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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인 그녀의 배우자 선택 — 무엇이 중요한가

2019년 05월 07일

결혼은 모든 이에게 중요한 인생의 대사입니다. 어떤 배우자를 골라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시집은 돈 많고 잘생긴 남자에게, 장가는 돈 많고 예쁜 여자에게’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고 돈이 있고 풍요로운 물질적인 생활을 누릴 수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결혼관이 올바른 것일까요? 진정한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서인과 기성 커플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서인은 집안이 가난한 기성을 만났습니다. 같이 지내면서 서인은 기성이 마음씨가 고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둘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서인은 기성에게 자신이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기성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둘은 늘 같이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서로 나누지 않는 말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성과 함께 있으면 서인은 하루하루가 기뻤습니다. 서인은 늘 기성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감정이란 말인가

서인과 기성이 사귀기 시작한 후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서인의 가족들은 둘의 사이를 반대하며 둘을 갈라놓으려고 했습니다. 룸메이트조차도 그 둘의 사이를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서인은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개의치 않으며 기성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서인이 진지하게 기성과 평생을 함께하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서인을 어르고 달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조건도 좋고 외모도 괜찮은데 왜 가난한 사람과 사귀는 거야?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생각 안 해 봤어? 요즘은 졸업하고 일자리 하나 구할 때도 연줄이 필요한데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이 무슨 연줄이 있겠어? 걔랑 계속 사귀다간 분명 힘들기만 할 거야. 내 친구 중에 잘생기고 돈 많은 애 하나 있어. 소개시켜 줄게. 네가 걔랑 헤어지기만 하면 분명 내 친구랑 잘 될 수 있을 거야.”

“여자는 좋은 배우자 찾는 게 제일 중요해. 요즘 집과 차가 얼마인지 생각해 봐. 가난한 사람과 엮였다간 몇 년을 모아도 집 한 채, 차 한 대 못 살걸? 나중에 애까지 생겨 봐. 그럼 얼마나 힘들겠어!”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 기성이 너한테 잘해 주긴 하지만 사랑이 밥 먹여 주니? 걔가 너한테 좋은 것들을 사줄 수 있대? 사랑도 돈이 있어야 행복한 거랬어. 아직 젊으니까 돈 많은 사람 찾아.”

……

이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서인은 겉으로 반박하며 기성과 헤어지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심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룸메이트인 미소, 소원은 대학 입학 후 남자 친구를 몇 번이나 바꾸고 점점 돈 많은 사람과 사귀고 데이트도 매일 고급 레스토랑에서 하고 걸핏하면 비싼 꽃다발이나 휴대폰, 명품 가방 등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차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었습니다. 정말 로맨틱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서인은 자기도 모르게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습니다. 부지중에 서인은 기성에 대해 불만이 생겼습니다. 기성은 착하고 자신을 사랑해 주었지만, 너무 현실적이었습니다. 평소 너무 절약한 탓에 기성과 함께 있으면 ‘저렴한’ 연애를 해야 했습니다. 무료로 개방하는 공원에 가고 길거리 음식만 먹었으며 명품이나 고급 레스토랑은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커플과 만나면 기성이 너무나 작아 보였습니다. 이런 일로 계속 신경 쓰자 서인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당시 주변 친구들은 남자 친구가 결혼 후 집을 사주고 차를 사준다고 약속했다고 얘기했습니다. 특히 사촌 언니는 집이 두 채나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가족들이 사촌 언니의 남자 친구와 기성을 비교할 때면 서인은 매우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후 서인은 틈만 나면 기성에게 부모님이 모아 두신 돈이 얼마나 되는지, 결혼한다면 부모님께서 집과 차를 사 주실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기성은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난감해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부모님도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 것이라며 큰소리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난 서인은 기성을 무시했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심통을 부렸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고 심지어 ‘돈 많은 남자를 사귀면 물질적인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좋을 거야. 이 가난한 사람과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행복했던 서인과 기성의 사랑이 흔들리고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인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면 기성은 항상 포용하며 서인을 달래고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성도 가끔은 한숨을 내쉬거나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서인도 자신에게 한없이 잘해 주는 기성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성이 괴로워하고 말도 안 하는 모습을 보며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남자 친구를 두고 왜 만족할 수 없는 거지?’ 서인은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서인도 기성을 더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평범하게 살기는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고통의 근원을 드러내시다

고통 속에서 서인은 하나님 앞으로 와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는 말은 사탄의 철학으로, 인류와 모든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주입되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말을 수긍하지 못했던 사람도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실생활에서 차츰 묵인하게 된다. 이 말의 존재를 인정하다 결국에는 공감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과정이 아니겠느냐? … 이 말과 트렌드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느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포기하지 않느냐?』,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탄이 돈으로 사람을 속박하고 타락시켰던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금전 만능주의’와 같은 사상을 사람에게 심어 놓아 사람들의 인생관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완전히 왜곡시켰습니다. 최초의 사람들은 늙을 때까지 즐겁게 살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깊게 타락되고 사탄이 주입한 ‘시집은 돈 많고 잘생긴 남자에게’, ‘장가는 돈 많고 예쁜 여자에게’, ‘자전거에서 웃기보단 벤츠에서 울겠다’, ‘돈이 있는 결혼이 행복한 결혼이다’와 같은 사상관점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돈을 숭상하고 물욕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배우자를 찾을 때도 상대방의 돈이나 권력에만 신경 쓰며 물질적인 삶을 누리는 결혼만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사상관점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점점 가벼워졌고 욕심이 많아졌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시집가고, 예쁜 사람과 결혼하려고 했으며, 이별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고,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등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은 사라졌습니다. 짧은 열정과 신선함만이 남아 서로 이용하고 속이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감정으로 상처 받았고 이 때문에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어떻게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서인은 룸메이트 미소가 생각났습니다. 미소는 물질적인 행복을 찾기 위해 늘 돈이 많은 도련님과 만났습니다. 돈 많은 부자집 아들을 만나다 보니 미소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렸으며, 돈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소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고주망태가 되어서는 숙소에서 큰 소리로 울며 그 사람들은 자기를 갖고 놀았다며 진심으로 자기를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소원은 예쁘장한 미모로 돈 많은 사람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많은 남자를 사귀었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물질적인 생활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며 걸핏하면 헤어졌습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 소원은 늘 주변 사람에게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털어놨습니다.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서인은 사탄의 철학으로 사는 것은 행복을 얻을 수 없으며 점점 타락하고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인은 기성과 함께한 때를 돌이켜 봤습니다. 둘은 서로 관심하고 믿었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순수한 감정에 서인은 기뻐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서인은 진리를 알지 못해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사상관점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의 말은 돈과 물질적인 즐거움을 향한 서인의 갈망을 끌어냈고 서서히 돈 많은 사람을 배우자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야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힘들게 돈을 벌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누려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 주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성이 자신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괴로웠으며, 기성에게 심술도 부렸습니다. 기성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고 심지어 자신의 마음도 흔들려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도 고민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서인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탄의 철학으로 사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기성도 아프게 했습니다. 서인은 자신이 멍청하고 가벼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과 수단을 분별해 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시험과 유혹에 빠져 사악한 흐름과 그릇된 결혼관으로 돈을 추구하는 늪에 깊이 빠져 점점 타락하여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았을 것입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봄으로써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수단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인은 스스로 배우자를 찾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사탄의 사악한 사상관점에 따르면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 교제 중 이런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배우자를 찾는가는 인생관, 가치관과 관련이 있을까요? 엄청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관, 가치관이 만약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고 진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 여러분이 걷는 길은 올바른 인생의 길일 것이고 그런 삶은 행복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고른 배우자가 사탄에 속하는 사람이고 사탄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그 결혼은 성립될 수 없으며 동상이몽의 결혼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고통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따라서 사람이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서인은 이 교제를 통해 배우자를 찾을 때 가장 먼저 자신과 뜻이 통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며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린도후서 6:14)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뜻이 맞지 않고,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분명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생명 진입의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배우자를 고를 때 상대방의 인성과 인품을 생각해야 하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 통하고 뜻이 같은 사람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외모나 조건만 본다면 결혼 후 말이 통하지 않아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기성을 서인의 인생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물론 기성은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집안의 자식이었고 서인에게 물질적인 것들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성은 착했고 하나님을 믿는 서인을 지지해 줬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성은 하나님께서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을 드러내신 말씀을 읽고 부정적인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도 조금 갖게 되었습니다. 기성은 절대 친구들과 유흥업소를 가지 않았습니다. 틈만 나면 서인의 곁에 있어 주었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뜻이 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서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서인은 하나님께서 배치해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행복은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살 수 없으니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인은 이번 생에 창조주의 택함을 받아 구원받고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덕분에 사탄의 괴롭힘과 농락에서 벗어날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며 감탄했습니다. 서인은 기성과 함께 하나님을 믿는 길을 착실히 걸어갈 것입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서인의 아버지는 서인을 찾아와 심각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너 진짜 기성이랑 결혼할 생각이야?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랑에 눈이 멀어서는 안 돼.”

그 말을 들은 서인은 차분하게 반박했습니다. “아빠, 지금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저보다 잘 아시잖아요. 다들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고 말하는데 그런 사랑은 모두 돈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감정이에요. 진정한 사랑이 없는 거라고요. 그런 사랑으로 한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요? 지금 이혼율이 얼마나 높은지 아시잖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모두 서로 속이고, 서로 배신하는 것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허황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정말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가면 좋겠어요? 아니면 저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에게 시집가면 좋겠어요?”

“그만하자. 저마다 다 타고난 복이 있겠지. 더 이상 상관치 않으마.” 아버지는 할 수 없다는 듯, 이 말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후 서인의 아버지는 서인과 기성의 사이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서인과 기성은 처음 사귀었을 때처럼 좋은 사이를 유지했고 서인의 얼굴에는 항상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인은 진지하게 기성에게 말했습니다. “예전엔 내가 진리를 몰라서 사탄이 주입한 관점에 흔들렸어. 그래서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한 거라고 생각했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나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냥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충분해. 우리가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이 변화되기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함께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행복이야.” 이 말을 들은 기성은 크게 감동했고 옅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그 후 서인과 기성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고민을 툭 터놓고 얘기하며 마음을 나눴습니다. 둘은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커플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예전과 다르게 서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서인, 너와 기성 사이 정말 부럽다! 언제든지 핸드폰을 만지게 해 주고 메신저 비밀번호도 다 알려 주다니. 둘 사이에는 정말 비밀이 없구나. 어떻게 그렇게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어?” 그럴 때마다 서인은 자신과 기성을 하나님의 집으로 데려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그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이끌어 주시며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길을 추구하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또한,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올바른 관점을 갖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신 것에도 감사드렸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생사를 오가는 수술, 하나님의 보호로 무사히 마치다

수술 성공률은 20%, 1년을 넘기지 못한다… 위중한 상태인 딸의 병세를 마주한 그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딸도 기적처럼 완쾌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이 없었고, 명확한 방향성도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 자녀, 사업, 결혼, 지위등을 정신적 지주와 평생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삼았고, 살아가는 희망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동료와의 전쟁, 이렇게 끝났다

함께 일하는 언니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 언니를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때, 저도 모르게 언니와 있었던 ‘전쟁’이 떠올랐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운 동료가 불만이다 저는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처음 일을 했을 때, 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그릇에 담아주는 일을 담당했고, 저는 홀 서빙과 포장, 분류하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손님이 주문하면 얼른 언니에게 말했고 언니는 바로 음식을 담아 제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각자 맡은 일을 했기 때문에 저는 주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며, 가끔 바쁠 때는 서로 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손님이 주문하기만 하면 언니는 본인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니의 그런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제 일이 많을 때 언니가 도와준 적도 있었고, 더군다나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시시콜콜 따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인내와 양보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는 계속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아 주지도 않고 재빨리 다른 일을 한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언제부턴가 본인의 일을 전부 제게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언니를 원망했습니다. 속으로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번 언니 일을 대신할 순 없어! 게다가 일을 많이 한다고 사장님이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계략이 떠오르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손님이 여러 명 들어왔습니다. 세트를 주문한 사람도 있었고 단품을 주문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 없이 바쁜데 한가하게 여기 닦고 저기 닦고 하는 언니를 보니 갑자기 화가 치솟았습니다. 너무 바빴던 터라, 언니한테 큰소리치고 싶은 것도 참으며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직접 주방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언니가 정리한 소스가 도통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웃으며 언니에게 “언니, 소스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언니는 퉁명스럽게 소스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잖아, 직접 가져 가!” 언니의 이런 태도에 화가 불끈 치솟았지만, 저는 겨우 화를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언니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언니, 정말 너무하네. 나는 이렇게 바쁜데, 언니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말을 그렇게 야멸차게 쏘아붙여? 이 일은 원래 언니 담당이잖아. 내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나한테 함부로 막 대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날 얕봐도 되는 건 아니야. 지금 언니랑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참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영업이 끝나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온 후,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직원이었다면 진작에 언니랑 싸움이 났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베풀고, 인내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언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목조목 언니한테 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사람들한테 당하라는 말인가? 나는 힘들어서 그렇게 실행하지 못하겠어. 그동안 계속 참으면서 언니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내가 참을수록 언니의 행동은 더욱 심해졌잖아? 내일 출근하면 언니가 게으름 피웠던 걸 꼭 사장님에게 말해야겠어. 그럼 사장님도 언니를 안 좋게 볼 거고, 앞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나 혼자만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계략을 포기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니 자책감이 들었고, 불현듯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행이 제멋대로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이방인보다도 더 사악한데…』 순간, 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쁜 마음으로 뒤에서 고자질하는 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남을 괴롭히는 건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니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끓었습니다. 언니를 다치게 하고 싶진 않지만, 사장님에게 언니 행동을 말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겠습니다. 언니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세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사람의 패괴 본성은 같으나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즉 어떤 사람은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말해서 드러나며, 어떤 사람은 겨루고 빼앗고, 어떤 사람은 겨루지도 빼앗지도 않지만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말을 퍼뜨리며, 어떤 사람은 속으로 불평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물건을 내팽개치고 부순다. 방식이 다르지만 본성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같으며 대부분 다 이런 것이다.』,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천하며, 너희의 말투는 상스럽고, 너희의 생활은 비열하며, 심지어 너희에게 갖추어진 인성마저 저속하다. 사람 됨됨이는 너무나 도량이 좁아 언제나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자기의 명예나 지위를 위해 다투는데,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고 불못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이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과 제 마음과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감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 중 '뒤에서 나쁜 짓을 한다' 라는 구절을 본 후, 저의 추한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반성했습니다. 음식을 담아주지 않는 언니가 일을 적게 했고, 언니 때문에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고생했으며, 처음에는 그래도 인내하고 양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언니를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정면충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언니 모르게 사장님에게 사실을 알린 후, 사장님이 언니에게 주의를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언니 일까지 떠맡지 않아도 되고 화도 풀릴 것 같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니가 계속 나를 만만하게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참을 수도 없고 참을 필요도 없다’ 등 이런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니한테 보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인격이 미숙하고 속이 좁으며, 자질구레한 걸 시시콜콜 따졌고 너무 음흉하고 악랄했습니다. 이 모든 걸 깨달은 후, 육체를 배신하길 원했기에 얼른 하나님 앞에서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고자질하는 비열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한이 있어도 비열한 소인배 같은 짓은 하지 않겠어.’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손해 본 것을 항상 마음에 두다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말하진 않았지만, 손님이 왔을 때 변함없이 딴짓하는 언니를 볼때마다 저는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가게에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한테 뭘 하라고 하니까 선뜻 그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속으로 ‘아, 이 언니는 원래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사장님이 있을 때 일부러 언니한테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일부로 다른 일을 해 사장님이 직접 언니에게 일을 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했더니 언니한테 화낼 필요도 없고, 언니보다 일을 많이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게에는 손님이 많았고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언니는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겪어 온 게 있었기에 이번에도 자신 있게 “언니! 죽 하나 포장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는데, 언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언니는 평소와는 다르게 대뜸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네가 직접 해!” 언니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을 응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성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껏 매일 생겼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전부 하나님의 안배였습니다. 이건 당연한 언니의 일이었고, 제가 그렇게 심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언니는 왜 갑자기 저한테 이러는 걸까요? 저는 언니 때문에 화내지 않아도 됐던 며칠 동안 아주 좋았습니다.언니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았고 언니의 행동을 문제 삼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변했다고도 느꼈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이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하나님의 일깨우심으로 정상 인성을 살아내다 그동안 언니를 대했던 제 태도를 떠올려보니, 진심으로 편견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저 방법을 바꿨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고 덕분에 언니와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도 제 일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거 역시 음흉하고 비열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정상 인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더는 언니를 노려보지 않았고 그저 제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정상 사람의 성품에는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부패하지 않다. 또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관통되게 하며, 사람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처럼 순진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땅에서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한 가지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기를 원한다. 지금 너에게 무슨 큰일이 닥치지 않았고 네가 큰 증거를 하지도 않았지만, 일상생활의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도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과 가족이 감탄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며, 언젠가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해 다 탄복하고,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야말로 너무나 좋다는 것을 보게 되면, 너에게 있어서는 바로 하나의 간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의 교활한 계획을 알고 계셨고, 언니의 불만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셨으며, 제가 즉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언니의 행동을 뒤에서 고자질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완전히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매번 언니가 일을 적게 하고 제가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그걸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런 행동이 잔꾀를 부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겉으로 볼 때는 문제 삼지도 않고 사장님한테 알리지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교활한 계획을 꾸민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말 비열한 행동이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칭찬할 정도로 말과 행동거지에 신중해야 하며,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이며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시시콜콜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피곤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며, 오직 진리의 실제만을 살아내어 정상 인성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언니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내려놓고 싶습니다.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고,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일을 제대로 하든 하지않든 상관없이 저는 양심에 따라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더라도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길 원합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아주 바빴습니다. 언니는 바쁠 때도 여전히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칠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면 육체를 배신할 믿음이 생겼고, 언니의 행동으로 기분이 좌우지되지도 않았습니다. 언니의 행동을 봐도 더는 화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저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해서 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덕분에 조금씩 언니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다시는 이런 일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 축복이 보인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또 손님 여러 명이 몰려왔지만 저는 언니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가지고 나오다 문뜩 고개를 들어보니, 뜻밖에 언니 손에도 똑같은 음식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언니가 제게 친절한 말로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사장님이 있든 없든 우리는 예전처럼 본인이 맡은 일을 하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왔습니다. 평소에도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언니는 일을 꼼꼼히 잘한다며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주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이나마 정상 인성으로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언니가 저를 칭찬하면서 언니와의 ‘전쟁’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를 창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겨울에 주인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주인집 뒷마당은 매우 난잡했고 시들어 죽은 각종 잡초와 볼품없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앙상하여 모양새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복숭아나무 너무 못생겼네! 열매나 맺을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복숭아나무도 싹이 돋아나고 파릇파릇해지더니 후에는 기름진 잎사귀로 가득하여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복숭아나무는 꽃이 피고 서서히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보니 작고도 못난 것이 마치 벌레 먹은 듯했습니다. 쭈그렁복숭아를 보는 순간 저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복숭아나무야, 복숭아나무야. 네가 만약 싱싱한 복숭아를 맺지 못하면 너의 가치를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니?’ 복숭아나무에 대한 저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시선은 빨갛게 익은 복숭아에 끌렸습니다. 주렁주렁한 열매는 햇빛의 자양을 받아 어느새 그렇게 크고 빨갛게 열렸는지 전의 그 “쭈그렁이” 모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복숭아는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주위의 모든 것과 인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탐스러웠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어둡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어떤 때 사람이 한 가지 곤충을 보고 그 곤충이 아주 못생겼으면 “이 벌레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렇게 못생긴 벌레는 절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아니야.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난 것을 만드실 리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우매하다! 마땅히 “이 벌레는 아주 못생겼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 틀림없이 그것의 독특한 용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각종 생물들에게 다양한 생김새가 있게 하고 다양한 기능과 용도가 있게 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없다. 외형에서 내부 구조까지, 생활 습성에서 제각기 차지한 위치까지 모두 각기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당나귀는 당나귀의 생김새가 있고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말해 봐라, 어떤 것이 가장 잘생겼고 어떤 것이 가장 못생겼는가?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하고 어떤 것이 가장 존재할 필요가 없는가?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좋아하지만 코끼리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사자와 범의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서 가장 위풍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애완동물로 삼아 기를 수 있는가? 어쨌든 만물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즉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법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 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조물주의 본의에 대해 구하고 순종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이 진정 조물주의 권세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니 사람이 또 흠잡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모두 그것의 특유한 면이 있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를 창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숭아나무를 볼품없고 맺힌 열매도 못났다고 한 것은 저의 시야가 좁아서 겉면만 보고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는 만물은 모두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제가 못났다고 여겼던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못난 그대로이고 주변의 잡초도 여전히 우거져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였습니다. 즉 복숭아나무는 모양새가 “못났다” 해서 자신이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해서 주변의 잡초를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잡초도 “지위가 낮다” 하여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모두 이행하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여기든지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들이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겨났다. 순식간에, 저마다 형태가 서로 다른 작은 생명이 흙 속에서 작은 머리를 한들한들 내밀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한시도 참지 못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베풀어 준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들이 다 만물 중의 일원이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제각각의 생명을 바칠 것임을 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발함에 따라 땅 위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하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각 종류의 채소가 생기 넘치게 자라나 흙을 뚫고 올라오며 산천, 평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밀림이 울창하다…… 조금의 생기도 보이지 않던 벌거벗은 이 세계는 신속히 푸른 풀과 채소와 나무 등의 각종 식물에 덮여 푸른 빛깔이 차고 넘친다…… 공기 속에는 푸른 풀의 향기가 가득하고 흙의 향기가 풍기며 각종 식물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 모든 식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생명 역정을 시작하고 그것들 제각각의 생명의 운행 궤적을 충실히 지키기 시작하고 만물 중에서의 그것들 제각각의 배역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며, 모두 조물주의 끊임없는 공급과 자양을 얻을 것이고 또한 영원히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기 위해 이 대지의 곳곳에서 꿋꿋이 살아갈 것이며, 그것들은 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영원히 창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시초에 이 세계를 위해 식물을 창조하는 기묘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창조하는 그 순간부터 그것들에게 생명이 되풀이되는 궤적과 만물 중에서 맡아야 할 그것들 각자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조물주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이 법칙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전이되지 않았고 또한 사람의 애호에 따라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식물로써 그것들은 완강하게 곳곳에서 살고 자신의 존재로 조용하게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묵묵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이렇게 평범한 것 같지만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어느 누가 발견한 적이 있을까요? 이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저에게 사람됨의 도리를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지식이 있든 없든 재주가 있든 없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이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는 어떤 종류, 어떤 하나의 피조물이든지 모두 그것 의 특정된 사명이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조물주의 주재에 순응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피조물의 직책을 잘 이행하여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할 뿐입니다.

절망에 빠진 결혼 생활, 누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상)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조양의 이야기가 그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

생사의 기로에 놓인 남편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다

심신 갑작스러운 발병, 목숨이 위험해진 남편 2017년 1월 20일 아침, 나는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주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위가 왜 이렇게 아프지? 방금 정원에서 호두만 한 핏덩이를 토했어”라고 말했다. 놀란 내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다시 피를 토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너무 놀라 달려가 남편을 부축했다. 남편은 그렇게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고 입술은 보랏빛이 된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대로 숨이 끊어져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119’에 전화 걸었다. 전화 연결이 되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고 또 의식을 잃었다. 머릿속이 하얘져 멍하니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119’에 전화 걸었다. 내가 황급히 전화를 걸 때 남편은 또 피를 토했다. 30분도 안 돼서 피를 세 번이나 토한 것이다. 매번 피를 토하고 나면 남편은 기절했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피 웅덩이에 쓰러져있는 남편을 보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듯했고 당황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남편 좀 구해주세요. 하나님만이 제 남편을 살려주실 수 있습니다. 전 정말 두렵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살피시어 제가 이성을 찾고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고, 남편도 서서히 깨어났다. 10분가량이 지나도 구급차가 보이지 않자 나는 조급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구급차가 오고 못 오고도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부디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어 제가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당신의 사역을 체험하겠나이다.”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내가 의지할 곳이 있음을 깨달았고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만사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남편의 생사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사탄이 두려워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었고, 그래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내가 잡념을 갖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남편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만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가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충만케 해 주셨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심각한 병세로 옮겨야 하는 병원, 하나님 말씀이 주신 힘 20분가량이 지나자 구급차가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조치를 취한 후 의사는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남편분 B형 간염(간경화 복수)이 너무 심각해요. 출혈량이 많아서 혈압도 낮고 최고 혈압이 50에 최저 혈압이 40밖에 되지 않아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혈액형도 특이하셔서 그 혈액을 쉽게 구할 수가 없어요. 큰 병원으로 옮기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두려워졌다. 남편을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병원을 옮기다가 남편이 또 피를 토해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병원을 옮기지 않자니 만약 남편이 정말 죽는다면… 그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모든 것,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후 각 사물은 생명이 있게 되었고, 그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각 사물은 자기 생명의 궤적과 법칙을 스스로 준수하고 있으니 사람이 바꿀 필요도, 도울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 맞다. 하나님께선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두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에 달려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의 목숨도 하나님께 달려있기에 병원을 옮긴다고 해도 남편의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하나님을 향해 조용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당신의 말씀은 제게 방향을 가리켜 주셨고 사람의 생명은 당신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남편의 목숨이 다했다면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남편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지 않으시면 이 병원에서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사역에 순종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내 마음은 차분해졌고 남편이 이 병원에 남아 계속 치료를 받게 하기로 결정했다. 괴롭고 나약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되어 준 하나님의 말씀 응급실로 들어가니 의사와 간호사 예닐곱 명이 남편을 에워싸고 주사를 놓고 있었다. 그런데 혈관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끝에 링거를 꼽았다. 남편은 간신히 숨이 붙은 상태로 얼굴이 너무 부어 눈도 뜨지 못했고, 다리도 너무 부어서 보는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조심스레 남편을 부르자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소리를 내진 못했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겪었던 일들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너무 슬퍼졌다. 나는 남편 침대 앞에 앉아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이 지경까지 제가 온 것은 분명 제 분량이 보잘것없기 때문이겠지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시어 제게 믿음과 힘을 주소서…” 이때 형제자매들이 병원으로 와서는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욥의 간증을 교제해주어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나는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진실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욥은 온 산에 있던 소와 양, 그리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하룻밤 만에 약탈당하고, 온몸에 종기가 났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기 1:21) 욥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깨닫고 자신은 적신으로 모친에게서 나왔을 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속셈이나 욕심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재난이 닥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욥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여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을 받건 화를 받건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참된 뜻이 담겨있음을 욥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뭘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한 것으로 인해 그렇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는 변함없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세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획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욥의 이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그의 모든 행실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히 여겼으며, 욥의 그러한 인식을 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마음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욥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실된 믿음을 갖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유나 조건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이와 관련된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는 한 사람을 죽게 하여 그 영을 육체에서 떠나 저승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그 사람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권능이 있다. 사람이 언제 죽고 또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인ㆍ사ㆍ물, 공간, 지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기만 하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물 생령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고, 만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생존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 역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권능이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수도, 영혼이 육체를 떠나게 하실 수도 있으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 일, 사물,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 유일무이한 권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성령에게 거짓말한 아나니아 부부를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저승의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만이 인간의 죽음을 주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남편의 생사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게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사명을 다하도록 하셨다. 만약 남편이 사명을 다했다면 하나님은 남편을 데려가실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남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면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도 하나님께서 켜주실 것이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모두 그분의 참된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때 하나님을 향한 가나안 부인의 믿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은 아량이시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건 말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그녀를 개로 여겨도, 그녀를 어떻게 대해도 그녀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갔다. 가나안 부인 역시 예수께 딸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기도드렸지만, 그녀의 기도는 이성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딸의 병을 고쳐주시건 말건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겨 경배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진실된 믿음을 보신 예수께서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셨다. 지금 나도 가나안 부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이성적으로 기도드려 만약 남편을 치료해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미를 드리겠지만, 치료해주지 않으신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남편이 죽건 살건 저는 절대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상황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어느샌가 하나님을 따르려는 내 마음이 더욱 커졌고 영적으로도 많이 든든해져 마음을 안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싶어졌다. 그 후 나 혼자 힘겹게 남편을 돌보는 모습을 본 형제자매가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남편을 간병해주었고, 나는 내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 우리를 보러 온 친척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곁에서 믿음을 주시고, 의지할 곳을 마련해주시어 내가 한 발짝씩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형제자매를 빌려 나를 도와주시고 보살펴 주셨다. 내 마음속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 찼다. 기적의 구원, 심각했던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다 남편이 평온하게 고비를 넘길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남편이 깨어났을 때 미약하지만 목소리도 나왔고 혈압도 60에서 90까지 올랐다. 이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생존하며 지속된다. …』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속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창조주만이 이런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시며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남편이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의 목숨은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권능과 위력은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조용히 하나님 앞으로 다가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아등바등했으며 가끔 소리라도 지르면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가만히 누워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무기력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어 깊은 고통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가족도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를 보내시어 내게 진리를 교제해주고 남편이 고비를 넘길 때 나와 함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성적인 기도가 무엇인지, 진실된 믿음과 순종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어 내가 하나님의 사역을 기다리고 순종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로 보아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우리 육체의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주일 후, 남편이 밥 먹는 모습을 본 의사는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처음 오셨을 때 피를 너무 많이 토하고, 혈압도 4~50까지 떨어진 데다 혈관도 잘 안 보였는데 오늘 이렇게 생기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이건 기적이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오래 사실 운명인가 봐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신 기적의 사역이다! 보름 후 남편은 퇴원하게 되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남편은 힘이 닿는 한 일을 해서 돈도 벌게 되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도와주실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따르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