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2018년 12월 19일

딸이 남긴 메모지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그런데 알아? 엄마가 나 매일 공부시켜주고, 아침 점심 저녁 맛있는 밥을 해 주었잖아, 그래서 난 정말 꿈속에서도 좋은 성적 받아서 엄마한테 보답하고 싶었어. 그런데 자꾸 마음이 조급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항상 위가 쓰리고 잠도 못 자고 어떨 때는 악몽도 꿨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그건 선생님이 성적표를 발표하는 날이야. 학교 수업 마쳐도 집에 안 가고 싶었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도 다들 저렇게 자유롭고 즐거운데, 나는 왜 저 작은 새보다도 못 할까? 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엄마, 엄마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그물 같아. 내가 가는 데마다 내 몸에 달라붙어 나의 즐거운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버렸어. 나는 엄마의 그 그물을 영원히 벗어나고 싶어. 다시는 그 숨 막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엄마,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이건 딸이 남긴 메모지 내용입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두렵고 떨립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석자나 되는 얼음은 하루 추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딸의 가출은 절대 일시적인 생각에 즉흥적으로 생긴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슴 쓰린 과거

나에게는 단 하나 뿐인 딸입니다. 그 딸이 언젠가는 대학에 입학하고, 또 어른이 된 후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딸이 공부의 기초를 잘 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치원 선택할 때에도 내가 먼저 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보고, 몇몇 다른 유치원과 비교를 해 본 후,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제일 좋은 유치원을 딸에게 선택해주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이 반에서 늘 10등안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야 훌륭한 학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공부해도 5등 안에 못 들꺼면 공부를 해서 뭐 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딸은 뾰로통해서 말했습니다. “다른 애들과 비교 좀 하지 마. 걔네들은 100점 받지만, 나는 99점도 안 된다고. 엄마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라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옛말에 ‘엄격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라고 하잖아. 내가 지금 너한테 성적 잘 받으라고 하지 않으면, 나중에 네가 어떻게 남들보다 훌륭하게 될 수 있겠어?” 나의 이런 말에, 딸은 더 이상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기분은 언짢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딸이 중학교 1학년이 되자 공부에 대한 경쟁이 더 치열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나중에 명문 대학에 들어갈 기회조차 잃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저녁 일을 포기하고,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딸에게 국어, 수학, 영어 등 각종 문제지를 가르쳤습니다. 한 문제 한 문제씩 끈기 있게 가르치면서, 딸이 TV를 보거나 놀러 나가는 것도 통제하고, 시간을 다그쳐가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딸은 싫어했지만 내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계속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것도 잠시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수시로 기지개를 켜거나, 물을 마시러 가거나, 아무 말도 없이 화장실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면 앉지도 않고 서서 내게 인상을 쓰며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내일 하면 안 돼? 빨리 자고 싶어.” 그러면 나는 황급하게 말했습니다. “잠은 무슨 잠?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 줘야 되고, 내일은 또 내일 풀어야 할 문제가 있잖아. 빨리 문제를 풀어야지, 국어, 수학, 영어, 다 합치면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다 가르칠 수 있겠어?” 딸은 곁에서 나의 근심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감히 잠을 자러 가지 못하고, 그저 억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저녁 우리는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1분 1초를 치열하게 싸웠고, 심지어 새벽 1시까지도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연습한 거야,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 딸도 짜증이 나서 나에게 대들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그만 가르쳐, 난 몰라, 이 문제는 보기만 해도 토할 거 같아. 원래는 풀 줄 아는 문제였는데, 엄마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주니 오히려 더 모르겠어.” 딸의 이 말에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딸에게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10시가 넘으면 자야 되는데, 지금은 매일 새벽이 되어야 잠자리에 드니, 혹시 성장 과정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딸아이의 피곤한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아파서 늘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딸이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언제가 되어야 끝이 보일까?

자녀 교육,

나는 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가로막혀있는 것처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딸은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명랑했던 아이가 점점 시들시들해져서 말도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속담에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의 가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딸의 영어성적이 걱정돼 딸에게 급하게 물었습니다. “영어 시험 잘 봤어?”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서 성적이 별로 안 좋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시험 잘 못 봤으니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네, 연습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봤는데 왜 틀리는 거야? 우리가 평소에 연습했던 것보다 쉬운 문제들인데, 왜 그렇게 대충대충이야? 머리는 쓰라고 달려있는 거 아니야? 엄마는 이 나이에도 기억할 수 있는데, 너처럼 이렇게 어린 녀석이 엄마보다 기억력이 더 좋아야 되는 거 아니니?”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나는 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시험을 망쳤으니 어디 놀러 갈 생각은 하지 마.” 내 말에 딸은 억울해하며 울면서 자기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영어 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 점심 무렵, 나는 집에서 초조하게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 딸을 찾으러 급하게 학교로 달려갔더니, 딸의 짝꿍이 나에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딸의 메모지를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나는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바로 쓰러졌습니다. 귓가에는 딸의 메모지 속 한마디 말이 줄곧 맴돌았습니다.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던 결과가 딸의 원망과 가출로 되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딸이 잘 되라고 그런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내가 정말 잘 못했단 말인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일어난 일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전 정말 이런 충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와 제 딸을 구해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왜 그런 것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느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맞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잖아, 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지.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딸은 안전할 거야. 왜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거지?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의지잖아.’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려고 할 때, 내 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오들오들 떨고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딸을 보자마자 나는 달려가서 꼬옥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돌아왔으니 됐어, 이제 됐어, 엄마가 다시는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을게!” 그 후, 나는 딸에게 말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딸의 장래에 대해 초조해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다

어느 날 집회에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나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나는 우리의 장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게 될지 등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히 배치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늘 자신의 노력을 통해 딸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려고 했으며, 나의 뜻에 따라 딸의 장래를 계획하고 아이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딸에게 이렇게 많은 통제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한 것이고,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후, 모두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거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진정한 고통을 겪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다.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등등, 어려서 부터 사탄의 이러한 사상과 관점의 훈육을 받아와서, 학문을 많이 닦으면 멋진 미래를 창조할 수 있고, 의식주 걱정 없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지만, 지식과 학문이 부족하면,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딸의 성장 과정 중에,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발붙일 수 있도록, 나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딸에게 엄하게 교육을 하면서도, 정작 아이와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는 별로 하지 않았고, 아이의 진실한 생각과 요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말끝마다 공부 공부하면서, 아이의 자유를 박탈하였습니다. 또 아이에게 매일매일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였으며, 고압적인 교육으로 모녀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딸이 ‘메모지’를 남기고 가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일가족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정말 사탄의 농간에 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또다시 사탄의 철학에 따라 딸을 대한다면, 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될지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만약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저 사탄에게 괴롭힘과 우롱을 당하면서, 더더욱 고통스러워지게 될 뿐이라는 걸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사람이 항상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하겠느냐? ⋯ 사람의 종착지는 모두 창조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나에게 분명한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며, 자신의 장래 운명도 바꾸지 못하면서, 딸의 운명을 바꾸려는 헛된 생각을 하였으니,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여 많은 고통을 받았고, 딸에게도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나는 다시는 지난날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못된 관점을 내려놓고, 딸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싶었습니다. 딸의 장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적절한 배치가 있음을 믿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정상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아이를 억지로 나의 요구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처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이 자유로워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후 나는 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주었고, 딸도 나와 같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딸은 학생팀 예배에 참가하여, 어린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나는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딸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보고, 설교를 듣고, 찬양도 부르며, 다시는 아이에게 보충 수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힘닫는대로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엄마가 다시는 너한테 억지로 이렇게 공부하라 저렇게 공부하라 하지 않을게, 네가 알아서 알맞게 계획표를 짜도 돼,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한테 물어봐. “딸이 당시에는 그래도 약간의 의혹이 남아 있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정말이야?”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딸은 기뻐하며 나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엄마, 내가 엄마를 오해하면 안 되는 거였어.” 딸의 이 말에 감격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에게 더욱 위안이 되었던 건, 딸이 매일매일 종달새처럼 즐거워하며, 예전의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을 회복하였고, 공부 진도도 빨라져서 보충 수업반에 참가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보충 학습으로 골머리 앓을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딸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중학교 졸업반 애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아무 과외도 안 받는 즐거운 공주야!” 어떤 학부모님은 나에게 묻습니다. “따님 성적이 너무 좋네요, 어디에서 과외 받아요?” 나는 자신 있게 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딸은 아무 과외도 안 받아요.” 그들은 이 사실을 정말 믿기 힘들어 합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릇된 관점을 돌려놓았고, 나와 딸 사이의 관계를 되돌려 주셨으며, 우리가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형 교통사고의 위험에서 살아남다

2013년 1월, 한 친척이 내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은 일이며 인생의 바른길로 가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3개월 후, 아내는 내게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재촉했고 나도 ‘돈을 벌긴 벌어야지. 돈이 있어야 모든 게 있는 것이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자 밖에 나가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초반에는 형제자매가 내게 해준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기도드리세요. 무슨 일이 있거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속은 돈벌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뿐 하나님을 믿는 일은 저편으로 미뤄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횟수도, 기도를 드리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내 마음도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2013년 12월 18일 저녁, 장 공장장이 나와 또 다른 동료 한 명을 불러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배불리 먹고 마신 후 공장장은 기사를 불러 우리를 다시 공장으로 데려다주라고 했다. 동료는 뒷좌석 왼쪽에, 나는 오른쪽에 앉았고, 조수석에는 10살배기 장 공장장 아들이 앉아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 넷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그때, 기사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상대방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사님 목소리만 들렸다. "거의 다 왔어요. 운전하면서 통화하면 안 되는 거 모르세요?" 나는 속으로 분명 우리가 어디쯤 갔을까 궁금한 장 공장장이 걸어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막 끊었을 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옆에 앉은 동료가 "저 차 라이트 너무 눈부셔"라고 말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쾅' 소리가 났다. 나는 목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난 정신을 잃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앞 좌석 등받이에 엎드려 있었고 머리가 울리듯 아팠다.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켜보니 차안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좌석은 모두 휘어져 있었으며, 기사님은 핸들 위에 엎어져 있었다. 참혹한 광경에 두려움이 몰려왔다.‘이 낯선 곳에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제가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희를 구해주소서.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이때, 동료가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한 채 어디론가 나가려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려 하는 게 보였고, 내가 몇 번을 불러도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동료 얼굴에 많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고 난 왼손으로 동료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도록 부축했다. 기사님도 핸들 위에 엎어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내가 몇 번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다급하게 기사님께 말했다. "우리 교통사고 났어요. 빨리 전화해서 우릴 구하러 오라고 하세요!" 그러다 차량 좌석에 낀 장 공장장 아들이 보였다. 얼른 다가가 좌석을 옮기고, 장 공장장 아들을 일으켰다. 몇 번이나 깨워도 아무 반응이 없자 ‘혹시 죽은 건가?'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더욱 무서웠다. 얼마 후, 장 공장장이 형제와 함께 사고현장으로 왔다. 오자마자 10살배기 아들을 끌어안아 타고 온 차에 뉘었다. 그리고 기사님과 나, 동료에게는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밖으로 나와 차를 보니 더욱 처참했다. 앞부분은 시멘트 더미에 부딪혀 완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몇 걸음 걷다 발이 아파서 보니 신발이 없었다. 다시 차로 돌아간 나는 등받이 밑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해서야 동료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료는 그날 밤 곧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그는 머리 쪽에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한쪽 눈을 잃었고 십여 만 위안을 쓰고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장 공장장의 아들은 병원으로 호송됐지만 끝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기사님은 머리 뒤쪽을 몇 바늘이나 꿰맸다. 유독 나만 경상을 입었고, 다친 곳은 얼굴 찰과상뿐이였다. 이튿날 출근하자 원래 운전하던 기사님(공장의 양 사장님)이 내게 물어봤다. “승용차 앞쪽이 시멘트 더미에 부딪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데 자넨 아무렇지 않다니. 정말 운이 좋았구먼! 자네 어디 앉아있었나?” 내가 대답했다.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 있었어요.” 양 사장님이 말했다. “상식적으로도 자네 자리가 가장 많이 다칠뻔한 자린데 자네가 제일 조금 다쳤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난 ‘운이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날 지켜주신 것이지’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아! 전능하신 실제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시고 당신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니이다. 우리 모두 당신의 날개 아래에 엎드려있으니 재해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신성한 보호와 보살핌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난 크게 감명받았다. 하나님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지키고 계시며 밤낮없이 나를 보살펴주고 계셨던 것이다. 처음 일을 하러 나왔을 때 형제자매가 내게 했던 진실된 충고가 떠올랐다. “말세가 도래했으니 돈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생명에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형제자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았으며 큰돈을 벌기 위해 매일 정신없이 일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은 읽지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지도 않았으며 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내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저지른 죄로 나를 대하지 않으셨으며 어려움이 내게 닥쳤을 때 시종일관 나를 보살펴주셨다. 이번 교통사고에서 만약 하나님이 구원해주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어떻게 그 화를 면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하나님께 빚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한 모든 행동이 후회되었다. 자책 속에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고 앞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리라 결심했다. 12월 말, 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예전에 함께 예배를 드렸던 형제자매를 찾아 그들과 함께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영생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너희는 돈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하루도 살 수 없고 하루도 생활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돈이 있는 만큼 지위도 있고 존귀하다고 보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기를 펴지 못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고, 기도 펴고, 큰소리도 칠 수 있고, 판을 치며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말과 이런 조류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느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대가든 다 치르게 되지 않겠느냐? 또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잃게 되지 않겠느냐? 더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본분을 할 기회를 잃고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잃게 되지 않겠느냐? 이런 것은 사람에게 손해가 아니냐? (맞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그런 방식으로, 그 한 마디로 이 정도까지 타락시켰는데, 그 속셈이 음험하고 잔인하지 않으냐? 이 수단은 아주 악독하지 않으냐? 그런 말이 유행하면, 너는 처음에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데서 진리라고 여기는 데까지 이르게 되어 그것에게 철저히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기에 너도 어쩔 수 없이 그 한 마디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그 말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받았느냐? 참 말씀이고 진리인 줄 알면서도 추구할 힘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고 고난받으면서도 그것을 위해 바치기를 원치 않으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희생할지언정 끝까지 하나님께 대항한다. 또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어떻게 하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크다고 깨닫든, 여전히 자기 고집대로 그 말을 위해 대가를 치른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이미 너의 행위와 생각을 좌우하였는데, 너는 그 말에 너의 운명이 좌우되기를 바랄지언정 그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나서야 ‘돈이 있으면 귀신을 부려 맷돌을 돌릴수 있다’, ‘돈이 만능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 안된다’, ‘물질 만능주의’ 등은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가치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고, 돈만 있으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인생을 마음껏 누려 상류층의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치관에 사로잡혀 돈을 숭배하고, 돈을 최우선 자리에 두어 온 인류가 돈을 위해 죽고 살며, 돈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버리는 사람의 근본을 잃은 삶 속에 살게 되었다. 나 역시도 돈을 벌어 더 좋은 물질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한가한 시간에 하는 일로 여기고 기본적인 예배, 기도, 하나님의 말씀 읽기조차도 하지 않았고 돈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본분을 다할 기회마저도 놓쳤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았다!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나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생명을 살 수는 없고, 평안과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큰 사고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아무리 돈이 많았더라도 나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마치 이번 교통사고처럼 동료는 머리 쪽에 대수술을 받고,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한쪽 눈을 잃었다. 기사님 역시 크게 다쳐 뒤통수를 몇 바늘이나 꿰맸다. 돈 많은 장 공장장도 아들이 교통사고에서 크게 다쳐 많은 돈을 썼지만 목숨을 살릴 수는 없었다. 오직 나만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다. 문득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오늘에서야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보살핌을 얻어야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야 말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진리를 잘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사람은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가정도 행복하고 사업도 성공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젊은 나이에 공장을 운영하고 차와 집 그리고 자녀도 있어 정말 출세한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일이 바쁘다 보니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았고, 너무 과로해서 그런 거니 조금 쉬면 좋아질거라 생각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결국 몸이 더 심하게 아파오자 그때서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유방암 말기입니다. 조금 일찍 오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이 상태로는 치료하기가 힘들고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녀는 고통 속에 빠져들었고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그때 느낌이 좋지 않을 때, 왜 일찍 검사 받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고 사업도 성공했으며 가정도 아주 행복했지만,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이 그녀와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은 아직 젊어 다시 결혼할 수 있고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엄마”라 부를 것이며 집과 차의 주인도 다른 사람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상심의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록 남편과 자식이 그녀를 놓치기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죽음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녀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 추구하는 명리와 지위는 모두 허망하고 아무런 가치와 의의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돈과 세력이 있고 집과 차도 있지만 마지막에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이 일생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헛되이 살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혈육간의 정, 돈과 명리이며 사람은 혈육간의 정, 돈과 명리를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 비록 사람들이 다 운명이 기구하다고 원망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람은 왜 살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삶의 가치와 의미”, 사람이 가장 잘 알아야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이런 문제를 뒷전에 두고 일생이 몇 년이든 사람의 청춘이 다하기까지, 귀밑머리 백발이 되기까지, 얼굴이 노화되기까지, 명리가 사람이 노쇠해지는 걸음을 막지 못하고 돈이 사람의 심령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하기까지, 누구나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누구나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오로지 명리를 추구하기 위해 바삐 뛰어다닌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인생 중의 마지막 고비에 직면할 때에서야 사람이 설사 거액의 재산이 있고 고귀한 신분과 대단한 지위가 있다 하더라도 다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다 필연적으로 그의 원래 위치로 즉,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고독한 영혼으로 돌아갈 것임을 진정 깨닫게 된다…… 사람이 곧 죽게 될 때에야 사람은 평생을 쏟아부어 추구했던 것들이 본래 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하나도 붙잡을 수 없고 어느 하나도 가져갈 수 없고 어느 하나도 사람에게 죽음을 피하게 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하나도 고독한 영혼의 귀로 가운데서의 위로나 동반자가 될 수 없고 더욱이 어느 하나도 사람을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한평생 다 돈과 명리를 추구하며 이 양자를 목숨을 건지는 지푸라기로 삼고 유일한 받침대로 삼는데, 마치 돈과 명리를 가지면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고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올 때에야 사람은 돈과 명리가 사람에게 그렇게 요원하고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연약하고 힘없고 이처럼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며,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고독하고 의지가지없고 이처럼 무력하며, 원래 사람의 생명은 돈과 명리로 바꿔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든지 얼마나 높은 지위가 있든지 죽음 앞에서는 다 마찬가지로 빈궁하고 미소하며,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없고 명리가 사람의 죽음을 면케 할 수 없으며, 돈이든 아니면 명리든 다 사람의 수명을 일분일초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을수록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고,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을수록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무서워한다. 이때서야 사람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진정 발견하게 되고 또한 사람이 살든 죽든 다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이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진정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세상의 돈·지위·명예를 추구하면 결국엔 모두다 헛된 것임을 알려 줍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이런 것들은 사람의 생명을 1분 1초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생사는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원래 위치인,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고독한 영혼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조물주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주재를 체험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하나의 피조된 인류의 본분을 다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얻기 어려운 한번의 기회로 삼는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정확한 인생관이 있을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축복과 인도 아래에서 살 것이며 틀림없이 조물주의 빛 속에서 거닐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주재를 인식할 것이며 틀림없이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할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한 틀림없이 조물주의 권세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말할 필요없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조물주가 사랑하고 열납하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이라야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하는 태도가 있을 수 있고 인생의 마지막 한 고비를 흔쾌히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저는 사람의 모든 것은 조물주께로부터 온 것이고 결국에는 다시 주물주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조물주께서 배치해 놓으시고 정하신 것으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다 자신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배치하시는 것에 대해 진실로 인식하게 될 때, 조물주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할 것이며 진리에 대한 추구와 하나님을 알기 위한 추구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주재와 권세를 체험하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이러면 명리·지위·돈의 유혹을 담담하게 대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포함해 생활 가운데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또 마땅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의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창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때는 조물주의 축복 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생활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하며,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손에 맡겨 조물주께서 주재하시고 배치하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가치와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전국을 경악케 한 톈진 계현의 화재

河北省 陳塵 라이더(萊德) 상가 빌딩은 계현 읍내에서 제일 큰 상가입니다. 2012년 6월 30일, 이날은 토요일이라 상가에서 마침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고객들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상가 빌딩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났는데, 사장은 고객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상품을 도둑질해갈까봐 1층에 있는 셔터를 내리고 고객들을 2층과 3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길이 점점 거세져서 마지막에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가의 전기 통로가 다 중단되어 1층부터 4층까지의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층의 셔터 또한 잠겨 열 수가 없어 상가 전체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으며 창문마다 불길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짙은 연기는 읍내를 덮어버렸으며 몇백 m 밖에서도 연기에 숨막힐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3층 위에 갇힌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소방서가 상가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구조 요청을 한 지 약 25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구조할 시간을 지체한 뒤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사다리를 3층까지 올려 놓고 금방 7, 8명까지 구조했을 때 그만 사다리가 불에 달아 매우 뜨거워서 갇힌 자들은 사다리를 빌어 구조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다리로 내려오려던 사람은 떨어져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며 구조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큰불은 오후 3시 30분부터 저녁 9시 넘어까지 줄곧 타올랐는데 약 3백 명 이상이 안에서 타죽었습니다(구체적인 숫자는 아직도 조사 중, 정부에서 발표한 것은 다만 10명). 어떤 사람은 오후 3시 넘어서까지도 가족과 통화를 했었지만, 5시가 되어 가족들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집은 일곱 식구가 모두 라이더 상가에 쇼핑하러 왔다가 그만 온 가족이 화재에 죽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많은 참상들이 있습니다. 화재가 일어나던 그 순간부터 어떤 사람은 이 비극을 신속히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리하여 즉시 ‘라이더 상가 화재’는 인터넷을 타고 온 계현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계현 민중들은 놀랍고 두려워서 하루 보내기도 힘들어하며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또 자기의 친인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비록 화재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상처를 가져다주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는 화재 발생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高)자매와 그의 모친은 2012년 6월달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새신자입니다. 이번 화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더욱 하나님의 새 사역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자매님은 올해 73세인데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걸어야 하였는데 평소에는 잘 넘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6월 29일 그날따라 이 자매님이 갑자기 평지에서 넘어졌습니다. 비록 뼈는 골절되지 않고 그저 심하게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고자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토요일(화재가 발생한 바로 그날), 또 다른 어린 자매가 고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라이더 상가에서 판매하는 바지 하나를 봐두었기에 고자매더러 함께 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고자매는 “우리 엄마가 지금 거동을 못하셔서 돌봐드려야 하니 혼자 가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친구가 고자매에게 뭔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지금까지 거절한 적이 없었으나 유독 이날만은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부득이 친한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라이더 상가에서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고자매는 깨달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부지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입었고, 하나님이 모친의 병을 통하여 자기의 발걸음을 저지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당시 친구를 따라 상가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큰불에 타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특유의 방식으로 사람을 보호하여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너무나 기묘하십니다! 더욱 생각지도 못한 것은 화재가 발생한 그날 저녁에 고자매의 모친이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교통을 통하여 연로하신 자매님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깨닫고서 “제가 육체적인 고통은 좀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병을 통해 우리 딸을 구원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자매님이 또 얘기하기를, 그날 고자매와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자고 했던 친구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고자매만큼은 추구하지 않았다고 함)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고자매가 못 간다고 하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되어 그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더니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따라 그 자매는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고 남편에게 “좀 더 있다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3시가 되어 그의 남편이 또 재촉하자 이번에도 그 자매는 좀 더 있다 가자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시 재촉하자 그제야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라이더 상가로 떠났습니다. 반쯤 가고 나니 라이더 상가 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제야 상가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매는 저도 모르게 감격하여 “하나님, 저를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또 자기가 좀 전에 재삼 시간을 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부터 온 것이지 결코 자기의 본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널리 미치며 그분의 지혜도 사람이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시며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재난이 닥칠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화재가 난 그날, 많은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자매는 마침 라이더 상가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다른 일을 보려고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상가에 불이 났던 것입니다. 어떤 자매는 라이더 상가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갔는데, 그리하여 한차례의 화를 면했던 것입니다…… 보다시피, 재난 속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며 견고한 망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기탁(寄託)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즉시 정체될 것이며,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은 나에 의해 일어나는데,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들이 만일 내 앞에서 선하게 보일 수 없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차례의 화재로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닫게 됩니다. 설령 사람이 허리춤에 많은 돈을 꿰차고 있고 지위가 대단하고 사치한 현대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의 과대 평가와 흠모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재난 앞에서는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불 속에서 불사름을 견디기 어려워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그 사람들, 창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절망 속에서 생명을 잃은 그 사람들, 그들 중 어떤 이는 돈과 지위도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용모와 화려한 장식이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가족의 동반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길이 흩날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는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도 큰불의 삼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의 말 이외에서 생활하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늦가을의 낙엽마냥 도처에 떨어져 발 붙일 곳이 없고 더욱이 나의 위로의 말도 없다. 비록 그들에게 나의 형벌과 연단이 따르지 않지만, 이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밖의 도처에서 방황하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그 거지들이 아닌가? 세상이 정말 너의 안식처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화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일깨움이며 동시에 또 우리에 대한 사랑의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하나님의 고충을 이해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들여 하나님이 인솔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감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재난이 빈발하는 이 위기에 더 많은 영혼들을 빨리 구출하여 하나님의 그 슬프고 초조한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30m 가량 되는 비탈길에서 떨어지는 아찔했던 순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속은 항상 돈으로 가득 찬 그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길로 향했다. 30m가량 되는 비탈길에서 차를 돌이려던 그는 그만 뒷바퀴가 내리막길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그는 하나님이 유일한 의지처였는데, 과연 그는 무사했을까요?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는 한평생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다면 어떤 고생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자 깨지는 가정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소통하는'법을 배우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행복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해란은 집안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온종일 허무한 컴퓨터 게임에만 정신 팔려 집도 돌보지 않고 애도 챙기지 않다니… ’라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해란이 계속 잔소리를 하자 남편은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끝없는 잔소리만 해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해란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말이 조금씩 오고 가더니 30대의 이 젊은 부부는 점점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속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소리나게 ‘쾅쾅’ 치면서, 의자도 일부러 발로 걷어찼습니다. 곱게 자란 해란이 어찌 이런 울분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분을 삭히지 못해 속으로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이딴 식으로 대하지? 내가 만일 반항하지 않고 참는다면 나중에 남편이 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자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는 질세라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가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외출했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둘은 어쩔 수 없이 다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다툼이 잠시 잠잠해 졌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해란도 의자에 앉아 울분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지친 해란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플까?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 앞에 와 기도했는데,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찾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해란은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대화하는 법, 말하는 법,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너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부모의 태도도 변하지 않다 보니 그런 상황을 돌려세울 방법이 없다. 너는 주동적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고집 부리지 말고 부모에게 대항하지 말라.”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대화를 하는 목적은 작은 방면으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인성의 소통이 있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말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방면이다. 큰 방면으로 말하면, 서로의 정형을 알아보면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것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잡아 주고 도와주는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 효과가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로 지내게 되지 않겠느냐?』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해란은 자기도 모르게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연애할 때, 그들은 여가 시간이면 늘 함께 산책하면서 얘기 나누기를 좋아했는데, 서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일하면서 부딪쳤던 어려움이나 재밌는 일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로 못할 말이 없었고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결혼하여 예쁜 아이까지 낳게 되었는데, 이런 결혼 생활이 당연히 행복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과 복잡한 현실 생활로 인해 연애 시절의 낭만과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그들의 생활은 더 이상 연애 시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자질구레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아이, 직장, 양가 부모…등,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해란과 남편은 소통이 점점 적어지게 되었고, 각자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고민을 해결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였고 해란은 집안일을 마치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해방받는 이런 생활을 만끽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차츰 소통이 적어지게 되었고 대화거리도 적어지게 되면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심지어 서로가 방해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날이 갈수록 서로가 상대의 마음에 들기란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이 하던 일을 재쳐놓고 예전처럼 지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해란과 남편은 갈수록 서먹서먹해졌고 다툼도 날로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로 다투었는데, 매번 다투고 나면 그들도 매우 후회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임하게 되면 또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 사이가 너무 멀어져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부는 이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서로가 맞지 않아 이혼한 부부가 어디 한둘입니까? 사실 그렇게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생활 속의 이런 작은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가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기에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이 평소에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기 때문에 작은 갈등이 생겼고, 또 이로 인해 서로 다투다 보니 나중엔 장기적인 냉전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에 따를 것을 강요하다 보니 예전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다툼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이 가정을 위한다면 더 이상 남편과 다투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남편과 대화하고 마음속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해란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조절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남편과 속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엔 예전처럼 조급해 하지 않았고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얘기를 나눌 때에 그는 되도록 남편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속마음도 남편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실행하니 의외로 남편도 예전처럼 발끈하지 않았고 자상하게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하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이해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해와 믿음, 배려가 있었기에 서로 간의 갈등과 오해는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효과를 보게 될 줄은 해란 자신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는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남편과의 갈등도 해결하고 정상적인 관계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란은 남편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었는데, 늘 함께 얘기도 나누고 마음속 말도 하면서 일에 부딪쳐도 차분하게 상의했습니다. 게다가 해란은 실행 과정에서 자신의 패괘성정도 끊임없이 정결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실행하고 나면 진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 자신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말씀이 패괘된 인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패역과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 할 때, 점차 정상 인성과 이지도 회복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평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별 하늘을 바라보며 알게 된 비밀

끝없는 별하늘은 늘 사람에게 끝없는 상상과 동경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별하늘은 마찬가지로 저를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별하늘을 좋아하는데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여름 저녁만 되면 늘 시골의 빈터에 누워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견우직녀, 북극성, 북두칠성, 간혹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천진하게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유성이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 정말 신선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커서 별하늘에 관한 그런 아름다운 전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좌와 유성우와 극광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저로 하여금 별하늘에 대해 더욱 반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별들의 모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고 또한 별하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좀 더 커서 저는 여기에 관한 지식을 배우게 되었고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에서 우주는 대폭발로 생겨난 것이고 게다가 부단히 확장되고 있으며 이런 성체들은 다 규칙적으로 하나하나의 성계를 이루고 이런 성계는 다 동일한 평면에 있으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저의 지식욕을 만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아름다운 별들과 이런 신기한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늘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우주의 대폭발로 생긴 것인지, 별하늘은 극한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적으로 운행되는지, 이런 것은 제가 줄곧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이 광명체가 하늘에서 빛을 내어 땅을 비췄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 날, 해를 위해 징조로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한 동시에 하나님이 이루려는 매사는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응하고 있었다.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바로 상공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물체인데, 그것은 하늘을 비출 수도 있고 땅과 바다를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부한 절주와 빈도수에 따라 회전하며 땅의 서로 다른 시간에 따라 비추고 있다. 이리하여 땅 위의 것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산생된다. 그것은 낮과 밤을 위한 표기로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로 다른 회전 주기로써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을 위한 징조로도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반포한 사계절━춘하추동과 상부상조하고 서로 상응하며 조화롭게 인류의 계절, 날, 해를 위해 규칙적이고 정확한 징조를 보인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별하늘이 근거없이 생길 리가 없어. 어떻게 그것들을 통제하는 힘이 없을 수 있겠어? 조물주의 위대함과 비범함이 이 별하늘을 만들었고 아울러 조물주께서 이런 천체의 운행 궤도를 정해 그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하신 거야. 그래서 인류를 위해 규칙적인 계절을 정해 인류가 더 좋게 땅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셨어. 이 신비한 별하늘은 다만 조물주의 비범함과 위대함의 약간의 유로일 뿐이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2015년 8월, 태풍 “소디나”가 17급의 광풍과 폭우를 동반하고 엄습한 위기의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셔서 저를 구원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이번 재난을 체험하고 난 후, 저는 오직 하나님만이 저의 유일한 의지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만유를 주관하시는 권세를 지니셨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으며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만이 좋은 거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저와 몇몇 형제들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집 밖에는 이미 강풍이 불기 시작했고 큰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강풍과 폭우의 강타로 인하여 얼마 뒤 저의 집에 수도가 끊기고 잇달아 전기도 정전이 되어서 저희는 손전등으로 조명하였습니다. 식사 후, 저희는 전과 다름없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갈수록 세졌고 바람이 몰고 온 자갈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기에 우리는 태풍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별로 당황스럽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태풍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기 드문 재앙이 엄습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녁 12시가 거의 되었을 때, 현관문이 덜커덩거리기 시작하였고 지붕에서도 굉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금방이라도 뜯겨져 나갈 것 같았으며 집이 흔들리더니 거실의 지붕으로 비가 새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서야 저희는 이번 태풍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와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몇 줄 틈이 생겼습니다. 태풍이 몰고 온 폭우가 일격에도 견디기 힘든 저희 집을 공격했습니다. 방마다 비가 새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집안은 작은 “웅덩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때에서야 저희들은 정신을 차리고 방에 물이 들어온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침실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위에서 굉음이 들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둠속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저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천정이 흔들거리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고 머리속은 텅하니 비워졌습니다. 저는 연속 하나님을 불렀고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해 주시기를 기원하고 이 재난을 이길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기원했습니다. 저희는 대들보 밑에 엎드려 천장이 떨어져서 저희들을 덮칠까 봐 겁에 질린 눈으로 천장을 주시했습니다. 저는 안절부절 못했고 오랫동안 안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우리 같이 하나님께 기도합시다!"라는 어느 형제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기도를 드리려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순간, 저의 마음은 차분하게 안정되었으며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있지 않는 곳이 없고 있지 않을 때가 없고 있지 않을 시각도 없으며 천지는 사라져도 그의 권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자신이고 그는 유일무이한 권세를 갖고 있으며 그의 권세는 그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 공간, 지리의 속박과 제한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하나님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의 권세를 시행하고 있고 그의 권능을 창현하고 있으며 그의 경영 사역을 계속하고 있고 만물을 주재하고 있으며 만물에게 공급하고 있고 만물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 어떤 사람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사실이자 역시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그렇지, 하나님의 권세는 있지 않는 곳이 없고 하나님은 만유를 주관하시고 만유를 지배하시는데 태풍, 폭우도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가 되게 하시는데 환난이 닥쳤을 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유일한 살 길이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저는 믿음이 생겨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시각 저희는 태풍의 습격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재난도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하나님이 지배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오늘 저녁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는 하나님의 명정 하에 있습니다. 재난 앞에서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너무 적어서이고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해서입니다. 현재 저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생사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저의 심장 박동도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머리도 맑아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타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면 많은 힘이 될 텐데’ 그러나 눈앞의 광경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와 같은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도 보존하기 어려운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때에야 저는 부모님도 저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제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서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지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너희가 자기의 마지막 거처를 위하여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기를 바란다. 이래야 내가 만족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재난의 침습(侵襲)을 벗어날 수 없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류가 재난 속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종일관 본체만체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따라온 이 몇 년간을 돌이켜 보니 본분을 대충대충 할 때가 많았고 충분한 선행을 전혀 예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 이 재난 가운데서 죽는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 것이 아닌가? 이때 저는 만감이 교차했고 많이 후회스럽고 자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만약 이번 재난 가운데서 살아남는다면 다시는 허송세월하지 않고 진리를 성실히 추구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날 밤,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습니다. 기도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리라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빚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오늘 정말 제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 해도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할 때 기묘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흔들거리던 천장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고 미친 듯이 윙윙거리던 태풍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는 더 이상 저희의 집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하나님의 기묘함임을 알았기에 연속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태풍의 강도, 방향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는 노선, 머무르는 시간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시초에 인류가 있어서부터 하나님은 줄곧 이렇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도를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이슬의 자양을 받고 있으며, 만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 있으며, 사람의 모든 생활도 다 하나님의 눈앞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아니면 죽은 것이든 어떠한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며 새롭게 되고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보호로 저희들은 안전하게 늦은 밤을 지냈습니다. 동이 튼 후, 저희는 문을 열고 집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예전의 그 아름다웠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밖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봇대는 제멋대로 쓰러져 있었고, 곧게 서있던 나무는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대로 양가에 세워 둔 승용차는 주위 지붕에서 떨어져 나온 잡동사니에 부서져 형체를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저의 옆집은 지붕이 완전히 뜯겨져 나가고 대들보는 내려 앉았고, 방은 완전히 파손되어 보기에도 끔찍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훼손된 삶의 터전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태풍은 비록 지나갔지만 매번 재난 후의 처참한 광경과 사람들의 절망에 찬 눈빛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만약 인류가 모두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줄곧 인류를 긍휼히 여기셨고 돌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말세의 사역을 끝마치시기 전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한 타락된 인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며 하나님이 한 번 또 한 번 방향을 잃은 인류들을 일깨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번의 직접적인 체험은 저로 하여금 재난이 닥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일깨워 주시는 것임을 진실로 깨닫게 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닥치는 것은 한차례 불가피한 재난일 것입니다. 제가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또한 받아들이고 나서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았고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긍휼과 보살핌으로 충만한 분이시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하기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진정으로 떠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된 회개가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낌없이 계속해서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이다. 즉,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 저희는 삶의 터전을 재건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심사숙고하고 다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조물주는 저희들이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참 도를 고찰하여 조물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시며 다시금 조물주의 긍휼과 구원을 얻기를 기다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