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 부모가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준 가장 좋은 선택

2018년 11월 10일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제공해주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의 학교 선택이 부모에겐 큰 짐이 되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아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명문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학교 측은 500명의 신입생만 받겠다고 말했지만, 응시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교문 앞에 빼곡히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며 ‘경쟁률이 엄청나네. 우리 아들은 이 학교에 오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교 측의 전화를 받지 못해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 측에서는 시험 성적과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희망의 끈을 놓았고 실망도 커져 아들이 이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XX 학교 가기 싫어요. 거긴 학교도 별로인 데다가 나쁜 애들도 많아요. 저는 XX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가 수업 질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요.” 아이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남편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는 데다가 대출받은 높은 집값에 두 아들의 교육비, 게다가 노인 세 명까지 부양해야 했다. 이미 등골이 휠 만큼 휘었는데 아들을 명문 학교에 보낼 만큼 쏟아부을 돈이 어딨겠나? 아들의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파져 오고, 막막해졌을 때 나는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기도드리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ㆍ사ㆍ물의 영향(직역: 훈도(薰陶)와 영향)을 받게 될지, 어떤 지식과 재능을 배우게 될지, 어떤 습관을 기르게 될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와 가족이 누구이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무엇일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주위의 인ㆍ사ㆍ물의 관계가 어떠하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ㆍ사ㆍ물이 형성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창조주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 배경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생활하게 되는 환경도 당연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나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계획에 달려 있고, 창조주의 정성스런 안배에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의 평생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어떤 학교에 가건, 거기서 나쁜 것을 배우건, 앞날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명문 학교라고 해서 모두 좋은 학생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만 보더라도 부모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학교에 보냈지만, 아이의 성적은 여전히 별로였다. 그에 반해 내 친구 딸은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고에 진학했다.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말이다.

크리스천 자녀교육,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학교 문제로 인한 고민과 걱정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훌륭한 학생은 좋은 학교에서만 배출된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등 사탄 독소의지배를 받으며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내게 심어놓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논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명문 학교에 진학하려 힘쓰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었지만, 부모님과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망쳤다고 원망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예전에 그 친구는 한 회사의 유명한 강사였다. 나중에 친구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관련 부처와 세무서의 ‘능력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구속될뻔 했고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지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수 있다. 이때, 마음속의 고통이 점차 사라졌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어 아들이 창조주의 주재에 따르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바뀌었다. 더는 명문 학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나한테 “엄마, 우리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비록 아들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들의 운명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어떤 학교에 가는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담담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양환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의 행복을 얻다

우리 아버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아주 강했다. 어머니가 나를 낳자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싫어했다. 내가 철들고 나서 부모님이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여자면 어때서, 똑같이 주인 노릇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의지를 세우며 내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 남편에게 내 말을 듣게끔 하고, 절대 아버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나약하게 살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이런 소망이 생긴 후, 나는 집에서 최대한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아무도 날 깔보지 못하게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집안의 중요한 노동력이 되었다. 집안일이든 밭일이든 난 하는 일마다 척척 잘 해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 아버지의 칭찬을 들었고,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이 아들만 못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결혼 후,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남편은 밖에서 장사를 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결혼하고 2년 동안, 남편은 편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나와 상의했다. 나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남편이 자상하게 나와 상의하는 자체만으로도 어릴 적 소원이 이루어져서 이 집안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주면서 내 신분증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우물거리며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며칠 동안 그가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알고 어디를 다녀오냐고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을 회피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법인데, 감히 날 속이려고! 안 되겠다.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지. 당신 나 몰래 무슨 일을 저질렀다간 두고 보라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동서의 집에 2만 위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동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동서 앞에서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척 호의를 베풀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나는 얼른 돈 문제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빌려주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요, 당신이랑 같이 동생한테 가서 물어보자고요.”라고 하자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여자인 주제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 남자들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당신은 집안일이나 잘하면 돼.”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너무 괴롭고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내가 힘들게 집안을 위해 일하는데 남편이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안일이나 잘하면 된다니 그럼 난 고용된 가정부와 다를 게 뭔가?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남편이 똑같이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눈에 나는 가정주부로, 집안일만 하면 되고 바깥일은 신경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자기 집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 하는데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한바탕 울고 나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자주 남편의 사업장에 가서 남편을 감시했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면 얼른 쫓아가 누가 전화했냐고 물었다. 저녁에 일갔다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디 놀러 갔었어요? 거기에 누가 있었죠?” 나는 늘 트집을 잡아 그의 결점을 들춰냈다. 남편은 내가 항상 이런 것들을 물어서 귀찮아했다. 평소에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내 눈에 거슬리고 안심이 안 되어서, 항상 내 기준에 맞춰서 일하고 내 말을 들으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우리 둘은 늘 티격태격하며 시끄럽게 싸웠고, 아이는 항상 놀라서 문 뒤에 숨었다. 차츰 남편은 시간만 나면 놀러 나가고 잡담을 하러 사람들을 만나며 일부러 나를 피했다. 집에 들어오는 것은 밥 먹고, 잠자기 위한 것이고, 집을 마치 식당이나 호텔로 여겼다. 나는 점점 남편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성격은 점점 나빠졌고, 온종일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무척 피곤했다. 의사는 내가 오랜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며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길 바라기에 나도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애써도 다 소용이 없었다. 남편이 내 뜻과 맞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크게 화를 냈고, 남편과도 점점 서로 말이 없어져서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꿔야 할지 몰랐다. 내가 울적하고 무력하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임했다. 하루는 친척이 나를 찾아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간증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괴로움을 이야기했고, 친척은 나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이번에 말씀을 선포하러 오신 것은 인간의 죄를 철저히 없애고, 우리를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구원하시고, 더 이상 사탄의 타락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려는 거예요.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사람에 대해 용서하고, 포용하며, 이해하게 하려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더 이상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듣고 나서 하나님을 믿으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본 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였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임을 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마음을 활짝 열고 본인이 겪은 일에서 어떤 타락함이 나타났고, 그 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자신의 타락함을 해결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해 나눴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의 마음은 밝아졌고, 그들도 부러웠다. 이런 생활이 난 너무 좋았다! 형제자매들은 나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에게 고백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면 하나님은 분명 들으실 것이라고 교제해 주었다. 나는 나의 어려움을 하나님에게 털어놓으며 내가 더 이상 이렇게 남편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점차 나의 마음에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어느 모임 때, 남편과 자주 부딪치는 어려움을 형제자매에게 말했고, 정 자매가 나에게 말했다. “이런 어려움은 누구나 다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 주인 노릇을 하고 싶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지만, 이건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에요. 우리가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은 다 사탄의 괴롭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본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했어요.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우러러보았어요. 나중에 사탄이 하와를 유혹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했어요.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었어요.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서로 불복 하지 않고, 상대방을 다스리려고 했어요.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킨 후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진상과 근원을 전부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보여주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어요.” 자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해방되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있는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고, 타락한 성품을 벗어나는 데에도 희망이 생겼다. 정 자매는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매는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우리는 남들이 본인의 말을 듣게 하고 싶고, 항상 남을 다스리고, 억누르고 싶어 해요. 이건 사탄의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고,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킨 후 생긴 성품이에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고, 인류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했어요. 율법시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계명을 반포했고, 사람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도록 했어요. 은혜시대 예수님은 또 사람이 인내하고, 포용하도록 가르쳤지만, 우리 인류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몇 안 되었어요. 특히 말세의 오늘날, 우리는 사탄에게 더욱더 심하게 타락되어 다 교만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중심이 되려고 해요. 남이 한 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시콜콜 따지죠. 그래서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기 어렵고, 자신도 고통 속에서 살아요...” 자매의 나눔을 들으면서 나는 남편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모두 내가 사탄에게 타락되었고, 너무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주인 노릇을 하고 싶었고, 내가 권력을 쥐고 내 말대로 결정해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마침내 나만의 작은 세계가 생겼다. 나는 남편, 아이를 내가 명령을 내리는 대상으로 여겼고, 가족이 모두 나를 따라야 기뻐했다.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발대발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늘 남편을 다스리려고 했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나의 의견을 구하게 하고 내 동의를 받게 해서 남편이 나를 멀리하고, 나를 피하게 되었고, 나는 고통 속에서 시련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고통을 받은 것이 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권력을 잡아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았다. 자매는 또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겨 그 어떤 잘못된 점도 없고 심지어는 그것이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 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고 보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때,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나의 상황이었다. 예전에 나는 정조를 지키는 사상 관념이 맞다고 여겼고, 자신을 너무 높고 좋게 보며,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교만한 사탄의 성품이고, 비열하고 추악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이 교만한 성품을 없애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만 사람의 모양으로 살 수 있다. 그 후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께 내가 진리를 행하도록 인도하시고 더 이상 집에서 주인 노릇하며 남편을 단속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나는 점차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배웠고, 더 이상 남편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내가 사탄 성품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내 뜻대로 남편을 대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나는 외출해서 본분을 마치고 막 집에 돌아왔다. 이때, 내 친척도 차를 집 입구까지 몰고 와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건 이 집에서 산 제면기인데, 제가 갖다 드리러 왔어요.” 그는 말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고 나는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산 걸 제가 어떻게 모르죠? 집에는 둘만 있고, 일 년에 겨우 찐빵 몇 번 먹을 뿐인데, 기계를 사면 자리만 차지하지 않겠어요? 나도 몇 번 사용하지 않는데.” 친척이 웃으며 말했다. “샀으니까 쓰세요.” 이때, 나는 또 남편한테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큰일도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하다니, 돌아오면 두고 보자!” 이때,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탄의 성품이 또 작용한 것이다. 안되겠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또 소란을 떨면 안돼.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또 제 마음과 맞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 일로 화를 내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저는 육체를 배반하기 원하고, 낮아지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혹시 이번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 원인은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힘을 써서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지 육체를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네가 이렇게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예전에 나는 이 진리를 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교만한 본성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했다. 남편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나와 상의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니 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 한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당신이 산 제면기를 친척이 갖다 줬어요. 어서 코드를 꽂아봐요.” 남편은 나를 힐끗 보더니 “당신 화 안 났어? 지금 날씨도 덥고 당신이 면을 미는 게 힘들까 봐 샀어.” 나는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당신이 돌아오면 결판을 내려고 했죠. 하지만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이 떠올라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저를 인도하셔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알게 해달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지금 너희에게 간단한 실행법을 하나 알려 주겠다. 먼저 자신의 속셈과 이익 그리고 개인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면 네 안의 정형에 부지중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하나님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느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동력이 있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이렇게 사는 것이 의의 있고 마음이 윤택해지며 심령이 안정되고 평안하며 누림이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성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이 일에서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이기심과 이익을 내려놓았어요. 자신을 만족시키지 않고 말씀대로 행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요. 이렇게 사니까 힘이 나고, 자신을 내려놓는 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에요. 이렇게 하니까 마음도 평안하고 뿌듯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지켜주셨어요. 그동안 우리 둘이 안 맞았던 것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항상 당신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고, 늘 당신을 다스리려고 했어요. 지금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길 원해요.” 남편이 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네. 당신한테서 기적을 봤어. 정말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어!”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너무 기쁘고, 비할 바 없이 즐거웠다. 마음속으로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얼마 동안의 협력을 거쳐서 남편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함께 교회 생활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을 불렀다. 이때부터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이 권력을 잡았다. 매일 기쁨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며,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오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이 이루신 결실이다! 예전에 나는 항상 사탄의 교만한 성품에 의해 살면서 남편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고, 남편이 듣지 않으면 말다툼을 해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스스로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구원하고 변화시켰다. 나에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똑똑히 보여주시고, 더 이상 본성에 의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하여 살게 하셨다. 지금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생겼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누리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왜 크리스천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삶은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그러면 왜 지금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예를 들면, 직장 일로 인한 스트레스, 자녀에 대한 걱정, 가족들과의 불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앞날이 막막해지는 등등 …… 주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 28~30) 주님은 신실하시므로 말씀하신 대로 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지난날 우리도 영이 안정되고 평안한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령이 갑절로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갈급해하고 사모하였으며, 또한 있는 힘껏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 주셨으며, 우리들로 영 안에서 안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마음은 세속에 얽매여 있는데, 설령 육체는 만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갈급함은 오히려 해결받지 못하였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야 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이 말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비물질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비록 하나님이 너에게 모든 물질적 필요를 공급해 줄 수도 있지만 너의 물질적 필요가 만족을 얻었을 때 이런 물질이 너에게 가져다준 만족은 진리에 대한 너의 추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아주 뚜렸한바, 대체할 수 없다!……내가 예를 하나 들겠다. 네가 배가 고플 때 음식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이 음식은 좀 좋아도 괜찮고 좀 별로 여도 괜찮다. 네가 배불리만 먹으면 배고픈 그 느낌은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며,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도 잠잠해질 수 있고 너의 육체가 편히 쉴 수도 있다. 사람의 배고픔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제로라고 느낄 때 너의 심령의 공허한 느낌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또는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너의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께 구원 받는 것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성정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했다면 너는 아주 조급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이런 느낌은 너의 심령에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고, 일부 사람들은 몇몇 괜찮은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일부 사람들은 한숨 푹 자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보거나 본분을 하는 방면에 공을 많이 들이고 힘을 많이 쓰는데, 이런 것이 너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행실에 대해 너희는 모두 깊은 체험이 있다. 네가 힘에 부침을 느낄 때, 너로 하여금 진리의 실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나님의 깨우침 얻기를 매우 사모하고 있음을 느낄 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너에게 필요한 것은 한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고 몇 마디 마음에 딱 맞는 말도 아니며 더욱이 육체가 잠시적인 안일과 만족을 얻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하라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알려주고 너에게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이런 것을 깨달은 후에는 설령 소소한 것일지라도 너의 심령이 한 끼 배불리 먹는 것보다 더 만족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심령이 만족을 얻었을 때는 너의 심령이나 너의 온 몸과 마음이 진정한 안식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일을 이렇게 비유하고 이렇게 분석하니, 너희는 지금 왜 내가 너희에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는 이 말씀을 보라고 하는지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의 뜻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전부는 네가 전에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물건이나 사람을 포함한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약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심령의 안식을 얻고 싶어한다면,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따르고, 하나님이 현실에서 하시는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은혜시대, 주 예수께서 사람이 회개하도록 하는 도(道)를 발표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포용하고, 인내하고,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바로 죄사함을 받고 영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는 당시에 구속 사역만 하였을 뿐, 죄를 제거하는 사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 후기가 되어 사람은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사람이 죄를 범하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철저히 해결해야만이, 사람이 더 이상 사탄에게 훼방받지 않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시대 구속 사역의 기초 위에서 또 말세에 사람의 패괴 성정을 철저히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였고, 가장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에게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추구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요한복음 16:13) 지금 예수님의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예수님은 일찍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펼쳐 말세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전개하였고, 인류에게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뭇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발표하신 말씀에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어떻게 성정 변화에 도달하고, 어떻게 인류의 패괴 실질을 인식해야 하는가 등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진리는 전부 사람의 생명에 필요한 것입니다. 무릇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순복하는 형제자매들은 성령의 역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상, 직장, 가정, 인간관계를 대하는 진리 원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정 변화의 길을 찾았고, 성령 역사의 인도하에 점점 더 홀가분하고 유쾌하게 되었으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고,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며,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아야만 생명이 자랄 수 있고,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심령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가정도 행복하고 사업도 성공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젊은 나이에 공장을 운영하고 차와 집 그리고 자녀도 있어 정말 출세한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일이 바쁘다 보니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았고, 너무 과로해서 그런 거니 조금 쉬면 좋아질거라 생각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결국 몸이 더 심하게 아파오자 그때서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유방암 말기입니다. 조금 일찍 오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이 상태로는 치료하기가 힘들고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녀는 고통 속에 빠져들었고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그때 느낌이 좋지 않을 때, 왜 일찍 검사 받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고 사업도 성공했으며 가정도 아주 행복했지만,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이 그녀와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은 아직 젊어 다시 결혼할 수 있고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엄마”라 부를 것이며 집과 차의 주인도 다른 사람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상심의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록 남편과 자식이 그녀를 놓치기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죽음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녀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 추구하는 명리와 지위는 모두 허망하고 아무런 가치와 의의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돈과 세력이 있고 집과 차도 있지만 마지막에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이 일생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헛되이 살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혈육간의 정, 돈과 명리이며 사람은 혈육간의 정, 돈과 명리를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 비록 사람들이 다 운명이 기구하다고 원망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람은 왜 살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삶의 가치와 의미”, 사람이 가장 잘 알아야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이런 문제를 뒷전에 두고 일생이 몇 년이든 사람의 청춘이 다하기까지, 귀밑머리 백발이 되기까지, 얼굴이 노화되기까지, 명리가 사람이 노쇠해지는 걸음을 막지 못하고 돈이 사람의 심령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하기까지, 누구나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누구나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오로지 명리를 추구하기 위해 바삐 뛰어다닌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인생 중의 마지막 고비에 직면할 때에서야 사람이 설사 거액의 재산이 있고 고귀한 신분과 대단한 지위가 있다 하더라도 다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다 필연적으로 그의 원래 위치로 즉,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고독한 영혼으로 돌아갈 것임을 진정 깨닫게 된다…… 사람이 곧 죽게 될 때에야 사람은 평생을 쏟아부어 추구했던 것들이 본래 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하나도 붙잡을 수 없고 어느 하나도 가져갈 수 없고 어느 하나도 사람에게 죽음을 피하게 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하나도 고독한 영혼의 귀로 가운데서의 위로나 동반자가 될 수 없고 더욱이 어느 하나도 사람을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한평생 다 돈과 명리를 추구하며 이 양자를 목숨을 건지는 지푸라기로 삼고 유일한 받침대로 삼는데, 마치 돈과 명리를 가지면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고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올 때에야 사람은 돈과 명리가 사람에게 그렇게 요원하고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연약하고 힘없고 이처럼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며,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고독하고 의지가지없고 이처럼 무력하며, 원래 사람의 생명은 돈과 명리로 바꿔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든지 얼마나 높은 지위가 있든지 죽음 앞에서는 다 마찬가지로 빈궁하고 미소하며,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없고 명리가 사람의 죽음을 면케 할 수 없으며, 돈이든 아니면 명리든 다 사람의 수명을 일분일초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을수록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고,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을수록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무서워한다. 이때서야 사람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진정 발견하게 되고 또한 사람이 살든 죽든 다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이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진정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세상의 돈·지위·명예를 추구하면 결국엔 모두다 헛된 것임을 알려 줍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이런 것들은 사람의 생명을 1분 1초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생사는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원래 위치인,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고독한 영혼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조물주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주재를 체험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하나의 피조된 인류의 본분을 다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얻기 어려운 한번의 기회로 삼는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정확한 인생관이 있을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축복과 인도 아래에서 살 것이며 틀림없이 조물주의 빛 속에서 거닐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주재를 인식할 것이며 틀림없이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할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한 틀림없이 조물주의 권세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말할 필요없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조물주가 사랑하고 열납하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이라야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하는 태도가 있을 수 있고 인생의 마지막 한 고비를 흔쾌히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저는 사람의 모든 것은 조물주께로부터 온 것이고 결국에는 다시 주물주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조물주께서 배치해 놓으시고 정하신 것으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다 자신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배치하시는 것에 대해 진실로 인식하게 될 때, 조물주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할 것이며 진리에 대한 추구와 하나님을 알기 위한 추구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주재와 권세를 체험하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이러면 명리·지위·돈의 유혹을 담담하게 대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포함해 생활 가운데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또 마땅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의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창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때는 조물주의 축복 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생활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하며,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손에 맡겨 조물주께서 주재하시고 배치하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가치와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당일치기 농장여행 — 창조주의 기묘한 행사에 감탄하며

떠들썩한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길을 따라 유기농 농장을 하고 있는 친구네로 놀러 갔다. 멋들어진 경치와 푸른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눈앞에 펼쳐졌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왔다.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탁 트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향기로운 꽃 내음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봄의 숨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홍색, 노란색, 흰색, 보라색의 야생화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허리를 숙여 자세히 보니 풀숲에는 작은 달팽이도 있었다. 가만히 귀 기울이자 작은 곤충들이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멀리 바라 보니 밭에는 가지런하게 줄 맞춘 채소들이 너도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고, 귓가를 간지럽히는 새소리가 농부 아저씨의 바쁜 발걸음을 뒤쫓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농장 주변의 작은 나무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친구가 다가와 농장에 있는 것은 모두 유기농 채소, 유기농 과일이며 화학비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에 작은 나무숲이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뿌린 농약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친구 덕분에 농작물을 키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땅을 갖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흙이 아주 부드러웠고 간간이 알갱이들도 보였다. 알갱이는 지렁이나 다른 작은 동물들의 배설물과 세균이 뭉쳐진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땅이 건조할 때면 작은 알갱이들이 수분을 내뿜어 땅이 마르지 않게 해 주고,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밭 옆에 있는 샛길을 따라가니 주변에 자유롭게 자라난 무성한 잡초가 보였다. ‘설마 농부 아저씨가 너무 게을러서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신 건가?’ 사실, 이 잡초는 일부러 남겨둔 거였다. 왜냐하면 잡초는 땅이 사라지지 않게 막는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폭우가 지날 때면, 토양의 수분을 흡수해 채소나 과일의 뿌리가 물에 잠겨 썩지 않도록 해준다. 왕바랭이처럼 꼭 뽑아줘야 하는 잡초도 농부 아저씨는 뽑은 후에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뽑은 잡초의 뿌리를 위로 가게 하여 농작물 옆에 두어 잡초 자체는 말라 죽더라도 잡초의 양분이 천연 비료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잡초더미에서 진귀한 약초를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의 습열을 빼주고, 붓기를 가라앉히며 독소 배출에 도움이 되는 고들빼기, 해독 효과가 있는 까마중, 부기를 빼주는 민들레, 결석을 예방해주는 질경이, 덩굴식물인 인동 덩굴 꽃과 나팔꽃까지… 사방에 보물이 깔려 있었다! 농민들은 굳이 제초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예상 밖의 수확도 얻을 수 있었다. 밭에는 강낭콩, 완두콩이 심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옥수수와 회향차가 심겨져 있었다. 친구는 여러 가지 식물을 같이 심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 줬다. 콩과 옥수수를 같이 심으면 콩에 있는 니트로게나아제라는 신비한 물질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질소를 잡아 주어 옥수수에 전달해 주고, 옥수숫대는 콩이 자랄 수 있는 넝쿨이 되어 콩이 햇볕을 더 잘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초록빛으로 빛나는 채소밭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채소에 해충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건 농부 아저씨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자연생태환경을 유지하기만 하면 농약 없이도 채소 자체에 방어 능력이 있어 독특한 향으로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여 채소에 붙어있는 해충을 모두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참으로 신비로웠다! “저기 뱀이 있어요!” 멀리서 한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의 침착한 표정을 보면서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있지? 나라면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을 텐데.’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농장에 있는 여러 가지 동물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이었다. 게다가 뱀도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뱀은 농작물을 해치는 쥐를 잡아먹어 농작물을 보호해준다. 그 외에 농장에는 꿀벌, 거미, 달팽이, 여러 가지 새, 하늘소, 두꺼비, 거북이 등도 있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역할을 발휘해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해 주었고, 생태환경의 균형을 유지해 주었다. “꼬끼오…” 닭 울음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농장에는 많은 닭들도 키우고 있었다. 친구는 닭이 알도 낳고, 해충도 잡는다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뿔닭은 움직임이 굉장히 빨라 벌레를 잘 잡는다. 농부들은 뿔닭을 꽃밭에서 키워 해충도 잡아먹고 잡초들도 정리하게 했다. 닭이 다닐 수 있게 길만 만들어 놓으면 꽃밭을 헤집어 놓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닭의 분뇨는 개화 식물의 가장 좋은 천연 비료였다. “멍멍멍…” 똑똑한 목양견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양견은 경비처럼 농장의 가축들을 감시하며 농장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가축들이 길을 잃거나 도망가지 않도록 막으면서도 승냥이의 공격을 받지 않게 보호해 주기도 했다. 목양견은 농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우미였다.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마음으로 느껴 보니 이곳의 모든 것은 나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때,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보내 주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은 각각의 형태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각각의 방식으로 그것의 생명력과 생명의 형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만물의 성장 법칙, 성장 과정, 성장 방식을 정하였으며 또 만물이 이 땅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상호 의존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해 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법칙과 방식이 있기 때문에 만물은 이 땅에서 무사히 생존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안락한 삶의 터전과 생존 환경을 갖고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만물의 생존 규율과 법칙을 정해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정해 준 규칙에 따라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지렁이가 흙을 부드럽게 하면서 자신의 배설물로 땅이 마르지 않도록 하여 농작물에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도, 채소가 해충을 막기 위해 냄새로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여 해충을 없애는 것도, 잡초가 토양이 없어지지 않도록 막고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콩이 옥수수에 질소 비료를 제공하고, 옥수수가 콩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뱀이 쥐를 잡고, 닭이 해충을 잡고 잡초를 제거하는 것도, 개가 인간을 도와 가축을 보호하는 것도… 이런 일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살고,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이 있어, 만물은 이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고 인류 역시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누리게 되어 자자손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권능의 체현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이시고, 안배를 잘해주셔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창조주께서 주재하시고 공급해주신 신비한 환경 속에서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천연 식물을 누리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규율을 모든 이가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삼림을 벌채하고, 농약을 써가며 농작물을 경작하고, 물과 공기는 오염 되었고, 동물들은 도축 당하고 있다. … 사람과 만물의 관계는 더불어 살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관계였다. 생태계가 깨지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류에게 돌아오게 된다. 지금 우리는 유기농 채소를 먹기조차 힘들고, 깨끗한 공기로 호흡할 권리조차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원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갈수록 여러 질병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어떤 태도로 만물을 대해야 하겠느냐? (아껴야 합니다.) 아끼고 보호하며 효과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파괴하지 말고 낭비하지 말며 제멋대로 변경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실천할 길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만물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율과 법칙에 따르는 법을 배우고, 효율적으로 이를 이용하여 더는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여러 가지 공급을 받을 수 있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아름다운 노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러기 떼가 대형을 바꿔가며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세상 만물이 창조주의 역사를 보여 주는 모습에, 창조주를 향한 무한한 감사와 찬미를 바친다!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며, 행복한 이유도 모두 다르다. 단란한 가정을 이뤘을 때, 명예와 이익을 얻었을 때, 재산이 많았을 때…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채워 주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잠시의 행복이 아닌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생사를 오가는 수술, 하나님의 보호로 무사히 마치다

수술 성공률은 20%, 1년을 넘기지 못한다… 위중한 상태인 딸의 병세를 마주한 그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딸도 기적처럼 완쾌되었다.

어떻게 웹소설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오늘날 웹소설은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출근할 때도, 차에 탔을 때도, 심지어 신호등의 녹색불을 기다릴 때도 소설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한 권 그리고 한 권을 읽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상 속에 사는 건 아편을 피우는 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웹소설에 깊이 빠졌던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5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는 한 가게에서 숙제를 마치고 무의식적으로 점원이 테이블위에 놓은 두꺼운 책 2권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몇 장을 넘겨보니 그 책들은 바로 무협 소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시간을 때울 때 소설을 보았습니다. 산 중에 사는 몇몇 무림고수가 의롭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고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이같이 ‘멋진’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방학 내내 소설에 빠져 지냈고 ‘내가 이 고수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자 저는 속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저의 유일한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세상만이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해주었습니다.나는 조금씩 소설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소설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또 소설을 보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전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어쩔 수 없이 며칠은 ‘얌전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이 계속 불안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결국 전 참지 못하고 다시 소설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전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소설을 보았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소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소설을 한 편 더 보는 게 낫지’. 전 배가 고파도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정신이 온통 몽롱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져 버려서 길을 걸을 때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잠시라도 소설을 안 보면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워져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주신 급식비마저 웹소설을 보는 데 썼습니다. 낮에 학교에 있을 때는 배고픈 것을 참고 저녁에 집에 와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위장도 상했습니다. 심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널려있는 이불에 실수로 불이 붙게 했습니다. 동생이 절 불렀지만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불을 끄고 절 혼내실 때야 밖에 불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소설에 빠진 저를 여러 번 타일렀지만 전 부모님의 말씀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은 제 책가방을 검사해 소설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갑작스레 저의 방에 들어와 제가 몰래 소설을 보고 있지는 않나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찢거나 대여 카드를 태웠고, 아니면 책을 그대로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쓰셨지만 제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전 여전히 소설의 세상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제가 소설 속 캐릭터가 된 환상을 가졌습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소설 줄거리만 생각했고 꿈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져서 잠을 깬 후에도 눈을 감고 꿈 속의 줄거리를 되새겼습니다. 전 평생 이 같은 세상 속에 살고만 싶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차에 치여 죽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종일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제 정신은 온통 혼미해졌고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소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활발했던 제 성격도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지어 가족과의 대화도 꺼려졌습니다. 정상이던 시력도 근시가 매우 심해졌고 성적은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한 저는 취직을 한 후에는 소설에 더욱 빠져 지냈습니다. 가끔은 밤새 소설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오면 가끔은 소설이 지겨워져서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회했습니다. 소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기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고통을 받던 저는 소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어머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너무 졸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신나지 않아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게 예배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예배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볼 때는 머릿속에 여전히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2015년,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온 후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제가 소설에 심취한 건 사실 인터넷 게임과 같이 모두 사악한 풍조에 속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고 소설 속 세상에 완전히 심취했습니다. 착하고 말을 잘 듣던 저는 괴팍하고 유별나게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항상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소설이 아닌 것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 육체를 배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인터넷 게임이나 소설 속에 사는 걸 싫어하십니다. 저희가 사탄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저 역시 육체를 배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 절 웹소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전 사악한 풍조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안 보기 시작한 첫째 날, 저는 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 날, 전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소설 줄거리뿐이었고 좌불안석으로 있으면서 휴대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렸던 말씀을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나님도 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이렇게 전 결국 소설을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마치 뱀과 같아 본질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목적을 전부 달성할 때는 네가 곧 목숨을 잃을 때이다.』 그러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소설만 본다면 사탄에게 야금야금 삼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마음속으로 육체를 배반하고 소설을 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우선 하나님에게 다짐 하지 말아야겠어. 오늘 밤에 다짐을 해버리고 소설을 안 보면 앞으로는 다신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오늘 밤까지만 보고 내일 다시 다짐해야지!’ 이렇게 전 다시 휴대폰을 열고 밤새도록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을 보는과정에 저의 마음속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걸 알았고 사탄에게 속히고 참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전 자책을 하며 고통 속에서 밤새 소설을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늘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습니다. 저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제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전 재빨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 비록 육체를 배반할 마음은 있었지만 진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억제하다 보니 결심을 행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울 때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알았습니다. 소설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독약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끊을 수가 없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의 생활을 잃게 만듭니다. 이 모든 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한 계략인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항상 온갖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함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희는 진리도 없고 분별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항상 속임을 당하고 사탄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참해를 당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그 결과를 알게 되자 전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절 구원해주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설로 고통받던 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야 사탄이 횡행하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전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또 본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달갑게 받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또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다짐을 생각하니 소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휴대폰 화면만 계속 만지작댔습니다.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육체를 배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설의 줄거리도 조금씩 희미해졌고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전 소설을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점점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날마다 알차게 생활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야만 시험과 함정으로 가득한 사악한 세계에서 저 자신을 지키고 사탄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하나님의 집에서 본분을 하며 매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희는 마음의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합니다. 기쁠 때는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며 힘든 일 앞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교통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저는 웹소설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허망에서 걸어 나와 진정한 하나님을 경배하다

요즘 '남신, 여신'이라는 칭호가 핫 키워드, 유행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툭하면 '내 남신님, 내 여신님'에 대해 말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10대 여신, 10대 남신, 국민 남신, 국민 여신」이라는 타이틀로 스타, 우상의 랭킹을 검색 포털 사이트에 게시하며 「남신, 여신」과 관련된 뉴스와 포스팅도 사람들의 시야에 계속 노출되고 있습니다. 공인된 중국 10대 여신 랭킹, 2014년 아시아 은둔형 남신∙여신 랭킹 등의 타이틀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제의 여왕, 사진의 여왕, 여자 아나운서 랭킹, 뒤태 여신, 얼굴 여신, 조교 여신 등 참으로 다양한 내용의 타이틀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진 사람을 '남신', '여신'이라 정의하는데, '신'이라 불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스타, 위인이며 일부는 마음속으로 선망하는 이성을 '나의 여신' 혹은 '나의 남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이 '남신', '여신'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남신', '여신'의 기준은 얼굴이 아름답고 기품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포스팅에서는 '내가 4년 동안 좋아했던 대학교 여선배는 여신입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집안에 돈도 많은 세력가 출신인 데다가 공부까지 엄청 잘합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할 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도 격이 느껴지는 그녀는 능력, 외모, 재력 모두 겸비한 나의 여신님입니다. 저는 항상 그녀를 경배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가장 중요한 점은 그녀가 아무리 못생기고 우악스럽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그녀가 여신같이 느껴진다면 그녀가 바로 여신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남신, 여신'이 요즘 사람들의 입에 마구잡이로 오르내리거나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남신,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느끼는 흥분 혹은 냉담한 반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신'이라는 신성한 글자가 말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흐릿해졌고 철저하게 잘못된 해석으로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그 진정한 의미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는 상황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천지신명'이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어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 사람들은 공허, 정욕, 먹고 마시며 놀고 즐기는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아무 사람을 데려다가 신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도 '남신', '여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아는 사람이 이제는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그분이 어떻게 인류를 대할 것이며, 어떻게 패괴가 극에 달하는 인류의 처소를 안배하실 것인지, 이런 인류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화제에 관심을 갖거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비애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가 나락으로 추락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진짜 신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인류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대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 만물을 창조신 주재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고, 하나님은 만물을 관리하는 그분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유를 관리하는 동시에 또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을 해 주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위이고, 하나님의 신분이다. 만유에게 있어서, 만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은 창조주이자, 또한 만물의 주재자이다. 하나님은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는데, 만물 가운데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인류 가운데 있는 것이든, 영계에 있는 것이든,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방식이나 혹은 그 어떤 핑계로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신분과 그런 능력, 그런 권병을 지니고 만물을 주재할 수 있는 분은 만물 가운데 오직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곧 우리의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다. 그분은 만물 가운데서 살고 만물 가운데서 거닌다. 그분은 지극히 높이 올라 만물 위에 계실 수도 있고, 낮추어 사람이 되고 피와 살이 있는 사람 중의 일원이 되어 사람들과 대면하고, 사람들과 동고동락할 수도 있다. 동시에 그분은 만유를 주관하고 있고, 만유의 운명을 결정하며, 만유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그분은 더욱더 전 인류의 운명을 인도하고 있고, 전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인도하고 있다. 이런 하나님은 생명이 있는 그 어떤 사람이든 다 마땅히 경배하고 순복해야 할 분이고,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할 분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짜 신분은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은 모두 그분이 관장하시며 그분의 권병으로 만물의 생존 규율과 법칙을 제정해 만물의 경계를 확정하며 만물에게 자양을 공급하시어 인류의 안정적인 생존 환경을 부여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피조물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실질은 하나님께서 창세 초에 땅의 흙먼지를 사용하여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결을 피조물에게 부여해 인간에게 생명의 공급이 있은 다음부터 사람은 생존하고 번성해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만물 창조의 권병을 지니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만물을 관장하는 권병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패괴되어 거만한 안하무인, 겉보기엔 온화해 보이나 속은 시커먼 마음, 자만심, 사악 음란, 이기적이고 비열한 등등의 패괴 성정을 온몸에 지니게 됐습니다. 이런 패괴되고 썩어버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하게 거론될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떻게 '신'으로 불릴 수 있겠습니까? 아첨과 아첨을 받는 자의 배후에는 숨길 수 없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익 분쟁, 서로를 기만하고 음란 타락에 빠지거나 취생몽사에 빠지는 모습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팬들이나 연애 중인 사람이 말하는 남신, 여신은 본질은 사탄의 패괴에 빠진 후 사탄 본성이 충만한 피조물이며 그들은 창조주인 하나님과 같이 거론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이 '신'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사람이며 이는 영원불변의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게시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남신, 여신'이라는 사회적 현상의 배후에 사탄에 패괴된 사람이 숨겨져 있으며 사람을 집어삼키는 음모 계략이 존재함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사탄은 사람을 심히 패괴시켜 세계를 사악하고 더럽게 만들고 사람을 그것과 야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하려고 망상하고 있다. …』 『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배경에서든 하나님을 다른 인ㆍ사ㆍ물과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얼마나 알기 어렵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여기든, 사탄의 행실이나 논법이 얼마나 너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든, 얼마나 너를 만족시키든 너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개념이 헷갈리지 말고, 하나님의 존재를 거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부인하지 말고, 하나님을 문밖으로 밀어내면서 사탄을 끌어와 네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대신하지 말고, 너의 하나님으로 삼지 말라. 이렇게 하는 결과는 무엇일지, 너희는 모두 생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고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람이 더럽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존재인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남신, 여신'이라 불리는 패괴된 인류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으로 섬기게 하고 경배, 숭배하게 하려는 망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신분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허망 속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사는 사람은 사탄의 계략에 빠진 것이며 이런 우상은 모두 사람을 미혹시키기 위해 사탄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사탄과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결과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야말로 사람을 미혹시키고 패괴시키며 사람을 집어삼키는 화근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원히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진리를 깨우치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만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을 통해 진리를 발표하고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이를 통해 수천 년 동안 잘못되어 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오류를 수정하며 정갈한 사람의 패괴 성정을 심판해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알게 하며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고 또 인류 생존과 존망을 관장하는지 등등을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갖게 된 후에야 하나님이야말로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찬미를 보낼 수 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배할 때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지극히 거룩하고 존귀하며 지극히 높은 유일한 경배 대상이 되고,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여호와의 약속 가운데서 산 것처럼, 하나님이 태초에 만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산 것처럼 전 인류가 모두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나는 각 민족과 각 국가 심지어 각 분야의 사람들까지 모두 다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인류의 운명에 관심을 돌리기를 권고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지상에 강림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아직도 '다신론'을 믿는 사람들이 더는 무지몽매하지 않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하루빨리 '남신, 여'의 허망 속에서 걸어 나와 시야를 밝혀 조물주의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역사에 발맞추어 정정당당하게 참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상: 사탄은 각양각색의 수단을 이용합니다. 사회 조류, 위인, 저명인사의 말, 과학 지식으로 사람을 미혹시키고 유인하며 사람을 구속해 사람들의 사상 의식은 이런 것들로 단단히 묶여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점령했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리와 광명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런 사악한 사회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사탄의 시험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바로 진실한 경배를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