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이 나누는 감동 스토리: 계모는 친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2018년 12월 21일

행복한 어린 시절, 깊은 모녀의 정

따스한 3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한 시골집 정원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은은한 꽃내음이 부지런한 꿀벌과 오색찬란한 나비를 유혹해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집에 있던 신이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갖고 장난치고 있었습니다. “신이야, 엄마 머리카락 갖고 장난 그만 치렴. 네 손 더럽잖니.” 그러자 신이는 헤헤하고 웃으며 장난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다시 엄마 뒤로 와 머리카락을 갖고 장난치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야, 엄마 머리카락으로 장난 그만 치래도. 엄마 지금 털실로 네 스웨터를 뜨고 있잖니. 여기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나비랑 꿀벌 모양을 넣어줄 건데 자꾸 장난치면 겨울에 예쁜 스웨터 못 입게 된다!” 몇 번이나 타이른 끝에 신이는 장난을 멈췄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신이는 하품을 하며 졸린다고 칭얼댔습니다. 엄마는 손에 있던 스웨터를 내려놓고 신이를 재웠습니다. 서서히 신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꿈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때 신이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엄마를 좋아했으며 엄마도 신이를 사랑했습니다!

진실을 알게 된 후 깨진 관계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신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매미가 나무에서 ‘맴맴’하고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신이는 조심스레 엄마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사람들이 엄마가 제 친엄마 아니래요. 엄마는 동생만 낳으셨고 저랑 언니는 낳지 않으셨대요. 사람들이 말하는 게 진짜예요? 말해주세요. 사람들이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죠?” 신이의 말을 들은 엄마는 낯빛이 어두워졌지만 부인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신이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걸 함부로 듣지 말라고 경고만 할 뿐이었습니다. 엄마의 태도를 보며 신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게 진짜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 신이는 언니와 외할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친엄마가 돌아가셨음을 알게 된 신이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지금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 새엄마였다니! 왜, 왜 내가 새엄마랑 살아야 해?’ 한동안 신이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신이는 그동안 TV에서나 사람들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왔기 때문에 피로 맺어진 가족만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은 모두 거짓이고, 새엄마도 자기 아들만큼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신이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과도 같았습니다….

갈등, 그리고 증오

늦가을, 날은 점점 추워지고 노란빛 나뭇잎은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신이는 엄마에게 문제집을 사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교과서에 나온 내용만 알아도 충분하다며 문제집을 못 사게 했습니다. 신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반 친구들이 자기를 비웃을까 걱정됐습니다. 여러 번 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는 허락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신이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계모인 엄마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신경 써 줄 리가 있겠습니까? 신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문제집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으며 그저 밥을 먹고 홀연히 학교로 떠났습니다.

등교하는 내내 신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분명 문제집을 사주셨을 텐데. 새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나한테 문제집도 안 사주고. 미워! 진짜 싫어! 엉엉…” 신이는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쏟아냈고 그렇게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길가에 있던 단풍잎이 서서히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신이의 가정 환경을 알게 된 반 아이들은 점점 신이를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이네 엄마는 새엄마래. 새엄마는 얘를 좋아하지 않아서 책도 안 사주신대. 우리도 얘랑 놀지 말자….” 심지어 같이 등교하던 무리도 모두 신이를 떠나 신이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신이는 마음이 너무 아파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의 가정 환경을 원망하며 모든 고통의 이유를 새엄마에게 돌렸습니다. “이게 다 새엄마가 나한테 못되게 대해서 그런 거야. 이게 다 새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그때부터 신이는 새엄마를 더욱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입니다. 신이가 학교 갈 때 새 옷을 입고 가려고 하자 새엄마는 나중에 외할머니 만나러 갈 때 입으라고 했고, 신이는 괜한 오기를 부리며 엄마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새엄마가 신이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하거나 심부름을 시킬 때면 입이 한껏 나와 짜증 난다는 티를 냈고, 심지어 속으로 ‘친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나를 아끼셔서 이런 일을 시키지 않으셨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신이와 동생이 싸울 때면 새엄마는 신이에게 동생이니까 양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면 신이는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네. 친자식은 다르다는 거지. 맨날 동생 편만 들고, 동생만 감싸주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이는 점점 말을 듣지 않았고 가을이 되어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새엄마의 말도 ‘위선’이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몸이 아파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고 어차피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니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올 때면 아빠와 언니에게만 자랑하고 새엄마의 존재는 무시해버렸습니다. 새엄마는 예전처럼 신이에게 잘해주었지만 신이는 그걸 다 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이는 새엄마를 미워했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한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가정 생활,

점점 심각해지는 갈등

겨울이 다가오자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습니다. 새엄마는 언니에게 같이 가서 땔감을 주워오자고 했습니다. 추운 걸 극도로 싫어하는 언니는 가기 싫어했고 새엄마는 잔소리를 퍼부어 신이의 언니는 결국 울면서 뛰쳐나갔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신이는 새엄마가 언니에게 너무 못되게 대한다고 생각했고 새엄마를 향했던 미움이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신이는 언니와 함께 밖에서 칠흑 같은 하늘을 바라보다 언니를 꼭 안아주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엄마뿐, 엄마가 없는 아이는 풀과도 같지. 엄마의 품을 떠나면 행복은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신이는 울먹이며 노래했습니다.

이때 새엄마도 가슴이 미어져 울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위해 희생했건만 아이에게서 새엄마의 딱지를 뗄 수 없음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새엄마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고 아이들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할머니는 자신에게 모든 탓을 돌리니 이 집, 아니 이 세상을 떠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 질주하는 차에 뛰어들었지만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운전자에게 한바탕 욕만 먹었습니다. 집 2층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남편에게 들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항상 다른 사람에게 들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해 겨울,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 겨울을 보냈는지 모를 일입니다….

복음과 함께 풀린 응어리

시간은 빠르게 흘러 신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신이와 언니, 그리고 새엄마는 모두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이는 형제자매와 함께 노래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사회에 깊이 물들고 봉건 예법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또한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같은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신이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사탄의 사상에 사로잡혀 그렇게 고통스러웠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이는 자신이 새엄마의 비밀을 알기 전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사탄의 생각에 사로잡혀 새엄마와 자신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가 관심과 사랑을 주어도 외면했고 심지어 일부러 새엄마를 무시하며 새엄마가 하는 행동은 모두 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거나, 동생에게 관심을 주거나, 언니와 싸울 때면 새엄마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새엄마에게 반감과 증오를 갖게 되어 새엄마가 집에서 살기 힘들도록 만들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제야 신이는 자신이 새엄마를 너무 많이 다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죄책감과 함께 스스로를 원망했고, 자신에게 잘못된 생각을 주입해 나쁜 마음을 먹게 한 사탄을 증오했습니다. 사탄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새엄마에게 냉정하게 대했으며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탄의 관점을 돌려세워 새엄마와 사이좋게 지낼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어서 신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 가족,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도 선택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과 일, 사물과의 관계나 그것이 성장 과정에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선택할 수 없다. 그럼 누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설계하는 것일까…? 따라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확실하다.』 『사람의 성장 배경이 정해져 있는 이상 성장기에 생활하는 환경 역시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성장 환경은 사람의 선택이나 선호가 아닌 창조주의 계획, 그의 세심한 설계, 삶의 운명에 대한 그의 주재에 의해 결정된다.』

신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느 집에서 태어나고 부모가 누구인지 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세심하게 설계해주신 것으로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친엄마는 잃었지만,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하며, 진취적인 새엄마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기꺼이 집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언니와 동생, 그리고 저를 세심하게 돌봐주었습니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주고 온갖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형제자매 간 차별하지 않고 완전히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새엄마를 주셨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단 말입니까? 이렇게 좋은 엄마를 소중히 여겨야 마땅한 일입니다.

신이는 참지 못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저를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저의 고통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 사탄에게 깊숙이 사로잡혀 새엄마를 다치게 했던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앞으로 생각을 바꿔 다시 새엄마와 잘 지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을 터놓자 풀린 오해

어느 날 아침, 신이는 새엄마, 언니와 함께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원칙’을 교제하면서 진리의 원칙에 따라 과거 쌓아뒀던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신이는 그때 엄마가 책을 사주지 않았던 것은 집안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책 한 권 살 돈이 없었고, 책을 사줘 버리면 온 가족이 굶어야 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잔소리해서 언니를 힘들게 했던 것이 마음 아팠다고 털어놨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등 뒤에서 재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죽음을 택하려 했었고, 만약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신이는 무언가 심장을 찌른 듯이 아팠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사탄의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새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온 집안에 쓸데없는 말다툼과 고민 거리만… 신이는 울먹이며 새엄마에게 사과했습니다. “제가 어려서 뭘 몰랐어요. 항상 ‘피는 물보다 진하다’, ‘새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다’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와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엄마한테도 너무 많은 상처를 드렸어요.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말하면서 신이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엄마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습니다….

해님이 서서히 몸을 감추고 석양이 집을 비추어 따스한 풍경을 자아냈습니다. 세 사람의 응어리가 완전히 풀린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지 않으셨다면 십여 년간 쌓여온 오해를 그 누가 풀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회복된 관계, 새엄마에서 친엄마로

그 후 신이네 가족은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문제에 맞닥뜨리면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나누었고, 다툼은 사라졌습니다. 서서히 신이와 새엄마와 관계도 예전처럼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신이와 새엄마가 농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랙터에 앉아있었던 두 사람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새엄마는 겉옷을 벗어 신이에게 씌워주었고, 신이를 꼭 안아 비에 맞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신이는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고 몹시 감동되었습니다. 그때 신이는 어렸을 때 엄마 품에 안겼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고 눈시울이 붉어져 이렇게 불렀습니다. “엄마…!”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신이의 마음속엔 하나님을 향한 감동으로 벅차올랐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잃어버렸던 엄마의 사랑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몇 년간 좁혀지지 않았던 감정의 골과 풀리지 않았던 오해가 해결되었습니다. 다시는 ‘한겨울’ 같은 가족관계를 견디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서연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위험한 지경에서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다

제 이름은 깐신(甘新)이라고 합니다. 올해 51살이고 평범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96년에 예수를 믿었고, 2004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읽고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여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였습니다. 2008년에 교회 책임자가 하나님 말씀 책을 보관하는 본분을 저에게 안배해 주었고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에서 책을 저희 집으로 운송해오면 저는 책들을 정리하고 잘 포장해서 작은 방 온돌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습니다. 매 번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책이 습해지지 않도록 창문을 열어 통풍을 시켰습니다. 2013년 8월16일 오전,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비가 주룩주룩 쉼없이 내렸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는 하늘이 갑자기 더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함께 치면서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은 물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는데 빗줄기다 굵어지더니 점점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저는 안절부절못하여 속으로 ‘만약 비가 이렇게 계속 내려 물이 불어나면 어떡하지? 방안에 보관한 하나님 말씀 책 30여 박스는 괜찮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얼른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홍수라도 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에 이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 책이 보관되어 있는데, 형제자매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들을 지켜주세요...’ 저는 기도를 끝내고 다시 창밖을 보았는데, 폭우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급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몇시간 동안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마음은 그야말로 하나님 곁을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다시 창밖을 보았습니다. 집 마당의 대문은 불어난 물에 일부가 부서져 닫히지 않았습니다. 물은 ‘콸콸콸’ 마당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고 (물은 이미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남편은 벽돌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의 입구를 막으려 애를 썼지만, 물살이 너무 세차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웃이 큰 소리로 저의 남편에게 “어서 피해요, 막지 말아요, 막아도 소용없어요, 산위에서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황급히 방으로 들어오면서 저에게 “여보,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어, 서둘러 장화를 신고 빨리갑시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망설였습니다. ‘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어떡하지? 갈까 말까? 물이 불어나 지금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거나 목숨을 잃게 되잖아’라고 생각하다가, ‘안돼, 본분이 중요해! 하나님의 부탁이 우선이고 본분이 우선인데, 내가 만약 간다면 본분을 다하지 못한거야, 하나님 말씀 책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다면 손실을 입게 되는데, 이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야, 내 목숨을 보존하려고 본분을 팽개칠 수 없어! 죽더라도 하나님 말씀 책을 보호해야 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미그적거리면서 장화를 신자 남편은 장화를 먼저 신고나서 “빨리 신어! 뭘 그렇게 꾸물거려?”라고 재촉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너의 의무를 다하며, 너의 직책을 이행해야 하고, 본분을 지켜야 할지니라.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드려야 할 너의 몫을 바칠지니라. 아니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남아 있을 자격이 없느니라.”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그래, 재난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지배하고 계시는데, 아무리 많은 비가 온다해도 다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만사만물은 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나는 지금 떠나면 안돼! 오늘 어떻게 해서라도 이 본분을 지켜야 돼, 하나님 말씀 책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하늘에 속하는 만나야, 사람에게는 말씀 책이 꼭 있어야 해, 나는 죽어도 이 방에서 죽을거야, 비록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할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장화를 신지 않았습니다. 이때, 산위에서 물이 흘러내려와 대문 입구를 거쳐 마당안으로 들어왔습니다.(집은 지대가 높고 마당은 지대가 낮습니다)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가, 여기 있어야 돼, 물살이 이렇게 센데 더 가면 휩쓸려 떠내려가게 될 거야, 우리 둘의 생사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어…” 남편은 “차라리 우리 옥상으로 올라갈까?”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다리가 마당에 있는 포도나무 받침대 아래에 있었던 탓에, 남편은 거친 물살을 헤치고 휘청거리며 사다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와 남편은 사다리를 타고 차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저녁 여섯시 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저의 집에서 동쪽 큰 길은 이미 강으로 변했고 이웃집의 담벼락은 홍수에 휩쓸려 갔으며, 장작더미는 홍수에 휩쓸려 도처에 나뒹굴었고, 말들은 머리만 드러낸 채로 물속에서 떠다니고, 이웃인 앞집 가족 세 명은 지붕위로 올라서서 긴장한 채로 떠들어대고 있었고, 이웃집 노인도 창고에 올라가서 지붕 기와에 엎드린채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온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십여분이 지나고 저와 남편은 ‘우지끈’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편은 “큰일났어, 물이 방안으로 들어왔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서 ‘땡그랑’하고 물건들이 여기 저기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 물이 불어나 집이 물에 휩쓸려 가면 하나님 말씀 책들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는데 어떡하지? 하나님 말씀 책은 내 생명과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인데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는 너무 보잘것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재난앞에서 저는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합니다. 하나님, 말씀 책들을 당신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께서 보호해 주세요. 재난은 하나님께서 장악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는 권병이 있으시며 이 모든 것들을 주재하고 관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겠습니다…’ 저와 남편은 차양위에 반시간 남짓 있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옷도 이미 다 젖었습니다. 번쩍이는 번갯불에 눈이 자극을 받아 순간 저는 흐릿하고(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차라리 우리 그냥 내려가요, 생사는 다 하나님 손에 달렸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데, 죽을 팔자라면 피할 수 없잖아요. 우리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남편은 차양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베란다 30~50cm높이까지 물이 불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된 방문의 나무판자 절반이 이미 물에 휩쓸려 떨어져 나갔고, 그 사이로 물이 방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창문 밖에서 방안을 들여다 보니 온통 물로 가득찼고 바닥에 있던 전병을 넣는 항아리는 이미 뒤집혀 있었는데 의자위에도 전병이 있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 남편은 황급히 창문을 열어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전병을 주방의 싱크대 위에 두었습니다. 뒤이어 저도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닥에는 의자, 우산, 기름통 그리고 다른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고 물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물이 계속 흘러 들어와서 온돌 위까지 올라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책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니, 속이 바질바질 탔지만 속수무책으로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또 온돌 가장자리에 앉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물이 온돌 위까지 곧 차올라 옵니다. 저는 어떡하죠? 이 책들이 물에 휩쓸려가면 어떻게 하나님을 뵐 면목이 있습니까! 또 형제자매님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 책이 꼭 있어야 합니다. 만약 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저도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도 가치가 없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저는 부엌으로 가서 대야를 가져와 고인 물을 밖으로 퍼냈습니다. 하지만 퍼내는 동시에 물이 흘러 들어와서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대야를 가져와 저희는 함께 물을 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여분 뒤 번개가 번쩍였는데 남편은 얼른 고개를 드니 대문 입구가 커다란 나무와 각종 잡다한 물건들로 막혀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기뻐 소리질렀습니다 “아!여보,빨리와서 봐봐!나무가 대문 입구를 막아 물이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있어”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대문 입구쪽을 보았는데 속으로 매우 흥분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인데, 하나님께서는 시시각각 함께하시고 저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아! 전능하신 실제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시고 당신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니이다. 우리 모두 당신의 날개 아래에 엎드려있으니 재해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신성한 보호와 보살핌이니다” 이때, 문 입구의 물살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또 한시간이 지나자 집 밖의 물들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더 힘을 내 물을 퍼냈습니다. 우리는 힘껏 노력하여 끝내 방안의 물을 다 퍼냈습니다. 저녁 10시경에 비는 그쳤고 저희는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들이 어떤 손실도 입지 않도록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행사를 찬양하며 아울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다음날, 저는 일찍 일어나서 물이 거의 빠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마당에 진흙이 두껍게 쌓였을 뿐, 담벼락은 물에 휩쓸려 가지 않았고 집에도 어떠한 손실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홍수라는 재난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권병과 전능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관리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그야말로 기묘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하나님은 줄곧 그렇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이번 경력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이 있게 하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했고,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게 했습니다. 깐신(甘新)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 (2)

고모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도운, 왜 말이 없어? 뭐 생각하니?” 전 말했습니다. “고모, 방금 읽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많은 친구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에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제 뜻대로 안 돼요.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어요. 게임을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제 마음대로에요. 아무도 절 건드릴 수 없어요. 맘에 안 들면 다 죽이면 되니까요. 게다가 제 레벨이 높고 좋은 아이템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이 절 따라요. 이런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고모는 절 보더니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고모의 한숨 소리를 듣고 전 물었습니다. “고모,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고모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사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할 수 있으시단다. 만물에서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고 하나님만이 긍정적인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인지를 구분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진리를 갖추어야만 사탄이 하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 선악을 분명히 가를 수 있단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얻으면 더는 사탄의 간계에 미혹되거나 통제를 받지 않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면 이해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이고, 다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필요한 자양품과 영양품이고, 사람이 정상 인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며, 사람이 장비해야 할 진리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의 생명은 더 빨리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를 더욱 밝히 깨닫게 된다. 너희의 분량이 자라게 되면 영계의 일을 더욱 꿰뚫어 보게 되고, 더욱 힘 있게 사탄을 이기게 된다.』 『진리란 바로 정상 인성의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었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인데, 모든 정상 인성(인성, *이지,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 도가 사람을 정상 인성 생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는지,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 그 진리가 현실적인지,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람의 인성과 이지가 갈수록 완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 생활이 갈수록 질서 있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사람 육체의 본성, 즉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異象),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폭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그런 말씀으로,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갖춰야 할 진리를 주신단다. 사탄이 우리에게 행하는 사악한 모든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에게 타락된 자신의 모습도 확실히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게 된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행하면 이 같은 사탄의 사악한 세력의 괴롭힘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돼. 하나님 말씀, 진리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때가 오면 사람의 마음과 사상은 변하기 시작한단다.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기고 사탄의 사악한 방해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게 되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생명으로 삼게 되면 곧 하나님의 구원을 입게 된단다. 인류의 마음속에서 진리가 생명으로 자리잡으면 사람은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미워하게 돼. 사탄의 독소와 사설, 그릇된 논리,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깨달아서 사탄을 배반할 수 있게 돼. 이게 바로 진리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효과란다.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람은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더는 고뇌하며 살 필요도 없고 사악한 추세에 얽매일 필요도 없게 되지” 고모의 말을 듣고서야 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권세가 있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계 흐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꼭 봐야 했습니다. “고모,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싶은데 한 권만 빌려줄 수 있으세요? 게임을 끊을 수 있다면 저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래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고모를 찾아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몰랐던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공허한 제 영혼을 채워주고 위로해 주는 걸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제 삶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어폰을 낀 채 하나님의 말씀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 찬양은 제 마음을 움직였고 이렇게 제 삶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체험한 것을 서로 나누며 전 한결 가벼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변한 제 모습을 보고 안심의 미소를 내비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갖춘 진리는 너무 적었기 때문에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탄은 각종 방법으로 절 유혹하고 타락시키려고 했었습니다. 하루는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짜증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집과 마당을 빙빙 돌았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든 채 화면 속의 캐릭터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입에서는 퍽…… 퍽……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운, 왜 그러니?” “할머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이렇게 말한 후 밖으로 나가 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쓰러져 죽은 돼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경련이라도 난 듯 아무것도 할 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게임으로 며칠 밤을 새워도 힘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도 힘들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맹세했었는데 지금 난 하나님을 속이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 자신이 뼛속까지 미워져 주먹을 불끈 쥐고 이불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맹세를 지키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이라는 걸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유혹과 미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없어 제 욕망을 이길 수가 없고 저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기도를 한 뒤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자 다음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거룩하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네게 인생의 밝은 길을 가게 할 수 있고,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할 수 있으며, 참된 인생을 살아내게 할 수 있고,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로 진리에서 생명을 얻도록 할 수 있고, 악에서 떠나고 사탄의 해와 통제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해 고해에서 벗어나 다시는 고통받지 않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렇게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계시며, 너의 앞날과 운명, 그리고 너의 인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한다. 이것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이런 실질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하고 인솔할 이 능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 실질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처럼 다시 제 마음을 비쳤고 전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시련이 임했을 때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지 않았고 기도를 통해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사탄을 따랐습니다. 오늘 사탄은 끊임없이 제게 게임을 하도록 유혹해 하나님 앞에서 했던 제 맹세를 저버리게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은 절 버리지 않으시고 제게 육체의 형벌을 내리셔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반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제게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은 제가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저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형벌과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또다시 사탄에게 휘말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단정하고 올바릅니다. 저는 지금껏 이 같은 언행과 인성을 갖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제게 관심을 보여 주고 끈기 있게 절 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탄을 배반하고 내치고 다시 떨쳐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로 사탄을 패배시키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사탄을 배반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순간, 사탄의 시험이 또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친구 임호는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와 말했습니다. “도운, 요새는 왜 게임 안 해? 새로운 게임이 있는데 진짜 재밌어. 완전히 빠져든다니까! 같이 놀자!” 새로운 게임이 있다는 말을 듣자 전 몸이 근질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더는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기로 했던 다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임호는 또 절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오늘따라 왜 그래? 평소 같으면 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당장 뛰어나왔잖아. 게임 안 한 지도 오래됐잖아! 너 완전히 딴사람 같아.” 이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게임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마음속에서 게임을 하러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다투는 듯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역사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같고, 마치 사람의 안배에서 비롯되거나 사람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역사마다, 매사마다 배후에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배후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지만 욥에게 임한 것은 사람의 행위이고 사람의 방해였던 것처럼,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역사마다 배후에서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고 있고, 배후에는 모두 싸움이 있다.』 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 순간은 바로 하나님이 제게 간증을 원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육체와 하나님 중 무엇을 만족시키는지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를 만족시키면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임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게임 안 해.” 임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네가 말한 거 맞아? 못 믿겠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나 이제 게임 끊었어. 앞으로는 게임 안 해” 게임을 하러 가지 않겠다는 제 말을 들은 임호는 말했습니다. “안 할 거면 됐어. 딴사람하고 해야지…” 임호가 간 후 제 마음은 평온해졌고 더는 방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기분이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누리는 평온함과 즐거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탄의 이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더이상 이같은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가끔은 제게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지만 전 육체를 따르지 않고 사탄의 그런 생각을 배반하여 사탄과 완전히 결렬하고 더는 사탄의 꼬임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릇된 길로 가던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후 저는 복음을 전하는 팀의 일원이 되어 몇 명의 친구에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말세 역사를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저의 간증도 들려주니 친구들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가장 의미 있는 인생과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행복을 찾다

부유한 삶을 위해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질병에 시달리게 되자 가족들도 냉정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잃어버렸던 행복을 찾아 주었습니다.

직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밖에 없는 내가 해외로 일하러 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고 더 열심히 일해서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기쁨에 빠져있을 때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다음날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 난 카운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동료를 통해 매달의 금전출납부를 계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날 더러 계산을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이해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마음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나는 학력이 낮고, 언어도 안 통해, 나이는 또 많고, 해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훨씬 힘들 거야!' 순간,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자신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다고 느꼈다. 고심 끝에 매니저를 찾아가 나는 학력이 낮고, 영어를 못해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매니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사장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기왕 당신이 하기로 안배된 것이니 다른 건 아무 것도 말씀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보아하니 짤리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이때, 나의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나는 일할 기운도 없어서 퇴근 때까지 겨우 버텼다. 저녁 예배 때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고, 한 자매님이 찬송가 한곡을 틀어주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 찬송을 듣고 내 마음은 훨씬 밝아졌다. 나는 모든 일이 생길 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 내가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고 이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여 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더러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학력이 낮아서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어려움에 살면서 자신의 본성과 실질이 너무 나약한 것을 보았다. 일이 생기면 자신을 규정하고 어려움에 맞서서 나아가지 않고 항상 도망치고 회피하려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도 입으로만 인정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믿음이 작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 환경을 빌어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이때, 나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해 이 일을 받아들일 자신도 생겼다. 월말 때, 매니저는 나에게 다음 달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는 학력도 낮은데, 계산을 컴퓨터로 하더라도 배워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실제 체험을 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을 보고 곧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며 나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진심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너를 위해 모든 나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전력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못할 일을 너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네가 입만 살아 생각 없이 말은 했지만 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은 전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며, 총명과 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비록 학력이 낮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자신만만해서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생겼다. 마침내 내가 카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출근 후 나는 자발적으로 프런트에 갔고 매니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동료를 붙여서 가르쳐 드리라고 할게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라는 것을 안다. 잠시 후, 한 동료가 계산서를 들고 왔는데, 동료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나에게 어떻게 계산을 하고, 어떻게 계산서를 분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뭉치 한 뭉치의 영어 계산서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제가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계산서를 분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산서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순간 전에 내가 전혀 계산할 줄 몰랐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린 후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계산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나는 모든 계산서를 꺼내서 확인하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어를 볼 줄 몰라도 계산서를 맞출 수 있어. 업체마다 계산서는 거의 다 달라. 예를 들면 원고지의 크기, 원고지의 색상, 원고지 위의 글자체의 방위 등등.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업체마다 표제도 다 달라. 그러니까 표제 위의 자음 몇 개만 맞추면 돼. 이러한 생각에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얼른 오래된 계산서와 새로운 계산서를 모두 꺼내놓고 대조해 봤는데,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방법으로 금세 계산서를 분류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런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에서 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아주 순조롭게 당일 업무를 다 마쳤다. 그 후, 매니저는 동료 직원들 앞에서 내가 카운트 업무를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전혀 학력이 낮은 사람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실제 겪었던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요즘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부모가 아이를 잘 교육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에서 얻어야 할 인생 깨달음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떠날 때 왜 아쉬움을 안고 갔는지 알고 있나요? 그의 유언이 우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어떻게 웹소설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인가?

오늘날 웹소설은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 일부가 되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출근할 때도, 차에 탔을 때도, 심지어 신호등의 녹색불을 기다릴 때도 소설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고 한 권 그리고 한 권을 읽습니다. 소설의 허구 세상 속에 사는 건 아편을 피우는 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웹소설에 깊이 빠졌던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5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는 한 가게에서 숙제를 마치고 무의식적으로 점원이 테이블위에 놓은 두꺼운 책 2권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에 몇 장을 넘겨보니 그 책들은 바로 무협 소설이었습니다. 그 후로 전 시간을 때울 때 소설을 보았습니다. 산 중에 사는 몇몇 무림고수가 의롭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고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이같이 ‘멋진’ 삶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방학 내내 소설에 빠져 지냈고 ‘내가 이 고수들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가졌습니다! 중학교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자 저는 속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저의 유일한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소설 속 세상만이 나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해주었습니다.나는 조금씩 소설의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소설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또 소설을 보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전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어쩔 수 없이 며칠은 ‘얌전히’ 지냈습니다. 하지만 뭘 하든 마음이 계속 불안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결국 전 참지 못하고 다시 소설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전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소설을 보았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소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에 차라리 소설을 한 편 더 보는 게 낫지’. 전 배가 고파도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심취해 있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정신이 온통 몽롱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져 버려서 길을 걸을 때면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 잠시라도 소설을 안 보면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기라도 한 듯 고통스러워져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부모님이 주신 급식비마저 웹소설을 보는 데 썼습니다. 낮에 학교에 있을 때는 배고픈 것을 참고 저녁에 집에 와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위장도 상했습니다. 심할 때는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널려있는 이불에 실수로 불이 붙게 했습니다. 동생이 절 불렀지만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셔서 불을 끄고 절 혼내실 때야 밖에 불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소설에 빠진 저를 여러 번 타일렀지만 전 부모님의 말씀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은 제 책가방을 검사해 소설책을 찾아내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갑작스레 저의 방에 들어와 제가 몰래 소설을 보고 있지는 않나 확인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그 책을 찢거나 대여 카드를 태웠고, 아니면 책을 그대로 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종 방법을 쓰셨지만 제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 전 여전히 소설의 세상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제가 소설 속 캐릭터가 된 환상을 가졌습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소설 줄거리만 생각했고 꿈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져서 잠을 깬 후에도 눈을 감고 꿈 속의 줄거리를 되새겼습니다. 전 평생 이 같은 세상 속에 살고만 싶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차에 치여 죽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종일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제 정신은 온통 혼미해졌고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소설에 빠져 지내다 보니 활발했던 제 성격도 괴팍하게 변해버렸고 심지어 가족과의 대화도 꺼려졌습니다. 정상이던 시력도 근시가 매우 심해졌고 성적은 뚝 떨어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한 저는 취직을 한 후에는 소설에 더욱 빠져 지냈습니다. 가끔은 밤새 소설을 보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 오면 가끔은 소설이 지겨워져서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회했습니다. 소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기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많은 고통을 받던 저는 소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어머니는 제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너무 졸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또한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신나지 않아 집에서 소설을 보는 게 예배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예배에 잘 나가지 않았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볼 때는 머릿속에 여전히 소설의 줄거리가 맴돌았습니다. 2015년,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온 후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제가 소설에 심취한 건 사실 인터넷 게임과 같이 모두 사악한 풍조에 속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에 조금씩 마음을 뺏겼고 소설 속 세상에 완전히 심취했습니다. 착하고 말을 잘 듣던 저는 괴팍하고 유별나게 변해버렸습니다. 또한 항상 환상 속에 살아가면서 소설이 아닌 것들에는 아무 흥미도 못 느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 육체를 배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인터넷 게임이나 소설 속에 사는 걸 싫어하십니다. 저희가 사탄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저 역시 육체를 배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 절 웹소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전 사악한 풍조에 너무 깊게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안 보기 시작한 첫째 날, 저는 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 날, 전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소설 줄거리뿐이었고 좌불안석으로 있으면서 휴대폰을 쳐다보기만 해도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렸던 말씀을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나님도 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거야’. 이렇게 전 결국 소설을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마치 뱀과 같아 본질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목적을 전부 달성할 때는 네가 곧 목숨을 잃을 때이다.』 그러자 전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소설만 본다면 사탄에게 야금야금 삼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마음속으로 육체를 배반하고 소설을 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우선 하나님에게 다짐 하지 말아야겠어. 오늘 밤에 다짐을 해버리고 소설을 안 보면 앞으로는 다신 볼 기회가 없을 거야. 오늘 밤까지만 보고 내일 다시 다짐해야지!’ 이렇게 전 다시 휴대폰을 열고 밤새도록 소설을 봤습니다. 소설을 보는과정에 저의 마음속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는 걸 알았고 사탄에게 속히고 참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전 자책을 하며 고통 속에서 밤새 소설을 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늘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습니다. 저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제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전 재빨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 비록 육체를 배반할 마음은 있었지만 진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억제하다 보니 결심을 행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울 때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알았습니다. 소설도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독약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고 어떻게 해도 끊을 수가 없어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의 생활을 잃게 만듭니다. 이 모든 건 사람을 해치는 사탄의 악한 계략인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항상 온갖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함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희는 진리도 없고 분별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항상 속임을 당하고 사탄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참해를 당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그 결과를 알게 되자 전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기적절하게 절 구원해주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제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설로 고통받던 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통제를 벗어나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야 사탄이 횡행하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전 다시는 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또 본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달갑게 받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또 휴대폰을 열어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다짐을 생각하니 소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휴대폰 화면만 계속 만지작댔습니다.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육체를 배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설의 줄거리도 조금씩 희미해졌고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전 소설을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점점 소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이 날마다 알차게 생활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야만 시험과 함정으로 가득한 사악한 세계에서 저 자신을 지키고 사탄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하나님의 집에서 본분을 하며 매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희는 마음의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합니다. 기쁠 때는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며 힘든 일 앞에서는 함께 기도하고 교통하며 서로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저는 웹소설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