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2019년 03월 20일

싱글맘인 나는 이혼 후에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았다. 생활은 단순하고 즐거웠다. 다만 다섯살배기 딸 아이가 장난이 너무 심하다 보니 점점 통제할 수 없어져 힘들었다.

하루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방 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반이라 얼른 침대로 가서 한창 자고 있는 딸에게 소리쳤다. “예안아, 어서 일어나.” 아이는 몸을 비틀며 계속 잠을 청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아이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지금 안 일어나면 유치원 지각이야.” “싫어! 나 유치원에 안 가. 잘 거야!” 딸 아이는 화난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나는 머리를 덮고 있는 이불을 잡아당기며 엄하게 말했다. “어젯밤에 일찍 자라고 말할 때는 안 듣더니 거봐 지금 못 일어나겠지? 어서 일어나, 안 그러면 엄마 화낸다!” 딸 아이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지 못해, 어서, 당장!” 나는 소리지르며 딸 아이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어렵게 잠에서 깨웠는데 골치 아픈 일은 뒤에 또 있었다. “이 닦자?” “싫어!” “세수하자?” “싫어!” “머리 빗자?” “싫어!” …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비뚤어지게 나와 나는 분통이 터졌다. 이 아이는 어쩜 이렇게 말을 듣지 않을까? 나는 애써 참으며 어르고 달래서 겨우 옷을 입히고 또 세수와 양치를 시키느라 30분을 더 씨름하고 나서야 함께 문밖을 나설 수 있었다.

글 쓰는 아이,

오후에 딸을 유치원에서 집으로 데려왔고 같이 숫자 쓰기 공부를 했다. 하지만 아이는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물을 마시려고 했다가, 금방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또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자 나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때 마침 안씨 아줌마가 집에 놀러 왔다. 딸 아이는 금방 신이 나서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내던지고 안씨 아줌마가 가져온 우유와 선물박스를 열어 안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감을 고장내 버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가 너무 철이 없어. 물건을 아낄 줄도 모르고 말이야. 이따가 손님이 가면 혼 내줘야지! 이때 딸 아이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틈을 타 또 우유를 따라 먹으려고 했다. 아이가 요 며칠 기침을 해서 내가 못 마시게 하자 아이는 몰래 한 팩을 땄다. 그런데 몇 모금 안 마시고는 맛이 없다고 칭얼거려 나와 안씨 아줌마 모두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는 딸 아이를 잡아끌며 진지하게 말했다.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말 잘 듣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착한 아이지.” 그러나 딸 아이는 듣지도 않을뿐더러 또 큰소리로 말하고, 노래까지 불러서 나는 화가나 곧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있어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안씨 아줌마가 간 후, 나는 화를 억누르며 딸에게 계속 숫자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연신 기침을 하느라 힘들어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고 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내가 가서 보니 아이는 또 나 몰래 사탕을 먹고 있었다. 내가 거듭 참는데도 딸이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끝내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한바탕 혼내고 말았다. …

밤에, 딸이 잠자면서도 간간이 흐느끼는 것을 보니 어린 것이 가여워서 마음이 아팠다. 사실 매번 아이를 혼내고 나면 항상 내 마음이 더 괴로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딸 아이는 이렇게 짓궂게 변했다. 조금만 자기의 뜻에 안 맞아도 토라져서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가 응석받이로 딸을 키우게되었다는 게 너무 실망스럽고 힘이 빠졌다.

나는 평소에 내가 교회에서 형제자매와 사이좋게 잘 지냈던 것을 떠올렸다. 때로는 약간의 마찰이 생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그런데 왜 딸 아이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포용과 인내가 없어졌을까? 왜 번번이 아이에게 화를 내고 혼냈을까? 그래서야 어떻게 크리스천이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나는 여러 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병이 되었고, 나는 늘 이 때문에 무척 괴로웠다.

하루는, 오랫동안 못 만났던 임 자매를 만나, 내 마음속의 고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임 자매는 나에게 책 한 권을 주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에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집에 돌아온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 보았다. 그 속의 말씀 한 구절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맞아. 이 말씀은 정말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야! 나는 ‘하늘아래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기 원하는 부모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어떻게 하든 다 아이를 위한 것이다. 아이가 어려서 철이 없고, 말을 안 들으면 혼내야 하는 것이 아이에 대한 책임이다. 그래서, 딸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딸을 교육하고, 딸이 듣지 않으면 나는 나의 ‘권위’가 커다란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혼내지 않으면 누가 엄마인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사탄에게 타락된 사람임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 안에는 진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내 뜻과 불순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딸에게 무슨 일이든 다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다 내가 교만한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아서가 아닌가?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계속 이어서 읽어 내려갔다.『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일이나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일의 관점과 태도 면에서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적용하여 그 일을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부모는 영원히 부모이고 부모가 보기에 자녀는 영원히 자녀라는 이런 관계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고,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아이고, 이 말씀은 정말 대단해 꼭 지금 내 상황을 놓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아이의 엄마니까 아이가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사실상 나는 부모의 위치에서 딸을 교육시켰던 것이였구나. 이 잘못된 관점이 나를 괴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도 괴롭고 힘들게 했어. 어쩐지 딸 아이가 요즘 나를 좀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 예전에는 항상 나한테 붙어 있으려고 했는데, 최근에는 할머니만 따르고 있잖아, 그렇다면 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는 또 이어서 읽어보았다. 『이런 일에서는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나는 드디어 문제의 답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부모라는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생활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돌보지만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 아이에 대한 양육과 들인 노력을 자격으로 삼아 아이의 전부를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유치하고 잘못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았고, 하나님께 꼭 이렇게 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저녁 풍경 이미지,

어느날 저녁, 나는 딸 아이를 데리고 근처 공원으로 놀러 갔다. 아이는 유치원 친구 현지를 우연히 만났고 그 둘은 즐겁게 놀았다. 한 시간쯤 놀고 나서 우리는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이 둘은 깡충깡충 뛰면서 앞서갔고, 나와 현지의 어머니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그런데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그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아이들을 찾으러 다시 공원 안으로 들어갔고 현지의 어머니는 입구에 남아 기다렸다. 공원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얼마 전 공원에서 한 아이가 유괴당했던 사건이 떠오르며 나의 마음은 심란했다. 얼른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다. 그때 멀리서 두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화도 나고 마음도 급해 얼른 달려가 보았더니 바로 내가 찾던 아이들이었다! 다행히 놀라기만 하고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딸 아이가 무사한 것을 보고 나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딸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안 보였어. 엄마가 날 버렸어…” 그 말을 듣자 나는 화가 났다. ‘대체 엄마가 널 버린 거야, 아니면 네가 여기저기 쏘다닌 거야? 혼 좀 내야지 안되겠네. 다음에 또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야?’ 아이에게 화를 내며 막 혼내려고 하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이가 유치하고 미성숙한 일, 어리석은 일을 하게 해라.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차분히 앉아서 잔소리하고, 이야기하고, 나누고, 구하라.』 이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딸 아이도 적잖게 놀란 상태였고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내가 교만한 사탄성품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딸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차분히 아이에게 잘못한 것을 일러주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 알겠어요. 앞으로 다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을게요.”

그 후에 다시 놀러 갔을 때, 딸 아이는 정말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나 자신을 내려놓았을 때, 딸도 점점 내 말을 잘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든지 차분히 딸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고 잘못을 알려주었다. 또한 일의 이해관계를 아이에게 말해주며 다시는 내 마음대로 아이를 억압하지 않았다. 이렇게 실천한 후로는 차츰 아침에 아이를 깨우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떤 때는 아이 혼자서 일어나기도 하고, 숙제를 할 때도 지켜볼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번 내가 아이와 함께 친구집에 방문했을 때 친구는 딸 아이가 예의바르다며 연신 칭찬했다. 나도 훨씬 수월해졌고 더 이상 부모 노릇하는 게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 몸소 겪은 체험을 통해 나는 진심으로 이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행복한 엄마가 되니 정말 좋다!

당신은 참으로 조물주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까?

이전에 공익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합니다. 광고의 내용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제 1막 어떤 젊은 아버지가 작은 사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이제 막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한 단계여서 이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무엇이든 마냥 신기해 하기만 했습니다. 두 부자는 공원에 와서 벤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작은 꼬마는 그 신기한 주변 환경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마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눈 속에 넣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꼬마가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보고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이게 뭐에요?” 젊은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귀여운 아들을 바라보며 매번 상냥하고 인내성 있게 아들의 물음에 답해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 쌍의 작은 새를 보고 심지어 7~8번 물었는데도 젊은 아버지의 눈빛에는 짜증스러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작은 생명을 너무나 사랑했고 이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마냥 좋기만 했고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제 2막 여전히 그 부자 둘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아들이 아버지를 데리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이미 연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나란히 벤치에 앉았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위치가 바뀌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을 뿐입니다. 노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이때 한 쌍의 새가 날아와 풀밭에 앉았습니다. 노인은 너무 놀라고 기뻐서 장난조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이게 뭐지?” 아들은 인내성 있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노인이 또 물었습니다. “아들아, 이건 뭐야?” 젊은 아들은 여전히 인내성 있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세 번째 물어보았을 때 아들은 짜증을 냈고 잔소리로 받아들이며 싫어했습니다. 노인은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 이렇게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단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서 잠시 멍해 있다가 눈물을 글썽거렸는데 마치 무엇을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또 마치…… 저는 이 공익 광고가 다시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아들이 잘 자라도록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고 가장 좋은 것을 다 아들에게 주었지만 아버지가 아들의 이해와 보살핌이 필요할 때, 그가 얻은 것은 오히려 아들의 냉랭한 낯빛이었습니다. 둘 사이에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요? 그래 아들이 여태껏 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단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그가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겨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지은 후 그들을 벗으로 삼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보살펴 주고 그들의 의식주행도 보살펴 주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담, 하와의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한 이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높고 크심을 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볼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신비함도 볼 수 없었고 더욱이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도 볼 수 없었으며 다만 하나님의 낮춤, 자비를 보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 책임과 보호를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한 태도와 방식은 마치 사람의 부모가 자기 자녀를 염려하는 것처럼, 또 인류의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배려하는 것처럼 실제적이어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조물주께서는 가장 진실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었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가지고 염려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라나 어른이 될 때까지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실제적이고 하나님은 생생하게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옆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이런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기에 너무나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왜 우리들이 이것을 마음으로 체득하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매번 하나님이 슬퍼할 때 하나님이 마주한 것은 전혀 그를 아랑곳하지 않는 인류이고 마주한 것은 그를 따르고 입으로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전혀 그의 어떠한 느낌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류인데, 그의 마음이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 경영 중에서 비록 하나님이 진실하게 각 사람을 향해 역사하고 말씀하며 조금도 남김없이, 조금도 숨김없이 사람과 대면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그를 따르는 각 사람은 다 그를 향해 봉한 것이고, 주동적으로 그를 가까이하고 주동적으로 그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의 느낌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사람들도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으며 그를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뻐할 때, 즐거워할 때 그의 즐거움을 그와 함께 나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해받을 때 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마음이 아픔을 느낄 때 그가 털어놓는 것을 들어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몇천 년 동안의 하나님의 역사 경영 중에서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곁에서 함께하며 그의 희로애락을 그와 함께 나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하나님은 외로웠다. 하나님은 외로웠다! 하나님의 외로움은 패괴된 인류가 그와 대립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욱이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이해하기를 추구하는 그 사람들, 심지어 그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까지도 그의 마음을 모르고 그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그의 희로애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 죄가 없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의 생명으로 전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말씀을 발표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여 우리들을 구원하시는데, 주님이 받은 것은 오히려 사람의 냉담과 무관심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찾고 구하지 않으며 아무도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발걸음과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고심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체득하려 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의 아픔을 체득하려 하지 않습니다……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막연 중의 하나님이고 자신의 머리로 상상해낸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참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거들떠보지 않으면 어떻게 조물주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조물주가 그래 우리가 사랑할 가치가 없는 분이란 말입니까?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딸의 불임에 사방을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 하였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시 딸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받지 않을지, 친척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고통스럽기만 한 그는 몇 번의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하자 뜻밖의 은혜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장사의 성공 비결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2008년, 나는 둘째 형과 동업해 제과점을 열고, 빵, 카스텔라, 과자 등 다양한 제과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 계란 역시 100리 가까이 달려가 신선한 것으로 구매했다.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첨가제 등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분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나날이 지나가고, 장사도 점점 잘 됐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연말에 결산을 할 때, 원가를 제하고 단돈 900원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마을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또 내고 속으로 이번에는 장사가 분명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손님은 정말 전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제과의 품질이 마을에서 좋게 소문이 나서 어떤 과자와 카스텔라는 또 슈퍼마켓에 도매로도 팔렸다. 나날이 상승하는 판매량을 보며 나는 마음이 흐뭇했다. 연말에 잔뜩 기대하며 연 수입을 계산했을 때, 우리가 번 돈이 겨우 일상 지출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의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수입이 적어 남는 돈이 없다면 나중에 형의 가정이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가게에 와서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만든 카스텔라는 다른 집보다 못한 것 같네요!” 나는 손님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얼른 물어보았다. 손님이 대답했다. “여기서 파는 카스텔라는 색깔이 덜 노래요. 계란을 많이 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손님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집 카스텔라가 노랗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넣은 계란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왜 색이 노랗지 않는가? 이 때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처럼 카스텔라를 만들어 팔아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계란을 더 넣게 되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러나 계란을 더 넣지 않으면 색이 좋지 않아 사는 사람이 또 많지 않고, 많은 손님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카스텔라의 색깔을 보기 좋게 하려면 색소를 넣어야 해. 정직하게 계란을 넣는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게다가 색소를 넣으면 계란은 조금만 넣으면 돼. 겉으로만 봐서는 계란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무도 몰라. 장사를 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돼. 돈을 벌고 싶으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을 좋아해. 영양이 없더라도 보기 좋고, 맛만 있으면 돼. 그러면 사려는 사람이 많지.”나는 그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카스텔라는 좋은 식재료를 썼지만 손님은 이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보았다. 친구는 나처럼 2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 정작 본인은 본전만 겨우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색소를 넣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안했다. 식용 색소라고는 하지만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인데...... 갈등하던 중 내가 제과 일을 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사촌 형이 말했다. "색소를 넣으면 되지. 정직하게 장사하면 정말 돈을 벌 수 없어. 지금 사회가 그래. 네가 돈을 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도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제과점을 봐. 몇 년 동안 장사하더니 차도 사고, 집도 샀잖아. 그게 다 그렇게 번 것 아니겠어? 네가 안 넣는다면, 내가 먼저 넣을게." 그 후, 사촌 형은 정말 계란 대신 색소를 쓰고, 최상급 샐러드유 대신 드럼통의 보통 식용유로 바꿨고, 밀가루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바꿨다. 사촌 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전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는데 형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색소를 샀어. 네가 만들때 조금 넣어."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은 괴로웠다. 이 색소라는 것은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 하지만 형이 이미 사왔고 사촌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도 모두 넣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럼 조금만 한 번 넣어 볼까? 이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색소를 쏟아 부었다. 과연, 색소를 쓰고 난 후 카스텔라의 색깔이 보기 좋아졌다. 그런 금빛 찬란한 카스텔라를 보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손님이 먹고 탈이 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손님과 마주할 때 마음이 찔려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이 무엇에 짓눌린 듯 괴롭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손님한테도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돈의 유혹을 받아 나도 사촌 형처럼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를 쓰고, 식용유도 낮은 등급으로 교체했다. 원가가 줄어들면서 버는 수입도 많아졌고, 서서히 나의 양심의 불안도 차츰 사라졌다.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이 물욕 넘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가져야 할 양심, 도덕을 상실하고 기꺼이 이 악한 사회의 흐름에 따르고, 사탄에 의탁했다. 간사한 수단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정말 속이 검은 장사꾼이었다! 처음에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사를 하던 생각이 났다.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속임수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서 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돈은 좀 벌었지만 인격을 잃었고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조금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후회했다. 다시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었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처럼 살고 싶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리를 도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얻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오늘 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나는 더 이상 사회의 흐름을 따라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 나는 형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색소를 넣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느꼈다. 모두가 속임수를 쓰는데 나만 안 쓴다면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고 우리 가게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지닌 채 나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게 없을 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세요.”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5-26、31-33)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믿음을 주었고,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의 일, 생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나의 장사가 좋고 나쁘고, 카스텔라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하니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 욕심이 너무 커서 돈에 두 눈이 먼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배불리 먹고,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떳떳하게 살면서 광명정대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어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사했다. 더 이상 색소를 쓰지 않았고 품질이 낮은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모두 바꿨다. 손님이 내가 만든 카스텔라가 색깔은 안 예쁘지만, 아주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그분에게 카스텔라에 색소를 넣지 않고 계란만 넣었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손님은 듣고 나서 나의 방법을 칭찬했고, 주위에 내가 만든 제과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위안이 되었다! 그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식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두 우리 집의 제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도매상이 우리 가게의 한 과자를 맘에 들어 하면서 주동적으로 도매에 나섰다. 나중에 우리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도 아주 잘 됐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가 속임수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을 때 뜻밖에도 매상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료와의 전쟁, 이렇게 끝났다

함께 일하는 언니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 언니를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때, 저도 모르게 언니와 있었던 ‘전쟁’이 떠올랐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운 동료가 불만이다 저는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처음 일을 했을 때, 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그릇에 담아주는 일을 담당했고, 저는 홀 서빙과 포장, 분류하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손님이 주문하면 얼른 언니에게 말했고 언니는 바로 음식을 담아 제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각자 맡은 일을 했기 때문에 저는 주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며, 가끔 바쁠 때는 서로 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손님이 주문하기만 하면 언니는 본인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니의 그런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제 일이 많을 때 언니가 도와준 적도 있었고, 더군다나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시시콜콜 따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인내와 양보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는 계속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아 주지도 않고 재빨리 다른 일을 한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언제부턴가 본인의 일을 전부 제게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언니를 원망했습니다. 속으로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번 언니 일을 대신할 순 없어! 게다가 일을 많이 한다고 사장님이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계략이 떠오르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손님이 여러 명 들어왔습니다. 세트를 주문한 사람도 있었고 단품을 주문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 없이 바쁜데 한가하게 여기 닦고 저기 닦고 하는 언니를 보니 갑자기 화가 치솟았습니다. 너무 바빴던 터라, 언니한테 큰소리치고 싶은 것도 참으며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직접 주방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언니가 정리한 소스가 도통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웃으며 언니에게 “언니, 소스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언니는 퉁명스럽게 소스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잖아, 직접 가져 가!” 언니의 이런 태도에 화가 불끈 치솟았지만, 저는 겨우 화를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언니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언니, 정말 너무하네. 나는 이렇게 바쁜데, 언니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말을 그렇게 야멸차게 쏘아붙여? 이 일은 원래 언니 담당이잖아. 내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나한테 함부로 막 대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날 얕봐도 되는 건 아니야. 지금 언니랑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참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영업이 끝나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온 후,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직원이었다면 진작에 언니랑 싸움이 났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베풀고, 인내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언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목조목 언니한테 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사람들한테 당하라는 말인가? 나는 힘들어서 그렇게 실행하지 못하겠어. 그동안 계속 참으면서 언니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내가 참을수록 언니의 행동은 더욱 심해졌잖아? 내일 출근하면 언니가 게으름 피웠던 걸 꼭 사장님에게 말해야겠어. 그럼 사장님도 언니를 안 좋게 볼 거고, 앞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나 혼자만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계략을 포기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니 자책감이 들었고, 불현듯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행이 제멋대로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이방인보다도 더 사악한데…...』 순간, 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쁜 마음으로 뒤에서 고자질하는 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남을 괴롭히는 건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니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끓었습니다. 언니를 다치게 하고 싶진 않지만, 사장님에게 언니 행동을 말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겠습니다. 언니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세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사람의 패괴 본성은 같으나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즉 어떤 사람은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말해서 드러나며, 어떤 사람은 겨루고 빼앗고, 어떤 사람은 겨루지도 빼앗지도 않지만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말을 퍼뜨리며, 어떤 사람은 속으로 불평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물건을 내팽개치고 부순다. 방식이 다르지만 본성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같으며 대부분 다 이런 것이다. 』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천하며, 너희의 말투는 상스럽고, 너희의 생활은 비열하며, 심지어 너희에게 갖추어진 인성마저 저속하다. 사람 됨됨이는 너무나 도량이 좁아 언제나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자기의 명예나 지위를 위해 다투는데,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고 불못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 이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과 제 마음과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감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 중 『뒤에서 나쁜 짓을 한다』 라는 구절을 본 후, 저의 추한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반성했습니다. 음식을 담아주지 않는 언니가 일을 적게 했고, 언니 때문에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고생했으며, 처음에는 그래도 인내하고 양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언니를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정면충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언니 모르게 사장님에게 사실을 알린 후, 사장님이 언니에게 주의를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언니 일까지 떠맡지 않아도 되고 화도 풀릴 것 같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니가 계속 나를 만만하게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참을 수도 없고 참을 필요도 없다’ 등 이런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니한테 보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인격이 미숙하고 속이 좁으며, 자질구레한 걸 시시콜콜 따졌고 너무 음흉하고 악랄했습니다. 이 모든 걸 깨달은 후, 육체를 배신하길 원했기에 얼른 하나님 앞에서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고자질하는 비열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한이 있어도 비열한 소인배 같은 짓은 하지 않겠어.’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손해 본 것을 항상 마음에 두다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말하진 않았지만, 손님이 왔을 때 변함없이 딴짓하는 언니를 볼때마다 저는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가게에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한테 뭘 하라고 하니까 선뜻 그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속으로 ‘아, 이 언니는 원래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사장님이 있을 때 일부러 언니한테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일부로 다른 일을 해 사장님이 직접 언니에게 일을 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했더니 언니한테 화낼 필요도 없고, 언니보다 일을 많이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게에는 손님이 많았고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언니는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겪어 온 게 있었기에 이번에도 자신 있게 “언니! 죽 하나 포장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는데, 언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언니는 평소와는 다르게 대뜸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네가 직접 해!” 언니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을 응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성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껏 매일 생겼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전부 하나님의 안배였습니다. 이건 당연한 언니의 일이었고, 제가 그렇게 심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언니는 왜 갑자기 저한테 이러는 걸까요? 저는 언니 때문에 화내지 않아도 됐던 며칠 동안 아주 좋았습니다.언니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았고 언니의 행동을 문제 삼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변했다고도 느꼈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이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하나님의 일깨우심으로 정상 인성을 살아내다 그동안 언니를 대했던 제 태도를 떠올려보니, 진심으로 편견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저 방법을 바꿨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고 덕분에 언니와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도 제 일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거 역시 음흉하고 비열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정상 인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더는 언니를 노려보지 않았고 그저 제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정상 사람의 성품에는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부패하지 않다. 또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관통되게 하며, 사람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처럼 순진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땅에서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한 가지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기를 원한다. 지금 너에게 무슨 큰일이 닥치지 않았고 네가 큰 증거를 하지도 않았지만, 일상생활의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도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과 가족이 감탄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며, 언젠가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해 다 탄복하고,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야말로 너무나 좋다는 것을 보게 되면, 너에게 있어서는 바로 하나의 간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의 교활한 계획을 알고 계셨고, 언니의 불만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셨으며, 제가 즉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언니의 행동을 뒤에서 고자질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완전히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매번 언니가 일을 적게 하고 제가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그걸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런 행동이 잔꾀를 부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겉으로 볼 때는 문제 삼지도 않고 사장님한테 알리지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교활한 계획을 꾸민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말 비열한 행동이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칭찬할 정도로 말과 행동거지에 신중해야 하며,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이며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시시콜콜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피곤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며, 오직 진리의 실제만을 살아내어 정상 인성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언니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내려놓고 싶습니다.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고,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일을 제대로 하든 하지않든 상관없이 저는 양심에 따라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더라도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길 원합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아주 바빴습니다. 언니는 바쁠 때도 여전히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칠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면 육체를 배신할 믿음이 생겼고, 언니의 행동으로 기분이 좌우지되지도 않았습니다. 언니의 행동을 봐도 더는 화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저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해서 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덕분에 조금씩 언니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다시는 이런 일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 축복이 보인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또 손님 여러 명이 몰려왔지만 저는 언니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가지고 나오다 문뜩 고개를 들어보니, 뜻밖에 언니 손에도 똑같은 음식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언니가 제게 친절한 말로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사장님이 있든 없든 우리는 예전처럼 본인이 맡은 일을 하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왔습니다. 평소에도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언니는 일을 꼼꼼히 잘한다며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주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이나마 정상 인성으로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언니가 저를 칭찬하면서 언니와의 ‘전쟁’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던 남편이 끝내 정신차리다

양유(杨柳)와 향명(向明)은 소개팅을 통해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의 생활은 비록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향명은 양유를 살뜰히 보살폈고 양유가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향명은 늘 옆에서 도와 주었으며 외출하여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웃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 둘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군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도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향명이고, 일생의 동반자도 향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게 되자 가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넘쳐났고 가정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친척이 그들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유는 운 좋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같은 해에 그들은 넓고 아늑한 집도 짓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양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부부 관계도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향명이 식품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유는 남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몆 번이나 향명의 전화 벨이 울리면 향명은 재빨리 한쪽에 숨어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설마 외도라도 한 걸까?’라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고 이 가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하는데 아니겠지라며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생각은 이렇게 하였지만 양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향명이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미심쩍다는 생각에 문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챗 여자 친구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양유는 “더 이상 제 남편이랑 채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라고 문자로 답변을 보냈더니 채팅 그 여자는 오히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당신 남편에게 물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해 아주 즐겁거든요! 당신은 당신 남편 간수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채팅 그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양유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남편의 휴대폰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양유는 향명에게 더 이상 위챗 여자 친구와 채팅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향명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부터 양유를 피해 다니기 시작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급히 식사를 끝내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여자들과 채팅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양유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향명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지키고 싶기는 한가요! 위챗 채팅이 그렇게 좋아요? 채팅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님 제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향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차가운 말투로 “여자랑 채팅하는 게 중요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다들 이런 경로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고. 이런 거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양유는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 생활해 온 남편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비통하고 처량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양유는 화가 나다 못해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고 이 가정을 떠나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유는 향명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였고 비록 한 집에서 생활은 하였지만 마치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양유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향명이 왜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고민에 빠진 양유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남편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부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초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였고 이 가정도 매우 아끼고 살뜰히 유지하려고 했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터 동료들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하에 위챗 채팅에 빠지기 시작하여 매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를 않았으며 채팅에 푹 빠져 가정도 저도 아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유는 그들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 원흉이 다름 아닌 사회조류가 가져다준 사악한 풍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위챗 채팅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은 무고하고 가엾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양유는 더 이상 남편을 예전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양유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탄의 사악한 조류와 한차례 쟁탈전을 벌여 남편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양유는 예전처럼 향명을 냉대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와 마음속말도 하기 시작했고 시간만 있으면 향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 준 해악과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통해 주기도 했습니다. 향명은 양유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차분하게 앉아 양유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향명에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하게 되면 너는 무엇으로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하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된다. 그가 너를 어떻게 제어하면 어떻게 인도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너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 딴 것이다. 그럼 이런 환경을 지배하는 조정자는 누구일까?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는지 본인도 모르고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변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데 결국 오늘날의 너가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흐리멍덩하게 살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패괴하고 사람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 .” 양유는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예전에 당신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제게도, 아이에게도 잘하고 우리 가정도 아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위챗 채팅에 빠진 후부터 더 이상 나랑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어요. 당신이 식사하는 걸 보면 배가 고픈지, 부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고 대충 두어 술 뜨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요.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채팅할 생각, 채팅하는 여자만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 사악한 조류에 완전히 제어되어 있다는 걸 설명해요. 당신이 여자랑 채팅하면서 일시적인 스릴과 위안을 찾을 때,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많은 여자들이랑 채팅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 살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인터넷 채팅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어떤 가정은 여자가 남편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남자랑 도망갔고 어떤 집은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여자랑 놀아나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진리가 없기에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사탄은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정욕과 사욕에 사로 잡혀 죄속에서 낙을 누리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삼킬 목적을 달성하여 그것과 함께 멸망될 것을 바라죠. 우린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되요!” 향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유의 얘기를 듣고나서 너무 두렵고 부끄러운 나머지 “여보, 전에 난 다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당신이 속이 좁아 나랑 시시콜콜 따진다고 여겼어요. 오늘에야 사탄이 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탄은 나를 지옥으로 끌어 가고 있었어요! 사실 가끔은 나도 네티즌이랑 채팅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부부 사이에도 좋지 않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게 하고 특히 당신 기분이 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몇 번이나 더 이상 놀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탄이 휴대폰 채팅을 통하여 나를 미혹하고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고 위챗 채팅에 더 이상 빠져 들지 않겠어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 봐요!”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향명의 말을 듣고 양유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회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양유가 보는 앞에서 위챗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양유는 향명의 휴대폰에 위챗 문자가 온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향명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더니 향명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양유에게 앞으로 다시는 채팅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불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 버리는 것으로 채팅하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리라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양유는 사악한 조류가 향명에게 가져준 독해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향명을 인도하여 사악한 조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생활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교회의 한 자매님이 양유의 집을 찾아와 예배 드릴 때 향명과 교통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상대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으로만 개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른길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두게 되면 사탄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게 되면 진리를 좀 알게 되고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속에 빠져 미혹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교통해 주었고 향명은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습니다. 그후부터 향명은 양유를 따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고 차츰 마음도 더 이상 인터넷 채팅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휴대폰에 위챗이 깔려 있어도 더 이상 향명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전화상으로 채팅하던 여자에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라고 질책하는 통화 내용을 몇 번이나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향명은 위챗 인터넷 채팅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단과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라앉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탄의 변두리까지 왔던 가정에 드디어 예전처럼 기쁘고 즐거운 웃음 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양유와 향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면 심령 깊은 곳이 밝고 안심되고 더없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구원이 없고, 하나님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가정은 벌써 파탄되고 말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고 길을 잃어 헤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고 사탄이 우리같은 무지한 사람에게 준 상처를 똑똑히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사탄을 증오하게 되자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도록 남편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의 사악한 조류를 따라 타락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력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통찰력을 키워주어 분별 능력을 자라게 하였고 사탄이 사람을 독해하는 각종 음모 궤계를 간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사악한 조류의 공격을 이겨내는 가장 유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 마음속에 있다면, 마귀 사탄은 더 이상 저희를 농락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남편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구원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유도(刘涛)

재난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2015년 8월 12일, 톈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 제 5길 서해 국제 물류 컨테이너 부두에 있는 위험물 보관 창고에서 강렬한 대폭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피해 지역이 광범위했으며 사상자도 막대했습니다. 저는 이번 재난 가운데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아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생생하게 나타났음을 체험했습니다. 8월 3일 그날, 제가 예전에 알던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부탁 드렸더니 제 4길 아니면 제 6길에 있는 회사에 야간 경비 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밤에 일을 하면 돈도 더 벌 수 있고 낮에 교회의 본분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 사장님이 출장을 가서 차일피일 미뤄져 저는 조바심이 나서 전화를 걸어 재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몰라서 형제자매들과 얘기를 하니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해서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 야간 일이 괜찮은 것 같은데,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저를 제지시켜 주십시요.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믿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겠습니다. 저는 제 운명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저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 있으며, 사람의 모든 생활도 다 하나님의 눈앞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아니면 죽은 것이든 어떠한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며 새롭게 되고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행할 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 직장에 갈 수 있을지, 언제 일하게 될지는 내가 주관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야. 빨리 일하고 싶지만 사장님이 하필이면 이때 출장가고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전화를 걸어 독촉하려고 했고 현실을 내가 지배하려 하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잊고 있었구나, 사장님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순리에 따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사장님께 전화하지 않기로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8.12 대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폭발 지점이 저의 집과 수 km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저의 집 안방 창문과 베란다 유리가 진동 여파에 금이 갔습니다. 당시, 저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라디오를 통해 폭발 지점이 빈하이신구 제4길과 5길 사이이고 부상자는 부근의 타이다(泰達)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사장님이 저에게 소개 시켜 주겠다고 하던 직장이 바로 4길과 6길 사이에 있어서 그곳이 제일 심각한 피해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생각대로 일찍 일을 했더라면 저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저는 크나큰 보호를 받고 재난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즉시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저를 재난 가운데서 보호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행사는 너무나도 기묘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나중에야 저는 폭발할 때 발생한 음파로 인해 저희 주택 단지에 있는 마트의 유리가 전부 깨졌으나 저의 집 유리는 살짝 금만 간 것을 발견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임을 더욱더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안방의 유리가 깨져서 떨어졌더라면 제 머리와 몸에 박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날 창가쪽으로 머리를 두고 깊이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너무 큰 행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비록 저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천박하고 본분을 하는 중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잘 알고 계시고 긍휼히 여시기고 사랑하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배치하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이 일을 체험한 후 저는 사람의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온 인류가 어느 누가 전능자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는가? 어느 누가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가?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것인가?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인가?”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될 수밖에 없고 재해의 침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누구도 더는 아름다운 나날을 볼 수 없고 누구도 더는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랭한 흑야와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의탁이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재난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하나님이 배치하시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재난 가운데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이 모두 하나님만이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근본이고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므로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좋은 운명과 좋은 결국이 있음을 알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번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체험하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확고히 하였으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크리스천 부모가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준 가장 좋은 선택

양환애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제공해주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의 학교 선택이 부모에겐 큰 짐이 되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아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명문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학교 측은 500명의 신입생만 받겠다고 말했지만, 응시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교문 앞에 빼곡히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며 ‘경쟁률이 엄청나네. 우리 아들은 이 학교에 오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교 측의 전화를 받지 못해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 측에서는 시험 성적과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희망의 끈을 놓았고 실망도 커져 아들이 이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XX 학교 가기 싫어요. 거긴 학교도 별로인 데다가 나쁜 애들도 많아요. 저는 XX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가 수업 질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요.” 아이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남편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는 데다가 대출받은 높은 집값에 두 아들의 교육비, 게다가 노인 세 명까지 부양해야 했다. 이미 등골이 휠 만큼 휘었는데 아들을 명문 학교에 보낼 만큼 쏟아부을 돈이 어딨겠나? 아들의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파져 오고, 막막해졌을 때 나는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기도드리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ㆍ사ㆍ물의 영향(직역: 훈도(薰陶)와 영향)을 받게 될지, 어떤 지식과 재능을 배우게 될지, 어떤 습관을 기르게 될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와 가족이 누구이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무엇일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주위의 인ㆍ사ㆍ물의 관계가 어떠하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ㆍ사ㆍ물이 형성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창조주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 『한 사람의 성장 배경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생활하게 되는 환경도 당연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나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계획에 달려 있고, 창조주의 정성스런 안배에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의 평생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어떤 학교에 가건, 거기서 나쁜 것을 배우건, 앞날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명문 학교라고 해서 모두 좋은 학생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만 보더라도 부모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학교에 보냈지만, 아이의 성적은 여전히 별로였다. 그에 반해 내 친구 딸은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고에 진학했다.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학교 문제로 인한 고민과 걱정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훌륭한 학생은 좋은 학교에서만 배출된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등 사탄 독소의지배를 받으며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내게 심어놓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논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명문 학교에 진학하려 힘쓰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었지만, 부모님과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망쳤다고 원망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예전에 그 친구는 한 회사의 유명한 강사였다. 나중에 친구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관련 부처와 세무서의 ‘능력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구속될뻔 했고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지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수 있다. 이때, 마음속의 고통이 점차 사라졌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어 아들이 창조주의 주재에 따르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바뀌었다. 더는 명문 학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나한테 “엄마, 우리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비록 아들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들의 운명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어떤 학교에 가는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담담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