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2019년 01월 04일

장거리 연애가 날 불안하게 하다

“두 분은 오랫동안 못 만나는데 남자친구한테 다른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요?” “두 분은 전화로만 연락하는데 감정이 오래갈 수 있나요?” “장거리 연애는 오래 못 가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제가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이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이 항상 저를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에 몰아넣어 안절부절못하게 했고, 입맛도 없고, 종종 잠을 설쳐서 출근해도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특히 남자친구가 인기가 있는 편이고,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도 두 명 있어서 저는 온종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그가 장거리 연애가 피곤하다고 느껴져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며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또 그의 곁에 있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더욱 불안하고 의심하면서 통화할 때마다 그에게 그날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와 이야기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등등을 물었고, 심지어 그에게 페이스북 비밀번호까지 알아내서 채팅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또 저와 Skype 웹 페이지를 공유하자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공유한 후에는 눈에 불을 켜고 전체 웹 페이지 화면을 훑어보며, 누구와 채팅을 했는지 살폈습니다.

전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남자친구가 항상 제 곁에서 저를 위로하고 돌봐 줘서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정감을 갖지 못합니다. 그를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때로는 성질을 부리고, 화도 냈습니다. 그가 저에게 더 신경 쓰도록 하려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행동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남자친구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밤 10시, 동료랑 먹거리 시장에 가서 야식 먹고 기분 전환할 거야.” 저는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응, 놀다가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어.”

다음날 아침, 저는 인스타그램을 켜서 그의 동료가 올린 최신 사진을 보고 그들이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신 것을 알았습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저는 속으로 ‘남자친구가 왜 사실대로 나한테 클럽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지? 왜 날 속였을까? 어제 둘이 또 다른 사람이랑 만나지 않았을까? 여자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자친구의 ‘거짓말’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고 그가 어떻게 해명하는지 떠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심 때문에 말다툼하지 말자고 전에 그에게 약속했던 게 생각나서 애써 참으며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제하는 게 저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던 저는 결국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어제 어디 갔었어? 둘이 몇 시에 집에 갔어? 어제 인도 전병은 맛있었어? 뜨거운 음식을 먹었는데 몸은 괜찮아?”

그는 제 메시지를 보고 답장 없이 곧장 전화를 했습니다. “너 또 날 의심하는 거야? 어제 갔더니 가게 문이 닫혀 있었어. 동료가 노래 들으면서 기분 풀고 싶다 길래 클럽에 간 거야.” 남자친구의 해명에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왜 저는 그를 믿지 않았을까요?

의심이 습관으로 변하다

점점 저의 의심은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퇴근한 후 전화를 걸어 저에게 작은 금 거북이 장식품을 파는 곳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또 그를 의심하며 떠보듯이 물었습니다. “남들이 그걸 사는 건 다 횡재하고 싶어서 라고 하던데 너도 그런 거야?”

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짜증을 냈습니다. “넌 매번 이것저것 의심하고 추측하길 좋아하는데, 모르면 함부로 추측하지 마. 내가 금 거북이를 사는 건 그게 안정을 상징하기 때문이야. 그걸로 항상 자신한테 침착하게 일하라고 일깨워주고 싶은거라고!”

내가 늘 의심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 저도 화가 나서 그에게 퍼부었습니다. “맞아, 난 항상 의심해. 널 못 믿어서, 매일 네가 날 떠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네가 알아?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좀 알려줄래?”

그는 몇 분 동안 잠자코 있다가 말했습니다. “난 너를 떠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나 때문에 네가 괴롭다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내가 떠날 수밖에 없지.”

그 순간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 번도 저를 떠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던 그였기 때문에 저는 제가 가진 문제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 저의 이런저런 행동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은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담담히 대하는 법을 배우다

2015년 2월, 저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자매님은 저의 상황을 알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

자매님이 저에게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결혼은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배정한 것이며, 어떤 사람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고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결국에 우리와 손잡고 예식장에 들어갈 사람은 창조주가 일찌감치 정해놓으셨어요.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인연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다. 천리 밖에서도 부부의 인연은 이루어지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하고도 서로 알지 못한다.’ 자매님이 남자친구와 예식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재하고 정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혼 문제를 대할 때 우리는 담담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우리는 자유를 얻고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죠.”

그렇습니다. 저의 결혼은 하나님이 이미 배정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이 연애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심혈을 기울이고 쟁취하느냐에 달린 게 아니라 창조주가 우리에게 배정한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저는 이 연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저는 자신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내려놓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이 장거리 연애를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의심의 근원을 찾아내다

몇 개월 후, 친구들이 연달아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저와 남자친구의 감정은 거울 속의 꽃 구경하기, 물속의 달 구경하기처럼 바라만 볼 수 있고 잡히지 않는 것이라 저는 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해서 남자친구와 채팅할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무척 초조해하며 항상 그가 변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한참 생각한 후 저는 예배 시간을 줄여서 시간을 내어 그와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정이 영원히 변치 않을꺼라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그와 채팅하려고 일부러 예배 시간을 빠진 적이 있습니다. 신이 나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는 “오늘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 다음에 보자!”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생기니까 그가 일부러 저를 피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간신히 온라인으로 연결되었지만 그는 일 때문에 힘들어서 전혀 저와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없었습니다. 항상 거절을 당하다 보니 저는 의기소침해졌고 소외된 느낌이었습니다.

무기력한 와중에, 저는 또 자매님을 찾아가 제 마음속 고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여주었습니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과 추측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늘 남을 추측하고 의심하는 것은 간사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의 사회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부부와 연인이 서로를 추측하고 의심해서 사이가 깨지고 있는지를요. 항상 의심하고, 서로에 대한 진정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내고, 서로 괴롭고 피곤하게 지내는 거죠. 자매님이 남자친구와 사귈 때처럼, 자매님의 남자친구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특별히 민감해지고 그를 의심하잖아요. 특히 두 분은 장거리 연애 중이라서 불안한 감정이 자주 생기고, 혹시 그가 변심하지 않을까 걱정하죠. 그래서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신경질을 부리고, 제멋대로 화를 내는 거예요. 여기서 의심은 서로에게 고통뿐만 아니라 상처까지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매님의 나눔에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남자친구를 의심해서 저는 정상 인성의 이성을 잃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저 사이의 감정까지 상하게 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달은 후, 저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어 실행하고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심하는 마음을 없애고 정직한 사람이 되다

자매님은 또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내줬습니다.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며,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펴 준다. 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난 후, 저와 남자친구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더 이상 타락한 성품대로 상대를 추측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며, 상대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직장에 다니며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외에도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더 이상 남자친구를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자친구에게 안부 인사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고도 남자친구가 저에게 답장하지 않자 저는 또 초조해졌고 마음대로 추측했습니다. ‘그가 무얼 하고 있을까? 답장 하나 보내는 게 그렇게 귀찮은가? 아니면 나한테 답장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건가? 내가 싫어졌나?’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을 때, 저는 또 제가 상대를 함부로 추측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저의 마음을 지켜달라고 구했습니다. 잠시 후 남자친구가 답장을 보냈습니다. “방금 샤워하러 갔는데, 샤워하고 나서 답장하려고 했어.” 남자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추측하지 않으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을 했을 때 안심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더 이상 추측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특별한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그 후, 저는 남자친구와 소통할 때마다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채팅을 할 때, 남자친구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거리가 우리 사귀는 데 장애물이 될 수는 없어. 우리가 시작하기로 선택한 이상 변심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장거리 연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장거리 연애를 통해서 저는 얻은 게 아주 많습니다. 남자친구한테서 낙관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웠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후로 제가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정직한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해라

질병 앞에서 마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

아들이 갑작스럽게 병에 걸리다. 2016년 9월의 어느 저녁, 한창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갑작스럽게 책가방을 멘 채 돌아왔다. 기운 없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얼른 물었다. “왜 저녁 자습도 안 하고 왔어?” 아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통스러운 듯 말했다. “이가 아파요.” 그 말에 얼른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아들의 양쪽 뺨이 탱탱 부어 있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불덩이 같았고, 잇몸도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이 어릴 적부터 이가 아프다고 해서 치아를 갈아주면 또 아픈 이가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잇몸까지 이렇게 심하게 부은 걸 보니 이 뿌리에서 뭔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이상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얼른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작은 읍에 사는 우리가 시내 병원에 가기는 너무 늦어서 아들을 근처 작은 병원에 데려가 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서 아들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밤에 아들이 끙끙대며 신음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침대에 누운 아들이 아파서 계속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자 잠이 확 달아났고, 가슴은 칼로 에이듯 몹시 아팠다. 어서 날이 밝아 병원에 데려갈 수 있기만 바랬다. 아들이 아파하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심란했고,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아들의 병이 이렇게 심각한데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너무 두렵습니다. 하나님! 아들을 당신의 손에 맡기옵니다.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당신 앞에서 안정되길 바라옵니다.”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 우주의 모든 일 중에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일이 내 손에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깨우쳤다. 아들의 병이 심각한지 아닌지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나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러자 점차 나의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아들에게 읽어주며 아들에게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아들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서서히 아들은 통증이 좀 줄어들면서 잠시 후 잠이 들었다. 아들의 병세를 알고 나서 두려움 속에 살게 되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시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의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의 양쪽 어금니에 낭종이 자랐어요. 아들처럼 어린 나이에 이런 희귀한 병에 걸린 경우는 우리 병원에서도 처음 봅니다. 지금 이 낭종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모르지만, 당장 수술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낭종이 곳곳에 퍼져서 가족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다 들은 난 의사가 오진한 게 아닌가 걱정됐다. 겨우 14살 된 아들이 어떻게 그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대형 병원 두 군데를 더 돌았지만 검사 결과는 역시 같았다. 나는 속으로 너무 당황해 검사 결과표를 든 손마저 떨렸다. 이렇게 어린 아들이 이 수술을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나 두렵고, 아들의 낭종이 악성이면 어떡하나, 아들의 수술이 실패하면 어떡하나 무서웠다. 주치의는 주저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주저하시지 말고, 얼른 입원해서 수술받으셔야 합니다. 이따가 제 사무실에 한 번 들러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의사가 서약서 한 장을 꺼내 놓고 나에게 말했다. “여기에 있는 10여 개의 조항을 다 이해하신 후에 사인하셔야 합니다. 그중 마취약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전신 마취제와 국소 마취제가 있습니다. 전신마취제는 나중에 아이의 기억력이 떨어질지 모르고, 국부 마취제는 아이의 기억력에는 영향이 적지만 아이의 나이가 어려서 수술을 견디지 못해 수술이 절반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수술의 성공 여부는 우리 병원에서 보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아들에게 수술하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더 긴장이 되었다. ‘내겐 이 아들 하나뿐인데, 남편도 집에 없고 상의할 사람도 없으니, 만약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어떡하지?’ 순간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꼈다. 근심 걱정에 잠긴 채로 병실로 돌아오니 갑자기 밖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과 같은 병실을 쓰는 한 아줌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병실 사람들에게 말했다. “방금 50대 환자가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제를 투여한 후에 수술대 위에서 죽었대요. 마취제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요. 지금 그 환자 가족이 다 왔어요. 경찰들도 왔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네요! 이 병원도 갈수록 믿음이 안가네요. 이렇게 작은 수술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 일이 알려지면 앞으로 누가 여기 와서 진찰을 받겠어요?!” 이때 한 50대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도 아들이 하나뿐이고, 의사도 아들이 걸린 병이 여기서 첫 사례라고 하는데, 얼른 아들을 큰 병원에 옮겨서 수술받으세요!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 병실 사람들이 이 일을 듣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아들을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권했다. 이런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더욱 심란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심란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하신다. 심란한 와중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병원에서 마취제 사망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아들의 수술도 성공하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당신 앞에서 안정되길 바라옵니다.” 기도 후, 나의 마음은 서서히 평정을 찾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에게 있어, ‘나사로가 부활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그 일의 영향력은 심원한 것이다. 예수는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각 사람들을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한다’라는 이런 깨달음 속에, 이런 이상(異象) 속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해 놓았다.』 “은혜시대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다시 살아났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셔. 그럼, 아들의 수술이 성공할지 못할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이때, 내 마음속의 두려움이 약간 누그러졌다. 잠시 후, 갑자기 사촌 여동생(지방의 한 대형 병원에서 마취사를 함)에게 아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SNS 메시지를 받았다. 사촌 여동생은 우리 가족은 유전적으로 마취제 과민 현상이 없고, 수술에 전신마취제를 사용하고 6시간 후면 마취제가 전부 소변으로 배출되므로 아이의 기억력에 영향을 줄 리 없다고 알려주었다. 사촌 여동생의 말을 듣고 나는 이 메시지가 하나님이 사촌 여동생을 통해 나를 위로하고 내 마음속의 걱정을 내려놓게 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너무 불안하고 아플까 봐 무서워서 수술하기 싫어.” 두려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겨우 14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심한 병고에 시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워서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아들을 위로했다. "두려워하지 마.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거야, 너의 병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두려울 게 없어. 하나님이 말씀하셨어.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친정엄마(하나님을 믿음)도 옆에서 외손자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라고 격려했다.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위로를 듣고, 더 이상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수술하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수술을 앞두고 용기와 믿음이 생긴 것을 보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 덕분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아들의 눈빛에서 한줄기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아들이 수술받으며 당할 고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언저리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으며 얼른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친정엄마와 외숙모(하나님을 믿음)가 내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와 도움 되시니, 걱정하지 마”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주 평온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어머니는 손자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 계속 우시기만 하셨다. 시어머니의 상심한 모습을 보고 나는 시어머니에게 수술이 성공할지 못할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시어머니도 듣고 나서 약간 평온을 찾았다. 아들이 수술받는 4시간 동안, 나와 외숙모, 친정 엄마는 수술실 밖 복도에 앉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마침내 아들이 수술실에서 나왔고, 의사는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들의 수술은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그리고 떼어낸 낭종은 검사 결과 양성이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번에 아들의 수술이 이렇게 성공한 것은 다 하나님의 보살핌 덕분이다. 아들의 이번 병고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함께 하시고 언제든지 우리의 의지와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신다. 사촌 여동생의 일이 생각났다. 최근 사촌 여동생의 두 살배기 딸이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니까 의사가 오랫동안 기침하면 폐렴이 될 수 있으니 얼른 입원시켜 관찰하라고 해서 사촌 여동생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일로 사촌 여동생은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다가 검사 결과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서야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 아들이 병에 걸렸을 때 나는 심란하고 무력했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힘과 믿음을 주었고, 내가 심적으로 의지하게 하고,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문제에 직면하게 했다.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기적처럼 사라진 남편의 뇌종양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다

갑작스레 남편에게서 뇌경색에 뇌종양까지 발견하게 되자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원한 기도를 하면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하)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생명의 기적: 심하게 다친 7살 아이가 살아나다

2014년 9월 29일 오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하굣길 아이가 비에 젖지 않을까 걱정하며 비 가림막이 있는 삼륜차를 타고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40분가량이 흘렀을까.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남편만 있을 뿐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신신 데리러 간다면서? 신신은?” 남편은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으며 헐레벌떡 내게 말했다. “신신은 어머니한테 있어.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어. 얼른 가봐!” 남편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급해졌다. 난 남편을 나무라며 말했다. “어떻게 했길래 애가 삼륜차에서 떨어져?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많이 다쳤어? 보건소에 가서 약이라도 발라주지 그랬어?” 남편은 은행 카드를 찾으면서 내게 말했다. “애가 장난기가 많잖아. 툭하면 장난치고. 집에 거의 다 와 갈 때 혼자 삼륜차에서 뛰어내렸지 뭐야. 자기 생각엔 내가 집에 도착해서 뒤에 자기가 없는 걸 발견하면 놀랄 거고, 그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근데 삼륜차의 특수성 때문에 제대로 착지를 못 했어. 그래서 대자로 쓰러져서 머리를 다쳤어. 엄청 심하게 넘어졌어. 얼른 신신 데리고 병원에 가서 자세히 검사받아 봐야 해.” 남편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닫자 내가 생각했던 찰과상 정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시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어머니 댁에 도착하자 두 눈을 꼭 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신신이 보였다. 신신은 계속 울면서 외쳤다. “머리 아파.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아이를 본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신신, 머리 어디가 아파? 엄마한테 말해봐. 엄마가 봐 줄게.” 아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손으로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여기가 너무 아파.” 신신이 가리킨 방향을 만져보니 뒤통수, 그러니까 소뇌 부분이 컵 주둥아리만큼 파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말랑했다. 문득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넘어질 때 머리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특히 뒤통수. 넘어져서 뒤통수를 다치면 운이 좋아도 뇌진탕이나 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되거든.” 원체 겁이 많던 나는 울고 있는 아들을 보자 죽음이 점점 나를 옥죄어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잠시 후, 아들이 두 손을 꽉 쥐는 게 보였다. 난 얼른 손을 풀어주었지만, 잠시 후 아들은 또 손을 꽉 쥐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들이 이렇게 죽게 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주재하시니 아들의 목숨 또한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는가?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믿음을 얻게 되었고, 세상 만물의 모든 사람과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아들이 많이 다치기는 했지만, 아들의 목숨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불안했던 마음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통해 서서히 진정됐다. 곧이어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받아 안고, 바닥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품에 안긴 아이를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지금 아이가 머리를 다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어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도록 지켜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더니 말했다. “엄마, 머리 안 아파.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아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과 부족한 모습을 헤아려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난 확실히 많이 나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을 보게 된 것이다! 병원으로 향하던 길에서 운전을 해주시는 송씨 아저씨는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면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해주셨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신이 구토나 기절, 혼미상태에 빠지거든 동네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해. 큰 병원이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뇌 외상 분야에서도 많은 임상경험이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저씨의 말을 듣자, 평온을 찾았던 나는 다시 긴장됐다. 품 안에 안겨 깊은 잠이 든 듯한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신신이 정말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난 어떻게 살지?’ 이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났으며 두 손이 계속 떨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세상만사가 당신 손에 있습니다! 제 아들의 목숨도 당신께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살펴주소서.” 몇 번이나 기도를 드리고서야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 7시를 넘겨서야 우리는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 품에 안긴 아들은 안색이 창백하고, 혈색이 하나도 없었으며,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입에선 계속 음식을 토해냈다. 신신의 머리는 어머니의 걸음걸이에 따라 흔들렸다. 난 그 옆에서 계속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신신, 일어나. 엄마 말 들려?” 하지만 내가 부르는 소리만으로는 아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신신은 완전히 기절한 상태였고,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죽음이 아들에게 점점 다가오는 듯했고, 지금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 아들이 평소 내게 애교부리고, 웃고, 장난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송씨 아저씨가 했던 말과 아버지가 당부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몰려왔고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거의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다. “신신이 구토해요! 어서 의사한테 가보세요! 전 못 걷겠으니 상관 마시고요.” 그렇게 난 비틀거리며 문에 부딪혔는데, 비상구였다. 그 안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난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과 함께한 7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어쩌면 오늘 밤 아들과 영영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듯한 고통이 들었고, 숨을 쉴 수조차 없어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나약해 졌을 때 나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죽음의 문턱에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걸을 힘조차도 없어요.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주시어 강해진 제 영혼이 공포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바로 깨달음을 주셨고 나를 일깨워 주셨다. 하나님께선 지고지상의 권세를 갖고 계시며, 사람의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신신을 살리고자 하시면 신신은 살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원망을 품어 사탄의 계략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사탄의 시험에 빠지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한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나약함과 보잘것없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에 믿음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빛을 내려주시어 제가 진리로 살고 사탄의 농간과 피해, 구속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부디 제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시어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기도를 드린 후 나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아 기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홀로 고통을 삼키며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렸다. 그리고 욥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욥은 하나님의 시련과 사탄의 시험에 빠져 하루 만에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자식들도 죽었지만,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 결국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고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다시 내 상황을 되돌아봤다. 지금 내가 직면한 모든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물론 나의 믿음과 순종을 욥이나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거나 원망하고 오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아들을 낳은 것은 나지만, 아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아들의 목숨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사하신 것이었다. 평소 아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건강할 때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난 하나님께 대적하고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릴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거나 경외하지 않았으며 조물주의 섭리에는 더더욱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피조물이 갖추어야 할 이성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불안하지 않았으며 마음도 안정을 찾고 기운도 되찾았다. 나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건 아들이 죽건 살건 전 용감하게 맞서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겠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급히 갔을 때 신신은 응급진료를 보고 뇌 CT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한 간호사를 따라 우리는 9층에 있는 신경외과 전문 치료실로 향했다. 긴장감 넘치는 응급 치료 끝에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아들 얼굴에 떠오른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아들은 내게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 너무 어두워요. 방이 너무 어두워요. 불 좀 켜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난 아들 침대 앞에 밝게 켜져 있는 불빛을 보며 아들의 두 눈이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으며 위로해주었다. “신신, 걱정하지 마. 엄마가 있으니까 다 괜찮을 거야.”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고, 지도해주시어 이번에 아들의 실명이라는 소식 앞에서도 나는 처음처럼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덤덤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신신의 주치의와 남편이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남편이 의사에게 펜을 받아 서류에 사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계속 울고 있어서 나는 아들 곁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 아들은 계속해서 잠에서 깨어 울며불며 몸에 달린 의료기기를 다 떼어냈다. 어떤 때는 힘없이 “머리가 너무 아파.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갈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아들을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난 생각했다. 목숨은 정말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구나.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이 바로 앞에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오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절대로 버틸 수 없었을 거야. 직접 체험하면서 나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떠올랐고 난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잠에서 깬 아들이 앞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8시 정도가 되었을 때 회진을 온 주치의가 말했다. “늦지 않게 병원에 와서 다행이에요. 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수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몇 가지 치료만 받으면서 지켜봅시다.” 주치의가 떠난 후에야 남편은 어제 내게 속이고 의사가 준 서류에 사인한 게 수술 동의서였음을 말해주었다. 만약 어제저녁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면 아들은 수술을 받았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어제 신신이 토했을 때 우리가 신신을 CT실로 데려갔는데, 침대에 누운 신신은 혈색이 하나도 없고 창백한 모습이었어. 꼭 죽은 사람처럼 말이야. 신신 아빠도 밖으로 나와서 놀라서는 신신이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했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바로 조치를 취하셨고 신신이 반응하자 9층으로 옮긴 거야…” 남편과 어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우리는 응급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120구급차를 제때 부르지 못했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위험 속에서 살아 돌아왔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도 수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신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권세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난 몸소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이 얼마나 비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생명의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저녁 시체 같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중간에 깨어났지만 앞을 볼 수 없었고, 고통 속에서 밤새 울부짖었다. 아침이 밝자 두 눈은 기적처럼 시력을 되찾았고, 위험한 고비도 넘기게 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기적이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것이다! 이튿날 점심, 아들은 약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치료도 받았다. 이 광경을 본 같은 병실 사람들이 놀라서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처음 왔을 땐 굉장히 심각해 보였는데 지금은 또 아무 일 없었던 사람 같다니. 정말 운이 좋으세요.” 나는 웃으면서 “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켜주셔서 그런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녁 예닐곱시가 되었을 때 한호라는 9살 남자아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한호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그만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겉에서 보기엔 출혈이 없었지만, 주치의는 검사 후 이렇게 말했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두개의 내출혈이 있어요.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6시간이 지난 후 한호는 수술실에서 나왔다. 한호는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온몸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잔뜩 꼽고 있었다. 저녁엔 기계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호흡했고, 참혹한 광경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며칠 뒤 6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25세 청년이 병원에 왔다. 치료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청년의 엄마는 아들이 흘린 신발 한 짝을 품에 안은 채 가슴 아프게 울었다. 그리고 옆 병실에는 18세 된 예쁜 아가씨가 실수로 계단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어 매일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으며 링거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아빠는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매일 딸 곁에서 딸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직접 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갖 악령들은 땅에서 시시각각 쉴 곳을 찾고 있고, 시시각각 삼킬 사람의 시체를 찾고 있다. 내 백성들아! 반드시 나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 한다. 절대 방탕하지 말라! 절대 망령되이 행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신 것이 바로 우리가 있는 이곳, 내가 직접 목격한 병원의 다양한 사람들이 사탄의 해침과 병마의 고통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아들이 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은 잊어버린 채 나는 공포와 나약한 모습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믿음이 없다는 것과 하나님의 지고지상한 권세에 진정한 경험과 체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아들의 사고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임을 알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권세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일 후, 아들은 많이 회복되어 퇴원했다.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떠올리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들이 넘어져 머리를 다쳤을 때 나는 고통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믿음과 힘을 주시어 나의 영혼이 강해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가장 어둡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밤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지켜주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남은 생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던 남편이 끝내 정신차리다

양유(杨柳)와 향명(向明)은 소개팅을 통해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의 생활은 비록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향명은 양유를 살뜰히 보살폈고 양유가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향명은 늘 옆에서 도와 주었으며 외출하여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웃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 둘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군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도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향명이고, 일생의 동반자도 향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게 되자 가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넘쳐났고 가정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친척이 그들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유는 운 좋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같은 해에 그들은 넓고 아늑한 집도 짓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양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부부 관계도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향명이 식품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유는 남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몆 번이나 향명의 전화 벨이 울리면 향명은 재빨리 한쪽에 숨어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설마 외도라도 한 걸까?’라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고 이 가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하는데 아니겠지라며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생각은 이렇게 하였지만 양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향명이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미심쩍다는 생각에 문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챗 여자 친구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양유는 “더 이상 제 남편이랑 채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라고 문자로 답변을 보냈더니 채팅 그 여자는 오히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당신 남편에게 물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해 아주 즐겁거든요! 당신은 당신 남편 간수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채팅 그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양유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남편의 휴대폰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양유는 향명에게 더 이상 위챗 여자 친구와 채팅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향명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부터 양유를 피해 다니기 시작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급히 식사를 끝내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여자들과 채팅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양유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향명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지키고 싶기는 한가요! 위챗 채팅이 그렇게 좋아요? 채팅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님 제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향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차가운 말투로 “여자랑 채팅하는 게 중요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다들 이런 경로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고. 이런 거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양유는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 생활해 온 남편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비통하고 처량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양유는 화가 나다 못해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고 이 가정을 떠나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유는 향명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였고 비록 한 집에서 생활은 하였지만 마치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양유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향명이 왜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고민에 빠진 양유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남편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부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초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였고 이 가정도 매우 아끼고 살뜰히 유지하려고 했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터 동료들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하에 위챗 채팅에 빠지기 시작하여 매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를 않았으며 채팅에 푹 빠져 가정도 저도 아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유는 그들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 원흉이 다름 아닌 사회조류가 가져다준 사악한 풍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위챗 채팅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은 무고하고 가엾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양유는 더 이상 남편을 예전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양유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탄의 사악한 조류와 한차례 쟁탈전을 벌여 남편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양유는 예전처럼 향명을 냉대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와 마음속말도 하기 시작했고 시간만 있으면 향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 준 해악과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통해 주기도 했습니다. 향명은 양유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차분하게 앉아 양유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향명에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하게 되면 너는 무엇으로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하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된다. 그가 너를 어떻게 제어하면 어떻게 인도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너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 딴 것이다. 그럼 이런 환경을 지배하는 조정자는 누구일까?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는지 본인도 모르고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변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데 결국 오늘날의 너가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흐리멍덩하게 살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패괴하고 사람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 .” 양유는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예전에 당신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제게도, 아이에게도 잘하고 우리 가정도 아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위챗 채팅에 빠진 후부터 더 이상 나랑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어요. 당신이 식사하는 걸 보면 배가 고픈지, 부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고 대충 두어 술 뜨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요.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채팅할 생각, 채팅하는 여자만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 사악한 조류에 완전히 제어되어 있다는 걸 설명해요. 당신이 여자랑 채팅하면서 일시적인 스릴과 위안을 찾을 때,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많은 여자들이랑 채팅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 살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인터넷 채팅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어떤 가정은 여자가 남편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남자랑 도망갔고 어떤 집은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여자랑 놀아나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진리가 없기에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사탄은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정욕과 사욕에 사로 잡혀 죄속에서 낙을 누리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삼킬 목적을 달성하여 그것과 함께 멸망될 것을 바라죠. 우린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되요!” 향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유의 얘기를 듣고나서 너무 두렵고 부끄러운 나머지 “여보, 전에 난 다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당신이 속이 좁아 나랑 시시콜콜 따진다고 여겼어요. 오늘에야 사탄이 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탄은 나를 지옥으로 끌어 가고 있었어요! 사실 가끔은 나도 네티즌이랑 채팅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부부 사이에도 좋지 않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게 하고 특히 당신 기분이 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몇 번이나 더 이상 놀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탄이 휴대폰 채팅을 통하여 나를 미혹하고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고 위챗 채팅에 더 이상 빠져 들지 않겠어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 봐요!”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향명의 말을 듣고 양유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회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양유가 보는 앞에서 위챗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양유는 향명의 휴대폰에 위챗 문자가 온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향명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더니 향명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양유에게 앞으로 다시는 채팅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불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 버리는 것으로 채팅하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리라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양유는 사악한 조류가 향명에게 가져준 독해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향명을 인도하여 사악한 조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생활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교회의 한 자매님이 양유의 집을 찾아와 예배 드릴 때 향명과 교통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상대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으로만 개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른길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두게 되면 사탄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게 되면 진리를 좀 알게 되고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속에 빠져 미혹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교통해 주었고 향명은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습니다. 그후부터 향명은 양유를 따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고 차츰 마음도 더 이상 인터넷 채팅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휴대폰에 위챗이 깔려 있어도 더 이상 향명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전화상으로 채팅하던 여자에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라고 질책하는 통화 내용을 몇 번이나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향명은 위챗 인터넷 채팅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단과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라앉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탄의 변두리까지 왔던 가정에 드디어 예전처럼 기쁘고 즐거운 웃음 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양유와 향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면 심령 깊은 곳이 밝고 안심되고 더없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구원이 없고, 하나님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가정은 벌써 파탄되고 말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고 길을 잃어 헤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고 사탄이 우리같은 무지한 사람에게 준 상처를 똑똑히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사탄을 증오하게 되자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도록 남편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의 사악한 조류를 따라 타락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력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통찰력을 키워주어 분별 능력을 자라게 하였고 사탄이 사람을 독해하는 각종 음모 궤계를 간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사악한 조류의 공격을 이겨내는 가장 유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 마음속에 있다면, 마귀 사탄은 더 이상 저희를 농락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남편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구원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유도(刘涛)

고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란은 욱신욱신 쑤시는 아픈 허리를 손으로 한참 동안 두드리고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커덕”하고 나더니 안란의 며느리 우정이 불쾌한 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우정은 주방 문 옆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어머니의 아들 친구들을 좀 보세요. 그들은 결혼 할 때 신부에게 10만 위안 (한국돈 약 1600만 원)을 줬을 뿐만아니라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도 사주었는데, 제가 결혼할 때는 당신 집에서 6만 위안 밖에 주지 않았어요. 제 동창들은 결혼할 때 차도 있고 집도 있었는데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속상해요.”라고 했습니다. 우정의 말을 듣는 순간 안란은 화가 너무 났지만 속으로 ‘그 당시에 집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왜 이제 와서 또 이 말을 꺼내는 거야? 이건 일부러 날 괴롭히려는 거잖아!’ 우정은 안란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계속 원망 섞인 말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안란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을 수가 없어 서둘러 주방 청소를 끝마치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길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고부간인지 모녀간인지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으며 안란의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안란은 그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안란은 좀 전에 우정과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속으로 ‘난 언제 며느리와 저렇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에이, 지금은 보면 볼수록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잘 먹고, 잘 놀면서 마음껏 누리려고만 하는데, 이건 다 헛된 꿈이 아닌가! 방금 전에 한 말도 나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가? 남편과 난 이제 늙어서 농사짓는 것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찌 아파트를 사줄 형편이 되겠어.’이런저런 생각으로 안란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그동안 며느리와 지내면서 있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우정을 며느리로 맞이했을 때, 안란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안란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면서 맛있는 거 있으면 며느리에게 주었고 집에서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고부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란은 내심 며느리와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정이 가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왔습니다. 안란은 며느리가 월급을 받아서 저렇게 기쁜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정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는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저 이번달에 월급을 2400위안 받았어요.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으로 1000위안 내고 월세 500위안 내고 그 나머지는 휴대폰 요금과 생활비로 사용했어요. 저는 한달 벌어서 한달에 다 쓰는 전형적인 월광족(한달 월급을 모두 소비해 버리는 중국의 새로운 소비계층)이에요. 어머니, 이번 달에는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월광족’ 이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내 돈 못 갚는 건 괜찮아. 하지만 우정아, 살림하는 사람이 돈을 아껴써야지 함부러 막 쓰면 안된다. 버는 대로 다 쓰면 어떡하니. 앞날을 생각해야지. 축의금도 자기 형편에 맞게 해야지.”라고 말하자 우정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불만스런 말투로 “어머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돈을 빌려서라도 양껏 부조를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 저도 해야죠. 안 그럼 친구들 앞에서 제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눈을 내리깔고, 가방은 소파에 던져버리고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성깔을 부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짢고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난 영감이 돈을 벌어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면서 아끼며 생활하는데, 버는 대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잖아.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 얘는 정말 집안 망칠 애가 아닌가? ’ 생각할수록 우정이 못마땅했고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후부터 안란과 우정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의 생활방식이 점점 더 눈에 거슬렸습니다. 우정이 안란에게 “어머니가 하신 요리는 왜 이리 맛이 없어요? 언제 시간되면 남편에게 백김치 생선요리를 잘하는 식당으로 가서 밥 먹자고 해야 겠어요.”라고 말하자 안란은 “물고기와 백김치를 같이 넣고 끓인게 뭐가 맛있겠어? 비린내만 나지.”라며 되받아 치자 우정도 지지 않으려고 맞서며 “백김치 생선요리는 북방의 백김치로 끓인게 아니라 남방의 야채로 끓여서 비린맛이 없어요. 나이 들면 ‘견식이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네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졌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견식이 없다’라는 이 몇 글자가 안란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비록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무례하고 안하무인한 우정의 태도에 안란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너 같이 생활한다면 매일 고급 음식만 먹어야 하는데, 그럼 어디 돈이 남아돌겠어? 살림을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니네들처럼 산다면 돈이 아무리 많다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에 부딪치니 그제야 안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란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계속 천천히 걸었습니다. 안란은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은 크리스천이기에 일이 임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환해지면서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안란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마음속 말을 하고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한평생 십중팔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눈에 거슬리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는데 어떤 것은 사실 자신의 문제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지 말라.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신도 존귀하지 않고 남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고 고상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견식을 넓혀야 한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생활 습관도 다 있는데 생활 습관은 인성이 아니다. 너의 생활 습관이 규칙적이고 정상적이고 고상해도 너에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이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이 환경은 너무 좋다.너에게 문제가 너무 많아 적응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와 잘 지내고 그에게 다가가고 그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순복하는 태도와 실행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줄기 빛과 같이 안란의 마음을 환히 비춰주었습니다. 안란의 마음은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린 듯 상쾌해졌습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와 같이 환경에 적응할 줄 모르고, 순복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오만자대한 본성 때문에 자신을 높이 보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이것도 무시하고 저것도 업신여기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식당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겠다는 것도 눈에 거슬렸고, 며느리가 저축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아파트와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 며느리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하는 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면에서는 자신이 며느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다 보니 며느리가 더욱 눈에 차지 않았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며느리가 생활하길 바랐는데 며느리가 따르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모두 타락 성품이었습니다. 자신이 너무 오만하여 며느리에게 요구가 많았고 또 요구가 높은 탓에 며느리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세대차이라는 장벽이 생겨 고통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며느리를 안배해 주신 건 자신의 오만한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항상 남의 흠을 잡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자신을 내려 놓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복하면서, 며느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아끼고 화목하게 살며 생활속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안란은 괴로웠던 그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현실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생활도 계속되고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정은 손에 아이폰을 들고 안란을 바라보며 명랑하게 “어머니, 저 이 휴대폰 액정이 깨져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어요. vivox9plus를 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아이폰 4~5 천원 주고 샀잖아, 그렇게 비싼 물건인데, 시간날 때 서비스센터에 가서 액정만 바꾸면 더 사용할 수 있잖아.”라고 말을 하니 우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 액정 바꾸고 싶지 않아요. vivox9plus을 사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우정의 그 말을 듣고 나니 안란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아이폰도 비싼 돈 들여 샀는데, 금방 싫증네다니. 4~5천원 들여 새 휴대폰을 또 사겠다고. 얘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네. 도대체 살림하는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안 되. 사지 못하게 말려야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또 며느리를 간섭하려 하고,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려는 이 오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제가 아직도 너무 교만하여 며느리가 꼭 제 뜻에 따르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타락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안란은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이방인이 말하는 세대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윗사람은 늘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니까 장벽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그 장벽이 생기고 세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냐? 부모는 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는 항상 부모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모를 지심인(知心人)으로 생각한다면 양자간에 그래도 장벽이 있을까? (없습니다.)” 안란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세대 차이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은 부모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자녀를 이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만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높은 지위에 서서 자녀에게 이것도 자기 말대로 해야 하고 저것도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가 따라주지 않았을 때는 불쾌해하고 자녀에게만 눈길이 가는 것입니다. 그때 안란은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신이 체면을 지키려 허세를 부리며 며느리를 간섭하려고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며느리를 강요하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요구하며, 고참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개인의 자유가 있어 자신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피조물이고 며느리 역시 똑같은 피조물인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며느리에게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고집하는 것이 다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내려놓고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어야 했지, 늘 속박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유행을 잘 따르는데, 며느리가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려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 되니 안란의 답답했던 마음은 점점 자유로워졌습니다. 안란은 웃으면서 “나도 이젠 많이 늙었나 보다. 내 생각만 하고 너희 젊은이들의 마음을 몰라 줬으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말거라.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사고 싶다고 했지? 그래, 내일 나랑 같이 사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우정은 조금 놀란 듯 의아스러운 눈길로 안란을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안란과 우정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 매장에 갔습니다. 생각밖으로 우정은 “어머니, vivox9plus은 값이 너무 비싸니, 전 사지 않을래요. 대신 vivox7plus로 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그 후로 우정과 지낼 때, 안란은 비록 우정의 생활방식이 눈에 거슬렸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할 때는 오만한 본성도 많이 변화되고 며느리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안란도 우정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예전처럼 항상 원망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주 안란과 마음속 말을 나눴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안란과 상의하고 안란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우정은 안란에게 “어머니, 저 아파트 사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번 돈은 어머니가 저축하세요. 저도 이제부터는 돈을 아껴 써야겠어요. 더 이상 아버님, 어머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게요.”라고 했습니다. 안란은 우정이 이렇게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안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며느리 사이에 존재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 노울이 논밭에 비치니 삽시간에 그 논밭은 마치 황금색의 카펫을 두른 것처럼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안란과 우정은 농사일을 끝내고 활짝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부러워서 “저 두 사람 좀 보세요, 누가 고부사이라고 하겠어요.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도 고부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분들도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안란과 우정은 마음이 뿌듯해 입가에는 웃음이 만발했습니다.   문정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

중국에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일은 하나 보태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낫다” “남의 덕을 볼 줄 모르면 멍청이다” 등등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이런 말들을 격언과 명언으로 삼고 심지어는 제가 처세하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어도 저는 이런 “최고 명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져 왔으니 틀림없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츰차츰 탐욕스러워졌고 정직했던 마음도 점점 마비되어 갔습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시내에 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 탔는데도 매표원이 저에게 표를 사라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표를 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저는 모르는 척 무임승차 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도 저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번 이득을 본 것에 기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최고 명언”대로 살아왔고 계속 제가 맞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며, 매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고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직이란 일하고 말함에 여러 가지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상관없이,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든 이방인과 함께 지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하고 남에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하거나 기만을 해서도 안 되며,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 올 수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선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어나게 했고 예전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저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다 옳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원래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됨이의 원칙과 인격을 잃었으며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처리한 것을 남 몰래 기뻐했다는 것에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최고 명언”이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마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익을 조금 얻긴 했지만 잃은 것은 오히려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와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을 받았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급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모두 심하게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심하게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고 있고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한 영향 아래서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구비될 수 없고 더욱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질이 있을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타락시킨 이 사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무엇이 정의이고 광명인지 모르고 사탄의 이러한 사상에 완전히 젖어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권세 하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러한 “최고 명언” 즉, 사탄의 독소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저의 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광명이고 흑암인지 몰랐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을 몰랐기에 비천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게 되었고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더러운 곳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면서 저에게 정확한 인생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밖에서 일처리를 다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를 사려고 10위안을 꺼내 매표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매표원은 저에게 거스름 돈으로 4.5위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제가 20위안을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14.5위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받는 순간 이득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또 기뻤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요구를 생각하니 기뻤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선뜻 돌려주기는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이 알면 저를 바보라고 말할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성격이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은 마치 어둠속의 등잔불처럼 저에게 실행의 길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보는 것을 늘 싫어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셔셔 구원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은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시지 않고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길, 생명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먼저 가서 매표원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매표원이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하고 나니 제 마음은 처음으로 즐거웠고 매우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즉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국도(國度)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시행한 간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간계를 다 폭로해 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그지없이 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ㆍ쓰레기ㆍ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고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가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무지한 인류로 하여금 모두 나를 위해 증거할 수 있게 하는데, 즉 “내”가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조물주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이고 사탄은 피조된 다음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역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타락된 인류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발표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저의 추악상을 드러내시는 것은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이것이 저에 대한 구원임을 말씀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에 제가 지켜왔던 “최고의 명언”들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최고의 명언”에 따라 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더 추해져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베풀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