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요즘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부모가 아이를 잘 교육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아이의 좋은 부모이자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이 점점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이와 가까워지고 부모이자 좋은 친구로 될 수 있을까요?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모든 희망이였던 아들이 출세하기만 바랐던 그녀는 앞서 아들의 미래를 계획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미움만 더해가자, 그녀도 마냥 가슴이 아파왔는데, 그러던 그녀가 어떻게 아이의 웃음을 찾아 주고, 아이가 칭찬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을까요?

크리스천 부모 필독: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가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고 준비한 계획에 따라 아이를 교육하려고 합니다. 계획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아이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더해 주곤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 부모는 어떻게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할까요?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딸의 성적을 위해 밤늦도록 같이 공부하고, 과외도 시키고, 보충 학습까지 하여 드디어 딸의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게 된 날. 집에서 초조하게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전해온 것은 딸이 남긴 메모지 한장, 거기에는….

크리스천 부모가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준 가장 좋은 선택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제공해주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의 학교 선택이 부모에겐 큰 짐이 되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아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명문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학교 측은 500명의 신입생만 받겠다고 말했지만, 응시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교문 앞에 빼곡히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며 ‘경쟁률이 엄청나네. 우리 아들은 이 학교에 오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교 측의 전화를 받지 못해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 측에서는 시험 성적과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희망의 끈을 놓았고 실망도 커져 아들이 이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XX 학교 가기 싫어요. 거긴 학교도 별로인 데다가 나쁜 애들도 많아요. 저는 XX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가 수업 질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요.” 아이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남편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는 데다가 대출받은 높은 집값에 두 아들의 교육비, 게다가 노인 세 명까지 부양해야 했다. 이미 등골이 휠 만큼 휘었는데 아들을 명문 학교에 보낼 만큼 쏟아부을 돈이 어딨겠나? 아들의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파져 오고, 막막해졌을 때 나는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기도드리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ㆍ사ㆍ물의 영향(직역: 훈도(薰陶)와 영향)을 받게 될지, 어떤 지식과 재능을 배우게 될지, 어떤 습관을 기르게 될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와 가족이 누구이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무엇일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주위의 인ㆍ사ㆍ물의 관계가 어떠하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ㆍ사ㆍ물이 형성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창조주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 배경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생활하게 되는 환경도 당연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나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계획에 달려 있고, 창조주의 정성스런 안배에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의 평생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어떤 학교에 가건, 거기서 나쁜 것을 배우건, 앞날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명문 학교라고 해서 모두 좋은 학생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만 보더라도 부모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학교에 보냈지만, 아이의 성적은 여전히 별로였다. 그에 반해 내 친구 딸은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고에 진학했다.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학교 문제로 인한 고민과 걱정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훌륭한 학생은 좋은 학교에서만 배출된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등 사탄 독소의지배를 받으며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내게 심어놓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논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명문 학교에 진학하려 힘쓰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었지만, 부모님과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망쳤다고 원망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예전에 그 친구는 한 회사의 유명한 강사였다. 나중에 친구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관련 부처와 세무서의 ‘능력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구속될뻔 했고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지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수 있다. 이때, 마음속의 고통이 점차 사라졌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어 아들이 창조주의 주재에 따르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바뀌었다. 더는 명문 학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나한테 “엄마, 우리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비록 아들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들의 운명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어떤 학교에 가는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담담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양환애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장애인 딸의 운명,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딸의 출생, 그리고 고통 딸이 태어난 지 3일만에 갑자기 땀범벅이 된 채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 증상이 보이자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문 뒤에 숨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차마 내게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빨갛게 부은 남편의 눈을 보며 분명 딸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내가 계속 추궁하자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의사 말로는 뇌출혈이 심해 나중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쓰게 될 거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귀를 의심했다. 작디작은 체구, 앳된 얼굴의 딸 아이를 보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문득 마을에 있는 바보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종일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생각났다. 딸이 자라 정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쓴다면 이 아이의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딸이 돌이 되던 때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기댈 곳을 마련해주시어 나는 전처럼 무기력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겨, 하나님의 주재로 딸을 인도해주시길 바랐다.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아이는 서서히 말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걸을 때 절뚝거리고 한쪽 팔은 쭉 펴지 못했지만, 의사가 말했던 상태보단 훨씬 좋았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육 강화, ‘먼저 나는 느린 새’ 딸이 4살이 되던 해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가 이상하게 걷는 걸 보곤 비웃으며 얘기했다. “쟨 왜 저렇게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녀?” 이웃의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웃이 간 후에도 그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데도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는데, 크면 더 많은 사람이 비웃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딸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노력으로 아이를 도와 느릴수록 먼저 날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배울 내용을 가르쳤다. 곧잘 배우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이 되고 수업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힘들어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45점도 잘 맞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아이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너무 잘 울어요. 배우려는 욕심은 있는데 배우는 속도도 늦고 빨리 잊어버려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걱정이 또 스멀스멀 떠올랐다. ‘딸 아이 지능이 원체 다른 아이보다 낮은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따라잡겠어?’ 그래서 난 그저 좋은 말로 “선생님이 좀 더 신경 써주세요. 소신껏 아이를 잘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혹독한 교육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아이에게 숙제하도록 했고 저녁 10시, 11시까지도 했다. 가끔 숙제를 마친 후 딸 아이가 못 풀었던 문제를 살짝 바꾸어 몇 번이고 풀어보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할 줄 알았던 딸도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배운 걸 금세 까먹는 딸아이를 보며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 맨날 뭐 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 해? 이렇게 쉬운 문제도 기억 못 하다니. 어이구. 너처럼 해서 언제 발전하겠어?” 딸은 잔뜩 겁먹은 채 가만히 서서 울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불쌍한 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렀다. 분명 다른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딸아이의 앞날을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딸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강압적으로 나가니 딸은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딸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울기만 했다. 밥을 딸아이 책상으로 가져다주어도 알아서 먹는 법이 없었다. 내가 먹으라고 해야만 겨우 깨작깨작 먹고는 다시 책상으로 갔다. 잠든 아이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자주 보였다. 마음이 아파 딸에게 내가 싫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딸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발전은 없고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눈물만 흘리게 된 건지. 나는 그저 딸아이를 잘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어쩌다 아이에게 고통만 안겨준 걸까? 고통 속에 문득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지식을 심어주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딸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발 저를 인도해주세요!” 말씀의 심판, 갓 깨어난 꿈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조금밖에 없는 네 육체의 ‘기능’으로 과연 네가 원래 동경하던 그런 인류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힘이 없으면서 오히려 자식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조종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주제넘는 짓이 아니겠느냐? 어찌 사람의 무지몽매함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능력이 크든 작든, 아이큐가 높든 낮든, 의지가 있든 없든, 운명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고,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이 평생 동안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지, 재부를 얼마큼 소유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의 부모나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이나 야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정하심에 달려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이 좋고 나쁘고는 창조주께서 정하시는 것이며 지식 수준이나 다른 재능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 등 사탄의 철학 속에 살며 내 힘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딸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놓으신 것은 몰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진실된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딸이 장애로 다른 사람에게 차별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내 힘으로 딸의 지식 수준을 높여주고, 다양한 기술을 익혀 부족함을 메꾸려고 하였고 함부로 딸의 운명과 앞날을 바꾸려고 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딸이 정상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요구하고, 때리고, 압박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부시켰고, 자주 화내기까지 했다. 결국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 아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말수가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게다가 나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이루 말할 수 없을 고통 속에 허덕였다. 오늘에서야 꿈에서 깨어나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사탄의 독소로 운명과 맞서며 딸과 자신에게 행복은커녕 고통만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는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이며 거짓말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딸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힘으로 운명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딸아이를 부양하는 책임을 다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이 한결 좋아졌고 전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그 후 나는 <인간 영혼의 엔지니어는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보고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인공인 엽 선생은 교사 평가에서 맨날 꼴찌였다. 하루는 주변 동료들이 학생들 점수와 진학률을 높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때리고, 억압하고, 압박하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걸 보게 되었다.그걸 본 엽 선생은 동료들에게 배운 그대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그러자 반 성적은 올랐지만,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 후 엽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고, 수업 내용에 많은 영감이 생겨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껴 놀랄 만큼 성적이 올랐고, 1등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그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딸을 대할 때도 엽 선생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딸이 더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화가 나면 불같이 혼냈다. 인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책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 딸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직시하여 내 뜻대로 딸에게 요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 공부 못하면 또 혼낼 거래요.” 순간 걱정이 또 올라왔다. 속으로 오늘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교 가서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문득 하나님이야말로 딸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며 딸이 할 수 있고 없고는 하나님에게 달렸지 내가 가르침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나는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며 내 마음을 다잡고 인내심을 갖고 딸의 숙제를 가르쳐 주었다. 딸이 못 하는 모습에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예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 12:31)라고 가르쳐 주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를 보니 딸에게 사랑이라고는 없었다. 사람다운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난 또 자책감이 들었다. 사랑으로 딸을 대하고 인내심을 갖고 딸을 가르치며 남들보다 부족한 딸을 헤아려줘야 함을 깨닫자 화가 누그러졌다. 나는 딸을 격려해주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이번에 35점을 받으면 다음에 40점만 받아도 발전한 거야.” 내가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딸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며 딸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딸이 우는 일도 없어졌다. 진리 실천, 뜻밖의 기쁨 그때부터 딸의 숙제를 봐줄 때면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점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본문을 외울 때면 딸이 본문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동작이나 시범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나오면 ‘개굴개굴’소리를 냈고, ‘엄마’가 나올 때면 나를 가리켰다. 그 후로 딸은 눈물이 적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뭐든 빨리 외웠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친 딸이 잔뜩 신나서 말했다. “엄마, 나 몇 점 받았게요?” 잔뜩 신난 딸아이를 보니 분명 시험을 잘 본 거라 생각해 60점이라고 말했다. 딸은 틀렸다고 했고 나는 70점이라고 했다. 딸은 또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0점부터 90점까지 하나씩 다 얘기했다. 딸은 “다 틀렸어요.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난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최근 들어 예전처럼 애써 딸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고 딸을 가르쳤더니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묘임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딸의 절뚝거림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팔은 아직 다 낫지 않았지만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다. 딸의 앞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학교 이전으로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가끔 방학 때 집에 오면 나는 딸의 숙제를 같이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엄마, 괜찮아요. 벌써 다 한 걸요”라고 말했다. 나날이 자라고,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기뻤다.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딸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 말씀의 실질적인 의미를 직접 느끼게 되었다. 과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주재를 잘 알지 못하고, 딸이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길 바라는 욕심에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라는 틀린 관점으로 딸을 가르쳤고, 그 결과 딸의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독선적이고 교만한 타락 성품으로 인해 딸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고통 속에 살았으며, 딸에게는 많은 상처를 줬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된 인생 관점을 내려놓고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니 모든 것이 즐겁고, 딸도 기묘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학업뿐 아니라 몸도 좋아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법을 알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곤경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자녀교육, 나의 욕심을 먼저 내려놓는다

어린 시절 집안이 궁핍했던 동신은 학비를 낼 돈조차 없어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신은 성인이 된 후, 시(市)의 방직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매일 바쁘고 고되게 일해도 한달에 겨우 32위엔밖에 받지 못해서, 근근히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빈털터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들만큼은 내 힘으로 꼭 대학에 입학시키고 말거야. 아들이 남들에게 출발선에서부터 뒤지게 할 수는 없어. 안 그러면 평생을 출세도 못 해보고, 찌질하게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동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건재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그러면서 생활이 점점 넉넉해졌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동신은 아들의 학습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에게 영어, 작문, 수학 올림피아드 등등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들의 숙제를 검사하며 재촉하였고,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그를 데리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동신은 아들을 사립학교에 입학시켰으며,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아들은 시험 때마다 늘 반에서 3등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동신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으며,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이보다 더 힘들다 하여도 역시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 우물쭈물거리며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사립학교에 다니기 싫어요. 중3 과정이 너무 타이트하고, 학교의 요구가 너무 엄격해서 못 견디겠어요. 나 일반 중학교로 전학가고 싶어요.” 동신은 매우 의아했습니다. “내가 매일 죽도록 힘들게 돈 버는 게, 다 네가 명문고에 가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나중에 네가 사회에서 발붙일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엄마가 평생 별 능력없이 살아서, 너를 엄마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건데, 넌 엄마의 이런 깊은 생각을 왜 몰라주는 거야?” 그녀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눌러 참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동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들을 한 대 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창문 쪽으로 다가 가더니, 만약 더 이상 자기에게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창 밖으로 뛰어내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동신은 분통이 터져 말했습니다. “내 모든 희망을 너에게 걸었는데, 네가 뛰어내려서 죽으면, 내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차라리 나도 같이 죽고 다 끝내자!” 그날 엄마와 아들 모두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동신은 아들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몇 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릴 것이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앞날에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간절히 애원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아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신은 아들과 타협하고 양보하여, 그를 일반 중학교로 전학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동신의 아들이 아침 수업시간에도 졸 뿐만 아니라 숙제 내 준 것도 해오지 않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동신은 마음이 다급해져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들은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까? 계속 이렇게 공부한다면 명문 고등학교에 어떻게 합격할 수 있겠어?’ 이런 저런 고심 끝에, 동신은 학비가 비싼 기숙사가 있는 사립학교에 아들을 강제로 전학시켜버렸습니다. 그러나 동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아들의 학급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은 동신에게, 저녁 자습시간에 출석 점검할 때 동신의 아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기숙식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몹시 당황했었었고, 결국 모든 수업 담당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교내와 교외까지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PC방에 있던 동신의 아들을 찾아냈으며, 그가 담을 넘어 도망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동신은 피가 치솟고 현기증이 나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고생한 것은 다 아들이 앞으로 잘 되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들은 왜 계속 말을 안 듣고, 그녀를 절망하게 하는지, 동신은 자신의 운명이 왜 이렇게 고달플까라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동신의 어머니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하나님 말씀 책 한권을 주면서 꼭 이 책을 잘 읽어보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정하심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어머니의 교통을 들은 동신은, 원래 한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직업을 갖게 되며, 그 사람의 운명이 어떠할지, 하나님이 오래전에 이미 정해놓으셨기에, 사람이 제 아무리 몸부림치고 노력하여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동신은 자신의 출신이 안 좋아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자신이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늘 원망하였기에, 운명에 맞서 싸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전가하였습니다. 동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들을 강요하여 각종 학원에 보냈고, 아들로 하여금 학업 스트레스가 큰 나머지 세상을 비관하고 혐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러한 일념만으로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동신의 이러한 방법은 아들의 마음에 이미 크나 큰 상처를 남겼고, 심지어 아들이 죽으려고까지 하였으며, 그들 모자관계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동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운명에 맞서려고 하였고, 아들에게 이미 심각한 상처를 주었으며, 자신도 여러 해 동안 날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운명과 맞서서도 안되고,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자신의 희망대로 아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자신만의 흥미와 취미가 있고, 마땅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하며, 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을 되돌려주고, 그가 배우고 생활하는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던 해, 시험 점수를 352점밖에 받지 못한 아들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이번에 시험을 망쳤어요. 엄마 체면을 못 세워줘서 미안해요. 엄마가 친척을 찾아가서 연줄도 대보고, 교장 선생님에게 잘 좀 말씀드리고 로비도 좀 해서, 명문고에 뒷문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만약 명문고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게요.” 아들의 말을 듣고 동신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비록 아들의 장래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만약 아들이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그의 장래 직업과 앞길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에, 다시 한번 힘껏 아들을 도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신이 처음 아들에게 가졌던 희망도 이루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동신은 또다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몰라, 그녀는 곧바로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생각과 뜻을 살펴주시옵소서. 아들의 학교 진학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아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하오니,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동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동신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수천 년 동안 타락된 현재의 사람들은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살며, “모든 것이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이러한 말들이 이미 수많은 사람들 마음속의 명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공부를 통해 운명을 바꾸려고 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탄에 유혹당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며, 너무 큰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고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서, 결국은 철저하게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잡아먹히게 될 수 밖에 없어.’ 동신은 자신이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아들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아들이 이로 인해 이미 트라우마가 생겼고, 아들은 시험을 망치기만 하면 꾸중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신은 자기가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훈계하고 독촉한 것은 다 그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했던 사랑의 표현이라고 줄곧 생각했었습니다. 동신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란 말입니까? 이것은 분명 아들을 철저하게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는 짓이었습니다. 동신은 다시는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신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학교 들어가는 문제는 순리에 맡기자. 어떤 학교에 합격하든 거기엔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네가 어떤 학교를 다니든 다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운명으로 정해주신 거야. 예전에 내가 그렇게 너에게 요구했었던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아. 내가 너에게 공부를 강요했던 건 다 나의 체면과 명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네 생각은 전혀 고려해주지 못했어. 내가 정말 사탄의 철학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이성적이지 못했어.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너에게 요구하지 않을게.” 아들은 엄마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미소 속에서 아들의 홀가분해진 마음과 자유, 그리고 오랜만의 즐거움을 보았습니다. 개학 때, 동신은 아들이 일반학교에 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 후 동신은 다시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그를 돕고 인도하였습니다. 아들은 날이 갈수록 동신과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모자간의 관계도 날이 갈수록 가까워져서 허심탄회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아들은 한 민영회사에 채용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시종일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루는 동신이 뜻밖에 아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엄마, 내가 예전에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엄마가 어떤 심정일지도 신경쓰지 못했어요, 지금 어른이 되고 보니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무엇인지 많이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 이제는 더 이상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문자 메시지를 본 동신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이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예전에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아들을 교육할 때는, 서로간의 벽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동신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 사탄 철학의 실질을 꿰뚫어 보고, 자신이 변화되기 원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목격하고, 모자간의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오랜만에 집안에 기쁨의 웃음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지금 이렇게 철이 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이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고, 다시는 그런 그릇된 주장과 잘못된 논리에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은, 완전히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에게 임하여, 우리 모자가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충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아들의 웃음을 돌려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날, 류화(劉華)는 학교로부터 학부모회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학교 측은 2학년 학생과 학부모 전체가 면학반 개방 프로그램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학교 행사장은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측 대표는 강단에 올라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면학반 학생들의 우수한 수능 결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면학반’은 중학교 2학년 학생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학교 입시를 면제해 주는 특별 우수반을 뜻합니다. 면학반에는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교사를 배정하고, 학생들에게는 무료 숙식이라는 특별 대우를 제공합니다. 면학반에 합격한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을 2~3개월 안에 모두 끝내야 할 만큼 공부의 강도도 셌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숙제를 마무리하는 걸 보면 면학반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에 힘쓰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집에 돌아오면 류화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학반 학생들은 다 ‘악바리’에다 ‘잠도 안 자는 무적인간’인가 봐요. 교실 등이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니까요.”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류화는 놀람을 금치 못했고, 아이들의 몸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유년시절의 활기를 잃어 갔고, 모두 애늙은이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자녀를 면학반에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간간이 울려 퍼지는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를 따라 류화는 회상에 잠겼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영특함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류화는 ‘어리석은 새가 먼저 숲으로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들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아들에게 학습 계획표를 짜주고 단원별, 주별, 월별로 시험지를 풀게 했으며, 복습 교재도 많이 사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아들이 숙제를 마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연습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들의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우개로 다 지워 버린 후 다시 쓰게 했습니다. 답이 틀렸을 때는 그 벌로 틀린 문제를 여러 번 베껴 쓰게 했습니다. 아들은 매번 원망스러운 눈으로 류화를 쳐다봤지만 류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주말도 없었고 TV도 볼 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끝없는 숙제와 문제들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할 때면 류화는 아들을 달랬습니다. “이 시험지만 다 풀면 놀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하지만 시험지를 다 푼 후에는 다른 시험지를 풀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더는 류화의 말을 믿지 않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난 거짓말쟁이 엄마가 미워!” 류화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어려서 철이 없고 커서 성공하면 자신의 노력을 이해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류화의 ‘도움’으로 아들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류화에게 있어 아들의 100점짜리 시험지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습니다. 학부모회를 갈 때면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고 더욱 뿌듯해했으며,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자신과는 관계가 점점 멀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매일 방과 후 집에 오면 어두운 표정뿐이었습니다. 류화가 다가가면 아들은 몸을 움츠려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문제를 풀게 할 때는 눈을 치켜뜨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멀어진 류화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고통에서 헤매었고, 과연 누가 자신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류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과 미약함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지식을 미끼로 삼는다. 잘 듣거라.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미끼일 뿐이다. 사람에게 ‘공부를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라며 지식을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게 한 다음, 그 지식으로 과학의 대문을 열게 한다. 바로 네가 배운 지식이 많으면 아는 것이 더욱 많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것이다. 사탄은 또 사람에게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원대한 꿈(원문: 理想)을 품게 하여 ‘포부’가 있고 ‘꿈’이 있게 한다. 사람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적지 않게 주입시켜 사람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것이 옳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이런 길을 가게 되었고, 부지중에 자신의 ‘꿈’과 ‘포부’에 끌려 앞으로 나아간다. …사실상,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에서 떠나지 못한다. 이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에게 가서 이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대학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살길을 찾아야 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출세시키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공부에 엄격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아들은 숨을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은 조금씩 반항심이 생겼고 결국 모자 관계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그제야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의 소용돌이에 빠져 아들을 이익의 희생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아들을 대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니 류화의 마음은 자괴감과 자책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류화는 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들의 삶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여유 시간에는 밖에 나가 놀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는 공부 스트레스가 줄었고 느긋한 여유도 생겼습니다. 더는 울면서 화난 얼굴로 류화에게 불만을 토하지도 않았습니다.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매일 즐거워했고, 귀엽고 작은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생겼습니다. 주말이 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 낭송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듣고 영화와 MV도 보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젖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사랑의 돌봄 속에서 자유롭고 기쁘게 자랐습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류화는 오랜만에 이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후 모범생들의 경쟁 속에서 아들의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매달 월말고사 후에 열리는 학부모회에서 류화는 더 이상 뿌듯해하며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들에 대한 선생님의 충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번 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다른 학부모들의 눈빛이 류화에게 화살같이 쏟아졌습니다. 류화는 마치 이들의 눈빛에 온몸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조금씩 학부모회가 싫어졌습니다. 류화는 언젠가 아들의 성적이 다시 좋아지기를 무척 바랐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랑스러워하며 선생님의 칭찬과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회가 끝난 후 류화는 아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말에는 숙제를 마친 뒤 아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해도 허락해 주지 않고 문제집을 펼친 후 문제를 풀어야 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방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알고 심란해졌습니다. 이 같은 심란함 속에서 류화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익에 얽매이지 않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 말씀을 찾아 펼쳤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대함에 있어 그들이 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학문을 더 닦고 학위를 취득하고 학력을 갖게 한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자녀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은 다 하찮고 독서만이 고상하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사회에서는 경쟁도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학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후에 생존해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이다. 즉, 네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력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후의 직업과 전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일생 동안 이것에 의지해 살려고 잘 계획해 놓고,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큰일로 여긴다.』 류화는 자신이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상에 깊이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커서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공부만이 살 길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매일 열심히 배우자’ 등과 같은 사상을 아들에게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밝고 찬란해야 할 유년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강한 자책감을 느끼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탄의 독소는 이미 류화의 목숨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운명을 제어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의 성공만 바랐습니다. 또한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깊은 해를 받아 항상 아들이 뛰어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조금도 돌보지 않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결국 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류화는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런 정형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전의 생존 방식에서 떠나고, 이전의 인생 목표에서 떠나며, 자신의 이전 생존 방식, 이전의 인생관, 이전의 추구와 소망과 꿈에 대해 총결하고 해부한 다음 다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보면서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등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에게 정확한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으로 더욱더 진리를 깨달으면서 살고 인성 있게, 사람 모양이 있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이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류화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들의 성공, 직업, 인생은 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주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만 편안하게 미래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의 진정한 미래인데, 류화는 아들에게 억지로 이익의 길을 추구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건 아들을 불구덩이로 떠미는 것과 같았습니다. 반평생 이익만을 좇았지만 영혼의 평안함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과 아들에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더는 공부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아들의 운명이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맞은 안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착실히 믿고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기를 바랐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운명을 따르기만 바랐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과 함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미 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찬란한 미소가 아들의 얼굴에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삶도 유난히 아름답게 바뀌었고, 류화에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게 되자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번 학기에 아드님의 성적이 크게 올랐습니다. 볼수록 너무 기특하네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류화는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와 찬미를 올렸습니다. 학부모회에 참석한 부모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류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이에 면학반 개방일 프로그램은 어느덧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의 안내에 따라 학부모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학생들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면학반 학생들은 낭독 공연을 펼쳤고, 무대 아래에서 학부모들은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류화는 마음이 살짝 쓰라렸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비참해 보였습니다. 또한 자신과 아들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묘한 방법

어렵게 얻은 아들, 그만큼 큰 기대 여자가 10개월간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수차례 유산을 하였고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이를 낳지 말고 입양을 하라 권고하셨지만 저는 위험하더라도 입양보다는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임신을 시도했습니다. 2000년 5월, 저는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용혈 수치가 위험 수준이라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매일 링거를 맞고 30~40분가량 고압산소를 흡입하였으며 한약도 먹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했던 우리 부부는 치료비 때문에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른 임산부는 이것저것 많이 먹을 수 있었어도 저는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산일이 되었습니다. 민감 체질인 데다 마취까지 잘 안 되어 통증을 참아가며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를 검사한 후 모두 정상이라고 하시자 저는 그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저와 남편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고 병 치료를 위해 빚을 졌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부족함을 느낄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려 애썼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아이는 어느새 유치원생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여워서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제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아들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고, 아이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서 아들을 인재로 키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들의 나쁜 버릇, 타들어 가는 부모 마음 하지만 아이에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갖고 오는 버릇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자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아들 가방에 장난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장난감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잘못 넣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기에 저는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가져와서는 안 되니 다음 날 장난감을 얼른 갖다 놓으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아이의 가방에서 또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에게 물으니 아들은 바로 “선생님께서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들의 가방에 산사 열매 젤리가 가득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젤리를 어디서 어디서 났니?”하고 엄하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선생님이 잘했다고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상으로 젤리 몇 개를 줄 수는 있어도 어떻게 한 봉투를 주시겠습니까? 점심시간 전에 젤리를 먹기도 하고 가끔 젤리가 많이 남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많이 줄 리는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되돌아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오후에 제 아들에게 상으로 젤리를 많이 주셨어요?” 선생님은 제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아니요, 안 그래도 남은 젤리가 다 어디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저는 다른 선생님이 가져가신 줄 알았는데, 얘가 가져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혼 좀 내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과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저는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제가 몇 번이나 아들이 가져온 물건에 대해 물었을 때 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며댄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5살 된 아이가 거짓말을 배우다니, 게다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가 완전히 믿도록 속이다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요! 저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아들의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아들의 뺨은 금방 빨갛게 부어올랐고,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던 아들은 놀라서 선생님 뒤로 숨었습니다. 선생님이 말려서야 저는 손을 멈추었고, 핸드백을 집어 들고는 돌아서 나왔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저녁에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엄마도 널 때리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다 널 위해 그런 거야.”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는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면 가장 먼저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아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이가 한 번 맞았기 때문에 다시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이번에는 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아들에 대한 잔소리와 감시를 줄였고, 더는 가방을 뒤지지 않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나쁜 버릇이 재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의 책가방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의 책과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이 책과 노트가 다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매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가 깜빡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챙겨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학교에 와달라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아들이 또 다시 친구의 물건을 훔쳤고, 이 사실을 친구가 선생님께 일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선생님 앞에서 아들을 크게 꾸짖었고 또 저에게 “어머니도 선생님이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죠?”라며 힐책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더욱 화가 났고 또 아들이 착실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못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선생님 앞에서 아이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시는 친구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후로 아들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애 아빠의 돈을 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하루하루 커갔고 아무리 노력해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버릇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는 죽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니? 내가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마음도 아프지 않겠지. 그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그만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들이 아직 어리잖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만약 내가 이대로 죽어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하면, 아들이 커서 범죄자의 길을 가지 않을까? 그러면 아들의 인생은 망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을 때리고 혼내도 효과가 없기에 저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받게 되는 처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이웃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가 체포된 사건도 말해주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어떤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아들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오래지 않아 다시 도둑질하곤 했습니다. 저는 낙담했고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가슴 졸이게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기묘한 방법, 아들의 변화 2008년 5월,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 『인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그런 세상은 어둡고 소망이 없으며 공허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중에 인류의 문명은 갈수록 사람의 소원대로 되지 못하였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오히려 죽은 사람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과거 아주 문명화했던 나라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원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설사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모두 온갖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가 우리 안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에 의지할 뿐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면 내면은 공허한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제 상황에 비추어 보니, 저는 줄곧 저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려 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때리거나 혼내는 방법으로 교육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들이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의지하다 보니 어떤 일도 성사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들을 참으로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이끌어 인생의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면 아들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들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받들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들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겠다고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신발 박스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들의 신발 박스 안에 2만원 가량되는 돈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아들이 다시 돈을 훔치기 시작한 걸까? 가족의 돈을 훔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친 것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저는 늘 아들을 때렸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포용력도 없고 참을성도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으니 저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돌아오자 “아들, 오늘 엄마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2만원을 주웠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바로 해명을 했습니다. “그거 건드리지 마세요. 저희 반 친구 XX 거예요.” 저는 다시 “친구 돈이 어떻게 우리 집 신발 박스에 있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 아빠가 생일이라고 5만원을 주셨는데 친구가 그 돈을 다 못 써서 잃어버릴까 봐 저에게 대신 보관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났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지 화를 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안 돼. 내가 먼저 변해야 해.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걸 거야.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 그러면 나도 아들처럼 거짓말하는 게 돼버리는데?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아들을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는 내 방식으로 가르치려 하면 안 돼. 내가 먼저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이에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널 믿어. 그럼 엄마 아빠랑 함께 그 친구 집에 가서 물어봐도 되겠니?” 그러자 아들은 저와 남편을 근처 새 건물로 데려가 어떤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그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저희에게 “친구가 집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는 아들에게 “아들아, 엄마 아빠가 하나님을 믿는 걸 알지? 하나님은 타락된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어. 너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엄마 아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거야. 네가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아빠는 너를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예전에 너를 때린 건 엄마 아빠가 잘못 한거야. 하나님은 너를 때리는 걸 원치 않으시니 엄마 아빠도 변해야 하는 거야. 너도 하나님께 얘기 드릴 수 있어. 진솔한 사람이 되고 엄마 아빠를 속이지 않길 원하면 하나님도 널 용서하실 거야. 하나님은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셔. 우리가 말한거나 행한 것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 하나님도 사람도 속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비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때로는 과장하거나 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해 주셔. 아들과 엄마 둘 다 진솔한 사람이 되어 너도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엄마도 하나님을 속이지 말자구나. 네가 엄마에게 직접 말하기 부끄러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너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렴. 고치기만 하면 착한 아이인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제가 훔친 거예요. 아빠 몰래 5만원을 훔쳤어요. XX가 사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안 사주실까 봐 훔쳤어요. 엄마한테 맞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게요. 정말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져온 변화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를 믿어. 엄마도 네가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어.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거고, 넌 꼭 고칠 수 있을 거야. 너도 보았겠지만 엄마가 널 때리지 않겠다 말하고 그 말을 지켰잖니? 너도 힘내서 해내야 해.”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감격해서 눈이 빨개진 채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어주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들은 더는 돈을 훔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7~8년동안 아들은 단 한 푼도 훔친 적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그런 버릇을 가진 같은 반 친구에게 반감과 혐오를 느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말씀이 가져온 결과로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아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 돈을 더 가져가라고 해도 아들은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완전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제 아들을 변화시켜 주셨고, 아들을 교육하는 저의 방식도 바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아들을 돕고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돌봐주고 계셔서 우리 일가족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서로 도우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우리 가족의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니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저는 변화했고 아이는 철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아이를 돌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매일 아이를 먹이고 대소변을 처리하며 아이의 응석과 말썽, 나쁜 행동들을 대했습니다.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던 저에게 이 모든 것은 골칫덩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말을 잘 듣고 철이 들게 할지 몰랐습니다. 제 딸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저는 딸과 함께 지냈고, 응석받이로 자란 딸에게 나쁜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편식하고,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면서 무슨 일이든 늑장을 부렸습니다. 딸의 그런 보습을 보고 저는 마음이 속이 탔습니다. ‘이래서 앞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내가 돌보게 됐으니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딸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딸아, 그렇게 멋대로 굴면 안 되지.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니. 지금은 집에서는 식구들이 다 네게 양보해 주지만 학교에서는 아무도 양보를 안 해 준단다. 그러면 너만 너만 손해라고!” 제가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딸은 나쁜 버릇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제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말대꾸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딸과 저녁에 공원 산책하러 나갔다가 유치원 친구를 마주쳤고, 딸 아이는 친구와 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밤 9시가 넘었고, 날씨도 쌀쌀해 저는 “오늘은 너무 늦었어. 친구랑 약속했으니까 다음에 놀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친구와 놀려고 했습니다. 저는 ‘멋대로 굴게 둬서는 안 되겠어. 맘대로 하는 나쁜 습관을 반드시 고쳐놓고 말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기 오토바이에 딸을 억지로 태워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딸은 저를 원망하며 화를 냈습니다. 집 앞에 도착해서도 딸은 여전히 저를 원망했고, 저는 딸의 두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친구랑 못 놀게 하는 게 아니잖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나중에 일찍 만나서 놀자.” 아이는 제 말을 듣고는 갑자기 “으앙” 하며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놀고 싶단 말이에요. 싫어요… 엄마 미워!” 아이는 집을 올라가면서도-층계를 오르면서 울음을 그치지 않고 제가 밉다고 소리쳤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울자 제 마음도 무척이나 심란했습니다. ‘도저히 말도 안 통하고 너무 제멋대로야.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어른 말은 듣지도 않네.’ 집에 들어선 딸은 아빠를 보자 더 세게 울며 아빠에게 “친구랑 놀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 놀게 했어요.”라고 일러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애가 왜 이렇게 제멋대로지? 좋게 말해도 안 듣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울고 있는 딸을 보니 저는 마음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저는 딸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 혼내고 벌을 주는 교육 방식을 택했습니다. ‘옥도 다듬어야 그릇이 되고, 아이도 맞아야 철이 든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저는 딸을 끌어당겨 두 다리를 때렸습니다-발로 걷어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훌쩍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나 때려서 너무 아파요…” 저한테 맞아서 아프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은 쥐어뜯긴 듯 아팠습니다. 아이를 껴안고 다치진 않았는지 살펴보고 울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안 돼. 안아주지도 달래주지도 말자. 안 그러면 더욱 버릇이 없어져서 나중에는 어떻게든 제멋대로 굴려고 할 거야.’ 남편은 아이를 안고 달래며 제게 화를 냈습니다. “얼마나 세게 찼길래 애가 이렇게 아프다는 거야?” 시어머니도 곁에서 말했습니다. “애가 말을 안 들으면 잘 달래야지. 그렇게 애를 때리면 어떡하니?” 남편과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제가 때리고 싶어서 때린 줄 아세요? 오는 내내 계속 달랬다고요. 애가 말을 듣는 줄 아세요? 너무 제멋대로예요. 지금 안 고치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거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조급해졌습니다. 딸이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자 저는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애한테 나쁜 버릇이 너무 많아요. 온통 제멋대로라고요.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요? 때리지도 혼내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애를 가르치라는 거예요.” 시어머니와 남편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숙제를 시켰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반나절이 지나도 한 문제도 풀지 않자 저는 속이 상해 딸에게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갑자기 ‘얌전’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딸이 아주 ‘말을 잘 듣고 철이 든 듯이’ 숙제도 잘 마치자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통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버릇을 고칠 수 있겠어.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화를 낼 때는 내야겠어. 애를 좀 겁주면 나쁜 습관도 조금씩 고칠 수 있을 거야…’ 그날 이후로 저는 딸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화를 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몇 번 화를 내보니 이 방법이 꽤 효과가 있었고, 아이는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자주 화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참지 못하고 제게 말했습니다. “애한테 항상 화를 내면 어떡해. 그럼 애한테 안 좋다고.” 하지만 저는 남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화를 안 내면 나쁜 습관들을 어떻게 고쳐? 나한테 화 못 내게 할 거면 당신이 돌봐! 난 신경 안 쓸 테니까.” 매번 이렇게 말하니 남편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이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머뭇댔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동생이 자주 쓰던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숫자를 거꾸로 세는 것이었습니다. 딸에게 무언가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숫자를 거꾸로 셌습니다. “5, 4, 3, 2, 1…” 딸 아이는 항상 제가 “1”을 말하기 전에 제 말대로 행동했습니다. 이 다섯 숫자가 끝날 때까지 제 말대로 하지 않으면 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의 “포악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다섯 개 수를 세는 순간이 오면 딸은 곧바로 제 말대로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매일 ‘말도 잘 듣고’ 나쁜 버릇도 ‘고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던 옛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이 방식이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는 집에서 수없이 “5, 4, 3, 2, 1…”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어느 날 딸의 성격이 사납게 변해 버렸습니다.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잘못 쓴 글자를 제가 지우자 아이는 갑자기 불같이 큰 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반밖에 안 틀렸는데 그걸 왜 다 지워요?” 제가 말했습니다. “다 안 지우면 어떻게 쓰려고?” “반만 지워도 되잖아요.” 짜증을 내는 아이의 말을 듣자 저도 화가 나 지우개를 던지며 말했습니다. “네가 직접 지우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렇게 말한 뒤 저는 소파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파에 채 앉기도 전에 아이는 저는 때리며 말했습니다. “나쁜 엄마, 나쁜 엄마. 맨날 나한테 화만 내. 저한테 말 좀 잘해 주면 안 돼요?” 저는 화가 났습니다. “내가 잘 얘기하면 네가 듣니?” 이때부터 아이의 성격은 무척 사나워졌습니다. 항상 사소한 일로 제게 짜증을 내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점점 저와 어울리기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항상 할머니 댁에 갔고, 집에 있을 때도 아빠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저는 너무 속상했습니다. ‘내가 이러는 건 다 딸을 위한 건데 어째서 나랑 잘 지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나쁜 버릇을 고쳐 주려고 했을 뿐인데 버릇을 고치긴커녕 성격만 더 나빠지고 있어.’ 할 수 없이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치고 철을 들게 하려고 좋은 말도 해보고 화도 내보았습니다. 하지만 버릇을 고치지도 못하고 갈수록 성격만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제가 틀렸단 말입니까? 이렇게 아이를 대하는 게 잘못됐을까요?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지 뒤에서 내든지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패괴 성정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실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의 화를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행동하는 출발점은 패괴를 수호하지 않기 위한 것이 하나도 없고, 패괴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를 발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제지당하고 사악한 것은 훼멸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지속된다.』 저는 드디어 아이가 사납게 변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시는 화만이 정의로우며, 긍정적인 것을 지키고 이어나갈 수 있으며, 부정적인 것을 막고 없앨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는 화는 겉으로 아무리 많은 이유가 있더라도 모두 불순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육체와 본성에 속하고 타락한 성품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제가 택했던 거친 교육 방식은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를 주고 사나운 성격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방식대로만 아이를 가르치고 버릇을 고치려고 했는데, 아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의 나쁜 버릇은 어떻게 고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滋養)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고 나서야 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 역시 하나님께서 장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 앞에 인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아이에게 어떤 나쁜 버릇이 있든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걸 이루고 바꿀 수 있는데, 제 방식대로 아이를 가르치고 나쁜 버릇을 고치려 들었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혼내고 화를 내며 아이를 가르쳤던 방식을 생각해 보니 모두 가장의 입장에서 강제로 아이를 가르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을 듣게 만들기 위해 저는 지금껏 아이와 좋게 대화하거나 아이의 속마음을 이해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제 방식을 따르기만을 바랐고, 아직 어리고 철이 없으니 제 말을 들어야만 바뀌고 좋은 습관을 갖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파괴된 인류의 한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했고, 진리에 맞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잘못했고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제 방법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하나님께 아이를 전해 맡기겠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딸을 인도하겠습니다. 그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것들을 깨닫자 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제멋대로 굴고 말을 듣지 않아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이에게 마음을 터놓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며 저도 모르게 “5, 4, 3…” 하고 숫자를 세게 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도중에 멈추었습니다… 한 번은 밥을 먹으려고 딸을 불렀는데 딸이 가지볶음을 보고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가지인 거 몰라요? 안 먹을래요.” 이렇게 말하고 가버리는 딸을 보니 저도 화가 났습니다. ‘편식하는 습관은 왜 아직도 여전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자 딸에게 신경질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자 화가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내 딸, 왜 가지를 먹기 싫어하지?” 딸이 말했습니다. “그냥 싫어요. 가지는 맛이 없어요!”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편식하면 안 되는 거야. 맛없다고 안 먹으면 안 되지. 모든 음식은 건강에 좋은 거란다. 맛없다고 안 먹어 버리면 나중에 몸에 영양이 부족해진단다.” 딸은 작은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진짜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딸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먹을래요. 먹고 튼튼해져야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했더니 아이는 점점 철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제게 말대꾸를 하지 않았고 더는 꾸물대지도 않았습니다. 학교에 갈 때는 오히려 빨리 가자고 저를 재촉했고, 집에서는 조금씩 웃음소리가 퍼졌습니다. 한 번은 딸이 앳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가족이 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너무 좋아요. 엄마도 화를 안 내잖아요. 우리는 진짜 사랑하는 가족인 것 같아요!” 딸의 이 말을 들으니 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딸에게 말했습니다. “맞아. 앞으로 우리 집은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자꾸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타락한 아이를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제 아이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은 아이의 행복을 앗아갔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게임으로 대신하고 싶어지면서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이 사악한 세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세계와 이 인류의 사악한 풍조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전적으로 끌어들이고 유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아주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사탄은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죄악의 소용돌이로 내몰고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은 빛을 볼 수 없고 자유와 행복을 잃어 어둠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아이들은 인터넷 게임에 푹 빠져서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잃었고, 향상하려는 의지도 사라졌습니다…예전에 저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있어 이웃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아왔고, 저의 마음도 너무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이라는 사악한 바람이 불어닥쳐 제 아들을 ‘앗아갔고’, 저의 행복했던 가정도 깨져버렸습니다. 1997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아들이 갓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 당시 사회에서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특기를 연마해야 한다는 사악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다방면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21세기에 운전과 컴퓨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멍청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추세에 휩쓸렸고 아들을 ‘멍청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컴퓨터 학원에 등록시켰습니다. 재난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컴퓨터를 배우고 나서부터 아들은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제 아들이 벌써 5일째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함께 실종된 아이가 3명 더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먼 길을 떠난 적도 없는 4명의 13살 아이들이 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5일이 지나도 아이들을 찾을 수 없자 부모들은 조급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PC방에서 5일이나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PC방 사장은 돈이 없는 아이들을 외상으로 계속 놀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아들은 귀신에게 홀린 듯이 수업을 자주 빼먹고 PC방에 갔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들을 사립학교로 보냈습니다. 그곳은 폐쇄형 교육이라 아들이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정문이 닫혀 있자 아들이 담을 넘어 밖으로 나와 인터넷 게임을 하고 학교에 돌아가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저는 아들을 무술 학교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인터넷 게임과 군것질을 하면서 한 달 생활비를 1주일 만에 다 써버렸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또다시 학교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게임을 하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15살의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자퇴를 하고 집에서 지냈습니다. 2000년, 저는 일 때문에 가게 안에 컴퓨터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매일같이 인터넷 게임을 하며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정상적인 생활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정신이 흐리멍덩해졌고, 활발하고 귀엽던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람도 귀신도 아닌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온종일 목각인형처럼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희를 낯선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아이를 절제시키기 위해 저희 부부는 밤에도 아들과 함께 잤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저희가 깊이 잠들면 몰래 문을 열고 가게로 가 밤새 게임을 했습니다. 컴퓨터를 비밀번호로 잠가 놓자 아들은 PC방으로 가 게임을 하면서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아들 때문에 온종일 맘고생을 하며 계속 살아갈 희망을 잃었습니다. 아들을 찾기 위해 저는 온 동네의 크고 작은 PC방을 수없이 들락날락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때는 2003년이었습니다. 아들은 늘 PC방에서 보름이나 20일 보내면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저희는 속상해서 머리가 허옇게 셀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간혹 아들이 크면 자제력이 생길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크면 클수록 상황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26살이 되어서도 아들은 여전히 매일 엎드려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채팅을 했습니다. 다리를 컴퓨터 책상에 올려 놓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머리를 한쪽으로 비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양아치가 따로 없었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아들을 꾸짖자 아들이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눈을 흘기며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 PC방에서 며칠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낮에 실컷 놀고 나서야 잠을 잤고 밤에 일어나 계속 새벽 1~2시까지 게임을 했습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며 누가 무언가를 시키면 화를 냈습니다. 게임을 하느라 밥 먹을 겨를이 없고, 심지어 밥을 컴퓨터 옆에 두고, 한쪽으로 먹으면서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게임 중독 때문에 저는 온종일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었습니다.‘어휴, 나이는 계속 먹고 있는데, 게임 중독은 언제쯤 끝이 날까?’ 아들로 인해 저희 부부의 싸움은 잦아졌고 무너진 가정을 보고 있자니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이제 컸으니 취직해서 돈도 벌어야지.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된다. 하지만 너 자신의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겠니? 우리가 평생 널 먹여 살릴 수도 없잖니.” 일하라는 말을 들은 아들은 인상을 팍 쓰더니 “일 안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아무리 권해 줘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들 머릿속에는 인터넷 게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터넷 게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제가 완전한 상실감에 빠졌을 때, 한 자매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신 창조주이시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의 생존 규율과 생존 법칙을 주재하시고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고 하면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滋養)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사람과 만물의 운명 역시 하나님이 배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사람은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제 아들의 어머니였지만 아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아들의 일로 상처받고 힘들어도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후로 저는 기도할 때마다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간혹 아들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고, 인터넷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은 옆에서 진지하게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계속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십몇 년간 인터넷에 빠진 아들 때문에 생겼던 걱정과 고통, 괴로움이 조금씩 사라졌고, 마음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제가 본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자리 채용 광고지를 가져왔습니다. 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있는지 한번 보라고 하자, 아들은 “이따가 전화해서 물어볼게요”라고 했습니다. 조금 지나자 아들은 한 상점에서 배송 기사를 구하고 있다며 사장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장은 아들을 마음에 들어했고 다음날 바로 출근을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13살부터 26살까지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허송세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들은 출근할 뿐만 아니라 부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배송 기사로 일하고, 밤에는 택시 운전을 합니다. 이미 5년을 그렇게 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며 하나님이 참으로 전능하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은 홀가분해졌고, 더 이상 아들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진정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한 아들을 보고 저는 자신이 하나님의 지극하신 구원을 받았음을 느꼈고 밝은 인생 길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립니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전망이 있겠느냐?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느냐? …이방인들에게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아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를 돌이켜보면서 저는 인터넷 게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사탄의 수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행복한 가정의 연약한 청소년들이 사탄의 괴롭힘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수단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인터넷 게임에 빠지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정상적인 인성 및 양심과 이성을 잃게 됩니다. 타락에 빠지고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활기가 넘치던 아이들은 인터넷 게임의 괴롭힘으로 인해 ‘병든 청소년’이 되고 의욕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의지도 없고 끈기와 이상도 없습니다. 마귀와 사탄은 인터넷을 이용해 아이들을 미혹하고 심령에 해를 끼칩니다. 공부와 일마저 하기 싫게 만들고 온종일 인터넷 게임, 채팅, 드라마에 빠져 방향을 잃게 만듭니다. 인성을 잃은 아이들은 갈수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게으르고 교활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국가의 교육 기관과 유명인, 사회 세력도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풍조를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하나님의 지혜는 사탄의 궤계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것인지 구분할 줄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전능과 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해치는 사탄과 마귀의 수단이 얼마나 음험하고 악독한지 알았습니다. 인터넷 게임은 바로 사람을 죽이는 피 없는 칼과 같았고 사람을 통제하고 삼키는 사탄의 저주와도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은 단지 외적인 것이고, 그것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그 수단이야말로 가장 음험한 것이다. 사탄은 그 수단으로 그것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사탄은 사람의 심령을 짓밟아 반항할 힘이 없게 한다. 즉, 너의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사탄에게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매일 너에게 이런 것들을 주입시키고, 이런 사상과 문화로 너에게 영향을 주고 너를 물들게 한다. 그것으로 너의 의지를 조금씩 무너뜨리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자신의 소위 말하는 정의를 견지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부지중에 너는 흐름에 역류하려는 의지력이 없어지고 오히려 그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게 된다.‘짓밟는다’는 것은 바로 사람을 괴롭혀 인간도 귀신도 아닌 꼴로 만든 다음 기회를 타서 삼킨다는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그 어떤 수단도 다 사람에게 반항할 힘이 없게 한다. 그 어떤 수단이든 다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데, 사람 역시 반항할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저지른 어떤 일이나 어떤 수단이든, 모두 너를 타락하게 하고 사탄에게 통제당하게 하며,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인데, 극히 잔인하고 악독하며 음험하고 비열하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람을 타락시키는 사탄의 수단은 가장 음험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의 음험한 속셈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와 관념에 어울리는 말들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자신의 욕망만 채우게 만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만듭니다. 사탄이 일으킨 사회 풍조는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망쳤습니다. 또한 사탄의 모든 계략은 사람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으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됩니다. 제가 사회 풍조에 따라 아들에게 컴퓨터를 배우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들도 인터넷 게임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터넷 게임의 유혹이 없었더라면 아들도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탄의 음험한 속셈은 바로 각종 방식을 이용해 사람에게 노는 데 정신이 팔리게 하고 사악함을 숭배하고 스스로 타락하게 만들어 결국 사탄에게 잡아 먹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사탄은 바로 모든 죄악의 근원이자 최고의 죄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이 일으킨 모든 풍조는 겉보기에는 아무리 번지르르한 것 같아도, 그것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함정이며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분별하고 사탄의 간계를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사탄이 온갖 수단을 다 쓰고 사악함이 극에 달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전능자의 눈은 매우 깊이 해를 입은 인류를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데, 들리는 것은 고통받는 사람의 애곡 소리이고, 보이는 것은 해를 입은 사람의 염치없는 모습이며, 느껴지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잃은 인류의 무기력함과 두려움이다. 인류는 그 원수와 함께 그 심해(深海)의 괴로움을 다 맛볼지언정 그의 보살핌을 거절하고 제 갈 길을 가며, 그의 눈의 감찰을 피하고 있다. …인류는 전능자의 생명 공급을 떠나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또 죽음을 두려워하며, 의지할 데 없고 도움받을 데도 없지만 여전히 두 눈을 감으려고 하지 않고, 영혼 지각이 없는 육체를 억지로 지탱하면서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다. 너는 이렇게 소망이 없고, 그도 이렇게 목표 없이 살아가고 있다. ‘오직 전설 속의 그 거룩한 자만이, 괴롭힘 속에서 신음하며 그의 돌아옴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이 신념은 지각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실현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바라고 있다. 전능자는 심히 고통받은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동시에 또 지각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오래 기다려서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고 하는데, 너의 마음을 찾고 너의 영을 찾아 물과 양식을 주어 너를 소생케 하고,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하고, 더 이상 굶주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 네가 지쳤다고 느낄 때,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이라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흐느끼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언제나 돌아오는 너를 포옹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참혹한 상황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으셨고, 인류가 사탄에게 타락된 사실과 진상을 보고 계시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무력하게 발버둥 치는 인류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간다면 기댈 곳이 없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도 없습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휩쓸려가고 끝없는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을 떠나면 사탄의 괴롭힘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사탄에게 유린당해 벗어날 힘도 없습니다. 사탄이 가장 날뛰며 사람을 해치고 있는 말세의 마지막 시기에, 하나님은 다시 한번 성육신하셔서 인간에게 말씀을 선포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영을 깨우시고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베풀어 주시며 선악을 분별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흑과 백을 구분해 하나님에게 속하는 긍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사탄에게 속하는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로써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간계를 꿰뚫어 보고 사탄을 철저히 배반하게 하며, 결국 하나님께 구원받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십니다! 이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아멘!

크리스천이 자녀와 화목하게 잘 지내는 방법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데, 심지어 어떤 갈등은 제때에 해결되지 못해, 부모 자식 간에 깊은 갈등의 골이 생겨 서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가 깊은 갈등의 골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부모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 아들은 올해 26세입니다. 비록 사내 대장부라고는 하지만, 저는 아들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귀가해서 저에게 “제가 친구들과 같이 창업을 할려고 해요. 근데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집 문서를 담보로 대출 좀 받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대출 받아서 창업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장사가 그리 만만한 줄 알아.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되. 더구나 창업은 큰 모험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 사장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줄 알아? 다니던 직장에서 착실하게 일하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자유로운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조급해 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내가 뭘 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는 한번도 지지해 주지 않았어. 또 늘 엄마 뜻에만 따르라고 하잖아. 다시는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는 화가 난 채 나가버렸습니다.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아들아, 난 네 엄마야,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어. 살면서 경험한 게 많아.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너도 언젠가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에도 아들은 저에게 창업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아들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자, 홧김에 아예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밖에서 지내며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창업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아직도 창업에 미련을 못 버린 거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귀찮다는 듯이 말하고 나서 또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머리를 휙 돌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들을 꾸짖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 아직 밥도 채 먹지 못했는데, 아들이 또 대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부드러운 어조로 “아들, 엄마 말을 잘 들어 봐, 그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또다시 거절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저를 향해 “엄마는 항상 이것도 쉽지 않고 저것도 쉽지 않다고 말 하잖아. 그럼 어떤 것이 쉬운 일인데?”라고 소리 지르더니 먹다 남은 밥그릇을 내동이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거야. 하지만 아들은 왜 늘 억지를 부리면서 날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지?’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모 노릇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이런 일이 닥쳤는데, 저는 방법이 전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나요? …” 기도를 하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일이나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일의 관점이나 태도에서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적용하여 그 일을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부모는 영원히 부모이고 부모가 보기에 자녀는 영원히 자녀라는 이런 관계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고,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웃어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그것은 사람이 진리를 모르는 표현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일에서는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감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부모의 자세와 지위, 신분을 내려놓으면 된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와 아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없었던 근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늘 부모의 위치에 서서 아들을 나이 어린 애로만 보고, 제가 간섭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관점으로 인해 제가 강압적이고 명령하는 어조로 아들과 대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화를 내고 심지어 저를 피하기까지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저는 자신이 본성이 너무나 교만하고 이지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지낼 때는 부모의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고 평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일을 잘못할 때 정확하게 대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 자녀가 정확하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녀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데,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어른이라는 지위을 내려놓고 자식들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길을 찾았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귀찮아하면서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다투다가 아들은 홧김에 테이블을 발로 차서 엎어버렸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저는 속으로 ‘큰일이야, 말해도 안 듣고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남편 편을 들어 버릇없이 아빠 앞에서 테이블을 발로 찼다고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순간 아들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들 곁에 있던 남편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들은 완전히 높은 위치에 서서 하는 책망이나 욕설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봐도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아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얼른 남편을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후에 속으로 계속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다시 거실로 들어와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아들 곁에 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지금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출을 내줄 수 없는 부모의 애로사항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계속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도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실행했을 때, 아들이 얼굴빛도 밝아지고 화도 누그러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여러 측면에서 판단하고 나서 창업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틑날부터 직장에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고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들은 직장을 오후에 가겠다며 출근을 또 미뤘습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속으로 ‘어제 서로 이야기가 좋게 잘 됐잖아? 왜 또 저러지, 정말로 말을 안 들을 작정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애가 타서 아들을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괜히 아들의 심기만 건드릴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일을 비위가 상하게 비틀어 말할 필요가 있느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제로 주입시킬 필요가 없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들은 진리가 맞고, 사실도 그렇다. 그렇다고 네가 말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럼 상대방이 받아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변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필요하다. 너는 상대방에게 변화될 과정을 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 마음은 밝아졌고 사람의 변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제 서로 이야기가 잘됐지만 아들은 아직 출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존중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배워야 했는데, 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저의 생각에 따라 그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니 저는 더 이상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들은 일찌감치 저에게 직장에 간다고 말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금 실행하여 자신을 내려놓고 아들과 대화하고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며, 아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을 때의 기쁨을 맛보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남편이 아들을 바래다주고 나서 저에게 “보아하니, 우리 고집쟁이는 당신 말만 듣는 것 같구려. 아들이 당신하고만 대화하잖아.”라고 탄복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아들이 내 말을 듣는 것 같나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이런 결과가 있게 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려 주셨기 때문이예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