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 부모 필독: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가

2018년 12월 20일

프롤로그:

“엄마, 예전엔 엄청 무서우셨는데 지금은 굉장히 온화해지셨어요. 말도 부드럽게 하시고요. 사랑해요, 엄마.” 순진하고 밝은 여자아이가 젊은 엄마의 귓가에 기분이 좋은 듯 말했고, 젊은 엄마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이 젊은 엄마의 이름은 예심입니다. 딸의 단순하고 소박한 고백을 통해 과거에 우리 모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요? 그리고 젊은 엄마가 딸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딸은 내 미래의 버팀목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라는 사상 관점의 영향을 받아 지식수준이 낮았던 저는 딸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탄탄대로를 걷기만을 바랐습니다. 태교를 통해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동요를 들으며 음악으로 태교했고, 아이의 두뇌 발달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기도 했습니다. 딸이 태어난 후, 저는 교육 보험에 들어 대학 학비를 미리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1살이 지났을 때 저는 딸에게 좋은 앞날이 있기만을 바라며 어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좋은지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저는 딸의 인생을 계획했지만 모든 일이 제 생각처럼 순조롭게 풀리진 않았습니다….

관리와 압박의 교육으로 역효과가 나다

유치원에 들어간 딸의 수학 성적은 굉장히 낮았습니다. 행여나 초등학교 입학에 걸림돌이 될까 봐 저는 주판 속셈 취미반에 등록해 줬습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만 되면 딸이 울며불며 교실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딸을 밀어붙이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수학 성적 때문에 좋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그렇게 기초를 탄탄히 쌓지 못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모든 것이 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딸의 수학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매일 딸에게 공식을 외우라고 했고 틀린 문제가 있으면 바로 고쳐줬습니다. 딸이 놀고 싶다고 하면 저는 딸을 ‘교육’했고, 틀린 문제의 답을 모두 지운 후 맞힐 때까지 풀라고 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이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여러 학원에 등록한 것을 보고는 저도 행여나 딸이 뒤처질까 봐 엄격한 공부 계획을 세워줬습니다. 매일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 외에도 많은 문제를 풀도록 했고 글씨도 또박또박 쓰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은 늘 짜증을 내며 “엄마, 나 힘들어요. 조금만 놀다가 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딸이 이렇게 말하면 저는 딸에게 역정을 내며 말했습니다. “안 돼! 아직 남은 과제가 얼마나 많은데. 너희 반 누구누구 좀 봐. 매일 혼자서 숙제한다고 하더라. 걔가 언제 너처럼 맨날 놀려고 하던?” 강경한 제 태도에 딸은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부드러운 말로 딸을 달래주었습니다. “엄마도 다 널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중에 엄마처럼 배운 게 없이 힘들게 고생하면서 살고 싶어?” 이렇게 말하자 딸은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고 계속해서 숙제를 했습니다. 딸이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짜증도 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학벌이 높지 않으면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딸이 크면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밝았던 딸은 점차 말이 없어지고, 이웃과 만나도 인사하지 않았으며 저와의 관계도 소원해졌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와도 못 본 체하고, 무시했으며 달려와 안기지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딸을 보며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자녀 교육,

하루는 학부모회의 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따님이 말도 잘 하지 않고 성적도 계속 떨어지던데 혹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주시는 건 아닌가요? 아이가 행복해야 성적도 오른답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마시고, 순리에 맡기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저는 매우 실망했습니다. ‘성적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 오히려 떨어지다니. 어떻게 하면 좋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곧 시험을 본다는 생각에 저는 또 걱정하며 딸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하지만 역효과가 날까 두려워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압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진퇴양난에 빠졌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딸의 운명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을까

제가 그렇게 마음 졸이고 있던 2017년 8월 저는 운이 좋게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에서 아이의 교육으로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자매님과 터놓고 나누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변변찮은 능력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자신이 못 이룬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맡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제가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지식수준이 낮아 이번 생에 출세하긴 틀렸다고 생각되어 모든 희망을 딸에게 걸었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딸을 잘 키우려고 어려서부터 기초를 탄탄히 다져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장래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교를 시작했고, 공부에서도 제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결국 딸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고 점점 성격이 괴팍하게 변했으며, 저와의 관계도 멀어졌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제가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이제야 저는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놓으셨으며 아이의 장래는 제가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운명도 장악하지 못하면서 저의 노력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저와 딸이 고통스러운 근원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대함에 있어 그들이 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학문을 더 닦고 학위를 취득하고 학력을 갖게 한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자녀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은 다 하찮고 독서만이 고상하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사회에서는 경쟁도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학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후에 생존해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이다. 즉, 네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력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후의 직업과 앞날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일생 동안 이것에 의지해 살려고 잘 계획해 놓고,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큰일로 여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드러내신 게 바로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책을 제외한 모든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다.’라는 이런 사상관점의 영향을 받아 딸에게 좋은 앞날이 있으려면 오로지 고등 교육을 받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명문대에 들어가 고등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저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학습 성적을 중시했고 성적이 떨어지는 과목이 있으면 바로 그 부분을 보강해주며 아이가 좋아하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만큼 따라와 주지 않을 때면 아이에게 여러 가지 연습 문제를 풀도록 강요했고 아이의 자유 시간을 빼앗았습니다. 문제를 틀리게 할 때면 멍청하다며 나무랐고 아이의 마음에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게 되어 점차 아이가 내성적으로 변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실 많은 부모들이 저처럼 행여나 아이가 뒤처질까 봐 어려서부터 다양한 공부를 시키고 취미반을 등록해 부지중에 아이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어 무수한 젊은이들이 바로 이런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고, 집어삼키는 결과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책을 제외한 모든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다.’와 같이 잘못된 사상이야말로 부모와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근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아 딸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딸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니 정말 좋습니다.

초등학교 진학 시험을 앞두고 많은 학부모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면접반에 등록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딸을 면접반에 등록해서 면접 때 좋은 인상을 남겨야 많은 응시생 중에 돋보이지 않겠냐며 남편과 상의하려고 했습니다. 남편과 상의를 하려고 할 때, 문득 제가 또 지식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 생각나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능력, 지능,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 앞에서 사람은 나이, 우열, 귀천을 구분할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설계한 운명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사람이 평생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미래를 갖게 될지는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이나 능력과는 관계가 없으며 모든 것이 창조주의 섭리에 있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는 오빠 친구 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해 집에서 작은 구멍가게 하는 것이 떠올랐고, 신문 방송과를 졸업하고 호텔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동료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부동산 재벌이 되신 아버지의 친구분도 떠올랐습니다. 이 일들에서 지식이 꼭 좋은 앞날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다급히 하나님 앞으로 와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이의 초등학교 진학에 있어서 제가 또 사탄의 독소로 살고 있고 지식으로 아이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계속 이렇게 살아가기 싫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당신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아이가 어떤 학교에 들어가건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배치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뜻밖에도 합격자 발표가 난 후 제가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서 딸을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아주 의아했습니다. 분명 딸이 시험을 못 봤다고 했고 풀지 못한 문제도 많다고 한데다 반에서 1등인 학생마저도 떨어졌다고 했는데 어떻게 저희를 찾은 건지 궁금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따님의 시험 성적은 보통입니다. 따님에게 다시 한번 시험을 볼 기회를 주고 싶어요.” 항상 성적을 깐깐하게 본다고 알려진 교장 선생님이 딸에게 재시험의 기회를 준다는 말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딸은 재시험을 통해 그 학교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저는 딸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변한 제 모습에 밝아진 딸

하나님의 기묘를 체험한 후, 저는 더 이상 지식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에 대한 저의 교육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이에게 학원에 다니라고 하거나 방과후에도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숙제를 다 하지 않고 놀고 싶어 할 때면 “그럼 일단 30분만 놀고 다시 숙제하는 건 어때?”라고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딸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역시나 잠깐 놀다가 주동적으로 돌아와 숙제를 했고, 전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딸의 수학 성적도 향상되었고 예전처럼 활발해졌습니다.

지금 딸이 저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매일 함께 찬양을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니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함이 가득하고 딸과의 사이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행사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아이를 교육하는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예심

'말씀'으로 원망을 해결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빠가 맏이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가 첫 자녀로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딸이었고,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내가 두 세 살쯤, 아빠는 출근을 하셔야 했고, 엄마는 농사를 지으시느라 바빠서 나를 돌봐주실 시간이 없으셨기에,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다. 매번 엄마가 일을 끝내고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 내 바지는 항상 오줌으로 젖어 있었고, 작은 엉덩이는 빨개져 있었지만, 할머니는 바지를 갈아 입혀 주지 않으셨다.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 나를 혼자 집에 두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난 겨우 다섯 살이었다. 엄마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나는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돌보아 주셨지만, 나를 점점 차갑게 대하셨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으며, 동생을 편애하고,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내가 9살 때,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남동생이 왔다. 우리 둘은 같이 주방으로 들어 갔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급하게 “찬장에 월병 뒀어요, 얼른 꺼내서 손자 먹여요!” 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난 온 지 한참 됐는데 나한테는 안 주고, 남동생이 오자마자 바로 월병을 꺼내 주다니.’라고 생각 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 갔다. 평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말을 하실 때도 좋게 말하시지 않고 항상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설날이 되어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여 같이 밥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주 친절한 말투로 “내 새끼~ 얼른 와서 밥 먹어라!”라고 남동생을 부르셨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얼굴로 “얼른 와서 밥 안 먹고 뭐해!”라고 소리치셨다. 때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을 품에 안고 놀아 주셨는데, 이러한 자상함은 나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으신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 적이 없었으며, 항상 매우 차갑고 낯선 모습만 보여 주셨다. 내 어린 마음에는 조금씩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 당시, 아빠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반신 불수가 되셨고, 가족의 모든 일은 엄마가 짊어지게 되셨다. 아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저금해 놓은 모든 돈을 다 써버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소를 한 마리 키우셨지만 우리가 밭을 갈 때도 도와주지 않으셔서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밭일을 맡기셔야 했다. 나와 남동생이 학비 낼 돈 마저 어렵게 되자, 할 수 없이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 주시고, 생활비만 엄마가 대는 것으로 약속 하셨다. 그러나 뜻밖에 날아든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방학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연이어 발생한 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등록을 해야 해서 엄마는 나에게 할아버지에게 가서 학비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저 학교에 등록을 해야 돼서 학비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담뱃대를 빠시면서 무표정하게 밖을 쳐다보시며 나에게 “아들을 잃은 마당에 손자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밖에 서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학비를 주지 않으셨고, 나는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생각했다. ‘할아버지, 정말 너무 모질군요! 아빠도 없는데 우리마저 버리시다니요!’ 나는 오기를 부리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흥! 오늘부터 나도 할아버지는 없어, 당신들이 죽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일들을 물어보면, 나는 매우 차갑게 “저한텐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취직 후, 휴가 때 집에 돌아 가서 친구네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랑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새로 이사한 집에 가보지 않았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딸, 예전에 내가 네 앞에서 항상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해서 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 것 같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남아선호사상이 있고, 우리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분들을 미워해서는 안돼.” 엄마의 이 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엄마는 지금껏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한거지?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편을 들어주다니? 나는 의아하게 엄마를 쳐다 보았고,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아니? 사람이 모두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어 어쩔 수 없이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분쟁과 미움,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엄마는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건, 사탄이 그분들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성품대로 살아가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분들을 미워 할 수 있는 것도, 타락한 성품 때문이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그분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로 했단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에게 못되게 대한 건 사실이잖아. 만약 우리한테 잘 대해 주셨어도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했을까? 어쨌든,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에 날 정말 놀라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셨고, ≪하나님 3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 정선≫이라는 책을 주셨다. 나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구원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류를 위해 좋은 환경과 각종 식물을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원래 에덴 동산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아름다운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인류가 누렸던 본래의 아름다운 생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운이였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이때부터 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자매님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자매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주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주인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였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예를 들자면, 너는 왜 이기적이 될까? 너는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할까? 너는 왜 정이 그렇게 많은 걸까? 너는 왜 불의한 것을 좋아하고 악을 좋아할까? 이런 것들의 뿌리(원문: 根據)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너는 왜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걸까? 이제는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로 사탄의 독소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독소란 무엇일까?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였다.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위하든 저것을 위하든,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매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는 우리의 생존의 근본이 되었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주입되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게 되었으며, 아주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때, 이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근거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매님에게 못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람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심령을 왜곡하여 양심과 이성을 잃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람인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내 마음은 확 밝아졌다. 우리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모두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에만 급급한 삶을 살게 된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피해자였군요. 그분들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서 그렇게 변한 거네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는 건 사탄의 독소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말로 괴롭힘을 당한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사탄에게 눈이 멀어 속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분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어요.” 그 후,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해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심 없이 희생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사심 없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구원을 멈추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풍부한 물질을 베풀어 주셨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동시에,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이 목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도록 하신다. 그러나 사탄으로 인해 타락된 후 우리 인간은 모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몇천 년을 거친 고대 문화의 역사적 지식은 사람의 사상 관념과 정신 풍모를 물샐틈없이 봉했는데, 좀 먹지 않는 문돌쩌귀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마치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떨어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이미 봉건사상에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억압당하였고, 다 질식하여 반항할 힘이 전혀 없으며, 그저 말없이 참고 참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분투하거나 일어선 적이 없고, 그저 봉건 교육의 가혹한 속박 속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사람은 격타(擊打)당하여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누렇고 삐쩍 말랐다. 사람은 일찍이 기억을 상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살며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남자 아이만 좋아하고 여자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이는 사탄이 주는 봉건 사상에 오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가한 딸이요, 쏟아진 물이다.”라는 말이나, “가문을 빛내고 혈통을 이어 나가는데 아들이 없다면, 대가 끊긴 것이다.”라는 생각은 모두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 변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이러한 독소에 근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존여비 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진리가 없다면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없기 때문에, 봉건 사상의 굴레에 묶여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 짓밟히고 우롱당할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르게 대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탄이 계속 우리를 타락시키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생활이 화목함을 잃어버리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피해자다. 언제 고향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간증할 것이며, 그들도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그후에, 한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아빠는 삼촌만큼 능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녀의 식구만 차별했는데, 간식이 있으면 그녀는 주지 않고 숨겨 두었다가 사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그녀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있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쌓였던 미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할머니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인데, 그때 그 둘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가정이 따뜻하고 화목하게 변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는데, 자매님이 겪은 일들이 바로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를 드렸다. 나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알게 하시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고, 우리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에야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완전히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10m 깊이의 제언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60대 할머니 이야기

2015년 8월의 어느 날,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6시. 난 여느 때처럼 제언으로 가 오리를 집에 데려오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쫓아갈 때마다 오리가 도망가서 제언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오리는 주변을 맴돌지 않고 갑자기 제언으로 뛰어들어 수영하기에 이르렀다 난 화도 나고 급한 마음에 막대기를 들고 제언 언저리에서 오리를 쫓았다. 오리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나는 내가 10m가 넘는 제언 옆에 있었단 사실을 망각했고 발을 헛디뎌 ‘풍덩’ 소리와 함께 제언에 빠지고 말았다.생존본능에 막대기를 꽉 잡고 발버둥 쳤다. 물을 얼마나 마셨던지. 문득 몸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당황한 나는 더욱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하지만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제언 바깥으로 갈 수가 없었다. 순간 느껴지는 무력함에 나는 ‘끝났구나,이 제언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두려웠고, 두려움이 커질수록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발은 땅에 닿지 않았고, 손은 의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잡지 못했다. 제언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또 미친 듯이 벽을 향해 헤엄쳤다. 순간 머리가 물 밖으로 잠깐 나왔고, 어둑해진 하늘과 아무도 없는 주변, 무서울 만큼 가득한 적막함이 나를 에워쌌다. 물속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희망의 끈이 점점 멀어져 가는 듯했다 내게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무서웠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던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이젠 정말 끝이구나. 이대로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긴박한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어찌 하나님을 깜빡했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구해주세요! 저 좀 구해주세요! 당신만이 저를 구원해주실 수 있나이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너는 이것저것 두려워하지 말라. 온갖 고난을 막론하고 너는 내 앞에 안정할 수 있어야 한다.…너의 두려움을 제거하라. 내가 너의 뒷받침이 되는데 누가 길을 가로막으랴?』 그렇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세상만사를 주재하고 배정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시는데 두려울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무한한 믿음과 힘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오늘 제 목숨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겠나이다.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산다면 그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겠나이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떤 큰 손이 나를 물속에서 꺼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나는 물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눈을 떴을 때 잔잔하던 수면에 크게 울렁이는 물결이 ‘철퍼덕’소리를 내고 있었다. 긴장되고 무서웠다. 이때 큰 물결이 나를 제언 벽으로 떠밀었고, 나는 그대로 벽을 잡고 올라가 쓰러졌다.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위대한 힘으로 저를 물에서 구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군요!” 물 밖으로 나온 나는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었고, 심지어 망가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서둘러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그제야 내가 물속에 1시간 넘게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힘겹게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온몸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달라 울부짖었고,온 힘을 다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7살짜리 손자가 나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진흙과 잡초투성이에 얼굴에는 구정물이 묻어있으며 알 수 없는 것들이 온몸에 붙어있고 계속 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할머니,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난 대답할 힘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제언에 빠졌었단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너를 다신 못 봤을 지도 몰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단다.” 침대에 막 몸을 기대어 누웠을 때 코피가 흘렀고 많은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손자를 불러 옆집(먼 친척 손자가 살고 있다)에 가서 의사를 불러 달라고 시켰다. 잠시 후, 손자 부부가 우리 집으로 와 깜짝 놀라 물었다. “할머니! 어쩌다 제안에 빠지셨어요? 거긴 10m도 넘는 덴데! 어떻게 빠져나오신 거예요?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대체 누가 구해준 거예요!…” 나는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신 거야”. 잠시 후, 의사가 와서 링거를 놓고 약을 줬다. 그제야 나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제언에 빠졌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리자 다시금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기묘하시고, 당신은 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주재이자 당신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튿날,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 모여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보곤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어제 겪은 하나님의 기묘함을 간증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입을 모아 하나님께 찬미 드렸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위대하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곁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나이다.” 주 자매가 격동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천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권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권능을 갖고 있다. 그의 권능은 사람이나 사물, 공간, 지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권세를 행사하고 큰 능력을 나타낸다. 그의 경영 사역을 계속하며 만물을 주재하고 만물에게 제공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사실이며 태고부터 변함없는 진리이다! 』 주 자매가 말했다. “하나님께선 유일무이한 권세를 갖고 계시며 세상 만물과 만사를 주재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경험하니 다니엘이 사자 우리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사자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자매의 교제를 듣자 우리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한 여인이 선물을 들고 친정에 오다가 실수로 강에 빠졌는데, 마침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 바로 여인을 구하러 강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인은 보이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60살 먹은 할머니인 내가 겪은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난 수영도 못하고, 제언에 1시간도 넘게 빠져있었으며, 누구 하나 나를 구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고통스러움에 무기력해지고, 거의 죽어가던 그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나를 바깥으로 밀어내 목숨을 구해주셨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살아 계시는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깨달아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충심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것이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 (상)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생사의 기로에 놓인 남편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다

심신 갑작스러운 발병, 목숨이 위험해진 남편 2017년 1월 20일 아침, 나는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주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위가 왜 이렇게 아프지? 방금 정원에서 호두만 한 핏덩이를 토했어”라고 말했다. 놀란 내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다시 피를 토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너무 놀라 달려가 남편을 부축했다. 남편은 그렇게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고 입술은 보랏빛이 된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대로 숨이 끊어져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119’에 전화 걸었다. 전화 연결이 되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남편은 또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를 토했고 또 의식을 잃었다. 머릿속이 하얘져 멍하니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119’에 전화 걸었다. 내가 황급히 전화를 걸 때 남편은 또 피를 토했다. 30분도 안 돼서 피를 세 번이나 토한 것이다. 매번 피를 토하고 나면 남편은 기절했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피 웅덩이에 쓰러져있는 남편을 보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듯했고 당황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남편 좀 구해주세요. 하나님만이 제 남편을 살려주실 수 있습니다. 전 정말 두렵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살피시어 제가 이성을 찾고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고, 남편도 서서히 깨어났다. 10분가량이 지나도 구급차가 보이지 않자 나는 조급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구급차가 오고 못 오고도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부디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어 제가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고 당신의 사역을 체험하겠나이다.”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내가 의지할 곳이 있음을 깨달았고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만사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남편의 생사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나의 믿음이다. 사탄이 두려워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었고, 그래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내가 잡념을 갖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남편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만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가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충만케 해 주셨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심각한 병세로 옮겨야 하는 병원, 하나님 말씀이 주신 힘 20분가량이 지나자 구급차가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조치를 취한 후 의사는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남편분 B형 간염(간경화 복수)이 너무 심각해요. 출혈량이 많아서 혈압도 낮고 최고 혈압이 50에 최저 혈압이 40밖에 되지 않아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혈액형도 특이하셔서 그 혈액을 쉽게 구할 수가 없어요. 큰 병원으로 옮기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두려워졌다. 남편을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병원을 옮기다가 남편이 또 피를 토해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병원을 옮기지 않자니 만약 남편이 정말 죽는다면… 그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모든 것,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후 각 사물은 생명이 있게 되었고, 그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각 사물은 자기 생명의 궤적과 법칙을 스스로 준수하고 있으니 사람이 바꿀 필요도, 도울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 맞다. 하나님께선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두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에 달려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의 목숨도 하나님께 달려있기에 병원을 옮긴다고 해도 남편의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하나님을 향해 조용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당신의 말씀은 제게 방향을 가리켜 주셨고 사람의 생명은 당신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남편의 목숨이 다했다면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남편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지 않으시면 이 병원에서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사역에 순종 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내 마음은 차분해졌고 남편이 이 병원에 남아 계속 치료를 받게 하기로 결정했다. 괴롭고 나약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되어 준 하나님의 말씀 응급실로 들어가니 의사와 간호사 예닐곱 명이 남편을 에워싸고 주사를 놓고 있었다. 그런데 혈관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끝에 링거를 꼽았다. 남편은 간신히 숨이 붙은 상태로 얼굴이 너무 부어 눈도 뜨지 못했고, 다리도 너무 부어서 보는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조심스레 남편을 부르자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소리를 내진 못했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겪었던 일들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너무 슬퍼졌다. 나는 남편 침대 앞에 앉아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이 지경까지 제가 온 것은 분명 제 분량이 보잘것없기 때문이겠지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시어 제게 믿음과 힘을 주소서…” 이때 형제자매들이 병원으로 와서는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욥의 간증을 교제해주어 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나는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진실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욥은 온 산에 있던 소와 양, 그리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하룻밤 만에 약탈당하고, 온몸에 종기가 났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기 1:21) 욥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깨닫고 자신은 적신으로 모친에게서 나왔을 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속셈이나 욕심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재난이 닥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욥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하여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을 받건 화를 받건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참된 뜻이 담겨있음을 욥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뭘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한 것으로 인해 그렇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는 변함없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세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획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세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욥의 이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그의 모든 행실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히 여겼으며, 욥의 그러한 인식을 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마음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욥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실된 믿음을 갖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유나 조건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이와 관련된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는 한 사람을 죽게 하여 그 영을 육체에서 떠나 저승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그 사람이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권능이 있다. 사람이 언제 죽고 또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인ㆍ사ㆍ물, 공간, 지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기만 하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물 생령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고, 만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생존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 역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권능이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수도, 영혼이 육체를 떠나게 하실 수도 있으시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 일, 사물,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는 유일무이한 권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성령에게 거짓말한 아나니아 부부를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저승의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만이 인간의 죽음을 주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남편의 생사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게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사명을 다하도록 하셨다. 만약 남편이 사명을 다했다면 하나님은 남편을 데려가실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남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면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도 하나님께서 켜주실 것이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모두 그분의 참된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때 하나님을 향한 가나안 부인의 믿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은 아량이시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건 말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그녀를 개로 여겨도, 그녀를 어떻게 대해도 그녀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갔다. 가나안 부인 역시 예수께 딸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기도드렸지만, 그녀의 기도는 이성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딸의 병을 고쳐주시건 말건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겨 경배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진실된 믿음을 보신 예수께서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셨다. 지금 나도 가나안 부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이성적으로 기도드려 만약 남편을 치료해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미를 드리겠지만, 치료해주지 않으신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남편이 죽건 살건 저는 절대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상황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어느샌가 하나님을 따르려는 내 마음이 더욱 커졌고 영적으로도 많이 든든해져 마음을 안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싶어졌다. 그 후 나 혼자 힘겹게 남편을 돌보는 모습을 본 형제자매가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남편을 간병해주었고, 나는 내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 우리를 보러 온 친척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곁에서 믿음을 주시고, 의지할 곳을 마련해주시어 내가 한 발짝씩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형제자매를 빌려 나를 도와주시고 보살펴 주셨다. 내 마음속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 찼다. 기적의 구원, 심각했던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다 남편이 평온하게 고비를 넘길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남편이 깨어났을 때 미약하지만 목소리도 나왔고 혈압도 60에서 90까지 올랐다. 이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생존하며 지속된다. …』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속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창조주만이 이런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시며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남편이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의 목숨은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권능과 위력은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조용히 하나님 앞으로 다가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며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아등바등했으며 가끔 소리라도 지르면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가만히 누워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무기력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어 깊은 고통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가족도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자매를 보내시어 내게 진리를 교제해주고 남편이 고비를 넘길 때 나와 함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성적인 기도가 무엇인지, 진실된 믿음과 순종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어 내가 하나님의 사역을 기다리고 순종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로 보아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우리 육체의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주일 후, 남편이 밥 먹는 모습을 본 의사는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회복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처음 오셨을 때 피를 너무 많이 토하고, 혈압도 4~50까지 떨어진 데다 혈관도 잘 안 보였는데 오늘 이렇게 생기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이건 기적이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오래 사실 운명인가 봐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신 기적의 사역이다! 보름 후 남편은 퇴원하게 되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남편은 힘이 닿는 한 일을 해서 돈도 벌게 되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도와주실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따르겠나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이 세대의 사람들이 좋은 시기를 만났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남방의 것이든, 북방의 것이든,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 특산물 등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과일은 있어도,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대약진 운동때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말 너무 행복하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현재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이렇게 좋고 또 건강에 몹시 신경을 쓰는데, 마땅히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건강해 지고, 더 장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왜 지금 비만, 뇌혈전, 각종 암, 백혈병 등등 각종 희귀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까요? 심지어 최근에 더 많은 희귀병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장수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고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저의 동료를 놓고 말해보겠습니다. 그는 가정환경이 매우 좋아 임신 후 태어날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한 살도 되지 않아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20살을 넘기기 힘들테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질병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하던 데로부터 현실에 직면하고, 예사로 여기던 데로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갖은 애를 다 써도 이런 질병들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논조로 얼버무려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는 말씀 중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의 진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사회 발전으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지고 정보가 발달하여 동서남북이 서로 관통되면서 북방 사람들도 남방의 과일이나 남방의 특산물 혹은 야채들을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식탐과 물욕을 만족시켰지만, 사람의 몸은 오히려 각기 다른 정도로 해를 입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먹거리에는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에게 적합한 먹거리와 야채, 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방에서 태어났다면 남방의 것을 먹어야 아주 적합하다. 남방의 그런 기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까지도 예비해 놓았다.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식탐이 점점 심해져 사회의 발전 추세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법칙을 어기게 되었다. 비록 사람은 지금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고 여기지만, 이런 사회의 진보는 아주 많은 사람들 몸에 보이지 않는 해를 끼쳤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 원치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예비해 주고, 사람에게 그런 먹거리와 야채, 과일을 예비해 준 본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스스로 자연법칙을 어기고 과학을 발전시켜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아주 풍부하여 지역마다 그곳의 특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은 홍대추(보통 대추라 함)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호두가 많이 나고, 어떤 곳은 땅콩과 각종 견과류가 많이 나는데,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다 사람의 육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또 그 시기에 따라 적당한 양으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하고 식욕을 만족시키기를 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이 자랄 수 있도록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을 쉽게 어기고 파괴하게 된다. 앵두를 예로 들어 말해 보자. 앵두는 다들 알고 있겠지? 앵두는 몇 월에 나느냐? (6월입니다.) 대략 6월쯤에 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몇 월이면 끝나느냐? (8월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2개월 동안 먹을 수 있다. 앵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2개월뿐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기간을 12개월로 연장시켰는데, 다음 해에 앵두가 새로 나올 때까지 연장시켰다. 즉, 1년 내내 앵두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정상이냐? (비정상입니다.) 그럼 앵두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냐? 바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아무리 신선하게 보관해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고, 또한 사람 몸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이미 지난 다음에는 어떤 화학 물질을 써도 그것이 자연적으로 자라면서 구비한 성분들을 유지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화학 물질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해는 사람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알았겠지? 지금 시장 경제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냐? 남방과 북방의 교통이 편리해져 1년 사계절 각종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방 사람들도 늘 바나나를 먹을 수 있고 남방의 어떤 음식이나 특산물 혹은 과일도 먹을 수 있어 마치 사람의 생활은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시장 경제가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정상적인 자연 생장 법칙을 어기는 것이고, 가져다준 것은 해로움과 치명적인 재난이지 행복이 아니다. 알았느냐? (네.) 포도를 보아라. 지금은 시장에서 1년 사계절 판매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포도는 따고 나면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아주 짧다. 그 포도를 이듬해 6월까지 보관한다면 그때도 그것을 포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그 포도에는 포도의 원래 성분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화학 약품이 묻어 있다. 1년이란 시간이면 신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양 성분도 이미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포도를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좋다! 30년 전만 해도 이 계절에 포도를 먹을 수 있었을까? 한 알이라도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로 행복한 것이냐? 만약 흥미를 느낀다면 화학 약품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포도를 가져다가 그것의 성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성분이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연구해 보아도 좋다.......그렇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먹거리를 예비해 준 그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물질적 음식을 탐하라고 한 것이냐? 사람이 그런 물질적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양 과다가 되지 않겠느냐? 영양 과다로 몸에 각종 질병이 유발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면 절대로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알맞게, 서로 다른 시기와 계절에 따라 사람에게 각기 다른 먹거리를 누리도록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몸 안에 적지 않은 열기와 습기, 건조함이 쌓이는데, 가을에 많이 나오는 과일을 먹으면 그 습기와 건조함이 제거된다. 동시에 소와 양도 튼실하게 자라 사람은 육식으로 몸보신할 수 있다. 사람이 각종 육류를 먹고 나면 몸에 에너지와 열량이 생기고, 엄동설한 추위를 막아 낼 저항력이 생겨 매서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시기에 사람에게 무엇을 예비해 주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지는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안배해 놓은 것으로, 적절한 한도가 있지만, 사람은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의 생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류가 부단히 고품질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만물의 생존법칙을 위반하고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지역에 맞추어 인류에게 공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지대, 여러 체질의 사람들의 수요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방에는 남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각종 음식물 또한 계절과 시간을 나눕니다. 어느 계절에 무엇을 먹어야 인체에 가장 유익할지 조물주께서 이미 세심하게 안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만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인식이 없어 무턱대고 식욕을 탐하고 육체의 향수를 탐하여 각종 과학적인 수단으로 음식물의 생장주기를 조절하여 유통기한을 연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각종 비철 채소와 과일들이 도처에 널려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물질적인 생활은 풍부해졌고 사람들의 식욕도 만족을 얻었고 시장경제 또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사람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각종 희귀병으로 인한 죽음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으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런 질병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탄이 인류에게 주는 쓰라린 경험과 재난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오직 조물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모든 파괴를 중단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만, 진정으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희에게 방법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냐?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니냐?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크리스천이 죽음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다

나는 올해 65세인 평안이다. 2015년 12월 11일 자정 무렵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나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심장이 수십 초 동안 멈춘 것 같았다. 전신이 마비되어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죽음이 나를 옥죄어온다는 생각에 나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이 상태로는 날이 밝는 걸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기를 쓰며 손으로 침대를 치려고 했다. 하지만 감각이 사라진 내 손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을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엄습해오는 공포에 초조하고 두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다.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려주셨고,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의지해야 함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실제적이시며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심장발작으로 움직일 수가 없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제 목숨도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이런 고통이 임한 것이 사탄의 계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통받아 마땅합니다. 죽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겠나이다. 아멘!" 기도를 드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신기하게도 목소리를 조금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몇 분 후 갑자기 남편이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 "방금 당신이 한숨 쉰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제야 남편이 내 곁으로 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았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남편은 서둘러 나를 일으켜 구심환을 먹여주었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남편을 깨워 내게 약을 먹여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심장은 멈췄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에 감사드린다. 몸이 다 부어서 남편은 나를 동네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는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병세가 너무 심각합니다. 큰 병원으로 가셔서 수술받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하실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올해 예순셋 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죽기는 싫어, 큰 병원에 가봐야 하나? 하지만 수술에 실패하면 난… 난 침대에 누워 뒤척였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다. 살아갈 희망이 사라진 듯했고 정신도 희미해졌으며 눈물만 줄줄 흘렀다. 고통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의사는 제 상태가 좋지 않아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술 실패로 목숨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 마음을 보듬어주시어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해주소서. 아멘!"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늘 내게 병이 온 것은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고, 수술 성공 여부와 내 목숨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나는 수술 실패가 두렵고 걱정되어 공포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는 사탄의 우롱이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사라지게 하여 질병 속에 살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항상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득 욥이 생각났다. 산을 가득 메우던 소와 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녀들도 모두 죽고 욥 자신도 온몸에 종기가 나는 등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욥은 원망 한마디 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을 굳게 증거하여 사탄을 부끄럽게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믿음이 바로 진정한 믿음이다. 나도 욥처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말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어 생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게 해야 한다. 나는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왔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로 계속되는 치료를 받았다. 2016년 1월 3일, 딸과 남편은 나를 데리고 큰 종합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 내가 선천성 심장병(동맥관이 닫히지 않음)과 폐동맥 고혈압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난 36kg밖에 나가지 않았다. 수술 전 의사는 "최소 절개술은 작은 수술이지만 환자분 건강 상태와 나이를 고려하면 최소 절개술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저희는 즉시 외과로 넘겨 큰 수술을 받으시도록 할 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저희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세요. 잘 상의해보시고 수술하실 거면 동의서에 서명해주세요." 의사의 말을 들은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고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머리는 복잡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6개월에서 1년은 더 살 거고, 동의서에 서명하고 수술을 받다가 실패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끝없는 고민으로 눈물만 흘렸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금 내게 믿음과 힘을 주셨고 나도 더는 두렵지 않아졌다. 심장병이 발작했던 그날 저녁 간신히 숨이 붙어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줄곧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시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볼 수 있게 하셨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뭐가 두렵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1월 6일 늦은 오후, 수술 시작 직전 나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는 곧 수술대에 오르게 됩니다. 제 목숨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수술 결과에 상관없이 저는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겠나이다. 하나님, 숨이 붙어 있는 한 당신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따르고 경배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드리자 마음이 안정되었고, 담담하게 수술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수술 진행 도중 한 의사가 과장에게 얘기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이 환자는 수술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전 자신이 없습니다. 과장님께서 직접 하시면 안 될까요?" 의사의 말을 들으니 겁이 났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사탄이 나를 우롱하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보호로 내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어 고통 속에 살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나는 나를 하나님께 맡겼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수술을 마쳤다. 나중에 담당 과장이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나를 구해주셨다! 허약체질이었던 나는 빠르게 회복되어 체중도 10kg나 늘었다.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 말씀의 권세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경험과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심장병이 돌발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커지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주시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영적으로도 강해져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나님께 나를 맡겼을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도 보게 되었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수술 후에 빠르게 회복되면서 하나님이 내 곁에서 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렸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것은 모두 구원이며 모두 사랑임을 느끼게 해주셨다. 이때 눈물이 차올랐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 남은 생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본분을 잘 이행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전국을 경악케 한 톈진 계현의 화재

河北省 陳塵 라이더(萊德) 상가 빌딩은 계현 읍내에서 제일 큰 상가입니다. 2012년 6월 30일, 이날은 토요일이라 상가에서 마침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고객들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상가 빌딩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났는데, 사장은 고객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상품을 도둑질해갈까봐 1층에 있는 셔터를 내리고 고객들을 2층과 3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길이 점점 거세져서 마지막에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상가의 전기 통로가 다 중단되어 1층부터 4층까지의 엘리베이터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층의 셔터 또한 잠겨 열 수가 없어 상가 전체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으며 창문마다 불길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짙은 연기는 읍내를 덮어버렸으며 몇백 m 밖에서도 연기에 숨막힐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3층 위에 갇힌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소방서가 상가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구조 요청을 한 지 약 25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구조할 시간을 지체한 뒤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사다리를 3층까지 올려 놓고 금방 7, 8명까지 구조했을 때 그만 사다리가 불에 달아 매우 뜨거워서 갇힌 자들은 사다리를 빌어 구조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다리로 내려오려던 사람은 떨어져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며 구조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큰불은 오후 3시 30분부터 저녁 9시 넘어까지 줄곧 타올랐는데 약 3백 명 이상이 안에서 타죽었습니다(구체적인 숫자는 아직도 조사 중, 정부에서 발표한 것은 다만 10명). 어떤 사람은 오후 3시 넘어서까지도 가족과 통화를 했었지만, 5시가 되어 가족들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집은 일곱 식구가 모두 라이더 상가에 쇼핑하러 왔다가 그만 온 가족이 화재에 죽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많은 참상들이 있습니다. 화재가 일어나던 그 순간부터 어떤 사람은 이 비극을 신속히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리하여 즉시 ‘라이더 상가 화재’는 인터넷을 타고 온 계현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계현 민중들은 놀랍고 두려워서 하루 보내기도 힘들어하며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또 자기의 친인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비록 화재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상처를 가져다주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는 화재 발생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과 보호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高)자매와 그의 모친은 2012년 6월달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새신자입니다. 이번 화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더욱 하나님의 새 사역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자매님은 올해 73세인데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걸어야 하였는데 평소에는 잘 넘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6월 29일 그날따라 이 자매님이 갑자기 평지에서 넘어졌습니다. 비록 뼈는 골절되지 않고 그저 심하게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고자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토요일(화재가 발생한 바로 그날), 또 다른 어린 자매가 고자매에게 전화를 걸어 라이더 상가에서 판매하는 바지 하나를 봐두었기에 고자매더러 함께 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고자매는 “우리 엄마가 지금 거동을 못하셔서 돌봐드려야 하니 혼자 가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친구가 고자매에게 뭔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는 지금까지 거절한 적이 없었으나 유독 이날만은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부득이 친한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라이더 상가에서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고자매는 깨달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부지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입었고, 하나님이 모친의 병을 통하여 자기의 발걸음을 저지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당시 친구를 따라 상가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큰불에 타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특유의 방식으로 사람을 보호하여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너무나 기묘하십니다! 더욱 생각지도 못한 것은 화재가 발생한 그날 저녁에 고자매의 모친이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교통을 통하여 연로하신 자매님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깨닫고서 “제가 육체적인 고통은 좀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병을 통해 우리 딸을 구원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자매님이 또 얘기하기를, 그날 고자매와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자고 했던 친구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고자매만큼은 추구하지 않았다고 함)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고자매가 못 간다고 하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라이더 상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되어 그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더니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따라 그 자매는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고 남편에게 “좀 더 있다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3시가 되어 그의 남편이 또 재촉하자 이번에도 그 자매는 좀 더 있다 가자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다시 재촉하자 그제야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라이더 상가로 떠났습니다. 반쯤 가고 나니 라이더 상가 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제야 상가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매는 저도 모르게 감격하여 “하나님, 저를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또 자기가 좀 전에 재삼 시간을 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부터 온 것이지 결코 자기의 본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널리 미치며 그분의 지혜도 사람이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늘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주야로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시며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재난이 닥칠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화재가 난 그날, 많은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자매는 마침 라이더 상가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다른 일을 보려고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상가에 불이 났던 것입니다. 어떤 자매는 라이더 상가에 가서 물건을 사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갔는데, 그리하여 한차례의 화를 면했던 것입니다…… 보다시피, 재난 속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며 견고한 망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기탁(寄託)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즉시 정체될 것이며, 나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난은 나에 의해 일어나는데,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들이 만일 내 앞에서 선하게 보일 수 없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차례의 화재로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닫게 됩니다. 설령 사람이 허리춤에 많은 돈을 꿰차고 있고 지위가 대단하고 사치한 현대 도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의 과대 평가와 흠모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재난 앞에서는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불 속에서 불사름을 견디기 어려워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그 사람들, 창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절망 속에서 생명을 잃은 그 사람들, 그들 중 어떤 이는 돈과 지위도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용모와 화려한 장식이 있었을 것이며, 어떤 이는 가족의 동반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길이 흩날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는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도 큰불의 삼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의 말 이외에서 생활하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늦가을의 낙엽마냥 도처에 떨어져 발 붙일 곳이 없고 더욱이 나의 위로의 말도 없다. 비록 그들에게 나의 형벌과 연단이 따르지 않지만, 이 사람들이 바로 천국 밖의 도처에서 방황하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그 거지들이 아닌가? 세상이 정말 너의 안식처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화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일깨움이며 동시에 또 우리에 대한 사랑의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하나님의 고충을 이해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들여 하나님이 인솔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감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재난이 빈발하는 이 위기에 더 많은 영혼들을 빨리 구출하여 하나님의 그 슬프고 초조한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