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장의 신임을 받고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19년 01월 10일

하루는 공장 사장님이 제게 “가족들과 상의해봤는데, X지역에 자수 공장 분점을 낼까 해요. 저희가 하는 건데 그 공장 대표직을 맡아주면 좋겠어요. 물론 급여는 여기보다 많이 줄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신임을 받고 있단 사실에 놀란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를 그토록 믿어주신다니 저도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사회 생활

공장에 들어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제가 처음 공장에 왔을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기존 직원이 괴롭혔던 입사 초기

2014년 여름, 저는 베이징(北京)의 한 자수 공장에서 방직공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열흘까지는 무탈하게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11일째 아침, 다른 자수 공장에서 일하던 연화가 우리 공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연화는 30대로 베이징에서 자수 일만 7, 8년을 했습니다. 원래 있던 공장의 일이 끝나면 다른 자수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했고, 원래 있던 공장에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거리에 있는 자수 공장 직원들은 모두 연화를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연화가 공장에 들어서자 모든 직원은 연화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연화는 옷 한 바구니를 들고 나무 의자를 들어서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제 옆에 앉아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화의 왼팔이 제 오른팔과 딱 달라붙어 저는 실을 잡아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언짢았습니다. ‘이 사람 인성이 왜 이래? 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잖아? 공장에서 자리를 다 배정해 준 건데 왜 내 옆에 앉으려는 거야. 내가 새로 왔다고 괴롭히고, 바느질 못 하게 하려는 거잖아?’ 하지만 문득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살며 다른 사람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자를 살짝 옮기고 몸을 틀어 실을 당길 수 있도록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물러섰으니 이제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 앉아 다시 바느질하기 시작할 때 연화가 갑자기 제 위에 있던 불을 꺼버렸습니다. 불을 꺼버리면 저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화를 삭이며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화를 누르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연화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젊었을 땐 불을 꺼도 다 보였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불을 끄면 실이 보이지 않아 일을 할 수가 없네요.” 라고 말하며 일어나 다시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불을 켜자마자 연화가 씩씩거리며 일어나 ‘탁’하고 불을 다시 꺼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저를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벌건 대낮에 무슨 불이에요? 불이 없는 게 훨씬 낫구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억누른 화

어이없는 행동에 화가 났고 속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두 번이나 봐준 거야.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덤비는 거야? 정말 호의를 몰라주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 사장님에게 말하기만 하면 사장님이 정리해주실 텐데. 이렇게 계속 날 무시하게 두면 사람들도 보는데 웃음거리만 되고 말 거야. 안 돼. 일단 내 체면부터 찾아야겠어. 다신 날 괴롭히지 못하게 단단히 한 마디 해줘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막 뭐라고 하려던 찰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사탄에 인해 타락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에는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게 되었다. 사람의 이성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성품이 짐승처럼 변해 하나님에 대한 패역도 점점 많아지고 심해졌지만, 사람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대적하고 거역하기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며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들을 타락시켰고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우리의 생명이 돼버렸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 살다 보니 양심과 이성을 잃고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비겁하게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린 항상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도 맺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연화가 처음 저를 괴롭혔을 때 저는 참고 상대방과 시시콜콜 따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또 무시했을 땐 제 체면과 이익에 해를 끼쳤고, 제겐 포용과 인내가 사라져 상대방에게 화를 낼 생각으로만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제 모습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어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은 없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하여라.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너 자신이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오늘 발생한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고 제가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증거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였어야 했고 이기적인 본능을 위해 행동하지 말고 홧김에 연화에게 따지려고 하지도 말았어야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다시 불을 켜지 않았고, 연화에게 따지려고 들지도 않았으며 그저 의자와 바구니를 문 쪽으로 끌고 가 햇빛에 기대어 옷을 다리에 놓고 바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느질하기에 그렇게 편하진 않았지만, 이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날 내내 연화는 제 쪽으로 와서 저를 괴롭히지 않았고 저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또다시 부린 계략에 굳게 서다

이튿날 아침, 자수 공장에 도착했을 때 어제 제가 앉았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봤지만 연화가 오늘도 일하러 온다는 것이 떠올라 저는 문가 자리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연화가 지각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게다가 연화가 다시 의자를 들고, 바구니를 들어 거칠게 제 옆자리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제 그랬던 것처럼 연화의 왼팔이 제 오른팔에 딱 붙어 실을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어제 그렇게까지 양보했는데도 오늘 또 나를 괴롭히러 오다니. 진짜 못됐네. 너 같은 애는 진짜 처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같이 화내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저를 깨우쳐주셨습니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모든 사람이나 사물은 당신께서 주재하신 것입니다. 연화가 제 곁으로 오도록 허락하신 것도 당신이십니다. 이 사람이 계속 저를 괴롭히는 것에도 당신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배치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모든 일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너희에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이면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모두 싸움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겉으로 보기에는 연화가 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계의 사탄이 계략을 부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제가 진리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환경을 만들어 저를 시험에 빠뜨리려 한 것입니다. 연화가 제 옆에 앉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제가 버는 돈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돈 몇 푼 더 벌자고 연화에게 화를 내고 다툰다면 이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었으며 이성적이고 포용과 인내를 갖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의자를 다시 뒤로 끌어 좀 더 문에 가까이 다가갔고 몸을 비틀어 실을 당겼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연화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자 얻게 된 기존 직원의 존중

새 디자인의 옷에 바느질하다가 연화가 하는 바느질 방법이 틀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화가 바느질한 옷은 품질로 합격이 될 수 없는 옷이었는데 연화는 모르는 듯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냥 저렇게 꿰매게 두자. 꿰매봤자 어차피 사장님이 다시 하라고 하실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잠시 후 사장님이 검사하러 나왔고 연화가 바느질한 옷의 주머니를 보더니 “다시 해. 이렇게 하면 안 돼. 주머니에 실이 너무 잘 보이잖아. 다 뜯고 새로 꿰매. 실이 안 보여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연화는 실을 뜯고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한 것을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시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잘했어!” 그때 저는 내심 고소했습니다. ‘잘났다면서? 날 괴롭히기까지 했잖아? 이제 나보다 못한 걸 알았겠지! 내가 가르쳐주나 봐라!’ 이렇게 생각하며 저는 계속 바느질을 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연화에게 자꾸 시선이 갔습니다. 연화는 틀린 방법으로 계속 바느질을 했고 실을 뜯었다가 꿰맸으며 이리보고 저리 보는 모양새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연화는 어쩔 수 없이 옷을 가지고 사장님에게 여쭤보러 갔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혼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잖아! 다 뜯고 다시 해! 진짜 왜 그래? 어떻게 저기(저를 가르키며) 새로 온 사람보다 못하는 거야? 가서 어떻게 하는지 잘 봐!” 연화는 풀이 죽어 제 옆자리로 왔고 예전처럼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속으로 ‘어때? 사장님도 너보다 날 예뻐하시지? 누가 그렇게 날 괴롭히고 면박 주래? 너도 당해보니까 어때?’라며 좋아했습니다. 연화는 하는 수 없이 또 바느질을 해나갔지만, 방향은 여전히 틀리게 했습니다. 연화는 어쩔 줄을 몰라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바느질을 잘못했기 때문에 한 번만 더 잘못하면 다시 뜯고 바느질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양심이 저를 질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디자인의 옷은 오늘 새롭게 도착한 옷이고, 정확한 바느질 방법을 나는 알고 연화는 모르니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비웃는 거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려줬을 텐데. 날 괴롭혔던 사람이라 내가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건가?’

문득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 있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모든 대인관계는 다 비정상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사람을 너무나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육적인 것을 위해 살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나 사랑을 주지 않을뿐더러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사랑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방어 자세를 취하며 암투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은 온데간데없고 협동심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내심이 없다는 건 견원지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악함과 투쟁으로 가득 차 서로 적대시하고 상대방을 짓밟으려고만 합니다. 사람다운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사탄에게 사로잡혀 사탄의 철학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이 설교 교통이 생각나자 저는 제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에 연화가 그렇게 저를 괴롭혔을 때 연화와 싸우지 않은 제 모습에서 저는 포용과 인내를 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화가 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저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고 오히려 연화의 고통을 보며 즐기고 제 체면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기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전에 제가 보인 모습은 거짓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사랑이나 정상적인 사람의 양심과 이성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깊이 자책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인성의 기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저를 이 사람들 사이에 오게 한 것은 제가 이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웃으며 연화에게 다가가 얘기했습니다. “연화, 바느질 방향이 틀렸어. 그대로 꿰매면 다시 뜯어야 할 거야” 이어 저는 바느질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연화는 한 번 해보더니 순식간에 주머니 한쪽의 바느질을 끝냈습니다. 바느질을 마친 후 연화는 제게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돼!” 연화는 무척 기뻐하며 바느질을 이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진리를 실천하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저도 같이 누리게 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 연화는 남들과는 다른 눈길로 저를 쳐다보며 국에 있는 생선과 두부를 가득 덜어줬습니다. 연화는 웃으면서 “언니, 많이 먹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부터 연화는 공장에 도착하면 저를 보고 웃으며 “언니, 벌써 왔어요?”라며 반겼습니다. 제게 정식으로 사과하진 않았지만 연화의 바뀐 태도에 저는 몹시 기뻤습니다. 며칠 후, 원래 있던 공장에서 다시 연락이 와 연화는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대각선 맞은편에 있던 한 언니가 제게 말했습니다. “동생, 진짜 대단해. 연화가 동생한테 얼마나 못되게 했는데, 도와주다니? 나였어 봐, 절대 가만 안 두지!” 전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들 먼 곳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렇게 같이 일하는 것도 인연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요!” 저는 제가 사람답게 살고 포용과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서 맺게 된 결실이지 제가 잘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공장 사장님은 저와 연화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은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소원씨, 정말 착한 분이네요. 인품 있고 선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사랑받아요.” 그날부터 사장님은 비교적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제게 맡겼고, 다른 직원들이 바느질을 제대로 하는지 수시로 살펴달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공장 직원들은 저를 ‘반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이때의 체험을 생각해보면 저는 진리를 실천하고 사람답게 산다는 건 그 당시에는 부끄럽고 손해이며 억울할 수도 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실제적인 이끄심을 통해 저는 어떻게 선함으로 악함을 물리치는지 알게 되었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소원

결혼 생활에 찾아온 위기,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었던 비결

남편의 인터넷 채팅으로 일으킨 결혼 생활의 위기, 쌓아 온 감정은 무너지고 배신의 고통에 빠지게 된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했을까요?

우리 가족의 갈등, 이렇게 해결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가족들이 다 나를 편애했다. 나는 여동생보다 세 살 많았지만 한 번도 동생에게 양보해 본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먼저 차지했다. 결혼한 후, 종종 사소한 일로 남편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곤 했다. 남편을 못 이기면 며칠이고 그와 대화도 하지 않았고, 남편도 나를 외면하며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집안 분위기가 나는 너무 괴로웠다. 혼자서 이런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역하러 오신 것은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타락한 우리를 정결케 하고, 우리가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의 후반부에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잘 따르겠다고 남몰래 결심했다. 타락한 성품이 변화될 수만 있다면 가정도 화목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 집에서 남편과 의견이 다르면 나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그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은 줄어들었고, 나는 스스로 변화한 것을 느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자만자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계속 여러 가지 환경을 만드시며 나를 변화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사돈 간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5년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두 사람은 연애 끝에 결혼 적령기가 되어 가족끼리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아이들의 혼사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쪽 어머니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신혼집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딸이 거기에 살면 직장과 가까워 출근하기 편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몇십 리 밖에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살라는 말을 듣고 내심 불쾌했다. 첫째,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단층집이라 출입이 편하고, 둘째, 우리 부모님과 시댁과의 거리가 가까워 양쪽 부모님을 보살피기에도 비교적 편했기 때문에 나는 절대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멀리 떨어진 그 집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집이 비록 멀기는 해도 안의 가구가 다 새것이고, 인테리어도 젊은이들의 취향대로 디자인해서 젊은이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내주고 아들의 신혼집으로 새로 인테리어 해주겠다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난 묵묵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나는 남편과 싸우며 사돈에 대한 불만을 전부 남편에게 쏟아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 척하며 정작 나의 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원망했고, 사돈의 처사가 너무 지나치고 너무 강하게 나온다며 원망했다. 이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집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고 남이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니 내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서 무척 억울하고 괴로웠다. 아무런 방법도 없을 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일 때문에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원래 멀리 있는 그 집을 아들이 결혼하면 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돈이 그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집은 우리가 샀는데 사돈이 무슨 자격으로 결정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돈과 싸운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으려니 제 마음이 또 내키지 않습니다. 남편도 제 편이 아니라 더욱 괴롭고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이 말씀이 바로 나를 심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그 불신자들과 똑같이 명리를 다투고, 내 이익을 위해 시시콜콜 따지며,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도 않았다. 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으니 정말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이다! 집 문제에서 사돈의 처사가 내 이익을 해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내 편에 서지 않고 날 무시하며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서 내 이익과 체면을 되찾으려고 남편과 싸웠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후회가 되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집 문제에서 저는 제 이익과 체면을 지키려고 사돈과 다투고 남편과 싸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이익을 내려놓고 그들과 다투지 않고 하루 빨리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기도 후, 나는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남을 포용하고, 양보하며, 이해한다면 내 마음이 해방되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이사 문제를 상의했다. 이 일이 끝난 후, 나와 남편, 사돈 간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며느리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6년 가을, 아들이 결혼하고, 온 가족이 행복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들 부부의 신혼 3일째 밤 9시가 넘어, 남편은 며느리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몰고 가 보았다. 집에 들어가 이유를 물어보고 나서야 집문서 때문인 것을 알았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본인의 이름도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갈등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말했다.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우리 모두 피곤하니 이 일은 며칠 후에 다시 상의하자꾸나.”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며느리의 이런 요구는 말도 안돼. 며느리의 부모가 그렇게 강하게 나오더니 며느리 역시 부모랑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리 집은 정말 재수가 없네. 어떻게 그런 집이랑 엮여서...’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자. 아들네가 안 싸우고 잘 살면 됐지...” 나는 듣자마자 분통이 터져 남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 어쩜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요. 며느리가 해 달라 한다고 다 해주면 나중엔 끝도 없이 욕심을 부릴 거라고요. 우리가 집도 사고 인테리어까지 했는데, 며느리는 돈 한 푼 안 내고 명의를 올려 달라는 게 말이 돼요? 남들이 알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요. 사람들이 다 우리를 깔보지 않겠냐고요? 앞으로 제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만나겠어요? 게다가 며느리가 하는 짓을 보니 아들과 잘 살 것 같지도 않아요. 만약 정말 이혼이라도 해서 재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고요...” 남편은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보고 난 더욱 화가 났다. 더 이상 마음속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모든 불평을 남편에게 퍼부었다. 나는 울면서 이 집을 살 때 돈을 모으느라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했고, 말할수록 며느리의 요구는 더욱 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로 괴로워할 때 갑자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게 생각났다. 순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자기 이름을 올려 달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너무 한 것 같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사이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입니다. 들어주자니 또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이때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았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데,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만 생각하게 하고, 명리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게 하며, 명리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게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게 하며, 명리를 지키거나 얻기 위해 어떤 판단이나 결단도 내릴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무형의 굴레를 씌워 놓았다. 그 굴레가 씌워지면 사람은 벗어날 능력도, 벗어날 용기도 없는데, 그 굴레를 쓴 채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였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존해 오면서 갈수록 사악해지고 흑암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이 사탄이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 속에서 자신을 망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사탄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의 음험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사탄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가증스럽습니다!) 아마 너희가 지금은 아직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꿰뚫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떠나면 인생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를 볼 수 없고, 앞날이 캄캄하고 막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어느 날엔가 사탄이 사람에게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큰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인식하는 그날이 되면, 너는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너에게 씌워 놓은 굴레에 철저하게 저항할 것이다. 네가 사탄이 주입시킨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면, 너는 사탄과 철저히 결별하게 될 것이며, 또한 사탄이 가져다준 모든 것을 진정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흠모하게 되며, 진리를 추구하는 올바른 인생길을 가게 된다.』 이 구절의 말씀을 보고 나자 나는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이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이 아닐까? 이 말씀은 너무 현실적이야. 난 명리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았나? 원래 명예와 이익은 사탄이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이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어쩐지 내가 그 안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사탄은 명리를 가지고 우리를 조롱하고 괴롭힌다. 집문서 문제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이루며, 화가 나고 괴로워서 하늘과 사람을 원망했다. 집문서에 며느리의 이름을 올리면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 두려웠고, 또한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게 된다면 며느리가 재산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명리가 나에게 가져온 고통이 아닌가? 하마터면 나는 명리의 노예가 될 뻔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옭아매어 정상적인 인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가족의 정은 더욱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속의 원한이 훨씬 덜해졌다.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이 너무나 위력적이라 나는 마음속에서 환히 이해가 되었다. 이 말씀을 헤아릴수록 나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점차 나는 화가 나지 않았고, 이런 명리의 족쇄에서 빠져나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 마음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고 한없이 편해졌다. 남편은 홀가분해 하는 나를 보며 의아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 2시간 전이랑 완전 딴 사람 같은데?” 나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어요. 전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남편도 듣고 기뻐했고, 이렇게 우리 둘은 자발적으로 집문서를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며느리는 집문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감격해서 말했다. “어머니, 큰 도량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나에게는 이런 도량이 없어. 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한 거란다.” 지금까지도 며느리는 집문서 문제를 처리하지 않았고, 아들과도 더 이상 싸우지 않았으며, 우리 가족은 아주 화목하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해 주신 덕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의 갈등을 해결했다. 이제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하나님 말씀 안에 많은 비밀을 발견했다. 그런 많은 말씀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고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가정들을 보라. 그들은 가정의 시시비비 속에서 살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모두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내 동창의 상황이 그렇다. 어느 날 친구가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해 집안의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들이 서로 집을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했다. 핸드폰를 내려놓고, 나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명리의 얽매임에서 벗어났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 불신자들처럼 여전히 명리를 다투며 살았을 것이다. 한 가족이 명리 때문에 원수가 되고, 고통 속에 발버둥치며 평안을 얻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온 가족이 모두 온정이 넘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에 감사드렸다.

장거리 연애로 인한 불안감에 몰려오는 의심, 어떻게 버려야 할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장거리 연애. 이런 불안감 속에 몰려오는 의심은 오히려 서로에게 큰 벽을 쌓기도 하고 서로 간의 감정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장거리 연애로 인한 의심의 고통을 벗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믿음의 싹을 틔워보세요.

기적처럼 사라진 남편의 뇌종양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다

갑작스레 남편에게서 뇌경색에 뇌종양까지 발견하게 되자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원한 기도를 하면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재난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다

2016년 7월 19일 오전 8시경,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날은 연세가 72세된 한 자매가 우리집에 물건을 전해주러 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 자매는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장대비는 오후 3시가 되어도 그칠 줄 몰랐는데, 순간 저는 불어난 물이 저희 집 화장실을 휩쓸어갈까 걱정이 되어 길에서 물길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쿵쾅”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빠른 속도로 우리 집을 향해 흘러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매우 두려웠고 집에 돌아갈 엄두도 못내고 문 앞의 큰 길을 따라 동쪽을 향해 뛰어가 쏟아져내리는 토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쪽으로 뛰어갈 때 그쪽에도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허둥지둥 마구 휘젓고 다녔습니다. 제가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갑자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 ” 이 말씀을 생각하니 당황스럽고 심란했던 마음은 바로 평온해졌고, 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을 돌이켜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는데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 자매가 있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빨리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의 재난은 당신께서 일으키신 것이고 역시 당신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재난을 내리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징벌하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사탄의 성정으로 가득찼습니다. 이전에 본분할 때, 건성으로 하고 하나님을 기만했습니다. 오늘 살든 죽든, 당신의 손에 맡기길 원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공의로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끝난 후, 저의 마음은 많이 차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사태가 나는 소리도 멈추었습니다. 기묘한 것은 우리 집이 뜻밖에도 산사태로 인한 토사로 파괴되거나 매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마을 근처에 살고 계셨는데 어머니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산사태가 이미 끝난 것을 보고 저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산을 쓰고 서둘러 어머니 집에 가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밖에 나와서 보니, 마을 반경 100미터 주변이 산사태로 인해 토사가 유입되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도처에 온통 나무, 벽돌, 진흙, 흙덩어리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힘들게 앞으로 가는데 길가에 있던 가옥 3채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밀려드는 토사에 매몰되어 이미 숨졌고, 또 7~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팔이 절단되었고, 어떤 사람은 다리 뼈가 부러졌습니다. 어머니 집에 도착하자 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68살의 어머니는 유입된 토사에 세번이나 휩쓸려 갔지만, 오히려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밀려드는 토사가운데로 빠졌을 때, 쉼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통나무 하나가 가로막아 휩쓸려 가지 않았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집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집 뒤쪽에 있던 가옥 두채는 이미 산사태로 인한 토사로 부서지고 매몰되었지만, 우리 집 뒤쪽 담장 아래 대략 1미터 높이의 흙이 조금씩 쌓여 토사가 유입되는 것을 막았고, 또한 토사 흐름의 방향을 바꾸어 우리 집의 서쪽 벽을 따라 앞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곳은 피해를 입었지만 오직 우리집만이 원래 그대로 보존된 것입니다. 눈 앞에서 발생한 일은 그야말로 저를 놀라게 했는데 재난은 정말로 눈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 ’ 이번의 재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인식은 다 막연한 것이고 모두가 글귀 도리이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깊이 패괴되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주며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자신의 본분에 충성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어둡고 차디찬 흑야(黑夜)와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 ” 그렇습니다. 재난을 마주해 사람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외에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속주이고 사람 생존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말세인 오늘날, 성육신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으로, 수백만 자에 달하는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말씀을 친히 발표하셔서 줄곧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루빨리 되돌아서고 그분의 앞에 돌아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데, 이래야만 인류가 비로소 좋은 귀숙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재난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북성(河北省)한단시(邯郸市) 유 심 (刘心)

위험한 지경에서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다

제 이름은 깐신(甘新)이라고 합니다. 올해 51살이고 평범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96년에 예수를 믿었고, 2004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읽고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여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였습니다. 2008년에 교회 책임자가 하나님 말씀 책을 보관하는 본분을 저에게 안배해 주었고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에서 책을 저희 집으로 운송해오면 저는 책들을 정리하고 잘 포장해서 작은 방 온돌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습니다. 매 번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책이 습해지지 않도록 창문을 열어 통풍을 시켰습니다. 2013년 8월16일 오전,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비가 주룩주룩 쉼없이 내렸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는 하늘이 갑자기 더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함께 치면서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은 물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는데 빗줄기다 굵어지더니 점점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저는 안절부절못하여 속으로 ‘만약 비가 이렇게 계속 내려 물이 불어나면 어떡하지? 방안에 보관한 하나님 말씀 책 30여 박스는 괜찮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얼른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홍수라도 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에 이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 책이 보관되어 있는데, 형제자매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들을 지켜주세요...’ 저는 기도를 끝내고 다시 창밖을 보았는데, 폭우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급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몇시간 동안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마음은 그야말로 하나님 곁을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다시 창밖을 보았습니다. 집 마당의 대문은 불어난 물에 일부가 부서져 닫히지 않았습니다. 물은 ‘콸콸콸’ 마당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고 (물은 이미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남편은 벽돌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의 입구를 막으려 애를 썼지만, 물살이 너무 세차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웃이 큰 소리로 저의 남편에게 “어서 피해요, 막지 말아요, 막아도 소용없어요, 산위에서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황급히 방으로 들어오면서 저에게 “여보,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어, 서둘러 장화를 신고 빨리갑시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망설였습니다. ‘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어떡하지? 갈까 말까? 물이 불어나 지금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거나 목숨을 잃게 되잖아’라고 생각하다가, ‘안돼, 본분이 중요해! 하나님의 부탁이 우선이고 본분이 우선인데, 내가 만약 간다면 본분을 다하지 못한거야, 하나님 말씀 책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다면 손실을 입게 되는데, 이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야, 내 목숨을 보존하려고 본분을 팽개칠 수 없어! 죽더라도 하나님 말씀 책을 보호해야 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미그적거리면서 장화를 신자 남편은 장화를 먼저 신고나서 “빨리 신어! 뭘 그렇게 꾸물거려?”라고 재촉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너의 의무를 다하며, 너의 직책을 이행해야 하고, 본분을 지켜야 할지니라.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드려야 할 너의 몫을 바칠지니라. 아니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남아 있을 자격이 없느니라.”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그래, 재난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지배하고 계시는데, 아무리 많은 비가 온다해도 다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만사만물은 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나는 지금 떠나면 안돼! 오늘 어떻게 해서라도 이 본분을 지켜야 돼, 하나님 말씀 책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하늘에 속하는 만나야, 사람에게는 말씀 책이 꼭 있어야 해, 나는 죽어도 이 방에서 죽을거야, 비록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할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장화를 신지 않았습니다. 이때, 산위에서 물이 흘러내려와 대문 입구를 거쳐 마당안으로 들어왔습니다.(집은 지대가 높고 마당은 지대가 낮습니다)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가, 여기 있어야 돼, 물살이 이렇게 센데 더 가면 휩쓸려 떠내려가게 될 거야, 우리 둘의 생사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어…” 남편은 “차라리 우리 옥상으로 올라갈까?”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다리가 마당에 있는 포도나무 받침대 아래에 있었던 탓에, 남편은 거친 물살을 헤치고 휘청거리며 사다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와 남편은 사다리를 타고 차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저녁 여섯시 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저의 집에서 동쪽 큰 길은 이미 강으로 변했고 이웃집의 담벼락은 홍수에 휩쓸려 갔으며, 장작더미는 홍수에 휩쓸려 도처에 나뒹굴었고, 말들은 머리만 드러낸 채로 물속에서 떠다니고, 이웃인 앞집 가족 세 명은 지붕위로 올라서서 긴장한 채로 떠들어대고 있었고, 이웃집 노인도 창고에 올라가서 지붕 기와에 엎드린채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온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십여분이 지나고 저와 남편은 ‘우지끈’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편은 “큰일났어, 물이 방안으로 들어왔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서 ‘땡그랑’하고 물건들이 여기 저기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 물이 불어나 집이 물에 휩쓸려 가면 하나님 말씀 책들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는데 어떡하지? 하나님 말씀 책은 내 생명과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인데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저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는 너무 보잘것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재난앞에서 저는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합니다. 하나님, 말씀 책들을 당신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께서 보호해 주세요. 재난은 하나님께서 장악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는 권병이 있으시며 이 모든 것들을 주재하고 관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겠습니다…’ 저와 남편은 차양위에 반시간 남짓 있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옷도 이미 다 젖었습니다. 번쩍이는 번갯불에 눈이 자극을 받아 순간 저는 흐릿하고(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차라리 우리 그냥 내려가요, 생사는 다 하나님 손에 달렸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데, 죽을 팔자라면 피할 수 없잖아요. 우리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남편은 차양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베란다 30~50cm높이까지 물이 불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된 방문의 나무판자 절반이 이미 물에 휩쓸려 떨어져 나갔고, 그 사이로 물이 방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창문 밖에서 방안을 들여다 보니 온통 물로 가득찼고 바닥에 있던 전병을 넣는 항아리는 이미 뒤집혀 있었는데 의자위에도 전병이 있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 남편은 황급히 창문을 열어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전병을 주방의 싱크대 위에 두었습니다. 뒤이어 저도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닥에는 의자, 우산, 기름통 그리고 다른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고 물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물이 계속 흘러 들어와서 온돌 위까지 올라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책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니, 속이 바질바질 탔지만 속수무책으로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또 온돌 가장자리에 앉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물이 온돌 위까지 곧 차올라 옵니다. 저는 어떡하죠? 이 책들이 물에 휩쓸려가면 어떻게 하나님을 뵐 면목이 있습니까! 또 형제자매님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 책이 꼭 있어야 합니다. 만약 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저도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도 가치가 없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저는 부엌으로 가서 대야를 가져와 고인 물을 밖으로 퍼냈습니다. 하지만 퍼내는 동시에 물이 흘러 들어와서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대야를 가져와 저희는 함께 물을 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여분 뒤 번개가 번쩍였는데 남편은 얼른 고개를 드니 대문 입구가 커다란 나무와 각종 잡다한 물건들로 막혀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기뻐 소리질렀습니다 “아!여보,빨리와서 봐봐!나무가 대문 입구를 막아 물이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있어”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대문 입구쪽을 보았는데 속으로 매우 흥분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인데, 하나님께서는 시시각각 함께하시고 저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아! 전능하신 실제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견고한 망대이시고 당신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니이다. 우리 모두 당신의 날개 아래에 엎드려있으니 재해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신성한 보호와 보살핌이니다” 이때, 문 입구의 물살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또 한시간이 지나자 집 밖의 물들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더 힘을 내 물을 퍼냈습니다. 우리는 힘껏 노력하여 끝내 방안의 물을 다 퍼냈습니다. 저녁 10시경에 비는 그쳤고 저희는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들이 어떤 손실도 입지 않도록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행사를 찬양하며 아울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다음날, 저는 일찍 일어나서 물이 거의 빠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마당에 진흙이 두껍게 쌓였을 뿐, 담벼락은 물에 휩쓸려 가지 않았고 집에도 어떠한 손실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홍수라는 재난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권병과 전능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관리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그야말로 기묘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하나님은 줄곧 그렇게 그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이번 경력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이 있게 하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했고,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게 했습니다. 깐신(甘新)

내가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완벽은 누구나 다 추구하는 최종 목표다. 예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똑똑한 그는 글짓기, 피리, 장기, 서예에서 최고의 경지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편이라 줄곧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왔다. 중학교 때, 예인은 지식의 바다에서 우뚝 서겠노라 다짐했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하고자 하는 정신으로 매번 시험 때면 반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반에서 1등일 뿐, 전교에선 1등이 아닌 3등임을 알았을 때 그는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후광에 가려지기 싫은 마음에 온 정력을 다 쏟아부어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 인고와 노력으로 전교 1등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시에서 가장 우수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만큼 출중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졸업 후, 예인은 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도 그는 완벽을 추구했다. 모든 과정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고, 회사에 큰 공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핵심인사가 되어 상사와 직원 모두 그를 높이 평가하고 인정해주었다. 그는 성취감에 사로잡혀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옛말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단점과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을 높이 평가해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이나 곧 자신을 뛰어넘을 것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다. 몇 년 후, 회사에 백령이라는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백령은 예인보다 조용했고, 글솜씨나 말재간에서는 예인보다 부족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생활에서는 예인보다 한 수 위였다. 정직함에선 앞서갔지만 예인에게 있는 젊음은 없었다. 백령은 예인이 부럽다며 문화나, 나이, 미래에 있어서도 자신이 예인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예인이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예인은 오로지 자신의 완벽한 꿈이 계속될 수 있을지에만 신경 썼다. 상대방이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실적으로 인해 상사와 동료의 인정과 칭찬을 받자 예인은 참을 수 없었고, 난생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예인은 일에 매진했고, 온 힘을 다해 백령과 경쟁했다. 하지만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회사의 양대 산맥으로 떠올랐고 예인은 홀로 뛰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예인의 마음은 백령을 향한 부러움과 시기 질투로 가득 찼다…얼마 후, 회사 내 인사이동 소식에 예인은 마음이 다시 타올랐다. 업무 확장으로 영업부장을 선출한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듣자 예인은 자신만만하게 당연히 자신이 뽑힐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에 예인은 낙담하고 말았다. 업무 경험이 풍부한 백령이 선택된 것이다. 예인은 난생처음으로 이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피 튀기는 경쟁도, 이렇게 큰 좌절감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 후 예인은 풀이 죽어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그의 마음은 원망으로 가득 찼다. 자신이 대체 왜 백령과 만난 것인지, 왜 자신은 백령을 뛰어넘을 수 없는지, 왜 백령이 선택된 것인지, 대체 왜… 다른 사람에게 지기 싫어했던 예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다. 비통함에 빠지니 자신이 삼국시대의 주유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크게 외쳤다. 내가 있는데 제갈량이 왜 나타난 것인가!” 완벽주의자 예인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았을 때 마음속은 고통과 막막함으로 가득 차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지 몰랐다. 예인은 우연한 기회에 창조주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예인은 창조주의 말씀에 매우 놀랐고, 고통과 막막함으로 가득 찼던 마음도 방향을 찾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사람 자체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무소불능이 될 수 있는가? 완벽해질 수 있는가? 흠이 없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가? 모든 일에 능통하고 다 깨달을 수 있고 다 해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사람 안에 약점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이나 업무를 배우고 나면 ‘난 능력이 생겼어, 난 신분이 있는 사람이고 몸값 좀 나가는 사람이야, 나는 ○○전문가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 얼마나 크든지 사람은 그것을 보여 주기도 전에 자신을 위대하고 용맹하고 완전무결하고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포장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해내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한다. …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인은 깨달음을 얻었다. 완벽은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사람의 야망과 욕심이고 사탄이 사람에게 심어놓은 독소이며 천사장이 추구한 것처럼 굉장히 수치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창조주의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모두 한정적인 사고와 한정적인 능력만을 갖고 있어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니 어찌 완벽해질 수 있단 말인가? 완벽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나가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등의 생각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건 교만이라는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이자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뛰어넘고 모든 사람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결국 스스로 끝없는 고통과 무력감만 안겨주게 된다. 예인은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힘들어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인생의 추구 목표에 문제가 있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니, 밑 빠진 독을 채우는 것처럼 평생 채울 수 없는 거였어, 창조주의 음성을 조금만 일찍 들어 나의 신분과 지위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오늘에야 예인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불쌍하고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다들 완벽을 추구하고 비범한 사람이 되려 한다. 여배우가 조연을 맡으면 주·조연을 맡고 싶어 하고, 주·조연보단 주연을 맡고 싶어 하며 목표를 이루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표가 바로 완벽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들은 완벽을 위해 힘을 쏟고, 청춘을 바치고, 심혈을 기울이며 심지어 인격과 존엄성을 버리기도 한다. 또 예쁜 얼굴을 가진 여성이 스스로 못생겼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성형수술을 하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여 오히려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게 완벽을 추구한 대가가 아닌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의 욕심과 욕망이다! 이때 예인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증상의 원인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인은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사람은 피조물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자기의 본위를 지키고 참답게 살며 창조주가 준 부탁을 충실하게 지켜야지, 분수에 넘치는 일이나 자기 ‘능력 범위’ 밖의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위대한 사람, 뛰어난 사람, 높고 큰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해서도 안 된다….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대견한 일이고, 피조물이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다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 『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인은 해방감을 느꼈고,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위인이나 명인이 되기 위해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보도록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피조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은 거리낌이 없이 산다

크리스천인 그는 호주에 와서 어렵게 직장을 얻었기에 해고 될 두려움에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직장생활에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