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기독교인이 직장에서 효과적으로 직원을 관리하는 방법

2019년 05월 09일

‘직장 상사’를 언급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엄하다’ ‘까다롭다’라는 말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전에 저 역시 직장 상사는 당연히 직원들을 엄하게 대 해야만 그들을 잘 관리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관리 방식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격한 관리 방식 때문에 직원들과의 사이가 멀어지다

저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직장 생활을 한 지 6개월이 지난 후 회사의 인사과 주임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저는 인사과 팀의 업무 실적을 향상시키고 제 자신의 업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이도록 다그쳤습니다. 직원들이 저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엔 이유를 막론하고 그들을 한바탕 훈계 했습니다. 매일 상사에게 제출하는 보고서 역시 정확하고 오차가 없어야 했으며, 만일 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호되게 꾸짖었고 또 제가 만족할 때까지 수정을 하도록 했습니다.

하루는 한 여직원이 보고서 작성을 잘못하여 제가 지적해 주었지만 제대로 고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보고서를 여직원에게 내던지며 그녀를 향해 말했습니다. “차라리 그만 둬, 다른 사람을 시킬테니까.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어.” 그 여직원은 너무 놀라서 어쩔줄 몰라했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오히려 여직원이 너무 게으르고 머리쓰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루는 한 여직원이 저에게 무언가를 물어서 들어 보니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모르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으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이런 간단한 일조차 내게 물어보다니?”라고 그녀를 한바탕 꾸짖자 여직원은 고개를 떨구며 “네.”하고 나갔습니다. 한참 뒤에 저는 그 여직원이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직원들을 너무 엄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을 엄하게 대하지 않으면 어떻게 훌륭한 직원이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결코 그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지나자 저의 엄격한 관리 방식은 회사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습니다. 소문을 들은 신입 사원들은 제가 담당하는 부서로 오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저희 부서의 업무 효율이 높아 사장님은 그래도 예전처럼 사람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희 부서로 배치된 직원들은 혹시라도 일을 잘못해 저에게 꾸지람을 들을까 걱정되어 모두가 긴장되고 두려워하는 마음 상태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다가도 제가 오는 것을 보면 서둘러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고도 저 역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서히 직원들은 업무상의 필요 때문에 저와 말을 할 뿐, 저와 가까이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저 역시 외로웠고 자신의 관리 방식으로 인해 그들이 저를 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서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직원들의 연속된 이직으로 반성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다

2015년 4월, 저는 슈퍼 업무를 맡게 되었고, 새로 오픈한 매장의 지점장으로 발령나 매장 시스템을 관리했습니다. 이번에도 영업 실적이 뛰어난 매장을 만들고 자신의 리더쉽을 과시하기 위해 저는 직원들에게 재빠르게 물건을 진열하고 재고의 보충이 빨라야할 뿐만 아니라, 진열한 물건이 정연하고 보기 좋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제가 지시한 사항을 느리게 처리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을 향해 “너희는 머리가 장식품이야. 물건을 어떻게 이렇게 진열하는 거야? 모르면 물어보던가. 입은 뭐하는데 쓰는 거야?”라고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지 못한 것은 이전과 같은 관리 방식을 슈퍼 업무에 적용했음에도 업무 효율이 향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지 않은 직원들이 이직했다는 것입니다. 거의 매달 한 두명의 직원이 그만두었고 6개월 이상을 버틴 직원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저의 관리 방식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으며 갈수록 더 많은 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겼고 저 역시 혼자의 힘만으로는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어쩔수 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신경 써서 관리하는데, 결과가 왜 이럴까?’ 저는 매우 무기력함을 느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배후의 문제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어떤 위치에 오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트집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이유 없이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어떤 자리에 오르지 못한 타락한 인류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항상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류는 항상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쏟아 내고 교만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표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여기에는 불순함, 음모와 계략, 타락과 사악함, 심지어 야심과 욕망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이고 제 자신의 지위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새로 오픈한 매장의 관리자가 된 후의 제 자신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자신의 업무 능력을 증명하고 회사에 좋은 이미지를 세우기 위해 업무상에서 직원들을 엄하게 대했던 것입니다. 만일 직원들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리더의 위치에 서서 툭하면 화를 내고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직원들이 일처리를 잘하지 못하면 저의 업무 능력을 증명할 수가 없고 회사에서 제 체면이 깎일까 염려되어 화를 냈던 것입니다. 비록 저의 관리 방식은 과거에는 약간의 효과를 보았지만, 직원들을 엄하게 통제함으로써 직원들과의 사이가 냉랭해졌고 단지 상사와 직원과의 관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담당하는 부서에 와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같은 방식으로 슈퍼 관리를 했을 때, 또 많은 직원들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타락한 성품으로 직원들을 관리함으로서 직원들에게 상처와 구속만 주었고 슈퍼의 이익에도 손실을 끼쳤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모든 행동거지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증거하며,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고려치 말고 더욱이 타락한 성품으로 화를 내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다시는 개인의 야심과 욕망을 채우지 않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툭하면 직원들을 꾸짖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 직원들이 잘 모르는 일은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 주려고 노력을 했고, 일을 잘못 처리하면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도와 주었습니다. 비록 상황에 따라 직원들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지적은 했지만, 더 이상은 꾸짖는 말투로 하지 않고 잘 타일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그렇게 한 후의 결과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더니 직원들도 이해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실천하고 나니 직원들과의 사이가 원만해지고 마음이 훨씬 자유롭고 편안해졌습니다.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

얼마 후, 또 다른 환경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매장에 신입 사원 한 명이 왔는데 자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 여직원은 매번 제가 맡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일을 감당할 수 있겠어? 차라리 해고하는 것이 번거로움을 더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실 그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해고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세요.’

나중에 저의 상황을 교회 자매들에게 말했고, 자매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 주었습니다. 『창조된 만물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세한 것까지, 창조주의 권능과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모든 피조물은 그것만이 갖는 정해진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다르든지 간에, 창조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면, 그것은 모두 창조주의 권능 아래에 생존하게 된다.』

또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한 단락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남을 과대평가하지도 말고 과소평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미련하든 총명하든, 혹은 자질이 뛰어나든 부족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선입견이 있어서는 안 되고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더욱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리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배려해 줘야 하며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배려해 줘서 유익한 점을 얻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은 다 그 존재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장점과 존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성장 환경과 자질, 그리고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사람을 대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여 각 사람의 장점에 따라 적합한 업무를 맡겨야지 억지로 강요하면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늘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대하고 요구한다면 불공평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고 이는 교만한 성품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결점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도와야만 공평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만들 때는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장점이 있으므로 남을 업신여기지 말고 자신의 요구를 남에게 강요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 못하는 일을 직원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말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합리적으로 업무를 배치해야 합니다. 동시에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아울러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또 신입 사원은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각 방면의 업무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니 상대방을 배려하여 그녀에게 적합한 일을 맡겨야지 과분하게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입 사원의 실제 상황에 따라 우선 간단한 일부터 맡겼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실천하면서 그 직원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소박하고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완성했고, 간혹 자신의 일이 끝나면 또 솔선수범하여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품성은 제가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당초의 교만한 성품으로 그 직원이 저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여겨 해고를 했더라면, 지금의 아름다운 면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매장 역시 좋은 직원을 잃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니 순조로워진 일

그 후, 저는 더 이상 교만한 성품, 즉 자신의 기준에 따라 직원에게 까다롭게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었고 어떻게 배치하면 적합한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때로는 직원들이 처리한 일이 그리 완벽하지 못해도 애를 쓰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들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었습다. 서서히 저와 직원들의 사이는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가끔 저도 직원들과 자주 농담을 주고 받고 잡담도 나누며, 모두가 함께 지내면서 벽이 없어 지고 업무상에서도 서로 더 잘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말레이시아의 중요한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마트에 대량의 물건들이 입고되었고, 저 역시 업무 배치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일하는 속도가 더딘 것을 보고 창고에 물건이 쌓이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어서 저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순간 저는 타락한 성품으로 일 속도를 높이려고 직원들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직원들이 부담을 가질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평온히 해 주시고 어떻게 하면 적합할지 하나님께 기도로 구했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찾았을 때, 저는 각 사람의 장점을 생각했고 그들을 각자의 적합한 위치에 배치하여 각자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실천했을 때, 직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창고의 물건들이 옮겨지자 새로운 물건이 계속 입고될 수 있었으며 모든 과정은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직원들은 업무에 대해 점점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저 역시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 졌습니다.

이런 일을 체험하면서, 저는 타락한 성품으로 직원들을 대했을 때,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트 영업 이익에도 큰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했을 때, 직원들과의 사이가 좋아졌으며 일도 아주 순조롭게 진행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기준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우리의 타락한 성품이 바뀔 수 있으며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이 있고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저는 더욱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말레이시아 루푸

급성 심근 경색이 발병한 아들 누가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

급성 심근 경색으로 아들의 생사는 알 수 없게 되었고 한번 또 한번의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그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마침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에도 갈등 빚는 난처함에서 벗어나는 길

현대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관계가 매우 좋은 두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말 한마디나 한 가지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바로 외면하고, 견해가 다르면 바로 화를 내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닥치면 우리는 항상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데,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 저와 소림 자매는 서로 협력하여 본분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업무상에서 비교적 익숙하고 경험도 많아 소림자매는 업무상에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저에게 물었고, 저 또한 기꺼이 스승노릇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오후, 소림자매는 기쁜 마음으로 자신이 방금 완성한 방안을 가져와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방안의 어떤 곳을 제가 이전에 제안한 것에 따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소림자매가 저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여겨 조금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저는 소림자매의 방안을 볼수록 속이 끓어올랐고, 자매가 제안한 방안의 곳곳에 문제가 있고 그래도 제 자신이 제안한 것이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매가 제안한 방안을 직접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의 행동을 본 소림자매가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제 생각엔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왜 고치는 거예요?” 이 말을 듣자, 저는 속으로 더욱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믿었으니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제멋대로 화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 생각나서 가까스로 분를 삭혔습니다. 그러나 말할 때는 그래도 참지 못하고 “이 곳은 확실히 문제가 되잖아요.…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전에 제가 알려주지 않았나요?”라고 여전히 사람을 가르치는 어투로 말했습니다. 소림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자신의 견해가 높아 반응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자매를 거들떠보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여 몰입하여 자매의 방안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식사할 때, 소림자매의 안색이 좋지 않고 또 저와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저는 갑자기 바늘에 찔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전에 자신이 소림자매의 방안을 직접 수정할 때, 자매의 동의도 거치지 않았음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자매가 저에게 수정한 원인을 물었을 때, 저는 아주 귀찮아하면서 직접 자매가 한 것이 틀렸다고 말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소림자매가 틀렸는지 틀리지 않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지도 않고, 자매의 방안을 직접 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 내 그런 행위와 말투는 옳지 않았어.” 저와 소림자매 사이에 갑자기 경색된 관계를 마주해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 사람과 함께 지낼 때,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나 취한 행동이 내 뜻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내고, 훈계하니 무심결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어, 이게 어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때, 제 자신의 이러한 성격으로 어떻게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야 할지 정말로 알 수 없어 아주 막막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애로사항을 하나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찾고 구하는 가운데서 며칠 전에 한 자매와 함께 먹고 마셨던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문뜩 생각났습니다.『재능이 좀 있고 좋은 일을 좀 하면, 생명이 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 기세등등해지고 다 업신여기면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이냐? 교만이다! 이것이 교만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게 바로 교만이 아니냐! …… 교만한 성정이 있으면 틀림없이 교만한 표현이 나타나게 되고, 틀림없이 교만한 말을 하게 되고 교만한 짓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그게 맞다. 그럼 이 방면의 성정이 없는데, 이 방면의 유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 말이 성립이 되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 보세요, 제가 순간 실수로 입단속을 못해서 매우 교만한 말이 한마디 튀어나왔어요.”라고 한다면, 이 말은 성립되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교만한 성정을 유로하지 않으려면 교만한 성정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 한 마디를 시정하거나, 하는 방법을 하나 바로잡는 일이 아니고, 규례를 하나 잘못 지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맞다, 사람의 성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정을 말하면 사람은 자신을 좀 더 깊이 알게 되지 않느냐? (맞습니다.)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아는 것은 겉면의 성격이나 성미, 교육이나 태어난 가정 배경 등을 아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본 후, 저는 문뜩 자신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견해가 다를 때 표현하는 말과 행위는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일만 봐도 소림자매가 제가 제안한 것에 따라 방안을 수정하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소림자매가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생각에 속에서 화가 치밀었고, 자신의 제안은 다 좋고 옳으니 당연히 채택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유아독존 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자신에게 순복하게 하는 것인데, 교만한 성정의 유로였습니다! 전에 저는 자신의 패괴 본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저 성격이나 행위상에서 자신을 단속하고 자제했을 뿐,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적합한 환경이 임하면, 말하고 일을 함에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을 유로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괴로웠던 것입니다. 다음 날,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에게 생기를 주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소유소시(所有所是)도 조금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런 것을 준 후, 사람은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낼 수도 있었고, 생각해 낼 수도 있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나 해낸 일들이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면 하나님은 열납하였고, 결코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것이 옳은 일이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고 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각종 생물들의 이름에 대해 하나님은 그 어떤 정정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뭐라고 이름 지으면 하나님은 “그래”라고 말씀하면서 그 이름을 확정하였다. 하나님께 의견이 있었느냐?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너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로 일을 했다. 만약 사람이 한 것이 하나님이 보기에 긍정적인 일이라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확정되는 것이고 인정되는 것이고 열납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평가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 어떤 인류나 그 어떤 악령도 사탄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 하나님 성품의 유로에는 분쟁이나 교만, 독선적인 것은 전혀 없다. 그런 점은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저는 이 말씀을 보고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담은 단지 하나님 수중의 피조물일 뿐임으로, 그의 지혜 또한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이 준 지혜로 만물의 이름을 짓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동의를 표시하였고 결코 수정이나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지고무상하지만, 결코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신분을 자처하면서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듣도록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드러내지 아니하는 성품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다만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사람일 뿐으로, 소림자매와 동등한 위치이고 그 자매에게 제 말을 듣도록 요구할 어떠한 자격도 없습니다. 더구나 저는 비록 업무 방면에서 소림자매보다 좀 익숙하지만, 많은 문제에서 저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해 결코 소림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자신의 것이 옳다고 견지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요구했고,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혈기와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 자신도 이로 인하여 속이 상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저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소림자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또 자신의 교만한 성정이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고 너무나 이지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아름답고 선하므로 제가 추구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에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의 교만한 성정을 변화시키겠다고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 후, 저는 주동적으로 소림자매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 자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말이 없는 소림자매를 보고 저는 아주 난처했습니다. “내가 사과까지 했으면 너는 당연히 얼른 받아들여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에 보았던『하나님 성품의 유로에는 분쟁이나 교만, 독선적인 것은 전혀 없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비록 자매에게 사과를 했지만, 전에 했던 자신의 행위가 자매에게 가져다 준 상처는 말 한 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과를 했다고 상대방이 곧바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을 바라는 이런 사과는 요구성을 띄고 이지가 없으며, 유로한 것은 여전히 교만 자대한 성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것을 돌이켜 보면 의견이 서로 맞지 않을 때, 비록 때로는 자신의 표정이나 말투를 자제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기 싫어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분풀이를 하면 또 사람들과 불쾌해지고 마음은 여전히 괴롭기만 했습니다. 어쨌든, 견해가 다른 것 때문에 속앓이를 했는데 자신이 고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화내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고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이 임했을 때, 자신이 또 교만을 유로했다는 것을 의식하면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많이 기울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차츰차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갈수록 정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소설의 유혹에서 빠져 나오다

저는 예전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아는 착한 딸이었으며, 평범한 생활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난데없는 한 가지 일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저는 몇몇 친구들이 소설이 재미있다며 흥미진진하게 얘기 나누는 것을 무심결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저는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신이 나서 저에게 “소설의 내용은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지 몰라. 로맨틱한 것도 있고 코믹한 것도 있고, 생사 이별 장면도 있고, 시공을 초월한 판타지 소설도 있고, 화목한 가정에 관한 것도 있고. 별의별 내용 다 있어. 어떤 건 너무 감동적이이서 보는 순간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어떤 건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져...”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저는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온 저는 숙제를 마치고 얼른 스마트폰에 웹 소설 앱을 하나 설치하여 홈페이지를 열어 보니 각양각색의 소설 표지가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위아래로 터치하면서 어느 것을 볼까 망설이던 중, 겉표지가 아주 예쁜 추천 소설이 저의 눈을 사로잡았고, 저는 다급히 열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기도 모르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는데, 남녀 주인공이 당한 각종 불행이 마치 제 자신이 당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계속 이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는데, 앞부분을 본 다음에는 그 다음 부분이 보고 싶었고, 그 부분을 본 다음에는 결말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소설에 빠져들었고, 온 마음이 오직 소설속에 있었으며, 소설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늘 이야기 속의 사랑과 미움으로 인해 기뻐하고 우려하고 슬퍼했으며, 어떤 때는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하루만 안 봐도 저는 마음이 초조하여 안절부절못하고 병에 걸린 것처럼 아주 괴로웠으며, 심지어 공부를 하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아무 가치와 의의도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소설 속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갖추고 로맨틱한 사랑을 하면서 온종일 먹고 입을 것 걱정 없이 각종 고급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환상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직 소설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동경했고, 그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 때, 부모님이 돈벌려 외지로 가자 저는 새장 속에 갇혔던 새가 풀려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아주 기뻐했습니다. 소설을 단숨에 다 보기 위해 저는 밥도 하지 않고 라면만 끓여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컵라면으로 바꾸었고, 매일 끼니를 대충 때웠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설만 보았더니 날이 갈수록 눈이 흐려졌고, 온 몸이 무기력해 졌으며, 늘 피곤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눈이 흐려진 건 스마트폰 화면이 너무 밝아서 그럴 거야. 다음부터는 선글라스 끼고 보면 돼. 그리고 몸이 피곤하니까 이제부터는 그렇게 오래 보지 않고 일찍 쉬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혀 소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봤습니다. 그로 인해 눈과 몸이 갈수록 더 나빠졌고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마침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몸이 허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알고 나서 책망할까 봐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조급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소설에 빠지게 된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는 저를 책망하지도 꾸짖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저에게 교통해 주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말씀입니다. “사탄은 이런 방식으로 일부 이야기를 만들고 편집하고 꾸며내 생각이 없는 이런 청소년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네가 분량이 작을 때 될 수 있는 한 너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너를 중독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너에게 분별력이 없는 데다가 아주 경망하고 또 마음속에 갖춰진 긍정적인 것들이 너무 적고 그 어떤 진리 실제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교통을 통해 저는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소설에 빠진 것은 사탄의 올가미와 간계에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고 패괴시켜 우리로 하여금 갈수록 더 타락되게 하려고 거짓 이야기를 날조하였는데, 완벽한 인물을 형상화하거나 환상적인 삶을 꿈꾸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숭배하고 동경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의 내용이 담긴 연애 소설, 무협 소설, 타임슬립 소설을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아주 숭배하게 되고, 그들의 행복한 생활과 로맨틱한 사랑, 각종 특별한 능력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느 날 그들처럼 시공을 초월하게 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있게 되며, 추녀와 담벼락을 넘나드는 재주가 있게 되기를 꿈꾸며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설에 몰입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소설 속의 인물과 플롯에 홀리게 되고, 우리의 희로애락도 비정상적이게 되며, 또한 일반적인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소설에 빠져 가상 세계에서 살다 보면 현실 생활과 동떨어져 공부와 생활에 흥미가 없게 되고, 심지어 밥 먹고 자는 시간마저 소설 보는 시간을 뺏었으니 그 시간까지도 아깝다고 생각됩니다. 이게 어디 정상 사람의 생활입니까? 제가 이 지경까지 타락된 것은 다 사탄이 해친 것이고, 소설은 사탄이 저를 미혹하고 유혹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저는 다시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한 아버지에게“이제부터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래요. 좀 있다 소설 앱을 삭제할게요.”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고, 또한 저와 같이 하나님께 심지를 세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소설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고, 자신이 더 이상 소설을 보지 않게 되어 저는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저에게 시험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심심해서 지난날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고, ‘옛날에 소설 볼 때 아주 재미있었는데. 또 볼까? 조금 보는 건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셔. 그리고 난 하나님께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기도했어. 또 보면 거짓말하는 거잖아.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아. 그러니까 보면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새벽 2시가 넘도록 소설을 보았습니다. 이튿날 일어나니 온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흐리멍덩하며 마음이 어수선하고 머릿속에 온통 소설 속의 플롯이었습니다. 소설을 보지 않겠다는 심지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거짓말했다는 생각에 저는 더 큰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반성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분량이 너무 작아 외적인 일들에 아주 쉽게 끌려가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힘들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것이겠느냐? 사탄에게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 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리가 없고, 죄를 이길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 스스로 그 마음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을 전혀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으며 사탄 성정의 통제를 받고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예전처럼 소설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처럼 살기 싫어서 단지 인위적인 방법으로 억제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 시험이 임하자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사탄의 통제와 속박을 받기 싫습니다. 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후에 저는 아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네가 목숨을 건지려고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너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입으로는 몇 마디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다. 즉, 네가 진정성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들은 것이다. 하나님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너의 어려운 점을 보고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계속 저의 곁을 지키시면서 제가 돌아서기를 기다리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큰 포부가 있거나 제가 공허한 소원을 빌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을 원하시고 제가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해서 사탄의 통제와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하게 되어 아주 큰 격려가 되는 동시에 믿음도 충만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 주실 것이고, 저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후에 또 사탄의 시험이 임했을 때, 저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도와 달라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진실로 협력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셨으며,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부지중에 저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냈고, 성실한 사람의 모양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예배할 때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했더니,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아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우선 사악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사탄이 왜 그렇게 하는지, 사람이 이런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 또 어떤 중독성이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들이 정상적인 인성이고 어떤 것들이 긍정적인 것이며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에게 정확한 실행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무엇이 긍정적인 것인지, 무엇이 부정적 것인지를 전혀 분별할 줄 모르고, 정상적인 인성에는 어떤 것이 갖춰져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각종 사악한 사회 풍조에 직면하여, 우리는 저항할 힘이 없고 어쩔 수 없이 그 풍조에 휩쓸리며, 사탄의 유혹과 해를 당해 갈수록 타락되고 패괴되었으며, 점차 인성과 이지를 잃게 되었고, 정상 사람의 생활이 없게 되었으며 돌이길 수 없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어떻게 인류를 패괴시켰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생활이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생활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탄의 시험이 임할 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할 줄 알게 되었고, 인성 생활이 갈수록 정상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도박 중독에 빠져 암담했던 그녀의 삶, 누가 벗어나게 해주었을까

도박은 마치 마약처럼 한 번 발을 들여놓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으며, 중독인 것을 느끼지만 끊을 수 없는 것이 도박의 힘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도박의 유혹으로 인해 절망 속에서 암담한 나날을 보냈던 그녀가, 어떻게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이 세대의 사람들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남방의 것이든, 북방의 것이든,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 특산물 등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과일은 있어도,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대약진 운동때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이렇게 좋고 또 건강에 몹시 신경을 쓰는데, 마땅히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건강해 지고, 더 장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왜 지금 비만, 뇌혈전, 각종 암, 백혈병 등등 각종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근에 더 많은 희귀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장수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저의 동료를 놓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는 가정환경이 매우 좋아 임신 후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도 되지 않아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20살을 넘기기 힘들테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질병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하던 데로부터 현실에 직면하고, 예사로 여기던 데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갖은 애를 다 써도 이런 질병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논조로 얼버무려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는 말씀 중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의 진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사회 발전으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지고 정보가 발달하여 동서남북이 서로 관통되면서 북방 사람들도 남방의 과일이나 남방의 특산물 혹은 야채들을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식탐과 물욕을 만족시켰지만, 사람의 몸은 오히려 각기 다른 정도로 해를 입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먹거리에는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방에서 태어났다면 남방의 것을 먹어야 아주 적합하다. 남방의 그런 기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까지도 예비해 놓았다.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식탐이 점점 심해져 사회의 발전 추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법칙을 어기게 되었다. 비록 사람은 지금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여기지만, 이런 사회의 진보는 아주 많은 사람들 몸에 보이지 않는 해를 끼쳤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예비해 주고, 사람에게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을 예비해 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연법칙을 어기고 과학을 발전시켜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풍부하여 지역마다 그곳의 특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홍대추(보통 대추라 함)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호두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땅콩과 각종 견과류가 많이 나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다 사람의 육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또 그 시기에 따라 적당한 양으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하고 식욕을 만족시키기를 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이 자랄 수 있도록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을 쉽게 어기고 파괴하게 된다. 앵두를 예로 들어 말해 보자. 앵두는 다들 알고 있겠지? 앵두는 몇 월에 나느냐? (6월입니다.) 대략 6월쯤에 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몇 월이면 끝나느냐? (8월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2개월 동안 먹을 수 있다. 앵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2개월뿐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시켰는데, 다음 해에 앵두가 새로 나올 때까지 연장시켰다. 즉, 1년 내내 앵두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정상이냐? (비정상입니다.) 그럼 앵두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냐? 바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신선하게 보관해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고, 또한 사람 몸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이미 지난 다음에는 어떤 화학 물질을 써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자라면서 구비한 성분들을 유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화학 물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해는 사람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알았겠지? 지금 시장 경제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냐? 남방과 북방의 교통이 편리해져 1년 사계절 각종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방 사람들도 늘 바나나를 먹을 수 있고 남방의 어떤 음식이나 특산물 혹은 과일도 먹을 수 있어 마치 사람의 생활은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시장 경제가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정상적인 자연 생장 법칙을 어기는 것이고, 가져다준 것은 해로움과 치명적인 재난이지 행복이 아니다. 알았느냐? (네.) 포도를 보아라. 지금은 시장에서 1년 사계절 판매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포도는 따고 나면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아주 짧다. 그 포도를 이듬해 6월까지 보관한다면 그때도 그것을 포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포도에는 포도의 원래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 1년이란 시간이면 신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양 성분도 이미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를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좋다! 3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까? 한 알이라도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만약 흥미를 느낀다면 화학 약품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포도를 가져다가 그것의 성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성분이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연구해 보아도 좋다.......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먹거리를 예비해 준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물질적 음식을 탐하라고 한 것이냐? 사람이 그런 물질적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 과다가 되지 않겠느냐? 영양 과다로 몸에 각종 질병이 유발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면 절대로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알맞게, 서로 다른 시기와 계절에 따라 사람에게 각기 다른 먹거리를 누리도록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몸 안에 적지 않은 열기와 습기, 건조함이 쌓이는데, 가을에 많이 나오는 과일을 먹으면 그 습기와 건조함이 제거된다. 동시에 소와 양도 튼실하게 자라 사람은 육식으로 몸보신할 수 있다. 사람이 각종 육류를 먹고 나면 몸에 에너지와 열량이 생기고, 엄동설한 추위를 막아 낼 저항력이 생겨 매서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시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예비해 주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지는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안배해 놓은 것으로, 적절한 한도가 있지만,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의 생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류가 부단히 고품질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위반하고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지역에 맞추어 인류에게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지대, 여러 체질의 사람들의 수요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음식물 또한 계절과 시간을 나눕니다. 어느 계절에 무엇을 먹어야 인체에 가장 유익할지 조물주께서 이미 세심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만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인식이 없어 무턱대고 식욕을 탐하고 육체의 향수를 탐하여 각종 과학적인 수단으로 음식물의 생장주기를 조절하여 유통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각종 비철 채소와 과일들이 도처에 널려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인 생활은 풍부해졌고 사람들의 식욕도 만족을 얻었고 시장경제 또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람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각종 희귀병으로 인한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런 질병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탄이 인류에게 주는 쓰라린 경험과 재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오직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모든 파괴를 중단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진정으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에게 방법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니냐?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

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장거리 연애. 이런 불안감 속에 몰려오는 의심은 오히려 서로에게 큰 벽을 쌓기도 하고 서로 간의 감정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장거리 연애로 인한 의심의 고통을 벗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믿음의 싹을 틔워보세요.

내 몸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아픈 기억밖에 없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나는 독창, 종양, 치질로 고통받았고 커서는 시도 때도 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겨울엔 감기를, 여름엔 열사병에 시달렸다. 몸도 약해서 조금만 고된 일을 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저혈당으로 어지럼증과 두통은 달고 살았다. 여러 가지 병들이 끊이지 않았다. 몸이 허약하다 보니 부모님과 형제들은 혹여 내가 힘들거나 추울까 봐 노심초사했다. 결혼 후 남편 역시 나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힘든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가족들의 사랑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하지만 병마가 가져온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가족들이 날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기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와 몸을 일으키기도,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목도 뻐근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의사를 불러왔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했고, 내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 결국,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며칠 지나면 저절로 호전될 것입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난 계속 침대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난 계속해서 생각하고 스스로 물었다.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고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통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 속에 신음하고 괴로움이 날 감쌌을 때 자매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다. “육체의 고통과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 사람을 괴롭히면서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되어 질병도, 고통도 점점 심해졌고, 갈수록 인간 세상의 공허함과 비참함, 인간 세상에서의 생존이 불가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고통은 사탄이 더한 것이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려면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이런 고통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고통들을 다 체험하면 맨 마지막에 사람의 이런 고통들을 면해 준다. 사람을 대신해 모든 고통을 받은 후 하나님은 힘 있는 증거를 갖게 되어 마지막에 인류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게 되는데, 바로 사람의 생로병사를 면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의의 있지 않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날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죽어가던 내 영혼에 밝은 빛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땐 인간이 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켜 인간이 사탄의 어두운 권세와 타락한 육신에서 살게 되면서 인간 세상에 고통과 번뇌, 그리고 생로병사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인간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하시고 친히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오셨다. 2천년 전, 자비로우신 구세주 예수께서는 인간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고자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늘날 다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병마와 고통을 없애주시려 기꺼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진리가 인간을 이끌고, 구원해주리라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직접 사탄과 싸우기까지 하셨다. 이 모든 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을 다시 구원해 인간이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히 벗어나 더는 고통과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인간을 고통과 번뇌가 없는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 인간의 병과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게 되었고, 어머니처럼 진실한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을 것이란 희망도 품게 되었다! 그 후 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으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키워갔다. 고통이 찾아올 때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 기도드리고 나의 고통과 나약함을 호소하며 병마를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희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렸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는가?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과 힘을 다시금 불어넣어 주셨다.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내 병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숨이 붙어있는 한 하나님께선 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평온해지며 더 이상 병으로 인해 일찍 죽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고,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욥의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의지하라고 하셨다. 또한, 사탄이 인간의 육신을 통해 괴롭히니 육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나는 병든 몸을 하나님께 맡겼다. 병든 육신에서 살지 않고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라는 말씀으로 살았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다 보니 병은 어느샌가 완치되어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했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난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신 의사셨다! 이제 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창조주의 앞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얻은 생명은 광명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건강하게 하나님의 앞에서 사는 것이다! 날 구원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린다!

누가 ‘고부갈등 ’ 을 해결할 수 있는가?

"집집마다 고충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부갈등'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로,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어릴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