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장의 신임을 받고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19년 01월 10일

하루는 공장 사장님이 제게 “가족들과 상의해봤는데, X지역에 자수 공장 분점을 낼까 해요. 저희가 하는 건데 그 공장 대표직을 맡아주면 좋겠어요. 물론 급여는 여기보다 많이 줄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신임을 받고 있단 사실에 놀란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를 그토록 믿어주신다니 저도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공장에 들어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제가 처음 공장에 왔을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기존 직원이 괴롭혔던 입사 초기

2014년 여름, 저는 베이징(北京)의 한 자수 공장에서 방직공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열흘까지는 무탈하게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11일째 아침, 다른 자수 공장에서 일하던 연화가 우리 공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연화는 30대로 베이징에서 자수 일만 7, 8년을 했습니다. 원래 있던 공장의 일이 끝나면 다른 자수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했고, 원래 있던 공장에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거리에 있는 자수 공장 직원들은 모두 연화를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연화가 공장에 들어서자 모든 직원은 연화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연화는 옷 한 바구니를 들고 나무 의자를 들어서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제 옆에 앉아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화의 왼팔이 제 오른팔과 딱 달라붙어 저는 실을 잡아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언짢았습니다. ‘이 사람 인성이 왜 이래? 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잖아? 공장에서 자리를 다 배정해 준 건데 왜 내 옆에 앉으려는 거야. 내가 새로 왔다고 괴롭히고, 바느질 못 하게 하려는 거잖아?’ 하지만 문득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살며 다른 사람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자를 살짝 옮기고 몸을 틀어 실을 당길 수 있도록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물러섰으니 이제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 앉아 다시 바느질하기 시작할 때 연화가 갑자기 제 위에 있던 불을 꺼버렸습니다. 불을 꺼버리면 저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화를 삭이며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화를 누르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연화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젊었을 땐 불을 꺼도 다 보였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불을 끄면 실이 보이지 않아 일을 할 수가 없네요.” 라고 말하며 일어나 다시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불을 켜자마자 연화가 씩씩거리며 일어나 ‘탁’하고 불을 다시 꺼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저를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벌건 대낮에 무슨 불이에요? 불이 없는 게 훨씬 낫구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억누른 화

어이없는 행동에 화가 났고 속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두 번이나 봐준 거야.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덤비는 거야? 정말 호의를 몰라주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 사장님에게 말하기만 하면 사장님이 정리해주실 텐데. 이렇게 계속 날 무시하게 두면 사람들도 보는데 웃음거리만 되고 말 거야. 안 돼. 일단 내 체면부터 찾아야겠어. 다신 날 괴롭히지 못하게 단단히 한 마디 해줘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막 뭐라고 하려던 찰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사탄에 인해 타락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에는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게 되었다. 사람의 이성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성품이 짐승처럼 변해 하나님에 대한 패역도 점점 많아지고 심해졌지만, 사람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며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들을 타락시켰고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우리의 생명이 돼버렸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 살다 보니 양심과 이성을 잃고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비겁하게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린 항상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도 맺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연화가 처음 저를 괴롭혔을 때 저는 참고 상대방과 시시콜콜 따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또 무시했을 땐 제 체면과 이익에 해를 끼쳤고, 제겐 포용과 인내가 사라져 상대방에게 화를 낼 생각으로만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제 모습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어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너 자신이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오늘 발생한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고 제가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증거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였어야 했고 이기적인 본능을 위해 행동하지 말고 홧김에 연화에게 따지려고 하지도 말았어야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다시 불을 켜지 않았고, 연화에게 따지려고 들지도 않았으며 그저 의자와 바구니를 문 쪽으로 끌고 가 햇빛에 기대어 옷을 다리에 놓고 바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느질하기에 그렇게 편하진 않았지만, 이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날 내내 연화는 제 쪽으로 와서 저를 괴롭히지 않았고 저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또다시 부린 계략에 굳게 서다

이튿날 아침, 자수 공장에 도착했을 때 어제 제가 앉았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봤지만 연화가 오늘도 일하러 온다는 것이 떠올라 저는 문가 자리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연화가 지각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게다가 연화가 다시 의자를 들고, 바구니를 들어 거칠게 제 옆자리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제 그랬던 것처럼 연화의 왼팔이 제 오른팔에 딱 붙어 실을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어제 그렇게까지 양보했는데도 오늘 또 나를 괴롭히러 오다니. 진짜 못됐네. 너 같은 애는 진짜 처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같이 화내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저를 깨우쳐주셨습니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모든 사람이나 사물은 당신께서 주재하신 것입니다. 연화가 제 곁으로 오도록 허락하신 것도 당신이십니다. 이 사람이 계속 저를 괴롭히는 것에도 당신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너희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모두 싸움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겉으로 보기에는 연화가 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계의 사탄이 계략을 부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제가 진리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환경을 만들어 저를 시험에 빠뜨리려 한 것입니다. 연화가 제 옆에 앉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제가 버는 돈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돈 몇 푼 더 벌자고 연화에게 화를 내고 다툰다면 이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었으며 이성적이고 포용과 인내를 갖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의자를 다시 뒤로 끌어 좀 더 문에 가까이 다가갔고 몸을 비틀어 실을 당겼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연화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자 얻게 된 기존 직원의 존중

새 디자인의 옷에 바느질하다가 연화가 하는 바느질 방법이 틀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화가 바느질한 옷은 품질로 합격이 될 수 없는 옷이었는데 연화는 모르는 듯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냥 저렇게 꿰매게 두자. 꿰매봤자 어차피 사장님이 다시 하라고 하실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잠시 후 사장님이 검사하러 나왔고 연화가 바느질한 옷의 주머니를 보더니 “다시 해. 이렇게 하면 안 돼. 주머니에 실이 너무 잘 보이잖아. 다 뜯고 새로 꿰매. 실이 안 보여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연화는 실을 뜯고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한 것을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시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잘했어!” 그때 저는 내심 고소했습니다. ‘잘났다면서? 날 괴롭히기까지 했잖아? 이제 나보다 못한 걸 알았겠지! 내가 가르쳐주나 봐라!’ 이렇게 생각하며 저는 계속 바느질을 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연화에게 자꾸 시선이 갔습니다. 연화는 틀린 방법으로 계속 바느질을 했고 실을 뜯었다가 꿰맸으며 이리보고 저리 보는 모양새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연화는 어쩔 수 없이 옷을 가지고 사장님에게 여쭤보러 갔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혼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잖아! 다 뜯고 다시 해! 진짜 왜 그래? 어떻게 저기(저를 가르키며) 새로 온 사람보다 못하는 거야? 가서 어떻게 하는지 잘 봐!” 연화는 풀이 죽어 제 옆자리로 왔고 예전처럼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속으로 ‘어때? 사장님도 너보다 날 예뻐하시지? 누가 그렇게 날 괴롭히고 면박 주래? 너도 당해보니까 어때?’라며 좋아했습니다. 연화는 하는 수 없이 또 바느질을 해나갔지만, 방향은 여전히 틀리게 했습니다. 연화는 어쩔 줄을 몰라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바느질을 잘못했기 때문에 한 번만 더 잘못하면 다시 뜯고 바느질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양심이 저를 질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디자인의 옷은 오늘 새롭게 도착한 옷이고, 정확한 바느질 방법을 나는 알고 연화는 모르니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비웃는 거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려줬을 텐데. 날 괴롭혔던 사람이라 내가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건가?’

문득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 있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모든 대인관계는 다 비정상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사람을 너무나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육적인 것을 위해 살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나 사랑을 주지 않을뿐더러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사랑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방어 자세를 취하며 암투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은 온데간데없고 협동심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내심이 없다는 건 견원지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악함과 투쟁으로 가득 차 서로 적대시하고 상대방을 짓밟으려고만 합니다. 사람다운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사탄에게 사로잡혀 사탄의 철학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이 설교 교통이 생각나자 저는 제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에 연화가 그렇게 저를 괴롭혔을 때 연화와 싸우지 않은 제 모습에서 저는 포용과 인내를 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화가 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저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고 오히려 연화의 고통을 보며 즐기고 제 체면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기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전에 제가 보인 모습은 거짓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사랑이나 정상적인 사람의 양심과 이성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깊이 자책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인성의 기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저를 이 사람들 사이에 오게 한 것은 제가 이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웃으며 연화에게 다가가 얘기했습니다. “연화, 바느질 방향이 틀렸어. 그대로 꿰매면 다시 뜯어야 할 거야” 이어 저는 바느질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연화는 한 번 해보더니 순식간에 주머니 한쪽의 바느질을 끝냈습니다. 바느질을 마친 후 연화는 제게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돼!” 연화는 무척 기뻐하며 바느질을 이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진리를 실천하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저도 같이 누리게 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 연화는 남들과는 다른 눈길로 저를 쳐다보며 국에 있는 생선과 두부를 가득 덜어줬습니다. 연화는 웃으면서 “언니, 많이 먹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부터 연화는 공장에 도착하면 저를 보고 웃으며 “언니, 벌써 왔어요?”라며 반겼습니다. 제게 정식으로 사과하진 않았지만 연화의 바뀐 태도에 저는 몹시 기뻤습니다. 며칠 후, 원래 있던 공장에서 다시 연락이 와 연화는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대각선 맞은편에 있던 한 언니가 제게 말했습니다. “동생, 진짜 대단해. 연화가 동생한테 얼마나 못되게 했는데, 도와주다니? 나였어 봐, 절대 가만 안 두지!” 전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들 먼 곳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렇게 같이 일하는 것도 인연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요!” 저는 제가 사람답게 살고 포용과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서 맺게 된 결실이지 제가 잘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공장 사장님은 저와 연화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은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소원씨, 정말 착한 분이네요. 인품 있고 선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사랑받아요.” 그날부터 사장님은 비교적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제게 맡겼고, 다른 직원들이 바느질을 제대로 하는지 수시로 살펴달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공장 직원들은 저를 ‘반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이때의 체험을 생각해보면 저는 진리를 실천하고 사람답게 산다는 건 그 당시에는 부끄럽고 손해이며 억울할 수도 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실제적인 이끄심을 통해 저는 어떻게 선함으로 악함을 물리치는지 알게 되었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소원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며, 행복한 이유도 모두 다르다. 단란한 가정을 이뤘을 때, 명예와 이익을 얻었을 때, 재산이 많았을 때…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채워 주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잠시의 행복이 아닌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

장사의 성공 비결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2008년, 나는 둘째 형과 동업해 제과점을 열고, 빵, 카스텔라, 과자 등 다양한 제과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 계란 역시 100리 가까이 달려가 신선한 것으로 구매했다.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첨가제 등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분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나날이 지나가고, 장사도 점점 잘 됐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연말에 결산을 할 때, 원가를 제하고 단돈 900원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마을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또 내고 속으로 이번에는 장사가 분명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손님은 정말 전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제과의 품질이 마을에서 좋게 소문이 나서 어떤 과자와 카스텔라는 또 슈퍼마켓에 도매로도 팔렸다. 나날이 상승하는 판매량을 보며 나는 마음이 흐뭇했다. 연말에 잔뜩 기대하며 연 수입을 계산했을 때, 우리가 번 돈이 겨우 일상 지출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의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수입이 적어 남는 돈이 없다면 나중에 형의 가정이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가게에 와서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만든 카스텔라는 다른 집보다 못한 것 같네요!” 나는 손님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얼른 물어보았다. 손님이 대답했다. “여기서 파는 카스텔라는 색깔이 덜 노래요. 계란을 많이 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손님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집 카스텔라가 노랗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넣은 계란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왜 색이 노랗지 않는가? 이 때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처럼 카스텔라를 만들어 팔아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계란을 더 넣게 되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러나 계란을 더 넣지 않으면 색이 좋지 않아 사는 사람이 또 많지 않고, 많은 손님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카스텔라의 색깔을 보기 좋게 하려면 색소를 넣어야 해. 정직하게 계란을 넣는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게다가 색소를 넣으면 계란은 조금만 넣으면 돼. 겉으로만 봐서는 계란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무도 몰라. 장사를 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돼. 돈을 벌고 싶으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을 좋아해. 영양이 없더라도 보기 좋고, 맛만 있으면 돼. 그러면 사려는 사람이 많지.”나는 그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카스텔라는 좋은 식재료를 썼지만 손님은 이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보았다. 친구는 나처럼 2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 정작 본인은 본전만 겨우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색소를 넣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안했다. 식용 색소라고는 하지만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인데… 갈등하던 중 내가 제과 일을 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사촌 형이 말했다. "색소를 넣으면 되지. 정직하게 장사하면 정말 돈을 벌 수 없어. 지금 사회가 그래. 네가 돈을 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도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제과점을 봐. 몇 년 동안 장사하더니 차도 사고, 집도 샀잖아. 그게 다 그렇게 번 것 아니겠어? 네가 안 넣는다면, 내가 먼저 넣을게." 그 후, 사촌 형은 정말 계란 대신 색소를 쓰고, 최상급 샐러드유 대신 드럼통의 보통 식용유로 바꿨고, 밀가루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바꿨다. 사촌 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전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는데 형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색소를 샀어. 네가 만들때 조금 넣어."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은 괴로웠다. 이 색소라는 것은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 하지만 형이 이미 사왔고 사촌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도 모두 넣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럼 조금만 한 번 넣어 볼까? 이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색소를 쏟아 부었다. 과연, 색소를 쓰고 난 후 카스텔라의 색깔이 보기 좋아졌다. 그런 금빛 찬란한 카스텔라를 보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손님이 먹고 탈이 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손님과 마주할 때 마음이 찔려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이 무엇에 짓눌린 듯 괴롭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손님한테도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돈의 유혹을 받아 나도 사촌 형처럼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를 쓰고, 식용유도 낮은 등급으로 교체했다. 원가가 줄어들면서 버는 수입도 많아졌고, 서서히 나의 양심의 불안도 차츰 사라졌다.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이 물욕 넘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가져야 할 양심, 도덕을 상실하고 기꺼이 이 악한 사회의 흐름에 따르고, 사탄에 의탁했다. 간사한 수단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정말 속이 검은 장사꾼이었다! 처음에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사를 하던 생각이 났다.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속임수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서 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돈은 좀 벌었지만 인격을 잃었고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조금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후회했다. 다시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었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처럼 살고 싶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리를 도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얻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오늘 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나는 더 이상 사회의 흐름을 따라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 나는 형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색소를 넣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느꼈다. 모두가 속임수를 쓰는데 나만 안 쓴다면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고 우리 가게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지닌 채 나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게 없을 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세요.” 나중에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5~26, 31~33)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믿음을 주었고,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의 일, 생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나의 장사가 좋고 나쁘고, 카스텔라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하니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 욕심이 너무 커서 돈에 두 눈이 먼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배불리 먹고,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떳떳하게 살면서 광명정대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어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사했다. 더 이상 색소를 쓰지 않았고 품질이 낮은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모두 바꿨다. 손님이 내가 만든 카스텔라가 색깔은 안 예쁘지만, 아주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그분에게 카스텔라에 색소를 넣지 않고 계란만 넣었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손님은 듣고 나서 나의 방법을 칭찬했고, 주위에 내가 만든 제과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위안이 되었다! 그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식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두 우리 집의 제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도매상이 우리 가게의 한 과자를 맘에 들어 하면서 주동적으로 도매에 나섰다. 나중에 우리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도 아주 잘 됐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가 속임수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을 때 뜻밖에도 매상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생활에 찾아온 위기,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었던 비결

남편의 인터넷 채팅으로 일으킨 결혼 생활의 위기, 쌓아 온 감정은 무너지고 배신의 고통에 빠지게 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했을까요?

어디가 당신의 귀숙인가?

2015년 7월 1일, 뉴스에 의하면 선양(沈陽) 시내에서 한 여성이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올라갔다가 삶과 죽음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건물 아래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휘파람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답니다. 구경꾼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그 건물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웅성거리고 있었고 또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있어, 빨리 와서 구경해. 진짜 볼 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구경꾼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휘파람 소리와 조소 소리가 들려왔고 어떤 사람은 “떠들썩하게 굴지 말고 재간 있으면 뛰어내려!” “빨리 뛰어내려, 보기도 힘들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지만 주택 단지에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불이 났다고 했답니다. 뉴스에 의하면 그 여성이 뛰어내린 그 순간에는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답니다. 뒤이어 사람들은 계속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와, 정말 뛰어내릴까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방금까지도 살아있던 한 생명이 이렇게 없어지다니요?” “너무 참혹해요! 에휴, 다들 떠들지 않았더라면 혹시……” 뉴스를 보고서 저는 그 여자가 자살한 것에 대해 비애에 잠겼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취약하여 일시적 충동으로 빚어낸 것은 자기에 대한 포기와 가족에게 주는 상처인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사람들의 냉담과 조소 그리고 생명 경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뉴스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 간에 인정미가 조금도 없고 진정한 관심과 도움도 없으며 모두 “자신과 무관한 일이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각자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역경에 처하면 도리어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며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격입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처음의 순진함을 잃었습니까? 왜 우리가 이토록 냉담해졌습니까? 어떤 고통이 당신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했습니까?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격려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런 결과일 줄 생각지 못했습니까? 어디가 당신의 귀숙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ㆍ하와는 거룩한 사람이었다. 즉 에덴 동산에서 그들은 성결하였고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충성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배반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사탄 권세의 방해가 없었고 사탄의 독소가 없었으며, 그들은 가장 성결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났는데, 더러움이 그들을 더럽히지 못하였고 육체가 그들을 점유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독사의 독소가 있게 되었고 여호와를 배반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들은 시초에 성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이야말로 사람인 것이다.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은 다음, 선악과나무의 실과를 먹고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에게 점점 패괴되어 사람의 원래 형상이 없게 되었다. 시초의 인류는 여호와의 생기가 있었으며, 패역이 조금도 없었고 사람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는데, 그때의 사람이 진정한 인류인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어 짐승으로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악이고 다 더러운 것이며, 선이 없고 거룩함이 없다. 이것은 사탄이 아닌가?』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해를 받고 이미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사람의 도덕,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가 모두 사탄에게 심히 파괴됨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원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전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사람의 사상,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장 심하게 패괴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엇을 하나님이라 하는지, 무엇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지를 더욱더 모르며,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이지와 견식이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근원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까닭이다.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이 패괴되었고 사상이 부패하게 되었고 정신 면모가 낙후하게 되었다.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었고, 본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한 사람이었고, 본래 인성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사람의 원래 이지, 원래 양심, 원래 인성이 모두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마저도 다 잃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고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기에 그때의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은 사탄의 독해를 받아 사탄이 권세잡고 있는 이 흑암하고 사악한 세상에서 살기에 사회 기풍이 날로 나빠지고 도덕이 부패해지고 세상이 음험하고 잔인하며 인정세태가 야박해지고 사람 간에 진정이 없고 따스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알다시피, 우리가 악한 자에게 침해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지킴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기력하고 냉담해지고 이기적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어떤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인데,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국도(國度)는 나의 말의 완선(完善)함에 따라 땅에서 차츰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나의 마음속의 국도를 세운다. 국도에서 모든 자민은 다 정상 사람의 생활을 회복한다. 더는 쌀쌀한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 날씨 같은 세상이다. 사람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촉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냉랭함을 이겨내지 않는다. 사람 간에 다투지 않고 나라 간에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상태가 없고 더 이상 참살하여 흐르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스함이 넘쳐 흐른다. 나는 온 땅에서 다니고, 나는 보좌 위에서 누리며, 나는 뭇별 가운데서 생활한다. 천사는 나에게 새 노래와 새 춤을 바치고 더 이상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눈물로 볼을 적시지 않는다. 나의 앞에서는 더 이상 천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아무도 나를 향해 고충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오늘은 너희가 모두 나의 앞에서 생활하고 내일은 너희가 모두 나의 나라에서 생존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오늘의 대가로 인하여 장래의 복을 이어받을 것이고 나의 영광 속에서 생활할 것이다. 너희는 설마 여전히 나의 영의 실질을 접촉하기 싫단 말인가? 설마 여전히 자신을 참살하기를 원한단 말인가? 설사 보이는 약속이 잠시라 해도 사람은 모두 그것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설사 내일의 약속이 영원까지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바로 내가 멸하려는 것이고, 사람이 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이루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 꼭 그대로 하시고 그대로 하시면 꼭 이루시며 이루시면 꼭 영원까지입니다! 믿건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답을 찾았겠죠?!

은혜 간증 — 하나님을 따르고, 인생 최대 재산을 가지다

그는 부자를 꿈꿨지만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해 고통스러워 했다. 후에, 하나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예전의 삶의 방식을 내려놓자 하나님에게서 온 은혜도 누리게 되었다.

[다이어리] 하나님께서 나의 양심을 지켜주셨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심장이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왜냐하면 노인복지관에 채용 전 업무 테스트를 받으러 가기 때문이다. 만약 채용된다면 난 꽤 괜찮은 일자리를 구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보다 생활 리듬이 빠르다. 밥을 먹는 속도나 길을 걷는 속도도 빠르고, 일할 때도 두뇌 회전을 빨리해야 하고 동작도 민첩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의 빠른 생활 리듬에 적응하지 못해 업무 테스트를 받고도 채용되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오후에 복지관에 도착한 후에도 떨리는 마음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묵묵히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긴장되는 업무 테스트가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침내 사장님이 나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불안했던 마음이 드디어 진정되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흐림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 이른 아침에 식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아침을 배식할 때, 카트를 밀다가 실수로 비닐봉지가 찢어져 버렸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츄러스 몇 개가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크게 놀랐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속으로 ‘이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 하다니… 이걸 사장님이 알면 날 해고하지 않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오지도 못하잖아. 에잇. 어쩔 수 없어. 난 크리스천이니까 솔직하게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게 맞아. 그 후엔 사장님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 전부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다. 복지관으로 돌아온 후, 나는 전전긍긍하며 사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츄러스 비용은 임금에서 제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괜찮아요. 이따 더러워진 부분을 잘라내고 아침밥으로 드세요.”라고 했다. 사장님의 대답에 나는 감격해서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사장님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밥을 나눠줄 때, 사장님이 더러워진 츄러스를 모두 꺼내 대충 먼지를 털고는, 그걸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나는 속으로 너무 겁이 났다. 어르신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사장님과 함께 사람들을 속이는 거잖아? 그러다 어르신들이 그거 먹고 탈이라도 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정말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더러워진 츄러스는 제가 변상할게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사고를 친 사람은 나인데, 사장님 말을 듣지 않다가 해고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잇, 아니야, 그냥 입 다물고 있자. 계속 일하려면 사장님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지 뭐!’라고 생각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플라스틱 일회용 도시락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자, 사장님이 다가와 말했다. “일회용 도시락통은 싱크대로 가져가서 씻으세요. 그리고 내일도 계속 이걸로 쓰세요.”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쳐다보았다. 이건 너무 더럽다고, 아무런 소독도 하지 않고 재사용했다가 어르신들이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장님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거 씻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돼요.” 사장님의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고,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온 말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나 같은 임시직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이렇게 해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장님 앞에서는 마지못해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식기들을 씻기 시작했다. 퇴근 후, 내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내가 한 교활한 행동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정말 해고당하면 어떻게 하지?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소독도 하지 않은 일회용 도시락통을 재사용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것인데 이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게 궤사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어르신들은 우리가 뒤에서 이런 수작을 부렸다는 걸 모르겠지만, 내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모두 감찰하고 계실 것이고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인데, 이것이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란 말인가?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통해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속여선 안 되며, 이는 양심에 어긋나는 짓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행동이란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솔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일자리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다고 사장님에게 꼭 말할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일에서든지 절대 누군가를 속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의지를 주십시오. 제발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린 후, 출근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꼭 사장님께 양심에 어긋나는 이런 일은 못하겠다고 말하리라 다짐했다.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맑다가 흐림 오늘 나는 자신만만하게 출근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었고 사장님께 내 생각을 말할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관에 도착하자, 취사 담당 동료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사장님이 자네를 해고할 생각이라고 했어. 나 혼자 이 일을 하라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풀이 죽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실행하려고 했던 의지도 전부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날 해고하려는 마당에, 시킨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보면서 옆에서 마작하는 사장님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이걸 씻으려니 진솔한 사람이 아니고, 그럼 하나님 앞에서 증거를 잃는 꼴이 되고. 이걸 안 씻으려니 사장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자리에서 해고당할 거 같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마음도 너무 불안했다. 그 순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일회용 식기들을 몰래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하나님께도, 사장님한테도, 미움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장님이 내 쪽에 신경을 쓰지 않은 틈을 타, 오래된 식기 들을 얼른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위에 다른 쓰레기를 놓고 안 보이게 덮었다. 이렇게 하면 사장님한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만에 하나 사장님한테 들키면 한바탕 욕을 먹고 바로 해고될 텐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는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사람을 기만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부터 나는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 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할 신심도 없고 용기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부디 저를 다시 한 번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너는 육체를 버릴 용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소극적이거나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네가 진솔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고 뒤에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궤사한 사람들은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고 …』 하나님 말씀을 본 후, 진솔한 사람은 진리와 육체의 이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육체의 이익을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솔한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겉으로 하는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일들을 반성해보니,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계속 어르신들을 속이고 더러운 츄러스를 나눠줬으며, 이미 사용한 일회용 용기를 씻어서 재사용했다. 나는 이것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감히 사장님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의미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진리를 행하지 못했고 진솔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다. 진리를 행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태도가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마음 아프게 했다. 사실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해고를 당할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내가 할 것은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은 내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다. 일자리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장님께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며칠 동안 제게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이미 사용한 일회용 식기를 씻어 재사용하라고 시켰습니다. 저는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그런 행동을 싫어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제게 그 일을 계속 시킨다면,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못 하겠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장님한테 전화가 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가 생길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때 나는 진리를 행한 후 마음이 편안해지고 홀가분해지는 것을 직접 느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5월 4일 토요일 맑음 사장님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다시는 누굴 속이는 일을 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아침 식사 때마다 어르신들은 우유와 두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유가 우유보다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걸 안 사장님은 두유에 물을 섞었다. 그리곤 내게 어르신들이 두유를 많이 마시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물어보지 말고 바로 두유를 떠주라고 했다. 사장님이 그렇게 시켰지만,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화가 난 사장님이 날 해고할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사장님은 나를 구석진 곳으로 부르더니 다시 주의를 주었다. “여기 어르신들은 별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두유를 떠주거나 아니면 두유를 마시도록 더 강하게 유도하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이 말을 들은 후, 내 머릿속엔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내게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같이하자고 유혹하는 걸 분명히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퇴근하면서도 계속 이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성경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고 자신과 동침하자며 권세를 이용해 요셉을 협박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기에 감옥에 갇힐지언정 그 여자의 악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돈을 아끼려고 어르신들이 두유를 마시게끔 하라고 내게 시켰을 때,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할까 걱정되어 진솔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다! 난 다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야 다시 찾으면 되지만 계속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면 하나님께 미움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진리를 행하는 의지와 힘이 생겼다. 집에 돌아온 후,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직원인 저는 반드시 사장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기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만일 사장님이 시킨 일과 하나님의 가르침이 충돌하면 저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살아가는 원칙입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정상 사람의 언행이 있다는 것은 말할 때 조리가 있고,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며, 말이 사실에 부합되고 매우 적절하며, 기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에는 “진솔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가식 없이 솔직하다.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람의 교통으로 진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의 실행 의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설령 이번에 해고를 당해 앞으로 다른 곳에 출근하게 되더라도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훈련을 계속하여 내 몫의 일은 반드시 잘 해낼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내게 남을 속이라고 하거나,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흐리다 맑음 정말 뜻밖에도 그날 사장님은 나를 해고하지 않았다. 나는 해고하는 것도 계속 일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보았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내 의지도 더욱 커졌다. 며칠 전 아침 배식할 때였다. 어르신들은 다들 우유를 마시고 싶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그래도 두유를 더 많이 팔고 싶어했다. 내가 우유를 뜨는 걸 보더니 얼른 말했다. “우유 다 떨어졌다고 하세요.” 하지만 난 우유 한 통이 더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이때,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사장님이 유혹한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난 사장님이 좋아하든 말든, 나를 해고하든 말든, 진리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고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 했다. 그 후, 우유를 마시겠다는 어르신들에겐 계속 우유를 드렸다. 나중에 우유가 진짜 동이 난 후에야 우유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곁눈으로 화가 난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지만 난 이미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사장님은 청소할 때, 교활한 수단으로 어르신들을 눈속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또 내게 양심을 속이는 일을 시킨다는 걸 분별해낼 수 있었고,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너희는 반드시 시시각각 깨어 기다려야 한다. 내 앞에 자주 있으면서 사탄의 각종 음모와 궤계를 간파해야 하고, 영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하며,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청소할 때도 더러운 곳이 있으면, 사장님이 따로 시키지 않더라도 알아서 청소한다. 나중에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여기에 청소하러 온 사람이 엄청 많은데, 단 한 사람도 여기 더러운 곳을 청소한 적이 없어요. 저분은 정말 근사 하네요.”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사장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정말 잘했어요.” 복지관 어르신들도 자주 내게 “복지관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지금까지 아무도 여길 치워준 사람이 없었거든요.”라고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하나님 뜻에 맞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이 세대의 사람들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남방의 것이든, 북방의 것이든,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 특산물 등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과일은 있어도,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대약진 운동때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이렇게 좋고 또 건강에 몹시 신경을 쓰는데, 마땅히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건강해 지고, 더 장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왜 지금 비만, 뇌혈전, 각종 암, 백혈병 등등 각종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근에 더 많은 희귀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장수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저의 동료를 놓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는 가정환경이 매우 좋아 임신 후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도 되지 않아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20살을 넘기기 힘들테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질병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하던 데로부터 현실에 직면하고, 예사로 여기던 데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갖은 애를 다 써도 이런 질병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논조로 얼버무려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는 말씀 중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의 진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사회 발전으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지고 정보가 발달하여 동서남북이 서로 관통되면서 북방 사람들도 남방의 과일이나 남방의 특산물 혹은 야채들을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식탐과 물욕을 만족시켰지만, 사람의 몸은 오히려 각기 다른 정도로 해를 입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먹거리에는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방에서 태어났다면 남방의 것을 먹어야 아주 적합하다. 남방의 그런 기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까지도 예비해 놓았다.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식탐이 점점 심해져 사회의 발전 추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법칙을 어기게 되었다. 비록 사람은 지금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여기지만, 이런 사회의 진보는 아주 많은 사람들 몸에 보이지 않는 해를 끼쳤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예비해 주고, 사람에게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을 예비해 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연법칙을 어기고 과학을 발전시켜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풍부하여 지역마다 그곳의 특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홍대추(보통 대추라 함)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호두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땅콩과 각종 견과류가 많이 나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다 사람의 육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또 그 시기에 따라 적당한 양으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하고 식욕을 만족시키기를 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이 자랄 수 있도록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을 쉽게 어기고 파괴하게 된다. 앵두를 예로 들어 말해 보자. 앵두는 다들 알고 있겠지? 앵두는 몇 월에 나느냐? (6월입니다.) 대략 6월쯤에 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몇 월이면 끝나느냐? (8월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2개월 동안 먹을 수 있다. 앵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2개월뿐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시켰는데, 다음 해에 앵두가 새로 나올 때까지 연장시켰다. 즉, 1년 내내 앵두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정상이냐? (비정상입니다.) 그럼 앵두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냐? 바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신선하게 보관해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고, 또한 사람 몸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이미 지난 다음에는 어떤 화학 물질을 써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자라면서 구비한 성분들을 유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화학 물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해는 사람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알았겠지? 지금 시장 경제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냐? 남방과 북방의 교통이 편리해져 1년 사계절 각종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방 사람들도 늘 바나나를 먹을 수 있고 남방의 어떤 음식이나 특산물 혹은 과일도 먹을 수 있어 마치 사람의 생활은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시장 경제가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정상적인 자연 생장 법칙을 어기는 것이고, 가져다준 것은 해로움과 치명적인 재난이지 행복이 아니다. 알았느냐? (네.) 포도를 보아라. 지금은 시장에서 1년 사계절 판매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포도는 따고 나면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아주 짧다. 그 포도를 이듬해 6월까지 보관한다면 그때도 그것을 포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포도에는 포도의 원래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 1년이란 시간이면 신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양 성분도 이미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를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좋다! 3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까? 한 알이라도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만약 흥미를 느낀다면 화학 약품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포도를 가져다가 그것의 성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성분이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연구해 보아도 좋다.......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먹거리를 예비해 준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물질적 음식을 탐하라고 한 것이냐? 사람이 그런 물질적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 과다가 되지 않겠느냐? 영양 과다로 몸에 각종 질병이 유발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면 절대로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알맞게, 서로 다른 시기와 계절에 따라 사람에게 각기 다른 먹거리를 누리도록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몸 안에 적지 않은 열기와 습기, 건조함이 쌓이는데, 가을에 많이 나오는 과일을 먹으면 그 습기와 건조함이 제거된다. 동시에 소와 양도 튼실하게 자라 사람은 육식으로 몸보신할 수 있다. 사람이 각종 육류를 먹고 나면 몸에 에너지와 열량이 생기고, 엄동설한 추위를 막아 낼 저항력이 생겨 매서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시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예비해 주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지는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안배해 놓은 것으로, 적절한 한도가 있지만,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의 생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류가 부단히 고품질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위반하고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지역에 맞추어 인류에게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지대, 여러 체질의 사람들의 수요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음식물 또한 계절과 시간을 나눕니다. 어느 계절에 무엇을 먹어야 인체에 가장 유익할지 조물주께서 이미 세심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만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인식이 없어 무턱대고 식욕을 탐하고 육체의 향수를 탐하여 각종 과학적인 수단으로 음식물의 생장주기를 조절하여 유통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각종 비철 채소와 과일들이 도처에 널려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인 생활은 풍부해졌고 사람들의 식욕도 만족을 얻었고 시장경제 또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람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각종 희귀병으로 인한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런 질병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탄이 인류에게 주는 쓰라린 경험과 재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오직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모든 파괴를 중단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진정으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에게 방법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니냐?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