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다른 복음 좇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8절에 예수님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으니 다른 복음을 좇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바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한 것일까요?

십계명과 율법의 의미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십니까

십계명과 율법에 담긴 의미, 그리고 그 중요성을 더 깊이 알게 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울이신 심혈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하는데,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라 할 수 있으며 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다윗의 이야기에서 얻어야 하는 깨달음

다윗의 이야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도 누렸고 징벌도 받았지만 여기에는 모두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져 있었고, 또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원칙이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만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오직 신약성경에만 있으며, 형제자매들은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문이 생긴 분들도 있는데 그럼 왜 예수님만 그리스도라고 불리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말은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싶어하는 형제자매님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말이 과연 정확한지, 주님 말씀의 근거가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니느웨의 회개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니느웨의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고 돌이킴으로써 멸망의 벼랑 끝에 이르렀던 운명을 되돌렸습니다. 하지만 단지 니느웨의 회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지극히 큰 긍휼을 입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니느웨의 회개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았던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담겨져 있는 것인가

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런 관점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주님을 믿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빌립에게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인지,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도들의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있는가

성경의 기록을 돌이켜보면 사도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신도들을 이끌어 양육하는 것이였습니다. 이렇게 사도들의 사역에는 항상 성령이 함께 하셨는데 그럼 그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의 저자는 누구이며,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성경을 읽으면서 한번쯤은 성경의 저자가 누구인지,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은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고,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이라 전혀 오차가 없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주장이 맞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사흘째 되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죄를 사해 주셨고,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셨으며, 천국의 복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예수’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셨고,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셨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신약에서 여호와가 아닌 예수라는 이름을 쓰셨을까요? 아래 내용에서 예수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왜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고 모든 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속하신 걸까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이 세 위격(성부,성자,성령)으로 존재 하신다는 것인데 과연 이런 표현이 맞을까요? 그럼 삼위일체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 되었는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존재하는지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욥은 왜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을까요

욥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의롭다 칭함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욥이 가산과 자녀를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는 시련을 겪고서도 여전히 굳센 간증을 섰는데 왜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됐을까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한 불만 이였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100세일 때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성경을 풀어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제자들께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떡을 먹으며 성경도 풀어주셨는데, 이미 영체인 예수님은 왜 음식을 드셨고 심지어 예수님을 만져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이런 행동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은 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을까요

성경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칭찬받은 사람들 중 가나안 여인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인의 태도를 보시고 예수께서 그의 믿음을 칭찬 하셨는데 예수님이 칭찬한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당신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갖추었습니까?

예수님은 왜 베드로의 믿음을 칭찬하셨을까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것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병이어에 담긴 예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배부르게 한 기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알게 되었고 더욱 인정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오병이어에 담긴 예수님의 더 깊은 뜻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뜻

매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만이 인류에게 이렇게 깊은 사랑이 있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온갓 치욕과 육신의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했을까요?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 2:18~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저는 아담이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담이 각종 육축과 공중의 새, 들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으니 그는 확실히 각종 생물을 다 알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담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있었겠어?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미리 알려 주셨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원인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게 하신 그 뒤에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에게 생기를 주었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소유소시(所有所是)도 조금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런 것을 준 후, 사람은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낼 수 있었고,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나 해낸 일들이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면 하나님은 열납하였지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것이 옳은 일이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라고 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각종 생물들의 이름에 대해 하나님은 그 어떤 정정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뭐라고 이름 지으면 하나님은 “그래”라고 말씀하면서 그 이름을 확정하였다. 하나님께 의견이 있었느냐? 없었다. 그것은 확실하다! 너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로 일을 했다. 만약 사람이 한 것이 하나님이 보기에 긍정적인 일이라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확정되는 것이고 인정되는 것이고 열납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 어떤 평가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 어떤 인류나 그 어떤악령이나 사탄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하나님 성품의 유로를 보았느냐? 만약 사람이라면, 패괴된 사람이나 사탄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을 대신해 일을 하도록 허락하겠느냐?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혹은 자신과 다른 세력과 그 자리를 쟁탈하지 않겠느냐? 꼭 쟁탈할 것이다! 그때 패괴된 사람이나 사탄이 아담과 함께 있었다면, 아담이 한 것을 틀림없이 부인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독립적인 사고력이 있고 독특한 견해가 있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아담이 한 모든 것을 부정했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 부르겠다면 난 기어코 저렇게 부를 거야! 네가 장모 씨라고 한다면 난 기어코 이모 씨라고 불러 내가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줄 거야!” 이런 것은 어떤 본성이냐? 교만이 아니냐?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 성품이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한 그 일에 대해 그 어떤 비정상적이거나 반대하는 기미가 있었느냐?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 성품의 유로에는 분쟁이나 교만과 독선적인 것이 전혀 없다. 그런 점은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비록 아주 작은 일이지만 네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네가 속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였는지,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하였는지를 묵상해 보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 성품의 발표와 유로를 볼 수 없다. 그렇지? 그럼 내가 방금 설명해 준 이런 것을 너희는 인정하느냐? 하나님이 비록 아담이 한 그런 일에 대해 “잘했다! 제대로 했다! 난 찬성한다!”라고 떠들썩하게 말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인정한 것이다.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였다. 이것은 창세 이래 인류가 하나님의 분부대로 하나님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인데, 그 일은 하나님을 대신해 한 것이자 하나님을 대표해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안중에 그 일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지혜에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때 아담이 한 것은 인류에게서 첫 번째로 선명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인데, 그때 선명하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부 소유소시와 지혜를 더해 준 까닭은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게 하고, 그런 살아 있는 존재가 하나님을 대표해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바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아담이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처음부터 그런 생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미리 그에게 어떤 이름으로 지으라고 알려 주셨던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더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더해 주신 지혜로 그렇게 많은 생물에게 각기 다른 이름을 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어 준 그 이름들이 재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초에 사람을 지으셨을 때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지혜와 소유소시도 사람에게 더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생각하거나 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행사가 아담을 통해 선명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실질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이 긍정적이기만 하면 그가 한 일을 열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의견도 내놓지 않으시고 전혀 간섭하지도 않으셨으며, 아담이 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서 긍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이런 성품은 타락된 사람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견해가 독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부인하는 것에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 내면에 있는 사탄의 오만한 성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는 교만이나 분쟁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그 작은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낮추심과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어 주셨고 그분의 소유소시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처럼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맞게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께 칭찬받고 축복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고 그분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그분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지음받은 의의입니다. 저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게 하신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가 숨겨져 있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의문점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린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신 하나님의 뜻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다’라는 대표적인 이야기를 볼 때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에 진심으로 탄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분부하셨는지,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셨는지, 등의 이런 많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뜻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한 영적 서적에서 아브라함의 스토리에 대해 풀어놓은 것을 보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 마음의 궁금증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에서 멈추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웅대하고 위대한 계획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 것은 단지 하나님의 전체 경영 계획의 서막을 열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시각, 또 누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그 일을 시작으로 조용히 상연될 줄을 알았겠는가!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한 많은 일은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움직이려고 할 때, 그 ‘움직임’은 많은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또 사람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사람에 대한 검증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복을 나타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복할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택한 아브라함에 대해 진정으로 안심하게 되었고 인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그 인물이 자신의 약속을 담당할 수 있고 자신의 다음 경영 계획을 담당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선도자라는 것을 확정하였다. 비록 그 일은 단지 시련과 검증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기쁨과 위로를 느꼈고, 하나님에게 드린 사람의 사랑을 느꼈으며, 사람에게서 오는 전에 없던 위안을 느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멈추게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삭의 목숨을 취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아브라함에게 그 행위를 멈추게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순복은 이미 검증을 통과했으며, 그가 한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려고 했던 일에서 이미 결과를 본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고 원했던 것이며, 하나님이 보려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으냐?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시험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바랐던 것을 보았다. 곧, 아브라함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고, 아브라함의 순복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 ‘무조건적’이 바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라엘 선민이 생기게 한 다음, 그 선민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뜻을 정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담당하게 하려고 했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발표한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고,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계속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이 말씀에서 저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담당하는 선봉으로 뽑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삭을 바쳤을 때, 아브라함의 진심과 조건 없는 순종은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하게 되어 하나님은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소망을 이루시려고 정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창조하신 다음 계속 하나님 자신의 계획에 따라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마다 그 속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가치와 의의가 있으며, 모두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은 단지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구원 사역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는 소망을 실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하시면서 묵묵히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 책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보았고,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것도 보았다.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열납하였을지라도,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의 지심인(知心人)이 되기에는 부족했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는 부족했으며,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수는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로울수록, 안타까울수록, 되도록 빨리 자신의 경영을 계속하고, 되도록 빨리 한 무리 사람들을 선정하고 얻어 자신의 경영 계획을 이루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야 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인류를 창조하면서부터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이해하고 알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뜻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든, 앞길이 얼마나 간고하든, 또한 하나님이 바라는 목표가 얼마나 아득하든, 하나님은 인류에게 둔 기대를 지금까지 바꾼 적이 없고, 또 포기한 적도 없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일에서 순종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역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욥이나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이긴 자들을 더 많이 얻으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을 것입니다. 마치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시록 2:7~11) 이삭을 바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저의 마음의 궁금증도 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샤오묘

말씀 묵상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셨는데 이 성경 구절을 보면서 입으로만 인정했지 마음으로 완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이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의 말씀 속의 진실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욥을 사탄에게 내주셨을까

처음 를 봤을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1:8~12) 여기서 보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끝나자 사탄은 욥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욥은 가산과 아들딸을 잃고 욥 본인도 중병에 걸렸습니다. 욥은 그렇게 큰 시련이 임했을 때 하나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았고 의연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욥의 간증으로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게 되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은 욥에게 임하였으며, 그 후 욥은 기한이 차서 죽게 됐습니다. 욥의 간증은 후세 사람들에게 푯대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욥에 대해 탄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속으로 ‘욥이 하나님의 안중에 완전한 사람이었는데,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하나님은 왜 사탄이 욥을 잔혹하게 공격하도록 허락하셨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저는 여기에 관한 내용이 성경에는 없는지 여러 번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의 답을 찾지 못했고, 분량이 너무 작은 저는 욥과 같은 시련을 견디지 못할까 봐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어도 곤혹은 저의 마음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욥의 인성과 추구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하나님에게 ‘욥은 그렇게 순전하고 정직하며 사람들에게 그렇게 사랑받았는데, 하나님은 왜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까?’라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 품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그런 의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문제이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의 마음은 환해졌습니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지금까지 풀지 못해 곤혹스러워했던 거잖아. 그럼 하나님은 왜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신 걸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일부러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강조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사탄에게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 때문에 증오하고 분노하여 욥을 공격하게 하였다. 따라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여 사탄이 철저히 수치당하고 실패하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더 이상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을 의심하거나 참소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욥은 비록 직접 사탄의 참해를 겪었지만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얻었고, 영원히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고 사탄의 참해와 참소를 받지 않고 아무런 근심 걱정도 우려도 없이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권리를 얻었다. 그 권리는 아무도 박탈할 수 없고, 아무도 파괴할 수 없으며, 아무도 점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권리는 욥이 스스로 자신의 믿음과 의지력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경외로 바꾼 것이다. 욥은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땅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진정한 피조물로서 *천경지의로 창조주를 경배하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자격과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욥이 시험을 겪은 후에 얻게 된 최대의 성과이다.』 이 말씀을 본 저의 마음은 마치 큰 돌멩이를 내려놓은 듯 드디어 의혹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원래 욥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지만, 사탄이 수없이 갖은 방법을 다해 욥을 참소하는 바람에 욥이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내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은 사탄이 철저히 수치를 당하고 패하여 다시는 욥을 참소하지 못하고 욥에게 완전히 손을 떼게 하게 하기 위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욥이 사탄의 참소와 공격을 벗어나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욥을 사탄의 손에 내어주신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될 대로 타락됐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와 순복으로 인해 사탄의 시험에도 완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간증을 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게 했습니다. 완전한 사람인 욥인데도 불구하고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늘 참소했습니다.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말세의 사람은 특히 욥과 같은 경외심이 없는데, 욥처럼 하나님께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심판과 시련,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으며, 타락과 죄악을 벗어 버리고 깨끗하게 되어 변화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어떤 방식으로 하든, 어떤 것을 대가로 하든, 어떤 것을 목표로 하든, 하나님이 하는 일의 취지는 불변하다는 것이다. 그 취지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사람 안에 이루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여기는 모든 긍정적인 것을 다 하나님의 절차에 따라 사람 안에 이루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알고 이해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는 일의 한 방면의 취지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탄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부각물이 되고 힘쓰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사람은 늘 사탄에게 넘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사탄의 시험과 공격에서 사탄의 사악하고, 추하고, 비열한 몰골을 보게 한다. 그리하여 사탄을 증오 하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 인식이 있고 분별이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점차 사탄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탄의 참소와 방해와 공격에서 벗어나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순복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으로 인해 사탄의 공격을 완전히 이겨 내고 사탄의 참소를 완전히 이겨 내게 되면, 사람은 철저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출될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려면 반드시 사탄에게서 오는 크고 작은 시험과 공격에 직면해야 한다. 거기에서 걸어 나와 사탄을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결박하고, 엿보고, 참소하고, 해칠 수 없는, 완전히 자유를 얻은 사람이고, 완전히 해방되고 해탈된 사람이다. 욥이 바로 그런 자유인이었다.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었던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하여 더 이상 사탄의 참소와 공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셨지만 사람에 대한 역사 취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을 구하고 깨끗게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를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밝혀 나중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사람은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돈과 재물과 명예와 지위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살면서도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사람은 돈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착한 사람은 남에게 업신여김당하고, 순한 말은 사람을 태워야 한다’,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등등의 사탄의 독소로 살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도 벗어날 힘이 없어 사탄이 타락시키는 대로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께 훼멸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타락시키고 결박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보게 했으며, 아울러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폭로와 시련 연단을 통해,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알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진실한 순복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경외가 있게 되고, 욥처럼 조금씩 사탄의 공격과 시련을 거쳐 나중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주게 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제야 저는 마음이 아주 밝아졌으며, 하나님이 하신 말세의 사역에 대해 이해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게 된 원인과 의의를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사탄으로부터 오는 크고 작은 시험을 받아야 되는데, 그때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와 순복으로 사탄의 진영에서 나오게 된다면, 사탄의 참소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구원받은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은 사탄의 시험이 올까 봐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난 의미는 무엇인가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제자들과 떡을 나누어 드셨으며, 심지어 도마더러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뜻이 있는데, 당신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신 여러 방면의 의미를 알고 있나요?

당신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갖추었습니까

성경에서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이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든 예수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였고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가나안 여자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아주 이지적임을 볼 수 있었고 결국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 칭찬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는지 알고 있나요

예전에 마태복음 12장 1~2절에 기록된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는 이 구절을 보고 저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바리새인들이 율법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는데 왜 여전히 안식일에 제자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셨을까? 이러면 쉽게 바리새인에게 꼬투리 잡혀 그들이 일어나 예수님을 공격하고 논단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제가 도무지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온 예수는 자신의 실제 행동으로 인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하나님은 이미 율법시대에서 나와 새 사역을 시작했으며, 이 새 사역에서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안식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새 사역에 대한 일종의 맛보기에 불과했다. 진짜 큰 사역은 뒤에서 계속된다. 예수가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율법시대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며, 율법시대에 정한 규례와 원칙을 깨뜨렸다. 그에게서는 율법과 관련된 그 어떤 행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것들을 전부 버리고 지키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예수가 밀밭을 지나간 이 사건을 통해, 주님은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밖에서 사역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이 행동은 사람의 관념을 깬 것으로서, 그가 이미 율법 아래에서 살지 않으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형상과 새로운 사역 방식으로 사람들 앞에, 사람들 가운데 나타났음을 알린 것이다. 또한,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새 사역을 가져왔으며, 이 새 사역은 율법과 안식일이라는 규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 준 것이다. 하나님은 새 사역을 할 때, 더 이상 옛것에 연연하지 않았고, 율법시대의 규례에 신경 쓰지도 않았으며, 지난 시대에 했던 사역에 영향받지도 않았다. 그는 안식일에도 변함없이 사역했으며, 게다가 그의 제자들은 배고프면 이삭을 잘라 먹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아주 정상적인 것이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많은 사역과 말씀을 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 새로운 시작 앞에서 그는 이전에 했던 옛 사역을 더 이상 언급하지도, 지속시키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그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새 사역을 할 때, 즉 사람을 새로운 사역 절차로 인도할 때, 그러니까 그의 사역이 더 높은 단계로 들어갈 때, 사람이 지난날의 관점이나 규례를 계속 지킨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념하지도 칭찬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새 사역을 가져왔고, 새로운 사역 단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새 사역을 가져올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형상과 시각,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사람들에게 그의 다양한 성품과 속성을 보여 준다. 이것은 그가 새 사역을 하는 목적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옛것을 지키지 않고 옛길을 가지 않으며,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이런저런 금기가 없다. 하나님은 아무런 매임도 없이 완전히 자유롭고, 그 어떤 금기도 없고 속박도 받지 않으며, 그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전부 해방과 자유이다.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인류가 그의 새 사역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평가하든,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을 한다. 그는 그 어떤 사람의 관념에도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이 그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새 사역을 극력으로 반대하고 대적해도 말이다. 피조물 중 그 누구도 사람의 이치나 상상, 지식, 혹은 사람의 도덕관념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거나 규정하고, 헐뜯고, 방해하고, 파괴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일하고 사역하는 데는 어떤 금기도 없고, 그 어떤 사람, 일, 사물의 속박도 받지 않으며, 그 어떤 적대 세력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그의 새 사역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바로 영원히 승리하는 왕이다. 모든 적대 세력과 인류에게서 온 각종 사설이나 그릇된 말들은 다 그의 발등상 아래에 뭉개질 것이다. 그가 어떤 새 사역을 하든지 간에, 그의 사역은 반드시 사람들 가운데서 전개될 것이고, 반드시 사람들 가운데서 확장될 것이며, 반드시 전 우주에서 막힘없이 행해지고 대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이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떳떳하게 안식일에 나가 사역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규례도, 사람에게서 온 그 어떤 지식과 학설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새 사역과 하나님의 길이었으며, 그가 행한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고, 사람을 빛 속에서 살게 하고, 사람을 살리는 길이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안식일을 택해 외출하여 역사하는 목적은 예수님은 이미 옛 시대를 끝마치고 새로운 사역을 가져왔음을 율법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안식일에 외출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시대의 사역을 개척하실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낡은 논법이나 규례를 지키지 않으시며 사람에게도 지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자신의 성품을 알게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은 늘 규례를 지키지 않고 또한 옛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은 전부 자신의 계획대로 하신 것이고 사람의 그때 그때의 필요에 근거하여 하신 것이며 각종 규칙 그리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의 단속을 받거나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든 전혀 걱정하시지 않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일을 하셨는데, 하나님 편에서는 전부가 해방이고 자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런 방식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의 진실한 발표와 유로이고 또한 그분이 사역하시는 지혜의 체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고 지혜롭고 기묘한 하나님이심’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낡은 규례와 도리에 제한했던 것입니다. 곳곳에서 예수님의 꼬투리를 잡기도 하고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벌과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원칙을 모르면서 줄곧 하나님께서 예전에 하신 사역으로 새 사역을 가늠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낡은 규례와 도리에 제한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제한한다면, 사람은 아주 쉽게 하나님을 규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종에 이런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분노와 처벌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다시 성육신 되셨는데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기초 위에 한 단계 더 높은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말씀을 발표하여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시며 사람에게 성정 변화의 길을 가리켜 주시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듣게 되었을 때, 그들은 찾고 구하고 알아보려는 태도를 취하는것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구절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과 대조하면서 성경에 부합되면 받아들이고 부합되지 않는다면 반대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념과 상상 속에 만약 하나님께서 오실 때 예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주님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다시 오신 하나님께서 연민과 사랑의 성품으로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또 한 번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게 되고 결국 당대 바리새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새 사역은 이로 인해 전혀 영향 받지 않았고 반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찾고 구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취함으로 인해 최종에 주님의 나타나심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하신 사실을 본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계획대로 사역을 하시고 자신의 지혜로 사역을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사역을 하시든지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이 진리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하는 것으로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관념으로 하나님을 규정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고 구해야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습니다. 이래야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피조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이지이자 반드시 갖춰야 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실로 개미보다 작은 존재이거늘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입만 열면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사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하는 사람은 다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니냐?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과 대등해질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계책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할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타락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고 하나님을 보고 싶은 이상, 진리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아야지 목을 뻣뻣이 하고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무슨 좋은 결실이 있겠느냐?』,『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자신의 목표와 방식으로 사역을 한다. 그는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모든 사람들이 응당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자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위 안으로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지, 하나님의 나타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류정

부활절에 숨겨진 의미, 알고 있었습니까?

크리스천이라면 부활절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왜 40일 동안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지, 예수님의 뜻은 무엇인지, 여기에 숨겨진 참된 의미를 함께 알아봅시다.

예수님 부활의 의미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누가복음 24:7) 여기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부활의 의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수님 부활의 의의를 언급하면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을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왜 제삼일에 부활해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야 했을까?” 오늘 우리 같이 이 문제를 토론해봅시다. 예수님이 육신에서 역사하시는 기간에 늘 사람과 함께 드시고 함께 거하시고 함께 생활하셨으며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중 어떤 사람은 그분을 뵌 적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분을 뵌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왜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중 일부분 사람들만이 진실로 그분을 믿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단지 소수일 뿐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여러분이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은 바로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큰 영향을 받았고 이런 사역은 확실히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지 못한 사람들도 들은 후에는 예수님의 크신 능력을 믿고 그분을 따르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그들의 뒤섞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가히 말해서, 예수님을 따른 대부분 사람들이 그분의 신분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완전히 믿거나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은 구경하면서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 죽으시지 않을까, 죽지 않으신다면 참 하나님이라고 믿겠어.’ 이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부터 무덤에 들려 들어가시기까지 그분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의심이었습니다. ‘인자라고, 메시아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수 있을까?!’ 이때,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던 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기에 사람 마음속의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역사는 절차가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으신 후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일이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사실로 될 때에야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의 일에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고심을 더욱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 :30~32)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 :36~4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성경의 이 두 구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신 2가지 일을 말합니다. 그럼 또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왜 이런 2가지 일을 하셨을까요?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이렇게 묻는 이상, 답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그때 말씀이 육신 되신 목적과 의의를 알고 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셔서 사람을 인솔하셨고 영은 사람이 보지도 못하고 더듬지도 못하기에 비록 하나님이 사람의 생활을 인솔하고 계셨지만 사람과 하나님과의 거리는 요원했고 낯설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 마음속의 태도는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것이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본의이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고 짐작하기 아주 어렵다고 여기는 것을 바라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최초에 인류를 만드신 의의가 이렇다면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셔서 사람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 2가지 일을 하신 의의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만약 예수가 너희 앞에 서서 떡을 먹는다면,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혹은, 예수가 너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면서 생선도 먹고 떡도 먹는다면, 그때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한번 상상해 보아라! 만약 네가 주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껴지고, 주님은 사람을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느껴진다면, 그런 느낌은 정확하다. 그것이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들 앞에서 떡을 먹고 생선을 먹는 일로 도달하려는 효과이다. 만약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과 대화만 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뼈와 살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혼이라고 느껴지게 한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실망하지 않겠느냐? 실망하게 될 때는 버림받은 느낌이 들지 않겠느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지 않겠느냐? 그 거리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역효과를 가져오겠느냐? 사람들은 틀림없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경원시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끊고 은혜시대 이전의 사람과 하늘의 하나님과의 관계로 되돌아갈 것이다. 사람이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영체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친근감을 잃게 하고, 동시에 또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에 있을 때 사람과 거리감 없도록 맺어 놓은 친밀한 관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영체에 대한 사람의 느낌은 단지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말없이 응시하는 것일 뿐,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교류하거나 대화하지 못하며, 따르고 의뢰하고 앙망하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못 된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며, 오로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게 다가가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면, 너의 가족, 너의 자녀가 너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까이하지 못하며, 늘 너를 피할 때, 네가 그들을 위해 했던 모든 것이 다 그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게 될 때, 너의 심정은 어떠하겠느냐? 너는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피할 때, 하나님에게 생기는 심정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부활한 후, 예전 그대로 뼈와 살이 있는 형상으로 사람에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고,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지친(至親)으로 여기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하나님은 사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고, 사람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다. 이제 너희는 내가 왜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사람들에게 성경을 풀어 준 것과 제자들이 예수에게 생선을 드린 것에 관한 이 두 성경 구절을 발췌했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가 보다시피,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거리를 멀게 하고 싶지 않으셨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이 전에 사람과 함께 드시고 함께 거하시고 함께 생활하시던 주님이 아님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고 더욱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과 사람 사이에 지위상의 구별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육신 중에서 자주 하시던 일련의 일들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과 함께 떡을 떼시고 구운 생선을 드시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셨는데, 예수님이 하신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을 본 각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이 변하지 않으셨고 여전히 원래의 예수님이시고 비록 죽음을 겪으셨지만 또 부활하셨고 결코 사람을 떠나지 않으셨으며 여전히 사람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시고 사람을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던 주님이라는 것을 보게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잃었던 것을 다시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했으며 아울러 앞으로 따르는 과정에서 예수님에 대해 믿음이 충만해지고 죄가 사함받을 수 있게 하시는 이 한 분의 인자를 의지하고 앙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기 시작하게 했으며 그분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게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 부활의 의의에 관해서 여기까지 교제하겠습니다. 다음번에 새로운 문제가 있으면 다시 함께 토론합시다.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