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서로의 벽이 되었던 이익을 내려 놓으니 다시 회복된 우정

2019년 01월 24일

사람들은 이익 앞에서 진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익이 그 무엇보다 우위에 있는 이 세상에서 가족 간의 정과 우정, 사랑은 종종 이익이라는 시험대에 오르곤 합니다. 한때 필자도 한 동료와 막역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익 앞에서 이들의 관계는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훗날 필자는 어떻게 다시 그 친구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요? <이익을 버리고 되찾은 우정>에서 그 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스스로 의리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

저는 휴대폰 판매점에서 일하는 판매 사원입니다. 저는 늘 제가 시원시원하고 마음이 넓으며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릴 때 한 자매님이 이렇게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일하다가 이해관계에 얽혀 동료와 다투진 않나요?” 저는 그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희는 고객분이 가게에 들어와서 걸어가는 방향에 있는 직원이 그 고객님을 응대하거든요. 저희는 다툴 일이 전혀 없어요. 게다가 제가 이익 때문에 의리를 저버릴 사람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와 트러블이 생겼고 그 사건은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저희 가게의 판매 사원은 원래 저와 남자 직원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고객이 많을 때면 다 응대할 수가 없어서 사장님은 한나라는 친구를 계약직으로 고용했습니다. 한나는 활발하고 말도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사장님은 제게 한나를 잘 이끌어 주라고 하셨고 저도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업무 내용을 한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한나가 고객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는 웬만한 업무에 익숙해졌고 제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희 둘은 그렇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판매량 감소 후 흔들리기 시작한 우정

한나의 진보는 매우 빨랐고, 거래할 때마다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서서히 한나의 판매량은 저를 초과했고, 저의 마음도 좀 불편해졌습니다. 하루는 한나가 남자 직원과 함께 밖에 나갔습니다. 그때 한 부부가 가게를 찾았고 제가 부부를 응대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남자 고객을 도와 기기와 관련된 자료를 조회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분은 가게에서 다른 제품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나와 남자 직원이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한나는 돌아오자마자 여자 고객분을 응대했고, 남자 직원도 한나를 도와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그렇게 판매 업무는 순식간에 끝이 났습니다. 한나가 실적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화가 났습니다. ‘내 고객인데 뺏어 가다니. 직업 윤리도 없는 거 아냐? 너무하네! 안 되겠어. 이렇게 내가 손해 볼 수는 없어. 고객을 다시 뺏어 와야겠어.’ 하지만 체면이 앞선 나머지 고객 앞에서 서류를 뺏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를 억눌렀지만 한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달 제 실적은 한나에게 훨씬 못 미쳤습니다. 기분이 상한 저는 ‘그때 내 고객을 뺏기지만 않았어도 내 판매 실적이 이렇게 저조하진 않을 텐데. 다신 고객을 뺏기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적극적으로 가게 앞에서 전단지를 돌렸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행여라도 한나에게 뺏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 앞으로 가 고객을 응대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실적은 다시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저는 한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한나가 제게 물어봐도 전 잘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려줘봤자 한나의 실적에만 도움이 되고 제게는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실적에만 신경 썼고 저와 한나의 사이는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얼마 후 생긴 사건으로 저희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하루는 저와 한나가 근무를 서고 있는데 여성 고객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달려나가 고객을 응대했고, 고객이 예전에 쓰던 번호를 살리고 싶다고 하기에 전화번호와 개인 정보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일을 보려고 할 때 한나가 갑자기 나서서 그 여성은 자신이 전에 맡았던 고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네 고객이었다면 고객이 오자마자 너한테 갔겠지. 게다가 전에 내 고객도 뺏어 갔잖아. 나도 뺏어오는 건데 뭐가 어때서? 내가 왜 고객을 양보해야 해?’ 이렇게 한나에게 따지려고 할 때 다른 고객이 들어왔고 저는 새로 온 고객을 응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바쁜 일을 끝내자 한나는 아까 그 여성 고객에게 전화번호를 여쭈어보지 않았다며 제게 물어봤습니다. 저는 기분 나쁜 투로 얘기했습니다. “한나씨 고객이잖아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러자 한나도 언짢은 듯 말했습니다. “그냥 물어보는 거잖아요. 없어도 상관없어요.” 저는 화를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따졌습니다. “그래요! 그 고객은 한나씨 고객이니까, 직접 고객한테 물어보면 되겠네요!” 한나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제 고객이에요. 절대 그쪽에게 넘기지 않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전 몹시 화가 난 나머지 예전에 한나가 제 고객을 뺏어 갔던 일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한나가 짜증 난다는 듯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쪽이랑 더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한나는 자리를 떴습니다. 한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습니다. 은혜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한나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진리를 실행하기로 마음먹다

퇴근할 때 저희는 평소와 달리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우정이 깨진 것인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매님과 예배를 드리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내주었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매님은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이후 모두 이익만을 좇고 말과 행동 모두가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심지어 이익을 위해 서로 다투고 사람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죠. 예로부터 황제건 백성이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떤 일에 종사하건 이익과 관련이 없으면 다들 사이좋게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면 바로 등을 돌리고 부모 자식이 다투고 형제간에도 재산 때문에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 죽이는 일도 생겼죠….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이익 앞에서 인성과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결과죠.”

여기까지 들은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모습을 돌아보니 저 역시 이익 때문에 한나와 날을 세우고 다퉜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한나가 제 고객을 데려가 실적이 줄어들자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몇 번이나 한나와 다투려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한나의 고객을 뺏어올 기회만 노렸습니다. 제 이익을 위해 과거의 우정은 잊고 한나와 사소한 일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이게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예전에 제가 당당하게 이익 때문에 동료와 싸울 일은 없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나타내심과 사실을 통해 사탄에 의해 타락된 제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고, 저는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이어서 자매님은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주인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였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예를 들자면, 너는 왜 이기적이 될까?…“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였다.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위하든 저것을 위하든,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사탄의 이 말이 바로 사탄의 독소인데,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사람의 본성이 되었다. 사탄의 본성은 이 한마디에서 드러났으며, 이런 독소가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이 생존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완전히 대표하였다. 몇천 년 이래, 패괴된 인류는 모두 이것에 지배받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이익을 위해 한나와 고객을 놓고 다투고 싸운 제 행동이 모두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조금의 이익이라도 쟁취해야만 한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아왔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관념에 사로잡혔던 저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를 위하고 내게 득이 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무엇을 하던 제 이익을 지키며 절대 손해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만을 좇게 되었습니다. 한나가 처음 가게에 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았을 때 서로 잘 지내고 저도 최선을 다해 한나를 가르쳐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한나의 실적이 제 실적을 뛰어넘자 한나를 질투하고 한나가 제 고객을 가로채 가면 저는 더 화가 나 한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한나가 어려운 문제가 생겨 제게 물어보러 왔을 때는 아무 말도 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객을 뺏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과거 우정은 버려둔 채 한나와 다투었고 결국 한나와 관계가 틀어져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나가 처음 가게에 왔을 때 사장님이 제게 한나를 잘 가르쳐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저는 한나를 더 도와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익에 눈이 멀어 저보다 실적이 좋은 한나를 질투했고 한나가 어려워하는 문제가 있음에도 도와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고객을 놓고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익에 눈이 멀었고 너무 이기적이며 비열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통해 제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제 이기적인 본성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며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거나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정 회복,크리스천직장생활,

처음으로 실행한 진리, 그리고 얻은 수확

하루가 지났어도 저와 한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한나와 잘 지내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휴식 시간이 되자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한나와의 사이가 너무 어색합니다.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 자신을 내려놓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부디 저를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소서….’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루는 가게에 엄마와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한나가 아들 고객을 응대했고 저는 엄마 고객과 어떤 요금제가 좋을지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옆에서 보다가 같이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 실적은 내 이름으로 올리는 거겠지? 지난번에 내 손님을 자기 실적으로 올렸으니까, 이렇게 계산해도 되겠지!’라고 한나에게 말하려고 할 때 문득 제가 또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황급히 더는 이기적이지 않고, 제 속셈을 배반하고 이익을 내려놓으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저는 감동되었습니다. 실적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이기적이고 타락한 성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고객을 한나에게 넘겼습니다.

제가 고객을 한나에게 넘기자 한나는 먼저 다가와 고객을 설득했고 판매에 성공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전 감동했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녁 정산 시간이 되었을 때 뭔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한 제 모습을 본 한나는 먼저 다가와 문제점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고 분위기도 많이 누그러졌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여 얻은 성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환경을 마련해 검증할 때 굳게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다

눈 깜짝할 새 어느덧 한나의 마지막 출근일이 되었습니다. 한나가 깜빡하고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던 그 고객이 다시 가게를 찾아 예전에 다시 되살리고 싶다고 했던 번호를 되살렸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마침 한나가 자리에 없었고 저는 ‘내가 먼저 고객을 응대해야 하나? 아니면 한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 고객을 다시 뺏어와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너 자신이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일이 닥칠 때면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나가 자리를 비우자 또다시 고객을 뺏어오려는 마음이 꿈틀거렸고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만을 좇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이기적인 본성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 사탄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나를 대신해 고객님의 번호를 여쭤봤고 한나가 돌아오자 고객님의 연락처를 한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퇴근할 무렵 한나가 먼저 다가와 자신이 잘못한 점을 얘기하며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포옹하고 헤어졌습니다. 한나와 껴안았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저와 한나의 사이가 진정으로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헤어지게 되었지만, 우리의 사이는 좋아졌습니다.

체험 후의 감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한나와 함께 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감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역이 정말 실제적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주변의 사람과 환경, 일을 통해서 제 속에 숨어 있는 사탄의 본성을 들춰내고 하나님의 말씀 심판에 따라 이를 드러내어 제 타락한 성품이 생겨난 근원을 깨닫게 해주었고, 실행하고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제게 해주신 하나님의 실제 구원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서 제게 마련해 주신 환경을 체험하고 느끼며 하루빨리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드리겠습니다!

말레이시아 제시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예배는 드려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왜 예배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예배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깁니다. 사실 예배는 크리스천에게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예배를 가기 싫어하던 글쓴이가 나중에는 예배를 즐기게 되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음은 자매님의 실제 체험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저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예배의 의미를 잘 모르기도 했고, 집안에 일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만두 빚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고, 내일은 딸이 찐빵 찌는 걸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또 남편도 챙겨야 하고, 한국어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교회와 집이 먼데다 나이가 들어서 쉽게 피곤해져 틈만 나면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예배를 드리러 가기가 귀찮고, 심지어 예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속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데, 왜 꼭 예배를 드려야 하지? 혼자 집에서 말씀을 읽으면서 예배는 가끔 한두 번씩 나가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이 교회에 나가자고 전화가 올 때마다 저는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댔습니다. 하루는 자매님이 집으로 찾아왔는데 마침 제가 집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싼푸텐(三伏天) 자매님은 아래층에서 저를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습니다. 자매님의 인내심과 열정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매님은 저를 만난 뒤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바쁘신 거 알아요. 다들 집안에 해야 할 일이 있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은 이상 시간을 내야 해요.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속으로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도 많이 읽고 형제자매들하고 같이 예배 드리고, 교제도 해야 해요. 그러면 성령 역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점차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생명도 자란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예배 나가는 게 싫었어요. 시간 낭비 같았죠.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성령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역사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에게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게 역사하면 네가 체험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에게 역사하면 너는 빨리 따라야 한다. 현시의 빛을 따를수록 생명은 더욱 자라게 된다. 어떠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의 역사이기만 하면, 너는 따라야 한다. 그리고 네가 체험하는 중에 그의 경험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진보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진보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할지 모르고,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해 너로 얻게 하고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크다는 것을 설명하고, 네가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너의 앞날은 어둡고 막막하고 빛이 없을 것임을 설명한다.』 『비록 내가 말을 다 하였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람의 소질이 낮은 까닭이다. 이 문제는 교회생활이나 서로의 교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말씀을 보면서 성령 역사를 얻고 생명이 자라려면 교회생활 없이는 안 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많이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야 교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교제하며,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벗어나게 되고 성령 역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예배를 안 나가고 집에서 혼자 말씀을 보면 표면적인 의미는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건지, 이러한 진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제한적이에요. 또 머릿속에서 상상해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의미만 받아들여서 말씀에 대해 관념이 생기기도 하고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우리 자질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까요. 예배 때, 형제자매들하고 같이 말씀을 교제하다 보면 간혹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교제하는 경우도 생겨요. 또 각자의 체험과 깨달음을 공유하면서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고 공급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생명이 더 빨리 자라고 우리에게 임한 문제점이나 힘든 점도 예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죠.”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서야 저는 예배를 드리면 이로운 면이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생활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유지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기도도 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말씀도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배에 나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대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에 잘 다니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소홀해졌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예배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일을 보자니 예배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 예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일을 겪고 나서야 크리스천은 예배를 떠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설 전날, 며느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데, 손주 녀석의 지난 번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더니 그 말에 며느리는 제가 자기를 탓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아들한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자기 누이 앞에서 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올케와 오빠가 합심해서 저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같다며 오빠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그 후 아들은 씩씩대며 찾아와 저를 나무랐습니다. “어머니, 한 번이라도 아들이랑 며느리를 신경 쓰고 이해해 본 적 있으세요? 동생 말로는 어머니가 과로로 편찮으시다는데, 저 때문은 아니잖아요?” 아들의 비난을 들으니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기 어머니인데, 나를 그렇게 대하다니 정말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화를 내며 아들과 말다툼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습니다. 아들이 가고 난 후,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마음속에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고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무척 힘들고 괴로운 그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는 자매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해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 분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 챙겨주고, 한국에서 고생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집도 사주었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 말 한 마디에 나를 이렇게나 몰아 부치다니 도대체 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교회에 가자는 자매님의 전화였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갈 길이 없어 혹시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면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갔더니 제 안색이 좋지 않을 것을 보고 자매님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자매님들에게 얘기하니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찾아 주었습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반대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태도는 어떠냐? ‘흥, 나한테 잔소리하는 것밖에 더 있어? 듣기 싫어!’라고 하는 이런 태도는 어떠냐? ‘맨날 맨날 단속해, 내가 다 컸는데도 계속 단속하려고 하네.’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또 하나, 어떤 자녀들은 항상 어떻게 생각하느냐? ‘난 엄마(아빠) 자녀야. 그래서 나한테 뭘 해 주든 다 당연한 거야. 날 위해 돈 쓰는 것도 당연하고, 나한테 먹을 거 해 주는 것도 당연하고, 내가 아플 때 보살펴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정상 인성이 맞느냐? 항상 뭐든지 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면 부모가 괴로워한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뭘 해 줘도 너는 항상 당연하게 생각하는구나.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 보니까 아직 철이 없구나!’라며 부모는 괴로워한다. 부모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든, 자녀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든, 자녀 쪽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항상 그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고, 부모는 괴로움이나 아픔을 모르고 고통이나 슬픔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다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자매님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로는 사탄의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게 되었어요.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관용이나 인내를 베풀 줄 모르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식과 며느리와 지낼 때도 타락된 성품대로 서로를 대하지요. 부모들은 항상 높은 위치에 서서 자식과 대화합니다. 때로는 자식들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자식이 잘못했다고 비난하면서 자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억압합니다. 이것은 모두 교만한 성품 때문이에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예요. 부모의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부모가 당연히 이것저것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아주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아예 부모에게 관심이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부모 자식 간에 자주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것은 모두 타락된 성품 때문이죠.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요.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아껴주고,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며, 더 많이 사랑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어요!”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니 제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탄에게 너무 타락되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실행하기 원합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며느리가 혼자 중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며느리에게 신경도 안 쓰고, 며느리를 이해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저를 원망하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마음이 풀리고 아들에 대한 화도 풀렸습니다. 저 자신을 내려놓았고 아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서 교회생활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교제하지 않았으면 저는 계속 타락된 성품에 묶여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오래 지내다 보면 분명 화병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으면 TV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예배 시간에 자매님들이 제 상황에 맞는 말씀을 찾아 교제해 주고 가끔은 형제자매들도 본인들의 체험을 공유해 주십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신의 타락된 성품도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실행의 길을 찾게 되니 마음은 홀가분하고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시련이 닥치든, 어떤 환경이 임하든, 네 육체에 병이 생기든, 형제자매들이 너를 멀리하든, 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든, 너는 정상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고, 정상적으로 기도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네가 이 정도에 이르면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음을 설명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본인의 어려움을 교제하여 진리를 구하고, 모두가 실제 문제에 비춰 말씀을 교제하는 것이 저에게는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자라는 가장 좋은 길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앞으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개인적인 일로 예배를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인 일과 예배 시간이 겹칠 때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조정하여 예배를 우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배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배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츰차츰, 예배를 드릴수록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시험이 제게 임했습니다… 하루는 한국어가 서투른 아들이 저에게 다음날 휴대폰을 개통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예배가 있어 난처했습니다. 예배도 빠지기 싫고 그렇다고 아들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딜레마에 빠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자매님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매님이 저에게 예배에 나오지 말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난 자매님이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크게 높여야 해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먼저 결정하거나 스스로 선택하지 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겪어내야 비로소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답니다. 오늘 생긴 일은 우선 하나님께 맡기세요. 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 손에 있으니까요. 성경에서 말씀하셨어요.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2) 또한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길을 열어 주시고 제물을 예비하셨죠. 지금 우리에게 임한 일은 작은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검증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믿음이 있어야 해요.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고민과 생각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고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빌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어요.”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난 후 제게 실행의 길이 생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저에게 휴대폰을 개통하러 같이 가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배를 드리러 가고 싶어서 입장이 난처합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우선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길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께 기도는 드렸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아들한테 일찍 가서 하자고 하자. 그래도 안 되면 예배를 먼저 드리러 가야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야. 아들 일은 늦게 가서 처리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오빠 휴대폰은 제가 처리할게요. 제 차로 가는 게 빠르잖아요. 걱정 마세요.” 전화를 끊은 저는 뛸 듯이 기뻐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와 아들이 다툰 이후로 딸은 아들과 계속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딸이 나서서 돕겠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둘이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도 예배를 지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높지 않다.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원뜻대로라면 사람이 다 즐겁고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모두 고생하기 싫어했을 뿐이다.』 예전에는 예배로 자신의 일에 지장을 받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을 내서 예배를 드리면 진리를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저의 일에도 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전에는 저에게 진리가 없어서 아무일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임하면 괴로운 나머지 원망만 늘어놓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생기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많은 일에서 길이 생기고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면서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타락된 성품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생활이 저에게 정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새벽녘 발코니의 작은 풀을 바라보며

새벽녘, 발코니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다 문득 고개를 숙였는데 발코니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잎사귀를 보았다. 집 발코니에는 시멘트로 덮여있었고, 주변은 두꺼운 플라스틱인 데다가 수분도 부족했을 터인데 어린 잎사귀가 자란걸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린 잎사귀를 바라보며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권세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감탄하게 됐다!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

신고를 당한 후 …...

“누님, 누님한테 신고가 접수됐어요!" “왜요? 또 어디가 안 깨끗하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누님,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았어요? 물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나요?" “바닥은 진공청소기로 하고, 물걸레는 안 썼어요.” 나는 이렇게 해명했다. “직원이 물걸레가 마른 채 있는 것을 보고 누님이 물걸레 쓰는 것을 못 봤다고 신고했어요. 앞으로 바닥을 닦지 않아도 물걸레는 축여서 거기에 놔둬야 해요. 그러면 다시는 누님을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의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미 충분히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왜 또 신고가 접수된 것일까? 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미 두 번째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접수된 신고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서였고, 이번에는 물걸레로 바닥을 닦지 않아서였다. 이런 환경에 처하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내가 막 이 청소 일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소개한 친구가 이곳은 위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아서 40분이면 일을 끝낼 수 있고, 일당은 2500엔(약 2만5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3시간이 걸려서야 일이 전부 끝났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부 대청소를 했는데, 주차하는 곳만 물을 뿌려 청소하는데도 40분이 걸렸다. 똑같은 돈으로 이렇게 오래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이곳을 청소하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겠지. 만약 또 청소할 필요가 없는 곳을 줄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야. 그러나 나중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거의 2시간이 걸려야 일이 끝났다. 가장 빨랐을 때도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40분에 마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는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은 최대한 생략해버렸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보았고,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했다. 항상 이득을 봤는지 아니면 손해를 받는지 따져야 하니까 정말 피곤했다. 기분이 좋고 나쁨도 이 일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석에 더러운 곳을 봐도 청소하지 않았을 때, 나의 마음도 항상 죄 짓는 듯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시간을 덜 쓸수록 이득이라며 온종일 시간을 덜 들이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았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찔렀다. 일을 할 때 잔꾀를 부리고, 교활한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울을 닦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닦았다. 윗부분이 조금 더러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닦지 않았다. 변기를 닦을 때는 겉에만 닦았다. 냄새가 나면 여러 번 물을 내렸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검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대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고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사장이 처음으로 내가 신고 당한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벌금을 물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찾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고를 당하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인격도 존엄성도 없이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이방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그것은 모든 면에서 다 거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간당 얼마를 주면 그만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노동력은 제공하지 않고 돈만 받고 공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한다. 일이 없으면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다가 상사가 오기라도 하면 눈앞에서는 열심히 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고 힘을 쓴다. 그것은 다 승진을 위한 것이고, 돈을 많이 받고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다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이고, 음험한 수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궤계이고 전부 사탄의 철학,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이방인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궁리만 하고, 힘을 적게 들이고 교묘하게 돈을 벌 방법만 늘 생각한다. 그것은 사악한 길이고,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탄에게 유혹당해 전혀 사람답지 않게 타락한 나를 보았다. 본성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서 적게 일하고 돈만 많이 벌 생각을 했다. 사장이 곁에서 지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대충대충 일했다. 일을 하면서 항상 교묘하게 잔꾀를 부렸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양심과 인격은 내다 버리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살았다. 나는 항상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40분 안에 일을 끝내려고 구석의 더러운 곳을 보면 청소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허비할까 봐 다음 번으로 미뤘다. 다음 번에 시간이 길어지면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해서 몸은 좀 편해졌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집에 있을 때도 고객에게 발각되어 신고당하지는 않을까,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치가 없고 너무 비천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양심도, 인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겠는가! 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실행의 길을 찾았다. 기왕 이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진솔하게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나는 예전에 일 하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다. 화분과 꽃잎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물로 살짝 깨끗이 닦아냈고, 복도 전체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하자 기분이 유달리 상쾌했고, 바빠서 시간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몇 시간이나 일 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사서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맛 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실천하고 인간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묘한 방법

어렵게 얻은 아들, 그만큼 큰 기대 여자가 10개월간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수차례 유산을 하였고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이를 낳지 말고 입양을 하라 권고하셨지만 저는 위험하더라도 입양보다는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임신을 시도했습니다. 2000년 5월, 저는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용혈 수치가 위험 수준이라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매일 링거를 맞고 30~40분가량 고압산소를 흡입하였으며 한약도 먹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했던 우리 부부는 치료비 때문에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른 임산부는 이것저것 많이 먹을 수 있었어도 저는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산일이 되었습니다. 민감 체질인 데다 마취까지 잘 안 되어 통증을 참아가며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를 검사한 후 모두 정상이라고 하시자 저는 그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저와 남편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고 병 치료를 위해 빚을 졌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부족함을 느낄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려 애썼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아이는 어느새 유치원생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여워서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제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아들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고, 아이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서 아들을 인재로 키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들의 나쁜 버릇, 타들어 가는 부모 마음 하지만 아이에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갖고 오는 버릇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자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아들 가방에 장난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장난감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잘못 넣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기에 저는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가져와서는 안 되니 다음 날 장난감을 얼른 갖다 놓으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아이의 가방에서 또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에게 물으니 아들은 바로 “선생님께서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들의 가방에 산사 열매 젤리가 가득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젤리를 어디서 어디서 났니?”하고 엄하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선생님이 잘했다고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상으로 젤리 몇 개를 줄 수는 있어도 어떻게 한 봉투를 주시겠습니까? 점심시간 전에 젤리를 먹기도 하고 가끔 젤리가 많이 남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많이 줄 리는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되돌아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오후에 제 아들에게 상으로 젤리를 많이 주셨어요?” 선생님은 제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아니요, 안 그래도 남은 젤리가 다 어디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저는 다른 선생님이 가져가신 줄 알았는데, 얘가 가져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혼 좀 내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과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저는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제가 몇 번이나 아들이 가져온 물건에 대해 물었을 때 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며댄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5살 된 아이가 거짓말을 배우다니, 게다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가 완전히 믿도록 속이다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요! 저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아들의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아들의 뺨은 금방 빨갛게 부어올랐고,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던 아들은 놀라서 선생님 뒤로 숨었습니다. 선생님이 말려서야 저는 손을 멈추었고, 핸드백을 집어 들고는 돌아서 나왔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저녁에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엄마도 널 때리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다 널 위해 그런 거야.”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는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면 가장 먼저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아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이가 한 번 맞았기 때문에 다시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이번에는 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아들에 대한 잔소리와 감시를 줄였고, 더는 가방을 뒤지지 않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나쁜 버릇이 재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의 책가방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의 책과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이 책과 노트가 다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매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가 깜빡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챙겨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학교에 와달라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아들이 또 다시 친구의 물건을 훔쳤고, 이 사실을 친구가 선생님께 일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선생님 앞에서 아들을 크게 꾸짖었고 또 저에게 “어머니도 선생님이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죠?”라며 힐책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더욱 화가 났고 또 아들이 착실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못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선생님 앞에서 아이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시는 친구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후로 아들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애 아빠의 돈을 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하루하루 커갔고 아무리 노력해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버릇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는 죽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니? 내가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마음도 아프지 않겠지. 그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그만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들이 아직 어리잖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만약 내가 이대로 죽어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하면, 아들이 커서 범죄자의 길을 가지 않을까? 그러면 아들의 인생은 망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을 때리고 혼내도 효과가 없기에 저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받게 되는 처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이웃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가 체포된 사건도 말해주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어떤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아들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오래지 않아 다시 도둑질하곤 했습니다. 저는 낙담했고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가슴 졸이게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기묘한 방법, 아들의 변화 2008년 5월,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 『인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그런 세상은 어둡고 소망이 없으며 공허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중에 인류의 문명은 갈수록 사람의 소원대로 되지 못하였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오히려 죽은 사람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과거 아주 문명화했던 나라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원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설사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모두 온갖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가 우리 안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에 의지할 뿐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면 내면은 공허한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제 상황에 비추어 보니, 저는 줄곧 저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려 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때리거나 혼내는 방법으로 교육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들이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의지하다 보니 어떤 일도 성사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들을 참으로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이끌어 인생의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면 아들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들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받들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들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겠다고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신발 박스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들의 신발 박스 안에 2만원 가량되는 돈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아들이 다시 돈을 훔치기 시작한 걸까? 가족의 돈을 훔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친 것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저는 늘 아들을 때렸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포용력도 없고 참을성도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으니 저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돌아오자 “아들, 오늘 엄마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2만원을 주웠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바로 해명을 했습니다. “그거 건드리지 마세요. 저희 반 친구 XX 거예요.” 저는 다시 “친구 돈이 어떻게 우리 집 신발 박스에 있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 아빠가 생일이라고 5만원을 주셨는데 친구가 그 돈을 다 못 써서 잃어버릴까 봐 저에게 대신 보관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났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지 화를 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안 돼. 내가 먼저 변해야 해.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걸 거야.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 그러면 나도 아들처럼 거짓말하는 게 돼버리는데?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아들을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는 내 방식으로 가르치려 하면 안 돼. 내가 먼저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이에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널 믿어. 그럼 엄마 아빠랑 함께 그 친구 집에 가서 물어봐도 되겠니?” 그러자 아들은 저와 남편을 근처 새 건물로 데려가 어떤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그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저희에게 “친구가 집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는 아들에게 “아들아, 엄마 아빠가 하나님을 믿는 걸 알지? 하나님은 타락된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어. 너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엄마 아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거야. 네가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아빠는 너를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예전에 너를 때린 건 엄마 아빠가 잘못 한거야. 하나님은 너를 때리는 걸 원치 않으시니 엄마 아빠도 변해야 하는 거야. 너도 하나님께 얘기 드릴 수 있어. 진솔한 사람이 되고 엄마 아빠를 속이지 않길 원하면 하나님도 널 용서하실 거야. 하나님은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셔. 우리가 말한거나 행한 것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 하나님도 사람도 속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비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때로는 과장하거나 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해 주셔. 아들과 엄마 둘 다 진솔한 사람이 되어 너도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엄마도 하나님을 속이지 말자구나. 네가 엄마에게 직접 말하기 부끄러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너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렴. 고치기만 하면 착한 아이인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제가 훔친 거예요. 아빠 몰래 5만원을 훔쳤어요. XX가 사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안 사주실까 봐 훔쳤어요. 엄마한테 맞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게요. 정말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져온 변화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를 믿어. 엄마도 네가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어.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거고, 넌 꼭 고칠 수 있을 거야. 너도 보았겠지만 엄마가 널 때리지 않겠다 말하고 그 말을 지켰잖니? 너도 힘내서 해내야 해.”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감격해서 눈이 빨개진 채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어주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들은 더는 돈을 훔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7~8년동안 아들은 단 한 푼도 훔친 적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그런 버릇을 가진 같은 반 친구에게 반감과 혐오를 느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말씀이 가져온 결과로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아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 돈을 더 가져가라고 해도 아들은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완전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제 아들을 변화시켜 주셨고, 아들을 교육하는 저의 방식도 바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아들을 돕고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돌봐주고 계셔서 우리 일가족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서로 도우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우리 가족의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니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모든 사람의 인생 역정은 갓난아기부터 시작되는데,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의 인·사·물도 부단히 바뀝니다. 우리는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명에 순응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인생을 체험하든,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이모는 병원에 근무합니다. 병원에 가서 이모를 찾아뵐 때마다 병실을 지나게 되는데, 병상에는 약물로 겨우 연명하는 노인들이 누워 계십니다. 매번 무심결에 노인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저는 왠지 모르게 막연하고 뭔가 두려워하는 그 눈빛에 동정심이 생기게 됩니다. 노인들 옆에는 가족들이 분주히 드나들며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물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옷을 입혀주기도 하고 약을 먹이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온갖 방법으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기어가 일단 돌아가면, 그 누구도 역전 시킬 수 없습니다. 예전에 아래와 같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사 한 분이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지만,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투여하는 약이 날로 많아지면서 눈이 흐려져 물건이 잘 안 보이고, 다리도 저려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단 결과 약물중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해, 신장질환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 그 교사는 ‘가족들이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 난 차라리 죽는게 나아. 근데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데, 왜 안 되지? 왜 죽음이 두렵지? 왜 이 세상을 떠나기가 두렵지?...’라는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마지막까지 운명과 싸울까요? 알고 보니 다 죽음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 아직 젊은 저는 늘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왜 죽음이 정말로 다가왔을 때, 담담하게 마주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저는 드디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왜 현재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 죽음에 직면할 때 어떤 사람은 바지에 오줌을 쌀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들부들 떨 것이며, 어떤 사람은 혼절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소리 내어 통곡할 것인데, 이런 것은 절대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야 사람이 돌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할 때 이런 난감한 표현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까닭은 주로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안배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깨달음이 없고 더욱이 진실한 순복도 없기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모든 것을 안배하고 장악하려고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자신의 생사를 장악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쓰였습니다. 이 말을 묵상하면서, 죽음에 임했을 때의 사람들의 여러가지 표현들이 떠올랐는데, 마음속의 의혹이 점차 풀렸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조물주를 알지 못하고,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대해 인식이 없으며, 더욱이 진실한 순복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어떤 배경에서 죽을지는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마음속에 각종 사탄의 독소가 가득 차서 더 이상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으로 인생을 바꾸려 하고 늘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 고통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고, 아무 아쉬움과 걱정도 없이 인생의 마지막 관문에 직면하고 싶어 한다면, 그 유일한 경로는 바로 아무 유감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인간 세상을 떠날 때 아무 유감도 남기지 않을 않는 유일한 경로는 바로 조물주의 주재를 인식하고, 조물주의 권병을 인식하고,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순복하고,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 순복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인류의 분쟁을 멀리하고 죄악을 멀리하고 사탄의 매임에서 떠나 욥처럼 조물주의 인도 아래에서, 축복 속에서 살 수 있고, 자유와 해방을 받으면서 살고, 가치 있고 의의 있게 살고, 떳떳하게 살 수 있으며, 욥처럼 조물주가 시련하고 거두어 가는 것에 순복할 수 있고, 조물주가 지배하고 안배하는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욥처럼 일생 동안 조물주를 경배하여 조물주의 칭찬을 받게 되고, 조물주가 친히 발한 음성을 듣게 되고, 조물주의 나타남도 보게 되며, 욥처럼 즐겁게 살다가 즐겁게 세상을 떠나고, 아무 고통도, 아무 걱정도, 아무 유감도 없게 되며, 욥처럼 빛 속에서 살고, 빛 속에서 인생의 각 관문을 넘기며, 빛 속에서 순조롭게 자신의 평생 길을 다 걸어가고 순조롭게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게 된다. 즉, 피조물로서 조물주의 주재를 경력하고 체험하고 인식하고 난 후에 빛 속에서 떠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조물주가 칭찬하는 피조된 인류로서 조물주의 곁을 지키게 된다.” 이 말을 통해, 저는 오직 조물주의 섭리와 주재에 대해 인식이 있고, 진실로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해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은 기한이 차서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르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든 축복을 주시든,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인정하고, 순복하기를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임했을 때, 그는 아무 걱정도 유감도 없었고, 자신의 결말을 걱정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그는 즐거웠고 죽음의 통제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단어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또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체험하든, 어쨌든 우리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정해주신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조물주의 섭리와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자신의 인생을 욥처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이런 것을 진정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연히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할 것이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내려놓고 머지않아 임할 모든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순복하면서 조물주가 사람을 위해 안배해 놓은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할 것이며, 무턱대고 거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추천 동영상: 「천국의 꿈」

어디가 당신의 귀숙인가?

2015년 7월 1일, 뉴스에 의하면 선양(沈陽) 시내에서 한 여성이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올라갔다가 삶과 죽음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건물 아래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휘파람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답니다. 구경꾼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그 건물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웅성거리고 있었고 또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있어, 빨리 와서 구경해. 진짜 볼 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구경꾼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휘파람 소리와 조소 소리가 들려왔고 어떤 사람은 “떠들썩하게 굴지 말고 재간 있으면 뛰어내려!” “빨리 뛰어내려, 보기도 힘들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지만 주택 단지에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불이 났다고 했답니다. 뉴스에 의하면 그 여성이 뛰어내린 그 순간에는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답니다. 뒤이어 사람들은 계속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와, 정말 뛰어내릴까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방금까지도 살아있던 한 생명이 이렇게 없어지다니요?” “너무 참혹해요! 에휴, 다들 떠들지 않았더라면 혹시……” 뉴스를 보고서 저는 그 여자가 자살한 것에 대해 비애에 잠겼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취약하여 일시적 충동으로 빚어낸 것은 자기에 대한 포기와 가족에게 주는 상처인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사람들의 냉담과 조소 그리고 생명 경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뉴스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 간에 인정미가 조금도 없고 진정한 관심과 도움도 없으며 모두 “자신과 무관한 일이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각자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역경에 처하면 도리어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며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격입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처음의 순진함을 잃었습니까? 왜 우리가 이토록 냉담해졌습니까? 어떤 고통이 당신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했습니까?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격려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런 결과일 줄 생각지 못했습니까? 어디가 당신의 귀숙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ㆍ하와는 거룩한 사람이었다. 즉 에덴 동산에서 그들은 성결하였고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충성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배반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사탄 권세의 방해가 없었고 사탄의 독소가 없었으며, 그들은 가장 성결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났는데, 더러움이 그들을 더럽히지 못하였고 육체가 그들을 점유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독사의 독소가 있게 되었고 여호와를 배반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들은 시초에 성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이야말로 사람인 것이다.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은 다음, 선악과나무의 실과를 먹고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에게 점점 패괴되어 사람의 원래 형상이 없게 되었다. 시초의 인류는 여호와의 생기가 있었으며, 패역이 조금도 없었고 사람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는데, 그때의 사람이 진정한 인류인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어 짐승으로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악이고 다 더러운 것이며, 선이 없고 거룩함이 없다. 이것은 사탄이 아닌가?』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해를 받고 이미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사람의 도덕,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가 모두 사탄에게 심히 파괴됨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원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전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사람의 사상,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장 심하게 패괴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엇을 하나님이라 하는지, 무엇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지를 더욱더 모르며,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이지와 견식이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근원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까닭이다.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이 패괴되었고 사상이 부패하게 되었고 정신 면모가 낙후하게 되었다.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었고, 본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한 사람이었고, 본래 인성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사람의 원래 이지, 원래 양심, 원래 인성이 모두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마저도 다 잃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고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기에 그때의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은 사탄의 독해를 받아 사탄이 권세잡고 있는 이 흑암하고 사악한 세상에서 살기에 사회 기풍이 날로 나빠지고 도덕이 부패해지고 세상이 음험하고 잔인하며 인정세태가 야박해지고 사람 간에 진정이 없고 따스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알다시피, 우리가 악한 자에게 침해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지킴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기력하고 냉담해지고 이기적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어떤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인데,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국도(國度)는 나의 말의 완선(完善)함에 따라 땅에서 차츰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나의 마음속의 국도를 세운다. 국도에서 모든 자민은 다 정상 사람의 생활을 회복한다. 더는 쌀쌀한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 날씨 같은 세상이다. 사람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촉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냉랭함을 이겨내지 않는다. 사람 간에 다투지 않고 나라 간에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상태가 없고 더 이상 참살하여 흐르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스함이 넘쳐 흐른다. 나는 온 땅에서 다니고, 나는 보좌 위에서 누리며, 나는 뭇별 가운데서 생활한다. 천사는 나에게 새 노래와 새 춤을 바치고 더 이상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눈물로 볼을 적시지 않는다. 나의 앞에서는 더 이상 천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아무도 나를 향해 고충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오늘은 너희가 모두 나의 앞에서 생활하고 내일은 너희가 모두 나의 나라에서 생존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오늘의 대가로 인하여 장래의 복을 이어받을 것이고 나의 영광 속에서 생활할 것이다. 너희는 설마 여전히 나의 영의 실질을 접촉하기 싫단 말인가? 설마 여전히 자신을 참살하기를 원한단 말인가? 설사 보이는 약속이 잠시라 해도 사람은 모두 그것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설사 내일의 약속이 영원까지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바로 내가 멸하려는 것이고, 사람이 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이루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 꼭 그대로 하시고 그대로 하시면 꼭 이루시며 이루시면 꼭 영원까지입니다! 믿건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답을 찾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