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2019년 01월 31일

20여 년 전, 저와 아내는 6년간의 마라톤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가정에 충실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가 병이 나거나 혹은 늦게 귀가할 때마다 저를 걱정하고 배려해 주며, 특별히 훈훈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내에게 안정된 생활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저는 해산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고생하며 바쁘게 일했지만,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 집을 장만하고 차를 구입했으며 생활 수준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지금까지 아내를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우리 부부는 가끔 말다툼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포용하고 참아 주었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집안일과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일도 제가 다 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과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금실 좋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한평생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라고 생각했습니다.

7년 전 아내는 스탠드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저는 속으로 ‘아내가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갔고 늘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는 제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시끄러운 환경도 좋아하지 않아 매번 거절했습니다. 3년이 지나자 그곳에 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일주일에 대여섯 번을 갔습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아내를 막을 수가 없었고 귀가 시간도 갈수록 늦어졌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매일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제가 곁으로 다가가면 놀라는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으며 때로는 저를 피해 화장실에 숨어서 통화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관계는 긴장 상태가 되었고 아내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저와 자주 말다툼을 벌이곤 했습니다. 아내의 변한 모습을 보고 저는 의심했지만 ‘우리 부부는 20여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어. 아내는 우리 사이의 감정과 가정을 중히 여기니 윤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아내는 한 남자를 여러 차례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자신의 노래 파트너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에 많은 의문이 남았지만 아내를 믿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두 사람의 이름으로 사랑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카드 한장과 아내와 한 남자 사이에 달콤한 대화가 적힌 수첩을 발견했습니다. 닭살 돋는 그런 내용을 보며 아내가 저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저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아내를 가리키며 “나는 일편단심으로 당신을 대했는데, 왜 나를 배신한 거야? 결혼해서 지낸 20여 년 동안 설마 내가 당신한테 잘 대해주지 못했단 말이야? 내가 이 가정을 위해 바친 대가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러나 배신했다는 제 말을 들은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돌아보면 아내가 바람피운 것이 확실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내를 수차례 미행했었습니다. 또한 그 남자의 부인을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 자신의 남편과 제 아내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처가를 찾아가 아내를 설득해 달라고 말했고, 그 남자에게도 아내와 헤어질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제 감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으며 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화가 치밀어 올라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날마다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저의 몸무게는 20kg 정도 줄었으며, 얼굴은 초췌했고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저는 일할 기분이 아니어서 앞당겨 퇴직했습니다. 아내의 배신과 기만이 저를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누구와도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증오심이 유령처럼 저를 괴롭혔고, 그 남자에게 복수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저를 괴롭혔으니 저 역시 그를 괴롭히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증오심과 이성은 일진일퇴의 싸움을 계속했는데, 저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아내는 계속 이혼하자고 말했는데 저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겠습니다.’라는 그때의 맹세를 생각하면, 저는 더욱 고통스러웠고 이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령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이라 할지라도 원래 행복했던 가정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밤, 밖에 부슬비가 내리면서 창문에 부딪혔고 저는 공허함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루는 페이스북에서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매님 역시 저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고, 동시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체험을 듣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속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지만 그런 불행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체험에서 목숨을 구해 줄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크리스천 이혼,크리스천 결혼생활,

며칠 후 자매님은 제게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진리를 깨달아야만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이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역할 힘이 능력이 없거니와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자매님은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사악함과 흑암, 사탄에게 타락된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사탄은 사회의 사악한 조류로써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권세 아래에 살게 하여 한평생 흐리멍덩하게 보내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악의 온상에서 점점 더 타락하고 사악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악한 조류를 좇아 온종일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무위도식하며, 가정이 파탄되어 자녀는 한 부모 가정에서 살면서 몸과 마음은 상처로 얼룩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악을 숭상하고 자아를 잃었으며,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 그리고 몸을 팔며 음란하고 타락한 삶을 삽니다. 지금 모든 인류는 죄 속에서 살고 윤리는 갈수록 땅에 떨어졌으며 음란이 습관화되어 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 바람을 피우고, 이중생활을 하며, 하룻밤 풋사랑이 유행이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사악을 숭상하여 사악한 조류를 따라 육적인 것을 방종하고 정욕을 누리며, 도덕 윤리, 예의, 인격, 존엄성은 다 내던지고 사람 됨됨이의 근본을 잃고 갈수록 추하고 타락하여 사악해지고 죄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바람을 피워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 사악한 사회 조류가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입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저는 원래 이 세상은 어둡고 사악한데,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좇아 초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본래 현모양처로 가정에 충실했지만, 스탠드바와 노래방에 빠진 후부터 사악한 조류를 따라 육의 정욕을 방종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으며, 가족이 받는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상외로 가정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아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결혼과 가정을 배신하는 사람들은 사실 사악한 사회 조류가 타락시킨 산물로, 그들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후, 아내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한 저의 증오심이 완화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자주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저는 서서히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제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으며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일 제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서 저를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설이 다가오는데, 집집마다 즐거운 명절 분위기로 넘쳐났지만 저의 집은 결코 평온치 않았습니다. 아내는 다시 이혼을 제기했고 그로 인해 저와 한바탕 크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홧김에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혼 증서를 가지고 가정 법원을 나서는 순간 앞으로의 삶이 더욱 막막했습니다. 예전에 가정은 저의 유일한 동력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가정이 없어졌습니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마주합니까? 고통스럽고 막막함 가운데 저는 이혼 후의 상처와 고통을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남겨 놓은 해독과 봉건사상은 사람을 모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하여 사람에게 패기가 없게 하였고, 의지력이 없게 하였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하였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하였다. 이런 등등의 객관적인 요소들이 사람의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정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사람이 모두 테러리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즉,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원만한 가정이 있기를 몽상한다든가, 부부가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몇십 년, 몇천 년, 몇만 년 심지어 현재까지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저 어두운 천지간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암투를 벌일 뿐이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하나님의 역사를 아랑곳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저의 고통스러운 근원을 찾았습니다. 바로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을 위해 필생의 정력을 쏟아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내의 기만과 배신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정을 위해 일했던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 위해 저는 지금까지 아내를 섭섭하게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간혹 우리 부부 사이에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저는 인내하고 포용했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저는 남자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내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사분오열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그 남자를 찾아가 아내와 헤어지라고 했고, 또 온갖 방법으로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철저히 가정을 버리고 저를 배신했을 때,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심지어 수단을 강구해 그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온종일 증오심에 불타 일을 할 마음이 없었고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사람 간에 진실한 사랑이 없고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배신하고, 또는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상이몽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은 다 슬프고 허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혀 의미가 없는 그런 것들을 애써 추구하는데 다 공허한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피조물이니 당연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의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면 사람 탈을 쓴 짐승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사람인 이상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모든 고통을 참아야 한다! 너는 지금 받고 있는 이 조그마한 고통을 마땅히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욥처럼, 베드로처럼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너희들은 바른길을 추구하고 향상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너희가 큰 붉은 용 국가에서 떨쳐 일어나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받는 사람들이 될 것인데,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사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세상에서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의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을 누리게 되었으니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살면서 공허하고 타락한 육적인 생활을 철저히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아낼 것입니다.

밖에는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창밖에 지저귀는 새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저는 체험 찬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가깝게 하네>를 들으며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시고 사랑이 있어야 집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실패라는 결혼의 고통에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참으로 행복한 마음의 항구를 찾았고, 진정한 집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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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고 우리의 생명샘으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 속에서 존재하는 문제나 힘들고 답답한 문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채팅창으로 문의하십시오!

좋은 몸매와 완벽한 사랑

제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때, 늘 어른들에게서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아서 제대로 환생하면 일생동안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일생동안 불행해진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책에서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窈窕淑女, 君子好逑)’란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런 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자신이 커서 요조숙녀가 되어 훗날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기만을 기대했습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공을 들였습니다. 아침이면 꾸준히 안면체조를 했는데 이는 턱과 얼굴을 작게해 나중에 더 예뻐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늘 주변의 동창들에게 “수수를 적게 넣고 빚은 소주가 향이 담백하고 모이를 적게 먹은 닭이 살이 없다.(秫瘦酒味薄, 食少鷄不肥)” ‘사람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입 단속을 잘해야 한다. 평소에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저녁에는 되도록 소식하고 배고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으면 물을 마시면 된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늘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다 너무 힘들다면서 다이어트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취직하게 되었는데 TV에서 다이어트 광고를 볼 때마다 그 제품들이 다 그렇게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뚱뚱하던 배가 날씬한 허리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술처럼 느껴졌고 이로 인해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언젠가 자신도 소원 성취하여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배필이 될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이어트 광고를 통해 제 나이에 가장 적합하고 요요현상이나 부작용도 없는 제품인 다이어트 벨트를 사기로 했습니다. 급여를 받고 가장 먼저 300위안을 투자하여 다이어트 벨트를 샀습니다. 저는 제품을 받아들고 너무나 흥분되었는데 보름이 지나면 저의 다이어트 꿈이 실현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 벨트는 전용 건전지를 사용해야 했기에 전기가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래서 건전지 하나면 두번밖에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날씬한 몸매를 위해 저는 모질게 마음먹고 보름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한달이 지나가도 뚜렷한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TV에 나온 사람들은 분명히 사용하고 나서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는데 난 왜 안될까? 다이어트 벨트가 효과가 없다면 또 그렇게 많은 제품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어느 하나는 나에게 적합한 것이 있겠지!’ 그리하여 저는 또 다시 다른 다이어트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또 700위안이 넘는 돈을 들여 다이어트 의자를 구매했습니다. 그 의자는 근육을 당겨주는 역할을 하여 몸에 쌓여 있는 군살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에는 의자로 꾸준히 운동할거야. 또 식이요법으로 고열량의 음식을 금하고 끼니마다 소식할거야. 이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다이어트에 성공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해서 날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체중을 체크했습니다. 저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가운데서 실망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상심했고 괴로웠습니다. ‘내 다이어트 계획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간단 말일까? 안 돼.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미래를 위해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인터넷에서 건강하면서도 실용적인 다이어트 비법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는 말처럼 저는 마침내 꿀식초 다이어트법을 찾아냈습니다. 잇따라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다이어트 식품을 정성껏 만들어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효과는 여전히 별로였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저는 계속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쌀을 가마솥에 볶아 다시 밥을 지어 먹었는데 이러면 열량이 적어 살이 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과 점심은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오후에는 밥을 먹지 않고 요구르트 하나로 떼웠습니다. 식후에는 벽 모서리에 5분간 서있기 운동을 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가급적이면 서있고 앉거나 눕는 것을 피했습니다. 저는 꾸준히 노력하여 50kg만 되면 다이어트 계획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의 미래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집 열쇠를 잊고 집에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직장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열쇠를 가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 노발대발하며 “더이상 다이어트는 하지 마라. 직장 동료들이 전에는 이쁘고 생기있던 네가 지금은 까맣고 말랐다고 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 저도 순간 멍해졌다가 재빨리 거울앞에 가서 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제 얼굴은 말랐고 윤곽이 선명했습니다. 어둡고 피부가 윤기가 없이 초췌해 보여 청춘의 활력마저 잃었습니다. 나중에 제 생리 주기마저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인해 제 건강에 적색신호가 울린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미모와 몸매, 저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고통속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온갖 방법을 다해 맛있는 것을 하여 제 건강에 신경써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보면서 저는 정말로 실컷 맛있게 먹고 싶었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몸매를 유지하여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 저는 여전히 소식하는 것을 이어나갔습니다. 2012년 말,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접하는 과정에서 저는 형제자매들의 옷차림이 모두 아주 단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형제들이 참석하는 예배라면 자매들은 치마를 입어 자신의 몸매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고 다 진리를 추구하는데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때에야 저는 비로소 마음속으로 묵묵히 자신도 예전에 추구했던 관점을 바꾸어 형제 자매들을 따라 배우며 진리를 추구하는데 공을 들이겠노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적부터 소망하고 추구하던 것이 제 마음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 저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거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위쳇 채팅방에서 ○○브랜드 제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설명서에는 이 제품이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고, 게다가 체질을 조절할 수 있어 꾸준히 3개월만 섭취한다면 쉽게 살찌는 체질을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꿀 수 있으며, 또한 건강기능까지 있어 몸의 여러 곳의 영양을 전면적으로 조절 할 수 있다고 소개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저는 또 한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자나 깨나 찾고 있던, 미모도 몸매도 다 챙길 수 있는 제품이었으니까요! 살빼는 벨트나 의자처럼 외부 운동으로 지방을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밖으로 체질을 조절하는 것으로 3개월만 섭취하면 체질이 바뀔 수 있어 영원히 날씬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에 있었던 참담한 실패로 저는 자신의 몸이 또 한번 상처를 받아 건강이 망가질까봐 두려웠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자신의 완벽한 몸매와 청춘을 위해 저는 다시 한번 밑천을 아끼지 않고 6,000위안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3개월의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날마다 영양사가 지시한대로 했는데 밥을 먹을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한끼라도 잘 먹고 싶었으나 그 한끼로 다이어트가 수포로 돌아갈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끝까지 견지할거야. 3개월만 버텨서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면 그때에 산해진미를 실컷 먹을 거야. 내 자신에게 잘 보답할거야!’라고 속삭였습니다. 3개월 후, 결국 저는 3kg밖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생리 주기는 더욱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영양사는 제게 또 다른 제품을 추천했습니다. …… 그제야 저는 갑자기 속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요조숙녀가 되기 위해 저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고 반대로 몸은 중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같은 또래의 형제자매들을 보니 그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에 중시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얼굴에 청춘의 활력으로 넘쳤는데 저는 어떤가요?…… 후에 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교통하였습니다. 저는 차츰차츰 진리를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사람이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또한 자신도 어찌 할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는 사탄의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탄에게서 오는 사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여전히 그것을 끌어안고 보배처럼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의 지배에 맡기고 그것이 제멋대로 우롱하게 내버려 둔다. 사람은 이렇게 사탄에게 점점 더 깊게 패괴되어 간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때 사람에게 먼저 사탄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고 나서 사람이 그것에게 통제를 받게하여 패괴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 자신이 줄곧 사탄에게 우롱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제대로 환생하면 평생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평생 불행해진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라는 이런 그릇된 논리로 저를 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려서부터 요조숙녀가 되어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직장에 다닐 때까지 저는 온갖 방법을 다 쓰면서 이 목표에 도달하려 했고 온종일 마음을 다이어트에 기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또 한번 기만당했고 저는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을 뿐만 아니라 저의 건강에도 적색 신호가 울렸던 것입니다. 사탄은 정말 너무나 혐오스럽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와 미용을 위해 자신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주었고 자신의 남은 생애를 고통속에 살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만약 하나님 말씀의 밝히심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체 계속 사탄에게 우롱당해 아름다운 몸매를 갖추기 위해 제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저는 비록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추구하는 관점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기에 저는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에게 깊이 빠져 짓밟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도대체 누가 자기의 배우자가 될지는 모른다. 비록 사람이 모두 결혼, 이 일에서 자기의 주장과 생각이 있을지라도, 최종에 정말 자기의 짝이 될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지 사람은 예견할 수 없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너의 구애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가 너에게 관심이 있는지, 그가 너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이것은 모두 너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꼭 너와 함께 한평생을 보낼 수 있는 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사람이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네 삶 속으로 들어와 네 삶의 동반자가 되고 네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너의 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혼인이란 사람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개변할 수도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과 같이 아무도 자신의 결혼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한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7년동안 연애하였고 서로가 한평생 의지하고 살자고 철석같이 약속하였지만 양가 부모님이 동의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또 어떤 동창생은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홧김에 생활이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갔는데 생각외로 결혼한 후 서로 이해하고 아끼면서 잘 살고 있고, 게다가 가게를 열어 장사해서 지금은 집 몇 채에 고급 자가용까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동창생은 서로 눈이 맞아 연애하다가 결혼했는데 오히려 결혼 후 툭하면 말다툼을 하면서 서로 원망하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한답니다. 생활 속에 이러한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혼인을 장악할 수 없고 아무도 자신의 결혼 상대가 누구일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미혹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려고 망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뻐져 더 훌륭한 군자를 만나려 하였고 이것으로 제 자신의 결혼 행복지수를 높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자신의 추구를 생각하니 너무나 터무니 없었습니다! 사람의 운명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날씬한 몸매를 갖춘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해서 완벽한 사랑과 혼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그릇된 관점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렇게 하나님께 대항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한 동료가 체중이 늘어나서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지난날 제 자신이 고통스럽게 다이어트하던 나날을 생각하면서 에돌려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성정, 소질, 생김새, 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에게 사람의 생김새, 몸매, 키, 그리고 혼인 등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 있고 모두 하나님의 명정속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배한 일체는 다 좋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뭘 더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권병에 기꺼이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고 자신에 대한 괴롭힘이니까요. 오늘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하에 저는 끝내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좋은 배필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에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형제 자매들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포기했을 때, 차츰차츰 저의 몸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얼굴색도 좋아졌고 피부도 부드럽고 매끄러워졌으며 청춘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탄의 짓밟힘과 우롱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진정한 자유 석방을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오아이(郝愛)

아들의 웃음을 돌려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날, 류화(劉華)는 학교로부터 학부모회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학교 측은 2학년 학생과 학부모 전체가 면학반 개방 프로그램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학교 행사장은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측 대표는 강단에 올라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면학반 학생들의 우수한 수능 결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면학반’은 중학교 2학년 학생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학교 입시를 면제해 주는 특별 우수반을 뜻합니다. 면학반에는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교사를 배정하고, 학생들에게는 무료 숙식이라는 특별 대우를 제공합니다. 면학반에 합격한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을 2~3개월 안에 모두 끝내야 할 만큼 공부의 강도도 셌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숙제를 마무리하는 걸 보면 면학반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에 힘쓰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집에 돌아오면 류화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학반 학생들은 다 ‘악바리’에다 ‘잠도 안 자는 무적인간’인가 봐요. 교실 등이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니까요.”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류화는 놀람을 금치 못했고, 아이들의 몸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유년시절의 활기를 잃어 갔고, 모두 애늙은이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자녀를 면학반에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간간이 울려 퍼지는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를 따라 류화는 회상에 잠겼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영특함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류화는 ‘어리석은 새가 먼저 숲으로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들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아들에게 학습 계획표를 짜주고 단원별, 주별, 월별로 시험지를 풀게 했으며, 복습 교재도 많이 사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아들이 숙제를 마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연습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들의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우개로 다 지워 버린 후 다시 쓰게 했습니다. 답이 틀렸을 때는 그 벌로 틀린 문제를 여러 번 베껴 쓰게 했습니다. 아들은 매번 원망스러운 눈으로 류화를 쳐다봤지만 류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주말도 없었고 TV도 볼 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끝없는 숙제와 문제들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할 때면 류화는 아들을 달랬습니다. “이 시험지만 다 풀면 놀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하지만 시험지를 다 푼 후에는 다른 시험지를 풀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더는 류화의 말을 믿지 않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난 거짓말쟁이 엄마가 미워!” 류화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어려서 철이 없고 커서 성공하면 자신의 노력을 이해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류화의 ‘도움’으로 아들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류화에게 있어 아들의 100점짜리 시험지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습니다. 학부모회를 갈 때면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고 더욱 뿌듯해했으며,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자신과는 관계가 점점 멀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매일 방과 후 집에 오면 어두운 표정뿐이었습니다. 류화가 다가가면 아들은 몸을 움츠려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문제를 풀게 할 때는 눈을 치켜뜨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멀어진 류화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고통에서 헤매었고, 과연 누가 자신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류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과 미약함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지식을 미끼로 삼는다. 잘 듣거라.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미끼일 뿐이다. 사람에게 ‘공부를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라며 지식을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게 한 다음, 그 지식으로 과학의 대문을 열게 한다. 바로 네가 배운 지식이 많으면 아는 것이 더욱 많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것이다. 사탄은 또 사람에게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원대한 꿈(원문: 理想)을 품게 하여 ‘포부’가 있고 ‘꿈’이 있게 한다. 사람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적지 않게 주입시켜 사람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것이 옳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이런 길을 가게 되었고, 부지중에 자신의 ‘꿈’과 ‘포부’에 끌려 앞으로 나아간다. …사실상,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에서 떠나지 못한다. 이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에게 가서 이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대학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살길을 찾아야 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출세시키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공부에 엄격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아들은 숨을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은 조금씩 반항심이 생겼고 결국 모자 관계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그제야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의 소용돌이에 빠져 아들을 이익의 희생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아들을 대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니 류화의 마음은 자괴감과 자책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류화는 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들의 삶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여유 시간에는 밖에 나가 놀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는 공부 스트레스가 줄었고 느긋한 여유도 생겼습니다. 더는 울면서 화난 얼굴로 류화에게 불만을 토하지도 않았습니다.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매일 즐거워했고, 귀엽고 작은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생겼습니다. 주말이 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 낭송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듣고 영화와 MV도 보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젖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사랑의 돌봄 속에서 자유롭고 기쁘게 자랐습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류화는 오랜만에 이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078"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후 모범생들의 경쟁 속에서 아들의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매달 월말고사 후에 열리는 학부모회에서 류화는 더 이상 뿌듯해하며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들에 대한 선생님의 충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번 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다른 학부모들의 눈빛이 류화에게 화살같이 쏟아졌습니다. 류화는 마치 이들의 눈빛에 온몸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조금씩 학부모회가 싫어졌습니다. 류화는 언젠가 아들의 성적이 다시 좋아지기를 무척 바랐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랑스러워하며 선생님의 칭찬과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회가 끝난 후 류화는 아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말에는 숙제를 마친 뒤 아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해도 허락해 주지 않고 문제집을 펼친 후 문제를 풀어야 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방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알고 심란해졌습니다. 이 같은 심란함 속에서 류화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익에 얽매이지 않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 말씀을 찾아 펼쳤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대함에 있어 그들이 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학문을 더 닦고 학위를 취득하고 학력을 갖게 한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자녀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은 다 하찮고 독서만이 고상하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사회에서는 경쟁도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학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후에 생존해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이다. 즉, 네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력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후의 직업과 전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일생 동안 이것에 의지해 살려고 잘 계획해 놓고,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큰일로 여긴다.』 류화는 자신이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상에 깊이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커서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공부만이 살 길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매일 열심히 배우자’ 등과 같은 사상을 아들에게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밝고 찬란해야 할 유년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강한 자책감을 느끼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탄의 독소는 이미 류화의 목숨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운명을 제어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의 성공만 바랐습니다. 또한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깊은 해를 받아 항상 아들이 뛰어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조금도 돌보지 않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결국 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류화는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런 정형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전의 생존 방식에서 떠나고, 이전의 인생 목표에서 떠나며, 자신의 이전 생존 방식, 이전의 인생관, 이전의 추구와 소망과 꿈에 대해 총결하고 해부한 다음 다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보면서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등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에게 정확한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으로 더욱더 진리를 깨달으면서 살고 인성 있게, 사람 모양이 있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이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류화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들의 성공, 직업, 인생은 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주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만 편안하게 미래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의 진정한 미래인데, 류화는 아들에게 억지로 이익의 길을 추구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건 아들을 불구덩이로 떠미는 것과 같았습니다. 반평생 이익만을 좇았지만 영혼의 평안함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과 아들에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더는 공부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아들의 운명이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맞은 안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착실히 믿고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기를 바랐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운명을 따르기만 바랐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과 함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미 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찬란한 미소가 아들의 얼굴에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삶도 유난히 아름답게 바뀌었고, 류화에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게 되자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번 학기에 아드님의 성적이 크게 올랐습니다. 볼수록 너무 기특하네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류화는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와 찬미를 올렸습니다. 학부모회에 참석한 부모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류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이에 면학반 개방일 프로그램은 어느덧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의 안내에 따라 학부모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학생들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면학반 학생들은 낭독 공연을 펼쳤고, 무대 아래에서 학부모들은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류화는 마음이 살짝 쓰라렸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비참해 보였습니다. 또한 자신과 아들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기적처럼 사라진 남편의 뇌종양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다

갑작스레 남편에게서 뇌경색에 뇌종양까지 발견하게 되자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원한 기도를 하면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실적에 얽매여 괴롭고 우울한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자유

박명희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새로운 회사에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너무 기쁘다! 정시에 집을 나와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돌이켜보니, 3개월 전 고민 끝에 이 회사를 선택한 후 출근 첫날부터 지금까지 다 순조로웠다. 3개월 동안의 고생과 노력으로 마침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이제는 매출액에 따라 월급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단단히 벼르게 되었다. 가게에 도착하니 동료가 손님들과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었다. 속으로 '이 동료랑 앞으로 한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주문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센 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제대로 물어보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받은 주문을 뺏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난 고생스럽게 일만 하고 실적이 없으니 손해가 아닌가. 그럴 순 없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점장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점장은 돌아가면서 주문을 받자고 했고, 동료도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작은 비 요 며칠 기분이 정말 답답하다. 똑같이 주문을 나눠 갖기로 해놓고선 동료는 번번이 내 주문을 뺏어갔다. 동료의 행동에 불만스러웠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와 다퉈서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그녀를 포용하고 인내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동료가 주문을 뺏어가는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어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동료는 상대가 부자인 줄 알고 얼른 다가가서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왜 또 주문을 뺏어가는 거야? 아! 나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얼마 전에 점장이 내가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고 날 점장 보조로 뽑아주었다. 게다가 매달 남모르게 200위안(한화 약 3만 2천원)을 더 얹어주었다. 하지만 동료가 이렇게 내 주문을 뺏어가니 점장과 본점에서 내 실적이 나쁜 것을 보면 나에게 업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이 점장 보조를 어떻게 맡겠는가? 저녁에 나는 걱정으로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낮에 동료가 내 주문을 뺏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동료가 주문을 뺏어갈 때 우쭐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계속 양보할 수 없다. 그랬다간 월말 실적 결산 때 내가 꼴찌를 차지할 것이다. 내일 출근하면 눈 크게 뜨고 잽싸게 움직여야겠다.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작은 비에서 중간 비로 바뀜 요 며칠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 내 기분도 답답하다. 가게에서도 저기압이 머리 위를 누르며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울적한 기분이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요즘 나는 매일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는데 주문을 받고 싶을수록 받지 못하고 있다. 주문을 받더라도 다 작은 주문이었다. 나와 동료는 이미 며칠째 대화하지 않고 있다. 말해야 할 때도 내키지 않아 딱딱하게 몇 마디 나눌 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출근하면 우울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지는 등 너무 힘들다. 오늘 아침, 동료가 또 나의 한계에 도전했다. 내가 막 주문을 받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조금도 거리낌없이 이 주문의 실적을 그녀의 이름으로 올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점장에게 이야기해 내 몫을 찾아오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갑자기 혈기로 사람과 다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에 화내지 말고 냉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퇴근 시간까지 버티었다. 집에 도착한 후, 그동안을 돌이켜보았다. 혼자서 참고, 양보하고, 겉으로는 다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동료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는데, 설마 나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은 분명 내가 배워야 할 과제가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를 떠나지 못한다. 그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사탄에게 그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구절이 지금 나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그동안을 생각해 보니, 나는 명리를 다투는 삶을 살았다. 이익을 위해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동료가 내 주문을 빼앗아 가기 시작할 때 나는 화를 내고 점장에게 고발하려고 하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밀어내며 반감을 가졌고 그녀가 제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빌었다. 나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내가 어떻게 빼앗아올까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다가 주문 받는 기회를 놓쳐버릴까 봐 가게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님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료가 바쁠 때도 도와 주기 싫었다. 실적이 오르면 나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쥘 수 있다. 점장과 본점에서 내 업무 능력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성과급과 보조금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러면서 점장 앞에서는 능청스레 말했다. “제가 계속 그녀한테 양보하지 빼앗지는 않아요.”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명예'와 '이익'의 속박에 단단히 갇혀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의 고통이 다 사탄이 명리를 이용해 사람을 속박하고 타락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을 돌이켜보니, 나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멸망시킨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해 살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제가 일하는 동안 동료가 저의 주문을 빼앗든지 말든지 저의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적을 올리고, 명리를 위해 다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흐림 저녁 무렵, 나는 단골 손님 한 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가가 인사했다. 동료도 이 손님이 큰손이라는 것을 듣고 다가와 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오늘 간신히 겨우 큰 주문을 받나 했는데, 이 사람이 또 끼어들다니, 얼굴이 어쩜 그렇게 두꺼울까? 동료가 손님에게 계속 소개하는 것을 보고 답답하면서도 '이 손님을 뺏어와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투며 빼앗다가는 이 주문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괴로웠지만 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나의 혈기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고, 기도한 후에는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이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커지며 너의 정형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네가 겨루고 빼앗을수록 너의 정형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질투심과 미워하는 마음도 더 커지며 더 얻고 싶어진다. 얻고 싶어할수록 얻지 못하고, 얻지 못할수록 너는 더욱 미워하게 되며, 미워할수록 너의 안이 더 캄캄해지고, 캄캄해질수록 너는 본분을 잘하지 못하게 되며, 본분을 잘하지 못하면 점차적으로 너를 쓰지 않게 되고 너는 도태된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인데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시험해 봐라! 네가 이런 정형을 되돌리고 싶어하고 이런 것에 통제받지 않으려 한다면 너는 반드시 먼저 내려놓고 먼저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는 마음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탄은 명리로 나를 구속해서 내가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명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는 너그럽게 앞으로 가서 그녀가 손님 접대하는 것을 함께 도와주니 뜻밖에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나중에 동료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 손님의 주문을 받았지만 완전히 내 실적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일부는 당신이랑 나눠야 해요. 나중에 큰 주문을 받을 때도 같이 나눠요.” 180도 바뀐 동료의 모습에 나는 순간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행할 때, 사람과 명리를 다투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해방될 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사이에서 이해와 신뢰도 높일 수 있고, 자신과 사람, 그리고 업무에서도 이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흐리다가 갬 오늘 점장이 우리의 실적을 통계할 때 동료의 실적이 나보다 좋다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 동료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고 동료에게 계속 주문을 양보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드렸다. 더 이상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명리의 구속을 받고 살 수는 없었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은 점차 평안함을 얻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 … 영원한 이익이란 없다. 지위도 체면도, 돈도 물질도 다 잠시적인 것이다. 사람이 그런 방면의 성정을 해결해 진리를 얻고 구원을 받았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귀히 여김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또한, 사람이 얻은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사탄은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어도 반대로 진리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럼 그것 역시 너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해 얻은 것이다. 진리 실행을 선택한 사람은 가장 명철한 사람이다. 자신을 보전하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모르고 이익을 얻기 위해 진리를 포기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실 눈앞의 이런 이익과 체면은 일시적인 것이고, 진짜 소중한 것은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 속성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과 방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또한, 명리는 사탄이 사람을 속박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명리를 위해 살면 사탄에게 우롱당해 말할 수 없이 괴롭다. 이런 것들을 내가 모두 직접 체험했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만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온 들과 산의 소와 양이 다 사탄에게 약탈당했지만 그는 사람을 보내 뺏어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했다. 또한 이런 말을 했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기 1:21) 욥은 이 말로 하나님은 증거할 수 있었고, 사탄은 듣고 도망쳤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에게 복에 복을 더해주셨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셔서 그가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욥을 본받아서 다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익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는 똑똑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짝 열린 창문처럼 내 마음을 환히 밝혔고 나아갈 방향도 생겼다. 2018년 5월 6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날씨가 맑아서 기분도 좋았다. 요 며칠을 생각해보니, 동료가 주문을 받고 싶어 할 때마다 내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양보했었다. 겉으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다. 적어도 나는 매일 이익의 득실을 따지며 고통스럽게 살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진리를 행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내가 다투고 빼앗을 필요가 없다. 내가 이렇게 할 때마다 마음에 특별한 평안을 느꼈다! 또한 예상밖으로 점장은 매달 점장 보조의 월급으로 200위안을 보조해 주셨다. 동료도 전처럼 그렇게 주문을 뺏어가지 않았다. 요 며칠 나는 또 큰 주문을 연달아 2건 받아서 동료와 실적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동료와 협력해 또 많은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점점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정상적으로 되었다. 더는 점장과 본점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마음의 기쁨과 해방을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번 인도하셔서 나는 사탄의 명리의 속박으로부터 점차 벗어났고, 사람들과 더 이상 옥신각신 다투며 힘들게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면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정당당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소설의 유혹에서 빠져 나오다

저는 예전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사리 분별도 할 줄 아는 착한 딸이었으며, 평범한 생활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난데없는 한 가지 일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저는 몇몇 친구들이 소설이 재미있다며 흥미진진하게 얘기 나누는 것을 무심결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저는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한 명이 신이 나서 저에게 “소설의 내용은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지 몰라. 로맨틱한 것도 있고 코믹한 것도 있고, 생사 이별 장면도 있고, 시공을 초월한 판타지 소설도 있고, 화목한 가정에 관한 것도 있고. 별의별 내용 다 있어. 어떤 건 너무 감동적이이서 보는 순간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어떤 건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져...”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저는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온 저는 숙제를 마치고 얼른 스마트폰에 웹 소설 앱을 하나 설치하여 홈페이지를 열어 보니 각양각색의 소설 표지가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위아래로 터치하면서 어느 것을 볼까 망설이던 중, 겉표지가 아주 예쁜 추천 소설이 저의 눈을 사로잡았고, 저는 다급히 열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기도 모르게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는데, 남녀 주인공이 당한 각종 불행이 마치 제 자신이 당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계속 이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는데, 앞부분을 본 다음에는 그 다음 부분이 보고 싶었고, 그 부분을 본 다음에는 결말이 궁금해졌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429" align="aligncenter" width="640"]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그때부터 저는 소설에 빠져들었고, 온 마음이 오직 소설속에 있었으며, 소설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늘 이야기 속의 사랑과 미움으로 인해 기뻐하고 우려하고 슬퍼했으며, 어떤 때는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하루만 안 봐도 저는 마음이 초조하여 안절부절못하고 병에 걸린 것처럼 아주 괴로웠으며, 심지어 공부를 하는 것이 무미건조하고 아무 가치와 의의도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소설 속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갖추고 로맨틱한 사랑을 하면서 온종일 먹고 입을 것 걱정 없이 각종 고급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환상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직 소설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동경했고, 그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 때, 부모님이 돈벌려 외지로 가자 저는 새장 속에 갇혔던 새가 풀려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아주 기뻐했습니다. 소설을 단숨에 다 보기 위해 저는 밥도 하지 않고 라면만 끓여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컵라면으로 바꾸었고, 매일 끼니를 대충 때웠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설만 보았더니 날이 갈수록 눈이 흐려졌고, 온 몸이 무기력해 졌으며, 늘 피곤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눈이 흐려진 건 스마트폰 화면이 너무 밝아서 그럴 거야. 다음부터는 선글라스 끼고 보면 돼. 그리고 몸이 피곤하니까 이제부터는 그렇게 오래 보지 않고 일찍 쉬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혀 소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봤습니다. 그로 인해 눈과 몸이 갈수록 더 나빠졌고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마침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몸이 허약해지고 얼굴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알고 나서 책망할까 봐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조급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소설에 빠지게 된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는 저를 책망하지도 꾸짖지도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저에게 교통해 주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말씀입니다. “사탄은 이런 방식으로 일부 이야기를 만들고 편집하고 꾸며내 생각이 없는 이런 청소년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네가 분량이 작을 때 될 수 있는 한 너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너를 중독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너에게 분별력이 없는 데다가 아주 경망하고 또 마음속에 갖춰진 긍정적인 것들이 너무 적고 그 어떤 진리 실제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교통을 통해 저는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소설에 빠진 것은 사탄의 올가미와 간계에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고 패괴시켜 우리로 하여금 갈수록 더 타락되게 하려고 거짓 이야기를 날조하였는데, 완벽한 인물을 형상화하거나 환상적인 삶을 꿈꾸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숭배하고 동경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의 내용이 담긴 연애 소설, 무협 소설, 타임슬립 소설을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아주 숭배하게 되고, 그들의 행복한 생활과 로맨틱한 사랑, 각종 특별한 능력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느 날 그들처럼 시공을 초월하게 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있게 되며, 추녀와 담벼락을 넘나드는 재주가 있게 되기를 꿈꾸며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우상으로 삼아 숭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설에 몰입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소설 속의 인물과 플롯에 홀리게 되고, 우리의 희로애락도 비정상적이게 되며, 또한 일반적인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소설에 빠져 가상 세계에서 살다 보면 현실 생활과 동떨어져 공부와 생활에 흥미가 없게 되고, 심지어 밥 먹고 자는 시간마저 소설 보는 시간을 뺏었으니 그 시간까지도 아깝다고 생각됩니다. 이게 어디 정상 사람의 생활입니까? 제가 이 지경까지 타락된 것은 다 사탄이 해친 것이고, 소설은 사탄이 저를 미혹하고 유혹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저는 다시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한 아버지에게“이제부터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래요. 좀 있다 소설 앱을 삭제할게요.”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고, 또한 저와 같이 하나님께 심지를 세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소설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고, 자신이 더 이상 소설을 보지 않게 되어 저는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저에게 시험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심심해서 지난날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고, ‘옛날에 소설 볼 때 아주 재미있었는데. 또 볼까? 조금 보는 건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셔. 그리고 난 하나님께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기도했어. 또 보면 거짓말하는 거잖아.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아. 그러니까 보면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새벽 2시가 넘도록 소설을 보았습니다. 이튿날 일어나니 온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흐리멍덩하며 마음이 어수선하고 머릿속에 온통 소설 속의 플롯이었습니다. 소설을 보지 않겠다는 심지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거짓말했다는 생각에 저는 더 큰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반성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분량이 너무 작아 외적인 일들에 아주 쉽게 끌려가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힘들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것이겠느냐? 사탄에게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 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리가 없고, 죄를 이길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 스스로 그 마음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을 전혀 이기지 못하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으며 사탄 성정의 통제를 받고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예전처럼 소설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예전처럼 살기 싫어서 단지 인위적인 방법으로 억제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 시험이 임하자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사탄의 통제와 속박을 받기 싫습니다. 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후에 저는 아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네가 목숨을 건지려고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너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입으로는 몇 마디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다. 즉, 네가 진정성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들은 것이다. 하나님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너의 어려운 점을 보고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계속 저의 곁을 지키시면서 제가 돌아서기를 기다리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큰 포부가 있거나 제가 공허한 소원을 빌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을 원하시고 제가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해서 사탄의 통제와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하게 되어 아주 큰 격려가 되는 동시에 믿음도 충만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 주실 것이고, 저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후에 또 사탄의 시험이 임했을 때, 저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도와 달라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진실로 협력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셨으며,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부지중에 저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냈고, 성실한 사람의 모양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예배할 때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했더니,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아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우선 사악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사탄이 왜 그렇게 하는지, 사람이 이런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 또 어떤 중독성이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들이 정상적인 인성이고 어떤 것들이 긍정적인 것이며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에게 정확한 실행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무엇이 긍정적인 것인지, 무엇이 부정적 것인지를 전혀 분별할 줄 모르고, 정상적인 인성에는 어떤 것이 갖춰져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각종 사악한 사회 풍조에 직면하여, 우리는 저항할 힘이 없고 어쩔 수 없이 그 풍조에 휩쓸리며, 사탄의 유혹과 해를 당해 갈수록 타락되고 패괴되었으며, 점차 인성과 이지를 잃게 되었고, 정상 사람의 생활이 없게 되었으며 돌이길 수 없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어떻게 인류를 패괴시켰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생활이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생활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탄의 시험이 임할 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할 줄 알게 되었고, 인성 생활이 갈수록 정상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다

예배는 하나님과 가까히 하고 진리를 얻는 좋은 기회지만 종종 주변의 사람과 사물의 교란을 받아 예배를 드릴 수 없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예배를 드릴 때 교란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다이어리] 하나님께서 나의 양심을 지켜주셨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심장이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왜냐하면 노인복지관에 채용 전 업무 테스트를 받으러 가기 때문이다. 만약 채용된다면 난 꽤 괜찮은 일자리를 구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보다 생활 리듬이 빠르다. 밥을 먹는 속도나 길을 걷는 속도도 빠르고, 일할 때도 두뇌 회전을 빨리해야 하고 동작도 민첩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의 빠른 생활 리듬에 적응하지 못해 업무 테스트를 받고도 채용되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오후에 복지관에 도착한 후에도 떨리는 마음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묵묵히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긴장되는 업무 테스트가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침내 사장님이 나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불안했던 마음이 드디어 진정되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흐림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 이른 아침에 식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아침을 배식할 때, 카트를 밀다가 실수로 비닐봉지가 찢어져 버렸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츄러스 몇 개가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크게 놀랐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속으로 ‘이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 하다니… 이걸 사장님이 알면 날 해고하지 않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오지도 못하잖아. 에잇. 어쩔 수 없어. 난 크리스천이니까 솔직하게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게 맞아. 그 후엔 사장님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 전부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다. 복지관으로 돌아온 후, 나는 전전긍긍하며 사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츄러스 비용은 임금에서 제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괜찮아요. 이따 더러워진 부분을 잘라내고 아침밥으로 드세요.”라고 했다. 사장님의 대답에 나는 감격해서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사장님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밥을 나눠줄 때, 사장님이 더러워진 츄러스를 모두 꺼내 대충 먼지를 털고는, 그걸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나는 속으로 너무 겁이 났다. 어르신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사장님과 함께 사람들을 속이는 거잖아? 그러다 어르신들이 그거 먹고 탈이라도 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정말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더러워진 츄러스는 제가 변상할게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사고를 친 사람은 나인데, 사장님 말을 듣지 않다가 해고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잇, 아니야, 그냥 입 다물고 있자. 계속 일하려면 사장님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지 뭐!’라고 생각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플라스틱 일회용 도시락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자, 사장님이 다가와 말했다. “일회용 도시락통은 싱크대로 가져가서 씻으세요. 그리고 내일도 계속 이걸로 쓰세요.”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쳐다보았다. 이건 너무 더럽다고, 아무런 소독도 하지 않고 재사용했다가 어르신들이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장님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거 씻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돼요.” 사장님의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고,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온 말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나 같은 임시직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이렇게 해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장님 앞에서는 마지못해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식기들을 씻기 시작했다. 퇴근 후, 내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내가 한 교활한 행동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정말 해고당하면 어떻게 하지?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소독도 하지 않은 일회용 도시락통을 재사용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것인데 이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게 궤사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어르신들은 우리가 뒤에서 이런 수작을 부렸다는 걸 모르겠지만, 내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모두 감찰하고 계실 것이고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인데, 이것이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란 말인가?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통해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속여선 안 되며, 이는 양심에 어긋나는 짓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행동이란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솔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일자리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다고 사장님에게 꼭 말할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일에서든지 절대 누군가를 속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의지를 주십시오. 제발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린 후, 출근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꼭 사장님께 양심에 어긋나는 이런 일은 못하겠다고 말하리라 다짐했다.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맑다가 흐림 오늘 나는 자신만만하게 출근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었고 사장님께 내 생각을 말할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관에 도착하자, 취사 담당 동료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사장님이 자네를 해고할 생각이라고 했어. 나 혼자 이 일을 하라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풀이 죽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실행하려고 했던 의지도 전부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날 해고하려는 마당에, 시킨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보면서 옆에서 마작하는 사장님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이걸 씻으려니 진솔한 사람이 아니고, 그럼 하나님 앞에서 증거를 잃는 꼴이 되고. 이걸 안 씻으려니 사장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자리에서 해고당할 거 같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마음도 너무 불안했다. 그 순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일회용 식기들을 몰래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하나님께도, 사장님한테도, 미움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장님이 내 쪽에 신경을 쓰지 않은 틈을 타, 오래된 식기 들을 얼른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위에 다른 쓰레기를 놓고 안 보이게 덮었다. 이렇게 하면 사장님한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만에 하나 사장님한테 들키면 한바탕 욕을 먹고 바로 해고될 텐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는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사람을 기만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부터 나는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 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할 신심도 없고 용기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부디 저를 다시 한 번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너는 육체를 버릴 용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소극적이거나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네가 진솔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고 뒤에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궤사한 사람들은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고 …』 하나님 말씀을 본 후, 진솔한 사람은 진리와 육체의 이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육체의 이익을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솔한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겉으로 하는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일들을 반성해보니,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계속 어르신들을 속이고 더러운 츄러스를 나눠줬으며, 이미 사용한 일회용 용기를 씻어서 재사용했다. 나는 이것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감히 사장님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의미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진리를 행하지 못했고 진솔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다. 진리를 행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태도가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마음 아프게 했다. 사실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해고를 당할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내가 할 것은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은 내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다. 일자리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장님께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며칠 동안 제게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이미 사용한 일회용 식기를 씻어 재사용하라고 시켰습니다. 저는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그런 행동을 싫어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제게 그 일을 계속 시킨다면,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못 하겠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장님한테 전화가 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가 생길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때 나는 진리를 행한 후 마음이 편안해지고 홀가분해지는 것을 직접 느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5월 4일 토요일 맑음 사장님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다시는 누굴 속이는 일을 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아침 식사 때마다 어르신들은 우유와 두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유가 우유보다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걸 안 사장님은 두유에 물을 섞었다. 그리곤 내게 어르신들이 두유를 많이 마시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물어보지 말고 바로 두유를 떠주라고 했다. 사장님이 그렇게 시켰지만,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화가 난 사장님이 날 해고할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사장님은 나를 구석진 곳으로 부르더니 다시 주의를 주었다. “여기 어르신들은 별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두유를 떠주거나 아니면 두유를 마시도록 더 강하게 유도하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이 말을 들은 후, 내 머릿속엔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내게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같이하자고 유혹하는 걸 분명히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퇴근하면서도 계속 이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성경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고 자신과 동침하자며 권세를 이용해 요셉을 협박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기에 감옥에 갇힐지언정 그 여자의 악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돈을 아끼려고 어르신들이 두유를 마시게끔 하라고 내게 시켰을 때,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할까 걱정되어 진솔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다! 난 다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야 다시 찾으면 되지만 계속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면 하나님께 미움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진리를 행하는 의지와 힘이 생겼다. 집에 돌아온 후,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직원인 저는 반드시 사장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기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만일 사장님이 시킨 일과 하나님의 가르침이 충돌하면 저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살아가는 원칙입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정상 사람의 언행이 있다는 것은 말할 때 조리가 있고,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며, 말이 사실에 부합되고 매우 적절하며, 기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에는 “진솔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가식 없이 솔직하다.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람의 교통으로 진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의 실행 의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설령 이번에 해고를 당해 앞으로 다른 곳에 출근하게 되더라도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훈련을 계속하여 내 몫의 일은 반드시 잘 해낼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내게 남을 속이라고 하거나,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흐리다 맑음 정말 뜻밖에도 그날 사장님은 나를 해고하지 않았다. 나는 해고하는 것도 계속 일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보았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내 의지도 더욱 커졌다. 며칠 전 아침 배식할 때였다. 어르신들은 다들 우유를 마시고 싶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그래도 두유를 더 많이 팔고 싶어했다. 내가 우유를 뜨는 걸 보더니 얼른 말했다. “우유 다 떨어졌다고 하세요.” 하지만 난 우유 한 통이 더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이때,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사장님이 유혹한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난 사장님이 좋아하든 말든, 나를 해고하든 말든, 진리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고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 했다. 그 후, 우유를 마시겠다는 어르신들에겐 계속 우유를 드렸다. 나중에 우유가 진짜 동이 난 후에야 우유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곁눈으로 화가 난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지만 난 이미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사장님은 청소할 때, 교활한 수단으로 어르신들을 눈속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또 내게 양심을 속이는 일을 시킨다는 걸 분별해낼 수 있었고,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너희는 반드시 시시각각 깨어 기다려야 한다. 내 앞에 자주 있으면서 사탄의 각종 음모와 궤계를 간파해야 하고, 영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하며,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청소할 때도 더러운 곳이 있으면, 사장님이 따로 시키지 않더라도 알아서 청소한다. 나중에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여기에 청소하러 온 사람이 엄청 많은데, 단 한 사람도 여기 더러운 곳을 청소한 적이 없어요. 저분은 정말 근사 하네요.”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사장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정말 잘했어요.” 복지관 어르신들도 자주 내게 “복지관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지금까지 아무도 여길 치워준 사람이 없었거든요.”라고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하나님 뜻에 맞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