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2018년 12월 19일

딸이 남긴 메모지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그런데 알아? 엄마가 나 매일 공부시켜주고, 아침 점심 저녁 맛있는 밥을 해 주었잖아, 그래서 난 정말 꿈속에서도 좋은 성적 받아서 엄마한테 보답하고 싶었어. 그런데 자꾸 마음이 조급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항상 위가 쓰리고 잠도 못 자고 어떨 때는 악몽도 꿨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그건 선생님이 성적표를 발표하는 날이야. 학교 수업 마쳐도 집에 안 가고 싶었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도 다들 저렇게 자유롭고 즐거운데, 나는 왜 저 작은 새보다도 못 할까? 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엄마, 엄마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그물 같아. 내가 가는 데마다 내 몸에 달라붙어 나의 즐거운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버렸어. 나는 엄마의 그 그물을 영원히 벗어나고 싶어. 다시는 그 숨 막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엄마,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이건 딸이 남긴 메모지 내용입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두렵고 떨립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석자나 되는 얼음은 하루 추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딸의 가출은 절대 일시적인 생각에 즉흥적으로 생긴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슴 쓰린 과거

나에게는 단 하나 뿐인 딸입니다. 그 딸이 언젠가는 대학에 입학하고, 또 어른이 된 후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딸이 공부의 기초를 잘 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치원 선택할 때에도 내가 먼저 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보고, 몇몇 다른 유치원과 비교를 해 본 후,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제일 좋은 유치원을 딸에게 선택해주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이 반에서 늘 10등안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야 훌륭한 학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공부해도 5등 안에 못 들꺼면 공부를 해서 뭐 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딸은 뾰로통해서 말했습니다. “다른 애들과 비교 좀 하지 마. 걔네들은 100점 받지만, 나는 99점도 안 된다고. 엄마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라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옛말에 ‘엄격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라고 하잖아. 내가 지금 너한테 성적 잘 받으라고 하지 않으면, 나중에 네가 어떻게 남들보다 훌륭하게 될 수 있겠어?” 나의 이런 말에, 딸은 더 이상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기분은 언짢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딸이 중학교 1학년이 되자 공부에 대한 경쟁이 더 치열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나중에 명문 대학에 들어갈 기회조차 잃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저녁 일을 포기하고,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딸에게 국어, 수학, 영어 등 각종 문제지를 가르쳤습니다. 한 문제 한 문제씩 끈기 있게 가르치면서, 딸이 TV를 보거나 놀러 나가는 것도 통제하고, 시간을 다그쳐가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딸은 싫어했지만 내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계속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것도 잠시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수시로 기지개를 켜거나, 물을 마시러 가거나, 아무 말도 없이 화장실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면 앉지도 않고 서서 내게 인상을 쓰며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내일 하면 안 돼? 빨리 자고 싶어.” 그러면 나는 황급하게 말했습니다. “잠은 무슨 잠?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 줘야 되고, 내일은 또 내일 풀어야 할 문제가 있잖아. 빨리 문제를 풀어야지, 국어, 수학, 영어, 다 합치면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다 가르칠 수 있겠어?” 딸은 곁에서 나의 근심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감히 잠을 자러 가지 못하고, 그저 억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저녁 우리는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1분 1초를 치열하게 싸웠고, 심지어 새벽 1시까지도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연습한 거야,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 딸도 짜증이 나서 나에게 대들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그만 가르쳐, 난 몰라, 이 문제는 보기만 해도 토할 거 같아. 원래는 풀 줄 아는 문제였는데, 엄마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주니 오히려 더 모르겠어.” 딸의 이 말에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딸에게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10시가 넘으면 자야 되는데, 지금은 매일 새벽이 되어야 잠자리에 드니, 혹시 성장 과정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딸아이의 피곤한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아파서 늘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딸이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언제가 되어야 끝이 보일까?

자녀 교육,

나는 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가로막혀있는 것처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딸은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명랑했던 아이가 점점 시들시들해져서 말도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속담에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의 가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딸의 영어성적이 걱정돼 딸에게 급하게 물었습니다. “영어 시험 잘 봤어?”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서 성적이 별로 안 좋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시험 잘 못 봤으니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네, 연습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봤는데 왜 틀리는 거야? 우리가 평소에 연습했던 것보다 쉬운 문제들인데, 왜 그렇게 대충대충이야? 머리는 쓰라고 달려있는 거 아니야? 엄마는 이 나이에도 기억할 수 있는데, 너처럼 이렇게 어린 녀석이 엄마보다 기억력이 더 좋아야 되는 거 아니니?”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나는 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시험을 망쳤으니 어디 놀러 갈 생각은 하지 마.” 내 말에 딸은 억울해하며 울면서 자기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영어 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 점심 무렵, 나는 집에서 초조하게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 딸을 찾으러 급하게 학교로 달려갔더니, 딸의 짝꿍이 나에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딸의 메모지를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나는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바로 쓰러졌습니다. 귓가에는 딸의 메모지 속 한마디 말이 줄곧 맴돌았습니다.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던 결과가 딸의 원망과 가출로 되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딸이 잘 되라고 그런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내가 정말 잘 못했단 말인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일어난 일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전 정말 이런 충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와 제 딸을 구해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왜 그런 것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느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맞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잖아, 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지.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딸은 안전할 거야. 왜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거지?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의지잖아.’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려고 할 때, 내 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오들오들 떨고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딸을 보자마자 나는 달려가서 꼬옥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돌아왔으니 됐어, 이제 됐어, 엄마가 다시는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을게!” 그 후, 나는 딸에게 말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딸의 장래에 대해 초조해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다

어느 날 집회에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나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나는 우리의 장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게 될지 등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히 배치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늘 자신의 노력을 통해 딸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려고 했으며, 나의 뜻에 따라 딸의 장래를 계획하고 아이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딸에게 이렇게 많은 통제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한 것이고,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후, 모두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거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진정한 고통을 겪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다.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등등, 어려서 부터 사탄의 이러한 사상과 관점의 훈육을 받아와서, 학문을 많이 닦으면 멋진 미래를 창조할 수 있고, 의식주 걱정 없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지만, 지식과 학문이 부족하면,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딸의 성장 과정 중에,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발붙일 수 있도록, 나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딸에게 엄하게 교육을 하면서도, 정작 아이와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는 별로 하지 않았고, 아이의 진실한 생각과 요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말끝마다 공부 공부하면서, 아이의 자유를 박탈하였습니다. 또 아이에게 매일매일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였으며, 고압적인 교육으로 모녀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딸이 ‘메모지’를 남기고 가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일가족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정말 사탄의 농간에 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또다시 사탄의 철학에 따라 딸을 대한다면, 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될지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만약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저 사탄에게 괴롭힘과 우롱을 당하면서, 더더욱 고통스러워지게 될 뿐이라는 걸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사람이 항상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하겠느냐? ⋯ 사람의 종착지는 모두 창조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나에게 분명한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며, 자신의 장래 운명도 바꾸지 못하면서, 딸의 운명을 바꾸려는 헛된 생각을 하였으니,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여 많은 고통을 받았고, 딸에게도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나는 다시는 지난날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못된 관점을 내려놓고, 딸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싶었습니다. 딸의 장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적절한 배치가 있음을 믿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정상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아이를 억지로 나의 요구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처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이 자유로워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후 나는 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주었고, 딸도 나와 같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딸은 학생팀 예배에 참가하여, 어린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나는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딸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보고, 설교를 듣고, 찬양도 부르며, 다시는 아이에게 보충 수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힘닫는대로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엄마가 다시는 너한테 억지로 이렇게 공부하라 저렇게 공부하라 하지 않을게, 네가 알아서 알맞게 계획표를 짜도 돼,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봐. “딸이 당시에는 그래도 약간의 의혹이 남아 있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정말이야?”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딸은 기뻐하며 나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엄마, 내가 엄마를 오해하면 안 되는 거였어.” 딸의 이 말에 감격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에게 더욱 위안이 되었던 건, 딸이 매일매일 종달새처럼 즐거워하며, 예전의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을 회복하였고, 공부 진도도 빨라져서 보충 수업반에 참가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보충 학습으로 골머리 앓을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딸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중학교 졸업반 애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아무 과외도 안 받는 즐거운 공주야!” 어떤 학부모님은 나에게 묻습니다. “따님 성적이 너무 좋네요, 어디에서 과외 받아요?” 나는 자신 있게 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딸은 아무 과외도 안 받아요.” 그들은 이 사실을 정말 믿기 힘들어 합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릇된 관점을 돌려놓았고, 나와 딸 사이의 관계를 되돌려 주셨으며, 우리가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시험 보기 전에 어떻게 긴장을 풀어야 할까?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바로 2012년에 치렀던 고등학교 입시 시험이었습니다. 온 가족의 기대 속에서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예상밖으로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저는 크게 낙심했고 그 후 오랫동안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진 이후 낙심한 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온종일 고통 속에 사는 제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겠느냐? 너희가 이 몇십 년 살아오면서 소원대로 이루어진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 발생한 일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일이 얼마나 되느냐?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자신도 모르게 시기를 기다리고 천의(天意)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느냐? 또한 사람을 막막하게 하고 속수무책이 되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되느냐? 그 어떤 사람이든 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기대로 가득한데, 자신의 일생에서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고, 먹고 입을 것이 근심 없고, 벼락출세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자신이 일생 동안 가난하고 비천하고 불우하고 재앙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예상하고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의 결정에 달렸고 제가 살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 모두 예측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시에 떨어진 이 일이 나쁜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는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자 간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시며 도와주고 계신다는 걸 느꼈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간호대학을 마쳤고 저는 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격증은 간호학을 전공한 제게 있어서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간호사 업계에 종사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5년의 학업 역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제 학비를 대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께 너무 죄송할 것 같았습니다. 제 미래와 자존심, 그리고 부모님의 애쓰신 마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큰 심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긴장감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매일 시험 결과를 끊임없이 상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시험에 합격되어 하얀 간호사복을 입으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상상을 하다가도 ‘만약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가족과 친구들이 날 어떻게 볼까?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전날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어서 교제하려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러는 건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결정과 배정을 따르는 것밖에 없단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주시며 제게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사람이 어디에 갈 수 있고 어디에 갈 수 없는지, 매일 어디에서 생활하고 어느 해에 어디에서 생활할지, 어느 해에 또 어디 가서 무엇을 할지, 언제가 전환점이 될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맞아, 내 운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놓으셨어. 만약 간호사가 되지 않을 운명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도 소용 없는 거야. 난 피조물에 불과하니까 조물주의 결정과 배정에 따라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교제을 해주셔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운명이 좋을지 나쁠 지는 이번 시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은 창조주의 배정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간호사 시험이 곧 다가옵니다. 시험에 합격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인도해 주세요.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저의 입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의 어려운 점과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어떤 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거나 어떻게 인도해 달라고 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이 닥칠 때 진심으로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진실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어떤 때는 사람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곧 응답을 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루지 못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가장 큰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든든한 저의 뒷심이 되어 주시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요? 평소에 저는 항상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쳐서야 긴장되어 기도하는 저의 모습에서 너무나 양심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도를 했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간호사 시험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며 절대 잊지 말라고 제게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하지만 긴장된 마음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이 생길지 전 알 수 없습니다. 시험 문제가 어려울지, 제가 공부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네. 오늘따라 길에 신호등이 다 녹색불이구나” 저는 오는 내내 보게 된 녹색불이 하나님의 인도이자 배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보러 가는 이 길이 제가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였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땐 저는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시험에 합결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운명을 정해놓았으므로 제가 해야 할 것은 그저 하나님의배치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마음이 안정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는 방법뿐입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리는 순간에도 전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기도를 할수록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는 하나님께 제가 당황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내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친구들은 모두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에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었습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가끔은 불안을 느끼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전 하나님께 기도했고 시험의 합격 여부는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안배임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면 마음이 더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금세 2개월이 지났고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점수를 조회하기 전에 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랐고, 순종을 배우기를 바랐습니다. 성적을 조회하고 용기를 내어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과목의 점수는 각각 351점과 331점이었고 커트라인보다 51점과 31점이 높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합격했습니다! 제가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시험 보기 전의 긴장을 해소하려면 우선 목표를 너무 높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 눈앞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이 제 곁에서 모든 걸 인도해 주셔서 제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주시며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긴장 없이 순조롭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크리스천이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연지는 한 영화사에서 일한다. 지난달 월말에 한 고객이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업로드 시키려는데, 연지와 다른 동료들은 부활절 전에 글한 편을 위한 6개의 알림 글로 동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상의를 거쳐 연지가 첫 번째 임무를 맡아 3일 내에 완성하기로 했다. 연지에게 이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예전에 이런 동영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연지도 조금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그는 하나님이 바로 그가 의지해야 할 분이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지는 만들어야 할 동영상에 참고할 그림을 고른 후, 평소에 쓰던 소재 라이브러리에서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해 동료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동료는 급한 일이 있어 동영상을 도와줄 시간이 없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속으로 난처하고 실망했다. 연지는 평소에 인터넷으로 소재를 찾은 적이 거의 없어서 자기가 잘못 처리해 동영상의 저작권에 걸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연지는 낙심하여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바로 이때 그는 하나님을 떠올렸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그가 하나님께 기도 한 후 동료가 약간의 소재를 추천해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적합한 것을 찾아내 순조롭게 이번 임무를 완성했다. 연지는 후에 다른 몇몇 동료들이 계속 본인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며, 자기가 이번에 한 작품이 다른 동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들 그의 작품을 참고하겠는가! 생각할수록 만족스러워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렸다. 연지는 다음 임무에 착수했다. 홈페이지에 두 곡의 노래 동영상을 만드는데 협조하는 것이다. 동영상은 다 만들었는데 썸네일만 나오지 않았다. 연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썸네일이 만들기는 어렵지만 나에게는 기술적 내공이 있고, 지금 많은 그림도 모았으니까, 참고 자료를 좀 더 보면 천천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1주일이 흘렀지만 연지는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녹슨 것처럼 참고 그림을 아무리 많이 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아직도 만들지 못했지? 예전에 그림을 만들 때는 아이디어가 넘치지 않았나?’ 곁의 동료들은 하나둘씩 임무를 완성해가는데 본인만 전혀 진전이 없자 연지는 점점 조급해져서 속으로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겠어. 난 미술 디자인도 전공했는데, 썸네일 하나도 만들지 못하다니!’라고 생각했다. 연지는 짜증이 났다. 마침내, 연지는 가까스로 썸네일을 하나 만들었지만 동료들에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연지는 서화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연지가 샤오샤에게 “나 좀 도와줘. 정말 방법이 없어.”라고 말하자 샤오샤가 시원스럽게 수락했다. 이틀도 안 돼 샤오샤는 완성품을 내놓았고, 동료들의 만장일치까지 얻어 통과되었다. 결국에는 샤오샤가 만든 그림을 쓰기로 해 연지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낙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열흘이 걸려도 못 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틀 만에 다 만들어 내다니, 내가 왜 이렇게 형편없이 변했을까? 차이가 나도 너무 나네!' 연지는 계속해서 두 번째 썸네일을 만들어야 했지만 여전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지가 궁지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지금 그림을 만들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환경이 임했을 때 제가 어떻게 체험해야 하고,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까요?” 기도 후, 교회의 복음 사이트를 열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설교자로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실로 인해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살게 되었다. 마침 주인공이 보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하늘보다 더 높게 보지 말라. 마땅히 자신을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이성 있는 어떤 사람보다 더 낮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진입해야 할 길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게 보아야지 그렇게 대단한 척할 필요가 있겠느냐? 자신을 그렇게 높게 볼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너희는 영원히 갓난아기이고,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요소가 얼마 없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손에서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자만자족의 심리를 갖게 된다면 하나님께 혐오 받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연지의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그는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겪은 상황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했다. 주인공이 처음에 교회를 돌볼 때는 어려움에 부닥치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여 교회의 사역이 좋은 결실을 맺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득의양양하고 교만해서 사역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며 갈 길을 잃었다. 연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지난번 새로운 임무를 받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도하셔서 임무를 완성하도록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객이 찬성하고 동료가 참고하는 것을 보고는 본인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져서 홀로 기쁨을 만끽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오히려 자신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 임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임무를 받았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지 않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해 만들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구하지 않고 결국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를 반성한 연지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중에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나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성심성의를 다해야지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시시로 나와 교통하고 나를 더 가까이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급히 이루려고 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앞에서 나를 의지하는지, 나에게 의지할 믿음이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너는 늘 나를 가까이하고 모든 일을 나의 손에 맡겨야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한동안 가까이하다 보면 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더듬어 낸다면 참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고, 또한 참으로 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 네 속이 무척 환하고 편안해질 것인데, 의지할 데가 있고, 능력과 믿음도 있고, 앞길도 생기게 되며, 어떤 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연지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환경이 임하든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치든 항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비록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꾸준히 하나님을 앙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근심을 없애고, 어려움을 해결할 길을 열어주신다. 연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가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caption id="attachment_18303"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그날 오후, 그가 일을 시작했을 때 우선 하나님 앞에 나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반성을 통해 제가 이렇게 며칠 동안 그림을 만들지 못한 근원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회개하고, 당신에게 의지하여 썸네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그는 소재를 찾아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또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의 기술적 한계로, 몇 번을 시도해도 참고 그림을 좋은 효과에 도달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소재 라이브러리에 이런 종류의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했다. 연지는 이 작업을 완성하기가 참 힘들다고 느꼈지만 이번에는 낙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고민 끝에, 기왕 이런 소재를 못 찾는다면 다른 소재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하면 된다. 천천히 그가 하나님께 의지해 구상했을 때 아이디어가 나왔다. 순간 그는 아주 기뻤다. 이튿날 연지는 샘플 하나를 만들어냈고 회사의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어떤 동료는 그가 고른 글자체가 너무 크고 화면의 원소에 작은 것들을 너무 많이 놓았다고 지적했다. 연지가 동료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 발견 되었고, 다시 수정하여 셋째 날 작품은 통과되었다. 이 과정을 보고 연지는 하나님이 정말 그의 곁에 계심을 깊이 깨달았다.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가 앞으로 나가도록 인도하신다.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사람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사람은 다 바보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면 사람은 매우 총명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이런 일을 체험하고 연지는 진심으로 깨달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어떤 분야의 은사와 특기, 자질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깨우침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미련하고 실행할 방향과 길도 없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에게는 무궁무진한 총명과 지혜가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의지하기만 하면 더 이상 어려움에 부닥쳐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주변에는 완벽주의자가 되기 위해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남들에게 빈틈을 남기기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완벽함"은 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불행으로 다가 올 수 있다. 그럼 사람은 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없고, 또 어떻게 해야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전국을 경악케 한 톈진 계현의 화재

河北省 陳塵 라이더(萊德) 상가 빌딩은 계현 읍내에서 제일 큰 상가입니다. 2012년 6월 30일, 이날은 토요일이라 상가에서 마침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고객들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상가 빌딩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났는데, 사장은 고객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상품을 도둑질해갈까봐 1층에 있는 셔터를 내리고 고객들을 2층과 3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길이 점점 거세져서 마지막에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가의 전기 통로가 다 중단되어 1층부터 4층까지의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층의 셔터 또한 잠겨 열 수가 없어 상가 전체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으며 창문마다 불길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짙은 연기는 읍내를 덮어버렸으며 몇백 m 밖에서도 연기에 숨막힐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3층 위에 갇힌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소방서가 상가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구조 요청을 한 지 약 25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구조할 시간을 지체한 뒤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사다리를 3층까지 올려 놓고 금방 7, 8명까지 구조했을 때 그만 사다리가 불에 달아 매우 뜨거워서 갇힌 자들은 사다리를 빌어 구조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다리로 내려오려던 사람은 떨어져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며 구조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큰불은 오후 3시 30분부터 저녁 9시 넘어까지 줄곧 타올랐는데 약 3백 명 이상이 안에서 타죽었습니다(구체적인 숫자는 아직도 조사 중, 정부에서 발표한 것은 다만 10명). 어떤 사람은 오후 3시 넘어서까지도 가족과 통화를 했었지만, 5시가 되어 가족들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집은 일곱 식구가 모두 라이더 상가에 쇼핑하러 왔다가 그만 온 가족이 화재에 죽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많은 참상들이 있습니다. 화재가 일어나던 그 순간부터 어떤 사람은 이 비극을 신속히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리하여 즉시 ‘라이더 상가 화재’는 인터넷을 타고 온 계현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계현 민중들은 놀랍고 두려워서 하루 보내기도 힘들어하며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또 자기의 친인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비록 화재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상처를 가져다주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는 화재 발생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高)자매와 그의 모친은 2012년 6월달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새신자입니다. 이번 화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더욱 하나님의 새 사역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자매님은 올해 73세인데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걸어야 하였는데 평소에는 잘 넘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6월 29일 그날따라 이 자매님이 갑자기 평지에서 넘어졌습니다. 비록 뼈는 골절되지 않고 그저 심하게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고자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토요일(화재가 발생한 바로 그날), 또 다른 어린 자매가 고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라이더 상가에서 판매하는 바지 하나를 봐두었기에 고자매더러 함께 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고자매는 “우리 엄마가 지금 거동을 못하셔서 돌봐드려야 하니 혼자 가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친구가 고자매에게 뭔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지금까지 거절한 적이 없었으나 유독 이날만은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부득이 친한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라이더 상가에서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고자매는 깨달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부지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입었고, 하나님이 모친의 병을 통하여 자기의 발걸음을 저지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당시 친구를 따라 상가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큰불에 타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특유의 방식으로 사람을 보호하여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너무나 기묘하십니다! 더욱 생각지도 못한 것은 화재가 발생한 그날 저녁에 고자매의 모친이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교통을 통하여 연로하신 자매님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깨닫고서 “제가 육체적인 고통은 좀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병을 통해 우리 딸을 구원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자매님이 또 얘기하기를, 그날 고자매와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자고 했던 친구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고자매만큼은 추구하지 않았다고 함)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고자매가 못 간다고 하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되어 그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더니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따라 그 자매는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고 남편에게 “좀 더 있다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3시가 되어 그의 남편이 또 재촉하자 이번에도 그 자매는 좀 더 있다 가자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시 재촉하자 그제야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라이더 상가로 떠났습니다. 반쯤 가고 나니 라이더 상가 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제야 상가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매는 저도 모르게 감격하여 “하나님, 저를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또 자기가 좀 전에 재삼 시간을 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부터 온 것이지 결코 자기의 본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널리 미치며 그분의 지혜도 사람이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시며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재난이 닥칠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화재가 난 그날, 많은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자매는 마침 라이더 상가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다른 일을 보려고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상가에 불이 났던 것입니다. 어떤 자매는 라이더 상가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갔는데, 그리하여 한차례의 화를 면했던 것입니다…… 보다시피, 재난 속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며 견고한 망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기탁(寄託)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즉시 정체될 것이며,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은 나에 의해 일어나는데,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들이 만일 내 앞에서 선하게 보일 수 없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차례의 화재로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닫게 됩니다. 설령 사람이 허리춤에 많은 돈을 꿰차고 있고 지위가 대단하고 사치한 현대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의 과대 평가와 흠모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재난 앞에서는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불 속에서 불사름을 견디기 어려워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그 사람들, 창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절망 속에서 생명을 잃은 그 사람들, 그들 중 어떤 이는 돈과 지위도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용모와 화려한 장식이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가족의 동반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길이 흩날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는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도 큰불의 삼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의 말 이외에서 생활하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늦가을의 낙엽마냥 도처에 떨어져 발 붙일 곳이 없고 더욱이 나의 위로의 말도 없다. 비록 그들에게 나의 형벌과 연단이 따르지 않지만, 이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밖의 도처에서 방황하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그 거지들이 아닌가? 세상이 정말 너의 안식처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화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일깨움이며 동시에 또 우리에 대한 사랑의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하나님의 고충을 이해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들여 하나님이 인솔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감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재난이 빈발하는 이 위기에 더 많은 영혼들을 빨리 구출하여 하나님의 그 슬프고 초조한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친구들아 , 이제 여기서 그만!

언제부턴가 학교는 평화롭지 않고 사회처럼 암투로 가득해졌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반마다 ‘일진’이 있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나도 자주 괴롭힘 당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다. 그 녀석은 매일 날 괴롭히며 내게 이것저것을 사 오라고 시켰다. 내가 사 오지 않으면 친구들을 불러 나를 때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그를 대할 때 항상 조심하게 되었고, 맞을까 두려웠다. 나는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어떠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분별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탄의 시험에 빠졌다. …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진’들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 옆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이쑤시개를 씹으며 말했다. “샤오챵, 우리랑 다니는 게 어때? 쟤네가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잖아. 우리랑 같이 다니면 널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난 속으로 ‘지들도 똑같은 애들이면서, 싸움으로 이름이나 날리고 말이야. 너네랑 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냐? 내가 너네랑 같이 다닐 거 같아?’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거절하며 말했다. “꼭 같이 다니지 않아도 우린 같은 반 친구잖아. 나 지금 공부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때?” 그러자 그 녀석이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잘 생각해봐.”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그 후 녀석들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그중 한 녀석이 말했다. “얌전한 네가 매일 다른 녀석들한테 괴롭힘당하니까 하는 얘기야. 너도 알잖아.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부모님이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랑 많이 왕래해야 해(선물을 건네는 것을 뜻한다). 담임 선생님이 돌봐주면 널 괴롭히려는 사람도 없을걸?”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도 말했다. “네가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학교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수밖에 없어. 그래야 널 감히 괴롭히려는 녀석이 없지.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숙제도 니가 맨날 대신해줘야 해.” 방과 후 침대에 누우니 녀석들이 했던 말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걔들 말도 맞는 말이긴 해. 다른 애들이 항상 날 괴롭히긴 하잖아. 그 덩치 큰 녀석이 맨날 괴롭히고 때리고 말이야. 집안 형편도 별로라 아버지가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진 않을 텐데. 휴! 걔네가 날 찾아온 게 벌써 몇 번인데, 내가 계속 거절하면 걔네들이 나 괴롭히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 녀석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녀석들과 같이 다닐 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은 몰려다니며 같이 먹고, 마시고, 놀았다.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쓰기가 아까워 혼자 쓰지 않고 녀석들과 다닐 때만 썼다. 녀석들은 내가 돈을 다 쓴 후에야 돈을 꺼냈다. 나는 녀석들이 단순히 나를 밥값 내는 애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싸울 때도 나를 불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 중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님이 한 판 붙으러 오라는데 너 여기서 뭐 하냐? 얼른! 빨리 가자!”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싸움이라니? 여태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왜 싸워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어떡해?’ 두려운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왜 싸워야 하는 거야?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자 녀석이 답했다. “나도 몰라. 형님이 싸우라고 하니까 싸우는 거지. 심하게 다치기야 하겠어?” 녀석은 말하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다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간 거야? 싸우자고 한 사람들이 어디 간 거야? 어디 숨은 거야, 대체?” 속으로 ‘없다니 다행이다. 싸우지 않아도 되겠네. 괜히 싸웠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때 잔뜩 화가 난 대장이 말했다. “가자. 일단 밥 먹자. 밥부터 먹고 다시 해결하자!” 밥을 먹고 난 후 우린 다시 옥상으로 왔다. 대장의 고함만 들려왔다. “때려! 때리라고! 어디 한번 제대로 때려봐! …” 이 말을 들은 나는 ‘저 사람이랑 원한도 없는데 왜 때려야 하는 거야. 안 때리자니 체면을 구길 텐데. 앞으로 저 녀석들 낯을 어떻게 본담’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왕 왔으니까 때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로 한 대 차는 척을 했다. 하지만 진짜로 차진 않았다. 다시 한 번 차려고 할 때 대장이 외쳤다. “그만, 그만 때려.” 놀라 꽁무니를 빼는 두 녀석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들이 간 후, 대장이 성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왜 안 때리냐?” 나는 “다들 섞여 있어서 누가 누군지 몰랐어. 혹시 잘못 때릴까 봐”라고 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업 종이 울렸다. 우리가 막 교실로 돌아왔을 때 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샤오챵, 담임 선생님이 같이 교무실로 오래.” 나는 속으로 ‘망했다. 선생님께 들킨 건가?’라고 생각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아까 맞은 아이 두 명과 그 녀석들의 부모님, 교장 선생님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속으로 ‘저 녀석들의 부모님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나는 이 녀석들과 어울려 다녔던 걸까? 왜 저 녀석들의 싸움을 도와준 걸까? 싸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한참 마음이 괴로워 할 때 예전에 예배에서 교통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냐, 크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형제자매들과 늘 함께 있다. 주위에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너도 착실하게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 너 혼자 이방인들 가운데 있게 된다면 너의 마음속에 그래도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그들과 같이 있으면 그들과 똑같이 되기가 쉽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리키는 게 바로 나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 드리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멀리했다. 이런 나쁜 일도 분별하지 못하고 아무거나 따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책감이 들어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따라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녀석들과 형제의 우애를 다지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께서 무섭게 우리를 혼내셨다. “어린 녀석들이 벌써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고.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 가기라도 했으면 너희가 어떻게 책임질 거야? 누가 맞아죽기라도 했으면 너넨 그대로 감옥행이야. 고1 학생 두 명이 휴대폰 때문에 싸우다가 목 졸라 죽인 일도 있었던 거 몰라? 싸우고 난 후폭풍이 어떤지 알기나 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무서워졌다. 맞은 학생의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요즘 애들이 걸핏하면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데 싸우다가 누가 어디 하나 잘못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건 일생과 관련되는 일이잖아요!” 교장 선생님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로 말씀하셨다. “일주일간 정학이다. 한번만 더 싸우면 그땐 퇴학이야.” 당시 난 퇴학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심장이 철렁 했다. “샤오챵, 넌 평소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녔으니까 일단 학교에 남아.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 그 말을 듣고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됐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앞으로 저 녀석들과 몰려다니며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부디 구원해 주시옵소서. 다시는 악에 휩쓸리지 않고, 제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나이다.” 보름 후, 그 녀석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일 한 판 뜨러 가니까 꼭 나와라!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고. 내일 점심때 데리러 갈게.” 이 문자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지 않았다가 그 녀석들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그렇다고 가자니 그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잖아.’ 할 수 없이 이 일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모든 일은 전쟁과 같단다.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하는 거지. 그때 넌 어느 편에 설 테냐?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책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서 겉으로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다. 마치 그런 것이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굳게 증거할 필요가 있다.』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때란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구원하려 하시고,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너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 하나님께선 이런 환경을 통해 분별이 생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게 하고, 사랑과 증오를 명확히 가려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는 거란다. 그 녀석들이 너한테 문자를 보내 싸우러 가자고 한 건 부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님의 뜻에도 맞지 않으니 멀리해야 마땅하단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이게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결코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난 ‘일진’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또다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거리를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 주셨다.『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온 우주를 주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므로 그가 택한 각 사람의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매사는 하나님으로 놓고 말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다. … 네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 앞으로 올수록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고 안심하며 위안을 느끼고 누림을 얻게 되지만 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찾을 줄 모를수록 하나님은 더욱 상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주의 모든 사물을 하나님께서 주관 하시고, 모든 일 또한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그 녀석들이 학교에서 나를 찾아오는 것도, 다른 애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어. 그들을 따르지 않기로 한 이상 나는 이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해! 비록 내가 어린 나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성장할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나를 책임져주실 거야.’ 여기까지 깨닫자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일진’들과 확실하게 선을 긋고, 단호하게 그 녀석들에게 말할 것이다. “안녕!” 이라고! 그 후, 그 녀석들이 날 찾아올 때면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할 수 있었다.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 굳건해 보였는지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고, 날 괴롭히지도 않았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변 환경을 주재하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수중에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어려운 점을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에 ‘일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주먹을 휘둘러 범죄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것을 보며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타락된 길을 가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인 것이다. 나를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과 권능과 찬미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소통하는'법을 배우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행복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해란은 집안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온종일 허무한 컴퓨터 게임에만 정신 팔려 집도 돌보지 않고 애도 챙기지 않다니… ’라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해란이 계속 잔소리를 하자 남편은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끝없는 잔소리만 해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해란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말이 조금씩 오고 가더니 30대의 이 젊은 부부는 점점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속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소리나게 ‘쾅쾅’ 치면서, 의자도 일부러 발로 걷어찼습니다. 곱게 자란 해란이 어찌 이런 울분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분을 삭히지 못해 속으로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이딴 식으로 대하지? 내가 만일 반항하지 않고 참는다면 나중에 남편이 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자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는 질세라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가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외출했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둘은 어쩔 수 없이 다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다툼이 잠시 잠잠해 졌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해란도 의자에 앉아 울분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지친 해란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플까?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 앞에 와 기도했는데,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찾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해란은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대화하는 법, 말하는 법,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너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부모의 태도도 변하지 않다 보니 그런 상황을 돌려세울 방법이 없다. 너는 주동적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고집 부리지 말고 부모에게 대항하지 말라.”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대화를 하는 목적은 작은 방면으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인성의 소통이 있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말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방면이다. 큰 방면으로 말하면, 서로의 정형을 알아보면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것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잡아 주고 도와주는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 효과가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로 지내게 되지 않겠느냐?』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해란은 자기도 모르게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연애할 때, 그들은 여가 시간이면 늘 함께 산책하면서 얘기 나누기를 좋아했는데, 서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일하면서 부딪쳤던 어려움이나 재밌는 일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로 못할 말이 없었고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결혼하여 예쁜 아이까지 낳게 되었는데, 이런 결혼 생활이 당연히 행복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과 복잡한 현실 생활로 인해 연애 시절의 낭만과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그들의 생활은 더 이상 연애 시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자질구레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아이, 직장, 양가 부모…등,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해란과 남편은 소통이 점점 적어지게 되었고, 각자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고민을 해결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였고 해란은 집안일을 마치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해방받는 이런 생활을 만끽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차츰 소통이 적어지게 되었고 대화거리도 적어지게 되면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심지어 서로가 방해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날이 갈수록 서로가 상대의 마음에 들기란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이 하던 일을 재쳐놓고 예전처럼 지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해란과 남편은 갈수록 서먹서먹해졌고 다툼도 날로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로 다투었는데, 매번 다투고 나면 그들도 매우 후회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임하게 되면 또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 사이가 너무 멀어져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부는 이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서로가 맞지 않아 이혼한 부부가 어디 한둘입니까? 사실 그렇게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생활 속의 이런 작은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가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기에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이 평소에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기 때문에 작은 갈등이 생겼고, 또 이로 인해 서로 다투다 보니 나중엔 장기적인 냉전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에 따를 것을 강요하다 보니 예전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다툼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이 가정을 위한다면 더 이상 남편과 다투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남편과 대화하고 마음속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해란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조절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남편과 속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엔 예전처럼 조급해 하지 않았고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얘기를 나눌 때에 그는 되도록 남편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속마음도 남편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실행하니 의외로 남편도 예전처럼 발끈하지 않았고 자상하게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하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이해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해와 믿음, 배려가 있었기에 서로 간의 갈등과 오해는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효과를 보게 될 줄은 해란 자신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는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남편과의 갈등도 해결하고 정상적인 관계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란은 남편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었는데, 늘 함께 얘기도 나누고 마음속 말도 하면서 일에 부딪쳐도 차분하게 상의했습니다. 게다가 해란은 실행 과정에서 자신의 패괘성정도 끊임없이 정결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실행하고 나면 진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 자신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말씀이 패괘된 인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패역과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 할 때, 점차 정상 인성과 이지도 회복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평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합니다

2012년 7월 21일 밤, 우리가 사는 지역에 보기 드문 특대 수재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저의 진실한 경력과 본 것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그날 저와 남편은 언니네 사료 공장을 지키게 되었는데 밤에 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우리 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45분에 형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수지 물을 방류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는 몽땅 잠기게 되니 빨리 도망가요!” 그때 저는 멍해져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기만 할 뿐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전동자전거, mp3와 메모리카드를 챙기기에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사료실에 가서 전동자전거를 끌고 나왔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하나님 말씀 책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아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앞까지 타고 왔을 때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아 저는 큰물에 떠내려온 아스팔트 조각에 부딪쳐 전동자전거와 함께 물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물에 떠내려가도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만약 살아남게 하신다면 이후부터 본분을 잘 하겠습니다.’ 그때 저의 한쪽 신발은 이미 물에 떠내려갔고, 저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 근처에 이르러 보니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주변이 철망으로 둘러싸여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갈 수가 없으니 다시 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른 한쪽 신발마저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물은 이미 저의 허벅지까지 차올랐습니다. 저는 되돌아 가려고 세 번째 시도를 했고 속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른 돼지농장에서 한집 식구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들과 같이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때 저의 남편도 거기에 도착하여 도구로 철망을 끊고 있었습니다. 저는 맨 먼저 맨발로 철망을 넘어 고속도로에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고속도로 남쪽은 물굽이에 둘러싸인 지역인데 북쪽으로 물이 흘렀고 북쪽은 큰길인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우리를 중간에 끼워넣었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고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강철공장이 있었는데 강철공장 담장 밖으로부터 2m 남짓한 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우리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담장 안의 물은 1m 정도로 깊어 공장의 채색 강철 기와집도 둥둥 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한 탓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만약 물이 북쪽으로부터 덮쳐 왔다면 그날 새벽 2시쯤에 우리는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은 남쪽 담벽 모퉁이를 뚫고 내려가 아래에 위치한 돼지농장이 물에 잠긴 것입니다. 이때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을 보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앞에서는 재난도 비켜 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터널에서 3시간 남짓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가 하나도 젖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전동자전거도 물에 넘어지고 전동자전거 충전기도 젖고 다른 물건도 다 젖었지만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만은 전혀 손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료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본 상황은 더욱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료공장 마당에는 간밤에 내렸던 빗물만 고여있었을 뿐 물이 얼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앞쪽 옥수수 밭도 잠기고 뒷쪽 옥수수 밭도 더 깊이 잠겼지만 사료공장에는 물이 얼마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이번 수재를 통해 저의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돈이 만능이라고 하지만 재난이 임할 때는 돈이 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저는 더 이상 돈을 추구하지 않고 사료공장을 그만두고 복음 사역에 뛰어들 것입니다. 저는 그날로 우리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올케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저의 경력을 듣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전에 저의 어머니와 올케는 줄곧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핍박해 왔고 제가 4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믿지도 않았었습니다. 이때 저는 더욱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전에는 저를 핍박했지만 지금은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복음을 전할 때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감히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경력을 통해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있는 힘껏 저의 경력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재난과 시련 속에서 제가 하나님의 구원과 가장 진실한 사랑을 보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012년 8월 11일 北京市 穩重

우리의 섬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다 버리고 주님을 섬기거나 열심히 헌신하는 일들을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섬김에 “가격표 부착”이 과연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