재를 체득할 때 그는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순복하려는 더 진실한 소망이 생기게 되고 더욱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운명을 지배하게 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도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이 두 단락의 말씀에서 저는 조물주의 안중에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생김새와 성별은 단지 하나님 경영 계획 중의 어느 한 시기의 하나의 작은 부호와 표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생김새가 아름답든 추하든, 키가 크든 작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다 그 사람의 장래의 운명이 좋은지 나쁜지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시는 것은 우리 각 피조물이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는지의 여부와 진정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보시지 결코 우리의 겉모습을 보시지 않습니다. 이 몇 년간 저는 세상의 사악과 흑암을 보았는데, 실제상 저의 평범한 생김새와 키는 정말 저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보호였습니다. 만약 제가 스타들의 얼굴과 몸매를 가졌다면 틀림없이 세상의 사악한 조류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악령과 더러운 귀신에게 이미 잡아먹혔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정과 주재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우러나왔습니다. 저에게 임한 모든 것의 배후에는 다 하나님의 고심이 있었는데, 제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을 뿐입니다. 비록 제가 키는 작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시지 않고 저에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병과 위력을 진실로 느꼈고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 긍휼에 대해서도 진실한 보임이 조금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확실히 예수님이 재림하여 전개하신 새 사역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에게서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저는 키가 작다는 것으로 인해 더는 소극적이 되거나 괴롭지 않으며 늘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인데, 사람이 무슨 이유로 흠을 잡겠는가?”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구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