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인 그녀의 배우자 선택 — 무엇이 중요한가

결혼은 모든 이에게 중요한 인생 대사이며, 어떤 배우자와 함께 해야 하는지는 더욱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럼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결혼 생활에 찾아온 위기,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었던 비결

남편의 인터넷 채팅으로 일으킨 결혼 생활의 위기, 쌓아 온 감정은 무너지고 배신의 고통에 빠지게 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했을까요?

불만이 가득했던 결혼 생활 어떻게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니 다 자신보다 잘 살고 있자 그녀는 무능력한 남편에 대한 불만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틀린 사상 관점을 되돌리니, 결혼 생활의 행복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는 한평생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다면 어떤 고생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자 깨지는 가정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딸의 불임에 사방을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 하였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시 딸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받지 않을지, 친척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고통스럽기만 한 그는 몇 번의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하자 뜻밖의 은혜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장거리 연애. 이런 불안감 속에 몰려오는 의심은 오히려 서로에게 큰 벽을 쌓기도 하고 서로 간의 감정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장거리 연애로 인한 의심의 고통을 벗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믿음의 싹을 틔워보세요.

크리스천이 나누는 감동 스토리: 계모는 친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친엄마가 계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처럼 계모는 언제나 계모라는 생각으로 증오와 갈등만 쌓아가게 된 그들의 관계,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계모는 진짜 친엄마가 될 수 없는 걸까요?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구원

남편의 불륜으로 행복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소송이나 복수하고 자살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시작했을까요?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의 행복을 얻다

우리 아버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아주 강했다. 어머니가 나를 낳자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싫어했다. 내가 철들고 나서 부모님이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여자면 어때서, 똑같이 주인 노릇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의지를 세우며 내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 남편에게 내 말을 듣게끔 하고, 절대 아버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나약하게 살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이런 소망이 생긴 후, 나는 집에서 최대한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아무도 날 깔보지 못하게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집안의 중요한 노동력이 되었다. 집안일이든 밭일이든 난 하는 일마다 척척 잘 해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 아버지의 칭찬을 들었고,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이 아들만 못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결혼 후,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남편은 밖에서 장사를 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결혼하고 2년 동안, 남편은 편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나와 상의했다. 나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남편이 자상하게 나와 상의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릴 적 소원이 이루어져서 이 집안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주면서 내 신분증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우물거리며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며칠 동안 그가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알고 어디를 다녀오냐고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법인데, 감히 날 속이려고! 안 되겠다.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지. 당신 나 몰래 무슨 일을 저질렀다간 두고 보라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동서의 집에 2만 위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동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동서 앞에서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척 호의를 베풀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나는 얼른 돈 문제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빌려주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요, 당신이랑 같이 동생한테 가서 물어보자고요.”라고 하자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여자인 주제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남자들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당신은 집안일이나 잘하면 돼.”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너무 괴롭고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내가 힘들게 집안을 위해 일하는데 남편이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안일이나 잘하면 된다니 그럼 난 고용된 가정부와 다를 게 뭔가?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남편이 똑같이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눈에 나는 가정주부로, 집안일만 하면 되고 바깥일은 신경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자기 집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 하는데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한바탕 울고 나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자주 남편의 사업장에 가서 남편을 감시했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면 얼른 쫓아가 누가 전화했냐고 물었다. 저녁에 일갔다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디 놀러 갔었어요? 거기에 누가 있었죠?” 나는 늘 트집을 잡아 그의 결점을 들춰냈다. 남편은 내가 항상 이런 것들을 물어서 귀찮아했다. 평소에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내 눈에 거슬리고 안심이 안 되어서, 항상 내 기준에 맞춰서 일하고 내 말을 들으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우리 둘은 늘 티격태격하며 시끄럽게 싸웠고, 아이는 항상 놀라서 문 뒤에 숨었다. 차츰 남편은 시간만 나면 놀러 나가고 잡담을 하러 사람들을 만나며 일부러 나를 피했다. 집에 들어오는 것은 밥 먹고, 잠자기 위한 것이고, 집을 마치 식당이나 호텔로 여겼다. 나는 점점 남편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성격은 점점 나빠졌고, 온종일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무척 피곤했다. 의사는 내가 오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며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길 바라기에 나도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애써도 다 소용이 없었다. 남편이 내 뜻과 맞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크게 화를 냈고, 남편과도 점점 서로 말이 없어져서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꿔야 할지 몰랐다. 내가 울적하고 무력하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임했다. 하루는 친척이 나를 찾아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간증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괴로움을 이야기했고, 친척은 나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이번에 말씀을 선포하러 오신 것은 인간의 죄를 철저히 없애고, 우리를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구원하시고, 더 이상 사탄의 타락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려는 거예요.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사람에 대해 용서하고, 포용하며, 이해하게 하려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더 이상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듣고 나서 하나님을 믿으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본 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였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임을 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마음을 활짝 열고 본인이 겪은 일에서 어떤 타락함이 나타났고, 그 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자신의 타락함을 해결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해 나눴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의 마음은 밝아졌고, 그들도 부러웠다. 이런 생활이 난 너무 좋았다! 형제자매들은 나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에게 고백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면 하나님은 분명 들으실 것이라고 교제해 주었다. 나는 나의 어려움을 하나님에게 털어놓으며 내가 더 이상 이렇게 남편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점차 나의 마음에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어느 모임 때, 남편과 자주 부딪치는 어려움을 형제자매에게 말했고, 정 자매가 나에게 말했다. “이런 어려움은 누구나 다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 주인 노릇을 하고 싶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지만, 이건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에요. 우리가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은 다 사탄의 괴롭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본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했어요.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우러러보았어요. 나중에 사탄이 하와를 유혹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했어요.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었어요.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서로 불복 하지 않고, 상대방을 다스리려고 했어요.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킨 후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진상과 근원을 전부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보여주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어요.” 자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해방되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있는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고, 타락한 성품을 벗어나는 데에도 희망이 생겼다. 정 자매는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매는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우리는 남들이 본인의 말을 듣게 하고 싶고, 항상 남을 다스리고, 억누르고 싶어 해요. 이건 사탄의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고,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킨 후 생긴 성품이에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고, 인류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했어요. 율법시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계명을 반포했고, 사람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도록 했어요. 은혜시대 예수님은 또 사람이 인내하고, 포용하도록 가르쳤지만, 우리 인류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몇 안 되었어요. 특히 말세의 오늘날, 우리는 사탄에게 더욱더 심하게 타락되어 다 교만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중심이 되려고 해요. 남이 한 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시콜콜 따지죠. 그래서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기 어렵고, 자신도 고통 속에서 살아요...” 자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는 남편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모두 내가 사탄에게 타락되었고, 너무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주인 노릇을 하고 싶었고, 내가 권력을 쥐고 내 말대로 결정해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마침내 나만의 작은 세계가 생겼다. 나는 남편, 아이를 내가 명령을 내리는 대상으로 여겼고, 가족이 모두 나를 따라야 기뻐했다.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발대발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늘 남편을 다스리려고 했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나의 의견을 구하게 하고 내 동의를 받게 해서 남편이 나를 멀리하고, 나를 피하게 되었고, 나는 고통 속에서 시련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고통을 받은 것이 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권력을 잡아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았다. 자매는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겨 그 어떤 잘못된 점도 없고 심지어는 그것이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 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고 보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때,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나의 상황이었다. 예전에 나는 정조를 지키는 사상 관념이 맞다고 여겼고, 자신을 너무 높고 좋게 보며,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교만한 사탄의 성품이고, 비열하고 추악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이 교만한 성품을 없애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만 사람의 모양으로 살 수 있다. 그 후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께 내가 진리를 행하도록 인도하시고 더 이상 집에서 주인 노릇하며 남편을 단속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나는 점차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배웠고, 더 이상 남편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내가 사탄 성품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내 뜻대로 남편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나는 외출해서 본분을 마치고 막 집에 돌아왔다. 이때, 내 친척도 차를 집 입구까지 몰고 와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건 이 집에서 산 제면기인데, 제가 갖다 드리러 왔어요.” 그는 말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고 나는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산 걸 제가 어떻게 모르죠? 집에는 둘만 있고, 일 년에 겨우 찐빵 몇 번 먹을 뿐인데, 기계를 사면 자리만 차지하지 않겠어요? 나도 몇 번 사용하지 않는데.” 친척이 웃으며 말했다. “샀으니까 쓰세요.” 이때, 나는 또 남편한테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큰일도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하다니, 돌아오면 두고 보자!” 이때,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탄의 성품이 또 작용한 것이다. 안되겠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또 소란을 떨면 안돼.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또 제 마음과 맞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 일로 화를 내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저는 육체를 배반하기 원하고, 낮아지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혹시 이번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 원인은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힘을 써서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지 육체를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네가 이렇게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예전에 나는 이 진리를 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교만한 본성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했다. 남편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나와 상의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니 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 한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당신이 산 제면기를 친척이 갖다 줬어요. 어서 코드를 꽂아봐요.” 남편은 나를 힐끗 보더니 “당신 화 안 났어? 지금 날씨도 덥고 당신이 면을 미는 게 힘들까 봐 샀어.” 나는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당신이 돌아오면 결판을 내려고 했죠. 하지만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이 떠올라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저를 인도하셔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알게 해달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지금 너희에게 간단한 실행법을 하나 알려 주겠다. 먼저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면 네 안의 정형에 부지중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하나님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느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동력이 있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이렇게 사는 것이 의의 있고 마음이 윤택해지며 심령이 안정되고 평안하며 누림이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성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이 일에서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이기심과 이익을 내려놓았어요. 자신을 만족시키지 않고 말씀대로 행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요. 이렇게 사니까 힘이 나고, 자신을 내려놓는 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에요. 이렇게 하니까 마음도 평안하고 뿌듯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지켜주셨어요. 그동안 우리 둘이 안 맞았던 것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항상 당신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고, 늘 당신을 다스리려고 했어요. 지금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길 원해요.” 남편이 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네. 당신한테서 기적을 봤어. 정말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어!”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너무 기쁘고, 비할 바 없이 즐거웠다. 마음속으로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얼마 동안의 협력을 거쳐서 남편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함께 교회 생활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을 불렀다. 이때부터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이 권력을 잡았다. 매일 기쁨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며,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오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이 이루신 결실이다! 예전에 나는 항상 사탄의 교만한 성품에 의해 살면서 남편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고, 남편이 듣지 않으면 말다툼을 해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스스로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구원하고 변화시켰다. 나에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똑똑히 보여주시고, 더 이상 본성에 의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하여 살게 하셨다. 지금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생겼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누리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절망에 빠진 결혼 생활, 누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상)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조양의 이야기가 그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절망에 빠진 결혼 생활, 누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하)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조양의 이야기가 그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우리 가족의 갈등, 이렇게 해결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가족들이 다 나를 편애했다. 나는 여동생보다 세 살 많았지만 한 번도 동생에게 양보해 본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먼저 차지했다. 결혼한 후, 종종 사소한 일로 남편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곤 했다. 남편을 못 이기면 며칠이고 그와 대화도 하지 않았고, 남편도 나를 외면하며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집안 분위기가 나는 너무 괴로웠다. 혼자서 이런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역하러 오신 것은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타락한 우리를 정결케 하고, 우리가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의 후반부에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잘 따르겠다고 남몰래 결심했다. 타락한 성품이 변화될 수만 있다면 가정도 화목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 집에서 남편과 의견이 다르면 나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그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은 줄어들었고, 나는 스스로 변화한 것을 느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자만자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계속 여러 가지 환경을 만드시며 나를 변화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사돈 간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5년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두 사람은 연애 끝에 결혼 적령기가 되어 가족끼리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아이들의 혼사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쪽 어머니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신혼집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딸이 거기에 살면 직장과 가까워 출근하기 편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몇십 리 밖에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살라는 말을 듣고 내심 불쾌했다. 첫째,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단층집이라 출입이 편하고, 둘째, 우리 부모님과 시댁과의 거리가 가까워 양쪽 부모님을 보살피기에도 비교적 편했기 때문에 나는 절대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멀리 떨어진 그 집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집이 비록 멀기는 해도 안의 가구가 다 새것이고, 인테리어도 젊은이들의 취향대로 디자인해서 젊은이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내주고 아들의 신혼집으로 새로 인테리어 해주겠다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난 묵묵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나는 남편과 싸우며 사돈에 대한 불만을 전부 남편에게 쏟아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 척하며 정작 나의 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원망했고, 사돈의 처사가 너무 지나치고 너무 강하게 나온다며 원망했다. 이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집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고 남이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니 내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서 무척 억울하고 괴로웠다. 아무런 방법도 없을 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일 때문에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원래 멀리 있는 그 집을 아들이 결혼하면 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돈이 그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집은 우리가 샀는데 사돈이 무슨 자격으로 결정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돈과 싸운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으려니 제 마음이 또 내키지 않습니다. 남편도 제 편이 아니라 더욱 괴롭고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이 말씀이 바로 나를 심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그 불신자들과 똑같이 명리를 다투고, 내 이익을 위해 시시콜콜 따지며,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도 않았다. 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으니 정말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이다! 집 문제에서 사돈의 처사가 내 이익을 해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내 편에 서지 않고 날 무시하며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서 내 이익과 체면을 되찾으려고 남편과 싸웠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후회가 되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집 문제에서 저는 제 이익과 체면을 지키려고 사돈과 다투고 남편과 싸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이익을 내려놓고 그들과 다투지 않고 하루 빨리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기도 후, 나는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남을 포용하고, 양보하며, 이해한다면 내 마음이 해방되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이사 문제를 상의했다. 이 일이 끝난 후, 나와 남편, 사돈 간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며느리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6년 가을, 아들이 결혼하고, 온 가족이 행복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들 부부의 신혼 3일째 밤 9시가 넘어, 남편은 며느리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몰고 가 보았다. 집에 들어가 이유를 물어보고 나서야 집문서 때문인 것을 알았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본인의 이름도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갈등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말했다.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우리 모두 피곤하니 이 일은 며칠 후에 다시 상의하자꾸나.”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며느리의 이런 요구는 말도 안돼. 며느리의 부모가 그렇게 강하게 나오더니 며느리 역시 부모랑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리 집은 정말 재수가 없네. 어떻게 그런 집이랑 엮여서...’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자. 아들네가 안 싸우고 잘 살면 됐지...” 나는 듣자마자 분통이 터져 남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 어쩜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요. 며느리가 해 달라 한다고 다 해주면 나중엔 끝도 없이 욕심을 부릴 거라고요. 우리가 집도 사고 인테리어까지 했는데, 며느리는 돈 한 푼 안 내고 명의를 올려 달라는 게 말이 돼요? 남들이 알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요. 사람들이 다 우리를 깔보지 않겠냐고요? 앞으로 제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만나겠어요? 게다가 며느리가 하는 짓을 보니 아들과 잘 살 것 같지도 않아요. 만약 정말 이혼이라도 해서 재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고요...” 남편은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보고 난 더욱 화가 났다. 더 이상 마음속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모든 불평을 남편에게 퍼부었다. 나는 울면서 이 집을 살 때 돈을 모으느라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했고, 말할수록 며느리의 요구는 더욱 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로 괴로워할 때 갑자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게 생각났다. 순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자기 이름을 올려 달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너무 한 것 같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사이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입니다. 들어주자니 또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이때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았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데,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만 생각하게 하고, 명리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게 하며, 명리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게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게 하며, 명리를 지키거나 얻기 위해 어떤 판단이나 결단도 내릴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무형의 굴레를 씌워 놓았다. 그 굴레가 씌워지면 사람은 벗어날 능력도, 벗어날 용기도 없는데, 그 굴레를 쓴 채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였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존해 오면서 갈수록 사악해지고 흑암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이 사탄이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 속에서 자신을 망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사탄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의 음험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사탄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가증스럽습니다!) 아마 너희가 지금은 아직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꿰뚫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떠나면 인생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를 볼 수 없고, 앞날이 캄캄하고 막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어느 날엔가 사탄이 사람에게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큰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인식하는 그날이 되면, 너는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너에게 씌워 놓은 굴레에 철저하게 저항할 것이다. 네가 사탄이 주입시킨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면, 너는 사탄과 철저히 결별하게 될 것이며, 또한 사탄이 가져다준 모든 것을 진정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흠모하게 되며, 진리를 추구하는 올바른 인생길을 가게 된다.』 이 구절의 말씀을 보고 나자 나는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이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이 아닐까? 이 말씀은 너무 현실적이야. 난 명리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았나? 원래 명예와 이익은 사탄이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이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어쩐지 내가 그 안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사탄은 명리를 가지고 우리를 조롱하고 괴롭힌다. 집문서 문제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이루며, 화가 나고 괴로워서 하늘과 사람을 원망했다. 집문서에 며느리의 이름을 올리면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 두려웠고, 또한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게 된다면 며느리가 재산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명리가 나에게 가져온 고통이 아닌가? 하마터면 나는 명리의 노예가 될 뻔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옭아매어 정상적인 인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가족의 정은 더욱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속의 원한이 훨씬 덜해졌다.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이 너무나 위력적이라 나는 마음속에서 환히 이해가 되었다. 이 말씀을 헤아릴수록 나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점차 나는 화가 나지 않았고, 이런 명리의 족쇄에서 빠져나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 마음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고 한없이 편해졌다. 남편은 홀가분해 하는 나를 보며 의아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 2시간 전이랑 완전 딴 사람 같은데?” 나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어요. 전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남편도 듣고 기뻐했고, 이렇게 우리 둘은 자발적으로 집문서를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며느리는 집문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감격해서 말했다. “어머니, 큰 도량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나에게는 이런 도량이 없어. 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한 거란다.” 지금까지도 며느리는 집문서 문제를 처리하지 않았고, 아들과도 더 이상 싸우지 않았으며, 우리 가족은 아주 화목하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해 주신 덕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의 갈등을 해결했다. 이제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하나님 말씀 안에 많은 비밀을 발견했다. 그런 많은 말씀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고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가정들을 보라. 그들은 가정의 시시비비 속에서 살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모두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내 동창의 상황이 그렇다. 어느 날 친구가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해 집안의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들이 서로 집을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했다. 핸드폰를 내려놓고, 나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명리의 얽매임에서 벗어났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 불신자들처럼 여전히 명리를 다투며 살았을 것이다. 한 가족이 명리 때문에 원수가 되고, 고통 속에 발버둥치며 평안을 얻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온 가족이 모두 온정이 넘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에 감사드렸다.

질병 앞에서 마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

아들이 갑작스럽게 병에 걸리다. 2016년 9월의 어느 저녁, 한창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갑작스럽게 책가방을 멘 채 돌아왔다. 기운 없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얼른 물었다. “왜 저녁 자습도 안 하고 왔어?” 아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통스러운 듯 말했다. “이가 아파요.” 그 말에 얼른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아들의 양쪽 뺨이 탱탱 부어 있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불덩이 같았고, 잇몸도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이 어릴 적부터 이가 아프다고 해서 치아를 갈아주면 또 아픈 이가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잇몸까지 이렇게 심하게 부은 걸 보니 이 뿌리에서 뭔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이상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얼른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작은 읍에 사는 우리가 시내 병원에 가기는 너무 늦어서 아들을 근처 작은 병원에 데려가 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서 아들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밤에 아들이 끙끙대며 신음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침대에 누운 아들이 아파서 계속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자 잠이 확 달아났고, 가슴은 칼로 에이듯 몹시 아팠다. 어서 날이 밝아 병원에 데려갈 수 있기만 바랬다. 아들이 아파하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심란했고,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아들의 병이 이렇게 심각한데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너무 두렵습니다. 하나님! 아들을 당신의 손에 맡기옵니다.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당신 앞에서 안정되길 바라옵니다.”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 우주의 모든 일 중에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일이 내 손에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깨우쳤다. 아들의 병이 심각한지 아닌지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나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러자 점차 나의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아들에게 읽어주며 아들에게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아들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서서히 아들은 통증이 좀 줄어들면서 잠시 후 잠이 들었다. 아들의 병세를 알고 나서 두려움 속에 살게 되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시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의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의 양쪽 어금니에 낭종이 자랐어요. 아들처럼 어린 나이에 이런 희귀한 병에 걸린 경우는 우리 병원에서도 처음 봅니다. 지금 이 낭종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모르지만, 당장 수술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낭종이 곳곳에 퍼져서 가족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다 들은 난 의사가 오진한 게 아닌가 걱정됐다. 겨우 14살 된 아들이 어떻게 그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대형 병원 두 군데를 더 돌았지만 검사 결과는 역시 같았다. 나는 속으로 너무 당황해 검사 결과표를 든 손마저 떨렸다. 이렇게 어린 아들이 이 수술을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나 두렵고, 아들의 낭종이 악성이면 어떡하나, 아들의 수술이 실패하면 어떡하나 무서웠다. 주치의는 주저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주저하시지 말고, 얼른 입원해서 수술받으셔야 합니다. 이따가 제 사무실에 한 번 들러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의사가 서약서 한 장을 꺼내 놓고 나에게 말했다. “여기에 있는 10여 개의 조항을 다 이해하신 후에 사인하셔야 합니다. 그중 마취약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전신 마취제와 국소 마취제가 있습니다. 전신마취제는 나중에 아이의 기억력이 떨어질지 모르고, 국부 마취제는 아이의 기억력에는 영향이 적지만 아이의 나이가 어려서 수술을 견디지 못해 수술이 절반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수술의 성공 여부는 우리 병원에서 보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아들에게 수술하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더 긴장이 되었다. ‘내겐 이 아들 하나뿐인데, 남편도 집에 없고 상의할 사람도 없으니, 만약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어떡하지?’ 순간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꼈다. 근심 걱정에 잠긴 채로 병실로 돌아오니 갑자기 밖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과 같은 병실을 쓰는 한 아줌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병실 사람들에게 말했다. “방금 50대 환자가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제를 투여한 후에 수술대 위에서 죽었대요. 마취제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요. 지금 그 환자 가족이 다 왔어요. 경찰들도 왔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네요! 이 병원도 갈수록 믿음이 안가네요. 이렇게 작은 수술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 일이 알려지면 앞으로 누가 여기 와서 진찰을 받겠어요?!” 이때 한 50대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도 아들이 하나뿐이고, 의사도 아들이 걸린 병이 여기서 첫 사례라고 하는데, 얼른 아들을 큰 병원에 옮겨서 수술받으세요!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 병실 사람들이 이 일을 듣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아들을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권했다. 이런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더욱 심란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심란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하신다. 심란한 와중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병원에서 마취제 사망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아들의 수술도 성공하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당신 앞에서 안정되길 바라옵니다.” 기도 후, 나의 마음은 서서히 평정을 찾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에게 있어, ‘나사로가 부활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그 일의 영향력은 심원한 것이다. 예수는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각 사람들을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한다’라는 이런 깨달음 속에, 이런 이상(異象) 속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해 놓았다.』 “은혜시대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다시 살아났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셔. 그럼, 아들의 수술이 성공할지 못할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이때, 내 마음속의 두려움이 약간 누그러졌다. 잠시 후, 갑자기 사촌 여동생(지방의 한 대형 병원에서 마취사를 함)에게 아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SNS 메시지를 받았다. 사촌 여동생은 우리 가족은 유전적으로 마취제 과민 현상이 없고, 수술에 전신마취제를 사용하고 6시간 후면 마취제가 전부 소변으로 배출되므로 아이의 기억력에 영향을 줄 리 없다고 알려주었다. 사촌 여동생의 말을 듣고 나는 이 메시지가 하나님이 사촌 여동생을 통해 나를 위로하고 내 마음속의 걱정을 내려놓게 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너무 불안하고 아플까 봐 무서워서 수술하기 싫어.” 두려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겨우 14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심한 병고에 시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워서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아들을 위로했다. "두려워하지 마.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거야, 너의 병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두려울 게 없어. 하나님이 말씀하셨어.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친정엄마(하나님을 믿음)도 옆에서 외손자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라고 격려했다.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위로를 듣고, 더 이상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수술하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수술을 앞두고 용기와 믿음이 생긴 것을 보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 덕분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아들의 눈빛에서 한줄기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아들이 수술받으며 당할 고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언저리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으며 얼른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친정엄마와 외숙모(하나님을 믿음)가 내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와 도움 되시니, 걱정하지 마”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주 평온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어머니는 손자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 계속 우시기만 하셨다. 시어머니의 상심한 모습을 보고 나는 시어머니에게 수술이 성공할지 못할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시어머니도 듣고 나서 약간 평온을 찾았다. 아들이 수술받는 4시간 동안, 나와 외숙모, 친정 엄마는 수술실 밖 복도에 앉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마침내 아들이 수술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들의 수술은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그리고 떼어낸 낭종은 검사 결과 양성이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번에 아들의 수술이 이렇게 성공한 것은 다 하나님의 보살핌 덕분이다. 아들의 이번 병고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함께 하시고 언제든지 우리의 의지와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신다. 사촌 여동생의 일이 생각났다. 최근 사촌 여동생의 두 살배기 딸이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니까 의사가 오랫동안 기침하면 폐렴이 될 수 있으니 얼른 입원시켜 관찰하라고 해서 사촌 여동생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일로 사촌 여동생은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다가 검사 결과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서야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 아들이 병에 걸렸을 때 나는 심란하고 무력했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힘과 믿음을 주었고, 내가 심적으로 의지하게 하고,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문제에 직면하게 했다.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남편의 외도로 잃어버린 행복,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다

남편의 외도로 바라던 행복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고통과 절망뿐이였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기로에 서서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는데,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별의 고통을 버리고 행복의 새삶을 되찾았을까요?

고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란은 욱신욱신 쑤시는 아픈 허리를 손으로 한참 동안 두드리고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커덕”하고 나더니 안란의 며느리 우정이 불쾌한 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우정은 주방 문 옆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어머니의 아들 친구들을 좀 보세요. 그들은 결혼 할 때 신부에게 10만 위안 (한국돈 약 1600만 원)을 줬을 뿐만아니라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도 사주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는 당신 집에서 6만 위안 밖에 주지 않았어요. 제 동창들은 결혼할 때 차도 있고 집도 있었는데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속상해요.”라고 했습니다. 우정의 말을 듣는 순간 안란은 화가 너무 났지만 속으로 ‘그 당시에 집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이제 와서 또 이 말을 꺼내는 거야? 이건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거잖아!’ 우정은 안란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계속 원망 섞인 말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안란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주방 청소를 끝마치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길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고부간인지 모녀간인지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으며 안란의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안란은 그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안란은 좀 전에 우정과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속으로 ‘난 언제 며느리와 저렇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에이, 지금은 보면 볼수록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잘 먹고, 잘 놀면서 마음껏 누리려고만 하는데, 이건 다 헛된 꿈이 아닌가! 방금 전에 한 말도 나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가? 남편과 난 이제 늙어서 농사짓는 것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아파트를 사줄 형편이 되겠어.’이런저런 생각으로 안란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동안 며느리와 지내면서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정을 며느리로 맞이했을 때, 안란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안란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면서 맛있는 거 있으면 며느리에게 주었고 집에서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고부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란은 내심 며느리와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정이 가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왔습니다. 안란은 며느리가 월급을 받아서 저렇게 기쁜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정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는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저 이번달에 월급을 2400위안 받았어요.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으로 1000위안 내고 월세 500위안 내고 그 나머지는 휴대폰 요금과 생활비로 사용했어요. 저는 한달 벌어서 한달에 다 쓰는 전형적인 월광족(한달 월급을 모두 소비해 버리는 중국의 새로운 소비계층)이에요. 어머니, 이번 달에는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월광족’ 이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내 돈 못 갚는 건 괜찮아. 하지만 우정아, 살림하는 사람이 돈을 아껴써야지 함부러 막 쓰면 안된다. 버는 대로 다 쓰면 어떡하니. 앞날을 생각해야지. 축의금도 자기 형편에 맞게 해야지.”라고 말하자 우정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불만스런 말투로 “어머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돈을 빌려서라도 양껏 부조를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 저도 해야죠. 안 그럼 친구들 앞에서 제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눈을 내리깔고, 가방은 소파에 던져버리고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성깔을 부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짢고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난 영감이 돈을 벌어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면서 아끼며 생활하는데, 버는 대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잖아.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 얘는 정말 집안 망칠 애가 아닌가? ’ 생각할수록 우정이 못마땅했고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후부터 안란과 우정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의 생활방식이 점점 더 눈에 거슬렸습니다. 우정이 안란에게 “어머니가 하신 요리는 왜 이리 맛이 없어요? 언제 시간되면 남편에게 백김치 생선요리를 잘하는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고 해야 겠어요.”라고 말하자 안란은 “물고기와 백김치를 같이 넣고 끓인게 뭐가 맛있겠어? 비린내만 나지.”라며 되받아 치자 우정도 지지 않으려고 맞서며 “백김치 생선요리는 북방의 백김치로 끓인게 아니라 남방의 야채로 끓여서 비린맛이 없어요. 나이 들면 ‘견식이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네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졌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견식이 없다’라는 이 몇 글자가 안란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무례하고 안하무인한 우정의 태도에 안란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너 같이 생활한다면 매일 고급 음식만 먹어야 하는데, 그럼 어디 돈이 남아돌겠어? 살림을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니네들처럼 산다면 돈이 아무리 많다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에 부딪치니 그제야 안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란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계속 천천히 걸었습니다. 안란은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은 크리스천이기에 일이 임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환해지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안란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말을 하고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한평생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눈에 거슬리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어떤 것은 사실 자신의 문제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지 말라.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신도 존귀하지 않고 남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고 고상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견식을 넓혀야 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생활 습관도 다 있는데 생활 습관은 인성이 아니다. 너의 생활 습관이 규칙적이고 정상적이고 고상해도 너에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이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이 환경은 너무 좋다.너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 적응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와 잘 지내고 그에게 다가가고 그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순복하는 태도와 실행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이 안란의 마음을 환히 비춰주었습니다. 안란의 마음은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린 듯 상쾌해졌습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와 같이 환경에 적응할 줄 모르고, 순복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오만자대한 본성 때문에 자신을 높이 보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이것도 무시하고 저것도 업신여기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식당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겠다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며느리가 저축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아파트와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 며느리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하는 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면에서는 자신이 며느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다 보니 며느리가 더욱 눈에 차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며느리가 생활하길 바랐는데 며느리가 따르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모두 타락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오만하여 며느리에게 요구가 많았고 또 요구가 높은 탓에 며느리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세대차이라는 장벽이 생겨 고통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며느리를 안배해 주신 건 자신의 오만한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항상 남의 흠을 잡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자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복하면서, 며느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화목하게 살며 생활속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안란은 괴로웠던 그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현실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생활도 계속되고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정은 손에 아이폰을 들고 안란을 바라보며 명랑하게 “어머니, 저 이 휴대폰 액정이 깨져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어요. vivox9plus를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아이폰 4~5 천원 주고 샀잖아, 그렇게 비싼 물건인데, 시간날 때 서비스센터에 가서 액정만 바꾸면 더 사용할 수 있잖아.”라고 말을 하니 우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 액정 바꾸고 싶지 않아요. vivox9plus을 사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우정의 그 말을 듣고 나니 안란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아이폰도 비싼 돈 들여 샀는데, 금방 싫증네다니. 4~5천원 들여 새 휴대폰을 또 사겠다고. 얘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네. 도대체 살림하는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안 되. 사지 못하게 말려야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또 며느리를 간섭하려 하고,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려는 이 오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제가 아직도 너무 교만하여 며느리가 꼭 제 뜻에 따르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타락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안란은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이방인이 말하는 세대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윗사람은 늘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니까 장벽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그 장벽이 생기고 세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냐? 부모는 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는 항상 부모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모를 지심인(知心人)으로 생각한다면 양자간에 그래도 장벽이 있을까? (없습니다.)” 안란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세대 차이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은 부모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자녀를 이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만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높은 지위에 서서 자녀에게 이것도 자기 말대로 해야 하고 저것도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는 불쾌해하고 자녀에게만 눈길이 가는 것입니다. 그때 안란은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신이 체면을 지키려 허세를 부리며 며느리를 간섭하려고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며느리를 강요하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요구하며, 고참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개인의 자유가 있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피조물이고 며느리 역시 똑같은 피조물인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며느리에게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고집하는 것이 다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내려놓고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어야 했지, 늘 속박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유행을 잘 따르는데, 며느리가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려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 되니 안란의 답답했던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졌습니다. 안란은 웃으면서 “나도 이젠 많이 늙었나 보다. 내 생각만 하고 너희 젊은이들의 마음을 몰라 줬으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말거라.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고 싶다고 했지? 그래, 내일 나랑 같이 사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우정은 조금 놀란 듯 의아스러운 눈길로 안란을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안란과 우정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 매장에 갔습니다. 생각밖으로 우정은 “어머니, vivox9plus은 값이 너무 비싸니, 전 사지 않을래요. 대신 vivox7plus로 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후로 우정과 지낼 때, 안란은 비록 우정의 생활방식이 눈에 거슬렸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때는 오만한 본성도 많이 변화되고 며느리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안란도 우정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예전처럼 항상 원망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주 안란과 마음속 말을 나눴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안란과 상의하고 안란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우정은 안란에게 “어머니, 저 아파트 사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번 돈은 어머니가 저축하세요. 저도 이제부터는 돈을 아껴 써야겠어요. 더 이상 아버님, 어머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게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안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며느리 사이에 존재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 노울이 논밭에 비치니 삽시간에 그 논밭은 마치 황금색의 카펫을 두른 것처럼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안란과 우정은 농사일을 끝내고 활짝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부러워서 “저 두 사람 좀 보세요, 누가 고부사이라고 하겠어요.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고부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분들도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안란과 우정은 마음이 뿌듯해 입가에는 웃음이 만발했습니다.   문정

행복한 부부,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성년이 되었고, 그 후 아버지가 정해주시는 대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무식할 뿐만 아니라 욱하는 성질까지 있다는 걸 결혼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집안의 시시콜콜한 일들로 인해 늘 쉴 새 없이 다투곤 했다. 딸이 막 2학년이 되던 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자,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싸우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집을 새로 지었고, 나도 돈을 빌려 낡은 우리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살 수 있는 집을 왜 새로 지어야 하느냐’ 며 반대하였다. 나는 입이 닳도록 설득해보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반대하였고, 우리는 이 일로 인해 또 반 년 동안을 다투며 살았다. 서로 마음이 좀 누그러졌을 때,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이고, 당신보다 내가 아는 것도 더 많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데, 당신은 왜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야?” 그러자 아내가 지지 않고 말했다. “왜 내가 항상 당신 말을 들어야 돼?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지도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는 서로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짧게는 사흘에서 닷새, 길게는 십여 일을 서로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하며 지내곤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보며, 난 늘 하늘을 원망하곤 했지만, 이혼을 하자니 아이가 불쌍했고, 안 하자니 일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2012년, 친구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타락을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타락된 성품도 해결해 주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만 하면, 우리 부부의 다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내와 반평생을 다투며 살았는데, 만약 하나님을 믿어서 우리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그 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님들과 자주 함께 모임을 갖고 교통하였다. 어느 날, 나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부부 사이에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함께 생활하지 않았고 또한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몇 년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적응된다. 서로 얼마간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인성이 정상적이라면 늘 서로 마음속 말을 나누게 된다.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거나 직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자신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려고 계획한다거나 네가 직장에서와 아들딸을 대함에 있어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한다면 서로 매우 가깝고 마음을 잘 알지 않겠느냐? 만일 그가 지금까지 너와 마음속 말은 하지 않고 돈을 벌어다 주면 그만이고, 너도 지금까지 그에게 마음속 말을 하지 않고 흉금을 터놓지 않는다면 서로의 마음에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 틀림없이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너와 거리가 있고 너도 그와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너는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며, 너는 그의 필요를 모르고 그도 너의 요구를 모른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 수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아내와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원인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내와 사십여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여태 아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아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여태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줄을 몰랐다. 그저 상대방에게 내 말을 따르게만 하고 싶었지, 상대방의 고충은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다툼이 생기면 그게 모두 상대방의 잘못이라고만 여겼기에,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더 멀어졌고, 갈등은 더욱 더 커졌다. 나는 이 말씀을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아내는 이 말씀을 보고 머리를 연신 끄덕이면서, “하나님 말씀이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시는 것 같아, 우리 두 사람 정말 그렇잖아. 그럼 이후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서로 ‘속마음 털어놓기’를 본받아,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다시 다투게 되지는 않을 거잖아” 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핸드폰 문자를 보려고 이리저리 안경을 찾았다. 아내는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는 나를 보고 책망을 하였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은 안 보고, 왜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다 낭비해버리는 거야. 그러려면 채소밭에 가서 채소나 따 와!” 아내의 명령조 지적에, 화가 난 나는 아내에게 눈을 부라리며, 밖을 나갈 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의자를 발로 확 차서 넘어뜨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채소밭으로 가버렸다. 마음속으로, ‘나처럼만 잘해 보라지, 집안 일에 바깥 일까지 죄다 도맡아 하는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날 조금이라도 존중하기는 하는 거야?’ 나는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채소를 따서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낸 것은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것임을 깨닫고, 곧바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였다. 기도를 하고 나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당신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당신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 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타락과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소화기처럼, 내 마음속의 그 알 수 없는 분노를 즉시 사라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내의 좀 심한 말투와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발끈한 것이었다. 내가 화낸 것은 그저 나 자신의 체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사탄의 타락된 성품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 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줄곧 내가 가장이고, 내가 아내보다 아는 게 많고, 아내는 일자무식이며, 아내의 생각이나 견해가 나보다 못하니까, 아내는 내 말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그 즉시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곤 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모두 내가 언제나 가장의 지위에 서서 거만하게 아내를 깔보고,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내가 장악하려고 해서 생긴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아내의 말투가 좀 심하긴 했지만, 아내는 내가 잘되라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진리를 갖추라고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아내의 태도가 안 좋다고 싫어하다니, 난 정말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집에 돌아 온 후, 나는 아내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인식한 것들을 교통하였다. 그러자 아내도, “방금 내 말투가 좀 심했어. 내 잘못이야, 이게 다 사탄의 거만한 성품 때문인 것 같아.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것이니까, 이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야” 라고 말했다. 아내의 교통을 듣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공과를 배우게 하고, 우리의 타락된 성품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사탄에 의해 극히 타락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인·사·물을 예비해 주셨다. 벼 벨 때가 되었지만, 아들의 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던 아내는 돌아올 수가 없었기에, 나는 집에서 800평이나 되는 벼를 혼자 베느라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아내가 왔길래,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한번 봐봐, 이렇게 많은 벼를 어떻게 나 혼자 다 베라고 그러냐? 게다가 밥도 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그런데 당신은 도와주러 오지도 않고…” 아내는 나의 주절주절 끝 없는 잔소리에 화를 냈다. “당신 혼자 집에서 일하느라 힘들어서 나한테 화내는 줄은 나도 알겠는데, 나라고 무슨 수가 있냐고? 아들과 손자가 나 혼자만의 자식은 아니잖아. 당신이 자꾸 이러면, 나 이제 안 돌아 올 거야.” 아내의 말에 나는 더욱 화가 나서, 욱하는 마음에, “그래, 그럴 능력 있으면 오지 마!” 라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아내가 신경질을 확 내고 진짜 가버릴 줄은 몰랐다. 아내가 가버린 후,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왜 또 화를 낸 거야, 이게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게 아니면 뭐지? 아, 정말! 아내는 이미 가버렸고 이제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또 왠 일인가? 이튿날,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문을 들어서자 마자, 어제 저녁 마음이 너무 괴로워 잠을 못 잤고, 그렇게 화를 벌컥 내고 가버리면 안되는 거였다고 말했다. 나도 뉘우치며 아내에게, “어제 저녁에 나도 당신처럼 벌컥 화내고 나니까 마음이 괴로웠어, 게다가 며칠, 일 때문에 바빠서 하나님 말씀도 안 읽어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어,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 읽자.” 이어서 우리는 같이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었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사람의 삶은 늘 사탄에게 방해받고, 심지어 사탄에게 통제받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사탄에게 구금되어 있는 사람이고, 자유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손에서 풀려 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과 권리가 없는 사람이고, 사탄에게 끊임없이 뒤쫓기고 가차 없이 공격당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행복을 논할 여지가 없고, 정상적인 생존 자격을 논할 여지가 없으며, 인간의 존엄을 논할 여지는 더욱 없다.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사탄과 싸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경외를 무기로 삼아 사탄과 결사전을 벌여 사탄을 철저히 물리침으로 사람을 보기만 하면 피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들면, 사탄은 사람에 대한 공격과 참소를 철저히 포기할 것이다. 그때면 사람은 구출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다 읽은 후,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명확해. 사탄에게 타락된 이후로, 우리에게는 전혀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도 없고,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성도 전혀 없어. 나 혼자 농삿일 하느라 좀 힘들어지니까, 당신이 나 안 도와준다고 바로 원망하고 당신한테 화내고 불끈하고, 난 너무 이기적이고 거만해.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고, 늘 당신한테 내 말에 순종하라고만 하고, 당신 감정 따위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이 날 나무란다고 나도 오기를 부렸잖아, 내가 게으름피우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나를 비난하는 거냐고 생각했어. 역시 우리는 사탄에게 너무 깊게 타락 되어서 항상 거만한 본성에 따라 살고 있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는 생각만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 안 다툴 수 있겠어? 우리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우리 몸의 사탄 성품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자.” 나는, “그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는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다음부터는 어떤 일을 만나든, 다시는 거만하거나 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상대방 말이 옳으면 바로 받아들이고 따르고, 진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의지를 굳게 다졌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문제에 부딪히면,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늘 하나님 앞에 와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타락됨을 반성하고 인식하였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점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아내가 먼 곳으로 본분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둘러 밥을 다 해 놓았는데도 아내가 아직 귀가 전이라, 나는 손전등을 들고 거리로 아내를 마중 나갔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집안밖의 모든 일을 앞다투어 다 하면서, 줄곧 내가 집안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도록, 진리를 많이 갖추도록, 어떤 성과가 있으면 아내와 함께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늘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다투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주위의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점점 젊어진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 집에서 어떻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통을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통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말씀'으로 원망을 해결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빠가 맏이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가 첫 자녀로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딸이었고,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내가 두 세 살쯤, 아빠는 출근을 하셔야 했고, 엄마는 농사를 지으시느라 바빠서 나를 돌봐주실 시간이 없으셨기에,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다. 매번 엄마가 일을 끝내고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 내 바지는 항상 오줌으로 젖어 있었고, 작은 엉덩이는 빨개져 있었지만, 할머니는 바지를 갈아 입혀 주지 않으셨다.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 나를 혼자 집에 두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난 겨우 다섯 살이었다. 엄마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나는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돌보아 주셨지만, 나를 점점 차갑게 대하셨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으며, 동생을 편애하고,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내가 9살 때,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남동생이 왔다. 우리 둘은 같이 주방으로 들어 갔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급하게 “찬장에 월병 뒀어요, 얼른 꺼내서 손자 먹여요!” 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난 온 지 한참 됐는데 나한테는 안 주고, 남동생이 오자마자 바로 월병을 꺼내 주다니.’라고 생각 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 갔다. 평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말을 하실 때도 좋게 말하시지 않고 항상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설날이 되어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여 같이 밥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주 친절한 말투로 “내 새끼~ 얼른 와서 밥 먹어라!”라고 남동생을 부르셨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얼굴로 “얼른 와서 밥 안 먹고 뭐해!”라고 소리치셨다. 때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을 품에 안고 놀아 주셨는데, 이러한 자상함은 나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으신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 적이 없었으며, 항상 매우 차갑고 낯선 모습만 보여 주셨다. 내 어린 마음에는 조금씩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 당시, 아빠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반신 불수가 되셨고, 가족의 모든 일은 엄마가 짊어지게 되셨다. 아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저금해 놓은 모든 돈을 다 써버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소를 한 마리 키우셨지만 우리가 밭을 갈 때도 도와주지 않으셔서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밭일을 맡기셔야 했다. 나와 남동생이 학비 낼 돈 마저 어렵게 되자, 할 수 없이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 주시고, 생활비만 엄마가 대는 것으로 약속 하셨다. 그러나 뜻밖에 날아든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방학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연이어 발생한 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등록을 해야 해서 엄마는 나에게 할아버지에게 가서 학비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저 학교에 등록을 해야 돼서 학비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담뱃대를 빠시면서 무표정하게 밖을 쳐다보시며 나에게 “아들을 잃은 마당에 손자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밖에 서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학비를 주지 않으셨고, 나는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생각했다. ‘할아버지, 정말 너무 모질군요! 아빠도 없는데 우리마저 버리시다니요!’ 나는 오기를 부리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흥! 오늘부터 나도 할아버지는 없어, 당신들이 죽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일들을 물어보면, 나는 매우 차갑게 “저한텐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취직 후, 휴가 때 집에 돌아 가서 친구네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랑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새로 이사한 집에 가보지 않았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딸, 예전에 내가 네 앞에서 항상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해서 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 것 같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남아선호사상이 있고, 우리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분들을 미워해서는 안돼.” 엄마의 이 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엄마는 지금껏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한거지?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편을 들어주다니? 나는 의아하게 엄마를 쳐다 보았고,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아니? 사람이 모두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어 어쩔 수 없이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분쟁과 미움,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엄마는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건, 사탄이 그분들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성품대로 살아가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분들을 미워 할 수 있는 것도, 타락한 성품 때문이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그분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로 했단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에게 못되게 대한 건 사실이잖아. 만약 우리한테 잘 대해 주셨어도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했을까? 어쨌든,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에 날 정말 놀라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셨고, ≪하나님 3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 정선≫이라는 책을 주셨다. 나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구원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류를 위해 좋은 환경과 각종 식물을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원래 에덴 동산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아름다운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인류가 누렸던 본래의 아름다운 생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운이였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이때부터 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자매님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자매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주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주인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였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예를 들자면, 너는 왜 이기적이 될까? 너는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할까? 너는 왜 정이 그렇게 많은 걸까? 너는 왜 불의한 것을 좋아하고 악을 좋아할까? 이런 것들의 뿌리(원문: 根據)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너는 왜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걸까? 이제는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로 사탄의 독소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독소란 무엇일까?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였다.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위하든 저것을 위하든,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매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는 우리의 생존의 근본이 되었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주입되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게 되었으며, 아주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때, 이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근거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매님에게 못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람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심령을 왜곡하여 양심과 이성을 잃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람인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내 마음은 확 밝아졌다. 우리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모두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에만 급급한 삶을 살게 된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피해자였군요. 그분들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서 그렇게 변한 거네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는 건 사탄의 독소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말로 괴롭힘을 당한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사탄에게 눈이 멀어 속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분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어요.” 그 후,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해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심 없이 희생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사심 없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구원을 멈추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풍부한 물질을 베풀어 주셨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동시에,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이 목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도록 하신다. 그러나 사탄으로 인해 타락된 후 우리 인간은 모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몇천 년을 거친 고대 문화의 역사적 지식은 사람의 사상 관념과 정신 풍모를 물샐틈없이 봉했는데, 좀 먹지 않는 문돌쩌귀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마치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떨어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이미 봉건사상에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억압당하였고, 다 질식하여 반항할 힘이 전혀 없으며, 그저 말없이 참고 참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분투하거나 일어선 적이 없고, 그저 봉건 교육의 가혹한 속박 속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사람은 격타(擊打)당하여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누렇고 삐쩍 말랐다. 사람은 일찍이 기억을 상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살며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남자 아이만 좋아하고 여자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이는 사탄이 주는 봉건 사상에 오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가한 딸이요, 쏟아진 물이다.”라는 말이나, “가문을 빛내고 혈통을 이어 나가는데 아들이 없다면, 대가 끊긴 것이다.”라는 생각은 모두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 변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이러한 독소에 근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존여비 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진리가 없다면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없기 때문에, 봉건 사상의 굴레에 묶여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 짓밟히고 우롱당할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르게 대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탄이 계속 우리를 타락시키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생활이 화목함을 잃어버리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피해자다. 언제 고향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간증할 것이며, 그들도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그후에, 한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아빠는 삼촌만큼 능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녀의 식구만 차별했는데, 간식이 있으면 그녀는 주지 않고 숨겨 두었다가 사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그녀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있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쌓였던 미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할머니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인데, 그때 그 둘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가정이 따뜻하고 화목하게 변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는데, 자매님이 겪은 일들이 바로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를 드렸다. 나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알게 하시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고, 우리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에야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완전히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어도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다

저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단단(丹丹)입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부모님은 고향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걸(罗杰)이라는 남자를 저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과는 다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만난 적도 없어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의술이 뛰어나고 인품도 좋은 사람이라고 저에게 말했는데, 어머니의 그 말에 저는 그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저에게 청혼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편지에는“저는 꼭 당신을 잘 보살피고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당신이 날 떠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의 편지 속에서 묻어나는 진실함과 저에 대한 맹세에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제가 바랐던 행복한 삶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큰 결심을 내리고 난 뒤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정말 그가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와 함께 병원을 운영하면서 집안일도 함께 분담했습니다. 살림에 서툰 저는 밥도 할 줄 몰랐고 어떤 가사 일은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병원은 둘이 함께 운영했는데, 남편은 진료와 처방을 책임졌고, 저는 약을 조제해주고 주사를 놓는 일을 책임지면서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 보았고, 복이 많아 이런 훌륭한 남편을 만났다며 다들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저도 속으로 매우 기뻐했고 제가 꿈꿔왔던 행복한 삶이 드디어 실현되었다고 생각하며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툭하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밖에서 술 마시고, 도박하고, 유흥가도 이곳저곳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일은 뒷전이었고 환자를 진찰하는 일도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병원에서 진료를 맡아 달라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제멋대로 하면서 하루도 집에 있는 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며칠씩 외박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랴, 병원 일을 하랴,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병원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야, 아이에게 아구창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당황한 나머지 남편에게 급히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몇 마디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칭얼거리며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너무나 걱정되어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어이없게도 남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약을 발라 주었는데,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힘겨웠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관심조차 없고 무책임하며 자기 혼자만 기분 좋게 노는데만 신경 쓰면서 너무 무정하다고 저는 속으로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저는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 만취한 남편이 돌아왔는데, 잠갔던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남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저에게 삿대질하면서 욕을 마구 퍼붓었습니다. “너 같은 여자를 만나서 너무 재수 없어! 전화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찾았잖아, 이게 다 재수 없는 당신 탓이야...” 저는 너무 기가 막혀서 “애가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걱정도 안 돼? 도박으로 돈을 잃어놓고 내 탓을 해? 이런 억지가 어딨어?”라고 큰 소리를 치며 대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주먹으로“퍽”하고 제 머리를 쳤는데,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제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당장 꺼져...”라며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이렇게 대하는 남편을 보니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고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이혼하여 아이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정말로 이혼하게 되면, 온전치 못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게 될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집을 나가려던 두 발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그날 밤, 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와 남편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는데, 남편은 상처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었고 거기에다 바람까지 피웠습니다. 이처럼 고달픈 결혼생활이 지속되면서 나중에 저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해 결국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남동생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식사 시간에 남편은 제가 만든 볶음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다며 밥 그릇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남동생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남편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동생 앞에서 버럭 화를 내며 저와 동생을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저는 칼로 마음을 도려내는 듯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제 삶의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가정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다 견뎌왔는데, 그 결과가 이럴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욕감과 끓어 오르는 분노로 인해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을 머금은 채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밤이 깊어 주위가 조용할 때마다, 남편이 저에게 했던 맹세와 때리고 욕하던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더욱이 남편이 저를 내쫓던 모습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는 마치 유령처럼 제 주위를 맴돌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먹지도, 자지도 못해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체중이 5kg나 빠졌습니다. 저와 아이에게 무관심한 남편을 보고 저는 낙담하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저는 살아 갈 용기마저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면제 반병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수면제의 유효기간이 지난 탓에 약효가 떨어져 10시간이 지난 후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남편은 저에게 전혀 미안해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가 자주 아프다는 이유를 들어 빈 손으로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몹시 절망하여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보며“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며칠 뒤에 친정 집에서 몸조리하고 있는데, 둘째 숙모가 찾아 왔습니다. 숙모는 온종일 우울해 있는 저를 보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주었고,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나의 말을 보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나는 절대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고 네가 믿는 것대로 네게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축복이 너에게 임한 것이다. 나의 말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정확히 드러낸다. 사람마다 치명상이 있는데, 내가 바로 너희의 치명상을 치유해 줄 명의(名醫)이다. 내 앞에 오기만 하여라. 내가 왜 이후에는 슬픔도, 눈물도 없다고 했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씀을 읽고 나서 둘째 숙모는 저에게 “단단아,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친히 음성을 발해 말씀한 것이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곤혹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한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모든 근심 걱정 그리고 괴로움은 자연적으로 해결 될 수 있단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따스한 기운이 제 마음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둘째 숙모는 계속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너의 처지를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구나. 그 당시 너의 둘째 삼촌도 온종일 도박만 하면서 가정을 소홀히 했단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고, 오히려 나와 다투기만 했었지. 화목한 가정을 위해 난 속으로 꾹 참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서러움을 하소연할 곳조차도 없었단다. 날이 갈수록 근심이 쌓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내가 받은 그 모든 고통은 다 사탄의 괴롭힘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단다. 사탄은 각종 사악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패괴시키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추구하게 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좇아 마음껏 방탕하게 하는 거란다. 너의 둘째 삼촌도 사회에서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도박에 손대면서 집을 돌보지 않게 된 거란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과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었단다. 그로 인해 사탄의 갖가지 궤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원한과 고통속에서 살지 않게 되었단다.” 허심탄해 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는 둘째 숙모, 이전에는 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던 숙모가 지금은 이렇게 소탈해지고 정형도 몰라보게 달라 진 것을 본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고통받으며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니 삶에 대한 희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점유되었고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골치 아팠던 일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늘 저를 괴롭히던 불면증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된 형제자매들과 많은 교제를 나누었는데, 서로가 초면인데도 가족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어려움이 닥쳐 걱정하고 있을 때마다, 형제자매들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저에게 교통해 주었고 그들의 체험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저는 크게 감동받았는데, 이런 생활이야말로 제가 늘 바라왔던 삶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일찍 하나님 앞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마치 오랫동안 부모와 헤어졌던 아이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 것 마냥 너무나 기뻤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이혼 판결문을 사람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이혼 판결문을 받아 든 그 순간, 저는 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당장 남편을 찾아가 ‘내가 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야?’라고 한바탕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불만과 원망이 마치 보이지 않는 올무처럼 저를 단단히 조였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또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 끊임없이 부르짖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나서 받아들인 것은 다 사탄이 주입한 잘못된 사상과 관점 그리고 잘못된 생존 법칙이였기에, 사람도 따라서 점점 패괴되고 타락해 원래 갖고 있던 양심과 이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인생은 짧으니 즐겨야 한다’라는 잘못된 관점을 받아 들여 먹고, 마시고, 도박하면서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본연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아이에게도 무관심하며 부부 사이의 감정마저도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점점 냉담해졌고 문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목적으로 완벽한 결혼생활을 꿈꾸어 왔기에 ‘사랑 지상주의’, ‘사랑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라는 격언만을 믿었고, 심지어 이러한 애정 선언을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힘써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짓밟힐지언정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올무처럼 저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끝없이 상처를 받았고, 결국 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다 사탄의 그릇된 생존 관점으로 초래된 것인데, 사탄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괴롭히는 이런 방식과 수단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악한 조류의 희생물이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있게 되어 더는 그것들에게 농락당하지 않게 되었고, 마음속으로부터 남편에 대한 원한을 차츰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전 남편이 재혼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남편의 아내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남편과 자주 다투기까지 하면서 이혼하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마흔도 채 안된 전 남편은 귀밑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날마다 술로 마음을 달랜다고 했습니다. 전 남편은 사탄의 독소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죄의 쾌락을 누렸지만, 끝없는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비록 결혼생활은 실패했지만 다행히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되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고,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전도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소탈해진 저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며, “몇 년 못 본 사이에 얼굴 색이 정말 좋아졌네. 전보다 훨씬 젊어졌어. 다른 사람 같아.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었는데, 저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해 주었고 저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었더니, 그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켜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자유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찾게 되었습 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던 남편이 끝내 정신차리다

양유(杨柳)와 향명(向明)은 소개팅을 통해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의 생활은 비록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향명은 양유를 살뜰히 보살폈고 양유가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향명은 늘 옆에서 도와 주었으며 외출하여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웃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 둘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군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도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향명이고, 일생의 동반자도 향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게 되자 가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넘쳐났고 가정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친척이 그들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유는 운 좋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같은 해에 그들은 넓고 아늑한 집도 짓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양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부부 관계도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향명이 식품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유는 남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몆 번이나 향명의 전화 벨이 울리면 향명은 재빨리 한쪽에 숨어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설마 외도라도 한 걸까?’라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고 이 가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하는데 아니겠지라며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생각은 이렇게 하였지만 양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향명이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미심쩍다는 생각에 문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챗 여자 친구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양유는 “더 이상 제 남편이랑 채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라고 문자로 답변을 보냈더니 채팅 그 여자는 오히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당신 남편에게 물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해 아주 즐겁거든요! 당신은 당신 남편 간수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채팅 그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양유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남편의 휴대폰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양유는 향명에게 더 이상 위챗 여자 친구와 채팅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향명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부터 양유를 피해 다니기 시작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급히 식사를 끝내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여자들과 채팅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양유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향명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지키고 싶기는 한가요! 위챗 채팅이 그렇게 좋아요? 채팅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님 제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향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차가운 말투로 “여자랑 채팅하는 게 중요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다들 이런 경로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고. 이런 거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양유는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 생활해 온 남편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비통하고 처량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양유는 화가 나다 못해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고 이 가정을 떠나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유는 향명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였고 비록 한 집에서 생활은 하였지만 마치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양유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향명이 왜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고민에 빠진 양유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남편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부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초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였고 이 가정도 매우 아끼고 살뜰히 유지하려고 했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터 동료들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하에 위챗 채팅에 빠지기 시작하여 매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를 않았으며 채팅에 푹 빠져 가정도 저도 아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유는 그들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 원흉이 다름 아닌 사회조류가 가져다준 사악한 풍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위챗 채팅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은 무고하고 가엾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양유는 더 이상 남편을 예전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양유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탄의 사악한 조류와 한차례 쟁탈전을 벌여 남편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양유는 예전처럼 향명을 냉대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와 마음속말도 하기 시작했고 시간만 있으면 향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 준 해악과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통해 주기도 했습니다. 향명은 양유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차분하게 앉아 양유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향명에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하게 되면 너는 무엇으로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하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된다. 그가 너를 어떻게 제어하면 어떻게 인도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너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 딴 것이다. 그럼 이런 환경을 지배하는 조정자는 누구일까?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는지 본인도 모르고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변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데 결국 오늘날의 너가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흐리멍덩하게 살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패괴하고 사람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 .” 양유는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예전에 당신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제게도, 아이에게도 잘하고 우리 가정도 아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위챗 채팅에 빠진 후부터 더 이상 나랑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어요. 당신이 식사하는 걸 보면 배가 고픈지, 부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고 대충 두어 술 뜨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요.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채팅할 생각, 채팅하는 여자만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 사악한 조류에 완전히 제어되어 있다는 걸 설명해요. 당신이 여자랑 채팅하면서 일시적인 스릴과 위안을 찾을 때,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많은 여자들이랑 채팅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 살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인터넷 채팅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어떤 가정은 여자가 남편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남자랑 도망갔고 어떤 집은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여자랑 놀아나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진리가 없기에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사탄은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정욕과 사욕에 사로 잡혀 죄속에서 낙을 누리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삼킬 목적을 달성하여 그것과 함께 멸망될 것을 바라죠. 우린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되요!” 향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유의 얘기를 듣고나서 너무 두렵고 부끄러운 나머지 “여보, 전에 난 다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당신이 속이 좁아 나랑 시시콜콜 따진다고 여겼어요. 오늘에야 사탄이 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탄은 나를 지옥으로 끌어 가고 있었어요! 사실 가끔은 나도 네티즌이랑 채팅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부부 사이에도 좋지 않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게 하고 특히 당신 기분이 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몇 번이나 더 이상 놀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탄이 휴대폰 채팅을 통하여 나를 미혹하고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고 위챗 채팅에 더 이상 빠져 들지 않겠어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 봐요!”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향명의 말을 듣고 양유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회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양유가 보는 앞에서 위챗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양유는 향명의 휴대폰에 위챗 문자가 온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향명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더니 향명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양유에게 앞으로 다시는 채팅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불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 버리는 것으로 채팅하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리라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양유는 사악한 조류가 향명에게 가져준 독해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향명을 인도하여 사악한 조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생활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교회의 한 자매님이 양유의 집을 찾아와 예배 드릴 때 향명과 교통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상대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으로만 개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른길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두게 되면 사탄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게 되면 진리를 좀 알게 되고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속에 빠져 미혹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교통해 주었고 향명은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습니다. 그후부터 향명은 양유를 따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고 차츰 마음도 더 이상 인터넷 채팅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휴대폰에 위챗이 깔려 있어도 더 이상 향명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전화상으로 채팅하던 여자에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라고 질책하는 통화 내용을 몇 번이나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향명은 위챗 인터넷 채팅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단과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라앉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탄의 변두리까지 왔던 가정에 드디어 예전처럼 기쁘고 즐거운 웃음 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양유와 향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면 심령 깊은 곳이 밝고 안심되고 더없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구원이 없고, 하나님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가정은 벌써 파탄되고 말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고 길을 잃어 헤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고 사탄이 우리같은 무지한 사람에게 준 상처를 똑똑히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사탄을 증오하게 되자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도록 남편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의 사악한 조류를 따라 타락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력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통찰력을 키워주어 분별 능력을 자라게 하였고 사탄이 사람을 독해하는 각종 음모 궤계를 간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사악한 조류의 공격을 이겨내는 가장 유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 마음속에 있다면, 마귀 사탄은 더 이상 저희를 농락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남편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구원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유도(刘涛)

‘소통하는'법을 배우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행복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해란은 집안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온종일 허무한 컴퓨터 게임에만 정신 팔려 집도 돌보지 않고 애도 챙기지 않다니… ’라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해란이 계속 잔소리를 하자 남편은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끝없는 잔소리만 해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해란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말이 조금씩 오고 가더니 30대의 이 젊은 부부는 점점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속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소리나게 ‘쾅쾅’ 치면서, 의자도 일부러 발로 걷어찼습니다. 곱게 자란 해란이 어찌 이런 울분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분을 삭히지 못해 속으로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이딴 식으로 대하지? 내가 만일 반항하지 않고 참는다면 나중에 남편이 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자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는 질세라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가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외출했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둘은 어쩔 수 없이 다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다툼이 잠시 잠잠해 졌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해란도 의자에 앉아 울분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지친 해란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플까?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 앞에 와 기도했는데,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찾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해란은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대화하는 법, 말하는 법,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너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부모의 태도도 변하지 않다 보니 그런 상황을 돌려세울 방법이 없다. 너는 주동적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고집 부리지 말고 부모에게 대항하지 말라.”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대화를 하는 목적은 작은 방면으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인성의 소통이 있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말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방면이다. 큰 방면으로 말하면, 서로의 정형을 알아보면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것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잡아 주고 도와주는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 효과가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로 지내게 되지 않겠느냐?』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해란은 자기도 모르게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연애할 때, 그들은 여가 시간이면 늘 함께 산책하면서 얘기 나누기를 좋아했는데, 서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일하면서 부딪쳤던 어려움이나 재밌는 일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로 못할 말이 없었고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결혼하여 예쁜 아이까지 낳게 되었는데, 이런 결혼 생활이 당연히 행복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과 복잡한 현실 생활로 인해 연애 시절의 낭만과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그들의 생활은 더 이상 연애 시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자질구레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아이, 직장, 양가 부모…등,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해란과 남편은 소통이 점점 적어지게 되었고, 각자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고민을 해결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였고 해란은 집안일을 마치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해방받는 이런 생활을 만끽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차츰 소통이 적어지게 되었고 대화거리도 적어지게 되면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심지어 서로가 방해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날이 갈수록 서로가 상대의 마음에 들기란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이 하던 일을 재쳐놓고 예전처럼 지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해란과 남편은 갈수록 서먹서먹해졌고 다툼도 날로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로 다투었는데, 매번 다투고 나면 그들도 매우 후회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임하게 되면 또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 사이가 너무 멀어져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부는 이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서로가 맞지 않아 이혼한 부부가 어디 한둘입니까? 사실 그렇게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생활 속의 이런 작은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가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기에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이 평소에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기 때문에 작은 갈등이 생겼고, 또 이로 인해 서로 다투다 보니 나중엔 장기적인 냉전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에 따를 것을 강요하다 보니 예전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다툼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이 가정을 위한다면 더 이상 남편과 다투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남편과 대화하고 마음속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해란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조절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남편과 속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엔 예전처럼 조급해 하지 않았고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얘기를 나눌 때에 그는 되도록 남편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속마음도 남편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실행하니 의외로 남편도 예전처럼 발끈하지 않았고 자상하게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하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이해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해와 믿음, 배려가 있었기에 서로 간의 갈등과 오해는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효과를 보게 될 줄은 해란 자신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는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남편과의 갈등도 해결하고 정상적인 관계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란은 남편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었는데, 늘 함께 얘기도 나누고 마음속 말도 하면서 일에 부딪쳐도 차분하게 상의했습니다. 게다가 해란은 실행 과정에서 자신의 패괘성정도 끊임없이 정결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실행하고 나면 진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 자신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말씀이 패괘된 인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패역과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 할 때, 점차 정상 인성과 이지도 회복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평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누가 ‘고부갈등 ’ 을 해결할 수 있는가?

"집집마다 고충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부갈등'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로,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어릴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다...

하나님은 저의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악에서 몸부림치며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마귀에게 짓밟혀 죄의 낙을 누리면서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매번 찬송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을 부를 때마다 저의 가슴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로 벅찼습니다. 저의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년 전, 저의 가정에 적색 신호등이 켜져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당시, 남편이 사업이 순조롭지 않아 괜히 저에게 자주 화를 내다 보니 저는 마음이 답답하여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한 남자가 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열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거절하고 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남자 동료로부터 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홧김에 저는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날 뒤로 저희들은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보며 마음속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영원히 함께 하진 못해도 사랑을 해본 것만으로 만족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저의 이런 행동이 불장난이어서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딸도 있고 남편도 있어서 감당하지 못할 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동상이몽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게 되었고 마음은 깊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하루하루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보냈는데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 남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가 이렇게 후회막급한 짓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관음당에 보살을 자주 찾아갔습니다.(다른 사람한테서 그 보살이 아주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살에게 저를 이런 악연에서 벗어나 원래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제 뜻을 따르지 않았고 헤어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고통스러워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마음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르고 추하여 더 이상 이전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선생님에게는 훌륭한 학생, 부모님에게는 착한 딸, 남편에게는 현모양처가 아니었습니다. 마침 그때, 어머니에게서 동생의 결혼식을 월말에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내심 ‘잘됐어! 고향에 가서 마음을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고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저에게 임하여 이번 귀향길이 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저를 죄악의 벼랑 끝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빛 가운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저는 제가 그렇게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던 원인이 바로 자신이 사탄 본성에 결박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성육신에 의하여 사함받은 것이지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능히 사람이 범죄치 않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역주: 부패, 타락) 성품에서 살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하여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발전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사람의 성품이 변화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점차 변화되는 데에 이르게 하고 빛의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며, 사람이 하는 범사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완전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데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이 완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알고 보니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은 모두 죄를 범하는 본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변화시켜 빛 속에서 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송 부르고 진리를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저의 마음을 지켜주고 안정시켜 주어 사악한 정욕을 끊어 버리고 원래의 조용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에게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은 더욱더 욕심이 그지없다.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번에 그것이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더욱더 자기의 육체를 사랑할 것이다.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이 더 커지고 … 사람의 육체는 뱀과 같은데, 본질이 바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완전히 목적을 달성할 때는 곧 네가 목숨을 상실할 때이다.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것 안에 언제나 사치한 욕망이 있어 늘 자기를 위하려 하며 … 네가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면 최후에 그것이 너를 삼켜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점차 육체의 본질을 알게 되었고 육체의 사악한 정욕을 만족시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는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사탄의 괴롭힘과 우롱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살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찬송을 더 자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지중에 저의 마음에 그 사람의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평안과 기쁨, 자유와 해방이 가득하여 예전보다 더 충실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세 식구는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딸도 사랑스럽고 남편도 저를 자상하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