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알고 보니 이렇게도 가까워 질 수 있었던 동료와의 관계

2018년 12월 23일

어려서부터 저는 ‘만만하게 보였다간 눈 뜨고 코 베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과 함께 사람이 너무 착하기만 하면 남들이 괴롭힐 수 있으며 스스로 강해져야 다른 사람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왔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 약한 학생들이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 말이 옳다고 생각했고, 학교든 집이든 누군가가 저를 괴롭히려 들 때면 저는 바로 반격해 제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에 온 후 저는 한 초밥집에서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손님들을 직접 응대하는 바 쪽에서 일했고 멕시코인이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느리고 더러우며 게으름까지 피우고, 말조차 걸기 어렵게 생긴 그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주방이 나누어져서 다행이다. 저들이 여기까지 넘어올 일은 없겠지. 매일 저 사람들과 일했다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저희 쪽 소스가 떨어져서 제가 주방으로 소스를 가지러 갔습니다. 주방을 담당하는 리리는 성가시다는 듯이 제게 말했습니다. “소스가 떨어질 거 같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죠. 우리도 이거밖에 안 남았다고요!” 리리의 태도에 전 화가 났습니다. ‘없으면 없는 거지 뭘 또 저렇게까지 말해? 내가 만만해 보이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표현하진 않았습니다.

얼마 후 리리가 다시 주방에서 절 불렀습니다. 주방으로 가보니 온갖 양념장을 다 꺼내놓고 조리대에 일렬로 줄 세워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멕시코인 두 명이 옆에서 우리 둘을 보고 있었습니다. 리리가 가게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저를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래, 어디 한 번 뭐 하나 보자! 귀찮게 하려고 부른 거라면 번지수 잘못 찾았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리는 온갖 양념장을 다 꺼낸 후 “이건 몇 그램 필요하고. 저건 몇 그램 필요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리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는 그 말을 끊고 “죄송한데 그건 Janney한테 가르쳐 달라고 할게요”라고 말하고는 리리가 뭐라고 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자리를 떴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 후 리리는 꺼냈던 모든 것을 다 정리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통쾌했습니다. ‘감히 나를 본보기 삼으려고 해? 번지수 잘 못 찾았거든!’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후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었고 자매님이 제게 교제해주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이방인처럼 말하고 행동해선 안 되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그의 좌우명은 주로 사탄의 말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것과 같은 것인데, 모두 세상의 마왕, 위인, 철학자들의 말이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인류의 심령에 주입된 그런 독소는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전혀 없다. 그런 허튼소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 적대되는 것인데, 이것으로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사람을 해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오는 것임을 완전히 분별할 수 있다.』

동료와의 관계,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전 그제야 오늘 제게서 흘러나온 것이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며 그동안 제가 ‘만만하게 보였다간 눈 뜨고 코 베인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동료들을 대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생존 법칙에 미혹되고 타락되어 저는 다른 사람과 지낼 때 온화하지도, 겸손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포용하고 인내하고 겸손하면 무능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런 사람은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난폭하고 악함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제야 저는 ‘만만하게 보였다간 눈 뜨고 코 베인다’라는 말은 사탄의 논리이며 진리에 어긋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런 그럴듯한 논리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사람들 사이에 포용과 인내가 사라지게 하였으며 서로 지려 하지 않고 암투를 벌이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잃게 했습니다. 그래서 리리가 제게 살갑지 않은 태도를 보였을 때 저는 불쾌했고 리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기선을 제압하여 다시는 저를 괴롭힐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 증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리리와의 관계도 소원해졌습니다. 하나님 말세 사역은 진리를 통해 저의 타락한 성품을 바꾸고 제 안에 있는 사탄의 독소를 없애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무슨 일이든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진리를 실행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것입니다.

며칠 후 주방에 일손이 부족해 제가 주방으로 지원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뚱뚱한 남자와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주 이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람이 어떻게 하던 나는 내 일만 잘 하면 돼. 그리고 내가 일을 좀 더 해도 별 상관없잖아’라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빠릿빠릿하게 일을 했음에도 그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제게 눈치를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마치 제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요. 저는 매우 불쾌해졌습니다. ‘지금 내가 양보해서 일을 훨씬 많이 하고 있는데 내가 열심히 일하니까 만만해 보이나 보지? 욕심이 끝이 없네. 어쩜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안 해!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에서 손을 떼려고 할 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너 자신이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맞습니다. 오늘 이 일이 생긴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뜻은 제가 다른 사람과 지낼 때 포용하고 인내심을 가지며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사랑하여 사이좋게 지내 크리스천의 모습을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저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타락한 성품으로 살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른 사람과 어울려야만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반발심이 사라졌고 계속 일을 열심히 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제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나쁜 태도로 저를 대하거나 일을 할 때 도와주지 않을 때면 즉시 하나님 앞으로 나와 기도드리고 저 자신을 내려놓으며 평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주방 사람들과도 친해졌습니다. 과거 그들과 마주쳐도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함께 있으면 웃음꽃이 피었고,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서로 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꾸어 주셔서 제가 점점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서영

취직 어려움, 이것만 알면 힘들지 않다

“그대도 나처럼 태양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땀 흘리며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그대도 나처럼 사람들의 냉정한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나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릴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 졸업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2011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교육의 질이 높은 인근 현으로 재수를 하러 갔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한 권 또 한 권 뗐고, 정치 책은 하도 넘겨봐서 다 너덜너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노력이 꼭 보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2012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564점(커트라인 보다 2점 높음.)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고 나는 무척 기뻤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명문 대학에 응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원 대학은 자신만만하게 명문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선이 565점이었다! 단지 1점 차이로 내가 꿈꾸던 대학과 멀어졌다. 이때, 내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실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나중에 나는 이 지역의 평범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듣는 그런 학생이었다.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전공 지식을 열심히 필기하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밖에, 나는 자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전공 외의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충실했다. 종합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학생회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단체를 만들어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교 평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사회 실천 논문은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나는 나의 전공 소양을 높이기 위해 휴가도 포기하고 매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 기관에 가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이력을 풍부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 미래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든든한 기초를 쌓고 싶었다. 나의 노력은 상응하는 보답도 받았다. 나는 여러 번 학교의 1등, 2등 장학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다 여러 번 벽에 부딪히다.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곧 졸업이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나는 전에 받은 상과 참여한 경력으로 빼곡히 채운 이력서를 들고 자신만만 하게 10여 군데의 취업 설명회를 다니며 굵직한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제출하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대학에서 노력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인가? 내 졸업장과 받은 상장이 좋은 직장을 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루는 예배에서 구직의 고충을 형제자매들에게 토로했다. 자매가 나에게 교제해 주었다. “우리의 앞날과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자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어요. 결코 우리의 이력과 졸업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직장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 많이 의지해야 해요.” 나는 자매님의 위로를 듣고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지식이 운명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 자매님은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난 내 실력을 믿어. 분명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대형 취업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나는 반드시 내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가 아니면, 회사에서 일반 대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 참담한 현실 앞에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앞날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하지만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공으로 찾을 수 없다면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라도 찾자! 내 실력으로 좋은 회사를 못 찾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나는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에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명문대 졸업생과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왜 여기에 응시했을까? 명문대 졸업장이 있는데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걸까?’라며 의아해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 내 운명을 장악할 수 없을까?’ 마음이 해방되고 근원을 찾아내다. 설 연휴를 맞고도 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무척 초조했다. 매일 핸드폰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채용 정보를 보며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 봐 계속 업데이트했다. 또 친척과 친구들이 취직했냐고 물어볼까 봐 찾아가지도 못했다. 내가 매일 취업 문제로 걱정하고 궁지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나 막막하고 무기력합니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갑자기 자매님이 전에 나에게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어서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했던 일, 힘든 고3의 시기를 두 번이나 겪은 일, 그럼에도 1점 차이로 명문 대학과 멀어졌던 기억을 회상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려고 적극적으로 각종 활동과 전문 기술 교육에 참여했고, 졸업 후, 나는 비바람을 맞으며 취업설명회에 참가했지만 내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나간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나는 줄곧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두 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면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희생하며 좋은 졸업장만 있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벽에 부딪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대학 시절을 모두 '학문의 세계'에서 보냈다.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놓쳤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여전히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록 학업에 성취도 있었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디딤돌도 얻었지만 운명의 안배에 불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졸업장과 성적에 의지해 대기업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못했을 때 고통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 쳤다. 하나님은 내가 사탄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매와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사탄의 허튼소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여전히 사탄에게 끌려다니며 스스로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망상했다. 결국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존을 위해 믿었던 사상과 관념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을 때 항상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 속에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전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운명에 달려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졸업장과 업무 경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나의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한다.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인한 몸부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8062"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는 더 이상 내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하나님의 기묘하신 역사를 보았다. 설날을 보낸 후, 인터넷에 이력서를 하나 넣었고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집이랑 아주 가까워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중에 출근 해서야 회사에서 한 번도 당해 졸업생을 채용한 적이 없었고 내가 첫 번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면접에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닌 후, 회사가 지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나를 파견해 매주 3일 동안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지방은 너무 멀어서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예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인 내가 외지로 돌아다니니 안전이 걱정되어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했다. 눈앞의 환경에 직면해서 나는 갈등했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는데, 그만두면 또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몸이 견딜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제대로 모임에 갈 수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포기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께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적합한 직장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재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신다면 나는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더라도 억지로 구하지 말고 순종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당신의 손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력서를 낸 다음 날,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면접에 참여했는데, 예상 밖으로 면접 당일 오후에 채용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주말에 이틀을 쉬어서 예배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상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남자만 채용했는데, 이번 면접에 남자도 한 명 있었지만, 당신을 채용했으니까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한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셔서 적합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기쁨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다시 되찾은 아들의 건강

하나님의 능력은 크시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도 청천벽력 같은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아들이 결국 중환자실에 눕게 되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을까요?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를 창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겨울에 주인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주인집 뒷마당은 매우 난잡했고 시들어 죽은 각종 잡초와 볼품없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앙상하여 모양새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복숭아나무 너무 못생겼네! 열매나 맺을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복숭아나무도 싹이 돋아나고 파릇파릇해지더니 후에는 기름진 잎사귀로 가득하여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복숭아나무는 꽃이 피고 서서히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보니 작고도 못난 것이 마치 벌레 먹은 듯했습니다. 쭈그렁복숭아를 보는 순간 저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복숭아나무야, 복숭아나무야. 네가 만약 싱싱한 복숭아를 맺지 못하면 너의 가치를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니?’ 복숭아나무에 대한 저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시선은 빨갛게 익은 복숭아에 끌렸습니다. 주렁주렁한 열매는 햇빛의 자양을 받아 어느새 그렇게 크고 빨갛게 열렸는지 전의 그 “쭈그렁이” 모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복숭아는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주위의 모든 것과 인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탐스러웠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어둡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어떤 때 사람이 한 가지 곤충을 보고 그 곤충이 아주 못생겼으면 “이 벌레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렇게 못생긴 벌레는 절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아니야.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난 것을 만드실 리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우매하다! 마땅히 “이 벌레는 아주 못생겼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 틀림없이 그것의 독특한 용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각종 생물들에게 다양한 생김새가 있게 하고 다양한 기능과 용도가 있게 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없다. 외형에서 내부 구조까지, 생활 습성에서 제각기 차지한 위치까지 모두 각기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당나귀는 당나귀의 생김새가 있고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말해 봐라, 어떤 것이 가장 잘생겼고 어떤 것이 가장 못생겼는가?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하고 어떤 것이 가장 존재할 필요가 없는가?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좋아하지만 코끼리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사자와 범의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서 가장 위풍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애완동물로 삼아 기를 수 있는가? 어쨌든 만물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즉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법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 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조물주의 본의에 대해 구하고 순종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이 진정 조물주의 권세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니 사람이 또 흠잡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모두 그것의 특유한 면이 있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를 창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숭아나무를 볼품없고 맺힌 열매도 못났다고 한 것은 저의 시야가 좁아서 겉면만 보고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는 만물은 모두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제가 못났다고 여겼던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못난 그대로이고 주변의 잡초도 여전히 우거져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였습니다. 즉 복숭아나무는 모양새가 “못났다” 해서 자신이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해서 주변의 잡초를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잡초도 “지위가 낮다” 하여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모두 이행하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여기든지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들이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겨났다. 순식간에, 저마다 형태가 서로 다른 작은 생명이 흙 속에서 작은 머리를 한들한들 내밀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한시도 참지 못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베풀어 준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들이 다 만물 중의 일원이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제각각의 생명을 바칠 것임을 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발함에 따라 땅 위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하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각 종류의 채소가 생기 넘치게 자라나 흙을 뚫고 올라오며 산천, 평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밀림이 울창하다…… 조금의 생기도 보이지 않던 벌거벗은 이 세계는 신속히 푸른 풀과 채소와 나무 등의 각종 식물에 덮여 푸른 빛깔이 차고 넘친다…… 공기 속에는 푸른 풀의 향기가 가득하고 흙의 향기가 풍기며 각종 식물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 모든 식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생명 역정을 시작하고 그것들 제각각의 생명의 운행 궤적을 충실히 지키기 시작하고 만물 중에서의 그것들 제각각의 배역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며, 모두 조물주의 끊임없는 공급과 자양을 얻을 것이고 또한 영원히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기 위해 이 대지의 곳곳에서 꿋꿋이 살아갈 것이며, 그것들은 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영원히 창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시초에 이 세계를 위해 식물을 창조하는 기묘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창조하는 그 순간부터 그것들에게 생명이 되풀이되는 궤적과 만물 중에서 맡아야 할 그것들 각자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조물주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이 법칙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전이되지 않았고 또한 사람의 애호에 따라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식물로써 그것들은 완강하게 곳곳에서 살고 자신의 존재로 조용하게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묵묵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이렇게 평범한 것 같지만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어느 누가 발견한 적이 있을까요? 이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저에게 사람됨의 도리를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지식이 있든 없든 재주가 있든 없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이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는 어떤 종류, 어떤 하나의 피조물이든지 모두 그것 의 특정된 사명이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조물주의 주재에 순응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피조물의 직책을 잘 이행하여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할 뿐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 (2)

고모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도운, 왜 말이 없어? 뭐 생각하니?” 전 말했습니다. “고모, 방금 읽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많은 친구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에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제 뜻대로 안 돼요.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어요. 게임을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제 마음대로에요. 아무도 절 건드릴 수 없어요. 맘에 안 들면 다 죽이면 되니까요. 게다가 제 레벨이 높고 좋은 아이템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이 절 따라요. 이런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고모는 절 보더니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고모의 한숨 소리를 듣고 전 물었습니다. “고모,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고모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사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할 수 있으시단다. 만물에서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고 하나님만이 긍정적인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인지를 구분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진리를 갖추어야만 사탄이 하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 선악을 분명히 가를 수 있단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얻으면 더는 사탄의 간계에 미혹되거나 통제를 받지 않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면 이해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이고, 다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필요한 자양품과 영양품이고, 사람이 정상 인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며, 사람이 장비해야 할 진리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의 생명은 더 빨리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를 더욱 밝히 깨닫게 된다. 너희의 분량이 자라게 되면 영계의 일을 더욱 꿰뚫어 보게 되고, 더욱 힘 있게 사탄을 이기게 된다.』 『진리란 바로 정상 인성의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었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인데, 모든 정상 인성(인성, *이지,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 도가 사람을 정상 인성 생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는지,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 그 진리가 현실적인지,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람의 인성과 이지가 갈수록 완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 생활이 갈수록 질서 있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사람 육체의 본성, 즉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異象),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폭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그런 말씀으로,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갖춰야 할 진리를 주신단다. 사탄이 우리에게 행하는 사악한 모든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에게 타락된 자신의 모습도 확실히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게 된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행하면 이 같은 사탄의 사악한 세력의 괴롭힘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돼. 하나님 말씀, 진리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때가 오면 사람의 마음과 사상은 변하기 시작한단다.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기고 사탄의 사악한 방해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게 되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생명으로 삼게 되면 곧 하나님의 구원을 입게 된단다. 인류의 마음속에서 진리가 생명으로 자리잡으면 사람은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미워하게 돼. 사탄의 독소와 사설, 그릇된 논리,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깨달아서 사탄을 배반할 수 있게 돼. 이게 바로 진리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효과란다.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람은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더는 고뇌하며 살 필요도 없고 사악한 추세에 얽매일 필요도 없게 되지” 고모의 말을 듣고서야 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권세가 있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계 흐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꼭 봐야 했습니다. “고모,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싶은데 한 권만 빌려줄 수 있으세요? 게임을 끊을 수 있다면 저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래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고모를 찾아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몰랐던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공허한 제 영혼을 채워주고 위로해 주는 걸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제 삶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어폰을 낀 채 하나님의 말씀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 찬양은 제 마음을 움직였고 이렇게 제 삶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체험한 것을 서로 나누며 전 한결 가벼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변한 제 모습을 보고 안심의 미소를 내비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갖춘 진리는 너무 적었기 때문에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탄은 각종 방법으로 절 유혹하고 타락시키려고 했었습니다. 하루는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짜증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집과 마당을 빙빙 돌았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든 채 화면 속의 캐릭터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입에서는 퍽…… 퍽……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운, 왜 그러니?” “할머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이렇게 말한 후 밖으로 나가 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쓰러져 죽은 돼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경련이라도 난 듯 아무것도 할 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게임으로 며칠 밤을 새워도 힘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도 힘들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맹세했었는데 지금 난 하나님을 속이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 자신이 뼛속까지 미워져 주먹을 불끈 쥐고 이불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맹세를 지키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이라는 걸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유혹과 미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없어 제 욕망을 이길 수가 없고 저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기도를 한 뒤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자 다음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거룩하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네게 인생의 밝은 길을 가게 할 수 있고,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할 수 있으며, 참된 인생을 살아내게 할 수 있고,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로 진리에서 생명을 얻도록 할 수 있고, 악에서 떠나고 사탄의 해와 통제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해 고해에서 벗어나 다시는 고통받지 않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렇게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계시며, 너의 앞날과 운명, 그리고 너의 인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한다. 이것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이런 실질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하고 인솔할 이 능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 실질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처럼 다시 제 마음을 비쳤고 전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시련이 임했을 때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지 않았고 기도를 통해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사탄을 따랐습니다. 오늘 사탄은 끊임없이 제게 게임을 하도록 유혹해 하나님 앞에서 했던 제 맹세를 저버리게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은 절 버리지 않으시고 제게 육체의 형벌을 내리셔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반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제게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은 제가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저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형벌과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또다시 사탄에게 휘말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단정하고 올바릅니다. 저는 지금껏 이 같은 언행과 인성을 갖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제게 관심을 보여 주고 끈기 있게 절 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탄을 배반하고 내치고 다시 떨쳐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로 사탄을 패배시키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사탄을 배반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순간, 사탄의 시험이 또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친구 임호는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와 말했습니다. “도운, 요새는 왜 게임 안 해? 새로운 게임이 있는데 진짜 재밌어. 완전히 빠져든다니까! 같이 놀자!” 새로운 게임이 있다는 말을 듣자 전 몸이 근질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더는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기로 했던 다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임호는 또 절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오늘따라 왜 그래? 평소 같으면 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당장 뛰어나왔잖아. 게임 안 한 지도 오래됐잖아! 너 완전히 딴사람 같아.” 이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게임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마음속에서 게임을 하러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다투는 듯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역사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같고, 마치 사람의 안배에서 비롯되거나 사람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역사마다, 매사마다 배후에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배후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지만 욥에게 임한 것은 사람의 행위이고 사람의 방해였던 것처럼,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역사마다 배후에서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고 있고, 배후에는 모두 싸움이 있다.』 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 순간은 바로 하나님이 제게 간증을 원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육체와 하나님 중 무엇을 만족시키는지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를 만족시키면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임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게임 안 해.” 임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네가 말한 거 맞아? 못 믿겠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나 이제 게임 끊었어. 앞으로는 게임 안 해” 게임을 하러 가지 않겠다는 제 말을 들은 임호는 말했습니다. “안 할 거면 됐어. 딴사람하고 해야지…” 임호가 간 후 제 마음은 평온해졌고 더는 방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기분이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누리는 평온함과 즐거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탄의 이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더이상 이같은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가끔은 제게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지만 전 육체를 따르지 않고 사탄의 그런 생각을 배반하여 사탄과 완전히 결렬하고 더는 사탄의 꼬임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릇된 길로 가던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후 저는 복음을 전하는 팀의 일원이 되어 몇 명의 친구에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말세 역사를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저의 간증도 들려주니 친구들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가장 의미 있는 인생과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내는 것을 배우다

저는 올해 22살입니다. “젊어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은 저의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사회 초년생인 저는 제멋대로 떠벌이며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할 줄 몰랐고, 컴퓨터 기술을 좀 안다고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얕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에게 컴퓨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자 저는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도 한 번 보면 바로 사용할 줄 아니까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필요가 없어. 내가 잘하니까 어머니도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졌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컴퓨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처음에 가르쳐 줄 때는 그래도 인내심이 있었는데, 몇 번 가르쳐 줘도 할 줄 모르니 조금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러 번 가르쳐 드렸는데, 왜 아직도 잘 모르세요?” 그러고는 속으로 '나이가 들면 정말 둔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빨리 배워 … 어머니가 마우스를 클릭할 줄 모르니 답답한 저는 어머니 손에 쥔 마우스를 빼앗아 클릭했습니다. 어머니는 짜증내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도 어머니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나이 드신 형제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나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로, 저는 형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형제님이 해 준 요리가 맛이 없어 못 먹었고, 예배할 때 형제님이 말을 횡설수설하게 해서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형제님의 말을 가로채고는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고 소질도 있고 말도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궤사로 가득하고 사람을 경멸하는 눈길이 가득한 것은 연소한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며,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도 젊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은 잘못된 것에도 굴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마음이 순결하고 정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해 주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타락 성정을 인식하였습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과 인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지난날 행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 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도 할 만한 기능이 있기에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는 취할 만한 부분도 있고, 취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처세 철학이 많고, 종교 관념이 많고, 일 처리 원칙이 많고, 언제나 규례에 맞추기를 좋아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활기가 없고, 너무 융통성이 없는데, 이런 것은 취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듬직하여 성정이 안정되고,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언제나 시종일관한데,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릴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결함이 아니다. … 젊은 형제자매든 연로한 형제자매든, 자신이 해야 할 기능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젊은 형제자매들은 연로한 형제자매들을 얕보지 말고, 연로한 형제자매들도 독선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협력이 아니냐? 너희가 다 이런 심지(心志)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너희 이 세대의 사람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나이 든 형제자매가 비록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에게 없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고, 더는 이전처럼 교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자고자대 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하루, 어머니가 휴대폰 네트워크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뭘 하나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짜증을 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그제서야 저는 저의 교만한 성정이 또 흘러나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고, 또 어머니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어머니가 컴퓨터나 휴대폰를 사용하면서 부딪힌 어려움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면서 마음도 점차 평온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차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형제자매나 어르신들과 우정의 다리를 놓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젊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남편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다

심신 갑작스러운 발병, 목숨이 위험해진 남편 2017년 1월 20일 아침, 나는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주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위가 왜 이렇게 아프지? 방금 정원에서 호두만 한 핏덩이를 토했어”라고 말했다. 놀란 내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다시 피를 토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너무 놀라 달려가 남편을 부축했다. 남편은 그렇게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고 입술은 보랏빛이 된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대로 숨이 끊어져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119’에 전화 걸었다. 전화 연결이 되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고 또 의식을 잃었다. 머릿속이 하얘져 멍하니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119’에 전화 걸었다. 내가 황급히 전화를 걸 때 남편은 또 피를 토했다. 30분도 안 돼서 피를 세 번이나 토한 것이다. 매번 피를 토하고 나면 남편은 기절했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피 웅덩이에 쓰러져있는 남편을 보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듯했고 당황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남편 좀 구해주세요. 하나님만이 제 남편을 살려주실 수 있습니다. 전 정말 두렵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살피시어 제가 이성을 찾고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고, 남편도 서서히 깨어났다. 10분가량이 지나도 구급차가 보이지 않자 나는 조급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구급차가 오고 못 오고도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부디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어 제가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당신의 사역을 체험하겠나이다.”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내가 의지할 곳이 있음을 깨달았고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만사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남편의 생사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사탄이 두려워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었고, 그래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내가 잡념을 갖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남편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만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가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충만케 해 주셨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심각한 병세로 옮겨야 하는 병원, 하나님 말씀이 주신 힘 20분가량이 지나자 구급차가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조치를 취한 후 의사는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남편분 B형 간염(간경화 복수)이 너무 심각해요. 출혈량이 많아서 혈압도 낮고 최고 혈압이 50에 최저 혈압이 40밖에 되지 않아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혈액형도 특이하셔서 그 혈액을 쉽게 구할 수가 없어요. 큰 병원으로 옮기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두려워졌다. 남편을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병원을 옮기다가 남편이 또 피를 토해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병원을 옮기지 않자니 만약 남편이 정말 죽는다면… 그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모든 것,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후 각 사물은 생명이 있게 되었고, 그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각 사물은 자기 생명의 궤적과 법칙을 스스로 준수하고 있으니 사람이 바꿀 필요도, 도울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 맞다. 하나님께선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두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에 달려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의 목숨도 하나님께 달려있기에 병원을 옮긴다고 해도 남편의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하나님을 향해 조용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당신의 말씀은 제게 방향을 가리켜 주셨고 사람의 생명은 당신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남편의 목숨이 다했다면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남편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지 않으시면 이 병원에서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사역에 순종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내 마음은 차분해졌고 남편이 이 병원에 남아 계속 치료를 받게 하기로 결정했다. 괴롭고 나약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되어 준 하나님의 말씀 응급실로 들어가니 의사와 간호사 예닐곱 명이 남편을 에워싸고 주사를 놓고 있었다. 그런데 혈관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끝에 링거를 꼽았다. 남편은 간신히 숨이 붙은 상태로 얼굴이 너무 부어 눈도 뜨지 못했고, 다리도 너무 부어서 보는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조심스레 남편을 부르자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소리를 내진 못했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겪었던 일들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너무 슬퍼졌다. 나는 남편 침대 앞에 앉아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이 지경까지 제가 온 것은 분명 제 분량이 보잘것없기 때문이겠지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시어 제게 믿음과 힘을 주소서…” 이때 형제자매들이 병원으로 와서는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욥의 간증을 교제해주어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나는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진실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욥은 온 산에 있던 소와 양, 그리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하룻밤 만에 약탈당하고, 온몸에 종기가 났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기 1:21) 욥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깨닫고 자신은 적신으로 모친에게서 나왔을 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속셈이나 욕심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재난이 닥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욥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여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을 받건 화를 받건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참된 뜻이 담겨있음을 욥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뭘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한 것으로 인해 그렇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는 변함없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세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획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욥의 이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그의 모든 행실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히 여겼으며, 욥의 그러한 인식을 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마음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욥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실된 믿음을 갖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유나 조건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이와 관련된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는 한 사람을 죽게 하여 그 영을 육체에서 떠나 저승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그 사람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권능이 있다. 사람이 언제 죽고 또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인ㆍ사ㆍ물, 공간, 지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기만 하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물 생령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고, 만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생존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 역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권능이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수도, 영혼이 육체를 떠나게 하실 수도 있으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 일, 사물,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 유일무이한 권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성령에게 거짓말한 아나니아 부부를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저승의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만이 인간의 죽음을 주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남편의 생사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게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사명을 다하도록 하셨다. 만약 남편이 사명을 다했다면 하나님은 남편을 데려가실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남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면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도 하나님께서 켜주실 것이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모두 그분의 참된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때 하나님을 향한 가나안 부인의 믿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은 아량이시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건 말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그녀를 개로 여겨도, 그녀를 어떻게 대해도 그녀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갔다. 가나안 부인 역시 예수께 딸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기도드렸지만, 그녀의 기도는 이성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딸의 병을 고쳐주시건 말건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겨 경배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진실된 믿음을 보신 예수께서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셨다. 지금 나도 가나안 부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이성적으로 기도드려 만약 남편을 치료해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미를 드리겠지만, 치료해주지 않으신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남편이 죽건 살건 저는 절대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상황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어느샌가 하나님을 따르려는 내 마음이 더욱 커졌고 영적으로도 많이 든든해져 마음을 안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싶어졌다. 그 후 나 혼자 힘겹게 남편을 돌보는 모습을 본 형제자매가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남편을 간병해주었고, 나는 내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 우리를 보러 온 친척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곁에서 믿음을 주시고, 의지할 곳을 마련해주시어 내가 한 발짝씩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형제자매를 빌려 나를 도와주시고 보살펴 주셨다. 내 마음속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 찼다. 기적의 구원, 심각했던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다 남편이 평온하게 고비를 넘길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남편이 깨어났을 때 미약하지만 목소리도 나왔고 혈압도 60에서 90까지 올랐다. 이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생존하며 지속된다. …』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속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창조주만이 이런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시며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남편이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의 목숨은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권능과 위력은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조용히 하나님 앞으로 다가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아등바등했으며 가끔 소리라도 지르면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가만히 누워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무기력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어 깊은 고통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가족도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를 보내시어 내게 진리를 교제해주고 남편이 고비를 넘길 때 나와 함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성적인 기도가 무엇인지, 진실된 믿음과 순종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어 내가 하나님의 사역을 기다리고 순종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로 보아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우리 육체의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주일 후, 남편이 밥 먹는 모습을 본 의사는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처음 오셨을 때 피를 너무 많이 토하고, 혈압도 4~50까지 떨어진 데다 혈관도 잘 안 보였는데 오늘 이렇게 생기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이건 기적이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오래 사실 운명인가 봐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신 기적의 사역이다! 보름 후 남편은 퇴원하게 되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남편은 힘이 닿는 한 일을 해서 돈도 벌게 되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도와주실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따르겠나이다!

직장 동료간의 갈등을 해결한 그녀의 비결

오늘날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서로 손님을 뺏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판매업에선 실적 때문에 동료들끼리 고객을 두고 싸우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 고객을 빼앗아서라도 실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울분을 억누르며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러다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동료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고도 실적을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2010년, 저는 어떤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이 업계는 기본급 없이 판매가에서 일부 금액을 받는 인센티브제로, 상품을 파는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경쟁이 심합니다. 제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오래 일한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빈 씨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예전에 어떤 직원 두 명이 서로 경쟁하면서 상품을 팔다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어요. 결국 두 사람 모두 해고됐어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그 사람들 참 너무하네. 돈 더 많이 벌려고 같은 동료끼리 싸움까지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동료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처럼 상품을 팔려고 다퉈선 안 돼요. 그래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직원의 손님은 절대 뺏지 않기로 해요.” 동료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거 좋네. 그럼 공평하잖아. 그럼 예전 그 직원들처럼 자기 상품을 팔려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딱 제가 팔 수 있는 만큼만 팔고 여기 규칙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럴게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먼저 손님을 받고 상품을 소개하면 저는 한쪽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손님을 받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재빨리 자기 상품을 소개했고 아예 제 손님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인데 빼앗아 가면 안 되죠. 먼저 손님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했잖아요.” 당시 동료는 제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동료는 또다시 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그 동료가 먼저 ‘손님을 먼저 받은 사람이 계속 응대한다’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그 동료는 규칙을 너무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제 손님을 가로채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손님을 딴 사람한테 빼앗기면 지금까지 일한 게 전부 헛수고고 돈도 하나도 못 번다며 뒤에서 저를 바보 같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동료가 번번이 제 손님을 가로채는 것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것도, 전부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지 않았나? 당신이 먼저 규칙을 안 지키고 내 손님을 가로챘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겁낼 줄 알고? 나도 바보는 아니야. 다음에 네가 먼저 손님 받으면 나도 빼앗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먼저 손님을 받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잽싸게 제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결국 동료가 소개한 상품을 샀습니다. 손님이 떠난 후,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손님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결국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와 동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같이 근무하면서도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계속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을 가로챘고, 그때마다 저는 엄청 화가 났습니다. 동료가 가로챈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빼앗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실적이 없고, 그럼 계속 여기에서 일할 수도 없을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진열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 지금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손님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전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사람이 착하면 남에게 속고, 말이 온순하면 사람이 타게 마련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반드시 싸워 쟁취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흉하고 악랄하게 변하게 되었으며, 동료끼리든 친척끼리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노리고 서로 죽이고, 추호의 양심이나 이성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제 손님을 가로챘고, 그걸 본 저는 네가 빼앗았으니 나도 빼앗을 거야.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라는 생각에 손님을 빼앗기 위해, 사람됨의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동료와 다투며 매일 질투와 싸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뿐, 여전히 사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야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세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거역으로 저를 대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저를 인도하시어, 사탄이 저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정상 인성은 모두 어떤 몇 가지 방면을 포함하고 있는가? 즉, 견식ㆍ이지ㆍ양심ㆍ인격이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외교(外交)를 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정상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어야 하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이 보았을 때 최소한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실생활에서 육체를 배반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다시는 이익을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격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이끄신 길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실생활에서도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20대 여자 손님 네 분이 마트에 왔고, 제가 먼저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는 얼른 끼어들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료의 모습에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속으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동료가 또 제 손님을 가로채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저는 돈도 못 벌고 다른 동료들한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저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얼른 묵묵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는 것을 보고 동료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는 이득을 위해 다투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상 인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며칠 전에 본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다면 동료가 손님을 빼앗아 갈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손님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든 그것은 전부 합당한 것이고, 피조물인 저는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동료와 싸우고 싶지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료가 경쟁하듯 화장품을 소개해도 더는 동료가 밉지 않았으며,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품을 소개했지만, 결국 여자 손님 네 분은 동료가 소개한 것이 아닌 제가 소개한 상품을 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님이 결국 누구의 상품을 구매하는지는 전부 하나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상품 소개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에 좌우하지 않으며, 손님에게 상품 소개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손님이 반드시 그걸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저한테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고, 가끔 제가 너무 바쁠 때는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점장님 친척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도 특별히 제게 상품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동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제게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동료와 손님을 빼앗으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돈을 위해 지친 날들과 이별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다

그는 가난한 시골집으로 시집 가서 항상 돈 걱정을 해야 했고 주변의 비웃음도 당해야만 했습니다. 악착같이 돈만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내팽개쳤고 다툼 끝에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쳐가던 중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삶의 방향도 찾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