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 뜻에 맞는 배우자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2019년 07월 04일

‘사랑의 역전’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슬슬 결혼할 나이가 되자 가족과 친구들은 어서 남편감을 찾으라고 재촉합니다. 친구들은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을 찾아야 물질적인 부분이 충분히 보장받고, 체면도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각자 바라는 게 있어서 한 결혼이라 상대방에게 진실한 감정이 없고 서로 힘들게 살고 가식적으로 사는 부부도 있고, 성격이 맞지 않아 매일 다투고, 싸우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워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크리스천인 제가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그 방법을 구하고 싶습니다.

글쓴이: 위칭


위칭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글을 보고 그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저도 전에 자매님과 같은 고민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았고, 결혼은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특히 크리스천은 결혼을 결정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게 되면 고통 속에서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 또한 영향을 받고,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것을 교제해 줄게요. 자매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젊은 시절 가족과 친척들은 종종 제게 전화를 걸어 빨리 남편감을 찾으라고 재촉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내려갔더니 친척과 친구들이 제게 소개팅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남편감은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가졌고, 집안 환경도 좋을 뿐만 아니라 집과 차까지 있는, 흔히 말하는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남자에게 시집간다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체면도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 저는 제 친구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의 남편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돈과 권력이 있는 집안 아들로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였습니다. 주변에선 모두 그 친구를 부러워하며 천생배필이니 결혼하면 꼭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부는 늘 싸웠고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이치대로라면 그 친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왜 행복을 얻지 못했을까요?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는 결혼이 망설여졌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막막함 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저의 어려움과 고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 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하에 저는 많은 이들의 결혼 생활이 불행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실행의 길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사람이 좋아하는 공통성이 하나 있다. 즉, 사람들은 겉으로 사람들이 모두 특별히 부러워하는 것, 화려한 것, 매우 호화스러운 것, 겉으로 특별히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좋아하는데, 모두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인데, 사람은 모두 이런 것을 우러러본다. 보다시피,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사람의 참된 모습이 없다. 이런 것을 우러러보는 것은 전혀 의의가 없지만, 사람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세상에서 관직에 오른 사람들은 기품이 있고, 처세 철학에 뛰어나고 감추며 드러내지 않아. 수양이며, 차림새며, 품격이며 …’라는 이런 생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다 이런 것을 부러워한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마다 안에 이런 것이 있어 이런 것에 짓눌릴 수 있고 유혹될 수 있으며, 심지어 이런 것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연약해질 수 있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결혼에 있어서 우리가 외모와 돈을 추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하여 본성의 취미, 추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습니다. 태초에 사람은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땐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이 있어 사람 간에 감정과 우정을 중시했으며 순수했고 함께 있으면 기뻤습니다. 물론 싸우고 다툴 때도 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평생을 함께하며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타락되면서 유명한 자들의 말에 휘둘리게 되었고 각종 사악한 문화가 깃든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드라마와 소설은 ‘예쁜 여자가 좋은 남편을 얻는다’, ‘벤츠에 앉아 우는 한이 있어도 자전거 위에서 웃진 않겠다’, ‘백이 없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등 사악한 조류가 사람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고 외모만 중시하며 여자는 백설 공주, 남자는 백마 탄 왕자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이 생겨버렸습니다. 게다가 권세나 이익에 눈이 멀어 현실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집안에 돈 있고 세력 있는 사람과 사귀어야 본인의 체면도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람의 도덕성은 점점 타락하였고 인성은 갈수록 왜곡되고 변해 갔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한 사랑은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잘난 외모를 가진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은 원하는 배우자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내연녀와 내연남을 두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애들 장난으로 여겼고, 사랑을 거래하려고 했으며 결혼 후 이혼하고, 이혼 후 다시 배우자를 찾는 일이 흔하다 보니 세상은 사악과 어둠이 극에 달했습니다. 지금 중국 사회를 보면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공인이나 매체, 연예계를 막론하고 혼란스럽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공산당 관원들은 모두가 이중생활을 하고 부패와 선정적인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사회에서 사랑과 돈을 위해 자살하거나 살인당하는 일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사람의 본성이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면 사람들은 잘못된 관점으로 배우자를 선택해 결국 사람에게 타락과 고통만을 안겨 주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돈 많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하다’라는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 이와 관련된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형제자매에게 청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가 제안한 문제에 연관된 사람의 설교 교제을 읽어주었습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먼저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생각과 뜻이 맞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과 뜻이 맞는 기반 위에 또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인성이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인의 인성은 좋은데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면 나중에 의견 충돌이나 논쟁이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반대로 본인의 인성은 좋지 않지만, 선택한 사람의 인성이 좋으면 본인에게 득이 되는데, 그가 이해해 주고 포용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방면을 다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설교 교제 (6) 하나님 말씀<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나이가 많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반드시 적합한 결혼 상대를 선택해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득이 되고 생명이 자라는데 유리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의 선택으로 사람의 길이 결정되고 사람의 종착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관건적인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설교 교제ㆍ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추구와 실행 원칙> 중에서), “본인이 나이가 많아 가정을 이루려 할 때, 어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인생관 및 가치관과 관계가 있습니까?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일 본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과 합하면, 즉 진리로 근거를 삼는 것이라면, 가는 길은 곧 진정한 인생 길이고 삶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결혼 상대가 사탄에 속하고 사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결혼은 성립되지 않는데, 동상이몽의 결혼으로 두 사람 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에게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는지는 너무나 중요합니다.”(<설교 교제 (3)ㆍ일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과 생명 성품 변화의 관계> 중에서)

이 설교 교제을 들은 저는 배우자를 찾는 일이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과 관련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는 것에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는 길입니다. 따라서 인품이 훌륭하고 뜻이 맞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같아야 하고 살아가면서 공통된 말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도 서로 도와주고 기댈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함께 진리를 찾아 해결하고 영적으로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져 서로의 마음을 다 이해하는 그런 결혼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을 때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들은 우상을 섬기고 온갖 사악하고 음탕한 짓을 많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인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맞이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이 인생의 대사이며 뜻이 맞는 배우자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돈과 물질적인 것들, 육적인 즐거움을 결혼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혼하고 상대방의 인품이나 상대방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가는 길이 같은지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 결혼 생활은 오래 갈 수 없을뿐더러 본인에게 고통만 안겨주게 됩니다. 일부 형제자매는 처음 육적인 즐거움을 위해 예쁘고 잘생기거나, 돈이 많은 사람을 배우자로 삼았지만, 상대방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 둘이 말이 통하지 않게 되자 결국 부부가 각자의 길을 걸어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부부는 결혼 후 남편(아내)이 하나님을 믿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종교를 심하게 반대해서 하나님을 믿는 길에 방해받고 핍박받아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거나 본분을 이행할 수가 없고, 심지어는 사악한 조류에 휘말려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크리스천은 사랑과 혼인을 대할 때 인품이 좋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인과 뜻이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대방 외모가 어떤지, 집안 배경이 어떤지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후 한 자매님이 제게 교제해주었습니다. “배우자를 고를 땐 옳은 가치관으로 구해야 해요. 하지만 앞으로 누구와 예식장에 걸어 들어갈지 누가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혹은 충동적으로 우리 마음대로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기다리고 구하고 하나님의 배정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인 우리가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갖춰야 하는 이성입니다.

이어서 자매님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두 단락 보내주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결혼 자체가 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창조주가 명정해 놓은 결혼에서 각 사람이 맡은 사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의 배후에 있는 각 사람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창조주가 일찍이 명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사실을 사람은 지금 마땅히 어떤 태도로 인식하고 대해야 할까? 이것은 각 사람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이다…. 우선 너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그다음 찾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후에는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 아래에서, 그 어떤 일에도 다 자연법칙이 있다. 너에게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하고 주재하게 할 결심이 있다면, 너는 마땅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찾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순복하기를 원하는 각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이자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기 원하는 각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결혼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상상과 기대를 갖고 있든 우리의 배우자는 본인이 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결혼 상대자를 정해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늙은 하인이 하란으로 가 이삭의 아내를 고를 때 진심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림으로써, 여호와께서 어울리는 배우자를 골라 주셨고 그 후 순조롭게 이삭을 위해 준비해 주신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저는 또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꿈꿔 왔던 ‘뛰어난 외모에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진 못했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결혼 후 호화로운 삶을 누리진 못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훌륭한 인품을 가졌고 취미가 같았으며 함께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부는 어느 정도 같이 살다 보니 상대방의 장점이 바로 자신의 부족한 점이어서 서로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잘 통해 무척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인생 대사에 있어서 우리 마음대로 자기 욕심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을 갖춰야 하고 그 외에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순종하여 결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인 우리가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갖춰야 하는 이성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실행 방법입니다.

이를 깨달은 후 저는 마음이 확 트였고 결혼에 대해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친척이나 친구들이 제게 배우자를 소개해 준다고 할 때면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말씀의 진리로 사람을 분별할 수 있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상대방의 인품을 볼 때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본인의 욕심이나 호감으로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제 마음은 해방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위칭 자매님, 위에 제가 작성한 글이 바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자매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또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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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이미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보는데, 왜 그렇게 많은 교파가 생겨났고, 왜 끊이지 않는 논쟁과 공격이 있게 되었을까요?

성경에 말한 “마지막 날의 심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리킵니까?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어느 때 땅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고 하나하나 고비를 넘게 할지도 모르니, 누구도 빠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