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결혼 생활에 찾아온 위기,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었던 비결

2019년 04월 12일

온라인 채팅에 빠진 남편, 빨간 불이 켜진 결혼 생활

“삼촌, 인터넷에서 채팅하고 이런 건 다 사기에요. 요즘 인터넷에서 사기 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거기에 정말 삼촌하고 살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넌 신경 쓰지 마….”

우연히 남편과 조카의 이야기를 듣게 된 자메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조카가 왜 저런 말을 하지? 남편한테 여자라도 생겼나? …’

조카가 떠난 후 자메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조카가 왜 그런 말을 해요? 여자라도 생겼어요?”

남편은 잠시 멈칫하더니 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냥 인터넷으로 사귄 친구와 밥 몇 번 먹은 거야.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이야기를 들은 자메이는 잔뜩 화가 나서 씩씩대며 남편을 추궁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그냥 밥만 먹었다고요? 오늘은 얼굴만 보고, 내일은? 그럼 그 끝이 뭔지는 알아요?” 흥분한 자메이는 말했습니다. “모른다면 알려 주죠. 우리는 끝이에요. 각자 갈 길 가자고요. 서로 간섭하지 말고. 알아서 선택해요!” 겉으로는 냉정한 척했지만 사실 자메이는 굉장히 상처받고 실망했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내 결혼 생활이 정말 이대로 끝나는 건가? …’ 자메이는 뒷일을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남편은 가만히 앉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자메이를 보지도 않은 채 그저 인상만 찌푸리고 줄곧 담배만 피웠습니다.

사흘 후, 남편은 일하러 나갔습니다. 자메이는 집에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인터넷에서 사귄 사람과 또 만날까 걱정되어 계속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뭐 하고 있는지 캐물었습니다.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면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편의 회사 동료도 사실을 얘기해 주지 않자 자메이는 당장이라도 남편이 어떤 여자와 함께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여자가 자기보다 잘난 점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자메이는 남편이 일하는 곳을 몰랐습니다. 이 일로 자메이는 매일 걱정 속에 살았고 머리가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밥도 먹지 못했습니다. 힘든 나날에 자메이는 수척해졌습니다.

핸드폰을 보다,

그 시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고 남편은 휴가 때 집에 와도 밥 먹을 때를 빼고는 혼자 방에서 인터넷으로 늦은 밤까지 채팅만 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남편이 자기와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어쩌다 이야기를 나눠도 차갑게 대하고 본체만체 하더니 인터넷 친구와는 열정적으로 이야기 나누고 잠도 자지 않는 채 늦은 밤까지 채팅하는 모습을 본 자메이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못 참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벌써 11시야! 얼른 자.” 그런데 남편이 되레 화를 내며 자메이에게 소리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방 가서 자! 귀찮게 하지 말고!” 남편의 차갑고 매정한 말에 자메이는 화가 치밀어 온몸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자메이도 화내며 말했습니다. “나랑 같이 살기 싫으면 우리 이혼해!”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남자들과 달라. 가정은 책임 질 거야. 이혼 안 해.” 자메이는 너무 화가 나 울며 방을 나갔습니다…. 그렇게 자메이와 남편은 한집에서 살았지만 낯선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자메이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되살아난 추억, 과거의 행복을 돌아보다

남편의 휴가 기간이 끝나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집에는 자메이와 아이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자메이는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향했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계단에 앉아 밤하늘의 뭇별을 바라보고 있자니 옆집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화목한 소리에 자메이는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자메이는 결혼에 한 번 실패했습니다. 전남편이 바람을 피워 자메이를 버린 것입니다. 그 후 자메이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자메이는 만성 뇌막염에 걸려 매일 두통에 시달렸고 힘든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메이를 미워하지 않았고 매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밥과 빨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메이의 머리를 감겨주기도 하고 자메이가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추운 날에도 남편은 과일 가게를 다니며 자메이에게 과일을 사다 주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남편은 자메이를 기쁘게 해 줄 생각에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목걸이를 사 주었습니다. 남편은 자메이를 아껴 주었고 자메이도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자메이는 남편에게 자신의 병이 낫지 않아도 계속 잘해 줄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병이 낫지 않더라도 평생 잘해 주겠다고 굳게 맹세했습니다. 그때 자메이는 드디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상처받았던 마음은 남편을 통해 치유되었고 무한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자메이는 병만 나으면 남편이 해 줬던 것보다 훨씬 더 남편을 사랑하고 아껴 주며 남편과 서로 사랑하고 사이좋게 평생을 지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자메이가 바랐던 것처럼 두 사람은 10여 년 동안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가난했던 형편도 서서히 나아져 약간의 돈도 모았습니다. 삶은 여유로워졌지만 남편 마음은 떠나버렸고 자메이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함께 아픔을 이겨 낸 부부의 사이가 가장 끈끈하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했던 맹세가 10년 만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어째서 결혼은 이리도 약한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자 자메이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씁쓸한 눈물은 자메이의 입가를 적셨습니다. 눈물은 자메이의 마음처럼 씁쓸했습니다…. 매일 걱정 속에 살던 자메이는 마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폭삭 늙어 버렸습니다. 자메이는 방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너무 힘듭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저를 이끌어 주세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어 주다

이튿날 예배 시간, 자메이는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몇몇 자매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자메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결혼의 형태는 천태만상이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즐기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결혼에 불만을 가진 부부도 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을 아우르는 결혼도 있다. 천생연분인 부부가 있고 비슷한 집안의 상대와 결혼한 부부도 있다. 행복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결혼도 있다.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몰이해와 경멸을 자아내는 결혼도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절망적인 결혼도 있다. 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자메이 자매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결혼 생활을 정확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가정을 갖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운명으로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허구한 날 싸우고 매일 이혼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이혼하지 않는 부부가 있는 반면 별다른 다툼 없이 이혼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지금 자매님 남편은 사회 풍조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면서 자매님의 기분은 전혀 생각해 주지 않고 있어요. 남편이 이혼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그 일을 꿰뚫어 볼 수 없을 때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 속에 살며 사탄의 계략에 빠지고 사탄에게 농락당하게 될 것입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자메이는 남편과 멀리 떨어져 있고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며 부부가 되었고 십 년 넘게 사랑해 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두 사람의 결혼도 그렇게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어떤 말을 꺼내도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메이는 사람들의 결혼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이혼하지 않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고통에 빠져 허우적댄다면 사탄에게 농락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메이는 남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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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변화했고 아이는 철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아이를 돌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매일 아이를 먹이고 대소변을 처리하며 아이의 응석과 말썽, 나쁜 행동들을 대했습니다.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던 저에게 이 모든 것은 골칫덩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말을 잘 듣고 철이 들게 할지 몰랐습니다. 제 딸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저는 딸과 함께 지냈고, 응석받이로 자란 딸에게 나쁜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편식하고,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면서 무슨 일이든 늑장을 부렸습니다. 딸의 그런 보습을 보고 저는 마음이 속이 탔습니다. ‘이래서 앞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내가 돌보게 됐으니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딸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딸아, 그렇게 멋대로 굴면 안 되지.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니. 지금은 집에서는 식구들이 다 네게 양보해 주지만 학교에서는 아무도 양보를 안 해 준단다. 그러면 너만 너만 손해라고!” 제가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딸은 나쁜 버릇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제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말대꾸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딸과 저녁에 공원 산책하러 나갔다가 유치원 친구를 마주쳤고, 딸 아이는 친구와 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밤 9시가 넘었고, 날씨도 쌀쌀해 저는 “오늘은 너무 늦었어. 친구랑 약속했으니까 다음에 놀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친구와 놀려고 했습니다. 저는 ‘멋대로 굴게 둬서는 안 되겠어. 맘대로 하는 나쁜 습관을 반드시 고쳐놓고 말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기 오토바이에 딸을 억지로 태워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딸은 저를 원망하며 화를 냈습니다. 집 앞에 도착해서도 딸은 여전히 저를 원망했고, 저는 딸의 두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친구랑 못 놀게 하는 게 아니잖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나중에 일찍 만나서 놀자.” 아이는 제 말을 듣고는 갑자기 “으앙” 하며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놀고 싶단 말이에요. 싫어요… 엄마 미워!” 아이는 집을 올라가면서도-층계를 오르면서 울음을 그치지 않고 제가 밉다고 소리쳤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울자 제 마음도 무척이나 심란했습니다. ‘도저히 말도 안 통하고 너무 제멋대로야.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어른 말은 듣지도 않네.’ 집에 들어선 딸은 아빠를 보자 더 세게 울며 아빠에게 “친구랑 놀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 놀게 했어요.”라고 일러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애가 왜 이렇게 제멋대로지? 좋게 말해도 안 듣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울고 있는 딸을 보니 저는 마음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저는 딸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 혼내고 벌을 주는 교육 방식을 택했습니다. ‘옥도 다듬어야 그릇이 되고, 아이도 맞아야 철이 든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저는 딸을 끌어당겨 두 다리를 때렸습니다-발로 걷어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훌쩍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나 때려서 너무 아파요…” 저한테 맞아서 아프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은 쥐어뜯긴 듯 아팠습니다. 아이를 껴안고 다치진 않았는지 살펴보고 울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안 돼. 안아주지도 달래주지도 말자. 안 그러면 더욱 버릇이 없어져서 나중에는 어떻게든 제멋대로 굴려고 할 거야.’ 남편은 아이를 안고 달래며 제게 화를 냈습니다. “얼마나 세게 찼길래 애가 이렇게 아프다는 거야?” 시어머니도 곁에서 말했습니다. “애가 말을 안 들으면 잘 달래야지. 그렇게 애를 때리면 어떡하니?” 남편과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제가 때리고 싶어서 때린 줄 아세요? 오는 내내 계속 달랬다고요. 애가 말을 듣는 줄 아세요? 너무 제멋대로예요. 지금 안 고치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거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조급해졌습니다. 딸이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자 저는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애한테 나쁜 버릇이 너무 많아요. 온통 제멋대로라고요.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요? 때리지도 혼내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애를 가르치라는 거예요.” 시어머니와 남편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숙제를 시켰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반나절이 지나도 한 문제도 풀지 않자 저는 속이 상해 딸에게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갑자기 ‘얌전’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딸이 아주 ‘말을 잘 듣고 철이 든 듯이’ 숙제도 잘 마치자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통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버릇을 고칠 수 있겠어.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화를 낼 때는 내야겠어. 애를 좀 겁주면 나쁜 습관도 조금씩 고칠 수 있을 거야…’ 그날 이후로 저는 딸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화를 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몇 번 화를 내보니 이 방법이 꽤 효과가 있었고, 아이는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자주 화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참지 못하고 제게 말했습니다. “애한테 항상 화를 내면 어떡해. 그럼 애한테 안 좋다고.” 하지만 저는 남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화를 안 내면 나쁜 습관들을 어떻게 고쳐? 나한테 화 못 내게 할 거면 당신이 돌봐! 난 신경 안 쓸 테니까.” 매번 이렇게 말하니 남편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이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머뭇댔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동생이 자주 쓰던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숫자를 거꾸로 세는 것이었습니다. 딸에게 무언가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숫자를 거꾸로 셌습니다. “5, 4, 3, 2, 1…” 딸 아이는 항상 제가 “1”을 말하기 전에 제 말대로 행동했습니다. 이 다섯 숫자가 끝날 때까지 제 말대로 하지 않으면 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의 “포악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다섯 개 수를 세는 순간이 오면 딸은 곧바로 제 말대로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매일 ‘말도 잘 듣고’ 나쁜 버릇도 ‘고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던 옛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이 방식이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는 집에서 수없이 “5, 4, 3, 2, 1…”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어느 날 딸의 성격이 사납게 변해 버렸습니다.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잘못 쓴 글자를 제가 지우자 아이는 갑자기 불같이 큰 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반밖에 안 틀렸는데 그걸 왜 다 지워요?” 제가 말했습니다. “다 안 지우면 어떻게 쓰려고?” “반만 지워도 되잖아요.” 짜증을 내는 아이의 말을 듣자 저도 화가 나 지우개를 던지며 말했습니다. “네가 직접 지우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렇게 말한 뒤 저는 소파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파에 채 앉기도 전에 아이는 저는 때리며 말했습니다. “나쁜 엄마, 나쁜 엄마. 맨날 나한테 화만 내. 저한테 말 좀 잘해 주면 안 돼요?” 저는 화가 났습니다. “내가 잘 얘기하면 네가 듣니?” 이때부터 아이의 성격은 무척 사나워졌습니다. 항상 사소한 일로 제게 짜증을 내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점점 저와 어울리기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항상 할머니 댁에 갔고, 집에 있을 때도 아빠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저는 너무 속상했습니다. ‘내가 이러는 건 다 딸을 위한 건데 어째서 나랑 잘 지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나쁜 버릇을 고쳐 주려고 했을 뿐인데 버릇을 고치긴커녕 성격만 더 나빠지고 있어.’ 할 수 없이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치고 철을 들게 하려고 좋은 말도 해보고 화도 내보았습니다. 하지만 버릇을 고치지도 못하고 갈수록 성격만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제가 틀렸단 말입니까? 이렇게 아이를 대하는 게 잘못됐을까요?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지 뒤에서 내든지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패괴 성정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실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의 화를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행동하는 출발점은 패괴를 수호하지 않기 위한 것이 하나도 없고, 패괴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를 발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제지당하고 사악한 것은 훼멸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지속된다.』 저는 드디어 아이가 사납게 변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시는 화만이 정의로우며, 긍정적인 것을 지키고 이어나갈 수 있으며, 부정적인 것을 막고 없앨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는 화는 겉으로 아무리 많은 이유가 있더라도 모두 불순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육체와 본성에 속하고 타락한 성품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제가 택했던 거친 교육 방식은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를 주고 사나운 성격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방식대로만 아이를 가르치고 버릇을 고치려고 했는데, 아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의 나쁜 버릇은 어떻게 고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滋養)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고 나서야 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 역시 하나님께서 장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 앞에 인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아이에게 어떤 나쁜 버릇이 있든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걸 이루고 바꿀 수 있는데, 제 방식대로 아이를 가르치고 나쁜 버릇을 고치려 들었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혼내고 화를 내며 아이를 가르쳤던 방식을 생각해 보니 모두 가장의 입장에서 강제로 아이를 가르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을 듣게 만들기 위해 저는 지금껏 아이와 좋게 대화하거나 아이의 속마음을 이해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제 방식을 따르기만을 바랐고, 아직 어리고 철이 없으니 제 말을 들어야만 바뀌고 좋은 습관을 갖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파괴된 인류의 한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했고, 진리에 맞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잘못했고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제 방법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하나님께 아이를 전해 맡기겠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딸을 인도하겠습니다. 그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것들을 깨닫자 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제멋대로 굴고 말을 듣지 않아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이에게 마음을 터놓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며 저도 모르게 “5, 4, 3…” 하고 숫자를 세게 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도중에 멈추었습니다… 한 번은 밥을 먹으려고 딸을 불렀는데 딸이 가지볶음을 보고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가지인 거 몰라요? 안 먹을래요.” 이렇게 말하고 가버리는 딸을 보니 저도 화가 났습니다. ‘편식하는 습관은 왜 아직도 여전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자 딸에게 신경질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자 화가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내 딸, 왜 가지를 먹기 싫어하지?” 딸이 말했습니다. “그냥 싫어요. 가지는 맛이 없어요!”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편식하면 안 되는 거야. 맛없다고 안 먹으면 안 되지. 모든 음식은 건강에 좋은 거란다. 맛없다고 안 먹어 버리면 나중에 몸에 영양이 부족해진단다.” 딸은 작은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진짜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딸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먹을래요. 먹고 튼튼해져야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했더니 아이는 점점 철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제게 말대꾸를 하지 않았고 더는 꾸물대지도 않았습니다. 학교에 갈 때는 오히려 빨리 가자고 저를 재촉했고, 집에서는 조금씩 웃음소리가 퍼졌습니다. 한 번은 딸이 앳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가족이 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너무 좋아요. 엄마도 화를 안 내잖아요. 우리는 진짜 사랑하는 가족인 것 같아요!” 딸의 이 말을 들으니 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딸에게 말했습니다. “맞아. 앞으로 우리 집은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자꾸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생활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

어느 날 알고 지낸 지 10년 지기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오후 티타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친구는 제일 고급스러운 화차와 케익, 디저트를 준비하여 저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최근에 명품 가방과 브랜드 옷을 사들이는 데 돈을 얼마 쓰게 되었다고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수두룩한 신용카드 고지서를 발견하게 되어 친구에게 고지서가 왜 이렇게 많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던 친구가 울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친구는 자기 주변 친구들이 명품을 좋아하고 서로 허세 부리며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중시하는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체면이 깎이지 않으려 계속 사들이고 카드로 긁다 보니 이제는 은행 이자도 갚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명품을 좇다가 가계 경제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을 본 저는 깊은 공감을 느꼈는데, 마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체면을 중히 여기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늘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17살 때부터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친구관계가 순수한 편이었고 물질적인 생활에도 요구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소박하게 입고 배부르면 그만이었기에 중압감이 없이 비교적 홀가분하게 생활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주변에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 화이트칼라들이었습니다. 명품 가방,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들을 품평하고 비교하는 게 그들의 일상입니다. 그들은 늘 자신의 옷은 어떤 브랜드인데, 옷 하나에 몇만 위안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렇게 자랑을 하다가도 저에게 옷은 어디서 사는지, 가격대는 얼마인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제가 가격을 말하면 그녀들은 바로 경멸하는 말투로 “뭐? 어떻게 그런 싸구려 옷을 입을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속으로 “쟤네들에게 무시당할 순 없어! 쟤들이 가진 건 나도 꼭 가지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저도 자신의 겉치레를 중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카드를 긁어 G 브랜드의 가방을 사고 난 후, 동료들이 입을 모아 제 가방이 정말 이쁘고 저에게도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칭찬을 받게 되자 저는 속으로 너무 기뻤고 체면이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품 가방을 갖고 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저는 차츰 그녀들의 생활 라인에 녹아 들게 되었고 동료들과도 같이 나눌 화젯거리도 생겼습니다. 결국 자기도 모르게 무한경쟁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동료가 3만 위안이 넘는 시계 하나를 구입했는데 매일같이 제 앞에서 자랑을 했습니다. 저는 약이 올라 며칠 뒤에 가격이 2만 위안이나 더 비싼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그 동료는 또 십만 위안 넘는 다이아 반지를 구입했는데 저는 더 이상 동료와 비교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들은 또 하나둘씩 집을 장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부족했지만 주변의 동료들에게 얕보이기 싫은 저는 긁어 모은 15만 위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집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겨우 집 대출 이자를 다 갚게 되자 그들은 또 자가용 차를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뒤질세라 일제 신형 차 한대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저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때로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친구와 몇년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친구에게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그 후 몇년동안 저희는 함께 교회를 섬겼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심령에 위로도 얻어 믿기 전보다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졌습니다. 하지만 유독 저의 생활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친한 친구가 또 3만 8천 위안짜리 유명 브랜드 가방을 샀습니다. 그 친구는 매일 제 앞에서 가방이 좋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살 수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친구와 함께 가서 똑같은 가방을 구매했습니다. 그러자 매장 직원은 곧바로 저에게 만 7천 5백 위안짜리 선글라스 하나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선글라스까지 구입하고 매장을 나오려고 할 때 친구는 또 만 3천 위안짜리 작은 가방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친구는 한꺼번에 가방을 두 개나 구매했는데 하나는 여동생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둘이 같은 백을 갖고 다녀야 남들 눈에 절친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서 저도 하나 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작은 가방은 별로 실용 가치가 없어. 게다가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싸. 이 가방까지 사게 되면 신용카드 사용 금액이 거의 7만 위안이 돼. 이 돈을 갚으려면 몇 개월이나 일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살 의향이 없는 것을 보자 가방이 정말 귀엽고 제게 참 잘 어울리는데 왜 사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순간 체면이 체면이 깎인 것 같아 속으로 ‘사지 않는다면 쟤는 꼭 내가 돈이 없어 사지 못한다고 생각할거야. 그럼 쟤 마음속에 여태 쌓아왔던 내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카드를 긁어 사고 말았습니다. 신용 카드의 최저 한도를 지불하기 위해 저는 반드시 투잡을 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16시간씩 일해야 했는데,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제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기억력도 점점 감퇴되었습니다. 체중도 계속 줄었고, 장기간의 과로로 인해 제 피부도 누렇게 되었으며, 위장도 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늘 ‘왜 난 스트레스를 점점 쌓이기만 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친척, 친구, 동료도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다 허세를 부리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남들과 돈을 비교하고 집도 비교하고 자동차까지 비교하며 정말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여러 번 주님께 기도 드렸고 성경에서도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지 못하게 되니 참 막막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크리스천 형제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형제와의 교제를 통해 예전에 몰랐던 성경 속의 비밀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형제가 아주 경건하고 정직하며 지혜롭게 얘기할 줄 아는 크리스천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좋은 영적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는 저에게 주님이 벌써 돌아오셔서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고 심판이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역을 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전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비록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조류를 따르고 허영을 추구하며 죄 속에서 살면서 해방을 얻지 못한 것이죠. 성경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저희처럼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번에 성육신하셔서는 주로 우리의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저희의 본성 실질을 여실히 드러내셨습니다. 말씀의 심판을 통해 저희는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진면모를 보게 되었고,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사탄의 패괴 성정과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았고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시는 심판 사역이 확실히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교통을 들은 저는 비록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많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님을 몇 년 동안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영화와 뮤직 비디오도 보았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수확이 있었고 성령이 역사하여 인도하심을 확실히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디마디 말씀마다 다 권세가 있고 다 하나님 성품의 발표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예전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몇개월 동안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정성껏 화장을 하고 멋지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뒤에 옷장에서 제일 값비싼 가방을 꺼내 들고 예배하러 갔습니다. 예배 장소에 도착하여 형제자매들의 차림새를 보니 모두 아주 소박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중에서 너무 튀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어울려 지내면서 저는 형제자매들이 아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지도 않고 사회 조류를 따라 명품을 좇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만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느라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고통을 형제자매들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사람의 성정은 나날이 악랄해져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버릴 수 있거나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아무도 없고, 더욱이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 진흙탕에서 자신의 육체를 진탕 패괴시키고 있다.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고통과 고민의 근원을 밝히셨어요. 사탄은 사회의 나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진리가 없으면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사탄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회 조류를 따르면서 점점 더 타락되죠. 예를 들어 사회에서 경쟁하는 풍조, 사치 풍조, 그리고 부를 자랑하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풍조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어 사람마다 경쟁하고 있는데, 누구의 소유한 집이나 자가용차가 더 좋은지, 누가 돈이 더 많고 세력이 더 큰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브랜드 옷, 휴대폰, 3C제품(컴퓨터, 카메라, 게임기 등)이 더 좋은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경쟁심과 질투심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얻기 위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자신의 인격을 상실하고 존엄성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교통에 깊이 공감이 되었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한1서 5: 19)”라고 한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먹고 입고 겉치레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명품을 좇다가 결국 자동차의 노예나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우리가 일시적인 물질적 누림을 얻고 허영심을 충족시킨 것 같지만 이런 고지서들을 마주할 때의 경제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쓰라린 고통은 오직 자신만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근검절약하거나 소박한 것은 치욕으로 여기지만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비뚤어진 사상의 영향으로 저도 주제넘게 높은 것만 바라보고 허영을 탐내면서 분수에 맞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우러러 봐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랐던 저는 억지로 체면을 유지하면서 돈 있는 사람처럼 자신을 포장했고, 늘 자신의 체면을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정말 위선적으로 살았는데, 그 고통은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저는 건강도 잃고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도 줄었던 것입니다. 이제 보니 자신이 다년간 추구해 온 것이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서로 경쟁하면서 명품을 좇고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치중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고 우롱하는 사탄의 수단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저에게 명품을 사러 가자고 하면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찾고 구하던 중,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의 마음을 밖으로 끌어갈 수 있는 일은 접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접하지 말라. 어떤 일이든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면, 너는 그런 일을 내려놓고 하지 말거나 멀리하여라. 그러면 너의 생명에 더욱 유익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 길과 방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분량이 작아 사탄의 궤계를 분별할 줄 모르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을 유혹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보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니, 더 이상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늘 환한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또 백화점의 세일 시즌이 왔는데, 친구는 또 저에게 같이 옷을 사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미친 듯이 옷을 열 몇 벌이나 고르고 난 후 저에게도 사라고 권했지만, 저는 하나님이 허영을 탐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비웃던 말든 저는 “난 더이상 함부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아. 집에 옷이 너무 많아 다 입지도 못해. 난 안 살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은 너무 자유롭고 해방받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진리를 실행하게 된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또 몇 번이나 친구와 같이 백화점에 갔었지만 저는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더 이상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체면을 위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억지로 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허영심과 체면의 묶임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명품이 없어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체면이 깎여도 속이 뒤집혀질 정도로 괴롭지 않으며, 또한 예전처럼 신용카드 고지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할 필요도 없게 되면서 점차 건강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하루하루가 매우 의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가 있어야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로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감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받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게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즉 네가 진정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하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너는 심령 깊은 곳이 밝아지고 편해지며 더없이 즐거울 것이고, 참으로 인생을 얻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저를 구원해 주시고 저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저의 인생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오다 ―인터넷 게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 (2)

고모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도운, 왜 말이 없어? 뭐 생각하니?” 전 말했습니다. “고모, 방금 읽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아요. 많은 친구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에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제 뜻대로 안 돼요.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어요. 게임을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제 마음대로에요. 아무도 절 건드릴 수 없어요. 맘에 안 들면 다 죽이면 되니까요. 게다가 제 레벨이 높고 좋은 아이템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이 절 따라요. 이런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고모는 절 보더니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고모의 한숨 소리를 듣고 전 물었습니다. “고모,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고모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사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할 수 있으시단다. 만물에서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고 하나님만이 긍정적인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인지를 구분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진리를 갖추어야만 사탄이 하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 선악을 분명히 가를 수 있단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얻으면 더는 사탄의 간계에 미혹되거나 통제를 받지 않게 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면 이해될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이고, 다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필요한 자양품과 영양품이고, 사람이 정상 인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며, 사람이 장비해야 할 진리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의 생명은 더 빨리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를 더욱 밝히 깨닫게 된다. 너희의 분량이 자라게 되면 영계의 일을 더욱 꿰뚫어 보게 되고, 더욱 힘 있게 사탄을 이기게 된다.』 『진리란 바로 정상 인성의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었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인데, 모든 정상 인성(인성, *이지,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 도가 사람을 정상 인성 생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는지,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 그 진리가 현실적인지,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람의 인성과 이지가 갈수록 완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 생활이 갈수록 질서 있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은 진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사람 육체의 본성, 즉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異象),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폭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에게 생명이 되어 그런 말씀으로,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갖춰야 할 진리를 주신단다. 사탄이 우리에게 행하는 사악한 모든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에게 타락된 자신의 모습도 확실히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게 된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행하면 이 같은 사탄의 사악한 세력의 괴롭힘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돼. 하나님 말씀, 진리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때가 오면 사람의 마음과 사상은 변하기 시작한단다.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기고 사탄의 사악한 방해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게 되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생명으로 삼게 되면 곧 하나님의 구원을 입게 된단다. 인류의 마음속에서 진리가 생명으로 자리잡으면 사람은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미워하게 돼. 사탄의 독소와 사설, 그릇된 논리, 사탄의 본성 실질을 진실로 깨달아서 사탄을 배반할 수 있게 돼. 이게 바로 진리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효과란다. 진리가 생명이 되면 사람은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더는 고뇌하며 살 필요도 없고 사악한 추세에 얽매일 필요도 없게 되지” 고모의 말을 듣고서야 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권세가 있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계 흐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꼭 봐야 했습니다. “고모,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싶은데 한 권만 빌려줄 수 있으세요? 게임을 끊을 수 있다면 저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래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고모를 찾아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몰랐던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공허한 제 영혼을 채워주고 위로해 주는 걸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제 삶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어폰을 낀 채 하나님의 말씀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 찬양은 제 마음을 움직였고 이렇게 제 삶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체험한 것을 서로 나누며 전 한결 가벼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변한 제 모습을 보고 안심의 미소를 내비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갖춘 진리는 너무 적었기 때문에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탄은 각종 방법으로 절 유혹하고 타락시키려고 했었습니다. 하루는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짜증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집과 마당을 빙빙 돌았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든 채 화면 속의 캐릭터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입에서는 퍽…… 퍽……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운, 왜 그러니?” “할머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이렇게 말한 후 밖으로 나가 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쓰러져 죽은 돼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경련이라도 난 듯 아무것도 할 힘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게임으로 며칠 밤을 새워도 힘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도 힘들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맹세했었는데 지금 난 하나님을 속이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 자신이 뼛속까지 미워져 주먹을 불끈 쥐고 이불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맹세를 지키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이라는 걸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탄의 유혹과 미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없어 제 욕망을 이길 수가 없고 저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기도를 한 뒤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자 다음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거룩하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네게 인생의 밝은 길을 가게 할 수 있고,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할 수 있으며, 참된 인생을 살아내게 할 수 있고,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로 진리에서 생명을 얻도록 할 수 있고, 악에서 떠나고 사탄의 해와 통제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해 고해에서 벗어나 다시는 고통받지 않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렇게 사심 없이 너를 구원하고 계시며, 너의 앞날과 운명, 그리고 너의 인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며,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한다. 이것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이런 실질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너를 구원하고 인솔할 이 능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 실질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처럼 다시 제 마음을 비쳤고 전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시련이 임했을 때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지 않았고 기도를 통해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사탄을 따랐습니다. 오늘 사탄은 끊임없이 제게 게임을 하도록 유혹해 하나님 앞에서 했던 제 맹세를 저버리게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은 절 버리지 않으시고 제게 육체의 형벌을 내리셔 피곤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반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제게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것은 제가 사탄의 괴롭힘을 받지 않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저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형벌과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또다시 사탄에게 휘말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단정하고 올바릅니다. 저는 지금껏 이 같은 언행과 인성을 갖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제게 관심을 보여 주고 끈기 있게 절 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탄을 배반하고 내치고 다시 떨쳐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로 사탄을 패배시키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사탄을 배반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순간, 사탄의 시험이 또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친구 임호는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와 말했습니다. “도운, 요새는 왜 게임 안 해? 새로운 게임이 있는데 진짜 재밌어. 완전히 빠져든다니까! 같이 놀자!” 새로운 게임이 있다는 말을 듣자 전 몸이 근질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더는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기로 했던 다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임호는 또 절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오늘따라 왜 그래? 평소 같으면 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당장 뛰어나왔잖아. 게임 안 한 지도 오래됐잖아! 너 완전히 딴사람 같아.” 이 순간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게임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마음속에서 게임을 하러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다투는 듯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역사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것 같고, 마치 사람의 안배에서 비롯되거나 사람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역사마다, 매사마다 배후에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배후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지만 욥에게 임한 것은 사람의 행위이고 사람의 방해였던 것처럼,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역사마다 배후에서는 모두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고 있고, 배후에는 모두 싸움이 있다.』 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 순간은 바로 하나님이 제게 간증을 원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육체와 하나님 중 무엇을 만족시키는지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를 만족시키면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사탄을 만족시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임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게임 안 해.” 임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네가 말한 거 맞아? 못 믿겠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나 이제 게임 끊었어. 앞으로는 게임 안 해” 게임을 하러 가지 않겠다는 제 말을 들은 임호는 말했습니다. “안 할 거면 됐어. 딴사람하고 해야지…” 임호가 간 후 제 마음은 평온해졌고 더는 방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기분이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누리는 평온함과 즐거움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탄의 이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더이상 이같은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가끔은 제게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지만 전 육체를 따르지 않고 사탄의 그런 생각을 배반하여 사탄과 완전히 결렬하고 더는 사탄의 꼬임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릇된 길로 가던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후 저는 복음을 전하는 팀의 일원이 되어 몇 명의 친구에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말세 역사를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저의 간증도 들려주니 친구들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가장 의미 있는 인생과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신고를 당한 후…

“누님, 누님한테 신고가 접수됐어요!" “왜요? 또 어디가 안 깨끗하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누님,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았어요? 물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나요?" “바닥은 진공청소기로 하고, 물걸레는 안 썼어요.” 나는 이렇게 해명했다. “직원이 물걸레가 마른 채 있는 것을 보고 누님이 물걸레 쓰는 것을 못 봤다고 신고했어요. 앞으로 바닥을 닦지 않아도 물걸레는 축여서 거기에 놔둬야 해요. 그러면 다시는 누님을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의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미 충분히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왜 또 신고가 접수된 것일까? 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미 두 번째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접수된 신고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서였고, 이번에는 물걸레로 바닥을 닦지 않아서였다. 이런 환경에 처하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내가 막 이 청소 일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소개한 친구가 이곳은 위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아서 40분이면 일을 끝낼 수 있고, 일당은 2500엔(약 2만5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3시간이 걸려서야 일이 전부 끝났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부 대청소를 했는데, 주차하는 곳만 물을 뿌려 청소하는데도 40분이 걸렸다. 똑같은 돈으로 이렇게 오래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이곳을 청소하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겠지. 만약 또 청소할 필요가 없는 곳을 줄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야. 그러나 나중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거의 2시간이 걸려야 일이 끝났다. 가장 빨랐을 때도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40분에 마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는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은 최대한 생략해버렸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보았고,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했다. 항상 이득을 봤는지 아니면 손해를 받는지 따져야 하니까 정말 피곤했다. 기분이 좋고 나쁨도 이 일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석에 더러운 곳을 봐도 청소하지 않았을 때, 나의 마음도 항상 죄 짓는 듯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시간을 덜 쓸수록 이득이라며 온종일 시간을 덜 들이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았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찔렀다. 일을 할 때 잔꾀를 부리고, 교활한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울을 닦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닦았다. 윗부분이 조금 더러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닦지 않았다. 변기를 닦을 때는 겉에만 닦았다. 냄새가 나면 여러 번 물을 내렸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검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대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고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사장이 처음으로 내가 신고 당한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벌금을 물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찾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고를 당하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인격도 존엄성도 없이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이방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그것은 모든 면에서 다 거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간당 얼마를 주면 그만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노동력은 제공하지 않고 돈만 받고 공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한다. 일이 없으면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다가 상사가 오기라도 하면 눈앞에서는 열심히 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고 힘을 쓴다. 그것은 다 승진을 위한 것이고, 돈을 많이 받고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다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이고, 음험한 수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궤계이고 전부 사탄의 철학,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궁리만 하고, 힘을 적게 들이고 교묘하게 돈을 벌 방법만 늘 생각한다. 그것은 사악한 길이고,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탄에게 유혹당해 전혀 사람답지 않게 타락한 나를 보았다. 본성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서 적게 일하고 돈만 많이 벌 생각을 했다. 사장이 곁에서 지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대충대충 일했다. 일을 하면서 항상 교묘하게 잔꾀를 부렸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양심과 인격은 내다 버리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살았다. 나는 항상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40분 안에 일을 끝내려고 구석의 더러운 곳을 보면 청소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허비할까 봐 다음 번으로 미뤘다. 다음 번에 시간이 길어지면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해서 몸은 좀 편해졌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집에 있을 때도 고객에게 발각되어 신고당하지는 않을까,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치가 없고 너무 비천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양심도, 인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겠는가! 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실행의 길을 찾았다. 기왕 이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진솔하게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나는 예전에 일 하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다. 화분과 꽃잎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물로 살짝 깨끗이 닦아냈고, 복도 전체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하자 기분이 유달리 상쾌했고, 바빠서 시간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몇 시간이나 일 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사서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맛 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실천하고 인간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친구들아 , 이제 여기서 그만!

언제부턴가 학교는 평화롭지 않고 사회처럼 암투로 가득해졌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반마다 ‘일진’이 있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나도 자주 괴롭힘 당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다. 그 녀석은 매일 날 괴롭히며 내게 이것저것을 사 오라고 시켰다. 내가 사 오지 않으면 친구들을 불러 나를 때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그를 대할 때 항상 조심하게 되었고, 맞을까 두려웠다. 나는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어떠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분별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탄의 시험에 빠졌다. …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진’들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 옆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이쑤시개를 씹으며 말했다. “샤오챵, 우리랑 다니는 게 어때? 쟤네가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잖아. 우리랑 같이 다니면 널 괴롭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난 속으로 ‘지들도 똑같은 애들이면서, 싸움으로 이름이나 날리고 말이야. 너네랑 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냐? 내가 너네랑 같이 다닐 거 같아?’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거절하며 말했다. “꼭 같이 다니지 않아도 우린 같은 반 친구잖아. 나 지금 공부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때?” 그러자 그 녀석이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잘 생각해봐.”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그 후 녀석들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그중 한 녀석이 말했다. “얌전한 네가 매일 다른 녀석들한테 괴롭힘당하니까 하는 얘기야. 너도 알잖아.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부모님이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랑 많이 왕래해야 해(선물을 건네는 것을 뜻한다). 담임 선생님이 돌봐주면 널 괴롭히려는 사람도 없을걸?”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도 말했다. “네가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면 학교에서 무리 지어 다니는 수밖에 없어. 그래야 널 감히 괴롭히려는 녀석이 없지.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숙제도 니가 맨날 대신해줘야 해.” 방과 후 침대에 누우니 녀석들이 했던 말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걔들 말도 맞는 말이긴 해. 다른 애들이 항상 날 괴롭히긴 하잖아. 그 덩치 큰 녀석이 맨날 괴롭히고 때리고 말이야. 집안 형편도 별로라 아버지가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진 않을 텐데. 휴! 걔네가 날 찾아온 게 벌써 몇 번인데, 내가 계속 거절하면 걔네들이 나 괴롭히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 녀석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녀석들과 같이 다닐 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은 몰려다니며 같이 먹고, 마시고, 놀았다.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쓰기가 아까워 혼자 쓰지 않고 녀석들과 다닐 때만 썼다. 녀석들은 내가 돈을 다 쓴 후에야 돈을 꺼냈다. 나는 녀석들이 단순히 나를 밥값 내는 애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싸울 때도 나를 불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 중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님이 한 판 붙으러 오라는데 너 여기서 뭐 하냐? 얼른! 빨리 가자!”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싸움이라니? 여태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왜 싸워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어떡해?’ 두려운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왜 싸워야 하는 거야?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자 녀석이 답했다. “나도 몰라. 형님이 싸우라고 하니까 싸우는 거지. 심하게 다치기야 하겠어?” 녀석은 말하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다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간 거야? 싸우자고 한 사람들이 어디 간 거야? 어디 숨은 거야, 대체?” 속으로 ‘없다니 다행이다. 싸우지 않아도 되겠네. 괜히 싸웠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때 잔뜩 화가 난 대장이 말했다. “가자. 일단 밥 먹자. 밥부터 먹고 다시 해결하자!” 밥을 먹고 난 후 우린 다시 옥상으로 왔다. 대장의 고함만 들려왔다. “때려! 때리라고! 어디 한번 제대로 때려봐! …” 이 말을 들은 나는 ‘저 사람이랑 원한도 없는데 왜 때려야 하는 거야. 안 때리자니 체면을 구길 텐데. 앞으로 저 녀석들 낯을 어떻게 본담’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왕 왔으니까 때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로 한 대 차는 척을 했다. 하지만 진짜로 차진 않았다. 다시 한 번 차려고 할 때 대장이 외쳤다. “그만, 그만 때려.” 놀라 꽁무니를 빼는 두 녀석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들이 간 후, 대장이 성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왜 안 때리냐?” 나는 “다들 섞여 있어서 누가 누군지 몰랐어. 혹시 잘못 때릴까 봐”라고 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업 종이 울렸다. 우리가 막 교실로 돌아왔을 때 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샤오챵, 담임 선생님이 같이 교무실로 오래.” 나는 속으로 ‘망했다. 선생님께 들킨 건가?’라고 생각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아까 맞은 아이 두 명과 그 녀석들의 부모님, 교장 선생님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속으로 ‘저 녀석들의 부모님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나는 이 녀석들과 어울려 다녔던 걸까? 왜 저 녀석들의 싸움을 도와준 걸까? 싸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한참 마음이 괴로워 할 때 예전에 예배에서 교통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냐, 크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형제자매들과 늘 함께 있다. 주위에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너도 착실하게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 너 혼자 이방인들 가운데 있게 된다면 너의 마음속에 그래도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그들과 같이 있으면 그들과 똑같이 되기가 쉽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리키는 게 바로 나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 드리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멀리했다. 이런 나쁜 일도 분별하지 못하고 아무거나 따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책감이 들어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따라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녀석들과 형제의 우애를 다지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께서 무섭게 우리를 혼내셨다. “어린 녀석들이 벌써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고.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 가기라도 했으면 너희가 어떻게 책임질 거야? 누가 맞아죽기라도 했으면 너넨 그대로 감옥행이야. 고1 학생 두 명이 휴대폰 때문에 싸우다가 목 졸라 죽인 일도 있었던 거 몰라? 싸우고 난 후폭풍이 어떤지 알기나 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무서워졌다. 맞은 학생의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요즘 애들이 걸핏하면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데 싸우다가 누가 어디 하나 잘못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건 일생과 관련되는 일이잖아요!” 교장 선생님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로 말씀하셨다. “일주일간 정학이다. 한번만 더 싸우면 그땐 퇴학이야.” 당시 난 퇴학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심장이 철렁 했다. “샤오챵, 넌 평소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녔으니까 일단 학교에 남아.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 그 말을 듣고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됐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앞으로 저 녀석들과 몰려다니며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부디 구원해 주시옵소서. 다시는 악에 휩쓸리지 않고, 제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나이다.” 보름 후, 그 녀석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일 한 판 뜨러 가니까 꼭 나와라!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고. 내일 점심때 데리러 갈게.” 이 문자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지 않았다가 그 녀석들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그렇다고 가자니 그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잖아.’ 할 수 없이 이 일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모든 일은 전쟁과 같단다.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하는 거지. 그때 넌 어느 편에 설 테냐?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책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서 겉으로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다. 마치 그런 것이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굳게 증거할 필요가 있다.』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 때란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구원하려 하시고,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너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 하나님께선 이런 환경을 통해 분별이 생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게 하고, 사랑과 증오를 명확히 가려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는 거란다. 그 녀석들이 너한테 문자를 보내 싸우러 가자고 한 건 부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님의 뜻에도 맞지 않으니 멀리해야 마땅하단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이게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결코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난 ‘일진’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또다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고민거리를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 주셨다.『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온 우주를 주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므로 그가 택한 각 사람의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매사는 하나님으로 놓고 말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다. … 네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 앞으로 올수록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고 안심하며 위안을 느끼고 누림을 얻게 되지만 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찾을 줄 모를수록 하나님은 더욱 상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주의 모든 사물을 하나님께서 주관 하시고, 모든 일 또한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그 녀석들이 학교에서 나를 찾아오는 것도, 다른 애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어. 그들을 따르지 않기로 한 이상 나는 이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해! 비록 내가 어린 나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성장할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나를 책임져주실 거야.’ 여기까지 깨닫자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일진’들과 확실하게 선을 긋고, 단호하게 그 녀석들에게 말할 것이다. “안녕!” 이라고! 그 후, 그 녀석들이 날 찾아올 때면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할 수 있었다.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 굳건해 보였는지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았고, 날 괴롭히지도 않았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주변 환경을 주재하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수중에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어려운 점을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에 ‘일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주먹을 휘둘러 범죄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것을 보며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타락된 길을 가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인 것이다. 나를 보호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과 권능과 찬미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하)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직장 동료간의 갈등을 해결한 그녀의 비결

오늘날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서로 손님을 뺏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판매업에선 실적 때문에 동료들끼리 고객을 두고 싸우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 고객을 빼앗아서라도 실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울분을 억누르며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러다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동료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고도 실적을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2010년, 저는 어떤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이 업계는 기본급 없이 판매가에서 일부 금액을 받는 인센티브제로, 상품을 파는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경쟁이 심합니다. 제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오래 일한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빈 씨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예전에 어떤 직원 두 명이 서로 경쟁하면서 상품을 팔다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어요. 결국 두 사람 모두 해고됐어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그 사람들 참 너무하네. 돈 더 많이 벌려고 같은 동료끼리 싸움까지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동료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처럼 상품을 팔려고 다퉈선 안 돼요. 그래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직원의 손님은 절대 뺏지 않기로 해요.” 동료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거 좋네. 그럼 공평하잖아. 그럼 예전 그 직원들처럼 자기 상품을 팔려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딱 제가 팔 수 있는 만큼만 팔고 여기 규칙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럴게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먼저 손님을 받고 상품을 소개하면 저는 한쪽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손님을 받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재빨리 자기 상품을 소개했고 아예 제 손님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인데 빼앗아 가면 안 되죠. 먼저 손님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했잖아요.” 당시 동료는 제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동료는 또다시 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그 동료가 먼저 ‘손님을 먼저 받은 사람이 계속 응대한다’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그 동료는 규칙을 너무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제 손님을 가로채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손님을 딴 사람한테 빼앗기면 지금까지 일한 게 전부 헛수고고 돈도 하나도 못 번다며 뒤에서 저를 바보 같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동료가 번번이 제 손님을 가로채는 것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것도, 전부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지 않았나? 당신이 먼저 규칙을 안 지키고 내 손님을 가로챘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겁낼 줄 알고? 나도 바보는 아니야. 다음에 네가 먼저 손님 받으면 나도 빼앗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먼저 손님을 받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잽싸게 제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결국 동료가 소개한 상품을 샀습니다. 손님이 떠난 후,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손님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결국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와 동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같이 근무하면서도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계속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을 가로챘고, 그때마다 저는 엄청 화가 났습니다. 동료가 가로챈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빼앗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실적이 없고, 그럼 계속 여기에서 일할 수도 없을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진열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 지금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손님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전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사람이 착하면 남에게 속고, 말이 온순하면 사람이 타게 마련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반드시 싸워 쟁취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흉하고 악랄하게 변하게 되었으며, 동료끼리든 친척끼리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노리고 서로 죽이고, 추호의 양심이나 이성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제 손님을 가로챘고, 그걸 본 저는 네가 빼앗았으니 나도 빼앗을 거야.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라는 생각에 손님을 빼앗기 위해, 사람됨의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동료와 다투며 매일 질투와 싸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뿐, 여전히 사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야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세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거역으로 저를 대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저를 인도하시어, 사탄이 저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정상 인성은 모두 어떤 몇 가지 방면을 포함하고 있는가? 즉, 견식ㆍ이지ㆍ양심ㆍ인격이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외교(外交)를 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정상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어야 하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이 보았을 때 최소한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실생활에서 육체를 배반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다시는 이익을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격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이끄신 길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실생활에서도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20대 여자 손님 네 분이 마트에 왔고, 제가 먼저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는 얼른 끼어들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료의 모습에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속으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동료가 또 제 손님을 가로채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저는 돈도 못 벌고 다른 동료들한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저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얼른 묵묵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는 것을 보고 동료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는 이득을 위해 다투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상 인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며칠 전에 본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다면 동료가 손님을 빼앗아 갈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손님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든 그것은 전부 합당한 것이고, 피조물인 저는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동료와 싸우고 싶지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료가 경쟁하듯 화장품을 소개해도 더는 동료가 밉지 않았으며,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품을 소개했지만, 결국 여자 손님 네 분은 동료가 소개한 것이 아닌 제가 소개한 상품을 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님이 결국 누구의 상품을 구매하는지는 전부 하나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상품 소개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에 좌우하지 않으며, 손님에게 상품 소개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손님이 반드시 그걸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저한테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고, 가끔 제가 너무 바쁠 때는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점장님 친척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도 특별히 제게 상품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동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제게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동료와 손님을 빼앗으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