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2019년 01월 04일

장거리 연애가 날 불안하게 하다

“두 분은 오랫동안 못 만나는데 남자친구한테 다른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요?” “두 분은 전화로만 연락하는데 감정이 오래갈 수 있나요?” “장거리 연애는 오래 못 가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제가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이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이 항상 저를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에 몰아넣어 안절부절못하게 했고, 입맛도 없고, 종종 잠을 설쳐서 출근해도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특히 남자친구가 인기가 있는 편이고,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도 두 명 있어서 저는 온종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그가 장거리 연애가 피곤하다고 느껴져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며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또 그의 곁에 있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더욱 불안하고 의심하면서 통화할 때마다 그에게 그날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와 이야기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등등을 물었고, 심지어 그에게 페이스북 비밀번호까지 알아내서 채팅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또 저와 Skype 웹 페이지를 공유하자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공유한 후에는 눈에 불을 켜고 전체 웹 페이지 화면을 훑어보며, 누구와 채팅을 했는지 살폈습니다.

전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남자친구가 항상 제 곁에서 저를 위로하고 돌봐 줘서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정감을 갖지 못합니다. 그를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때로는 성질을 부리고, 화도 냈습니다. 그가 저에게 더 신경 쓰도록 하려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행동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남자친구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밤 10시, 동료랑 먹거리 시장에 가서 야식 먹고 기분 전환할 거야.” 저는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응, 놀다가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어.”

다음날 아침, 저는 인스타그램을 켜서 그의 동료가 올린 최신 사진을 보고 그들이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신 것을 알았습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저는 속으로 ‘남자친구가 왜 사실대로 나한테 클럽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지? 왜 날 속였을까? 어제 둘이 또 다른 사람이랑 만나지 않았을까? 여자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자친구의 ‘거짓말’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고 그가 어떻게 해명하는지 떠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심 때문에 말다툼하지 말자고 전에 그에게 약속했던 게 생각나서 애써 참으며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제하는 게 저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던 저는 결국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어제 어디 갔었어? 둘이 몇 시에 집에 갔어? 어제 인도 전병은 맛있었어? 뜨거운 음식을 먹었는데 몸은 괜찮아?”

그는 제 메시지를 보고 답장 없이 곧장 전화를 했습니다. “너 또 날 의심하는 거야? 어제 갔더니 가게 문이 닫혀 있었어. 동료가 노래 들으면서 기분 풀고 싶다 길래 클럽에 간 거야.” 남자친구의 해명에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왜 저는 그를 믿지 않았을까요?

의심이 습관으로 변하다

점점 저의 의심은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퇴근한 후 전화를 걸어 저에게 작은 금 거북이 장식품을 파는 곳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또 그를 의심하며 떠보듯이 물었습니다. “남들이 그걸 사는 건 다 횡재하고 싶어서 라고 하던데 너도 그런 거야?”

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짜증을 냈습니다. “넌 매번 이것저것 의심하고 추측하길 좋아하는데, 모르면 함부로 추측하지 마. 내가 금 거북이를 사는 건 그게 안정을 상징하기 때문이야. 그걸로 항상 자신한테 침착하게 일하라고 일깨워주고 싶은거라고!”

내가 늘 의심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 저도 화가 나서 그에게 퍼부었습니다. “맞아, 난 항상 의심해. 널 못 믿어서, 매일 네가 날 떠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네가 알아?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좀 알려줄래?”

그는 몇 분 동안 잠자코 있다가 말했습니다. “난 너를 떠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나 때문에 네가 괴롭다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내가 떠날 수밖에 없지.”

그 순간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 번도 저를 떠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던 그였기 때문에 저는 제가 가진 문제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 저의 이런저런 행동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은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담담히 대하는 법을 배우다

2015년 2월, 저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자매님은 저의 상황을 알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

자매님이 저에게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결혼은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배정한 것이며, 어떤 사람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고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결국에 우리와 손잡고 예식장에 들어갈 사람은 창조주가 일찌감치 정해놓으셨어요.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인연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다. 천리 밖에서도 부부의 인연은 이루어지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하고도 서로 알지 못한다.’ 자매님이 남자친구와 예식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재하고 정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혼 문제를 대할 때 우리는 담담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우리는 자유를 얻고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죠.”

그렇습니다. 저의 결혼은 하나님이 이미 배정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이 연애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심혈을 기울이고 쟁취하느냐에 달린 게 아니라 창조주가 우리에게 배정한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저는 이 연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저는 자신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내려놓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이 장거리 연애를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의심의 근원을 찾아내다

몇 개월 후, 친구들이 연달아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저와 남자친구의 감정은 거울 속의 꽃 구경하기, 물속의 달 구경하기처럼 바라만 볼 수 있고 잡히지 않는 것이라 저는 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해서 남자친구와 채팅할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무척 초조해하며 항상 그가 변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한참 생각한 후 저는 예배 시간을 줄여서 시간을 내어 그와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정이 영원히 변치 않을꺼라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그와 채팅하려고 일부러 예배 시간을 빠진 적이 있습니다. 신이 나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는 “오늘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 다음에 보자!”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생기니까 그가 일부러 저를 피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간신히 온라인으로 연결되었지만 그는 일 때문에 힘들어서 전혀 저와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없었습니다. 항상 거절을 당하다 보니 저는 의기소침해졌고 소외된 느낌이었습니다.

무기력한 와중에, 저는 또 자매님을 찾아가 제 마음속 고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주었습니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과 추측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늘 남을 추측하고 의심하는 것은 간사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의 사회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부부와 연인이 서로를 추측하고 의심해서 사이가 깨지고 있는지를요. 항상 의심하고, 서로에 대한 진정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내고, 서로 괴롭고 피곤하게 지내는 거죠. 자매님이 남자친구와 사귈 때처럼, 자매님의 남자친구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특별히 민감해지고 그를 의심하잖아요. 특히 두 분은 장거리 연애 중이라서 불안한 감정이 자주 생기고, 혹시 그가 변심하지 않을까 걱정하죠. 그래서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신경질을 부리고, 제멋대로 화를 내는 거예요. 여기서 의심은 서로에게 고통뿐만 아니라 상처까지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매님의 나눔에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남자친구를 의심해서 저는 정상 인성의 이성을 잃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저 사이의 감정까지 상하게 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후, 저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어 실행하고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심하는 마음을 없애고 정직한 사람이 되다

자매님은 또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내줬습니다.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며,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펴 준다. 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난 후, 저와 남자친구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더 이상 타락한 성품대로 상대를 추측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며, 상대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직장에 다니며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외에도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더 이상 남자친구를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자친구에게 안부 인사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고도 남자친구가 저에게 답장하지 않자 저는 또 초조해졌고 마음대로 추측했습니다. ‘그가 무얼 하고 있을까? 답장 하나 보내는 게 그렇게 귀찮은가? 아니면 나한테 답장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건가? 내가 싫어졌나?’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을 때, 저는 또 제가 상대를 함부로 추측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저의 마음을 지켜달라고 구했습니다. 잠시 후 남자친구가 답장을 보냈습니다. “방금 샤워하러 갔는데, 샤워하고 나서 답장하려고 했어.” 남자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추측하지 않으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을 했을 때 안심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더 이상 추측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특별한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그 후, 저는 남자친구와 소통할 때마다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채팅을 할 때, 남자친구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거리가 우리 사귀는 데 장애물이 될 수는 없어. 우리가 시작하기로 선택한 이상 변심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장거리 연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장거리 연애를 통해서 저는 얻은 게 아주 많습니다. 남자친구한테서 낙관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웠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후로 제가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정직한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해라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

중국에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일은 하나 보태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낫다” “남의 덕을 볼 줄 모르면 멍청이다” 등등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이런 말들을 격언과 명언으로 삼고 심지어는 제가 처세하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어도 저는 이런 “최고 명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져 왔으니 틀림없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츰차츰 탐욕스러워졌고 정직했던 마음도 점점 마비되어 갔습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시내에 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 탔는데도 매표원이 저에게 표를 사라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표를 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저는 모르는 척 무임승차 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도 저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번 이득을 본 것에 기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최고 명언”대로 살아왔고 계속 제가 맞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며, 매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고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직이란 일하고 말함에 여러 가지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상관없이,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든 이방인과 함께 지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하고 남에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하거나 기만을 해서도 안 되며,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 올 수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선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어나게 했고 예전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저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다 옳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원래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됨이의 원칙과 인격을 잃었으며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처리한 것을 남 몰래 기뻐했다는 것에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최고 명언”이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마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익을 조금 얻긴 했지만 잃은 것은 오히려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와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을 받았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급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모두 심하게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심하게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고 있고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한 영향 아래서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구비될 수 없고 더욱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질이 있을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타락시킨 이 사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무엇이 정의이고 광명인지 모르고 사탄의 이러한 사상에 완전히 젖어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권세 하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러한 “최고 명언” 즉, 사탄의 독소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저의 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광명이고 흑암인지 몰랐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을 몰랐기에 비천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게 되었고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더러운 곳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면서 저에게 정확한 인생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밖에서 일처리를 다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를 사려고 10위안을 꺼내 매표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매표원은 저에게 거스름 돈으로 4.5위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제가 20위안을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14.5위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받는 순간 이득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또 기뻤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요구를 생각하니 기뻤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선뜻 돌려주기는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이 알면 저를 바보라고 말할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성격이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은 마치 어둠속의 등잔불처럼 저에게 실행의 길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보는 것을 늘 싫어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셔셔 구원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은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시지 않고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길, 생명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먼저 가서 매표원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매표원이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하고 나니 제 마음은 처음으로 즐거웠고 매우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즉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국도(國度)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시행한 간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간계를 다 폭로해 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그지없이 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ㆍ쓰레기ㆍ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고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가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무지한 인류로 하여금 모두 나를 위해 증거할 수 있게 하는데, 즉 “내”가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조물주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이고 사탄은 피조된 다음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역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타락된 인류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발표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저의 추악상을 드러내시는 것은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이것이 저에 대한 구원임을 말씀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에 제가 지켜왔던 “최고의 명언”들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최고의 명언”에 따라 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더 추해져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베풀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절망에 빠진 결혼 생활, 누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하)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조양의 이야기가 그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기적처럼 사라진 남편의 뇌종양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다

갑작스레 남편에게서 뇌경색에 뇌종양까지 발견하게 되자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원한 기도를 하면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간단한 방법을 찾다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컴퓨터, 휴대전화는 사람들의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자기기 없인 살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인 나 역시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엄청나게 집착하곤 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공부하며 자료를 찾고, 친구와 연락하고, 계획표를 작성하는 등 컴퓨터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는 정말 편리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전자기기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동시에 조금의 고민도 따랐다. 컴퓨터 앞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눈이 뻑뻑하고 아프며,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업무상의 필요로 컴퓨터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일 컴퓨터와 동고동락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뒤, 주변 동료들도 장시간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으로 눈이 많이 나빠진 걸 보게 되었다. 전자파 차단 안경을 쓴 사람도 있고, 수술 받은 사람도 있으며, 오랫동안 안경을 써서 안구가 튀어나온 사람도 있었다. 빛나고 생기 넘치던 눈이 침침해져 생기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처럼 될까 두려운 마음에 안구 피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선 컴퓨터를 1시간 하면 10분간 먼 곳에 있는 초록색 식물을 바라보며 정기적으로 눈의 피로를 풀어보았다. 이렇게 지속하니 눈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눈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업무 효율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펜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 후, 옆에 앉은 동료가 TV 광고에 나오는 안약을 쓰는 걸 보고 나도 그중에 제일 좋다는 안약을 골라 사용했다. 하지만 약물로 순간의 고통만 덜어줄 뿐, 눈의 피로는 여전했고, 오히려 눈이 점점 아팠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끝내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내게 놀러 왔다. 같이 얘기하는 도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눈이 너무 아프니까 컴퓨터 보기도 싫어. 그런데 또 컴퓨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친구가 말했다. “내가 좋은 방법 알려 줄게. 녹차를 우려서 차갑게 식힌 다음 눈에 넣고 10분 동안 휴식해 봐, 눈이 굉장히 편해질 거야. 녹차는 식물이라서 부작용도 없어. 나도 해봤는데 효과가 좋더라고.” 드디어 좋은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그래서 친구가 말한 대로 해보니 정말 눈이 편안해졌다. 2주 동안 계속했더니 뻑뻑함도 많이 가셨다. 그 후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보니 뻑뻑하고 아팠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고, 마음속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작은 식물이 신통하기도 하지! 전자파 차단 안경에 안약까지 써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녹차에 이렇게 신기한 효능도 있고, 부작용마저 없다니! 몇 년간의 고통을 드디어 해결했구나!’ 나중에 인터넷에서 녹차의 효능을 찾아본 후에야 녹차에 전자파 차단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열, 해서, 청심, 양음, 분비물 촉진, 해갈, 이질 멈춤, 상처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여름철 짜증과 뒤척임 등 에도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여름철 무더위, 더위로 인한 설사, 이질과 부스럼이나 종기, 붓기 등에도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녹차는 여름에 마시기에 제일 좋고, 효능 또한 뛰어나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만물 중 동식물이든 풀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몸에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렸을 때 필요한 식물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으면 되느냐? 아무 천으로나 감싸면 되느냐? 그러면 곪거나 감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칫 잘못하여 불이나 뜨거운 물에 데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어 내면 되느냐? 예를 들어,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거나, 일하다 타박상을 입거나, 무엇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혈관 질환처럼 생활 습관이나 감정에 의해 발생된 병이나, 정서적인 병이나, 오장육부에 생긴 질병 등은 그에 맞는 식물로 치료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에는 어혈을 풀거나, 통증을 없애거나, 지혈이 가능한 것도 있고, 마취를 하거나, 피부의 정상적인 회복을 돕는 것도 있으며, 체내의 어혈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식물 모두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고 쓸모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위해 예비한, 비상시에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 중에는 사람이 무심코 발견하게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기이한 현상이나 사람들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것도 있다. 발견한 후 인류에게 전해 내려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만든 식물 또한 가치와 의미가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의 생존 환경을 창조할 때 사람을 위해 만들고 재배한 것으로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릴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도 따뜻해졌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주듯 우리를 만드시기 전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고,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약초도 마련해 주셨다. 우리가 오랫동안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 전자파로 인해 눈이 뻑뻑하고 아플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녹차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녹차는 천연 안약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해열, 해서, 청심 등 다양한 효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뛰어나다. 찻잎 외에도 우리가 평상시에 접하게 되는 다른 한방 약초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의 곳곳까지 세심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비미은장을 실제적으로 볼 수 있었고, 묵묵히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본초강목’의 저자를 존경하며 그가 모든 약초를 발견해 인류를 위해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준비가 있었음을 이제 깨달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고 공로를 칭찬해 주길 바라지도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직접 누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것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활함에 있어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다

예배는 하나님과 가까히 하고 진리를 얻는 좋은 기회지만 종종 주변의 사람과 사물의 교란을 받아 예배를 드릴 수 없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예배를 드릴 때 교란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가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주변에는 완벽주의자가 되기 위해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남들에게 빈틈을 남기기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완벽함"은 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불행으로 다가 올 수 있다. 그럼 사람은 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없고, 또 어떻게 해야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

저는 농사를 본업으로 삼았던 일반 농민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논과 밭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며 직접 농작물이 성장하는 기묘한 자연의 섭리를 체험하였습니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무성해져 가을에 수확하면 겨울에는 저장하는 일상이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이어졌습니다. 각종 농작물은 영원히 변치 않는 이 규칙에 순응해 뿌리를 내리고 발아해 꽃을 피우며 결실을 맺었습니다. 사람들도 시종일관 이 불변의 법칙에 순응하며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을 누렸습니다. 이는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하사하신 자비로운 은덕과 크나큰 혜택입니다! 그때 저는 인간이 조물주께서 주관하시는 기묘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모든 자연식품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국가 정부에서는 “과학을 배우고 과학을 활용해 과학을 발전시키자”는 경제 발전 전략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제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 수준은 나날이 발전했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빠른 속도로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바나나, 포도, 수박, 오이, 옥수수 등 각종 과일과 채소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지역의 특산품도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발전은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큰 욕망과 수요를 만족시켜 감탄과 찬미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된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발전은 과학의 덕이라고 생각하며 이처럼 ‘하이 레벨의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으며 덕분에 소강사회가 현실이 되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까지 많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좋은 점’은 모두 과학의 혁혁한 공헌 덕분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누구도 과학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이면을 알지 못했습니다. 즉 과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잔혹한 피해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약품이 채소와 과일에 어떤 이변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치하게도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과학을 발전시켜 얻은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과일과 채소 사업을 하게 되었고 그제야 매번 도매로 산 채소와 과일이 판매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부패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도매로 산 당근은 겉보기에 신선하고 외형도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수분도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정도 판매하고 나면 바로 썩어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도대체 왜 이렇게 쉽게 썩어버리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원인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요즘 채소와 과일에는 성장촉진제와 선도보존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자연의 성장 규칙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채소와 과일을 빠르게 숙성시키고 색상도 예쁘게 만들어줍니다. 소매점에서는 당근을 빨리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세척수에 약품과 색소를 첨가해 당근을 세척해서 더 붉고 신선해 보이도록 만듭니다. 실상 당근에는 이미 유독 성분이 가득한 농약이 흠뻑 묻어있는 상태인데 말이죠. 부추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짝 노란 빛을 띠는 잎도 좋은 품질이지만 소매점에서 판매 전날 농약을 뿌려 색상은 더 짙어지게, 얇은 잎은 더 굵어지게 만듭니다. 콩나물은 화학비료를 사용해 성장을 촉진합니다. 원래는 색이 전체적으로 푸르며 얇고 가는 모양을 띠는데 약품에 담가두면 희고 굵은 콩나물로 변하게 됩니다. 한번은 어떤 나이 지긋하신 농부 할머니가 오이를 도매 판매할 때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수확한 오이 양이 너무 적어 이윤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제 남편이 수확 전날 비료를 뿌리지 않은거예요.” 저는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습니다. “비료와 이번 수확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분은 “비료를 뿌려주면 오이 출하량이 늘어나고 오이도 기다랗게 맺히는 데다가 꽃도 크고 예쁘게 핀답니다. 요즘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좋은 농약이 많이 개발되었어요.”라고 대답했고 이 내용을 들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끊임없이 그분의 이야기를 들은 저는 우리가 매일 같이 먹고 있는 채소가 겉으로는 보기 좋고 신선해 보이지만 사실 농약과 호르몬으로 가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사업을 했던 기간에도 도매상이 포도, 토마토, 딸기 등의 많은 과일과 채소를 빨리 성숙시켜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덜 익은 상태의 과일과 채소에 약품을 사용해서 빠른 숙성을 유도했습니다. 약품을 뿌린 작은 포도알은 크기가 커졌고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습니다. 심지어 전날 약을 뿌렸다가 둘째 날 바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습니다. 일부 식품 중에서도 과일은 다른 지역에서 운송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운송과정에서 대량의 방부제, 화학약품, 포르말린 등 유해성이 높은 약품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대부분의 쌀, 밀가루, 식용유는 자연 상태의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로 개량한 유전자 변형 식품입니다. 심지어 식용 달걀까지도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만들어 낼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발전된’ 과학 기술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불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섭취하는 음식이 과학기술로 가공된 성찬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약과 독약을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현재 사람들은 화학비료와 각종 호르몬이 첨가된 과일과 채소 등 기타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각종 괴질을 앓게 됐습니다.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각종 암은 현대인에게 흔히 발생하는 병이 되었으며 최근 중국의 암 환자는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어린 환자는 이제 겨우 5세입니다. 이렇게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죽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곤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를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지금같이 이렇게 다양하고 이상한 괴질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학이 가져다준 풍부한 물질적인 자원을 누린 인류는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후에 저는 운 좋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체험하게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정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사탄이 과학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은 과학이란 명목으로 사람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과학과 오묘한 비밀에 대한 탐색을 만족시키며, 또한 과학이란 명목으로 물질적 욕구와 생활의 질을 끊임없이 높이려는 사람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이다. 사탄은 바로 그런 명목을 내걸고 과학이란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킨다.…사탄의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그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하지만 과학이 인류에게 초래한 결과는 어떤 것이냐? 우리는 어떤 환경들을 접하게 되느냐? 인류가 호흡하는 공기는 오염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진정 깨끗한 물이냐?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먹는 먹거리는 어떠냐? 대다수가 자연적인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그것은 화학 비료로 재배한 것이고, 유전자를 개량해 재배한 것이며, 또한 각종 과학적 방식으로 변종시킨 것이다. 우리가 먹는 야채, 과일마저도 이미 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은 자연적인 먹거리를 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계란마저 원래 맛이 아니라 소위 사탄이 말하는 과학으로 가공된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의 질은 사람이 예상한 목표에 도달하여 사람의 욕망과 육체를 만족시켰을지라도 실제로 사람이 생존하는 환경은 모두 과학이 가져온 각종 ‘성과’에 의해 파괴되고 망가졌다. …우선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그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인데,너희를 흐릿해진 상태에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목으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과학이란 것은 원래 사탄이 인류를 멸망시키고 독살하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사탄은 “과학발전을 대대적으로 실천해야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라는 슬로건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마비시켜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고 물질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오인하게 했습니다. 과학을 숭상하고 끊임없이 과학을 연구해 사람들이 과학 발전을 수단으로 많은 것들을 연구하여 만들어 냈고 이로써 하나님께서 최초에 인류에게 향유하도록 예비해 주신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고 변화시켰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과학 발전에만 심취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원시적인 생존 환경과 각종 식물을 훼손시켰습니다. 우리들이 먹는 각종 채소와 과일에는 숙성제, 성장촉진제, 팽창제, 증색제, 선도보존제 등등 각종 유독 성분이 포함된 식물 성장 호르몬이 가득 뿌려지고 있습니다. 채소와 과일에 잔류해있는 이런 유독물질은 완벽하게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체내로 흡수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유독 물질에 장기간 오염된 채소와 과일을 섭취했을 경우 몸에 필요한 각종 영양분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화학 약품이 체내의 오장육부, 심지어는 혈액에도 침투되고 있습니다. 이런 잔류 농약이 체내에 장기간 축적되면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이상한 괴질에 걸리게 됩니다.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과 암은 현대 사회에서 아주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이런 병을 앓게 된 인류의 건강은 철저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이 과학기술 발전에 전력을 쏟아부어 우리 인류가 맞이하게 된 결과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 발전을 위해 각종 명목으로 엄청난 규모의 화학 공장이 무수히 많이 생겨났습니다. 각양각색의 자동차가 점점 많아졌고 공기, 물, 토양, 기온 등등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생존 환경이 서로 다른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오늘날 과학 발전이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왔고 우리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의 음험한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원시적인 생태계와 각종 식품에서 멀어지고 과학 연구를 통해 새로 개발한 식품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해주신 것이야말로 우리 몸에 가장 잘 맞고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한 인류가 사탄에게 무정하게 짓밟히고 훼손되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류를 굽어살피시며 말세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현세에 나타나시어 진리를 말씀하시고 직접 사탄에 깊이 타락되어 미혹된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하나님은 이 세계와 이 인류를 창조하였고, 더욱이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인류의 문명도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있고, 또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밤낮으로 보살펴 주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하나님의 주재를 떠날 수 없고, 인류의 역사(歷史)와 미래도 하나님 손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류가 좋은 운명이 있기를 바라고 한 나라가 좋은 국운이 있기를 바란다면, 인류는 다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다 하나님 앞에 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결말은 피할 수 없는 큰 재앙일 것이다.』『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생명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넉넉한 생활과 사람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그런 공평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다. 인류는 오직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만 인류의 필요와 인류가 탐색하고자 하는 욕망과 심령의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운명을 정하셨으며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공급해 주시며 인도하고 구원하십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벗어나 과학을 발전시켜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과학으로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려고 한다면 사람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며 암흑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 결국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참 하나님만이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권병과 능력이 있습니다. 인류가 좋은 운명과 처소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하신 생존환경에 순응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더는 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형 교통사고의 위험에서 살아남다

2013년 1월, 한 친척이 내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은 일이며 인생의 바른길로 가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3개월 후, 아내는 내게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재촉했고 나도 ‘돈을 벌긴 벌어야지. 돈이 있어야 모든 게 있는 것이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자 밖에 나가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초반에는 형제자매가 내게 해준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기도드리세요. 무슨 일이 있거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속은 돈벌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뿐 하나님을 믿는 일은 저편으로 미뤄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횟수도, 기도를 드리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내 마음도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2013년 12월 18일 저녁, 장 공장장이 나와 또 다른 동료 한 명을 불러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배불리 먹고 마신 후 공장장은 기사를 불러 우리를 다시 공장으로 데려다주라고 했다. 동료는 뒷좌석 왼쪽에, 나는 오른쪽에 앉았고, 조수석에는 10살배기 장 공장장 아들이 앉아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 넷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그때, 기사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상대방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사님 목소리만 들렸다. "거의 다 왔어요. 운전하면서 통화하면 안 되는 거 모르세요?" 나는 속으로 분명 우리가 어디쯤 갔을까 궁금한 장 공장장이 걸어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막 끊었을 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옆에 앉은 동료가 "저 차 라이트 너무 눈부셔"라고 말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쾅' 소리가 났다. 나는 목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난 정신을 잃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앞 좌석 등받이에 엎드려 있었고 머리가 울리듯 아팠다.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켜보니 차안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좌석은 모두 휘어져 있었으며, 기사님은 핸들 위에 엎어져 있었다. 참혹한 광경에 두려움이 몰려왔다.‘이 낯선 곳에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제가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희를 구해주소서.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이때, 동료가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한 채 어디론가 나가려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려 하는 게 보였고, 내가 몇 번을 불러도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동료 얼굴에 많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고 난 왼손으로 동료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도록 부축했다. 기사님도 핸들 위에 엎어진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내가 몇 번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다급하게 기사님께 말했다. "우리 교통사고 났어요. 빨리 전화해서 우릴 구하러 오라고 하세요!" 그러다 차량 좌석에 낀 장 공장장 아들이 보였다. 얼른 다가가 좌석을 옮기고, 장 공장장 아들을 일으켰다. 몇 번이나 깨워도 아무 반응이 없자 ‘혹시 죽은 건가?'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더욱 무서웠다. 얼마 후, 장 공장장이 형제와 함께 사고현장으로 왔다. 오자마자 10살배기 아들을 끌어안아 타고 온 차에 뉘었다. 그리고 기사님과 나, 동료에게는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밖으로 나와 차를 보니 더욱 처참했다. 앞부분은 시멘트 더미에 부딪혀 완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몇 걸음 걷다 발이 아파서 보니 신발이 없었다. 다시 차로 돌아간 나는 등받이 밑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해서야 동료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료는 그날 밤 곧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그는 머리 쪽에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한쪽 눈을 잃었고 십여 만 위안을 쓰고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장 공장장의 아들은 병원으로 호송됐지만 끝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기사님은 머리 뒤쪽을 몇 바늘이나 꿰맸다. 유독 나만 경상을 입었고, 다친 곳은 얼굴 찰과상뿐이였다. 이튿날 출근하자 원래 운전하던 기사님(공장의 양 사장님)이 내게 물어봤다. “승용차 앞쪽이 시멘트 더미에 부딪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데 자넨 아무렇지 않다니. 정말 운이 좋았구먼! 자네 어디 앉아있었나?” 내가 대답했다.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 있었어요.” 양 사장님이 말했다. “상식적으로도 자네 자리가 가장 많이 다칠뻔한 자린데 자네가 제일 조금 다쳤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난 ‘운이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날 지켜주신 것이지’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아! 전능하신 실제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시고 당신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니이다. 우리 모두 당신의 날개 아래에 엎드려있으니 재해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신성한 보호와 보살핌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난 크게 감명받았다. 하나님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지키고 계시며 밤낮없이 나를 보살펴주고 계셨던 것이다. 처음 일을 하러 나왔을 때 형제자매가 내게 했던 진실된 충고가 떠올랐다. “말세가 도래했으니 돈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생명에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형제자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았으며 큰돈을 벌기 위해 매일 정신없이 일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은 읽지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지도 않았으며 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내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저지른 죄로 나를 대하지 않으셨으며 어려움이 내게 닥쳤을 때 시종일관 나를 보살펴주셨다. 이번 교통사고에서 만약 하나님이 구원해주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어떻게 그 화를 면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하나님께 빚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한 모든 행동이 후회되었다. 자책 속에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고 앞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리라 결심했다. 12월 말, 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예전에 함께 예배를 드렸던 형제자매를 찾아 그들과 함께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영생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너희는 돈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하루도 살 수 없고 하루도 생활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돈이 있는 만큼 지위도 있고 존귀하다고 보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기를 펴지 못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고, 기도 펴고, 큰소리도 칠 수 있고, 판을 치며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말과 이런 조류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느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대가든 다 치르게 되지 않겠느냐? 또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잃게 되지 않겠느냐? 더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본분을 할 기회를 잃고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잃게 되지 않겠느냐? 이런 것은 사람에게 손해가 아니냐? (맞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그런 방식으로, 그 한 마디로 이 정도까지 타락시켰는데, 그 속셈이 음험하고 잔인하지 않으냐? 이 수단은 아주 악독하지 않으냐? 그런 말이 유행하면, 너는 처음에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데서 진리라고 여기는 데까지 이르게 되어 그것에게 철저히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기에 너도 어쩔 수 없이 그 한 마디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그 말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받았느냐? 참 말씀이고 진리인 줄 알면서도 추구할 힘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고 고난받으면서도 그것을 위해 바치기를 원치 않으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희생할지언정 끝까지 하나님께 대항한다. 또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어떻게 하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크다고 깨닫든, 여전히 자기 고집대로 그 말을 위해 대가를 치른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이미 너의 행위와 생각을 좌우하였는데, 너는 그 말에 너의 운명이 좌우되기를 바랄지언정 그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나서야 ‘돈이 있으면 귀신을 부려 맷돌을 돌릴수 있다’, ‘돈이 만능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 안된다’, ‘물질 만능주의’ 등은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가치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고, 돈만 있으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인생을 마음껏 누려 상류층의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치관에 사로잡혀 돈을 숭배하고, 돈을 최우선 자리에 두어 온 인류가 돈을 위해 죽고 살며, 돈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버리는 사람의 근본을 잃은 삶 속에 살게 되었다. 나 역시도 돈을 벌어 더 좋은 물질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한가한 시간에 하는 일로 여기고 기본적인 예배, 기도, 하나님의 말씀 읽기조차도 하지 않았고 돈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본분을 다할 기회마저도 놓쳤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았다!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나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생명을 살 수는 없고, 평안과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큰 사고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아무리 돈이 많았더라도 나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마치 이번 교통사고처럼 동료는 머리 쪽에 대수술을 받고,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한쪽 눈을 잃었다. 기사님 역시 크게 다쳐 뒤통수를 몇 바늘이나 꿰맸다. 돈 많은 장 공장장도 아들이 교통사고에서 크게 다쳐 많은 돈을 썼지만 목숨을 살릴 수는 없었다. 오직 나만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다. 문득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오늘에서야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보살핌을 얻어야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야 말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진리를 잘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