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2018년 12월 19일

딸이 남긴 메모지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그런데 알아? 엄마가 나 매일 공부시켜주고, 아침 점심 저녁 맛있는 밥을 해 주었잖아, 그래서 난 정말 꿈속에서도 좋은 성적 받아서 엄마한테 보답하고 싶었어. 그런데 자꾸 마음이 조급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항상 위가 쓰리고 잠도 못 자고 어떨 때는 악몽도 꿨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그건 선생님이 성적표를 발표하는 날이야. 학교 수업 마쳐도 집에 안 가고 싶었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도 다들 저렇게 자유롭고 즐거운데, 나는 왜 저 작은 새보다도 못 할까? 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엄마, 엄마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그물 같아. 내가 가는 데마다 내 몸에 달라붙어 나의 즐거운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버렸어. 나는 엄마의 그 그물을 영원히 벗어나고 싶어. 다시는 그 숨 막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엄마,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이건 딸이 남긴 메모지 내용입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두렵고 떨립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석자나 되는 얼음은 하루 추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딸의 가출은 절대 일시적인 생각에 즉흥적으로 생긴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슴 쓰린 과거

나에게는 단 하나 뿐인 딸입니다. 그 딸이 언젠가는 대학에 입학하고, 또 어른이 된 후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딸이 공부의 기초를 잘 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치원 선택할 때에도 내가 먼저 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보고, 몇몇 다른 유치원과 비교를 해 본 후,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제일 좋은 유치원을 딸에게 선택해주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이 반에서 늘 10등안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야 훌륭한 학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공부해도 5등 안에 못 들꺼면 공부를 해서 뭐 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딸은 뾰로통해서 말했습니다. “다른 애들과 비교 좀 하지 마. 걔네들은 100점 받지만, 나는 99점도 안 된다고. 엄마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라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옛말에 ‘엄격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라고 하잖아. 내가 지금 너한테 성적 잘 받으라고 하지 않으면, 나중에 네가 어떻게 남들보다 훌륭하게 될 수 있겠어?” 나의 이런 말에, 딸은 더 이상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기분은 언짢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딸이 중학교 1학년이 되자 공부에 대한 경쟁이 더 치열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나중에 명문 대학에 들어갈 기회조차 잃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저녁 일을 포기하고,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딸에게 국어, 수학, 영어 등 각종 문제지를 가르쳤습니다. 한 문제 한 문제씩 끈기 있게 가르치면서, 딸이 TV를 보거나 놀러 나가는 것도 통제하고, 시간을 다그쳐가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딸은 싫어했지만 내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계속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것도 잠시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수시로 기지개를 켜거나, 물을 마시러 가거나, 아무 말도 없이 화장실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면 앉지도 않고 서서 내게 인상을 쓰며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내일 하면 안 돼? 빨리 자고 싶어.” 그러면 나는 황급하게 말했습니다. “잠은 무슨 잠?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 줘야 되고, 내일은 또 내일 풀어야 할 문제가 있잖아. 빨리 문제를 풀어야지, 국어, 수학, 영어, 다 합치면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다 가르칠 수 있겠어?” 딸은 곁에서 나의 근심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감히 잠을 자러 가지 못하고, 그저 억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저녁 우리는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1분 1초를 치열하게 싸웠고, 심지어 새벽 1시까지도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연습한 거야,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 딸도 짜증이 나서 나에게 대들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그만 가르쳐, 난 몰라, 이 문제는 보기만 해도 토할 거 같아. 원래는 풀 줄 아는 문제였는데, 엄마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주니 오히려 더 모르겠어.” 딸의 이 말에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딸에게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10시가 넘으면 자야 되는데, 지금은 매일 새벽이 되어야 잠자리에 드니, 혹시 성장 과정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딸아이의 피곤한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아파서 늘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딸이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언제가 되어야 끝이 보일까?

자녀 교육,

나는 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가로막혀있는 것처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딸은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명랑했던 아이가 점점 시들시들해져서 말도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속담에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의 가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딸의 영어성적이 걱정돼 딸에게 급하게 물었습니다. “영어 시험 잘 봤어?”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서 성적이 별로 안 좋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시험 잘 못 봤으니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네, 연습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봤는데 왜 틀리는 거야? 우리가 평소에 연습했던 것보다 쉬운 문제들인데, 왜 그렇게 대충대충이야? 머리는 쓰라고 달려있는 거 아니야? 엄마는 이 나이에도 기억할 수 있는데, 너처럼 이렇게 어린 녀석이 엄마보다 기억력이 더 좋아야 되는 거 아니니?”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나는 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시험을 망쳤으니 어디 놀러 갈 생각은 하지 마.” 내 말에 딸은 억울해하며 울면서 자기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영어 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 점심 무렵, 나는 집에서 초조하게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 딸을 찾으러 급하게 학교로 달려갔더니, 딸의 짝꿍이 나에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딸의 메모지를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나는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바로 쓰러졌습니다. 귓가에는 딸의 메모지 속 한마디 말이 줄곧 맴돌았습니다.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던 결과가 딸의 원망과 가출로 되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딸이 잘 되라고 그런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내가 정말 잘 못했단 말인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일어난 일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전 정말 이런 충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와 제 딸을 구해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왜 그런 것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느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맞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잖아, 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지.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딸은 안전할 거야. 왜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거지?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의지잖아.’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려고 할 때, 내 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오들오들 떨고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딸을 보자마자 나는 달려가서 꼬옥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돌아왔으니 됐어, 이제 됐어, 엄마가 다시는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을게!” 그 후, 나는 딸에게 말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딸의 장래에 대해 초조해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다

어느 날 집회에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나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나는 우리의 장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게 될지 등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히 배치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늘 자신의 노력을 통해 딸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려고 했으며, 나의 뜻에 따라 딸의 장래를 계획하고 아이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딸에게 이렇게 많은 통제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한 것이고,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후, 모두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거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진정한 고통을 겪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다.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등등, 어려서 부터 사탄의 이러한 사상과 관점의 훈육을 받아와서, 학문을 많이 닦으면 멋진 미래를 창조할 수 있고, 의식주 걱정 없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지만, 지식과 학문이 부족하면,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딸의 성장 과정 중에,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발붙일 수 있도록, 나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딸에게 엄하게 교육을 하면서도, 정작 아이와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는 별로 하지 않았고, 아이의 진실한 생각과 요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말끝마다 공부 공부하면서, 아이의 자유를 박탈하였습니다. 또 아이에게 매일매일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였으며, 고압적인 교육으로 모녀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딸이 ‘메모지’를 남기고 가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일가족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정말 사탄의 농간에 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또다시 사탄의 철학에 따라 딸을 대한다면, 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될지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만약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저 사탄에게 괴롭힘과 우롱을 당하면서, 더더욱 고통스러워지게 될 뿐이라는 걸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사람이 항상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하겠느냐? ⋯ 사람의 종착지는 모두 창조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나에게 분명한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며, 자신의 장래 운명도 바꾸지 못하면서, 딸의 운명을 바꾸려는 헛된 생각을 하였으니,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여 많은 고통을 받았고, 딸에게도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나는 다시는 지난날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못된 관점을 내려놓고, 딸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싶었습니다. 딸의 장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적절한 배치가 있음을 믿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정상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아이를 억지로 나의 요구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처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이 자유로워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후 나는 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주었고, 딸도 나와 같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딸은 학생팀 예배에 참가하여, 어린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나는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딸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보고, 설교를 듣고, 찬양도 부르며, 다시는 아이에게 보충 수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힘닫는대로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엄마가 다시는 너한테 억지로 이렇게 공부하라 저렇게 공부하라 하지 않을게, 네가 알아서 알맞게 계획표를 짜도 돼,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봐. “딸이 당시에는 그래도 약간의 의혹이 남아 있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정말이야?”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딸은 기뻐하며 나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엄마, 내가 엄마를 오해하면 안 되는 거였어.” 딸의 이 말에 감격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에게 더욱 위안이 되었던 건, 딸이 매일매일 종달새처럼 즐거워하며, 예전의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을 회복하였고, 공부 진도도 빨라져서 보충 수업반에 참가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보충 학습으로 골머리 앓을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딸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중학교 졸업반 애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아무 과외도 안 받는 즐거운 공주야!” 어떤 학부모님은 나에게 묻습니다. “따님 성적이 너무 좋네요, 어디에서 과외 받아요?” 나는 자신 있게 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딸은 아무 과외도 안 받아요.” 그들은 이 사실을 정말 믿기 힘들어 합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릇된 관점을 돌려놓았고, 나와 딸 사이의 관계를 되돌려 주셨으며, 우리가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내가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주변에는 완벽주의자가 되기 위해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남들에게 빈틈을 남기기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완벽함"은 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불행으로 다가 올 수 있다. 그럼 사람은 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없고, 또 어떻게 해야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구원

남편의 불륜으로 행복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소송이나 복수하고 자살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시작했을까요?

재난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다

2016년 7월 19일 오전 8시경,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날은 연세가 72세된 한 자매가 우리집에 물건을 전해주러 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 자매는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장대비는 오후 3시가 되어도 그칠 줄 몰랐는데, 순간 저는 불어난 물이 저희 집 화장실을 휩쓸어갈까 걱정이 되어 길에서 물길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쿵쾅”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빠른 속도로 우리 집을 향해 흘러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매우 두려웠고 집에 돌아갈 엄두도 못내고 문 앞의 큰 길을 따라 동쪽을 향해 뛰어가 쏟아져내리는 토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쪽으로 뛰어갈 때 그쪽에도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허둥지둥 마구 휘젓고 다녔습니다. 제가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갑자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 ” 이 말씀을 생각하니 당황스럽고 심란했던 마음은 바로 평온해졌고, 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을 돌이켜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는데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 자매가 있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의 재난은 당신께서 일으키신 것이고 역시 당신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재난을 내리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징벌하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사탄의 성정으로 가득찼습니다. 이전에 본분할 때, 건성으로 하고 하나님을 기만했습니다. 오늘 살든 죽든, 당신의 손에 맡기길 원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공의로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끝난 후, 저의 마음은 많이 차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사태가 나는 소리도 멈추었습니다. 기묘한 것은 우리 집이 뜻밖에도 산사태로 인한 토사로 파괴되거나 매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마을 근처에 살고 계셨는데 어머니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산사태가 이미 끝난 것을 보고 저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산을 쓰고 서둘러 어머니 집에 가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밖에 나와서 보니, 마을 반경 100미터 주변이 산사태로 인해 토사가 유입되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도처에 온통 나무, 벽돌, 진흙, 흙덩어리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힘들게 앞으로 가는데 길가에 있던 가옥 3채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밀려드는 토사에 매몰되어 이미 숨졌고, 또 7~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팔이 절단되었고, 어떤 사람은 다리 뼈가 부러졌습니다. 어머니 집에 도착하자 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68살의 어머니는 유입된 토사에 세번이나 휩쓸려 갔지만, 오히려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밀려드는 토사가운데로 빠졌을 때, 쉼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통나무 하나가 가로막아 휩쓸려 가지 않았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집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집 뒤쪽에 있던 가옥 두채는 이미 산사태로 인한 토사로 부서지고 매몰되었지만, 우리 집 뒤쪽 담장 아래 대략 1미터 높이의 흙이 조금씩 쌓여 토사가 유입되는 것을 막았고, 또한 토사 흐름의 방향을 바꾸어 우리 집의 서쪽 벽을 따라 앞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곳은 피해를 입었지만 오직 우리집만이 원래 그대로 보존된 것입니다. 눈 앞에서 발생한 일은 그야말로 저를 놀라게 했는데 재난은 정말로 눈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 ’ 이번의 재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인식은 다 막연한 것이고 모두가 글귀 도리이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깊이 패괴되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주며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자신의 본분에 충성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어둡고 차디찬 흑야(黑夜)와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 ” 그렇습니다. 재난을 마주해 사람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외에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속주이고 사람 생존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말세인 오늘날, 성육신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으로, 수백만 자에 달하는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말씀을 친히 발표하셔서 줄곧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루빨리 되돌아서고 그분의 앞에 돌아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데, 이래야만 인류가 비로소 좋은 귀숙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재난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북성(河北省)한단시(邯郸市) 유 심 (刘心)

기독교인이 직장에서 효과적으로 직원을 관리하는 방법

직장 생활에서, 좋은 리더가 되어 직원들을 잘 관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 기독교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간단한 방법을 찾다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컴퓨터, 휴대전화는 사람들의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자기기 없인 살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인 나 역시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엄청나게 집착하곤 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공부하며 자료를 찾고, 친구와 연락하고, 계획표를 작성하는 등 컴퓨터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는 정말 편리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전자기기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동시에 조금의 고민도 따랐다. 컴퓨터 앞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눈이 뻑뻑하고 아프며,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업무상의 필요로 컴퓨터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일 컴퓨터와 동고동락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뒤, 주변 동료들도 장시간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으로 눈이 많이 나빠진 걸 보게 되었다. 전자파 차단 안경을 쓴 사람도 있고, 수술 받은 사람도 있으며, 오랫동안 안경을 써서 안구가 튀어나온 사람도 있었다. 빛나고 생기 넘치던 눈이 침침해져 생기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처럼 될까 두려운 마음에 안구 피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선 컴퓨터를 1시간 하면 10분간 먼 곳에 있는 초록색 식물을 바라보며 정기적으로 눈의 피로를 풀어보았다. 이렇게 지속하니 눈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눈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업무 효율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펜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 후, 옆에 앉은 동료가 TV 광고에 나오는 안약을 쓰는 걸 보고 나도 그중에 제일 좋다는 안약을 골라 사용했다. 하지만 약물로 순간의 고통만 덜어줄 뿐, 눈의 피로는 여전했고, 오히려 눈이 점점 아팠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끝내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내게 놀러 왔다. 같이 얘기하는 도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눈이 너무 아프니까 컴퓨터 보기도 싫어. 그런데 또 컴퓨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친구가 말했다. “내가 좋은 방법 알려 줄게. 녹차를 우려서 차갑게 식힌 다음 눈에 넣고 10분 동안 휴식해 봐, 눈이 굉장히 편해질 거야. 녹차는 식물이라서 부작용도 없어. 나도 해봤는데 효과가 좋더라고.” 드디어 좋은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그래서 친구가 말한 대로 해보니 정말 눈이 편안해졌다. 2주 동안 계속했더니 뻑뻑함도 많이 가셨다. 그 후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보니 뻑뻑하고 아팠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고, 마음속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작은 식물이 신통하기도 하지! 전자파 차단 안경에 안약까지 써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녹차에 이렇게 신기한 효능도 있고, 부작용마저 없다니! 몇 년간의 고통을 드디어 해결했구나!’ 나중에 인터넷에서 녹차의 효능을 찾아본 후에야 녹차에 전자파 차단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열, 해서, 청심, 양음, 분비물 촉진, 해갈, 이질 멈춤, 상처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여름철 짜증과 뒤척임 등 에도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여름철 무더위, 더위로 인한 설사, 이질과 부스럼이나 종기, 붓기 등에도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녹차는 여름에 마시기에 제일 좋고, 효능 또한 뛰어나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만물 중 동식물이든 풀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몸에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렸을 때 필요한 식물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으면 되느냐? 아무 천으로나 감싸면 되느냐? 그러면 곪거나 감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칫 잘못하여 불이나 뜨거운 물에 데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어 내면 되느냐? 예를 들어,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거나, 일하다 타박상을 입거나, 무엇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혈관 질환처럼 생활 습관이나 감정에 의해 발생된 병이나, 정서적인 병이나, 오장육부에 생긴 질병 등은 그에 맞는 식물로 치료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에는 어혈을 풀거나, 통증을 없애거나, 지혈이 가능한 것도 있고, 마취를 하거나, 피부의 정상적인 회복을 돕는 것도 있으며, 체내의 어혈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식물 모두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고 쓸모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위해 예비한, 비상시에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 중에는 사람이 무심코 발견하게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기이한 현상이나 사람들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것도 있다. 발견한 후 인류에게 전해 내려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만든 식물 또한 가치와 의미가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의 생존 환경을 창조할 때 사람을 위해 만들고 재배한 것으로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릴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도 따뜻해졌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주듯 우리를 만드시기 전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고,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약초도 마련해 주셨다. 우리가 오랫동안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 전자파로 인해 눈이 뻑뻑하고 아플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녹차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녹차는 천연 안약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해열, 해서, 청심 등 다양한 효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뛰어나다. 찻잎 외에도 우리가 평상시에 접하게 되는 다른 한방 약초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의 곳곳까지 세심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비미은장을 실제적으로 볼 수 있었고, 묵묵히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본초강목’의 저자를 존경하며 그가 모든 약초를 발견해 인류를 위해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준비가 있었음을 이제 깨달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고 공로를 칭찬해 주길 바라지도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직접 누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것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활함에 있어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아들의 웃음을 돌려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날, 류화(劉華)는 학교로부터 학부모회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학교 측은 2학년 학생과 학부모 전체가 면학반 개방 프로그램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학교 행사장은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측 대표는 강단에 올라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면학반 학생들의 우수한 수능 결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면학반’은 중학교 2학년 학생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학교 입시를 면제해 주는 특별 우수반을 뜻합니다. 면학반에는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교사를 배정하고, 학생들에게는 무료 숙식이라는 특별 대우를 제공합니다. 면학반에 합격한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을 2~3개월 안에 모두 끝내야 할 만큼 공부의 강도도 셌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숙제를 마무리하는 걸 보면 면학반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에 힘쓰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집에 돌아오면 류화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학반 학생들은 다 ‘악바리’에다 ‘잠도 안 자는 무적인간’인가 봐요. 교실 등이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니까요.”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류화는 놀람을 금치 못했고, 아이들의 몸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유년시절의 활기를 잃어 갔고, 모두 애늙은이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자녀를 면학반에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간간이 울려 퍼지는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를 따라 류화는 회상에 잠겼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영특함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류화는 ‘어리석은 새가 먼저 숲으로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들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아들에게 학습 계획표를 짜주고 단원별, 주별, 월별로 시험지를 풀게 했으며, 복습 교재도 많이 사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아들이 숙제를 마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연습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들의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우개로 다 지워 버린 후 다시 쓰게 했습니다. 답이 틀렸을 때는 그 벌로 틀린 문제를 여러 번 베껴 쓰게 했습니다. 아들은 매번 원망스러운 눈으로 류화를 쳐다봤지만 류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주말도 없었고 TV도 볼 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끝없는 숙제와 문제들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할 때면 류화는 아들을 달랬습니다. “이 시험지만 다 풀면 놀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하지만 시험지를 다 푼 후에는 다른 시험지를 풀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더는 류화의 말을 믿지 않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난 거짓말쟁이 엄마가 미워!” 류화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어려서 철이 없고 커서 성공하면 자신의 노력을 이해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류화의 ‘도움’으로 아들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류화에게 있어 아들의 100점짜리 시험지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습니다. 학부모회를 갈 때면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고 더욱 뿌듯해했으며,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자신과는 관계가 점점 멀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매일 방과 후 집에 오면 어두운 표정뿐이었습니다. 류화가 다가가면 아들은 몸을 움츠려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문제를 풀게 할 때는 눈을 치켜뜨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멀어진 류화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고통에서 헤매었고, 과연 누가 자신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류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과 미약함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지식을 미끼로 삼는다. 잘 듣거라.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미끼일 뿐이다. 사람에게 ‘공부를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라며 지식을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게 한 다음, 그 지식으로 과학의 대문을 열게 한다. 바로 네가 배운 지식이 많으면 아는 것이 더욱 많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것이다. 사탄은 또 사람에게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원대한 꿈(원문: 理想)을 품게 하여 ‘포부’가 있고 ‘꿈’이 있게 한다. 사람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적지 않게 주입시켜 사람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것이 옳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이런 길을 가게 되었고, 부지중에 자신의 ‘꿈’과 ‘포부’에 끌려 앞으로 나아간다. …사실상,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에서 떠나지 못한다. 이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에게 가서 이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대학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살길을 찾아야 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출세시키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공부에 엄격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아들은 숨을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은 조금씩 반항심이 생겼고 결국 모자 관계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그제야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의 소용돌이에 빠져 아들을 이익의 희생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아들을 대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니 류화의 마음은 자괴감과 자책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류화는 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들의 삶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여유 시간에는 밖에 나가 놀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는 공부 스트레스가 줄었고 느긋한 여유도 생겼습니다. 더는 울면서 화난 얼굴로 류화에게 불만을 토하지도 않았습니다.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매일 즐거워했고, 귀엽고 작은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생겼습니다. 주말이 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 낭송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듣고 영화와 MV도 보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젖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사랑의 돌봄 속에서 자유롭고 기쁘게 자랐습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류화는 오랜만에 이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후 모범생들의 경쟁 속에서 아들의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매달 월말고사 후에 열리는 학부모회에서 류화는 더 이상 뿌듯해하며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들에 대한 선생님의 충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번 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다른 학부모들의 눈빛이 류화에게 화살같이 쏟아졌습니다. 류화는 마치 이들의 눈빛에 온몸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조금씩 학부모회가 싫어졌습니다. 류화는 언젠가 아들의 성적이 다시 좋아지기를 무척 바랐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랑스러워하며 선생님의 칭찬과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회가 끝난 후 류화는 아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말에는 숙제를 마친 뒤 아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해도 허락해 주지 않고 문제집을 펼친 후 문제를 풀어야 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방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알고 심란해졌습니다. 이 같은 심란함 속에서 류화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익에 얽매이지 않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 말씀을 찾아 펼쳤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대함에 있어 그들이 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학문을 더 닦고 학위를 취득하고 학력을 갖게 한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자녀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은 다 하찮고 독서만이 고상하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사회에서는 경쟁도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학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후에 생존해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이다. 즉, 네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력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후의 직업과 전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일생 동안 이것에 의지해 살려고 잘 계획해 놓고,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큰일로 여긴다.』 류화는 자신이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상에 깊이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커서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공부만이 살 길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매일 열심히 배우자’ 등과 같은 사상을 아들에게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밝고 찬란해야 할 유년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강한 자책감을 느끼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탄의 독소는 이미 류화의 목숨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운명을 제어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의 성공만 바랐습니다. 또한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깊은 해를 받아 항상 아들이 뛰어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조금도 돌보지 않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결국 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류화는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런 정형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전의 생존 방식에서 떠나고, 이전의 인생 목표에서 떠나며, 자신의 이전 생존 방식, 이전의 인생관, 이전의 추구와 소망과 꿈에 대해 총결하고 해부한 다음 다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보면서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등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에게 정확한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으로 더욱더 진리를 깨달으면서 살고 인성 있게, 사람 모양이 있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이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류화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들의 성공, 직업, 인생은 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주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만 편안하게 미래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의 진정한 미래인데, 류화는 아들에게 억지로 이익의 길을 추구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건 아들을 불구덩이로 떠미는 것과 같았습니다. 반평생 이익만을 좇았지만 영혼의 평안함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과 아들에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더는 공부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아들의 운명이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맞은 안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착실히 믿고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기를 바랐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운명을 따르기만 바랐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과 함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미 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찬란한 미소가 아들의 얼굴에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삶도 유난히 아름답게 바뀌었고, 류화에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게 되자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번 학기에 아드님의 성적이 크게 올랐습니다. 볼수록 너무 기특하네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류화는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와 찬미를 올렸습니다. 학부모회에 참석한 부모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류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이에 면학반 개방일 프로그램은 어느덧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의 안내에 따라 학부모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학생들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면학반 학생들은 낭독 공연을 펼쳤고, 무대 아래에서 학부모들은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류화는 마음이 살짝 쓰라렸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비참해 보였습니다. 또한 자신과 아들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직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밖에 없는 내가 해외로 일하러 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고 더 열심히 일해서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기쁨에 빠져있을 때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다음날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 난 카운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동료를 통해 매달의 금전출납부를 계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날 더러 계산을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이해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마음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나는 학력이 낮고, 언어도 안 통해, 나이는 또 많고, 해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훨씬 힘들 거야!' 순간,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자신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다고 느꼈다. 고심 끝에 매니저를 찾아가 나는 학력이 낮고, 영어를 못해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매니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사장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기왕 당신이 하기로 안배된 것이니 다른 건 아무 것도 말씀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보아하니 짤리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이때, 나의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나는 일할 기운도 없어서 퇴근 때까지 겨우 버텼다. 저녁 예배 때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고, 한 자매님이 찬송가 한곡을 틀어주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 찬송을 듣고 내 마음은 훨씬 밝아졌다. 나는 모든 일이 생길 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 내가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고 이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여 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더러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학력이 낮아서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어려움에 살면서 자신의 본성과 실질이 너무 나약한 것을 보았다. 일이 생기면 자신을 규정하고 어려움에 맞서서 나아가지 않고 항상 도망치고 회피하려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도 입으로만 인정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믿음이 작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 환경을 빌어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이때, 나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해 이 일을 받아들일 자신도 생겼다. 월말 때, 매니저는 나에게 다음 달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는 학력도 낮은데, 계산을 컴퓨터로 하더라도 배워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실제 체험을 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을 보고 곧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며 나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진심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너를 위해 모든 나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전력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못할 일을 너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네가 입만 살아 생각 없이 말은 했지만 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은 전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며, 총명과 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비록 학력이 낮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자신만만해서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생겼다. 마침내 내가 카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출근 후 나는 자발적으로 프런트에 갔고 매니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동료를 붙여서 가르쳐 드리라고 할게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라는 것을 안다. 잠시 후, 한 동료가 계산서를 들고 왔는데, 동료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나에게 어떻게 계산을 하고, 어떻게 계산서를 분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뭉치 한 뭉치의 영어 계산서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제가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계산서를 분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산서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순간 전에 내가 전혀 계산할 줄 몰랐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린 후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계산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나는 모든 계산서를 꺼내서 확인하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어를 볼 줄 몰라도 계산서를 맞출 수 있어. 업체마다 계산서는 거의 다 달라. 예를 들면 원고지의 크기, 원고지의 색상, 원고지 위의 글자체의 방위 등등.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업체마다 표제도 다 달라. 그러니까 표제 위의 자음 몇 개만 맞추면 돼. 이러한 생각에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얼른 오래된 계산서와 새로운 계산서를 모두 꺼내놓고 대조해 봤는데,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방법으로 금세 계산서를 분류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런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에서 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아주 순조롭게 당일 업무를 다 마쳤다. 그 후, 매니저는 동료 직원들 앞에서 내가 카운트 업무를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전혀 학력이 낮은 사람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실제 겪었던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딸의 불임에 사방을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 하였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시 딸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받지 않을지, 친척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고통스럽기만 한 그는 몇 번의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하자 뜻밖의 은혜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