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2019년 01월 31일

20여 년 전, 저와 아내는 6년간의 마라톤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가정에 충실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가 병이 나거나 혹은 늦게 귀가할 때마다 저를 걱정하고 배려해 주며, 특별히 훈훈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내에게 안정된 생활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저는 해산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고생하며 바쁘게 일했지만,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 집을 장만하고 차를 구입했으며 생활 수준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지금까지 아내를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우리 부부는 가끔 말다툼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포용하고 참아 주었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집안일과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일도 제가 다 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과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금실 좋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한평생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라고 생각했습니다.

7년 전 아내는 스탠드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저는 속으로 ‘아내가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갔고 늘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는 제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시끄러운 환경도 좋아하지 않아 매번 거절했습니다. 3년이 지나자 그곳에 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일주일에 대여섯 번을 갔습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아내를 막을 수가 없었고 귀가 시간도 갈수록 늦어졌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매일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제가 곁으로 다가가면 놀라는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으며 때로는 저를 피해 화장실에 숨어서 통화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관계는 긴장 상태가 되었고 아내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저와 자주 말다툼을 벌이곤 했습니다. 아내의 변한 모습을 보고 저는 의심했지만 ‘우리 부부는 20여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어. 아내는 우리 사이의 감정과 가정을 중히 여기니 윤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아내는 한 남자를 여러 차례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자신의 노래 파트너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에 많은 의문이 남았지만 아내를 믿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두 사람의 이름으로 사랑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카드 한장과 아내와 한 남자 사이에 달콤한 대화가 적힌 수첩을 발견했습니다. 닭살 돋는 그런 내용을 보며 아내가 저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저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아내를 가리키며 “나는 일편단심으로 당신을 대했는데, 왜 나를 배신한 거야? 결혼해서 지낸 20여 년 동안 설마 내가 당신한테 잘 대해주지 못했단 말이야? 내가 이 가정을 위해 바친 대가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러나 배신했다는 제 말을 들은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돌아보면 아내가 바람피운 것이 확실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내를 수차례 미행했었습니다. 또한 그 남자의 부인을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 자신의 남편과 제 아내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처가를 찾아가 아내를 설득해 달라고 말했고, 그 남자에게도 아내와 헤어질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제 감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으며 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화가 치밀어 올라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날마다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저의 몸무게는 20kg 정도 줄었으며, 얼굴은 초췌했고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저는 일할 기분이 아니어서 앞당겨 퇴직했습니다. 아내의 배신과 기만이 저를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누구와도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증오심이 유령처럼 저를 괴롭혔고, 그 남자에게 복수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저를 괴롭혔으니 저 역시 그를 괴롭히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증오심과 이성은 일진일퇴의 싸움을 계속했는데, 저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아내는 계속 이혼하자고 말했는데 저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겠습니다.’라는 그때의 맹세를 생각하면, 저는 더욱 고통스러웠고 이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령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이라 할지라도 원래 행복했던 가정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밤, 밖에 부슬비가 내리면서 창문에 부딪혔고 저는 공허함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루는 페이스북에서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매님 역시 저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고, 동시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체험을 듣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속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지만 그런 불행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체험에서 목숨을 구해 줄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크리스천 이혼,크리스천 결혼생활,

며칠 후 자매님은 제게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진리를 깨달아야만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이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역할 힘이 능력이 없거니와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자매님은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사악함과 흑암, 사탄에게 타락된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사탄은 사회의 사악한 조류로써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권세 아래에 살게 하여 한평생 흐리멍덩하게 보내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악의 온상에서 점점 더 타락하고 사악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악한 조류를 좇아 온종일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무위도식하며, 가정이 파탄되어 자녀는 한 부모 가정에서 살면서 몸과 마음은 상처로 얼룩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악을 숭상하고 자아를 잃었으며,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 그리고 몸을 팔며 음란하고 타락한 삶을 삽니다. 지금 모든 인류는 죄 속에서 살고 윤리는 갈수록 땅에 떨어졌으며 음란이 습관화되어 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 바람을 피우고, 이중생활을 하며, 하룻밤 풋사랑이 유행이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사악을 숭상하여 사악한 조류를 따라 육적인 것을 방종하고 정욕을 누리며, 도덕 윤리, 예의, 인격, 존엄성은 다 내던지고 사람 됨됨이의 근본을 잃고 갈수록 추하고 타락하여 사악해지고 죄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바람을 피워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 사악한 사회 조류가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입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저는 원래 이 세상은 어둡고 사악한데,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좇아 초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본래 현모양처로 가정에 충실했지만, 스탠드바와 노래방에 빠진 후부터 사악한 조류를 따라 육의 정욕을 방종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으며, 가족이 받는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상외로 가정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아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결혼과 가정을 배신하는 사람들은 사실 사악한 사회 조류가 타락시킨 산물로, 그들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후, 아내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한 저의 증오심이 완화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자주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저는 서서히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제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으며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일 제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서 저를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설이 다가오는데, 집집마다 즐거운 명절 분위기로 넘쳐났지만 저의 집은 결코 평온치 않았습니다. 아내는 다시 이혼을 제기했고 그로 인해 저와 한바탕 크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홧김에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혼 증서를 가지고 가정 법원을 나서는 순간 앞으로의 삶이 더욱 막막했습니다. 예전에 가정은 저의 유일한 동력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가정이 없어졌습니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마주합니까? 고통스럽고 막막함 가운데 저는 이혼 후의 상처와 고통을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남겨 놓은 해독과 봉건사상은 사람을 모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하여 사람에게 패기가 없게 하였고, 의지력이 없게 하였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하였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하였다. 이런 등등의 객관적인 요소들이 사람의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정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사람이 모두 테러리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즉,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원만한 가정이 있기를 몽상한다든가, 부부가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몇십 년, 몇천 년, 몇만 년 심지어 현재까지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저 어두운 천지간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암투를 벌일 뿐이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하나님의 역사를 아랑곳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저의 고통스러운 근원을 찾았습니다. 바로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을 위해 필생의 정력을 쏟아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내의 기만과 배신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정을 위해 일했던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 위해 저는 지금까지 아내를 섭섭하게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간혹 우리 부부 사이에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저는 인내하고 포용했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저는 남자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내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사분오열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그 남자를 찾아가 아내와 헤어지라고 했고, 또 온갖 방법으로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철저히 가정을 버리고 저를 배신했을 때,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심지어 수단을 강구해 그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온종일 증오심에 불타 일을 할 마음이 없었고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사람 간에 진실한 사랑이 없고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배신하고, 또는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상이몽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은 다 슬프고 허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혀 의미가 없는 그런 것들을 애써 추구하는데 다 공허한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피조물이니 당연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의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면 사람 탈을 쓴 짐승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사람인 이상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모든 고통을 참아야 한다! 너는 지금 받고 있는 이 조그마한 고통을 마땅히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욥처럼, 베드로처럼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너희들은 바른길을 추구하고 향상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너희가 큰 붉은 용 국가에서 떨쳐 일어나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받는 사람들이 될 것인데,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사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세상에서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의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을 누리게 되었으니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살면서 공허하고 타락한 육적인 생활을 철저히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아낼 것입니다.

밖에는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창밖에 지저귀는 새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저는 체험 찬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가깝게 하네>를 들으며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시고 사랑이 있어야 집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실패라는 결혼의 고통에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참으로 행복한 마음의 항구를 찾았고, 진정한 집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추환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간단한 방법을 찾았다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컴퓨터, 휴대전화는 사람들의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자기기 없인 살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인 나 역시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엄청나게 집착하곤 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공부하며 자료를 찾고, 친구와 연락하고, 계획표를 작성하는 등 컴퓨터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는 정말 편리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전자기기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동시에 조금의 고민도 따랐다. 컴퓨터 앞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눈이 뻑뻑하고 아프며,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업무상의 필요로 컴퓨터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일 컴퓨터와 동고동락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뒤, 주변 동료들도 장시간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으로 눈이 많이 나빠진 걸 보게 되었다. 전자파 차단 안경을 쓴 사람도 있고, 수술 받은 사람도 있으며, 오랫동안 안경을 써서 안구가 튀어나온 사람도 있었다. 빛나고 생기 넘치던 눈이 침침해져 생기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처럼 될까 두려운 마음에 안구 피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선 컴퓨터를 1시간 하면 10분간 먼 곳에 있는 초록색 식물을 바라보며 정기적으로 눈의 피로를 풀어보았다. 이렇게 지속하니 눈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눈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업무 효율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펜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 후, 옆에 앉은 동료가 TV 광고에 나오는 안약을 쓰는 걸 보고 나도 그중에 제일 좋다는 안약을 골라 사용했다. 하지만 약물로 순간의 고통만 덜어줄 뿐, 눈의 피로는 여전했고, 오히려 눈이 점점 아팠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끝내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내게 놀러 왔다. 같이 얘기하는 도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눈이 너무 아프니까 컴퓨터 보기도 싫어. 그런데 또 컴퓨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친구가 말했다. “내가 좋은 방법 알려 줄게. 녹차를 우려서 차갑게 식힌 다음 눈에 넣고 10분 동안 휴식해 봐, 눈이 굉장히 편해질 거야. 녹차는 식물이라서 부작용도 없어. 나도 해봤는데 효과가 좋더라고.” 드디어 좋은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그래서 친구가 말한 대로 해보니 정말 눈이 편안해졌다. 2주 동안 계속했더니 뻑뻑함도 많이 가셨다. 그 후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보니 뻑뻑하고 아팠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고, 마음속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작은 식물이 신통하기도 하지! 전자파 차단 안경에 안약까지 써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녹차에 이렇게 신기한 효능도 있고, 부작용마저 없다니! 몇 년간의 고통을 드디어 해결했구나!’ 나중에 인터넷에서 녹차의 효능을 찾아본 후에야 녹차에 전자파 차단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열, 해서, 청심, 양음, 분비물 촉진, 해갈, 이질 멈춤, 상처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여름철 짜증과 뒤척임 등 에도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여름철 무더위, 더위로 인한 설사, 이질과 부스럼이나 종기, 붓기 등에도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녹차는 여름에 마시기에 제일 좋고, 효능 또한 뛰어나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만물 중 동식물이든 풀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몸에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렸을 때 필요한 식물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으면 되느냐? 아무 천으로나 감싸면 되느냐? 그러면 곪거나 감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칫 잘못하여 불이나 뜨거운 물에 데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어 내면 되느냐? 예를 들어,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거나, 일하다 타박상을 입거나, 무엇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혈관 질환처럼 생활 습관이나 감정에 의해 발생된 병이나, 정서적인 병이나, 오장육부에 생긴 질병 등은 그에 맞는 식물로 치료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에는 어혈을 풀거나, 통증을 없애거나, 지혈이 가능한 것도 있고, 마취를 하거나, 피부의 정상적인 회복을 돕는 것도 있으며, 체내의 어혈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식물 모두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고 쓸모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위해 예비한, 비상시에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 중에는 사람이 무심코 발견하게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기이한 현상이나 사람들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것도 있다. 발견한 후 인류에게 전해 내려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만든 식물 또한 가치와 의미가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의 생존 환경을 창조할 때 사람을 위해 만들고 재배한 것으로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릴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도 따뜻해졌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주듯 우리를 만드시기 전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고,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약초도 마련해 주셨다. 우리가 오랫동안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 전자파로 인해 눈이 뻑뻑하고 아플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녹차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녹차는 천연 안약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해열, 해서, 청심 등 다양한 효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뛰어나다. 찻잎 외에도 우리가 평상시에 접하게 되는 다른 한방 약초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의 곳곳까지 세심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비미은장을 실제적으로 볼 수 있었고, 묵묵히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본초강목’의 저자를 존경하며 그들이 모든 약초를 발견해 인류를 위해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준비가 있었음을 이제 깨달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고 공로를 칭찬해 주길 바라지도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직접 누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것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활함에 있어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정직한 사람은 거리낌이 없이 산다

크리스천인 그는 호주에 와서 어렵게 직장을 얻었기에 해고 될 두려움에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직장생활에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냈을까요?

새벽녘 발코니의 작은 풀을 바라보며

새벽녘, 발코니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다 문득 고개를 숙였는데 발코니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잎사귀를 보았다. 집 발코니에는 시멘트로 덮여있었고, 주변은 두꺼운 플라스틱인 데다가 수분도 부족했을 터인데 어린 잎사귀가 자란걸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린 잎사귀를 바라보며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권세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감탄하게 됐다!

한 걸음씩 성실한 삶을 채워가는 길

평소 나는 TV 앞에 앉아 콘서트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특히 무대 위 연예인이나 스타가 공연을 끝낸 후 관객이 전달해주는 꽃과 박수갈채, 그리고 극찬하는 눈빛을 받을 때면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 그들을 동경하며 ‘언제쯤이면 나도 악기를 배워 저들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아버지께 말씀드려 허락을 얻었고, 그렇게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습실에선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리와 기타 소리만 들려왔을 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때, 문득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나는 긴장했다. 기타를 잡은 자세와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모두 대학생 수준이었고, 나와는 큰 차이가 났다! 난 조심스레 기타를 안은 채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멜로디에 따라 조심스레 기타 줄을 튕겼고, 내가 내는 소음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했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손이 땀으로 가득 찼다. 주변을 돌아보며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을 쳐다봤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멜로디를 연주해 내는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기가 생겨 ‘나도 잘 할 수 있거든! 내가 좀만 노력하면 너네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기타로 연주를 하는데도 내가 내는 소리는 제멋대로 거나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쉬는 시간에 옆에 앉아 휴식하는 학생을 보며‘얼른 연습해야지. 열심히 해서 뛰어난 경지에 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고개를 숙인 채 기타연습에 매달렸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지 손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난 멈추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 집에 돌아온 후 무거운 몸을 소파에 기댄 채 옆에 놓여있는 기타를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아! 다른 애들은 다 잘하던데. 난 언제쯤이면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러자 아빠가 위로해주셨다. “너는 이제 막 시작했고, 그 친구들은 배운 지 오래되었잖아.” 난 툴툴대며 말했다. “꼭 다른 애들을 뛰어넘을 거야. 남들을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거야.” 아빠가 할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배워. 걷는 법도 모르면서 뛸 순 없잖아. 말이 안 되잖니.” 나는 입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휙 돌렸다. ‘흥! 아빤 맨날 내 열정도 몰라주고!’ 그러다 마음이 좀 가라앉으니 아빠가 한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연주는 한 번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맞아! 기죽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겠어!’ 그 후 수업시간 때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적고 집에 돌아와 끊임없이 연습했다. 계속 연습하며 이렇게 노력하면 분명 실력도 늘고 선생님도 나를 칭찬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평소처럼 기타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선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과외를 해주고 계셨다. 학생이 치는 기타 소리는 음이 뚝뚝 끊기고 박자도 엉망에 리듬도 없었다. 심지어 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못 들어줄 정도였다! 그 학생의 연주가 끝난 후 선생님은 내게 같이 연주해보자고 하셨다. 다소 긴장 되었지만, 며칠간 연습도 열심히 했으니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연주인 만큼 꼭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주한 곡에는 코드가 바뀌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나는 모든 부분을 문제없이 잘 넘겼다. 연주를 마친 후 선생님은 손뼉을 치시며 “정말 잘했어. 코드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잘 해냈네. 계속 열심히 하렴”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부끄러운 듯 웃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하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이제 선생님도 나라는 똑똑한 학생이 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시겠지? 수많은 학생 속에서 드디어 내가 두각을 나타내는구나! 이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 순간의 기분을 한껏 누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음과 음 사이에 텀이 너무 길어. 부드럽게 연결 되지가 않아. 그 부분을 좀 더 연습해봐.” 선생님의 말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두각을 나타내나 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니. 나는 기타에 소질이 전혀 없는 건가? 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할수록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을 보였다. “너무 어려워. 남들은 다 나보다 잘하는데 어느 세월에 그들을 따라잡아!” 아빠는 날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니.’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단다. 피조물이 어떻게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겠니? 우리는 완벽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씩, 조금씩 배워가야 한단다.” 하지만 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맨날 못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배운 시간이 얼만데!” 아빠는 진지하게 말했다. “배운지 한 달밖에 안 되었으면서 경지에 오르려고 하는 건 욕심이야!” 아빠의 말이 듣기 싫어진 나는 기타를 갖고 방으로 휙 들어갔다. 손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기타를 닦으며 남들은 다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는데 언제쯤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밀려왔고 기타가 내는 듣기 싫은 소리에 악에 받쳐 기타를 한편으로 던져버렸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짜증으로 가득 찼을 때, 문득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이 다양하니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컴퓨터를 켜 ‘기타 배우기’를 검색했다. 검색결과를 본 나는 더 큰 좌절감에 빠졌다. 영상 속 기타 ‘고수’는 모두 나보다 어렸다. 7, 8살, 10대도 있었다. 너무나 큰 격차에 나는 더 의기소침해졌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도 잘 치다니. 다 커서 배운 나는 잘 치긴 글렀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 헛수고일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배우려 할수록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러나 사람 안에 약점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이나 업무를 배우고 나면 ‘난 능력이 생겼어, 난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몸값 좀 나가는 사람이야, 나는 ○○전문가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 얼마나 크든지 사람은 그것을 보여 주기도 전에 자신을 위대하고 용맹하고 완전무결하고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포장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해내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한다.』『하나님은 사람을 지어서 땅에 두고 먹고 입고 싸고 하는 생활 규칙 모두를 정상적이게 하였고, 사람됨의 기본 상식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는지를 배우게 했지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야심을 가지고 늘 자신이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며 남다르고 특이해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너의 이 생각의 근원이 틀렸다.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다”는 것은 무슨 사상인가? 금계독립인가? 군계일학인가? 비할 바 없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정상 인성의 추구 목표에 사용하면 좋은가? 완전무결ㆍ천하일색ㆍ자수성가, 이런 단어는 좋은가? 걸출하고, 훌륭하고, 특별한 인재, 이런 단어는 좋은가? 카리스마, 인격적인 매력, 스타, 명인, 위인, 마음의 우상,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살도록 하신 것은 우리가 착실한 사람이 되고, 착실하게 일을 하라고 한 것인데 나는 스타나 다른 사람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며 ‘남들보다 뛰어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어 했다. 이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며 사탄이 추구하는 관점이다. 처음 기타를 배우려고 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단순히 취미나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무대에서 꽃을 받고 박수갈채에 둘러싸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연습실에서도 남들 앞에서 돋보일 생각만 하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내가 사람들의 중심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기타를 배우기만 하면 다른 사람 보다 뛰어나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타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몰래 연습해서 다른 사람을 뛰어넘고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칭찬해줄 날만 생각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기타를 배우면서 나타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게 되었다. 약간의 좌절감이라도 느끼면 스스로 안 된다고 단정 짓고, 다른 사람의 인정과 선망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삶조차 고통스러워졌다. 난 항상 다른 사람의 선망을 기대하며 평범한 사람이 되길 거부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즐거움도 사라지고 오히려 체면과 지위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고, 더 힘들어졌다. 아빠가 한 말이 맞았다.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탄이나 천사장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천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천사를 관리하는 권세를 갖게 되어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처음 기타를 배우면서 첫 술에 배부르려 했다니. 정말 천사장처럼 교만하긴 짝이 없었다. 이렇게 가다간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고 사탄에게 고통만 받지 않겠는가?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피조물로서 명예와 이익,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착실하게 올바른 사람이 되고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배우건, 마음 다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선망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방법만을 구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개운해졌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당연히 많은 결점과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마땅히 스스로 장단점을 살펴 남들의 선망을 얻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기타를 칠 줄 모르면 조금씩 배워가면 된다. 한 번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나만 힘들어지는 것이다. 진실한 나로 살아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체면은 내려두고 선생님이나 그 분야에 유능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남들이 무시하건 말건 배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이걸 깨닫고 나자 기타를 칠 줄 모르는 것이 그렇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한 술에 배부르려던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속 고통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았다. 기타를 배우는 토요일이 되었다. 연습실에 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후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악보를 따라 연습했다. 그때 아주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나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여학생이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기타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사람에게 기타 연주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막상 그 여학생이 연주를 마치고 나자 말 걸기가 부끄러워졌고, 혹시 나를 무시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이런 사람은 계속 뜬 구름 속에 있지 않는가?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만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고 여태껏 실속 있는 사람으로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람됨에 있어서 만약 이런 길을 선택하여 늘 구름 속에 있으려 하고 땅에서 착실하게 걷지 않고 자꾸 날려고 하거나 뜨고 싶어 한다면 위험하다.』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내 모습이 바로 길을 잃은 모습이 아니던가? 문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었다. 바로 착실하게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어봤다. “언니, 방금 연주한 곡이 어떤 곡이에요? 처음 들어봤는데. 혹시 어떻게 연주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언니는 인내심을 갖고 내게 말했다. “기타 줄을 훑는 거야.” 언니는 설명과 함께 직접 시범도 보여줬고 그 속에 숨어있는 기술도 알려주었다. 언니의 답변에 나의 쓸데없던 상상력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기술도 익히게 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연습실에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선생님이나 언니에게 물어봤다. 하나님의 인도하에 서서히 발전하고,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자신을 보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는 원칙임을 알게 되었고, 착실히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참으로 기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스스로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기타 연주 소리가 빨라지고 불안정해지거나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를 따를 때면 마음이 평온해져 연주 소리도 안정을 찾아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악기 연주를 얼마나 잘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착실하게 사람됨을 배우며,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피조물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타를 배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얼마 후, 나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기타 팀을 만들었고, 내가 팀장을 맡아 다른 조원에게 가르쳐주게 되었다. 그때 나는 팀장이 되었으나 다른 사람 보다 잘났다는 마음을 갖지 않았고, 내 실력이 부족해 다른 팀원의 비웃음을 살까 전전긍긍해 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에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내가 가진 만큼 다른 남들에게 베풀 줄도 알게 되었다. 스타의 꿈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남들보다 뛰어나길 추구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전에 없던 편안함과 기쁨이 찾아왔고, 하나님의 인도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장사의 성공 비결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2008년, 나는 둘째 형과 동업해 제과점을 열고, 빵, 카스텔라, 과자 등 다양한 제과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 계란 역시 100리 가까이 달려가 신선한 것으로 구매했다.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첨가제 등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분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나날이 지나가고, 장사도 점점 잘 됐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연말에 결산을 할 때, 원가를 제하고 단돈 900원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마을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또 내고 속으로 이번에는 장사가 분명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손님은 정말 전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제과의 품질이 마을에서 좋게 소문이 나서 어떤 과자와 카스텔라는 또 슈퍼마켓에 도매로도 팔렸다. 나날이 상승하는 판매량을 보며 나는 마음이 흐뭇했다. 연말에 잔뜩 기대하며 연 수입을 계산했을 때, 우리가 번 돈이 겨우 일상 지출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의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수입이 적어 남는 돈이 없다면 나중에 형의 가정이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가게에 와서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만든 카스텔라는 다른 집보다 못한 것 같네요!” 나는 손님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얼른 물어보았다. 손님이 대답했다. “여기서 파는 카스텔라는 색깔이 덜 노래요. 계란을 많이 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손님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집 카스텔라가 노랗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넣은 계란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왜 색이 노랗지 않는가? 이 때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처럼 카스텔라를 만들어 팔아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계란을 더 넣게 되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러나 계란을 더 넣지 않으면 색이 좋지 않아 사는 사람이 또 많지 않고, 많은 손님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카스텔라의 색깔을 보기 좋게 하려면 색소를 넣어야 해. 정직하게 계란을 넣는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게다가 색소를 넣으면 계란은 조금만 넣으면 돼. 겉으로만 봐서는 계란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무도 몰라. 장사를 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돼. 돈을 벌고 싶으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을 좋아해. 영양이 없더라도 보기 좋고, 맛만 있으면 돼. 그러면 사려는 사람이 많지.”나는 그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카스텔라는 좋은 식재료를 썼지만 손님은 이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보았다. 친구는 나처럼 2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 정작 본인은 본전만 겨우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색소를 넣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안했다. 식용 색소라고는 하지만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인데...... 갈등하던 중 내가 제과 일을 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사촌 형이 말했다. "색소를 넣으면 되지. 정직하게 장사하면 정말 돈을 벌 수 없어. 지금 사회가 그래. 네가 돈을 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도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제과점을 봐. 몇 년 동안 장사하더니 차도 사고, 집도 샀잖아. 그게 다 그렇게 번 것 아니겠어? 네가 안 넣는다면, 내가 먼저 넣을게." 그 후, 사촌 형은 정말 계란 대신 색소를 쓰고, 최상급 샐러드유 대신 드럼통의 보통 식용유로 바꿨고, 밀가루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바꿨다. 사촌 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전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는데 형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색소를 샀어. 네가 만들때 조금 넣어."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은 괴로웠다. 이 색소라는 것은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 하지만 형이 이미 사왔고 사촌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도 모두 넣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럼 조금만 한 번 넣어 볼까? 이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색소를 쏟아 부었다. 과연, 색소를 쓰고 난 후 카스텔라의 색깔이 보기 좋아졌다. 그런 금빛 찬란한 카스텔라를 보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손님이 먹고 탈이 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손님과 마주할 때 마음이 찔려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이 무엇에 짓눌린 듯 괴롭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손님한테도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돈의 유혹을 받아 나도 사촌 형처럼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를 쓰고, 식용유도 낮은 등급으로 교체했다. 원가가 줄어들면서 버는 수입도 많아졌고, 서서히 나의 양심의 불안도 차츰 사라졌다.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이 물욕 넘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가져야 할 양심, 도덕을 상실하고 기꺼이 이 악한 사회의 흐름에 따르고, 사탄에 의탁했다. 간사한 수단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정말 속이 검은 장사꾼이었다! 처음에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사를 하던 생각이 났다.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속임수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서 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돈은 좀 벌었지만 인격을 잃었고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조금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후회했다. 다시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었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처럼 살고 싶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리를 도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얻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오늘 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나는 더 이상 사회의 흐름을 따라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 나는 형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색소를 넣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느꼈다. 모두가 속임수를 쓰는데 나만 안 쓴다면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고 우리 가게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지닌 채 나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게 없을 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세요.”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5-26、31-33)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믿음을 주었고,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의 일, 생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나의 장사가 좋고 나쁘고, 카스텔라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하니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 욕심이 너무 커서 돈에 두 눈이 먼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배불리 먹고,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떳떳하게 살면서 광명정대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어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사했다. 더 이상 색소를 쓰지 않았고 품질이 낮은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모두 바꿨다. 손님이 내가 만든 카스텔라가 색깔은 안 예쁘지만, 아주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그분에게 카스텔라에 색소를 넣지 않고 계란만 넣었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손님은 듣고 나서 나의 방법을 칭찬했고, 주위에 내가 만든 제과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위안이 되었다! 그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식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두 우리 집의 제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도매상이 우리 가게의 한 과자를 맘에 들어 하면서 주동적으로 도매에 나섰다. 나중에 우리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도 아주 잘 됐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가 속임수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을 때 뜻밖에도 매상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살 소녀가 찾은 죄에서 벗어나는 길

저는 마루(Maru)라고 부르며 필리핀 사람입니다.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었고 매주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 목사가 자주 야고보서 4장 4절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비록 이 성경 구절을 자주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저의 생활은 방탕하여 이방인과 다름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통 학교 과제와 여러가지 활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 따라 수업 빼먹고 번화가로 나가 활보하며 놀기 좋아했던 저는 세상 조류를 따르며 유행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갖지 않았던 저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번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땐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예배만 끝나면 생활은 예전과 마찬가지었습니다. 평소 저는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와 웃어른을 아예 안중에 두지도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들의 말은 듣지도 않았는데, 늘 그들의 단점과 흠을 집으며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이 성경 구절을 생각하면 자신을 뉘우치긴 하였지만 타인의 흠과 단점은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매번 교회에 가서 청소하거나 주일 예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주며 일손을 도울 때도 제가 한 일에 항상 관심을 갖고 칭찬해 주길 바랐습니다. 제가 한 이 모든 출발점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바란 것이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태복음6:1~4)이 말씀에서 저는 자책감을 받았고 자신이 아주 이기적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행한 모든 것은 사람의 높임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전도서 11장 9절의 말씀을 늘 상기하였습니다.“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저는 이런 가르침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가책을 받았고 자신의 죄로 인하여 괴로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님께 늘 자신의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는 늘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며 당신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기도는 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저를 버리지 않을까 늘 걱정했습니다. 비록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지만 저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없었고 죄속에 살면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원인인지 몰랐지만 주님만은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냥 이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저녁, 마닐라에서 돌아온 워시 아주머니가 감격에 겨워 저희에게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지금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의 사역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주님이예요. 하나님은 이미 땅에 오셨고 6000년 경영계획에서의 마지막 한단계 사역을 하고 있어요. 이 한단계 사역의 목적은 바로 인류를 정결케 하고 인류의 죄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저희는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조심스레 “저는 아직도 무의식중에 죄를 범하고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 저를 받아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천부의 뜻을 준행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으니 우리가 만약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낙담하고 소극적이 될 필요는 없어요. 주님은 은혜시대에 죄를 사하는 사역만 하셨지 죄의 뿌리를 없애는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죄를 범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주님의 구속사역의 기초 위에서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 사역을 하여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구원하는 거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 두단락을 우선 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죄를 범하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 그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이런 문제를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 성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정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정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에 대해 폭로한 말씀들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고,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알게 되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고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위의 말씀을 읽은 다음 워디 아주머니는 계속 교제하여 주었습니다. “은혜시대에서 주님은 한 단계 구속 사역을 하였지요. 비록 우리는 속죄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우리의 죄성은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을 받아 늘 죄를 범하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과 통제 속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면서 늘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로 인해 사람은 자신이 늘 죄를 범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을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자주 의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의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한단계 심판의 사역 즉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여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발표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의 실질과 진상 그리고 인류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심판하고 폭로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자신의 본성이 교만자대하고, 이기적이고 궤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등 사탄성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려고 추구하고 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인식하려고 추구한다면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생명 성정은 변화가 있게 되는데, 점점 양심과 이지가 있게 되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어 나중에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은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인류가 몇 천년간 죄를 범하고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끝내고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흑암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아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기 위한 거죠. 우리가 심판 사역에서 정결함을 얻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죄 사함만 받았지 죄성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예전에 주님의 가르침을 늘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알고보니 제 안에 아직도 죄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니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결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는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생활은 이방인과 같았는데, 세상의 조류를 따르며 거의 기도하지 않거나 성경을 보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데만 머물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는데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패괴성정이 조금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서 개인적인 일로 바빴는데 집안의 어른이 저더러 밖에 나가 뭘 좀 갖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화가나서 성질 부리려 했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을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 정말 적합할까? 나는 정결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저를 일깨워 주면서 혈기를 내지 않게 되었고, 저는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까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물론 지위가 없는 패괴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유로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패괴와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가지 일이 닥치면, 우선 자신을 내려놓고 육체를 가장 비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구는 더욱 한도 끝도 없게 되어,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에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육체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이 있어 너에게 늘 그것을 만족시키게 하여 항상 누리려고 한다. 먹거나 입거나 성질부리거나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리고 나태하거나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은 더 커지고, 또한 점점 더 방탕하게 되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사람의 육체는 더 깊은 관념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치켜세우게 되며, 게다가 하나님의 사역을 의심하게 된다.』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면 화를 내고 화를 낸 원인은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교만한 본성이 나온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에 따라 일을 한 것이며 이렇게 할수록 저는 성질만 더욱 잘 부리고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저는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순복하는 것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반성할 때 저의 정서는 통제되었고 성질부리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체통에 관한 교통에서 예의를 차리고 범절을 알며, 연장자를 존중하고 아랫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연장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차분해졌는데 진정한 포용과 인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저에게 임한 것이며 여기에서 진리에 순복하는 것으로 사탄의 패괴 성정이 조금씩 벗겨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다》라는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 너에게도 베풀어 주고 나에게도 베풀어 주고 그에게도 베풀어 주며, 진심으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다.』하나님은 확실히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말세의 구원을 얻을 기회가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한번도 저를 떠난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저의 생활은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저는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본분은 열심히 하면서 예전처럼 세상의 것을 좇지 않습니다. 그외에도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임하면 먼저 순복하는 것을 배우고 그 다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찾고 구합니다. 저는 자신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기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나중에 철저히 사탄의 패괴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리가 굳게 믿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잃어버린 행복,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다

남편의 외도로 바라던 행복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고통과 절망뿐이였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기로에 서서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였는데,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별의 고통을 버리고 행복의 새삶을 되찾았을까요?

성공을 거둔 후 남겨진 고통과 공허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부단한 노력 끝에 마침내 성공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노고와 피로로 인해 그는 50세 이후에 걸릴 수 있는 병이 생겨 너무 고통 스러워 했다. 하나님을 믿은 후 그는 드디어 고통의 근원을 찾았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인생의 바른길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