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2018년 10월 11일

하나님 말씀 답:

『사람은 모두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니, 사람이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그분은 꼭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매우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끝까지 따르는데, 그분이 그래 사람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또한 공의로운 성품으로써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그러나 내가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모두 적합한 조건이 있다. 내가 요구한 것을 누구든지 다 달해야 한다. 나는 너의 자력(資歷)이 얼마나 깊은가, 자격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지 않고, 다만 네가 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진리를 애모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볼 뿐이다. 네가 만일 진리가 없고 반대로 내 이름을 모욕하며 나의 도에 따라 행하지 않고 다만 근심 걱정없이 따를 뿐이라면, 그때는 너의 악으로 인하여 너를 격살하고 너를 징벌할 것이다. 네가 그래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네가 그래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내가 한 말을 네가 다 준수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내가 칭찬한다. 너는 네가 줄곧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통받고 모진 고생을 하면서 하나님과 고락을 함께 하고 환난을 함께 하였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한 말씀은 네가 살아내지 못하였다.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따라 뛰어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너는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려고 생각지도 않는다. 너는, 어차피 네가 하나님을 공의로운 분이라 믿고 그를 위해 고통받고 그를 위해 뛰어다니고 그를 위해 봉헌하였으니 공로는 없어도 고생한 보람이 있기에 그가 확실히 너를 기념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롭다는 이것은 틀림없지만, 이 공의 중에 잡질이 뒤섞여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체의 것이 뒤섞여있지 않고 사람의 거래가 뒤섞여있지 않다. 무릇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그의 도를 준수하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도 용서치 않고 누구도 놓아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제가 지금 당신을 위해 뛰어다니면 최후에 당신이 저에게 얼마간의 축복을 줄 수 있겠지요?”라고 묻는데, 그럼 내가 너에게 묻겠다. “내가 한 말을 네가 준수하였느냐?” 네가 말한 공의는 거래에 따라 말한 것이다. 너는 단지 내가 공의로운 분이니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할 수 없고 무릇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라면 꼭 구원을 얻을 것이고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라면 꼭 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 고려한다. “끝까지 따르는 자는 꼭 구원을 얻으리라”고 내가 한 이 말은 내포된 뜻이 있다.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나에게 완전히 얻어진 사람이고, 나에게 정복된 후 진리를 찾고 구하여 온전케 된 사람이다. 너는 몇 가지나 달하였는가? 너는 단지 끝까지 따른다는 데에 달하였다. 그 외에는 달하였는가? 너는 나의 말을 준행하였는가? 내가 다섯 가지 요구를 제기하면, 너는 한가지만 달하고 그 외의 네 가지는 달하려 하지도 않고 가장 간단하고 수월한 한 갈래 길을 찾아서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 추구하는데, 나의 공의로운 성품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다만 형벌이고 심판이고 공의로운 보응이며,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다. 무릇 나의 도를 준행하지 않는 사람은 설사 끝까지 따른다 할지라도 꼭 징벌받을 것이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공의이다.』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신앙 문답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가운데의 ‘따른다’의 그 내포된 뜻은 바로 환난 중에서 굳게 선다는 것이다. 현재에 많은 사람들은 따르는 것을 상당히 쉬운 일로 여긴다. 그러나 사역이 곧 끝날 때가 되면 네가 ‘따른다’의 내포된 뜻을 알게 되는데, 네가 정복을 받아들인 후 현재에 여전히 따를 수 있다 하여 너를 온전케 될 대상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을 이겨낼 수 없고 환난 중에서 이길 수 없는 그 사람들은 최종에 꼭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은 모두 공정(工程)의 검증을 겪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조만간 모두 쫓겨날 것이지만, 이기는 자는 국도에 존류하게 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고 구하는 사람인가의 여부는 공정의 검증에 의해서야, 즉 시련에 의해서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스스로 규정하는 데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마음대로 저버리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한다. 그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일과 사람이 탄복하지 않는 사역을 하지도 않는다. 참 믿음인가 아니면 거짓 믿음인가 하는 것은 모두 사실로써 검증한다. 이것은 사람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밀이 가라지로 될 수 없고 가라지가 밀로 될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최종에 모두 국도 중에 존류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느 한 사람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이대로 따르면 틀림없이 얻을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마지막 끝까지 따르고, 본분을 하면서 힘껏 화비(花費)하고 다 포기하면 과오가 좀 있다 해도 나는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 안에 패괴된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변화될 수 있겠는가?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놓고 볼 때 만일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수시로 넘어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는가? 네가 스스로 자신을 억제한다 해도 끝까지 갈 수 없다. 마지막 이 단계는 한패의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는데,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겠는가? 최종에 사람에게 100% 또는 80%정도 변화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30%, 40%정도의 변화는 있어야 하고, 적어도 너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힌 것들을 찾아 내어 변화시켜야 한다. 네가 하나님이 요구한 30% 내지 40%정도의 요소에 달할 수 있다면, 가장 좋기는 60% 내지 70%정도의 요소에 달한다면, 너의 안에 진리가 좀 구비되고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재차 일이 닥칠 때에는 경솔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게 된다. 이래야만 최종에 온전케 되고 약속을 얻는 데에 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이렇게 여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집회하고 노래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본분이 있으면 본분을 하는 이런 것이 아닌가?’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이 의의에 대해 아직도 꿰뚫어보지 못하였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의의는 너무 깊어 사람이 확실히 짐작할 수가 없다. 최종에 이르러 사람 안에 있는 사탄에게 속한 것들과 사람의 본성의 것들이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고 진리의 요구와 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 참으로 구원에 이른 것이다. 네가 여전히 종교에 있을 때처럼 글귀 도리와 구호만 외치고 또 조금의 행동이나 좋은 행실이 있고, 즉 죄를 짓는 어떤 일은 네가 해낼 수 없고 뚜렷한 그런 죄는 범하지 않는다 해도 네가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섰음을 대표하지 않는다. 네가 규례를 지킬 수 있다 하여 올바른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가? 네가 옳게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는가? 본성 안의 것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최종에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고 하나님을 거스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한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는 하나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너는 길을 잘 선택하고 진리에서 노력을 들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노력을 들여야 한다. 대강 반쯤 알고는 그만두거나 웬만하면 된다고 여기지 말라. 네가 스스로 속이면 너 자신만 해칠 뿐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빗나가서는 안 된다. 최후에 믿다가 하나님도 없고 그저 책만 받쳐들고 말 타고 꽃구경하듯이 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으면 끝장이다. ……한가지 작은 일에서도 네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없다면 큰 원칙상의 일이 닥칠 때는 더욱 하나님의 요구에 달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간증이 없다. 이러면 골칫거리이고, 너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한다.』

≪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

당신은 영생을 얻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라고 하셨기에,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지켜 영생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지켜도 끊임없이 죄짓고 회개하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복음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복음이란” 쉽게 말하자면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열심히 전하긴 했지만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성경 예언에는 마지막에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원한 복음을 위해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성육신 하여 인류를 구원해야만 했던 이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원함으로 구속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왜 성육신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했을까요?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신 일은 하나님이 땅에 머물 발원지를 인류 가운데에 세운 것이고, 또한 그가 거할 성지를 세운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그가 역사할 범위로 정하였다. 처음에 그는 이스라엘을 벗어나 사역하지 않았고, 사역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적합한 사람을 택하였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든 땅이다. 여호와는 그 땅의 흙을 취하여 사람을 만들었고, 그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아의 후손이고 아담의 후손이기도 하며,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하는 데의 기반이기도 하다.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의의와 목적과 절차는 온 땅에서 그의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방 사역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전 우주에서 사역하는 원칙이다. 즉, 점을 면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런 뒤에 전 우주 아래가 다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처음의 이스라엘 사람은 노아의 후손이었다. 그 사람들은 여호와의 생기만 있었고 의식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지 몰랐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사람이 조물주를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는 더욱 몰랐다. 규례가 있는지, 율례가 있는지,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해야 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아담의 후손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남편으로서 힘을 내고 땀 흘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여호와가 만든 인류를 위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생기와 생명만 있는 그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물주를 만족시켜야 하는지를 몰랐는데,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적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속에 비록 교활함과 간사함이 없고 질투와 분쟁도 매우 적었지만, 그들은 여호와, 즉 조물주에 대해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바로 그런, 여호와의 것을 먹고 누릴 줄만 아는 사람의 조상은 여호와를 경외할 줄 몰랐고, 여호와가 그들이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임도 몰랐다. 그런데 어찌 피조물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는 조물주이다”, “그가 인류를 만든 것은 그를 창현(彰顯)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수포가 되지 않겠는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증거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창현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했던, “나는 나의 형상대로 인류를 만들었다”는 이 말씀이 사탄, 그 악한 자에게 잡힐 꼬투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 말씀은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이 수치가 되는 기호가 되지 않겠는가?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만든 후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지시하거나 인도하지 않았고,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부터 정식으로 이스라엘 사람, 바로 노아의 후손, 즉 아담의 후손을 인도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역사하고 말씀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이스라엘 온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더 나아가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가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에게 그의 생명이 있게 할 수 있고, 또 사람을 흙에서 소생시켜 피조된 인류가 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또 인류를 불사르고 저주하고 형벌의 채찍으로 인류를 관리할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면서 밤과 낮의 시간에 따라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단지 피조물에게 사람이 본래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에서 왔고, 또한 여호와가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더욱더 이스라엘 외의 각 나라, 각 족속들(사실 이스라엘 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그 조상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인 이방의 나라와 족속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복음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전 우주 아래의 피조물이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고 크게 높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령 여호와가 처음에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지 않고 인류를 만든 후 땅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게만 하였다면, 사람 육체의 본성으로 볼 때(본성이란 바로 사람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영원히 모르는 것, 즉 여호와가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여호와가 인류를 왜 만들었는지는 더욱 모르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임을 영원히 알지 못하고, 여호와가 만물의 주라는 것도 영원히 알지 못한다. 만일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 땅에 두고 누릴 물질이 있게 한 다음 관계하지 않고 떠나 사람들 가운데서 한동안 인도해 주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없어지게 될 것인데, 심지어 창조된 천지 만물과 창조된 전 인류까지도 없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사탄에게 짓밟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바라던 ‘땅, 곧 그가 만든 것 가운데에 있을 그가 발 붙일 곳, 즉 성지’에 대한 소망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에 인류 가운데서 사람을 인도하여 살아가게 하고 인류 가운데서 사람에게 말씀하는 것은 모두 그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그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단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세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우선 먼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은 만물을 창조한 것과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모두 그의 경영과 그의 사역과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또한 그가 인류를 창조한 것에 더 깊은 의의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노아 이후, 땅의 인류를 인도하여 2천 년 동안 살아가게 하면서 사람에게 어떻게 만물의 주이신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고, 또한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였으며, 어떻게 여호와를 위해 증거하고 그에게 순복하고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다윗과 그의 제사장들처럼 악기를 울리며 여호와를 찬미하는 정도까지 이르게 하였다. 여호와가 2천 년의 사역을 하기 전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몰랐고 거의 다 타락되었다. 더 나아가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 전에는 음란하고 패괴되었으며, 마음속에는 여호와가 아예 없었고 여호와의 말씀까지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여호와가 무슨 사역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이지(理智)가 없었고 견식은 더욱 없었으며, 단지 숨만 쉬고 있는 기계와 같아 하나님, 사람, 만물, 생명 등등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몰랐다. 그들은 땅에서 독사가 유혹하는 일을 많이 하였고 여호와를 범하는 말을 많이 하였지만, 그들이 알지 못했기에 여호와는 그들을 형벌하지도 징계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호와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즉 노아가 601세 되었을 때부터 정식으로 노아에게 나타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인도하였을 뿐이다. 바로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노아와 그의 후손들을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인도하였는데, 그 기간은 모두 2천 5백 년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 즉 그가 정식으로 역사한 것은 모두 2천 년이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외에서 동시에 역사한 것은 모두 5백 년인데, 합하면 2천 5백 년이 된다. 그 기간에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를 섬김에 있어서 성전을 건축해야 하고, 제사장 옷을 입어야 하며, 새벽부터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의 신발이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면 불이 성전 위로부터 그들에게 내려 그들을 태워 버리기에 그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분을 함으로 여호와의 안배에 순복하였고, 성전 안에서 여호와께 기도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는데, 즉 여호와가 말씀한 후 백성들을 인도하여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여호와는 또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고, 여호와의 때, 즉 여호와의 유월절에 초태생의 송아지와 어린양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제단에 바쳐 여호와를 섬기라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을 단속하여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그 율법을 지키게 하여 여호와께 충성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는 또 그들을 위하여 안식일을 정하였는데, 바로 그가 만물을 창조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첫날로 정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여호와를 찬미하고,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고, 여호와를 위해 비파를 울리고 수금을 타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여호와는 제사장들을 모두 소집하여 제단 위의 제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 하였는데, 이로써 그들이 여호와의 제단 위의 제물을 누리도록 하였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을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였고, 그와 더불어 분깃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였으며, 그의 선민이라고 하였다(이것도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과 세운 언약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여호와는 그들만의 하나님이지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계명을 정하여 모세에게 그를 따라 애굽 땅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포하라고 하였다. 그 계명은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지, 애굽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여호와는 계명으로 그들에게 요구하였는데,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등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삼아 죄로 정하거나 의롭다고 칭하였다. 그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고, 어떤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고,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이 계명을 지키는지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그에게 임하였다.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그가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는 기간에 사람이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갓 태어난 그 인류를 율법으로 제어한 것은 이후의 사역에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하신 사역에 근거하여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고 칭하였다. 비록 여호와가 많은 말씀과 많은 사역을 하였지만 그는 다만 긍정적으로 사람을 인도하였는데, 그 무지한 사람들을 인도하여 사람됨을 알게 하였고, 생활할 줄 알게 하였으며, 여호와의 도를 깨닫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의 도를 지킬 수 있게 한 것이고, 그의 율법을 준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매우 얕게 패괴된 사람에게 역사한 것이므로 성정 변화라고는 말할 수도 없고, 생명이 자라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율법을 지키게 하여 사람을 단속하고 제어하였을 뿐이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여호와가 오직 성전의 하나님이자 하늘의 하나님이었고, 구름기둥이자 불기둥이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하라고 한 것은 다만 오늘날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과 계명인데, 심지어 그것은 규례라고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한 것은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더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고 친히 알려 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피조된 사람에게 갖춰져 있어야 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데에 있어야 할 것들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어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인류로 인류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를 넘어서게 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은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것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은 다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어서 사람에게 조물주를 인정하게 하였을 뿐, 정복하지도 변화시키지도 않았고 인도만 하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의 전부이고, 이스라엘 온 땅에서 하신 사역의 배경과 내막과 실질이며, 또한 6천년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다. 즉, 사람을 모두 여호와의 수중에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6천년 경영 계획의 더 많은 사역이 있게 되었다.』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최초에 구약 율법시대에서 사람을 인도한 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생활을 인도하는 것과 같았다. 최초의 인류는 여호와로부터 처음 난 인류이며,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생활하는지 이런 것마저도 알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고 바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였지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여호와의 법도를 준행하는가를 알 수 있는 기관은 그들에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만일 여호와의 직접적인 인도가 없었다면 아무도 직접 알 수 없다. 그것은 사람에게 처음부터 이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행해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는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인지, 여호와께 무엇을 바쳐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는지, 이런 것에 대해 사람은 전혀 몰랐다. 사람은 여호와가 창조한 만물 중의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릴 줄만 알고 있었을 뿐 사람이 도대체 땅에서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만 피조물이라고 칭함받을 수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도 사람은 전혀 몰랐다. 바로 이러한 인류를 인도하는 사람이 없고 그들을 친히 이끄는 사람이 없다면 인류의 정규적인 생활은 영원히 없게 되고 다만 사탄에게 몰래 노략될 수밖에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는데, 바로 인류의 조상인 하와ㆍ아담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더 많은 총명과 지혜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땅에서 생활하였지만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창조하는 사역을 겨우 절반만 완성하였지 전부는 완성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어놓았고 또한 그의 생기도 있게 하였지만 사람에게 그를 경외하는 충분한 심지(心志)는 베풀어 주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에게는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사람은 그의 말씀을 들을 줄만 알았지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상식과 사람이 생활하는 정상적인 법칙은 몰랐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비록 남자를 창조하고 여자를 창조하여 7일의 공사를 완성하였지만 그가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오직 외형만 있고 오히려 사람됨의 실제가 없으며,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그의 말씀을 준수하고 그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있은 후에도 여호와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인류를 철저히 그의 앞으로 인도하여 모두 땅에서 군거할 줄 알게 하고 모두 그를 경외할 줄 알게 해야 하였으며, 인류로 하여금 땅에서 즉 그가 인도한 후에 정상적인 인류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하였다. 이리하여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되었는데, 바로 여호와의 창세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인류를 창조한 이상, 인류를 인도하여 땅에서 몇천 년 동안 생활하게 하면서 모두 그의 율례와 법도를 준수할 줄 알게 해야 하였고 인류에게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모든 활동이 있게 해야 하였다. 이때에 여호와의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인류를 창조한 후 곧 이 사역에 착수하기 시작하여 야곱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야곱의 열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그가 땅에서 정식으로 인도하는 인류로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가 땅에서 역사하는 특정된 지점으로 되었다. 이 사람들을 땅에서 정식으로 역사하는 그의 첫 패의 사람들로 하고 이스라엘 온 땅을 그의 사역의 발원지로 하는 것으로써, 그의 더 큰 사역을 전개하여 무릇 땅에서 그에게로부터 난 사람이 다 어떻게 그를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생활하는가를 알 수 있는 데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것이 이방 각 족속 사람들의 모델로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한 것이 이방 각 족속 사람들이 들어야 할 것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을 맨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역시 어떻게 여호와의 도를 경외하는지를 맨 먼저 안 사람들이며, 그들이 바로 여호와의 도를 안 인류의 조상이고 여호와가 선택한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너희는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나 원칙을 모두 보았겠지? 이런 규례는 범위가 넓을까? 먼저 십계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제단을 쌓느냐 하는 등등의 규례이다.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3개 절기를 지키는 법들이고, 그다음은 제사를 드리는 규례이다. 너희들이 보아라, 제사를 드리는 데에 모두 몇 가지가 있느냐?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등등이 있고 그다음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규례인데, 제사장이 번제를 드리고, 제사장이 소제를 드리는 등등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여덟 번째는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규례이고, 그다음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례이다. 여기에, 사람의 생활과 관련되는 여러 방면에 모두 규정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관한 규례, 부녀의 산후 정결케 하는 규례, 문둥병 환자가 치유받는 규례이다. 이런 규례 중 질병에 관한 일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려 주었다. 심지어 또 소나 양을 잡는 규례 등등도 있다. 소나 양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니 하나님이 어떻게 잡으라고 하면 그대로 잡아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일리가 있기에, 하나님의 규정에 따라 행하면 틀림없이 옳은 것이고, 사람에게 유익하다! 그리고 일부 지켜야 할 절기와 규례도 있다. 예를 들면, 안식일과 유월절 등등도 하나님은 다 알려 주었다. 우리 마지막 한 가지 기타 규례를 보자. 등불 관리, 희년, 토지 무르기, 서원, 십일조 등등 이런 규례의 각 방면은 관련된 범위가 넓지 않은가? 우선은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문제에 관련되고, 그다음은 또 도둑질, 배상, 안식일 지키는 것……생활 속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의 경영 계획을 시작하여 정식으로 사역을 하였을 때, 사람에게 많은 규례를 제정해 주어 지키게 하였다. 그런 규례들은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우선 사람에게 하나님의 제단을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님의 제단을 어떻게 쌓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다음 사람에게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으며, 또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각 방면을 빈틈없이 규정하였는데, 그런 규례, 그런 규칙, 그런 원칙으로 사람의 행위를 규범화하고,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율법 속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오도록 인도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든 만물 가운데서 질서 있게, 법칙 있게, 절제 있게 생활하도록 인도하였다. 하나님은 우선 그런 간단한 규례와 원칙으로 사람에게 일정한 범위를 제정해 주어, 땅에서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을 살게 하고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6천년 경영 계획을 시작한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런 규례와 규정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아주 광범위하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율법시대에서 인류를 인도한 구체적인 항목이다. 그것은 이전의 율법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의 기록이자,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이끌고 전 인류를 인도한 실제 증거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가장 최초의 인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하나님은 가장 간단명료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류 생존의 원칙과 생활에 있어야 할 그런 규례에서부터 사람을 가르치고, 그런 것을 조금씩 사람 마음속에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의 규정들을 통해, 그런 규례들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점차 알게 하였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 점차적인 깨달음이나 이해가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이 있게 하였다. 그런 효과에 도달한 후에야, 하나님은 조금씩 그 후에 해야 할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그런 규례와 하나님이 했던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의 기초 중의 기초이고, 하나님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여호와가 한 사역은 율법을 정하여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함으로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단지 최초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기 때문에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의 상식이었을 뿐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단지 구원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최초의 구원 사역이어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율법시대에는 여호와, 이 이름으로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하였고, 땅에서 1단계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단계에 한 사역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것은 땅에서 그의 사역의 근거지를 전개한 것이다. 그 근거지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하였는데, 바로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후의 사람은 모두 점차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여호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사역을 밖으로 확장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한 첫 번째의 성지이다. 하나님이 맨 먼저 땅에서 역사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것인데, 이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기도에 비결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실행함에 있어 기도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임하든, 생활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혹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받든,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하나라도 기도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형제자매들은 비록 자신이 늘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깨우침을 거의 얻지 못해 영 안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 교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도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의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효과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설마 기도에 또 어떤 비결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합니다. 이전에 저에게도 이런 의문이 있었고, 나중에 영적 서적을 보고 기도에 정말로 비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를 포함하여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라는 말씀을 어떤 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움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반드시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가 마음을 나누지 않고 속심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교제했다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되고 더욱이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없으며 상대방의 진심어린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매일 기도를 얼마나 드리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 드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가식적인 기도로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기도할 때,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실행하지 않습니다. 마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사거리이나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여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경건하고 충성심이 많아 보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그들은 찾고 구하며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독하고 정죄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드린 기도가 다 가식적인 것이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기도는 주님께서 혐오하실 뿐만 아니라 또 그것으로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정죄까지 했습니다! 그럼 어떤 기도가 진실한 기도일까요?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인식이 있어 흐리멍덩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체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이 말씀에서 무엇이 진실한 기도인지, 그리고 진실한 기도의 효과는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와서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에서 좋은 효과를 얻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관건적인 것은 기도가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우선 기도할 때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오직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기도라야 영안에 감동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더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나면 우리 안에 심지가 있게 되고 믿음이 생기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게 됩니다. 이런 기도는 효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기도할 때 하나님과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 현실의 뜻을 더듬어 기도하고 이전의 규례와 종교적 방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상의 효과에 도달하는 기도가 바로 진실한 기도이고 하나님도 열납하시는 기도입니다. 이런 것에 결부시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실한 기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가정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다는 기도, 형제자매들의 부족한 면과 애로사항을 하나님께 맡기며 말씀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라는 기도, 복음 전도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으로 인해 그리고 어떻게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야 하는지를 위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된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실행하는지를 위한 기도, 또 우리가 박해받고 고난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설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라는 기도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열납해 주십니다. 이제 기도의 비결을 알았으니 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와서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훈련을 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가 점점 더 진실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하나님과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우리의 영 안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비결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 다 함께 현실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하는 훈련해 봅시다! *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까? 왜 아무도 성경을 풀 수 없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우리가 먼저 맞추지 말고 성령이 어떻게 하는가를 좀 봅시다. 진리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성령의 사역인가를 대조해보고, 성령 사역으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옳은가를 검증해 봅시다.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지 않았고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람은 참견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좋기는 그래도 성령이 하는 사역을 말해보고 하나님의 현재의 최신 사역을 말해 봅시다. 성경은 당시에 선지자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쓴 말이니,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오직 성령만이 그런 말씀의 뜻을 드러낼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지요. 당신도 당신을 하나님이 아니라 하고 저도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감히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감히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사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고, 요한이 오고, 엘리야가 오더라도 그들은 감히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없지요. 그것은 그들이 다 어린양이 아니며, 오직 어린양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으며, 그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말세는 다만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율법시대도 대표하지 않는다. 단지 말세에서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밀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런 비밀은 어떤 사람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경의 실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경을 보고는 혹시 얼마간의 진리를 터득하거나 얼마간의 글귀를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글귀에 포함된 뜻은 사람이 영원히 풀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본 것은 모두 죽은 글귀이지 여호와가 역사한 장면과 예수가 역사한 장면이 아니며, 사람은 또 이런 사역의 비밀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최대의 비밀이고 가장 은밀한 것이어서, 사람은 아예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직접 깨달을 수 없다. 반드시 그가 친히 사람에게 해석해야 하고 사람에게 풀어놓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영원히 폐쇄되어 있는 비밀이다. 종교계의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오늘 너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들마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6천년의 사역은 모든 선지자의 그런 예언보다 더 심오하고, 창세부터 현재까지의 최대의 비밀이며, 역대의 선지자도 완전히 측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오직 마지막 시대에서만 풀어놓았고 이 이전에는 풀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만일 이 비밀을 깨닫고 전부 터득할 수 있다면, 모든 종교 인사들도 이 비밀에 의해 정복될 것이다. 오직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상이고, 사람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당시에 유대인들은 다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를 핍박하였는가? 이것은 모두 그들의 패역한 본성과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당초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한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의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의 사람도 성육신인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실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무릇 성령 사역이라면 너는 일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 사역이라면 ‘흐름’이 옳은 것인즉, 너는 조금도 고려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골라가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몸에서 네가 더 많은 견식을 넓히고 딴 속셈을 갖는데, 이것은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더 많은 성경의 근거를 찾지 말아야 하고, 성령의 사역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에, 너는 하나님을 고찰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나에 대하여 더 많은 근거를 찾아서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유익한 점이 있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너를 완전히 내 앞에 이끌어올 수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비록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리라고 예언하였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예언이 누구의 몸에 응할 것인가를 꿰뚫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모두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이 사람에게 모두 유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나와 예수는 서로 다른 일이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집회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그는 다만 당시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논하였다. 그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사역만 하였지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구약 율법을 제정하였는데,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데에 유익하지 않겠는가? 그는 다만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담당하리라고 예언하였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매 시대의 사역을 하는 데는 상당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 사역을 앞당겨 하지 않는다. 이래야만 그의 매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당시에 어떻게 인내하는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통받아야 하는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데, 네가 만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를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네가 성경만을 받쳐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가든지, 설교자든지 누가 미리 오늘의 사역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은 매 단계 사역에서,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았고 그의 이전의 사역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하였다. 물론, 예수가 와서 사역한 것도 적지 않은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에 하는 사역도 구약의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老黃歷)’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말씀을 너희에게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별로 큰 의의와 별로 큰 가치가 없기에 너희들을 도울 수 없고 너희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역을 하려는 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네가 말해봐라, 도대체 성육신인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볼 때마다, 비록 도리상으로는 알지만 누가 알곡이고 가라지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이 실생활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라고는 하셨지만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분별과 비판은 자신의 판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해야만이 진리에 부합되고 예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