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2019년 01월 31일

20여 년 전, 저와 아내는 6년간의 마라톤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가정에 충실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가 병이 나거나 혹은 늦게 귀가할 때마다 저를 걱정하고 배려해 주며, 특별히 훈훈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내에게 안정된 생활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저는 해산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고생하며 바쁘게 일했지만,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 집을 장만하고 차를 구입했으며 생활 수준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지금까지 아내를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비록 우리 부부는 가끔 말다툼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포용하고 참아 주었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집안일과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일도 제가 다 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척과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금실 좋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한평생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라고 생각했습니다.

7년 전 아내는 스탠드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저는 속으로 ‘아내가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갔고 늘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는 제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시끄러운 환경도 좋아하지 않아 매번 거절했습니다. 3년이 지나자 그곳에 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일주일에 대여섯 번을 갔습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아내를 막을 수가 없었고 귀가 시간도 갈수록 늦어졌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매일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제가 곁으로 다가가면 놀라는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으며 때로는 저를 피해 화장실에 숨어서 통화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관계는 긴장 상태가 되었고 아내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저와 자주 말다툼을 벌이곤 했습니다. 아내의 변한 모습을 보고 저는 의심했지만 ‘우리 부부는 20여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어. 아내는 우리 사이의 감정과 가정을 중히 여기니 윤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아내는 한 남자를 여러 차례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자신의 노래 파트너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에 많은 의문이 남았지만 아내를 믿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두 사람의 이름으로 사랑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카드 한장과 아내와 한 남자 사이에 달콤한 대화가 적힌 수첩을 발견했습니다. 닭살 돋는 그런 내용을 보며 아내가 저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저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아내를 가리키며 “나는 일편단심으로 당신을 대했는데, 왜 나를 배신한 거야? 결혼해서 지낸 20여 년 동안 설마 내가 당신한테 잘 대해주지 못했단 말이야? 내가 이 가정을 위해 바친 대가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러나 배신했다는 제 말을 들은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돌아보면 아내가 바람피운 것이 확실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내를 수차례 미행했었습니다. 또한 그 남자의 부인을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 자신의 남편과 제 아내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처가를 찾아가 아내를 설득해 달라고 말했고, 그 남자에게도 아내와 헤어질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제 감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으며 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화가 치밀어 올라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날마다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저의 몸무게는 20kg 정도 줄었으며, 얼굴은 초췌했고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저는 일할 기분이 아니어서 앞당겨 퇴직했습니다. 아내의 배신과 기만이 저를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누구와도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증오심이 유령처럼 저를 괴롭혔고, 그 남자에게 복수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저를 괴롭혔으니 저 역시 그를 괴롭히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증오심과 이성은 일진일퇴의 싸움을 계속했는데, 저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아내는 계속 이혼하자고 말했는데 저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겠습니다.’라는 그때의 맹세를 생각하면, 저는 더욱 고통스러웠고 이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령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이라 할지라도 원래 행복했던 가정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밤, 밖에 부슬비가 내리면서 창문에 부딪혔고 저는 공허함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루는 페이스북에서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매님 역시 저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고, 동시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체험을 듣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속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지만 그런 불행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체험에서 목숨을 구해 줄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크리스천 이혼,크리스천 결혼생활,

며칠 후 자매님은 제게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진리를 깨달아야만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이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역할 힘이 능력이 없거니와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자매님은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사악함과 흑암, 사탄에게 타락된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사탄은 사회의 사악한 조류로써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권세 아래에 살게 하여 한평생 흐리멍덩하게 보내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악의 온상에서 점점 더 타락하고 사악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악한 조류를 좇아 온종일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무위도식하며, 가정이 파탄되어 자녀는 한 부모 가정에서 살면서 몸과 마음은 상처로 얼룩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악을 숭상하고 자아를 잃었으며,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 그리고 몸을 팔며 음란하고 타락한 삶을 삽니다. 지금 모든 인류는 죄 속에서 살고 윤리는 갈수록 땅에 떨어졌으며 음란이 습관화되어 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 바람을 피우고, 이중생활을 하며, 하룻밤 풋사랑이 유행이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사악을 숭상하여 사악한 조류를 따라 육적인 것을 방종하고 정욕을 누리며, 도덕 윤리, 예의, 인격, 존엄성은 다 내던지고 사람 됨됨이의 근본을 잃고 갈수록 추하고 타락하여 사악해지고 죄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바람을 피워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 사악한 사회 조류가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입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저는 원래 이 세상은 어둡고 사악한데,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좇아 초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본래 현모양처로 가정에 충실했지만, 스탠드바와 노래방에 빠진 후부터 사악한 조류를 따라 육의 정욕을 방종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으며, 가족이 받는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상외로 가정이 있는 남자와 눈이 맞아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결혼과 가정을 배신하는 사람들은 사실 사악한 사회 조류가 타락시킨 산물로, 그들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후, 아내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한 저의 증오심이 완화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자주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저는 서서히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제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으며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일 제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서 저를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설이 다가오는데, 집집마다 즐거운 명절 분위기로 넘쳐났지만 저의 집은 결코 평온치 않았습니다. 아내는 다시 이혼을 제기했고 그로 인해 저와 한바탕 크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홧김에 아내와 이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혼 증서를 가지고 가정 법원을 나서는 순간 앞으로의 삶이 더욱 막막했습니다. 예전에 가정은 저의 유일한 동력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가정이 없어졌습니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마주합니까? 고통스럽고 막막함 가운데 저는 이혼 후의 상처와 고통을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남겨 놓은 해독과 봉건사상은 사람을 모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하여 사람에게 패기가 없게 하였고, 의지력이 없게 하였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하였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하였다. 이런 등등의 객관적인 요소들이 사람의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정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사람이 모두 테러리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즉,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원만한 가정이 있기를 몽상한다든가, 부부가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몇십 년, 몇천 년, 몇만 년 심지어 현재까지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저 어두운 천지간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암투를 벌일 뿐이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하나님의 역사를 아랑곳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저의 고통스러운 근원을 찾았습니다. 바로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을 위해 필생의 정력을 쏟아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내의 기만과 배신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정을 위해 일했던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 위해 저는 지금까지 아내를 섭섭하게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간혹 우리 부부 사이에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저는 인내하고 포용했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저는 남자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내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사분오열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그 남자를 찾아가 아내와 헤어지라고 했고, 또 온갖 방법으로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철저히 가정을 버리고 저를 배신했을 때,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심지어 수단을 강구해 그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온종일 증오심에 불타 일을 할 마음이 없었고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사람 간에 진실한 사랑이 없고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배신하고, 또는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상이몽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소위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멋진 결혼 생활은 다 슬프고 허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혀 의미가 없는 그런 것들을 애써 추구하는데 다 공허한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피조물이니 당연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의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면 사람 탈을 쓴 짐승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사람인 이상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모든 고통을 참아야 한다! 너는 지금 받고 있는 이 조그마한 고통을 마땅히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욥처럼, 베드로처럼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너희들은 바른길을 추구하고 향상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너희가 큰 붉은 용 국가에서 떨쳐 일어나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받는 사람들이 될 것인데,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사는 것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세상에서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의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을 누리게 되었으니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살면서 공허하고 타락한 육적인 생활을 철저히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아낼 것입니다.

밖에는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창밖에 지저귀는 새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저는 체험 찬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가깝게 하네>를 들으며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시고 사랑이 있어야 집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실패라는 결혼의 고통에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참으로 행복한 마음의 항구를 찾았고, 진정한 집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추환

조물주의 안배에 순복하니 마음이 기쁘다

저는 키가 아주 작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는 이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면서 저를 임신했을 때 왜 영양 보충을 하지 않았냐고 어머니를 원망했고 제가 중학교 때 키가 한창 클 나이에 집이 왜 그렇게 가난해서 좋은 음식을 넉넉히 먹이지 못했냐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늘 남의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 ‘주유’로 자신을 변명했습니다. 저는 TV에서 나오는 늘씬한 몸매에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자애들을 부러워했고 꿈속에서까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때 키높이 깔창이 유행했었는데, 깔기만 하면 키가 커질 수 있다고 해서 저는 아버지께 사달라고 졸랐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때 골절로 입원했던 적이 있는데, 의사들이 종아리를 톱으로 켜서 뭘 넣고 매일 누르면 한동안 지나서 골격이 자라나면서 다리가 길어진다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만약 그때 돈이 있었다면 수술을 택했을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이 계속 저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상처로 되어 상황이 닥치면 열등감이 생겨 울고 싶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꿀 수 없었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런 한마디 전형적인 대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뭐든 농축한 것이면 다 알짜야!”라는 전형적인 대사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간혹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는 척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작지만 농축된 알짜죠. 하하……” 하지만 그것은 쓴웃음과 자기 조소였으며 그 웃음 뒤에는 여전히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이 저에게 임하여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를 읽게 된 후에야 저의 마음속에 진실로 빛이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 나는 이 한 무리 즉 오늘의 너희를 예정 선택하기 시작하였다. 너희의 성정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이끌어온 것은 더욱 나의 안배이다.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태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사람 머리털의 색상, 피부색, 생김새, 키까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일찍이 명정하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마치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주시면서 더 이상 운명에 대항하지 말고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태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 말씀 시가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해야만 총명한 사람이다≫ 중의 한마디 말씀이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을 걸어라.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그렇게 많이 고려하지 말라. 전망과 운명이 네 손에 장악되어 있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운명을 주관하고 계시고 저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며 다 안배해놓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설마 제가 하나님의 명정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로 저의 마음속에 이런 걱정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심령의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철저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하나님 권병에 관한 진리를 보았을 때에야 저의 이런 열등감이 소극적이고 부득이함에서 진정 적극적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 한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든, 남자이든 아니면 여자이든, 그 생김새가 어떠하든 이런 것은 다 잠시적인 것이고 다 조물주가 전체 인류를 경영함에 있어서 각 시기의 하나하나의 작은 부호(符號)와 표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 사람의 진정한 귀숙과 결국은 결코 그 한 시기의 출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그 매 차례의 사명에 의해 결정되고 조물주의 경영 계획이 완결될 때 그에 대한 조물주의 규정에 의해 결정된다.』 『조물주의 주재에 대해 참으로 인식이 있고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그의 정형은 마땅히 적극적일 것이고 결코 소극적이나 속절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마음속에 인생에 대해, 운명에 대해서도 사람의 일생은 다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하나의 정확한 정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보낸 인생의 매 하나의 단계를 돌아보면 매 걸음마다 걸은 것이 고생스럽든지 아니면 순조롭든지 다 하나님이 인솔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안배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정밀한 계획이자 역시 하나님의 세밀한 안배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부지중에 오늘까지 걸어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 한 사람의 평생의 크나큰 복임을 보게 된다! 만약 한 사람이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소극적이라면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안배한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있고 그에게 순복하는 태도가 없음을 실증한다. 만약 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라면 그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주재를 체득할 때 그는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순복하려는 더 진실한 소망이 생기게 되고 더욱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운명을 지배하게 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도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이 두 단락의 말씀에서 저는 조물주의 안중에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생김새와 성별은 단지 하나님 경영 계획 중의 어느 한 시기의 하나의 작은 부호와 표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생김새가 아름답든 추하든, 키가 크든 작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다 그 사람의 장래의 운명이 좋은지 나쁜지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귀숙을 정하시는 것은 우리 각 피조물이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는지의 여부와 진정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보시지 결코 우리의 겉모습을 보시지 않습니다. 이 몇 년간 저는 세상의 사악과 흑암을 보았는데, 실제상 저의 평범한 생김새와 키는 정말 저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보호였습니다. 만약 제가 스타들의 얼굴과 몸매를 가졌다면 틀림없이 세상의 사악한 조류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악령과 더러운 귀신에게 이미 잡아먹혔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정과 주재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우러나왔습니다. 저에게 임한 모든 것의 배후에는 다 하나님의 고심이 있었는데, 제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을 뿐입니다. 비록 제가 키는 작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시지 않고 저에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병과 위력을 진실로 느꼈고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 긍휼에 대해서도 진실한 보임이 조금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확실히 예수님이 재림하여 전개하신 새 사역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에게서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저는 키가 작다는 것으로 인해 더는 소극적이 되거나 괴롭지 않으며 늘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인데, 사람이 무슨 이유로 흠을 잡겠는가?”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말씀'으로 원망을 해결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빠가 맏이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가 첫 자녀로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딸이었고,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내가 두 세 살쯤, 아빠는 출근을 하셔야 했고, 엄마는 농사를 지으시느라 바빠서 나를 돌봐주실 시간이 없으셨기에,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다. 매번 엄마가 일을 끝내고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 내 바지는 항상 오줌으로 젖어 있었고, 작은 엉덩이는 빨개져 있었지만, 할머니는 바지를 갈아 입혀 주지 않으셨다.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 나를 혼자 집에 두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난 겨우 다섯 살이었다. 엄마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나는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돌보아 주셨지만, 나를 점점 차갑게 대하셨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으며, 동생을 편애하고,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내가 9살 때,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남동생이 왔다. 우리 둘은 같이 주방으로 들어 갔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급하게 “찬장에 월병 뒀어요, 얼른 꺼내서 손자 먹여요!” 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난 온 지 한참 됐는데 나한테는 안 주고, 남동생이 오자마자 바로 월병을 꺼내 주다니.’라고 생각 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 갔다. 평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말을 하실 때도 좋게 말하시지 않고 항상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설날이 되어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여 같이 밥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주 친절한 말투로 “내 새끼~ 얼른 와서 밥 먹어라!”라고 남동생을 부르셨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얼굴로 “얼른 와서 밥 안 먹고 뭐해!”라고 소리치셨다. 때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을 품에 안고 놀아 주셨는데, 이러한 자상함은 나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으신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 적이 없었으며, 항상 매우 차갑고 낯선 모습만 보여 주셨다. 내 어린 마음에는 조금씩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 당시, 아빠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반신 불수가 되셨고, 가족의 모든 일은 엄마가 짊어지게 되셨다. 아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저금해 놓은 모든 돈을 다 써버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소를 한 마리 키우셨지만 우리가 밭을 갈 때도 도와주지 않으셔서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밭일을 맡기셔야 했다. 나와 남동생이 학비 낼 돈 마저 어렵게 되자, 할 수 없이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 주시고, 생활비만 엄마가 대는 것으로 약속 하셨다. 그러나 뜻밖에 날아든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방학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연이어 발생한 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등록을 해야 해서 엄마는 나에게 할아버지에게 가서 학비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저 학교에 등록을 해야 돼서 학비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담뱃대를 빠시면서 무표정하게 밖을 쳐다보시며 나에게 “아들을 잃은 마당에 손자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밖에 서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학비를 주지 않으셨고, 나는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생각했다. ‘할아버지, 정말 너무 모질군요! 아빠도 없는데 우리마저 버리시다니요!’ 나는 오기를 부리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흥! 오늘부터 나도 할아버지는 없어, 당신들이 죽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일들을 물어보면, 나는 매우 차갑게 “저한텐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취직 후, 휴가 때 집에 돌아 가서 친구네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랑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새로 이사한 집에 가보지 않았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딸, 예전에 내가 네 앞에서 항상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해서 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 것 같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남아선호사상이 있고, 우리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분들을 미워해서는 안돼.” 엄마의 이 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엄마는 지금껏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한거지?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편을 들어주다니? 나는 의아하게 엄마를 쳐다 보았고,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아니? 사람이 모두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어 어쩔 수 없이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분쟁과 미움,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엄마는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건, 사탄이 그분들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성품대로 살아가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분들을 미워 할 수 있는 것도, 타락한 성품 때문이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그분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로 했단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에게 못되게 대한 건 사실이잖아. 만약 우리한테 잘 대해 주셨어도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했을까? 어쨌든,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에 날 정말 놀라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셨고, ≪하나님 3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 정선≫이라는 책을 주셨다. 나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구원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류를 위해 좋은 환경과 각종 식물을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원래 에덴 동산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아름다운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인류가 누렸던 본래의 아름다운 생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운이였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이때부터 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자매님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자매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주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주인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였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예를 들자면, 너는 왜 이기적이 될까? 너는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할까? 너는 왜 정이 그렇게 많은 걸까? 너는 왜 불의한 것을 좋아하고 악을 좋아할까? 이런 것들의 뿌리(원문: 根據)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너는 왜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걸까? 이제는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로 사탄의 독소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독소란 무엇일까?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였다.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위하든 저것을 위하든,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매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는 우리의 생존의 근본이 되었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주입되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게 되었으며, 아주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때, 이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근거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매님에게 못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람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심령을 왜곡하여 양심과 이성을 잃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람인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내 마음은 확 밝아졌다. 우리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모두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에만 급급한 삶을 살게 된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피해자였군요. 그분들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서 그렇게 변한 거네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는 건 사탄의 독소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말로 괴롭힘을 당한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사탄에게 눈이 멀어 속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분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어요.” 그 후,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해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심 없이 희생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사심 없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구원을 멈추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풍부한 물질을 베풀어 주셨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동시에,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이 목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도록 하신다. 그러나 사탄으로 인해 타락된 후 우리 인간은 모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몇천 년을 거친 고대 문화의 역사적 지식은 사람의 사상 관념과 정신 풍모를 물샐틈없이 봉했는데, 좀 먹지 않는 문돌쩌귀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마치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떨어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이미 봉건사상에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억압당하였고, 다 질식하여 반항할 힘이 전혀 없으며, 그저 말없이 참고 참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분투하거나 일어선 적이 없고, 그저 봉건 교육의 가혹한 속박 속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사람은 격타(擊打)당하여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누렇고 삐쩍 말랐다. 사람은 일찍이 기억을 상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살며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남자 아이만 좋아하고 여자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이는 사탄이 주는 봉건 사상에 오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가한 딸이요, 쏟아진 물이다.”라는 말이나, “가문을 빛내고 혈통을 이어 나가는데 아들이 없다면, 대가 끊긴 것이다.”라는 생각은 모두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 변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이러한 독소에 근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존여비 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진리가 없다면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없기 때문에, 봉건 사상의 굴레에 묶여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 짓밟히고 우롱당할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르게 대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탄이 계속 우리를 타락시키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생활이 화목함을 잃어버리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피해자다. 언제 고향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간증할 것이며, 그들도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그후에, 한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아빠는 삼촌만큼 능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녀의 식구만 차별했는데, 간식이 있으면 그녀는 주지 않고 숨겨 두었다가 사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그녀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있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쌓였던 미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할머니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인데, 그때 그 둘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가정이 따뜻하고 화목하게 변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는데, 자매님이 겪은 일들이 바로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를 드렸다. 나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알게 하시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고, 우리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에야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완전히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

중국에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일은 하나 보태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낫다” “남의 덕을 볼 줄 모르면 멍청이다” 등등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이런 말들을 격언과 명언으로 삼고 심지어는 제가 처세하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어도 저는 이런 “최고 명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져 왔으니 틀림없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츰차츰 탐욕스러워졌고 정직했던 마음도 점점 마비되어 갔습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시내에 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 탔는데도 매표원이 저에게 표를 사라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표를 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저는 모르는 척 무임승차 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도 저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번 이득을 본 것에 기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최고 명언”대로 살아왔고 계속 제가 맞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며, 매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고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직이란 일하고 말함에 여러 가지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상관없이,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든 이방인과 함께 지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하고 남에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하거나 기만을 해서도 안 되며,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 올 수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선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어나게 했고 예전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저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다 옳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원래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됨이의 원칙과 인격을 잃었으며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처리한 것을 남 몰래 기뻐했다는 것에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최고 명언”이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마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익을 조금 얻긴 했지만 잃은 것은 오히려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와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을 받았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급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모두 심하게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심하게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고 있고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한 영향 아래서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구비될 수 없고 더욱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질이 있을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타락시킨 이 사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무엇이 정의이고 광명인지 모르고 사탄의 이러한 사상에 완전히 젖어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권세 하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러한 “최고 명언” 즉, 사탄의 독소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저의 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광명이고 흑암인지 몰랐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을 몰랐기에 비천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게 되었고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더러운 곳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면서 저에게 정확한 인생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밖에서 일처리를 다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를 사려고 10위안을 꺼내 매표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매표원은 저에게 거스름 돈으로 4.5위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제가 20위안을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14.5위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받는 순간 이득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또 기뻤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요구를 생각하니 기뻤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선뜻 돌려주기는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이 알면 저를 바보라고 말할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성격이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은 마치 어둠속의 등잔불처럼 저에게 실행의 길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보는 것을 늘 싫어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셔셔 구원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은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시지 않고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길, 생명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먼저 가서 매표원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매표원이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하고 나니 제 마음은 처음으로 즐거웠고 매우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즉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국도(國度)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시행한 간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간계를 다 폭로해 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그지없이 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ㆍ쓰레기ㆍ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고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가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무지한 인류로 하여금 모두 나를 위해 증거할 수 있게 하는데, 즉 “내”가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조물주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이고 사탄은 피조된 다음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역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타락된 인류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발표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저의 추악상을 드러내시는 것은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이것이 저에 대한 구원임을 말씀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에 제가 지켜왔던 “최고의 명언”들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최고의 명언”에 따라 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더 추해져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베풀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임신 7개월 된 그녀가 갑작스런 강도의 납치를 당한 후…

갑작스럽게 칼을 든 강도에게 납치를 당한 그녀는 임신 7개월째 였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무사히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크리스천이 죽음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다

나는 올해 65세인 평안이다. 2015년 12월 11일 자정 무렵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나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심장이 수십 초 동안 멈춘 것 같았다. 전신이 마비되어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죽음이 나를 옥죄어온다는 생각에 나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이 상태로는 날이 밝는 걸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기를 쓰며 손으로 침대를 치려고 했다. 하지만 감각이 사라진 내 손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을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엄습해오는 공포에 초조하고 두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다.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려주셨고,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의지해야 함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실제적이시며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심장발작으로 움직일 수가 없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제 목숨도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이런 고통이 임한 것이 사탄의 계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통받아 마땅합니다. 죽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겠나이다. 아멘!"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신기하게도 목소리를 조금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몇 분 후 갑자기 남편이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 "방금 당신이 한숨 쉰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제야 남편이 내 곁으로 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았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남편은 서둘러 나를 일으켜 구심환을 먹여주었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남편을 깨워 내게 약을 먹여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심장은 멈췄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에 감사드린다. 몸이 다 부어서 남편은 나를 동네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는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병세가 너무 심각합니다. 큰 병원으로 가셔서 수술받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하실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올해 예순셋 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죽기는 싫어, 큰 병원에 가봐야 하나? 하지만 수술에 실패하면 난… 난 침대에 누워 뒤척였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다. 살아갈 희망이 사라진 듯했고 정신도 희미해졌으며 눈물만 줄줄 흘렀다. 고통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의사는 제 상태가 좋지 않아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술 실패로 목숨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 마음을 보듬어주시어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해주소서. 아멘!"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늘 내게 병이 온 것은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고, 수술 성공 여부와 내 목숨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나는 수술 실패가 두렵고 걱정되어 공포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는 사탄의 우롱이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사라지게 하여 질병 속에 살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항상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득 욥이 생각났다. 산을 가득 메우던 소와 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녀들도 모두 죽고 욥 자신도 온몸에 종기가 나는 등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욥은 원망 한마디 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을 굳게 증거하여 사탄을 부끄럽게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믿음이 바로 진정한 믿음이다. 나도 욥처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말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어 생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게 해야 한다. 나는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왔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로 계속되는 치료를 받았다. 2016년 1월 3일, 딸과 남편은 나를 데리고 큰 종합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 내가 선천성 심장병(동맥관이 닫히지 않음)과 폐동맥 고혈압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난 36kg밖에 나가지 않았다. 수술 전 의사는 "최소 절개술은 작은 수술이지만 환자분 건강 상태와 나이를 고려하면 최소 절개술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저희는 즉시 외과로 넘겨 큰 수술을 받으시도록 할 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저희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세요. 잘 상의해보시고 수술하실 거면 동의서에 서명해주세요." 의사의 말을 들은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고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머리는 복잡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6개월에서 1년은 더 살 거고, 동의서에 서명하고 수술을 받다가 실패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끝없는 고민으로 눈물만 흘렸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금 내게 믿음과 힘을 주셨고 나도 더는 두렵지 않아졌다. 심장병이 발작했던 그날 저녁 간신히 숨이 붙어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줄곧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시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볼 수 있게 하셨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뭐가 두렵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1월 6일 늦은 오후, 수술 시작 직전 나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는 곧 수술대에 오르게 됩니다. 제 목숨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수술 결과에 상관없이 저는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겠나이다. 하나님, 숨이 붙어 있는 한 당신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따르고 경배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드리자 마음이 안정되었고, 담담하게 수술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수술 진행 도중 한 의사가 과장에게 얘기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이 환자는 수술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전 자신이 없습니다. 과장님께서 직접 하시면 안 될까요?" 의사의 말을 들으니 겁이 났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사탄이 나를 우롱하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보호로 내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어 고통 속에 살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나는 나를 하나님께 맡겼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수술을 마쳤다. 나중에 담당 과장이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나를 구해주셨다! 허약체질이었던 나는 빠르게 회복되어 체중도 10kg나 늘었다.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 말씀의 권세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경험과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심장병이 돌발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커지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주시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영적으로도 강해져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나님께 나를 맡겼을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도 보게 되었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수술 후에 빠르게 회복되면서 하나님이 내 곁에서 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렸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것은 모두 구원이며 모두 사랑임을 느끼게 해주셨다. 이때 눈물이 차올랐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 남은 생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본분을 잘 이행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생명의 기적: 심하게 다친 7살 아이가 살아나다

2014년 9월 29일 오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하굣길 아이가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하며 비 가림막이 있는 삼륜차를 타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40분가량이 흘렀을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남편만 있을 뿐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신신 데리러 간다면서? 신신은?” 남편은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헐레벌떡 내게 말했다. “신신은 어머니한테 있어.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어. 얼른 가봐!” 남편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급해졌다. 난 남편을 나무라며 말했다. “어떻게 했길래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많이 다쳤어? 보건소에 가서 약이라도 발라주지 그랬어?” 남편은 은행 카드를 찾으면서 내게 말했다. “애가 장난기가 많잖아. 툭하면 장난치고. 집에 거의 다 와 갈 때 혼자 삼륜차에서 뛰어내렸지 뭐야. 자기 생각엔 내가 집에 도착해서 뒤에 자기가 없는 걸 발견하면 놀랄 거고, 그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근데 삼륜차의 특수성 때문에 제대로 착지를 못 했어. 그래서 대자로 쓰러져서 머리를 다쳤어. 엄청 심하게 넘어졌어. 얼른 신신 데리고 병원에 가서 자세히 검사받아 봐야 해.” 남편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닫자 내가 생각했던 찰과상 정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시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어머니 댁에 도착하자 두 눈을 꼭 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신신이 보였다. 신신은 계속 울면서 외쳤다. “머리 아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아이를 본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신신, 머리 어디가 아파? 엄마한테 말해봐. 엄마가 봐 줄게.” 아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손으로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여기가 너무 아파.” 신신이 가리킨 방향을 만져보니 뒤통수, 그러니까 소뇌 부분이 컵 주둥아리만큼 파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말랑했다. 문득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넘어질 때 머리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특히 뒤통수. 넘어져서 뒤통수를 다치면 운이 좋아도 뇌진탕이나 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되거든.” 원체 겁이 많던 나는 울고 있는 아들을 보자 죽음이 점점 나를 옥죄어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잠시 후, 아들이 두 손을 꽉 쥐는 게 보였다. 난 얼른 손을 풀어주었지만, 잠시 후 아들은 또 손을 꽉 쥐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들이 이렇게 죽게 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주재하시니 아들의 목숨 또한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는가?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믿음을 얻게 되었고, 세상 만물의 모든 사람과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아들이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아들의 목숨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불안했던 마음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통해 서서히 진정됐다. 곧이어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받아 안고, 바닥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품에 안긴 아이를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지금 아이가 머리를 다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어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도록 지켜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더니 말했다. “엄마, 머리 안 아파.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아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과 부족한 모습을 헤아려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난 확실히 많이 나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을 보게 된 것이다! 병원으로 향하던 길에서 운전을 해주시는 송씨 아저씨는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면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해주셨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신이 구토나 기절, 혼미상태에 빠지거든 동네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해. 큰 병원이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뇌 외상 분야에서도 많은 임상경험이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저씨의 말을 듣자, 평온을 찾았던 나는 다시 긴장됐다. 품 안에 안겨 깊은 잠이 든 듯한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신신이 정말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난 어떻게 살지?’ 이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났으며 두 손이 계속 떨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세상만사가 당신 손에 있습니다! 제 아들의 목숨도 당신께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살펴주소서.” 몇 번이나 기도를 드리고서야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 7시를 넘겨서야 우리는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 품에 안긴 아들은 안색이 창백하고, 혈색이 하나도 없었으며,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입에선 계속 음식을 토해냈다. 신신의 머리는 어머니의 걸음걸이에 따라 흔들렸다. 난 그 옆에서 계속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신신, 일어나. 엄마 말 들려?” 하지만 내가 부르는 소리만으로는 아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신신은 완전히 기절한 상태였고,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죽음이 아들에게 점점 다가오는 듯했고, 지금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들이 평소 내게 애교부리고, 웃고, 장난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송씨 아저씨가 했던 말과 아버지가 당부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몰려왔고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거의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다. “신신이 구토해요! 어서 의사한테 가보세요! 전 못 걷겠으니 상관 마시고요.” 그렇게 난 비틀거리며 문에 부딪혔는데, 비상구였다. 그 안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난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과 함께한 7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어쩌면 오늘 밤 아들과 영영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듯한 고통이 들었고, 숨을 쉴 수조차 없어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나약해 졌을 때 나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죽음의 문턱에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걸을 힘조차도 없어요.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주시어 강해진 제 영혼이 공포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바로 깨달음을 주셨고 나를 일깨워 주셨다. 하나님께선 지고지상의 권세를 갖고 계시며, 사람의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신신을 살리고자 하시면 신신은 살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원망을 품어 사탄의 계략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사탄의 시험에 빠지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한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나약함과 보잘것없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에 믿음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빛을 내려주시어 제가 진리로 살고 사탄의 농간과 피해, 구속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부디 제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시어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아 기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홀로 고통을 삼키며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다. 그리고 욥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욥은 하나님의 시련과 사탄의 시험에 빠져 하루 만에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자식들도 죽었지만,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결국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다시 내 상황을 되돌아봤다. 지금 내가 직면한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물론 나의 믿음과 순종을 욥이나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거나 원망하고 오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아들을 낳은 것은 나지만,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아들의 목숨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사하신 것이었다. 평소 아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건강할 때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난 하나님께 대적하고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릴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거나 경외하지 않았으며 조물주의 섭리에는 더더욱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피조물이 갖추어야 할 이성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불안하지 않았으며 마음도 안정을 찾고 기운도 되찾았다.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건 아들이 죽건 살건 전 용감하게 맞서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겠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급히 갔을 때 신신은 응급진료를 보고 뇌 CT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한 간호사를 따라 우리는 9층에 있는 신경외과 전문 치료실로 향했다. 긴장감 넘치는 응급 치료 끝에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아들 얼굴에 떠오른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아들은 내게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 너무 어두워요. 방이 너무 어두워요. 불 좀 켜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난 아들 침대 앞에 밝게 켜져 있는 불빛을 보며 아들의 두 눈이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으며 위로해주었다. “신신, 걱정하지 마. 엄마가 있으니까 다 괜찮을 거야.”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고, 지도해주시어 이번에 아들의 실명이라는 소식 앞에서도 나는 처음처럼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덤덤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신신의 주치의와 남편이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남편이 의사에게 펜을 받아 서류에 사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계속 울고 있어서 나는 아들 곁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 아들은 계속해서 잠에서 깨어 울며불며 몸에 달린 의료기기를 다 떼어냈다. 어떤 때는 힘없이 “머리가 너무 아파.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갈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아들을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난 생각했다. 목숨은 정말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구나.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이 바로 앞에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오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절대로 버틸 수 없었을 거야. 직접 체험하면서 나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떠올랐고 난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잠에서 깬 아들이 앞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8시 정도가 되었을 때 회진을 온 주치의가 말했다. “늦지 않게 병원에 와서 다행이에요. 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몇 가지 치료만 받으면서 지켜봅시다.” 주치의가 떠난 후에야 남편은 어제 내게 속이고 의사가 준 서류에 사인한 게 수술 동의서였음을 말해주었다. 만약 어제저녁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아들은 수술을 받았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어제 신신이 토했을 때 우리가 신신을 CT실로 데려갔는데, 침대에 누운 신신은 혈색이 하나도 없고 창백한 모습이었어. 꼭 죽은 사람처럼 말이야. 신신 아빠도 밖으로 나와서 놀라서는 신신이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했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바로 조치를 취하셨고 신신이 반응하자 9층으로 옮긴 거야…” 남편과 어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우리는 응급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120구급차를 제때 부르지 못했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위험 속에서 살아 돌아왔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도 수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신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권세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난 몸소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이 얼마나 비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생명의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저녁 시체 같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중간에 깨어났지만 앞을 볼 수 없었고, 고통 속에서 밤새 울부짖었다. 아침이 밝자 두 눈은 기적처럼 시력을 되찾았고, 위험한 고비도 넘기게 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기적이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것이다! 이튿날 점심, 아들은 약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치료도 받았다. 이 광경을 본 같은 병실 사람들이 놀라서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처음 왔을 땐 굉장히 심각해 보였는데 지금은 또 아무 일 없었던 사람 같다니. 정말 운이 좋으세요.” 나는 웃으면서 “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셔서 그런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녁 예닐곱시가 되었을 때 한호라는 9살 남자아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한호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그만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겉에서 보기엔 출혈이 없었지만, 주치의는 검사 후 이렇게 말했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두개의 내출혈이 있어요.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6시간이 지난 후 한호는 수술실에서 나왔다. 한호는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온몸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잔뜩 꼽고 있었다. 저녁엔 기계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호흡했고, 참혹한 광경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며칠 뒤 6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25세 청년이 병원에 왔다. 치료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청년의 엄마는 아들이 흘린 신발 한 짝을 품에 안은 채 가슴 아프게 울었다. 그리고 옆 병실에는 18세 된 예쁜 아가씨가 실수로 계단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어 매일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으며 링거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아빠는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매일 딸 곁에서 딸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직접 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갖 악령들은 땅에서 시시각각 쉴 곳을 찾고 있고, 시시각각 삼킬 사람의 시체를 찾고 있다. 내 백성들아! 반드시 나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 한다. 절대 방탕하지 말라! 절대 망령되이 행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신 것이 바로 우리가 있는 이곳, 내가 직접 목격한 병원의 다양한 사람들이 사탄의 해침과 병마의 고통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아들이 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은 잊어버린 채 나는 공포와 나약한 모습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믿음이 없다는 것과 하나님의 지고지상한 권세에 진정한 경험과 체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아들의 사고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임을 알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권세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일 후, 아들은 많이 회복되어 퇴원했다.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떠올리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들이 넘어져 머리를 다쳤을 때 나는 고통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시어 나의 영혼이 강해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가장 어둡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밤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지켜주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남은 생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하나님은 저의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악에서 몸부림치며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마귀에게 짓밟혀 죄의 낙을 누리면서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매번 찬송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을 부를 때마다 저의 가슴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로 벅찼습니다. 저의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년 전, 저의 가정에 적색 신호등이 켜져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당시, 남편이 사업이 순조롭지 않아 괜히 저에게 자주 화를 내다 보니 저는 마음이 답답하여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한 남자가 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열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거절하고 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남자 동료로부터 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홧김에 저는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날 뒤로 저희들은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보며 마음속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영원히 함께 하진 못해도 사랑을 해본 것만으로 만족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저의 이런 행동이 불장난이어서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딸도 있고 남편도 있어서 감당하지 못할 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동상이몽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게 되었고 마음은 깊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하루하루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보냈는데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 남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가 이렇게 후회막급한 짓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관음당에 보살을 자주 찾아갔습니다.(다른 사람한테서 그 보살이 아주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살에게 저를 이런 악연에서 벗어나 원래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제 뜻을 따르지 않았고 헤어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고통스러워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마음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르고 추하여 더 이상 이전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선생님에게는 훌륭한 학생, 부모님에게는 착한 딸, 남편에게는 현모양처가 아니었습니다. 마침 그때, 어머니에게서 동생의 결혼식을 월말에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내심 ‘잘됐어! 고향에 가서 마음을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고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저에게 임하여 이번 귀향길이 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저를 죄악의 벼랑 끝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빛 가운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저는 제가 그렇게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던 원인이 바로 자신이 사탄 본성에 결박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성육신에 의하여 사함받은 것이지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능히 사람이 범죄치 않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역주: 부패, 타락) 성품에서 살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하여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발전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사람의 성품이 변화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점차 변화되는 데에 이르게 하고 빛의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며, 사람이 하는 범사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완전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데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이 완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알고 보니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은 모두 죄를 범하는 본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변화시켜 빛 속에서 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송 부르고 진리를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저의 마음을 지켜주고 안정시켜 주어 사악한 정욕을 끊어 버리고 원래의 조용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에게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은 더욱더 욕심이 그지없다.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번에 그것이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더욱더 자기의 육체를 사랑할 것이다.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이 더 커지고 … 사람의 육체는 뱀과 같은데, 본질이 바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완전히 목적을 달성할 때는 곧 네가 목숨을 상실할 때이다.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것 안에 언제나 사치한 욕망이 있어 늘 자기를 위하려 하며 … 네가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면 최후에 그것이 너를 삼켜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점차 육체의 본질을 알게 되었고 육체의 사악한 정욕을 만족시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는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사탄의 괴롭힘과 우롱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살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찬송을 더 자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지중에 저의 마음에 그 사람의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평안과 기쁨, 자유와 해방이 가득하여 예전보다 더 충실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세 식구는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딸도 사랑스럽고 남편도 저를 자상하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