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이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2018년 10월 04일

연지는 한 영화사에서 일한다. 지난달 월말에 한 고객이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업로드 시키려는데, 연지와 다른 동료들은 부활절 전에 글한 편을 위한 6개의 알림 글로 동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상의를 거쳐 연지가 첫 번째 임무를 맡아 3일 내에 완성하기로 했다. 연지에게 이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예전에 이런 동영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연지도 조금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그는 하나님이 바로 그가 의지해야 할 분이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지는 만들어야 할 동영상에 참고할 그림을 고른 후, 평소에 쓰던 소재 라이브러리에서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해 동료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동료는 급한 일이 있어 동영상을 도와줄 시간이 없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속으로 난처하고 실망했다. 연지는 평소에 인터넷으로 소재를 찾은 적이 거의 없어서 자기가 잘못 처리해 동영상의 저작권에 걸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연지는 낙심하여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바로 이때 그는 하나님을 떠올렸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그가 하나님께 기도 한 후 동료가 약간의 소재를 추천해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적합한 것을 찾아내 순조롭게 이번 임무를 완성했다. 연지는 후에 다른 몇몇 동료들이 계속 본인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며, 자기가 이번에 한 작품이 다른 동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들 그의 작품을 참고하겠는가! 생각할수록 만족스러워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렸다.

연지는 다음 임무에 착수했다. 홈페이지에 두 곡의 노래 동영상을 만드는데 협조하는 것이다. 동영상은 다 만들었는데 썸네일만 나오지 않았다. 연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썸네일이 만들기는 어렵지만 나에게는 기술적 내공이 있고, 지금 많은 그림도 모았으니까, 참고 자료를 좀 더 보면 천천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1주일이 흘렀지만 연지는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녹슨 것처럼 참고 그림을 아무리 많이 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아직도 만들지 못했지? 예전에 그림을 만들 때는 아이디어가 넘치지 않았나?’ 곁의 동료들은 하나둘씩 임무를 완성해가는데 본인만 전혀 진전이 없자 연지는 점점 조급해져서 속으로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겠어. 난 미술 디자인도 전공했는데, 썸네일 하나도 만들지 못하다니!’라고 생각했다. 연지는 짜증이 났다.

마침내, 연지는 가까스로 썸네일을 하나 만들었지만 동료들에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연지는 서화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연지가 샤오샤에게 “나 좀 도와줘. 정말 방법이 없어.”라고 말하자 샤오샤가 시원스럽게 수락했다. 이틀도 안 돼 샤오샤는 완성품을 내놓았고, 동료들의 만장일치까지 얻어 통과되었다. 결국에는 샤오샤가 만든 그림을 쓰기로 해 연지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낙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열흘이 걸려도 못 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틀 만에 다 만들어 내다니, 내가 왜 이렇게 형편없이 변했을까? 차이가 나도 너무 나네!’

연지는 계속해서 두 번째 썸네일을 만들어야 했지만 여전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지가 궁지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지금 그림을 만들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환경이 임했을 때 제가 어떻게 체험해야 하고,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까요?” 기도 후, 교회의 복음 사이트를 열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설교자로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실로 인해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살게 되었다. 마침 주인공이 보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하늘보다 더 높게 보지 말라. 마땅히 자신을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이성 있는 어떤 사람보다 더 낮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진입해야 할 길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게 보아야지 그렇게 대단한 척할 필요가 있겠느냐? 자신을 그렇게 높게 볼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너희는 영원히 갓난아기이고,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요소가 얼마 없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손에서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자만자족의 심리를 갖게 된다면 하나님께 혐오 받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연지의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그는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겪은 상황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했다. 주인공이 처음에 교회를 돌볼 때는 어려움에 부닥치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여 교회의 사역이 좋은 결실을 맺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득의양양하고 교만해서 사역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며 갈 길을 잃었다. 연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지난번 새로운 임무를 받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도하셔서 임무를 완성하도록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객이 찬성하고 동료가 참고하는 것을 보고는 본인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져서 홀로 기쁨을 만끽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오히려 자신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 임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임무를 받았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지 않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해 만들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구하지 않고 결국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를 반성한 연지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중에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나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성심성의를 다해야지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시시로 나와 교통하고 나를 더 가까이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급히 이루려고 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앞에서 나를 의지하는지, 나에게 의지할 믿음이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너는 늘 나를 가까이하고 모든 일을 나의 손에 맡겨야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한동안 가까이하다 보면 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더듬어 낸다면 참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고, 또한 참으로 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 네 속이 무척 환하고 편안해질 것인데, 의지할 데가 있고, 능력과 믿음도 있고, 앞길도 생기게 되며, 어떤 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연지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환경이 임하든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치든 항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비록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꾸준히 하나님을 앙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근심을 없애고, 어려움을 해결할 길을 열어주신다. 연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가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크리스천의 직장생활,

그날 오후, 그가 일을 시작했을 때 우선 하나님 앞에 나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반성을 통해 제가 이렇게 며칠 동안 그림을 만들지 못한 근원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회개하고, 당신에게 의지하여 썸네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그는 소재를 찾아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또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의 기술적 한계로, 몇 번을 시도해도 참고 그림을 좋은 효과에 도달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소재 라이브러리에 이런 종류의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했다. 연지는 이 작업을 완성하기가 참 힘들다고 느꼈지만 이번에는 낙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고민 끝에, 기왕 이런 소재를 못 찾는다면 다른 소재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하면 된다. 천천히 그가 하나님께 의지해 구상했을 때 아이디어가 나왔다. 순간 그는 아주 기뻤다. 이튿날 연지는 샘플 하나를 만들어냈고 회사의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어떤 동료는 그가 고른 글자체가 너무 크고 화면의 원소에 작은 것들을 너무 많이 놓았다고 지적했다. 연지가 동료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 발견 되었고, 다시 수정하여 셋째 날 작품은 통과되었다. 이 과정을 보고 연지는 하나님이 정말 그의 곁에 계심을 깊이 깨달았다.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가 앞으로 나가도록 인도하신다.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사람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사람은 다 바보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면 사람은 매우 총명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이런 일을 체험하고 연지는 진심으로 깨달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어떤 분야의 은사와 특기, 자질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깨우침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미련하고 실행할 방향과 길도 없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에게는 무궁무진한 총명과 지혜가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의지하기만 하면 더 이상 어려움에 부닥쳐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통을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통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묘한 방법

어렵게 얻은 아들, 그만큼 큰 기대 여자가 10개월간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수차례 유산을 하였고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이를 낳지 말고 입양을 하라 권고하셨지만 저는 위험하더라도 입양보다는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임신을 시도했습니다. 2000년 5월, 저는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용혈 수치가 위험 수준이라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매일 링거를 맞고 30~40분가량 고압산소를 흡입하였으며 한약도 먹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했던 우리 부부는 치료비 때문에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른 임산부는 이것저것 많이 먹을 수 있었어도 저는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산일이 되었습니다. 민감 체질인 데다 마취까지 잘 안 되어 통증을 참아가며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를 검사한 후 모두 정상이라고 하시자 저는 그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저와 남편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고 병 치료를 위해 빚을 졌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부족함을 느낄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려 애썼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아이는 어느새 유치원생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여워서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제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아들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고, 아이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서 아들을 인재로 키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들의 나쁜 버릇, 타들어 가는 부모 마음 하지만 아이에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갖고 오는 버릇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자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아들 가방에 장난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장난감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잘못 넣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기에 저는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가져와서는 안 되니 다음 날 장난감을 얼른 갖다 놓으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아이의 가방에서 또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에게 물으니 아들은 바로 “선생님께서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들의 가방에 산사 열매 젤리가 가득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젤리를 어디서 어디서 났니?”하고 엄하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선생님이 잘했다고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상으로 젤리 몇 개를 줄 수는 있어도 어떻게 한 봉투를 주시겠습니까? 점심시간 전에 젤리를 먹기도 하고 가끔 젤리가 많이 남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많이 줄 리는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되돌아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오후에 제 아들에게 상으로 젤리를 많이 주셨어요?” 선생님은 제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아니요, 안 그래도 남은 젤리가 다 어디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저는 다른 선생님이 가져가신 줄 알았는데, 얘가 가져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혼 좀 내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과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저는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제가 몇 번이나 아들이 가져온 물건에 대해 물었을 때 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며댄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5살 된 아이가 거짓말을 배우다니, 게다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가 완전히 믿도록 속이다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요! 저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아들의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아들의 뺨은 금방 빨갛게 부어올랐고,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던 아들은 놀라서 선생님 뒤로 숨었습니다. 선생님이 말려서야 저는 손을 멈추었고, 핸드백을 집어 들고는 돌아서 나왔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저녁에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엄마도 널 때리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다 널 위해 그런 거야.”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는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면 가장 먼저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아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이가 한 번 맞았기 때문에 다시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이번에는 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아들에 대한 잔소리와 감시를 줄였고, 더는 가방을 뒤지지 않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나쁜 버릇이 재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의 책가방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의 책과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이 책과 노트가 다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매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가 깜빡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챙겨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학교에 와달라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아들이 또 다시 친구의 물건을 훔쳤고, 이 사실을 친구가 선생님께 일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선생님 앞에서 아들을 크게 꾸짖었고 또 저에게 “어머니도 선생님이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죠?”라며 힐책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더욱 화가 났고 또 아들이 착실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못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선생님 앞에서 아이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시는 친구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후로 아들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애 아빠의 돈을 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하루하루 커갔고 아무리 노력해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버릇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는 죽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니? 내가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마음도 아프지 않겠지. 그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그만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들이 아직 어리잖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만약 내가 이대로 죽어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하면, 아들이 커서 범죄자의 길을 가지 않을까? 그러면 아들의 인생은 망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을 때리고 혼내도 효과가 없기에 저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받게 되는 처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이웃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가 체포된 사건도 말해주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어떤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아들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오래지 않아 다시 도둑질하곤 했습니다. 저는 낙담했고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가슴 졸이게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기묘한 방법, 아들의 변화 2008년 5월,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 『인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그런 세상은 어둡고 소망이 없으며 공허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중에 인류의 문명은 갈수록 사람의 소원대로 되지 못하였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오히려 죽은 사람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과거 아주 문명화했던 나라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원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설사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모두 온갖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가 우리 안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에 의지할 뿐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면 내면은 공허한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제 상황에 비추어 보니, 저는 줄곧 저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려 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때리거나 혼내는 방법으로 교육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들이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의지하다 보니 어떤 일도 성사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들을 참으로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이끌어 인생의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면 아들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들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받들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들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겠다고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신발 박스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들의 신발 박스 안에 2만원 가량되는 돈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아들이 다시 돈을 훔치기 시작한 걸까? 가족의 돈을 훔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친 것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저는 늘 아들을 때렸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포용력도 없고 참을성도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으니 저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돌아오자 “아들, 오늘 엄마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2만원을 주웠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바로 해명을 했습니다. “그거 건드리지 마세요. 저희 반 친구 XX 거예요.” 저는 다시 “친구 돈이 어떻게 우리 집 신발 박스에 있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 아빠가 생일이라고 5만원을 주셨는데 친구가 그 돈을 다 못 써서 잃어버릴까 봐 저에게 대신 보관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났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지 화를 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안 돼. 내가 먼저 변해야 해.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걸 거야.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 그러면 나도 아들처럼 거짓말하는 게 돼버리는데?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아들을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는 내 방식으로 가르치려 하면 안 돼. 내가 먼저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이에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널 믿어. 그럼 엄마 아빠랑 함께 그 친구 집에 가서 물어봐도 되겠니?” 그러자 아들은 저와 남편을 근처 새 건물로 데려가 어떤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그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저희에게 “친구가 집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는 아들에게 “아들아, 엄마 아빠가 하나님을 믿는 걸 알지? 하나님은 타락된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어. 너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엄마 아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거야. 네가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아빠는 너를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예전에 너를 때린 건 엄마 아빠가 잘못 한거야. 하나님은 너를 때리는 걸 원치 않으시니 엄마 아빠도 변해야 하는 거야. 너도 하나님께 얘기 드릴 수 있어. 진솔한 사람이 되고 엄마 아빠를 속이지 않길 원하면 하나님도 널 용서하실 거야. 하나님은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셔. 우리가 말한거나 행한 것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 하나님도 사람도 속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비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때로는 과장하거나 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해 주셔. 아들과 엄마 둘 다 진솔한 사람이 되어 너도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엄마도 하나님을 속이지 말자구나. 네가 엄마에게 직접 말하기 부끄러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너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렴. 고치기만 하면 착한 아이인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제가 훔친 거예요. 아빠 몰래 5만원을 훔쳤어요. XX가 사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안 사주실까 봐 훔쳤어요. 엄마한테 맞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게요. 정말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져온 변화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를 믿어. 엄마도 네가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어.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거고, 넌 꼭 고칠 수 있을 거야. 너도 보았겠지만 엄마가 널 때리지 않겠다 말하고 그 말을 지켰잖니? 너도 힘내서 해내야 해.”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감격해서 눈이 빨개진 채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어주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들은 더는 돈을 훔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7~8년동안 아들은 단 한 푼도 훔친 적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그런 버릇을 가진 같은 반 친구에게 반감과 혐오를 느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말씀이 가져온 결과로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아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 돈을 더 가져가라고 해도 아들은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완전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제 아들을 변화시켜 주셨고, 아들을 교육하는 저의 방식도 바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아들을 돕고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돌봐주고 계셔서 우리 일가족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서로 도우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우리 가족의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니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재난에도 눈이 있다

2016년 6월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가 유달리 좋아요. 우리 집 밀이 눅눅하니 밖으로 내다 말려요. 곰팡이 피면 종자회사에서 수매하러 올 때 어쩌면 팔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예배드리러 가야 하니 내일 말리지!”라고 말하자, “당신이 마당으로 내다 주면 돼요. 나 혼자 뒤집으면서 말릴게요. 당신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 같이 거두어 들이면 되거든요.”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도와 밀을 마당으로 옮겨놓고 식사를 하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날씨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북쪽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떠오르더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집 마당에 말리고 있는 밀과 아내 혼자 조급해 할 거라는 생각에 속도를 내어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가 몇 리를 더 갔을 때,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동시에 보슬비까지 내렸습니다. 상황을 보고 한 차례 소나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밀을 아내 혼자 다 거둬들일 수 있을까? 만일 물에 쓸려가면 손실이 클 텐데, 또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만약 어떤 손실이라도 생기면 내게 어떤 원망을 할지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만사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람을 안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람은 점점 더 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고 동시에 콩알 같은 우박까지 섞여 내렸습니다. 우박은 ‘탁탁’하고 저전거에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습니다. 집까지 몇 백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더 놀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쳤는데 길가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강한 바람에 여기 저기로 쓰러지고,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으며 비도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박은 놀랄 정도로 컸는데, 제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땅콩만 하고, 어떤 것은 작은 대추만 했으며, 또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컸는데 길바닥을 치고 튕겨 올랐습니다. 우박에 맞은 자리에는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렸습니다. 그 상황을 본 저는 정말 너무나 놀랍고 두려웠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밭 기슭은 온통 빗물과 우박이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바퀴는 진흙에 엉켜 움직일 수 없어 저는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겨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외로움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재난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데, 물론 역시 내가 지배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지! 오늘 내게 닥친 재난은 하나님의 안배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 그리고 진노와 기묘함, 전능을 더 볼 수 있고, 더더욱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야.’ 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인류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들이 홀연히 다가오고, 인류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또 부지중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마련해 해주셔 당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실제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이 주신 것인데,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제 자신을 알게 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우박에 맞아 죽어도 하나님의 공의이고, 살아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여 원망하지 않고 굳게 간증을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하길 원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속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도 20분 정도 내려 우박이 땅에 두껍게 쌓였는데,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우박도 그치고, 빗줄기도 가늘어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우박이 내렸는데 저의 몸에 하나도 맞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에 심어진 채소들이 우박에 맞아 엉망진창이 되었고, 두꺼운 플라스틱 통과 주방의 지붕에 덮었던 석면기와는 우박에 맞아서 많은 곳에 구멍이 난 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은 옥상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온수기가 망가졌고, 어떤 집의 자가용은 우박에 맞아 ‘곰보차’가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 드문 우박에 크게 놀라워하면서 일부러 큰 우박을 주워 달갈이랑 같이 접시에 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어떤 사람은 큰 우박을 주웠는데, 달걀보다 더 컸었고 저울에 달아 보니, 그 무게가 무려 3kg에 달해 보는 사람마다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렇게 큰 우박에도 제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이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다 깔린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생명 진입의 교통설교》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재난은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할 때, 총알은 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습니다. 총알은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맞히지 않습니다.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총알은 눈이 없다고 늘 말합니다. 그들은 ‘재난은 눈이 없습니다. 홍수는 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것은 늘 희망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재난은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를 안다면, 당신은 ‘총알은 눈이 없고 재난은 눈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위험하고 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모든 재난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발생하거나 소멸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날 저는 비록 집에 없었지만, 우리 집의 밀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서 저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더더욱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은 차로 사람들에게 석탄을 배달해주는 일을 하는데, 그날에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전날 우리 집에 와서 자기 집의 밭에 물을 댄다면서 경운기를 몰고 갔습니다. 사위는 물을 다 대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물을 더 대고 싶지 않아 경운기를 돌려주려고 왔었고 그때 마침 저희 집에서 밀을 거두고 있어 제 아들과 같이 밀을 거두었답니다. 그 날에 그 두 사람이 같이 밀을 거두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기묘하신 안배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사물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재, 가뭄, 충해, 지진, 온역, 전쟁, 고온, 극한 등, 온갖 재난이 벌떼같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그 범위 또한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은 다 보기드문 것이고 사상 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옳고, 다 나의 성품의 나타냄이지, 결코 사람의 행사가 아님을 보게 하며, 더욱이 대자연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물 가운데의 각 생령(生靈)을 자양(滋養)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하거나 재해의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고, 누구도 더 이상 아름다운 나날과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산한 어두운 밤과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가 생존하는 데의 의탁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인류는 오직 치명적인 재난과 각종 유령의 짓밟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말씀과 이번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저는 재난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재난 앞에서 사람은 그렇듯 보잘 것 없고 미약하며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소용없고, 오로지 사람이 조물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만,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실행(實行)

어느 90년대 생의 변화

90년대 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혹시 하루 종일 사이버 세계에 빠져서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청소년들의 모습인가요? 혹시 학교에서 짝을 이루고 다니는 젊은 커플들인가요? 또 혹시 밤새도록 클럽에 드나들며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춤추는 청소년들인가요? ……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더 이상 90년대 생들을 청춘의 생기가 넘치고 열정이 가득하며 활기차게 향상하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고 나약하고 무능하며 빈둥거리면서 먹고 마시고 노는 사람들의 대표로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먼저 여기 어느 90년대 생의 체험을 들어 보세요! 무슨 심리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셨고 게다가 도박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늘 룸메이트와 함께 술 한 박스를 몰래 숙소로 가져와서는 밤이 되면 도박을 하면서 술을 진탕 마셨는데 그것을 누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또 인터넷 게임과 채팅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수업 중에는 물론이고 길을 가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했고 심지어 꿈속에서조차도 했습니다. 설령 기진맥진할 정도로 해서 학교 책상에 엎드려 잔다 하더라도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친구가 많아지다 보니 저도 이 복잡한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여태껏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물들이 조금씩 저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비록 미래에 대해 많은 지향이 있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만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졸업하자마자 일을 하기 시작한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친구의 요청에 의하여 처음으로 KTV에 갔습니다. 저는 알코올, 약물, 마음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를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것들을 해소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그런 곳에 빠지게 되었고 며칠에 한 번씩 친구들을 불러 진탕 놀다가 항상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건강이 점점 나빠졌지만 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늘 유흥업소에 드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위가 아팠고 담배를 피우며 밤까지 새다 보니 기침을 하면 피가 나왔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지니 그제서야 반성을 해봤습니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까지 됐지? 이대로 나가다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근데 이렇게 살지 않으면 또 어떻게 살지? 지난 몇 년 동안 대체 뭘 한 걸까?’ 순간 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고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제가 걸어야 할 길이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랐고 또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갈수록 저를 방황하게 하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번화하여 사람들이 보고 마음이 모두 거기에 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사기꾼들과 술법사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만약 네가 진보하려고 하지 않고 꿈이 없다면 이 죄악의 파도에 휩쓸려 갈 것이다.』 『전능자는 심히 고통 받는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동시에 지각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오래 기다려서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을 찾고 너의 영을 찾아 너에게 물과 양식을 주어 너를 소생케 하고 더는 목마르지 않게 하고 더는 굶주리지 않게 한다. 네가 지쳤다고 느낄 때, 네가 이 세상의 처량함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흐느끼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수시로 너의 돌아옴을 포옹할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면서 네가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너의 기억이 문득 회복되어 “네가 하나님 그리로부터 나왔는데 어느 때에 방향을 잃었는지, 어느 때에 길에서 혼미하였는지, 또 어느 때에 ‘아비’가 있게 되었는지를 알고 더욱이 전능자가 줄곧 그곳에서 지키면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오래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애타게 바라면서 답이 없는 하나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지킴은 값으로 칠 수 없는데, 사람의 마음을 위하고 있고 사람의 영을 위하고 있다. 아마 이 지킴은 기한이 없을 것이고 또 아마 이 지킴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지금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과 기대는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동시에 이 “향락 세계”의 사악한 사회 풍조는 모두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수단임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눈앞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사악한 사회 풍조가 우리의 심신을 얼마나 심하게 타락케 하는지를 모른 채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마구 짓밟도록 방임하면서 인류의 영혼을 삼키려는 사탄의 음모와 계략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지내 온 과정을 돌이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저는 이런 사악한 사회 풍조에 깊이 빠져 거기에 장단 맞춰서 춤을 추고 줄곧 사탄의 우롱과 참해를 받고 죄 속에서 살면서도 오히려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그런 것들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때에 구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역사가 되어 저에게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인생에 대해 정확한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는 이상과 기개 및 왕성하게 향상하는 기질이 없어서는 안 되며, 젊은이는 전망에 대해 낙담해서는 안 되고 생활에 대해 희망을 잃어서도 안 되고 미래에 대해 신심을 잃어서도 안 되며, 젊은이는 자신이 오늘 선택한 진리의 도에 대해 걸어갈 의지력이 있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룩해야 하며,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되고 허위와 불의를 품고 있어서도 안 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입장을 굳게 세워야 하고 자기 주견이 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되고 용감히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봉헌하고 전력을 다해 분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마땅히 흑암 세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있고 자신의 생존 의의를 바꾸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억울하게 받는 나쁜 대우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더욱더 솔직한 마음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 정의와 진리를 찾으려는 심지(心志)가 없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아름답고 선한 사물이어야 하며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정성스러운 가르침은 저에게 무한한 동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더 이상 화려한 세상에 빠지거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저를 광명한 인생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사탄에게 괴롭힘 당해 자아를 잃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가 방황하고 헤매고 있을 때 저를 깨워 주시고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어 주셨고 “물”과 “양식”으로 양육을 해 주셔서 저에게 빛과 희망을 보게 하였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에 긍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이고 부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분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짓밟힐 대로 짓밟히면서 타락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 말씀의 목양 하에서 정확한 인생관을 세우게 되었고 젊은이로서 마땅히 어떤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자 하는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동시에 세상의 시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겨 전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사악한 조류를 좇으면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행동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벼랑 끝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느꼈다

소란 2012년,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며, 얼만큼의 부를 쌓는가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론적으로만 알뿐 마음 속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매일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렸고, 하나님 말씀도 많이 읽지 않았으며 심지어 예배에 빠진 적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셨고,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주셨다. 2015년 9월, 추석이 다가오자 나는 이웃과 함께 밤을 따러 산에 올라갔다. 떨어진 밤을 줍고 난 후, 높은 나무에 밤이 많은 걸 보고 나는 4~5m 되는 나무에 올라가 장대로 밤을 쳐냈다. 그런데 나무에 올라 몇 번 치지도 않았는데 중심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뾰족한 것에 찔린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일어나려 했지만 두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도움을 청했지만 이웃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내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온몸에 힘도 빠졌다. 만약 이웃이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나 혼자 이 산에서 아무도 모른 채 죽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제가 나무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제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저를 당신께 맡겨 당신의 주재에 따르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 순간 마음속이 환해진 느낌이었다. 그렇다! 내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오늘 내 목숨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인데 내가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두려움은 사탄의 교란과 시험이 아닌가? 하나님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졌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20분가량이 흘렀을까. 이웃과 또 다른 사람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을 본 나는 하나님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꼼짝도 못 한 채 쓰려져 있는 내 모습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몹시 놀라며 내게 말했다. “소란, 자네 머리가 저쪽으로 조금만 갔어도 나무뿌리에 부딪혔을 거고, 이쪽으로 조금만 왔어도 날카로운 대나무에 찔릴 뻔했어. 정말 위험했는데 운이 좋았네! 하늘이 도왔어!”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병원에 도착해 X-레이를 찍었고, 그 사진을 보며 의사가 내게 말했다. “늑골 4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렀어요. 흉골도 부러졌고, 왼쪽 어깨뼈도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어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엄습했다. ‘어쩜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지? 혹시라도 불구자가 되면 어쩌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을 주셨다. 고통 앞에서 나는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지 원망과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무에서 떨어져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웃에게 나를 돕도록 하시어 내가 제때 병원에 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의사는 부상이 심각하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을 믿는다. 내가 의지할 유일한 곳이 바로 하나님이다. 내 모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 한쪽이 든든해졌고,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때 나는 형편상 큰돈을 들여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던 공장에서 나를 위해 660만원 정도이나 모금해준 것이 아니던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임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의 동료들이 나를 위해 모금 하도록 하여 내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내 마음은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심각한 고비를 막 넘겼을 때 더 큰 고비가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낙상사고로 폐에 피가 차서 의사 선생님이 내 폐에 찬 피를 뽑아주셨다. 한 번에 750ml나 뽑았다. 게다가 폐에 있는 모든 피를 다 뽑을 때까지 계속 뽑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친척의 도움으로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친척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긴급 상황이야. 의사가 피를 잘못 뽑았어. 간에 있는 피를 모두 뽑고 말았어. 큰 병원에 연락해놨는데 내일 데리러 오겠대.” 친척의 말에 나는 또다시 공포감에 휩싸였다. 간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인데, 그렇게 많은 피를 뽑았으니 만약 큰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 아닌가?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두려움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 저는 몹시 나약합니다. 두렵습니다. 부디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제 목숨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죽든 아니면 살든 하나님의 뜻대로 하세요. 저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다음 날 나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는 지금 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치료가 잘 된다 해도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피를 보충하고, 링거를 꽂고, 나를 단단하게 묶었다. 온몸이 단단하게 묶여 몸에 묶인 자국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날씨도 더운 데다가 허리에 바늘을 꽂고 있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침대가 다 젖어 마치 물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런 데다 온몸이 가려워서 긁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느니만 못한 그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특히 옆에 있던 환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걸 볼 때면 내 모습을 떠올리며 혹시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걱정했다. 그때 나는 끝없는 고통에 빠졌다. 하나님께서 나의 나약함을 아시고 말씀으로 위로해주셨다. 라는 노래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보잘것없는 믿음도 보게 해주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고 심지어 소극적으로 원망했으며, 하나님의 주재를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간 직접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이 계속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았는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의사는 내가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하나님의 손안에 내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식물인간이 될지 말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이다.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15일에 걸친 보혈 치료 끝에 나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17일간 입원했고, 다시 원래 있었던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두 자매님이 찾아왔다. 정말 감동이었다. 한 자매님이 내 침대로 와 몸을 숙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자매님, 이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 해요…” 자매님의 관심 어린 따뜻한 위로에 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날 떠나지도, 날 버리지도 않으시고 내 곁에서 계속 나와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세가 심각하여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가족들마저 나를 귀찮아하며 돌봐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매님들은 나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내 일상생활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었다. 이로써 나는 하나님의 집만이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이렇게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날 내가 기적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적인 걸음은 아니었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퇴원하면 꼭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다시 20일간 입원한 뒤 나는 퇴원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직접 체험한 나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 생활을 했다. 얼마 후 병원에서 내 상황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내 상태를 얘기하자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얘기했다. “회복이 정말 빠르네요! 제가 다 기뻐요!” 난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은 2년여를 되돌아보면 나는 종일 바쁘게 일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자 하나님께선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셨다. 내가 4~ 5m 높이의 밤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어 이웃에게 나를 구하러 가도록 하셨고 내가 의료비를 부담해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회사의 사람들을 움직여 나를 도와주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 게 아니던가?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의 행사와 능력은 무소부재하며, 그의 지혜와 권능도 무소부재하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하나님의 권세가 유일무이하며 하나님의 권세와 주재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된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빨리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형편도 안 좋은데 하나님께서 회사 사람들에게 내 병원비를 도와주도록 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걱정을 덜어주시고, 어려움에서 극복하게 해주셨으며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위기가 닥치면 돈, 명예, 지위 따위는 우리를 구해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시고,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다. 앞으로 나는 돈 버는 일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왜 크리스천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삶은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그러면 왜 지금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예를 들면, 직장 일로 인한 스트레스, 자녀에 대한 걱정, 가족들과의 불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앞날이 막막해지는 등등 …… 주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 28~30) 주님은 신실하시므로 말씀하신 대로 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지난날 우리도 영이 안정되고 평안한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령이 갑절로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갈급해하고 사모하였으며, 또한 있는 힘껏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 주셨으며, 우리들로 영 안에서 안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마음은 세속에 얽매여 있는데, 설령 육체는 만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갈급함은 오히려 해결받지 못하였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야 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이 말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비물질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비록 하나님이 너에게 모든 물질적 필요를 공급해 줄 수도 있지만 너의 물질적 필요가 만족을 얻었을 때 이런 물질이 너에게 가져다준 만족은 진리에 대한 너의 추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아주 뚜렸한바, 대체할 수 없다!……내가 예를 하나 들겠다. 네가 배가 고플 때 음식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이 음식은 좀 좋아도 괜찮고 좀 별로 여도 괜찮다. 네가 배불리만 먹으면 배고픈 그 느낌은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며,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도 잠잠해질 수 있고 너의 육체가 편히 쉴 수도 있다. 사람의 배고픔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제로라고 느낄 때 너의 심령의 공허한 느낌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또는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너의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께 구원 받는 것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성정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했다면 너는 아주 조급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이런 느낌은 너의 심령에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고, 일부 사람들은 몇몇 괜찮은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일부 사람들은 한숨 푹 자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보거나 본분을 하는 방면에 공을 많이 들이고 힘을 많이 쓰는데, 이런 것이 너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행실에 대해 너희는 모두 깊은 체험이 있다. 네가 힘에 부침을 느낄 때, 너로 하여금 진리의 실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나님의 깨우침 얻기를 매우 사모하고 있음을 느낄 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너에게 필요한 것은 한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고 몇 마디 마음에 딱 맞는 말도 아니며 더욱이 육체가 잠시적인 안일과 만족을 얻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하라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알려주고 너에게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이런 것을 깨달은 후에는 설령 소소한 것일지라도 너의 심령이 한 끼 배불리 먹는 것보다 더 만족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심령이 만족을 얻었을 때는 너의 심령이나 너의 온 몸과 마음이 진정한 안식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일을 이렇게 비유하고 이렇게 분석하니, 너희는 지금 왜 내가 너희에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는 이 말씀을 보라고 하는지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의 뜻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전부는 네가 전에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물건이나 사람을 포함한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약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심령의 안식을 얻고 싶어한다면,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따르고, 하나님이 현실에서 하시는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은혜시대, 주 예수께서 사람이 회개하도록 하는 도(道)를 발표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포용하고, 인내하고,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바로 죄사함을 받고 영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는 당시에 구속 사역만 하였을 뿐, 죄를 제거하는 사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 후기가 되어 사람은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사람이 죄를 범하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철저히 해결해야만이, 사람이 더 이상 사탄에게 훼방받지 않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시대 구속 사역의 기초 위에서 또 말세에 사람의 패괴 성정을 철저히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였고, 가장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에게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추구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요한복음 16:13) 지금 예수님의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예수님은 일찍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펼쳐 말세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전개하였고, 인류에게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뭇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발표하신 말씀에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어떻게 성정 변화에 도달하고, 어떻게 인류의 패괴 실질을 인식해야 하는가 등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진리는 전부 사람의 생명에 필요한 것입니다. 무릇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순복하는 형제자매들은 성령의 역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상, 직장, 가정, 인간관계를 대하는 진리 원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정 변화의 길을 찾았고, 성령 역사의 인도하에 점점 더 홀가분하고 유쾌하게 되었으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고,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며,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아야만 생명이 자랄 수 있고,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심령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행복을 찾다

부유한 삶을 위해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질병에 시달리게 되자 가족들도 냉정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잃어버렸던 행복을 찾아 주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에서 얻어야 할 인생 깨달음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떠날 때 왜 아쉬움을 안고 갔는지 알고 있나요? 그의 유언이 우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