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이 나누는 감동 스토리: 계모는 친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2018년 12월 21일

서연

행복한 어린 시절, 깊은 모녀의 정

따스한 3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한 시골집 정원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은은한 꽃내음이 부지런한 꿀벌과 오색찬란한 나비를 유혹해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집에 있던 신이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갖고 장난치고 있었습니다. “신이야, 엄마 머리카락 갖고 장난 그만 치렴. 네 손 더럽잖니.” 그러자 신이는 헤헤하고 웃으며 장난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다시 엄마 뒤로 와 머리카락을 갖고 장난치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야, 엄마 머리카락으로 장난 그만 치래도. 엄마 지금 털실로 네 스웨터를 뜨고 있잖니. 여기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나비랑 꿀벌 모양을 넣어줄 건데 자꾸 장난치면 겨울에 예쁜 스웨터 못 입게 된다!” 몇 번이나 타이른 끝에 신이는 장난을 멈췄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신이는 하품을 하며 졸린다고 칭얼댔습니다. 엄마는 손에 있던 스웨터를 내려놓고 신이를 재웠습니다. 서서히 신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꿈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때 신이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엄마를 좋아했으며 엄마도 신이를 사랑했습니다!

진실을 알게 된 후 깨진 관계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신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매미가 나무에서 ‘맴맴’하고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신이는 조심스레 엄마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사람들이 엄마가 제 친엄마 아니래요. 엄마는 동생만 낳으셨고 저랑 언니는 낳지 않으셨대요. 사람들이 말하는 게 진짜예요? 말해주세요. 사람들이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죠?” 신이의 말을 들은 엄마는 낯빛이 어두워졌지만 부인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신이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걸 함부로 듣지 말라고 경고만 할 뿐이었습니다. 엄마의 태도를 보며 신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게 진짜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 신이는 언니와 외할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친엄마가 돌아가셨음을 알게 된 신이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지금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 새엄마였다니! 왜, 왜 내가 새엄마랑 살아야 해?’ 한동안 신이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신이는 그동안 TV에서나 사람들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왔기 때문에 피로 맺어진 가족만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은 모두 거짓이고, 새엄마도 자기 아들만큼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신이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과도 같았습니다….

갈등, 그리고 증오

늦가을, 날은 점점 추워지고 노란빛 나뭇잎은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신이는 엄마에게 문제집을 사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교과서에 나온 내용만 알아도 충분하다며 문제집을 못 사게 했습니다. 신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반 친구들이 자기를 비웃을까 걱정됐습니다. 여러 번 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는 허락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신이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계모인 엄마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신경 써 줄 리가 있겠습니까? 신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문제집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으며 그저 밥을 먹고 홀연히 학교로 떠났습니다.

등교하는 내내 신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분명 문제집을 사주셨을 텐데. 새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나한테 문제집도 안 사주고. 미워! 진짜 싫어! 엉엉…” 신이는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쏟아냈고 그렇게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길가에 있던 단풍잎이 서서히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신이의 가정 환경을 알게 된 반 아이들은 점점 신이를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이네 엄마는 새엄마래. 새엄마는 얘를 좋아하지 않아서 책도 안 사주신대. 우리도 얘랑 놀지 말자….” 심지어 같이 등교하던 무리도 모두 신이를 떠나 신이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신이는 마음이 너무 아파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의 가정 환경을 원망하며 모든 고통의 이유를 새엄마에게 돌렸습니다. “이게 다 새엄마가 나한테 못되게 대해서 그런 거야. 이게 다 새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그때부터 신이는 새엄마를 더욱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입니다. 신이가 학교 갈 때 새 옷을 입고 가려고 하자 새엄마는 나중에 외할머니 만나러 갈 때 입으라고 했고, 신이는 괜한 오기를 부리며 엄마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새엄마가 신이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하거나 심부름을 시킬 때면 입이 한껏 나와 짜증 난다는 티를 냈고, 심지어 속으로 ‘친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나를 아끼셔서 이런 일을 시키지 않으셨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신이와 동생이 싸울 때면 새엄마는 신이에게 동생이니까 양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면 신이는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네. 친자식은 다르다는 거지. 맨날 동생 편만 들고, 동생만 감싸주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이는 점점 말을 듣지 않았고 가을이 되어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새엄마의 말도 ‘위선’이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몸이 아파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고 어차피 엄마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니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올 때면 아빠와 언니에게만 자랑하고 새엄마의 존재는 무시해버렸습니다. 새엄마는 예전처럼 신이에게 잘해주었지만 신이는 그걸 다 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이는 새엄마를 미워했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한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가정 생활,

점점 심각해지는 갈등

겨울이 다가오자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습니다. 새엄마는 언니에게 같이 가서 땔감을 주워오자고 했습니다. 추운 걸 극도로 싫어하는 언니는 가기 싫어했고 새엄마는 잔소리를 퍼부어 신이의 언니는 결국 울면서 뛰쳐나갔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신이는 새엄마가 언니에게 너무 못되게 대한다고 생각했고 새엄마를 향했던 미움이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신이는 언니와 함께 밖에서 칠흑 같은 하늘을 바라보다 언니를 꼭 안아주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엄마뿐, 엄마가 없는 아이는 풀과도 같지. 엄마의 품을 떠나면 행복은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신이는 울먹이며 노래했습니다.

이때 새엄마도 가슴이 미어져 울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위해 희생했건만 아이에게서 새엄마의 딱지를 뗄 수 없음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새엄마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고 아이들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할머니는 자신에게 모든 탓을 돌리니 이 집, 아니 이 세상을 떠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 질주하는 차에 뛰어들었지만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운전자에게 한바탕 욕만 먹었습니다. 집 2층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남편에게 들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항상 다른 사람에게 들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해 겨울,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 겨울을 보냈는지 모를 일입니다….

복음과 함께 풀린 응어리

시간은 빠르게 흘러 신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신이와 언니, 그리고 새엄마는 모두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이는 형제자매와 함께 노래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사회에 깊이 물들고 봉건 예법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또한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같은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신이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사탄의 사상에 사로잡혀 그렇게 고통스러웠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이는 자신이 새엄마의 비밀을 알기 전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사탄의 생각에 사로잡혀 새엄마와 자신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가 관심과 사랑을 주어도 외면했고 심지어 일부러 새엄마를 무시하며 새엄마가 하는 행동은 모두 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거나, 동생에게 관심을 주거나, 언니와 싸울 때면 새엄마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새엄마에게 반감과 증오를 갖게 되어 새엄마가 집에서 살기 힘들도록 만들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제야 신이는 자신이 새엄마를 너무 많이 다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죄책감과 함께 스스로를 원망했고, 자신에게 잘못된 생각을 주입해 나쁜 마음을 먹게 한 사탄을 증오했습니다. 사탄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새엄마에게 냉정하게 대했으며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탄의 관점을 돌려세워 새엄마와 사이좋게 지낼 것을 결심했습니다.

이어서 신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 가족,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도 선택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과 일, 사물과의 관계나 그것이 성장 과정에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선택할 수 없다. 그럼 누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설계하는 것일까…? 따라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확실하다.』 『사람의 성장 배경이 정해져 있는 이상 성장기에 생활하는 환경 역시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성장 환경은 사람의 선택이나 선호가 아닌 창조주의 계획, 그의 세심한 설계, 삶의 운명에 대한 그의 주재에 의해 결정된다.』

신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느 집에서 태어나고 부모가 누구인지 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세심하게 설계해주신 것으로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친엄마는 잃었지만,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하며, 진취적인 새엄마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기꺼이 집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언니와 동생, 그리고 저를 세심하게 돌봐주었습니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주고 온갖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형제자매 간 차별하지 않고 완전히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새엄마를 주셨는데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단 말입니까? 이렇게 좋은 엄마를 소중히 여겨야 마땅한 일입니다.

신이는 참지 못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저를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저의 고통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 사탄에게 깊숙이 사로잡혀 새엄마를 다치게 했던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앞으로 생각을 바꿔 다시 새엄마와 잘 지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을 터놓자 풀린 오해

어느 날 아침, 신이는 새엄마, 언니와 함께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원칙’을 교제하면서 진리의 원칙에 따라 과거 쌓아뒀던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신이는 그때 엄마가 책을 사주지 않았던 것은 집안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책 한 권 살 돈이 없었고, 책을 사줘 버리면 온 가족이 굶어야 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잔소리해서 언니를 힘들게 했던 것이 마음 아팠다고 털어놨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등 뒤에서 재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죽음을 택하려 했었고, 만약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신이는 무언가 심장을 찌른 듯이 아팠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사탄의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새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온 집안에 쓸데없는 말다툼과 고민 거리만… 신이는 울먹이며 새엄마에게 사과했습니다. “제가 어려서 뭘 몰랐어요. 항상 ‘피는 물보다 진하다’, ‘새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다’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와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엄마한테도 너무 많은 상처를 드렸어요.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말하면서 신이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엄마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습니다….

해님이 서서히 몸을 감추고 석양이 집을 비추어 따스한 풍경을 자아냈습니다. 세 사람의 응어리가 완전히 풀린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지 않으셨다면 십여 년간 쌓여온 오해를 그 누가 풀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회복된 관계, 새엄마에서 친엄마로

그 후 신이네 가족은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문제에 맞닥뜨리면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나누었고, 다툼은 사라졌습니다. 서서히 신이와 새엄마와 관계도 예전처럼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신이와 새엄마가 농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랙터에 앉아있었던 두 사람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새엄마는 겉옷을 벗어 신이에게 씌워주었고, 신이를 꼭 안아 비에 맞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신이는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고 몹시 감동되었습니다. 그때 신이는 어렸을 때 엄마 품에 안겼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고 눈시울이 붉어져 이렇게 불렀습니다. “엄마…!”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신이의 마음속엔 하나님을 향한 감동으로 벅차올랐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잃어버렸던 엄마의 사랑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몇 년간 좁혀지지 않았던 감정의 골과 풀리지 않았던 오해가 해결되었습니다. 다시는 ‘한겨울’ 같은 가족관계를 견디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모든 사람의 인생 역정은 갓난아기부터 시작되는데,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의 인·사·물도 부단히 바뀝니다. 우리는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명에 순응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인생을 체험하든,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이모는 병원에 근무합니다. 병원에 가서 이모를 찾아뵐 때마다 병실을 지나게 되는데, 병상에는 약물로 겨우 연명하는 노인들이 누워 계십니다. 매번 무심결에 노인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저는 왠지 모르게 막연하고 뭔가 두려워하는 그 눈빛에 동정심이 생기게 됩니다. 노인들 옆에는 가족들이 분주히 드나들며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물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옷을 입혀주기도 하고 약을 먹이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온갖 방법으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기어가 일단 돌아가면, 그 누구도 역전 시킬 수 없습니다. 예전에 아래와 같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사 한 분이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지만,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투여하는 약이 날로 많아지면서 눈이 흐려져 물건이 잘 안 보이고, 다리도 저려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단 결과 약물중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해, 신장질환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 그 교사는 ‘가족들이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 난 차라리 죽는게 나아. 근데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데, 왜 안 되지? 왜 죽음이 두렵지? 왜 이 세상을 떠나기가 두렵지?...’라는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마지막까지 운명과 싸울까요? 알고 보니 다 죽음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 아직 젊은 저는 늘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왜 죽음이 정말로 다가왔을 때, 담담하게 마주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저는 드디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왜 현재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 죽음에 직면할 때 어떤 사람은 바지에 오줌을 쌀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들부들 떨 것이며, 어떤 사람은 혼절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소리 내어 통곡할 것인데, 이런 것은 절대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야 사람이 돌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할 때 이런 난감한 표현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까닭은 주로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안배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깨달음이 없고 더욱이 진실한 순복도 없기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모든 것을 안배하고 장악하려고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자신의 생사를 장악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쓰였습니다. 이 말을 묵상하면서, 죽음에 임했을 때의 사람들의 여러가지 표현들이 떠올랐는데, 마음속의 의혹이 점차 풀렸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조물주를 알지 못하고,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대해 인식이 없으며, 더욱이 진실한 순복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어떤 배경에서 죽을지는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마음속에 각종 사탄의 독소가 가득 차서 더 이상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으로 인생을 바꾸려 하고 늘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 고통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고, 아무 아쉬움과 걱정도 없이 인생의 마지막 관문에 직면하고 싶어 한다면, 그 유일한 경로는 바로 아무 유감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인간 세상을 떠날 때 아무 유감도 남기지 않을 않는 유일한 경로는 바로 조물주의 주재를 인식하고, 조물주의 권병을 인식하고,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순복하고,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 순복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인류의 분쟁을 멀리하고 죄악을 멀리하고 사탄의 매임에서 떠나 욥처럼 조물주의 인도 아래에서, 축복 속에서 살 수 있고, 자유와 해방을 받으면서 살고, 가치 있고 의의 있게 살고, 떳떳하게 살 수 있으며, 욥처럼 조물주가 시련하고 거두어 가는 것에 순복할 수 있고, 조물주가 지배하고 안배하는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욥처럼 일생 동안 조물주를 경배하여 조물주의 칭찬을 받게 되고, 조물주가 친히 발한 음성을 듣게 되고, 조물주의 나타남도 보게 되며, 욥처럼 즐겁게 살다가 즐겁게 세상을 떠나고, 아무 고통도, 아무 걱정도, 아무 유감도 없게 되며, 욥처럼 빛 속에서 살고, 빛 속에서 인생의 각 관문을 넘기며, 빛 속에서 순조롭게 자신의 평생 길을 다 걸어가고 순조롭게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게 된다. 즉, 피조물로서 조물주의 주재를 경력하고 체험하고 인식하고 난 후에 빛 속에서 떠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조물주가 칭찬하는 피조된 인류로서 조물주의 곁을 지키게 된다.” 이 말을 통해, 저는 오직 조물주의 섭리와 주재에 대해 인식이 있고, 진실로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해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은 기한이 차서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르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든 축복을 주시든,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인정하고, 순복하기를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임했을 때, 그는 아무 걱정도 유감도 없었고, 자신의 결말을 걱정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그는 즐거웠고 죽음의 통제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단어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또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체험하든, 어쨌든 우리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정해주신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조물주의 섭리와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자신의 인생을 욥처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이런 것을 진정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연히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할 것이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내려놓고 머지않아 임할 모든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순복하면서 조물주가 사람을 위해 안배해 놓은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할 것이며, 무턱대고 거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추천 동영상: 「천국의 꿈」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1)

어느 여름 방학 오후, 숙제를 마치고 할머니를 도와 일을 끝내자 학교 친구인 임호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도운, 계집애처럼 집에서 뭐해?”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쉬고 있어” 임호는 비밀스럽게 “가자. 내가 재밌는 곳 알려 줄게.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라고 말하며 피시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피시방에 들어간 저는 이곳저곳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인터넷 마니아’들은 온 정신을 집중해 눈앞의 컴퓨터를 바라보고 끊임없이 키보드를 치면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무척이나 재밌어 보였습니다. 그때 임호는 무시하는 눈빛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너 피시방 처음이지? 네 꼴 좀 봐라.” 저는 화가 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얕보지 마. 하는 법만 배우면 내가 너보다 더 잘할 거라고!’ 우리는 곧바로 컴퓨터 2대가 붙어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임호는 익숙하게 컴퓨터를 켠 후 제게 컴퓨터를 켜는 법을 알려주고 게임 아이디를 만들어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이 아이디는 네 거니까 맘껏 놀아도 돼.” 컴퓨터의 게임 화면을 보면서 마우스를 움직이니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면 속 사람이 들고 있던 총을 마우스로 움직이자 누군가가 죽었습니다. 또다시 마우스를 움직이니 다른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30분도 안 돼서 저는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습니다. 임호가 저를 부를 때는 이미 해가 다 밝은 후였습니다. “넌 나보다도 정신이 말짱하네. 집에 안 갈 거야?” 제가 대답했습니다. “좀 더 놀자!” 임호가 “넌 더 놀 거면 놀아. 난 집에 가서 잘래”라고 말하자 전 어쩔 수 없이 피시방 카드를 뽑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뒤로 제 머릿속은 온통 게임 화면으로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꿈에서도 게임을 했습니다… 조금씩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피시방에 갔고 하루라도 피시방에 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게임에 중독된 건가? 지금은 방학이라 괜찮지만 개학해서도 이러면 어쩌지? 에이, 신경 쓰지 말고 놀 수 있을 때 더 놀자! 개학하면 바빠서 어차피 못 놀 거야.’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개학하고 수업을 얼마 듣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게임뿐이었고 피시방에 가고 싶어 답답해졌습니다. 한번은 너무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에게 몸이 아파 병원에 간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전 지금까지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제 말을 믿고 조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전 책가방을 메고 신나게 피시방으로 뛰어가 밤새 게임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게임 중독이 점점 심각해졌고 저는 온갖 거짓말로 선생님과 할머니를 속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만 되면 할머니에게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제가 게임에 빠진 걸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절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앞으로 또 게임하면 학교는 나오지 말거라.” 할머니도 제게 게임은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시며 이렇게 가다간 게임이 절 망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독이 심해져 나중에는 아예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피시방에 가면 일주일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나중에는 타지에 계신 아버지까지 일부러 집에 돌아오셔서 절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게임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저는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화를 내면서 집을 뛰쳐나갔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니 갖고 있던 돈을 다 써버려서 더는 지낼 곳이 없었습니다. 피시방에서 잠을 자니 사장은 절 쫓아내 버렸습니다. 절 찾기 위해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고 학교에서는 저의 퇴학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욱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고 기댈 곳이 없던 그때, 어릴 적부터 절 아껴 주던 고모가 떠올랐습니다. 고모 댁을 찾아가니 고모는 이미 제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고모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돌아왔구나. 왔으면 됐다. 밥 안 먹었지? 고모가 맛있는 거 차려 줄게!” 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모가 음식을 차려 주자 전 밥 2공기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며칠간 굶었던 저는 이렇게 든든한 밥 한 끼를 먹게 되었습니다. 고모는 저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이게 다 사탄이 사람을 해친 거란다. 착하던 아이를 이 지경까지 만들다니. 가증스러운 사탄 같으니라구.”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고 한 고모의 말을 듣고 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게 제가 게임에 빠진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고모가 말했습니다. “도운, 너처럼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것은 이미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단다. 부모들도 어쩔 수가 없지. 어떤 부모는 게임 중독 치료소로 아이를 보내기도 하는데 결국 나와서 다시 게임을 한단다. 아무 소용이 없는 거지. 더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말하시며 서랍 속에서 얇은 책을 한 권 꺼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네가 그들 정상 인성에 관한 일을 말하고 정상 인성에 관한 화제를 이야기해도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흥미를 갖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 않고 듣자마자 머리를 긁적이고 반감을 가지면서 정상적인 인류와 공통 언어가 없고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면 이야깃거리가 있다....일하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일하면 얼마나 피곤해. 게임 하면 얼마나 끝내 주는데. 총알 한 방에 하나씩 쏴 죽이고! 일은 언제까지 해야 끝날 수 있지? 그래도 게임 하는 게 재미있어. 얼마나 홀가분해. 일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 뭘 얻을 수 있지?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당신이 열심히 일을 해도 하루 세 끼 밥 먹는 거 아니야? 나보다 더 좋아보이는 건 없네 뭐! 게임 하는 게 얼마나 좋다고. 거기에 앉으면 뭐나 다 있어. 가상 세계에서 살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사람에게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시간을 지켜 출근하라고 하면 어떤 느낌일까?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과 말하는데,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에게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터넷 게임이라는 사악한 추세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단다. 사람은 일단 게임에 빠지면 게임에 통제당하고 온종일 가상의 세계에 살게 돼.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공부나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생각하지 않게 돼. 심지어 정상적인 인성이 갖추어야 할 먹고 입고 자는 것조차 비정상적이게 되어서 사람 전체가 ‘무너지게’ 된단다. 그래서 옳은 길이 아니라고 하는 거야. 이같이 사악한 추세를 겪고 살아가면 사람의 마음은 방자하고 교활해지고 이기적이고 잔인해져. 심지어는 복수와 증오도 생겨난단다. 사탄은 이 같은 인터넷 게임을 이용해 사람을 집어삼키고 타락시키는 거야.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인터넷에 빠져 있는지 몰라. 중독이 심할수록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단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와 원수지간이 되어서 가출까지 해.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면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단다. 인터넷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빠져서 옆 사람이 맘에 안 들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죽이고 나서도 그걸 모르고 경찰에 잡혀서야 자신이 살인했단 걸 아는 거지. 어떤 사람은 게임만 하다가 악령이 들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미치광이가 돼서 부끄러움도 모르게 돼.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게임 때문에 학업을 망치고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된단다. 도운, 너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예전에는 손에 꼽힐 만큼 공부도 잘하고 항상 스스로 공부했었지. 할머니는 네가 철이 든 착한 아이라고 항상 칭찬했어.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항상 할머니도 돕고 돌봐 드렸잖아. 하지만 지금은 어떠니? 인터넷 게임에 빠진 뒤로는 완전 딴사람이 됐어. 네 칭찬을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구나.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항상 거짓말로 돈만 받아갔지. 아버지한테 꾸지람 좀 들었다고 이렇게 집도 나가버리고 말이야. 온 가족이 다 널 걱정한단다… 이게 다 게임이 준 고통이 아닐까? 모두의 고통과 걱정은 다 네가 게임에 빠진 후로 생겨난 거잖니?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 적 있니?” 제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모가 말했습니다. “도운, 한번 이 말씀을 읽어주겠니?” 저는 책을 건네받고 읽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게임으로 대신하고 싶어지면서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어떤 애들이 게임 하는 것은 부모가 아무리 감시하려고 애를 써도 안 된다. 낮에는 안 하지만 밤이 되어 부모가 잠들고 나면 아이는 몰래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밤새도록 게임을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한 어린 아이가 열 몇시간 동안 컴퓨터 게임을 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아이는 그동안 분명히 자지 않고 계속 했을 텐데, 어느 정도까지 했겠느냐? 부모가 발견했을 때, 아이는 이미 컴퓨터 앞에서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손이나 몸은 여전히 게임을 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어떻게 죽었겠느냐?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게임을 하다가 뇌괴사로 죽었다고 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게임을 하는 것은 정상 인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냐?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왜 그것을 끊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써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이런 게임은 어떻게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떻느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너희들은 한가할 때 시간 때우려고 게임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느냐? (네.) 그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게임을 하는 것은 사회적 풍조를 따라가는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네가 요만한 일조차도 끊지 못하고 자제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하다.』 여기까지 읽자 고모는 절 보고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게임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 게임은 독약과 같아서 하면 할수록 더욱 빠지게 돼.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고 결국 전부 통제당한단다.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어지지. 끊고 싶어도 못 끊고 결국 게임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사탄이 이런 사람을 완전히 삼키는 거지. 네가 이걸 떨쳐내지 못하고 사탄이 주는 고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게임에만 계속 빠져 산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니! 계속 게임을 한다면 너 자신을 완전히 ‘망치게’ 되는 거야.” 고개를 숙인 저는 게임을 하지 않던 옛 모습을 떠올려 보니 지금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할머니, 선생님 모두가 저를 착한 아이이고 좋은 학생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숙제를 마치고 항상 할머니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게임만 생각합니다. 제가 걱정되어 타지에 계신 아버지까지 집에 오셨지만 전 아버지 말씀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항하고 가출까지 해 가족들을 걱정시켰습니다. 이제는 퇴학까지 당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고모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전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전 인터넷 게임에 얽매여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정말 옳았습니다. 이렇게 게임만 하다가 닥치게 될 결과가 전 너무 두려웠습니다. 다음 내용: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2)

[크리스천의 간증]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심장병 환자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2017년 봄, 몸이 불편하고 호흡이 가빠와 대학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심장 승모판에 문제가 생겼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을 떠올리며 나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졌다. 나중에는 몸이 얼마나 약해졌던지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했다. 내 상태가 계속 나빠지자 아들은 예전의 내 진료기록을 갖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선 내가 심장병에 걸렸고, 아주 심각한 단계라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심부전증으로 번져 언제든 죽음의 고비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아들은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나를 데리고 베이징에 있는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게 했다. 그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께서 치료시기를 15~16년이나 놓치셨어요.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으세요. 심장 승모판뿐만 아니라 삼첨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교체 수술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수술은 심장을 반으로 갈라서 말씀드린 두 부위를 교체하는 수술입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분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공호흡은 최대가 4시간이에요. 수술이 자칫 지연되기라도 하면 환자님은 산소 부족으로 수술대 위에서 운명할 수도 있어요. 이 수술은 성공률이 고작 0.01%밖에 되지 않는 수술입니다. 관상 동맥 우회 이식술이나 심장 비대증 수술보다 훨씬 위험한 수술이랍니다.”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고 무언가가 내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0.01%라니! 그냥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지 않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숨이 막히고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의사는 이어 말했다. “지금 환자분의 상황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요. 수술하실 거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주세요.” 말을 마친 의사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그냥 집에 가자! 성공률이 0.01%란다. 수술해도 죽는 건 마찬가진데 안 받는 게 낫겠다. 괜히 쓸데없는 돈만 낭비하게 되면 너희만 힘들어져.” 아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절 길러주신 게 몇 년인데 이렇게 가만히 엄마가 돌아가시는 걸 보고만 있으라는 거에요? 0.01%의 희망이라 하더라도 해봐야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잖아요. 돈 걱정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뭐라고 말해도 아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할 수 없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이틀 후 나는 무균병실에 입원하였다. 병실에는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 수술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2일 후, 한 심장 비대증 환자가 수술 실패로 오전에 수술실에서 나와 저녁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간호사가 내 눈앞에서 죽은 사람을 밀고 나가는 광경을 보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나도 저렇게 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관상 동맥 우회 이식술을 받다가 수술대에서 목숨을 잃은 환자도 생각났다. 의사는 내 상황이 그들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고, 그들이 받은 수술보다 훨씬 위험한 수술이라고 했었다. 저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며 내가 수술대에서 내려올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고,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이 내게 성큼 다가온 듯했다. 나약함 속에 사니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는 건가?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그렇다. 세상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것이다. 이 병이 임한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서둘러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한결 안정을 찾았다. 그때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안수기도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하였는데, 오늘날 또 그렇게 한다면 의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맞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중복되는 사역을 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하신 은혜시대 사역은 이미 끝났다. 현재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을 온전케하는 사역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한 것이 너의 뜻에 부합되지 않고 너의 뜻에 따라 하지 않으면 너는 반항하기 쉬운데,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진리를 추구함으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려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는지의 여부를 보아야 한다. 너에게 요구가 있으면 순복이 없는 것이고, 요구가 있으면 네가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너는 자신의 뜻을 선택하고 있고 자신의 뜻에 따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배반이고 순복이 없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자체가 바로 이지가 없는 것이다. 네가 정말 그를 믿고 정말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감히 그에게 요구를 제기하지 못하고, 이치가 있든 없든 그에게 요구를 제기할 자격도 없다. 만약 너에게 참된 믿음이 있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너는 다른 선택이 없이 오로지 경배하고 오로지 순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나는 반성했고 하나님을 믿은 세월을 되돌아봤다. 나는 항상 예배에 참석하고 줄곧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으며 최선을 다해 본분을 했다. 병에 걸린 후에도 본분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떠한 어려움이 나를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거라 믿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죽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에 내 분깃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작은 대가로 크나큰 하나님의 축복을 얻으려고 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병마가 나를 덮쳐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은 나를 병으로 고통받게 하시거나,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비열하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고 따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창조주와 거래를 하려고 했다. 정말 말도 안 되고 양심도, 이성도 없는 행동이다.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참회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서둘러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회개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거역했는데도 하나님께선 제게 기회를 주시어 제가 잘못한 점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군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제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겠나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수술이 성공하여 살게 된다면 앞으로도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고, 수술이 실패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겠나이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평정심을 되찾았고 수술이 두렵지 않아졌다. 이튿날, 다른 사람들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 울면서 들어갔지만 나는 평온하고 담담하게 수술실로 향했다. 예전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수술을 마친 후 깨어났을 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깨어나셨군요. 나흘 동안이나 의식이 없으셨어요!" 주변을 둘러보고서야 수술이 성공했고, 하나님께서 0.01%의 확률로 나를 살려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감동한 나는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다음 날, 난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후 수술 경과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수술 부위의 회복 속도가 빠르고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더 잘 되고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진을 마친 후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훗날 친척과 이웃들이 나를 보러 와서는 모두 천운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며 감탄했다. 그들의 말을 들을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새언니만 보더라도 스탠트 수술을 받고 3개월이 지나서야 간신히 퇴원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밥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나는 큰 수술을 받았음에도 빠르게 회복되어 40여 일 만에 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나자 웬만한 집안일은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임을 아는 나는 마음속에서 부터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함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길이고 생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그릇된 믿음을 바로 잡아 주시어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 길이 바로 이성적인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순종하는 길이다. 이와 함께 사람의 목숨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두 번째 삶을 주신 것이다. 앞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고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란은 욱신욱신 쑤시는 아픈 허리를 손으로 한참 동안 두드리고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커덕”하고 나더니 안란의 며느리 우정이 불쾌한 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우정은 주방 문 옆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어머니의 아들 친구들을 좀 보세요. 그들은 결혼 할 때 신부에게 10만 위안 (한국돈 약 1600만 원)을 줬을 뿐만아니라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도 사주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는 당신 집에서 6만 위안 밖에 주지 않았어요. 제 동창들은 결혼할 때 차도 있고 집도 있었는데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속상해요.”라고 했습니다. 우정의 말을 듣는 순간 안란은 화가 너무 났지만 속으로 ‘그 당시에 집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이제 와서 또 이 말을 꺼내는 거야? 이건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거잖아!’ 우정은 안란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계속 원망 섞인 말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안란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주방 청소를 끝마치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길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고부간인지 모녀간인지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으며 안란의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안란은 그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안란은 좀 전에 우정과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속으로 ‘난 언제 며느리와 저렇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에이, 지금은 보면 볼수록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잘 먹고, 잘 놀면서 마음껏 누리려고만 하는데, 이건 다 헛된 꿈이 아닌가! 방금 전에 한 말도 나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가? 남편과 난 이제 늙어서 농사짓는 것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아파트를 사줄 형편이 되겠어.’이런저런 생각으로 안란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동안 며느리와 지내면서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정을 며느리로 맞이했을 때, 안란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안란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면서 맛있는 거 있으면 며느리에게 주었고 집에서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고부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란은 내심 며느리와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정이 가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왔습니다. 안란은 며느리가 월급을 받아서 저렇게 기쁜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정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는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저 이번달에 월급을 2400위안 받았어요.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으로 1000위안 내고 월세 500위안 내고 그 나머지는 휴대폰 요금과 생활비로 사용했어요. 저는 한달 벌어서 한달에 다 쓰는 전형적인 월광족(한달 월급을 모두 소비해 버리는 중국의 새로운 소비계층)이에요. 어머니, 이번 달에는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월광족’ 이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내 돈 못 갚는 건 괜찮아. 하지만 우정아, 살림하는 사람이 돈을 아껴써야지 함부러 막 쓰면 안된다. 버는 대로 다 쓰면 어떡하니. 앞날을 생각해야지. 축의금도 자기 형편에 맞게 해야지.”라고 말하자 우정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불만스런 말투로 “어머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돈을 빌려서라도 양껏 부조를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 저도 해야죠. 안 그럼 친구들 앞에서 제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눈을 내리깔고, 가방은 소파에 던져버리고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성깔을 부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짢고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난 영감이 돈을 벌어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면서 아끼며 생활하는데, 버는 대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잖아.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 얘는 정말 집안 망칠 애가 아닌가? ’ 생각할수록 우정이 못마땅했고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후부터 안란과 우정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의 생활방식이 점점 더 눈에 거슬렸습니다. 우정이 안란에게 “어머니가 하신 요리는 왜 이리 맛이 없어요? 언제 시간되면 남편에게 백김치 생선요리를 잘하는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고 해야 겠어요.”라고 말하자 안란은 “물고기와 백김치를 같이 넣고 끓인게 뭐가 맛있겠어? 비린내만 나지.”라며 되받아 치자 우정도 지지 않으려고 맞서며 “백김치 생선요리는 북방의 백김치로 끓인게 아니라 남방의 야채로 끓여서 비린맛이 없어요. 나이 들면 ‘견식이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네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졌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견식이 없다’라는 이 몇 글자가 안란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무례하고 안하무인한 우정의 태도에 안란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너 같이 생활한다면 매일 고급 음식만 먹어야 하는데, 그럼 어디 돈이 남아돌겠어? 살림을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니네들처럼 산다면 돈이 아무리 많다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에 부딪치니 그제야 안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란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계속 천천히 걸었습니다. 안란은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은 크리스천이기에 일이 임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환해지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안란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말을 하고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한평생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눈에 거슬리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어떤 것은 사실 자신의 문제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지 말라.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신도 존귀하지 않고 남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고 고상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견식을 넓혀야 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생활 습관도 다 있는데 생활 습관은 인성이 아니다. 너의 생활 습관이 규칙적이고 정상적이고 고상해도 너에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이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이 환경은 너무 좋다.너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 적응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와 잘 지내고 그에게 다가가고 그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순복하는 태도와 실행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이 안란의 마음을 환히 비춰주었습니다. 안란의 마음은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린 듯 상쾌해졌습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와 같이 환경에 적응할 줄 모르고, 순복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오만자대한 본성 때문에 자신을 높이 보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이것도 무시하고 저것도 업신여기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식당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겠다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며느리가 저축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아파트와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 며느리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하는 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면에서는 자신이 며느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다 보니 며느리가 더욱 눈에 차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며느리가 생활하길 바랐는데 며느리가 따르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모두 타락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오만하여 며느리에게 요구가 많았고 또 요구가 높은 탓에 며느리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세대차이라는 장벽이 생겨 고통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며느리를 안배해 주신 건 자신의 오만한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항상 남의 흠을 잡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자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복하면서, 며느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화목하게 살며 생활속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안란은 괴로웠던 그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현실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생활도 계속되고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정은 손에 아이폰을 들고 안란을 바라보며 명랑하게 “어머니, 저 이 휴대폰 액정이 깨져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어요. vivox9plus를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아이폰 4~5 천원 주고 샀잖아, 그렇게 비싼 물건인데, 시간날 때 서비스센터에 가서 액정만 바꾸면 더 사용할 수 있잖아.”라고 말을 하니 우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 액정 바꾸고 싶지 않아요. vivox9plus을 사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우정의 그 말을 듣고 나니 안란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아이폰도 비싼 돈 들여 샀는데, 금방 싫증네다니. 4~5천원 들여 새 휴대폰을 또 사겠다고. 얘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네. 도대체 살림하는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안 되. 사지 못하게 말려야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또 며느리를 간섭하려 하고,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려는 이 오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제가 아직도 너무 교만하여 며느리가 꼭 제 뜻에 따르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타락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안란은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이방인이 말하는 세대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윗사람은 늘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니까 장벽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그 장벽이 생기고 세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냐? 부모는 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는 항상 부모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모를 지심인(知心人)으로 생각한다면 양자간에 그래도 장벽이 있을까? (없습니다.)” 안란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세대 차이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은 부모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자녀를 이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만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높은 지위에 서서 자녀에게 이것도 자기 말대로 해야 하고 저것도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는 불쾌해하고 자녀에게만 눈길이 가는 것입니다. 그때 안란은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신이 체면을 지키려 허세를 부리며 며느리를 간섭하려고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며느리를 강요하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요구하며, 고참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개인의 자유가 있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피조물이고 며느리 역시 똑같은 피조물인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며느리에게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고집하는 것이 다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내려놓고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어야 했지, 늘 속박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유행을 잘 따르는데, 며느리가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려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 되니 안란의 답답했던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졌습니다. 안란은 웃으면서 “나도 이젠 많이 늙었나 보다. 내 생각만 하고 너희 젊은이들의 마음을 몰라 줬으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말거라.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고 싶다고 했지? 그래, 내일 나랑 같이 사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우정은 조금 놀란 듯 의아스러운 눈길로 안란을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안란과 우정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 매장에 갔습니다. 생각밖으로 우정은 “어머니, vivox9plus은 값이 너무 비싸니, 전 사지 않을래요. 대신 vivox7plus로 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후로 우정과 지낼 때, 안란은 비록 우정의 생활방식이 눈에 거슬렸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때는 오만한 본성도 많이 변화되고 며느리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안란도 우정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예전처럼 항상 원망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주 안란과 마음속 말을 나눴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안란과 상의하고 안란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우정은 안란에게 “어머니, 저 아파트 사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번 돈은 어머니가 저축하세요. 저도 이제부터는 돈을 아껴 써야겠어요. 더 이상 아버님, 어머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게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안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며느리 사이에 존재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 노울이 논밭에 비치니 삽시간에 그 논밭은 마치 황금색의 카펫을 두른 것처럼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안란과 우정은 농사일을 끝내고 활짝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부러워서 “저 두 사람 좀 보세요, 누가 고부사이라고 하겠어요.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고부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분들도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안란과 우정은 마음이 뿌듯해 입가에는 웃음이 만발했습니다.   문정

기적처럼 사라진 남편의 뇌종양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다

갑작스레 남편에게서 뇌경색에 뇌종양까지 발견하게 되자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원한 기도를 하면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밖에 없는 내가 해외로 일하러 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고 더 열심히 일해서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기쁨에 빠져있을 때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다음날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 난 카운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동료를 통해 매달의 금전출납부를 계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날 더러 계산을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이해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마음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나는 학력이 낮고, 언어도 안 통해, 나이는 또 많고, 해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훨씬 힘들 거야!' 순간,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자신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다고 느꼈다. 고심 끝에 매니저를 찾아가 나는 학력이 낮고, 영어를 못해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매니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사장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기왕 당신이 하기로 안배된 것이니 다른 건 아무 것도 말씀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보아하니 짤리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이때, 나의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나는 일할 기운도 없어서 퇴근 때까지 겨우 버텼다. 저녁 예배 때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고, 한 자매님이 찬송가 한곡을 틀어주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 찬송을 듣고 내 마음은 훨씬 밝아졌다. 나는 모든 일이 생길 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 내가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고 이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여 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더러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학력이 낮아서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어려움에 살면서 자신의 본성과 실질이 너무 나약한 것을 보았다. 일이 생기면 자신을 규정하고 어려움에 맞서서 나아가지 않고 항상 도망치고 회피하려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도 입으로만 인정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믿음이 작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 환경을 빌어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이때, 나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해 이 일을 받아들일 자신도 생겼다. 월말 때, 매니저는 나에게 다음 달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는 학력도 낮은데, 계산을 컴퓨터로 하더라도 배워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실제 체험을 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을 보고 곧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며 나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진심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너를 위해 모든 나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전력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못할 일을 너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네가 입만 살아 생각 없이 말은 했지만 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은 전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며, 총명과 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비록 학력이 낮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자신만만해서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생겼다. 마침내 내가 카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출근 후 나는 자발적으로 프런트에 갔고 매니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동료를 붙여서 가르쳐 드리라고 할게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라는 것을 안다. 잠시 후, 한 동료가 계산서를 들고 왔는데, 동료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나에게 어떻게 계산을 하고, 어떻게 계산서를 분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뭉치 한 뭉치의 영어 계산서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제가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계산서를 분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산서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순간 전에 내가 전혀 계산할 줄 몰랐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린 후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계산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나는 모든 계산서를 꺼내서 확인하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어를 볼 줄 몰라도 계산서를 맞출 수 있어. 업체마다 계산서는 거의 다 달라. 예를 들면 원고지의 크기, 원고지의 색상, 원고지 위의 글자체의 방위 등등.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업체마다 표제도 다 달라. 그러니까 표제 위의 자음 몇 개만 맞추면 돼. 이러한 생각에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얼른 오래된 계산서와 새로운 계산서를 모두 꺼내놓고 대조해 봤는데,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방법으로 금세 계산서를 분류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런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에서 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아주 순조롭게 당일 업무를 다 마쳤다. 그 후, 매니저는 동료 직원들 앞에서 내가 카운트 업무를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전혀 학력이 낮은 사람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실제 겪었던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모든 희망이였던 아들이 출세하기만 바랐던 그녀는 앞서 아들의 미래를 계획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미움만 더해가자, 그녀도 마냥 가슴이 아파왔는데, 그러던 그녀가 어떻게 아이의 웃음을 찾아 주고, 아이가 칭찬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