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 부모가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준 가장 좋은 선택

2018년 11월 10일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제공해주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의 학교 선택이 부모에겐 큰 짐이 되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아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명문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학교 측은 500명의 신입생만 받겠다고 말했지만, 응시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교문 앞에 빼곡히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며 ‘경쟁률이 엄청나네. 우리 아들은 이 학교에 오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교 측의 전화를 받지 못해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 측에서는 시험 성적과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희망의 끈을 놓았고 실망도 커져 아들이 이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XX 학교 가기 싫어요. 거긴 학교도 별로인 데다가 나쁜 애들도 많아요. 저는 XX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가 수업 질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요.” 아이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남편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는 데다가 대출받은 높은 집값에 두 아들의 교육비, 게다가 노인 세 명까지 부양해야 했다. 이미 등골이 휠 만큼 휘었는데 아들을 명문 학교에 보낼 만큼 쏟아부을 돈이 어딨겠나? 아들의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파져 오고, 막막해졌을 때 나는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기도드리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ㆍ사ㆍ물의 영향(직역: 훈도(薰陶)와 영향)을 받게 될지, 어떤 지식과 재능을 배우게 될지, 어떤 습관을 기르게 될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와 가족이 누구이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무엇일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주위의 인ㆍ사ㆍ물의 관계가 어떠하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ㆍ사ㆍ물이 형성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창조주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 배경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생활하게 되는 환경도 당연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나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계획에 달려 있고, 창조주의 정성스런 안배에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의 평생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어떤 학교에 가건, 거기서 나쁜 것을 배우건, 앞날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명문 학교라고 해서 모두 좋은 학생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만 보더라도 부모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학교에 보냈지만, 아이의 성적은 여전히 별로였다. 그에 반해 내 친구 딸은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고에 진학했다.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말이다.

크리스천 자녀교육,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학교 문제로 인한 고민과 걱정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훌륭한 학생은 좋은 학교에서만 배출된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등 사탄 독소의지배를 받으며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내게 심어놓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논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명문 학교에 진학하려 힘쓰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었지만, 부모님과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망쳤다고 원망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예전에 그 친구는 한 회사의 유명한 강사였다. 나중에 친구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관련 부처와 세무서의 ‘능력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구속될뻔 했고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지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수 있다. 이때, 마음속의 고통이 점차 사라졌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어 아들이 창조주의 주재에 따르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바뀌었다. 더는 명문 학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나한테 “엄마, 우리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비록 아들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들의 운명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어떤 학교에 가는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담담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양환애

아이의 좋은 부모이자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이 점점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이와 가까워지고 부모이자 좋은 친구로 될 수 있을까요?

크리스천이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연지는 한 영화사에서 일한다. 지난달 월말에 한 고객이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업로드 시키려는데, 연지와 다른 동료들은 부활절 전에 글한 편을 위한 6개의 알림 글로 동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상의를 거쳐 연지가 첫 번째 임무를 맡아 3일 내에 완성하기로 했다. 연지에게 이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예전에 이런 동영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연지도 조금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그는 하나님이 바로 그가 의지해야 할 분이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지는 만들어야 할 동영상에 참고할 그림을 고른 후, 평소에 쓰던 소재 라이브러리에서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해 동료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동료는 급한 일이 있어 동영상을 도와줄 시간이 없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속으로 난처하고 실망했다. 연지는 평소에 인터넷으로 소재를 찾은 적이 거의 없어서 자기가 잘못 처리해 동영상의 저작권에 걸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연지는 낙심하여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바로 이때 그는 하나님을 떠올렸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그가 하나님께 기도 한 후 동료가 약간의 소재를 추천해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적합한 것을 찾아내 순조롭게 이번 임무를 완성했다. 연지는 후에 다른 몇몇 동료들이 계속 본인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며, 자기가 이번에 한 작품이 다른 동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들 그의 작품을 참고하겠는가! 생각할수록 만족스러워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렸다. 연지는 다음 임무에 착수했다. 홈페이지에 두 곡의 노래 동영상을 만드는데 협조하는 것이다. 동영상은 다 만들었는데 썸네일만 나오지 않았다. 연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썸네일이 만들기는 어렵지만 나에게는 기술적 내공이 있고, 지금 많은 그림도 모았으니까, 참고 자료를 좀 더 보면 천천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1주일이 흘렀지만 연지는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녹슨 것처럼 참고 그림을 아무리 많이 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아직도 만들지 못했지? 예전에 그림을 만들 때는 아이디어가 넘치지 않았나?’ 곁의 동료들은 하나둘씩 임무를 완성해가는데 본인만 전혀 진전이 없자 연지는 점점 조급해져서 속으로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겠어. 난 미술 디자인도 전공했는데, 썸네일 하나도 만들지 못하다니!’라고 생각했다. 연지는 짜증이 났다. 마침내, 연지는 가까스로 썸네일을 하나 만들었지만 동료들에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연지는 서화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연지가 샤오샤에게 “나 좀 도와줘. 정말 방법이 없어.”라고 말하자 샤오샤가 시원스럽게 수락했다. 이틀도 안 돼 샤오샤는 완성품을 내놓았고, 동료들의 만장일치까지 얻어 통과되었다. 결국에는 샤오샤가 만든 그림을 쓰기로 해 연지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낙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열흘이 걸려도 못 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틀 만에 다 만들어 내다니, 내가 왜 이렇게 형편없이 변했을까? 차이가 나도 너무 나네!' 연지는 계속해서 두 번째 썸네일을 만들어야 했지만 여전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지가 궁지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지금 그림을 만들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환경이 임했을 때 제가 어떻게 체험해야 하고,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까요?” 기도 후, 교회의 복음 사이트를 열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설교자로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실로 인해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살게 되었다. 마침 주인공이 보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하늘보다 더 높게 보지 말라. 마땅히 자신을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이성 있는 어떤 사람보다 더 낮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진입해야 할 길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게 보아야지 그렇게 대단한 척할 필요가 있겠느냐? 자신을 그렇게 높게 볼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너희는 영원히 갓난아기이고,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요소가 얼마 없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손에서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자만자족의 심리를 갖게 된다면 하나님께 혐오 받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연지의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그는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겪은 상황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했다. 주인공이 처음에 교회를 돌볼 때는 어려움에 부닥치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여 교회의 사역이 좋은 결실을 맺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득의양양하고 교만해서 사역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며 갈 길을 잃었다. 연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지난번 새로운 임무를 받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도하셔서 임무를 완성하도록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객이 찬성하고 동료가 참고하는 것을 보고는 본인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져서 홀로 기쁨을 만끽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오히려 자신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 임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임무를 받았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지 않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해 만들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구하지 않고 결국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를 반성한 연지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중에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나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성심성의를 다해야지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시시로 나와 교통하고 나를 더 가까이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급히 이루려고 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앞에서 나를 의지하는지, 나에게 의지할 믿음이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너는 늘 나를 가까이하고 모든 일을 나의 손에 맡겨야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한동안 가까이하다 보면 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더듬어 낸다면 참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고, 또한 참으로 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 네 속이 무척 환하고 편안해질 것인데, 의지할 데가 있고, 능력과 믿음도 있고, 앞길도 생기게 되며, 어떤 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연지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환경이 임하든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치든 항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비록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꾸준히 하나님을 앙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근심을 없애고, 어려움을 해결할 길을 열어주신다. 연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가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그날 오후, 그가 일을 시작했을 때 우선 하나님 앞에 나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반성을 통해 제가 이렇게 며칠 동안 그림을 만들지 못한 근원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회개하고, 당신에게 의지하여 썸네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그는 소재를 찾아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또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의 기술적 한계로, 몇 번을 시도해도 참고 그림을 좋은 효과에 도달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소재 라이브러리에 이런 종류의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했다. 연지는 이 작업을 완성하기가 참 힘들다고 느꼈지만 이번에는 낙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고민 끝에, 기왕 이런 소재를 못 찾는다면 다른 소재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하면 된다. 천천히 그가 하나님께 의지해 구상했을 때 아이디어가 나왔다. 순간 그는 아주 기뻤다. 이튿날 연지는 샘플 하나를 만들어냈고 회사의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어떤 동료는 그가 고른 글자체가 너무 크고 화면의 원소에 작은 것들을 너무 많이 놓았다고 지적했다. 연지가 동료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 발견 되었고, 다시 수정하여 셋째 날 작품은 통과되었다. 이 과정을 보고 연지는 하나님이 정말 그의 곁에 계심을 깊이 깨달았다.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가 앞으로 나가도록 인도하신다.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사람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사람은 다 바보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면 사람은 매우 총명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이런 일을 체험하고 연지는 진심으로 깨달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어떤 분야의 은사와 특기, 자질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깨우침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미련하고 실행할 방향과 길도 없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에게는 무궁무진한 총명과 지혜가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의지하기만 하면 더 이상 어려움에 부닥쳐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요즘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부모가 아이를 잘 교육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성공을 거둔 후 남겨진 고통과 공허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부단한 노력 끝에 마침내 성공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노고와 피로로 인해 그는 50세 이후에 걸릴 수 있는 병이 생겨 너무 고통 스러워 했다. 하나님을 믿은 후 그는 드디어 고통의 근원을 찾았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인생의 바른길임을 알게 되었다.

행복한 부부,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성년이 되었고, 그 후 아버지가 정해주시는 대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무식할 뿐만 아니라 욱하는 성질까지 있다는 걸 결혼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집안의 시시콜콜한 일들로 인해 늘 쉴 새 없이 다투곤 했다. 딸이 막 2학년이 되던 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자,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싸우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집을 새로 지었고, 나도 돈을 빌려 낡은 우리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살 수 있는 집을 왜 새로 지어야 하느냐’ 며 반대하였다. 나는 입이 닳도록 설득해보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반대하였고, 우리는 이 일로 인해 또 반 년 동안을 다투며 살았다. 서로 마음이 좀 누그러졌을 때,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이고, 당신보다 내가 아는 것도 더 많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데, 당신은 왜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야?” 그러자 아내가 지지 않고 말했다. “왜 내가 항상 당신 말을 들어야 돼?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지도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는 서로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짧게는 사흘에서 닷새, 길게는 십여 일을 서로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하며 지내곤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보며, 난 늘 하늘을 원망하곤 했지만, 이혼을 하자니 아이가 불쌍했고, 안 하자니 일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2012년, 친구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타락을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타락된 성품도 해결해 주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만 하면, 우리 부부의 다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내와 반평생을 다투며 살았는데, 만약 하나님을 믿어서 우리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그 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님들과 자주 함께 모임을 갖고 교통하였다. 어느 날, 나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부부 사이에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함께 생활하지 않았고 또한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몇 년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적응된다. 서로 얼마간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인성이 정상적이라면 늘 서로 마음속 말을 나누게 된다.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거나 직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자신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려고 계획한다거나 네가 직장에서와 아들딸을 대함에 있어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한다면 서로 매우 가깝고 마음을 잘 알지 않겠느냐? 만일 그가 지금까지 너와 마음속 말은 하지 않고 돈을 벌어다 주면 그만이고, 너도 지금까지 그에게 마음속 말을 하지 않고 흉금을 터놓지 않는다면 서로의 마음에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 틀림없이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너와 거리가 있고 너도 그와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너는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며, 너는 그의 필요를 모르고 그도 너의 요구를 모른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 수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아내와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원인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내와 사십여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여태 아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아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여태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줄을 몰랐다. 그저 상대방에게 내 말을 따르게만 하고 싶었지, 상대방의 고충은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다툼이 생기면 그게 모두 상대방의 잘못이라고만 여겼기에,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더 멀어졌고, 갈등은 더욱 더 커졌다. 나는 이 말씀을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아내는 이 말씀을 보고 머리를 연신 끄덕이면서, “하나님 말씀이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시는 것 같아, 우리 두 사람 정말 그렇잖아. 그럼 이후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서로 ‘속마음 털어놓기’를 본받아,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다시 다투게 되지는 않을 거잖아” 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핸드폰 문자를 보려고 이리저리 안경을 찾았다. 아내는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는 나를 보고 책망을 하였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은 안 보고, 왜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다 낭비해버리는 거야. 그러려면 채소밭에 가서 채소나 따 와!” 아내의 명령조 지적에, 화가 난 나는 아내에게 눈을 부라리며, 밖을 나갈 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의자를 발로 확 차서 넘어뜨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채소밭으로 가버렸다. 마음속으로, ‘나처럼만 잘해 보라지, 집안 일에 바깥 일까지 죄다 도맡아 하는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날 조금이라도 존중하기는 하는 거야?’ 나는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채소를 따서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낸 것은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것임을 깨닫고, 곧바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였다. 기도를 하고 나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당신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당신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 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타락과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소화기처럼, 내 마음속의 그 알 수 없는 분노를 즉시 사라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내의 좀 심한 말투와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발끈한 것이었다. 내가 화낸 것은 그저 나 자신의 체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사탄의 타락된 성품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 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줄곧 내가 가장이고, 내가 아내보다 아는 게 많고, 아내는 일자무식이며, 아내의 생각이나 견해가 나보다 못하니까, 아내는 내 말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그 즉시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곤 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모두 내가 언제나 가장의 지위에 서서 거만하게 아내를 깔보고,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내가 장악하려고 해서 생긴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아내의 말투가 좀 심하긴 했지만, 아내는 내가 잘되라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진리를 갖추라고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아내의 태도가 안 좋다고 싫어하다니, 난 정말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집에 돌아 온 후, 나는 아내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인식한 것들을 교통하였다. 그러자 아내도, “방금 내 말투가 좀 심했어. 내 잘못이야, 이게 다 사탄의 거만한 성품 때문인 것 같아.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것이니까, 이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야” 라고 말했다. 아내의 교통을 듣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공과를 배우게 하고, 우리의 타락된 성품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사탄에 의해 극히 타락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인·사·물을 예비해 주셨다. 벼 벨 때가 되었지만, 아들의 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던 아내는 돌아올 수가 없었기에, 나는 집에서 800평이나 되는 벼를 혼자 베느라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아내가 왔길래,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한번 봐봐, 이렇게 많은 벼를 어떻게 나 혼자 다 베라고 그러냐? 게다가 밥도 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그런데 당신은 도와주러 오지도 않고…” 아내는 나의 주절주절 끝 없는 잔소리에 화를 냈다. “당신 혼자 집에서 일하느라 힘들어서 나한테 화내는 줄은 나도 알겠는데, 나라고 무슨 수가 있냐고? 아들과 손자가 나 혼자만의 자식은 아니잖아. 당신이 자꾸 이러면, 나 이제 안 돌아 올 거야.” 아내의 말에 나는 더욱 화가 나서, 욱하는 마음에, “그래, 그럴 능력 있으면 오지 마!” 라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아내가 신경질을 확 내고 진짜 가버릴 줄은 몰랐다. 아내가 가버린 후,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왜 또 화를 낸 거야, 이게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게 아니면 뭐지? 아, 정말! 아내는 이미 가버렸고 이제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또 왠 일인가? 이튿날,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문을 들어서자 마자, 어제 저녁 마음이 너무 괴로워 잠을 못 잤고, 그렇게 화를 벌컥 내고 가버리면 안되는 거였다고 말했다. 나도 뉘우치며 아내에게, “어제 저녁에 나도 당신처럼 벌컥 화내고 나니까 마음이 괴로웠어, 게다가 며칠, 일 때문에 바빠서 하나님 말씀도 안 읽어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어,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 읽자.” 이어서 우리는 같이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었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사람의 삶은 늘 사탄에게 방해받고, 심지어 사탄에게 통제받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사탄에게 구금되어 있는 사람이고, 자유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손에서 풀려 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과 권리가 없는 사람이고, 사탄에게 끊임없이 뒤쫓기고 가차 없이 공격당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행복을 논할 여지가 없고, 정상적인 생존 자격을 논할 여지가 없으며, 인간의 존엄을 논할 여지는 더욱 없다.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사탄과 싸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경외를 무기로 삼아 사탄과 결사전을 벌여 사탄을 철저히 물리침으로 사람을 보기만 하면 피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들면, 사탄은 사람에 대한 공격과 참소를 철저히 포기할 것이다. 그때면 사람은 구출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다 읽은 후,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명확해. 사탄에게 타락된 이후로, 우리에게는 전혀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도 없고,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성도 전혀 없어. 나 혼자 농삿일 하느라 좀 힘들어지니까, 당신이 나 안 도와준다고 바로 원망하고 당신한테 화내고 불끈하고, 난 너무 이기적이고 거만해.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고, 늘 당신한테 내 말에 순종하라고만 하고, 당신 감정 따위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이 날 나무란다고 나도 오기를 부렸잖아, 내가 게으름피우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나를 비난하는 거냐고 생각했어. 역시 우리는 사탄에게 너무 깊게 타락 되어서 항상 거만한 본성에 따라 살고 있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는 생각만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 안 다툴 수 있겠어? 우리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우리 몸의 사탄 성품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자.” 나는, “그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는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다음부터는 어떤 일을 만나든, 다시는 거만하거나 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상대방 말이 옳으면 바로 받아들이고 따르고, 진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의지를 굳게 다졌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문제에 부딪히면,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늘 하나님 앞에 와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타락됨을 반성하고 인식하였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점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아내가 먼 곳으로 본분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둘러 밥을 다 해 놓았는데도 아내가 아직 귀가 전이라, 나는 손전등을 들고 거리로 아내를 마중 나갔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집안밖의 모든 일을 앞다투어 다 하면서, 줄곧 내가 집안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도록, 진리를 많이 갖추도록, 어떤 성과가 있으면 아내와 함께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늘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다투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주위의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점점 젊어진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 집에서 어떻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이 세대의 사람들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남방의 것이든, 북방의 것이든,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 특산물 등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과일은 있어도,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대약진 운동때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이렇게 좋고 또 건강에 몹시 신경을 쓰는데, 마땅히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건강해 지고, 더 장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왜 지금 비만, 뇌혈전, 각종 암, 백혈병 등등 각종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근에 더 많은 희귀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장수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저의 동료를 놓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는 가정환경이 매우 좋아 임신 후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도 되지 않아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20살을 넘기기 힘들테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질병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하던 데로부터 현실에 직면하고, 예사로 여기던 데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갖은 애를 다 써도 이런 질병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논조로 얼버무려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는 말씀 중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의 진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사회 발전으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지고 정보가 발달하여 동서남북이 서로 관통되면서 북방 사람들도 남방의 과일이나 남방의 특산물 혹은 야채들을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식탐과 물욕을 만족시켰지만, 사람의 몸은 오히려 각기 다른 정도로 해를 입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먹거리에는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방에서 태어났다면 남방의 것을 먹어야 아주 적합하다. 남방의 그런 기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까지도 예비해 놓았다.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식탐이 점점 심해져 사회의 발전 추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법칙을 어기게 되었다. 비록 사람은 지금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여기지만, 이런 사회의 진보는 아주 많은 사람들 몸에 보이지 않는 해를 끼쳤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예비해 주고, 사람에게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을 예비해 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연법칙을 어기고 과학을 발전시켜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풍부하여 지역마다 그곳의 특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홍대추(보통 대추라 함)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호두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땅콩과 각종 견과류가 많이 나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다 사람의 육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또 그 시기에 따라 적당한 양으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하고 식욕을 만족시키기를 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이 자랄 수 있도록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을 쉽게 어기고 파괴하게 된다. 앵두를 예로 들어 말해 보자. 앵두는 다들 알고 있겠지? 앵두는 몇 월에 나느냐? (6월입니다.) 대략 6월쯤에 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몇 월이면 끝나느냐? (8월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2개월 동안 먹을 수 있다. 앵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2개월뿐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시켰는데, 다음 해에 앵두가 새로 나올 때까지 연장시켰다. 즉, 1년 내내 앵두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정상이냐? (비정상입니다.) 그럼 앵두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냐? 바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신선하게 보관해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고, 또한 사람 몸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이미 지난 다음에는 어떤 화학 물질을 써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자라면서 구비한 성분들을 유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화학 물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해는 사람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알았겠지? 지금 시장 경제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냐? 남방과 북방의 교통이 편리해져 1년 사계절 각종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방 사람들도 늘 바나나를 먹을 수 있고 남방의 어떤 음식이나 특산물 혹은 과일도 먹을 수 있어 마치 사람의 생활은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시장 경제가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정상적인 자연 생장 법칙을 어기는 것이고, 가져다준 것은 해로움과 치명적인 재난이지 행복이 아니다. 알았느냐? (네.) 포도를 보아라. 지금은 시장에서 1년 사계절 판매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포도는 따고 나면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아주 짧다. 그 포도를 이듬해 6월까지 보관한다면 그때도 그것을 포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포도에는 포도의 원래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 1년이란 시간이면 신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양 성분도 이미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를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좋다! 3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까? 한 알이라도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만약 흥미를 느낀다면 화학 약품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포도를 가져다가 그것의 성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성분이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연구해 보아도 좋다.......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먹거리를 예비해 준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물질적 음식을 탐하라고 한 것이냐? 사람이 그런 물질적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 과다가 되지 않겠느냐? 영양 과다로 몸에 각종 질병이 유발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면 절대로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알맞게, 서로 다른 시기와 계절에 따라 사람에게 각기 다른 먹거리를 누리도록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몸 안에 적지 않은 열기와 습기, 건조함이 쌓이는데, 가을에 많이 나오는 과일을 먹으면 그 습기와 건조함이 제거된다. 동시에 소와 양도 튼실하게 자라 사람은 육식으로 몸보신할 수 있다. 사람이 각종 육류를 먹고 나면 몸에 에너지와 열량이 생기고, 엄동설한 추위를 막아 낼 저항력이 생겨 매서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시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예비해 주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지는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안배해 놓은 것으로, 적절한 한도가 있지만,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의 생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류가 부단히 고품질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위반하고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지역에 맞추어 인류에게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지대, 여러 체질의 사람들의 수요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음식물 또한 계절과 시간을 나눕니다. 어느 계절에 무엇을 먹어야 인체에 가장 유익할지 조물주께서 이미 세심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만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인식이 없어 무턱대고 식욕을 탐하고 육체의 향수를 탐하여 각종 과학적인 수단으로 음식물의 생장주기를 조절하여 유통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각종 비철 채소와 과일들이 도처에 널려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인 생활은 풍부해졌고 사람들의 식욕도 만족을 얻었고 시장경제 또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람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각종 희귀병으로 인한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런 질병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탄이 인류에게 주는 쓰라린 경험과 재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오직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모든 파괴를 중단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진정으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에게 방법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니냐?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

신고를 당한 후…

“누님, 누님한테 신고가 접수됐어요!" “왜요? 또 어디가 안 깨끗하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누님,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았어요? 물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나요?" “바닥은 진공청소기로 하고, 물걸레는 안 썼어요.” 나는 이렇게 해명했다. “직원이 물걸레가 마른 채 있는 것을 보고 누님이 물걸레 쓰는 것을 못 봤다고 신고했어요. 앞으로 바닥을 닦지 않아도 물걸레는 축여서 거기에 놔둬야 해요. 그러면 다시는 누님을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의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미 충분히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왜 또 신고가 접수된 것일까? 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미 두 번째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접수된 신고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서였고, 이번에는 물걸레로 바닥을 닦지 않아서였다. 이런 환경에 처하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내가 막 이 청소 일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소개한 친구가 이곳은 위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아서 40분이면 일을 끝낼 수 있고, 일당은 2500엔(약 2만5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3시간이 걸려서야 일이 전부 끝났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부 대청소를 했는데, 주차하는 곳만 물을 뿌려 청소하는데도 40분이 걸렸다. 똑같은 돈으로 이렇게 오래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이곳을 청소하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겠지. 만약 또 청소할 필요가 없는 곳을 줄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야. 그러나 나중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거의 2시간이 걸려야 일이 끝났다. 가장 빨랐을 때도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40분에 마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는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은 최대한 생략해버렸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보았고,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했다. 항상 이득을 봤는지 아니면 손해를 받는지 따져야 하니까 정말 피곤했다. 기분이 좋고 나쁨도 이 일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석에 더러운 곳을 봐도 청소하지 않았을 때, 나의 마음도 항상 죄 짓는 듯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시간을 덜 쓸수록 이득이라며 온종일 시간을 덜 들이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았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찔렀다. 일을 할 때 잔꾀를 부리고, 교활한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울을 닦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닦았다. 윗부분이 조금 더러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닦지 않았다. 변기를 닦을 때는 겉에만 닦았다. 냄새가 나면 여러 번 물을 내렸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검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대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고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사장이 처음으로 내가 신고 당한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벌금을 물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찾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고를 당하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인격도 존엄성도 없이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이방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그것은 모든 면에서 다 거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간당 얼마를 주면 그만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노동력은 제공하지 않고 돈만 받고 공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한다. 일이 없으면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다가 상사가 오기라도 하면 눈앞에서는 열심히 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고 힘을 쓴다. 그것은 다 승진을 위한 것이고, 돈을 많이 받고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다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이고, 음험한 수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궤계이고 전부 사탄의 철학,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궁리만 하고, 힘을 적게 들이고 교묘하게 돈을 벌 방법만 늘 생각한다. 그것은 사악한 길이고,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탄에게 유혹당해 전혀 사람답지 않게 타락한 나를 보았다. 본성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서 적게 일하고 돈만 많이 벌 생각을 했다. 사장이 곁에서 지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대충대충 일했다. 일을 하면서 항상 교묘하게 잔꾀를 부렸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양심과 인격은 내다 버리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살았다. 나는 항상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40분 안에 일을 끝내려고 구석의 더러운 곳을 보면 청소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허비할까 봐 다음 번으로 미뤘다. 다음 번에 시간이 길어지면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해서 몸은 좀 편해졌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집에 있을 때도 고객에게 발각되어 신고당하지는 않을까,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치가 없고 너무 비천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양심도, 인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겠는가! 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실행의 길을 찾았다. 기왕 이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진솔하게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나는 예전에 일 하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다. 화분과 꽃잎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물로 살짝 깨끗이 닦아냈고, 복도 전체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하자 기분이 유달리 상쾌했고, 바빠서 시간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몇 시간이나 일 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사서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맛 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실천하고 인간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