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 뜻에 맞는 배우자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2019년 07월 04일

‘사랑의 역전’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슬슬 결혼할 나이가 되자 가족과 친구들은 어서 남편감을 찾으라고 재촉합니다. 친구들은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을 찾아야 물질적인 부분이 충분히 보장받고, 체면도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각자 바라는 게 있어서 한 결혼이라 상대방에게 진실한 감정이 없고 서로 힘들게 살고 가식적으로 사는 부부도 있고, 성격이 맞지 않아 매일 다투고, 싸우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워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크리스천인 제가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그 방법을 구하고 싶습니다.

글쓴이: 위칭


위칭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글을 보고 그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저도 전에 자매님과 같은 고민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았고, 결혼은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특히 크리스천은 결혼을 결정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게 되면 고통 속에서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 또한 영향을 받고,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것을 교제해 줄게요. 자매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젊은 시절 가족과 친척들은 종종 제게 전화를 걸어 빨리 남편감을 찾으라고 재촉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내려갔더니 친척과 친구들이 제게 소개팅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남편감은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가졌고, 집안 환경도 좋을 뿐만 아니라 집과 차까지 있는, 흔히 말하는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남자에게 시집간다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체면도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 저는 제 친구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의 남편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돈과 권력이 있는 집안 아들로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였습니다. 주변에선 모두 그 친구를 부러워하며 천생배필이니 결혼하면 꼭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부는 늘 싸웠고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이치대로라면 그 친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왜 행복을 얻지 못했을까요?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는 결혼이 망설여졌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막막함 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저의 어려움과 고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 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하에 저는 많은 이들의 결혼 생활이 불행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실행의 길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사람이 좋아하는 공통성이 하나 있다. 즉, 사람들은 겉으로 사람들이 모두 특별히 부러워하는 것, 화려한 것, 매우 호화스러운 것, 겉으로 특별히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좋아하는데, 모두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인데, 사람은 모두 이런 것을 우러러본다. 보다시피,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사람의 참된 모습이 없다. 이런 것을 우러러보는 것은 전혀 의의가 없지만, 사람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세상에서 관직에 오른 사람들은 기품이 있고, 처세 철학에 뛰어나고 감추며 드러내지 않아. 수양이며, 차림새며, 품격이며 …’라는 이런 생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다 이런 것을 부러워한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마다 안에 이런 것이 있어 이런 것에 짓눌릴 수 있고 유혹될 수 있으며, 심지어 이런 것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연약해질 수 있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결혼에 있어서 우리가 외모와 돈을 추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하여 본성의 취미, 추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습니다. 태초에 사람은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땐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이 있어 사람 간에 감정과 우정을 중시했으며 순수했고 함께 있으면 기뻤습니다. 물론 싸우고 다툴 때도 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평생을 함께하며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타락되면서 유명한 자들의 말에 휘둘리게 되었고 각종 사악한 문화가 깃든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드라마와 소설은 ‘예쁜 여자가 좋은 남편을 얻는다’, ‘벤츠에 앉아 우는 한이 있어도 자전거 위에서 웃진 않겠다’, ‘백이 없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등 사악한 조류가 사람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고 외모만 중시하며 여자는 백설 공주, 남자는 백마 탄 왕자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이 생겨버렸습니다. 게다가 권세나 이익에 눈이 멀어 현실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집안에 돈 있고 세력 있는 사람과 사귀어야 본인의 체면도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람의 도덕성은 점점 타락하였고 인성은 갈수록 왜곡되고 변해 갔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한 사랑은 모습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잘난 외모를 가진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은 원하는 배우자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내연녀와 내연남을 두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애들 장난으로 여겼고, 사랑을 거래하려고 했으며 결혼 후 이혼하고, 이혼 후 다시 배우자를 찾는 일이 흔하다 보니 세상은 사악과 어둠이 극에 달했습니다. 지금 중국 사회를 보면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공인이나 매체, 연예계를 막론하고 혼란스럽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공산당 관원들은 모두가 이중생활을 하고 부패와 선정적인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사회에서 사랑과 돈을 위해 자살하거나 살인당하는 일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사람의 본성이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면 사람들은 잘못된 관점으로 배우자를 선택해 결국 사람에게 타락과 고통만을 안겨 주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돈 많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하다’라는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 이와 관련된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형제자매에게 청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가 제안한 문제에 연관된 사람의 설교 교제을 읽어주었습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먼저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생각과 뜻이 맞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과 뜻이 맞는 기반 위에 또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인성이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인의 인성은 좋은데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면 나중에 의견 충돌이나 논쟁이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반대로 본인의 인성은 좋지 않지만, 선택한 사람의 인성이 좋으면 본인에게 득이 되는데, 그가 이해해 주고 포용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방면을 다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설교 교제 (6) 하나님 말씀<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나이가 많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반드시 적합한 결혼 상대를 선택해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득이 되고 생명이 자라는데 유리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의 선택으로 사람의 길이 결정되고 사람의 종착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관건적인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설교 교제ㆍ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추구와 실행 원칙> 중에서), “본인이 나이가 많아 가정을 이루려 할 때, 어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인생관 및 가치관과 관계가 있습니까?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일 본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과 합하면, 즉 진리로 근거를 삼는 것이라면, 가는 길은 곧 진정한 인생 길이고 삶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결혼 상대가 사탄에 속하고 사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결혼은 성립되지 않는데, 동상이몽의 결혼으로 두 사람 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에게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는지는 너무나 중요합니다.”(<설교 교제 (3)ㆍ일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과 생명 성품 변화의 관계> 중에서)

이 설교 교제을 들은 저는 배우자를 찾는 일이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과 관련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는 것에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는 길입니다. 따라서 인품이 훌륭하고 뜻이 맞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같아야 하고 살아가면서 공통된 말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도 서로 도와주고 기댈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함께 진리를 찾아 해결하고 영적으로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져 서로의 마음을 다 이해하는 그런 결혼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을 때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들은 우상을 섬기고 온갖 사악하고 음탕한 짓을 많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인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맞이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이 인생의 대사이며 뜻이 맞는 배우자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돈과 물질적인 것들, 육적인 즐거움을 결혼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혼하고 상대방의 인품이나 상대방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가는 길이 같은지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 결혼 생활은 오래 갈 수 없을뿐더러 본인에게 고통만 안겨주게 됩니다. 일부 형제자매는 처음 육적인 즐거움을 위해 예쁘고 잘생기거나, 돈이 많은 사람을 배우자로 삼았지만, 상대방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 둘이 말이 통하지 않게 되자 결국 부부가 각자의 길을 걸어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부부는 결혼 후 남편(아내)이 하나님을 믿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종교를 심하게 반대해서 하나님을 믿는 길에 방해받고 핍박받아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거나 본분을 이행할 수가 없고, 심지어는 사악한 조류에 휘말려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크리스천은 사랑과 혼인을 대할 때 인품이 좋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인과 뜻이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대방 외모가 어떤지, 집안 배경이 어떤지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후 한 자매님이 제게 교제해주었습니다. “배우자를 고를 땐 옳은 가치관으로 구해야 해요. 하지만 앞으로 누구와 예식장에 걸어 들어갈지 누가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혹은 충동적으로 우리 마음대로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기다리고 구하고 하나님의 배정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인 우리가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갖춰야 하는 이성입니다.

이어서 자매님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두 단락 보내주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결혼 자체가 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창조주가 명정해 놓은 결혼에서 각 사람이 맡은 사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의 배후에 있는 각 사람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창조주가 일찍이 명정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사실을 사람은 지금 마땅히 어떤 태도로 인식하고 대해야 할까? 이것은 각 사람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이다…. 우선 너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그다음 찾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후에는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 아래에서, 그 어떤 일에도 다 자연법칙이 있다. 너에게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하고 주재하게 할 결심이 있다면, 너는 마땅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찾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순복하기를 원하는 각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이자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기 원하는 각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결혼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상상과 기대를 갖고 있든 우리의 배우자는 본인이 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결혼 상대자를 정해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늙은 하인이 하란으로 가 이삭의 아내를 고를 때 진심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림으로써, 여호와께서 어울리는 배우자를 골라 주셨고 그 후 순조롭게 이삭을 위해 준비해 주신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저는 또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꿈꿔 왔던 ‘뛰어난 외모에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진 못했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결혼 후 호화로운 삶을 누리진 못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훌륭한 인품을 가졌고 취미가 같았으며 함께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부는 어느 정도 같이 살다 보니 상대방의 장점이 바로 자신의 부족한 점이어서 서로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잘 통해 무척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인생 대사에 있어서 우리 마음대로 자기 욕심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을 갖춰야 하고 그 외에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순종하여 결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인 우리가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갖춰야 하는 이성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실행 방법입니다.

이를 깨달은 후 저는 마음이 확 트였고 결혼에 대해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친척이나 친구들이 제게 배우자를 소개해 준다고 할 때면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말씀의 진리로 사람을 분별할 수 있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상대방의 인품을 볼 때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본인의 욕심이나 호감으로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제 마음은 해방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위칭 자매님, 위에 제가 작성한 글이 바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자매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또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사랑의 역전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지 아십니까?

송려 지금은 이미 말세의 마지막 때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네 번의 피빛 달 예언도 완전히 이루어졌고, 각종 재난도 나날이 전 인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터넷에나 주변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은“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태 24:23~2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들을 엄두도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대접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또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여 오히려 참 그리스도를 문밖에 거절한다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수년간의 추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도래를 영접하려면, 우리는 피동적으로 회피하고, 경계하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면의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영접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첫째, 거짓 그리스도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라고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세에 거짓 그리 스도는 주로 예수님의 사역을 모방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미혹하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타내는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고 재림 예수님으로 잘못 알도록 해서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주요 수단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일부 교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모방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쫒아내는 등, 하찮은 이적을 행하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치 디모데후서 2장 9절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는 진리가 아예 없을 뿐만 아니라, 본성 실질이 악령이 사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사역를 모방하여 보잘 것 없는 이적을 좀 행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풍랑과 바람을 잠잠케 하는 등의 표적과 기사를 거짓 그리스도는 아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말세에 만약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고, 또 귀신을 내 쫓고 병을 고치며 많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거짓 그리스도이고 악령이 사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경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계시이고, 또한 우리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실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개척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죄사함 받게 하셔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셨는데, 그 모든 사역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시고 역사하시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고, 인류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속해내시기 위해 추호의 원망도 없이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고 더욱이 지위에 서지도 않으셨으며 독선적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표하신 긍휼과 사랑의 성품, 그리고 포용과 인내의 소유소시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에게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실 수 있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은 비록 겉모습이 평범하고 정상이지만, 이 평범한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완전히 정반대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표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면서 자신을 힘써 추켜세우고, 드러내고, 스스로 자랑하는데, 그들이 유로해내는 것은 모두 교만하고 망령되며, 사악하고, 간사한 등의 사탄 성정으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합니다. 세째,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진리, 길, 생명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발표하신 진리의 말씀은 사람에게 실행의 방향을 가르켜 줄 수 있어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사람들로 지키게 하셨는데, 사람들에게 땅위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죄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하는 등을 다 알게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난 인류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킴으로 질서정연한 삶이 있게 되었고 과거의 난잡하고 무질서하던 생활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또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실행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사람을 용서하라는 등을 가르쳐 주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점점 더 인성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중복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행의 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요한 등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발표하신 것이 다 진리임을 보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나 악령은 아무리 그리스도라고 자칭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실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에, 그들은 단지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할 줄만 알고 진리는 전혀 발표해 내지도 못하며, 단지 예수님 사역의 기초에서 모방하고, 뒤따르고, 이적을 행하여 사람을 미혹할 뿐, 사람들에게 실행의 길은 전혀 가져다 주지 못해 결국 스스르 무너지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또한 따르던 사람들도 아무런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악령이 들려 마찬가지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의 일부 교파들에 다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위에서 어떻게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가 하는 진리 원칙의 교통을 통해, 저는 세상 끝날에 주님이 오실 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을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 어디에나 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사람을 미혹할 때가 바로 참 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나셔서 역사하실 때인 것으로, 마땅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를 갖추어 그리스도의 실질에 대해,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에 대해 알고 분별할 줄을 알아야만 재림하신 예수님, 즉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분명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피동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경계하고 회피하고 듣지 않거나 무턱대고 대적하거나 거절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찾고 구하며 알아 보고 분별하면서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는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세에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또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시며 진리를 발표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예언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2:11)우리들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발하신 음성과 말씀을 듣고 갈망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꼭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의 밝히 분별할 수 있게 하시여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를 따르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목사와 장로들이 성경을 숙독하고 신학 이론들도 풍부하여, 목사와 장로를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이 맞을까요? 자신의 관점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지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참 진리를 찾고 구함에 있어 갖춰야 할 이성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타락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 』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신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과연 이런 깨달음이 정확한지 알아보겠습니다.

사탄, 악령이 사람을 모두 산 귀신, 더러운 귀신으로 패괴시켰는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것들을 일찍이 멸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비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전능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 그는 줄곧 어리둥절해한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권세가 있어 모든 것을 주재하실 수 있는 이상, 왜 또 사탄을 만들고 그것이 인류를 6천년 동안 패괴시키고 세상을 엉망진창이 되게 하셨을까? 왜 그것을 멸하지 않으실까? 사탄을 멸하시면 인류가 좋아지지 않을까?’ 너희가 지금 이 문제를 해석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상(異象)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

어떻게 성경을 대할 것인가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모두가 성경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게다가 성경은 아주 권위있는 서적이기에 사람 마음속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을 봐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 어떤 사람도 성경의 말씀을 어겨서는 안 되고 모두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면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잘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요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로 되어 있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 사역과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가 어떻게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인지, 하나님이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인솔하셨고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는지, 노아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고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해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또 일부 선지자들의 예언 등등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상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이 있습니다. 주로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지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또 어떻게 각지에서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 부활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했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했는지, 나중에 또 어떻게 성령의 인도 하에 그때의 교회들을 목양했는지……등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이 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셨던 사역과 일부 발생된 일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결코 성경이 없었고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또 예를 들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예수님이 땅에서 하신 역사를 사도들이 기록한 것과 교회들을 목양할 때 사도들이 쓴 서신 그리고 주후 90여 년 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을 사람들이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의 서신은 모두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교회들을 목양했습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인해 그들은 어떤 때에 직접 교회에 갈 수 없어서 서신의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 그 사도들이 쓴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 내용만이 아니라 그중 많은 서신이 수백 년 동안 전해내려오면서 유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후에 당시의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 대해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이 읽기 편하도록 전해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산생된 배경을 논했는데, 그중에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정경이지만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미 하셨던 사역이기에 결코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성경에는 신ㆍ구 시대에 여호와ㆍ예수를 섬긴 사람의 경력과 인식이 기록되고 수집되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이 이 책에서 많은 깨우침ㆍ빛비춤과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저작보다 훌륭한 까닭은 바로 영적 위인의 어떠한 저작도 다 성경에서 취재한 것이며 그들의 경력이 다 성경에서 온 것이고 또한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성경이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비록 성경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이 부류의 책과 같은 일부분 생명의 말씀의 책들이 수집되었고 또한 사람이 이런 책에서 공급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여전히 옛 시대의 책이다. 그들의 이런 책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한 시기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영원토록 남아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ㆍ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고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이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응될 뿐 마지막 때의 국도시대에는 적응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도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국도시대의 성도에게는 공급할 수 없으며,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바로 여호와의 창세의 사역처럼, 또 여호와의 이스라엘에서의 사역처럼,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나갈 때가 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도 없다. 십자가의 사역이 어떻게 설득력이 있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달할 수 있든지 사역은 어쨌든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쨌든 시대이다. 사역은 언제나 한 기초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가장 새롭고 가장 현실적인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는데,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사역에 대해 증언한 것일 뿐이지 결코 사람에게 현실적인 생명 공급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39, 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보다시피, 성경에는 전혀 영생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을 따라야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행할 길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갖추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끊임없이 솟아흐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이고 즉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념 속에서 나오고 성경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인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을 수 있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미혹될까 찾고 구하는 것이 두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세에 여러 이단과 거짓 진리가 나타나면서 많은 분들이 능동적으로 찾고 구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미혹의 두려움을 버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 역사는 하루하루가 다르고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아지며, 내일의 계시는 오늘보다 더 높고 차츰차츰 더욱 높은 단계로 계속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에 의하여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만일 따라가지 못한다면 수시로 도태될 것이며, 사람이 만일 순복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새로운 시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